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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배대행 사표 전격수리…김대통령, 총리와 불화 문책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8일 사표를 반려했던 김영배(金令培)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의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고 박준영(朴晙瑩) 청와대대변인이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에 따라 빠르면 9일 중 후임 총재권한대행을 임명한 뒤 당무회의 추인을 거쳐 확정되는 대로 사무총장·원내총무 등 후임 주요 당직인선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김대행의 전격 교체는 특검제 협상과정에서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와 갈등을 야기시킨데도 불구,사표를 반려하자 김총리가 강한 반발을 한 데 따라 이를 무마함으로써 공동여당의 공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당초 이날 오전 주례 당무보고에서 사표를 제출한 김대행과 정균환(鄭均煥)사무총장 등 당 8역의 사퇴서를 전달받고 김대행의 사표는 반려하고 당 3역 등 7명만의 사표를 수리했었다. 박대변인은 이날 김대행의 사표수리 배경에 대해 “현재 국정현안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공동여당 내에 혼신의 노력을 해야하고 어느 때보다 공조가 필요한 시기인데,공동여당 내에서불협화음이 있다는 것은 안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발표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후임 총재권한대행과 관련,“현재로는 당내인사가 유력하나 당 바깥에서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후임 대행으로는 당내에서는 한광옥(韓光玉)·이종찬(李鍾贊)부총재와 이만섭(李萬燮)고문 등이,당외에서는 이수성(李壽成) 민주평통수석부의장등이 거론되고 있다. 후임당직에는 사무총장에 한화갑(韓和甲)특보단장·박상천(朴相千)전법무장관이,총무에는 이협(李協)국회문광위원장과 이해찬(李海瓚)전교육부장관이,정책위의장은 유임가능성과 함께 한화갑특보단장의 기용가능성이 점쳐지고있다. 이에 앞서 김대행이 김총리가 국회 본회의에서 특검제 확대수용 발언을 한것은 부적절했다고 비판,김총리와 자민련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자민련 총무단은 김대행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 것을 요구하며 납득할 만한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여권 공조를 일시 중단키로 하고 9일 의원총회에서 당론을 결정키로 했다. 김용채(金鎔采)총리비서실장은성명을 내고 “총리는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김대행이 전날 총리와 만나 특검제문제를 놓고 서로 이해가된 지 하루도 안돼 돌출발언을 한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국민회의 당8역 총사퇴 파장] 사퇴뒷얘기·인선배경

    국민회의 김영배(金令培) 총재권한대행과 당 8역의 전격적인 교체가 금명간단행될 것으로 알려져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대행은 8일 오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는 재신임을 받았으나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가 김대행에 대해 화를 내면서전격 경질로 선회됐다.김 대행은 청와대 주례보고에 앞서 열린 당 8역회의에서 전격적으로 일괄 사표를 제의했다.사전에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다는 말도 나오지만 일괄 사표 시점이 늦었다는 비판도 없지않다.김 대행은 재신임을위해 일괄 사표방안을 내걸었지만 오히려 3개월만에 경질되는 결과를 빚은셈이다. 당주변에서는 총재대행후임으로 이만섭(李萬燮)상임고문,이수성(李壽成)평통부의장,이종찬(李鍾贊)·한광옥(韓光玉)부총재 등이 거론되고 있다. 김 대통령은 8역의 사표를 일단 모두 수리했지만 모두 교체할 것 같지는않다.8역 중에는 지난 4월 김 대행 체제로 들어선 뒤 당직을 새로 맡은 경우가 5명이나 되는 탓이다.김중권(金重權)청와대 비서실장도 “재 임명 여부는 금명간 결정된다”고 선별 수리 방침을 시사했다. 그러면 당 8역 중에는 누가 바뀔까.당 3역인 사무총장,총무,정책위의장의교체 가능성은 높다.특히 총장과 총무 교체는 확실시된다.새로 임명될 당 3역은 내년 4월의 총선을 치르는 실세로 봐도 무방할 듯 싶다.그렇기 때문에어느 때보다 후임에 관심이 높다. 정균환(鄭均桓)총장 교체는 확실하다.김 대행과의 관계가 그리 원만치 않은 데다 더 중요한 것은 내년 4월의 총선을 앞둔 실세 총장 기용론 때문이다.동교동계의 핵심인 김옥두(金玉斗)지방자치위원장이 후임에 유력하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같은 동교동계인 한화갑(韓和甲) 총재특보단장도 거론된다. 동교동계는 아니지만 박상천(朴相千)전 법무장관도 김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총장 후보군에 포함된다. 경선으로 당선된지 3개월밖에 안된 손세일(孫世一)총무의 교체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손 총무는 순진한 탓인지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 총무에게 끌려 다니는 등 여야협상에서 매끄럽지 못했다는 평이다.특별검사제와 관련해 국무총리를 직접 공격하는 발언을 하는 등 실언도 적지않았다. 후임에는 이해찬(李海瓚) 전교육부장관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전장관은 매우 깐깐한 성격이라 이부영총무 상대역으로는 적격이라는 말이나오고 있다.김충조(金忠兆)의원과 이상수(李相洙) 제 1정조위원장도 후보로거론되고는 있다. 곽태헌 추승호기자 tiger@
  • 국민회의 총재특보단 ‘屋上屋’ 우려 씻고 실세조직으로

