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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결산권 방송委 이관/2與 방송법안 수정 합의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당초 국회에 주기로 했던 한국방송공사(KBS)의 결산권을 방송위원회에 부여하고 문화방송(MBC)에 부과하는 ‘공적기여금’의 징수율도 당초 매출액의 7%에서 3%로 대폭 낮추는 등 방송법안의 주요내용을 수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양당은 내달초 문화관광부와 당정협의를 개최하기로 최근 합의했다. 국민회의 장영철(張永喆) 정책위의장은 20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방송사 사장과의 간담회,자민련과 의견 조율을 벌인 결과,당의 방송법안을 재검토하기로 했다”면서 “이를 지난 19일 청와대 주례보고 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국민회는 KBS 사회교육방송·국제방송과 국제방송교류재단의 아리랑TV를 통합,국책방송을 설립하려던 안을 철회하고 아리랑TV의 일부기능을 KBS에 이관,해외방송을 단일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이는 KBS의 대북방송 노하우를 상쇄할 우려가 있는데다 추가적인 국고지원에 따른 통합은 효율성이낮다고 판단한 때문이다.또 방송위의 권한 집중으로 인한 폐해가 지적됨에따라 방송발전기금 관리운용권의 방송위 이관도 재검토하기로 했다. 추승호기자 chu@kdaily.
  • [독자의 소리] 재소자 비해 교도관의 처우개선은 소홀

    법무부는 6월부터 재소자들에게 사회체험의 기회를 주기 위해 모범수와 장기수에 한해 외출·외박을 허용키로 했다고 한다. 재소자들은 순간의 잘못으로 수용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도 가정이 있는만큼 외출 외박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현상으로 본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재소자들에 대해서는 사복착용,전화사용 허가 등 큰 변화가 일고 있지만 교도관에 대한 처우는 그대로인 것 같다. IMF체제 하에서 교도소는 넘쳐나는 재소자들로 인해 교도관들의 근무여건이 갈수록 악화돼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음지에서 고생하는 대표적인 공무원이 교도관일 것이다. 재소자들과 생활하면서 반 수인(囚人)생활을 하는 교도관들에게도 재소자들과 마찬가지로 근무환경 등에 관해 개선이 있었으면 한다. 김옥련[부산시 사상구 주례3동]
  • 韓 특보단장 , 당·정간 윤활유역할 기대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총재특보단장이 다시 ‘날개’를 달았다. 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은 13일 오전 한특보단장과 아침식사를 함께 하며 “앞으로 청와대 주례보고와 당 8역회의에 참석하라”고 지시했다.이는 12일 국민회의를 방문한 김중권(金重權)청와대 비서실장이 김대행에게 전한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의중으로 알려졌다. 누구보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아는 한 특보단장이 청와대와 당 사이의‘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당안팎의 기대다.핵심 당직자들이 ‘김심(金心)’을 제대로 읽지 못해 당정간 혼선이 빚어지는 사례가 적지않았다 평가다. 당의 소선거구제 단일안이 하루만에 번복되고 김대행과 손세일(孫世一)총무가 잇따라 김정길(金正吉)청와대정무수석과 갈등을 사례등이 단적인 예다. 이와함께 ‘젊은 피 수혈’이란 절대절명의 과제를 조속히,성공적으로 달성하도록 특보단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다.주례보고를 통해 김대통령이 매주 직접,특보단의 젊은 피 수혈작업을 챙기고 독려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추승호기자 chu@
  • 공무원 기살리기에 ‘안간힘’

    ‘공무원의 사기를 살리자’ 인력 감축과 월급 삭감으로 공무원들이 동요하고 사기가 떨어진 요즘 공직사회의 화두(話頭)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최근 “공직자는 공공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면서 공직사회의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 마련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기획예산위와 행정자치부가 행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사기진작 방안마련 작업에 착수한 데 이어 여당도 7일 적극적인 대책마련에 나서기로 했다.국민회의 장영철(張永喆)정책위의장은 이날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김 대통령은 지난 6일 주례보고에서 공무원 사기진작책을 마련할 것을 당에 지시했다”며 조만간 당정협의를 갖고 사기앙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무원들의 요구사항은 삭감된 체력단련비를 되돌려달라는 데 모아지고 있으며 다양한 사기진작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올해 6,800여명 추가감축의칼날은 피하기 어려울 것같다. 연금제도는 이달 중 별도로 마련될 개선방안과 맞물려 있지만 현역 공무원들이 어느 정도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관측이다. 정부의 2차 구조조정을 조속히 마무리해 파장을 최소화하고,공무원들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공직 안정 방안을 제시해 공직사회가 하루빨리 안정을 찾도록 해야 한다는 게 관가 주변의 지적들이다. 박정현·추승호기자jhpark@
  • 독자의 소리-되살아나는 과소비에 서민층 소외감만

