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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S정부시절 미림팀 도청정보 대통령에 주례보고

    YS정부시절 미림팀 도청정보 대통령에 주례보고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 비밀도청조직인 ‘미림팀’의 도청 정보가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한 안기부장의 주례보고에도 포함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도청 정보가 YS 차남 현철씨와 이원종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등 정권 핵심 실세에게도 보고됐고, 이들은 도청 정보를 정치에 활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림팀장 공운영(58·수감)씨에게서 압수한 도청 테이프 274개의 내용 수사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14일 이같은 내용의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지난 7월25일 시작한 143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 등 97년 삼성그룹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에 연루된 피고발인 모두를 불기소 처분, 논란이 예상된다. 검찰이 공씨 자택에서 압수한 도청 테이프 274개 등을 분석한 결과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재건된 2차 미림팀은 3년간 서울시내 한정식집과 특급호텔 음식점, 골프장 등에서 주요 인사 646명의 대화 내용을 도청했다. 도청 대상자는 정치인이 273명, 고위공무원 84명, 언론인 75명, 경제인 57명 순이다. 미림팀은 또 3년여간 연인원 5400여명의 접촉 동향 등을 밀착 감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의 97년 불법 정치자금 제공의혹과 관련해서는 “삼성 구조조정본부 당시 재무팀장 김인주씨가 이학수 당시 비서실장의 지시로 1997년 9∼10월 이회창 후보의 동생 회성씨에게 40억∼50억원을 전달했다.”는 삼성측의 진술을 받아냈지만 이 돈이 ‘이건희 회장의 개인재산’이라는 주장을 뒤집을 증거가 없어 이 회장과 홍 전 대사, 이 부회장 등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미국에 체류중인 이 회장에 대해 85개 항목을 담은 서면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삼성의 기아차 인수로비 의혹, 검사들에 대한 떡값제공 의혹 등도 무혐의로 결론냈다. 하지만 ‘X파일’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와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효섭 박지윤기자 newworld@seoul.co.kr
  • [불법도청 수사결과] ‘X파일’ 政官言 646명 554회 도청

    [불법도청 수사결과] ‘X파일’ 政官言 646명 554회 도청

    검찰 수사결과 1994년 6월∼2002년 3월은 안기부와 국정원의 ‘도청 천국’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기부 시절 ‘미림팀’은 연인원 5400여명을 감시했고, 국정원 시절 ‘R2 수집팀’은 1800여명의 휴대전화를 상시도청했다. ●2차 미림팀, 도청테이프 1000개 이번 수사의 성과 중 하나는 미림팀의 활동 전모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김현철, 이원종씨 등에게 도청정보가 유출됐고, 심지어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안기부장의 주례보고에도 도청정보가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도청의 불법성에 대한 YS 정부의 무감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2차 미림팀(94년 6월∼97년 11월)은 1차 미림팀(91년 9월∼92년 12월)과는 양적·질적으로 다른 도청을 했다. 서동권 안기부장 등의 ‘정보수집의 과학화’ 지시에 따라 결성된 1차 미림팀은 테이프 40∼50개를 생산하는 데 그쳤지만 2차 미림팀은 하루 1개, 총 1000여개의 도청 테이프를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미림팀장 공운영(58·수감)씨 집에서 압수한 테이프 274개와 13개의 녹취 보고서는 모두 554차례에 걸친 도청의 결과물이었다.2차 미림팀 전체 도청 규모의 55%에 해당한다. ●정치권 동향 최다… 사생활도 무차별 도청 확인된 도청 대상자는 정치인 273명, 고위공직자 84명, 언론인 75명, 경제인 57명, 법조인 27명 등 모두 646명으로 이들이 서울시내 특급호텔 식당과 유명 한정식집 등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 도청이 이뤄졌다. 정당 대표와 국무총리, 청와대 비서실장·수석비서관, 경찰청장 등은 상시 감시망에 포착됐다. 이와는 별도로 공씨 자택에서는 공씨가 94년 7월∼97년 9월 한정식집 등의 ‘망원’들로부터 보고받은 주요인사 5400여명의 접촉동향, 특이사항 등을 정리한 300쪽 분량의 ‘주요 인물 접촉 동향’ 보고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2차 미림팀이 도청한 내용은 대통령선거 동향(106건)과 정당활동(206건) 등 정치권 동향이 가장 많지만 개인 사생활(41건)도 무차별적으로 도청했다. 지방 선거가 있었던 95년 159차례, 대선이 치러졌던 97년 170차례 등 선거가 있던 해에 도청이 집중된 점도 특징이다. 당시 안기부는 97년 대선 직전까지 유선전화도 집중도청했다. 법원 허가 없이 주요 전화국에 매주 1∼2차례씩 1차례에 2∼3개 유선 전화번호를 특정해 안기부 회선에 연결하도록 요구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수사 당시 관련자들과 변호사들의 통화 내용을 도청한 것을 비롯,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복귀 관련 통화내용,96년 총선 당시 정국 관련 통화내용 등을 도청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의 도청은 YS정부 시절의 원시적인 현장 도청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R2)와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CAS)를 개발, 도청 대상자의 전화를 24시간 도청했다. ●DJ정부 도청대상 1800명의 절반은 정치인 검찰은 국정원이 주요 전화국의 유선중계통신망을 통째로 국정원내 R2와 연결시켜 도청했다는 점에서 ‘조직적·계획적’이었다고 결론냈다. 임동원 전 원장 시절 1200명의 전화번호를 입력해 도청했고, 신건 전 원장 시절 600명을 추가해 도청이 중단된 2002년 3월까지 모두 1800명을 상대로 상시 도청이 이뤄졌다.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조사에서 확인된 1800여명은 정치인이 55%, 언론인과 경제인이 각각 15%, 고위공직자 5%, 시민·사회단체와 노조 간부가 각각 5%씩이다.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 대북사업, 의약분업, 금융노조 파업, 각종 권력형 게이트 등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는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자들을 집중적으로 도청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YS 시절과 달리 DJ에 대한 보고나 권노갑씨 등 실세들에 대한 외부유출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旌閭(정려)

    儒林(450)에는 ‘旌閭’(깃발 정/이문 려)가 나오는데,‘忠臣(충신),孝子(효자),烈女(열녀) 등을 그 동네에 旌門(정문)을 세워 表彰(표창)하던 일’을 가리킨다. ‘旌’자는 ‘五色(오색)의 깃털을 깃대 끝에 늘어뜨려 장식한 旗(기)’를 나타냈다.用例(용례)에는 ‘銘旌(명정: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따위를 적은 기),旌命(정명:어진 선비를 부르고 인재를 등용함),顯旌(현정: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이라는 뜻으로, 마음이 안정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등이 있다. ‘閭’자는 ‘두 짝 문’의 象形(상형)인 ‘門’(문)과 ‘사람의 등뼈’ 모양을 본뜬 ‘呂’(려)가 합쳐져 ‘里門(이문)’을 나타냈다.‘閭閻(여염:백성의 살림집이 많이 모여 있는 곳),閭巷(여항:민간),州閭(주려:고을과 마을을 아울러 이르는 말)’ 등에 쓰인다. 周禮(주례)에 의하면, 임금이 宮城(궁성)을 벗어나 臨時(임시) 居所(거소)에 머물며 祭祀(제사)를 지내거나 賓客(빈객)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 때에는 별도의 旗(기)나 門(문)을 세웠다고 한다. 이것이 旌閭(정려)의 기원인데, 후대로 오면서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그들이 살던 집 앞에 門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旌閣(정각)을 세워 紀念(기념)하는 것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우리나라 旌閭의 始原(시원)은 분명하지 않다.三國史記(삼국사기) 新羅(신라) 景德王(경덕왕)조에 態川州(웅천주)사람 向德(향덕)의 이야기를 통해 신라시대에 旌閭가 세워졌음을 推定(추정)할 수 있다. 경덕왕 14년(755) 흉년으로 부모가 굶주림과 병이 들자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내어 아버지에게 먹여 병이 낫게 하였다. 이러한 효행이 알려져 왕은 후한 상을 내리고 有司(유사)에게 명하여 旌表(정표)를 세우도록 하였다고 한다. 김자수(金自粹)는 고려 충정왕 3년(1351)에 안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효성을 다한 사실이 알려져 조정으로부터 旌閭 표창이 내려졌다. 학문에 대한 열정도 남달라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주요 관직을 역임하였다.朝鮮(조선)의 건국과 함께 辭職(사직)하고 안동으로 歸鄕(귀향)하였다. 신왕조는 그의 도덕과 경륜을 아껴 누차에 걸쳐 초청했으나 不應(불응)하였다.太宗(태종)의 刑曹判書(형조판서) 除授(제수)에 어쩔 수 없이 赴任(부임)하면서 長子(장자)에게 壽衣(수의)와 葬禮器具(장례기구)를 마련해 뒤따르도록 하였다.廣州(광주) 땅에 도착하자 포은(圃隱)의 묘소를 참배한 뒤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는 의지를 表明(표명)하고,秋嶺(추령)에 이르러 ‘묘지에 碑(비)를 세우지 마라.’는 遺訓(유훈)을 남기고 飮毒(음독) 自盡(자진)하였다.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성종조에는 원주사람 조씨부인의 이야기가 전한다. 조씨부인은 남편이 죽은 뒤 屍身(시신)을 끌어안고 1주일을 지냈으며,穀氣(곡기)를 끊고 보름간을 지냈다. 주위에서 조씨의 상태를 염려해서 再婚(재혼)을 시키려 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슬피울며 지냈다. 결국 얼마 뒤에 조씨는 婚書(혼서)와 남편이 읽던 책 두 권을 끌어안고 목을 매어 自決(자결)했다. 이러한 사실이 중앙에 알려지자 朝廷(조정)에서는 조씨의 節槪(절개)를 기리기 위해 烈女門(열녀문)을 下賜(하사)하였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美, 불법이민 희생양삼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에 대해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자 민주당이 “내년 중간선거를 위한 희생양을 찾고 있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에서 동성애 문제로 재미를 본 공화당이 내년 중간선거에서 불법 이민 문제를 쟁점화할 것을 경계하고 있어서다.●부시, 국경 수비에 무인비행기 도입 부시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미 의회의 이민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며 “국경에서 체포하는 불법 입국자는 예외없이 즉각 송환할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단순히 국경 너머로 돌려보내는 게 아니라 고향으로 보내 불법 월경을 재시도하지 못하게 막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앞서 애리조나와 텍사스주 등 멕시코 접경지대를 방문해 “불법 입국자가 국경 지역에서 범죄를 낳고 학교와 병원, 사법 자원의 고갈을 초래한다.”면서 국경 순찰대의 증원과 무인비행기 등 첨단 단속장비의 도입을 약속하기도 했다. 최장 6년까지 취업을 허용하는 ‘초청 노동자’ 제도를 골자로 한 이민법 개정과 관련, 부시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 사면에 반대하며 초청 노동자들이 자동으로 미국 시민권을 받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민주당은 납세에 기여한 이민자가 시민권을 딸 수 있어야 하며 불법 월경 문제도 멕시코 정부와 협의해 국경 지역의 경제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미국민 74% “국경 보호대책 미흡” 하워드 딘 민주당 전국위원장은 “공화당이 또다시 전국민을 반으로 가르는 이슈를 계획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대선 때 부시 행정부가 동성결혼 금지를 명문화한 연방헌법 개정안을 내 비록 상원에서 부결됐지만 득표 전략으론 주효했다는 계산이다. 당시 개헌에 반대한 존 케리 민주당 대선후보는 그러나 가톨릭 신자답게 “동성 결합은 몰라도 결혼은 반대한다.”고 어정쩡한 입장을 보여 부시의 공격 소재가 됐다. 민주당은 대신 중간선거에서 중산층 세금 합리화와 건강보험, 이라크전 철수를 이슈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민의 74%가 정부의 국경 보호 대책이 미흡하다는 여론이다. 해마다 수천명이 국경을 넘고 있으며 불법 이민자가 현재 1100만명으로 추정된다.급성장하는 히스패닉의 표심을 의식하던 공화당이 결국은 보수층을 겨냥해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박찬호 ‘은밀한 결혼식’

