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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 秘史 전하는 조선족 항일투사 리민 여사

    김일성 秘史 전하는 조선족 항일투사 리민 여사

    |하얼빈 오일만특파원|리민(李敏·81) 여사는 10년간 헤이룽장(黑龍江)성 성장을 지낸 천레이(陳雷·90)의 부인으로 조선족이다. 12살에 항일운동에 투신했고 북한 김일성 주석이 속했던 동북항일연군에서 무장 투쟁에 참여했다.1942년부터 45년까지 3년여 동안 김일성·김정숙 부부, 김정일과 함께 당시 소련령 하바로프스크 인근 브야츠크 마을의 소련군 야영지에서 88특별여단에 편입됐다. 리 여사는 이 곳에서 김일성, 최용건, 안길, 강건, 최현, 김일, 최광 등 훗날 북한 정권의 핵심이 되는 빨치산 대원들을 만났다. 리 여사는 후에 헤이룽장성 정협 부주석 자리까지 올랐다. 리 여사는 하얼빈 자택에서 진행된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 내내 노전사답게 꼿꼿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고 60년이 넘는 과거사임에도 정확한 기억력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1942~45년까지 김일성부부와 활동 리 여사는 김일성이 소련군의 명령에 따라 북한 지도자로 옹립됐다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리 여사는 “당시 88여단 내에서 최용건과 김책 등이 김일성보다 상급자였다. 이들은 해방 후 투쟁 방향과 진로를 모색하는 내부 비밀회의에서 김일성을 지도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시 소련은 해방 후 중국과 북한의 공산세력 확대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88여단의 소련측 책임자가 ‘조선인 가운데 누구를 지도자로 삼을 것이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최용건 등은 비밀회의에서 ‘김일성의 군사적·정치적 능력이 탁월하고 나이도 우리보다 젊다. 그를 우리의 지도자로 삼아야 한다.’고 추대 이유를 설명했다고 회고했다. ●문학적 재능 많았던 김일성 김일성은 88여단 시절 ‘단결무’라는 가무극을 직접 만들어 조선인 부하들과 함께 공연하고 노래까지 불렀다고 한다. 리 여사는 “정열적이고 활달했던 김일성은 상대방을 편하게 해줬으며 문학적 재능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리 여사는 당시 김일성이 직접 작사했다는 ‘사향가(思鄕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내 고향을 떠나올 때 어머니 내 손을 잡고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고 하시던 말씀. 아아 귀에 쟁쟁해….”라는 노래인데 당시 조선인 전사들 사이에선 꽤 유명했다고 한다. ●김일성의 결혼 주례 김일성과의 일화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결혼 주례 사건이다. 당시 리 여사는 중국인 천레이와의 연애 사건에 휘말렸다. 천레이는 자아비판과 함께 공산당에서 제명된 상태였고 조선인 동지들도 리민의 장래를 위해 지주 출신인 천레이와의 결혼을 만류했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단순한 연애가 아닌 ‘혁명적 동지의 결합’이란 김정숙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김일성이 중국인 지도부를 설득, 전격적으로 결혼을 성사시켰다.1943년 섣달 그믐날 리민 부부는 전격적으로 결혼식을 올렸고 이날 최광·김옥순 부부도 백년가약을 맺었다. 리민 부부는 북한 당국의 초청으로 평양을 여러 차례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환대를 받는 각별한 관계였다.92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은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통역없이 이들을 단독 접견했다. ●김정일은 전쟁놀이 즐겼던 골목대장 리 여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첫 만남을 42년 가을로 기억하고 있다.“42년 가을 강보에 싸인 젖먹이 김정일을 처음 봤다. 이후 45년 8월15일까지 김정일의 성장 과정을 지켜봤다.”고 밝혔다. 당시 리 여사는 통신대대에 근무, 상관인 최용건을 자주 만났다. 당시 최용건은 김일성과 같은 막사를 사용했다고 한다. 막사에 가면 가끔 어린 김정일을 만날 수 있었는데 피부가 검은 데다 키가 작고 총명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김정일은 아버지의 큰 모자를 쓰고 목총을 갖고 군대놀이를 즐겨했다. 큰 모자 때문에 눈이 가려진 채 뛰어다니던 모습이 선하다. 그는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고 막사에 손님이 찾아오면 중국말과 한국말로 번갈아 ‘엄마, 아빠’를 불렀다.”고 회고했다. 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이 전해지면서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파티가 벌어지고 흥에 겨워 만세를 부르고 있는데 평소 바지를 입기 싫어하던 김정일이 이날만은 스스로 바지를 찾아 입고 또래 유치원생들을 이끌고 전선에 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워 주위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94년 7월20일 김일성 주석 장례추도대회가 끝난 직후 리민 부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우리 부부가 조의를 표하자 김정일 위원장은 앞으로도 예전처럼 자주 방문해 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김 위원장의 손을 잡아 내 뺨에 갖다 대는 무례를 범했다. 옛날 김정숙 동지의 얼굴과 김 위원장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서였다.”고 회고했다. 김 위원장의 천레이 부부 접견 사진은 이례적으로 노동신문에 공개됐다. 리민 부부는 98년 9월 공화국 창건 50돌에 다시 초청을 받아 27일간 북한에 머물렀다. ●만주 항일전사 리민 리 여사의 항일 투쟁은 남한의 역사책에 공백으로 남아 있는 30년대 만주 항일 운동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조선의 좌익계열은 1928년 코민테른의 ‘일국일당 노선’에 따라 중국공산당 휘하에 들어갔고, 그들과 함께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을 창립했다. 이 부대에는 조선인들이 많았고 45년 종전 당시 1000여명 가운데 300여명이 조선인이었다. 리민은 중국인 리자오린(李兆麟) 장군이 총사령인 3로군 예하 부대에서 활동했다. 동북항일연군은 여러 차례에 걸친 조직개편 끝에 활동지역에 따라 1로군(동만주),2로군(지린성 동부),3로군(북만주)으로 재편된다. 당시 김일성은 1로군 제2방면 6사장(師長·대대장급)으로 일본군에 의해 동북항일연군이 와해되는 시점인 41년 전후로 상급자들이 대부분 사망, 지도적 위치에 올랐다. 최용건은 2로군, 김책은 3로군 소속이었지만 김일성보다 나이는 물론 직책도 높았다. 1924년 헤이룽장 오동하에서 태어난 리 여사는 부모 고향인 황해도 사리원 인근에서 살다가 압록강을 건너 헤이룽장 삼강평원에 정착했다. 항일 무장투쟁 과정에서 아버지와 오빠가 사망했고 천레이는 오빠와 절친한 전우였다. 리 여사는 최용건이 세운 모범소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12살 때 아버지를 따라 무장투쟁 부대에 들어갔다. 그는 처음에 유격대원들의 취사 보조원, 간호원 등 비전투원으로 항일투쟁을 시작했다. 리 여사는 소총이나 기관총 사격은 물론 말타기에도 익숙해져 완전한 전투원으로 임무를 충실히 해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37∼38년 무렵 일본군의 토벌공세가 거세지면서 송화강 유역 삼강평원 일대의 부금이나 밀산·완달산 등지에서 큰 전투가 자주 벌어졌다.3로군은 기병대가 주력인 일본군에 맞서 수목이 울창한 삼강평원의 늪지대로 퇴각하는 유격전술을 폈다. 1938년 여름 완달산 전투에서는 300여명의 부대원 가운데 고작 60여명이 살아남았다. 당시 일본군은 군인과 개척단 수천명을 동원, 동서남 3면을 포위하고 고립 전술을 폈다. 서서히 좁혀 오는 포위망 속에서 6일간 물 한 방울도 먹지 못하고 굶주렸다. 결국 북쪽 절벽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다 상당수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어가면서 포위망을 탈출했다. 리 여사는 “일본군 총에 맞아 죽고 굶어 죽어가던 전우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고 회상했다. 일본군은 30년대 말 초토화 작전을 펴면서 유격대가 숨을 만한 산림을 아예 불태워 근거지를 없앴다. 배고픔과 추위는 그런 대로 참았지만 일본군의 교활한 귀순작전에 심리적 동요를 일으킨 전우들의 배반이 가장 가슴 아팠다. 리 여사는 마지막까지 저항했고 그가 속한 3로군은 41년 국경선을 넘어 옛 소련령으로 들어갔다. 천레이 부부는 문화대혁명(66∼76년) 당시 반동으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기도 했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의 실권 장악과 함께 복권됐다. oilman@seoul.co.kr ● 리민 여사는 1924년 중국 헤이룽장성 오동하에서 태어나 12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만주에서 항일운동에 투신했다.1942∼1945년 김일성 주석과 부인 김정숙 등 북한 핵심 인사들과 88특별여단에서 활동하며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중국인 지주 출신인 천레이와의 결혼식 주례를 김일성 주석이 할 정도였다.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반동으로 몰렸다가 복권됐으며, 남편 천은 후에 헤이룽장성 성장을 10년간 지냈고, 리 여사 역시 헤이룽장성 정협 부주석을 역임했다. ■설훈 전의원 만난 리민 여사 |하얼빈 오일만특파원|“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주 벌판에서 이름없이 죽어간 항일 전사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통일이 이뤄져야 합니다.” 천레이(陳雷·90) 전 헤이룽장(黑龍江)성 성장의 부인이자 정협 부주석을 지낸 리민(李敏·81)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리해 ‘통일 도자기’를 전달받기 위해 찾아온 설훈 전 의원을 반갑게 맞았다. 항일동북연군에서 10년 가까이 사선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했던 리 여사는 지난 2000년 역사적인 ‘남북 6·15 공동선언’을 전해 듣고 며칠 동안 기쁨에 들떠 있었다고 한다. 리 여사는 “2002년 6·15선언 2주년을 맞아 통일을 기원하는 ‘통일 도자기’ 2개를 만들어 그 중 하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보냈지만 김대중 선생에게 전달할 방법을 찾지 못해 그동안 안타까웠는데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며 기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통일 도자기를 전달받은 설 전 의원은 “리민 여사의 통일 의지를 높이 평가하며 남은 여생 동안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김 전 대통령의 말씀을 대신 전한다.”고 말했다. 리민 여사가 기증한 통일기원 도자기는 김대중 도서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oilman@seoul.co.kr
  • 연정훈·한가인 웨딩마치

