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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외치다] ‘경비원 분신 아파트’ 김인준씨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외치다] ‘경비원 분신 아파트’ 김인준씨

    “아직은 끝난 게 아닙니다. 고용 승계를 한다고 했지만 새 업체가 꼬투리를 잡아 내치면 당할 수밖에 없어요.” 김인준(61)씨에게 2014년은 돌아보기도 싫은 한 해였다. 그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S아파트의 경비원이다. 지난해 11월 경비원 이모(당시 53)씨가 입주민의 비인격적인 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분신해 숨진 곳이다. 2007년 1월부터 S아파트 경비 일을 시작한 김씨는 이씨를 잘 몰랐다고 했다. 7일 아파트 초소에서 만난 김씨는 “A, B조가 24시간씩 교대로 일하는데 나는 A조, 그분은 B조라서 엇갈렸다”면서 “오가며 얼굴만 한두번 봤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근로복지공단은 “업무 중 입주민과의 심한 갈등과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 상태가 악화돼 정상적인 인식 능력을 감소시켜 자해성 분신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씨의 업무상 사망을 인정했다. 김씨는 “늦게나마 산업재해가 인정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S아파트 경비원노조(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소속) 임시 대표를 맡아 이씨의 장례를 치렀다. 생애 처음 집회에서 마이크를 들었고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그는 “경비원에 대해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씨의 죽음 이후 입주자대표회의는 용역업체 교체와 경비원 전원 해고를 통보했다. 파업이 예고되고 긴장이 고조됐다. 하지만 노조 측이 “일부 입주민 문제를 아파트 전체의 문제로 비추게 해 미안하다”는 사과문을 입주자대표회의에 보내고, 주민들도 마음을 누그러뜨리면서 사태는 진정됐다. 고용 승계와 함께 ‘60세 정년’(이후 1년간 촉탁 고용) 등의 합의안이 도출됐다.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와 고용 불안 문제는 S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감시·단속직 노동자에 대해서도 올해부터 최저임금을 100% 적용하기로 하면서 지난해 말 대량 해고 사태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12년 월급이 최저임금의 80%에서 90%로 오르면서 전체 아파트 경비원의 10% 이상이 해고됐다. 김씨는 “최저임금의 100%가 적용된다고 하지만 ‘무급 휴게시간’을 늘려 버리면 소용없다”며 “고용이 승계된 다른 아파트 경비원들도 여전히 ‘언제 내쳐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김씨는 입주민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8년 동안 드러내지 않고 마음 써 주는 주민도 적지 않다”며 “새해에는 해묵은 갈등을 털어내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김씨는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아파트로 들어오는 외부 차량을 확인하고 행인을 안내하는 일까지 모두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초소 문이 열리며 중년의 주민 한 사람이 불쑥 들어왔다. “아저씨, 이것 좀 잠깐 맡겨 놓고 갈 수 있어요?” “그럼요. 잊지 말고 가져가세요.” 김씨는 속 좋아 보이는 너털웃음과 함께 비닐봉지를 받아 들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농성… 본사 무단 점거한 222명 연행

    50일 가까이 파업 중인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점거농성을 하다 경찰에 대거 연행됐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조합원 600여명은 6일 오전 9시쯤 건물 4층과 로비에서 사측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경찰은 낮 12시쯤 4층을 점거한 조합원 222명을 집단 건조물 침입 등의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로 연행, 서울시내 23개 경찰서에 분산해 조사했다. 로비에서 농성하다 사측이 노조 측과의 면담을 결정한 이후 자진 해산한 400여명에 대해서는 추후 형사 처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들은 SK브로드밴드의 협력업체에 고용된 인터넷·IPTV 설치기사들로 다단계 하도급 구조 근절과 고용 안정,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11월 20일부터 48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노조 측은 이날 면담에서 원청인 SK브로드밴드와 90여곳의 협력업체, 노조 대표가 참여하는 3자 협의체 구성 등을 제안했지만 사측은 “이른 시일 안에 근로조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협의체 구성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단독]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외치다] 씨앤앰 해고노동자 강성덕씨

    [단독]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외치다] 씨앤앰 해고노동자 강성덕씨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땅 위에서 새해를 맞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전화 통화에서 “세밑에 마음이 흔들릴까 봐 성탄절도 일부러 다른 날과 똑같이 보냈다”던 그다. 그날 오후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됐다. 지상 30m 높이 전광판에서 50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씨앤앰의 협력업체 노동자 강성덕(35)씨도 지난달 31일 땅을 밟았다. 강씨는 전광판에서 내려오자마자 입원했다. 5일 서울 중랑구의 녹색병원에서 만난 그는 “켜켜이 쌓인 먼지와 600여개의 냉각기가 돌아가며 내는 소음, 전자파 탓에 50일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잠들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농성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와 왼쪽 어깨에 신경통이 생겼고 어지럼증, 두통, 이명(귀울림) 증세까지 더했다. 그는 “병원에 입원하고서도 수시로 귀에서 ‘윙~’소리가 나 새벽 3시쯤 잠을 깨곤 한다”고 호소했다. 씨앤앰 사태는 간접고용에서 비롯됐다. 강씨 등은 씨앤앰 로고가 붙은 작업복을 입고 일하지만 어디까지나 ‘협력업체’ 소속이다. 원청(씨앤앰)에서 하청업체를 바꿀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복지 후생은 언감생심이다. 2013년 씨앤앰 협력업체 노동자로 구성된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가 “원청이 진짜 사장”이라고 주장하며 생활임금 보장 등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같은 이유였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도급계약 해지나 협력업체 변경 과정에서 고용승계 거부 등의 형식으로 109명이 사실상 해고됐고,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고공농성이 장기화되면서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자 씨앤앰 측은 뒤늦게 협상 의지를 보였다. 결국 노사는 씨앤앰의 케이블 전송망을 유지·관리하는 새 회사를 설립해 해고자 109명 중 이직자를 뺀 나머지 83명을 모두 고용하기로 했다. 또 협력업체가 바뀔 때 새 업체가 조합원을 우선 고용하는 한편, 폐업하더라도 씨앤앰이 조합원 고용 안정을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원직 복직’은 아니지만 노사 협의를 통해 해직 문제를 풀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노동계의 평가다. 협상이 타결됐지만 여전히 강씨의 가슴에는 응어리가 남아 있다. 노동자를 고공투쟁으로 내모는 사회 현실에 대한 울분이다. 강씨는 “올라가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결코 모른다”면서 “그럼에도 굳이 높고 위험한 곳에 오르는 이유는 사회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씨앤앰도 100여명의 노동자가 7월부터 100일 넘게 노숙 농성을 벌였지만 전광판에 올라가기 전에는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새해에는 노동자들과 소외받는 이들이 고공농성이란 극한수단을 선택하는 일이 없도록 소통이 이뤄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퇴원 후 새 회사의 케이블티비 유지·보수 기사로 다시 ‘일상’에 복귀하게 된다. 그는 “일단 퇴원을 하면 가장 먼저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며 “생업으로 복귀한 뒤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 평택공장에서 고공농성 중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구미에 있는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 등을 차례로 방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외치다] (2)굴뚝 농성 23일째…쌍용차 해고노동자 김정욱씨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외치다] (2)굴뚝 농성 23일째…쌍용차 해고노동자 김정욱씨