    박찬호 ‘은밀한 결혼식’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의 주인공 박찬호(32·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30일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에서 로널드 문(한국명 문대양) 하와이 대법원장의 주례로 재일동포 3세인 박리혜(29)씨와 결혼식을 가졌다. 이날 결혼식은 언론 등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채 양가 가족과 친지 30여명만 참석해 진행됐다. 일본 교포 사회의 재력가로 알려져 있는 박충서씨의 딸인 신부 박씨는 일본 조치(上智)대와 미국 뉴욕의 요리학교인 ‘CIA’에서 프랑스 요리를 전공했다. 주례를 본 문 대법원장은 한국인 최초의 미국 주 대법원장으로서 미국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한인 사회가 선정한 7명의 ‘이민 영웅’에 뽑히기도 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고]

    ●황평순 前 서울신문 교열부장 서울신문 교열부장을 지낸 황평순씨가 지난 23일 교통사고로 별세했다.65세.1940년 제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외대 독문과를 졸업한 뒤,71년에 서울신문에 입사해 편집국 편집부 차장 교열부 부장 등을 거쳤다. 유족으로는 4녀. 빈소는 경희의료원이며, 발인은 27일 낮 12시.(02)958-9554. ●신원규(사업)점규(자영업)씨 부친상 김주환(자영업)박준형(서울신문·스포츠서울 대구·경북본부장)채일석(자영업)씨 빙부상 25일 대구 가야기독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30분 (053)627-3699 ●김원식(정일엔지니어링 감사)형식(하이볼트텍크 대표)씨 부친상 이명숙(이내과 원장)씨 시부상 이영래(세무사)이상근(청호씨엔디 대표)최병달(〃 전무이사)씨 빙부상 25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2)590-2540 ●조옥현(남도일보 문화체육부장)보현(대진건설 총무차장)씨 부친상 박효남(두산 인프라코어)임상순(일광상사 관리부장)씨 빙부상 25일 조선대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62)231-8903 ●장석일(코리아헤럴드 제작국)씨 부친상 25일 인천 민제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32)561-1937 ●조영찬(대림공인중개사 대표)석우(종로구청)씨 부친상 25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2)392-3499 ●윤승현(COEX 전시기획팀장)차현(KT 인터넷담당 상무대우)씨 부친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6시 (02)3010-2295 ●원용유(건원ENG 이사)용형(매직자임 대표)용만(성보기전 이사)용명(국민은행 차장)씨 모친상 김종태(새원전기 부사장)씨 빙모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9시 (02)3010-2239 ●이경식(도미노피자 마케팅 차장)씨 빙부상 25일 마산 청아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55)230-1761 ●문성종(사업)씨 부친상 차성진(엘칸토 이사)김정석(로얄레이스 대표)최승구(부산삼육식품 총판장)윤영구(〃 주례대리점)씨 빙부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5시 (02)3010-2237 ●서지훈(사업)대훈(〃)씨 부친상 박희대(삼성투자신탁운용 차장)씨 빙부상 25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30분 (02)921-8699 ●안종헌(비앤테크 감사)종찬(표준과학연구원 부장)종근(사업)씨 모친상 진수(현대건설 과장)지수(삼성SDI 〃)씨 조모상 2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410-6914
  • 멕시코 vs 베네수엘라…대미관계 싸고 마찰

    중남미의 두 석유 부국인 멕시코와 베네수엘라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미국에 대한 외교노선을 싸고 갈등을 빚다 결국 주재 대사를 서로 소환하는 등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발단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거친 입’이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달초 미주정상회담 기간에 줄곧 멕시코의 비센테 폭스 대통령을 ‘제국주의의 강아지’로 비아냥댔다. 이어 지난 13일 주례 TV방송에 나와서도 폭스 대통령에 대해 “(정상회담에서) 이미 피 흘리며 돌아갔다.”며 “더 다치기 전에 내게 참견 끄라.”고 또다시 공격했다. 폭스 대통령이 적극 찬성했던 미주자유무역지대가 무산된 데 대한 조롱이었다. 멕시코가 발끈한 것은 당연한 일. 즉각 외무부 성명을 통해 “24시간 내에 공식 해명하지 않으면 베네수엘라 대사의 철수를 요구하고 베네수엘라 주재 대사도 소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사 소환은 외교관계를 대리대사(공사)급으로 격하한다는 의미라고 멕시코 언론은 덧붙였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다음날인 14일 사과 대신 자국 대사 소환령으로 대응했다. 그러자 멕시코도 대사를 자국으로 불러들였다. 폭스 대통령은 이날 ‘CNN 에스파뇰(스페인어)’과의 회견에서 “개인 간 감정싸움이 아니다.”라면서 “멕시코 국민의 존엄을 해치도록 놔둘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루벤 아귈라 멕시코 대통령 대변인은 AP통신에 “베네수엘라와의 경제, 문화교류는 강고하기 때문에 대사 소환이 양국관계를 전면적인 위기에 빠뜨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양국의 정치적 의도가 맞물린 결과로 보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반미를 내세워 중남미 좌파 그룹의 핵심을 도모하는 반면, 폭스 대통령은 차베스 견제를 통해 교착상태에 있는 미국-멕시코 이민협정을 성사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日 노리노미야 공주, 평민의 아내로

    |도쿄 이춘규특파원|아키히토 일왕의 장녀인 노리노미야(36) 공주가 15일 오전 결혼, 평민 신분이 됐다. 이름은 남편인 구로다 요시키(40)의 성(姓)인 구로다에 어릴 때 이름 사야코를 붙인 구로다 사야코로 바뀌었다. 공주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많은 것들을 배워 구로다가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생활에 임하고 싶다.”고 새 인생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새 신랑 구로다도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여성왕족이 평민과 결혼한 것은 히로히토 일왕의 막내딸 시마즈 다카코 이후 45년만이다. 도쿄도심 데이고쿠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은 일본 왕실의 종묘격인 이세신궁 궁사의 주례로 거행됐다. 결혼반지 교환 등은 없었다. 피로연에는 일왕 부처 등 130여명이 참석했다. 신랑의 도쿄도청 상사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도 참석, 건배를 청했다. 결혼식을 마친 노리노미야 공주는 오전 10시 리무진을 타고 왕궁을 출발, 평민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구로다는 노리노미야 공주의 둘째오빠인 아키시노노미야와 왕실학교인 가쿠슈인 동창. 어릴 때부터 동궁을 드나들며 일왕 부처와 노리노미야 공주를 알고 지냈다. 가쿠슈인대학 법학부를 졸업했으며 유명자동차회사 임원을 지낸 부친은 오래전 사망,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노리노미야 공주는 가쿠슈인대학 문학부를 졸업, 전통춤 실력이 뛰어나 국립극장에서 7차례 공연했다. 두 사람은 2003년 1월 아키시노노미야가 주최한 테니스시합때 재회했다. 이후 전화·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오다 지난해 결혼을 결심했다. 노리노미야는 왕실을 떠나며 1억 5250만엔(약 15억원)을 품위유지비로 받는다.taein@seoul.co.kr
  • ‘21세기 최고 디바’ 와 늦가을 데이트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의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가 오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독창회를 갖는다. 그는 1994년 노거장 솔티의 지휘로 공연된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로 출연, 루마니아의 시골 출신 무명가수에서 일약 세계 성악계의 신데렐라로 급부상한 인물.솔티가 리허설에서 그의 노래를 들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는 잘 알려진 사실.●마리아 칼라스에 버금가는 사랑받아 그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음성, 넓은 음폭도 소화해 데뷔 이후 10년 넘게 최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파워풀한 표현력, 우아한 무대 매너,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제2의 마리아 칼라스’라는 얘기를 듣지만 정작 그는 그 말조차 싫어한다.“어떤 소프라노부터도 절대로 영감을 받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자신만의 개성을 고집하기 때문. 그는 일반인들에게는 세계적인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결혼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들 부부는 지난 2002년 6월 월드컵 기간 듀엣 공연을 갖고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준 바 있다. 알라냐와는 1992년 코벤트 가든에서 ‘라보엠’을 공연할 당시 남녀 주인공 로돌포와 미미로 만나 사랑을 키웠다.1996년 이들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이 작품을 공연하던 중 1막과 2막 사이 무대 뒤에서 줄리아니 뉴욕 시장의 주례로 ‘깜짝 결혼’을 했다.●오페라 아리아로 솔로무대 꾸며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는 귀에 익은 유명 오페라 아리아로 짰다. 헨델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 ‘울게 하소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중에서 ‘어느 개인 날’과 ‘잔니 스키키’중에서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비제의 카르멘 중에서 ‘하바네라’ 등을 부를 예정. 그는 최근 푸치니 아리아집을 음반으로 출반하기도 했다. 소프라노 음성을 사랑했던 푸치니의 곡들은 원숙한 여인들을 다루고 있어 게오르규의 목소리에는 잘 어울린다는 평이다. 이번 공연에서 같은 루마니아 출신인 이온 마린의 지휘로 서울시향이 반주를 맡았다. “노래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하는 그는 동유럽 출신이라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를 마스터할 정도로 음악을 향한 열정과 노력이 대단하다.(02)518-7343.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동포 방문취업’ 내년 상반기 시행