    톱스타 커플 연정훈·한가인이 백년가약을 맺었다. 두 사람은 26일 오후 5시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의 야외 행사장 제이드가든에서 10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화촉을 밝혔다. 이들은 2003년 KBS 1TV 드라마 ‘노란손수건’에 함께 출연할 때 맺은 인연으로 2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주례는 탤런트 최불암이, 축가는 가수 박화요비가, 사회는 개그맨 유재석이 각각 맡았다. 신접살림을 판교에 차릴 두 사람은 이미 혼인신고는 마쳤지만 신혼여행은 드라마 출연 등의 일정 때문에 6월로 미뤘다.
  • “돈키호테 본받자”

    미국을 겨냥해 연일 목청을 높여온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돈키호테식’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24일 주례 방송연설을 통해 “미군과 연계된 여성이 군 시설을 촬영하다 체포됐으며 정유시설과 표지판 등을 찍은 수명의 미국인(기자)도 같은 혐의로 구금됐다 풀려났다.”고 밝혔다. 차베스는 체포된 여성의 국적이나 미군과의 연계 정황은 물론 언제 그같은 사건이 일어났으며, 풀려났는지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미국 관리라도 그같은 짓을 하면 수감될 것이며 베네수엘라에서 재판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발언은 베네수엘라가 미국과 35년 동안 유지해온 군사분야 협력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지 이틀만에 나온 것이다. 지난 22일에는 미국 기자들의 정유공장 촬영에 도움을 준 장교를 포함, 베네수엘라군에서 교관으로 일하고 있는 미군 7명에게 출국 명령이 내려졌다. 현지 언론은 이번 조치가 양국의 외교적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반영한다고 우려했다. 특히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미 정부가 베네수엘라의 도전을 어떻게 ‘통제’해나갈 것인지 남미 각국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또 앞뒤 안 재고 이상을 향해 용기있게 나아가는 행동형 인간인 돈키호테를 본받자며 정부 예산으로 올해 발간 400주년을 맞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100만부를 인쇄해 23일부터 국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차베스 대통령 등이 일으킨 좌파 열풍이 남미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26일 브라질을 시작으로 콜롬비아, 칠레, 엘살바도르 등 4개국 순방에 나선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탁신 “난 건강” 점쟁이 예언 반박

    |방콕 연합|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가 “앞으로 2년 사이 건강이 나빠져 생명을 위협받게 될 것”이란 유명 점쟁이의 예언을 공개적으로 일축했다고 태국 언론이 10일 보도했다. 그는 점쟁이 말을 잘 믿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탁신 총리는 9일 라디오 주례연설 도중 이같이 밝히고 자신의 건강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발언은 앞서 지난 7일 핀요 퐁차런 태국 국제점성가협회 회장이 “2년 사이 나라에 심각한 위기가 닥치고 집권당 타이락타이(TRT)도 불운에 직면하며, 탁신 총리는 건강 악화로 생명을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한데 따른 것이다. 탁신 총리는 퐁차런 회장의 불길한 예언에 대해 “점쟁이 말에 괘념치 않는다.”고 잘라 말한 뒤 “나는 두달 전 정밀 건강검진을 받았고 지난 6일에는 혈액 검사도 받았는데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상이었다.”고 강조했다.
  • [뒷골목 맛세상] 여의도의 맛집들

