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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건성 중국군 전쟁 준비상태 돌입/대만 근해 미사일 발사 맞춰

    ◎해공군은 합동훈련/중,미사일 2기 또 발사 【홍콩 연합】 대만해협 맞은편의 중국 인민해방군 복건성 주둔군이 미사일 시험발사에 맞추어 전쟁준비상태에 돌입했으며,해방군 공군과 해군은 복건성과 절강성 연안지역에서 「957」로 명명된 합동군사훈련을 곧 실시한다고 홍콩과 대만의 주요신문들이 23일 보도했다. 명보는 현지소식통의 말을 인용,복건성 주둔군이 전쟁준비상태에 돌입함에 따라 대만영토인 김문도와 마주보고 있는 복건성 남부 연안지역인 하문시 교외와 북부연안지역인 성도 복주시에 해방군과 군용차량이 크게 증가했고,미사일을 적재할 수 있는 주력전투기인 「섬8」 대형전투기들이 복건성에 배치됐다고 말했다. 홍콩연합보는 해방군이 복건성과 절강성 연안지역에서 곧 「957」 군사훈련을 실시하며,「섬8」 전투기들이 지난 16일부터 대만해협을 마주보는 제1선에 전진배치됐다고 말했다. 군부소식통들은 주력전투기가 제1선에 배치된 것은 지난 20∼30년간 극히 드문 일이어서 크게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홍콩 연합】 대만 국방부는중국의 인민해방군이 대만 북부 공해상으로 지난 21일 2기,22일 2기 등 모두 4기의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고 23일 공식 발표했다. 국방부는 첫날 발사된 2기중 1기는 목표구역을 명중시키지 못했으며 3기는 명중시켰다고 밝혔다.
  • 보스니아서 유럽은 졌다/윌리엄 파프 미 칼럼니스트(해외논단)

    ◎미는 무기금수 해제… 「싸울수 있는 수단」 제공해야 보스니아 회교정부가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와 싸울 의지가 있는한 미국은 보스니아에 대한 무기금수조치를 취해서는 안된다고 미국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파프가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서 주장했다.다음은 「현재 세르비아계가 승리하고 유럽은 패배하고 있으며 미래는 어둡다」는 제목의 그의 칼럼 요지. 보스니아의 고라주데와 사라예보에서 프랑스군을 강화해야한다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의 제안은 단지 백악관을 당황하게 할 뿐이다.그리고 지금까지의 보스니아에 대한 프랑스정책을 입안해온 알렝 쥐페총리를 당황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라크는 보스니아에서의 현안이 무엇인지를 알고있는 정렬적이고 행동력있는 사람이다.그러나 그는 보스니아사태와 관련해 너무나도 늦게 권력을 잡은 사람이다.그의 제안은 때가 늦은 것이다. 1989년 공산주의가 붕괴한 이래 미국은 점진적으로 유럽주둔군을 철수시키기 시작했다.워싱턴의 시각으로 볼때 이제 유럽인들의 문제는 유럽이 처리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강대국 특히 프랑스,영국등은 처음에는 워싱턴이 떠맡기를 거부한 책임을 맡으려고 하지 않았다.유럽이 통합된 외교·안보정책을 통해서 유럽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유럽의 각국 정부들에게 유럽의 평화와 정치질서에 대한 개별적인 책임의 포기에 대해 변명거리를 제공했다. 미국의 지도력이 없어지자 유럽의 정부들은 그 자신들 모두가 유럽문제에 대한 의견통일의 주인공이 되려고 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라는 사실이 이들 국가에게 지도적인 위치에 서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즉 유럽의 경제적 통합의 성공이 개별적인 정치적 행동에 대한 장애물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경제적 통합은 서유럽국가들에게 동유럽,발칸반도,러시아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수 있는 정치적 권위와 도덕적 권위를 부여했다. 유고슬라비아 문제와 관련,미국정부는 처음부터 유소슬라비아는 유럽의 문제라는 믿음하에 개입을 자제했다.워싱턴은 보스니아인들이 자신들을 방어하기위해 무장할 권리가 있다는 입장만을 유지했다.미국정부는 또한 새로운 보스니아정부는 서유럽통합의 근본 원리인 인종간 무차별의 정신을 나타낼 것이라고 믿었다. 유엔의 무기금수는 지정학적으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에 의해 둘러싸인 보스니아인들을 무장시키지 않는데는 효과적으로 작용했으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무장을 저지하는데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결론은 바로 이러한 사실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 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보면 먼저 미국은 보브 돌 상원원내총무가 요구한 바와 같이 보스니아에 대한 무기금수를 일방적으로 해제해야한다.만약 보스니아 정부가 이번 위기에서 살아남아 꾸준히 싸울 자세를 갖춘다면 보스니아군을 무장시켜야만 한다.미국은 또한 보스니아에서의 제공권장악을 위해 보스니아에 충분한 공중지원을 해야한다.결론적으로 보스니아인들이 전쟁을 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수단이 제공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유럽정부들은 만약 미국이 정책을 바꾼다면 자신들의 군대를 유고슬라비아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말해왔다.특히 영국은 이번 겨울이 오기전에 어떤 식으로든지 자신의 군대를 철수할 것같이 보인다.영국은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망신스러운 포기에 대한 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줄 미국정책의 변화를 환영할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미국의 정책변화에 대한 반대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미행정부는 유엔군을 선발할 때에 2만5천명의 군대를 보내기로 약속한 적이 있다.지금 이 순간에는 고라주데와 사라예보의 강화를 위한 수송수단의 보급이 요청되는 때이다. 만약 미의회가 이것을 반대한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살기를 원하는 유고슬라비아 사람들을 그 맹방들이 배신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맹방들의 기대를 다시 한번 배신한 것이 된다. 스레브레니차의 보스니아 정부군은 30개월전 유엔에 의해 무장이 해제됐다.그것은 그들지역이 유엔에 의해 보호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과 맞바꾼 것이었다. 지난주말 고라주데의 유엔평화 유지군은 보스니아군들이 그들로부터 유엔군들이 가져간 중무기들을 다시 찾으려고 하는 노력에 저항하는등 30개월전의 믿음을 무색케하는 행동을 취했다.
  • 형평에 맞는 SOFA 개정을(사설)

