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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후사코(房子) ‘짱’/송한수 국제부 차장

    일본 아가씨가 바다 건너 시집을 왔습니다. 각시에게 홀린 사나이는 사진기자로 뛰는 막내 S군이랍니다. 예식장엔 살랑살랑 사랑이 넘실댔습니다.‘결혼식이 너무 밋밋하잖아.’라고 불쑥불쑥 외친 악동(?)도 있었지만 다들 웃어 넘겼답니다. 큰 인연에, 큰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는 맘이란 것을 금세 알아차린 눈길이었습니다. 신랑이 이국의 장인께 넙죽 큰절을 올립니다. 어른은 벌떡 일어나더니 그 팔을 붙들어 말립니다. 우리 예절로는 가장 큰 고마움의 뜻이지만, 다른 나라에선 영 아닐 수도 있거든요. 알록달록 한복을 차려입은 신부가 딱 우리네 누이인 듯합니다. 축하한다며 ‘원샷’ 건넨 술을 들이켜더니 잔을 머리 위에 엎어 보여 줍니다.“단지 남녀 사이도 근원이 달라 서로 알기 힘든데, 나라까지 다르니 더 많은 이해가 절실할 텝니다.”주례 말씀입니다. 국경 너머 사랑을 일궈낸 한 쌍이 금쪽같은 오늘을 곱씹으면서 자랑거리를 쏟아내리라, 어쨌든 미더워진 얼굴이었지요. 송한수 국제부 차장 onekor@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5)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 하유설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5)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 하유설 신부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와 천주교 중앙협의회 바로 옆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50대부터 70∼80대의 은퇴한 노사제까지,10명의 미국인 신부와 선교사가 함께 살며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이색지대이다. 이곳에서 비교적 젊은 축에 드는 하유설(63·본명 펠트마이어 러셀) 신부는 그 중에서도 독특한 사목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방인. 한국을 택해 사는 대부분의 외국인 사제들은 사목지로 한국을 정한 뒤 한국에 정착하곤 한다. 하지만 하 신부는 한국에 봉사단원으로 왔다가 사제가 될 결심을 한 뒤 한국에서 노동자, 소외된 사람들과 부대끼며 낮은 성소(聖召)를 고집해 살아가는 특별한 인물이다. ●1969년 경북대 영어강사로 활동… 한국과의 첫 인연 천주교 사제와 신자들이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성소)을 되새긴다는 날인 성소주일을 사흘 앞둔 지난 10일 오후 중곡동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지부. 사제와 신자의 은밀한 영성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인 아담한 방에서 기자를 맞은 하유설 신부는 천주교의 의미있는 성소주일 때에 맞춰 자신을 찾아주었다며 성소의 의미를 먼저 들려주었다.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수도자와 사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제 역할과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 안은 물론 가정과 사회에서 그 부르심과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큰 뜻을 갖고 있지요.”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모태신앙을 받고 자라난 하신부는 신앙에 충실하면서도 사제의 길을 걸을 생각은 갖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하느님의 부름에 선뜻 응해 종신서원을 한채 높은 자리가 아닌 낮은 성소를 고집하며 한국에 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경북대 사범대 영어 강사 생활이 한국과의 첫 인연.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 입대를 해야 했지만 “영성과 신앙에 맞지않는 폭력 전쟁에 몸을 담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일종의 대체복무인 평화봉사단(Peace Corps) 활동을 자원해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경북대에서 영어 강사로 3년을 살고 서울의 옛 대한교육회관 자리인 평화봉사단 사무실로 올라와 미국에서 온 봉사단원들에게 한국문화며 영어교수법을 가르치면서 한국에 빠져들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 그냥 좋고 한국의 문화가 마치 내 고향의 그것인양 자연스럽게 여겨져 “전생에 한국인이 아니었느냐.”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한국 말과 한국의 생활이 나에게 잘 맞는다. ´는 생각이 더해갈 무렵 한 성령쇄신기도회에서 만난 선교사와의 대화 끝에 불현듯 선교사로 한국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중곡동 메리놀 외방전교회를 찾아가 입회했고 본격적인 신학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 신학대학원엘 들어갔다. 2년간 공부를 마치고 1978년 선교사 실습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성남의 한 가정 집에서 젊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간학교(야학)를 운영하면서 그의 독특한 성소가 시작되었다.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혹사당하는 10∼20대의 어린 노동자들이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주었어요.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큰 위안이었던 시절이었지요. 노동자, 가난한 사람들의 힘겨운 삶과 아픔이 나와 주님의 관계에 치우친 전통의 신앙관에서 벗어나게 해준 셈이지요.” ●“소록도 한센병 환자와의 만남 잊을 수 없어” ‘노동자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서 예수를 발견한다. ´는 그의 신앙 길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것은 그 무렵 소록도에서 만난 한센병 환자들과 수녀. 한센병 환자들을 돕는 천주교 구라회를 따라 소록도엘 갔는데 한 수녀가 한센병 환자들이 모인 가운데 종신서원을 하는 것이었다. “미사 도중에 주례신부가 옆 사람 손을 잡고 기도하자는 말을 하자 양 옆의 중증 한센병 환자들이 물끄러미 쳐다보며 손을 내미는 것이었어요. 두려운 마음에 고민하다가 엉겹결에 손을 잡고 기도를 마쳤는데….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2년간의 선교사 실습을 마친 뒤 미국에 다시 들어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아 주저없이 한국을 지원, 성남 은행동에서 본격적인 노동사목에 매달렸다. 조그만 전셋집에 살면서 노동자며 가난한 이웃들의 집을 찾아가 위로하고 영어공부도 시키는 생활을 9년간이나 했다. 그러던 중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 본부로부터 신학생 지도신부 소임을 받아 시카고 가톨릭신학대학원에서 4년간 살다가 들어와 한국에 정착한 게 1995년. ‘한국에 살겠다. ´는 굳은 서원을 했으니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제 신분으로 여성의 아픔 보듬는데 앞장 서울 미아리에서 파리외방전교회 신부와 함께 노동 사목을 이어가면서 여성들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1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1인시위에도 참여했다. ‘모성보호 관련법의 임시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시위였다. “사제로서 여성의 아픔을 알고 돕는게 당연하지요. 가부장제의 권위적 분위기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과 성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자는 생각에 1인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남성도 가부장제의 피해자. “남자는 울어선 안 되고 상처와 약점을 드러내서도 안 된다는 풍토이니 남성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피해자로서의 남성 입장을 이해할 때 가정에서의 양성평등이 앞당겨질 수 있을 것입니다.” 양성평등에 눈뜨게 된 것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썩 좋지 않았던 가정사도 한 몫했다. 시카고 신학대학원의 신학생 지도신부 시절 성탄절 밤, 오랜만에 집을 찾아 만난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를 결코 잊을 수 없다. 무뚝뚝하고 권위주의적이었던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 남모르게 기도를 해왔고 걱정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곤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한 달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중곡동 집으로 옮겨온 것은 지난 2001년. 7년째 이곳에서 찾아오는 신자들의 영적 상담이며 피정 지도, 강의 등 매일매일 바쁜 일정에 쫓겨 산다. 경기도 북부지역의 한센병 병력자들에 대한 이동진료를 하는 천주교 구라회 회장도 맡고 있다. 요즘 하 신부가 가장 힘을 쏟고 있는 부분은 ‘모든 사람과 자연이 동반자로 더불어 살자. ´는 파트너십. 수도원이나 사회복지관, 신자들 모임 등 가리지 않고 찾아가 강의도 하고 대화도 나눈다. 서울 혜화동에 평신도 3명과 함께 파트너십연구소도 차려 모임을 이끌고 있다. “내 인생의 학교이자 제2의 고향인 한국”에서 여생을 바쳐야 할 길은 역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살피는 것.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사제가 아닌, 낮은 데서 섬기는 파트너요 동반자이다. 자기자신에 빠져사는 도취에서 벗어나 사랑과 연민의 의식을 끊임없이 넓혀가는 성직자로 남고 싶단다. “신앙과 선교는 주고 받는 것입니다. 나와 남이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내고 발견하는 것이지요. 내가 선교사로 한국에 살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차이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참다운 신앙을 배우기 위함이지요.”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MB 없어도 청와대는 쉬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미국 순방길에 오르면서 청와대도 비상근무체제로 돌입했다. 청와대는 이날 대통령의 부재에 따른 국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직원들에게 비상근무 지침을 내렸다. 류우익 대통령실장은 순방에 동행하지 않고 청와대에 남아 이 대통령의 순방기간 동안 청와대 살림을 지휘 감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류 실장은 지난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순방기간 동안 청와대 직원들이 바짝 정신을 차리고 비상 근무해줄 것을 각별히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15일부터 21일까지 직원들은 순환·교대근무를 통해 ‘24시간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지난 주말에는 청와대 전 직원을 대상으로 비상연락망을 2∼3차례 점검하고 자동응답시스템(ARS)을 점검하는 등 비상체제 근무에 만전을 기했다. 이 대통령은 14일 한승수 국무총리 및 수석비서관들과 오찬을 갖고 빈틈 없는 국정 수행을 거듭 당부하는 한편, 오전 한 총리로부터 주례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각종 민생현안 등을 잘 챙겨줄 것을 주문했다.한편 국무총리실은 이 대통령 순방기간 공무원 복무실태 및 동향 등 공직기강을 집중 점검한다. 이와는 별도로 감사원도 중앙부처 및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공직기강 특별점검에 나선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한미동맹 복원 ‘출발’