    [뒷골목 맛세상] 여의도의 맛집들

    누가 뭐라고 해도 여의도는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국회가 있고, 증권가가 있으며 게다가 방송 3사가 한꺼번에 몰려있다. 이런 식이라면 권력과 금력을 비롯한 무소불위의 강력한 힘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셈이다. 아니, 또 있다. 단일교회로는 그 크기나 신도의 숫자에 있어서 세계에서 으뜸으로 꼽힌다는 순복음 중앙교회가 있으며, 가장 높은 63빌딩이 있다.1970년대만 해도 고작 군용비행장이 그 쓰임새의 전부였던 넓고 황량한 모래벌판이 30년이 조금 넘는 기간에 나라의 중심을 차지하는 땅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권력이며 금력이 모여 있는 여의도에 자연스럽게 맛집들 또한 넘쳐나지 않을 수 없다. 얼핏 보면, 하늘이 낮다고 치솟은 금융가의 빌딩들, 고급아파트단지 일색의 살벌한 풍경 속에 어디 한 구석 사람냄새라고는 맡을 수가 없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보면 빌딩 사이사이의 내면 도로 안에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맛집들이 넉넉하게 숨어 있다. 사람냄새가 풍기는 맛집에 어찌 도타운 정이 없으랴. 그리하여 샐러리맨들을 위시한 여의도 주민들은 마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불을 찾아 모여드는 불나방이처럼 기꺼이 정이 도타운 맛집들을 찾아서 모여든다. ●살벌한 풍경속 도타운 인심 자랑 여의도 백화점 앞 백상빌딩 1층에 율도(02-784-8877)라는 일식집이 있다. 실내 디자인이며 객실 분위기는 얼핏 보기에 여느 일식집과 다를 바 없는 그저 평범한 일식집일 뿐이다. 그러나 주인 내외를 만나는 순간 율도의 인상은 전혀 달라진다. 안주인 마정수씨도 그렇지만 특히 바깥주인 이춘형씨를 만나는 순간, 대뜸 끌려드는 끈끈한 정을 어쩔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순박하고 착한 표정이며 충청도 사투리의 어눌한 말투가 사람으로 하여금 보자마자 전혀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이는 타고난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여 누구와도 격의 없이 어울리는 다정다감한 이다. 그리하여 그이는 손님과 인사만 나누었다 하면 열이면 열 그 자리에 합석하여 함께 즐기는 이다. 율도를 처음 찾는 이라도 그곳에서 주인 되는 이춘형씨에게 바가지를 씌우기란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다. 그저 그이를 자리에 불러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술을 한잔 건네면 된다. 만일 어느 정도 드나들어서 서로 얼굴을 아는 이라면, 주인 되는 이가 먼저 술병을 들고 손님을 찾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리하여 술이 몇 순배 돌면, 그이가 먼저 종업원을 부른다. “꽃게 간장이 잘 익었던데, 그것 좀 가져와요. 생태깍두기도 잊지 말고.” 그러면 이번에는 종업원 대신에 안주인 마정수씨가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꽃게장이 담긴 접시를 들고 나타난다. 그러고는 그이 또한 싱글벙글 웃으며 기꺼이 손님이 건네주는 술잔을 받는다. 그리고 안주인이 다시 한번 종업원을 부른다. “아무래도 회가 부족한 것 같은데, 도미나 방어뱃살로 한 접시 더 가져와요.” 일찍이 1970년대 우리나라 일식업계의 대부격이라고 할 수 있는 북창동의 미조리에서 갓 스물의 젊은 나이로 소위 ‘칼질’을 처음 배워서 ‘이다바’가 되었다가 마침내 여의도의 일식집 주인까지 오른 이춘형씨는 술이 취하면 농담 한 마디를 빼놓지 않는다. “지가유, 충청도 유구 촌놈으로 마침내 여의도까지 입성했구먼유, 저그 저 지하도를 못 건너가서 그렇지유.” 이춘형씨가 가리키는 지하도 저편에는 물론 국회가 있다. 그런데 그이가 국회를 들먹이는 데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암울한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율도를 드나들며 거의 공짜로 먹고 마시던 소위 운동권 인사이자 한편 백수건달인 많은 이들이 1990년대가 되자 너나없이 국회의원이 되어 지하도를 건너간 것이었다. 이해찬, 임채정, 김근태, 김부겸, 이길재, 유인태, 원혜영, 유시민, 배기선, 설훈 등등. 그런가 하면 시인 신경림을 위시해서 소설가 현기영, 극작가 안종관 등의 문인들이나 동아투위 출신의 기자로 연합통신 사장을 지낸 김종철이며 출판사 사장 김학민도 모두 그이가 ‘거둬 먹인’ 이들이었다. 횟집 주인 이춘형씨가 뜬금없이 운동권인사들과 어울리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이의 외삼촌 되는 성래운 교수 때문이었다. 몇 해 전에 벌써 고인이 되었지만, 연세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가르치던 성래운 교수가 하루아침에 해직교수가 되어 감옥까지 가게 된 것은 박정희 시절에 전남대학교의 송기숙교수 등과 어울려 발표한 ‘우리의 교육지표’ 때문이었다. 이른바 이 땅의 민주화교육을 위한 지침으로 여겨지는 이 ‘우리의 교육지표’ 때문에, 성래운 교수는 참으로 오랫동안 일자리를 잃고 교단이 아닌 운동권 인사들과 어울렸는데,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의 술자리로 자연스럽게 조카 이춘형씨의 율도를 제공한 것이었다. ●‘거둬 먹인’ 인사들 이젠 정·관계 주역 운동권 시절 성래운 교수는 교육학 전공 교수보다는 낭송시인으로 더 유명했는데, 그이는 무려 100여편에 이르는 시들을 모두 암송하여 민주화 운동의 무슨 행사에서는 물론, 뒤풀이 자리에서도 낭랑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기꺼이 낭송을 하고는 했다. 그이의 시낭송은 거기에서도 끝나지 않고, 조카 이춘형씨의 결혼식 주례를 맡고서도 주례사 한 마디 없이 양성우 시인의 ‘겨울공화국’을 낭송하는 것으로 끝마쳐 신혼의 부부는 물론 하객들을 아연 긴장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서슬 푸른 유신시절 양성우 시인은 바로 ‘겨울공화국’이란 시 때문에 감옥에 가있고, 시인 고은과 조태일마저도 다름 아닌, 겨울공화국을 시집으로 펴냈다는 이유 때문에 역시 감옥살이를 하는 중이었다.‘…총과 칼로 사납게 욱박지르고/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대고/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대는/지금은 겨울인가/한밤중인가/논과 밭이 얼어붙는 겨울 한때를/여보게 우리들은 우리들은/무엇으로 달래야 하는가….’ 결혼식에서 주례가 잘 살으라는 주례사는 하지 않고 불온한 시나 낭송해대니 앳된 신혼부부는 얼마나 무서웠으랴. 율도의 자랑은 점심 때 나오는 율도정식이다.1인분 3만 5000원의 율도정식에는 모듬생선회에다가 제주갈치탕이라는 다른 집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탕에 제주갈치구이, 초밥, 새우튀김, 메로구이 등이 뒤따른다. 제주갈치탕은 이춘형씨가 제주도의 갈치국에 전라도의 갈치조림을 충청도식의 탕으로 변형시켜낸 것인데, 무, 감자, 시래기, 토란대, 호박에 청양고추며 파, 마늘을 넣어 끓여낸 갈치탕은 갈치국의 시원한 맛과 갈치조림의 진하고 고소한 맛을 함께 살려낸 셈이다. 또 하나 자랑은 도시락인데, 소위 1997년 IMF초기의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시절에 임창렬 부총리와 함께 국회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점심이며 저녁까지 도시락으로 때울 때, 바로 하루에 100여개 이상씩 공급했던 일화가 있는 도시락이다. 이밖에도 점심메뉴로는 장어구이, 도미머리구이, 장어덮밥, 회덮밥, 전복죽, 은대구탕 등이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율도의 으뜸은 단연 회 뜨는 솜씨에 있다. 이춘형씨의 칼잡이로서의 30년을 훌쩍 뛰어넘는 경력 끝에 나오는 회는 다른 집보다 두터우면서 길고 가는 회뜨기가 자랑인데, 회뜨기 자체만으로도 입안 가득히 감겨드는 맛은 일품이다. 저녁에 나오는 특생선회는 1인분에 7만원인데, 방어뱃살, 도미뱃살, 도미, 농어뱃살, 광어, 광어뱃살, 전복 등이 오르고, 곁들여 나오는 안주에는 키조개, 뿔소라, 개불, 문어, 고둥, 곰피, 붉은 새우에 비단멍게, 홍삼, 홍어내장, 산마 등이 따른다. 원효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접어들어 직진하면 KBS별관과 인도네시아 대사관이 나오는데, 그 직전의 네거리를 넘어서는 왼편 가각 우정빌딩 1층에 서글렁탕집(02-780-8858)이 있다. 지금부터 30년 전 여의도의 절반 정도가 개발이 되지 못하고 아직은 황량한 벌판으로 남아있을 때, 일찍 자리를 잡은 서글렁탕집은 여의도에서는 그야말로 터줏대감 같은 맛집일 터이다. 처음에 설렁탕집을 했는데, 설렁탕과 발음이 비슷하면서도 주인이 서글서글 인상이 좋다는 손님들의 한 마디에 힌트를 얻어 서글렁탕집으로 했다는 이 맛집은 뜻밖에도 삼겹살 양념구이로 유명한 집이다. ●공짜로 먹기엔 미안한 선지해장국 모르기는 해도 삼겹살을 양념간장에 발라 숯불에 석쇠를 올려 구워먹는 식으로는 전국에서 처음일 것이라는 주인의 단언이 그대로 수긍 가는 집이기도 하다. 원래 삼겹살을 간장에 발라 숯불에 구워먹는 식은 청주와 충주 일대에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 맛을 본 주인이 서글렁탕집만의 양념간장을 개발한 것이다. 삼겹살에 바르는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양념간장은 손님들 사이에서는 양념소스로 더 알려졌다. 계피, 흑설탕, 초콜릿, 마늘, 파 등의 양념에 간장을 부어 만드는데, 바로 이 간장에 서글렁탕집만의 숨겨진 비밀이 있는 모양이다. 서글렁탕집의 주인은 모두 4명이다. 형 홍정원, 동생 홍동원 형제에다가 형의 부인 손승인, 동생의 부인 장덕순 이렇게 4명이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이좋게 홀이며 주방을 맡아 식구끼리 운영하고 있다. 아니, 또 있다. 형의 아들 홍주성이 대학을 휴학하고 홀에서 서빙을 하며 서글렁탕집의 비법을 전수받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이런 가족끼리의 운영이 서글렁탕집의 도타운 정과 함께 1인분 7000원짜리 삼겹살 치고는 양이며 질이 넘쳐난다 싶게 풍성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런 풍성함이 옛날 TBC시절부터 직원들의 입소문을 타고 번져 서글렁탕집을 일약 유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서글렁탕집에서는 삼겹살을 시키면 상추며 깻잎 같은 야채와 파무침에 곁들여 선지해장국 한 그릇이 공짜로 나오는데, 그 진하고 고소한 국물맛이며 뚝배기에 가득한 선지덩이가 어쩐지 공짜로 먹기에는 미안한 기분이다. 그뿐이랴. 삼겹살을 먹다보면 어느새 대형 콜라 한 병까지 터억, 탁자에 놓이기 마련이다. 이 콜라도 공짜인 것은 물론이다. 서글렁탕집에서는 삼겹살 이외에도 등심이며 염통과 콩팥도 있고,4000원하는 설렁탕과 내장탕, 그리고 3000원하는 선지해장국도 있다. ■김치요리 모두 모인 ‘김치방’ KBS별관을 따라 골목을 돌아들면 오른편으로 두일빌딩이 나오는데, 이 두일빌딩 1층에 김치방(02-780-2489)이 있다. 김치방은 상호 그대로 김치로 만든 요리 일색인 김치 전문집이다. 김치전골, 김치국밥, 김치국수, 김치주먹밥, 김치전, 두부김치, 김치해물전, 그리고 하다못해 묵은 김치에 돼지고기와 홍어를 곁들여 먹는 삼합까지, 얼핏 김치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거의 다 있는 셈이다.2만 4000원짜리 삼합을 빼고는 가격이 저마다 3000원에서 5000원 안팎인데, 그중에 김치국수와 김치국밥은 김치방에서 자랑스럽게 내놓는 메뉴이다. 김치국수는 주인 되는 김진주씨의 시부모님이 함경도 출신인데, 겨울이면 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시어머니가 갖은 전과 함께 만들어 내놓는 김치국수를 어깨 너머로 배운 솜씨에다가 본인의 손맛을 가미한 것이다. 먼저 김치를 담글 때 김치통이 절반 못 담기게 양을 조절하여 김치를 담고, 그 위에 돌을 눌러놓은 다음에 맑은 생수를 부어넣는 식이다. 그렇게 김치를 숙성시킨 다음에 보름 정도 냉장으로 보관했다가 국수사리에 김치국물과 김치를 얹어낸다. 그이는 김치국수의 국물 맛을 내기 위하여 처음에는 여러 가지로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김치에 사골육수를 붓거나 멸치국물을 부어보고, 새우국물도 부어본 중에 가장 맛깔스러운 것은 뜻밖에도 아무런 가미 없이 생수만 부은 김치였다. 돼지고기를 넣는 김치전골과는 달리 김치국밥은 해물을 위주로 한다. 굴, 홍합, 새우, 오징어를 넣고 멸치국물을 육수로 하여 김치와 콩나물을 넣어 끓여 내는데, 그 담백함이란 얼핏 상상이 안 될 정도이다. 이렇듯 김치국밥이나 김치국수에 3000원짜리 김치주먹밥까지 곁들이면, 주인 되는 이의 넉넉한 품성과 함께 먹는 일의 즐거움이 새삼스러울 터이다.
  • 한국 대표작가 35인 ‘속얘기’ 책으로

