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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독도함과 일본/이목희 논설위원

    1905년 도고제독이 이끄는 일본 해군 연합함대는 동해상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를 궤멸시켰다. 이후 일본 해군은 영국·미국과 함께 세계 최강대열에 올라섰다. 항공모함을 개발한 나라는 영국이다.1차대전 당시부터 순양함과 상선을 개조해 항공기를 탑재·운용했다. 전투용 순수 항공모함은 일본에 의해 처음으로 건조됐다. 1920년대 일본은 7500t급 항공모함 호우쇼를 만든 데 이어 2만 7000t급의 가가, 아카기를 잇따라 선보였다. 특히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항공모함이 진가를 발휘한 첫 사례였다. 일본은 6척의 항공모함과 400여대의 항공기를 동원, 진주만 미 해군기지를 초토화시켰다.2차대전 패배 후 일본의 군사력은 제약받아 왔지만 해상자위대의 전력은 만만찮다고 평가된다. 군사전문가들은 세계 4위권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최첨단 항공모함은 아직 갖고 있지 않다. 가장 큰 상륙함이래봐야 오스미급으로 8900t에 불과하다. 한국이 엊그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대형수송함(LPX)인 독도함을 진수하자 일본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송함의 이름에 유감을 표명했으나 ‘아시아 최대’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을 게 틀림없다.1만 4000t급의 독도함은 탑재 가능한 병력, 전차, 헬기 숫자에서 일본 함정을 앞선다. 초수평선(超水平線) 상륙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등 공격력을 갖췄다. 해안의 적에게 탐지되지 않는 거리에서 고속공기부양정과 헬기를 이용해 신속한 상륙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부만 개조하면 해리어기 등 수직이착륙 항공기 탑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독도함이 경항공모함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우리가 해군에 본격 투자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다.‘대양해군’의 개념이 생겼고, 일본을 가상적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 무력충돌을 다룬 소설·만화가 인기를 끌었다. 올 들어 실제로 독도 해역에서 양국 경비정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일간 기본적인 우호관계가 유지되고 있어 해상 무력충돌이 생길 확률은 낮다. 서태평양에는 두나라를 중재할 미7함대가 버티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이 독도함에 시비를 거는 모양이 개운찮다. 독도 논란을 넘어 해군력 강화 구실을 삼으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런던 연쇄폭탄테러 이모저모] 전세계 열차테러 5년간 181건

    지하철과 버스, 열차, 항공 등 세계 주요 도시의 대중교통 수단이 갈수록 테러단체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 대중교통은 수십만∼수백만명이 이용하고 운행 시간이 일정하지만 막대한 비용 문제로 대부분 보안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테러에 취약하다. 이번 런던 지하철·버스 테러에 앞서 지난해 3월 마드리드에선 열차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출근 시간대의 통근열차 4대를 노린 마드리드 테러는 191명의 사망자와 1800여명의 부상자를 냈다. 이 테러는 알카에다 연계조직의 소행으로 추정됐다. 그보다 한달 전인 2월6일 모스크바 지하철에선 체첸 분리주의단체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폭탄 테러가 일어나 42명이 숨지고 250여명이 다쳤다.가장 끔찍한 테러는 역시 2001년 미국 뉴욕과 워싱턴 근교 등에서 발생한 비행기 납치 테러인 ‘9·11’이다. 승객 등을 포함해 무려 2986명이 숨졌고 6000여명이 부상했다.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2403명의 미국인이 숨졌던 것과 비교하면 피해 규모를 알 수 있다. 이는 오사마 빈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 소행으로 추정된다. 1995년에는 프랑스에서 4개월 간 이슬람 극단주의단체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열차 폭탄 테러 등이 발생,8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다쳤다.같은 해 도쿄에서는 종교단체인 옴진리교에 의한 지하철 독가스 테러로 12명이 숨지고 5000여명이 부상했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철도산업안전회의에서 전문가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1998년부터 2003년까지 발생한 열차 관련 테러만도 전세계적으로 181건 이상이라고 BBC방송 인터넷판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시범기업도시 4곳 확정] ‘대기업’ 빠진 기업도시… 재원 어디서?

    [시범기업도시 4곳 확정] ‘대기업’ 빠진 기업도시… 재원 어디서?

    ■ 문제점과 과제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기업도시 시범사업지가 선정됐지만 기업도시가 실제로 건설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시범 사업지가 너무 많다는 지적과 사업지를 한 곳도 못 따낸 영남권의 반발이 예상된다. 재원조달이나 부동산·환경 문제 등도 간단치 않다. 근본적으로는 과연 이들 기업도시가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보탬이 되겠느냐는 지적도 정부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번 심사결과 시범사업을 신청한 8곳 가운데 원주와 충주, 무주, 무안 등 4곳이 선정되고 태안과 해남·영암 등 2곳이 재심사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재심사 대상 2곳도 조만간 시범사업 대상에 합류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실질적으로는 시범사업지로 6곳이 선정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기업도시위원회에 이들 6곳을 최종 후보로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2∼3곳을 시범사업지로 선정한다는 방침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업지가 늘어나면서 ‘과연 이것이 시범사업이냐.’는 비판론도 나온다. 전 국토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벌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얘기부터 공공기관 이전 때처럼 지역안배 흔적이 엿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정부는 “기업도시는 철저히 계량화를 통해 선정됐다.”면서 “사천이나 하동·광양이 떨어진 것은 지역안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범사업임에도 지식기반형이나 관광레저형을 2곳씩 지정한 데는 가급적 전국에 걸쳐 사업을 펼치려는 정부의 욕심이 작용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도시 건설은 2003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기업도시 건설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이같은 취지에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개념이 추가되면서 수도권과 충청권이 대상지역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시범사업 신청지 8곳 가운데 관광레저 목적이 5곳이나 되고, 시범사업에 삼성·현대차·LG·SK·GS 등 주요 그룹 계열사가 참여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주요 기업의 저조한 참여는 재원조달에 대한 의구심을 낳게 하고, 결과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500만평짜리 산업형 기업도시 건설에 3년간 직접비용이 18조원에 달하는 등 최소한 18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처럼 막대한 재원 조달은 기업도시의 성패를 가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기업도시 건설 과정에서 주도기업이 바뀌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과 마찬가지로 기업도시 건설도 부지 매입 등에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부는 기업도시로 선정된 곳의 경우 개발가능지의 50%를 확보하면 나머지에 대해서는 토지수용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도시 시범사업 선정지역은 후보 신청단계에서부터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오를 만큼 올랐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전북 무주는 올들어 5월 말 현재 땅값 누적 상승률이 3.37%로 전국 평균 누적상승률(1.86%)의 2배 가까이 됐다. 충주시도 무려 2.78%나 올랐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 기업도시 건설비 역시 크게 올라가고, 주변지역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정부도 기업도시 대상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고, 대대적인 투기단속을 벌이기로 했지만 약발이 먹힐지는 의문이다. 환경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기업도시 신청지 가운데 관광레저형 지역은 대부분 뛰어난 환경여건을 갖추고 있다. 개발을 둘러싼 환경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희비 엇갈린 지자체 기업도시 시범사업지 선정결과를 놓고 자치단체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충남 태안군과 주민들은 심의가 한달 뒤로 유보되자 허탈해하고 있다. 그동안 비공식 채널을 통해 관광레저형 후보지 5곳 가운데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소문이 떠돌면서 선정을 확신했던 터라 허탈감이 더했다. 강홍순 서산B지구개발추진위원장은 “농지의 용도변경이 문제됐다면 아예 처음부터 탈락시키지 한달 뒤로 미룬 이유가 무엇이냐.”면서 “농지보전을 내세워 기업도시를 반대한 농림부가 우리 군민을 먹여 살리라.”고 비난했다. 진태구 군수도 “B지구 간척지는 지력이 떨어지고 부남호 수질이 크게 악화돼 농사짓기가 어려운데 대책은 없이 규제만 하려 드느냐.”고 따졌다. 탈락한 경남 사천시 축동면 주민들은 “낙후된 우리 지역은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유치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으로 유치전을 벌였다.”면서 “정부가 주민 열망을 끝내 저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남 광양시와 함께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를 신청했다가 탈락한 하동군 관계자는 “경남에서 가장 낙후된 하동과 광양 영호남 두 지역이 수십년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획기적인 공동발전을 이룰 수 있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반면 지식기반형으로 선정된 충북 충주시의 기업도시 유치위원회와 사회단체연합회는 “충주를 가장 모범적 기업도시로 만들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원종 충북지사까지 “충주 기업도시는 오송, 오창, 충주, 제천 등을 연결하는 첨단지식산업 벨트를 형성,‘바이오토피아 충북’ 건설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 성명을 냈다. 김진선 강원지사도 원주가 지식기반형으로 선정된 것과 관련,“단순히 원주라는 행정구역을 떠나 도 전역으로 파급효과가 미치는 도시로 만들겠다.”면서 “금년중 개발계획 승인신청을 거쳐 내년에 착수하겠다.”고 반겼다. 관광레저형으로 단독 확정된 전북 무주군은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무주군청으로 주민 수천명이 몰려들어 광장은 삽시간에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김세웅 무주군수는 “태권도공원 유치에 이은 쾌거로 민선자치 10년 가운데 가장 기쁜 날로 기록될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리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향후 추진 일정기업도시 시범사업은 지역별로 유형과 규모가 달라 실제 입주시기는 다소 차이가 날 전망이다. 원주처럼 규모가 작은 곳은 입주시기가 빠르겠지만 규모가 큰 무안은 늦어질 수도 있다. 일정대로라면 하반기에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내년 초 개발계획 승인을 받게 되면 토지수용이 가능해진다. 개발계획 이후 실시계획은 내년 말쯤 승인받아 착공에 들어가게 된다. 입주시기는 대략 2010년으로 예상된다. ●산업·지식형 웃고 관광레저형 울어 시범사업 신청지 8곳에 대한 평가를 위해 국토연구원 등 8개 국책연구기관 합동의 평가지원단이 5월 초 출범됐고 지난달 중순 평가지원단이 추천한 분야별 전문가 60명으로 평가단이 구성됐다. 평가단은 ▲국가 균형발전 기여도 ▲사업실현 가능성 ▲지속발전 가능성 ▲지역특성ㆍ여건 부합성 ▲안정적 지가관리 등 5대 요건을 공통기준(14개항목)과 개별기준(6∼9개항목)으로 나눠 평가했다. 평가 결과 신청지역이 많지 않았던 산업교역형(무안)과 지식기반형(원주, 충주) 등은 모두 지정된 반면 관광레저형은 무주만 선정됐다. 관관레저형에 신청했다가 재심사 판정을 받은 태안은 실현 가능성과 지속발전 가능성 등에서 최고점수를 받았지만 농지 용도변경 문제가 지적됐다. 영암ㆍ해남은 국가균형발전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도 환경개선노력 미흡과 일부 참여기업의 신인도가 문제가 됐다. 사천과 하동ㆍ광양 등 탈락지역은 점수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접근성과 개발 잠재력에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은 반면 환경 분야와 재무타당성이 크게 미흡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건설한다 유일한 산업교역형인 무안은 총 1220만평으로 2조 7370억원이 투입돼 항공물류와 웰빙산업, 차세대 제조업단지, 비즈니스파크, 금융·교역 단지 등이 들어선다. 가칭 무안기업도시개발㈜이 중심이 돼 건설하며 동광건설·한미파슨스 컨소시엄이 참여한다. 충주는 비교적 지명도 있는 기업들이 참여했다. 이수화학과 포스코건설, 임광토건, 동화약품공업, 주택공사 등이 참여했다. 생명공학센터와 자동차부품산업단지, 영어체험마을 등이 들어선다. 원주는 100만평으로 규모가 가장 작다. 사업비도 1603억원으로 가장 적다. 롯데건설, 한독산학협동단지, 국민은행, 삼아약품 등이 참여했다. 첨단의료단지, 첨단연구단지, 건강바이오산업단지, 문화콘텐츠산업단지를 유치한다. 유일한 관광레저형 도시인 무주는 총 245만평에 1926억원을 투입한다. 여기에 도시조성비와 시설투자비를 더하면 모두 1조 8795억원이 투입된다. 골프장과 콘도, 워터파크, 스파시설, 메디컬웰빙센터, 쇼핑몰, 와인농장, 리서치 파크 등을 유치한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1) 단청(丹靑)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1) 단청(丹靑)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이 땅에서 생겨나 자란 것들을 홀대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우리의 어렵던 시절을 비집고 물밀듯이 밀려온 외래문화를 그저 무감각으로 누리면서 정체성마저 스스로 훼손하곤 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문화의 정체성 위기는 전통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호프집 종업원이 두른 유럽식 앞치마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요즘이지만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광고 카피가 신선함으로 다가오듯 낡고 진부한 것으로만 치부된 전통문화가 삶의 가치로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 조상들의 지혜와 얼이 숨쉬는 전통 문화예술이 어떻게 생겨나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 카메라 렌즈를 통해 그 향기를 좇아 본다. 사진부 jongwon@seoul.co.kr ■ 민족의 감성 화려한 색채로 승화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백의민족’이라 불릴 만큼 흰색을 민족 고유의 색으로 여기며 살아왔다.‘조선백자’에서 보듯이 은은한 색채는 우리 미술의 전반적인 빛깔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청(丹靑)을 보면 우리의 조상은 결코 흰색만을 선호했던 소박한 백성이 아니었으며, 정열적 감성을 화려한 색채예술로 승화시킨 의지적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행사상과 맥을 같이한 오방색 단청이라 하면, 절이나 궁궐의 건축에 붉고 푸르게 문양을 그리거나 채색한 것을 말한다. 이런 단청은 불화나 벽화를 비롯한 탱화, 영정 등 손으로 그릴 수 있는 모든 그림을 일컫는다. 단청의 빛깔은 빨강 파랑 노랑 하양 검정의 이른바 오방색이다. 파랑은 목, 하양은 금, 노랑은 토, 빨강은 화, 그리고 검정은 수를 상징한다. 목에서 출발해 수에 이르는 전통의 오행사상과 맥이 닿는다. 서로 도와주고 길러주는 상생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 문화의 바탕에 흐르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의한 일정한 법칙을 따라 정교하게 채색된 단청을 보면 우리 조상들의 장인정신을 느끼게 된다. ●건물의 양식이나 성격따라 달라 건물의 양식이나 성격에 따라 단청의 무늬가 달라진다. 또한 정신적인 특성에 맞게 문양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의 전통무늬는 연꽃, 태극, 나무, 구름 등을 다양하게 문양화했고, 담벼락이나 문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기하학적인 무늬는 원, 세모, 네모를 겹쳐가며 만들어졌다. 복(福), 만(卍), 희(喜)자와 같은 글자는 장식적인 기능 외에도 복을 비는 주술적인 기원도 담고 있다. 사찰에서는 호랑이나 산신 등으로 단장한 그림이, 궁궐에서는 권위를 상징하는 용무늬 등이 새겨졌다. 자연의 영원한 순환을 상징하면서 내세를 기원하는 오행사상의 핵심을 단청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단청문화 전통 우리나라만 계승 한국의 단청은 불교가 들어오면서 발전해 2000년 역사속에서 예술적 창조력을 발휘해 왔다. 같은 불교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서도 한때는 유행하였으나 오늘날까지 단청문화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우리나라 단청의 다양한 색과 무늬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숨쉬며 살아가듯이 절이나 궁궐의 건축물속에 조화스럽게 녹아 있다. 단청은 주변 공간과의 조화가 생명이다. 건물을 오래 보존하려는 1차적 목적보다도 우주만물과의 조화, 자연과의 친화를 꾀한 선인들의 지혜를 보여주는데 단청의 의의를 둘 수 있다. 단청은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낸 색채예술의 진수인 셈이다. 글·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단청장 만봉 이치호 스님 “단청은 그림이지만 단순한 그림이 아닌 믿음이야. 불심(佛心)이지.” 단정하게 합장한 손으로 방문객을 맞이한 만봉(萬奉) 이치호(97) 스님은 시종일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걸음걸이조차 불편한 고령이지만 “요즘 디지털 카메라는 어떤 제품이 좋으냐.”고 기자에게 물을 만큼 돌아가는 세상 물정에 관심이 많다. 서울 종로에서 연안 이씨 이윤식(李潤植)의 3대 독자로 태어난 그는 여섯 살 때 “속세에서는 단명할 것”이라는 어느 객승의 말만 듣고서 불가에 입문한 뒤 당시 우리나라 단청계 최대 계파의 수장인 예운(藝云) 스님에게 전통단청 기능을 전수받아 80여년동안 외길을 걸어온 ‘단청장’이다. “처음엔 실력도 모자라고 물감의 독 때문에 얼굴이 자주 붓기도 했다.”고 회고하는 그는 “단청은 오방색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세월이 흐른 만큼 옛 문양을 마음대로 지우거나 변형해서는 안되겠지만 새 건물에는 새로운 시도도 가능하다.”는 것이 자신의 생각이라고 밝힌다. 현재 그가 기거하는 봉원사 탱화뿐 아니라 경복궁 남대문 경회루 등 고건축의 단청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전국의 주요 사찰에 그의 붓끝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가 몰두했던 80여년이 수천년의 맥을 잇듯 그의 문하에는 지금도 많은 제자들이 ‘만봉단청’의 맥을 잇고 있다. 단청을 그리는 동안 그는 종교적 황홀감에 빠져 이승을 잊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우리를 경건하게 하고 성스럽게 한다. 그가 만들어 준 아름다운 전통의 수렁에 빠져 그 멋을 한없이 느껴도 숨차지 않을 것이다. 글·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수술 2주만에 ‘지겨운 치질’ 안녕~