    한미동맹 복원 ‘출발’

    이명박(얼굴) 대통령이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15일 출국한다.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인 이번 순방에서 이 대통령은 19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동맹 강화와 북핵 해결을 위한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한다. 부시 대통령의 휴양지인 캠프데이비드에서 개최될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지난 참여정부 시절 순탄치 않았던 양국 동맹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복원하는 다각도의 방안을 협의한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의회 비준과 미국이 요청한 아프가니스탄 한국군 재파병,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미사일방어(MD) 협력, 환경·기후·에너지 문제, 국제 무대에서의 협조체제 구축 등이 ‘한·미 군사동맹 미래비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중점 논의될 전망이어서 이명박 정부에서의 한·미 군사동맹이 어떤 형태로 재정립될지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뉴욕 증권거래소 방문과 미국 경제인 주요인사 초청 오찬, 한국 투자설명회, 미 상공회의소 주최 CEO 라운드 테이블, 미 상의 및 한·미 재계회의 등 양국간 경제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실용외교 행보에 나설 계획이다. 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이어 상·하원 지도부, 딕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수전 슈워브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잇달아 만나 양국간 협력방안을 모색한다. 미국 방문에 이어 이 대통령은 20일 일본을 방문,1박2일간의 공식 방문 일정에 나선다. 이 대통령은 21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정상간 셔틀외교 복원과 북핵 공조 방안, 부품·소재 분야 협력방안 등을 논의한다. 이어 일본 왕궁에서 아키히토 일왕 내외와 만나 환담한 뒤 일본 TBS 주최의 ‘일본 국민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양국간 이해 증진에도 적극 나선다. 이 대통령은 출국에 앞서 14일 한승수 국무총리로부터 주례보고를 받은 뒤 오찬을 함께 하며 순방 기간 국정운영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미·일 순방을 마친 뒤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지도급 인사들을 초청, 순방 결과를 설명하고 국정 운영과 관련한 조언을 들을 계획이라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개그맨 박명수 의사와 결혼

    개그맨 박명수(38)씨가 8세 연하의 의사 한수민씨와 6일 오후 5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철환 OBS경인TV 사장이 주례를 맡고, 개그맨 유재석씨가 사회자로 나섰다. 강호동, 임하룡씨 등 박씨의 동료 선후배 연예인들이 대거 참석해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했으며, 가수 성시경씨가 축가를 불렀다. 특히 원태연 시인이 가사를 쓰고 미누키가 작곡한 곡을 박씨가 직접 부른 ‘바보에게, 바보가’란 노래가 결혼식 전 배경음악으로 공개돼 하객들의 귀를 사로잡기도 했다.박명수-한수민 커플은 2006년 여름에 만나 교제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무한도전’ 등 자신의 출연 프로그램에서 교제 사실을 공공연히 밝혀 왔으며, 한씨는 현재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피부과의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이상득 “출마 강행” 권력투쟁 기로

    이상득 “출마 강행” 권력투쟁 기로

    50여명의 한나라당 총선 출마자들로부터 불출마 압력을 받은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출마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24일 밝혔다. 이재오 의원은 금명간 불출마 여부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날 당 지도부 공격을 자제했고 출마자들의 추가적인 집단행동도 나오지 않으면서, 공천 갈등으로 촉발된 한나라당의 내홍은 하루 만에 불안한 소강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경북 공천 11명 “李부의장 지지” 그러나 이 부의장의 불출마를 가장 먼저 요구했던 남경필 의원이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내각 인사 실패의 장본인으로 지목하고 나섬에 따라 여권의 갈등이 또다시 확산될지 주목된다. 이 부의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나는 중앙정치보다 포항 지역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지역 발전을 위해 출마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예정대로 25일 후보 등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석·정종복·이철우·이재순·정희수·손승태씨 등 경북지역 공천자 11명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 부의장 공천반납 주장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이 부의장을 지지했다. 강재섭 대표도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이 부의장 거취에 대해 “본인이 슬기롭게 판단해 주시리라 본다.”면서도 “공천심사위와 최고위에서 이미 의결해서 내일 본인이 등록하는 데, 문제 제기가 너무 늦었다.”고 출마론에 힘을 실었다. 반면 이재오 의원은 선거운동을 중단한 채 서울 근교에 머물면서 불출마 여부를 숙고했다. 공성진·진수희·차명진 의원 등 이 부의장 불출마 촉구 기자회견을 주도했던 친(親)이명박계 소장파 의원들도 시내 모처에 모여 ‘이상득·이재오 동반 불출마론’을 포함한 대책을 논의했다. ●MB·강대표 회동 총선 이후로 이런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과 강 대표는 25일 오찬을 겸한 주례회동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당내 사정을 감안, 총선 이후로 회동을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청와대가 전권을 갖고 이 부의장이라는 대통령 형님의 뜻을 팔면서 내각 인사를 잘못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면서 “청와대에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남 의원은 전날 출마자들이 박영준 비서관 등과 이를 방관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동시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것들이 다 포함돼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박 비서관은 이 부의장의 보좌관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서울시장 때부터 보필해 온 최측근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부고]‘포콜라레 운동’ 창시자 伊 루빅 여사 14일 타계

    [부고]‘포콜라레 운동’ 창시자 伊 루빅 여사 14일 타계

    지난 1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88세를 일기로 타계한 ‘포콜라레’(Focolare·벽난로) 운동 창시자, 키아라 루빅 여사의 장례미사가 18일 오후7시 명동성당에서 유흥식 주교의 주례로 열린다. 이날 오후5시 대구 남산동 성유스티노 신학교 대성당에서도 장례미사가 있다. 1920년 토렌토 태생인 루빅 여사는 대학 재학 중인 1943년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것을 목격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며 살자는 목적으로 포콜라레 운동을 창시, 지금까지 이 운동을 이끌어 왔다. 한국에선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는 테레사 수녀와 함께 ‘살아 있는 성녀’로 통한다. 평신도 사도직 단체 ‘포콜라레’에는 현재 약 200개국 600만명의 회원이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1969년 들어왔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李정부 당·정·청 공조 ‘가닥’