    한국 대표작가 35인 ‘속얘기’ 책으로

    열에 아홉, 내면을 글로 꿰는 책상물림의 작가들에게는 기벽(奇癖)이나 범상찮은 기억들이 훈장처럼 따라붙어 다니게 마련이다. 지난해 타계한 김춘수 시인은 벽에 못 하나를 박을 줄 몰랐으니 생활인으로서는 완전 젬병이었다. 어느덧 칠순이 된 신경림 시인은 저 유명한 시집 ‘농무’를 쓸 수밖에 없었겠다. 나이 서른에 시작한 낯선 서울살이, 전기도 수도도 번지수도 없는 문화촌 산동네에는 돈벌이를 찾아 고향을 등져온 농민들로 그득그득했었다. ●故김춘수시인 “김수영 의식하다 순수시 고집” ‘내 문학의 뿌리’(답게 펴냄)에서 한국문단을 이끌어온 대표작가 35인이 목청을 돋운다. 나는 어쩌다 작가로 살게 되었으며, 내 문학의 뿌릿발은 정녕 무엇으로 인하여 그토록 오래 성성할 수 있었는지! 책은 2001년 문을 연 ‘문학의 집·서울’(이사장 김후란)이 2년여 동안 마련한 원로문인 초청강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첫 장은 소설가 구혜영의 유년시절로부터 열린다. 강원도 평창·횡성 등 시골에서의 유년을 복기하는 문투는 마치 성장소설처럼 재미나다 싶은데, 어느새 작가적 소양을 배태하게 해준 은인 같은 존재가 기억의 중심에 선다.‘그’라고 의인화된 글 속의 대상은 결국 ‘쓰기 욕구’였던 것. 사내아이처럼 바깥을 떠돈 어린시절을 지탱해준 것도, 재수 끝에 대학시험에 붙게 해준 것도 모두 남다른 작가적 욕망이었다고 술회한다. 이렇듯 쓰기에의 극찬사로 시작된 책은, 시인 김춘수·김종길·김지하·신경림, 문학평론가 이어령·유종호, 소설가 박완서·송원희·이청준·이호철·한승원, 수필가 피천득·김태길 등 35명의 문학인들 사이를 종횡무진 활강한다. 시인 김춘수는 자신이 ‘무의미의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옹색한 배경을 솔직히 말했다.“평생동안 유일하게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시인은 김수영”이라고 밝히고 “그와 다른 길을 모색하다 보니 의도적, 의식적으로 순수시를 고집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한달에 한 두편 시를 쓰는 게 일과의 전부”라거나 “은행에 가서 돈 찾고 넣고 할 줄도 모른다.”는 등 짧은 문장들 속에서 시로만 향했던 시인의 천착이 느껴진다. 작품론을 벗어나 작가들의 사변적인 사연을 엿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설가 박범신은 삶이 팍팍할 때면 훌훌 털고 용인으로 간다.“고요하면서 쓸쓸하고 쓸쓸하면서도 꽉 차 있는, 적멸보궁 같은 그곳 굴암산으로 홀로 걸어들어가는 순간만큼은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고 생활의 한 방편을 귀띔한다. ●3년 쓰고 남을 원고지 싸들고 美유학하기도 혹독하고 치열했던 습작의 기억을 재구성한 글들은 문학론의 한 장이 될 만하다. 휴전 직후 학원 영어강사 시절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다는 수필가 김태길은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3년 동안 쓰고도 남을 엄청난 양의 원고지를 싸갖고 떠난 일화를 소개했다. 최근 글쓰기 세태를 맵짜게 꼬집고 한편으론 후배 작가들을 독려하기도 한다. 주례사 수준의 평필(評筆)들이 옥석을 가려주지 못하고 수필의 양적 팽창만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박완서 “가벼워지기 위해 소설을 썼다” 소설가 박완서의 말은 속 깊은 자기고백에 다름없다.“한겹 두겹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그는 맨 마지막줄에 “가벼워지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담담히 적었다. 이젠 고인이 된 이들의 육성도 더러 끼어 있다. 시인 조병화, 극작가 이근삼, 아동문학가 어효선 등의 글에 이르면 사뭇 숙연한 지상강의가 된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조PD 초등동창과 화촉

    인기 가수 조PD(29·본명 조중훈)가 8일 오후 서울 신사동 소망교회에서 두살 연하의 초등학교 동창생 박주현씨와 결혼식을 올린 뒤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최근 중학교 동창 모임을 통해 10년 만에 다시 만나 교제를 시작, 결실을 맺었다. 소망교회 김천수 목사의 주례로 진행된 이날 결혼식에는 ‘친구여’를 함께 부른 가수 인순이를 비롯해 김진표, 김창렬, 정원관, 이본, 김경호 등 동료 연예인과 친지 800여명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연합
  • [길섶에서] 주례사/육철수 논설위원

    결혼식 주례는 학식 있고 경험 많으며,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만 하는 걸로 알았다. 그런데 요즘 ‘40대 주례’도 주위에 꽤 많다. 연령파괴가 주례까지 파급될 줄이야…. 친구 중에도 벌써 2명의 경험자가 나왔다. 친구 Y가 제자의 주례를 선 경험담.“처음 주례 요청을 받았을 땐 당황했어. 이왕이면 신혼부부에게 깊은 인상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주례사 작성에 정성을 쏟았지.” 저명한 교육학자의 원서 한 권을 읽고 가족의 소중함을 담은 명문장을 옮기고, 자신의 체험담을 담는 등 심혈을 기울여 나름대로 평생 간직할 만한 주례사를 완성했단다. 드디어 결혼식날. 식이 끝난 뒤 주례사를 흰봉투에 담아 신혼부부에게 건넸다. 예식장에서 정신없이 한 번 듣고 흘려버리는 게 주례사인데, 살아가면서 힘들 때마다 열어보고 소중한 가정의 의미를 되새기라는 말과 함께…. 생각해 보니 18년전 나의 주례께서는 무슨 말씀을 해주셨는지 기억이 안 난다. 혹시 그 속에 인생의 보물이 들어있었다면 큰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닌가. 이혼과 가정파탄이 잦은 요즘, 신혼부부는 물론 하객도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주례선생의 깊은 말씀만은 귀담아 들어볼 일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다시 교단에 서는 양성우 시인 7시간 격정 토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다시 교단에 서는 양성우 시인 7시간 격정 토로