    한국과 미국 양국이 그동안 전시대적 불평등협정이란 비판을 받아온 주둔군지위협정(SOFA=한·미행정협정)을 개정키로 한 것은 때늦은 감은 있으나 당연한 일로 환영한다. 한·미행정협정의 불평등성은 오랫동안 한국민의 감정을 손상시켜왔을 뿐 아니라 한·미간의 기본관계마저 해치는 요인의 하나로 지적돼왔다.마땅히 시대와 형평에 맞게 개정되지않으면 안될 성질의 것이다.양국은 차제에 어디다 내놔도 부끄럼이 없는 국가간 조약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그것이 곧 한·미간의 오랜 우호관계를 다지고 앞으로의 양국관계발전을 기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개정교섭의 핵심은 불평등성의 시정이다.미군측이 주도적으로 행사해온 미군범죄자에 대한 재판관할권문제와 미군의 공무중 범죄에대해 공무의 범위를 미군측이 판단토록 하고있는 조항들이 대표적인 것들이다.이런 독소조항들이 개정돼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그밖에도 시비의소지를 안고있는 부분들이 적지않다. 배상절차가 빠진 민사청구권 문제나 통관,관세,과세,면세등에서 미군들에 주어지는 특혜적 조항들도 차후 다시 말썽이 없도록 손질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미군시설 추가해제 문제도 꼭 짚어야할 부분이다.지난 6월 열렸던 한·미합동위원회에서 검토됐던 부산을 비롯한 각 지역 미군시설의 추가반환건도 구체적으로 논의돼야 할 것이다.미국이 본토로부터 수입하는 농산물에 대한 검역문제,미군시설에서 배출되는 각종 공해물질 처리문제등 환경문제와 관련,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분야다. 이번 한·미행정협정 개정작업이 성공하느냐 여부는 전적으로 미국측의 성의에 달려있다.미국측도 협정의 문제점을 충분히 알고있으나 우리의 사법제도나 수사관행에 대해 불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이점 우리도 시정을 게을리 말아야 할 것이다.외사경찰의 자질향상을 위한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은 물론 재판권행사에서도 미국측에 빌미를 주는 일이 없도록 과감한 개선작업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 한­미,SOFA 개정 공식합의/공 외무­레이니 대사

    ◎“양국 불평등 문제 개선”/우리측 재판권행사에 초점 한미 양국은 18일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개정작업에 공식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공로명 외무장관은 이날 상오 정부종합청사를 방문한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대사와 양국간 현안인 SOFA 개정원칙에 합의,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에 적절한 외교경로를 통해 교섭을 개시하기로 했다.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91년 개정된 SOFA와 「합의의사록」및 「개정양해사항」등 2개 부속문서가 미군 범법자에 대한 체포 구금 수사에 있어 한국정부의 권리를 훼손하고 재판권 행사를 여전히 제약하고 있는 점에 우선 개정의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밝혔다. 임성준 외무부 미주국장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논의되던 SOFA 개정문제가 공식 외교채널을 통해 협의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임국장은 『교섭채널은 외무부­주한 미국대사관,미 국무부­주미 한국대사관이 될것이며 주한미군 당국 및 우리 관련부처도 참여하게 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교섭방식은 지난 91년 개정 당시 양국SOFA 합동위원회가 각 분과위원회별로 세부협상을 진행해온 방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레이니대사는 공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최근 불평등문제가 제기된 SOFA를 양국에 동등한 차원으로 개선키 위한 교섭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수 있도록 미국정부가 협조할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세계,회교도 인종청소 확대/안보리 철수 요구 거부…1만4천명 추방

    ◎제파시도 포격… 함락 위기/클린턴,유엔주둔군 강화 촉구 【사라예보·제네바 AF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동부 유엔안전지대인 스레브레니차를 점령한 세르비아계는 13일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무시한 채 회교도주민에 대한 인종청소작업을 계속하는 한편 스레브레니차 인근의 또다른 유엔안전지대인 제파에 대한 탱크포격을 시작했다. 세르비아계는 유엔안전지대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비웃듯 이날 정오까지 스레브레니차에 거주하던 회교도 주민 3만여명중 1만4천여명을 버스에 태워 회교정부군 장악지역으로 강제추방했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론 레드몬드 대변인은 스레브레니차에서 추방된 어린이와 노약자등 회교도주민 8천여명이 투즐라의 유엔군 공군기지에 수용돼 있으며 클라다니에도 6천여명이 모여 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또 스레브레니차지역에서 모두 2만3천여명의 주민이 추방된 것으로 합산됐으며 나머지 7천여명은 숲속에 숨어 있거나 세르비아계가 장악한 지역에 고립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UNHCR 대변인 루드 마셜은 『스레브레니차 회교도주민에 대한 인종청소작업은 보스니아내전 사상 최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 관리들은 세르비아계가 이날부터 스레브레니차 남서쪽 15㎞ 지점의 유엔안전지대인 제파의 리비오치마을에 대한 탱크포격을 시작했다고 밝히고 스레브레니차에 대한 공격이 탱크포격으로부터 시작된 점을 지적하면서 조만간 대규모공격이 이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빌리 클라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벨기에 RTBF 라디오방송과의 회견을 통해 세르비아계에 의해 점령된 스레브레니차는 탈환이 불가능한 실지가 됐다고 선언하고 제파 역시 함락위기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 AFP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13일 보스니아 주둔 유엔평화유지군의 임무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보스니아 주둔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부산항등 미군시설 추가반환 모색/한­미 SOFA 합동회의 분석

    ◎민사소송 기간 단축·식물 검역강화논의/관심높은 「형사관할권」은 의제 채택못해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 제1백76차 회의가 28일 하오 외무부 회의실에서 열렸다.이번 회의는 최근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미군의 범죄로 인해 우리사회에 SOFA를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시점에서 열린 양국간의 공식회의여서 관심을 모았다. 이러한 점이 감안돼 이날 회의에 들어가면서 우리측 대표인 임성준 외무부 미주국장은 『주한미군 연루사건이 빈번히 발생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지적한뒤 『한국정부가 SOFA의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주지시켰다.임국장은 또 『이러한 개정이 한미간의 안보동맹 관계를 더욱 강화시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국측 대표인 로널드 아이버슨 주한미군 부사령관은 이해를 표시했다. 이날 회의의 각 분과위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된 주요 내용은 ▲민사소송 신속처리 ▲식물검역 제도화 ▲미군시설 추가 해제 및 지정 ▲새로운 과제 검토등이었다. 민사청구권분과위에서는 주한미군에의해 발생한 대민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제기하는 민사청구 소송의 처리 기일이 너무 길다고 지적,이를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한다는 과제를 새롭게 채택했다. 또 민사청구권에 대한 세부 규정을 정할 수 있도록 보충협정을 체결하는 문제가 제기됐다. 식물검역임시분과위에서는 미군이 본토로부터 수입하는 과일,농산물을 통해 병충해가 유입되는 사례가 최근 빈번히 적발됨에 따라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설적인 식물검역분과위를 설치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또 시설분과위에서는 부산항의 자성대 부두안에 있는 미군시설을 한국업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결정하는등 18개 건의사항을 승인했으며,부산을 비롯한 각 지역의 항만내 미군시설의 추가 반환등 25건을 새로운 과제로 채택했다.시설분과위는 또 대구의 미군부대 내에 적용되는 상수도 할인율을 낮추는등 4개의 건의사항도 수용했다. 그러나 미군 범죄와 관련,논란의 쟁점이 됐던 우리정부의 미군에 대한 형사관할권 예외규정 철폐등 형사관할권 문제는 우리 내부에서는 검토하고 있으나,이날 회의에서는 새로운 의제로 채택되지 않았다. 이날 회의에 우리측에서는 임국장을 비롯한 외무부 관계자와 법무·국방·농림수산부·재정경제원·관세청 당국자가 참석했으며,미국측에서는 아이버슨 부사령관과 각 담당관,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 한·미행협 연내 개정 추진/정부,미에 통보