    국민회의 내 총재특보단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야당의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굳게 거부해오던 특검제를 여권이 전향적으로 수용키로 한 것도 총재특보단의 건의가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내 위상도 한층 높아진 분위기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미국·캐나다 순방 중에도 각종 현안 등에 대한 건의안 등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그 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특검제 협상 마무리와 여야 총재회담 등과 관련한 복안도 나름대로 정리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당 주변에서는 이에 따라 총재특보단을 정국 돌파를 위한 당의 ‘별동대’로 기대하고 있다.대통령의 ‘싱크탱크(Think Tank)’로서의 역할을 톡톡히해낸다는 평가다. 특보단은 국정 및 당 운영 아이디어를 김 대통령에게 가감없이 전달하고 있다.또 당과 청와대간의‘언로(言路)’역할도 담당하고 있다.어떤 의견도 개진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돼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특검제와 관련해서도 당론과 관계없이‘전면 도입’과‘옷사건 추가 도입’등의 다양하고 솔직한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한것으로 전해졌다.효율적인 단원구성도 특보단 성공의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전문성을 갖춘 데다 노·장·청과 원내·외의 조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절충’,‘화합’형인 한화갑(韓和甲)단장의 사회 스타일도 개성이 있는 단원들의 주장을 조정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이 때문에 매주 수요일 오전 7시30분에 열리는 전체회의는 100%의 출석률을 보이고 있다.당내 다른 기구들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회의를 연기하는 사례가 적지않은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월 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이 취임,당내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닻을 올린 총재특보단은 그러나 처음에는‘정체성’을 둘러싸고 어려움도 겪었다.당시 한창 바람을 타던‘젊은 피’영입을 빼고는 뚜렷하게 임무가 부여되지 않았던 데다 당쇄신위,개혁추진위 같은 비슷비슷한 조직에 묻혀 자칫‘옥상옥(屋上屋)’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당내외의 비판적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범 3개월째에 접어들면서 총재특보단은 이같은 우려를 불식하고고유의 업무영역을 확고히 구축,당내 명실상부한 실세조직으로 자리를 잡았다.이렇게 된 데는 김 대통령의 배려도 컸다.대행과 당 3역,대변인만 참석하는 청와대 주례보고에 한 특보단장을 참석시키고 당 8역회의에도 참여토록한 조치 등이다. 추승호기자 chu@
  • 여,특검제 전면수용 여야합의땐 거부이유없어

    여권은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 주장하는 ‘전면적 특별검사제 도입’문제를 야당과 협상키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2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주례회동에서 여야간 대치정국을 조속히 타개,정부와 여당이 하루빨리 민생정치에 전념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안들이 집중논의됐다”면서 “이를 위해 대치정국의 가장 큰 걸림돌인 특검제의 전면도입 문제를 협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총리도 이날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여야간에 합의하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면서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전면적 특검제도 정부는 국회에서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밝혀 특검제 전면수용 방침을 시사했다. 여권의 이같은 방침에 따라 정치개혁을 위한 여야간 협상이 급류를 탈 전망이어서 주목된다. 이 관계자는 “여권은 곧 국민회의 자민련 양당 대표의 공동회견을 통해 특검제의 전면도입을 선언하고 야당에 정치개혁 차원에서 협상을 시작할 것을제안할 것”이라면서 “‘옷사건’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백지상태에서 협상에 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특검제 발동요건,시한 등을 담아낼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고법이 통과되더라도 특별검사의 임명절차,특검대상 사안 등을 걸러내야 돼 특검제의 실시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민기자 rm0609@
  • “金대통령 月1회 黨舍서 집무”/국민회의 건의

    국민회의는 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매월 한 차례씩 국민회의 여의도 당사에서 당무를 보는 방안을 건의키로 했다. 국민회의의 핵심 당직자는 1일 “당의 위상을 높이고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김대통령이 매월 한 차례씩 당사에서 당무를 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당이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의 위상이 높아지는 게 매우 중요하다”면서 “김대통령이 당사에서 당무를 보면 그 의미도상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총재 특보단은 회의에서 이러한 방안을 놓고 협의를 했으며 한화갑(韓和甲) 총재특보단장이 다음 주례보고에서 김대통령에게 공식 건의할 방침인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호상의 이유 등을 들어 반대하는 의견도 없지 않아 청와대에서 월1회의 당무회의를 주재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곽태헌기자 tiger@
  • 국민회의 국정운영 전면 나선다

