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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좀 느리면 어때요… 꿈 포기 마세요”

    “좀 느리면 어때요… 꿈 포기 마세요”

    “7년 동안 열여섯 번을 떨어졌는데, 결국 열일곱 번째에 합격을 했어요. 운 좋게 첫 번째 시험에 합격했더라면 제가 지금과 같은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을까요. 빠르게 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풍경과 자전거를 타면서 보는 풍경은 너무나 다른 거잖아요.” ‘16전 17기’의 도전 끝에 경찰(순경)시험에 합격한 여경이 자신의 ‘도전의 기록’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그는 서울 서대문경찰서 관내 초·중·고교 학교전담경찰관(SPO)으로 근무하면서 “남보다 늦게 출발한다고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라는 교훈을 전하며 상처받고 좌절한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고 있다. 주인공은 지난달 ‘좀 느리면 어때’라는 수필집을 펴낸 서대문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정정화(36·여) 경장. “오랜 수험 생활이 너무 힘들었는데, 그렇다고 합격한 나를 자랑하기 위해 쓴 것은 아니에요.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10대와 20대, 그리고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작은 용기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죠.” 정 경장은 2001년 시험을 준비하면서 학원에서 만나 합격 이듬해인 2008년 결혼한 문준호(37) 경감과의 사이에 아들딸을 두고 있는 워킹맘이다. 수필집을 통해 감추고 싶었던 마음의 생채기까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풀어냈다. 정 경장은 2001년 2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의류업체에 입사했지만 회의를 느껴 6개월 만에 그만두고 순경 공채시험을 준비했다. 공부를 시작한 3년 동안은 필기시험조차 합격하지 못해 한때 ‘이대로 사느니 그냥 죽어 버릴까’라는 극단적 생각까지도 했었단다. 그를 끝까지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은 가족의 격려와 지지였다. 그는 6일 “부모님께서는 ‘되지도 않는 공부 때려치우고 시집이나 가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며 “남편도 끝까지 해보라고 격려를 해 주는 등 힘들 때 가족의 한마디는 정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2007년 순경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편견의 벽을 부수기 위해 정 경장은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 2013년 전보 당시 신상명세서의 학력 기재란에 대학 이름을 썼더니 부서장으로부터 “그냥 전문대라고만 적으면 될 걸 거창하게 대학이라고 쓰느냐”고 자존심 구겨지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정 경장은 학력에 의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악착같이 일을 했다. 하지만 그런 욕심이 아이들에게는 ‘버럭 엄마’로 받아들여진 것을 보고 놀랐단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하는 실수인데, 내 아이를 완벽하게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화를 내는 자신을 보고 스스로 놀랐던 적이 있어요. 부담감을 내려놓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정 경장은 지난해 7월부터 학교전담경찰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관내 학교에서 범죄 예방교육 등을 할 때마다 ‘꿈’에 대한 물음을 학생들에게 던졌다. 그러나 학년이 높아질수록 ‘꿈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 경장은 “고학년일수록 ‘꿈이 없다’고 답한다”며 “요즘 학생들은 ‘대학에 안 가도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래서 그는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 ‘자신만의 속도’가 있기 때문에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나만의 목표’를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글 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단원고 학부모들, “교장 교체 반발” 교사들과 몸싸움까지…무슨 일 있었나

    단원고 학부모들, “교장 교체 반발” 교사들과 몸싸움까지…무슨 일 있었나