    서민인 필자로서는 IMF시대에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한숨만 나오는데 백화점 등에서는 일부 부유층에 의해 소비가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4월 바겐세일기간에 고가수입품이 불티나게 팔렸다니 거품경기가 되살아나는 것같아 염려스럽다. 서민들은 아직도 졸라맨 허리띠를 풀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데 중상류층에서는 소비를 즐기는 느낌마저 든다.골프용품,보석류,귀금속,위스키 등 사치성 물품이 소비를 주도하고 있으니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더 심화되는 것 같다. 우리집만 보더라도 남편의 연봉이 작년보다 무려 250%나 깎여 겨우 입에 풀칠만 하는 형편인데 경기가 회복되지않고 소비만 되살아난다는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서민들은 하루빨리 실물경기가 회복되어 가정에 웃음꽃이 피어나아이들에겐 옷한벌 더 사주고,학원이라도 보내기를 바랄 뿐이다.남편 혼자수입으로는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없어 IMF를 초래한 위정자들이 원망스럽다. IMF를 만든 장본인들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정치에 무슨 미련이 남아 있어 꿈틀거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일부부유층들도 과소비를 자제하고 하루빨리 모든 국민들과 같이 IMF를 졸업하고 함께 웃을 수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과소비는 IMF를 극복하는데 아무도움이 안된다. 김옥련[부산시 사상구 주례3동]
  • [제2공화국과 張勉](15)분출하는 욕구(下)/기고