    국민회의가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가지고 정국 정상화와 부정부패 척결의 전면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주례보고를 한 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에게 “공동여당인 자민련과 보조를 맞춰 주도적으로 정치현안 및 민생해결의 전면에 나서라”고 지시한 이후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국민회의의 국정운영 방향은 크게 특검제 도입 등 정치현안 문제 해결과 부정부패 척결 등 지속적인 개혁작업 추진,그리고 민생문제 해결 등이다. 이같은 과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국민회의는 30일 당8역회의에서 임시국회 대책으로 국회·정당·선거제도와 정치자금법 등 정치개혁 관련법안과 인권법 및 부패방지법을 조속히 제정하고,추경예산 처리 등민생문제 해결에 주력하기로 했다. 이는 교착상태에 빠진 정국을 개혁입법과민생정치로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특별검사의제도화 문제를 부패방지법에 담아 정치개혁법안과 함께 일괄협상을 하겠다는전략이기도 하다.여당이 처음부터 특검제의 제도화는 정치개혁 차원에서 논의하자고 제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임시국회 정치현안의 초점은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의 진위를밝힐 한시적 특별법 제정 등 정치개혁 협상과 부패방지법 제정에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중산층과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세금감면 등 각종 정책 개발로민생정치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한다는 복안이다.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당의 정체성을 확보하겠다는 차원이다.또 공직자들의 사기 진작에도 관심을쏟고 있다.이날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부패방지법 제정을 서두른다고 밝히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사기 진작책도 마련하기로 했다.공직자들의불만을 줄이기 위해 과장급 이상 경조금 금지조항의 비현실성도 개선하기로했다. 당 문제에도 주도적으로 풀어나간다는 각오다.김영배 총재권한대행은 내각제 문제를 풀기 위해 양당간 실무기구 설치를 구상하고 있는 등 향후 정국해법에 골몰하고 있다.특검제 정국을 풀기 위한 여야 협상이 안될 경우 김대통령에게 정치적 결단을 건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전당대회에서의 지도체제도 당이 개혁과 국정운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정비할 방침이다.당 우위의 국정운영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한 복안들이다.이러한 당의 구상은 1일김영배 총재권한대행의 국회 대표연설에서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보인다. 강동형기자 yunbin@
  • 정치권,‘정국정상화’돌파구 없이 맴돌기만

    정국의 물꼬를 트기 위한 정치권의 의견 조율이 막판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여전히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윤곽이 잡힐 듯하면서도 난항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28일에 이어 29일에도 양당 3역회의를 갖고 해법을 모색했다.여권의 대야(對野) 마지노선을 찾는 자리였다.자민련이 특검제와 관련,1년 시한의 수정안을 내놓았지만 채택되지 못했다.자민련은 그러나 여권의 특검제 단일안 국회 제출에는 동의하면서도 여당 단독처리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양당 3역회의에서도 이같은 기류를 읽을 수 있다.국민회의 참석자들은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며 말을 삼갔다.그러나 중재안을 냈던 자민련 강창희(姜昌熙)총무는 “여당 단일안을 따르기로 했지만 단독처리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강총무의 중재안을 두고 한나라당의 입장을 떠보기 위한 공동여당의 협상전략의 산물이라는 분석도 있다.한나라당은 여당안만 나오면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했다.여권으로선 진의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었다는 관측이다.강총무가 당초 27일 당무회의에서 여당 특별법 단일안을 추인하기로 약속하고서 이를 번복하고,개인 의견으로 중재안을 내놓았는데도 국민회의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도 이런 관측을 가능케 하고 있다. 강총무의 중재안은 여야협상과정에서 다시 떠오를 여지는 남겨두고 있다.한나라당은 옷사건이 특검제에 포함되면 국정조사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 일고 있다.또 여당 내부에서도 정국을 풀기 위해 특검의 대상이 될 수는없지만 옷사건에 대해 특검제를 수용하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여당은 옷사건에 관한한 여론의 도마위에 오를 국정조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여야 합의에 의한 특검제 도입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민회의 김영배(金令培) 총재권한대행도 이날 청와대 주례보고에서 여당안을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국회 대표연설에서도이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해졌다.특별법 제정을 놓고 여야 협상이 벽에 부딪쳤을때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의한 특별검사 임명 방식의 장단점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밀고 당기는 여야 협상은 당분간 더 계속될 전망이다. 강동형기자 yunbin@
  • TJ ‘제목소리 내기’ 나서나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가 달라지나.공동여권을 향해 제 목소리를 내기시작했다.‘2중대론’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협조·공조’에서견제·보완으로 바뀔지 주목된다. 첫 징후는 지난 24일 청와대 주례회동이다.박 총재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험악한 민심을 여과 없이 전달했다는 후문이다.김현욱(金顯煜)사무총장은 “박 총재가 쾌도난마식으로 얘기를 했다”고 소개했다.그 다음날 김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총재의 이날 발언 수위는 그전과 다른 분위기다.한 고위 당직자는 “김태정(金泰政)전 법무장관 건이 변화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당시 박 총재는 김 대통령에게 김 전 장관의 경질을 건의했다는 것이다.김 대통령은 계속 버티다가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 건으로 경질했다.그 과정에서 민심은 더험악해졌다. 박 총재는 자신의 미온적인 건의방식을 후회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김 대통령에게 보다 강력히 의견을 개진했더라면 상황이 훨씬 나아졌을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이를 계기로 ‘예스맨’으로 머물지 않으려는 변화가 엿보인다.민심을 제대로 청와대에 전하는 ‘눈과 귀’가 되겠다는 심산인 것같다. 하지만 앞길은 험난하다.충청권 세력들은 박 총재 변신에 반신반의하고 있다.듣기 거북한 얘기를 김 대통령에게 꺼낼 수 있겠느냐고 고개를 내젓는다. 9월 전당대회도 앞두고 있다.충청권은 ‘김종필(金鍾泌)총리 복귀설’을 주장하며 박 총재를 흔들어대기 일쑤다. 자민련은 사무처 요원 40여명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충청권은 당 주도권 장악을 노린 박 총재측의 음모라며 반발하고 있다.박 총재로서는 또다른 시험대를 맞고 있다. 박대출기자 dcpark@
  • [발언대] 정치인 축·부의금 유권자가 배격해야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혼례실태 조사 결과 1인당 평균비용 추정액이 7,539만원으로 나타났다.이를 기준으로 혼례비용을 산출하면 25조2,858억원에 달한다.그 중에는 친지,이웃들의부조금이 상당수 포함됐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경조사에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전달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이 또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선거법은 지난 98년 5월31일부터 국회의원,지방의원,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이런 선거에 입후보하려는 사람들은 주례,행사 찬조금,축·부의금을 할수 없도록 규정했다.다만 평소의 지면과 친교가 있는 자에 한해 1만5,000원이하의 경조품만을 제공할수 있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인과 친분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경조사에 정치인이 부조금을 내지 않은 것에 대해 오해를 하기도 한다.또 몇몇 정치인은 사직당국의 눈을 피해 이름을 쓰지 않는 부조봉투를 내며 구두로 이름을 밝히거나 경조사 장소를 피해가며 부조금을 전달하는 등 여러가지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검은 돈을 유권자가 과감히 배격해야 한다.깨끗한 선거풍토,투명한 정치자금의 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제도인데,개개 국민들이정치인에게 초청장·청첩장·행사안내장 등을 보낸다면 유권자 스스로가 과거 우리 주변에 만연했던 금권 타락선거를 조장하는 주체가 된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또한 이 기회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결혼식장 사용료,드레스료,사진촬영료,신혼여행경비 등 혼례비용의 과다사용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어느 선진국가에서 과도한 혼수비용을 우리처럼 사용하고 정치인에게 청첩장을 보내며 손을 벌리는 곳이 있단 말인가. 미풍양속을 벗어난 자기과시형 허례허식은 버리는 것이 국가경제를 위해,건전한 정치문화 발전을 위해 유익한 길이 될 것이다. 박귀석 [경기도 오산시 오산동]
  • 김대통령 ‘햇볕정책 안보 기여 서해交戰서 가시화’ 강조