    ‘존치교실’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장 교체에 반발해 교사들과 몸싸움까지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단원고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에 따르면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 20여명은 전날 오후 2시 30분부터 단원고 교장실에 모여 긴급회의를 열고 현 추교영 교장 전보와 존치교실 원상회복 등을 논의했다. 학부모들은 이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이 사용하던 ‘존치교실’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3월 1일자로 현 교장의 전보 인사가 단행된 데 대해 성토했다.일부 학부모는 교감, 교사 등과 신체접촉까지 벌였으며, 교무실로 몰려가 항의하면서 교무실 집기와 비품 일부가 파손되기도 했다고 현장 목격자는 전했다. 당시 교무실에는 교사 10여명이 나와 전보 발령 등으로 책상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일부 학부모는 존치교실로 가서 당장 철거하겠다고 나섰으나 교사들이 이를 말려 더 이상의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추 교장은 오후 5시쯤 학교에 나와 “문제 해결을 위해 교육청 못지않게 노력하고 준비했으며 학교를 떠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고, 학부모들은 오후 7시쯤 돌아갔다.학부모들은 “학부모들은 교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장을 보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22일 오후 예정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막지 않기로 했다.앞서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들은 “존치교실 앞에서 아이들이 심리적 불안감, 우울감, 억압감, 죄책감, 표현의 제한 등으로 정상적인 교육을 받기 어려운 상태”라며 “단원고 학생들도 다른 학교 학생과 동등한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지난 16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저지한 바 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김수영 서울 양천구청장

    [자치단체장 25시] 김수영 서울 양천구청장

    “목동 어머니들이 이렇게 혁신교육지구에 열정적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이미 주민들은 지금의 삶의 방식이 행복한가 고민하고 있었던 거죠. 변화의 주체요? 요즘 주민들이 구청장이나 공무원이 뭘 하자고 끌고 가면 그대로 가나요. 변화의 주체는 주민입니다. 제 역할은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같이 이야기하고 대안을 찾는 소통의 물꼬를 트는 거죠.” 서울 양천구 목동은 강남구 대치동, 노원구 중계동과 함께 한국 대표 3대 학군이다. 그래서 유난히 치맛바람도 세고 학원도 많다. 이런 양천에서 지난해 연말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1년 넘게 노력한 끝에 양천구가 서울형 혁신교육지구 사업에 선정됐는데 예산이 구의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목동 학부모들이 의원들을 직접 압박한 것이다. 입시 교육이라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 있는 목동에서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18일 “오히려 우리가 너무 늦은 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서 “혁신교육 하자고 옆구리만 쿡 찔렀는데 생각지도 않은 동력이 주민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 학군’으로 불리는 양천구의 교육 방식을 어떻게 바꾸자는 생각을 했을까? 김 구청장은 “대입과 관련한 수많은 성공 신화 뒤에는 더 많은 실패라는 현실이 있다”면서 “나도 다른 엄마와 똑같이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 공부를 제대로 못 봐 준다는 죄책감 때문에 학원 뺑뺑이를 돌렸지만 우리 아이도 나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대학을 잘 가고 못 가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삶 속에서 느낀 것을 정책으로 만든다’는 구정 철학대로 행정을 펼쳤다. 그래서일까. 김 구청장이 내놓은 정책 대부분은 교육, 경력단절여성, 대안적 경제, 육아 등 생활에 발을 ‘착’ 붙인 것들이다. 곱상한 얼굴에 전 구청장의 부인. 겉보기로 등급을 매기면 김 구청장은 영락없는 ‘금수저’급이다. 그런 그가 엄마들의 고민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까? 김 구청장은 “남편을 잘 만나서”라며 호탕하게 웃더니 “처음에는 나도 금수저 인생을 살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수저 자체가 없더라. 그러는 새 두 살배기 애를 업고 회사도 나가 보고, 우리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은 학교 보낼까 학원 뺑뺑이도 돌려 봤다. 내가 잘나서 현실을 아는 게 아니라 살아 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이거 좀 바꿔 보자고 내놓는 것들이 (정책의)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학원 원장부터 벤처회사 임원까지 생활인으로서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사실 흙수저 인생은 그가 알아서 찾아간 길이다. 문학평론가를 꿈꾸며 1983년 이화여대 국문과에 입학했던 김 구청장은 소위 운동권 학생이 됐다. 김 구청장은 “1학년 때 지적 호기심이 왕성해 문학학회를 들어갔는데 김수영, 정지용 등 생전 처음 듣는 시인들의 작품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참여주의 문학작품을 읽다가 사회과학 , 한국 근현대사, 서양 경제사 등으로 범위가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문제로 시선이 옮겨 갔다”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뜰 때 군부 독재라는 현실이 들어왔고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돌아봤다. 