    ◎「군민관계 분과위」 설치 합의 정부는 28일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를 규정한 한미주둔군협정(SOFA)의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미국측에 공식 통보했다. 이날 외무부 회의실에서 열린 SOFA 합동위원회의에서 우리측 대표인 임성준 외무부 미주국장은 『최근 SOFA의 몇가지 규정이 국내법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면서 『관계부처간의 검토를 마친뒤 하반기중 한국정부의 개정 방향을 미국측에 제시할 것』이라고 미국측에 전달했다. 임국장은 또 『불합리한 SOFA 규정의 개정은 한·미 안보동맹관계를 보다 강화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국측 대표인 로날드 아이버슨 주한미군 부사령관은 『SOFA 개정에 관한 공식 요청은 외교경로를 통해 우리측에 전달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양측은 최근 주한미군 관련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한국민과 주한미군과의 이해를 증진키 위해 「군민관계임시분과위」를 상설화 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또 주한미군의 대민 피해에 따라 제기되는 민사청구 소송절차가 국내의 민사소송 절차보다 평균 2배이상의 처리 기간이 소요된다는 지적에 따라,신속한 처리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 체첸반군,무장해제 합의/대러 협상 서명

    ◎러시아 주둔군 대폭 감축 전제 【그로즈니 로이터 연합】 러시아와 체첸반군은 체첸주둔 러시아군의 부분철수와 체첸 병사들의 무장해제에 합의했다고 양측 협상대표들이 22일 발표했다. 양측 대표단은 21일 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로 체첸공화국 수도 그로즈니에서 열린 협상에서 체첸 반군의 단계적 무장해제와 체첸주둔 러시아군 감축에 관한 계획에 합의한 뒤 의정서에 서명했다. 이같은 합의는 체첸반군이 그동안 무장해제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러시아군의 전면철수를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체첸측의 대폭 양보로 평가되지만 체첸병사들이 이같은 양보안을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이번 합의에 따라 체첸반군이 3단계에 걸쳐 무장을 해제하는 대신 러시아군은 체첸주둔 병력을 단계적으로 대폭 감축하며 양측 병력사이에는 폭 4㎞의 비무장지대가 설치된다.양측은 포로교환에도 합의했다. 또 아니톨리 쿨리코프 체첸주둔 러시아군 사령관은 이번 합의에 따라 러시아가 내무부 및 국방부 소속 각 1개여단으로 구성된 약 6천명의 병력을 체첸지역에 잔류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의정서는 경제문제들과 정치적 사태 해결 등이 포함된 포괄협정이 서명된 이후 발효될 예정이다.
  • 미,유럽주둔군 10만명 유지/아·중동분쟁 해결에 중요/국방부

    ◎5년간 20만 줄여 추가감축 안해 【워싱턴 로이터 연합】 미국은 유럽에 10만명 규모의 주둔병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7일 공개된 미국방부 보고서가 밝혔다. 이 보고서는 『유럽 내의 미군은 지난 89년 이후 20만명 이상이 줄어 현재 10만명 정도가 남아 있으며 이들의 존재는 유럽과 여타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 이해관계에 지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셉 나이 미국방부차관보는 이와 관련 유럽이 미군을 유럽권 외에 배치하는데 있어서 전진기지가 된다며 유럽주둔 미군은 걸프전 이후에만도 보스니아,이라크,소말리아 등 전세계 30개 이상 국가에 배치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유럽과 나토 안보전략」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이른바 「끌어들임과 확대」 전략을 구성하는 일련의 지역 보고서중 하나이다. 이 전략은 러시아와 옛 동구 국가들의 단계적 참여로 강력한 나토를 이룬다는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앞서 이미 발표된 아시아,중동에 대한 보고서에서 미국은 일본과 한국에 10만명의 병력을 계속 주둔시키고 걸프지역에는 2만명의 병력을 신속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한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 우호적 강도(외언내언)

    일본의 한국강점은 1870년 일본정부내에서 대두된 「정한론에서부터 비롯된다.대륙진출의 침략정책을 주장한 「정한론」은 청일·러일전쟁을 거치면서 구체화되었고 1905년 마침내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는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체결로 이어진다.1910년 한일합방 이전 나라의 외교권·자주권을 빼앗기고 일본 통감부 설치를 허용한 을사5조약은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소멸을 의미한다. 1905년 11월16일 일본 칙사 이토(이등박문)는 한국정부 대신들을 그의 숙소에 납치해놓고 조약체결을 강요했다.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음날 덕수궁에서 군신회의를 개최토록 했다.궁궐 안팎은 완전 무장한 일본군이 몇겹으로 둘러싸고 있었으며 서울시내 전역을 철통같이 방비한 일군은 각 성문에 야포와 기관총까지 걸어놓고 있었다. 삼엄한 무력시위 속에 대신회의는 하오 8시까지 계속됐으나 일본의 제의를 거부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이토와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는 폐회후 돌아가는 대신들을 위협,강제로 회의를 열게 한뒤 11월18일 조약을 체결한 것이다.고종황제의 윤허도 받지 않은 채로. 조약이 체결된 4일후 고종은 미국인 헐버트를 미국무장관에게 보내 한국정부의 입장을 전한다.이 밀서에서 고종은 『짐은 총칼의 위협과 강요 아래 체결된 소위 보호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한다.짐은 이에 동의한 적도 없고 금후에도 결코 아니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을사조약 체결이후 이를 반대하는 순국항쟁이 국내외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난 것은 조약체결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을사조약은 불과 90년전의 역사적 사실이다.그런데도 와타나베 전일본 외상은 『한일합방조약은 우호적으로 원만히 체결됐다』고 망언을 늘어놓았다.남의 집에 침입한 강도가 『우호적으로 강도짓을 했다』는 거나 무엇이 다른가.일본 정치지도자와 지식인들의 역사왜곡이 언제 바로잡힐 것인지 한심하다.
  • “한­미 행정협정 개정 추진”/공 외무 외통위 답변

    공로명 외무부장관은 30일 불평등 시비가 일고 있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한미행정협정)과 관련,『정부는 기본적으로 개정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공 장관은 이날 국회 통일외무위원회에 출석,『정부는 관계 부처간 협의 등을 통하여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의 주둔군지위협정과 비교 검토하여 개정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공 장관은 또 『개정교섭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타결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도 있으므로 현재의 협정규정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운용하는 방안도 병행하여 강구해 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 미군범죄 실태와 「한미 행협」 문제점 분석

