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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구역 개편 합리적 처리”/김 대통령/「울산직할시」유보 가능성

    ◎부산·대구·인천 광역화도 축소 될듯 김영삼대통령은 7일 당정간에 논란을 벌이고 있는 행정구역개편에 대해 『당정간 진지한 논의를 통해 행정구역개편이 합리적이고 원만하게 처리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가 밝혔다. 김대통령이 행정구역개편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합리적이고 원만한 처리」를 강조함으로써 민자당에서 반발이 많은 울산시의 직할시 승격은 유보될 가능성이 커졌으며 부산·대구·인천의 광역화도 가능한 한 축소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고위관계자는 『김대통령은 행정구역개편에 대해 특별한 지시나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전하고 『당정간 충분한 협의를 거쳐 좋은 타협안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선거를 치르는 것은 당』이라고 말해 당이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내무부안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다른 관계자는 『8일 김종필대표의 청와대 주례보고와 저녁에 예정된 민자당 주요 당직자및 국회간부들의 청와대만찬에서 김대통령이 행정구역개편에 대한 뜻을 밝힐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 유교문화의 영향(백제를 다시본다:26)

    ◎고이왕때 경학사상 바탕 관제 정비/6좌평 16관계는 주례·예기 모델로/4세기엔 경학박사 배출… 일에 파견/성왕땐 태학교육 확충… 졸업생 대부분 관직에 등용 백제의 사상은 유교문화가 근간을 이루었다.이는 백제불교가 계율불교로 자리잡는데도 유교의 영향력이 컸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백제유교의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물론 원시유교와도 부딪치지만,북방으로부터 남하한 백제건국 집단과 직결된다.이들 건국집단은 대륙의 선진학술을 수용,경학론이에 입각한 백제유교를 펼치기 시작했다. 백제는 한성시대부터 이미 한대의 경학을 받아들였다.한의 경학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한의 군현이었던 낙낭·대방과 가까이 인접한 지리적 여건 때문이었다.그래서 백제사상은 고조선 이후 전승되어 온 원시유교적 본질과 한대의 경향을 기본으로 틀을 잡아나갔다.이러한 경학사상을 국가사회의 문물제도에 접목시켰다.우리는 여기서 유교가 도교나 불교 보다 먼저 사상적으로 백제를 선점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유교의 영향은 백제초기인 3세기경 국가제도정비에 우선 나타난다.백제가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어느 정도 갖춘 것으로 보는 고이왕(AD 234∼286년)때의 중앙관제 제정이 그것이다.고이왕은 중앙관제를 6좌평 16관계로 제정했는데,이는 「주례」의 육관제와 거의 같은 것이다.공복제도를 갖춘 것도 이 시기에 해당한다.그리고 고이왕은 남당에서 정사를 보았다.「예기」명당편에 나오는 남당은 군주가 신하들과 이야기하고 정사를 말하는 장소로 기록되어 있다. ○사회예속에도 영향 유교사상에 의해 국가제도가 정립된 것처럼 일반사회의 예속 또한 유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유교는 인간도덕성을 매우 중시하면서 예의를 숭상했다.특히 원시유교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예의사상은 백제에까지 면면히 이어졌다.중국의 사서 「주서」백제조는 이를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백제는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였다.절을 하는 예는 두손으로 땅을 짚고 공경하는 뜻을 표했다.혼례는 중국 풍속과 거의 같았고,부모와 지아비의 상에는 3년동안 복상했다」는 것이다. 백제가 체제를 굳건히 다지면서 강력한 통제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유고사상이 깔려있다.국민을 복종케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술과도 직결된 유교사상은 학술의 발전을 가져왔다.4세기경 백제를 중흥시키는데 공헌한 근초고왕(AD 346∼375년)은 박사 고흥으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케했다.그 사서는 바로 「서기」다.국가 중흥기에 국사로서의 정사를 편찬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동시에 통치차원에서도 필수적인 국가사업이었을 것이다. 백제가 학문을 중시한 흔적은 「주서」이역전에도 나온다.「풍속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즐기고 경서와 사서를 좋아했는데,그중에 뛰어난 이는 한문을 읽어 글을 지었다」고 기술했다.또 백제는 중국으로부터 모시박사와 강례박사를 데려왔다는 기사도 보인다.여기 나오는 박사들은 중국에서 초빙한 학자를 가리킨다.그러나 백제에도 일찍이 박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앞서 말한 근초고왕때 국사를 편찬한 박사 고흥의 존재를 통해 분명히 파악된다. 우리는 고흥이라는 인물의 백제박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 이유는 근초고왕 즉위 뒤에 중흥의 시대를 맞은 백제는 중국에서 처럼 관학의 기초를 마련하고 전문학자를 양성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이 분야를 연구한 어떤 학자는 근초고왕 26년(AD 371년)에 고구려를 크게 무찌른 백제가 한산으로 천도한지 얼마 안되어 학교를 창설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고구려가 세운 태학의 충격을 받아 동진의 태학제도를 청사진으로 그리고 이 학교에서 경학을 전수받고 처음 박사로 임명된 케이스가 고흥이라는 것이다. 우리 역사기록에는 없지만 일본 사서에는 또 다른 백제의 박사가 등장한다.근초고왕 재위연간에 해당하는 시기에 일본에 간 박사 왕인이 그 사람이다.근초고왕의 왕명을 받들어 일본에 갔다가 돌아온 아직기의 추천으로 「논어」10권과 「천자문」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간 왕인은 일본왕의 태자 도도차랑자의 스승이 되었다.또 경서에 통탈한 그는 왕자 이외에 군신들에게도 경사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왕인,일왕자 교육 일본의 사서 「고사기」는 왕인의 이름을 화이로,「일본서기」는 왕인으로 적고 있다.화이나 왕인은일본식 발음으로 다 같은 「와니」(Wani)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자이름의 표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그리고 「고사기」에는 백제 근초고왕 때 사람으로 되어있으나,「일본서기」는 아신왕 말년쯤에 일본으로 건너온 것 처럼 기록했다.30∼40년의 차이는 발견되지만 왕인이 일본에 유교를 전파한 스승임에는 틀림이 없다.백제는 AD 475년 날로 세력을 확장한 고구려의 핍박속에 웅진(공주)으로 남천하기에 이른다.이어 백제의 중흥대업을 꾀한 성왕(AD 523∼554년)은 도읍을 사비로 옮기면서 여러 제도를 정리,개정했다.내관 12부,외관 10부로 구성된 22부나 22첨노제가 그것이다.이들 관제는 10간12지와 오행사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백제의 중앙집권체제는 도읍을 사비로 옮긴 뒤에 완비되었다.이와 더불어 성왕은 무령왕이 웅진시대에 중국에 남량의 제도를 본떠 학교를 확충하고 오경박사를 둔 전통을 이어받아 이를 더욱 강화했다.그래서 성왕 때 들어와서는 전경전사가 비로소 등장하거니와,경학교육을 전담한 종래의태학교육은 신설된 22부의 하나인 사도부가 담당하게된다. ○실용교육도 병행 이 사비시대는 유교주의교육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시기이기 도 하다.특히 상류계층은 태학에서 정규교육을 받아 학문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을 것이다.따라서 이들은 주요관직에 등용되었다.중국의 군현제와 흡사한 첨노의 지방장관은 모두 상류층 자제로 충원했다는 기록이 「양서」백제전에 나온다.백제가 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해 4세기 후반에 창설한 태학교육이 6세기에 만개한 것으로 보면 옳다. 오경박사나 전경박사로 불리는 학관 말고도 전업박사가 나타나는 것도 이때다.전업박사의 존재는 AD 553년(성왕 31년)「백제가 왜국의 요청에 따라 다음해에 의,역,역등의 박사를 일본에 보내주었다」는 「일본서기」기록에서 드러나고 있다.백제는 경학 위주의 관학성격의 교육을 실용교육과 병행하는 방법으로 발전시켰다.따라서 6세기 후반 백제의 교육은 의학을 포함한 여러 전문분야로 확대된다.이는 전통경학이 사회전반에 스며들어간지 오래여서 새로운 실용학문을 추구한 일종의 학술적 경향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이같은 백제의 선진교육은 일본의 고대학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다만 1세기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백제교육제도가 뒤늦게 일본에서 복제되어 나타나고 있다. ◎삼국의 유고/고구려·백제선 교육·통치와 직결/신라는 지리적 여건상 2백∼3백년 뒤져 유교는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나라들이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특히 우리나라는 중국과 인접한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유교문화를 일찍 수용했다. 우리나라에 공자의 사상을 집대성한 유교가 부분적으로 처음 들어온 시기는 대략 BC 3세기경 위만조선과 한사군시대로 여겨진다.이 시대의 유교는 예의에 입각한 사회정의와 윤리적 정절을 강조하는 이른바 원시유교다.다시 말하면 중국 은대의 상고신앙을 중심으로 한 종교문화와 주대의 인문주의적 예제문화가 유입된 것이다. 고대국가 가운데 맨 먼저 유교를 수용한 나라는 고구려다.고구려 유교를 자세히 전하는 자료는 없지만 몇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유교문화를 가늠할 수 있다.그 하나가 사서의 편찬인데,「유기」와 「신집」을 국가사업으로 찬수했다.그리고 교육제도의 정립은 가장 큰 고구려 유교문화의 소산으로,오늘날의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 태학을 소수림왕 2년(AD 372년)에 설립한 것이다. 백제는 알려진대로 고구려계가 남하하여 세운 고대국가다.따라서 건국 초기부터 유교체제의 통치력을 갖추었다.그 뿐이 아니라 국가차원의 종묘제도 방식을 수용함으로써 유교의 교사지례를 실천했다.이는 온조왕이 창업 6년만에 동명왕묘를 세웠다는 것과 후대의 왕들이 즉위하는 해에 친히 제사를 지냈다는데서 나타나고 있다. 신라의 경우는 한반도 동남쪽에 외지게 자리잡은 데다 중국과도 거리가 멀어 유교수용시기가 늦다.법흥왕 재위시기인 AD 520년에 가서야 율령을 반포하고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기에 이른다.그리고 「국사」편찬은 진흥왕 6년(AD 545년),국학은 삼국통일 후인 신문왕 2년(AD 682년)에 설치하는 등 유교문화가 고구려와 백제보다 2백∼3백년 뒤늦은 시기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 “칙칙 폭폭” 기적소리를 웨딩마치로/증기기관차서 결혼식 올린다