초·중·고교 12년을 개근했던 그는 학생운동도 참 근면 성실(?)하게 했다. 김 구청장은 “다른 사람은 몰래 연애도 하고 그랬는데 바보처럼 남자 한명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다”며 웃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당선되는 순간 수배자가 된다는 총학생회장 자리에 올랐다. 김 구청장은 “내가 요령이 없어서 총학생회장이 됐다”면서 “당시에는 총학생회장을 하려면 학점이 어느 정도 돼야 했는데 같이 운동하던 사람들 중에 성적이 되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내가 공부를 잘했다기보다 수업을 빼먹지 않아서, 그리고 당시만 해도 교수님들이 데모하는 학생들 점수를 박하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김 구청장은 학생·노동운동으로 3번이나 옥살이를 했다. 김 구청장은 “많은 이들에게 배웠던 시기다. 심지어 공장과 교도소에서도 배울 게 많았다”면서 “1986년 서강대 총학생회장을 했던 남편 이제학을 만난 것도 이 당시”라고 전했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한 김 구청장은 이후 여성정치운동에 뛰어들었다. 본격적인 ‘엄마 정치’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국회의원 사무실, 여성희망일터지원본부장, 민주당 여성리더십센터 부소장 등을 맡으며 조금씩 내공을 쌓아 갔다. 여의도로 무혈입성할 기회도 있었지만 정치인의 필수 조건(?)이라는 ‘뻔뻔함’이 부족해 양보만 하고 지냈다. 그러던 중 남편 이제학 전 구청장이 2011년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하자 “내가 구청장이 되겠다”고 나서 재수 끝에 2014년 양천구청장이 됐다. 이 때문에 김 구청장을 이 전 구청장의 ‘정치적 아바타’라고 공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오랫동안 김 구청장 부부를 봐 온 손모(44)씨는 “김 구청장은 내조자라기보다 자기 정치를 해 온 사람”이라면서 “굳이 따지자면 내조형인 바버라 부시(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보다 힐러리 클린턴 같은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김 구청장은 “남편이 구청장을 먼저 지냈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오해”라며 웃어넘겼다. “떠드는 것보다 일하는 게 좋다”는 김 구청장이 들어온 뒤 양천구는 허황된 개발 청사진 대신 생활을 바꾸는 정책을 중심으로 구정을 바꾸고 있다. 김 구청장은 “올해 서울형 혁신교육지구로 선정돼 서울시와 교육청으로부터 10억원의 예산을 받은 것에 5억원을 더해 마을방과후 강사 양성과 진로직업교육 등 5개 분야 23개 사업을 진행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방과후학교 등을 연계한 사회적기업 건립도 계획하고 있다. 엄마들이 교육을 받은 뒤 아이들 방과후 교사가 되는 시스템을 마련해 혁신교육과 일자리 창출 사이에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을 사회적기업과 청년 창업의 허브로 만들기 위한 작업도 하고 있다. 김 구청장은 “올해 목5동 주민센터를 리모델링해 ‘사회적기업 허브센터’를 만드는 사업을 할 것”이라면서 “우리 지역을 청년 기업가들의 요람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프라 구축도 삶의 수준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대표적인 게 지역의 산과 길, 하천과 공원을 연계하는 총연장 24.5㎞를 잇는 ‘양천 둘레길’ 사업이다. 김 구청장은 “현재 3단계 사업 중 1단계 사업인 산지형 코스 7.2㎞(지양산~매봉산~신정산)를 지난해 12월 완료했다. 올해는 용왕산에서 갈산, 안양천까지 이어지는 2단계(7.9㎞) 사업과 목동 중심축 걷고 싶은 거리에서 근린공원까지 이어지는 3단계(9.4㎞) 사업을 동시에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김 구청장은 “가족이 행복한 정치, 엄마가 행복한 정치를 하고 싶다”면서 “그런데 이런 일은 혼자 못 한다. 주민들과 진짜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이 무엇인지 찬찬히 고민하면서 실행하고 싶다”고 답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 집단 행동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을 위한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추모교실 존치 문제를 두고 찬반 논란이 거센 가운데 재학생 학부모들이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재학생 학부모 30여명은 16일 오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장에 미리 들어가 출입문을 모두 걸어 잠그고 신입생들의 입장을 막아 행사를 무산시켰다.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가 주축이 된 ‘단원고 교육가족’은 경기도교육청이 오는 19일까지 추모교실 존치 여부에 대한 확답을 제시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교내에 출입할 수 없도록 저지하고 교육활동도 전면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재학생 학부모들은 “존치교실 앞에서 아이들이 심리적 불안감, 우울감, 억압감, 죄책감 등을 느끼며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기 어려운 상태”라면서 “참사의 아픔과 교훈을 기억하고 추모도 해야 하지만 학업을 중단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주장했다. 