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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류도매상 살해/범인 2명을 검거

    전국 조직폭력배 99개파 2천여명의 계보와 명단을 파악하고 일제 검거에 나선 경찰은 19일 「배차장파」의 행동대원 서남태씨(25ㆍ전과6범ㆍ이리시 동산동 545)와 이존화씨(22ㆍ전과3범ㆍ서울 종로구 창신1동 43)를 붙잡아 살인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전국 99개 폭력조직 일제 소탕령/경찰

    ◎신흥세력 2천여명 계보 파악/이승완계ㆍ일송회ㆍ신우회가 주류/「범죄단체구성죄」 적용,모두 구속방침/특수기동대에 「첩보수집반」 신설… 지속 추적 치안본부는 18일 최근 민생치안의 암적존재가 되고있는 신흥 조직폭력배 99개파 2천여명의 계보와 명단을 파악,일제 검거에 나섰다. 경찰은 특히 올해안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될 경우 선거 등으로 이들 조직폭력배를 뿌리뽑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빠른 시일안에 이들 조직폭력배들을 검거 구속을 원칙으로 엄벌할 방침이다. 경찰은 조직폭력배들이 과거와 달리 술집주인이나 종업원 등의 직업을 갖고 표면적으로는 뚜렷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있는데다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해 일제소탕이 어렵기는 하나 수사력을 총동원,이들을 추적 검거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를 위해 지난해 7월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라 조직폭력 등 민생침해사범에 대한 검거활동에 나서고 있는 특별수사기동대 안에 「범죄첩보 수집반」을 신설,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새로 생겨난 조직폭력배의 활동 등에 대한 정보를수집,검거에 주력하기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연말까지 파악된 조직폭력배는 88년 1백79개파 2천5백여명,지난해 1백99개파 2천3백여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난해 경찰의 집중단속으로 한동안 활동이 뜸하다가 최근들어 다시 폭력조직 99개파를 새로 구성,조직과 활동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이들 조직폭력배들이 대부분 서울ㆍ광주 등 대도시의 유흥가를 무대로 「보호」를 구실로 조직원을 유흥업소의 영업부장ㆍ웨이터 등으로 취업시키는 한편 스스로도 술집ㆍ오락실 등을 경영하거나 청부폭력 등을 행사함으로써 조직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같은 신흥폭력조직의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현재 수배중인 이승완씨의 「호청련」,김향락씨의 「일송회」,김태촌의 「신우회」 등 3대파를 꼽고 있다. 특히 한때 서울 「신상사파」에서 활약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승완씨는 최근 자신이 이끌던 「전주파」와 「군산파」(두목 형철운) 「이리파」(두목 신규섭) 등 3개파를 규합,「호청련」을 결성함으로써 가장 큰 폭력조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향락씨는 광주 「대호파」를 뒤이은 「OB파」에서 갈라져나온 「신OB파」(두목 이동재ㆍ미국 도피중)와 「목포파」(두목 강대우)를 모아 「일송회」를 만들었으며 신병으로 보석허가를 받고나온 김태촌씨는 자신의 「서방파」와 「번개파」(두목 박종석)를 규합,「신우회」를 결성했다는 것이다. 경찰관계자는 『최근 폭력조직들이 기업형으로 변신,두목급은 범행에 직접 가담하지 않고 있어 조직자체를 뿌리뽑는데 어려움이 많으나 앞으로는 검찰의 지휘아래 범죄단체구성죄 등을 적용해 폭력조직을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 「김정일 후계」 반대자 대거 수용/북한 정치범 왜 늘어났나

    ◎전 부수상 박금철ㆍ이근모 등 포함/군 고위층ㆍ북송교포까지 대상에/하루 5시간 잠자며 “종신 강제노역” 북한의 정치범 집단수용소는 1956년에서 58년에 걸친 「8월종파」 사건 연루자와 가족들을 특정지역에 집단수용함으로써 시작됐다. 이후 1958년에서 60년에 걸쳐 실시된 중앙당 집중지도와 1966년에서 70년에 걸쳐 계속된 주민등록사업 과정에서 반혁명 적대분자로 「위해하다고 지목되는 자」들을 색출,수용함으로써 본격화 됐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1개리 정도의 지역에 설치됐던 정치범 집단수용소의 규모는 점차 확대,수개 리를 합친 1개군 절반정도의 크기로 늘어났으며 그 수도 크게 증가했다. 특히 1973년부터 김정일 후계체제의 구축을 위한 정치투쟁조직인 3대혁명 소조활동이 시작되면서부터는 그 수용인원이 크게 늘어났고 규모도 더욱 확대됐다. 80년 10월 노동당 6차대회 이후에는 김정일이 당권을 장악,반대자 또는 방해자들을 「반당종파」라는 딱지를 붙여 계속 숙청했고 이 결과 82년 현재 8개지역에 약 10만5천여명이 사상개조사업이라는 명분아래 사회와 격리된 채 종신강제노역에 처해진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바에 의하면 북한의 정치범 집단수용소는 1월 현재 지난 82년 보다 그 수와 수용인원에서 각각 50%씩 늘어난 12개지역 15만2천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북한당국은 이들 12개지역 수용소에 대해 비밀번호를 부여,관리하고 있음도 새롭게 확인됐다. 이번에 확인된 북한의 정치범 집단수용소 12개지역(지도와 별표참조)중 함경북도 온성군과 회령군 경성군에 있는 것은 전 부수상 박금철을 비롯,전 당비서 김도만ㆍ김광협,전 당정치국후보위원 유장식 등 주로 김일성ㆍ김정일 체제에 반대 또는 비판적 입장을 보였던 반당ㆍ반혁명분자를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자강도의 희천시ㆍ동신군등에는 전 국가보위부장 김병하,전 제7집단군사령관 김양춘,전 제3집단군사령관 정병갑 등 군부와 권력기관내의 불평ㆍ불만분자 등을 주로 수용하고 있으며 함경남도 요덕군,정평군 덕성군에는 대부분 휴전선에 인접한 황해도 강원도 주민을 비롯해 친일ㆍ반동분자로 분류된 자들을 집단이주시켜 사회와 격리해 놓고 있다. 이밖에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에 있는 집단수용소에는 유사시 평양에 대한 위협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주로 부화범등 잡범과 경미한 사상범을 수용하고 있다. 