    李정부 당·정·청 공조 ‘가닥’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다음 주부터 2주에 한 차례씩 만난다. 정권교체와 함께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정례회동이 5년 만에 복원되는 셈이다. 한나라당 당헌에 대통령의 당직 겸무 금지 등 당·정 분리 원칙이 명시돼 있지만 이번 당·청 관계 강화를 통해 사실상 이 대통령의 직할체제가 구축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7일 “책임정치 구현과 정책 협의를 강화하기 위해 대통령과 당 대표간 정례회동을 격주로 갖는 등 당·정·청 관계를 재설정하기로 당·청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과 강 대표는 다음 주 중 첫 회동을 갖기로 하고 일정 조율에 나섰다. 양측이 이날 마련한 새로운 당·정·청 관계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세 가지 축으로 이뤄진다. 대통령-당 대표 격주회동 외에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주례회동이 이뤄진다.“매주 화요일 국무회의 직후 한 총리의 별도 주례보고가 이뤄질 것”이라고 이 대변인은 말했다. 당과 정부 간에는 고위당정협의회가 월 1회 열린다. 당 대표와 국무총리가 주관한다. 이와 별도로 당 정책위의장-정부 장·차관의 부처별 당정회의도 두 달에 한 번씩 가동된다. 새로운 당·정·청 관계는 이전 노무현 정부 때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당·정 분리 원칙을 내세워 노 대통령과 여당 의장간 회동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2004년 6월 노 대통령이 천명한 당·청 상호분리, 불간섭주의에 따른 것으로,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간 회동이 부정기적으로 열렸을 뿐이다. 당·청 관계 강화는 이 대통령이 강조한 ‘탈(脫)여의도정치’와는 사뭇 배치되는 듯 보인다. 특히 기존의 고위당정정책조정회의를 고위당정협의회로 격상(?)한 것은 정책 차원을 넘어 정치현안에 대해서도 청와대와 당이 긴밀히 조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이 일반 당무를 제외한 정국 전반을 관장하고 조율할 여지를 열어 놓은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새로운 당·청 관계는 긴밀한 국정 공조를 위한 것으로, 지난날 당 위에 군림했던 제왕적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정무수석 부활에 이어 이번 당·청 정례회동으로 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한층 높아질 것만은 분명하다. 남은 관심은 국정원장 정례보고다. 정보왜곡 등의 폐해로 노무현 정부 때는 폐지됐으나 새 정부 들어 주 1회 국정원장의 대통령 대면보고가 부활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동관 대변인은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Seoul In] 노인 일자리 참여자 모집

    성북구(구청장 서찬교) 올해 노인일자리 515개를 마련하고 5일까지 참여자를 모집한다.60세(교육복지형)·65세(공익형) 이상 노인으로,7개월 동안 하루에 3∼4시간씩 일하고 월 20만원 안팎의 보수를 받는다. 분야는 거리환경지킴이(230명), 공익환경지킴이(170명), 홀몸노인 돕기(70명), 급식도우미(20명) 등이다. 동화구연을 하거나 결혼식 주례를 서는 일자리도 있다. 노인복지과 920-4382.
  • 1천쌍 결혼에 축의금 겨우 6만원

    1천쌍 결혼에 축의금 겨우 6만원

    지난 5월 23일 하오 1시. 서대문구 아현동「로터리」에 있는 경기공전(京畿工專) 운동장에서「통일자활개척단」(가칭) 1천71쌍 합동 결혼식이 거행되어 또하나의 세계 기록을 수립. 이 「매머드」합동결혼식에 든 비용은 총 1천8백여만원. 4천장의 청첩장을 내서 5천여명의 하객이 모였지만 축의금으로 들어온 돈은 고작 6만5백원 정. 그밖에 화환 4개와 화분 2개가 그날 들어온 물건의 전부. 따라서 이번 합동결혼식을 마련한 자활개척단(단장 金春三)에서는 1천 8백만원의 적자를 보게 된 셈. 신랑에게는 양복(춘추복) 1벌과 35원짜리 「볼펜」1자루씩. 신부에게는 흰색 한복 1벌에 속치마와 「핑크」빛 속바지1벌, 18금 금반지 반돈쭝짜리가 주어졌다. 부부 1쌍에 든 비용은 1만 2천원. 이날 결혼식에 소요된 시간은 2시간 남짓. 신부 입장하는데만도 1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특별히 초청된 경찰악대가 「웨딩 · 마치」를 1백번이나 반복 연주해서 녹초가 됐고, 먼저 입장한 신부들은 다리가 아파 그 자리에 주저 앉아 기다리기도. 신랑 신부 중에는 이미 아이까지 낳고 사는 구혼(?)인「커플」도 상당수였고 식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이 『엄마 · 아빠』를 부르며 뛰어드는 진풍경도 있었다. 주례는 당초 김현옥(金玄玉)전서울시장이 하기로 했었는데 선거법 관계로 사퇴하고 오경인(吳庚仁)전서울시교육감이 대신. <서울> [선데이서울 71년 6월 6일호 제4권 22호 통권 제 139호]
  • 사르코지-브뤼니 엘리제궁서 조촐한 결혼