장기 단원고 학교운영위원장은 “교실 정리 기간을 고려하면 늦어도 이번 주 안에는 교육청이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며 “대책이 안 나오면 재학생 방과후 수업을 거부하거나 교육청으로 등교시키겠다”고 말했다. 희생자 유족인 416연대와 416가족협의회는 “단원고가 416교육체제의 중심에 서서 새로운 교육을 실천하지 않고 교실부터 빼내 기억을 지우려고 한다”며 교실 존치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이날 간부회의에서 “졸업식(지난 1월 12일) 때까지만 (기억교실로) 유지하자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 교실은 본래의 교육 목적대로 써야 한다. (신입생 입학 때까지) 시간이 얼마 없지만 정상화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두 타이완 기록자의 일기②그 여자의 일기,남쪽의 이야기를 들려줘-가오슝

    두 타이완 기록자의 일기②그 여자의 일기,남쪽의 이야기를 들려줘-가오슝

    ●가오슝 명랑하지만 우수에 젖은 눈빛을 가졌다. 네모난 창고를 수십 가지의 변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힘, 그리고 매일 저녁 앞바다로 떨어지는 석양을 즐길 줄 아는 감성. ▶버려진 부두 창고를 찾아가는 이유 보얼예술특구The Pier-2 Art Center 굳이 따지자면 보얼예술특구는 ‘가오슝’이란 이름 옆에 꼭 따라 붙는 짝꿍이다. 호기심이 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부두 창고를 허물지 않고 새 옷을 입혀 놓았다고 하니 눈이 번뜩 뜨인다. 모두와 마찬가지로 가오슝 옆에 보얼예술특구를 적어 넣고 일정을 시작한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무려 세 블록 이상을 차지한 보얼예술특구는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띄엄띄엄 놓여 있는 창고는 겉모양은 똑같건만 안을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의 숍이 들어서 있다. 레스토랑, 카페, 갤러리, 편집숍, 공연장 등이 그것. 주기별로 지역 아티스트들이 입점해 각자의 실력을 뽐내기도 한단다. 창고 사이사이에는 여러 가지 설치작품이 자리하고 있고, 가끔씩 재치 넘치는 낙서를 발견할 수도 있다. 가오슝의 노동자를 상징하는 남녀 조각상은 보얼예술특구의 마스코트. 공연장은 물론이고 곳곳에서 수시로 공연과 전시가 진행되는 것도 이곳의 매력이라 하겠다. 덕분에 발에 땀이 나도록 걸었다. 숍 하나를 둘러보고 나오면 또 다른 숍이 눈길을 끌기 때문.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의 지친 표정은 마음만큼 몸이 빠르지 못해서 나타나는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은 관광지를 둘러보듯 욕심을 내는 대신, 집 앞의 공원을 산책하듯 여유를 부려야 한다. 보얼예술특구를 관통하는 철길은 우리의 산책에 운치를 더해 줄 것이다. 실제로 이곳 주민들은 보얼예술특구에 자리한 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게으름을 부리거나, 연을 날리며 시간을 보낸다. 때가 되면 예술특구 안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공연을 보는 식이다. 나우 & 댄NOW & THEN by nybc모던한 스타일의 브런치 레스토랑. 잡지 속에서 갓 튀어나온 듯 세련미가 묻어난다. 때문에 보얼예술특구 내 여러 레스토랑 중에서도 사람이 많은 편에 속한다. 샐러드, 버거, 파스타 등의 요리와 커피를 제공한다. C9-19, Dayi St, Yancheng District, Kaohsiung City +886 7 531 6999 오픈더박스Open the Box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 아티스트인 박스Box의 레지던스. 보얼예술특구는 주기별로 아티스트의 개별 부스를 운영하는데, 박스 또한 그중 하나다. 직접 제작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엽서, 포스터 등의 크기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화폭을 가득 채운 세밀한 손길이 느껴지는 그의 작품은 타이완의 전통 양식과 결합돼 더욱 오묘한 맛을 가지고 있다. Dayi St, Yancheng District, Kaohsiung City theboxadventure@gmail.com 하오디Haody‘100% 타이완 메이드’를 표방하는 하오디는 도자기, 나무 등을 이용한 주방용품을 선보이는 곳이다.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묵직한 도마부터 간결함이 묻어나는 찻잔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수공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각 제품의 가격은 기대를 뛰어넘는 편이지만, 하오디가 아니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제품이기 때문에 결국 지갑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C8-15, Dayi St, Yancheng District, Kaohsiung City www.haody.tw 툴스 투 리브바이Tools to Liveby문구점에만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당신에게, 툴스 투 리브바이는 새로운 차원의 문구류를 소개하는 곳이다.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수입한 최고급 문구류 편집숍으로 빈티지한 디자인을 입은 상품들을 전시 및 판매하고 있다. 다양한 크기의 가위부터 시작해 만년필, 잉크, 클립까지 어느 것 하나 눈길 가지 않는 것이 없다. 인기 품목은 쉽게 동나는 편이기도 해서 망설이는 것보다는 과감히 지르는 것을 추천한다. 