    ◎미군 범죄/연 2천건 발생 “처벌이 없다”/재판권 행사 평균 2%… 독 53·일은 32%/폭력·절도·성폭행 하고도 오히려 당당/미 요청땐 「전속 관할권」 포기·구속수사도 못해 주한 미군들의 크고 작은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지하철 충무로역에서의 집단 폭행에 이어 20일 춘천 택시승객 폭행,22일 의정부 클럽 여 종업원 성폭행 사건 등이 터지며 미군 범죄에 대한 재판권 행사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도 지난 26일 이홍구 국무총리 주재로 장관 간담회를 갖고 미군 범죄의 재발방지와 범인의 처리 방안 등을 논의했다. ▷실태◁ 78세인 노모를 모시고 국민학교 4학년생 아들과 단칸 셋방에 사는 경기도 송탄시 강병관씨(42·상업)는 요즘 병원비 1천여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병상에서 시름에 잠겨 있다. 그는 지난 1월 21일 새벽 2시 쯤 경기도 오산 미군기지 앞에서 한 미군병사에 봉변을 당하고 차도에 넘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다. 강씨는 집 부근에 사는 백인 병사에게 말을 걸었다가 이를 싸우는 것으로 오해한 흑인 병사 바비올데이씨(23)에게 멱살을 잡혀 차도로 떼밀리며 지나던 차에 머리를 부딪혔다. 대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미군측은 단순한 교통사고라며 치료비 한 푼도 보상하지 않았다.바비올 데이씨를 검찰에 고발했지만 미군 병사는 단순 폭행죄로 입건되는 데 그쳤다. 회사원 윤모씨(25·여·서울 강서구 가양동)는 지난 1월 자신을 수십차례 성폭행한 미 8군 군속 토머스 테일러씨(24)를 강간 및 폭행죄로 경찰에 고발했다. 테일러가 찍은 나체 사진 등이 증거가 돼 그는 지난 2월 강간 및 폭행죄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버젓이 서울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이른바 「한·미행정협정」을 적용받는 그는 형이 확정되기까지 구금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인 윤씨는 혹시 보복이나 당하지 않을까 도리어 걱정하고 있다.한국 경찰이 한 일은 테일러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전부이다. 동두천시에 사는 조모씨(37·상업)는 요즘 자신의 승용차만 보면 짜증이 난다.지난 해 4월 새 차를 구입한지 1주일도 안돼 미군 트럭에 받혀 차체의 반 정도를 고쳐야 했다. 네거리에서 좌회전하던 조씨의 차를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미군 트럭이 받았으나 수차례의 경위조사를 거쳐 미군측으로부터 보상받은 것은 1년이 다 된 지난 3월이었다. 지난 해 주한 미군과 군속,또는 그들의 가족 등이 저지른 형사 범죄는 8백96건이다.93년의 8백2건에 비해 11.7%가 늘었다.그러나 형사입건되지 않은 도로교통법 위반 사건까지 합하면 모두 2천2백여건으로 하루 평균 6건이 넘는다.올 들어서도 지난 4월 말까지는 1백96명이 1백5건의 범죄를 저질렀다. 지난 해 미군 범죄의 죄목은 폭력,재물손괴,절도,강간 등의 순이다.범인은 군인이 81%이며 군속 8∼9%,장병 가족 6%의 순이다. ▷문제점◁ 범죄 그 자체보다 그 뒷처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이 큰 문제이다.민사 사건의 경우 철저하게 보상하고,형사 사건의 경우 응분의 처벌을 내려야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의 사법권이 범행을 저지른 미군에게는 제대로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그 이유는 지난 67년에 체결된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 때문이다. 미군들의 범죄에 대한 사법당국의 재판권 행사 비율은 지난 90년 0.9%에서 지난 해 2.5%로 다소 높아졌지만 평균 2%선을 밑돈다.미군이 주둔하는 독일의 53%,일본의 32%,필리핀의 21%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이른바 「한·미 행정협정」은 지난 67년 체결된 이래 91년 한차례 개정됐다. 본문,합의 의사록,양해사항으로 구성된 협정의 본문 첫 장에는 「양 국가간의 긴밀한 상호 이익의 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라고 되어 있다.그러나 일부 조항이 한국의 국가 형벌권을 침해하는 불평등 협정이다. 대표적인 불평등 조항은 합의 의사록의 22조 2항(한국의 전속 관할권 행사),본문의 5항(범죄 혐의자 수사 및 구속),7항(징역형 복역) 등이다.의사록 22조 2항은 미군의 행정벌이나 징계가 효과적이므로 미군 당국이 요청하면 한국의 전속 재판권을 포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본문 5항은 피의자가 미군 관할하에 있으면 재판절차가 끝날 때까지 미군당국이 구금한다고 되어 있고 7항은 미국측이 한국 법원에서 징역형을 받고 복역 중인 미군의 인도를 요구하면 한국측이 「호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미군의 공무상 범죄는 우리 재판부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합의 의사록 22조3항은 공무냐 아니냐의 판단을 미군이 하도록 돼 있다.따라서 미국측이 공무라고 판단하면 미군이 재판권을 갖게 되는 셈이다. 결국 미군 범죄로 피해를 입는 우리 국민은 육체적,재산적 피해는 물론 민족적 자부심까지 무너지는 참담한 느낌을 받게 된다. ▷대책◁ 미군 범죄의 대부분은 양국간의 가치관 차이,언어 장벽 때문에 빚어진다.한·미 두 나라 국민은 이같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대를 돈독히 할 수 있는 문화·예술 행사를 마련하는 등 서로 이해 증진에 힘써야 한다. 또 양국 관계도 과거 전시상태를 전제로 한 특수 관계나 일방적인 원조관계에서 벗어나 평등한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행정 협정의 불평등 조항을 바로잡아야 한다.이 협정은 체결된지 23년만인 지난 91년 첫 개정 시도가 있었다.당시 미국은 한국 사법제도의 후진성을 들어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는데 소극적이었다. ◎“죄질나쁜 사건 재판권 적극행사”/한미유대 손상없게 냉철히 대응할때/「행정협정」 문제조항 개정 적극 뒷바침/정동기 법무부 검찰4과장(전문가진단) 최근 들어 일련의 미군관련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에 물의를 야기하고 있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이 사건들을 계기로 미군인범죄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면서 한미행정협정의 개정논의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현재 이러한 논의의 주류인 미군인범죄가 빈발하고 있는 것은 미군인범죄에 대한 형사재판권이 제대로 행사되지 못하고 있는데 기인하는 것이며,이는 근본적으로 한미행정협정에 불평등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일련의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경찰 등 우리 수사당국에서 사건경위나 피해상황 등을 중심으로 철저한 수사를 통하여 신속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있다.수사결과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 재판권행사 여부를 결정할 것이고,재판권행사 여부는 사안에 따른 구체적 타당성을 잃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될것이다.검찰과 경찰의 수사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진행되고 있으므로 성급하고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자세로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재판권 행사가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미군인에 대한 재판권행사 비율은 91년에 1.7%였던 것이 금년에는 4월말 현재 4.4%로 크게 증가하였다.통계수치만 보면 일견 재판권행사가 극히 저조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그러나 이는 미군인범죄의 약65%가 경미한 교통사고이고 나머지도 단순폭행과 같은 경미한 범죄가 대부분이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범하였다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라 공소권이 없거나 무혐의 또는 기소유예 등으로 불기소처분될 사건들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사건을 제외하면 중요한 사건에 대하여는 거의 대부분 재판권을 행사하고 있어 행사율이 결코 낮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행협대상자 중 미군인 이외의 군속이나 초청계약자에 대하여는 우리나라가 전적으로 재판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포함한다면 행협대상자의 약24%에 대하여 재판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참고로 필자가 입수한 통계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미군인범죄에 대한 재판권행사율이 0.1%,NATO의 경우 5.5%에 지나지 않아 외국에 비해서도 그 행사율이 결코 낮다고 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도 법무부는 재판권 행사여부를 신중히 검토하여 강력범죄는 물론 죄질이 나쁜 사건이나 국민의 법감정에 반하는 사건에 대하여는 적극적으로 재판권을 행사해 나갈 것이다. 한편 한미행정협정은 1967년에 발효되어 1991년에 합의양해사항이 일부 개정된 바 있으나,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판권포기에 관한 합의의사록이나 구금인도와 관련된 규정 등 일부조항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이 점에 관하여는 정부내 관계부처간 협의를 통하여 한미행정협정의 운영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바 있고,국민의 법감정과 주한미군의 주둔환경을 고려하여 적절한 대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일련의 사건들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기는 하나,주로 20세 전후의 젊은 미군인들과 관련하여발생한 우발적인 사건들로 인하여 국민 감정이 불필요하게 자극되어 전통적인 한미간의 유대관계가 손상되는 결과를 초래하여서는 아니될 것으로 생각된다.지금은 이러한 사건들을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대하는 성숙된 모습이 필요한 때이다.
  • 미군범죄 한·미 공동조사/정부,한미행협 단계적 개정 추진