    중국과 옛 소련 지역 동포들에 대해 5년간 방문과 취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문취업제’ 도입이 빨라질 전망이다. 청와대는 최근 주례보고에서 이해찬 국무총리로부터 방문취업제 추진상황을 보고받은 노무현 대통령이 “좋은 제도니까 조속히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 11일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부처협의 등 관련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면서 “내년 상반기 안에 제도를 완성,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방문취업제는 중국동포 등에게 1회 방문시 최장 2년 동안 국내 입국과 취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문취업(H-2) 비자를 신설, 발급토록 하는 제도이다. 시행 초기에는 3만명 정도 쿼터를 정해 비자를 발급하지만, 장기적으로 모든 동포에게 확대하는 것이 법무부의 계획이다. 제도에 대한 관련 부처의 의견을 조율 중인 국무조정실은 법무부안을 기초로 강제조정안을 만들어 이달 안에 각 부처에 통보할 계획이다. 조정안은 노동시장에 미칠 파장과 외교문제 등에 대해 우려를 표시해 온 노동부와 외교통상부의 입장을 일부 반영하게 된다. 외교부 등이 강제조정안을 받아들이면 법무부는 법개정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우선 취업을 원하는 외국인과 동포에게 같은 자격을 주도록 한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의 관련조항을 삭제해야 한다. 동포들의 출입을 제한적으로 허용한 출입국관리법과 관련 시행령·규칙 역시 손질할 필요가 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저희 결혼해요] 탤런트 조은숙

    [저희 결혼해요] 탤런트 조은숙

    10일 종영한 KBS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 열연을 펼쳤던 탤런트 조은숙(31)이 ‘빼빼로 데이’(11월 11일)에 동갑내기 사업가 박덕균씨와 경기도 분당 예수소망교회에서 웨딩 마치를 울린다. 결혼식은 곽선희 목사의 주례로 치러지며 피로연은 인근 피더하우스에 마련됐다. 개그맨 윤정수가 피로연 사회를 보고, 인기가수 거미와 란 등이 축가를 부르는 등 이벤트도 마련될 예정. 조은숙은 태국으로 일주일 정도 신혼여행을 다녀올 계획. 신접살림은 경기도 덕소 전원주택에 꾸려졌다. 최근 KBS2 ‘상상플러스’에 출연했던 조은숙은 “프러포즈를 언제 받았냐고 많이 물어보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매일 매일이 프러포즈였다.”고 예비 신랑 자랑을 해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코오롱그룹-이웅열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코오롱그룹-이웅열 회장家