    최소한의 절제를 통해 항문의 기능을 보존하고 수술후 회복 시간을 앞당기는 ‘거상고정식 점막하 치핵절제술’이 치질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임상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대장항문 전문 양병원 양형규 박사팀은 지난 97년부터 2000년까지 ‘거상고정식 점막하 치핵절제술’로 수술받은 650명의 환자를 추적 조사한 결과 이 방법으로 수술받은 환자의 62.3%가 15일 이내에 일상 복귀가 가능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는 기존 절제 방법으로 치료 받은 경우보다 최소 2주에서 6주 정도 치료기간이 줄어든 결과이다. 합병증도 기존 치료에 비해 크게 줄었다. 치질 수술의 대표적 합병증인 지연 출혈은 보통 수술 후 7∼14일 후에 나타나며, 심한 경우 출혈량이 많아 쇼크를 초래하기도 하는데,‘거상고정식 점막하 치핵절제술’의 경우 지연 출혈률이 0.5%로 기존 치료법의 1.2∼4%에 비해 크게 적었다.또 항문 피부를 지나치게 많이 잘라내 나타나는 항문 협착이 나타나는 경우는 이전 치료법의 경우 평균 4% 정도였으나 거상고정식 점막하 치핵절제술에서는 1명(0.15%)에 그쳤다. 의료팀은 “기존 치료법의 경우 치질을 비정상조직으로 보고 이를 잘라내는 데 치중해 절제 부위가 크고 항문이 좁아지는 협착 가능성이 높았으나 거상고정식 점막하 치핵절제술은 치질을 밑으로 처진 정상조직으로 보고 최대한 보존하는 수술법을 적용해 회복 속도가 빠르고 배변기능의 손실, 항문 협착 등의 부작용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이 임상연구 결과는 최근 발간된 대한대장항문학회지에 게재됐다. 양 박사는 “이전에도 치질을 정상조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지만 까다로운 수술 방법과 의료보험 수가 탓에 실제 수술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무더위를 날려주마” 동·서양 스릴러 대격돌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 버릴 공포 영화 2편이 다음주 관객들을 찾아간다. 각각 ‘머리카락과 물’,‘피묻은 살점과 도끼’라는 전형적인 동·서양의 공포 코드로 무장한 두 영화는 모두 ‘일상성’을 무기로 했다. 주변에서 떠도는 익숙한 얘기나 실화를 소재로 더욱 피부에 와닿는 공포를 만들어낸다. ●‘셔터’(Shutter) 30일 개봉하는 팍품 웡품·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태국 영화 ‘셔터’는 친숙하면서도 지루하게 무섭다.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을 ‘카메라에 찍힌 혼령’ 얘기를 기본 얼개로 익숙한 공포를 전한다. 영화속 귀신은 전혀 세련되지 않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를 흘리며 땅바닥을 기어 쫓아오는 모습에서는 “내 다리 내 놔∼.”라며 다가오던 ‘전설의 고향’속 여자 귀신을 연상케 한다. 목과 어깨가 뻐근해 고생하는 사람이 지나는 아이로부터 “아저씨는 왜 항상 여자를 등에 업고 다녀요?”라는 말을 듣는다는, 우리가 무서운 얘기로 곧잘 써먹는 설정도 담겨 있다. 재밌는 것은 관객들이 귀신이 나올 타이밍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 귀신이 나오기 전 주인공의 공포에 질린 모습이 먼저 보이면서 관객들은 ‘도대체 어떤 귀신이기에?’라는 생각에 더 소름이 돋고 공포스러움을 느낀다. 영화 상영 내내 쉼 없이 튀어나오는 긴장감, 불안감은 좀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반면 줄거리는 무척 단순하며, 그 밀도와 연관성도 무척 성글다. 사진작가 턴(아난다 에버링햄)과 연인 제인(나타웨라누크 통미)은 차를 타고 밤거리를 가다 뺑소니를 낸다. 이후 턴이 찍은 사진에는 귀신의 얼굴 형상이 나타나고, 턴의 옛 여자친구와 관련이 있는 대학 동창들이 하나, 둘씩 자살을 하게 된다. 턴은 죽음을 직감하며 제인과 구천을 떠도는 사진 속 귀신이 품은 원한이 무엇인지 쫓는다. 영화는 후반부에 턴의 끔찍한 과거 실체를 보여주면서 무서운 반전으로 이어진다.15세 이상 관람. ●‘아미티빌 호러’(The Amityville Horror) 새달 1일 개봉하는 앤드루 더글러스 감독의 ‘아미티빌 호러’는 ‘나쁜 녀석들’‘더 록’,‘진주만’,‘아마겟돈’ 등을 감독한 흥행의 귀재 마이클 베이가 제작을 맡은 작품이다. 1974년 실제 미국 롱아일랜드 지역 한 저택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관객들은 실화에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 현실 속에서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느낄 때 공포는 한층 가중된다.”고 마이클 베이는 말하지만, 영화 속 공포는 그리 극적이지 않다. 아마도 실화에서 오는 한계인 듯. 영화는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주류를 이뤄 온 ‘슬래셔 무비’의 원칙을 따르기보다 인물의 심리 변화를 공포의 원천으로 이용한다. 팔과 다리가 잘리는 모습 등 특수효과는 없지만, 갑자기 나타나 놀라게 하는 끔찍한 장면 등이 충분한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미국 북동부의 작은 마을 아미티빌. 집안에서 일가족이 모두 총에 맞아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죽이라고 시켰다.”고 말하는 큰 아들. 그로부터 1년 뒤, 이 집으로 세 아이를 둔 여자 캐시(멜리사 조지)와 그녀의 새 남편 조지(라이언 레이놀즈)가 이사를 온다. 그러던 중 이들 앞에 죽은 사람이 나타나고 악령의 소리가 들리는 등 과거 살인 사건 때와 유사한 일들이 발생한다. 딸 ‘첼시’의 눈엔 ‘조디’라는 아이 귀신이 보이고, 사람 좋던 조지는 점점 광기에 휩싸여 간다.15세 관람.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김우중 ‘판도라 상자’ 열리나] 행방묘연… 은닉 의혹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찾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일푼이라는 김 전 회장측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친인척 명의로 위장분산시켜 놓았거나 국내외에 숨겨놓은 재산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설령 김 전 회장측 주장대로 은닉재산이 없고 정부의 희생양이 됐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김우중가(家)가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한다는 지적이다.●대우사태로 인한 경제 피해규모 정부가 밝힌 대우 관련 국민혈세(공적자금) 투입규모는 29조 7000억원. 그러나 참여연대측은 2002년 8월 이후 투입분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거칠게 잡아도 36조원은 투입됐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공식발표를 수용하더라도 이 가운데 10조원 이상은 회수가 어렵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어서 국민 1인당 2만원의 ‘대우 세금’을 피할 수 없게 됐다.분식회계 규모와 관련해서도 검찰(41조원)·금융감독원(23조원)·김 전 회장측(21조원) 주장이 엇갈리지만,21조원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카드채 사태’를 몰고왔던 SK글로벌의 분식규모가 4조 50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이다. 대우채 환매사태로 인한 자산운용시장 붕괴도 빼놓을 수 없다. 굵직한 기업 매물이 해외자본에 줄줄이 넘어간 국부유출도 결국은 여기에 근원이 있다는 지적이다.대우로 피해를 본 소액주주만도 약 38만명, 피해액도 3조원이다. 대우 채권단이 김 전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거나 끝냈지만 소송액(2490억원)은 피해액(3조 8500억원)의 6%에 불과하다.●김우중가 재산은? 김 전 회장은 공식적으로는 빈털터리다. 재산 전부(1조 2000억여원)를 채권단에 담보로 내놓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BFC(대우그룹의 영국 런던금융조직) 거래내역 가운데 행방이 묘연한 7억 5000만달러 등 해외은닉재산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국내 기업체 가운데도 실소유주가 김 전 회장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대상이 적지 않다. 이번 기회에 금융감독원이 확인했다는 BFC 거래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민사소송 책임을 피하기 위해 가족들 명의로 위장분산시켜놓은 김 전 회장의 재산을 찾아내는 것도 앞으로의 숙제다. 김우중가의 재산은 3000억원대로 추정된다. 부인 정희자씨는 2003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땅 200평을 사들였다.두 아들 선협·선용씨도 공동명의로 방배동에 땅 300평(시가 30억∼40억원)을 갖고 있다. 이들은 호화 골프장으로 꼽히는 경기도 포천 ㈜아도니스(옛 대우레저)의 대주주(가족지분 81.4%)이기도 하다. 업계에서 보는 아도니스골프장의 평가액은 2500억∼3000억원에 이른다. 정씨는 또 ㈜필코리아리미티드(옛 대우개발, 자본금 859억원)의 공식지분도 10% 이상 갖고 있다. 필코리아는 경주 힐튼호텔, 베트남 하노이 대우호텔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아도니스 지분 18.6%와 경남 양산의 에이원컨트리클럽 지분 49%를 갖고 있다.필코리아의 실소유주가 정씨 또는 김 전 회장이라는 소문에 대해, 필코리아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검찰은 그러나 필코리아와 서울 한남동 대지 등의 실소유주 확인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이들 자산이 김 전 회장의 것으로 판명나면 당장 가압류 조치에 들어가는 한편 민사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 전 회장측은 “적법한 증여절차를 거친 것”이라고 맞섰다.●김우중가, 일정자산 환원후 특사 노릴 가능성도 대우사태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었던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은 “국민에게 30조원의 공적자금 부담을 안긴 기업인의 가족이 수천억원대 재산을 버젓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다.”고 개탄했다.김 전 회장측은 “대우는 정권에 의해 타살됐다.”며 억울해하면서도 여론 악화를 의식해 공개적인 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김우중가가 적당한 시점에 도의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일정 자산을 내놓고 특별사면을 노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김 전 회장이 수차례 되풀이한 “책임” 발언도 사법적 책임 이외의 책임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이다.안미현 김경두기자 hyun@seoul.co.kr
  • ‘호국보훈의 달’ 뜻깊은 나들이