    1961년 2월4일 장면(張勉)총리는 반도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창립4주년 기념모임에 초청받아 ‘언론의 자유와 그 책임’을 주제로 강연한다. 장면은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이라고 전제한 뒤 “북한 괴뢰의 앞잡이들이 ‘조선인민보’나 ‘해방일보’를 발행하겠다고 등록신청을 해도 막을 도리가 없을 만큼 완전한 언론출판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무책임하고’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독선적인’ 언론이 횡행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장면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압제에 반대해야 하는 것과 같이,자유가 자유 그 자체를 파괴하도록 방임해서도 안된다”는 말로 연설을 끝맺었다.무절제한 언론에 대한 이 경고를,관훈클럽은 훗날 발간한 ‘40년사’에서“언론에 경종을 울리는 진지하고도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李承晩)독재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신문은 학생세력·민주당과 더불어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자유당 정권은,비록 그후의 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시대만큼 가혹하지는 않았지만그래도 독재체제를 유지하고자 언론에 대해 탄압을 거듭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59년 4월30일 경향신문을 폐간시킨 것이다.가톨릭계인 경향신문은 그 무렵 자유당 정권에 가장 비판적이었으며 장면이 대표하는 민주당 신파를 지지했다.따라서 60년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몇가지 꼬투리를 잡아 경향신문에 철퇴를 가했다. 그러나 도하 각 신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유당 정권의 비정(秕政)과 ‘3·15 부정선거’,그리고 이에 따른 학생·시민의 항거를 끊임없이 보도했다. 따라서 4월혁명후 언론은 명실공히 입법·사법·행정에 못잖은 ‘제4부’로떠올라 그 힘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언론계의 변화는 먼저 양적인 팽창으로 나타났다.1960년 3월31일 현재 국무원 사무처에 등록된 각종 정기간행물의 숫자는 그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일간신문은 4·19 전의 41종에서 112종으로,일간통신은 14가지에서 274가지로,주간신문은 136종에서 476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그야말로 ‘사무실 한평에 등사판 하나만 갖추면 통신사 간판을 내걸고 실업자 서너명만 모으면신문사 간판을 내걸 수 있는’시절이었다. 언론사가 급증하자 사이비기자가 판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고 이에 따라강경·논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사이비기자 물러가라”며 데모하기도 했다.한국일보가 1961년 2월 말 연재한 ‘기자가 취재한 기자군(記者群)-공갈기자’시리즈를 보면 그들의 성분과 폐해를 짐작할 만하다. “‘공갈기자’와 ‘진드기기자’들에게는 전직이 있다.…연무대 주변에서진을 친 이들의 대부분은 전직이 헌병대 문관 아니면 형사,또는 CIC군관,이밖에 퇴역군인이다.그래서인지 ‘진드기기자’들의 취재 태도는 이미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보고듣는 것이 아니고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탐색하고 사람을 취조하는-말하자면 ‘범죄수사’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전통있는 언론사야 행태가 물론 달랐지만 그들 역시 정부 시책을 사사건건물고 늘어져 비난하는 것을 신문의 의무로 아는 듯했다.당시 언론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3·15 부정선거’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자유당 간부장경근(張暻根)이입원중인 병원을 탈출,일본으로 밀항한 사건이 발생한다.이에 서울일일신문은 “면이와 경근이 때문에 창피해서”라는 설명과 함께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을 그린 만평을 실었다.‘장씨 종친회’라는 제목의 이 만평은 국무총리 장면과 부정선거 혐의로 구속된 장경근을 한데 엮어 비난한 것이었다. 장총리의 공보비서관인 송원영(宋元英)이 서울일일신문의 이관구(李寬求)사장을 찾아가 항의하니 이사장도 “이건 너무했다”면서 윤전기를 멈추고 만평을 뺐다고 한다(송원영 회고록에서). 경향신문 정치부장으로 있다 바로 공보비서관이 된 송원영은 “모든 매스컴이 장면정권을 두들겨팼다.마치 언론자유는 장정권을 타도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처럼”이라고 회고했다. 한편 신문이 보도 면에서 신중과 자제를 잃어(宋建鎬 표현) 독자들에게 수난을 당하는 사태도 자주 일어났다.부산일보는 동아대 학생들의 습격을 받아 20일동안 휴간했으며,한국일보는 ‘혁명전야’라는 연재소설에서 작가 정비석(鄭飛石)이 연세대생을 모욕했다는 항의를 받자 연재를 중단했다.박태선(朴泰善)장로교회 신도 수천명이 대낮에 동아일보 사옥에 침입,난동을 부린일도 있었다. 장면정부는 언론의 이런 태도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설득하는 이외의 방법은 쓰지 않았다.장면정부의 언론 주무장관인 정헌주(鄭憲柱) 국무원 사무처장은 “심지어는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 쓰곤 했지만 그래도 정부로서는‘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자리를 잡겠지’하는 생각에서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언론도 세월이 흐르면 책임을 깨닫고 스스로 바로 설 것이라는 그 자율기능을 믿은 것이다. 장면정부는 오히려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애썼다.가끔 ‘대통령 유시’나 발표하고 기자회견은 1년에 한 두차례 하는데 그쳤던 이승만과는 달리 기자회견을 매주 한차례 정례화했다.그럴 때면 전 각료를 동원하다시피해 갖가지 질문에 답했다. 또 KBS라디오를 통해 ‘주례 국정보고’도 방송했다.매주 토요일 오후 7시30분에 시작한 이 방송에서 장면은 민주당 정부의 방침을 국민들에게 설득조로 이야기했다. 4월혁명을 이룰 때까지 민주당과 신문은 ‘동지’였다.그러나 장면정부가들어서자 어제의 동지는 ‘적’으로 돌변했다.5·16쿠데타후 신문은 장면정부를 망친 ‘3신(新·신문,민주당 구파가 분당한 신민당,신파 소장파 모임인 신풍회)’ 가운데 하나로 인구에 회자됐고 군사정권 아래서 모든 자유를 빼앗겼다. 이용원기자 ywyi@[기고] 언론자유 수호 自淨운동 싹 틔워4·19로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무너진 후 한국 언론은 비로소 자유를 누릴수 있게 됐다.정부의 언론에 대한 간섭과 통제가 급격히 사라졌고,언론 스스로도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려고 노력했다. 허정(許政)과도정부는 1960년 7월1일 법률 제553호로서 ‘신문 및 정당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공포했다.이로써 허가제를 규정한 미 군정법령 88호는 폐지됐고,이제 등록만 하면 누구나 정기간행물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과거 대통령 직속의 독립된 부서였던 공보실이 폐지됐고,국가보안법과선거법에 삽입된 언론통제 조항도 삭제됐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한동안 언론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자유를 누렸다.그러나 갑자기 언론자유가 주어지자 우후죽순처럼 정기간행물이 쏟아져 나와 일간지나 주간지가 4·19 전에 비해 3배 가량 늘어날 정도가 되면서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들로 인한 폐단도 적지 않게 드러났다. 한편 1960년 5월 부산을 시작으로 하여 대구·서울 등지의 여러 신문사에서 노조가 차례로 결성됐고,KBS도 ‘방송중립화 운동’을 펼쳐 공정방송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그리고 1961년 2월13일에는 일본 거류민단계의 조용수(趙鏞壽)가 중심이 되고 국내 혁신계 인사인 송지영(宋志英) 윤길중(尹吉重)고정훈(高貞勳) 등이 참여한 민족일보가 창간되어 혁신계 세력을 대변하게됐다. 이런 가운데 자신들에 관한 보도에 불만을 품은 일부 독자들이 신문에 대해 항의시위나 난입,그리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일도 생겼다.이같은 사태는 무책임하고 부정확한 보도를 한 언론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막으려고 한 일부 독자들의 잘못된 의식도 작용한 결과였다. 이렇듯 제2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언론자유가 급격히 신장됐지만,언론자유는점차로 제약되는 경향을 보였다.집권 이후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 민주당 정권은 언론규제 장치로 ‘외국 정기간행물 국내 배포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었다.이것은 신문이 등록제로 대체되면서 폐기된 미군정법령 88호중 제5조만 유효하다는 유권해석과 함께 그것을 대신하는 법령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또한 창간되기도 전에 민족일보에 대해 국회에서 조총련계 자금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도 있었다.창간 이후 민족일보는 서울신문 공무국에서 제작됐는데,민주당 정권은 61년 3월 초에 서울신문에 압력을 가하여 이 신문의 조판과 인쇄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정권이 직접 언론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언론자유는 대체로 보장된 편이었다.또한 ‘신문망국론’이라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던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계가 스스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제2공화국 시기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언론자유가 처음으로 허용됐고 또 이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언론계 스스로의 노력도 시작됐다는 점에서역사적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모처럼 보장된 언론자유를 지키고 언론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율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5·16쿠데타가 터졌다.5·16 이후 언론자유는말살되고,언론은 정권의 통제와 특혜 속에 제 몫을 하지 못하며 기업적 성장에만 집착하게 됐다. [박용규 상지대 교수·신문학]
  • 제2건국위에 새인물 몰려든다