    코오롱의 역사는 한국 섬유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 땅에 가장 먼저 나일론을 들여와 의생활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한때는 수출 한국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성숙산업에 따른 한계로 인해 코오롱은 재계서열이 점점 밀려났다. 섬유산업의 위상이 갈수록 위축되는 모양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코오롱의 3세 경영이 닻을 올린지 올해로 10년째. 이웅열(49) 회장은 올해를 그룹경영의 ‘터닝포인트’로 만들기 위해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제2의 도약을 위해 노후화된 주력 사업에 다시 기름을 칠하고, 쪼이고, 닦고 있는 것이다. 혹독한 외환위기를 거치며 체질을 바꾼 코오롱이 재도약을 위한 또 한번의 체질 개선 시험을 치르고 있다. ●풍운아 이원만 창업주 코오롱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과 이동찬(83) 명예회장은 부자간이면서도 사업 동지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 창업주가 그룹의 외연을 넓히고 사업의 ‘바람막이’가 돼 줬다면, 이 명예회장은 그룹의 안살림을 챙겼다. 부자는 동업자로서 40년 가까이 함께 일하며 코오롱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 명예회장이 2세이면서 창업 1.5세대로 불렸던 까닭이다. 부자는 사업 파트너로서 환상의 듀엣이었지만 가정적으론 한때 애증의 관계였다. 기업가보다 정치가로서 더 알려진 이 창업주는 워낙 풍류를 즐기는 성격인 데다 이 명예회장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남은 전답마저 처분하고, 사업을 위해 훌쩍 일본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이 명예회장은 어린 나이에 모친과 누이동생을 돌보며 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선친은 이 명예회장에게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선친의 호방한 성품과 능숙한 화술 등은 당시 정·재계에서 유명했다. 이 창업주는 술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술자리에선 재담으로 좌석을 압도했으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는 ‘문화재’로 불리울 정도였다. 이 창업주는 1930년대 초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 기반을 닦았으며, 해방 후에는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들여와 국내 섬유산업을 개척했다.1957년엔 국내 첫 나일론사 제조 공장인 한국나일론(현 ㈜코오롱)을 설립했으며,63년엔 나일론 원사 공장을 지었다. 그는 또 한국산업수출공단 창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오늘의 구로공단과 구미공단을 조성하는 산파역할을 했다. 이 창업주는 정계에도 발을 들여 대한민국 초대 참의원과 6,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인맥 만들기에 탁월한 수단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이 창업주는 1960∼70년대 정·재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혔다. ●1.5세대 창업주 이동찬 명예회장 “이 명예회장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항상 비서와 한 방에서 잡니다. 비서들에게 해외 출장은 그야말로 곤욕이었죠. 회장이 바로 옆에서 주무시는데 잠이 편히 옵니까. 출장에서 돌아오면 몸무게가 3∼4㎏은 그냥 빠져요. 그렇다고 1달러가 아쉬운 나라에서 잠자는 곳에 돈낭비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씀에 뭐라고 할 수도 없고요.” 코오롱 비서 출신의 한 임원 얘기다. ‘가장의 짐’을 일찍 떠안은 탓에 이 명예회장은 근검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한 번은 이 명예회장이 1947년부터 50여년 이상 신었던 슬리퍼를 비서실에서 새 것으로 바꿨다가 된통 야단을 맞고, 쓰레기통을 뒤져 간신히 찾았던 적도 있다. 또 이 명예회장의 점심 메뉴는 주로 된장찌개와 칼국수, 수제비 등이었으며, 삼복 더위도 부채와 선풍기로 보냈다. 그는 15세 때 경리사원으로 부친의 사업을 도운 지 35년 만인 1977년 코오롱 회장에 올랐다. 그는 등산식, 마라톤식으로 표현되는 꾸준한 내실 경영으로 그룹의 체질을 다져놓은 이후 섬유와 무역에 치우친 사업구조를 건설과 화학으로 확대했다.1980년대는 전자소재와 합성섬유 등 신업종으로 영역을 더욱 넓혔다. 이 명예회장은 과외 활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74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직을 맡은 이후 1975년 농구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등으로 다양한 단체에서 활약했다.1980년에는 대한농구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서 스포츠 외교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경총 회장은 82년부터 무려 14년간이나 했다. 1996년 1월 이 명예회장은 10년 이상 경영수업을 받은 장남인 이웅열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고 선친처럼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3박4일’ 이웅열 회장 이웅열 회장은 5명의 누이들 속에서 컸지만 성격은 대단히 남성스럽다. 특히 스포츠를 좋아해서 축구와 야구, 테니스, 탁구, 당구, 골프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또 시작하면 프로(?)수준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의 별명이 ‘3박4일’로 불린 이유는 무엇이든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이다. 그의 학창 시절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다지 풍족하지 않았다. 부친인 이 명예회장이 박하지 않을 정도의 용돈만 줬기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재벌 아들이 ‘짜다’는 소리를 수시로 들었다.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거쳐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이 회장은 활달하고 사교적이다. 전경련 e비즈니스 위원장을 맡아 재계 2∼3세의 리더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최태원 SK㈜ 회장과 신동빈 롯데 부회장, 류진 풍산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가깝게 지낸다. 그의 이같은 사교적인 성격은 조부인 이원만 창업주의 성품과 닮았다. 호방하고 풍류를 즐겼던 이 창업주는 사업가보다 정치인으로 이름이 더 잘 알려졌다. 1989년 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한 이 회장은 이동통신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그룹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파고로 계열사 매각과 신세기통신(현 SK텔레콤) 지분(1조 700억원어치)을 팔아야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회장은 당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미래를 팔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침통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오롱의 어려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섬산업이 고유가와 중국의 저가 공세로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올해를 ‘턴어라운드’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과감한 구조조정과 수익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경영권 장자 승계 코오롱 가문은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아들이 귀한 집안이다. 창업주인 이원만 회장은 슬하에 2남4녀를 뒀지만 이 명예회장은 1남5녀, 이웅열 회장도 1남2녀다. 그룹 경영은 장남만 참여하고, 딸들과 사돈가의 경영참여는 철저히 배제한다. 장자일계(長子一系)의 경영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코오롱가의 특징이다. 다른 그룹들이 사돈을 비롯한 친인척들로 방대한 족벌 경영체제를 이룬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명예회장과 숙부인 이원천 전 사장간의 경영권 분쟁이 친인척 배제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 창업주가 그룹경영을 맡고 있을 때는 사위들의 경영 참여가 적지 않았지만, 이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이같은 장자 승계의 원칙이 정해졌다. 이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에서 “우리 집 여자들은 아버지 사업이나 남편이 하는 일에 개입하는 법이 없다. 사위들이 처가 덕을 보고 한자리 하겠다면 득보다 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문경영인에게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잘 해내는 경우에도 열등감이 생긴다. 능력이 없다고 ‘백년손님’이라 쫓아낼 수는 없는 일이니 난처해질 것이고, 훗날 내가 일선에서 물러날 땐 조용해지기 어렵다.”고 했을 정도로 철저히 장자일계의 경영구조를 갖춰 경영권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나 다툼을 미리 차단했다. ●김종필 전 총재와 한때 사돈 이원만가(家)의 혼맥은 국내 재벌가의 최정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될 정도로 화려하다. 이 창업주의 넓은 정계 인맥과 국내 굴지의 섬유그룹인 코오롱을 기반으로 정·관·재계 곳곳에 혈연 관계를 맺었다. 이 창업주와 이위문(작고) 여사는 2남4녀를 뒀다. 이 창업주의 영향력이 정·재계에 미치기 전에는 자녀들을 평범한 집안과 통혼시켰지만, 사업 성공에 이어 정치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던 시기엔 국내 내로라하는 집안을 사돈으로 맞았다. 이 때문에 정략 결혼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장남 이동찬 명예회장은 1944년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에 장가부터 들라.’는 부친의 강요로 맞선을 본 지 1주일 만에 평산 신씨가(家)의 무남독녀 덕진(82)씨와 결혼했다. 이 명예회장 부부는 지난해 1월 결혼 60주년을 맞아 회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장녀 봉필(72)씨는 54년 고향 인근 임병진씨의 아들 승엽(작고)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승엽씨는 삼경물산 사장을 거쳐 그룹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차녀 애란(63)씨는 노영태(63)씨와 혼인을 치렀다. 3녀 미자(61)씨는 포항지주인 박문학가(家)의 장남 성기(66)씨와 결혼했다. 성기씨는 한국바이린 사장을 역임했다. 차남 이동보(56) 전 코오롱TNS 회장과 막내딸 미향(51)씨의 결혼으로 코오롱가는 재계 혼맥도의 핵심으로 올라선다. 이 전 회장은 74년 제3공화국의 2인자였던 김종필 전 총재의 장녀 예리(54)씨와 결혼했다. 이를 통해 코오롱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됐으며, 최고 권력가와 혈연의 끈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결혼은 육영수 여사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성격 차이로 갈라섰다. 이동보 전 회장은 1988년 코오롱그룹으로부터 분가했지만 부도와 구설수에 휘말려 고초를 겪기도 했다. 막내 미향씨는 삼립식품 창업자인 허창성 집안으로 출가했다. 식품종합그룹인 SPC의 허영인(56) 회장이 그의 남편이다. ●정략결혼과 3세 혼맥 코오롱가의 혼맥은 3세로 내려가면 더욱 빛이 난다. 이 창업주가 자신의 입지와 뜻을 펼치기 위해 손주들을 정략 결혼시킨 경우가 있어서다. 이 명예회장과 신 여사는 슬하에 경숙, 상희, 혜숙, 은주, 웅열, 경주씨 등 1남5녀를 뒀다. 장녀인 경숙(59)씨는 1969년 당시 공화당 의장 서리였던 고 이효상 전 국회의장의 3남 문조(65)씨와 화촉을 밝혔다. 이 전 국회의장은 도쿄대를 나와 경북대 교수로 있다가 1960년 정치에 투신해 5선 의원을 지냈다. 정계에선 대구·경북(TK) 인맥의 대부로 통했다. 국회의장을 비롯해 공화당 총재, 영남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문조씨는 현재 영남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차녀인 상희(56)씨는 국내 대표적 ‘송상(松商)’으로 불렸던 고홍명 한국빠이롯드 회장 집안으로 출가했다.1973년 고 회장의 장남 석진(작고)씨와 결혼했다. 석진씨는 코오롱제약(옛 삼영신약) 사장을 거쳐 빠이롯드전자 회장을 지냈다. 하지만 부도로 인해 고통을 겪다가 98년 별세했다. 3녀인 혜숙(53)씨는 고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장남인 동혁(58)씨와 결혼했다. 현재 고려해운 회장인 동혁씨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컬럼비아대학 석사 출신이다. 해운선사로서는 처음으로 타이완과 홍콩 등 동남아 항로에 진출해 해운업계의 프런티어 경영인으로 이름이 높다. 4녀인 은주(51)씨는 테니스 인연으로 신병현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장남 영철(55·의사)씨와 결혼했다. 신 전 부총리는 한국은행 총재와 상공부 장관, 무역협회장, 은행연합회장 등을 지냈다. 이들 부부 결혼식은 신 전 총재가 직접 주례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웅열 회장은 큰 누이 경숙씨의 소개로 1983년 황해도 출신인 서병식 동남갈포공업 회장의 장녀 창희(45)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서 회장은 1962년 고급벽지의 대명사인 갈포벽지를 만들어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부인 창희씨는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이 회장 부부는 규호(21)와 소윤(18), 소민(16) 등 1남2녀를 두고 있으며, 규호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5녀인 경주(46)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최윤석(46)씨와 결혼했다. ●딸·며느리 모두 이대 동문 장자 경영과 친인척 경영 배제의 원칙 때문인지 코오롱가의 딸과 며느리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대외 활동보다 가정주부로서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교육에 애쓴다. 이 명예회장의 부인인 신 여사는 지금껏 바깥 사교모임에 한번도 참석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 여사는 집안에서 살림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한다.3세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는 이 명예회장의 모친인 고 이위문 여사가 남편인 이 창업주의 호방한 성격과 바깥 활동으로 마음 고생이 매우 심했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고, 자식들을 바르게 키운 선례 때문이다. 코오롱가의 딸과 며느리들은 또 모두 이화여대 동문들이다. 장녀 경숙씨가 생활미술과를 나왔으며, 상희씨는 기악과, 혜숙씨는 가정학과, 은주씨는 도서관학과를 나왔다. 이 명예회장은 평소에 딸들을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장녀는 걷는 모양부터 급한 성격까지 나를 제일 많이 닮았으며, 둘째는 시댁에서 살림만 하는 편이지만, 항상 밝고 착한 데다 쓸데없이 친정에 오는 일이 없다. 셋째는 공부도 제일 잘했고, 바른 소리도 잘했다. 악바리면서 의리가 강하다. 넷째는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해서인지 덜렁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린다.” 며느리 창희씨도 코오롱가의 여자답게 대외 활동보다 조용히 집에서 자녀 교육과 남편 내조에 열심인 한국적인 주부다. 사교 모임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창희씨지만 코오롱그룹 간부 부인들로 구성된 ‘코오롱가족사회봉사단’ 활동엔 적극 나서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코오롱의 ‘李트리오’ 지금의 코오롱그룹 토대를 쌓은 주역 가운데 한 명이 고 이원천 전 한국나일론(현 ㈜코오롱) 사장이다.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의 동생이며, 이동찬 명예회장에겐 숙부가 된다. 이 전 사장은 일제시대 때부터 일본에서 형님인 이 창업주의 사업을 도왔다.1957년에는 한국나일론 사장직에 추대돼 코오롱의 ‘섬유시대’를 이끌었다. 당시 이원만-이원천-이동찬 3인은 코오롱에서 ‘이 트리오’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전 사장은 조카인 이 명예회장과 회사 분할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면서 나중엔 경영권 분쟁에 빠졌다. 이 전 사장은 결국 1976년 한국나일론의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지분을 챙겨 원진레이온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1년만에 쓰러졌다. 이 창업주는 이후 장남인 이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맡겼고, 회장에 오른 이 명예회장은 동생인 이동보 전 코오롱TNS 회장을 분가시켰으며, 매제들도 계열사 경영에서 손을 떼게 했다. 이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숙부에 대한 회한이 커지는 요즘에도 회사 분할에 반대한 것은 옳은 일이 아닌가 싶다…. 숙부와의 경영권 분쟁은 결국 조카가 숙부의 세력을 완전히 퇴치해 버린 것 아니냐는 평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그룹을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된 것이라면 나는 굳이 부인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사업엔 실패했지만 이원천가(家)의 혼맥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다. 형님인 이원만 창업주가 제3공화국의 실력자 김종필 전 총재와 인연을 만들었다면, 이 전 사장은 또다른 실세였던 정일권 전 총리와 혈연관계를 맺었다. 이원천가(家)는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정일권 집안과 사돈간이다. 고 정 총리의 딸 희경씨가 이 전 사장의 아들과 결혼했다. 또 이원천가(家)와 영풍그룹은 한 다리 건너 사돈간이다. 고 정 총리의 장남인 세훈씨가 장병희 영풍그룹 창업주의 딸 현주씨와 인연을 맺었다. 영풍그룹은 또 6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김세련씨 가문과도 연이 이어진다. golders@seoul.co.kr ■ 코오롱 이끄는 전문경영인들 ‘코오롱호’를 이끄는 대표 최고경영자(CEO)는 누가 있을까. 한광희(56) ㈜코오롱 대표는 코오롱그룹의 간판 CEO다. 그는 요즘 한계사업 정리와 차세대 먹을거리 준비에 분주하다.1976년 코오롱에 입사한 이후 기획관리 등 주요 사업부를 두루 거쳤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한 대표는 책상에 앉아 숫자놀이를 하는 것보다 현장 영업을 더 즐기는 실물형 CEO에 속한다. 민경조(62) 코오롱건설 대표는 23년간 건설에서만 근무한 전문경영인으로 위기관리가 뛰어나다는 평이다. 사내에선 따뜻한 집안의 가장 같은 CEO로 불린다. 수시로 사내 메신저를 통해 막내 직원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상하간 의사소통을 중시한다.“똑똑… 민경조입니다, 야근 힘들죠, 문제되는 게 뭔가요, 오늘 팀원들과 저녁 같이 합시다.”로 유명해 먼저 다가서는 CEO로 통한다. 논어를 1000번 이상 읽을 정도로 고전에 관심이 많다. 제환석(59) FnC코오롱 대표는 현장주의자다.2003년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800개에 이르는 매장을 서울에서 제주까지 하나하나 찾았다. 지금도 주말을 이용해 매장을 방문하고 있다. 제 대표는 또 CEO 명함 외에 ‘열사모’의 방장 직책을 갖고 있다. 열사모는 제 대표가 만든 모임으로 오프라인의 단체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인 사원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가상의 모임이다.“스스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원 모두가 열사모의 열사”라고 말하는 제 대표는 열사모 방장의 이름으로 직원들과 곧잘 의견을 교환한다. 배영호(61) 코오롱유화 대표는 엔지니어로서는 드물게 미국 뉴욕지사 근무를 했다. 아무도 도와 주지 않는 해외 영업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죽기살기로 부딪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배 대표는 당시 직원 가운데 한국으로 되돌아온 유일한 사람이라고 한다. 첫 직장에 대한 그의 신의와 열정은 특유의 사업감각과 합쳐져 코오롱유화를 종합화학 회사로 도약시켰다. 김종근(55) 코오롱글로텍 대표는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긴다. 직원 이름을 기억하고, 애로와 고충을 들어주며, 중요한 정보는 경영에 곧바로 반영한다. 또 직원들에게 책상에 앉아있지 말고 현장을 돌면서 문제와 해결방안을 찾으라고 한다.“사장님은 오늘도 지방사업장을 순회하고 있습니다. 바로 대표와 직원들간의 간담회 때문이죠. 간담회라는 자유로운 형식을 통해 직원들과 허심탄회한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61개 사업장인데 올해만 해도 벌써 세번째 라운딩입니다. 연초에 전직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쁜 일정에도 사업장을 순회하고 계십니다.”한 직원의 이러한 설명에서 올 상반기에 비상장 5개사를 합병, 덩치가 커진 코오롱글로텍을 외형만큼이나 건실하게 키우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김재철(70) 회장은 자신을 장보고라고 생각하는 몽상가였다. 김 회장이 서울 농대를 포기하고 부산수산대를 지원한 것은 어쩌면 바다에 대한 동경이 아니면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거칠고 험한 바다를 꿈의 대상으로, 기업의 대상으로 삼은 기업인은 우리 사회에 드물다.”소설가 최인호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원양어선을 타고 5대양을 주름잡던 마도로스 출신의 김 회장에 대해 건전하고 꿈이 있는 몽상가라고 평했다.2000년 당시 해상왕 장보고기념사업회를 이끌던 김 회장은 최인호씨에게 장보고를 소설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최인호씨는 장보고가 흥미있는 인물이지만 권력을 꿈꾸다 암살(삼국사기)당했던 만큼 내키지 않았지만 김 회장의 설명을 듣고 장보고에 깊이 빠져 소설 ‘해신(海神)’을 쓰게 됐다. ●바다와의 인연…장보고를 꿈꾸며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벤처 비즈니스맨의 전형이다. 서울대 입학을 마다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좇아 바다 인생을 택했기 때문이다. 성실과 불굴의 투지, 그리고 개척자 정신으로 바다와 싸워 성공을 거뒀고 식품가공업과 금융부문 등으로 그룹을 키워내며 자신의 꿈을 이뤘다. 김 회장의 삶은 이처럼 바다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1935년 전남 강진 농촌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큰아들이 잘 돼야 한다는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에 따라 동생들 대신 학교를 다닌 셈이다. 어린 동생들은 후에 김 회장이 학비를 대주었지만 기대와 책임감을 한몸에 안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걸어서 두 시간이 족히 걸리는 강진농고를 결석 없이 다니면서 우등생 자리도 놓치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고3 시절.“바다는 무진장한 자원의 보고다. 우리 젊은이들이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인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이끌려 망망대해로 인생의 나침반을 돌렸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계기로 그는 수산대에 진학해 바다로 나가기로 했다. 당시 서울대 농대에 장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김 회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시골 학교에서 서울대에 들어간다면 큰 경사인데 갑자기 지방에 있는 뱃사람 학교에 가겠다고 하니 부모님을 비롯해 주위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또 졸업하고 나서 배를 탈 때도 장애가 많았습니다. 정식 학부 졸업생이 배를 탄 것은 제가 처음이었거든요. 당시 수산대 졸업생들은 수산청이나 수산업협동조합 같은 관계기관에서 근무하거나 교사가 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때 저도 여수수산고 교장으로 계시는 고등학교 은사로부터 교사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양어선을 타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백면서생의 객기쯤으로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결국 항해중에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겨우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참치 잘 잡는 마도로스’ 1958년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원양어업을 시작한 뜻깊은 해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첫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승선자이기도 하다. 기업가로 변신하기 전 김 회장은 8년간 실제로 마도로스 생활을 했다. 항해사로 시작한 뱃사람 생활에서 곧 능력을 인정받아 3년 만에 ‘지남2호’의 선장이 됐다. 파격적인 승진이다. 다른 배보다 빨리 만선을 기록한 데 대한 보상이었다. 그때부터 국내외 원양어선 업계에서 그는 ‘참치 잘 잡는 선장’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나라 수산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각오로 배를 탔고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출어에 나섰다.”면서 “고기떼를 찾아 바다를 헤맬 때나 조업을 앞둔 새벽이면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드리곤 했다.”고 강조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뒤의 일은 신의 섭리에 맡긴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신조로 삼았던 마음 가짐 때문인지 승승장구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대충대충’‘괜찮아’다. 1964년 고려원양 수산부장으로 스카우트돼 물품판매, 차관업무, 선박도입 등 수산업 관련 업무를 익혔다. 당시 원양어선이 잡은 참치는 대부분 현지에서 수출됐는데 그때 외국상선들과 거래하며 쌓은 신용은 나중에 창업할 때 큰 도움이 됐다. 1969년.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조업과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동원 산업을 창업했다. 당시 사업 밑천은 1000만원. 배는 일본 기업에서 공짜로 빌렸다. 일본에서 어선 구입비로 37만달러의 차관을 도입했는데 담보나 정부·은행의 지불보증 없이 신용만으로 빌린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10여년간 쌓아온 신용의 결과였다. 사장이 된 뒤에도 그는 직접 배를 몰고 고기잡이에 나섰다.‘참치 잘 잡는 선장’이라는 별명이 무색치 않게 동원산업의 원양어선은 월등한 어획고를 기록했다. 창업 2년만인 1970년 외화 획득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과 수산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70년대 초 몰아닥친 1차 석유파동은 동원산업을 비롯해 모든 원양어선 업계에 타격을 주었다. 불황으로 도산하는 기업체가 속출하는 가운데 감원·감량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동원은 오히려 투자를 늘리는 등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일본에서 4500t급 초대형 트롤어선을 구입했다. 당시로서는 큰 모험이었지만 그는 바다생활을 통해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배를 타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당시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당시만 해도 기상정보가 정확지 않아 예보없이 폭풍우를 만나는 일도 많았지만 바람이 온다고 일일이 피해 다니다보면 고기를 잡을 수 없다. 배를 삼킬 듯한 거대한 파도와 싸워 이기고 났을 때처럼 감격스럽고 벅찬 희열도 없다. 폭풍우와 맞서 싸운 경험들이 인생을 성장시켰고 여물게 해준 것 같다.” 그는 해양에 관한 풍부한 경륜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85∼91년 한국수산업 회장,90∼92년 원양어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식품과 금융업으로의 확장 다른 원양회사들이 낡은 배를 가지고 ‘본전뽑기’식 조업을 하는 동안 동원은 조업을 끝낸 선박은 현지에서 매각하고 최신형 장비를 갖춘 선박을 구입하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업계 선두주자가 됐다.30여척의 원양어선과 함께 연간 10만t의 어획량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수산업체로 키운 것이다. 동원산업에서 참치캔을 내놓으며 식품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2년. 다랑어란 본명을 가진 참치는 참치의 일본명인 ‘마권(眞黑)’에서 ‘참(眞)’을 따고 우리나라 생선 대부분의 이름처럼 끝에 ‘치’를 넣어 참치로 부른 것이 유례가 됐다. 참치잡이는 그가 배를 타던 지난 1958년부터 시작됐지만 참치 가격이 비싸고 일반인들에게 낯선 고기여서 전량 수출됐다. 그는 “1981년 하버드대학 최고경영자 코스에서 몇달 공부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가 되면 참치통조림을 먹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럼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참치통조림을 먹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참치캔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당시 어획고 전량을 일본·태국 등 외국에 전량 수출하다 보니 가격 결정권이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소비가 된다면 동원의 힘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다른 업체들이 참치통조림을 만들어 팔다 실패한 뒤의 도전이었지만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참치가 원래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지 않는 고기라 낯설기 때문에 통조림에 참치 모양을 그려 넣고 텔레비전 광고를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참치통조림 시식회를 하는 등 참치를 알리는 데 총력을 쏟았다. 출시 이후 4∼5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88올림픽과 함께 국민 식품으로 자리잡으면서 동원은 명실공히 식품 업계 강자로 부상했다. 동원 참치캔은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식품업을 시작한 1982년. 김 회장은 증권업에도 뛰어들었다. 역시 하버드대학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공부하며 들었던 얘기가 동기가 됐다. 하버드대학 MBA출신들이 어떤 분야에 주로 취업하는가를 조사해 봤더니 우수한 사람들이 증권회사나 투자은행을 선호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라는 것이다. 그는 어선을 더 사려고 준비했던 돈으로 증권회사를 샀다. 당시 국내 증권회사의 인식이 좋지 않아 원양어선 한 척 값(80억원대)으로 중견 증권회사인 한신증권을 살 수 있었다. 한신증권을 낙찰받으면서 김 회장은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신증권은 1996년 동원으로 개명했다. 지난 2004년 12월에는 아예 동원그룹에서 분리되어 한국투자증권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투자금융지주로 재탄생했다. 99년 무역협회 23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그룹의 일들은 주요 사항만 보고받고 있다. 무협 직원 절반가량을 줄이는 등 조직 슬림화를 단행하는 한편 전자무역 인프라 구축, 세계적인 전시 컨벤션 육성, 수출입물류비개선 , 국제물류센터 추진 등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아들들에 밑바닥부터 경영수업 김 회장은 부인 조덕희(67) 여사와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선장시절인 1962년 당시 초등학교 동창이던 조 여사의 오빠 조영채(70)씨의 소개로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다. 조 여사의 아버지는 김 회장이 졸업한 군동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낸 분으로 김 회장을 사위로 맞는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해했다. 김 회장은 2004년 12월 그룹을 각각 금융과 식품의 양대 지주회사로 분리하면서 큰아들에게는 금융을, 작은아들에게는 식품을 맡도록 했다. 장남인 김남구(42)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2004년 3월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듬해인 지난 6월 자사보다 덩치가 훨씬 큰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며 기존 동원금융지주보다 시가총액이 두배나 많은 1조원대의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설립했다. 고려대 경영학과(83학번)를 졸업하고 1987년 동원산업 사원으로 입사한 후 91년 동원증권 대리, 기획담당 상무, 부사장을 거쳐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금융지주 지분 33%를 소유하고 있다. 동원F&B 등 식품 계열의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김 회장의 차남인 김남정(32) 경영지원실장(직급 차장)이 물려받았다. 고려대 사회학과 92학번인 김 실장은 회사 지분 44.98%를 갖고 있다.97년 동원산업에 입사, 동원엔터프라이즈 과장 등을 거쳤다. 아버지가 만든 참치캔 이후 업계를 선도할 새 베스트셀러를 내는 게 목표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장남 김 사장은 입사하기 앞서 6개월간 남태평양과 베링해에 나가 참치배를 타며 동원을 이해하기 위한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쳤다.”면서 “하루 16시간 중노동을 하면서 그물을 던지고 참치를 잡는 한편 참치를 삶고 냉동시키는 과정에서부터 갑판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남 김 실장 역시 1997년 경남 창원 참치통조림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시작, 동원산업 영업부 평사원으로 시내 백화점에 참치제품을 배달하는 등 밑바닥부터 배웠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를 닮아 체구가 좋고 남들이 보면 구두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이 투철하다는 평이다. ●정·관계로 이어지는 화려한 혼맥 건설교통부 장관부터 국정원장까지 동원가의 혼맥은 화려하다. 큰 아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집안끼리 알고 지내던 고병우(72) 28대 건교부 장관의 딸인 고소희(37·이대 전산학과 86학번)씨와 1992년 4월 공항터미널 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고려대 김동기 교수가 주례를 섰다. 두 사람 사이에 동윤(12)과 지윤(7) 1남1녀가 있다. 고 전 장관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동아건설 회장 등을 역임하다 현재 한국경영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재철 회장과 같은 호남 출신. 쌍용증권 회장 재직시절부터 김 회장과 가깝게 지냈다. 김남구 커플은 ‘괜찮은 사람이니 한 번 만나보라.’는 양가 어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8개월간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대 서양학과 84학번인 첫째 딸 김은자(40)씨는 1989년 서울지검에 재직중이던 정택화(44·고대 법대 79학번) 검사와 중매로 결혼했다. 김은자씨는 내성적이고 일 욕심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초등학생을 겨냥한 사설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정 검사는 광주지검 부부장검사, 대구지검 안동지청장, 부산고검 부부장검사, 의정부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 등을 역임한 뒤 현재 대구 고검 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올해 열두살된 외동아들 연욱이 있다. 둘째 딸 김은지(37·이대 정외과 87학번)씨는 고 김택수 전 의원의 4남인 서울 법대(81학번) 출신의 김중성(43)씨와 지난 1992년 10월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주례로 식을 올렸다. 성격이 명랑하고 친정과 시댁의 집안 대소사를 두루 잘 챙겨 어머니 조덕희씨의 자랑이 자자하다. 두 사람은 김 회장과 평소 친분이 있는 천신일 세중여행사 회장이 1988년 여행사에서 어린이들을 인솔하고 외국으로 떠나는 프로그램(CISV)의 대학생 리더로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나라종합금융 상무이사를 지낸 김씨는 지난 2001년 미국 뉴저지로 건너가 투자관리회사인 세인투자관리를 설립,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민선(12)과 현선(6) 두 딸이 있다. 막내 김남정(32) 실장의 아내는 33대 법무부 차관과 25대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64) 세계종합법무법인 변호사의 셋째 딸 신수아(33·이대 장식미술학과 91학번)씨. 대학교 4학년 때 동아리 선배의 소개를 통해 누나-동생 사이로 만난 뒤 6개월만에 연인 사이로 발전,3년 열애끝에 결혼했다. 김상하 삼양사 회장 주례로 지난 1998년 10월 워커힐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동찬(5)과 서연(2) 남매를 두고 있다. 사돈인 신건 전 국정원장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인 김재국(63) 전 동해하이테크 사장의 친구이기도 하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뛰어난 문장가’ 김재철 회장 “재웅아! 우리는 드디어 만선(滿船)을 했다. 우리 배는 지금 어창(魚倉)마다 고기를 가득 싣고 사모아로 돌아가는 길이다. 푸른 하늘엔 흰 구름 떠가고 바다엔 새하얀 우리 배가 물결을 가르면서 달린다. 물위에 떼를 지어 놀던 고기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한가로이 물에 떠 있던 고래도 배를 피해 점잖게 물 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엊그제까지도 바다는 성난 파도로 꿈틀거렸는데 오늘은 우리의 만선귀항을 축하라도 하는 듯 잔잔하구나.”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소개된 김재철 회장의 ‘남태평양에서’의 한 구절이다. 김 회장은 책을 많이 읽는 독서광으로 유명하지만 문장가로서도 이름이 높다. 젊은 시절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간결하고 생동감 있는 글을 많이 썼다. 이밖에 ‘바다의 보고’,“거센 파도를 헤치고’ 등 그의 글은 초·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소설가 정비석씨는 ‘사상계(思想界)’에 발표한 김 회장의 글을 보고 “이 정도 글 솜씨라면 작가로 데뷔해도 좋겠다.”고 평했다. 김 회장 스스로도 기업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문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서로는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가 있다. 그는 원양어선 선장시절 선용품을 사기 위해 시모노세키 등의 항구에 기항하면 책방에 가서 헌책들을 무게로 달아 구입해 배 안에서 끊임없이 읽었다. 덕분에 김 회장은 문학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만큼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다. 지난 2004년 일본 미쓰비시 그룹 회장·사장단으로 구성된 모임인 ‘금요회’에서 ‘나의 인생과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주제로 일본어 특강을 했다. 요즘도 월 평균 10∼20권의 책을 읽는다. 경제·경영·역사·심리 등 분야가 다양하다. 회계학도 독학으로 배워 재무제표도 꼼꼼히 본다. 직원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동원산업 사내 게시판에는 책 요약 서비스까지 제공된다. 처남인 박인구 동원F&B 사장도 국내 출장이나 여행 때는 반드시 KTX를 탄다.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자식들에게도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강조했다.1주일에 적어도 한 권씩은 읽도록 했다. 정독이 안되면 통독을 하라고 가르쳤다. 책을 주고 A4용지 4∼5장 분량의 독후감도 받았다. 내용이 부실하거나 느낀 점이 부족하면 느껴야 될 점과 핵심 등을 설명해 주었다. 장남인 김남구 사장은 오래전에 독후감 제출을 졸업했지만 김 사장보다 열살 어린 동생 김남정 실장은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독후감 제출 대상이었다. 김 실장은 “일본 대하소설 ‘대망’을 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얼마나 고생해 지도자 자리에 올랐는지 토론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최근에는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추천받았는데 유익했다.”고 말했다. jhj@seoul.co.kr ■ 동원출신 CEO들 ‘반짝반짝’ 김재철 회장은 소식·금연·절주 등 절제된 생활로 유명하지만 인재 욕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좋은 인재=좋은 실적’이란 생각에서 1980년대 후반 증권업계 최초로 성과급제를 도입했고 금융권 최초로 스톡옵션제를 실시했다. 동원이 인수한 한신증권은 90년대 한번에 특별성과급을 400%씩 지급,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참치를 많이 잡으면 선장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듯 선장을 지낸 그의 삶에 성과주의가 깊이 배어있는 것이다. 때문에 동원증권 출신들 중에는 스타급 인사가 많다. 동원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 CEO(최고경영인)는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대신증권에서 김 회장에게 한신증권으로 스카우트된 그는 1998년 동원증권 사장 재직 당시 금융권 최초로 1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주택은행장으로 영전돼 권리 행사는 하지 못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즐겁게 일한 뒤 행복하게 헤어진 모범 케이스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동원이 놓아주지 않으려 애를 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나이 마흔이 되면 창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이사 재직 시절인 서른 아홉이 되던 해에 동원증권을 나왔다. 그를 놓아줬다는 이유로 화가 난 김 회장이 김 전 행장과 무려 6개월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낸 일화는 아직도 금융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김 전 행장은 한신증권 이사로 일하면서 박 회장을 동원에 영입했다. 두 사람은 절친한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다. 재경부 공무원 출신의 정태석 광주은행장(전 동원증권 상무), 장인환 KTB 자산운용 사장(전 동원증권 차장), 송상종 피데스 투자자문 사장(전 한신증권 대리), 조승현 전 교보증권 사장(전 동원창업투자 사장)도 모두 한때 동원증권에 적을 뒀다. 지금도 동원에 몸담고 있는 스타 CEO들이 많다. 서두칠 동원시스템즈 사장은 2002년 초 김 회장의 영입제의를 받고 통신장비업체인 이스텔시스템즈(옛 성미전자) 사장으로 왔다. 동원시스템즈는 지난 3월 이스텔시스템즈와 동원EnC가 합병한 회사다. 그는 1997년 말 한국전기초자의 전문경영인으로 부임해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 퇴출위기에 몰렸던 회사를 3년만에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킨 주인공. 김범석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은 금융관료 출신으로 2002년 합류했다.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은행구조조정팀장과 구조개혁기획단 은행팀장을 지냈다.2000년 초 키움닷컴 사장을 지냈다. 김 회장의 두 아들을 제외하고 동원에서 일하는 인척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 김재운 동영콜드프라자 대표이사 회장, 둘째 처남인 동영콜드프라자 최재열 상무와 셋째 처남인 동원F&B 박인구 사장 등이다. 박 사장은 1997년 산자부 상무관 시절 동원정밀 부사장으로 동원에 합류했다. 외환위기 당시 이익을 낸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동원F&B 사장이 됐다. 박 사장은 “김 회장은 항상 동생들과 가족들에게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우리가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의 부인이 아직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없이 사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고 덧붙였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정 총장내정자 “대검 과장급 이동 없다”