    ‘호국보훈의 달’ 뜻깊은 나들이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강북구 우이동·수유동 북한산 자락에 있는 순국선열, 애국지사의 묘역 등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자녀들과 함께 이들 명소를 산책하면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고 건강도 다지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녀들과 함께 가면 큰 교육 효과 수유동에 위치한 국립 4·19묘지는 1960년 4월19일 자유당 부패정권과 3·15 부정선거를 맞서 민주화 꽃을 피운 애국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지난 63년 9월 건립된 묘지에는 당시 사망한 274명의 영령이 모셔져 있으며 정부의 성역화 사업으로 93년 10월 1만 3000평을 4만 1000평으로 넓혔다. ●4·19묘지 ‘2개 코스’ 각각 90분 걸려 4·19묘지를 중심으로 두 가지 코스를 만들어볼 수 있다. 모두 1시간30분 안팎으로 산책할 수 있다. 4·19묘지에서 백련사를 올라가는 길에 현제명(조선음악가협회 창설)→신숙(천도교 상하이에 전파·한국독립군 참모장)→김도연(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서상일(대동청년단 조직)→김창숙(매국 5적 상소로 옥고,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양일동(상하이 임시정부 가담으로 옥고) 선생의 묘지가 있다. 또는 4·19묘지에서 이준 열사(1907년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 고종밀사로 참석했으나 일본 반대로 자결)→신익희(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김병로(항일 변호사단체 창설·독립투사 무료 변론)→광복군 합동묘역→이시영(만주 신흥무관학교 창설·임시정부 법무총장·초대 부통령)→유림(한·중 항일군 조직·부흥회 조직) 선생의 묘역을 돌 수도 있다. ●3·1운동 지도자 길러낸 봉황각 우이동 유원지에서 도선사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봉황각(鳳凰閣)은 의암 손병희 선생이 1912년 천도교 교역자들에게 종교적 수련을 통해 일제시대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지도자를 훈련시키던 장소다. 이 곳에서 양성된 교역자들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1919년 3·1운동의 지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50m 떨어진 곳에는 손병희 선생의 묘소가 있다. 건물 평면이 ‘궁을’(弓乙)자형으로 천도교의 핵심사상인 우주만물의 순환작용과 활동을 형상화한 ‘궁을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한식 목조건물로 건축사적인 의미도 뛰어나 서울시 유형문화재 2호로 지정됐다. 도선사는 신라경문왕 때(862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조선시대 말기인 1904년 국가기원본찰로 지정됐다. 도선사 마애석불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34호로 지정됐다. 석불 앞 대리석 바닥은 불공을 드리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김석진 선생 순국한 창녕위궁재사 번동 드림랜드 입구에 있는 창녕위궁재사(昌寧尉宮齊舍)는 조선시대 제23대 순조의 둘째딸인 복온공주와 부마 김병주 선생의 재사(齊舍)다. 인조 때 영의정까지 지낸 신경진의 별장이었으며 복온공주의 후손인 김석진 선생이 한일합병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순국자결한 곳이기도 하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오는 27∼28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남양군도의 사이판을 방문한다.6000여 일본인들도 이때 함께 이 작은 섬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대변지인 산케이신문은 벌써부터 광분하며 기획특집을 쏟아내고 있다. 정말 ‘대단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원래 일왕은 팔라우와 마셜군도 등 태평양 섬들을 두루 둘러볼 참이었으나 미국령인 사이판만 찾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지난주, 옛 일본 육군 제30사단 소속 야마카와 요시오(87) 중위와 나카우 스스키(83) 상등병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인근 산악지대에서 숨어살다가 발견됐다는 오보 사태로 일본 열도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인 일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972년 괌의 요코이 쇼이치(당시 56세)에 이어 74년 필리핀에서 오노다 히로오(당시 51세)가 종전 30여년 만에 생환했었다. 당시 요코이는 “부끄럽게도 살아 돌아왔습니다.”라는 귀국 일성을 토해내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열광케 했는데, 이번에 ‘발견’된 이들은 또 무슨 말을 내뱉을까. 이래 저래 일본인들의 해묵은 관심이 태평양에 쏠리고 있다. 그 태평양과 우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머나먼 태평양에 수만의 무주고혼들이 떠돌고 있다. 신혼여행지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이판 같은 곳에서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군인과 군속,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죽어갔다. 그들이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몸을 던졌다는 일명 만세절벽은 일본인 참배객의 메카가 되었으며, 일왕은 여기에 세워질 신사 준공식을 겸해 이곳을 찾는 것이다. 2차대전은 곧 태평양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주, 중국, 버마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전선이 확대되고 있었고, 같은 시기 남양군도에서는 바다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양군도란 오늘날 미크로네시아를 가리킨다. 지도를 펼치면, 일본 남쪽으로 괌, 사이판 등이 포함된 북마리아나군도가 있고 그 밑으로 얍과 팔라우 등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마셜군도가 있는데 이곳을 총칭하여 미크로네시아(Micronesia) 라 부르며, 여기에는 2106개의 섬이 포함돼 있다. 태평양의 일본군 최대 근거지였던 팔라우를 찾았다. 연전에 어느 정신없는 탤런트가 ‘정신대를 기리는’ 누드촬영을 하겠다고 나서 온 사회를 벌컥 뒤집어 놓은 바로 그곳이다. 육·해·공군을 관장한 팔라우 집단사령부와 식민청인 남양청 본청, 법원, 병원 등이 있던 매우 중요한 전략기지였다. 흔히 일본이 2차대전 무렵에 이곳으로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일본의 태평양 진출은 이보다 앞선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콜럼버스의 이른바 ‘아메리카 발견’ 이후 스페인과 포루투갈의 식민지 쟁탈전을 조정하기 위해 태평양쪽은 스페인이 독식하는 것으로 합의된다. 그리하여 필리핀을 위시한 팔라우도 16세기에 스페인에 예속된다. 19세기 중반에는 카이저황제와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이곳에 독일 자본이 밀어닥쳤다. 독일의 스페인에 대한 도전은 1899년에 드디어 성공한다.1898년 미국과 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함에 따라 힘을 잃게 되자 스페인은 파리에서 비밀협정을 맺어 독일에 이 섬들을 팔아넘긴다. 이에 1914년 10월, 일본은 영국과 연대해 독일에 대항하면서 미크로네시아를 넘본다. 사실, 일본의 태평양 탐욕은 훨씬 전부터 드러났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거치면서 북방 대륙 진출에 여념이 없던 일본으로서는 남쪽 바다를 향한 야욕을 잠시 유보했을 뿐이다.1880년대에 다케코시 요사부로는 “적도를 얻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외치지 않았던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지 두달도 채 되지 않아 일본 해군은 캐롤라인과 마리아나, 마셜군도의 주요 섬에 상륙한다.1914년 10월7일, 수백명의 일본군이 폰페이섬의 성당에 들이쳤으며, 이곳에 기관단총을 설치하고 팔라우 공격에 나섰다. 1919년에 국제연합은 공식적으로 이곳의 일본 지배를 인정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리품으로 남양군도를 획득했으니, 일본의 태평양 식민사는 이로부터 근 100년에 이르는 것이다. 종교와 교육, 그리고 경제적 개발은 식민지를 건설하는 중요한 축이었다. 남양청을 세우고 식민 관료들이 섬을 지배한다. 일본인 이민이 급증했으며 그들은 전력산업, 알루미늄광산, 진주양식과 카사바 같은 상업적 농업에 종사했다. 일본 정부의 지원 속에 1935년까지 5만여 일본인들이 섬 곳곳에 흩어져 살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오기카와로부터 이주해 왔다.1940년에 일본인 인구는 7만 7000명까지 늘었으며,2년 뒤에는 9만 6000명을 헤아렸다. 미국과 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인·군속들이 속속 집결, 일본인 수는 거의 2배로 불었는데, 팔라우와 사이판이 주요 거주지였다. 일본 식민청은 이곳에서 각 섬마다 이른바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한반도에서 하던 방식과 똑같이 원주민의 토지 개인소유는 인정하되, 바닷가나 산의 공유지는 모두 식민청 소유로 돌렸다. 한마디로 ‘털도 벗기지 않고’ 대부분의 땅을 먹어치운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자 이 땅의 대부분은 군사기지로 징발된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것도 기실은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을 둘러싼 이해대립 때문에 생긴 필연적 귀결이었다.2차대전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양국은 서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으며 급기야 미크로네시아에서 태평양전쟁 중 가장 혹독한 전투가 치러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사실이 또 하나 있으니, 괌이 2차대전 때 미국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괌은 1898년에 미국과 스페인 전쟁의 부산물로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이 전쟁을 계기로 태평양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1783년에 무역선 차이나호(Empress of china)를 통해 태평양에 본격 등장했다. 배에는 무역 상인과 선교사, 뉴잉글랜드의 포경업자, 해군 장교 등이 타고 있었다. 미국은 괌에 더해 20세기 초반에는 필리핀, 하와이, 사모아제도 등을 추가로 얻는다. 하와이에서는 1893년에 미국 상인과 선교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조를 전복시키기도 했다. 그 후 이곳에서 사탕수수 산업이 시작되었고, 한국인 이민도 비슷한 시점에 이뤄진다. 말이 이민이지 노예수출에 지나지 않았다.1899년에는 미국령 사모아에 미국 해군이 진을 친다. 괌에서도 미국은 ‘어머니 나라(Mother Country)’로 등장했다.1941년 12월7일 일본이 진주만을 때린 것은 이처럼 태평양을 둘러싼 해묵은 패권 다툼의 발화였을 뿐이다. 거의 동시에 일본 육군은 홍콩을 공격한 데 이어 42년 2월에는 영국군 거점인 싱가포르까지 먹어치운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태평양전쟁은 종말을 향해 치달았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독립기념관) 김도형 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36년,15살 어린 나이의 한국인 위안부 10여명이 처음 팔라우에 끌려온다. 그 후 코롤섬 토목공사를 위해 전라·경상도에서 노무자 200여명이 왔다. 코롤시 동쪽 끝에 위치한 ‘아이고브리지’는 한인들이 다리를 놓을 때 너무 혹독하게 시달린 나머지 ‘아이고, 아이고’를 연발해 붙은 이름이라는 내력이 슬프다. 한인 노무자와 더불어 조선총독부는 농업이민도 보냈다. 모두 13회에 걸쳐 1266명이 이주됐다. 중부 태평양의 중심기지인 트럭섬이 궤멸되자 1944년 2월25일 관동군과 조선군에서 선발된 정예부대 29사단이 팔라우에 진주했다. 이때 중국 관동에서 1만 2000여명이 왔는데, 대부분 한인 병사들이었다는 설이 있다. 팔라우의 한인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은 군속이었다. 말이 군속이지 해군에서 토목작업을 시키기 위해 끌고온 노무자들이었다.1943년 5월20일, 부산을 거쳐 팔라우에 800여명의 한인이 도착했다. 이들은 처음에 일본 본토와 남양과의 수송시설 건설에 종사하다가 미군의 공격이 심해지자 진지 구축에 투입된다. 인근 무인도에서는 남양척식주식회사에서 갈매기 배설물인 인광을 채굴하여 비료를 만드는 일에도 이들이 투입됐다. 1944년 8월, 연합국이 중부 태평양의 마지막 공격지 팔라우에 들이쳤다. 미 제1전대의 공격으로 일본 육군 7212명 중 6766명이 전사하고 466명만 살아남았다. 해군도 3400명 중 단지 10명만이 생존했다. 물론 그 일본군 중에는 징병으로 끌려온 한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미군 폭격이 거세지자 일제는 팔라우의 일본인 1만7800여명을 본국으로 강제소환한다. 그렇지만 강제 징용된 한인들은 송환 대상에서조차 제외된 채 전쟁이 본격화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식량보급이 끊기면서 한인들에게는 식량도 주어지지 않았다. 굶주림에 지쳐 식량을 훔치다 총을 맡고 숱한 한인들이 죽어 나갔다. 정신대로 끌려온 조선의 딸들도 곳곳에서 죽어나갔다. 창고에서 건빵을 훔치려다 들킨 한인을 나무에 매단 뒤 귀나 코를 베는, 임진왜란 때 왜군의 만행과 흡사한 짓을 자행했다는 믿기 어려운 증언도 전해진다. 팔라우 주둔 일본군이 미군에 공식 항복한 것은 1945년 9월2일이었다. 총알받이로 수많은 한인들을 끌고 왔다 수세에 몰리자 나몰라라 내팽개친 뒤 자신들만 빠져나간 것도 일제 만행의 일부로 기록돼야 한다. 그 불바다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귀환한 사람이 2만 5773명이었고, 팔라우에서는 3000여명이 귀환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팔라우에서도 ‘천상의 바다정원’으로 소개되는 록 아일랜드로 스피드보트를 타고 나가 무인도에 배를 댔다. 물 속으로 들어가자 ‘물 반 고기 반’이다. 산호섬답게 산호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너무도 아름다워 ‘용궁’이 본디 이런 풍경이었을까 여겨지는 곳. 그러나 물 밑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탱크와 항공기, 선박의 잔해가 즐비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역사의 시간은 진행 중임을 이 잔해들이 말해주고 있다. 과거, 잠시 적이었고 이후 해양 패권의 든든한 동지로 미국에 보조를 맞춰 온 일본의 왕이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미국령 사이판을 찾는다. 태평양의 바다 속에 잠긴 탱크들이 다시금 포신을 곧추세우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경의 태평양을 다시 피바다로 만들 작정이다. 이 막막한 타국을 떠돌고 있을 한국인들의 넋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 일왕에 의해 지금 다시 시작된 것이다.
  • 삼성 수원사업장은 국빈 필수코스?