타이베이에도 지점이 있다. C6-10, No.2, Dayi St., Yancheng District, Kaohsiung City +886 7 521 6823 www.toolstoliveby.com.tw ▶씽씽 섬 끝까지 달려라 치진섬Cijin Island 가오슝 항구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는 치진섬은 이곳 주민들의 데이트 코스이자 나들이 장소다. 치진섬으로 가는 페리 선착장에는 갓난아이부터 노인까지 총집합해 줄이 선착장 너머까지 이어져 있다. 그나마 페리가 10분에 한 대씩 오가는 덕분에 긴 줄을 기다리는 마음이 한결 다행스럽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치진풍경구’란 이름은 그냥 붙은 것이 아니다. 사찰, 등대, 해산물거리, 해변까지 즐길거리, 먹거리가 가득하다. 선착장에 내려 자전거를 빌리면 곳곳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선착장과 바로 맞닿아 있는 해산물거리로 들어서면 치진섬 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해산물거리’란 이름은 이 골목의 많은 가게들이 싱싱한 해산물을 요리해 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인근에서 잡아 올린 해산물이 매대에 펼쳐져 있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바로 요리해 주는 방식이다. 팔뚝만한 생선 한 마리를 사는 데 40타이완달러(한화 약 1,400원)니 다른 건 다 제쳐 두더라도 해산물만은 포기해선 안 된다. 배를 너무 많이 채웠다는 죄책감이 들면, 톈후궁을 갈 시간이다. 삼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톈후궁은 가오슝에서도 제일 오래 된 도교 사원이다. 번잡한 해산물거리에 바로 접해 있어 그 위엄이 조금 퇴색되어 보이지만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은 지극하다. 모서리가 둥글게 닳은 문턱을 넘으면 둥글고 평안한 삶을 위해 올리는 기도가 가득하다. 해산물거리에서의 식탐이 체중 증가로 되돌아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이 우선, 그리고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평안을 기도한다. 도로를 따라 빼곡하게 맞닿은 노점상들을 따라가다 보면 치친섬의 명물 해변을 만나게 된다. 검은색을 띠는 모래가 양쪽으로 펼쳐진 검은 모래 해변이다. 까칠할 것 같은 색깔에도 여느 해변 못지않게 보드랍고 포근한 감촉을 자랑하니, 역시 겉모습으로 속단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날씨 좋은 주말, 해변을 찾은 주민들은 아이들과 모래 장난을 치거나 공원 곳곳에서 열리는 거리공연에 동참해 여가를 즐긴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가오슝 전경 다거우 영국영사관The British Consulate 항구 인근을 따라 여정을 이어가다 보면 가오슝 해안가 왼편 끄트머리에서 영국영사관에 닿게 된다. 1865년에 지어진 영국영사관은 영사관 터를 물색하던 영국이 가오슝에서 가장 전경이 좋은 이곳 언덕을 발견해 만들어졌단다. 실제로 영국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영국영사관에 서면 사방으로 가오슝의 바다, 가오슝 내륙이 360도로 펼쳐진다.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 시간에 특히 빛을 발하는데, 노을이 지는 가오슝 앞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으면서 반대편으로는 불빛이 차츰차츰 더해지는 시내 풍경이 일품이다. 여기에 노란 조명을 받은 우아한 영국영사관의 자태가 운치를 더한다. 영국영사관은 옛 건물의 골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간단한 디저트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로 변신했다. 이 분위기를 좀 더 깊게 느끼고 싶다면 카페에서 잠깐의 여유를 갖는 것도 좋겠다. 영국영사관에서 가오슝 앞바다 방면으로는 작은 공원이 조성돼 있다.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치진섬도 보인다. 항구를 이용하는 크고 작은 배가 줄지어 지나가는 동안 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낚시대를 바라보거나, 나란히 앉아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화려한 놀거리가 없어도 때로는 소박한 즐거움이 시간을 충만하게 채워 줄 수 있음을 깨닫는 저녁이다.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사진 차민경 기자, Travie writer 김봉수 취재협조 내일투어 02-6262-5000타이완관광청 www.taiwan.net.tw, 브이에어 www.flyvair.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김기중 기자의 교육 talk]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나쁘다고 말한 사람이 더 나빠!” 큰애가 소리를 꽥 지르더니 입을 삐쭉 내밉니다. 동생이 자기 보드게임을 허락도 없이 했다며 말도 없이 보드게임을 뺏길래 제가 “그건 나쁜 행동이야”라고 했더니 화를 냅니다. 아빠 입장에선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었는데 큰애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입니다. 큰애는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소파에 있던 쿠션을 들어 힘껏 내던집니다.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발이 아플 정도로 쿵쿵 굴러대고 거실을 돌아다니다 급기야 베란다 출입문을 발로 찹니다. ‘아니, 이놈의 자식이!’라는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더니 아내가 옆에서 팔을 잡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더이상 화내지 말라는 겁니다. 