    ◎서울∼의정부 교외선 곧 배차… 신청문의 쇄도 달리는 열차안에서 기적소리를 들으며 낭만적인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일반예식장에서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치르는 결혼식대신 신랑신부와 하객들이 함께 증기기관차를 타고 짧은 여행을 하면서 예식을 올리는 「결혼열차」가 9월부터 운행된다. 철도청이 지난 21일부터 토·일요일과 공휴일에 운행하고 있는 서울∼의정부간 교외선 증기관광열차에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객차를 새로 연결해 운행키로 한 것이다. 예식장으로 쓰일 객차의 내부구조는 일반객차와는 완전히 다르다.좌석이 전철처럼 양쪽으로 길게 배치되고 하객들이 선채로 결혼식을 지켜볼 수 있도록 천장에 손잡이를 설치했다.객차 맨 앞쪽에는 주례용단상과 사회자 탁자,양가의 부모가 앉을 수 있는 좌석이 고정식으로 설치돼 있고 객차 뒷부분에는 칸막이로 신랑·신부대기실을 따로 마련했다. 추억과 낭만의 기차결혼식을 올리는데 드는 비용은 48만원.그러나 이 비용은 예식장객차을 빌리는 값이 아니라 신랑신부와 하객들의 왕복열차운임료이다.이 객차에 탈 수 있는 하객은 좌석과 입석을 합해 1백명정도.하객이 많을 경우 증기기관차 바로 뒤에 결혼객차를 연결하여 뒤칸에서도 결혼식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한다. 결혼열차는 매주 토요일 서울역에서 하오1시40분에 떠나며 의정부역에서는하오7시40분 출발한다.일요일은 서울역 상오10시10분,의정부역에서 하오5시 출발한다. 결혼예식신청을 접수하고 있는 한국철도동호회의 한 관계자는 『틀에 박힌 답답한 예식분위기에서 벗어나 기억에 남는 결혼식을 하고 싶어하는 신세대 예비부부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 당4역배석 청와대 주례회동 의미