    최근 방한하는 해외 정상급 지도자들이 거의 빠지지 않고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번주만 해도 지난 23일 이맘 알리 라흐모노프 타지키스탄 대통령의 방문을 시작으로 24일 화젠민(華健敏) 중국 국무위원 겸 국무원 비서장,25일 가보르 빌라고슈 헝가리 국회 수석부의장에 이어 26일 미쿨라슈 주린다 슬로바키아 총리가 수원사업장을 찾아 나흘 연속 국빈을 맞았다. 수원사업장은 올 들어 조셉 카빌라 콩고 대통령을 비롯해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부총리, 오그니안 게르지코프 불가리아 국회의장, 즈엉 광 드억 베트남 국회부의장 등이 다녀가는 등 장관급 이상 해외 인사들의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 이들은 삼성전자가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등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화젠민 중국 국무원 비서장은 “삼성전자를 방문해 보니 삼성의 의미는 과학기술의 별, 조직 혁신의 별, 인재 개발의 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는 현재 1000여평 규모의 삼성전자 역사관과 홍보관이 있으며,280여종의 최첨단 디지털 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한편 반도체라인이 있는 기흥사업장은 1994년 리펑(李鵬) 전 전인대 상임위원장을 시작으로 95년 차오쓰(喬石)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95년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98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2001년 10월 주룽지(朱鎔其) 전 총리 등 중국 수뇌부들이 연달아 방문, 반도체 사업에 대한 중국의 국가적인 관심을 짐작케 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빗자루의 보은/크리스 반 알스버그

    칼데콧상을 두번이나 탄 미국의 인기작가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할리우드 영화 ‘주만지’‘폴라 익스프레스’ 등의 원작자로도 유명하다. 팬터지 넘치는 글, 독특한 세밀화풍의 그림이 손잡은 그의 그림동화 ‘빗자루의 보은’(서애경 옮김, 달리 펴냄)이 새로 나왔다. 이 책은 동양적 감수성에도 쉽게 들어맞는다. 주인공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은혜를 베푼 이에게 보답한다는 익숙한 줄거리이기 때문. 채마밭으로 곤두박질친 마녀를 구해준 답례로 채마밭 주인인 과수댁은 마녀에게서 마법 빗자루를 선물받는다. 방도 쓸고, 뒤란의 장작도 패고, 뚱땅뚱땅 서툴지만 피아노도 쳐주는 ‘신통방통한’ 마법 빗자루. 그러나 이웃집 욕심쟁이 남자의 아이들이 빗자루를 괴롭히면서 평화가 깨진다. 가뜩이나 빗자루의 존재를 못마땅해 하던 이웃집 남자는 심술궂은 아이들이 빗자루에게 혼이 나자 급기야 빗자루에 불을 지르는데…. 초등생.9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영어·한국어 동시에’ 이중언어교육 열기

    어린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려는 엄마들의 열망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많은 엄마들이 영어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배워야 한다며 갖가지 방법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학비가 비싼 영어유치원과 영어교재가 봇물을 이룬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영어 등 외국어를 모국어와 같은 방법으로 가르치는 것을 이중언어교육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기 영어교육, 이중언어교육이 어떤 효과를 주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것은 무조건 어릴 때 가르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어교육 전문가들에게서 이중언어교육의 허와 실을 들어본다. #1 회사원 박선영(39)씨는 딸 채원(8)양이 초등학교 입학 전 6개월 동안 미국에 있는 친척집에서 지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1주일에 세번은 테솔(TESOL) 자격이 있는 한국인 교사가, 두번은 원어민 교사가 하는 그룹 지도를 받고 있다. 영어교육을 전공한 박씨도 틈틈이 영어 만화를 틀어놓고 영어로 대화한다. 딸이 간단한 대화 정도는 자유롭게 하고, 영어에 자신감을 갖고 있어 박씨는 다행스럽다. #2 광주에 사는 김희경(31·여)씨는 아들 유혁(4)군을 위해 지난해부터 ‘영어 품앗이’를 시작했다. 마음 맞는 엄마 4명을 모아 돌아가며 미술놀이, 장난감 만들기 등 영어로 테마수업을 한다. 생물학을 전공한 김씨를 비롯해 영어 전공자는 한 명도 없지만 아이 일이니 다른 일을 제쳐두고 매달리고 있다. 집에서도 가능하면 영어를 쓴다. 비싼 학원에 보낸 적도 없는데 올해부터 한두 문장씩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아들을 기특하게 생각한다. #3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사는 이기현(8·가명)군은 5살 때부터 영어유치원에 다녔다. 수업료와 교재비 등을 합해 매월 80만원 정도가 들었지만 아버지 이재성(43·가명)씨는 맞벌이인 탓에 시간도 없고 직접 가르칠 자신도 없어 영어유치원을 택했다. 영어는 학교에서 또래들에게 꿀리지 않을 정도는 된다. ●너도나도 이중언어교육 영어 조기교육 열풍 속에 이중언어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학원이나 교재 위주의 영어 ‘학습’에서 일상생활 속의 영어 ‘습득’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 어릴 때부터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시켜 모국어와 같이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방법도 다양하다. 외국에 보내거나 이중언어교육을 표방하는 영어유치원 등에 의존하는 것은 ‘고전적’인 방법. 말문이 트일 무렵부터 영어 책을 읽어주고, 회화 능력이 있는 엄마들은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사용해 아이를 키운다. ‘쑥쑥닷컴(www.suksuk.com)’ 등 유아영어교육 사이트에는 영어품앗이를 구하거나 수기를 교환하는 엄마들로 붐빈다. 이들은 맹렬히 공부하고 노하우를 나눠 아이와 영어로 대화하고 놀아주면서 영어에 친숙한 환경을 만들어준다. 한국방송통신대 영문과 4학년 이희영(40·여)씨는 “반복적으로 영어 환경에 노출시켜주려면 엄마가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에서 6세 딸의 영어교육을 위해 대학에 입학한 경우다. ●이중언어교육 정말 필요한가 너도나도 이중언어교육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그 효과와 시기,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만큼이나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린다. 한국외대 영어교육과 차경애 교수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어릴수록 유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맞는 얘기”라면서 “특히 외국에서는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이 사고력이나 추론능력 등 전반적인 인지능력이 우세하다는 임상결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서대 영재교육계발연구소 함정현 교수는 “딱딱한 학습의 범주만 아니라면 이중언어교육 이론을 적용한 조기 영어교육은 바람직하다.”면서 “말문이 트이기 전이라 해도 기본적인 인지 능력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영·유아 때부터 적당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에서 수십년간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이중언어교육을 해온 장병혜 박사는 “문화적 토양 등을 수반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중언어교육이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라면서 “기본적인 어휘력이나 판단력도 없는 상태에서 영아기부터 영어를 ‘강요’하는 것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3년 교육부 의뢰로 ‘영·유아 조기영어교육’을 연구해온 동덕여대 아동학과 우남희 교수는 “뇌가 종합적 기능을 형성해야 하는 3∼6세에 과도하고 편중된 자극은 성숙하지 못한 언어 중추를 지치게 할 수 있다.”면서 “영·유아기의 구조적인 영어교육은 효과가 극히 적고, 스트레스를 유발해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한다면 언제부터 어떻게 이중언어교육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지나친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차경애 교수는 “2∼3살 영아 때부터 혹사시키고 특히 이렇다 저렇다 하는 단편적 속설에 휩쓸리는 현상이 안타깝다.”면서 “아이마다 언어적 능력과 적성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를 잘 관찰해 자연스럽게 시작하고, 정규 영어교육이 시작되는 3학년 이전에 영어에 친숙해지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병혜 박사는 “적어도 3살까지는 한국어를 먼저 배우게 하고, 이후에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도록 유도해 놀이나 문화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면서 “유아기부터 달달 볶는 영어교육은 정체성 혼란 등의 악영향이 더 크다.”고 조언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교과·생활지도때도 영어 활용 공교육에도 이중언어교육 개념이 도입되고 있다. 서울 동부교육청은 지난 3월 ‘이중언어교육 중심학교’로 용두·신답·면남·신현초등학교 등 4곳을 선정해 영어과목 외에 교과·생활지도에서도 영어를 활용토록 하고 있다.3학년이 대상이며, 내년에는 3·4학년 대상 10개교로 늘리고,2008년까지 관내 초등학교 3∼6학년 전체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교육 여건이나 내용 면에서 이중언어교육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걸음마단계이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신답초등학교는 3학년의 모든 교과와 일상 생활지도에서 영어 사용을 원칙으로 한다. 국어 시간에는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 봅시다.’ 등의 지시를 영어로 말해주고, 수학 시간에는 삼각형의 성질을 영어로 설명하면서 문제를 영어로 풀어주는 식이다.3학년 담임은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담당교사를 비롯해 영어 전공자나 연수 경험이 있는 교사들로 전원 배정했다. 신현초등학교는 교사와 함께 영어 동화 읽기가 핵심이다.3학년 4개반이 20쪽 분량의 각각 다른 유아 동화책을 준비해 두달 동안 읽고 서로 교환한 뒤 연말에 연극으로 꾸며 발표한다.‘해와 달이 된 오누이’ 등 친숙한 내용의 동화 테이프를 매일 들려주고 노래를 따라부르는 놀이 형식이다. 절대 문장을 해석해 주거나 단어를 외우라고 하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sun(해)’‘moon(달)’ 등의 주요 단어를 교실 곳곳에 붙여놓는 정도. 호기심을 유발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뜻을 익히게 된다. 면남초등학교는 1주일 단위로 짧은 대화체를 정해 ‘암호 놀이’를 한다.‘How are you?’‘Fine,thank you.’와 같은 짧은 대화체를 정해 교실 입구 등 특정 지역을 지날 때 ‘암호’를 대는 놀이이다.‘영어는 학습 대상이 아니라 재미있는 의사소통 기구’라는 점을 알려주는 단계다. 용두초등학교는 지난달 ‘독도는 우리 땅’을 주제로 영어 특별 수업을 하기도 했다. 신답초등학교 장선화 담당교사는 “두달 정도 계속하다 보니 어느날 늘 하던 대로 ‘Who wanna try(자, 누가 해볼까)?’ 했더니 아이들이 ‘I wanna try(제가 해볼래요.)’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면서 “wanna(want to)의 뜻이나 용법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도 같은 상황에서 반복해 들려주다 보니 문법과 단어를 스스로 깨친 것”이라고 말했다. 동부교육청 김점옥 초등교육과장은 “생활 속에서 영어를 접하는 기회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라면서 “지도 매뉴얼을 만들고 교사들의 해외 연수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이중언어교육 ‘오해와 진실’ 이중언어교육이라는 비교적 생소한 개념이 영어 조기교육의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갖가지 검증 안된 속설들이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전문가들에게 그 ‘오해와 진실’을 들어봤다. ●한살이라도 어릴 때 배워야 한다? 차경애 교수는 “학계에서도 시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많다.”면서 “조기 교육의 장점도 많지만 일반적으로 6∼12세를 언어습득의 ‘결정적 시기’로 보기 때문에 무조건 영아기부터라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우남희 교수는 “4세와 7세 그룹을 나눠 실험을 해본 결과 7세의 습득능력이 훨씬 뛰어났다.”면서 “영어교육은 기본적 인지능력이 발달한 만 6∼13세 사이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원어민한테 배워야 효과 있다? 함정현 교수는 “원어민보다 잘 훈련받은 한국인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자질도 부족한 원어민보다는 깊이 관찰하고 아이와 교감할 수 있는 한국인이 더 낫다는 것. 발음 등 부족한 부분은 시청각교재를 활용해 보완하면 된다. ●모국어는 외국어 습득에 방해된다? 차경애 교수는 “모국어는 외국어를 배우는 데 매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면서 “모국어를 통한 어휘력과 종합적인 언어 감각이 외국어 습득에도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장병혜 박사도 “어느 나라 말이든 문장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생각하는 작업이 기본”이라면서 “모국어를 못하면 외국어도 결코 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딸과 함께 가는 당일치기 논개축제