    “집사람도 압니다. 고공 농성이란 게 기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돼야 끝난다는 걸요. 가족과 따뜻한 밥을 먹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아이들과 놀러 갈 수 있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김정욱(4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국장)씨는 지난달 13일 경기 평택 쌍용차공장 굴뚝에 오를 때까지도 아내 한모(43)씨와 큰딸(14), 작은아들(11)에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굴뚝에 오르고 몇 시간 뒤에야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왜 그랬냐”고 말했지만 더 나무라지 않았다. 지금은 누구보다 강력한 ‘우군’이다. 아내는 주말마다 두 아이와 함께 찾아와 먼발치에서 영상통화로 응원한다. 아빠가 2009년부터 회사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아는 두 아이는 “아빠 힘내! 다 해결돼 우리 곁으로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라며 힘을 불어넣는다. 4일에도 여전히 70m 높이 굴뚝에서 추위와 맞서던 김씨는 가족 얘기를 꺼내며 잠시나마 웃었다. 김씨는 ‘그날 새벽’ 이창근(42·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씨와 공장에 잠입해 해고 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는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올라온 지 23일째인데 며칠 전 딱 한 번 꿈을 꿨습니다. 신나게 자동차를 만들다가 쉬는 시간에 동료들과 자판기 커피 한잔 뽑아 떠들다 깼습니다.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면 이것만큼 좋은 일은 없겠죠.” 두 사람이 몸을 의지하는 곳은 굴뚝 꼭대기를 둘러싼 폭 1m 정도의 좁다란 공간이다.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쉽지 않다. 침낭 안에 몸을 구겨 넣어 보지만 바닥의 찬 기운에 뼛속까지 떨렸다. 2009년 사측이 평택공장과 경남 창원공장 노동자 3000여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밝힌 뒤 실제로 일부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비롯된 복직 투쟁이 벌써 7년째를 맞았다. 김씨에게 ‘2014년’은 희망과 절망이 엇갈린 한 해였다. 해고 노동자 153명이 낸 해고무효 확인 소송과 관련해 지난해 2월 서울고법은 원심을 깨고 무효라고 선고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대법원은 정리해고가 유효하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대법원 선고를 보고 사회적 약자들이 더는 이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상황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영화배우 김의성씨의 1인 시위와 가수 이효리씨의 트위터 응원 등으로 고공 농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졌다. 참여연대는 새해 첫 활동을 5일 쌍용차 평택공장의 고공 농성자를 찾아 지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측도 부담을 느끼는 모양새다. 지난달 15일 사측은 “고공 농성은 비상식적인 불법 행위”라며 “절대 타협하지 않고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4일에는 “고공 농성 해제를 전제로 (현재 쌍용차 노동자들이 속한) 노조 및 (해고자들이 속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측과 대화가 이뤄지고, 이후 노조가 중심이 돼 회사와의 3자 대화를 요청한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해고당하지 않고 회사에 남아 있는 노동자들과의 정신적 연대도 큰 힘이다. 지난달 23일 평택공장에서 일하는 옛 동료들이 십시일반으로 뜻을 모아 패딩 점퍼 두 벌을 올려 보낸 것이다. 그는 “지금 포기하면 우리에겐 ‘해고 노동자’라는 낙인이 남는다”며 “복직 문제가 풀릴 때까지 결코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잔인한 12월’… 구직급여 신청자 매년 증가

    ‘잔인한 12월’… 구직급여 신청자 매년 증가

    서울의 한 사립대학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이모(55)씨는 연말만 되면 불안하다. 용역업체 계약 만료일이 12월 31일이기 때문에 관리자의 눈 밖에 났다가는 업체 변경 과정에서 자칫 해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해도, 때론 반말을 해도 묵묵히 참고 일하는 수밖에 없다. 재계약을 하고 새해를 무사히 맞으면 그제서야 추운 겨울 새로운 직장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든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한 해에 대한 설렘을 품고 새해를 맞지만, 간접고용 근로자들과 일반 기간제 근로자들은 해고 칼바람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며 새해를 맞는다. 원청과 용역업체의 계약변경과 비정규직의 계약기간 만료일이 12월에 집중된 탓이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인덕대 청소노동자 4명,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청소·경비·시설관리노동자와 인천공항 청소노동자 일부가 업체 변경 과정에서 연말 해고 위기에 내몰렸으나 노조의 대응으로 고용승계를 약속받았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이숙희 부지부장은 “원청업체가 용역 근로자 인원수를 줄여 재계약을 하려고 하다 보니 고용불안이 크다”며 “새해를 맞아도 계약서를 썼다는 말이 들리지 않으면 불안은 계속된다”고 말했다. 기업 인사가 집중된 12월은 다른 근로자들에게도 ‘잔인한 달’이다. 부산의 기장군·연제구를 제외한 14개 구와 충남의 당진시·계룡시·예산군·청양군의 비정규직 방문간호사 195명도 해당 지자체로부터 예산 부족을 이유로 무더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들은 부산과 충남 지역에서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 갈 수 없는 의료취약계층 주민의 집을 일일이 방문해 8년간 간호업무를 수행해 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일자리를 잃어 구직급여를 신청한 사람이 7만 9000명에 이른다고 1일 밝혔다. 2013년 12월보다 6000명(7.6%)이 증가했다. 12월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는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1월을 제외하고 매달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가 전년 동월 대비 증가했다. 해고 한파가 사계절을 몰아친 한 해였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50일 만에 전광판 농성 끝낸 씨앤앰

    50일 만에 전광판 농성 끝낸 씨앤앰

    해고자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인근 전광판 위에서 50일째 고공 농성을 해 온 케이블방송 씨앤앰(C&M) 협력업체 직원 강성덕(오른쪽)씨가 31일 마중을 나온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신임 위원장과 포옹하고 있다. 이날 씨앤앰 근로자들이 속한 희망연대노조는 노사 합의안 조합원 투표 결과 씨앤앰 지부(87%)와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지부(92%)에서 모두 가결됐다고 밝혔다. 전날 노사는 협력업체 계약 종료 근로자 109명 가운데 83명(이직자 등 제외)을 씨앤앰의 신규 법인에서 채용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씨앤앰 노사 해고자 고용 승계 등 합의

    해고된 케이블방송업체 씨앤앰(C&M) 외주 협력업체 케이블 설치·수리 직원들이 다시 일자리를 찾게 됐다. 170일 넘게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는 노숙 농성을 벌인 결과인 셈이다. 30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울본부 희망연대노동조합(이하 희망연대노조)에 따르면 희망연대노조 측과 씨앤앰, 씨앤앰 협력업체 대표가 해고된 씨앤앰 협력업체 직원 109명의 고용 문제 등 주요 쟁점 사안을 담은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109명은 지난해 7월 씨앤앰이 협력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신규 업체가 고용승계를 거부해 해고된 직원들이다. 그동안 사측은 직원들을 해고한 협력업체가 신규 직원을 채용했다는 이유로 씨앤앰 해고 직원들의 원직 복직 요구를 거절해 왔다. 이에 노사는 씨앤앰 협력업체 해고 직원 109명 중 이·전직한 26명을 제외한 83명을 씨앤앰이 건물 내 케이블 전송망 설치·보수 업무를 하는 신규 업체와 계약을 맺어 채용하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 신규 업체는 해고 직원들의 근무 지역, 주거지 등을 배려해 서울 마포, 경기 일산, 동두천 등 3곳에 거점 사무소를 두게 된다. 박재범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은 “국내에 있는 전송망 설치·보수 업체를 새로운 협력업체로 선정할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업체를 새로 만들지는 나중에 노사가 만나 별도로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합의안에는 또 기존의 씨앤앰 협력업체 21곳이 앞으로 불가피하게 폐업을 하거나 계약을 해지할 때 그 후에 들어오는 외주 협력업체가 해고된 직원들을 우선 고용하고 원청인 씨앤앰은 고용 안정 및 업무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잠정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는 31일 진행된다. 합의안이 가결되면 씨앤앰 대주주인 사모펀드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있는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170일 넘게 해 온 노숙 농성과 해고 직원 임정균(38), 강성덕(35)씨의 고공 농성을 끝내기로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장그래 살리기 위해 대통령·정치권과 대화 용의 있다”

    “장그래 살리기 위해 대통령·정치권과 대화 용의 있다”