정치범 집단수용소의 수용대상 및 수용생활 관리실태 등은 다음과 같다. ▷수용대상◁ 처음에는 주로 반당ㆍ종파분자 또는 반혁명분자ㆍ악질지주ㆍ친일파ㆍ종교인 등과 그 가족들이었으나 점차 노동당의 간부나 당원으로 있다가 권력에서 밀려난 정치인과 그 가족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희생된 정치적 피해자들이 수용인원의 주류가 되었으며 일본에서 귀국한 북송교포 가운데 북한체제를 비판한 사람들도 상당수 수용되어 있다. ▷수용소생활◁ 수용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새벽 4시에 기상,6시까지 아침식사를 마치고 작업장에 들어가 작업량을 부여받고 7시부터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한 하오 8시까지 작업을 계속한다. 이들이 하는 작업은 주로 석탄과 광물을 캐는 갱도작업과 벌목,개간 등 중노동이며 저녁식사를 마친 후 하오 11시까지 2시간에 걸쳐 자기비판을 위주로 한 학습시간을 갖고 난뒤 취침에 들어간다. 이같은 일과는 휴일도 없이 연중 계속된다. 이들이 주거하는 주택은 통나무로 엮어 만든 귀틀집(4평정도)이나 토굴을 파서 살고 있으며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통나무로 만든 집단주택에 합숙토록 하고 있다. ▷관리 및 운영실태◁ 국가보위부가 수용소의 모든 업무를 총괄 관장,조정 통제하고 있으나 경비업무는 사회안전부 산하 인민경비대에서 맡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김정일 체제강화를 위해 김정일이 직접 실질적인 모든 권한행사를 총괄하고 있다. 정치범과 그 가족이 일단 수용되면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인정하는 공민증을 우선 압류하고 모든 기본권의 박탈은 물론 친지의 면회,외부와의 서신연락 등은 완전히 차단한다. 집단수용소는 표준시설로 외곽철책선,경계초소,내부철책선으로 탈주의 방지와 외부와의 격리를 목적으로 한 방호구조물을 갖추고 있으며 내부에는 관리소ㆍ수용막사ㆍ집단농장ㆍ사상학습소를두어 자급자족체계와 사상개조를 위한 기본적 요소만을 구비하고 있으며 처형장도 설치되어 있다. □수용중인 주요인사 ●성명:김도만 숙청 연월:1967.3 당시의직책:당비서 숙청 이유:당정책에 불만 ●성명:박금철 숙청 연월:1967.4 당시의직책:당정치위원,부수상 숙청 이유:당정책에 불만 ●성명:김창봉 숙청 연월:1969.1 당시의직책:부수상,민족보위부장 숙청 이유:종파,유일사상 체계문란 ●성명:김양춘 숙청 연월:1969.1 당시의직책:7집단군 사령관 숙청 이유:종파,유일사상 체계문란 ●성명:정병갑 숙청 연월:1969.1 당시의직책:3집단군 사령관 숙청 이유:종파,유일사상 체계문란 ●성명:허봉학 숙청 연월:1969.1 당시의직책:대남사업총국장 숙청 이유:종파,유일사상 체계문란 ●성명:김광협 숙청 연월:1970.11 당시의직책:당비서 숙청 이유:반당ㆍ종파분자 ●성명:유장식 숙청 연월:1975.9 당시의직책:당정치국후보위원비서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김동규 숙청 연월:1977.10 당시의직책:부주석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김병하 숙청 연월:1982.1 당시의직책:국가보위부장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김경련 숙청 연월:1982.1 당시의직책:부총리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홍성룡 숙청 연월:1986.2 당시의직책:부총리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성명:이근모(?) 숙청 연월:1988.12 당시의직책:총리 숙청 이유:김정일후계 반대
  • 여권도 정계개편 수순찾기 돌입/야권행보에 대응책 마련 부산

    ◎민주ㆍ공화 합당 봐가며 구도 선택/“헤쳐모여” 보다 「정치연합」 가능성 민주ㆍ공화 양당 통합추진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 움직임이 구체화 되고 있는 가운데 정계개편에 대한 여권의 구상도 무르익어가는 느낌을 주고 있다. 민주ㆍ공화 합당이 가능할 것이냐가 1차 변수이지만 이들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여권의 선택이 향후 정국 구도를 가름할 절대 관건이라 여겨지는 탓에 노태우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여권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5공청산 이후 정계개편 논의가 야권을 중심으로 본격화되었으나 청와대ㆍ민정당 등 여권은 계속 관망자세를 보여 왔다. 4ㆍ26총선 이후 여소야대 상황의 타파를 위해 「연정」 「보수대연합」을 가장 먼저 거론했던 민정당측이 이같이 조심스런 태도를 견지했던 것은 자신이 정계개편에 앞장 설 경우 「기득권 옹호」 「정권연장 기도」 등으로 매도당해 자칫 일을 그리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시각에서 민주ㆍ공화당이 앞장서 보수연합을 추진해 준다면 별로 해로울 게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ㆍ공화 통합이 구체화되면서 김영삼ㆍ김종필 두 총재가 「통합세」를 바탕으로 노대통령을 제외하고는 3김총재에 버금가는 인물이 없는 민정당을 단숨에 「먹어보겠다」는 의도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여권내에 위기의식이 표면화되고 있다. 여권은 정계개편을 하되 민정당을 축으로 타세력을 흡수하는 형식을 바라면서 대책을 강구중이다. ○…이에 따라 민정당이 가장 먼저 착수한 행동은 범여권 결속이다. 민주ㆍ공화 합당추진 과정에서 여권인사가 비록 영향력이 별로 없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야권으로 넘어간다면 정계개편의 주도권 싸움에서 여권이 입는 타격은 심대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구체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으나 김영삼총재가 여권의 일부 소외세력과 접촉을 시도한다는 얘기도 있고 김종필총재가 구 공화출신 여권인사 설득을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에 대해 여권은 민주ㆍ공화 통합추진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일부 야권인사가 여권에 흡수될 수는 있어도 여권인사가 「투항」할 가능성은 없다고 장담하고 있다. 