    딸과 함께 가는 당일치기 논개축제

    경남 진주는 문화예술에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의 정서를 촉촉하게 적셔줄 단비와 같은 여행지다. 무색무취한 일상에서 벗어나 ‘느낌’ 있는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게 제격이다. 예로부터 ‘북평양 남진주’로 불릴 정도로 전통 문화가 융성한 고장이자 방년 19세의 나이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든 논개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작은 도시에 ‘진주 8경’이 숨어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초여름의 푸름 속에서 27∼29일 열리는 논개축제를 비롯해 한달에 두차례 열리는 소싸움, 조선 기생의 맥을 잇는 교방문화체험, 실크밸리 탐방, 유등축제 등 일년내내 문화 축제가 마련돼 있다. 특히 ‘양귀비 꽃보다 더 붉은’ 논개의 영혼이 녹아 있는 남강과 진양호의 석양은 일상의 답답함을 시원스레 날려준다. 진주(眞珠)처럼 작지만 아름답고 커다란 빛을 뿜어내는 도시 진주로 안내한다. ●푸른 강바람에 가슴이 활짝 가슴이 활짝 열린다. 진주 IC를 빠져 나오자 진주 시내를 휘감고 흘러가는 남강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강가의 아찔한 바위절벽에 우뚝 서 있는 진주성의 풍광은 한폭의 수채화다. 임진왜란(1592년) 당시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충절을 다했던 그 강물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유유히 흘러가는 물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곳은 진주성(사적 118호).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3800여명의 적은 군사로 2만여명의 왜군을 물리친 3대 대첩지 가운데 하나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이며, 주차료는 30분에 500원, 추가 10분당 200원이다. 진주성 관광안내센터(055-749-2485). 논개의 기상이 서려 있는 촉석루에 올랐다. 녹음이 우거진 촉석루는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이자 진주 8경중 제 1경이다. 초여름 햇살에 비친 남강은 어딘가에 논개의 넋이 흐르는 듯했다. 촉석루 아래에 있는 의암은 원래 ‘위험한 바위’라는 뜻의 ‘위암’이라고 불렸으나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의암’으로 불리게 됐다.11m 높이의 절벽위에 서면 ‘19세의 어린 나이로 어떻게 죽음의 고통을 견뎌냈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저려온다. 진주성 안에 있는 논개사당 의기사에 있는 ‘논개 영정’은 이 지역 시민단체가 친일파 화가가 영정을 그렸다는 이유로 지난 10일 강제로 뜯어내는 등 논란을 빚기도 했다. 촉석루를 나와 1760m 길이의 성벽을 따라 걸으면 멋진 산책로가 펼쳐진다. 서장대와 북장대 등 누각과 임진왜란을 주제로 꾸민 진주박물관, 김시민 장군 전공비, 호국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진주는 특히 남강의 야경이 일품이다. 논개축제를 앞두고 최근 성벽을 오렌지색으로 밝히는 야간 조명공사가 끝나 남강에 비친 진주성의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체적인 야경을 감상하려면 진주성 맞은편의 남강 둔치나 진주교, 천수교가 좋다. 남강을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면 석양이 아름다운 진양호가 나온다. 덕유산과 지리산 계곡에서 내려온 남강물이 잠시 머무는 낭만의 호수. 저녁 노을이 질 무렵 황금물살을 가르는 보트의 모습은 마치 달력의 그림처럼 환상적이다. 진양호 내 시원하게 트인 널찍한 진양호반과 지리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휴게전망대는 일년 계단과 연결돼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다. 남인수 광장에는 진주 출신 대중가수인 고 남인수씨의 ‘애수의 소야곡’이 구성지게 울려퍼져 호반의 정취를 더해준다. 백두산 호랑이와 사자, 기린 등 40여종 300여마리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 동물원은 어린이들의 인기 명소다. 진양호공원관리사업소(749-2510).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문화 진주는 전통 예술의 도시답게 진주만의 독특한 문화행사가 즐비하다. 대표적인 축제는 27∼29일 열리는 제4회 논개제로 어느 지역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진주만이 가지고 있는 소재로 구성됐다. 여성들만이 제관이 될 수 있는 제례인 의암별제와 진주오광대, 교방굿거리춤, 화포발사시연, 기생사진전 등이 펼쳐진다.27일 오후 9시와 28일 오후 7시30분에는 의암 주변에서 ‘논개 투신장면’이 재현된다. 논개축제준비위원회(755-9111). 논개를 정점으로 한 진주 기생의 맥을 잇는 교방문화는 일제시대 천한 기녀들의 생산물로 치부되면서 사라졌다가 복원된 전통문화. 교방춤 따라 배우기와 악기다루기 등 다양한 교방문화 체험도 가능하다. 비용은 1만원, 진주민속예술보존회(746-6282). 천수교 다리 아래 남강 백사장의 ‘상설투우장’에서는 한달에 두차례 소싸움이 열린다. 진주 소싸움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통 지역 축제다. 첫째, 셋째 토요일이면 머리를 맞대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맞부딪치는 소들의 혈투를 즐길 수 있다.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싸움소의 불끈대는 근육은 생명의 약동을 느끼게 한다. 입장료는 무료. 진주투우협회(742-6150). 진주성 서쪽 공북문에서 서문까지 600m에 이르는 인사동 골동품 거리는 꼭 들러 봐야 할 곳.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거리에는 20여개 업소가 몰려 있는데 고문서와 전적, 서화, 탁본류, 민속자료, 도자기, 조각품, 공예품, 석물 등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이 저렴해 일반관광객도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다. 진주는 또한 우리나라 실크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130여개의 견사업체에서 국내 생산량의 80%를 생산하고 있다. 올 10월에는 세계의상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선진국형 성장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중이다. 한국견직연구원(www.ksri.re.kr)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견직업체 현황 등 진주 견직산업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 진주성 앞 실키안(747-9841)과 진주시청사내 특산품 판매점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진주의 먹을거리 진주 비빔밥과 진주장어구이가 유명하다. 진주성 전투때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진주비빔밥은 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음식이다. 동황색의 둥근 놋그릇과 쌀밥, 그리고 다섯가지의 나물이 어우러져 칠보화반으로도 불린다. 천황식당(741-2646)과 설야(762-0585)가 유명하다. 진주 장어는 비린내가 없고 담백하며 깻잎에 싸 먹는 맛이 일품이다. 유정장어본점(746-9235)과 남강장어(747-0888)가 맛있다. ■ 이렇게 가세요 ●수도권에서 당일 여행도 충분 진주를 제대로 돌아보려면 1박 2일 일정이 적당하지만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타면 수도권에서 당일 여행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전~통영속도로를 타면 대전에서 서진주IC까지 1시간30분 정도로 길이 막히지 않으면 서울에서 3시간30분이면 갈 수 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오전 6시부터 20∼50분 간격으로 진주행 고속버스가 있으며,3시간50분 정도 소요된다. 요금은 일반 1만 56000원, 우등 2만 3200원. 항공편은 김포~사천 공항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하루 6차례 왕복 운항하며, 도착시간에 맞춰 시내까지 공항버스가 운행된다. 전남·경남 부산 등지에서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주 IC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진주시 문화관광과(749-2055). 진주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복고열풍…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복고열풍…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어제 산 새 물건도 내일이면 헌 것이 되는 시대. 늘 새로운 것만을 좋아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창조하는 ‘네오-온고지신(溫故知新)족’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1970,80년대를 풍미했던 문화 코드를 2000년대에 끄집어내 다시 해석하고 재창조를 거듭하는 이들은 이미 복고(復古)마니아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들이 옛 것을 사랑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우리가 짝퉁이라고요? 비틀스의 부활이죠.” 지난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음악연습실. 비틀스(영국의 전설적인 4인조 록밴드)의 부활을 꿈꾸는 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비틀스 카피 아마추어 밴드인 ‘애플스(Apples)’ 멤버들이다. 오는 27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2002년 결성된 애플스의 목표는 현대 대중음악에 큰 획을 그었던 비틀스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것. 단순히 비틀스의 곡을 연주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멤버마다 배역도 있다. 조지 해리슨은 정우철(35·대림대 음향미디어과 1학년), 링고 스타는 이응현(35·회사원), 폴 매카트니는 표진인(38·정신과 전문의), 존 레넌은 김준홍(44·회사원)씨가 각각 맡았다. 이들은 비틀스의 노래는 물론 창법과 연주 스타일, 의상, 무대매너, 습관까지도 따라한다. 애플스를 이끄는 멤버 중 3명이 30대.40대인 김준홍씨를 제외한 나머지는 실질적인 비틀스 세대는 아닌 셈이다. 표진인씨는 “6살 차이 나는 형이 즐겨 듣던 비틀스 곡을 옆에서 듣다 보니 좋아하게 됐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비틀스의 곡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경험으로 밴드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70년생인 정우철씨와 이응현씨에게 비틀스는 대중음악이라기보다는 클래식에 가깝다. 어릴 때는 유명한 ‘예스터데이’나 ‘헤이 주드’ 정도가 이들이 알고 있던 비틀스 곡의 전부. 수백가지의 기타 이펙터를 사용해 효과음을 만들어내는 데 익숙해 있던 정씨에게 비틀스의 곡은 싱겁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음악으로까지 여겨졌다. 하지만 무작정 음악이 좋아 애플스 활동을 시작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정씨는 “현대 대중음악의 모든 장르에 영향을 미친 비틀스의 음악세계를 이제야 조금 이해할 것 같다.”면서 “그 어떤 기계음으로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비틀스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내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시절 학내 밴드 활동을 했던 이응현씨도 비틀스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한 음악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이씨는 “왼손잡이였던 링고 스타가 오른손잡이용으로 만들어진 드럼을 연주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리듬을 표현해 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면서 “비틀스 곡은 연주할수록 힘들고 어렵다.”고 말했다. ●“80년대 한국 댄스의 스텝을 다시 돌아본다.” 김영우나이트댄스학원의 원장인 김영우(27·경희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씨는 복고댄스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끼가 넘쳐났던 김씨는 대학에 진학해 학내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춤을 시작했다. 터보, 듀스,HOT 등 90년대 중·후반 한국 댄스계를 주름잡았던 이들의 춤을 하나씩 섭렵해 갔다. 2000년 댄스 학원을 차린 김씨는 우리나라 나이트 댄스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2주 동안 전국 10개 시·도의 유명 나이트클럽을 돌며 춤의 특징을 분석했다. 김씨는 수원과 성남 지역 나이트 댄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복고댄스를 춤의 한 부류로 유형화했다. “서울보다는 다소 유행에 뒤떨어지는 서울 인근지역 젊은이들이 어린 시절에 보았던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TV스타들의 춤을 따라하며 즐거움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김씨는 박남정의 화려한 발동작을 연상시키는 빠른 스텝과 소방차의 큰 팔동작, 클론의 현란한 손놀림 등을 바탕으로 스텝 14가지와 손동작 10가지를 정리해 기본 동작을 만들었다. 그는 “상당히 남성적이고 역동적인 복고댄스는 혼자만 즐기는 요즘의 클럽댄스와는 달리 보는 사람과 추는 사람 모두를 즐겁게 한다.”고 설명했다. ●쫄쫄이, 달고나, 못난이 인형… 추억을 사고 파는 사람들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차민용(31)씨. 그가 파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추억이다.2003년부터 ‘캔디마을’(www.candymaul.com)과 ‘쫄쫄닷컴’(www.zzolzzol.com)을 운영하고 있는 차씨는 이 쇼핑몰을 통해 200여종에 가까운 추억 상품을 팔고 있다. 차씨는 이제는 불량식품으로 홀대받는 달고나·쫀득이, 인터넷 게임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낯설기만 한 못난이 인형과 종이딱지 등을 팔고 있다. 가격은 1000∼5만원까지 다양하다. 이 사이트를 찾는 사람들은 하루 평균 200∼300명선. 요즘 장난감이나 주전부리들과는 품질이 비교도 안되지만 방문객의 10% 정도는 꾸준히 상품을 주문하는 단골들이다. “스산한 찬바람이 불어 옛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가을철이나 교실 안에서 연탄 난로에 쥐포나 쫀득이를 구워 먹던 생각이 절로 나는 겨울철에는 저도 놀랄 만큼 매출액이 올라갑니다.” 차씨는 70∼80년대 마을 어귀 문방구와 놀이터의 추억을 찾아 사이트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물건을 공급하기 위해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새로운 공급처를 찾는다. 단종된 상품이 많아 어느 한 곳에서 물건을 납품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차씨는 서울 영등포, 청량리, 동대문, 남대문 등지의 재래시장 20여곳에서 물건을 받아온다. 추억상품을 파는 다른 인터넷 업자 10여명과 물물교환을 하기도 한다. 차씨는 “자고 나면 세상이 달라지는 시대가 되다 보니 너무나도 빨리 옛 것이 잊혀지는데, 이는 한 사람의 옛 모습과 추억 역시 그만큼 빨리 사라진다는 의미”라면서 “우리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옛날 상품을 보면서 순수하고 포근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여유를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우주전쟁’