    제2건국위가 최근들어 ‘뜻있고 개혁적 인사’들이 상당수 몰리기 시작하면서 새 전기를 맞을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특히 제2건국위가 관주도에서 벗어나 金祥根목사가 기획단장으로 임명되는 등 민간주도로 바뀌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과거 관주도 국민운동이 토착 유력인사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지역에서 신망받는 개혁적 젊은이들이 제2건국위에 적극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일단 고무적 현상이다. 제2건국위 관계자는 “제2건국위가 민간주도로 됨으로써 그동안 일었던 정치 관여 의혹 등이 불식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진정 지역사회를 위해일해보고 싶은 인사들이 참여를 희망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 金大中대통령의 ‘젊은층 수혈론’과 맞물려 제2건국위원회가 새로운 ‘인재풀(Pool)’로도 떠오르고 있다.현재 제2건국위원으로는 정부측 인사를비롯,학계,경제계,언론계,문화예술계,민간단체 등 각계 인사 44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이 가운데 기획위원을 지낸 김한길 정책기획수석과 상임위원 출신인金有培 복지노동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했다.柳鍾珌 청와대 제2건국위비서관은 “각계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 제2건국위원들은 그야말로 각 분야에서뛰어난 전문가들”이라고 말했다. 제2건국위 상임위원과 기획위원으로는 각 부처 장·차관을 비롯,金元基 노사정위원장,韓光玉 민화협 상임의장,서울대 金光雄·동국대 黃泰淵교수,韓相震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李^^ 산업연구원장,李鎭淳 한국개발연구원장,朴仁相 한국노총 위원장,崔榮熙 여성단체협의회장 등 8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최근 金대통령은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으로부터 주례보고를 받는자리에서 ‘제2건국운동’에 관심을 표명했다.‘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金대통령의 뜻이다.이를 잘못 해석,제2건국위를 정치권 진출 발판으로 삼겠다는 사람도 있다.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물론 金相賢의원 등 국민회의 중진의원들에게 지자체에서 자율위촉하는 제2건국위 지방추진위원을 맡게 해달라는 민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 金대통령 ‘젊은층 수혈’…신지식인·개혁 마인드 의미

    金大中대통령은 25일 젊은 인재 수혈의 의미와 관련,“연령 제한을 두거나어떤 그룹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신지식인과 개혁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趙世衡총재권한대행을 비롯,국민회의 지도부의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앞서가는 생각을 가진사람,전진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하고 당에 많이 들어와 정치가 새로워지고 당도 새로워져 21세기를 대비하는 정치의 구현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趙대행은 이에 대해 “앞으로 대통령의 원대한 뜻에 걸맞게 당을 운영해 나가고 당을 보강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趙대행은 인권문제와 관련,“대통령 재임기간 중 우리나라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인권 강국으로 만들겠다”면서 “인권법 제정에 이러한 의미를 충분히 살릴 것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 金正吉 정무수석 “나는 DJP 메신저”

    金正吉 청와대정무수석이 金大中대통령과 金鍾泌국무총리간의 가교(架橋)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金수석은 19일 오전 세종로 청사로 金총리를 방문,金대통령과 李會昌한나라당·朴泰俊자민련 총재간의 회동결과를 설명했다.이 자리에서 金수석은 “청와대뿐만 아니라 총리실의 정무수석으로 생각하고 언제든지 불러 심부름을시켜달라”고 말했으며,金총리도 웃음을 지으며 “그러자”고 답했다. 金수석은 金총리 면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두 분의 생각을정확히 파악하고,직접 말하기 힘든 것을 전해드리는 역할을 맡겠다”고 말했다. 金수석은 특히 “정국 안정을 위해서는 여야관계보다 여여관계가 더 중요할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金대통령과 金총리는 매주 화요일 주례보고 형식으로 만나지만,그 자리에서 충분한 대화가 이뤄지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두 사람 관계를 ‘이심전심(以心傳心) 혹은 이심전신(以心傳神)’이라고까지 말하지만,내각제 시기등 이견이 명확한 부분에 대해서는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한다.그동안 金重權 청와대비서실장이 ‘메신저’ 역할을 맡아왔지만,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간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金수석이 맡을 가교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각제의 가교’가 될 것 같다. 李度運 dawn@
  • 金정무수석“정부조직 기능위주 개편”