    16일 국민회의 지도부의 청와대 주례보고에서는 국가안보문제가 주요 이슈로 다뤄졌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한마디로 “국가안보와 관련해 정부가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으므로 당은 슬기롭게 국정을 주도해 나가라”고 당부했다.안보문제만은 확고하게 다루고 있으니 당은 정치를 잘해 국민을 안심시키라는 주문이다. 김대통령은 서해안 남북 교전사태야말로 ‘햇볕정책’이 국가안보에 기여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햇볕정책이 완성된 정책으로 김대통령은 보지 않는다.하지만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해 주변국들로부터 호응과 지지를 끌어내고 있어 결과적으로 국가안보에 기여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장쩌민(江澤民)중국국가주석이 북한의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남북대화를 촉구하고 러시아가 북한의 서해안 선제공격에 대해 비판을 한 것도 ‘성과’라는 지적이다. 김대통령은 ‘서해안 사태’는 햇볕정책의 대전제가 북한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는 확고한 안보태세라는 점도 입증시켜 줬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무소속 홍사덕(洪思德)의원은 84년 중국민항기가 넘어왔을 때 우리 국민들이 동요,전국적으로 전화두절 사태가 벌어진 것을 상기시킨다.하지만 ‘남북한간 교전’이라는 직접적인 사태에도 국민들이 동요없이 평상활동을 해나간 점을 볼 때 햇볕정책의 ‘위력’을 실감했다는 얘기다. 92년부터 98년까지 우리의 북한방문자는 2,400명 정도.그러나 새 정부 들어 벌써 3,400여명이 북한을 다녀왔고 금강산 관광객만도 7만여명에 이른 것도 햇볕정책의 성과라고 김대통령은 밝혔다.안보는 안보대로 다지고 군사도발은 단호히 대처하며,동시에 화해협력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햇볕정책의 기조임을 강조했다.4자회담 성사,금창리 핵의혹시설 조사,금강산 관광,장성급회담의 지속도 결국 햇볕정책이 우리 안보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대통령은 김영배(金令培)총재대행으로부터 ‘신(新)북풍론’얘기가 돈다는 얘기를 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우리 군인들이 목숨을 걸고 교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신북풍론을 얘기한다면 목숨 걸고 싸운장병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유민기자 rm0609@
  • 공공부문 노사협상 신축성 높인다