    미국은 자국 인공위성 등을 보호하기 위해 우주를 현재 개발중인 무기들의 발사대로 사용하는 정책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스타워즈’를 연상케 하는 제2의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러시아는 그러나 미국의 이같은 구상이 사실상 우주에 방어·공격용 무기를 배치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고 미국이 이를 강행할 경우 실력행사로 대응할 것이라고 즉각 경고했다. 유럽연합(EU)과 캐나다, 중국 역시 미국의 우주 선점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미 “‘우주 진주만사태’ 막자” 뉴욕타임스는 백악관과 국방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 미 공군이 이른바 ‘우주 진주만사태’를 피하기 위해 우주에서 각종 무기를 발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통령령안을 마련,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소식통은 이번 주 안에 재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신문에 따르면 새 대통령령은 2001년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 지명자가 주도한 위원회에서 “군은 대통령이 우주에 무기를 배치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한 데 따라 성안됐다. 신문은 군 우주선에 정밀 유도무기를 탑재, 지구 반바퀴를 45분 만에 돌아 목표물을 요격할 수 있는 ‘글로벌 스트라이크’계획, 텅스텐과 우라늄 등으로 만들어진 실린더를 우주에서 시속 1만 1500㎞로 떨어뜨려 소형 핵무기와 같은 파괴력을 갖춘 ‘신의 회초리’구상, 궤도선회 거울이나 고공 비행선에서 치명적인 레이저 광선을 발사하는 방안 등이 미 공군에서 검토하고 있는 내용들이라고 소개했다. 미 공군은 이미 지난 4월 정찰 및 통신위성을 교란할 수 있는 XSS-11 마이크로 위성을 발사한 바 있다. ●백악관 “아직 검토 중인 사안” 보도가 나가자 즉각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996년 빌 클린턴 정부가 마련한 내용을 보완하는 정책 검토가 진행 중”이며 “인공위성 등 우주 장비의 주권과 통행권을 보장하기 위한 구상”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나라 이름을 적시하지 않은 채 “여러 나라들이 우리의 우주 장비를 위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려 노력해 왔다.”며 “부시 대통령 역시 우주 자산이 보호받을 수 있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우주 무기 배치를 의도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싱크탱크인 국방정보센터(CDI)의 테레사 히친스는 “미국은 전통적으로 우주의 전사가 되길 꺼려하던 입장을 바꾸고 있으며 이것이 새 우주정책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중국 “절대 반대” 블라디미르 예르마코프 워싱턴 주재 러시아 참사관은 18일 파이낸셜타임스와 회견에서 “러시아는 우선 이번 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실력행사가 당장의 의제는 아니지만 미국과의 협상결과에 따라 대응수위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럴 킴벌 군비축소협회(ACA) 사무총장은 “자산을 보호하겠다는 미국의 논리는 결국 역효과만을 불러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쿵취안(孔泉)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19일 “우주에 군사무기를 배치하는 데 반대하며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국제법 제정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9) 1923년 일본인들의 정감록 처형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9) 1923년 일본인들의 정감록 처형