    정상명 검찰총장 내정자는 지난 24일 총장 내정 사실이 확정 발표된 직후 대검 과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과장급 인사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장검사급인 대검 과장들이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선 지검 부장검사뿐 아니라 지청장, 지검 차장검사 인사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따라서 정 내정자의 발언은 더 위로 올라가서 고검장급, 검사장급 인사를 최소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정 내정자는 일선의 동요를 예방하기 위해 이처럼 서둘러 ‘인사 최소화’ 방침을 밝혔지만 열쇠는 동기들인 사시 17회 출신 고위간부들이 쥐고 있다. 이는 결국 17회 출신 고검장, 지검장들이 남아 있을 때 가능한 각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정 내정자는 24일 “동기들의 사퇴를 만류하고 있다.”고 공개했고, 청와대 핵심인사도 다음날 “후배 밑에 있기는 그렇겠지만 동기와 함께 일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으냐.”며 정 내정자 동기들을 잔류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정 내정자와 청와대의 뜻대로 후속 인사가 최소화될지는 미지수다. 정 내정자 동기들은 아직 입장정리를 못하고 있다. 자칫 자리에 연연한 것 아니냐는 비판 때문에 남아 있으려면 ‘명분’이 중요한데 현재로서는 뚜렷한 명분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행대로 전원 용퇴하기에는 ‘조직’이 처한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점도 딜레마다. 그런 가운데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은 25일 오후 동기인 정 내정자에게 처음으로 ‘주례보고’를 했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녹색공간] ‘국민 총행복’의 기수 부탄 王/박은경 환경과 문화 연구소 소장