    ◎당 친정 강화… 지도체제 「잡음」 차단/당무 총론보다 각론 세세히 언급/김 대표 위상 「모종의 변화」 관측도 김영삼대통령이 27일 민자당 김종필대표와의 주례회동에서 처음으로 4역을 배석시킨 것은 당 운영에서의 새로운 변화를 읽게 해주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날 당면한 현안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시했다.김대표와 4역들로부터 당무보고를 받은 뒤 당부한 내용은 그전처럼 다분히 총론에서 그치지 않고 세부적인 각론에 관한 것이었다.현안들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진단하고 해결책을 직접 제시했다.회의도 김대통령이 스스로의 구상을 얘기하면서 의문나는 점이 있으면 4역들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대통령은 회의에서 당무위원및 시도지부위원장 개편에 대해 『당의 현대화와 체질 개선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단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어 이번 정기국회에서 새해 예산안의 흑자편성과 공정거래법에 대해 그 중요성을 역설하고 반드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세계무역기구(WTO) 가입안의 국회 비준 처리문제를 포함,헌법재판소장의 인선,가뭄피해 극복,기업체의 공산품 인하 등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 했다.모두가 관례인 「말씀자료」도 없이 진행됐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변모는 당과 국회문제를 직접 챙기려 하는 뜻을 엿보이게 한다.내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해석하기에는 다소 성급한 측면도 있겠지만 새로운 당 운영스타일을 선보인 것만은 분명하다.이런 회의를 앞으로도 계속할 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하지만 최소한 중요현안이 있을 때는 종종 열릴 것으로 전망하기에 별로 무리가 없는 것 같다. 김대통령이 이날 회의를 주재한 이유에 대해 문정수사무총장은 두가지 측면으로 설명했다.당의 체제정비가 마무리됨에 따라 총재로서 결속과 새 출발의 계기를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라는 것이 첫째다.정기국회를 앞두고 WTO 가입안의 처리문제등 산적한 현안을 차질없이 해결하도록 미리 점검한 의미도 있다고 했다. 이같은 표면적인 이유와 함께 최근 여권내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미루어 볼때 자신이 직접 「교통정리」를 해야할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도 풀이된다.김대통령은 최근 「4인방체제」등이 언론에 부각되자 진노했다는 후문이다.특히 지도체제의 개편설등 총재의 의중과 합치되지 않는 일부 인사들의 무절제한 발언으로 비롯된 여권내부의 분열상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뜻도 있는 것 같다.김대통령은 그러나 이같은 사안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완전히 무시했다.『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의를 자제하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이 이처럼 당무를 직접 챙기고 나섬으로써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김대표의 위상변화 여부다.김대통령은 이날 『당 간부들이 김대표를 중심으로 해나가라』고 당부했다.여느 때처럼 김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말이다.회의가 끝난 뒤에는 김대표와 단독으로 회동함으로써 그의 위상이 약화되는 것처럼 비쳐지지 않도록 배려했다.문정수사무총장과 이한동원내총무는 『오늘 회의는 김대표의 위상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일축하고 『당 조직 개편후 잘 해나가라고 당부만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대표의 위상이 전처럼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도지부 위원장에 실세급 중진들을 포진시킨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란 풀이도 있다.
  • 현안 신축대응… 정국운용 무리없게/김 대통령의 휴가구상은

    ◎“UR비준 8월” 원칙속 방법·시기엔 유연/남북문제 「특단의 조치」 구상 가능성 높아 김영삼대통령은 원칙을 잃지않는 「유연한 대응」을 정국대처방안으로 제시했다.특유의 정면돌파에 유연성의 외피를 새로 입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정국현안에 대한 당의 역할과 인식을 보다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휴가에서 돌아온 김대통령은 8일 8·2보선의 패배에 따라 이슈화된 몇가지 정치현안에 대해 「지도지침」을 제시했다.이날 하오와 상오에 따로 가진 김종필민자당대표 및 이영덕국무총리의 주례보고자리를 통해서다.우루과이라운드(UR)협상결과 비준안의 처리문제에 대해 김대통령은 『기존의 당정간 계획이었던 8월처리를 희망하고 있지만 그 방법과 구체적인 시기는 국회총무단에 일임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또 당정개편문제에 대해서는 『이유가 없다』는 비교적 간단한 뜻이 전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8·2보선에서 여권이 생각했던 것은 최소한 2승1패였다.그것은 상식적인 기대치였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 기대치가 1승2패로결론지어짐으로써 여러가지가 헝크러질 수밖에 없었다.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려던 UR 비준안에 대해 새로운 상황논리를 내세운 반대의견이 개진됐고 보선참패에 대한 당정개편론이 제기됐던 것이다.김대통령의 휴가중에 일어났던 이런 상황의 변화로 휴가뒤에 제시될 대통령의 정국운영방향이 어떤 것이냐에 대단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김대통령의 상표화한 정면돌파를 택할 것인가,아니면 상황논리에 따라 상황의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인가를 놓고 분분한 의견들이 나왔다. 김대통령은 그 중간형태인 원칙을 지키되 무리하지 않는다는 지침을 당정에 제시했다.UR 비준안은 8월에 처리를 하고 부수법안 57개는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옳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다.정기국회로 비준안을 가져가면 야당의 예산안연계작전에 걸려 모양이 좋지 않고 그 헝클어진 모양새가 내년 지방자치제선거로 연결되면 장기정국운영 구상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다.김대통령은 그러나 야당의 기세가 올라있고 보선참패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여론의 흐름을 감안할 때 8월임시국회에서의 비준안처리는 격렬한 야당의 저항을 불러 더 모양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당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원칙은 8월이지만 구체적인 전략과 시기를 총무단에 일임하는 방식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당정개편은 원래 대통령의 생각에 들어있지 않았다.청와대의 설명은 당직자들이 기자들의 유도신문에 걸려 당정개편이 있을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것이다.시기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이원종정무수석은 8일 보선문책인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의 3일 발언이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주돈식대변인은 이날 『다음은 대통령의 말』이라고 전제,김대통령이 「8·2보선은 만족하지는 않지만 합격선 이상을 받았다.공명성과 투명성면에서 과거선거에 비해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획기적인 진전을 이룩한 선거를 문책하게 되면 공명선거를 하지말자는 이야기가 된다는게 이정무수석의 설명이다.때문에 보선문책을 위한 당정개편은 없다는 것이다.어차피 올연말이나 내년초에 집권중반기를 위한 큰 구상에 따라 대대적인 여권개편을 해야하는 것이 대통령의 처지이다.지금은 시기가 아닌 셈이다. 김대통령의 휴가구상은 정국전환구상이 아니라 남북관계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주대변인은 『대통령은 청남대에 있는 동안 통일부총리,외무장관,비서실장,외교안보수석의 순서대로 많은 통화를 가졌다』고 말해 주관심사가 남북문제에 있었음을 시사했다.손명순여사말고는 가족을 동반하지 않았다고 설명함으로써 휴가중에 남북문제에 대한 특단의 구상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시사했다.이 구상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 “방재만전… 피해 최소화”/김 대통령 지시