    ‘대일본제국의 애국적 지식인’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호소이 하지메란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한일합병(1910년)을 전후해 ‘동경아사히신문’과 ‘한일전보통신사’ 기자로 다년간 한국에 체류했다. 갓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편입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호소이는 흥미를 느꼈고 나름대로 많은 ‘연구’도 했다. 그런 호소이에게 1919년의 기미독립운동은 전혀 뜻밖의 사태였다. 무지렁이로 보였던 한국인들이 수백만 명씩이나 길거리로 뛰쳐나와 독립을 요구할 줄 그는 미처 몰랐다. 한낱 정치군인에 지나지 않는 조선총독이 그걸 짐작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당당한 한국전문가 호소이 자신도 사태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독립만세운동이 좌절되자 한국엔 예언서 ‘정감록’이 더욱 인기를 끌었다. 대한독립이 박두했다는 둥, 신천지가 열릴 거라는 둥 갖가지 소문과 예언이 한반도를 뒤덮을 지경이었다. 특히 1921년부터는 계룡산을 중심으로 숱한 신흥종교단체들이 등장해 위세를 떨쳤다. 겉으론 종교를 표방했지만 은연중 독립을 향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파악한 조선총독부는 정감록 비상이 걸렸다. 1922년 겨울, 호소이는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조선총독부의 부탁을 받았다. 예언서 정감록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동경의 자택 서재에 틀어박혀 호소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반도는 우리 대일본제국에 무엇인가. 제국의 용맹스러운 장졸(將卒)들이 목숨 바쳐 강적 청나라도, 러시아도 연달아 무찌른 다음 어렵게 얻어낸 제국의 새 영토가 아닌가. 저 버러지 같은 한국 놈들은 천황폐하의 신민이 된 영광을 모른다. 놈들은 감히 독립을 바라고 있다. 훈련된 군대도 총칼도 없이 맨주먹으로 일어서려는 무지막지한 저들의 맨주먹을 쇠뭉치로 둔갑시키는 것은 독립에 대한 부질없는 열망이다. 거기 불 붙이는 부싯돌이 바로 정감록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든 정감록을 처단할 것이다. 나 호소이로 말하면 천황폐하의 뜻에 언제나 기꺼이 순종하고 순수한 대일본제국 신민의 고귀한 혈통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는 위대한 제국의 충량한 신민이 아닌가. 우리 대일본제국으로 말하면 단일하고 순수한 혈통이 천만대를 두고 이어져온 아름다운 나라. 그에 비할 때 이른바 저 한국 놈들은 어떤가. 놈들은 우선 생리학적으로 열등하다. 혈액만 하더라도 한국 놈들의 피는 ‘거무칙칙하고 더럽다.’ 그렇기 때문에 이조 500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당쟁이 일어나 수많은 인명이 살상됐지만 나라꼴은 늘 엉망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한국 놈들은 유전인자 자체가 불순하고 열등하다. 따라서 놈들에게 밝은 미래란 있을 수가 없다. 오직 천황폐하의 자애로운 품속에 있을 때만 그들은 행복을 바랄 수 있다. 이런 점들을 나는 이미 두 권의 저서에서 명확히 입증했다.‘조선문화사론(朝鮮文化史論)’과 ‘조선 문제의 근본적 해결(朝鮮問題の根本的解決)’이 그것이다. 한국에 대한 나의 전문적인 연구는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바쳐질 것이다. 실용성이 없는 학문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대일본제국의 발전을 위해, 무지하고 악랄한 한국 놈들의 순화를 위해 나의 저술은 두고두고 쓰일 만한 것이다. 탁상공론으로 걸핏하면 양심을 들먹이는 비겁하고 위선적인 놈들이 있어 훗날 나 호소이를 대일본제국의 어용학자(御用學者)라고 불러도 좋다. 제국의 영예를 위한 나의 일편단심은 그럴수록 더욱 밝게 드러날 것이다. ●정감록을 죽이는 묘책 호소이는 묘안을 찾기 위해 좀더 생각했다.‘도무지 정감록이란 무슨 책이냐. 조선시대 위정자들도 몹시 두려워했던 책이 아니냐. 위정자들은 정감록을 소지하거나 퍼뜨리는 일체의 행위를 범법 행위로 간주했다. 그런데 혹독한 금압 조치에도 불구하고 정감록은 널리 퍼져나갔다. 지금 반도의 덜떨어진 한국 놈들이 감히 독립을 바라는 것도 다 그놈의 정감록 때문이다.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공개하라. 그렇다, 금단의 예언서 정감록을 죽이는 방법은 공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감록은 신비함을 잃게 된다. 신비성을 잃어버린 정감록이라면 이미 반쯤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또 하나. 기왕에 공개할 바엔 정감록의 정본(正本)을 만드는 거다. 바로 이 호소이가 대일본제국의 정치적 이익에 봉사할 정감록의 정본을 결정한단 말이다. 총독부에서 수집해 놓은 정감록의 이본들을 자세히 살펴 그 가운데서도 정치적 선동성이 별로 없는 텍스트를 골라 공개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 텍스트에 살짝 손을 댈 수도 있다. 아주 심하게 손을 대면 조작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영악하고 의심 많은 한국 놈들을 상대로 하는 일인 만큼 더욱 주도면밀해야 한다. 나는 정감록을 순화시킬 뿐이다. 이것은 변조나 개작이 아니다. 나는 대일본제국과 천황폐하를 위해, 한반도와 한국 놈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정감록을 편집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잊지 말아야 될 일이 또 있다. 이렇게 교묘한 수단을 부려 김을 빼놓더라도 한국 놈들은 순화된 나의 정감록을 다시 개악하거나 제멋대로 해석할 우려가 있다. 놈들은 워낙 피가 더럽기 때문에 제멋대로니까. 그들의 망령된 행위를 막기 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을까. 그래, 예방주사를 놓자! 정감록은 이래서 진짜 믿을 것이 못 된다. 이런 식으로 계몽적인 비평을 잔뜩 써 가지고 독자 놈들의 배를 채우는 것이다. 정감록의 대가 호소이가 만든 정감록 정본의 맨 앞에 실린 비판을 읽게 하자. ●동경판 정감록에 대한 불만 대일본제국의 충량한 신민 호소이는 이미 수집된 정감록 이본들을 널따란 책상 위에 펼쳐놓고 수술을 시작했다. 일제는 이미 오래 전에 광개토대왕비문까지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변조했다. 정본이 따로 존재할 리도 없던 정감록을 개작하는 것쯤이야 호소이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그의 솜씨와 애국심은 참으로 대단해 불과 몇 달 만에 ‘정감록비결 집록’이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한국인들에겐 억압의 상징인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정감록을 죽이기 위한 음모가 결실을 맺은 날은 1923년 2월15일이었다. 이것이 사상 최초의 정감록 인쇄본이다. 도쿄판 정감록은 인기가 대단했다. 초판으로 몇 부를 찍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출간된 지 약 보름 만에 제3판을 제작할 정도였다. 도쿄판은 아마 일본에서도 상당히 팔렸겠지만 주로는 ‘식민지 조선’에서 소비됐을 것이 뻔한 이치였다. 호소이가 바란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도쿄에서 만든 정감록으로 한국의 정감록 세계를 평정한다는 목표는 어쩌면 단시일 내에 달성될 듯도 하였다. 도쿄서 들어온 정감록이 잘 팔려 나가자 한국의 출판계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정감록을 찍어내면 돈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일각에선 호소이의 민족성 비판에 강한 불만이 제기되었다. 내놓고 맞싸울 형편은 안 되었지만 정감록까지도 ‘그 잘난’ 일본인의 손으로 다듬어진 책을 봐야 되는가 하는 강력한 반발이 없지 않았다. 동경판의 뚜껑을 열어본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경악했다. 호소이는 무지한 한국 사람을 계몽한답시고 무려 50쪽이나 되는 정감록 비평을 썼다. 정감록의 허구를 낱낱이 파헤치고 나아가 한국 사람의 타고난 ‘야만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 논지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한국인들은 태초부터 불합리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련한 한국 민족의 정신적 미성숙은 그들이 정감록과 같은 미신에 맹목적으로 빠져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이렇게 유치하고 야만적인 성격이 한국민족의 본성이다. 국제적으로 저열한 한국의 민족성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한반도의 역사 및 지리적 조건이 빚어놓은 결과다. 당시 유행하던 지리적 결정론을 빌려 호소이는 ‘미개한’ 한국인을 질타했다. 귀신을 숭배하고 점치기를 좋아하는 풍습은 당시 일본사회에서 더욱 성행했다. 그러나 일본민족의 위대성을 맹신한 호소이의 눈에는 그런 현상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야만적’인 한국인까지도 호소이는 마음속 깊이 사랑했던 것일까. 그는 하루바삐 정감록 신앙에서 한국인을 구출하여야만 된다고 믿었다. 합리적이고 발달된 현대 일본사회의 참된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한국인은 정감록 신앙을 포기해야 된다. 이것이 호소이의 변(辯)이었다. 그러나 1923년 동경판 정감록을 간행한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대일본제국의 번영을 위해 정감록이라는 정치적 폭탄에서 뇌관(雷管)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동경판이 제3판에 돌입한 지 보름 정도 지난 1923년 3월19일 김용주가 편찬한 정감록이 독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편찬에 나선 김용주는 호소이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는 정감록의 내용에 대해 아무런 비평도 보태지 않았다. 딱히 정감록을 옹호하지는 않았으나 이것은 호소이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었다. 굳이 김용주가 정감록을 신앙하였다거나, 민족주의자였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정감록에 대해 아무런 비평을 가하지 않은 데는 호소이의 지나친 악평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밖에도 김용주에게는 정감록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첫째, 당시 많은 한국인들은 정감록의 내용을 틀림없는 예언으로 믿고 있었다. 식민지의 힘없는 지식인에 불과했던 김용주로서는 대중의 그러한 열망에 굳이 찬물을 끼얹을 이유가 없었다. 설사 그가 남다른 애국심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대한독립이 된다고 믿고 있는 동포들의 기대심리를 비난할 필요는 없었다. 둘째, 단순히 책을 많이 팔기 위해서라도 잠재적인 독자들의 희망을 꺾어서는 안 됐다. 김용주의 편집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호소이에 대한 반감을 비롯해, 독립에 대한 기대와 상업적 목적이 골고루 다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김용주는 정감록의 신빙성에 대하여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또 하나의 정감록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은 한성판이라 불릴 만했다. 한성판엔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동경판과 공통되는 부분도 상당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았다. 두 판본이 내용 면에서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매사를 곧이곧대로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민간에 퍼져 있던 허다한 비결 가운데 어느 것은 호소이만, 또 다른 것은 김용주만 수집해서 자연히 그렇게 됐다고 할 것이다. 실제 정감록은 수백 년 동안 필사본으로 암암리에 전파되었기 때문에 각자의 수집본이 서로 다를 수가 있다. 그렇다면 동경판과 한성판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비결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야 물론 좀 더 널리 퍼져 있던 유명한 예언서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전국 어디에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누구나 손쉽게 수중에 넣을 수 있는 그런 대표적인 예언서 말이다. 나는 이런 입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동경판을 편집한 호소이가 매우 국수주의적이었단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수집된 정감록을 모두 출판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 달리 말해 진인출현이나 대한독립의 메시지가 약한 ‘순화된’ 비결만을 선별적으로 알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그는 ‘고약한’ 내용의 예언까지 인쇄에 부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김용주는 달랐다. 그는 도쿄본의 상당수를 답습하면서도 도쿄본에 실리지 못한 다른 비결들을 많이 포함시켰다. 김용주는 호소이가 정감록의 정본을 만들려고 한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도쿄판이 정감록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진짜 정감록은 훨씬 더 위험한, 폭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정감록을 출간하지는 못했다. 총독부의 검열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결국 호소이의 뜻대로 되다 당연히 김용주의 정감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은 조선총독부의 의도와 배치된다. 일본인들이 보기에 김용주의 한성본이 딱히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눈에 거슬리는 점이 없지 않아 조만간 도태되어야만 될 책이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식민지 한국의 정세는 한결 경색됐다. 이른바 전시총동원체제가 작동돼 비상시국이었다. 엄격한 사상통제와 감시가 일상화되는 가운데 정감록에 대한 통제도 한 단계 더 나갔다. 그 무렵 새로운 정감록이 나왔다. 현병주의 ‘비난정감록진본’이었다. 마침 경성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를테면 경성본이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해명돼야 할 문제가 있는 책자였다. 우선 표면상 출간연도가 미상이란 점이 문제다. 책의 간행지를 ‘경성(京城)’이라고 표기해 놓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식민지시기 서울에서 나온 것은 틀림없다. 경성본이 나온 시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내기 위해 나는 본문의 표기법을 자세히 분석했다. 문장의 구조와 맞춤법이 현대의 격식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경성본의 간행시기를 1930년대 중반 이후로 확신한다. 경성본은 내용면에서도 앞서 간행된 한성본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경성본은 정감록이 사실무근의 허망한 책자라는 논설을 싣고 있다. 편자 현병주는 정감록의 가치에 대해 직접적인 판단을 보류한 김용주와는 달랐다. 하지만 현병주가 단순히 일본인 국수주의자 호소이를 추종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는 정감록의 허구성을 비판하였을 뿐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을 한국인의 저열한 민족성에서 찾지는 않았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점은 현병주가 비결의 내용 중에서 자신이 동의하지 못하는 대목에 대해 일일이 비판을 가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비결의 본문에 길지(吉地)에 피난을 가더라도 피난 시기에 따라 생명을 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부분이 있다. 현병주는 바로 그 구절의 끝에 괄호를 치고는 “생명을 건지는 땅 중에도 종종 생명을 건지지 못하는 곳이 있다.”고 비꼬는 투로 주석을 붙였다. 이와 같이 조목조목 정감록의 내용을 비판함으로써 현병주는 정감록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 했다. 호소이의 정감록 말살 의도는 현병주에 이르러 더욱 공교해졌다. 나는 현병주가 친일파였는지 여부를 알지 못한다. 다만 정감록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감록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현병주는 호소이의 완벽한 후배다. 현병주는 좀더 중요한 점에 있어서도 호소이의 전통을 계승했다. 나는 지금 경성본에 실린 비결의 내용을 문제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호소이는 35종의 선별된 비결을 공개했다. 김용주는 그보다 16종이 더 많은 51종을 간행했다. 그런데 경성본에는 25종만 실려 있다. 현병주는 호소이의 동경본과 김용주의 한성본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비결로 한정했다. 결과적으로 말해 그는 호소이가 간행한 비결의 일부만이 정감록의 정본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 기여했다. 호소이가 공개한 35개의 비결 가운데 25종은 광복 이후 간행된 여러 정감록에도 빠짐없이 등장한다.20세기 후반부터 한국사회에서 정감록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호소이의 비결을 정본으로 대접하게 됐다. 그렇게 된 줄이나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위기의 민속주…고객들 외면