    |파리 이종수특파원|‘말도 많고 탈도 많던’ 사르코지(53)-브뤼니(40) 커플이 마침내 결혼했다.지난해 12월 중순 파리 디즈니랜드에서 데이트하는 장면이 처음 공개된 뒤 한달반 만이며,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세실리아 여사와 이혼한 지 넉달 만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오전 11시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주례를 맡은 프랑수아 르벨 파리 8구 구청장이 밝혔다. 두 사람도 성명서를 내고 “오늘 아침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양가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했다.”고 결혼 사실을 확인했다. 이로써 사르코지는 프랑스 역사상 1931년 폴 두메르그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재임 중 결혼하는 대통령이 됐다. 숱한 화제를 낳았던 이 ‘세기의 결혼식’은 의외로 조용하고 은밀하게 이뤄졌다. 주례는 프랑스 전통에 따라 엘리제궁이 위치한 파리 8구의 르벨 구청장이 맡았다.그는 결혼식 직후 RTL 라디오에 “제 지역구에 사는 두 유권자(사르코지와 카를라 브뤼니)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고 유머있게 결혼 사실을 처음 밝혔다. 이어 “신부는 흰색 웨딩 드레스를 입었으며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주 매혹적이었고 신랑도 멋졌다.”고 전했다. 또 “결혼식 내내 두 사람은 아주 다정다감했고 감동적이었다.”며 “혼인 선서에 이어 결혼반지 교환과 키스 등 여느 결혼식처럼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르벨 구청장에 따르면 이날 결혼식에는 두 사람의 부모와 친지 등 각각 10여명씩 참석했다. 신랑 측 증인으로는 명품그룹인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의 고위간부인 니콜라 바지르가, 신부측 증인으로는 프라다 프랑스의 홍보담당 대표인 마틸드 아고스티넬리가 각각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번이 세 번째, 브뤼니는 두 번째 결혼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두번의 결혼을 통해 아들 셋을 두고 있다. 브뤼니는 전 남편인 철학자 라파엘 엔토벤과의 사이에 아들 한 명이 있다.●새 영부인 브뤼니는… 이탈리아계 슈퍼모델 출신의 현역 가수다. 다섯 살 때 프랑스로 건너와 미술을 공부한 뒤 모델로 데뷔했다. 최정상급 모델로 활동하다 2002년 가수로 변신, 데뷔 앨범 ‘누군가 나에게 얘기했어’가 공전의 히트를 친 뒤 인기 가수 반열에 올라 엄청난 돈을 벌었다. 남성 편력도 화려해 ‘남성 킬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공개적으로 ‘일부일처제’에 반대한다고 밝힐 정도로 자유분방하다.vielee@seoul.co.kr
  • 봉하마을 관광지 생태중심 개발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할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관광개발사업이 추진된다. 김해시는 지난해 6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의뢰한 ‘봉화산 일원 관광자원개발사업 기본계획 학술연구용역’ 결과를 21일 열린 김해시의회 주례회에 보고했다. 시가 이날 보고한 사업에는 모두 75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시는 노 대통령의 사저 앞 생가 부지 1514㎡에는 9억 8000여만원을 들여 생가 87㎡를 복원하고, 안내소와 관광객 휴식소(107㎡)를 건립하며, 마을 안길과 공터 등에 조경수를 심어 마을경관을 가꾸기로 했다. 현재 건립되고 있는 지상 2층, 연면적 365.79㎡ 규모의 봉하마을 종합복지회관을 비롯, 마을앞 광장에 마을쉼터와 숲·연못이 포함된 생태주차장 조성사업에도 6억원이 투입된다. 또 마을앞 농경지에는 각각 4억 2000만원과 6억원을 들여 1841㎡ 규모의 농기계보관소와 창고,2900㎡ 규모의 공동주차장을 조성하고,2억원을 투입해 마을앞 수로 200m를 정비키로 했다. 이밖에 봉하마을 일대의 종합경관계획을 수립하고, 화포천 생태체험시설 및 방풍림 조성 등 향후 예산을 확보, 추진할 2개 사업도 설명했다. 시는 이날 용역결과 보고 이후 세부계획을 마련해 봉화산 일대에 대한 관광자원개발사업을 벌여 나가는 한편 이 사업을 산림청이 봉하마을 주변 산림에 대해 진행 중인 ‘산림경영 모델 숲(웰빙 숲)’사업과 화포천의 생태환경복원 및 종합치수사업과도 연계해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해시는 “이번 용역결과는 대통령 생가를 복원하고 마애불 등의 역사문화자원이 산재한 봉화산과 화포천 자연습지를 연계, 특색있는 관광명소를 만들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고 밝혔다.김해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아프간에 피랍됐던 송병우·임현주씨 결혼

    아프간에 피랍됐던 송병우·임현주씨 결혼

    지난해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됐던 송병우(사진 왼쪽·34)씨와 임현주(오른쪽·33·여)씨가 지난 12일 분당 샘물교회에서 결혼했다. 결혼예배에는 친지와 교인, 직장동료 등 400여명이 참석했고, 박은조 목사가 주례를 섰다. 임씨는 미국 CBS 방송을 통해 인질 가운데 처음으로 육성이 공개됐던 여성이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기 전부터 교제했던 두 사람은 44일간의 피랍생활 중 분리 수용되기 전인 처음 4일간 서로에게 큰 힘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귀국 후에는 안양샘 병원에서 열흘 정도 함께 요양하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했다. 송씨와 임씨는 결혼식에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그분의 뒤를 따르는 믿음의 가정이 되겠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두 사람을 죽음의 땅에서 살려낸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남편과 아내로서 충실한 삶을 살아달라.”고 부탁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첫 회동 이모저모

    ‘가는 권력’과 ‘오는 권력’의 첫 만남은 화기애애했다. 그러면서도 대화 중간에는 부동산·교육 정책 등 서로의 생각에 대한 입장차가 고개를 들었다. 28일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청와대 만찬 회동에서는 시종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2002년 노 대통령이 당선 나흘 뒤인 12월2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데 비해 노 대통령과 이 당선자의 회동이 성사되기까지는 열흘이 걸렸다.BBK 특검을 매듭지은 후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노 대통령과 이 당선자측은 이날 BBK 특검이나 북핵문제, 노 대통령의 참평포럼 발언 등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두 사람이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부동산 정책과 교육정책에 대해 긴 시간 대화가 오갔지만, 서로의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했다고 배석한 주호영 당선자 대변인은 전했다. 하지만 만찬 끝무렵 노 대통령은 “퇴임 뒤에도 정책 비판은 할 수 있다.”며 이 당선자의 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만찬 도중 노 대통령이 이 당선자에게 선물한 책 두 권 역시 참여정부 이전 역대 정권 부동산 정책의 잘못된 관행과 대입 ‘3불정책’의 뿌리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정책의 근간을 흔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노 대통령과 이 당선자는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도 자주 연출했다. 만찬에 앞서 자리에 앉기 전 노 대통령은 “다음에 퇴임 후에 오는 일이 있으면 제가 그 자리에….”라며 이 당선자의 자리를 가리켰다. 이 당선자는 “임기가 다하셔도 선임자시니까 제가 선임자로 우대하겠습니다.”라며 웃었다. 이날 회동은 5년 전,10년 전과 비교해 형식과 내용에서 다소 차이를 보였다. 반(反)한나라당 진영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지난 2002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는 이번과 달리 ‘단독 회동’을 가졌다.‘민주당’이라는 같은 뿌리를 가진 두 사람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당시에는 김 대통령의 다리가 불편해서인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백악실로 이동했으며, 김 대통령의 권유로 노 당선자가 엘리베이터에 먼저 올랐다. 이번에 노 대통령은 미리 청와대 본관 1층 현관 안쪽에 선 채로 이 당선자를 기다렸다. 전직 국가원수에 준하는 예우였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빼앗긴 10년 전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는 당시 IMF 환란 국면 때문에 의례적인 첫 만남보다는 현직과 당선자간 청와대 정례 주례회동에 관심이 쏠렸다. 김 당선자의 경제정책 방향은 98년 1월6일 주례회동을 마친 뒤 김 당선자가 원칙을 제시하고 김 대통령이 지지하는 합의사항 형식으로 발표됐다. 당시에는 사상 첫 정권교체 분위기를 반영하듯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인수위의 활동 방향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정부가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인수위가 정면 반박하는 등 갈등 양상이 표출되기도 했다. 박찬구 김지훈기자 ckpark@seoul.co.kr
  • 李 “당헌·당규개정 말 않는 게 좋겠다”