    ‘내일일까, 모레일까, 눈물 맺힌 30년 세월∼’. 누군가 말했다, 기다림은 차라리 고통이라고. 그렇게 30년을 지냈다. 이제 돌아가려 한다. 그곳은 어머니의 품이다. 태어나 뒹굴었다. 함께 울고 웃었다.‘품’을 떠난 뒤 강산이 세번 변했다. 파란과 곡절, 무수한 격동의 그림자를 관통했다. 돌이켜봐도 손바닥만한 가슴으로 꽁꽁 부둥켜안아야 했던 세월이었다. ●75년 시 ‘겨울공화국’으로 광주중앙여고 파면 2월 초였다. 그날따라 눈이 펑펑 쏟아졌다. 한 시인이 학교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얗게 덮인 눈, 서산대사가 걸어갔듯이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그렸다. 시계바늘을 30년 전으로 돌렸다. 농성하던 3학년 학생들이 거울처럼 투영됐다.‘겨울공화국’이 뇌리에 생생하게 스친다.‘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 논과 밭이 얼어붙는 겨울 한때를, 여보게,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영화 ‘일 포스티노’의 마지막 대사.‘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칠레의 저항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며 읊었다. 시인 양성우(62). 요즘처럼 설렌 적이 있을까.30년만에 찾아온 ‘아주 특별한 귀향’을 맞이하고 있다.1975년 2월12일 ‘겨울공화국’이란 저항시를 낭독, 광주중앙여고에서 파면당했다. 이후 온몸으로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투옥·고문·도피의 세월을 보냈다. 최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광주중앙여고측에 양씨에 대한 복직권고 결정을 통보했다. 학교 측도 복직 절차에 들어갔다. 늦어도 한달 이내에 다시 교단에 설 것으로 보인다. 서울 마포에 위치한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양씨를 만나 7시간 동안 ‘격정’의 인터뷰를 했다. 그는 먼저 1월말 학교측에서 연락이 와서 2월초 광주에 내려가 재단(금호·아시아나)이사장과 교장, 그리고 행정실무자 등을 만났다고 했다. 다들 흔쾌하게 양씨의 복직의사를 받아들였다고 귀띔했다. 특히 30년전 같이 근무했던 동료 교사들이 아직도 있어 무척 반가웠다고 부연했다. 또 이같은 사실이 언론 등에 보도되자 당시 제자들로부터 많은 축하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광주중앙여고의 ‘총각 시인 선생님’이었던 그는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학생들로부터 ‘오빠’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장남이 해직기자였던 당시 교장은 양씨를 파면할 때 “(아들 생각으로)내가 차라리 감옥에 가고싶은 심정.”이라며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학생·학부모 선동 이유 사찰로 유폐 양씨는 그해 4월15일 학교측으로부터 파면통고를 받자마자 중앙정보부(중정) 광주지부로 연행됐다. 중정 요원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를 선동했다는 이유를 들이댔다. 장시간 조사를 받은 양씨는 구례군 지리산 ‘천은사’로 유폐된다. 경찰 2명이 보초를 세워 출입을 통제했다. 이같은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자 면회객들이 줄을 이었다. 광주중앙여고 학생은 물론 서울의 대학생들까지 단체로 면회를 왔다. 양씨는 그해 연말 시인 고은씨한테 ‘사람 많은 곳에서 숨어 지내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서울로 올라가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고은씨는 곧장 천은사로 내려와 한밤중에 양씨와 함께 열차를 타고 상경했다. 서울에 온 양씨는 흑석동 중앙대 정문 입구에 2평짜리 쪽방을 얻었다. 쪽방 벽면 너머는 다방이었다. 때문에 날마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들어야만 했다. 또 다방은 동료문인들이 모이는 아지트였다. 황석영·이문구·고은·이시영씨 등이 찾아와 문학을 얘기하고 군사독재를 비판했다. 중앙대 문창과 학생들도 단골로 찾아왔다. 그러던 하루는 한양대 이영희 교수가 불렀다. 중국문제연구소에서 촉탁직원으로 일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춥고 배고팠던 양씨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연구소 소속 교수들의 논문을 모아 책을 발간하는 일이었다. 양씨는 이 무렵 장편시집인 ‘노예수첩’을 썼다. 이는 당시 재야권 인사들에게 수천부씩 복사되어 언더그라운드 페이퍼로 읽혀졌다. 얼마후인 1976년 남산(중정)의 4국으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재야권에 음성적으로 떠돌던 ‘노예수첩’이 일본의 ‘세계(世界)지’에 게재된 것. ●한달간 고문 국제 간첩단으로 몰려 한달간 고문 끝에 양씨는 ‘양성우 국제간첩단 사건’의 장본인으로 발표된다. 양씨와 만났던 미국인 캐서린 엘리자베스(여성민권운동가)와 폴 슈나이스(독일인 목사), 일본의 다카사키 소지 교수 등이 입국금지됐다. 양씨는 곧 재판에 회부됐다. 죄목은 ‘국가모독죄’와 ‘긴급조치9호 위반’이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그는 6개월간 재판을 받는다. 이때 옥중에서 박정희 정권타도에 앞장섰다는 죄목이 더 추가됐다. 결국 5년형을 선고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됐다. 면회는 절대금지였다. 때문에 변호를 맡은 홍성우 변호사와 고은씨 등 지인들은 옥중결혼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마침 양씨는 수감되기 전 정정순(현재의 부인)씨와 사귀고 있었다. 반대할 것으로 예상됐던 정씨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했고 유일하게 면회를 할 수 있는 직계 가족이 됐다. 양씨는 농섞인 말로 “결혼 얘기만 나오면 지금도 ‘깨갱’할 수밖에 없다.”며 웃었다.“집사람은 그 일로 고향인 광주집에서 쫓겨났다.”면서 (부인이)처녀의 몸으로 옥바라지한 경험담을 ‘때가 오면 그대여’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출간했다고 귀띔했다. 결혼식은 출소 후 이문구씨의 사회와 박형규 목사의 주례로 올렸다. 양씨는 수감 중 찬 감옥방에서 지내느라 하반신에 악성종양을 얻어 영등포시립병원에서 수술대에 누웠다. 이때 이문구·조태일·박태순씨 등 문인들이 단체로 몰려와 “저항시인 양성우를 석방하라.”며 연일 데모를 벌였다. 탄원도 계속됐다. 양씨는 2년6개월 만에 출소했다. 수감생활 중 성경책의 여백에 못으로 꾹꾹 눌러 옥중시집 ‘북치는 앉은뱅이’를 썼다. 5·18 때에는 지명 수배돼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시인 신경림씨의 도움으로 가끔 서울에 올라와 세종문화회관 뒤쪽 ‘항아리집’에서 동료들과 비밀리에 만났다. 모이는 사람은 주로 염무웅·백낙청·이호철씨 등이었다. 항아리집 여종업원들은 프랑스의 물랭루즈처럼 운동권 인사들에게 음성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고 양씨는 회고했다. “고은·조태일씨, 그리고 이영희 교수 등도 저를 돕다가 옥살이를 했지요.5·18후에는 문단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됩니다. 또한 자유실천문학인협의회를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꾸는 등 민주화 운동에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되지요.” ●87년 잠시 정치권 외도 그는 6월항쟁 때 이한열군이 사망하자 ‘꽃상여 타고 그대 잘가라’는 추모시를 써 민주화운동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이후 87년 대선 때 “법과 제도를 민주적으로 고치기 위해선 현실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주위의 끈질긴 권유로 정치무대로 잠시 외도한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철길’이라는 소설로 ‘학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때 4·19시위를 주도하는 등 일찍부터 민주화 운동에 가담해 파란많은 인생역정의 길을 걸었다. 요즘 시작(詩作)에 전념하고 있다는 그는 “정년이 1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역사에 떠밀려간 30년의 세월을 매듭짓고 싶다.”면서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좋은 보약이 되는 얘기를 많이 해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올 하반기에 신작 시집을 출간한다. 그의 시 가운데 ‘혼자 떠나는 새’ 등 10여편은 이미 가곡으로 불려지고 있다. ■ 그가 걸어온 길 ▲1943년 전남 함평 출생. ▲60년 조선대부속고등학교 2학년 재학중 4·19시위 주도 ▲61년 민통련 호남지역 고등학생 총연맹 회장으로 활동.5·16 직후 광주교도소 수감 ▲62년 학다리고등학교 편입. 학원문학상 소설당선 ▲63년 전남대 국문과 입학 ▲70년 ‘시인’에 ‘발상법’과 ‘증언’으로 등단. ▲71년 전남대 국문과 졸업 ▲71∼72년 학다리고 교사 ▲72∼75년 광주중앙여고 교사.‘겨울공화국’ 사건으로 교사직 파면 ▲76년 대한성서공회 문장위원 ▲77년 ‘노예수첩’으로 투옥 ▲79년 8월 가석방 ▲84년 자유실천문학인협의회 대표 ▲85년 서울민통련 중앙위원 ▲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 ▲88년 제13대 국회의원(평민·서울 양천구) ▲91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 시집 발상법, 신하여 신하여, 겨울공화국, 북치는 앉은뱅이,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넋이라도 있고 없고, 노예수첩 등 km@seoul.co.kr
  • 부시, 유럽순방 성과 있을까

