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공초문학상/이형기씨 선정/서울신문사주최 공초선생 숭모회 주관
◎5일 30주기 맞아 성대한 추모행사/“초윤리의 사상가·시를 체험한 시인”평/후배문인들 91년 기금1억 마련
근대 신시운동의 선구자이자 자신이 즐겨 피우던 담배연기처럼 살다간 기인 공초 오상순시인(1894∼1963)이 우리곁을 떠난지 5일로 30주기를 맡는다.올해는 또 선생의 탄생 99돌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서울신문사와 공초오상순선생숭모회(회장 구상)는 선생의 설흔번째 기일을 맞아 3일 상오11시 문인·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수유리 빨래골 묘소에서 기제를 올린다.이와함께 하오4시부터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올해 처음 제정한 「공초문학상」시상식을 개최한다.제1회 수상자로는 이형기시인이 선정됐다.
이어 열릴 추모행사에서는 수상자인 이형기시인이 「공초의 시와 공사상」이란 공초론을 발표하며 시인 이원섭씨(숭모회 부회장)가 「공초의 생애와 사상」강연등 성대한 행사를 치를계획이다.
□공초문학상제정배경및 취지
「공초문학상」은 지난91년 10월 공초선생의 제자인 구상숭모회회장 주도로 서울갤러리에서열린 「공초문학상기금마련 희사작품전」의 수익금으로 제정됐다.숭모회측은 구상·박두진·서정주·조병화·설창수·홍윤숙씨등 문인들과 화가 김기창·김영주·박고석·이대원씨등 모두 1백5명이 내놓은 자작친필과 소장품 1백32점을 팔아 모은 기금 1억1천5백만원을 지난4월 서울신문사에 기탁해 온 것이다.
이에따라 「공초문학상」은 서울신문사 주관으로 매년 시부문 1명을 시상하며 시상대상자는 20년이상의 문단경력을 가진 작가로 작품의 우수성뿐만아니라 수상자의 인품을 고려하는등의 운영규정을 정했으며 매년 6월중 시상식을 갖게 된다.
□공초의 생애와 사상
오상순은 1894년 8월9일 서울 시구문안(지금의 장충동2가)에서 태어났다.비교적 개방적인 중산층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경신학교를 거쳐 19세에 일본유학길에 올라 경도의 동지사대학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한 인텔리였다.
1920년 변영노·남궁진·김억·염상섭과 함께 한국신시운동의 선구가 된 동인지 「폐허」의 창간동인이 되었다. 「허무혼의 선언」「아시아의 마지막 밤풍경」등 명시를이때 발표했다.
청춘기의 공초는 만년의 트레이드마크인 빡빡깎은 머리와는 달리 길게 드리운 올백머리의 멋쟁이 청년이었다.그는 40대에 대구에서 연하의 과부와 잠시 동거생활을 한 이외에는 평소 지론이던 독신주의를 지켰다.
그는 살아생전 혈육한점,머물 지상의 집한칸,시집 한권 내지 않았다.공간을 초월,시간속에 영원히 산다고 해서 「공초」라 했던가.그득한 담배연기속에 묻혀 살았다고 「꽁초」라고 불리었던가.그의 삶은 세속을 떠난 성자의 그것이었다.
6·25를 전후해 서울 푸라워,대구 아리스,부산 금강,서울 명동 청동,서라벌등 다방을 무대로 문학을 교리처럼 설파한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며 신화다.그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담배불을 꺼뜨리지 않았다.제자의 결혼식 주례에서도,세수할때도 담배는 항상 손에 있었다.하루평균 1백80개비(20개들이 9갑)를 연기로 만들었다.다방에서 제자들에 둘러싸여 「청동산맥」이라는 서명첩을 내놓고 「연기는 사라져 어디로 가나」같은 선문답문제를 내 제자나 방문객들이 나름대로의 단상을 적은 「청동문집」1백98권이 그가 남긴 유일한 재산이다.
무일푼,무소유로 일관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예술원종신회원,예술원상,서울시문화상등 상복이 따랐다.1963년 6월3일 노환으로 입원한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제자들의 간호를 받으며 운명했다.그는 무교리의 종교가,초윤리의 사상가,시를 몸소 체험한 유일한 시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