    ◎“수사권 전면인수엔 기술적 어려움”/22개경찰서,외사범 기동처리반 운영 정부는 26일 이홍구 국무총리 주재로 주한미군범죄와 관련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미군범죄방지와 사건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 용산·평택·의정부·동두천 등 미군주둔지역을 관할하는 전국 22개 경찰서에 외사범죄기동처리반을 운영하고 미군당국과의 합동순찰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시·도지사및 시장·군수로하여금 관할지역의 미군부대장과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유사한 사건의 발생을 예방하고 사건발생때 신속한 조치를 취하도록 할 방침이다. 회의에서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주한미군범죄행위와 관련,주한미군당국과 긴밀한 협조 아래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명백하게 규명하고 결과에 따라 합당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또 「한·미 주둔군지위에 관한 협정(SOFA)」규정의 일부문제점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 전문가들의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보완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용태 내무·안우만 법무·이양호 국방부장관,이시영외무·이경재 공보처차관 등이 참석했다. 한편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이날 SOFA 개정문제와 관련,『우선 미군범죄자에 대해 한국정부와 유엔군사령부가 공동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단계적으로 개정해 나갈 뜻을 시사했다. 이 당국자는 『우리의 유치시설이나 수사관의 외국어구사능력을 감안할 때 당장 미군범죄자에 대한 전면적 수사권을 넘겨받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서 『따라서 이러한 조건이 갖춰지는 것을 봐가면서 행정협정을 고쳐나가는 게 바람직스럽다』고 말했다.
  • 「해외미군 경제적 운용」 종합처방/미 국방부 「군개편보고서」 의미

    ◎대우방 「방위비 증액요구」 신호 24일 제시된 미군개편 연구보고서는 냉전 이후 시대의 미국군대를 경제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종합처방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보고서를 낸 「미군역할기능위원회」는 비정부위원회로 전직 합참의장인 콜린 파월,윌리엄 크로를 비롯한 11명의 민간인및 퇴역장성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디까지나 정책자문이나 정책건의의 성격을 띠고 있다.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앞으로 90일간 이 보고서를 검토한 뒤 국방부의 견해를 의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이번 보고서의 핵심은 ▲비전투지원업무를 과감히 민간에 이양하고 ▲국방부산하 과잉인력을 통폐합하며 ▲약 5만명의 국가방위군을 없애는 것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육·해·공군,해병대간 전투기능의 통합 문제는 거의 제기하지 않았다.특히 육·해·공군,해병대가 현재와 같이 각기 독자적 공군력을 유지하는 것도 그대로 인정되었고 해외주둔군의 역할도 계속 강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만 각군별 합동작전이 있을 때 국방부가 기획단계에서부터 통합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지역군구 사령부에 대해 각종 지원을 강화해줌으로써 「경제군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세계 지도적 위치는 계속 확보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번 보고서 중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해외주둔 미군사령관의 작전권 강화를 강조한 대목이다. 이를 위해 우방국과의 연합작전을 활성화하고 해당 사령관의 지역적 책임을 제고하며 연합작전 수행을 위한 통합적인 계획의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우방국과의 연합작전 활성화및 준비태세의 강조를 「군의 경제적 운용」과 연계해 보면 한국과 같은 미군주둔국에 더 많은 방위비를 요구하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진다. 또 냉전 이후의 안보환경 변화에 따라 정보전 수행능력 강화,공군작전력 제고,그리고 평화유지활동의 활성화를 강조하는 것도 미국의 국방비 삭감과 연결되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어디까지나 정책건의서인 만큼 이것이 최종 채택되기까지는 상당한 토론과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미국은 아시아와 공생하는법 배워라/앨런토넬슨 미경제전략연구소연구원

    미국은 탈냉전의 상황에서 아시아와 공생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적 힘에 의존해야 한다고 앨런 토넬슨 미국 경제전략연구소(ESI)연구원이 최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에 기고한 글에서 주장했다.다음은 기고문 내용이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은 크게 분열돼 있다.앞으로 클린턴 대통령이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보호무역주의적이고 군사적으로 위험한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의 무역장벽을 제거하여야한다는 미국 관리들의 주장은 제각각이다.그렇지만 지금까지 미국정책은 현상유지론자들의 주도로 진행돼 왔다.거시경제학적 정책입안자들은 강력한 무역정책이 금융시장과 달러화를 위축시킬까봐 두려워하고 안보담당자들은 50년간의 미·아시아군사동맹을 유지하는 것만이 아시아지역에 있어 미국경제이익을 성장시키기 위한 핵심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국방부가 지난 3월 펴낸 「동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국전략」이라는 보고서는 이들의입장을 확연히 드러내주고 있다.보고서에 따르면 미국동맹체제와 미군의 아·태지역 주둔은 2가지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2가지 역할은 ▲동아시아·태평양지역의 주요 비공산국가를 보호하고 특히 일본을 평화상태로 유지함으로써 미국을 위한 아시아 경제파트너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상승시키게 하며 ▲미국이 무역과 다른 경제적 협상을 할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따라서 부시대통령이 한때 신중하게 생각한 이 지역 주둔군 감축안은 중단돼야 하며 일본등 여타국가들과 무역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에 대해서도 『무역마찰이 우리의 안전을 훼손시키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냉전시대에 합당한 충고다.탈냉전세계에서 이같은 충고를 따르는 것은 이미 폐물이 된 방법으로 혼란스럽고 위험한 목적을 좇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볼때 아시아지역에서의 미국군사역할이 워싱턴측에 중요한 협상수단을 제공한 적이 없다.수십년간 워싱턴은 일본과 인접국가들의보호무역주의를 견뎌왔다. 최근 국방부의 무역마찰에 대한 경고는 똑같은 논리가 오늘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동안의 결과란 아시아국에 대한 미국의 상품무역적자는 1천1백50억달러이며 투자와 기술은 한쪽으로만 흘러갔다는 것이다.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경제회담에서 군사력 카드를 쓰려해도 아시아의 미국군사역할이 이제는 가치를 상실하고 있는 점이다.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는 여전히 주둔미군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소련멸망이후 미군의 임무가 줄어들었다고 여기고 있다. 국방부 보고서의 결의만으로는 특히 「안정」이라는 모호한 목적에 군사적 전략을 중심에 둘수 없다.안정을 생활과 예산측면에서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안정이 군사적 우선권으로 해석될 수 있는가.미 관리층이 이에대한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하면 그들은 위협이 발생할때 필요한 국내 정치적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전략적 지도력도 제대로 발휘할수 없을 것이다.이같은 전략부족 때문에 미국은 남사군도에서 중국의 습격에 수동적으로 대응했으며 북한에 대한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따라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자국 군대에 투자를 집중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아시아 안정은 여전히 미국에는 중요한 문제이며 적당한 군사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그러나 팽창주의를 꿈꾸던 소련이 없는 새로운 탈냉전의 상황에서 미국은 아시아와 함께 지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현상유지론자들의 입장과 달리 이같은 목적을 얻기 위해서는 안전동맹이 아니라 미국의 경제적 힘에 의존해야 한다.아시아인들은 미국의 군사적 능력에 대해서는 회의할지 모르지만 미국의 자본,기술,시장은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이같은 미국의 자산에 아시아의 접근을 조절하는 것이 미국의 아시아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미국이 절대적인 경제적 힘을 높이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낮은 투자율과 막대한 예산적자를 가진 나라는 쉽게 아시아의 주요 자본및 기술 상대자로 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시대에 뒤떨어진 동맹체제에 집착하는 초강국은 결국 강력한 경제적 라이벌들을 도와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클린턴 행정부는 아시아에서 이 어려운 선택을 피하는 것이 우선은 편안하다고 여길지 모른다.그러나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적자가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미국의 경제성장과 직업창조는 더뎌지고 달러화는 약화되며 클린턴의 재선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 48년 UN임시위원단 활동(새로쓰는 한국현대사:17)