    김영삼대통령은 8일 북상하고 있는 초대형 태풍 제13호 더그에 대해 만반의 대비책을 강구하라고 이영덕국무총리에게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이총리로부터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공무원과 온 국민이 힘을 합쳐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한 대비책을 점검하는등 만반의 대책을 강구해 대처하라』면서 『특히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므로 안전에 초점을 맞춰 대비책을 강구하라』고 시달했다. 이에 따라 이총리도 『각급 기관에서는 단계별 대처계획을 수립,태풍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라』고 당부하고 『태풍정보의 신속 정확한 전파와 동시에 국민계도활동을 강화하여 피해위험지역 주민과 등산객,수영객등이 안전한 지역으로 조기 대피할 수 있도록 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 “「WTO가입 비준」 처리 당에 일임”

    ◎“보선문책 당정개편 없다”/김 대통령,김종필대표 당무보고 받고 지시 김영삼대통령은 8일 청와대에서 김종필민자당대표로부터 주례당무보고를 받고 『WTO(세계무역기구)가입 비준동의안은 당에서 책임지고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또 『비준동의안 처리시기및 방법도 당에 일임했다』고 손학규부대변인이 전했다. 이에 따라 민자당은 비준동의안 처리를 원내총무단에 일임,임시국회의 소집시기와 동의안처리방법 등에 대해 야당과 협상을 벌여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비준동의안처리에 반대방침을 고수하고 있는데다 민자당 안에서도 이한동원내총무등 당직자들이 8월 처리를 꺼리고 있어 이달안에 임시국회가 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또 당정개편문제와 관련,『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혀 당정개편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8·2 보궐선거」결과에 대해 『깨끗한 선거가 실시되었고 중앙당이 개입하지 않고 공명선거의 정신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면서 『보궐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김 대통령,휴가마치고 오늘 귀경/당정개편 관련 구상 주목

    김영삼대통령은 5박6일동안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일요일인 7일 서울로 돌아와 8일 하오 청와대에서 김종필민자당대표와 주례회동을 갖는다. 김대통령은 김대표와의 주례회동에서 우루과이라운드(UR)비준안 처리를 위한 8월 임시국회 소집여부와 당정개편문제등 정치현안에 대한 구상을 밝힐 것으로 예상돼 회동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김대표와의 주례회동에 앞서 8일 상오 이영덕국무총리로부터 주례보고를 받는다.
  • 마이클잭슨­리사 프레슬리 결혼/도미니카 변호사,“지난5월 주례”

    【산토 도밍고(도미니카공화국) AFP 연합】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35)이 전설적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26)와 지난 5월 도미니카의 라 베가에 있는 현지 변호사의 집에서 간소한 결혼식을 올렸다고 이 변호사가 현지 신문들에 10일 공개했다. AFP통신도 도미니카 정부의 직인이 찍힌 두 사람의 결혼증명서 사본을 입수했는데 이 증명서에는 신랑신부의 본명과 양측 부모 성명,미국내 주소와 미국 여권번호등,그리고 이 두 사람이 라 베가시 공증담당관 프란시스코 알바레스 페레스 변호사(35)의 주례로 결혼한 사실이 기재돼 있다. 알바레스변호사는 현지신문 리스틴 디아리오와 엘 나시오날지를 통해 자신이 지난 5월26일 상오10시 라 베가에 위치한 자기 집에서 15분에 걸쳐 두 사람의 결혼식을 직접 올려줬다고 밝히고 이들이 소니 레코드사가 제공한 비행기로 라 로마나에도착,흰색 미니밴을 타고 자기 집까지 왔으며 결혼식 때 잭슨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검정색 예복을,프레슬리량은 어깨끈이 없는 몸에 꼭 들어맞는 베이지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현지 법에 따라 결혼예식이 통역을 곁들인 스페인어로 진행됐고 신랑신부가 금으로 만든 결혼반지를 교환했으며 자신의 아내와 다른 변호사들,그리고 이브달링과 토머스 키오 등 두 명의 미국인이 증인으로 참석해 결혼식을 지켜 보았다고 밝혔다. 잭슨은 이번이 초혼이지만 프레슬리는 지난해 이혼한 음악가 대니 키오와 사이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 소년원생 2명 난동/교사·직원 6명 다쳐

    【부산=김정한기자】 6일 상오 6시45분쯤 부산시 북구주례동 부산구치소 소년원 감방에 수감중이던 김모(19·강도상해등 전과2범),공모군(19·특수절도등 전과3범)등 2명이 난동을 부린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김종국 교사가(37) 이들이 휘두른 흉기에 머리와 어깨등을 맞고 전치3주의 상처를 입었으며 말리던 직원 6명이 다쳤다.
  • 강택민주석 방한 올안엔 어려울듯/중외교부대변인

    【북경=최두삼특파원】 강택민중국국가주석은 현재까지는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없다고 중국외교부가 7일 공식적으로 밝혔다. 심국방 중국외교부대변인은 이날 가진 주례브리핑에서 남북정상회담의 확정등 남북관계의 해빙 무드와 관련,강주석의 연내 남북한순회방문 가능성을 질문받고 『현재까지는 강주석의 한국및 북한 방문계획이 없다』고 잘라말함으로써 그의 연내 방한계획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심대변인은 이어 『중국정부는 현재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현재의 남북대화가 계속돼 더 큰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의장에 황낙주부의장/민자 내정/부의장 이춘구의원 유력

    민자당은 오는 28일로 임기가 끝나는 이만섭국회의장의 후임으로 황락주부의장을 내정한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부의장으로는 이춘구의원과 김용태의원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의원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자당의 김종필대표는 이날 청와대에서 김영삼대통령과 주례회동을 갖고 이같은 내용의 제14대 국회 후반기 의장단및 상임위원장단 인선안을 보고,25일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는대로 발표할 예정이다. 신설되는 정보위원장에는 정재문·황명수·정석모의원이 검토되고 있으며 정재문의원이 유력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민주선 홍영기의원/국회부의장에 내정 민주당은 23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14대 국회 후반기를 이끌 민주당몫의 국회 부의장에 홍영기의원(74·전북 임실 순창)을 내정했다.
  • 전국구후보 20%/민자,여성에 할당