    李 “당헌·당규개정 말 않는 게 좋겠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24일 “현행 당헌·당규에 참 잘 정리돼 있다. 앞으로 당헌·당규를 고친다는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당·청 관계나 당권·대권 분리 문제를 현 당헌·당규의 원칙에 따라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측근인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 등이 최근 당헌·당규 개정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박근혜 전 대표측을 자극하는 등 자칫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였던 상황을 조기에 봉합하는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이 당선자가 이 발언을 한 자리 자체에도 무게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선자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당선자 사무실로 불러 대화를 나눴다. 앞으로 꾸준히 있게 될 당·청·정례회동을 ‘시험운행’하는 듯했다. 두 사람이 1시간가량 대화하는 동안 전혀 이견이 없었다고 배석한 박형준 대변인이 말한 것도 실은 ‘허니문 모드’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당·정·청 전면수정 예고 회동에서 눈길이 가는 대목은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제도 등을 부활하자는 데 양측이 합의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당·정 내지는 당·청 분리를 폐기하고 당과 정부, 청와대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당과 청와대의 정례회동에도 뜻을 같이했다. 박 대변인은 “취임 전에도 당선자와 강 대표가 수시로 회동하기로 했고, 취임 이후엔 주례회동 같은 정례회동을 하는 게 필요할 것이라는 당선자의 말씀이 있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 시대’를 끝낸다며 폐지한 제도를 사실상 복원하는 것이다. 당·청 분리가 과거와 같은 ‘대통령 해바라기’의 폐단을 줄이는 데 기여했을지는 몰라도 단점 역시 적지 않았다는 판단을 따른 것 같다. 당과 청와대가 거리를 두다보니 서로 진의를 파악하지 못해 엇박자가 잦았고, 그로 인해 불거진 불안정한 국정의 책임 소재를 놓고 또 서로 탓을 하다 민심의 외면을 받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다만 이런 부작용을 막을 당·정·청 회동이 ‘밀실’,‘야합’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어떤 견제장치를 취할 것인지가 남은 관심사다. ●“지금 공천문제 말할 때 아니다” 이 당선자가 현행 당헌·당규를 고수하는 게 좋겠다고 천명해 강 대표에 힘이 실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강 대표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7월 말까진 당 지도부를 현재처럼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강재섭 체제’를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 당선자가 “신문을 보니까 우리가 공천 문제 때문에 뭐 어떻다 해서 깜짝 놀랐다. 지금 그런 것 갖고 할 때가 아니다. 인수위도 준비해야 하고 그런 이야기 나오면 국민이 실망한다.”고 말해 강 대표의 손을 확실히 들어줬다는 얘기다. 강 대표가 앞서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의 화합을 저해하거나 단합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발언은 안 했으면 좋겠다.”며 논란을 일으킨 당선자의 측근에 직격탄을 날렸고, 당선자 역시 강 대표의 경고에 힘을 보탠 것이다. ●박 전 대표에도 화해 제스처… 갈등 불씨는 여전 이처럼 두 사람의 회동을 통해 한나라당 안팎의 각종 불협화음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 분위기다. 특히 당선자가 스스로 측근의 돌출 발언을 꼬집은 의미를 짚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인수위가 출범하기도 전에 공천을 놓고 이명박-박근혜 갈등을 재연할 경우 4월 총선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담겼다. 또 승자인 당선자의 측근은 물론, 패자인 박 전 대표측에 어떤 신호를 보낸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 역시 가능하다. 측근들에게는 최근 몇 명이 ‘사고’를 친 것처럼 쓸데없는 말이나 행동으로 ‘호가호위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박 전 대표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그 측근들이 꾸준히 요구해온 ‘당헌·당규 유지’를 공식화한 만큼 그쪽에도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씨’는 여전하다. 집권 여당의 첫 총선 공천을 대통령이 전혀 관여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다. 총선까지 남은 4개월 동안 복잡한 정치구도에 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는 별도로 강 대표는 일부 최고위원이 “인수위가 너무 학계 중심으로 꾸려지면 실패하기 쉽다. 정권운영 방안을 짜고 관료도 설득할 수 있게 정치인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을 당선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Let’s Go] 부산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Let’s Go] 부산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한낮에는 볼 수 없었던 거대도시의 색다른 매력이 하나 둘 전구가 켜질 때마다 환한 속살을 드러내며 살아난다. 수없이 많은 전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과 인간이 만든 건축물들의 조형미, 그리고 바다가 빚은 유려한 해안선 등이 어우러지며 낮과는 또 다른 고혹적인 세계를 펼쳐낸다. 부산시내 어느 곳에서 보아도 화려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내년 6월 준공되는 남항대교가 경관조명을 끝내고, 부산 북항을 가로지를 북항대교가 건설되고 나면 광안대교∼북항대교∼남항대교로 이어지는 해상교량들의 화려한 야간 경관쇼가 펼쳐질 듯하다. 항도 부산의 밤풍경 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 부산의 아틀리에 황령산 빼어난 조망을 자랑하는 황령산은 부산의 야경을 즐기며 걷는 야간산행 코스로 유명하다. 도심속 건물들의 반짝이는 불빛에 바다 위 광안대교의 늘씬한 조명까지 더해져 부산을 찾는 관광객의 ‘필수 관광코스’로도 여겨진다. 경부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해운대 방향으로 가다 KBS부산방송총국을 200m쯤 지나면 왼쪽으로 ‘스노 캐슬’ 오르는 길과 만난다. 황령산 봉수대로 향하는 드라이브 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산 중턱에 마련된 전망대에 서면 해운대 등 부산 시내와 주변 바다가 한눈에 담겨진다. 내륙을 휘돌아 거침없이 달려온 불빛이 바다와 부딪치며 화려한 불꽃으로 솟구쳐 오르는 듯하다. 정상을 향해 오르다 KT중계소 앞 언덕에 서면 황령산이 안배한 또 다른 야경이 시작된다. 신선대 부두 등 항구 불빛과 멀리 오륙도 등대불빛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깜빡거린다. 황령산 봉수대에 오르면 풍광은 절정에 달한다. 부산시내 야경이 360도 돌아가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동쪽으로 해운대와 광안대교, 서쪽으로 개금과 주례, 북쪽으로 서면과 동래, 남쪽으로 영도와 부산항이 이어진다. 이런 밤풍경을 즐기기 위해 부산시민들은 황령산을 낮에도 오르고, 밤에도 쉬지 않고 찾는다. 황령산 정상인 봉수대까지 아스콘 포장도로가 깔려 있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 야간 등반도 무리가 없는 편이다. 황령산 오르는 길가의 조그만 토스트집을 기억해둘 만하다. 정식 상호는 없고, 단골손님들이 ‘황령산 토스트집’으로 부르는 곳이다. 햄 등을 넣은 토스트가 1500원.‘가격대비 성능’이 뛰어나 출출할 때 그만이다. 주인장이 직접 뽑은 원두커피는 1000원을 받는다. 두부마을 맞은편에 있다. # 뭍에서 보고 바다에서 보고 부산의 대표적인 명소와 야경을 편하게 보고 싶다면 시티투어버스를 고려해볼 만하다. 야경투어는 오후 7시 부산역을 출발해 민주공원∼금련산 청소년수련원∼광안대교∼해운대∼달맞이 언덕∼해운대해수욕장∼광안대교를 둘러본다.1회 운행. 낮에는 해운대코스와 태종대코스를 12회 운행한다. 어른 1만원,KTX이용객과 단체 8000원, 청소년 5000원. 월요일은 휴무다.citytourbusan.com,(051)464-9898. 우리테마투어(wrtour.com)는 오전 7시25분 KTX로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을 돌아보고 저녁에 돌아오는 당일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5만 9500원.(02)733-0882. 배를 타고 나가 야경을 감상하는 것도 별미다. 해운대를 출발해 달맞이 언덕과 광안대교, 동백섬(누리마루) 등을 도는 동안 숨막히게 이어지는 빛의 향연을 바다 위에서 감상할 수 있다.12시(4만원,2시간 운항)와 3시30분(3만원,1시간30분),7시(7만원,2시간30분),8시30분(5만 5000원,2시간) 등 오후에만 네 차례 출항한다. 부가세 10%, 봉사료 5%는 별도.coveacruise.com,743-2500. # 낭만적인 야경감상 포인트 ‘구름고개 농원’은 황령산 KT중계소 바로 아래 위치해 있어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 광안대교와 해운대 등의 야경을 감상하며 차를 마실 수 있다. 찻집 오른쪽으로는 신선대 부두 등이 펼쳐져 있다. 지하 300m 암반층에서 끌어 올린 암반수를 사용해 차맛이 좋다는 게 주인장의 자랑이다. 커피 등 각종 차 4500∼5000원, 커피+토스트 7000원.(051)627-8685. 마천루처럼 치솟은 아파트들이 키높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해운대에서 한화리조트 32층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클라우드32’는 적잖이 특별하다. 광안대교 등의 야경을 감상하며 낭만적인 저녁 한때를 보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 커피 등의 음료는 오후 8시까지만 판매한다.8000∼9000원. 칵테일 1만 5000원. 스테이크류 3만원선. 부가세 10%는 별도다.cloud32.net,749-5320. # 그 밖의 야경 명소 누리마루APEC하우스는 떠오르는 야경 명소. 동백섬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누리마루와 해운대 해변 풍경을 감상하는 맛이 각별하다. 밤을 기다려 화사하게 조명꽃을 피우는 해운대해수욕장을 지나 송정을 향해 오르면 달맞이 언덕에 닿는다. 부산의 고전적인 야경 명소.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닮아 예부터 와우산이라 불렸지만, 초저녁 달을 코앞에 떠 있는 듯 가깝게 볼 수 있다고 해서 얻은 달맞이 언덕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 최근 다양한 갤러리가 들어서면서 문화의 거리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다소미 공원 앞 ‘해운대 포토 스포트’에 서면 오륙도와 동백섬, 광안대교 등의 원경이 제법 근사하다.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는 언덕길을 따라 송정해수욕장까지 드라이브를 즐겨도 좋겠다. 부산의 옛 향기를 보고자 한다면 영도대교와 자갈치시장 등이 제격이다. 고깃배 늘어선 항구 특유의 분위기와 멋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김천분기점→경부고속도로→동대구분기점→신대구∼부산간고속도로→부산. 해운대 방향은 경부고속도로 부산나들목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글 사진 부산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종교플러스] 천주교 생명委 2주년 미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설립 2주년을 맞아 9일 낮 12시 명동성당에서 기념미사를 개최한다. 정진석 추기경 주례의 미사가 끝난 뒤 탤런트 김해숙씨를 생명위원회 홍보대사로 위촉하며 제2회 ‘생명의 신비상’ 수상자도 발표한다.
  • 대선에 또 등장한 ‘3金’