    정부는 조폐공사 ‘파업 유도’ 의혹 발언 파문에 따른 노동계의 반발을 조기에 누그러뜨리기 위해 구조조정과 관련한 기획예산처의 예산편성 지침을개별 사업장의 단체협약과 상충되지 않도록 수정,적용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적극 협의키로 했다. 이에 따라 기획예산처가 공공부문 구조조정에서 요구하고 있는 ▲체력단련비 250% 폐지 ▲인건비 4.5% 삭감 ▲퇴직금누진제 폐지 ▲학자금 유상지원등이 사실상 노사의 자율적인 교섭에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이상룡(李相龍)노동부장관은 14일 청와대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이같은 내용의 노사안정대책을 주례 보고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노사정위원회 정상화를 위해 실업자의 초기업 단위노조가입을 허용하는 법제화 작업을 조기에 마무리짓고 민주노총을 합법화하는방안도 적극 검토키로 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그동안 예산편성지침은 단위 사업장의 특수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구조조정이라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예산편성지침을 신축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사실상 퇴색시키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노동계 파업의 핵심쟁점인 공공부문 예산편성지침과 단체협약과의 상충문제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신속히 해결토록 해 파업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 장관은 그러나 “조폐공사 사태와 개별 사업장 임·단협 문제는 별개”라고 전제,“이를 빌미로 한 파업에 대해서는 적극 대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노동부의 김원배(金元培) 노정국장은 “적극 대처한다는 것이 조폐공사 문제를 빌미로 한 총파업 투쟁에 강경대처한다는 뜻은 아니다”면서“그러나 불법·폭력 행위가 있으면 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말했다. 김명승기자 mskim@
  • 국민회의 조기 全大論 급부상

    국민회의에서 조기 전당대회론이 급류를 타는 것 같다.7월쯤 전당대회를 치르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된다.조기 전당대회론은 ‘고급 옷 로비의혹 사건’에 따른 민심수습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분위기다.내년 4월의 16대 총선을 앞두고 확실한 체제정비를 서두르는 게 좋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국민회의 정균환(鄭均桓)총장은 7일 “전당대회를 빨리 하는 게 좋다”면서 “7월중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정동채(鄭東采)기조위원장도 기자들과 만나 “당내에서 전당대회를 앞당기자는 기류도 있다”고 거들고 나왔다. 하지만 조기 전당대회론의 물꼬는 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이 텄다.김대행은 지난 4일 청와대 주례보고를 마친 직후 사견임을 전제,“민심수습과 당 쇄신차원에서 전당대회를 조기에 소집할 필요성도 있다”며 “전당대회는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그뒤 핵심 관계자들도 비슷한 톤으로 조기 전당대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치개혁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도 조기 전당대회론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당초 국민회의는5월로 예정됐던 전당대회를 8월로 늦췄다.한나라당과의 정치개혁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 한나라당은 정치개혁 협상에 미온적이다.8월까지 마무리될지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잘못하다가는 8월까지 정치개혁 협상도 안되고 전당대회만 늦춰져 얻는 게 없는 형국이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당대회를 7월로 앞당기는 데 실무적인 문제는 없는 것 같다.전당대회 전에 지구당 개편대회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정치개혁 협상이 이뤄지면 자연스레 지구당이 폐지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곽태헌기자 tiger@
  • 與, 정국타개 다각 모색

    ‘옷로비 의혹사건’과 ‘6·3 재선거 완패’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국민회의가 어떻게 난국을 타개해 나갈지 관심이다.민심이 이반되는 등 집권 이후 최대 위기라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국민회의가 추진하는 정국 타개 방식은 크게 민심 수습,공직기강 확립 및도덕성 회복,당 쇄신,대야 관계 개선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단기적인 땜질방식이 아닌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종합적이고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은 4일 청와대 주례보고에서 이같은 내용의 정국 타개책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게 중심은 민심 수습에 있다.이번 선거에서 확인됐듯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는 당의 정체성이 크게 훼손됐다는 판단에서다.당 지도부는 IMF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명분 속에서 가장 큰 고통을 당한 중산층과 서민들에 대한 배려가 소홀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도덕성 회복과 공직기강 확립 차원에서 부패방지법의 조속한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같은 맥락에서 특별검사제 도입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알려졌다.여기에 책임 정당의 모습과 당의 단합을 도모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급선무로 꼽히고 있다.1년여 동안 당 살림을 맡아온 정균환(鄭均桓)사무총장이 이날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사의를 표명한 것도 책임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당의 단합을 위해 의원 당직자 워크숍을추진하고 있다. 당 쇄신도 마찬가지다.당쇄신위원회 등 공식 기구를 통해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등 선거 패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논지다. 대야관계 복원도 중요하다.그러나 냉각기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한나라당이 포항집회를 강행하고 5일 예정된 청와대 여야 지도부 초청오찬에 이회창(李會昌)총재가 불참하는 상황에서 마냥 야당에 끌려가는 인상을 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여야 총재 회담은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시기상조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강동형기자 yu
  • 李국정원장 전격 경질 안팎