    동화 속의 왕 같이 빼어나게 잘 생긴 지그메 싱예 왕추크왕은 우리 일행을 따뜻이 맞아 주었다. 갈색과 겨자색이 어울린 세련된 디자인으로 단장한 부탄 왕의 집정실에서 만난 국왕은 50살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30대 청년같은 젊음과 정기가 있었다. 소왕국 부탄은 중국의 티베트자치국과 인도 국경사이 히말라야 대간에 자리잡았고, 수도 팀부는 해발 2500m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작은 계곡에 위치하였다. 방콕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 6시부터 서둘러 부탄 국적기 두르크 항공 비행기를 타고, 인도의 콜카타를 거쳐 파로공항에 도착하였다. 골짜기 작은 강가에 위치한 이 공항은 100여명의 승객이 내리기에 적합하였다. 지난 10월초 유엔 환경프로그램(유네프)의 퉤퍼 사무총장과 관련인사 7명은 초청자인 왕을 알현할 기회가 있었다. 예정된 30분의 시간이 1시간으로 길어진 대담시간 동안 왕추크 왕은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정책적 소신을 찬찬히 밝혔다. 이미 전 지구적 관심이 된 ‘국민총생산’이 아닌 ‘국민총행복’에 대하여 왕으로부터 직접 듣는 영광의 자리였다. 특히 동·서남아시아에 대한 왕의 소상한 이해는 방문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필리핀의 환경장관 출신 하비토 교수가 자국으로 돌아가 칼럼을 쓰겠다고 하자 왕은 “당신국가 지도자가 불행해할 걸요?”라고 방문자들을 웃게 하는 재치까지 보였다. 10월4일 뉴욕타임스에 ‘행복한 작은 왕국의 새 행복척도’라는 기사가 실린 후 한국의 일간지들에도 부탄에 대한 기사가 실리면서 부탄의 행복척도에 대하여 묻는 이가 부쩍 많아졌다.3만 8394㎢, 인구 70만명의 소국 부탄은 30여년전부터 왕추크 왕의 영도아래 국가 발전의 철학과 정책을 국민들의 행복에 맞추어 왔다.‘국민총행복’의 개념은 4개 영역을 균형되게 유지하려는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 즉 부탄의 문화적 전통의 유지, 교육과 건강에 대한 복지, 친 환경적 노력 및 투명하고 책임있는 거버넌스를 ‘행복만들기’ 정책의 기본으로 잡고 있다. 경제적 발전보다 국민들의 정신적 삶에 초점을 맞추어서 국민들의 행복을 최대화하려는 독특한 의지가 반영된 정책이다. 아시아 태평양지역 환경저명인사 7명만이 참여한 2일간의 유엔환경프로그램 정책 지역협의회는 개회식 의장 틴리 총리가 환경부장관, 문화부장관을 배석하고 스님 세명과 함께 주관하였다. 회의 개회식에 신을 부르는 부탄의 전통의례는 국민 총행복의 문화전통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목축국가의 표상인 우유를 가득 담은 함지박을 가운데 놓고 스님들의 찬송 속에 의례 주례자가 회의장 밖에 우유를 담은 국자 같은 기구를 들고 들락거리며 정중하게 진행하였다. 한국 전통사회의 굿의례에서 첫거리에 등장하는 청신의례와 의미가 같았다. 길에 걸어다니는 부탄인은 누구나 부탄 전통의상을 입고 있다. 무릎길이의 ‘고’라고 하는 남자들의 허리를 묶은 간단한 옷과 ‘기라’라고 하는 여자들의 긴치마이다. 내 평생에 길거리에서 남자들의 다양한 다리를 가장 많이 본 사흘간이었다. 반면에 여성들은 긴치마로 몸을 가리고 있다. 부탄의 모든 교육은 무상이다. 하나밖에 없는 대학까지도 무상교육으로 이루어진다. 병원비도 무료라서 우리 같은 여행객도 부탄에서는 무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루에 한두편의 두르크항공기만으로 제한하는 정책은, 물론 파로공항의 자연적 입지로 인한 운항의 난점도 있겠지만 자신들의 환경을 인간들의 무차별관광으로 망가뜨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비행기 트랩을 내리는 순간 느꼈던 그 짜릿한 강한 햇살과 맑디맑은 공기 속에 순간적으로 지구가 아닌 다른 위성에 온 것 같던 느낌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의 감각속에 살아 있어 다시 맛보고 싶은 강한 열망을 유발한다. ‘국민총행복’의 네 번째 요소인 투명하고 책임있는 거버넌스는 지난 30여년간 왕추크왕이 키워 온 국민총행복의 개념과 정책은 물론 2008년에 의회민주주의를 실현시켜서 왕의 자리를 명예직으로 바꾸려는 왕추크왕의 집념속에 잘 녹아 있다. 네 명의 여자형제를 왕비로 거느린 동화 속 왕추크왕의 모습에 알현 인사하였던 필자는 1시간의 대담 후 부탄사회의 현명한 영도자의 모습에 작별 인사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박은경 환경과 문화 연구소 소장
  • [실전 논술] 권력의 우상화와 지도자의 태도