하지만 「집안단속」을 철저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며 이는 앞으로의 정계개편이 세와 응집력의 싸움으로 나타날 것이 틀림없기에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박태준 대표ㆍ박준병총장ㆍ정동성총무 등 민정당 주요 당직자들이 TK 서명파ㆍ이종찬계등 당내 비주류세력과 백담사측,그리고 권익현 전 대표 등 공천탈락자그룹들과 잦은 회합을 갖고 있는 것도 단순한 당결속을 넘어서 정계개편을 앞둔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여권은 일단 범여결속을 공고히 하면서 민주ㆍ공화 통합이 여권의 「세」를 능가할 수 없도록 원격조종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은 4당체제를 유지하려는 평민당 김대중총재의 입장,민주ㆍ공화가 아닌 평민ㆍ민주 통합으로 야권 개편을 추진하려는 움직임 등을 민주ㆍ공화 통합의 「수위」를 조절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ㆍ공화 양당을 중심으로 한 범보수 신당이 결성될 경우 민정당은 평민당과 함께 3당체제를 상당기간 시험가동해 볼 가능성이 크다. 민정당은 「보수신당」과 당장 정당연합을 하거나 통합을 추진하기에는 평민당의 반발 혹은 자칫 비호남 대 호남당의 지역대결 구조로 가는 난점이 있기 때문에 섣불리 이를 시도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권의 한 고위소식통의 지적처럼 정계개편의 흐름의 수순은 4당체제→민정,범야보수신당,평민의 3당체제→민정ㆍ「신당」의 정당연합(보수대연합),평민당 중심의 진보세력으로 갈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 이 단계적 정계개편의 가장 큰 변수는 내각제 개헌 분위기로 볼 수 있다. 가령 정계개편의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내각제 개헌 분위기가 성숙될 경우 중간단계의 3당체제 운영은 의외로 짧아지고 대신 3단계의 보수대연합이 촉진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민정당이 「보수신당」과 보수대연합을 구성할 경우에도 「헤쳐모여」식의 합당보다는 서구의 다당제를 토대로 현 의원내각제 국가처럼 보수정당간의 정치연합을 통한 연정구성의 가능성이 크다는 여권소식통의 지적이다. 이런 지적을 전제로 할 때 정계개편에도 불구하고 민정당이 간판을 내리거나 노태우대통령의 민정당총재 사퇴등 당적 이탈의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여권은 민주ㆍ공화 통합 움직임과는 별도로 정국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정책연합을 추진하면서 이것이 발전될 경우 정당연합을 시도한다는 정계개편 구도를 짜왔다. 설사 민주ㆍ공화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빠르면 연내에 한 당을 선택,정당연합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광주보상법ㆍ국가보안법ㆍ안기부법을 처리하면서 어떤 당과의 정책제휴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느냐가 연합대상 선택의 관건이 될 수 있다. 민정당이 민주ㆍ공화 이외에 평민당과의 연정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보수대연합으로의 전면개편도 거론하고 있는 것은 무리하게 단일 방향으로 정계개편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계개편 가능성을 흘리면서 현 4당체제를 원만하게 이끌어 나가려는 복안도 있을 수 있고 정계개편 없이 내각제 개헌을 유도한 뒤 연정이나 합당을 시도할 수도 있다. 노대통령이 6공출범 이후 보여 준 통치스타일로 볼 때 무리한 개편은예상되지 않으며 야권이 통합ㆍ분열ㆍ내분 등으로 격렬한 움직임을 보이다 지칠 때까지 기다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여야가 묶어지는 대개편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 「보수연합」ㆍ「평민ㆍ민주 통합」 추진의 움직임

    ◎정계개편 야권행보 빨라졌다/민주ㆍ공화,내부희생 각오 구체화 태세 범보수/평민 소장ㆍ중진들,금지령 불구 세 규합 야 통합/민정ㆍ민주사이 “모종의 교감” 형성 관측도 야권 내부의 정계개편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기류를 보이고 있다. 야권내 정계개편 논의의 두갈래 큰 흐름이라 할수 있는 보수연합결성추진및 평민ㆍ민주 통합추진 움직임에 각각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이들 변화의 조짐들은 노태우대통령과 3야당 총재가 청와대 개별연쇄회담에서 정계개편과 관련한 논의를 마친 뒤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회담 이전의 개편논의와는 또 다른 관심을 끌고있다. 우선 범보수연합과 관련된 변화의 움직임들은 이 흐름의 추진주체라 할수 있는 민주당주류와 공화당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각종의 발언에서 감지된다고 할 수 있다. 공화당 김종필총재는 16일 정계개편과 관련해 『지자제선거전에 개편을 이루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해 그동안의 신중했던 태도가 크게 달라졌음을 밝혔다. 김총재는 또 민주당 김영삼총재와 골프회동을 다음주 갖기로 했음을 밝히며 『김영삼총재가 구상을 구체화해 가는듯한데 나도 구상을 가다듬어 만나야 겠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민주당주류측에서는 『JP가 상황이 빠르게 돌아가는데 대한 감을 잡은 것 같다』면서 반기는 가운데 여유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양측의 발언을 분석해보면 그간 외면적으로는 소강상태를 보여온 정계개편 작업이 내부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지 않는가 하는 관측을 끌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괄목할 만한 성과라는 것이 정계개편과 관련한 민정ㆍ민주 양당 사이의 모종의 교감형성이 아니겠느냐 하는 해석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김종필총재가 그동안의 신중했던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점은 유의해야 할 대목인 것 같다. 