    민자당은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제15대 총선에서 전국구후보의 20%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한편 지역구후보로도 여성을 적극 발탁할 방침이다. 민자당 총재인 김영삼대통령은 23일 김종필대표와의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박범진민자당대변인이 밝혔다.
  • 경제팀 컬러 일신… 경기회복 “견인”/정부총리 취임 6개월 성적표

    ◎특유의 리더십… 실세각료로 부상/“정책 조정역할 미흡” 비판론 대두… 물가 복병 「돌아온 장고」­정재석 경제부총리가 문민정부 2기 경제팀장으로 취임한 지 21일로 꼭 6개월을 맞는다.취임 초 파격적인 언행으로 과천청사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킨 정부총리는 반년이 지난 지금 경제팀의 컬러와 분위기를 일신하는데 일단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또 실물경제 관리에도 비교적 좋은 성적을 남겼다.올 상반기 성장이 8%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생산·투자·소비활동 등 경제 전반이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 팀의 장악력이 미흡했던 전임자들과는 달리 정부총리는 특유의 가부장적 리더십을 발휘한다.이제는 어느 각료도 그의 관록과 권위에 도전하지 못한다.특징적인 현상은 과천청사의 아카데미즘 도입이다.재입각 전까지 외대교수를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경제부처 토론회를 열어 경제부처의 일체감 강화를 시도했다. 이른바 「소신파 차관」들의 백화재방식 토론을 유도하는 등 이기주의가 심한 경제부처에 전에 없이 학구적인 분위기를 북돋웠다. 차관 토론회를 보고 난 뒤 정부총리는 과거 「박정희 경제스쿨」에서 기획원 차관이던 자신과 김용환재무·최각규농림차관 등 잘 나가던 경제관료들의 행진을 연상하는 듯했다.지난 번 토론회도 과천청사를 흡사 「정재석 경제스쿨」로 가꿔 경제중흥의 새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엿보인다.한 걸음 더 나가 대표적인 엘리트 부처인 기획원과 재무부 관료들의 인사교류까지 생각한다.부처간 장벽을 훨씬 좁히겠다는 생각이다. 정부총리의 미세하지만,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실세각료로서의 부상이다.경제대통령을 천명한 김영삼대통령과 취임 후 줄곧 주례 독대를 통해 남다른 교감을 유지하고 있다.더욱이 이회창 전총리의 퇴임 후 정부내 「스타플레이어」의 상대적인 빈곤으로 그는 대통령에게 몇명 안되는 참모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대통령의 과천방문을 월례화한 것도 그의 조언이며 경제외적인 문제에도 가끔 의견을 내놓는다.또 삼성자동차 허용문제로 민심이 흉흉한 부산을 방문,지역 발전대책이라는 누구도 예상 못한 카드를 던져 김대통령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청와대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약점이라면 정책조정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지난 봄 우루과이 라운드(UR)이행서 수정문제를 비롯해 농안법 파동,금융기업 전업군 도입을 둘러싼 부처간 이견에 이르기까지 부총리의 조정역할이 없었다는 것이 비판론의 골자이다.공기업 민영화나 사회간접자본(SOC)확충을 위한 민자유치 촉진법 제정에 따른 경제력 집중문제,그리고 최근 고개를 든 물가오름세도 안심할 수 없는 복병이다. 이에 정부총리는 『과거 장기영,김학렬부총리 같이 호령하는 경제총수의 시대는 지났다』며 자신은 목소리를 낮추되,부처별 역할분담을 통해 공을 해당 부처에 돌리겠다고 밝힌다.일을 무작정 벌이며 앞에 나서기보다는,자율성을 최대한 살리며 뒷전에서 궂은 일을 챙기는 팀장에 만족하겠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정부총리 취임 초에는 「말의 성찬」에 비해 성과가 적다는 의견도 있었으나,전임자들과는 달리 이상이 높고 정치감각이 탁월해 이를 현실과 조화시키는데 성공한다면적어도 경제팀장으로는 장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UR비준 동의안 임시국회때 처리

    정부와 민자당은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비준동의안을 이달말쯤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김영삼대통령과 민자당의 김종필대표는 16일 하오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범진대변인은 청와대 주례회동이 끝난뒤 발표를 통해 『농어촌발전대책이 확정됐고 농민들도 UR비준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공감하고 있어 비준은 더이상 피할 수만은 없다』면서 『이번 임시국회 회기안에 처리를 목표로 오는 22일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보안불감증” 우려와 자성의 소리/민자 당무회의 열띤 토론2시간

    ◎국민경각심 일깨우는 조치 소홀/유사시 행동지침 마련에도 등한 10일 민자당의 당무회의에서는 한반도위기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안보불감증」을 우려하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아울러 북한핵문제의 대응미흡과 비상시 국민행동지침의 준비소홀등 집권당의 「직무유기」에 대한 질책이 이어졌다.회의가 매주 한번씩 열리다가 공교롭게도 지난달 11일이후 한달만에 재개된 탓도 있어서인지 뜨거운 논쟁이 2시간이나 회의장을 달궜다. 먼저 김수한당무위원이 『김일성이가 쳐들어오는 자체보다 국민들의 무정부적인 혼란이 더 무섭다』고 말문을 열였다.집권당이 유사시에 대비해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고,국민을 향도해야 할 책임을 저버리고 있다는 성토였다.김위원은 이어 일본에서 모든 국민들이 지진에 대비해 비상식량을 준비하고,한반도전쟁 발발시 일본으로 몰려올지도 모르는 난민대책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물론 위기상황이 너무 고조되면 수출감소등 경제적 부작용도 있겠지만 국가의 존폐보다 우선할 수는없다는 것이었다. 정순덕의원은 『전쟁이 시작돼 전기·수도가 끊기면 국민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고 기본적인 국민계도조차 않고 있는 책임을 지도부에 물었다.반상회등 일상조직에서 비상시 행동요령정도는 주지시켜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이어 지난해말 당정개편 뒤 침묵을 지켜오던 김덕용의원도 6개월만에 당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김의원은 『현재의 위기국면에서 우리가 선택할 대비책이 무엇인지를 정치권으로서도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그는 유엔의 대북제재 때 예상되는 여러 상황을 상정했다.북한이 NPT(핵안전협정) 또는 유엔을 탈퇴하거나 아예 핵보유선언을 하는등 사찰의무를 면제받기 위한 다른 국면을 만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또 북한이 「과거」를 일체 묻지 않는 대신 앞으로의 핵투명성을 보장하는 제의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이때 미국이 한쪽을 선택하면 한국이 배제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이같은 여러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선택과 대비책에 대해 정치권으로서도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의원은 그러나 『정치권이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에 비례해 적정하게 대응했는지 의문』이라고 정치권의 무능력을 탓했다.일부 운동권학생들로 인한 국론분열,태평성대마냥 국정조사등으로 비롯된 정쟁등에 대처하지 못하는 정치권 때문에 한국을 보는 국제인식이 냉소적이기까지 하다고 덧붙였다. 이치호당무위원은 『이북은 남쪽을 일종의 인질로 삼고 있다』고 현위기상황을 진단한 뒤 『지금은 무슨 계파니 할 것이 아니라 당이 똘똘 뭉쳐야 할 때』라고 단합을 강조했다.이어 『당집행부가 대통령을 실질적으로 모실 수 있는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정치력복원을 통한 위기타개를 제시했다.이위원은 그러면서 『주례회동에서 김종필대표가 대통령에게 무슨 얘기를 하는지 국민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다』고 당의 의사전달체계의 개선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대표는 『북한핵문제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당으로서는 제한이 있다』고 전제하면서 민자당이 위기관리에 절대 소홀함이 없음을 강조했다.김대표는 『당이 선두에 설 일이 있고 앞서가서는 안될 일이 있다』고 핵문제에 관한 한 「정부책임 아래 당지원」이라는 역할분담을 분명히 했다.
  • 뒤늦은 국가체제 정비(백제를 다시본다:14)