    위기의 민속주…고객들 외면

    ‘안동소주, 문배주, 두견주….’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민속주지만 경영실적은 ‘빛좋은 개살구’다. 한국의 술맛을 대표하는 민속주들이 시련을 겪고 있다.‘명절 선물용’이란 의식에다 ‘신세대 입맛에 맞지 않는다.’ 등 판매부진 이유도 가지가지다. ●90년대보다 생산량 최고 절반 줄어 북한 평양의 전통 민속주인 문배주는 이마트 등 할인점에서 40% 정도는 반품되고 있다. 할인점들은 ‘잘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술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공식 만찬주다. 한국전통민속주협회 나장연(충남 한산소곡주 사장) 총무는 “회원업체가 42개에 이르지만 휴업이나 부도로 실제로 술을 빚는 곳은 10여개밖에 안 된다.”고 밝혔다. 민속주는 농민이 소득증대를 위해 만드는 복분자주, 머루주, 국화주 등 농민주와 달리 문화재청이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문배주, 두견주, 경주교동법주 등 3개와 농림부나 시·도가 명인이나 문화재로 지정한 전통 술을 말한다. 협회는 2002년 3월 만들었다. 나 총무는 “유명 민속주들도 전성기인 1990년 중반보다 생산량이 20%에서 많게는 절반까지 줄었다.”고 덧붙였다. 안동소주도 수요가 줄었고, 경주교동법주는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 집에 찾아오는 이들에게만 판다.‘화랑’ 술 등을 생산하는 대형 주조업체가 운영하는 ‘경주법주’와 헷갈리는 소비자들도 많아 이 집 술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면천두견주 명맥 끊길 위기 충남 당진 면천두견주는 당진군과 기존 제조회사가 갈등을 빚고 있다. 하나주조가 2001년 8월 두견주기능보유자 박승규씨가 사망한 뒤 그의 시설과 인력을 인수, 생산해 왔는데 당진군이 이달 초 면천주민 8가구 16명을 무형문화재 면천두견주보존회로 지정해줄 것을 문화재청에 신청했다. 이 회사 김창년 사장은 “두견주가 생산되고 있는데도 군이 기존 회사와 무관하게 보존회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주민들이 보존회로 지정된다고 해도 스스로 시설을 갖추기가 어렵고, 우리와 상표권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 두견주 생산의 맥이 끊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민속주는 연간 매출액의 60∼70%가 설과 추석 등 명절에 집중되고 있다. 나 총무는 “민속주는 명절 선물용으로 생각, 백세주나 복분자주 등만 찾는다.”고 하소연했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술이어서 신세대들은 으레 ‘옛날 술’로 여긴다. 맛도 이들에게 잘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와인 등 저도주 열풍이 거센 탓이다.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공식 건배주에서도 안동소주 등 민속주들은 도수가 높아 제외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 총무는 “민속주는 제조법을 어기면 면허가 취소돼 변형도 어렵지만 도수를 낮춰도 옛것이라는 이미지가 바뀌지 않아 판매에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가격이 비싼 것도 흠이다. 쌀 등 모든 원료를 국산으로 쓰기 때문이다. 공장도가로 안동소주의 경우 증류주 400㎖가 1만 3000원에 이르지만 소주는 360㎖에 900원이 채 안 된다. 값이 비싸다 보니 판매망이 백화점 등으로 국한되고 있다.‘구멍가게’에는 민속주가 없다. ●주세인하 품목서 제외… 경쟁력 약화 올 초부터 과실주는 주세가 30%에서 15%로 내렸지만 민속주는 쌀을 써 해당되지 않는다. 복분자주 등이 혜택을 봤다. 나 총무는 “민속주도 순수국산 원료를 쓰는데도 과실주만 주세를 낮춰 줬다.”며 “민속주도 주세가 낮아야 가격경쟁력이 생긴다.”고 밝혔다. 출고가로 복분자주는 375㎖에 4081원, 소곡주는 700㎖ 1만원으로 복분자가 가격이 싸지만 수익은 더 난다. 40도 안팎인 증류주는 주세가 72%에 이른다. 양주와 똑같이 세율을 적용받지만 비싼 원료로 생산비가 더 들어 순수입이 적다는 게 민속주 생산자들의 얘기다. 나 총무는 “소곡주 한 병을 1만여원에 출고해도 원료비와 주세, 교육세 등을 제외하면 순수한 마진은 500원에 불과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최근 들어 동충하초주, 가시오가피주 등 밀가루 등으로 빚은 값싼 약주들이 쏟아지면서 민속주들의 설 자리가 더 좁아지고 있다.”면서 “정부에서 한국의 전통 술맛을 대변하는 민속주에 대해 주세를 낮춰 경쟁력을 확보해 주지 않으면 민속주의 맥이 무더기로 끊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기고] 교육개혁 현실에 맞게 추진해야/한석수 교육부 기획법무담당관

    미국 아이오와에서 공부할 때 경험한 일이다. 수업시간에 조를 편성해서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만들어보는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분임별 연구 및 토론을 거쳐 안을 만들어 발표하는 것인데, 그 진행과정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모여서 잡담 비슷한 얘기만 장황하게 나누는 것이었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나는 한가지 제안을 했다. 미국에 50개 주가 있고, 아이오와 주만 해도 수많은 교육자치구가 있으니 우선 우수 사례를 한번 조사해보자고. 그렇지만 그들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분임에서의 토론과 별도로 개선안을 따로 만들어 분임에 제출했다. 인터넷 서치와 기존의 연구 보고서들을 중심으로 당시 아이오와 주에서 사용되지 않던 새로운 제도나 용어 등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워낙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럴듯해 보이는 보고서를 만들 수가 있었다. 다른 미국인 학생들은 여전히 때로는 낄낄거리기도 하고 엄청 심각하기도 하면서 지루한 토론을 계속했다. 나의 중간발표에 흥미롭다는 듯 관심은 보여줬지만 솔직히 기대한 만큼의 호응은 아니었다. 다른 급우들의 중간보고서는 너무 밋밋하여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들은 토론과 수정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그렇게 2주 정도가 지나고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분임이나, 타 분임에서 만든 보고서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든 보고서들의 특징은 현실적으로 매우 실행 가능한 방안이라는 점이었다. 개선방안들은 구체적 배경과 맥락을 가지고 있었고,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교육적으로 충분히 고려하고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는 지극히 평범했으며 제안하고 있는 방안 역시 그리 신선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가 당초 발표했던 새로운 용어나 제도들은 그들 방식으로 잘 소화되어 담겨 있었다. 당시 나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교육과정 수업시간을 통해서 미국인들의 문제해결방식을 제대로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하게 자신을 반성하면서, 우리의 일처리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창의적인 방안을 스스로 만들어내려는 노력보다 남의 것을 모방하려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이 그리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우리 교육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는 외국의, 선진(?) 제도를 배우는 데 너무 골몰했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것들은 방향이나 시사점을 제시해줄 수는 있지만 결코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우리의 현실적 조건들에 터를 잡아 심각하게 고민하고 진지하게 토의하면서 우리 방식을 찾아내려 노력해야 했다. ‘사고방식에 있어서의 사대주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는 후진성을 탈피할 수 없다. 얼핏 멋져 보이고 그럴듯하지만 문화적 배경을 결여한 제도나 생각들은 공허하다. 그렇게 화려해 보이던 교육개혁의 신조어나 제도들이 남긴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우리의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 교육의 울타리를 차분히 살펴보고 조그만 일부터 바로 세우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조급함을 떨치고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추진방식에 있어서도 절단하고 이식하는 외과수술형 개혁보다는 진맥을 통해 허한 곳을 보하고 체질을 개선해주는 한방식 처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교육정책은 일관성과 안정성이 중요하고 이를 통한 신뢰구축이 성공적 추진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제사 준비를 위해 놋그릇을 닦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땀을 뻘뻘 흘리시며 푸르딩딩하던 놋그릇을 반짝반짝 닦아내던 그 모습은 어쩐지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었다. 교육개혁은 어쩌면 놋그릇을 닦던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미래를 찬란하게 비출 희망의 빛은 그저 녹에 가려있을 뿐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그저 이를 공들여 닦아내는 것은 아닐까? 한석수 교육부 기획법무담당관
  • [보건소 탐방/인천 동구] 인천지역 금연클리닉의 ‘맏형’

    [보건소 탐방/인천 동구] 인천지역 금연클리닉의 ‘맏형’

    요즘 인천지역 보건소에는 ‘금연클리닉’ 설치 붐이 일고 있다. 지난달부터 중구를 제외한 모든 구에 금연클리닉이 개설돼 “인천 흡연인구가 줄어들 것”이라는 성급한 예상까지 나온다. 이는 지난해 11월 인천 최초로 등장한 동구보건소 금연클리닉이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계기가 됐다. 일종의 금연클리닉 ‘원조’인 셈이다. ●성공률 60%… 흡연인구 감소 큰 공헌 금연상담사 2명이 활동하는 동구 금연클리닉에는 지금까지 270여명이 등록해 지속적인 관리를 받아왔다.4주에서 6주까지는 주 1회, 이후 6개월까지는 월 1회 클리닉을 방문해 상담을 하고 및 약물을 지급받는다. 약물요법에는 금연껌, 패치, 부프로피온 등이 사용되는데 보건소측은 소변검사 등을 통해 니코틴 농도를 측정한 뒤 대상자에 맞는 방법을 선택한다. 껌과 패치는 인체에 해가 없는 니코틴 공급을 통해 금단현상을 조절하며, 먹는 약인 부프로피온은 뇌에 작용, 흡연욕구를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이외에 운동요법과 식이요법 등을 병행할 것을 권장한다. 그러나 동구 금연클리닉이 금연성공률 60%라는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은 상담사들의 집요함이 큰 몫을 했다. 등록만 하고 클리닉에 잘 나오지 않는 이들에게는 성가실 정도로 방문을 독촉하고,4∼6주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후의 변심(?) 여부를 확인한다. 이들의 ‘감시망’에는 직위도 고려되지 않는다. 이화용 동구청장은 6주 금연에 성공한 뒤 바쁜 일정으로 클리닉에 잘 나오지 않자 본인 또는 비서실로 전화해 흡연 여부를 체크하고 있다. 클리닉이 개설되자마자 등록한 김인규 전 부구청장은 지난 19일자로 최초의 24주 금연 성공자가 됐다. 다음달 12일에는 40여명의 금연성공자와 보건소직원들이 함께 등반대회를 가질 정도로 사후관리가 철저하다. 이동클리닉 사업도 활발하다. 지난달부터 상담사 1명이 동국제강(화), 대우종합기계(수), 재능대학(목) 등을 주 1회씩 찾아가 같은 방식으로 금연클리닉을 펼치고 있다. 보건소측은 지난달부터 절주·금주사업도 펼치고 있다. 금연과 절주만이 건강을 담보하는 지름길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금주·출산준비 교육 점진 확대 지난달 초 재능대학에서 음주습관을 잘못들일 우려가 큰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음주의 위해성을 홍보했고, 관내 중·고교 보건교사들과 학생 금주교육을 위한 협의를 가졌다. 앞으로는 군인과 경찰, 일반주민, 보육시설, 알코올중독자 등으로 영역을 넓혀 이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다음달부터는 임산부 출산준비교실을 본격 운영할 방침이다. 지난달 말 임산부 30여명을 대상으로 4일에 걸쳐 개최한 출산교실이 호응을 얻은 데 힘입어 분기별로 운영키로 한 것. 출산교실은 임산부의 안전한 자연분만을 유도하는 호흡법인 라마즈분만법, 임산부체조, 산후관리법 등을 강연한다. 아울러 주민들의 식생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영양도우미를 양성한다는 계획 아래 현재 간호사·영양사 출신 주부들을 대상으로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다. 선정된 도우미들은 이웃 등을 대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영양식단 짜는 법 등을 가르치게 된다. 관내 치매노인 관리를 위해서는 오는 5월 중순 송림동에 치매주간보호센터를 열기로 했다. 이 시설은 대한간호사회 인천지부에 위탁 운영하게 되는데 저소득가정에 방치돼 있는 치매노인을 낮시간 보호하고 치료, 부양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게 된다. 박판순 소장은 “보건소 공통사업 외에 주민들의 실질적인 건강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직원들이 골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김재한의 재테크] 절세형 고금리상품 잘 관리하자

    재테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요즘 금융상품들은 시중금리를 반영하는 변동금리형이거나, 기본금리 자체가 낮아 상품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상품만 찾을 것이 아니라 기존에 가입한 비과세·절세형 고금리 상품을 잘 관리하는 것도 재테크의 지름길이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통장을 한번 살펴보자. 예전에 가입했던 확정금리 적금식 상품이 있다면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다.2∼3년 전에 3년짜리 정기적금(상호부금) 금리는 금융사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연 4.0∼4.5%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 3%대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예전에 가입한 적금에 최대한 불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자유적립식은 변동금리가 적용된다. 따라서 금리 하락기에는 금리가 더 내리기 이전에 불입 상한선까지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만기 7년 이상인 장기주택마련저축은 고금리는 물론 비과세·소득공제도 가능하고 주택 구입시 주택자금대출까지 받을 수 있어 ‘1석4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만기가 돌아온 비과세 가계신탁의 경우에는 만기 이후에도 계속 실적배당을 하고 있고, 배당률은 현재 연 4.5∼5.0%로 높기 때문에 계속 유지하면 좋다. 노후대비용 생활연금신탁도 지난 1년간 배당률이 연 4∼4.2% 수준으로 지금의 적금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또 금액에 관계없이 원금이 보장되고 세금우대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 이같은 상품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청약저축에 관심을 가져보자. 세금우대·생계형으로 가입할 수 있고, 적금형식으로 매월 부으면 국민주택 청약우선권이 부여된다. 금리 면에서도 2년 이상 경과되면 연 6%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무주택 세대주만 가능하다. 국민·우리은행, 농협에서만 가입할 수 있다. 만 60세 이상 노인층 등이 가입할 수 있는 비과세 생계형 저축도 이자·배당소득에 대해 비과세돼 일반 금융상품보다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다. 고객과 상담을 하다 보면 급전이 필요해 몇년간 불입한 예금을 중도 해지하는 예가 종종 생긴다. 중도에 해지하면 금리는 물론 가입자가 받는 혜택(비과세·세금우대·아파트 청약 등)이 없어지기 때문에 손해가 크다. 예금에 가입해 만기까지 60% 이상 기간이 지났다면 급전이 필요할 경우 담보대출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부득이 해지해야 된다면 특별 중도사유 여부 등도 꼼꼼히 챙겨 이자 손실 등을 최대한 줄여야 할 것이다. 국민은행 방배PB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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