왜냐하면 민주ㆍ공화 양당의 밀월관계에도 불구하고 김종필총재가 정계개편에 행동으로 호응하려면 그가 평소 구상해온 보수대연합이 실현될 가능성이 보여야,즉 민정당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가의 지배적 분석이었기 때문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김영삼총재가 추진하는 신당은 일본의 자민당을 능가하는 거대 보수정당이며 이와 관련한 민정ㆍ민주 양당간의 교감이 이뤄졌고 이를 감지한 JP의 행보가 빨라지기 시작했다고 볼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거대 보수신당까지 가는 데는 장애물이나 변수가 한 두 가지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민정당이 지나치게 조용하고 신당추진이 가시화된다 해도 민정ㆍ민주 양당내의 반발,민정ㆍ민주ㆍ공화 3당 등 신당참여세력간의 지분조정,평민당의 처리문제 등도 현시점에서의 거대 보수신당 추진에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 들이다. 그러나 이같은 어려움들에 대해 민주ㆍ공화 양당측이 나름대로의 처방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도외시할 수만은 없다. 민주당 김영삼총재의 정계개편추진에 깊숙히 간여하는 한 핵심인사는 『김총재 구상은 정국구도를 안정속에서 민주화를 추진하는 세력과 변혁으로 민주화를 이루자는 세력의 대결로 짜겠다는 것』이라며 새정치질서가 민정,신당,평민의 3당이 정립하는 형태가 아닌 2분 구도임을 밝히고 있다. 이 핵심인사는 이어 『현재 대화합을 주창할 자격이 있는 정치지도자는 김영삼ㆍ김대중 두사람뿐이며 이중 김영삼총재는 대화합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해 범보수 신당의 성격과 규모를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김영삼총재 자신도 『혁명적인 일인데 나만 따라 오라고 할 수 없다』며 기득권 논란이 문제가 될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따라 오지 않을 사람은 할 수 없다』며 내부희생도 감수할 각오임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김종필총재도 『일생의 과업인 보혁구도 정계개편을 위해 뒤에서 심부름꾼 역할을 맡겠다』고 한바 있는데 역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위상문제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사로 풀이된다. 아무튼 최근의 민주ㆍ공화 양당 움직임은 정계개편의 흐름을 점치는데 중요한 단서라 하지 않을수 없다. 이와관련,김영삼총재는 신당의 내용을 보다 충실히 하기 위해 현역정치인이 아닌 외부인사영입에 또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접촉대상은 총리물망에 올랐던 학자출신의 K모씨와 정치인 K모씨,구야권중진인 Y모씨를비롯 전직장관,변호사,교수 등 중량급 인사들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접촉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야권내 정계개편과 관련한 또한가지 흐름인 야권통합 추진움직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조짐이다. 야권통합은 지금까지 이를 주도해온 민주당내의 일부 중진이나 소장파가 당내외에 동조세력을 형성하는데 진척을 보이지 못함에 따라 정가의 주된 이슈로 등장하는데 실패해 왔으나 평민당 내부에 새로운 통합추진세력이 형성될 기미를 보임에 따라 보다 무게를 갖게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미국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조윤형부총재는 통합추진에 뜻을 굳힌 가운데 민주당 중진들과 접촉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상수,이해찬의원도 김대중총재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서명운동에 돌입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야권통합 추진움직임은 평민당 김대중총재와 민주당 김영삼총재가 모두 양당의 통합을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어 그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실정이나 양당의 중진,소장을 모두 규합할 경우 원내교섭단체 규모 이상의 동조의원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은데다 범보수 신당 추진이 표면화 될 경우 이에대한 반발세력까지 규합하면 정계개편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부인키 어렵다. 더구나 범보수 신당결성에 제동을 걸기 위해 평민당이 지금까지의 당론을 바꿔 평민,민주통합움직임을 지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 학교급식용 쌀 절반값에 공급/김 농림수산

    ◎대상교 늘리고 빵 대신 떡으로 제공/올 가공식품용 155만섬 소비 추정/「양조용」은 방출가로 판매 【광주=임정용기자】 정부는 쌀소비를 늘리고 가격안정을 위해 올해부터 국민학교 급식용으로 정부미공급을 늘리고 공급가격도 방출가의 50% 수준으로 내리기로 했다. 김식 농림수산부장관은 13일 광주 전남 도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올해 정부미급식 대상 국민학교도 지난해의 7백1개교에서 7백65개교로 늘려 전체 국민학생의 6.1% 정도가 급식혜택을 받도록 하겠으며 학교급식도 빵 대신 쌀밥이나 쌀떡 등으로 대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장관은 또 약ㆍ탁주등 양주용 쌀은 방출가격으로,쌀과자ㆍ라면등 가공식품용 쌀은 현행대로 방출가격보다 10% 낮은 수준에서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이같이 가공용으로 소비되는 쌀은 지난해의 52만5천섬에서 올해 1백55만5천섬으로 2배가 늘어날 전망이다. 그는 올해 통일벼의 수매량을 파종기 이전에 예시하겠다고 강조하고 현재 수매예시물량은 4백만ㆍ4백50만ㆍ5백만섬의 3가지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히고 소비자의 양질미 선호경향에 맞추어 일반미의 생산확대를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또 최근 시중쌀값이 수매가격에 비해 가마당 1만원씩 내려가 농민들에게 타격이 크다고 지적하고 산지쌀값이 회복될 때까지 정부보유 일반미와 통일계 쌀의 방출을 계속 제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올해 가공식품용 쌀 소비목표는 ▲라면 25만섬 ▲막걸리등 주류 88만5천섬 ▲과자ㆍ빵등 기타 가공식품 42만섬등 모두 1백55만5천섬이며 이같은 목표가 이루어지면 그만큼 쌀을 수입밀가루 대신 사용하게 돼 3천3백4만여 달러가 절약될 수 있다.