    ◎소군이 입북막아 남북한 총선거 계획 무산/「단독선거」 이승만 적극환영… 김구·김규식은 반대/단정수립 5·10선거 감시 1948년 1월8일 군용 비행장인 김포공항에 비행기 한대가 착륙했다.이윽고 유엔 한국임시위원단(UNTCOK)위원인 KPS 메논 인도대표를 비롯한 오스트레일리아·시리아등 3개국 대표가 트랩을 내려 한국땅에 첫발을 디뎠다.위원단 일행은 서울로 들어오는 동안 길가에 늘어선 25만∼30만명의 한국인들에게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가능하면 3월31일까지 남북한 전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국회나 중앙정부를 수립하도록」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유엔한국임시위원단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대표환영 시민대회 열려 이어 캐나다·프랑스·필리핀·엘살바도르 대표가 29일까지 모두 한국에 왔다.중국대표는 호세택 서울총영사가 그 임무를 맡았다.당초 유엔총회가 선정한 위원국에는 우크라이나사회주의공화국이 포함됐으나 소연방국인 우크라이나는 참여를 거부했다. 서울 수도호텔에 숙소를,덕수궁에 사무실을 정한 위원단은 12일 첫회의를 열어 메논을 의장으로 선출했다.이틀 뒤 이들을 환영하는 시민대회가 서울운동장에서 열렸고 밤에는 덕수궁에서 리셉션이 개최됐다.극진한 환대 분위기 속에서 위원단 활동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당시 메논 의장은 『우리 위원단은 38선을 인정하지 않으며 한국은 결코 분단돼서는 안될 나라』라고 강조하고 『미·소의 양 제도를 체험한 한국인은 그 장점만을 살려 한국적인 정치체제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자신만만하게 피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난관은 곧 닥쳤다.위원단은 1월30일 미군정 연락장교를 평양에 보내 소련군정측에 입북(입북)을 신청했다.이에 대해 소련군사령관 참모장인 샤닌소장은 『우리는 위원단을 인정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소련정부의 입장은 유엔총회 토의과정에서 분명히 밝혔으므로 위원단 입북을 주둔군으로서는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임시위원단은 입북에 실패하자 유엔 사무총장에게 소련측의 비협조를 제소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소련정부의 「부정적 입장」뿐이었다.위원단은북한지역에 들어갈 수 없음을 2월6일 공식발표한다. ○“식민지화 음모” 매도 이에 앞서 김일성은 유엔임시위원단을 극렬하게 비난함으로써 애당초 위원단 입북을 허용치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1월12일 발표한 이 성명에서 김일성은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미 제국주의자들의 심부름꾼으로 왔다』고 매도하고 『한덩어리로 뭉쳐 열렬히 투쟁하자』고 선동한 바 있다. 소련의 거부로 「남북한 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처음 계획이 틀어지자 위원단은 남한에서만이라도 단독선거를 실시해야 하는지를 놓고 미군정,남쪽의 정치지도자들과 연속회담을 벌였다.우파들은 대부분 적극 환영하며 즉시 선거를 실시하라고 요구했다.그러나 우파인 김구의 한국독립당과 좌파세력,김규식을 비롯한 중도파는 통일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맹렬히 반대했다.미군정은 물론 단독선거 실시에 찬성했다. 이를 계기로 이승만과 김구·김규식은 정치적으로 완전결별한다.결과는 물론 실패로 돌아갔지만 김구와 김규식은 남북협상에 정치적 운명을 걸었다.해방공간에 돌아온 직후부터 미군정과 마찰을 빚어가면서 공산주의를 통렬히 비난한 이승만은 우파진영을 이끌고 단선 참가로 나아가는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위원단 내부에서도 「남한 단독선거」가 유엔 결의에 부합되는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결국 위원단은 단독선거 실시에 대한 결정을 유엔 소총회에 넘겼다.2월19일 열린 소총회에서 미국대표는 『예견하지 못한 사태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위원단은 접촉이 가능한 지역(남한)에서만이라도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한국인 가운데 3분의2가 선거에 참여해 중앙정부를 성립하면 북한도 이에 참여하기 위해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소총회 투표에서는 미국의 입장이 찬성 31,반대 2,기권 11로 채택됐다.반대표를 던진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는 『남한에 수립되는 정부는 북한과 대립하게 될 위험성이 짙다』고 지적했다.그는 만약 북한이 한국정부에 위협을 가하게 되면 유엔은 스스로 수립한 한국정부에 대해 적극 원조하든가,모든 책임을 포기하는 난처한 처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소련은 이 회의에 아예 불참했다. 유엔 소총회에서 단독선거의 합법성을 인정하자 한국임시위원단은 선거준비에 박차를 가한다.2월28일 위원단은 『접촉이 가능한 지역에서 늦어도 5월10일까지는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그러나 임시위원단에게는 선거를 주관할만한 능력이 현실적으로 없었으며 스스로도 선거를 감시하고 그 결과를 총회에 보고하는 정도를 가능한 일로 받아들였다.이는 곧 선거를 관리하는 주체가 미군정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미군정은 위원단 발표에 이어 『총선을 5월10일 실시하겠다』고 공표했고 위원단은 이를 추인했다.선거는 1947년 8월 과도입법의원이 통과시킨 선거법에 따라 시행하기로 했다.위원단은 선거기간동안 30명의 인원으로 전국을 돌며 선거과정을 감시했다.「5·10선거」가 끝나고 위원단은 6월25일 선거결과를 평가하는 회의를 열었다.그들은 『1945년 5월10일의 선거결과는 한국민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주민들이 자유의사를 합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렸다. ○북도 서둘러 단정 구성 위원단은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그해 9월 파리에서 열린 총회에 보고했다.회기 막바지인 12월12일 총회는 보고서를 승인,대한민국의 합법성을 인정했다.이와 함께 한국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임시위원단의 업무를 대신 수행할 「유엔 한국위원단」을 설치한다고 결정했다.이로써 유엔 결의에 따라 남한의 단독선거를 감시·평가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활동은 1년여만에 막을 내렸다. 한편 북한은 임시위원단 입국후 단독정부 구성을 서둘렀다.1948년 5월1일 조선인민위원회는 「헌법」을 발표하고 8월25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치렀다.이어 9월7일 북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스스로 전한국을 대표하는 정부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한국내 활동을 개시한 뒤 정국은 「유엔 감시아래 남한 단독선거­남한 단정 수립­이에 대응하는 북한정권 등장」이라는 예정된 수순을 밟아나갔다.이는 한반도를 점령한 미·소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일찍부터 예견된 이데올로기적 정치구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북,인민정부 세우려 민의조작/「유엔한위문서」가 밝힌 단선저지 움직임/“남한단독선거 반대 349만 시위” 주장/“「소련식 헌법」추천서 4만건 접수” 선전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한국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서자 북한정권은 이를 저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1948년 미군 정보부대가 작성,기밀문서로 보관돼 오다 지난 85년 비밀해제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관계문서」는 당시 북한 내에서 벌어진 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북한당국의 의도는 임시위원단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고 남한 단독선거 실시를 막자는 것이었다.이에 따라 한반도 전역에 소련식 인민정부를 수립하고자 조작된 민의를 총동원했다.평양방송이 3월 한달동안 대남방송한 내용을 보면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해 이북에서 3백49만9천4백63명이 시위등 항거에 나섰고 ▲항의편지가 1만6천3백57통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달성하는 유일한 길은 전국에 걸쳐 소련식 인민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주장 아래 소련것을 본떠 마련한 「헌법」에 대한 추천서가 4만건이나 접수됐다고 선전했다.이밖에 인민군이 「임시위원단 반대」행진을 벌였다거나,남한에서 단독선거를 반대한다는 단체 그리고 북한에서 「헌법」을 토의·찬성했다는 집회 명칭을 쉴새없이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서 끝에 붙은 미군 971방첩대(CIC)보고서는 이같은 선전들이 북한주민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크게 다르다고 보았다.이 보고서는 『북한 사람 대부분은 임시위원단에게 큰 기대를 가졌다.이 기대는 비록 위원단의 입북이 거절된 뒤 많이 사라져가긴 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아직도 유엔임시위원단 또는 남한 단독정부가 한국 전체를 통일하리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 보스니아철군 본격 논의/주둔군 피살여파… 불 휴전연장 촉구