    17대 대선에서도 결국 3김(金)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미 대선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온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에 이어 지난 4년간 노출을 피해온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까지 5일 선거판에 발을 담근 것이다. JP는 이날 검찰의 BBK 의혹 수사결과 발표 직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강재섭 대표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이 후보 지지의사를 천명했다고 강 대표가 밝혔다. 강 대표에게 JP는 “한나라당 전 당원이 이 후보를 믿고 뭉친 것이 굉장히 자랑스럽고 그래서 사필귀정으로 결정이 난 것 같다. 축하한다. 정권교체를 위해 많이 돕겠다.”고 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이르면 6일 JP에게 ‘지원’을 공식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경우 JP는 7일 한나라당의 대전 유세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 이 후보측이 그동안 주저하다 투표일을 코앞에 두고 JP에게 손을 내민 것은, 충청권의 심대평 후보가 무소속 이회창 후보와 손을 잡은 데 따른 맞불작전이란 분석이다. 앞서 4일 DJ의 노벨평화상 수상 7주년 기념행사에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열 일을 제쳐 두고 참석했다.DJ는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두 후보에게 “둘이 앉으니 보기 좋다.”며 결혼식 주례처럼 얘기했다. 이미 범여권 통합과 관련해 구체적인 훈수를 마다하지 않아온 DJ가 은근히 단일화를 압박한 뜻으로 해석됐다. 이에 정 후보는 “제가 당선되면 내년에 청와대에서 크게 한 번 모시겠다.”고 했고, 문 후보는 “홍업(DJ의 차남)이와 제가 ROTC(학군단) 동기다.”며 서로 눈에 들려 애쓰는 모습을 연출했다. YS는 이미 한나라당 경선을 앞두고 상도동계 출신 인사들을 이명박 후보측에 보내 지원을 했고, 이에 이 후보는 경선 직후 전직 대통령으로는 가장 먼저 YS를 찾아가 사의를 표했다.YS는 며칠 전 이명박 후보의 경쟁자인 이회창 후보를 겨냥,“인간이 아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해가 가도 스러지지 않는 3김의 위상은 ‘지역주의의 끝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권력욕을 버리지 못하는 3김도 잘못이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를 얻으려는 후보들의 행태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후보들이 철학과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자꾸 3김에 의존하는 것”이라면서 “단기적으로 선거에서 이득을 볼지는 몰라도 집권후 통치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남한사람 첫 금강산 웨딩마치

    남한사람 첫 금강산 웨딩마치

    북한 금강산에서 최초로 남한사람들의 결혼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최정인(32)씨와 조아라(24)씨. 신랑 최씨와 신부 조씨는 2005년 현대아산 고성사무소 직원과 금강산관광(현대아산 협력업체) 안내조장으로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워오다 지난 1일 금강산호텔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남측 250여명, 북측 50여명 등 약 300명의 하객이 참석했으며 현대아산 윤만준 사장이 주례를 했다. 음식은 북측 봉사원들이 직접 준비했다. 금강산에서의 결혼은 신부 조씨가 하객들에게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고 주장해 이뤄졌다. 남측 하객들은 오전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에 도착, 구룡연 등을 관광한 뒤 오후 결혼식에 참석하고 남한으로 돌아왔다. 신랑 최씨는 “앞으로는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의 결혼도 이곳에서 이뤄졌으면 좋겠다.”면서 “백두산관광이 내년 5월부터 시작돼 신혼여행을 백두산으로 가지 못하는 게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홀로 안으로 익어 가면 그게 남자요, 아버지요