  • 「신정치질서」 만들기 본격화 예상/노대통령ㆍ3김회담이후의 「풍향」

    ◎정계개편 구도ㆍ대북접촉 “3야 2색”/경제난국등 현안 타개 공감대 형성/노대통령의 선택이 향후 정국 좌우할 듯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새로운 정치질서 모색이 서서히 가속화될 것 같다. 노태우대통령과 야3당 총재들간의 3일간에 걸친 청와대 개별연쇄회담이 13일로 끝남에 따라 이같은 전망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번 연쇄회담에서 1노3김은 여소야대의 현 4당체제의 기존 정국구도를 나름대로 진지하게 평가하면서 정계개편에 대한 서로의 속마음을 읽었다. 또한 ▲산업평화를 통한 경제난국 타개에 초당적 협조 ▲북방외교,남북문제에 대한 능동적 대처 ▲치안ㆍ교통ㆍ환경 등 민생문제 해결 공동노력등 국정현안 해결에 대해 공동인식을 나눴고 5공ㆍ광주 등 국회 특위의 조속한 해체,광주보상법ㆍ지방의회선거법 등 지난해 「12ㆍ15 대타협」에 따른 5공청산 후속조치의 매듭도 재확인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이번 회담결과와 관련,정가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정계개편의 향후 전개양상과 정당대표의 북한접촉및 방문으로압축할 수 있다. 우선 정계개편문제에 대해 야3당 총재들은 3당(평민ㆍ민주ㆍ공화) 2색(평민ㆍ민주­공화)의 복안을 나름대로 비쳤으나 노대통령은 「신중한 판단」을 이유로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물론 이것은 바깥으로 발표된 회담내용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야3당 총재중 어느 한 사람이나 혹은 두 사람에게 정계개편에 대한 자신의 깊숙한 복안을 설명했을 가능성이나 한 두 총재와는 서로 의중이 맞아떨어져 밀약을 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소식통은 이번 개별연쇄회담이 새로운 정치질서 모색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통일에 대비하고 급변하는 내외정세에 능동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것으로 본다』고 말해 노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ㆍ김종필 공화당총재와의 회담에서 거론된 자유민주주의 지도세력의 대결속에 비중을 두는 듯한 감을 주었다. 이 소식통은 그러면서도 『이를위해 정치안정 정치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새 정치의 필요성에 인식을 일치시킨 것』이라고말해 「새 정치」가 현 4당구조의 변경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4당 질서를 유지하는 가운데 대화ㆍ타협을 통한 정당간의 정책연합이나 제휴를 강화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여운을 남겼다. 정계개편문제에 대해 김대중 평민당총재는 현 4당체제 유지를 주장,부정적 입장을 피력했고 김영삼 민주당총재와 김종필 공화당총재는 현 4당구조가 지니는 지역분열성,세계정세,남북관계 급변에 따른 대응체제 미흡,정치불안 등을 이유로 들어 정계개편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평민당은 4당구조의 문제점은 대화ㆍ타협의 정치활성화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고 민주ㆍ공화당은 모든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하나의 통합된 세력으로 뭉쳐야 통일과 90년대를 대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김종필총재는 90년대의 장기적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는 내각책임제로 권력구조를 바꿔가는 방향으로 정계개편을 추진해야 하고 가능하다면 금년 상반기에 하도록 되어있는 지방의회선거까지도 정계개편이후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김영삼,그리고 특히 김종필총재의 정계개편 구상은 지난해 정계개편 발언파문으로 대표위원직까지 사퇴한 박준규 전민정당대표의 구상과 일련의 맥을 같이하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노대통령이 이같은 3당 2색의 정계개편 입장에 어느쪽을 선택하느냐가 앞으로 정계개편의 풍향을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은 틀림없다. 노대통령은 정계개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나 그 시기문제는 당분간 계속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여론 추이 주시,각계각층 의견수렴」과 「신중한 검토」라는 원칙적인 입장만을 밝힌 노대통령은 분명히 정계개편의 복안을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이나 좀체로 이 카드를 내보이지 않을 것 같으며 다소 시간을 끌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노대통령이 선택할 수순은 우선 현 여권 결속강화와 함께 2월 임시국회에서의 타협정치의 결과를 보면서 그리고 지방의회선거 대비과정에서의 민주ㆍ공화당의 움직임을 종합평가한 뒤 「결심」을 하는 것이 아닐까 관측된다. 정당대표의 북한접촉ㆍ방문문제는 김대중총재의요청에 노대통령이 「긍정적 검토」 의사표시를 함으로써 주목을 끌었다. 김대중총재가 이 문제에 대해 이니셔티브를 쥐고 적극적인 태도를 나타낸 데 비해 김영삼ㆍ김종필총재는 「신중한 대응」을 촉구함으로써 제동을 거는 입장을 취했다. 평민당측은 정당대표 파북문제를 노대통령이 양해,수용했다고 발표한 반면 청와대측은 야당총재의 제의에 대해 『정부가 승인하고 협조하는 바탕위에서 검토하겠다』는 일반론적 답변을 한 것이라고 말해 「발표의 뉘앙스」에 차이를 주게 했다. 여하튼 김대중총재의 이같은 제의의 배경에는 ▲통일논의의 주도권 장악 ▲차기 대권경쟁에서의 유리한 고지 선점 ▲공안정국에서 입은 「상처」 치유 ▲보안법 개폐의 당위성 확보 ▲정계개편 정국의 전환 등 다목적용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정치적 접촉면에서 사실상 교착상태에 있는 남북관계의 어떤 돌파구를 찾고 정부의 대북 개방화정책에 보완적인 기여를 한다는 순수한 측면의 의의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평민당 대표로서 김대중총재의 방북을 가상해 볼 때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을 고려한다면 그 실현성은 매우 불투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얘기한 「남북 최고위급당국자와 정당수뇌 협상」이 노리는 대남 통일논의 혼란,「분할 원격조정」에 그대로 이용될 우려가 있고 현재의 남북한관계나 여건이 과거 서독의 브란트가 동독을 방문했던 배경과 상황이 전혀 다르며 자칫 대권경쟁자들의 경쟁적인 북한방문을 불러 정부의 통일정책에 혼선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대표의 파북문제는 앞으로 있을 일련의 남북대화 결과와 「자유왕래」등에 따른 노대통령의 단계적인 조치제의에 대한 북측의 반응을 종합검토한 뒤에야 성사여부가 판가름날 것 같다. 이번 청와대 개별연쇄회담은 앞으로의 정계개편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정치에 대해 국민들이 다소나마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면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 수금한 돈 1억 횡령/술도매점 사원 구속

    서울 서부경찰서는 10일 권혜숙씨(30ㆍ여ㆍ서울 강서구 화곡3동 1016)를 사문서위조 및 횡령혐의로 구속했다. 권씨는 82년부터 주류도매상인 서울 은평구 응암동 88의11 대림종합상사(대표 문형식ㆍ56)에서 경리사원으로 일하면서 88년2월부터 89년3월까지 영업사원들이 수금해 온 돈을 입금전표와 경리장부에서 누락시키거나 변조하는 수법으로 모두 1억여원을 가로채 온 혐의를 받고있다. 권씨는 88년도 연말총결산에서 횡령사실이 드러나자 9개월여동안 도망다니다 회사측의 추적으로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 맥주 도매값 경쟁 불가피/공정거래위,“판매가 담합 시정” 명령

    ◎삼성카드등 5개사도 제재 공정거래위원회는 9일 대한주류도매업중앙회 서울지회가 작년 4월 맥주출고가격 인상때 도매업자의 마진율을 담합으로 결정한데 대해 이를 즉시 중지하고 결의사항을 파기토록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또 시정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이같은 사실을 회원업체에 서면통보하고 중앙일간지에 광고문을 게재토록 지시했다. 주류도매업 서울지회는 작년 4월20일부터 맥주의 제조장 출고가격이 5.94% 인상됨에 따라 도매마진율을 일반소매점용 맥주의 경우 종전과 같은 10%를 유지토록 하고 유흥음식점용 맥주는 종전의 11.8%에서 15%로 인상 적용토록 결의,서울시내 77개 회원업체를 지도하는등 가격담합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이같은 조치에 따라 앞으로 맥주가격이 자율화되어 맥주도매업자의 판매가격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주류도매업중앙회 서울지회의 가격담합으로 일반소매점용 맥주의 도매가격이 한상자(5백㎖들이 20병)당 종전 1만5백79원에서 1만1천2백8원으로,유흥음식점용은한상자(6백40㎖들이 20병)당 종전 1만3천3백62원에서 1만4천5백63원으로 일률적으로 인상됐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또 삼성신용카드㈜가 작년 6월15일부터 1개월간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자사카드회원에게 경품을 제공하면서 경품가격한도와 실시기간을 초과한 사실과 비누제조업체인 옥비㈜가 작년 6월부터 일반소비자에게 현상경품행사를 실시하면서 경품가격한도를 초과한 사실을 밝혀내 이를 시정토록 명령하고 중앙일간지에 위반내용을 공표토록 조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밖에 대우 HMS,기아정밀,한국샤프등 3개 회사가 각각 10개의 수급사업자와 하도급거래를 하면서 어음할인료를 지급하지 않은데 대해 이를 시정토록 조치했다.