    다음은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일부이다. 이 글을 바탕으로 하여, 권력이 어떻게 우상화되고 있는지 밝히고, 권력이 바람직하게 집행되기 위해 지도자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뭐라고 해도 평의회가 환자들의 권익을 대표하여 그들의 의사를 병원 당국에 반영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원장이 허용할 수 있는 통치 원칙 한계 안에서 그칠 수밖에 없었다. 통치라는 말이 좀 마땅치 않은 표현일는진 모르지만, 이 섬 병원의 원장이라는 직위야말로 사실은 이 병원과 섬 전체를 통치한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모든 권한이 함께 주어진 절대 지배자의 그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병원뿐만 아니라 섬 주민 전체의 생활 일반까지 책임지고 있는 만큼 이 곳대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규율을 정하고, 그 규율을 시행하며, 그것을 위반하는 자에 대해서는 필요한 처벌까지 가할 수 있는 원장의 지위였다. 원생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평의회의 기능에는 스스로 한계가 지어지게 마련이었다. 지배하는 원장과 지배를 받는 원생들 사이에 극단한 이해 상충이 일어나고 보면 물러서야 할 쪽은 처음부터 자명했다. 그런 경우 이 편의 뜻이 사지고 안 사지고는 오로지 원장의 아량 하나에 달리게 된다. 원장이 아무리 원생들의 이익을 배반하려 한다고 해도 평의회에선 그 원장까지 갈아치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바로 그 점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겠지만, 한 원장에 대해 원생들이 자기 편의 주장이나 이익을 지켜 나갈 수 있는 힘의 근거란 그 원장에 대한 최종적인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는 도대체 진정한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평의회에선 어떤 극단한 경우라도 원장을 선택하고 안 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애초부터 가능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중략) 주정수는 이 섬과 원생들을 위해 그 자신이 원장직을 자청해 왔다는 소문까지 있는 인물이었다. 일본의 어떤 유수한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끝낸데다가, 총독부 위생관을 시작으로 그가 걸어온 관계(官界)의 경력만 해도 전도가 이미 훤한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보증된 출세의 길을 버리고 이 외진 섬으로 원생들의 치료를 자청해 온 것이라면 그 나름의 깊은 뜻이 있음직한 일이었다. 그는 섬으로 부임해 오기도 전에 벌써 구라협회(救癩協會)의 기금을 끌어 내어 그 때까지도 일부 수용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던 섬 토지를 모조리 매수해 들였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외모만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점쳐 버려서는 안 되었다. 한데 이 날 아침 주정수 원장의 취임 연설로 보아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선입견을 씻으려고 한 원생들의 노력은 과연 크게 빗나가질 않은 것 같았다. 주정수는 그 여자처럼 가늘고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로 정력적인 취임 연설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나는 여러분에게 약속하겠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우선 이 섬을 원생들의 낙원으로 꾸며 놓겠다고 약속했다. 시책의 제일 목표를 새로운 병원 시설과 환자촌의 수용 시설 확충 및 요양 환경 개선 사업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리하여 이 섬을 동양 제일, 아니 세계 제일의 나환자 요양소로 꾸며서 버림받고 쫓겨온 사람들의 새로운 고향, 자랑스런 낙토로 만들어 놓고 말겠다고 장담했다.(중략) 원생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열심히들 일을 했다. 병사(病舍) 지대 3개 부락(당시)에서 작업이 가능한 사람들은 매일같이 벽돌 공장으로 혹은 병사 신축장으로 고된 출역을 계속하면서도 누구 한 사람 피곤해할 줄을 몰랐다. 모처럼 일삯이라는 걸 받아 보는 것도 대견스러웠지만, 자기 손으로 벽돌을 구워 내고 자기 손으로 자기가 살 집을 지어 낸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을 느끼게 했다. 자기의 힘으로 자신의 낙원을 꾸민다는 자부심이 모처럼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게 했다.(중략) 주정수도 만족했다. 그는 오직 원생들 때문에 즐거워지고 그들이 만족해하는 것을 보고 그도 함께 즐거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거기서부터였다. 주정수의 낙원 설계는 그보다도 더욱 완벽하고 신념에 찬 것이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이제 일차 공사를 치른 경험을 통해서 보다 충분한 자신까지 얻고 있었다.(중략) 주정수는 말이 없었다. 동상 건립 결의가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리고 강제나 다름없는 모금 작업이 시작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는 말이 없었다. 자신의 동상 건립 계획을 사양하지도 않았고 모금 운동을 중단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아는 듯 모르는 듯 그 일에 대해서는 도대체 아랑곳을 하지 않았다. 사또가 그를 대신해서 모든 일을 추진해 나갔다. 그리고 맨 처음 그 일을 제안하고 나섰던 이순구가 모금 운동에 앞장서 돌아다녔다. 모금 성적이 나쁜 부락 대표들에게는 갖가지 위협과 압력을 가했다. 마침내 4만 7천여 원(당시 일당 임금 3전)에 이르는 기금이 모아지고, 본격적인 동상 건립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주정수는 끝내 말이 없었다. 원생들은 다시 동상 건립 작업장으로 노역을 나가야 했다. 공원 정면, 연단처럼 두드러진 구릉 위에다 동상을 세울 터를 정하고 거기에 다시 축대를 쌓아올렸다. 화강암을 18척이나 쌓아올린 그 축대의 전면에는 ‘周正秀園長像’이 새겨지고, 그 후면에는 사또와 이순구를 비롯한 동상 건립 역원 명단이 새겨진 사방 3척 넓이의 커다란 동판이 부착되었다. 작업은 언제나처럼 하루도 예정에서 어긋남이 없이 정확하게 진행되어 나갔다. 그 해 8월 20일. 마침내 동상이 완성되어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섬에서는 다시 한 번 성대한 의식이 벌어졌다. 일본 황실에서 보내 온 축하 사절과 국내의 각 종교 단체 대표·유지들이 수백 명씩 모여든 장엄한 식전이었다. 이윽고 주정수 가족 중의 어린아이 하나가 축대 아래로 늘어뜨려진 포장의 끈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기자, 지금까지 부드럽고 흰 비단포 속에 가려져 있던 또 하나의 주정수가 만장을 압도하듯 그 거대하고 시커먼 모습을 나타냈다. ● 지문의 분석 이 소설은 소록도라는 한 섬을 통해, 자유가 없는 권력은 증오를 낳고, 사랑이 없는 권력은 강요된 의무만을 요구할 뿐이라는 비관적 세계관을 도출한다. 그리고 이 소설은 조백헌이 소록도 병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나환자들과의 대립과 갈등을 겪는 1부와 조 원장의 정신적 방황을 그린 2부, 일반 시민으로 돌아온 조 원장의 주례로 끝을 맺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 글은 풍광이 화려한 소록도에서 끈질기게 투병하고 있는 나환자들의 삶을 통해 저마다 갖고 있는 유토피아에의 열정과 그것을 배반하는 권력과의 갈등을 예리하게 해부하면서 ‘자유와 사랑의 실천적 화해’를 제시한 소설이다. 이를 위해 글쓴이는 소록도라는 나환자들의 공간과 현역 군인 원장을 등장시킨다. ● 출제의도 이 작품에서 소록도는 인간 소외, 즉 피지배의 양상을 극단적으로 제시하는 공간이며, 현역 군인 원장은 그 출신과 직함 자체로 지배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암시하는 설정이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어떻게 하면 인간 사회는 천국이 될 수 있는가, 또 권력의 행사는 어떠해야 하는가 등이 다루어진다. 이 소설은 결국 인간은 서로 화해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 사랑과 자유를 소유하고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는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출발한 권력이라도 그것은 항상 타락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실 사회의 권력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권력이 특정 개인의 욕망 충족의 도구가 되지 않고 권력을 위임한 사람들에게 건전하게 집행됨으로써 본연의 임무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소록도라는 폐쇄된 공간을 배경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제시문을 통해 권력이 타락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고, 권력을 소유한 사람 자신이 그것을 어떤 자세와 신념으로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성찰해 보도록 요구하고 있는 문제이다. ● 생각하기 이 문제에서는 두 가지 사항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는 권력이 어떻게 우상화(타락)되어 가고 있는가를 밝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직한 권력의 집행을 위한 지도자의 태도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우선 제시문을 통해 권력이 애초의 순수성을 잃고 변질되어 가는 과정을 확인하여 간추리고 이를 좀더 발전시켜 일반화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자의 심리적 욕망이나 독재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행태 등을 보충 자료로 활용하면 논지가 더 뚜렷해질 것이다. 그 다음으로 지도자들이 어떻게 스스로 타락에의 유혹을 물리치고 건전한 권력의 행사자가 될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애초의 선의와 신념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보면 훌륭한 답안이 작성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추상적인 논의로 흘러가지 않도록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들의 사례를 검토하여 함께 제시하면 좋을 것이다. ● 어떻게 쓸까 주어진 문제가 권력이 어떻게 우상화되고 있는지 밝히고, 권력이 바람직하게 집행되기 위해 지도자가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서 묻고 있으므로 주제의 방향은 권력의 우상화 과정과 지도자의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으로 설정할 수 있다. 즉, 지도자는 자기 우상화의 욕망을 절제하고 민주적 지도자로서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측면에서 주제문을 설정할 수 있다. 글의 서론 부분에서는 일반적인 내용을 도입해야 하는데 대략적으로 권력의 형성과 지도자의 역할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면 된다. 본격적인 논의로 들어가는 본론 부분에서는 우선 권력이 우상화되어 가는 과정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권력은 스스로 타락해 가는 속성이 있다는 점을 제시해 전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의 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제시문의 경우를 제시하면 좋다. 주정수 원장의 경우가 거기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논의의 중요한 요소로 지도자가 지녀야 할 태도를 제시하면 된다. 이 내용은 자신이 생각하는 지도자의 요소가 무엇인가를 제시하면 되는데, 예를 들면 개방적인 세계관의 강화라든지 초지일관(初志一貫)의 자세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사의 대의를 보는 통찰력 등과 관련된 요소는 중요한 내용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의를 전개할 때 가급적이면 구체적인 내용 요소를 언급하면 논의가 현실성을 지니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결론 부분에서는 민주적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관련된 전망을 제시하면 글을 마무리하면 된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원장
  • 심은하 베일 속 웨딩마치