    金正吉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은 19일 “정부조직 개편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이뤄질 것”이라면서 “각 부처가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기능면에서 상당부문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金정무수석은 이날 세종로 청사로 金鍾泌국무총리를 예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하고 “金大中대통령과 金총리가 23일 주례보고 때 이 문제를협의할 것이며,그 이전에는 따로 만나는 일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밝혔다. 金수석은 이와 함께 정무장관실 부활 움직임과 관련,“꼭 필요하다면 부활할 수도 있지 않느냐”면서 “그러나 작은 정부의 이상에 맞지 않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진념기획예산위원장도 19일 “정부부처간 간담회와 당정협의 결과 나타난 조직개편 내용을 정리해 이날 오후 金鍾泌국무총리에게 보고했다”면서 “가닥이 잡힌 개편안은 단수로 올리고,쟁점이 있는 부문은 복수안으로제출했다”고 말했다. 특히 陳위원장은 “조직개편은 통폐합보다는 부처별 기능 재조정과 운영시스템 정립에 중점을 두었다”고 거듭 말해 통폐합 부처가 사실상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 당정, 정부조직 개편 간담회… 23일 최종확정

    제2차 정부조직 개편안은 오는 23일 金大中대통령과 金鍾泌국무총리간의 주례보고에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국민회의,자민련이 18일 네 차례에 걸친 부처·당정간 연쇄 간담회를 마무리함에 따라 기획예산위는 정부시안 작성에 들어갔다.기획예산위는간담회 결과를 반영한 정부시안을 이번주말 金총리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네 차례 간담회에서 정부 각 부처와 국민회의,자민련은 다양한 의견과 요구를 쏟아놓았다.진념기획예산위원장이 “전부 정리하려면 큰일났다”고 한숨을 내쉬었을 정도다. 그러나 연쇄 간담회를 통해 조직개편의 큰 방향은 잡힌 것 같다.통폐합은 최소화하고 기능을 조정하자는 것이다.국민의 정부 2년째를 맞아 각종 정책이탄력을 받아가는 상황에서,조직을 크게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통폐합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산업자원·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통합 ▒기획예산위와 예산청의 통합 ▒노동부와 보건복지부의 부분통합 ▒공보실의 문화관광부이전 ▒해양수산부 폐지 등이 한꺼번에 이뤄지지는 않겠지만,한두가지는 실현될 개연성이 살아있다. 기획예산위가 부처간 쟁점을 완벽하게 정리해 金총리에게 단일안을 보고할가능성은 적은 것 같다.기획예산위가 정부시안을 만들며 청와대측과도 의견조율을 하겠지만,부처간 대립이 첨예한 부분에 대해서는 복수안을 낼 것으로 보인다. 金총리가 그 과정에서 기획예산위에 특정한 주문을 할 수도 있다. 金대통령과 金총리가 개편안을 확정하면,국민회의와 자민련에 내용을 설명하고 양해도 구하는 절차가 뒤따르게 될 전망이다.따라서 공식적으로 정부조직개편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시점은 30일쯤으로 예상된다.
  • DJP “개각폭 최소화”조율

    곧 단행될 개각의 폭은 최소화될 것 같다.시기는 내주 초가 유력시된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金大中대통령과 金鍾泌국무총리가 16일 오전 국무회의직후 이어진 주례보고 자리에서 개각에 관한 윤곽을 다듬었다고 전했다. 그동안 경질 대상으로 꾸준히 거론된 각료는 金慕妊 보건복지부 장관과 金善吉 해양수산부 장관.金慕妊장관은 국민연금 확대실시 추진과정의 문제점에대한,金善吉장관은 엉성한 한·일 어업협상에 대한 책임문제가 제기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金慕妊장관은 당분간 유임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 같다.金총리가 이미 그런 뜻을 金대통령에게 전달,양해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吳效鎭공보실장도 17일 “국민연금을 추진하는 동안 장관을 갈아서 정책이 위축되면 안된다”고 분위기를 잡았다. 그러나 金善吉장관은 교체가 예상된다.金장관 스스로도 일본으로 떠나기 앞서 사퇴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金총리로서도 다른 의견이 없다고 한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두 金장관말고도 한두명 정도의 장관을 교체대상으로 거론한다.해당부처가 추진하는 중요정책에 전념하기보다 ‘이벤트성’ 행사에관심이 많거나,부처 장악 및 업무 추진 능력에 의구심을 주는 것으로 지적되는 장관들이다.그러나 사람을 자주 바꾸지 않는 것이 金대통령의 인사 원칙이다.또 집권 2년차를 맞아 각종 정책이 탄력을 받는 시점이어서 가급적 인사를 삼갈 것으로 예상된다. 제2차 정부조직 개편이 개각의 또다른 요인이 될 수 있다.金대통령이 ‘기능조정’을 강조함에 따라 부처간 통·폐합은 최소화될 전망이다.또 국회에서의 처리시점을 예상하기 어려워 당장 개각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에서도 각자의 입장을 반영해 개각과 관련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다.국민회의에서는 이번에 소폭 개각을 한 뒤 전당대회가 끝나는 8월쯤 대폭적인 당정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내년 총선출마 각료들도 교체해줘야 한다.자민련에서는 이미 金善吉장관의 교체를 기정사실화하고 金총리에게 후임대상자 3명을 천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 내주초 2-3부처 소폭 개각