  • 민주ㆍ공화총재 「공동선언」의 파장

    ◎정계개편/논의는 무성 고빗길 “첩첩”/현구도 타파엔 일치… 방법론엔 시각차/평민ㆍ민주 소장파 통합추진이 변수/민정의 대응방법따라 가닥 잡힐 듯 정계개편작업은 과연 어디까지 추진되고 있는가. 정계개편과 관련,새해들어 정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움직임은 수없이 많으나 크게 가닥을 잡아 분류해보면 대체로 4가지 방향인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가장 모양이 활발하고 구체적 진전상을 보이는 것은 민주ㆍ공화 양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연합세력 구축 움직임이다. 민주당 김영삼총재의 「지자제전 정계개편」발언을 계기로 급속히 수면위로 떠오른 이 움직임은 합당 추진설로 받아들여지면서 지난 6일의 YS­JP 골프회동을 거친 후 한결 설득력을 갖게된 느낌이다. 그리고 평민ㆍ민주 양당내의 일부 중진및 소장파가 추진하는 야권 통합세력과 정국을 민정당과 평민당이 제휴하여 끌고나가야 한다는 주장등이 정계개편의 또다른 두갈래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자는 조직및 세력화 면에서 정계개편을 주도할 수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미흡하며 후자는 막후에서 은밀히 거론되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이 민정당의 대응으로 아직 관망의 단계를 넘어선 것 같지 않으나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대세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정계개편과 관련한 정치권내의 다양한 움직임을 점검해 본다. ○…민주ㆍ공화 양당주도의 정계개편과 관련,김영삼 김종필 두 총재의 입을 통해 나온 발언중 현재까지 가장 진전된 것은 6일 골프회동후 『올해에 있을 지자제선거를 앞두고 정계개편을 추진함에 있어 종래의 우정과 소신의 협력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발전시키겠다』고 한 공동발표문이 그것이다. 두당이 정계개편 추진에서 공동보조를 취하겠다고 공식확인한 이 발표문은 지난 4일 방송인터뷰에서 민주당 김영삼총재가 『지자제전 정계개편을 하겠다』고 한데 대해 이를 민주ㆍ공화 합당추진으로 받아들이는 민주당내 해석을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해석은 민주당내에서 평민당과의 통합 즉 고전적 의미의 야권통합을 추진하는 일부 중진및 소장파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평민당ㆍ무소속내의 야권통합 추진파들을 자극,정계개편논의를 보다 구체적이고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ㆍ공화 양당의 두 김총재 측근들은 『YS와 JP의 구상은 궁지모면의 미봉책 차원이 아니라 새정치 질서를 구축하는 보다 근본적이고 폭넓은 차원의 구상』이라며 민주ㆍ공화 합당이 아닌 보수대연합이 목표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앞으로의 정치가 민주대 반민주의 구도아래서 여야가 비타협적 투쟁을 벌이는 후진형이 아닌 각 정파가 나름대로의 정책을 갖고 국민에 호소하는 선진형이 돼야 한다는 데 YS와 JP 양자의 의견이 일치하고 이같은 선진형 정치에 알맞은 정계개편을 추진하는 것이 두 김총재의 의중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또 두 김총재가 자신들의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민정당과 재야를 망라한 모든 정치권내의 건전보수세력을 접촉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김영삼총재의 측근이 교수등 학계인사,장관출신등 비교적 명망있는 구테크노크래트들을 접촉하고 있기도 하다. 김영삼총재측은 또 민정당 박준규 전대표가 정계개편과 관련,「민정당을 해체할 수도 있다」고 한 발언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보수연합구상도 역시 민주당내의 반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민주당내의 비주류 중진인사는 YS와 JP의 보수연합구상을 수용,또는 추종하는 민정ㆍ민주ㆍ공화의원이 모이더라도 ▲평민당 ▲김대중ㆍ김영삼 퇴진을 주장하는 소장파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민정ㆍ민주ㆍ공화의원들이 남음으로써 신4당 체제를 구성하는 결과가 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6일 골프회동에서 이뤄진 YS­JP의 「소신과 우정」의 정계개편협력공동선언을 정가 일각에서는 양당통합 또는 합당의 1단계 선언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이날 합의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동상이몽의 양총재의 정국구도구상이나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속셈과 당내 속사정 등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합당에 이르기까지는 산넘어 산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보혁구도에 의한 정계개편추진과 4당체제 타파라는 기본원칙에는 양김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으나 양당의 합당 또는 통합과 이에 따른 충격파로 양당밖의 보수세력을 흡수하려는 방식(YS)과 내각제를 전제로 보수세력 결집을 위한 분위기 조성용으로 온건보수세력끼리의 결속력을 과시하려는 구도(JP)사이에는 엄청난 시각차가 상존하고 있다. 요컨대 민주당이 특정시한까지 공화당과의 「합당」을 상정하고 있다면 공화당은 인위적인 양당통합 차원이 아닌 장기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과정으로서의 민주당과의 협력 또는 결속에 중점을 두고 있다. ○…현행 4당구조의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는 평민당 지도부는 민주­공화 양당의 합당움직임에 깊은 우려와 함께 예의 주시하는 한편 최근 평민연소속 소장의원들과 민주당내 소장의원들 사이에 불붙고 있는 평민­민주 통합론에 대한 조기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평민당내 재야입당과 모임인 평민연은 지난 4일 6시간의 심야운영회의에서 당내 야권통합파인 이상수ㆍ이해찬의원으로부터 통합의 당위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행동통일을 위한 토론을 벌인 바 있다. 이날회의에서 김대중총재의 구심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작용하는 호남출신 의원들이 통합의 당위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차기 공천을 의식,소극적 반응을 보여 행동통일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당공식기구에서 통합론을 공식제기키로 의견을 모았다. 또 평민연내 서울에 지역구를 둔 이상수ㆍ이해찬ㆍ이철용ㆍ양성우의원 등은 민주당내 통합론자들인 장석화ㆍ김정길ㆍ노무현의원 등과 수시로 접촉을 갖고 양당별로 통합동조자에 대한 서명작업에 들어 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통합파중 일부는 김대중­김영삼 양총재가 끝내 평민­민주 통합구도에 불응,지난 대통령선거에서처럼 「함께 나와서 함께 망하는길」을 택할 경우 별도 교섭단체구성도 불사할 태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계개편 논의는 민주ㆍ공화 양당이 주축이 돼 더욱 복잡하고 다단계의 양상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나 그 결실을 얻는데까지는 상당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우선 민주ㆍ공화 양당관계의 발전도 지자제선거에 앞서 양당의 연합공천 모색등 정치연합 형태로의 발전정도에서 소강상태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주당내부의 복잡한 사정으로 무리한 합당을 추진할 경우 당의 분열이라는 악수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데다 공화당역시 자신들의 위상과 지분을 포기하면서 합당에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리 모든 카드를 내보인 YS구상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YS의 당내 위상만 더욱 쇠락하게 되고 아직도 민정당과의 연합 미련을 버리지못하는 JP의 주가를 더욱 높일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결국 정계개편은 좀더 무성한 논의과정을 겪은 뒤 정당 또는 집단간의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될 때 구체화 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 정동성 원내총무(민정 신임 두 당직자 취임 일성)