    |파리 함혜리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 저녁(현지시간) 브뤼셀에 도착해 5일간의 유럽순방에 나섰다.2기 취임 후 첫 해외방문인 이번 유럽 방문은 이라크전 이후 소원해진 대서양 양안 관계를 개선하는 주요 계기가 될 것이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란 핵개발과 중국에 대한 무기금수 조치 등 현안을 둘러싼 이견을 해소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부시 대통령은 19일 자신의 유럽순방과 관련,“미국과 유럽 우방간 관계의 중요성을 재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대서양 양안의 지도자들은 세계 평화에 대한 희망이 자유국가들간 단결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다.”며 “우리는 풍자만화에서처럼 이상주의적인 미국과 냉소적인 유럽간 분열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은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유화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기본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20일자 사설에서 “이란 핵문제, 중국의 무기금수조치 해제문제, 온실가스 배출 방지 노력 등에 대한 이견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유럽과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일방주의를 포기하겠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야만 진정한 관계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88개 인권ㆍ환경ㆍ평화운동 단체들은 21일 브뤼셀 주재 미국대사관 부근,22일엔 EU본부 근처에서 대규모 연대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lotus@seoul.co.kr
  • 샤론총리 “나 떨고 있니”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에 대한 우익들의 암살 위협이 잇따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이어 유대 극단주의가 이 지역의 안정을 깨뜨리는 요인으로 떠올랐다. 샤론 총리는 13일(현지시간) 주례 각의에서 유대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적인 만행’을 강력히 단속하도록 주무 장관 등에 지시했다. 이어 2주 안에 메나헴 마주즈 검찰총장과 대내 정보기관인 신베트 국장 등이 참석하는 특별 대책회의를 소집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라디오는 각의 직후 경찰 고위 간부회의가 소집돼 암살 대책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각지에는 최근 들어 샤론 총리에 대한 암살 위협 등이 담긴 포스터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샤론 총리와 사별한 릴리 여사를 빗대 “릴리가 샤론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까지 있었다. 분석가들은 지금의 상황이 지난 95년 11월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극우 청년에 의해 암살되기 직전과 매우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유대 극단주의자들은 샤론 총리가 주도하고 있는 유대인 정착촌 철수 방침에 대해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우파로 분류되는 베냐민 네타냐후 재무장관이 정착촌 철수에 반대하는 주민들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테러 위협을 받았다. 베냐민 벤 엘리저 기간산업장관은 이날 각의에서 샤론 총리가 극우세력의 암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벤 엘리저 장관은 자신이 직접 받은 협박 편지를 공개했는데 “당신의 정맥에는 아랍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며 이 때문에 당신은 이스라엘을 떠나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노인 일자리 5200여개 마련

    서울시가 급증하고 있는 노인들을 위해 올해 5000여개의 일자리를 새로 마련한다. 서울시는 “서울의 65세 이상 노인 비중이 6.7%인 69만명으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노인들이 보람있게 여가를 보내면서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확충했다.”고 10일 밝혔다. 올해 시가 마련할 예정인 일자리는 모두 5254개로 59억여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지난해에는 35억여원을 들여 3506개의 일자리를 공급했다. 이번 일자리는 각 자치구나 노인종합복지관, 시니어클럽, 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공급된다. 자연환경정비, 교통질서계도, 숲생태·문화재 해설사, 주유원, 주례, 실버대리운전 등 종류도 다양하다. 시는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단체나 기관에 노인 한 명당 월 20만원과 일체의 부대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다. 일자리가 필요한 노인은 주거지역 관할 자치구의 사회 혹은 가정복지과에 이 달 안으로 신청하면 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美, 새정부 도와 치안 확립”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정부와 언론은 이라크 총선이 중동의 민주화는 물론 조지 W 부시 정부의 대내외적 정치적 위상을 가름할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이라크 총선은 이라크 역사의 전환점이자 자유 신장의 초석이며,‘테러와의 전쟁’의 결정적인 진전”이라며 “이라크 선거는 미국의 안보에도 중요하다.”고 주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라크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동안 미국의 임무는 계속돼야 한다.”면서 “우리 군대와 외교관, 민간인 요원은 새로 선출된 이라크 정부를 도와 치안을 확립하고 이라크 군경을 훈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지칭한 ‘새로 선출된 이라크 정부’는 헌법 제정후 오는 12월 총선에서 구성될 정부를 가리키는 것이어서 내년에도 미군이 이라크에 계속 주둔할 것임을 재확인한 셈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민주주의 국가로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나라는 없다.”며 “미국의 안보는 항상 자유가 진군할 때 확보돼 왔다.”고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30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총선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예상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사담 후세인이 권좌에 있던 3년 전만 해도 누구도 이같은 이라크의 발전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라크 전역에서의 선거 진행과 바그다드 주재 미대사관 폭발사고 등 선거를 무산시키려는 저항세력의 테러공격 상황을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라크 총선에 앞서 메릴랜드주 등 미국내에서 진행된 이라크인 부재자 투표상황을 소개하고 “총선일은 이라크인에게 새로운 희망의 날”이라는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뉴욕타임스는 바그다드 주재 미대사관의 폭발사고 등 이라크 총선을 방해하기 위한 저항세력의 움직임을 자세히 전했다. daw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공공의 적2’ 모델된 심재륜 전 고검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공공의 적2’ 모델된 심재륜 전 고검장