    “우리는 들러리가 아닙니다. 노사정위원회조차 일방적인 희생만 요구하고 있어요. 생색내기 결정 몇 개를 빼고는 말이죠.” 선거운동 때 줄곧 총파업을 외친 한상균(52)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신임 위원장은 30일 인터뷰에서도 ‘총파업 조직’을 꾸린 정당성을 알리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그는 우선 내년 상반기에 공무원연금 개악, 간접고용 문제 등의 노동 현안과 관련해 집중 투쟁을 이어 가고, 전국적으로 ‘박근혜에 맞선 노동자 살리기 총파업’을 펼쳐 적극 대응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2009년 쌍용차 노조위원장으로 파업을 이끌다 해고된 그는 2012년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송전탑 고공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첫 직선제로 치러진 이번 민주노총 선거에서는 결선투표를 거쳐 18만 2249표(51.62%)를 얻어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한 위원장은 “현장 조합원들의 분노와 각오를 확인한 만큼 내년 2월 12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의 구체적인 방법과 일정을 확정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거세게 비판했다. 그는 “현재 노동 조건을 보면 외환위기 때보다도 절박한데 더 가혹하게 노동자를 탄압하고 있다”며 “노·정 문제에서 분수령을 만들겠다는 게 우리 목표였다. 선거운동 자체가 총파업 조직을 위한 과정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현 정권의 폭주가 속도를 더 내고 있다. 언제든지 우리를 탄압하는 데 맞서겠다”며 “우리에겐 공약에서 밝힌 대로 ‘단 한번의 승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총파업 노선에 대해 역량이 되느냐 하는 우려도 존재하는데 이에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되물었다. 그러자 한 위원장은 “처음 민주노총이 직선제를 한다고 했을 때도 가능하겠냐는 걱정을 샀지만 보란 듯이 멋지게 성사시키지 않았느냐”며 “선거운동을 하며 현장을 돌아보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분위기가 끓어오르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맞받아쳤다. 그는 “우리로서는 정권의 폭력에 앉아서 당할지, 명운을 거는 싸움을 할지 선택지는 둘뿐”이라고 마음가짐을 가다듬었다. 한 위원장은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인 장그래를 자주 떠올렸다. “민주노총 전체 역량의 절반 이상을 비정규직 문제에 투입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 가능성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장그래(비정규직)가 없는 집이 없을 것이다. 국민, 시민사회와 함께 정권과 자본의 폭주를 막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한다”며 “장그래를 살릴 수 있다면 대통령은 물론 여야 대표, 관계 부처와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총 중심으로 1월 중 운동본부 발족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 조합원 출신인 데다 다수파도 아닌 한 위원장이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 위원장은 “패배를 전제로 출마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면서도 “막상 1위로 결선투표에 올라가고 최종 당선까지 되니 사실 나도 좀 놀라기는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직선제가 아니었다면 일개 해고 노동자가 명함 내밀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조합원들의 지지와 믿음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다른 세 후보를 초청하는 원탁회의를 열어 전체 노동진영의 단결을 요청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글 사진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정부 비정규직 대책] “비정규직 기간만 늘린 ‘장그래 죽이기 법’”

    정부가 29일 노사정위원회에 제출한 비정규직 종합 대책안에 대해 비정규직 근로자 모임을 비롯해 노동계는 ‘장그래 죽이기법’이라며 폐기를 촉구했다. 비정규직 남용 방지와 불합리한 차별 해소 방안으로 내놓은 고용 형태별 맞춤형 대책에 대해서도 ‘기간제 양산’ ‘속 빈 강정’이라며 비판했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정부안은 원래 있던 법안을 재탕, 삼탕한 것으로, 비정규직에 도움이 안 되고 정규직 신규 채용만 사라지게 하는 대책”이라며 “5개 핵심 조항은 파견직을 양산하고 비정규직 기간을 늘릴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이태의 본부장은 “또 다른 대책보다 학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공약 이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는 “일반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기간제 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대책은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기간제 천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비정규직 개선이 아니라 정규직에 준하는 처우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비정규직 노조 등으로 구성된 ‘비정규직 양산법안 저지 긴급행동 준비위원회’는 “정부 대책은 기업들이 숙련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쓰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준비위는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간접고용 노동자를 쓰지 못하게 하고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을 개정해 사용자와 노동자의 범위를 넓히는 등의 대책으로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성명에서 “비정규직 사용 기간 2년 연장은 고통의 시간을 2년 연장하는 것”이라며 “비정규직이 양산, 고착화되는 핵심에서 벗어나는 것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노총이 지난 15~22일 비정규직연대회 조합원 426명을 대상으로 차별 실태 및 정부 정책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정규직과의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금(64.8%)과 고용안정성(62.2%)에서 차별이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는 51.6%가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답했고 ‘매우 낮다’는 15.0%, ‘낮은 편’은 12.2%로 나왔다. ‘전환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은 0.7%(3명)에 불과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서울 원유빈 인턴기자 jwyb12@seoul.co.kr
  • “독성 물질 만지는데 마스크조차 안 줘” “하루 8600원 주면서 근무시간 조작”

    #1. 필리핀 경제특구 가비테의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현지 노동자 A(27·여)는 회사 측의 상습적인 근무시간 조작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A는 “매달 59시간씩 연장 근무를 했는데 회사는 49시간만 인정했다”며 “그래도 참아야지, 잘못 보였다간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2.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 공단의 한국 기업 노동자 B(23·여)는 “지난 7월 전체 공장 노동자 8000명 중 500여명이 해고됐다. 모두 숙련 노동자였다”며 “주기적으로 전체 노동자의 50~70%를 갈아 치운다.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일부 한국 기업이 현지 노동자들을 상대로 저임금과 부당 해고, 폭력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익인권법센터 ‘어필’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으로 이뤄진 ‘기업과인권네트워크’는 29일 서울 중구 NPO(비영리기구)지원센터에서 해외 한국 기업 인권 실태 조사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실태 조사는 지난 8월 이후 최근까지 필리핀·방글라데시·베트남 내 한국 기업 10여곳의 현지 노동자들과의 집단 면담을 통해 이뤄졌다. 입주 기업 380여개 중 약 37%(140여개)가 한국 기업인 필리핀 가비테에서 일하는 현지 노동자들은 대부분 법으로 제한된 연장 근무시간(하루 2시간)을 넘겨도 2시간만 근무한 것처럼 조작되거나 유독화학물질을 사용하면서도 마스크 등 안전장비조차 지급받지 못한 채 일한다고 증언했다. 강은지 국제민주연대 활동가는 “필리핀의 일부 한국 기업은 경력·직급과 무관하게 최저임금(1일 350페소·8600원)만 지급한다”며 “노조 설립을 노골적으로 방해한다는 이야기도 많다”고 전했다. 방글라데시와 베트남의 사정도 비슷했다. 베트남에서는 한국 기업 중간 관리자들이 욕설을 하거나 고성을 지르며 벌을 주는 일이 종종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현지 노동자는 “공장 밖에 나가 햇볕에서 장시간 서 있으라는 식은 약과”라며 “본드로 손을 붙여 버린 일도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부고]

    ●윤종기(인천지방경찰청장)씨 모친상 28일 전남 고흥 우주장례식장, 발인 30일 오전 10시 (061)832-1930 ●권애리(SBS 경제부 기자)철암(JW홀딩스 대리)씨 부친상 심영구(SBS 정책사회부 기자)씨 장인상 김유경(동교초 교사)씨 시부상 28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30일 오전 7시 (02)2258-5940 ●이윤재(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정책국장)민재(삼성SDS 대리)씨 부친상 정지영(민중의소리 기자)씨 시부상 2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오전 9시 30분 (02)3410-6902 ●김종인(전 국회사무처 전문위원)씨 별세 무정(유신 부사장)씨 부친상 이용현(신원덴탈 대표이사)안병모(비오엠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이재홍(라인리사이클 대표이사)씨 장인상 2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오전 5시 30분 (02)3410-6919 ●이원호(전 한국화장품 부사장)씨 별세 승재(성형외과 원장)승엽(강원대병원 소화기내과 전문의)씨 부친상 조욱형(행정자치부 국장)씨 장인상 박혜신(경원중 교사)김현경(남양주한양병원 신장내과 의사)씨 시부상 2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오전 6시 40분 (02)3410-6903 ●이윤성(MBN 앵커·전 국회 부의장)씨 장모상 28일 경주 동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 (054)774-0288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독재자 암살 가능할까... ‘인터뷰’ 계기로 본 역사속 작전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독재자 암살 가능할까... ‘인터뷰’ 계기로 본 역사속 작전들