    이종찬(李鍾贊)국가정보원장의 전격교체 결정은 정·관가에서 의외의 일로받아들여지고 있다.이원장은 올해말까지 현직에 있고 싶다는 ‘희망’을 직·간접으로 청와대에 전했다고 한다.남북정상회담 추진 등 ‘큰 일’에도 애착을 보여왔다.원외이므로 당에 될 수 있는대로 늦게 복귀하는 게 좋다는 판단도 했음직하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물러나게 되자 서운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원장의 경질은 정치인을 모두 원대복귀시킨다는 대원칙에다,이원장이 국정원장에 있으면서 일부 정치성을 띤 행동을 했다는 말이 나돌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4일 이원장으로부터 마지막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배려하겠다는 뜻도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하지만 8월로 예정된 국민회의 전당대회 때까지는 전면에 부각되기는힘들 것 같다.일단 당고문이 유력시된다. 이원장의 조기 원대복귀로 차기를 노리는 국민회의 중진들의 신경전과 기세(氣勢)싸움도 볼만하게 됐다. 일각에서 이원장이 주중(駐中)대사로 갈 것이라는 말도 나돌지만 실현 가능성은 없다.이원장은 서울 종로지역구 복귀 혹은 내년 16대 총선 비례대표로원내로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곽태헌기자 tiger@
  • KBS결산권 방송委 이관/2與 방송법안 수정 합의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당초 국회에 주기로 했던 한국방송공사(KBS)의 결산권을 방송위원회에 부여하고 문화방송(MBC)에 부과하는 ‘공적기여금’의 징수율도 당초 매출액의 7%에서 3%로 대폭 낮추는 등 방송법안의 주요내용을 수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양당은 내달초 문화관광부와 당정협의를 개최하기로 최근 합의했다. 국민회의 장영철(張永喆) 정책위의장은 20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방송사 사장과의 간담회,자민련과 의견 조율을 벌인 결과,당의 방송법안을 재검토하기로 했다”면서 “이를 지난 19일 청와대 주례보고 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국민회는 KBS 사회교육방송·국제방송과 국제방송교류재단의 아리랑TV를 통합,국책방송을 설립하려던 안을 철회하고 아리랑TV의 일부기능을 KBS에 이관,해외방송을 단일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이는 KBS의 대북방송 노하우를 상쇄할 우려가 있는데다 추가적인 국고지원에 따른 통합은 효율성이낮다고 판단한 때문이다.또 방송위의 권한 집중으로 인한 폐해가 지적됨에따라 방송발전기금 관리운용권의 방송위 이관도 재검토하기로 했다. 추승호기자 chu@kdaily.
  • [독자의 소리] 재소자 비해 교도관의 처우개선은 소홀

    법무부는 6월부터 재소자들에게 사회체험의 기회를 주기 위해 모범수와 장기수에 한해 외출·외박을 허용키로 했다고 한다. 재소자들은 순간의 잘못으로 수용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도 가정이 있는만큼 외출 외박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현상으로 본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재소자들에 대해서는 사복착용,전화사용 허가 등 큰 변화가 일고 있지만 교도관에 대한 처우는 그대로인 것 같다. IMF체제 하에서 교도소는 넘쳐나는 재소자들로 인해 교도관들의 근무여건이 갈수록 악화돼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음지에서 고생하는 대표적인 공무원이 교도관일 것이다. 재소자들과 생활하면서 반 수인(囚人)생활을 하는 교도관들에게도 재소자들과 마찬가지로 근무환경 등에 관해 개선이 있었으면 한다. 김옥련[부산시 사상구 주례3동]
  • 韓 특보단장 , 당·정간 윤활유역할 기대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총재특보단장이 다시 ‘날개’를 달았다. 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은 13일 오전 한특보단장과 아침식사를 함께 하며 “앞으로 청와대 주례보고와 당 8역회의에 참석하라”고 지시했다.이는 12일 국민회의를 방문한 김중권(金重權)청와대 비서실장이 김대행에게 전한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의중으로 알려졌다. 누구보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아는 한 특보단장이 청와대와 당 사이의‘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당안팎의 기대다.핵심 당직자들이 ‘김심(金心)’을 제대로 읽지 못해 당정간 혼선이 빚어지는 사례가 적지않았다 평가다. 당의 소선거구제 단일안이 하루만에 번복되고 김대행과 손세일(孫世一)총무가 잇따라 김정길(金正吉)청와대정무수석과 갈등을 사례등이 단적인 예다. 이와함께 ‘젊은 피 수혈’이란 절대절명의 과제를 조속히,성공적으로 달성하도록 특보단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다.주례보고를 통해 김대통령이 매주 직접,특보단의 젊은 피 수혈작업을 챙기고 독려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추승호기자 chu@
  • 공무원 기살리기에 ‘안간힘’

    ‘공무원의 사기를 살리자’ 인력 감축과 월급 삭감으로 공무원들이 동요하고 사기가 떨어진 요즘 공직사회의 화두(話頭)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최근 “공직자는 공공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면서 공직사회의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 마련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기획예산위와 행정자치부가 행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사기진작 방안마련 작업에 착수한 데 이어 여당도 7일 적극적인 대책마련에 나서기로 했다.국민회의 장영철(張永喆)정책위의장은 이날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김 대통령은 지난 6일 주례보고에서 공무원 사기진작책을 마련할 것을 당에 지시했다”며 조만간 당정협의를 갖고 사기앙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무원들의 요구사항은 삭감된 체력단련비를 되돌려달라는 데 모아지고 있으며 다양한 사기진작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올해 6,800여명 추가감축의칼날은 피하기 어려울 것같다. 연금제도는 이달 중 별도로 마련될 개선방안과 맞물려 있지만 현역 공무원들이 어느 정도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관측이다. 정부의 2차 구조조정을 조속히 마무리해 파장을 최소화하고,공무원들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공직 안정 방안을 제시해 공직사회가 하루빨리 안정을 찾도록 해야 한다는 게 관가 주변의 지적들이다. 박정현·추승호기자jhpark@
  • 독자의 소리-되살아나는 과소비에 서민층 소외감만