    【사라예보 로이터 연합】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보스니아 주둔 유엔평화유지군의 철수를 대비한 지원계획의 입안을 마무리하고 있는 단계에서 발생한 유엔군소속 프랑스군 피살사건으로 유엔군의 철수계획이 다시 본격 논의될 것이라고 유엔 관계자들이 16일 말했다. 유엔군 대변인인 개리 카워드 중령은 지난 14일과 15일 잇따라 발생한 유엔군 소속 프랑스군 병사 피살사건과 관련,『유엔군 철수에 대비한 계획의 입안이 마무리되고 있으며 이것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엔군 소속 프랑스군의 철수 전망에 대해,보스니아 주둔 유엔군중 최대규모인 프랑스군이 철수할 경우,유엔평화유지군 임무가 치명적이지는 않더라도 큰 타격을 받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크 랑사드 프랑스 참모총장은 유엔군의 활동이 존중되지 않고는 5월1일 종료예정인 휴전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프랑스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 모스크바 3상회의(새로쓰는 한국현대사:8)

    ◎미,「신탁통치」 제의… 좌·우 극렬대립 초래/처음엔 온국민 “반탁”… 며칠새 좌익은 “보탁” 돌변/해방정국 혼란의 늪에… 「남북분단 고착」 빌미로/“한국문화·생활수준 높다” 미 군정서도 신탁 반대 광복의 기쁨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19 45년 겨울 모스크바에서 불어온 한줄기 삭풍은 민족의 가슴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미국 소련 영국 중국 등 4개국이 한반도를 최장 5년 동안 신탁통치한다」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은 비보 그것이었다. ○미 43년초 탁치 첫언급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은 분노로 들끓었다.새 국가의 체제를 놓고 경쟁하던 우익·좌익 양대 세력은 반탁,찬탁으로 갈라서 서로가 적대관계 노선을 치달았다.또 한민족의 신탁통치 반대투쟁 과정을 지켜본 미·소 양국은 「한반도 독차지」의 야욕을 포기하고 자국 세력권에 각각 단독정부를 세우는 쪽으로 선회해버린다.결국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몰고온 「신탁통치 바람」은 남북분단을 고착하는 빌미로 작용했을 뿐이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은 이처럼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확한 내용은 물론 어느 나라가 신탁통치 계획을 주도했는지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한반도를 신탁통치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이를 실현시키려고 애쓴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인 1943년 초 이같은 구상을 처음 드러냈다.그해 3월27일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영국 외상 이든과 만난 자리에서 전후 한국과 인도차이나에 신탁통치를 실시할 뜻을 비쳤다.이어 11월 열린 테헤란회담에서 루즈벨트는 소련의 스탈린에게도 같은 생각을 슬쩍 흘렸다. ○루스벨트 구상 흘려 이후 미국의 계획은 갈수록 구체화됐다.43년 12월 카이로회담에서는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독립시킨다는 표현으로 나타났다.그리고 얄타·포츠담회담에서는 더욱 은밀하게 추진된다.루즈벨트가 얄타회담에서 필리핀을 예로 들며 한국에서도 20∼30년간의 훈련기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에 스탈린은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고 대답하기에 이른다. 전쟁이 끝나 38선을 경계로 남북에 미·소 양군이 진주하고 군정이시작되면서 「신탁통치」건은 얼핏 사라지는 듯 했다.그러나 10월1일 미국 삼성조정위원회는 맥아더 장군에게 「미군정에 이어 효과적인 4국 신탁통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섭을 시작하라」는 통고를 보낸다.이어 미국이 신탁통치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 고위관리의 발언으로 명확하게 표출됐다.국무성 극동국장 J C 빈센트는 그달 중순 외교정책협의회 포럼에서 『한국에는 당장 자치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우선 신탁관리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내용은 즉시 한국 언론에 보도돼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매일신문(10월20일자)은 논평에서 신탁통치 기도를 『그것은 식민지화이며,다름아닌 쇠사슬』이라고 비난했다.좌우익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우익인 한민당은 미군정과의 협력을 중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좌익인 인민공화국도 『신탁통치를 강제 결의한다면 한국인은 목숨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거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식민지의 연장” 비난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국립문서보관소(WNRC)에서 최근 찾아낸 미 외교문서와 「신탁통치에 관한 보고서」 등에 따르면 주한 미군정도 사실상 신탁통치안을 반대했다.하지의 정치고문 랭던은 11월20일 맥아더 연합군사령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해방된 한국을 한달 동안 관찰한 경험에 미루어 신탁통치는 불가능하므로 철회해야 한다』고 충고했다.그 까닭을 『한국은 일제치하를 제외하면 남다른 역사를 산 민족이고,문자해득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문화와 생활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하지도 이 무렵 합동참모본부에 보낸 보고서 「한국의 상황」에서 『신탁통치가 지금 또는 장차 적용된다면 한국인들은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우익지 “소련서 제안” 이런 상황속에서 12월16일 소련 수도 모스크바에는 미국의 번스 국무장관,소련의 몰로토프 외상,영국의 베빈 외상 등 3명이 회동했다.얄타회담의 후속으로 마련된 이 모임에서는 한국 말고도 유럽·아시아지역의 여러국가들에 대한 처리방안이 논의됐다. 삼상회의 마지막날인 27일 「한국에 관한 결정」이국내에 보도됐다.우익지의 대표격인 D신문은 27일자에서 「워싱턴 25일발 합동 지급보」란 설명을 붙여 그 내용을 전했다.『소련은 신탁통치 주장,소련의 구실은 분할 점령,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란 제목의 기사는 벌집을 쑤셔놓은듯 파급이 컸다.