    홀로 안으로 익어 가면 그게 남자요, 아버지요

    ‘최불암 시리즈’ 아시죠? 변함없는 가치도, 인정할 만한 권위도 없는요즈음의 세태를 우스꽝스럽게 그렸다지요. 웃음과 여유를 줄 수 있다면, 근엄한 모습을 버리는 일 따위가 대순가요? 어쩌면 아버지의 역할이 원래 그러할 테지요.사진 _ 한영희 최불암(배우) · 인요한(의사) 홀로 안으로 익어 가면 그게 남자요, 아버지요 인요한 늘 ‘한국의 아버지 상(像)’으로 회자되시는데 정작 선생님의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최불암 선친*께서는 해방 이후 국내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하셨고, 그렇게 번 돈으로 영화를 제작하셨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 <수우(愁雨)>의 개봉을 앞두고 제작진들과 숙소에서 담소를 나누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영정을 안고 시사회를 했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너무 어려서 당신을 여의었으니 나는 사실 아버지를 잘 몰라요. ‘아버지!’라고 불러 본 기억이 두 번쯤 될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큰 품과 정을 느껴 볼 기회가 내겐 없었던 거지요. 인요한 하면 그렇게 깊은 부정(父情)은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 내시는 건가요. 최불암 굳이 따지자면 외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래서 내가 노역 전문 배우가 되었나, 흐흐. 그나저나 나이 들어 아들딸 낳으면 아버지 되는 거 아닌가요? 아버지 역할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전원일기를 오래 했을 뿐이지…. 아버지, 아무런 말씀도 않으셨던 인요한 선생님은 실제로 어떤 아버지이신지. 최불암 약한 아버지라는 표현이 맞을 겝니다. 무녀독남으로 자라서 그런지 난 좀 약해요. 전원일기의 아버지 김 회장도 4대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그 이도 막상 강한 사람이 아니야.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게 아닐까 싶어요. 손자, 자식, 어머니 모시고 쓰다듬고, 안으려면 강해선 안 될 것 같아요. 강하다는 말을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인요한 아버지는 숙명적으로 약한 존재라는 뜻이군요. 최불암 요즘 들어 내가 주례를 많이 보는데, 아버지가 울면 딸이 울고, 딸이 울면 꼭 아버지가 울어요…. (거 참 희한한 일이지, 식장에서 두 사람이 마주볼 일이 없는데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런다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손으로 눈물을 닦지 않아요, 마치 흘린 적이 없다는 것처럼 그저 눈만 껌벅거릴 뿐. 그래서 결혼식장에서는 아무도 아버지의 눈물을 볼 수 없고 다만 딸이 그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내 사무실에 아주 어렵게 자란 여직원이 하나 있었는데 시집갈 때 내가 주례를 봤어요. 계속 아버지가 눈물을 떨구는데, 신부도 똑같이 울고 있더라고요. 화장 지워 가면서. (아들? 그 때는 대개 어머니가 울지.) 인요한 그 드러낼 수 없는 심정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아버지이겠지요. 최불암 그런데, 아들은 몰라도 딸은 아버지의 속을 조금 들여다보는 것 같습디다. 내가 제 엄마하고 말다툼하는 것 같으면 괜히 밖에서 얼쩡거리지요. 아빠가 속상할까 봐 문 밖에서 왔다 갔다 서성거리는 걸 내가 느끼겠다니까. 깔깔대며 일부러 웃고,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를 쓰는 게 참 예쁘지. 미국, 다시 돌아와야 할 친구 같은 인요한 요즘 미국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변화해서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속은 타고난 한국 사람이지만 겉은 어쩔 수 없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예민하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지요. 미국이라는 나라,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불암 뭐랄까,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말을 하면 젊은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미국인을 좋아해요. 가감 없이 표현해서, 우리 세대는 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니까요. 학교에서도 시청각 교육도 대부분 미국 영화였고. 인요한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미국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최불암 존 웨인, 게리 쿠퍼, 제임스 스튜어트…. 정의가 무엇이냐, 남자다운 게 무엇이냐를 나는 그 때 그 미국 영화배우들에게서 배웠던 거요. 언젠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 의회의 몇몇 상·하의원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봤어요. 한국이 당신네 나라에서 도움 받은 바 크다, 그처럼 약소국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냐, 미국의 어떤 힘이냐,라고. 그랬더니 종교다, 와스프(WASP)*다, 교육이다, 여러 얘기가 많았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어떤 사람이 말을 하는데, 그게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왈, 그것은 영화의 힘이다…. 좋은 시나리오, 좋은 배우, 좋은 감독이 나와서 좋은 일을 하는 좋은 미국인의 전형을 개발한 거다, 이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얘기를 하는데, 그가 주창한 경제부흥정책 뉴딜이 별 게 아니었다는 거지요. 흔히 뉴딜 정책을 통해서 미국의 은행 구조가 바뀌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루즈벨트가 예리하게 포착한 야심찬 문화우선정책이 은행 구조를 바꿨다는 게 옳다는 것이었어요. 이전까지 은행에서 박대받던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에게도 걱정 말고 돈을 빌려 주라고 했다는 거지요. 그 때만 해도 속되게 말해서 연예인들을 ‘딴따라’ 취급할 땐데, 루즈벨트에게는 혜안이 있었던 겁니다. 가수, 만화가, TV 연기자, 영화배우 등 문화의 전면에 위치한 그들이 바로 서야 나라도 바로 선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고 할까요. 다만 몇 가지 원칙은 있는데, 작품 속에 반드시 개척정신(Frontier spirit)과 사랑(Romanticism)과 정의(Justice)와 인도주의(Humanism)가 스며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루즈벨트에게 이런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경제공황의 시기에 기간산업이 아닌 연예산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상원의 비판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뉴딜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나저나 “부자 나라 미국을 만들기 전에 먼저 훌륭한 미국인을 만들어야 된다.”는 그의 말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저릿한 감동적인 명구네요. 인요한 미국을, 제가 선생님께 배우고 있습니다. 하하. 최불암 다만 아쉬운 것은 요즘 들어 미국이 세계 각국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 예전의 미국이 지니고 있었던, 약자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인요한 우리 집안이 100년을 넘게 한국에서 살아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 밖에서 미국을 볼 때의 문제는, 미국의 잣대가 두 개라는 점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미국 밖에서 하는 행동을 미국 내의 가치 기준으로 심판하면 큰 소동이 날 텐데, 그것이 미국 안에서 묵인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요? 그런 사실을 미국인들이 잘 모르는 겁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미국의 많은 의원들은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의외이겠지만, 사실입니다. 역설적일까요? 지금 한국인은 세상을 보며 살지만, 미국 사람은 자기 주(州)밖에 몰라요. 미국 밖의 세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종종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겁니다. 한국인, 드러낼 수 없지만 내 안에 있는 최불암 오늘 우리 미국 얘기 참 많이 합니다. (웃음) 나는 다만 순수한 의미에서 가치와 도덕을 준수하는 올곧은 정신의 미국인을 존경하는 것일 터이고, 그것도 결국은 한국이 어떤 나라이고 한국인이 어떤 사람이냐를 말하기 위해서이겠지요. 인요한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과 생각과 입맛까지 저는 누구보다 뿌리깊은 한국사람입니다만, 그런 저에게도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닮고 싶은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최 선생님이시지요. 최불암 아이구, 무슨 그런 송구스러운 말씀을…. 그런데 말이에요, 저는 사실 ‘한국의 아버지 상’보다는 오히려 ‘한국인의 원형(原型)’에 관심이 많습니다. 해서 곰곰 따져 보는데, 인내와 끈기, 질박함과 투박함 그리고 선비정신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표현하는 말은 많지만 딱히 이것이다, 하는 명쾌함은 없어요. 단일 민족, 순혈 문화를 이야기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돌이켜보면 일본에서, 구라파에서, 미국에서 건너온 것이 섞여 있는 형국이지요. 다시 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르라는 얘기는 아니고 단지 오늘날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그렇게 되고 있다는 거지요. 나보고도 한국인이냐 물으면 고개를 흔들지 몰라요. 인요한 제가 생각하는 한국인의 특질이란, 어떤 조건에서도 살아 남는 강한 생명력과 그에서 비롯되는 인생에 대한 유쾌하고 낙천적인 태도입니다. 