    미국과 북한의 치열한 사이버 공방까지 낳게 만들었던 미국 소니 픽처스의 코미디 영화 '인터뷰'가 미국 전역의 320개 독립 영화관에서 개봉과 동시에 매진 사례를 이어가면서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북한의 강력 반발과 해킹 사건 등으로 인해 영화 제작사가 상영을 포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개봉과 함께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면서 흥행에 성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독재국가의 지도자를 암살한다는 주제는 B급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쓰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이고, 과거 개봉되었던 암살 영화들을 보면 당대의 정치 상황을 반영한 역사극이거나 특수부대와 같은 히어로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였던 경우가 많았지만, '인터뷰'는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의 어린 지도자를 암살하는 스토리를 코미디로 풀어냈다.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답게 관객들이 시종일관 폭소를 터트릴만한 장면들이 자주 나오고, 결말 역시 김정은이 헬기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우스꽝스럽게 죽는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영화 속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나 ‘독재자 암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방법으로 시도되었던 암살 시도는 미국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가 195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알려진 것만 638가지 방법으로 시도했던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암살 작전이었다. 1958년 플로리다 해안에서 불과 180km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공산국가는 미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고, 1962년에 있었던 쿠바 핵미사일 위기는 미국으로 하여금 쿠바의 공산 독재 지도자 카스트로를 어떻게 해서든 제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미국은 1958년 쿠바 공산혁명 직후 쿠바를 탈출한 1,500여 명의 망명자들을 모아 ‘제2506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 이 부대를 동원해 쿠바 침공을 감행했지만, 부대원들이 몇 달 전부터 작전 내용을 떠벌리고 다니는 등 형편없는 보안 유지로 인해 상륙과 동시에 대부분 전멸하고 상당수가 포로로 잡히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쿠바 배후의 소련, 그리고 국제사회의 비난 때문에 군사력 동원을 통한 카스트로 공산정권 축출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미국은 카스트로를 암살해 버리기로 결심하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은 참신하다 못해 기상천외했다. 20년 넘게 쿠바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활약했던 파비안 에스칼란테(Fabian Escalante)는 지난 2006년 펴낸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이라는 저서에서 미국 CIA에 의해 자행된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무려 638회에 달했고, 여기에는 단순한 방법부터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시도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고 전했다. 애연가였던 카스트로의 시가(Cigar) 담배에 미량의 폭약을 넣는 방법은 애교에 불과했다. 스쿠버 다이빙 애호가였던 카스트로의 취미 생활을 이용해 해파리 등 수중 연체동물의 촉수에 독을 발라 카리브 해에 풀어놓는가 하면, 카스트로가 자주 다이빙을 즐기는 지역에 알록달록한 조개 모양의 폭발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카스트로가 해외 순방에 나서면 호텔 직원을 포섭하거나 직접 암살요원을 보내 음료에 독을 타거나 소파에 폭발물을 숨겨 놓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CIA가 벌였던 카스트로 암살작전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작전은 바로 카스트로의 옛 애인이 동원되었던 작전이었다. 19세의 나이에 카스트로를 처음 만나 9개월 간 동거하며 카스트로의 아이까지 임신했던 마리타 로렌츠(Marita Lorenz)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낙태를 당했고, 카스트로와 강제로 이별해야 했다. CIA는 카스트로에게 상처 받고 버림받아 복수심에 불타 있을 로렌츠가 암살 작전에 더할나위없이 제격이라고 판단하고, 암살 작전에 성공하면 안전 보장과 함께 200만 달러를 현찰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로렌츠는 카스트로가 머물던 아바나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CIA가 준 독약캡슐을 버리고 카스트로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카스트로는 로렌츠에게 권총을 쥐어주며 자신을 쏘라고 했지만, 로렌츠는 카스트로를 차마 쏘지 못했고, 결국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카스트로는 로렌츠를 처벌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려보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으로 돌아간 로렌츠가 그 이후에도 반(反) 카스트로 활동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결국 40년에 걸친 미국의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좌를 이양하고 물러나 편안한 여생을 살고 있다.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작전명 : 발키리 성공했다면 세계사를 바꿀 뻔 했지만, 나무 테이블 하나 때문에 실패해 5,000여 명이 반역자로 몰려 처형당한 ‘발키리 작전’ 역시 유명한 암살 시도 가운데 하나였다. 오래 전부터 나치의 군 장악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독일 국방군의 프로이센 귀족 출신 장교들은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 암살과 나치 체제 전복을 위한 쿠데타 계획을 수립했다. 독일군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깊은 신망을 받고 있던 루트비히 베크(Ludwig Beck) 대장 등 고위 장교들이 가담한 이 암살 및 쿠데타 계획의 내용은 단순했다. 폭탄을 이용해 히틀러를 제거하면, 국방군이 장악하고 있던 예비군조직을 이용해 베를린과 독일 각지의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나치에 충성하는 경찰과 친위대 조직을 제압한 뒤 베크 대장을 임시 수반으로 추대하고 연합군과 항복 협상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가장 위험한 암살 임무는 국방군본부 예비군 참모였던 슈타우펜베르크(Stauffenberg) 대령이 맡았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라슈텐부르크에 있는 히틀러의 비밀 지휘소였던 ‘늑대굴(Wolfschanze)'에서 히틀러가 주재한 전시 작전회의에 예비군 동원 계획을 보고하기 위해 참석했는데, 이 늑대굴에는 아무리 고위장교라도 무기 등 금속을 휴대하고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액체와 플라스틱을 이용한 폭탄을 휴대하고 회의장에 들어갔다. 이 폭탄은 연합군이 프랑스에 있는 레지스탕스에 공급하기 위해 제작한 특수 폭탄이었다. 플라스틱 시험관 안에 들어있는 캡슐을 깨뜨리면 시한신관이 작동하면서 정확히 10분 후에 폭발하는 구조였다. 슈타우펜베르크는 회의장에 다소 늦게 들어가 작전 테이블 아래에 폭탄가방을 내려놓았고, 발을 뻗어 다른 참석자들 몰래 그 가방을 히틀러 발 앞에까지 밀어 넣고 회의장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전속부관인 하인츠 브란트(Heinz Brandt) 대령이 그 가방을 발견하고 거추장스러운 가방을 히틀러가 발견하면 싫어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가방을 옆으로 치우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폭탄이 터지면서 지붕이 날아가고 창문이 깨지는 등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폭탄을 자기 쪽으로 치웠던 브란트 대령 등 3명이 즉사하고 참석자들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으며, 히틀러 역시 고막이 터지고 팔과 다리에 나무 파편이 박히는 등 상당한 부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던 것이다. 마침 폭탄이 터질 때 히틀러가 작전지도를 자세히 보기 위해 테이블 깊숙이 몸을 숙인 상태였고, 두꺼운 참나무 테이블이 폭발의 충격을 상당부분 막아주면서 히틀러는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나치 조직은 사건 직후 병력을 동원해 친위대 사령부를 포위하고, 예비군 사령관이었던 프롬 대장에게 병력을 출동시켜 쿠데타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날 오후 히틀러가 자신의 건재함을 발표하자마자 반란군에 대규모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다. 사건 직후 히틀러는 친위대와 게슈타포를 총동원해 가담자 색출에 나섰고, 약 7,000여 명이 체포되고 그 중 5,000여 명이 처형당했는데, 이 가운데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반란 세력으로 몰려 강제 자살로 내몰린 에르빈 롬멜(Erwin J.E. Rommel) 장군도 있었다. 실제로 있었던 김정일 암살 미수 사건 최근 김정은이 주관한 행사장에서 몰래 숨겨 놓은 기관총이 발견되어 관계자가 숙청당했다는 소식처럼 김정은 일가에 대한 위해 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정보기관과 대규모 경호부대를 통해 자신의 주변에 수십 겹의 안전장치를 깔아 놓은 김씨 일가의 조심성 때문에 그동안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김씨 일가에 대한 암살 모의 사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1992년에 있었던 ‘프룬제 아카데미아 사건’이다. ‘프룬제 아카데미아’란 우리나라의 합동군사대학교와 비슷한 개념의 고급장교 보수교육 기관으로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이나 공산국가들의 고급 장교들이 가장 많이 유학했던 교육기관이다. 북한은 현대전에 대비하기 위한 정예 장교를 육성을 목적으로 1980년대 초부터 소련 각 학교기관에 대규모 유학생을 파견했는데, 이들 유학생들은 소련 정보기관 KGB의 최우선 포섭대상이 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최대한의 실리를 챙겨는 노선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입장에서는 북한을 확실히 옭아매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유학 장교들은 유학 장교들 나름대로 유학 생활을 통해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흐루시초프 이후 자유로운 상호 비판과 권력 이동이 이루어지는 소련 체제에 큰 충격을 받았고, 무엇보다 세습적 봉건왕조화 되어가던 북한을 이대로 두면 동구권 국가들처럼 붕괴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들은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안종호 상장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혁명유자녀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만경봉대학원과 남산학교를 거쳐 프룬제 아카데미아에서 수학한 안 상장(한국군 중장 계급에 해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프룬제 출신 장교들은 199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 기념 행사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암살하고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모의하고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거사는 평양방어사령부 예하 전차부대 지휘관을 맡고 있었던 김일훈 소장(한국군 준장 계급에 해당)이 맡기로 했다. 인민군 창건 기념 열병식에서 김일성 광장을 가로지르는 전차부대가 김일성 부자가 위치한 인민대학습당 주석단 정면을 통과할 때 포탑을 돌려 전차포로 주석단을 날려버리겠다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빗나갔다. 열병식에 자신의 부대인 제820기계화군단을 내보내 김정일에게 눈도장을 찍겠다는 박기서 상장이 인민무력부에 압력을 넣어 열병식 참가 전차를 평양방어사령부가 아닌 820군단 전차로 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거사 직후 뒤를 봐주기로 약속했던 KGB의 배신 역시 치명적이었다. 김일성과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이던 김정일에게 접근한 KGB는 “1,000만 달러를 주면 프룬제 아카데미아 유학파 가운데 소련에 포섭된 자와 반란 모의에 가담한 자의 명단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고, 김정일이 이를 수용하면서 암살 계획 전모가 드러났던 것이다. 이후 소련 유학파, 특히 프룬제 아카데미아 출신 고위 장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어졌고, 노동당과 내각, 군부 내에서 소련 유학파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국내파들이 득세하면서 김정일 시대는 ‘철저한 자주노선’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엘리트 장교들이 가담한 암살 모의 사건에 경악한 김정일은 이후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확대 개편해 친정 체제를 강화하고, 평양을 철통같은 보안이 유지되는 철옹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김정은 역시 아버지를 이어 자신의 최측근으로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장악하고 세계 최대 수준의 경호 부대를 만들어 자신의 주변을 24시간 지키게 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무작정 경호원을 늘리는 것보다 자신의 곁을 지키는 그 군인들도 본질적으로는 북한의 인민이며, 폭정(暴政)이 계속되어 인민들의 한(恨)이 쌓이면 자신의 경호원들의 총구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문재인 vs 박지원