    金大中대통령은 16일 “그동안 국정에 일부 혼선이 있었으며 이에 대해 확실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는 당에도 책임을 물었으며,국무위원들도 예외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조만간 해양수산부 등 일부 각료를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일어업협정과 국민연금 파문을 예로 들면서 “당정,부처간 긴밀히 협조해 국민들에게 국정혼선의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朴智元청와대대변인이전했다. 이에 따라 金대통령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총리 방한 이후인 내주초 개각사유가 발생한 부처 중심으로 2∼3명의 장관을 교체하기로 결심을 굳히고 이날 국무회의후 金鍾泌총리의 주례보고때 이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金대통령은 이어 정부조직개편과 관련,“기구의 축소·확대도 중요하지만무엇보다 기능을 조정해 국정을 원활하게 해야할 것”이라면서 “금주내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세정,세제를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세제의 단순화 ▒조세부담의 공평화 ▒불로소득자 탈세 철저 추적 ▒전문직 세원 포착 등을 개혁방향으로 제시했다.
  • 자민련, 총재회담 배제에 ‘섭섭’

    자민련 朴泰俊총재는 15일 金正吉청와대정무수석을 만났다.金수석이 북아현동 자택으로 찾아왔다.여야 총재회담 문제로 방문했다.金수석은 “한나라당이 2자회담을 원하는 것같다”고 보고했다.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李會昌총재간 2자회담을 양해해 달라는 부탁이나 다름없었다. 朴총재는 “나라를 걱정하고 정국을 푸는 데 회담 성격에 크게 개의치 않겠다”고 말했다.사실상 수용하겠다는 의사표시다.그러면서도 “국민들은 책임있는 여야 총재들간 회담을 원할 것”이라고 토를 달았다.자신도 끼는 3자회담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여기까지만 李完九대변인이 전했다. 朴총재는 총재단회의에서 하나 더 설명했다.“3자회담이 안되면 청와대 주례회동에도 가지 않겠다고 金수석에게 말했다”고 소개했다.모처럼 청와대측에 ‘섭섭함’을 전달했다.양측간 변함없는 밀월관계를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李대변인은 이날 2자회담에 대해 “대단히 유감”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具天書총무는 국민회의 韓和甲총무를 만나 항의했다.“3자회담이 안되면 여야 총재회담을 포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朴俊炳총장도 국민회의 鄭均桓총장과의 회담에서 당 입장을 전달했다. 李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자민련을 기피하는 것은 정치적 뒷거래를 생각한게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시했다.한나라당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문제를 염두에 둔 언급이다. 자민련은 결국 2자회담을 수용했다.그러나 한나라당측에 ‘몽니’를 부릴기세다.오는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徐의원건을 표결처리키로 재확인했다.한나라당의 유보주장에 쐐기를 박음으로써 ‘빚’을 갚는 모양새가 될 만하다. 朴大出 dcpark@
  • [사설] 정치개혁은 시대적 요청이다