    서민인 필자로서는 IMF시대에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한숨만 나오는데 백화점 등에서는 일부 부유층에 의해 소비가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4월 바겐세일기간에 고가수입품이 불티나게 팔렸다니 거품경기가 되살아나는 것같아 염려스럽다. 서민들은 아직도 졸라맨 허리띠를 풀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데 중상류층에서는 소비를 즐기는 느낌마저 든다.골프용품,보석류,귀금속,위스키 등 사치성 물품이 소비를 주도하고 있으니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더 심화되는 것 같다. 우리집만 보더라도 남편의 연봉이 작년보다 무려 250%나 깎여 겨우 입에 풀칠만 하는 형편인데 경기가 회복되지않고 소비만 되살아난다는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서민들은 하루빨리 실물경기가 회복되어 가정에 웃음꽃이 피어나아이들에겐 옷한벌 더 사주고,학원이라도 보내기를 바랄 뿐이다.남편 혼자수입으로는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없어 IMF를 초래한 위정자들이 원망스럽다. IMF를 만든 장본인들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정치에 무슨 미련이 남아 있어 꿈틀거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일부부유층들도 과소비를 자제하고 하루빨리 모든 국민들과 같이 IMF를 졸업하고 함께 웃을 수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과소비는 IMF를 극복하는데 아무도움이 안된다. 김옥련[부산시 사상구 주례3동]
  • [제2공화국과 張勉](15)분출하는 욕구(下)/기고