    ◎5세기말에야 마한 완전 통합/부여족 남진정복… 토착세력과 갈등/방·군·성 지방행정망 갖춰 중앙통치/남북으로 긴 영토 사회통합 장애… 군정적 지배 의존 고구려나 신라에 비하면 백제의 국가형성 과정은 자못 다르다.주지하듯 백제는 북으로부터 남쪽으로 이동해온 부여주의 일파가 마한사회의 북방인 현재의 서울시 일대에서 지배권을 확립한 일종의 정복국가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부여족의 이동 정주를 계기로 하여 비로소 백제국가가 형성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마한토착세력에 의해 건국되어 발전 도상에 있던 백제 소국을 부여족이 정복한 것인지 비밀의 장막에 가려져 있다.그것은 어쨌든 백제국이 마한의 땅에서 형성된 부여족의 정권이라는 건국사정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정복자집단과 토착세력집단 간의 이중성이랄까 괴리현상이 심각했던 것으로 짐작된다.백제의 정치·사회사는 바로 이같은 이중성을 극복하기 위한 진통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백제가 직면한 또 다른 난관은 그 지형적인 특수성이었다.마한의 영역은 서해안을 끼고남북으로 길게 뻗쳐 있었으며 그 한가운데를 차령산맥과 노영산맥이 달리고 서해로는 금강과 영산강이,남해로는 섬진강과 탐진강이 각기 흐르고 있어 여러개의 고립된 지형구를 형성하였다.그 결과 마한사회는 소백산맥 동쪽에 펼쳐진 진한·변한사회에 비하면 현저하게 지역적 통일성을 결여하게 되었다.더욱이 서해안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서 마한의 50여개 소국들은 연안항로를 따라 한반도 서북지방에 설치된 중국군현인 낙낭군이나 대방군과 자유로이 접촉했다.이는 백제 주도하의 마한세력 통합을 장기간 방해했다.신라가 진한 12개국을 비교적 단기간내에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폐적인 자연환경에 힘입은 바 컸었다.그런데 마한사회는 각기 독자적인 지역성을 고집하는 다양한 지역사회를 포괄하고 있었으며 바로 이 다원적인 지역적 구성이 백제의 정복자들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지리적 특수성 한몫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백제의 마한정복을 시조 온조왕 27년(AD9년)때의 일인양 기술했으나 이는 엄정한 사료비판을 필요로 하는 대목이다.마한의 최북방에 해당하는 현재의 서울에서 국가형성에 성공한 백제가 남해안에 이르는 마한사회 전체를 호령하게 된 것은 대체로 4세기 후반 근소고왕 때의 일로 짐작된다.다만 마한을 정복했다고 해서 백제가 곧바로 한반도 서남해안지역에까지 통일된 지배망을 구축할 수는 없었다.최근 전남지방의 고분연구 성과를 토대로 하여 추측해 볼 때,백제가 이 지방의 마한세력을 명실공히 통합하여 동질화의 과정을 밟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1백년쯤 뒤인 5세기 후반,즉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천도(475년)한 이후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사실 5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백제 지배층의 묘제인 횡혈식석실분은 영산강유역까지는 확대되지 못하고 있었으며,그대신 이곳에는 옹관묘(독무덤)가 여전히 유행했다.이 지역에서 옹관묘가 석실분으로 바뀌는 시기를 고고학 연구자들은 대체로 5세기말에서 6세기초로 보고 있다. 마한영역을 통합한 뒤 백제조정이 들고 나온 통치철학은 중국의 고전인 「주례」에서 많은 것을 차용한 느낌이 든다.이 「주례」는 중국전국시대 말기에 장차 출현하게 될 대제국의 정치적 체계를 위한 일대 청사진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거기에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포괄하는 통일적·체계적 이론이 제시되어 있다. 사비(부여)시대 재상을 선출할 때 후보자 3,4명의 이름을 적어 밀봉하여 바위 뒤에 두었다가 얼마뒤 개봉하여 이름 위에 도장이 찍혀 있는 사람을 뽑았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는 금강 대안의 규암면 울성산성 밑 호엽사터의 바위를 정사암 혹은 천정대라고 하는데 이 「천정」이란 말 자체가 「주례」에서 나온 것이다.즉 이 책의 천관 가재조에 의하면 천관은 3백60관을 총섭하는 최고의 관직이다.그러니까 천정대란 바로 그같은 천관의 정사를 수행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주례」의 통치철학 백제의 중앙정치제도를 보면 5,6명의 좌평이 재상으로 내관·외관을 합친 22개의 관청을 지휘 감독했는데 그 관청의 이름 중에는 사도부·사공부·사구부 등 「주례」에서 따온 것이 적지않다.실은 좌평이란 명칭 자체가 「주례」 하관 사마조의 「이좌왕,평방국」(왕을 보좌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이라 한데서 취한 것으로 생각된다.문무백관의 관등은 좌평 이하 16등급으로 정연한 체계를 이루었는데 그 명칭 또한 매우 우아한 한식으로 되어 있다.이는 토착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고구려·신라의 관등 이름과는 큰 차이가 난다. 한편 지방통치조직은 국가권력이 강대해짐에 따라 차츰 정비되어 갔다.한성시대만 해도 전국의 각 지역세력의 대표자를 통해 성과 읍을 간접적으로 지배했다.근초고왕의 대정복사업이 성공리에 완수된 뒤 백제는 전국을 22개의 행정구역(당노)으로 나누고 지방관을 보내어 통치했다.이같은 담로체제는 공주로 천도하면서 더욱 충실해졌던 것으로 짐작된다.그러나 백제가 정연한 통치망을 구축하게 되는 것은 538년 부여로 천도한 뒤의 일이다.김동용봉봉래산향로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고도의 기술을 바탕으로 축적한 국력이 크게 작용했다.이 사비시대에 백제는 고사성(전북 고부)을 중방으로 하여 전국을 크게 5개 방으로 구획하고 37개 군을 두어 2백개 내지 2백50여개에 달하는 성을 장악했다.이 성은 후일의 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삼국중 가장 취약 이같은 방·군·성체제가 확립됨에 따라 국가권력은 지역사회에 어느정도 침투할 수 있었다.다만 백제의 지방지배는 멸망의 순간까지 현저하게 군사적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민정을 게을리 한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대체로 보아 군정적 지배로 일관한 듯하다.이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백제사회의 구성이 본디 이중성을 띠고 있는 데다가 지역공동체의 세력이 너무나 강고하여 국가권력이 밑바닥까지 파고들어가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쨌든 이는 고구려나 특히 신라의 경우와 비교할때 백제의 커다란 취약점이 아닐 수 없다.신라는 지역사회의 말단인 촌에까지 도사와 같은 행정관을 파견한다거나 혹은 지방세력가인 촌주에게 관등(이른바 외위)을 준다거나 하여 이들을 최대로 지배망에 포섭한 기반 위에서 삼국항쟁의 대열에 뛰어들었던 것이다.백제가 신라에 패망한 원인을 통치체제 면에서 찾는다면 바로 이같은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패망후의 마한/나주지역 중심 지방호족 할거/고유의 독무덤·금동관 출토가 증거 백제가 마한사회를 통합하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걸렸다.북방으로부터 남하한 백제가 비록 정복국가의 기틀을 잡았을지라도 토착세력을 쉽사리 편입시키지 못했다.이같은 정황은 오늘날 전남북지역에서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고대묘제를 통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지난 1917년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된 전남 나주군 반남면 신촌리 독무덤떼(옹관묘군)가운데 하나인 제9호분이다.마한의 전통묘제이기도 한 5∼6세기경의 이 무덤에서는 큰고리칼(환두대도),금동관,금동제신발(김동식리)등의 껴묻거리가 출토되었다.금동관은 9호분 안에 묻힌 8개의 독 가운데 가장 큰 이음독(합구식옹관)머리부분에서 나왔다.맞새김의 초화무늬 솟을장식(입식)을 단 외관안에 모자가 붙은 수준급 금동관으로 평가되었다. 이같은 유물은 5∼6세기경 까지도 영산강유역에는 막강한 토착세력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다시 말하면 나주지역 중심의 당시 영산강유역은백제 중앙정권의 통치권이 완전히 미치지 못한 가운데 지방호족들이 어느정도 할거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따라서 기층문화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묘제 역시 마한고유의 독무덤이 계속 이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영산강유역 나주지역에 백제의 묘제가 수용되는 시기는 6세기말∼7세기초다.이 시기는 사비시대에 해당하는데,백제 지배층의 묘제인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 나타난다.지난 1978년 당시 전남대 최몽용교수(현 서울대)가 발굴한 전남 나주군 반남면 대안리 제3호분이 이 시기의 백제계통 무덤이다.돌방과 널길(선도)을 갖춘 이 무덤에서는 긴목항아리(장경호),바리모양토기(발형토기),은장도조각,금실,쇠못 등이 출토되었다. 이렇듯 서남해안에 가까운 마한지역에는 백제의 발길이 더디게 미쳤다.
  • 중 외교부선 부인