    문재인 vs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의 유력한 당권 주자 3인방 중 1명인 정세균 의원이 26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기에 ‘다크호스’로 주목받아온 김부겸 전 의원도 출마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전당대회는 ‘빅 3’ 나머지 후보인 박지원, 문재인 의원의 양강 체제가 유력해졌다. 다음달 7일로 예정된 컷오프(예비경선)를 앞두고 본선행 티켓 3장 중 마지막 1장을 누가 손에 쥘지도 관심사다. 실제로 출마 여부를 놓고 고심하던 후보들은 이번 불출마 선언을 당권 재편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정 의원은 이날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과 당원들에게 ‘변화’란 말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고, ‘혁신’을 이야기해도 갈등만 부추길 뿐이었다”면서 “전대혁명을 통해 총·대선을 이기자는 국민, 당원들의 열망과 저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정권 교체의 밀알이 되기로 했다”며 전대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번 결심에는 당내 성명파 30인의 빅 3 동반 불출마 요구가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치권은 ‘빅 2’의 출마 포기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향후 판세 분석에 들어갔다. 범친노(친노무현)계로 분류되는 정 의원이 사퇴한 만큼 문 의원이 수혜를 입을 것이란 분석과 비노 진영과 호남 구주류의 결집으로 박 의원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상반된 의견이 주를 이뤘다. ‘단순히 더하기 빼기로 계산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양강 구도를 뒤흔들 변수도 곳곳에 있다. ‘빅 2’를 제외한 새로운 인물이 극적인 경쟁을 통해 본선행 열차에 올라타면 ‘구세대’와 ‘차세대’의 구도로 판이 짜여 ‘흥행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원내대표를 지낸 전병헌 의원이 이와 같은 구도를 전제로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 추미애 의원도 이번 주말 출마 선언을 고려 중이고, 박영선 의원도 불출마 선언을 뒤로 미루고 있다. 여기에 김영환·박주선·김동철 의원의 단일화와 이미 출마를 선언한 조경태 의원, 이인영 의원의 돌풍도 변수다. 한편, 정동영 의원은 김세균 전 서울대 교수,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 105명이 추진하는 진보 신당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총파업 조직할 것”… 노·정 충돌 예고

    “총파업 조직할 것”… 노·정 충돌 예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역사상 첫 조합원 직접선거를 한 결과 쌍용자동차 지부장을 지낸 한상균(52) 후보가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현장 조합원 출신인 한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즉각적인 총파업’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고 내년 1월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의 구체적인 방안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와의 충돌이 예상된다. 한 당선자와 함께 당선된 최종진 수석부위원장은 서울지하철노조 출신으로 서울본부장을 역임했고 이영주 사무총장은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을 지냈다. 임기는 내년 1월부터 3년간이다. 26일 민주노총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결선투표 최종 집계에 따르면 재적 선거인수 66만 7752명 가운데 55.97%인 37만 3742명이 투표했고, 기호 2번 한상균 후보조(한상균-최종진-이영주)가 18만 2249표(51.62%)를 얻었다. 기호 4번 전재환 후보조(전재환-윤택근-나순자)는 17만 801표(48.38%)를 획득해 한 후보조와의 표차는 1만 1448표였다. 한 당선자는 당선 발표 직후 ‘조합원께 드리는 글’을 통해 “‘더욱 힘차고 노동자답게 싸우라’는 준엄한 명령으로 받아 안고 선거 기간 조합원과 맺었던 약속을 하나하나 실천하겠다”면서 “노동자 살리기 총파업을 조직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노사정 야합을 통한 정리해고 요건 완화와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앞세운 정부의 임금-고용 파괴 기도와 기만적인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노동자를 겨누고 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한 당선자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시절 77일에 걸친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2009년부터 3년간 실형을 살았다. 출소 후에는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며 171일간 송전탑 고공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비정규직 설움 없게”…혹한 오체투지