    ◎“대야 대화 활성화ㆍ민생에 역점 사안 따라선 정책연합도 고려” 구공화당 시절 10대 국회에 진출한 이래 내리 4선을 기록하며 국회 교체ㆍ상공ㆍ내무위원장을 역임한 경력을 배경으로 원내 사령탑에 발탁된 정동성 민정당총무는 6일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정치권이 반성할 점이 많았던 만큼 국민을 위한 국회가 되도록 원만한 여야대화에 앞장서겠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최근 정호용의원 사퇴반대 서명운동에 앞장선 것을 비롯,노태우대통령과의 면담에서도 「월계수회 정리」 「친인척 배제」 등을 건의해 당권파와는 한때 소원한 관계였으나 곧이어 박준규 전대표위원ㆍ박철언정무1장관 등 신주류 세력과 화해한 것으로 알려진 정총무는 『민정당내 사조직과 파벌은 사실상 없으며 한시대의 마무리 단계에서 국민들에게 단합되지 못한 모습으로 비춰진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당내 결속을 강조했다. ―향후 정계개편에 대한 의견은. 『4당체제하에 국민을 안심시키는 국정을 펼치기 위해서는 정책면에서 생각을 같이하는 방향이 모색돼야 한다.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국정을 펼치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권의 안정이 절대 필요하며 정치 안정유지 원칙이 지켜지는 가운데 시대상황에 대처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야당과의 대화는. 『야3당 총무들과도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만큼 대화정치에 역점을 두겠다』 ―국회 내무위원장직은. 『운영위원장 선출 과정을 거쳐 내무위원장직 사퇴절차를 밟겠다』 ―당내에 5공파로 분류하는 시각도 있는데.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특정파벌은 없다. 이런 시각을 염두에 두지 않고 단합과 화합을 통해 국민에게 인정받도록 하겠다』 경희대학생회장및 전국대학생 총연합회회장을 지내며 4ㆍ19 주역으로 참여했고 3공 당시 차지철청와대경호실장과의 인연으로 10대 때 차씨의 고향인 이천에서 출마,정계에 투신한 정총무는 10ㆍ26 직후 차씨의 빈소를 홀로 지켜 의리파로 불리기도 했다. 11대 때 총재비서실장을 거친 정총무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국회증언 때는 야당의원들의 육탄공격을 막는등 밀착 경호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5공 시절에는 대야 강성발언에 앞장섰고 당내에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뚝심형.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당내에서는 김수환추기경과의 대화창구로 자처할 정도. 부인 전신순여사(48)와 2남1녀.
  • 민정당 새 지도부의 과제(사설)

    집권당 내부의 분열상이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져 보이고 정계 전체로 보아서도 개편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민정당은 주요 당직의 개편을 단행했다. 따라서 민정당의 새 지도부는 당내 결속을 강화하고 정계개편이 정치의 발전과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책임을 지고 출범했다고 하겠다. 민정당은 지난 연말 정호용 전의원과 박준규 전대표위원의 잇단 사퇴 파문을 통해 당내 파벌간의 분쟁양상을 국민들에게 극명하게 내보였다. TK다,SK다 하는 데서 더욱 분화되어 신주류,정호용씨 지지파,5공파 등등 물고 물리는 혼전상을 연출했다. 하마평에 오르고 있던 인물에 일부 당직자들이 노골적인 거부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같은 반목과 알력이 심화될 때 집권당으로서 민정당의 기능은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민정당의 단합과 사기가 중요한 시점이다. 우선 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의 임기가 3년 남짓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지난 2년간 5공청산 문제 등으로 인한 정치의 불안정으로 평가받을 만한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집권 중반기부터는 참다운 정치와 행정을 이끌어나가도록 민정당이 거당적으로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또 소용돌이치는 정계개편의 물결을 유리하게 헤치고 새로운 정국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먼저 내부가 튼튼해야 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새 지도부는 스스로 단합된 모습을 보이며 빠른 시일내에 파벌간의 갈등을 순화시키고 새로운 화합 분위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우선 역량을 쏟아야 할 것이다. 노총재의 이번 당직개편은 분명히 이런 점에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추진력과 통솔력이 돋보이며 당내 파벌에 무관한 박태준대표위원의 발탁이라든가,그동안 거대한 세력이 되어 스스로 분파작용을 일으킨 TK세를 피해 중부지역 출신의 박준병총장과 정동성총무를 기용한 것 등은 화합을 위한 포석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같은 인사만으로는 부족하며 실체로서 자리잡고 있는 파벌들이 고르게 당운영에 어떤 형식으로든 참여토록 하는 제도적 고려가 필요하다. 또 지자제 실시와 더불어 당내 민주화에 초점을 맞춰 당의 하부조직에서부터 중앙당의 선출직에까지 경선제를 도입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새 지도부는 또 당면한 정계개편 문제에 적극 대응해나가야 한다. 여소야대의 4당구조는 지난 2년간의 검증을 통해 정치불안을 가중시키는 구조적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경제ㆍ사회적 안정을 위해서도 정치의 안정이 절대 필요하다면 민정당은 지금 정계에서 일고 있는 개편의 기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 목표는 원내 안정세력의 구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야당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일을 도모하고 있는 상황을 안이하게 쳐다만 보고 있다가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아울러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민주화와 경제및 민생의 안정에 결정적 기여를 해나가야 한다. 이같이 중요한 일들을 위해서는 전력투구가 요구된다. 따라서 박대표의 포철회장 겸직은 무리가 아닐까. 민정당의 분발을 기대해본다.