당장 쌀독이 비어서 앞날이 막막한 순간에도 옛사람들은 웃으면서 여유를 가지고 헤쳐 나갔단 말이에요. 의료 지원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면서 제가 느꼈던 것은, 아직 그들에게 그러한 모습들이 남아 있었다는 겁니다. 결핵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그이들이 해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아세요? “몹쓸 병에 걸렸지만 어쩌겠어요. 열심히 끝까지 싸워 봐야죠.” 비록 몸은 수척하지만 너무나 의연한 자세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용기 있게 맞서는 모습에서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툭하면 강물에 뛰어들고, 그것도 혼자도 아니고 온 가족을 데리고…. 그런 나약한 태도는 원래 우리의 모습이 아니에요. 비겁한 도피입니다. 최불암 그래요. 특히 TV와 같은 대중 매체의 영향도 크지요. 대중의 입맛을 핑계삼아 말초적이고 표피적인 이미지들로만 가득 차 있으니, 우리의 본래 모습에 대한 오해가 증폭되는 거지요. 전통의 가치를 지켜 내는 긍정적인 캐릭터가 브라운관에서 실종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TV, 화려함 그 이상을 품어야 하는 인요한 그러고 보니 선생님 드라마 연기 인생이 어언 40년이 다 되어갑니다. TV 매체에 대한 이해도 남다르실 텐데…. 최불암 글쎄, TV라는 게 노크 없이 안방에 들어갈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으니 그만큼 책임감도 크고 조심스럽지요. 아이들을 십 년 넘게 교육시키면 뭐 하겠어요? 한 시간 텔레비전 보면 다 흩어지는데…. 기왕에 오락 매체이니 달콤한 것, 화려한 것을 쫓는 경박한 풍조를 탓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는 그 콘텐츠를 걸러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연령대의 시청자들이지요. 허구인지, 진실인지 아직 판단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자극적인 내용에 노출이 되었을 때, 그 폐해가 적지 않은 거지요. 인요한 TV가 낳은 최고의 스타가 심중에 담고 있는 TV에 대한 고민이군요…. 최불암 대중문화가 사소해지는 것을, 그래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대중 연예인들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인요한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다만 한 가지, 그래도 우리 젊은이들이 무비판적으로 저급한 문화를 흡수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뚜렷한, 자기 삶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불암 맞아요. 그런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실제로 우리 젊은이들이 분명한 자기 소신을 가지고 현재의 정보 환경을 이용하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 맥락에서, 어느 방송국 회의 석상에선가 내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요즘 TV는 젊은 친구들 위주의 내용으로 편성되는데, 과연 그들이 보긴 보는 거냐. 아니다. TV는 젊은이들이 보는 게 아니다. 착각하지 말아라. 그들이 얼마나 넓은 눈을 가지고 있는데 저녁 7시에서 10시 사이에 TV 앞에 앉아 있겠냐.” 라고. 인요한 날카로운 지적이시군요. 내친 김에 감초 같은 질문을 한 가지 더 드리겠습니다. 연기에 관한 고견(高見) 한 말씀…. 최불암 연기자는 백지 같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좋은 연기 하려면 그림 그리는 캔버스처럼 맑아야 합니다. 그래야 형상을 그릴 수 있으니까요. 신문지 위에 그리면 잘 보이겠어요? 한 인물의 배역이 끝나면 빨리 잊어버리고 타성적 연기와 관습적 캐릭터를 깨뜨려야 해요. 꾸미고 바르는 일보다 지우고 닦는 일이 더 급하니까. 인요한 <수사반장> 19년, <전원일기> 23년. 그 시간, 그 작품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신다면. 최불암 스스로의 옷 매무새를 단정케 했다는 점에서 <수사반장>은 ‘안방보안관’이고, 삶의 의욕과 용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전원일기>는 ‘삶의 텃밭’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 인요한 고(故) 정주영 회장에 대한 선생님의 남다른 기억을 궁금해 하는 독자도 많을 것 같습니다. 최불암 한참 대선을 준비할 때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 드릴까요. 신문에 ‘서너 시간 자고 일해서 대통령 나온다’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왔어요. 아침에 대책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기사 잘 봤습니다. 서너 시간씩밖에 안 주무신다고요….”라고 여쭈었더니, 대뜸 “아니, 누가 그렇게 자고 버텨요? 사람이 일곱 시간은 넘겨 자야지. (손을 보여주면서) 내가 손도 크고 장사예요. 쌀 가마도 지고 말이죠. 그렇지만 잠을 자야 힘도 쓰는 거예요. 엉터리 기사예요.” 그러면서 덧붙이시길, “이거 봐요. 앞으로 잠 서너 시간 잔다는 사람하고는 장사도 하지 말아요. 병자 아니면 사기꾼이에요….” 이러시더라고요. 인요한 정 회장님의 표정과 말투가 선하게 그려지는군요. 최불암 언젠가 당신께서 직접 <전원일기>에 출연을 원하신 일도 있었지요. 20분쯤 드라마에 등장해서 농사 철학을 얘기하시겠다고. 그게 80년대 후반 즈음의 일인데, 그쪽 회사 사정상 녹화 전날 취소가 됐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만큼 농사를 좋아하셨지요. 한마디로 그분의 철학은 땅이고 아버지였지요. “부모가 준 최고의 선물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그분의 대답은 망설임 없이 명쾌했어요. “가난이야.” 인요한 대담을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연말에, 정초에 요즈음 사람들 많이 만나시지요? 약주도 많이 하시고…. 모쪼록 건강 주의하세요. 최불암 왜 술 얘길 안 하나 했네. 인 박사나 나나 넉넉한 인심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니 적당한 술자리를 피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요, 이왕 마무리니까 인사 대신 술에 관한 얄팍한 철학을 토로해 봅시다. 술은 무언가를 깨닫자고 먹는 거니까, 인 박사나 나나 이제 그만 먹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입니다. 예전에는 말도 잘 안 통하고 세상도 답답해서 말 없이 술을 마셨지만, 이제 왜 안 통하는지, 왜 막막했는지를 깨닫는 나이가 되었을 테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인 박사. 파~! 글_홍승범 (본지 편집장) 인요한 John A. Linton 왜 냇가에서 미꾸라지 잡고 들판에서 쥐불놀이 하던 유년기의 추억을 잊었느냐고, 그 강직하고 따뜻한 심성은 어디 가고 나약하고 각박한 세태만 남았느냐고, 세기를 넘겨 한국 사랑을 실천해 온 린튼 가의 후예인 그가 꼬장꼬장한 전라도 사투리로 묻는다. 그 때, 당신은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1959년 전주 생. 연세대 의대 졸 1987, 미국 가정의학과 전문의 1991, 한국 가정의학과 전문의 1992. 현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 소장. 최불암 수사반장(1971 ~1989)이 10년째에 접어들었을 때 전원일기(1980~2002)가 시작됐다. 박 반장이 김 회장과 오버랩(overlap)되고 이른 바 ‘믿음직한 맏형’ ‘속 깊은 아버지’의 이미지가 형성될 바로 그 때, 그는 영화를 잠정 중단하고 TV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미 79년에 <달려라 만석아>라는 영화로 제18회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대형 연기자였는데, 문득 “연기는 하나지만, 영화와 TV 둘 중 하나는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최근 그는 친구 오지명과의 의리 때문에 잠시 옛 기분을 내서 영화 <까불지 마>를 찍었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것처럼 시간은 흘렀고, 그는 거침없이 그러나 낯설지 않게 서민의 일상으로 들어와서는 쓸쓸하고 팍팍한 그들의 가슴에 머물렀다.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14대 국회의원)했으니, 평생 연기자인 그도 잠시 외도를 하긴 했다. 하지만 곧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그를 아끼는 사람들을 안심시켰고 근자에는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외국인들에게 홍보하는 시민협의회 ‘Welcome to Korea’의 회장 직을 맡아 기꺼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좌우명은 ‘즐거움에 지나침이 없고, 슬프되 비통해 하지 않는다(樂而不淫 哀而不悲)’라는 공자님 말씀. 잘 알려진 사실의 부연.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 이명숙(李明淑) 여사가 운영했던 은성(銀星) 은 문화예술의 명소였다. 그는 실제 어린 시절부터 그 곳을 드나들었던 이봉구, 김수영, 천상병, 변영로 등 많은 재인문사(才人文士)로부터 영감과 우수를 얻었다. 탤런트 김민자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 1940년 인천 생. 중앙고, 서라벌예대,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국제백신연구소 홍보대사. 육군 홍보대사 등. * 그의 아버지 최철(崔鐵)은 해방 후 중국에서 귀국해 인천일보사와 건설영화사를 설립, <수우(愁雨)> (1948, 안종화 감독. 김소영, 전택이 주연)와 <여명(黎明)> (1948, 안종상 감독. 이민자, 이금봉 주연)을 제작했다. 큰아버지 최도선(崔道善)도 문교부 제정 제1회 우수국산영화상 작품상을 받은 <곰>(1959·조긍하 감독)과 <내일 없는 그날> (1959·민경식 감독) 등을 만든 영화제작자. * WASP_ 미국 사회를 이끄는 앵글로색슨 계의 백인 개신교도(White Anglo-Saxon Protestant).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민주적 법치주의를 철학으로 내걸고 교육의 민주성, 창의성, 경쟁성, 합리적 실용주의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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