    “비정규직 설움 없게”…혹한 오체투지

    “크리스마스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네요. 눈물 나고 서러울 뿐입니다. 정규직이란 게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워도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25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9번 출구 앞.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유흥희(44·여) 분회장은 까맣게 물든 소복을 입은 채 읖조렸다. 몸도 마음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혹한이 몰아치던 지난 22일 동작구 신대방동 옛 기륭전자 본사에서 출발해 국회가 있는 여의도와 마포를 거쳐 이곳까지 ‘오체투지’(五體投地) 행진을 이어온 탓에 온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오체투지란 불교식 큰절을 가리키는 말로, 땅에 무릎을 꿇은 뒤에 두 팔꿈치를 땅에 댄 다음 마지막으로 이마가 땅에 닿도록 하는 절이다. 소복 안에 무릎보호대 등을 덧댔지만 온몸은 멍투성이가 됐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삼보일배보다 오체투지 동작이 훨씬 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윤 분회장 등 기륭전자 노동자 8명과 지지자 7명 등 15명은 북소리에 맞춰 열 걸음에 한 번씩 절을 하며 천천히 전진했다. 기륭전자 노동자 윤종회(44·여)씨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 기한을 2년에서 4~5년으로 늘리고 해고 요건을 완화하려는 정부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도 더 바쁜 발걸음이 필요하다”며 “더 이상 노예로 살기 싫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던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다시 거리로 나선 까닭은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를 위해서다. 유 분회장은 “비정규직 제도 자체를 없애지 않으면 제2의 기륭전자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량용 내비게이션과 위성라디오를 만드는 기륭전자에서의 분규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견 비정규직 중심의 노조가 설립되자 회사가 이들을 해고했고 노조는 2010년 11월까지 1895일 동안 복직 투쟁을 벌였다. 200여명에 이르던 조합원은 10명으로 줄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5월 조합원 10명이 ‘정규직’으로 복직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들에게 어떤 일도 맡기지 않았고 월급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해 12월에는 몰래 사무실을 비우고 ‘야반도주’했다. 회사는 지난 2월 상장 폐지했고 3월에는 12억 8851만원의 자본금을 6642만원으로 줄이는 감자를 진행했다. 잠시나마 희망도 비췄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0월 조합원 10명이 기륭전자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밀린 임금 1692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회사는 항소했다. 이들은 26일 청와대 옆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행진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기륭전자 노동자 이인섭(46)씨는 “비정규직 노조 결성도 우리가 시작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공농성과 공장점거 농성도 우리가 처음인 만큼 비정규직의 비루한 현실을 우리가 끝내겠다”며 차가운 바닥에 몸을 내던졌다. 글 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그리고 26일 행진단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멈췄다.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로 경찰이 오체투지 행진을 제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진 주최 측은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신고를 경찰이 받아주지도 않았다고 맞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새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홍상수 감독이 ‘카트’ 혹은 ‘미생’을 만들었다면 이런 식이었을까. 영웅적이고 장렬한 투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극적인 서사를 담지도 않았다. 그저 한 해고 노동자가 주말 이틀의 시간 동안 옛 동료들을 만나면서 각자의 처지와 삶을 곡진히 풀어냈을 뿐이다. 핵심은 노동에 대한, 삶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었다. 영화는 순간순간 겪어야 하는 동료들과의 갈등과 스스로 갖는 회의, 각각 겪고 있는 짧지만 신산한 일상을 덤덤히 담아냈다. 그러나 그 문제의식은 만만치 않다. 해고의 책임과 결정을 동료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계약직과 정규직의 분열을 꾀하는 자본의 모습, 노동자 연대의 지난함, 일자리 나눔(잡 셰어링)의 당위성, 대출 이자와 주거난에 시달리는 워킹푸어의 모습, 이주노동자 문제까지 신자유주의의 민낯을 영화 속에 촘촘히 집어넣었다. 일상의 세심한 결을 따라가는 형식은 홍상수 감독의 느낌이지만, ‘지금, 여기’의 문제를 비켜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영화의 시선과 문제의식은 더없이 당당하기만 하다. 다르덴 형제 감독이 공동으로 시나리오, 연출, 제작을 맡은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의 원제목은 ‘투 데이즈, 원 나이트’다. 병가를 낸 뒤 복직을 앞뒀지만 동료들의 투표로 복직이 무산될 위기에 놓인 산드라(마리옹 코티아르)가 동료들을 찾아다니는 시간의 얘기다. 1000유로(약 135만원)의 보너스와 산드라의 복직을 놓고 선택하라는 회사의 투표에서 16명 중 14명의 동료들은 ‘1년치 가스와 전기세’인 보너스를 선택했다. 산드라의 남편은 복직을 포기할까 망설이는 아내에게 “당신 월급 없으면 대출은 어떻게 갚느냐, 다시 임대주택으로 돌아가야 하느냐”고 동료들의 설득을 포기하지 말라고 곁에서 채근한다. 남편 역시 동네식당 요리사로 일하는 박봉의 처지라 현실에 쫓기는 절박함이 크다. 일견 얄밉거나 무능해 보이기도 하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까지 시도하는 산드라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후원자임에 분명하다. 산드라의 회사는 대표적인 21세기 신재생 에너지인 태양열판을 만드는 곳이다. 고용정책 역시 21세기 신자유주의 흐름을 고스란히 좇는다. 사장은 재투표 결과, 8대8로 안타깝게 복직이 좌절된 산드라에게 선심을 쓰듯 복직을 약속한다. 조건은 두 달 뒤 계약 기간이 끝나는 비정규직 대신 복직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산드라의 대답은 명확하다. 비루해 보이는 삶이지만 세상의 존중은 노동자 스스로 얻어냄을 재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당당한 걸음으로 회사를 나오면서 산드라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활짝 웃으며 말한다. “우리 잘 싸웠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그 흔한 음악 한 소절 없이 일상 속 소소한 소음들만 이어진다.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새달 1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비정규직 설움 없게”…혹한 오체투지

    “비정규직 설움 없게”…혹한 오체투지

    “크리스마스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네요. 눈물 나고 서러울 뿐입니다. 정규직이란 게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워도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25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9번 출구 앞.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유흥희(44·여) 분회장은 까맣게 물든 소복을 입은 채 읖조렸다. 몸도 마음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혹한이 몰아치던 지난 22일 동작구 신대방동 옛 기륭전자 본사에서 출발해 국회가 있는 여의도와 마포를 거쳐 이곳까지 ‘오체투지’(五體投地) 행진을 이어온 탓에 온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오체투지란 불교식 큰절을 가리키는 말로, 땅에 무릎을 꿇은 뒤에 두 팔꿈치를 땅에 댄 다음 마지막으로 이마가 땅에 닿도록 하는 절이다. 소복 안에 무릎보호대 등을 덧댔지만 온몸은 멍투성이가 됐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삼보일배보다 오체투지 동작이 훨씬 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윤 분회장 등 기륭전자 노동자 8명과 지지자 7명 등 15명은 북소리에 맞춰 열 걸음에 한 번씩 절을 하며 천천히 전진했다. 기륭전자 노동자 윤종회(44·여)씨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 기한을 2년에서 4~5년으로 늘리고 해고 요건을 완화하려는 정부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도 더 바쁜 발걸음이 필요하다”며 “더 이상 노예로 살기 싫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던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다시 거리로 나선 까닭은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를 위해서다. 유 분회장은 “비정규직 제도 자체를 없애지 않으면 제2의 기륭전자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량용 내비게이션과 위성라디오를 만드는 기륭전자에서의 분규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견 비정규직 중심의 노조가 설립되자 회사가 이들을 해고했고 노조는 2010년 11월까지 1895일 동안 복직 투쟁을 벌였다. 200여명에 이르던 조합원은 10명으로 줄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5월 조합원 10명이 ‘정규직’으로 복직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들에게 어떤 일도 맡기지 않았고 월급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해 12월에는 몰래 사무실을 비우고 ‘야반도주’했다. 회사는 지난 2월 상장 폐지했고 3월에는 12억 8851만원의 자본금을 6642만원으로 줄이는 감자를 진행했다. 잠시나마 희망도 비췄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0월 조합원 10명이 기륭전자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밀린 임금 1692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회사는 항소했다. 이들은 26일 청와대 옆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행진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기륭전자 노동자 이인섭(46)씨는 “비정규직 노조 결성도 우리가 시작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공농성과 공장점거 농성도 우리가 처음인 만큼 비정규직의 비루한 현실을 우리가 끝내겠다”며 차가운 바닥에 몸을 내던졌다. 글 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기획] 영화 ‘인터뷰’를 통해 본 김정일·카스트로·히틀러 암살 사건