    【북경=최두삼특파원】 중국정부는 중국이 남북한정상회담을 중재하고 있다는 일부 보도를 부인했다. 오건민 중국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상오 북경시 국제구락부에서 가진 주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남북한정상회담 중재여부와 관련,『남북한간에 대화채널이 있는 만큼 중국이 중재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부인하고 『중국정부는 남북한이 직접 건설적인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중개수수료 현실화… 매매참가인 늘려야/농안법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중매인 순수중개물량 확대방안 시급/상인들 세원노출 꺼려 중개의뢰 기피 농수산물의 유통구조 개선이 또 다시 시급한 과제가 됐다.개정된 「농안법」의 시행을 6개월 유보함으로써 일단 「위기」는 벗었으나 중매인에게 지금까지의 관행대로 판매행위를 허용하는 쪽으로 법이 재개정되지 않는 한 상황은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은 6개월 동안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주무부처인 농림수산부도 이렇다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뒤 전반적인 대책을 세우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을 정도이다. 해결책은 현재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물량의 80%가 중매인들의 판매에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6개월 뒤 중매인들이 중개만 한다면 이 물량은 다시 유통통로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따라서 중매인들이 순수하게 중개하는 물량을 지금의 20%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중매인들의 그릇된 「이기주의」도 하루빨리 버려야한다고 강조한다.이번에 중매인들은 잘못된 유통구조를 바꾸는 데 일조하기는 커녕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집단 이기주의를 드러냈다. 농림수산부는 중매인들이 적극적으로 중개행위를 하기 위해 4% 이내인 현행 중개 수수료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중매인의 연간 거래 규모가 5억원 수준이고,중매인당 2∼3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어 중개만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힘들다고 보고 있다. 산매상들의 거래관행도 문제이다.세원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매인의 중개에 의한 매입을 기피하는 실정이다.때문에 무자료 거래가 관행이 되고 있다.이에 대해 농림수산부의 한 관계자는 『중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2천5백만원인 현행 중매인의 월 중개한도를 높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수산물의 포장화·규격화가 돼있지 않은 것도 산매상이 중개를 통한 매입을 기피하는 이유중의 하나이다.부패하고 변질되기 쉬운 농수산물의 특성상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 구입하기 십상이다.따라서 농수산물의 포장화·규격화도 산매상이 믿고 중매인에게 의뢰할 수 있는 필수적인 경매조건이다.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거래관행을 바로 잡는 것도 해결할 과제이다.경매사들이 도매시장의 지정도매법인에 소속돼 경매에 참가하는 한 경락가 조작 등의 불공정한 경매행위는 늘 도사리게 마련이다.농수산물을 경매에 붙이는 지정도매법인과 경매사가 결탁,경락가를 높일 경우 경락가의 4% 이내의 수수료를 주는 산매상으로선 이를 꺼릴 수 밖에 없다.「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다. 이밖에 현재 중매인과 함께 경매에 참여하는 매매참가인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지금은 일부 산매상과 가공업자 등만 경매에 참가,도매시장 경매량의 9%만 소화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앞으로 남은 6개월 동안 빈틈없는 대비로 유통과정이 새롭게 정비돼야 한다. ◎농안법 갈등… 삐걱거리는 당­정/「현실」 앞세워 법재개정 추진/정부/“독단적 결정” 분노… 문책 주장/민자 「분노와 허탈감」.정부가 「농안법」의 시행을 6개월간 유보하기로 결정을 내린 지난 4일 이후 민자당의 표정은 이런 표현으로 집약된다. 농안법 집행이 개혁수행의 관건인데도 이를 주장한 당이 현실논리를 앞세운 정부에 밀렸다는 점에서는 허탈감과 자괴감이,또 최종 결정과정에서 소외돼 결과적으로 농림수산부에 「당했다」는 점에서는 분노를 느끼고 있다. 지난 4일 이영덕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법집행의 당위성과 당의 의견을 설명했던 이세기정책위의장은 6일 『당에서는 결코 유보에 동의한바 없으며 법의 재개정도 검토할 뜻이 없다』고 단언했다.이의장은 이어 『정부차원에서 준비를 하지않아 이 지경에까지 오게 됐다』면서 『이번 사태의 실무적인 책임소재를 규명해야 될 것으로 본다』고 관련부처 담당자들의 인책문제를 제기했다. 이의장은 나아가 정부가 또 다시 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의 재개정을 추진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물음에 『입법권한이 국회,즉 당에 있음을 유념해 달라』고 실력저지 의사까지 밝혔다. 김종필대표도 이날 상오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이같은 당의 분위기와 시각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더 이상 당이 소외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자당은 5월에 접어들면서 어느 때보다 의욕과 자신감에 차있었다.청와대로부터 당의 역할과 위상제고에 대한 언질을 받고는 다소 들뜬 상태에서 정부의 개혁추진을 강력히 뒷받침하겠다면서 의지를 가다듬어 왔다.특히 신임 이총리가 당사를 방문,김대표등 핵심당직자들과 만나 당과 정부 사이의 원활한 정책조율및 협조를 다짐한 것이 바로 지난 2일이었다. 따라서 불과 이틀새에,그것도 신임총리체제하에서의 첫 당정협의사안이 당의 반대속에 정부의 일방결정으로 끝나고 그에 따라 당정간 갈등의 골이 심화되자 민자당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농림수산부가 당과의 의견조율이 잘 안되자 막판에 청와대와 직거래,당을 따돌렸다는 것이 당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사실 당의 정부 쪽에 대한 불신은 이번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한 정책담당 당직자는 『그동안 정부 쪽에서는 생색을 낼 일은 자기들이 독단적으로 결정,발표하고 난감한 사안만 들고와 부담을 나누어지자고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당정불협화의 분위기속에 정부와 민자당은 7일 이총리와 김대표가 참석하는 고위당정정책조정회의를 갖는다.민자당은 이 자리에서 당정간의 협조문제를 제기,정부를 몰아붙이겠다고 벼르고 있어 이번 회의는 앞으로 당정간 관계설정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신경제 주도권 기획원이 되찾았다