    지난 11일 있었던 청와대의 주례 당무보고는 각별한 의미의 모임이었다.金大中대통령은 이날 여당내의 여러가지 엇갈린 쟁론들을 수습했다.그것은 지도체제 개편과 관련된 쟁론들이었다.金대통령은 또한 정치개혁작업을 될수있는한 빨리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물론 국민회의 당직자들에게 한 말이지만 그 화두의 반향은 야당을 포함한정치권 전체에 미쳤다.두말할 것 없이 정치개혁은 정치권의 절박한 현안이며 밀린 숙제다.정치권은 유일한 개혁의 무풍지대,사각지대로 남아있다.정치개혁은 언제 누가 누구에게 얘기하건 그것은 정치권 전체를 향한 얘기일 수밖에 없다.金대통령은 실로 정치권 전체에 대해 밀린 숙제의 해결을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개혁은 국민의 정부의 공약이다.그 확고한 실천의지가 대통령의 선 정치개혁·후 전당대회의 표현으로 표명됐다.金大中대통령은 이미 올해가 정치개혁의 해가 될 것임을 천명해두고 있다.국민과의 TV대화,청와대출입기자 회견등 여러차례 그 계기가 있었다.여기에 박차를 가한 것이 이번 청와대 주례회동이다.바라건대 이제는 정치권 전체가 소모적 쟁론과 정쟁에서 벗어나 정치개혁작업에 매달려 주어야겠다.대통령의 얘기가 있었다 해서가 아니다.정치개혁은 국민의 요청이자 시대의 요청이다.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金대통령이 여당 안의 소모적 쟁론을 시의적절하게 수습했다는 생각이다.의견이 엇갈리던 지도체제의 틀과 구성방법에 대해 매듭을 지었다.총재 외에는 경선불가,단일지도체제 유지 등의 방침을 제시했다.그것을 정략적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편협하며 타당하지 않다.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은 몹시 따갑다. 국회는 고통받는 민생과 거리가 멀다.그렇다고 활발한 정치무대가 돼주는 것도 아니다.방탄국회란 말이 상징하듯이 국회는 파행으로 얼룩져 있다.정략과 파당의 대결무대다.지금의 국회는 한마디로 본령에 충실한 정치무대가 아니다.이 점 여야가 모두 반성해야 한다.공동여당간의 갈등,여야의 첨예한 대립은 자제되는 것이 마땅하다.어차피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모든 정치인들과 정당이 얼굴을 마주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소모적인 쟁론과 정쟁은하루빨리 떨쳐 버려야 마땅하다. 정치개혁작업은 정치인들에게 고통스러운 작업이다.그런 만큼 시간도 많이소요될 수밖에 없다.이것이 바로 작업을 서둘러 주어야 하는 까닭이다.청와대 주례보고는 대통령과 집권당간의 행사임에 틀림없다.하지만 정치개혁은국민 전체의 화두다.따라서 그것이 정치권의 화두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점을 야당도 명심해주기 바란다.
  • 李노동 현안보고 위해 주1회꼴로 청와대 방문

    李起浩노동부장관의 청와대 발길이 잦아졌다.민주노총의 노사정위 탈퇴로인한 노·정 갈등과 실업률 급등 등 현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金大中대통령은 실업문제와 노사관계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金대통령스스로도 토로했지만 IMF체제 이후 구조조정의 여파로 실업자가 증가하는 데 대해 가슴 아파하고 해결책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따라서 李장관이 자주 金대통령의 부름을 받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있다는 이야기다.李장관이 金대통령을 독대(獨對)해 보고하고 직접 지시를 받는 ‘주례보고’는 지난해 4월부터 시작돼 11월까지 매주 계속됐다. 그 후 실업률이 감소추세로 돌아서는 등 진정 기미를 보이면서 올 1월까지격주로 바뀌었다. 그러나 대졸자 등 취업인구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등 계절적 요인으로 실업자가 200만명에 육박하면서 지난달부터 수시보고로 다시 강화됐다.이달만 해도 11일까지 두차례 보고가 있었다.다음 보고는 17일로 예정돼 있다. 金대통령에게 ‘주례보고’를 하는 인사는 그다지 많지 않다.정치권 인사로는 金鍾泌국무총리와 朴泰俊자민련총재,趙世衡국민회의총재권한대행 등이 있으며,李鍾贊국가정보원장은 업무의 특성상 주례 및 수시보고한다.각료로는李揆成재경부장관과 李장관이 있고,최근 金元基노사정위원장이 추가됐다. 보고형식은 5분 보고,5분 지시,20분 토론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金重權비서실장이나 金有培복지노동수석이 배석한다.칭찬과 격려가 있기도 하지만 매서운 질책도 뒤따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 본지 국민회의 의원대상 黨지도체제 선호도 조사

    ‘강력하고 참신한 단일대표’- 국민회의 집권 2년차를 이끌 리더십 유형과 선호하는 리더 창출과정이 베일을 드러내고 있다.10일 대한매일이 5월 정기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소속의원54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단일대표’도 당 총재인 金大中 대통령이 지명한 뒤 인준하는 방식을 선호,단선적 단일지도체제에대해 강한 집착을 보였다.이와 관련,이날 전북 고창지구당개편대회에 참석중인 鄭均桓사무총장은 “대표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시스템을 택해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의원 가운데 상당수의 초·재선의원들은 정권교체를 이룬 뒤 당의 얼굴이바뀌지 않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이들은 당대표의 선택과 관련,이구동성으로 “개혁과 함께 변화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참신하고 강력한 인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단일대표를 원한 94.4%의원 들은 “대표에 힘을 실어 당 장악력을 높여야개혁이 뿌리를 내리고 16대총선에서 승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당내에서는 일인대표에게 힘이 지나치게 실릴 것을 의식,힘의 균형을 위해 최고위원제를 부활하는 대표최고위원-최고위원제의 도입검토를 제기했다.安東善지도위의장,鄭大哲부총재,孫世一전당대회의장 등이 여기에 속한다.대표최고위원제의 도입은 11일 趙世衡대행,당3역의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결론이 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은 대표인물 선출방식에 대해서도 ‘이상적’이기보다는 ‘실리적’인 선택을 했다.“원칙적으로 민주적 경선방식에 찬성하지만 현 정치환경을감안,경선으로 당을 흐트러뜨려서는 안된다”는 쪽이 주류를 이뤘다. 당 중진가운데 경선제도 도입은 金相賢고문 등 조사대상의 18.5%인 10명의의원들이 주장,눈길을 끌었는데 이들은 당직·단체장후보를 놓고 경선을 하지 않아 나름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 것으로 분석된다.盧武鉉부총재 등은 대표는 총재지명으로,부총재나 최고위원은 경선으로 뽑자는 ‘부분경선’의견도 내놓았다. 金槿泰부총재는 ‘경선유보’입장에 대해 “아직 총재단이나 최고위원단을경선으로 뽑을 환경조성이 되지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그는 “국민화합이라는 큰 과제를 앞두고 세과시를 이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 與野, 총재회담 ‘擇日’ 분주