    [기획] 영화 ‘인터뷰’를 통해 본 김정일·카스트로·히틀러 암살 사건

    미국과 북한의 치열한 사이버 공방까지 낳게 만들었던 미국 소니 픽처스의 코미디 영화 '인터뷰'가 미국 전역의 320개 독립 영화관에서 개봉과 동시에 매진 사례를 이어가면서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북한의 강력 반발과 해킹 사건 등으로 인해 영화 제작사가 상영을 포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개봉과 함께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면서 흥행에 성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독재국가의 지도자를 암살한다는 주제는 B급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쓰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이고, 과거 개봉되었던 암살 영화들을 보면 당대의 정치 상황을 반영한 역사극이거나 특수부대와 같은 히어로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였던 경우가 많았지만, '인터뷰'는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의 어린 지도자를 암살하는 스토리를 코미디로 풀어냈다.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답게 관객들이 시종일관 폭소를 터트릴만한 장면들이 자주 나오고, 결말 역시 김정은이 헬기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우스꽝스럽게 죽는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영화 속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나 ‘독재자 암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방법으로 시도되었던 암살 시도는 미국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가 195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알려진 것만 638가지 방법으로 시도했던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암살 작전이었다. 1958년 플로리다 해안에서 불과 180km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공산국가는 미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고, 1962년에 있었던 쿠바 핵미사일 위기는 미국으로 하여금 쿠바의 공산 독재 지도자 카스트로를 어떻게 해서든 제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미국은 1958년 쿠바 공산혁명 직후 쿠바를 탈출한 1,500여 명의 망명자들을 모아 ‘제2506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 이 부대를 동원해 쿠바 침공을 감행했지만, 부대원들이 몇 달 전부터 작전 내용을 떠벌리고 다니는 등 형편없는 보안 유지로 인해 상륙과 동시에 대부분 전멸하고 상당수가 포로로 잡히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쿠바 배후의 소련, 그리고 국제사회의 비난 때문에 군사력 동원을 통한 카스트로 공산정권 축출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미국은 카스트로를 암살해 버리기로 결심하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은 참신하다 못해 기상천외했다. 20년 넘게 쿠바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활약했던 파비안 에스칼란테(Fabian Escalante)는 지난 2006년 펴낸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이라는 저서에서 미국 CIA에 의해 자행된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무려 638회에 달했고, 여기에는 단순한 방법부터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시도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고 전했다. 애연가였던 카스트로의 시가(Cigar) 담배에 미량의 폭약을 넣는 방법은 애교에 불과했다. 스쿠버 다이빙 애호가였던 카스트로의 취미 생활을 이용해 해파리 등 수중 연체동물의 촉수에 독을 발라 카리브 해에 풀어놓는가 하면, 카스트로가 자주 다이빙을 즐기는 지역에 알록달록한 조개 모양의 폭발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카스트로가 해외 순방에 나서면 호텔 직원을 포섭하거나 직접 암살요원을 보내 음료에 독을 타거나 소파에 폭발물을 숨겨 놓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CIA가 벌였던 카스트로 암살작전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작전은 바로 카스트로의 옛 애인이 동원되었던 작전이었다. 19세의 나이에 카스트로를 처음 만나 9개월 간 동거하며 카스트로의 아이까지 임신했던 마리타 로렌츠(Marita Lorenz)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낙태를 당했고, 카스트로와 강제로 이별해야 했다. CIA는 카스트로에게 상처 받고 버림받아 복수심에 불타 있을 로렌츠가 암살 작전에 더할나위없이 제격이라고 판단하고, 암살 작전에 성공하면 안전 보장과 함께 200만 달러를 현찰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로렌츠는 카스트로가 머물던 아바나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CIA가 준 독약캡슐을 버리고 카스트로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카스트로는 로렌츠에게 권총을 쥐어주며 자신을 쏘라고 했지만, 로렌츠는 카스트로를 차마 쏘지 못했고, 결국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카스트로는 로렌츠를 처벌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려보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으로 돌아간 로렌츠가 그 이후에도 반(反) 카스트로 활동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결국 40년에 걸친 미국의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좌를 이양하고 물러나 편안한 여생을 살고 있다.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작전명 : 발키리 성공했다면 세계사를 바꿀 뻔 했지만, 나무 테이블 하나 때문에 실패해 5,000여 명이 반역자로 몰려 처형당한 ‘발키리 작전’ 역시 유명한 암살 시도 가운데 하나였다. 오래 전부터 나치의 군 장악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독일 국방군의 프로이센 귀족 출신 장교들은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 암살과 나치 체제 전복을 위한 쿠데타 계획을 수립했다. 독일군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깊은 신망을 받고 있던 루트비히 베크(Ludwig Beck) 대장 등 고위 장교들이 가담한 이 암살 및 쿠데타 계획의 내용은 단순했다. 폭탄을 이용해 히틀러를 제거하면, 국방군이 장악하고 있던 예비군조직을 이용해 베를린과 독일 각지의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나치에 충성하는 경찰과 친위대 조직을 제압한 뒤 베크 대장을 임시 수반으로 추대하고 연합군과 항복 협상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가장 위험한 암살 임무는 국방군본부 예비군 참모였던 슈타우펜베르크(Stauffenberg) 대령이 맡았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라슈텐부르크에 있는 히틀러의 비밀 지휘소였던 ‘늑대굴(Wolfschanze)'에서 히틀러가 주재한 전시 작전회의에 예비군 동원 계획을 보고하기 위해 참석했는데, 이 늑대굴에는 아무리 고위장교라도 무기 등 금속을 휴대하고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액체와 플라스틱을 이용한 폭탄을 휴대하고 회의장에 들어갔다. 이 폭탄은 연합군이 프랑스에 있는 레지스탕스에 공급하기 위해 제작한 특수 폭탄이었다. 플라스틱 시험관 안에 들어있는 캡슐을 깨뜨리면 시한신관이 작동하면서 정확히 10분 후에 폭발하는 구조였다. 슈타우펜베르크는 회의장에 다소 늦게 들어가 작전 테이블 아래에 폭탄가방을 내려놓았고, 발을 뻗어 다른 참석자들 몰래 그 가방을 히틀러 발 앞에까지 밀어 넣고 회의장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전속부관인 하인츠 브란트(Heinz Brandt) 대령이 그 가방을 발견하고 거추장스러운 가방을 히틀러가 발견하면 싫어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가방을 옆으로 치우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폭탄이 터지면서 지붕이 날아가고 창문이 깨지는 등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폭탄을 자기 쪽으로 치웠던 브란트 대령 등 3명이 즉사하고 참석자들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으며, 히틀러 역시 고막이 터지고 팔과 다리에 나무 파편이 박히는 등 상당한 부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던 것이다. 마침 폭탄이 터질 때 히틀러가 작전지도를 자세히 보기 위해 테이블 깊숙이 몸을 숙인 상태였고, 두꺼운 참나무 테이블이 폭발의 충격을 상당부분 막아주면서 히틀러는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나치 조직은 사건 직후 병력을 동원해 친위대 사령부를 포위하고, 예비군 사령관이었던 프롬 대장에게 병력을 출동시켜 쿠데타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날 오후 히틀러가 자신의 건재함을 발표하자마자 반란군에 대규모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다. 사건 직후 히틀러는 친위대와 게슈타포를 총동원해 가담자 색출에 나섰고, 약 7,000여 명이 체포되고 그 중 5,000여 명이 처형당했는데, 이 가운데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반란 세력으로 몰려 강제 자살로 내몰린 에르빈 롬멜(Erwin J.E. Rommel) 장군도 있었다. 실제로 있었던 김정일 암살 미수 사건 최근 김정은이 주관한 행사장에서 몰래 숨겨 놓은 기관총이 발견되어 관계자가 숙청당했다는 소식처럼 김정은 일가에 대한 위해 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정보기관과 대규모 경호부대를 통해 자신의 주변에 수십 겹의 안전장치를 깔아 놓은 김씨 일가의 조심성 때문에 그동안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김씨 일가에 대한 암살 모의 사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1992년에 있었던 ‘프룬제 아카데미아 사건’이다. ‘프룬제 아카데미아’란 우리나라의 합동군사대학교와 비슷한 개념의 고급장교 보수교육 기관으로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이나 공산국가들의 고급 장교들이 가장 많이 유학했던 교육기관이다. 북한은 현대전에 대비하기 위한 정예 장교를 육성을 목적으로 1980년대 초부터 소련 각 학교기관에 대규모 유학생을 파견했는데, 이들 유학생들은 소련 정보기관 KGB의 최우선 포섭대상이 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최대한의 실리를 챙겨는 노선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입장에서는 북한을 확실히 옭아매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유학 장교들은 유학 장교들 나름대로 유학 생활을 통해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흐루시초프 이후 자유로운 상호 비판과 권력 이동이 이루어지는 소련 체제에 큰 충격을 받았고, 무엇보다 세습적 봉건왕조화 되어가던 북한을 이대로 두면 동구권 국가들처럼 붕괴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들은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안종호 상장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혁명유자녀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만경봉대학원과 남산학교를 거쳐 프룬제 아카데미아에서 수학한 안 상장(한국군 중장 계급에 해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프룬제 출신 장교들은 199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 기념 행사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암살하고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모의하고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거사는 평양방어사령부 예하 전차부대 지휘관을 맡고 있었던 김일훈 소장(한국군 준장 계급에 해당)이 맡기로 했다. 인민군 창건 기념 열병식에서 김일성 광장을 가로지르는 전차부대가 김일성 부자가 위치한 인민대학습당 주석단 정면을 통과할 때 포탑을 돌려 전차포로 주석단을 날려버리겠다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빗나갔다. 열병식에 자신의 부대인 제820기계화군단을 내보내 김정일에게 눈도장을 찍겠다는 박기서 상장이 인민무력부에 압력을 넣어 열병식 참가 전차를 평양방어사령부가 아닌 820군단 전차로 바꿔버렸기 때문이었다. 거사 직후 뒤를 봐주기로 약속했던 KGB의 배신 역시 치명적이었다. 김일성과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이던 김정일에게 접근한 KGB는 “1,000만 달러를 주면 프룬제 아카데미아 유학파 가운데 소련에 포섭된 자와 반란 모의에 가담한 자의 명단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고, 김정일이 이를 수용하면서 암살 계획 전모가 드러났던 것이다. 이후 소련 유학파, 특히 프룬제 아카데미아 출신 고위 장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어졌고, 노동당과 내각, 군부 내에서 소련 유학파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국내파들이 득세하면서 김정일 시대는 ‘철저한 자주노선’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엘리트 장교들이 가담한 암살 모의 사건에 경악한 김정일은 이후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확대 개편해 친정 체제를 강화하고, 평양을 철통같은 보안이 유지되는 철옹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김정은 역시 아버지를 이어 자신의 최측근으로 보위사령부와 호위사령부를 장악하고 세계 최대 수준의 경호 부대를 만들어 자신의 주변을 24시간 지키게 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무작정 경호원을 늘리는 것보다 자신의 곁을 지키는 그 군인들도 본질적으로는 북한의 인민이며, 폭정(暴政)이 계속되어 인민들의 한(恨)이 쌓이면 자신의 경호원들의 총구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오체투지 행진, 광화문광장서 막혀…“비정규직은 일회용 소모품이 아니다”