미국의 「성조지」와 KPP통신도 이날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결국 이같은 첫보도는 한국민에게 ▲「모스크바 결정」의 주내용은 신탁통치 실시이고 ▲이를 주장,관철시킨 쪽은 소련이라는 인상을 깊이 각인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이 회담에서 미국은 4대국에 의한 신탁통치를 5년 동안 실시하되 10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제의했다.반면 소련은 한국의 정당·사회단체와 협의해 임시정부를 수립한 다음 4개국이 원조하자는 안을 내세웠던 것이다. 「한국에 관한 결정」은 미·소 양국안을 절충한 형태로 내려졌다.4개항의 요지는 ①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 ②준비모임으로 미소공동위원회 구성 ③5년 이내의 신탁통치 실시 ④2주 내 남북 주둔군사령부 대표자회의 개최 등으로 돼 있다.따라서 절차상 예비기구 설치를 규정한 조항을 빼놓고 본 주요내용은 「임시정부 수립」과 「5년 이내 신탁통치 실시」이다.특히 「임시정부 수립」에 우선 목표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공산주의 음모」 오해 당시 일반적인 국민감정은 「어떤 형태로든 외국 지배가 연장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백성의 분노는 당연히 왼쪽을 겨냥했다.더욱이 처음 반탁에 동참했던 좌익세력이 며칠새 찬탁으로 입장이 돌변하면서 「신탁통치 기도는 공산주의의 음모」라는 시각이 자리를 굳혔다.그러나 사실은 곧바로 드러났다.46년 1월25일 소련 타스통신은 『신탁통치를 제안한 쪽은 미국』이라며 미국안을 공개했다. 미국이 신탁통치를 먼저 제의했다는 증거는,서울신문사 특별취재반이 역시 WNRC에서 입수한 「번스 국무장관이 주한미군 정치고문 베닝호프에게 보낸 전문(46년 1월26일)」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이 전문은 「타스통신 보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를 묻는 베닝호프에게 보낸 답신으로,번즈 장관은 『그 내용이 맞다』고 시인한 뒤 『하지 장군이 적절하게 판단해 처리하도록』지시했다. 하지만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의 핵심내용이 무엇인지,누가 신탁통치를 획책했는지가 새로 밝혀졌다고 해서 대세가 달라지지는 않았다.반탁·찬탁 투쟁을 통해 이미 전면전에 들어간 좌우익 세력은 상대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이에 따른 좌우익 충돌은 해방정국을 더욱 깊은 늪으로 빠뜨렸다. ◎한·소 신탁통치 결정 속셈/자기세력권 확보에 유리 판단/한국독립과는 무관… 냉전체제 대비 노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한국에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미국·소련 양국의 속셈은 무엇일까.신탁통치 구상이 처음 나와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결정되기까지 양국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미국은 전후 세계 질서 재편의 한 방안으로 한반도를 비롯한 여러 식민지 국가들을 신탁통치령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미국의 의도는 명확하다.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측을 주도한 미국은 전후세계가 자국 중심으로 개편되기를 원했다.다른 나라보다 보유 식민지가 적었던 미국은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패전국은 물론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은 영국·프랑스의 식민지들을 「민족 독립」의 명분으로 풀어주고자 했다.이는 실질적으로는 해당국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독립한 국가들을 자연스럽게 자국 세력권으로 유도하는 방안이었다.또 당시 이미 싹트고 있던 냉전체제에 대한 대비이기도 했다. 한국에 「4국 신탁통치」가 실시되면 미국은 영국·중국과 손잡고 소련을 견제함으로써 한국을 미국 세력권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같은 이유로 소련은 처음 신탁통치안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그러나 「8·15」 후 북쪽에 진주한 소련은 신탁통치를 하더라도 한반도를 공산주의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나름대로 갖게 됐다.북쪽은 물론이고 남쪽에도 좌익세력이 만만치 않아 결국 대세를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소 양국의 신탁통치 결정은 애당초 한국에 자주독립국가를 세운다는 것과는 상관 없었다.한반도에 들어선 정부를 자국 세력권으로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고 그 전략으로서 신탁통치가 양국의 입맛에 들어맞았을 뿐이었다.
  • 중,홍콩접수기구 설립/군사위 직속으로 장진 부주석 지휘

    【홍콩 연합】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위원장 강택민 주석)는 97년 7월1일 홍콩을 접수하기 위해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진주하기 시작하는 6월30일을 따서 군고위 책임자들로 구성된 「6·30판공실」을 설립했다고 홍콩연합보가 6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 기구는 장진 당중앙군사위 부주석(대장) 지도하에 서혜자 부총참모장(대장)이 책임을 맡고 있으며 ▲당중앙군사위에 직속되고 광주군구와 남해함대가 후방지원하는 홍콩주둔군을 구성하고 ▲해외주둔 미군과 영국군의 규칙들도 참고해 홍콩주둔군의 규칙들을 제정하는 임무를 현재 수행중이라고 이 신문은 말했다.
  • 이,요르단 점령지 철군 개시/평화협정안 이행

    ◎오늘 1단계추진… 2월중 완료 【카이로 연합】 요르단점령 이스라엘군의 철수가 30일에 시작된다고 이집트의 MENA통신이 29일 요르단정보국 부국장 타흐신 샤르담소장을 인용,보도했다. 이스라엘은 1단계로 이날 북부 알 바푸라로부터 철군하고 이어 2단계로 오는 2월9일부터 남부 조파르주둔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샤르담소장은 밝히고 이로써 요르단은 이스라엘 점령지역을 모두 수복하게 된다고 말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샤르담소장은 또 양국간에는 비무장지대가 없게 될 것이고 국경선을 따라 외국감시단도 주둔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이 통신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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