    ◎신경제추진회의 주관 등 위상회복 뚜렷/정 부총리 행보도 분주… 일부선 “독주 우려” 경제정책의 중심이 과천청사로 「확실하게」옮겨졌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김영삼대통령이 참석하는 신경제 추진회의는 청와대 경제비서실이 거의 주관했다.그러나 지난 달 27일의 회의는 경제기획원이 독자적으로 준비했다.종전에 박재윤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보고하고 자료명칭까지 일일이 지시받던 것과 다르다. 장소도 청와대가 아닌 과천청사로 바뀌었다.앞으로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신경제 회의가 매달 과천에서 열린다(분기별 첫 회의만 청와대 개최).신경제의 주도권이 청와대에서 기획원을 비롯한 경제부처로 돌아온 것을 뜻한다. 정재석부총리의 행보도 갑자기 빨라졌다.올들어 서너달 동안 줄곧 침묵을 지키던 그가 5월 들어 TV방송에 잇달아 출연하는 등 화려하게 「언론 나들이」를 시작했다.2일에는 대통령 독대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자청,21세기의 한국 경제의 바람직한 모습과 전략을 담은 경제국제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다.경제국제화 기획단의 설치는기획원이 명실공히 경제정책의 산실임을 천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같은 변화는 정부총리와 한리헌차관간의 콤비플레이의 소산이다.정부총리는 그동안의 대통령 주례독대를 통해,한차관은 김대통령의 후보시절 경제보좌역이었다는 여권내 실세의 입지를 적절히 활용해 기획원의 위상강화라는 공동작품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차관의 약진은 괄목할 만 하다.관례를 깨고 신경제 회의에서 대통령에게 경제현안을 직접 보고했으며,신설되는 경제국제화 기획단의 단장도 맡았다. 개발경제 시대의 기획원의 영광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월간 경제동향 보고회의와 기획원이 주도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뒷받침으로 가능했다.때문에 신경제 회의의 월례 유치와 경제국제화 기획단의 신설로 기획원의 화려한 옛 위상이 복원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최근 김대통령이 잇단 회의에서 『정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이 팀웍을 살리라』고 당부한 것도 큰 힘이 됐다. 그러나 과천으로의 급격한 중심이동은 상대적으로 청와대 경제비서실의 입지를 좁힌다.자칫하다간 기획원의 독주가 우려되기도 한다.다른 경제부처들은 기획원이 부처간의 이해가 얽힌 정책의 효율적인 조정보다는 자신들의 위상강화에만 신경을 쓴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한 관계자는 『경제정책이 부처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이제는 기획원이 맏형 부처로서 산적한 현안에 대한 조정기능을 확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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