    사건의 서곡은 ‘석양의 폭탄주’에서 시작됐다. 무림의 고수들이 만났다. 전직 고검장 출신의 검객(檢客)과 스크린의 마술사. 술잔을 거푸 들이킨다. 시계바늘을 돌린다. 고민에 빠진다. 마침내 생각의 나무, 그 뿌리에서 뭔가 나온다. 느낌표와 마침표. 마술사가 무릎을 탁 친다. 얼마후 영화 ‘실미도’가 개봉됐다.1000만 관객을 훌쩍 돌파했다. 아무도 예상못했다. 사람들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이라고 했다. 사건은 계속됐다.‘공공의 적’이라는 이름으로. 심재륜(61) 전 고검장. 늘 따라붙는 수식어만 해도 간단치 않다.‘항명파동1호 검사’‘조폭과의 전쟁’‘현직 대통령 아들 구속’‘한보사건’‘장영자 어음사기사건’. 또 있다.“검찰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대통령 책임이오.”라는 직격탄을 날린 통제불능의 사나이. 우리나라 검찰수사의 대표적 ‘강력통’이며 ‘특수통’이다. 별명은 ‘심통’이다. 고집이 센 데다 성이 ‘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다름아닌 대박을 조언하는 ‘영화 코치’라는 점이다. 그렇다. 강우석 감독작품인 ‘실미도’와 ‘공공의 적’ 시리즈에서 적극적인 자문역할로 대형사고(?)를 터뜨렸다. 영화 ‘실미도’에서는 실미도 사건 의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심 전 고검장은 사건 당시 인천시 부평의 특전사에서 군법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사건이 나던 날인 주말 오후, 외출을 나가던 중 불과 몇십미터 지근거리에서 실미도를 탈출한 병력의 차량을 목격하게 됐다. 아울러 군병력과의 총격전도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때문에 정래혁 국방장관이 발표한 ‘무장공비’ 운운은 믿지도 않았다. 최근에 개봉된 ‘공공의 적2’에서는 사실상 전편에 걸쳐 자문역할을 했다. 이 영화에는 꼴통검사(설경구)에서 검사장까지 등장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검사라는 점도 최초이지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내부를 처음으로 공개한 것도 심 전 고검장의 역할이 컸다. 특히 영화의 주된 흐름인 사학재단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과 조폭검거 등의 장면에서는 그의 냄새가 풀풀 난다. ●실미도 등 강우석감독 영화 자문 서울 서초동의 ‘심재륜 변호사 사무실’에서 심 전 고검장을 만났다. 최근 개봉된 영화 ‘공공의 적2’에 대한 얘기가 가장 먼저 나왔다. “원래 ‘공공의 적’이란 해방직후에 등장한 단어지요. 좌익쪽에서는 ‘인민의 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현대적 개념의 공공의 적은 사회전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 즉 사회적으로 타도해야 할 대상을 말하지요. 영화 시사회를 봤는데 강우석 감독이 스토리구성을 잘한 것 같아요. 관객 500만명은 족히 넘지 않을까요.(웃음)” 강우석 감독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 궁금했다. 강 감독은 평소 “심 전 고검장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는 표현을 자주해왔다. 이에 심 전 고검장은 “항명파동 직후 (자신은) 정부와는 부정적 이미지였지만 강 감독은 (영화사의)고문을 맡아달라고 선뜻 제의해왔다.”면서 “이 과정에서 폭탄주를 마시며 서로 더욱 친해졌다.”고 대답했다. 아울러 “실미도 사건 때의 현장목격담,‘공의 적1,2’를 제작할 때 강력부장과 중수부장 시절의 경험담 등을 많이 들려주었다.”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공공의 적2’에 등장하는 꼴통검사와 강력부장은 심 전 고검장의 모델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초대 강력부장 출신이다. 그렇게 봐도 틀린 것은 아니다.”며 웃었다. 또 강 감독뿐만 아니라 설경구 등 제작진들과도 여러차례 저녁자리를 가지면서 조언을 해주었다고 덧붙였다. 시나리오를 쓴 작가도 검사장의 태도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심 전 고검장은 술자리에서 강 감독을 ‘강간독’으로, 설경구를 ‘경구피임약’이라고 농이 섞인 별명을 지어주었다며 웃었다. 어느정도 친하게 지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폭탄주는 가득 채워야 부정부패가 없거든요. 칠부니 팔부니 하면 형평성이 어긋납니다. 술자리에선 선배와 후배를 평등하게 대접해야 합니다. 또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시기 때문에 탁자 밑에 쏟지 못하지요. 폭탄주는 투명하고 정직합니다.” 그는 “폭탄주를 마시고 2차 술자리를 하게 되면 주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1차에서 끝내도록 권유한다.”고 말했다. 폭탄주가 널리 보급된 것은 85년 이후이며 원조는 박희태 의원이라고 귀띔했다. ●개혁은 기본과 근간 흔들지 말아야 이번에는 사법개혁에 관한 질문을 했다. 그는 ‘개혁’이라는 말은 위정자들이 합리화하기 위한 단어에 불과하다고 전제했다. 아울러 개혁에는 ‘제도개혁’과 ‘인적개혁’이 있지만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개혁을 하려면 기본과 근간을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기간 실험을 거치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법시험은 소수의 합격자들만을 일생동안 편하게 지내게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해방이후 오늘날까지 국가가 버틸 수 있는 지주대로써의 역할을 해온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면서 최근들어 1년에 1000여명씩 법조인이 양산되다보니 선비정신이 갈수록 퇴색되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가 사법시험을 치를 때는 달랑 5명만 뽑았다고 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플리바게닝 도입과 관련, 그는 “우리나라 법체계상 정당한 방법이 될 수는 없다.”면서 “배신논리가 법으로 보장받아서는 안 된다. 동양적 윤리로 볼 때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하는 꼴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박종철고문 조작 등 대형사건 지휘 그는 1944년 1월 충북 옥천 읍내에서 4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두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선친은 교장으로 퇴임한 교육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냈다. 대전중학에서 3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2학기때 보험회사에 취직한 형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상경후 그는 동성중학을 졸업한 뒤 서울고에 진학했다.5·16의 영향으로 62년 서울대 법대를 진학할 때 정원이 300명에서 160명으로 줄어들어 더욱 좁은문을 통과했다. 졸업 이듬해에 제7회 사법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연수과정인 서울대 사법대학원은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1972년 정식으로 서울지검 검사로 발령받아 1993년 검사장으로 승진할 때까지 우리 사회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다뤘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 비행선 부정도입사건, 오대양집단자살사건, 부산 초원복집사건도 그가 진두지휘한 사건이었다. 이밖에도, 서방파의 두목 김태촌씨, 양은이파의 두목 조양은씨,OB파의 두목 이동재씨를 비롯한 폭력조직 3대 패밀리를 소탕한 것도 그였다. 그는 1978년 서른네살 때 결혼했다. 주례는 민복기 대법원장이 맡았다. 신부는 큰 누님 친구의 딸인 공혜경(55)씨.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10년간 한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심 전 고검장은 음악과 미술도 좋아하고 촌철살인의 농담실력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 지난 2002년 33기 사법연수원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의 투명성과 인자함,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성격 등이 각인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소외되고 억울한 편린들을 많이 봅니다. 인간생명의 존중함, 신체의 자유 등에 대해 새삼 배우고 반성하고 있지요.” 검찰생활 30년, 그는 “수사는 한마디로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후배검사들에게 ▲피의자를 굴복시키지 말고 ▲조그마한 절차는 상사에게 양보하고 ▲외압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 속도조절을 할 필요가 있으며 ▲집착하거나 너무 서둘러서도 안된다는 등의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좌우명은 思無邪/德不孤必有隣/和而不同이다. 즉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고, 덕을 베풀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또한 화합하되 뇌동하지 않아야 한다의 뜻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44년 충북 옥천 출생 ▲1962년 서울고등학교 졸업 ▲66년 서울대법대 졸업 ▲67년 제7회 사시합격(차석) ▲69년∼72년 육군법무관(대위) ▲69년 서울대법대 대학원 졸업 ▲72년 서울지검 검사 ▲82년 밀양지청장 ▲90년 서울지검 강력부장 ▲92년 서울지검 3차장 검사 ▲93년 대검 강력부장 ▲94년∼97년 대전·광주·인천지검 검사장 ▲97년 대검 중앙수사부장, 대구고검 검사장 ▲2001년 대검 고검장(본부근무) ▲2001년 부산고검 검사장▲2002년∼변호사심재륜법률사무소 ■ 저서=사법대학원제도와 운영 km@seoul.co.kr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재산만 챙기고 부양 떠넘기는 형수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재산만 챙기고 부양 떠넘기는 형수

    저는 2남 2녀의 차남입니다. 부모님이 나이가 드셔서 형과 함께 지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같이 살면서 지내다 보니, 형수가 아버지를 조금 불편하게 생각했습니다. 형수는 부모님께 재산을 조금 달라고 하더군요. 아버지는 며느리의 부탁도 있고 며느리에게 잘보일 마음에 새로 산 아파트를 며느리 이름으로 등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등기를 마친 2∼3개월 뒤 저는 형으로부터 “부모님을 너도 좀 모셔야 할 것 아니냐. 모시고 가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모실 수 있지만, 아버지가 맏며느리에게 준 그 아파트를 도로 찾고 싶습니다. - 한명수(가명) - 참으로 한심한 현실 앞에서 할 말을 찾지 못하겠군요. 맏며느리는 시부모로부터 재산을 받고나서는 “이제는 부모를 모실 필요가 없어졌다.”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재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재산 없는 부모님은 누가 모실 것인지.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부모는 재산을 주었을까요. 앞으로 노인들도 자식들에게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독립해 살아갈 방도를 미리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말은 교육의 기본이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효도하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성공한 사람치고 집안에서 부모에게 불효하였다는 말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혼례식 주례를 하면서 노상 인용하는 말은 부디 효도하라는 말입니다. 얼마전에 한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냄새가 난다.”고 말해 80세의 노인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어요. 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입니까.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만 있어도 이런 비극은 면할 수 있었을텐데…. “나무가 조용히 서 있고 싶으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樹慾靜而 風不止 )자식이 봉양하고 싶으나,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도다.(子慾養而 親不在)”라고 읊은 효자도 있는데 오늘날은 왜 이 모양인지…. 장남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풍습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점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아들이나 딸이 모두 부모를 모실 형편이 못된다고 핑계를 댈 때, 부모는 가정법원에 부양조정이나 부양심판을 청구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요. 그러면, 법원에서는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ㆍ검토해 부양의무자, 부양방법(같이 살면서 부양할 것인가, 아니면 요양시설에 모시고 부양료를 지급하도록 할 것인지 여부), 부양정도 등을 결정하게 되지요. 만일 법원에서 부양에 관한 심판을 내렸는데도 의무자들이 이를 지키지 아니할 경우는 강제조치가 내려집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나 며느리, 사위에게 재산을 미리 증여한 경우 이를 도로 찾을 수 있는가. 증여계약은 일단 이행돼 버리면 이를 도로 찾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새로운 판례가 나와 이를 도로 찾을 길이 열렸습니다. 판례를 보면,“너는 부모를 잘 모셔라. 병원에도 모시고 가야 한다. 만일 내가 죽거든,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붙여서 부동산을 넘겨줬는데 넘겨받은 자식은 약속을 어긴 사건이었어요. 이 질문의 사건에서는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는 있으나, 그 모양새가 별로 좋지 않고 나아가 과연 그와 같은 조건부로 주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증명할 수 있을지…. 사실, 자녀들이 재산을 바라거나 재산의 대가로 부모를 모신다면 진정한 효도라고 말할 수 없지요. 이 사건과 같이 부모를 모신다고 재산을 받고는 돌아서서 안 모신다고 하는 경우, 부모는 물론 다른 자녀들도 맘속으로 서운한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꼭 그 재산이 탐나서가 아니라, 그 며느리가 미워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모든 문제를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마시고, 우선 대화를 시도해 보고 최후로 부모님의 의견도 들어본 후, 법에 호소하는 길을 모색하시기 바랍니다. 법적분쟁 그 자체가 불효가 되어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으니…. 필자가 취급한 사건 중에는 부자간의 소송 도중 연로한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건도 있었어요.
  • 쉬어가기˙˙˙