    여야 총재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진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은 3일 사무총장,원내총무간 접촉을 갖고 여야총재회담 시기 및 의제 등을 조율했다.이들은 총재회담을 가급적 빨리해야 한다는 원칙에 공감하고 박차(拍車)를 가하기로 했다. 국민회의측은 이번 총재회담이 정쟁 지양과 경제 재도약을 위해 정국안정을 이루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특히 노사갈등 및 실업대란,대북문제에 대해 초당적 협력과 정치개혁 입법의 조속한 추진을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여권의 정계개편 포기에 대한 확약,徐相穆의원의 불구속기소 등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李會昌총재도 전날 기자회견에서 徐의원 건에 대해 여권의 정치적 의도를 제기하며 조속히 마무리되기를 희망했었다. 이와 같은 당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金大中 대통령도 李총재가 여야 총재회담 수용 입장을 밝힌 데 대해 곧 정국복원이 이뤄질 것으로 받아들이고 만족해 했다는 후문이다.이와 관련,金鍾泌총리는 오전 국회 본회의 직전국무위원 대기실에서 3당 총무와 만나 얘기를 하며 金대통령의 의중을 전했다.金총리는 “2일 아침 金대통령께 주례보고를 하는데 金대통령이 李총재의 기자회견을 보고 ‘이제 좀 되려나’라며 퍽 좋아하셨다”면서 “金대통령은 ‘총재회담이 빠를수록 좋지 않겠느냐’는 말도 했다”고 상기시켰다. 이로 미루어 徐의원 건에 대한 ‘가닥’이 잡히면 총재회담이 이번 주말에라도 전격 성사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吳豊淵 poongynn@
  • 金총리 “주례회동서 내각제논의 없었다”

    金大中대통령은 22일 金鍾泌국무총리로부터 임시국회 및 실업대책 등과 관련한 주례보고를 받았다. 당초 이날 회동에서는 내각제 개헌 시기 등에 대한 의견교환이 있을 것으로 예측됐으나 金총리는 “지금까지 주례보고에서 내각제 얘기는 일절 없었다”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밝혔다. 金총리는 향후 내각제 시기 논의와 관련한 질문에 “아직 시간이 있다”고말했다. 金총리는 이와함께 “한자도 우리글의 일부”라면서 한글-한자 병용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李度運
  • 金대통령의‘내각제조율’관심

    金大中대통령은 22일 자민련 朴泰俊총재와 독대한다.하루 뒤에는 金鍾泌총리와 단둘이 만난다.관전 포인트는 내각제 문제다.‘DJT 삼각조율’이 주목된다. 金대통령은 최근 “빠른 시일내에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한 고위관계자는 18일 “담판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다른 관계자도 담판론을 부인했다.언뜻 보면 상반된 언급같다.그러나하나의 방향이 있다.내각제문제는 金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급류를 탄 분위기다.‘완전 매듭’은 아니더라도 ‘중간 매듭’가능성을 높게 해준다. 눈여겨볼 대목은 논의 방식이다.‘직접화법’이냐,‘간접화법’이냐 하는수위의 문제다.내각제 개헌 및 시기에 대해 직접 언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반면 경제문제를 화두로 개헌연기론 등을 끌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민련측 기류는 좀 다르다.金총리는 18일 자민련 고위당직자들과점심을 함께 한 뒤 李完九대변인을 통해 내각제 원칙론을 폈다. 金총리는 “21세기에는 새로운 리더십으로 바꿔야 한다”고 내각제 소신을거듭천명했다.그리고는 “강물은 도도히 흐른다는 기본을 깔고 당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겠다”고 특유의 선문답을 했다.전날 대구에서는 “결정된 것은 하나밖에 없다”고 연내 개헌론을 강조했다. 朴총재는 주로 금요일에 金대통령과의 주례회동을 했었다.이번에는 월요일로 잡혔다.이례적이다.형식은 방일 결과 설명을 빌렸다.DJP 독대 전날 ‘조정역할’이 관심을 모은다.그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제기여부도 주목거리다. 朴大出 dc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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