    오체투지 행진, 광화문광장서 막혀…“비정규직은 일회용 소모품이 아니다”

    ‘오체투지’ 오체투지 행진이 광화문광장에서 멈췄다. 기륭전자(현 렉스엘이앤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법안 철폐를 촉구하며 청와대 쪽으로 향한 ‘오체투지’(五體投地) 행진이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경찰의 제지에 막혔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는 지난 22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회사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를 향해 26일까지 5일간의 ‘온몸’ 행진을 시작했다. 비정규직 관련 법·제도의 전면 폐기를 촉구하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고통을 청와대, 정부, 국회에 알리기 위해서다. 오체투지는 머리, 양팔, 다리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을 이용해 절하는 행위다. 흰 옷을 입은 이들은 북소리에 맞춰 많을 땐 열 걸음, 적을 땐 세 걸음을 떼고 배·가슴, 얼굴을 땅에 묻었다 일어나기를 천천히 반복했다. 한겨울 추위 속에 길 곳곳에 쌓인 눈은 행진단의 팔꿈치와 무릎으로 파고들었다. 이들의 옷은 검게 변했고 머리에는 땀이 맺혔다. 주로 파견·계약직인 이들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지난 2005년부터 1895일 농성 끝에 2010년 사측과 정규직 고용에 합의한 노동자들이다. 2013년 5월 회사에 복귀했지만 일감과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출근만 하던 중 그 해 연말 회사가 사옥을 기습 이전해 빈 사무실에서 농성을 이어왔다. 김소연 전 기륭전자 분회장은 “지난 10년간 고통 속에 싸워왔지만 우리와 900만 비정규직의 현실은 그대로”라며 “이 상황에서 정부가 문제 해결은 커녕 오히려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려고 하는 등 비정규직을 늘리는 종합대책을 내놓는다고 해 행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행진단은 오체투지를 하는 10∼15명과 북을 치거나 플래카드를 들고 곁을 좇는 인원을 합해 70여명 규모다. 이들은 둘째 날인 23일 국회에 도착해 비정규직법 관련 질의서를 전달했고, 다음날 마포대교를 지나 성탄절인 25일엔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에 닿았다. 여의도 LGU+와 파이낸스빌딩 앞 씨앤앰(C&M) 등 같은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마지막 날인 26일엔 오전 9시 30분 광화문광장을 떠나 청운동주민센터로 향한 뒤 오전 11시에 기자회견을 한 후 일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러나 경찰은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이날 행진을 제지했다. 경찰 관계자는 “광화문광장∼경복궁역 구간은 신고도 하지 않았고, 신고한 경복궁역∼청운동주민센터 구간은 폭이 좁은 주요도로여서 금지통고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진 주최 측은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신고를 경찰이 받아주지도 않았다고 맞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왜 떨어졌나요?” 목청 키우는 취업재수생들

    “왜 떨어졌나요?” 목청 키우는 취업재수생들

    #. 2년째 공기업 입사를 준비 중인 김모(28)씨는 지난 10월과 11월 공채 전형에서 탈락한 두 곳의 공기업에 “필기와 면접 점수를 알려달라”며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시험이 끝난 뒤 다른 응시생과 가채점을 해본 결과 비슷한 점수를 받은 것 같았는데 김씨만 떨어졌기 때문. 공기업 한 곳은 김씨의 필기점수를 공개했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공개가 불가하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 웹디자이너 이모(31·여)씨는 대기업에 지원하면서 대학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경력증명서는 물론 업체에서 요구하는 포트폴리오(작품) 등을 정성 들여 제출했다. 불합격 통보를 받은 이씨는 포트폴리오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 측은 거절했다. 이씨는 포트폴리오를 제작하는 데 걸린 시간과 비용도 아깝지만 해당 기업에서 아이디어를 도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3일 취업준비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기업들의 ‘깜깜이’ 채용 관행에 끙끙 앓던 구직자들이 시험 점수를 정보공개 청구하거나 서류 반환을 요구하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 정보공개 청구가 잇따르자 아예 필기 점수를 공개하는 공공기관도 생겼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필기시험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가 많이 들어와 하반기 공채부터 필기점수를 공개했다”며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안’을 마련해 내년부터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이나 공공기관 등은 구직자가 제출했던 서류를 전형 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0명, 00명 모집’이나 ‘협의 후 임금 결정’ 등 관행적으로 기업들이 정보를 제한하는 부분까지 공개가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대부분 공개채용이라고 말하지만 ‘을’(乙)의 입장인 구직자가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라며 “구직자 고충뿐 아니라 채용의 투명성을 위해서라도 필기·면접 점수나 근로조건 공개를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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