    이탈리아축구협회가 심판 판정에 비디오 판독 등 전자장치의 도입을 강력 주장하고 나섰다.“축구는 점점 빨라지고 있지만 심판의 눈은 경기장의 카메라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럭비와 미식축구 등에 쓰이는 전자장치를 판정에 도입해야 될 때”라고 강조한 것. 이에 대해 유럽축구연맹(UEFA)은 오는 주례 회의에서 이 안건을 다룰 예정이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 박지만씨 결혼식 하객 2300명… 대형스크린 중계

    박지만씨 결혼식 하객 2300명… 대형스크린 중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지만(46)씨가 14일 낮 서울 워커힐호텔 비스타홀에서 변호사 서향희(30)씨와 화촉을 밝혔다. 이날 결혼식장에는 2300명이 넘는 하객이 몰렸다. 한 시간 전부터 하객이 100m나 늘어서자 급작스럽게 1층 연회장을 빌려 대형스크린으로 결혼식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축의금과 화환은 받지 않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보낸 화환만은 입구에 세워 놓았다. 식장에는 박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를 비롯해 박태준 전 국무총리, 김성진 전 문화공보부 장관 등 3공 핵심인사들이 여럿 모습을 보였다. 김덕룡 원내대표 등 20여명의 한나라당 의원과 황우석 서울대 교수, 김대중 대통령의 셋째아들 홍걸씨도 참석했다. 지만씨의 누나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붉은 저고리에 겨자색 한복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채 동생 서영씨와 나란히 서서 하객을 맞았다. 곽선희 소망교회 목사의 주례로 치러진 결혼식 중간에 어린 시절 지만씨가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영상으로 공개되자 몇몇 하객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박 대표는 하객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염려와 걱정을 해준 덕에 오늘의 동생이 있었다.”면서 “돌아가신 부모님이 하늘나라에서 더없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인사했다. 한편 결혼식이 끝난 뒤 지만씨 부부는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묘소가 있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 “불효자 지만이가 한 가정의 지아비가 되어 이렇게 찾아뵙는다.”며 폐백의 예를 올렸다. 지만씨는 “‘아들은 부모를 봉양하고 싶으나 부모님께서 기다려주지 않으신다.’는 옛말이 너무나 뜨겁게 다가온다.”면서 “남은 보은의 길은 자식을 낳아 아버님 어머님께서 주신 사랑을 그대로 전하는 것임을 깊이 명심하겠다.”고 다짐했다. 유영규 박지연기자 whoami@seoul.co.kr
  • 럼즈펠드 유임…부시2기 외교안보팀 확정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으로 확정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주 럼즈펠드 장관으로부터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유임을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의 향후 대외정책은 이들과 함께 딕 체니 부통령이 이루는 4각축이 협조, 견제하면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 4인방 체니와 라이스, 럼즈펠드, 해들리의 공통점은 부시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핵심 측근이라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9·11이후 이라크 침공을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통보한 사람이 바로 이 네사람이다. 외교안보의 4각축 가운데 체니는 럼즈펠드, 해들리와 ‘특수관계’를 갖고 있다. 체니와 럼즈펠드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 당시 발탁돼 함께 정치적으로 성장했으며, 해들리는 체니가 국방장관시절부터 아끼던 측근이다. 때문에 라이스가 국무장관에 취임하면 체니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있다고 워싱턴 정가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라이스는 국가안보보좌관을 거쳤지만, 외교적 기본방향에 대해 명확하게 드러낸 적이 없다. 라이스가 체니나 럼즈펠드와 뜻을 맞출 수도 있지만, 외교적 타협을 중시하는 국무부와 힘을 앞세우는 국방부 사이에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라이스가 국무부 인사 등을 통해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체니의 후원 속에 국무부 부장관을 노리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핵심인물이자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의 거취는 불투명해보인다. ●럼즈펠드가 할 일이 남아 있다? 럼즈펠드 장관의 유임은 부시 대통령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 국민이 지난 대선에서 ‘전시에 말을 바꿔타지 않기 위해’ 부시 대통령을 지지했던 것처럼 부시 대통령도 국방장관을 바꾸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테러와의 전쟁 등 새로운 국제안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해외주둔미군재배치(GPR) 사업도 럼즈펠드 장관이 마무리짓길 부시 대통령이 바랐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럼즈펠드 장관의 유임으로 부시 1기 이라크정책의 설계자이며 네오콘의 지도자인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도 입지가 불안해졌다. 네오콘들이 이라크정책 실패의 책임을 럼즈펠드 장관에게 덮어씌워 밀어내고 울포위츠를 장관으로 올리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dawn@seoul.co.kr
  • 붕어빵식 결혼문화 “이제 그만”

    붕어빵식 결혼문화 “이제 그만”

    “딴따따∼딴….”결혼행진곡에 맞춰 조신하게 등장하는 신부. 예식장에 도착, 돈봉투를 들이민 뒤 식당부터 찾는 하객들.‘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을 일장연설하는 주례사 선생님. 휴∼.30분은 그렇게 후딱 지나간다.-일상적인 결혼식의 풍경이다. 이런 분위기를 바꾸려는 ‘유쾌한 잔치’가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서울시 동부여성발전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여성문화예술기획의 여성문화전문 아카데미 수강생들이 만든 ‘김공주, 궁전예식장을 점거하다.’(www.womenspace.or.kr)라는 행사다. 김공주는 신부에 대한 환상이고, 궁전예식장은 붕어빵식 결혼문화의 대명사인 셈이다. ●예식 틀깨고 새로운 ‘결혼상’ 제시 “결혼 날짜 잡으면 적금 깨서 혼수준비하고, 피부마사지, 다이어트에 돌입하고….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데 대개 ‘결혼식’만 신경쓸 뿐 정작 ‘결혼’에 대한 준비는 안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여성문화예술기획 박미경씨는 “독립적인 주체들끼리 평등하고 유쾌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행사 과정 자체가 우리의 결혼문화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하는 내용 담은 ‘혼전 계약서’ 작성 이번 행사의 특징은 결혼식을 올리고 싶거나 결혼식 예행연습을 해보고 싶은 커플들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신청자가 없을까봐 걱정했지만 의외로 희망자들이 몰려 인터뷰를 통해 네 커플을 뽑았다. 이 예비부부들은 ‘하객’(방문객)들과 함께 5일 동안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한 ‘대장정’에 들어간다. 이들은 첫날 입장식에서 서로에게 바라는 내용을 담은 ‘혼전계약서’를 작성하고, 행사를 즐긴 뒤 마지막날 폐막식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행사 기간 중 여성학자 이숙경씨와 오숙희씨 등이 진행하는 토크쇼 ‘맺힌 결혼, 푸는 결혼’에서 결혼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는 행사가 열린다. 또 ‘체험, 신부대기실’에서는 식장에서 하객들을 맞이하는 신랑 대신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신부를 만날 수 있다. 폐백, 다이어트 용품 등이 전시된 ‘궁전예식장 유물전’, 재활용품을 활용한 드레스 등 ‘대안 결혼 박람회’도 열린다. ●축의금 대신 꽃선물·주례사 대신 하객 덕담 이번 행사에서 실제 결혼식을 올리는 이재희(26)씨는 “어렸을 때부터 결혼식을 어디에서 올릴까 고민했는데, 드디어 마음에 쏙 드는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면서 “이번 행사를 통해 나와 남편의 결혼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김공주’인 최은영(28)씨는 “내년에 올릴 결혼식 때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는 기대감을 피력했다. ‘사물놀이의 구성진 리듬이나 스웨덴그룹 ‘아바’의 흥겨운 팝송에 맞춰 춤추며 등장하는 신랑 신부들.’‘순백색의 웨딩드레스 대신 각자 좋아하는 옷을 입은 신부’‘축의금 대신 정성스럽게 준비한 꽃을 장독대에 던지는 하객들’ ‘하객들을 졸게 만드는 주례사 대신 하객들의 덕담’‘하객들에게 한껏 축하받는 결혼 피로연’-닷새 동안의 잔치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결혼 풍경이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쌀세탁?

    ‘돈세탁’을 넘어 이번에는 훔친 쌀의 생산지를 바꾸는 ‘쌀세탁’이 등장했다. 부산 영도경찰서는 17일 쌀집과 양곡수송차량에서 쌀을 훔친 뒤 자신들의 쌀가게에서 다시 포장해 판매한 김모(38·사상구 주례동)씨와 이모(42·부산진구 범천동)씨를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월12일 자정 무렵 절단기로 동래구 온천동의 한 쌀집 자물쇠를 뜯고 들어가 20㎏짜리 쌀 400여포대를 몰래 트럭에 실어가는 등 지금까지 15차례에 걸쳐 8000여만원 어치의 쌀을 훔쳤다. 경찰은 김씨 등이 범행에 사용한 국내 유명 쌀생산지의 포장지를 시내 쌀가게에서 얻었다고 진술함에 따라 일반 쌀집에서도 원산지를 속이는 ‘쌀세탁’이 만연되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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