  • 90년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사설)

    우리들의 90년대는 대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미래가 항상 그러하듯이 90년대 우리의 안팎정세도 예측하기 어려운 유동성과 불확실성의 안개속에 가려 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기에 시작된 역사적 변화추세가 이미 하나의 큰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보면 한반도의 오늘과 미래의 전망은 가능할 것이다. 80년대는 실로 격동의 시기였다. 우리는 그 기간 사회의 모든 것과 연결되는 많은 것을 실험했다. 과도기의 진통에 이어서 분권화 자율화 민주화의 구도로 사회구조의 개편을 가져다준 연대가 80년대였다. 90년대는 그러한 개편구조가 안정적으로 균형을 이루며 사회적 통합의 기반으로 정착되는 시대이어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목표가 확연하고 과정이 진지하며 전망이 투명해야 할 과제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가 그것이다. ○능동적인 자결의지의 구현 80년대 한반도는 전반적으로 겨울이었다. 그러나 국제정세는 가히 기적으로 불릴 만큼 평화공존과 탈이념,화해의 방향으로 급전되었다. 이념적인 양극 대립,핵을 둘러싼 공포의 균형상태는 일변하여 이념보다는 국가이익 우선의 실용주의가 국제관계에 새로운 동기로 등장하였다. 미소간의 화해와 군축협상이 새 국제질서를 주도했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은 동구권 개혁의 물결을 유도했다. 그 해빙의 와중에서 왜 한반도는 겨울이었는가. 아직도 이데올로기 위주의 전후 냉전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한반도의 남북한이 탈냉전의 시대적 조류에 유연한 대응을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한반도의 대결구조는 근본적으로 전후 미소 양극체제의 산물이었다. 대결구조의 해소와 분단의 극복이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문제이면서 그것이 미소를 비롯한 중국ㆍ일본 등 주변세력들의 이해관계와 그들 국가전략에 의해 해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자결의식의 결여가 80년대 한반도의 겨울을 있게 한 원인이었다. 한반도의 남북한은 이제 과감한 변혁과 민족적 화해노력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국제질서의 재편은 남의 일이 아니다. 상호 체제이념의 문제,군축시비 등 소비적 논란으로 지새울 수는 없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그러하다. 향상된 국력과 국제적 지위,민주화 개혁성과를 이제 민족대단결의 분단극복의지로 한 데 모아야 할 것이다. ○더이상 냉전의 고도일 수 없다. 국제적 긴장완화에 따라 한반도의 전쟁위험성은 다소 줄었다고 할 수 있다. 또 89년에는 사상 가장 잦았던 대화를 통해 남북한간 교류의 에너지와 신뢰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축적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내부적으로 그 성장과 변화에 있어 큰 차이를 드러냈다. 우리가 6공화국에 들어서서 민주화를 지향하여 폭넓은 개방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통일논의의 완전한 개방을 이룬 반면 북한은 폐쇄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동구공산권의 눈부신 개혁과 개방을 외면하면서 오히려 구체제의 족쇄를 풀지 못하고 있다. 구태의연한 이념과 체제의 틀속에서 안주하며 민족적인 화해와 국제적인 탈냉전의 논리를 거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북방정책은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 6ㆍ25 침략전쟁을 공모했던 공산종주국 소련까지도 우리와 영사관계를맺고 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르게 동구권국가들과는 공식수교관계를 이룩했다. 동족전쟁의 경험과 한반도 특수상황에 비추어 그동안 금기의 영역에 두었던 남북한 군축문제를 우리 스스로 공식거론하기에 이른 것도 군축과 화해로 상징되는 새 국제질서에 힘입은 것이었다. 한반도의 남북한은 이제 더이상 냉전의 고도로 남아 있어서는 안된다. ○평화와 통일의 선결과제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토론의 주제는 민주화와 통일의 문제이다.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선결과제일 것인가라는 물음은 무의미하다. 그 두 주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일관하여 표리관계를 이루며 끊임없이 제기되고 토의되어야 하는 불가분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는 이제 실체로서 다가서야 한다. 남북한을 통튼 전민족의 실현가능한 목표로서 제시돼야 한다. 특히 우리는 80년대 전반을 통해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열의를 가져온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90년대 우리의 궁극적 관심의 과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95년이면 「분단반세기」가 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민족분단의 한과 울분은 강산이 다섯번 변하는 세월에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민족분단 50년의 그 시점까지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어떤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민족적 여망과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이다. 또 그 시기까지에는 북한에서 김일성 이후의 「승계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이 동토에서의 민주화 개혁으로 연결될 경우 이 땅에서 인위적인 분단의 장벽을 허물자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90년대의 남북한은 전쟁위험론따위 냉전적 유산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흡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의 공유가 선행돼야 한다. 상호불신의 해소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나 다른 쪽에 대해 체제사활의 위협적 존재가 되지 않아야 한다. 90년대의 남북한은 그렇게 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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