    1961년 2월4일 장면(張勉)총리는 반도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창립4주년 기념모임에 초청받아 ‘언론의 자유와 그 책임’을 주제로 강연한다. 장면은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이라고 전제한 뒤 “북한 괴뢰의 앞잡이들이 ‘조선인민보’나 ‘해방일보’를 발행하겠다고 등록신청을 해도 막을 도리가 없을 만큼 완전한 언론출판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무책임하고’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독선적인’ 언론이 횡행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장면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압제에 반대해야 하는 것과 같이,자유가 자유 그 자체를 파괴하도록 방임해서도 안된다”는 말로 연설을 끝맺었다.무절제한 언론에 대한 이 경고를,관훈클럽은 훗날 발간한 ‘40년사’에서“언론에 경종을 울리는 진지하고도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李承晩)독재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신문은 학생세력·민주당과 더불어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자유당 정권은,비록 그후의 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시대만큼 가혹하지는 않았지만그래도 독재체제를 유지하고자 언론에 대해 탄압을 거듭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59년 4월30일 경향신문을 폐간시킨 것이다.가톨릭계인 경향신문은 그 무렵 자유당 정권에 가장 비판적이었으며 장면이 대표하는 민주당 신파를 지지했다.따라서 60년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몇가지 꼬투리를 잡아 경향신문에 철퇴를 가했다. 그러나 도하 각 신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유당 정권의 비정(秕政)과 ‘3·15 부정선거’,그리고 이에 따른 학생·시민의 항거를 끊임없이 보도했다. 따라서 4월혁명후 언론은 명실공히 입법·사법·행정에 못잖은 ‘제4부’로떠올라 그 힘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언론계의 변화는 먼저 양적인 팽창으로 나타났다.1960년 3월31일 현재 국무원 사무처에 등록된 각종 정기간행물의 숫자는 그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일간신문은 4·19 전의 41종에서 112종으로,일간통신은 14가지에서 274가지로,주간신문은 136종에서 476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그야말로 ‘사무실 한평에 등사판 하나만 갖추면 통신사 간판을 내걸고 실업자 서너명만 모으면신문사 간판을 내걸 수 있는’시절이었다. 언론사가 급증하자 사이비기자가 판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고 이에 따라강경·논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사이비기자 물러가라”며 데모하기도 했다.한국일보가 1961년 2월 말 연재한 ‘기자가 취재한 기자군(記者群)-공갈기자’시리즈를 보면 그들의 성분과 폐해를 짐작할 만하다. “‘공갈기자’와 ‘진드기기자’들에게는 전직이 있다.…연무대 주변에서진을 친 이들의 대부분은 전직이 헌병대 문관 아니면 형사,또는 CIC군관,이밖에 퇴역군인이다.그래서인지 ‘진드기기자’들의 취재 태도는 이미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보고듣는 것이 아니고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탐색하고 사람을 취조하는-말하자면 ‘범죄수사’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전통있는 언론사야 행태가 물론 달랐지만 그들 역시 정부 시책을 사사건건물고 늘어져 비난하는 것을 신문의 의무로 아는 듯했다.당시 언론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3·15 부정선거’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자유당 간부장경근(張暻根)이입원중인 병원을 탈출,일본으로 밀항한 사건이 발생한다.이에 서울일일신문은 “면이와 경근이 때문에 창피해서”라는 설명과 함께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을 그린 만평을 실었다.‘장씨 종친회’라는 제목의 이 만평은 국무총리 장면과 부정선거 혐의로 구속된 장경근을 한데 엮어 비난한 것이었다. 장총리의 공보비서관인 송원영(宋元英)이 서울일일신문의 이관구(李寬求)사장을 찾아가 항의하니 이사장도 “이건 너무했다”면서 윤전기를 멈추고 만평을 뺐다고 한다(송원영 회고록에서). 경향신문 정치부장으로 있다 바로 공보비서관이 된 송원영은 “모든 매스컴이 장면정권을 두들겨팼다.마치 언론자유는 장정권을 타도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처럼”이라고 회고했다. 한편 신문이 보도 면에서 신중과 자제를 잃어(宋建鎬 표현) 독자들에게 수난을 당하는 사태도 자주 일어났다.부산일보는 동아대 학생들의 습격을 받아 20일동안 휴간했으며,한국일보는 ‘혁명전야’라는 연재소설에서 작가 정비석(鄭飛石)이 연세대생을 모욕했다는 항의를 받자 연재를 중단했다.박태선(朴泰善)장로교회 신도 수천명이 대낮에 동아일보 사옥에 침입,난동을 부린일도 있었다. 장면정부는 언론의 이런 태도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설득하는 이외의 방법은 쓰지 않았다.장면정부의 언론 주무장관인 정헌주(鄭憲柱) 국무원 사무처장은 “심지어는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 쓰곤 했지만 그래도 정부로서는‘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자리를 잡겠지’하는 생각에서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언론도 세월이 흐르면 책임을 깨닫고 스스로 바로 설 것이라는 그 자율기능을 믿은 것이다. 장면정부는 오히려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애썼다.가끔 ‘대통령 유시’나 발표하고 기자회견은 1년에 한 두차례 하는데 그쳤던 이승만과는 달리 기자회견을 매주 한차례 정례화했다.그럴 때면 전 각료를 동원하다시피해 갖가지 질문에 답했다. 또 KBS라디오를 통해 ‘주례 국정보고’도 방송했다.매주 토요일 오후 7시30분에 시작한 이 방송에서 장면은 민주당 정부의 방침을 국민들에게 설득조로 이야기했다. 4월혁명을 이룰 때까지 민주당과 신문은 ‘동지’였다.그러나 장면정부가들어서자 어제의 동지는 ‘적’으로 돌변했다.5·16쿠데타후 신문은 장면정부를 망친 ‘3신(新·신문,민주당 구파가 분당한 신민당,신파 소장파 모임인 신풍회)’ 가운데 하나로 인구에 회자됐고 군사정권 아래서 모든 자유를 빼앗겼다. 이용원기자 ywyi@[기고] 언론자유 수호 自淨운동 싹 틔워4·19로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무너진 후 한국 언론은 비로소 자유를 누릴수 있게 됐다.정부의 언론에 대한 간섭과 통제가 급격히 사라졌고,언론 스스로도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려고 노력했다. 허정(許政)과도정부는 1960년 7월1일 법률 제553호로서 ‘신문 및 정당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공포했다.이로써 허가제를 규정한 미 군정법령 88호는 폐지됐고,이제 등록만 하면 누구나 정기간행물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과거 대통령 직속의 독립된 부서였던 공보실이 폐지됐고,국가보안법과선거법에 삽입된 언론통제 조항도 삭제됐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한동안 언론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자유를 누렸다.그러나 갑자기 언론자유가 주어지자 우후죽순처럼 정기간행물이 쏟아져 나와 일간지나 주간지가 4·19 전에 비해 3배 가량 늘어날 정도가 되면서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들로 인한 폐단도 적지 않게 드러났다. 한편 1960년 5월 부산을 시작으로 하여 대구·서울 등지의 여러 신문사에서 노조가 차례로 결성됐고,KBS도 ‘방송중립화 운동’을 펼쳐 공정방송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그리고 1961년 2월13일에는 일본 거류민단계의 조용수(趙鏞壽)가 중심이 되고 국내 혁신계 인사인 송지영(宋志英) 윤길중(尹吉重)고정훈(高貞勳) 등이 참여한 민족일보가 창간되어 혁신계 세력을 대변하게됐다. 이런 가운데 자신들에 관한 보도에 불만을 품은 일부 독자들이 신문에 대해 항의시위나 난입,그리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일도 생겼다.이같은 사태는 무책임하고 부정확한 보도를 한 언론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막으려고 한 일부 독자들의 잘못된 의식도 작용한 결과였다. 이렇듯 제2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언론자유가 급격히 신장됐지만,언론자유는점차로 제약되는 경향을 보였다.집권 이후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 민주당 정권은 언론규제 장치로 ‘외국 정기간행물 국내 배포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었다.이것은 신문이 등록제로 대체되면서 폐기된 미군정법령 88호중 제5조만 유효하다는 유권해석과 함께 그것을 대신하는 법령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또한 창간되기도 전에 민족일보에 대해 국회에서 조총련계 자금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도 있었다.창간 이후 민족일보는 서울신문 공무국에서 제작됐는데,민주당 정권은 61년 3월 초에 서울신문에 압력을 가하여 이 신문의 조판과 인쇄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정권이 직접 언론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언론자유는 대체로 보장된 편이었다.또한 ‘신문망국론’이라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던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계가 스스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제2공화국 시기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언론자유가 처음으로 허용됐고 또 이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언론계 스스로의 노력도 시작됐다는 점에서역사적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모처럼 보장된 언론자유를 지키고 언론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율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5·16쿠데타가 터졌다.5·16 이후 언론자유는말살되고,언론은 정권의 통제와 특혜 속에 제 몫을 하지 못하며 기업적 성장에만 집착하게 됐다. [박용규 상지대 교수·신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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