    심은하 베일 속 웨딩마치

    영화배우 심은하(33)가 18일 오후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 애스톤 하우스에서 지상욱(40)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초대장을 받은 150명만이 하객으로 참석한 결혼식은 사회자 없이 하용조 목사의 주례로 약 1시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날 식장에는 지상욱씨와 친분이 두터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비롯해 윤세영 SBS 회장, 정세호 PD, 영화사 씨네2000 이춘연 대표, 심은하의 동료 배우 안성기, 정우성, 이미연, 이정재 등이 참석했다. 결혼식 장면은 예식이 끝난 지 30분쯤 뒤에 별도로 마련된 프레스룸에서 동영상으로 공개됐다. 두 사람은 지난해 말 한 모임에서 만나 교제하다 지난 7월 결혼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욱씨는 한성실업 지성한 회장의 외아들로 연세대 국제대학원 연구교수로 재직중이다. 연세대 토목공학과 출신으로,2003년 초 미국 체류 중이던 이회창 전 총재를 수행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라크 헌법안 국민투표 가결될듯

    이라크 새 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수니파 유권자들의 높은 투표 참여에도 불구하고 가결될 것이 유력시된다. 16일 각 주선거관리위원회의 1차 개표 결과 수니파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살라후딘, 디얄라, 니네베, 안바르 등 4개 주 가운데 디얄라와 니네베등 2곳에서 ‘찬성’ 표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와 헌법안의 부결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AP와 AFP통신 등 외신들이 일제히 전했다. 헌법안이 부결되려면 18개 주중 ‘3개 주 이상에서 3분의 2 이상이 반대’해야 한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고향인 티크리트가 속한 살라후딘 선관위 관계자는 “유권자의 88%가 투표에 참여해 이 가운데 71%가 반대했다.”고 말했다. 안바르의 경우 유권자의 99%가 반대한 팔루자를 제외하고는 투표율과 개표 상황이 아직 집계되지 않고 있으나 반대표가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디얄라의 경우 1차 개표 결과 유효표 40만표 중 70%가 헌법안에 찬성했다고 주 선관위가 밝혔다. 또 쿠르드족 자치지역 아르빌과 인접한 니네베의 경우 300개의 투표함 중 260개에 대한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찬성’ 30만표,‘반대’ 8만표로 집계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나머지 40개 투표함이 모두 개표돼도 결과를 뒤집지는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영국 런던에 도착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라크 헌법안이 통과될 것 같다. 하지만 결과를 지켜보자.”고 말해 가결 쪽에 무게를 실었다.1550만 유권자 가운데 1000만명 이상이 참여해 투표율은 65%에 이를 것으로 선관위는 잠정 집계했다. 지난 1월 총선때의 58%를 웃돌았다. 선관위는 16일 중(한국시간 17일 오전)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최종 결과는 20일쯤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새 헌법안이 가결되면 이라크는 12월 총선을 거쳐 현재의 과도의회를 대체할 4년 임기의 영구의회를 구성한 다음 주권 정부를 출범시키게 된다. 이럴 경우 미국 등 외국군의 철수 시기가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부결되면 12월 총선은 또다시 과도의회 선출을 위한 선거로 치러지게 돼 혼란과 분열의 1년을 되풀이하게 된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주례 라디오연설에서 “이라크 민주주의 행진에서 결정적인 진일보”라며 미국은 이라크에서 “달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데스크시각] 행복한 결혼정책/ 허남주 주말매거진WE팀장

    최근 만혼 경향이 두드러져 결혼 적령기가 따로 없다지만 그래도 미혼자들에게는 결혼이 설렘과 함께 ‘숙제’처럼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30대 후반의 노총각은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여태 집도 없어요?”라는 말이라 했다.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그동안 뭐 했냐?”는 말도 싫어 신붓감 소개를 아예 거절한단다. 2년차의 29살 남자 직장인은 “언제나 결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달에 100만원씩 저축하지만 전세금이라도 마련하려면 10년은 걸리겠다. 부모님 도움은 받고 싶지 않은데….”라고 남들의 결혼소식이 들려오는 가을이라 더 싱숭생숭한 듯 말했다. 불쑥 “도움받을 수 있으면 받지, 뭐…”라고 말하려다 얼른 입을 다물었다. 최근 들은 ‘바나나’의 결혼이야기가 생각나서다. 겉은 노랗지만 껍질을 벗기면 하얗다는 뜻으로, 흔히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 태어나 자란 교민 2세들을 일컬어 1세대들이 ‘바나나’라고 한단다. 한국에서 어학연수중에 만나 결혼한 ‘캐나다바나나’와 ‘호주바나나’는 결혼 1년 전부터 스스로 주축이 돼 계획을 짜고, 비용을 마련하며 결혼식을 준비했다. 흥겹기까지 한 결혼식에서 부모는 경제적인 부담이 없어서 오히려 섭섭함을 느꼈을 정도로. 결혼식에 참석한 10대 아이들을 둔 ‘기러기 엄마’들은 “이런 풍습을 봤으니 우리 아이들도 한국식으로 나중에 비용을 부모에게 왕창 씌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웃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서양의 결혼풍습을 봤다고 그렇게 당장 벤치마킹을 할까. 그 말을 들으며 함께 웃었지만 정작 그 엄마들의 기대는 어긋날 것이란 생각도 했다. 흔히 결혼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 한다. 영악한 젊은이들은 이미 이를 간파하고 있다. 최근 대학생을 대상으로 미래의 결혼비용에 대해 질문했더니 36%가 ‘부족분을 부모님께 부탁하겠다.’고 답했다. 부모에게 ‘상당부분’ 혹은 ‘전액’ 의존하겠다는 학생도 무려 30%나 됐다. 결국 대부분이 부모의 도움을 고려하는 셈이다. 하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결혼을 늦출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출산율이 낮아지는 것 같은) 문제가 생긴다면 부모입장에선 적극적으로 돕기라도 해야 할지 모르겠다.‘부모 잘 만난 덕’에 결혼하고, 그렇지 못하면 결혼을 늦출 수밖에 없는 우스꽝스러운 현실을 좌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 그동안 보육을 개인의 책임으로 미루다가 저출산이란 문제로 이어졌음에 비춰볼 때, 만혼 역시 결코 사적인 일로 축소할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결혼인구 비율 1% 증가에 합계출산율을 0.342명 높일 수 있다는 연구를 내놓았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직접적인 대책이 결혼장려정책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기혼층 중심의 출산 대책보다 결혼율을 높이는 정책 개발에 주력한다는 지적과 함께, 싱가포르처럼 주택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결혼장려금 지급 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바나나’의 사례처럼 비용만 마련한다고 결혼할 수 있는 게 아닌 현실은 의식변화를 기대하는 것만큼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낮은 결혼율과 함께 높아지는 이혼율을 생각할 때, 더욱 문제해결은 쉽지 않다. 최근 결혼식에서 들은 주례사가 생각난다.“오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여러분들은 모두 이 결혼을 행복하게 유지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줘야 합니다.”라고 주례선생은 목소리를 높였다.“그냥 갈비탕 먹고 가라는 게 아녜요. 여러분들, 저기 뒤에 소곤소곤 이야기하시는 분들…. 이 두 사람이 새 인생을 시작하는 것만 축하할 것이 아니라 아들딸 여럿 낳는지도 관심가져야 하고, 아이 돌볼 사람이 없을 때는 적극적으로 돕기도 하고, 또 두 사람이 서로 의견충돌이 일어나 싸움이라도 하면 다시 사이좋게 되도록 돌봐야 합니다. 약속하시죠?” 저출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출산세를 신설한다는 말도 나오니까 “돈 없어 결혼이 늦어지는데 이러다 ‘만혼세’까지 나오는 것 아니냐?”라는 우스개가 씁쓰레한 뒷맛을 남긴다. 결혼이 국가정책이 돼야 한다면 어떤 주례사처럼 구체적으로 행복한 결혼정책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허남주 주말매거진WE팀장 hhj@seoul.co.kr
  • [부고]

    ●김승국(전 병무청 과장)정국(서울외국어대학원 총장·전 문화일보 사장)이국(전 INI스틸 과장)영국(현대자동차 전무)씨 부친상 김호겸(전 한일은행 지점장)조기연(사업)씨 빙부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2)3010-2293●조정휘(우리투자증권 인력개발팀 차장)씨 빙부상 6일 평촌 한림대 성심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31)384-1247●이원(숭실대 기계공학과 교수)씨 빙모상 6일 대구 모레아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8시 (053)801-9999●이계식(삼성SDS 정보기술연구소 상무)씨 부친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3410-6917●정대연(한국석유공사 부장)기연(제이앤제이건축사사무소 소장)씨 부친상 강병철(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소장)씨 빙부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6시 (02)3010-2238●강형구(사업)희구(가락시장 청과)경구(사업)씨 모친상 황재협(신성엔지니어링 부장)최환호(신영섬유 주임)씨 빙모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6시 (02)3010-2237●임종환(목포대 교수)종수(세림상사 대표)씨 부친상 김동준(한국전력 강릉지사장)장지호(경화엔지니어링 감리)씨 빙부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10시 (02)3410-6920●박윤수(중소기업은행 문래중앙지점장)재연(전주 우석여고 교사)씨 모친상 문익주(약사)씨 빙모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4시 (02)3410-6914●박경립(강원대 건축학부 교수)씨 부친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2)3410-6912●안위종(국민대 교수)범종(안산산업대 〃)헌종(잠원초등학교 교감)원종(뉴질랜드 거주)씨 모친상 창학(국민은행 차장)씨 조모상 조홍제(부산 동래구의원)씨 빙모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30분 (02)3010-2235●권상출(스포츠투데이 편집국 종합편집부 기자)씨 빙모상 5일 부산 좋은강안병원, 발인 7일 오전 10시 (051)610-9675●김민호(프로야구 롯데 코치)씨 빙부상 5일 부산 주례삼선병원, 발인 7일 오전 10시 (051)310-9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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