큰애가 일곱 살이 되더니 이상해졌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면 쉽게 화를 내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수많은 유아 교육 책과 TV에 나오는 전문가들은 ‘성장 단계에 따른 자연스런 행동’이라고 쉽게 정의합니다. 하지만 옆에서 보고 있는 저는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부모가 이럴 때 할 수 있는 행동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①그냥 무시하거나 ②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하거나 ③조용조용 잘못을 지적하거나 ④큰 소리로 혼을 내거나 ⑤때리거나 등입니다. 구정 연휴 동안 아이와 있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저는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다섯 가지 선택 중에서 주로 ③번을 택했습니다. ④번도 적잖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⑤번을 택할 뻔도 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이유가 뭘까요? 효과가 즉각적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효과에 비해 그 후유증은 큽니다. 저는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꽤 많이 맞았습니다. 동네 전자오락실에 가려고 부모님 지갑에서 돈을 훔치다가 걸려 호되게 맞기도 했고, 옆집 형의 샤프펜슬을 훔치고 동생을 괴롭혔다고 두들겨 맞기도 했습니다. 일일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맞을 때 겁에 질려 울면서 무릎 꿇고 싹싹 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의 기억과 당당하게 마주하고 어머니를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부모의 자녀 학대 기사가 요즘 연달아 보도되고 있습니다. 인천 11세 소녀를 감금하고 학대한 부모에 이어 7세 아들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부모의 사건. 11세 딸을 무차별적으로 때려 숨지게 한 목사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남편과 불화로 가출한 40대 주부가 7세 딸을 폭행하고 시신을 야산에 암매장한 사실도 5년 만에 밝혀졌습니다. 기사를 읽다 보면 가슴이 뛰고 손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입니다. 이 부모 모두가 자기 자녀를 학대한 것을 쫓아가면 그 첫 단추는 결국 ‘폭력’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도 처음엔 그렇게까지 잔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폭력이 익숙해지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참변이 난 게 아닐까요. 수치심을 주고 죄책감이 들게 하고, 아이를 길들이겠다며 폭력을 쓰는 것으로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탤런트 김혜자씨가 세계 곳곳의 버려진 아이와 부녀자를 찾아 이들을 도운 체험을 쓴 수필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가 생각납니다. 진심을 전달하는 수단은 매질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gjkim@seoul.co.kr
  • 어느 직장에나 있다…5가지 ‘성격이상자’와 대처법

    어느 직장에나 있다…5가지 ‘성격이상자’와 대처법

    어떤 직장이든 성격적 결함으로 다른 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상사나 동료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이들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정리하고 각 유형에 대한 정신적 대처법을 내놓아 관심을 끈다. 10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은 미국 UCLA 심리학과 교수 주디스 올로프 박사가 말하는 ‘직장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인물 유형 5가지’를 간략히 소개했다. 그 중 첫 번째는 나르시시스트(Narcissist, 자아도취자) 유형이다. 이들은 자신을 중시하며, 관심에 목말라하고, 늘 칭송받길 원한다. 일반적으로 미움을 받을 것 같은 성격이지만, 때로 꽤 매력적 인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매력이 있건 없건 타인을 하찮은 존재로 만들며 마음대로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교수는 설명한다. 따라서 만일 직장에 나르시시스트가 존재한다면, 이들의 비위를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조종당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감정에 호소하기 보다는 그들이 좋아할만한 형태로 꾸며 말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예컨대 나르시시스트 상사에게 휴가를 요청해야 한다면 “요즘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제가 이 기간 동안 쉰다면 업무 효율을 높여 회사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고 교수는 충고했다. 두 번째 유형인 ‘분노중독자’(anger addict)는 직장에서의 모든 갈등을 상대에 대한 비난, 공격, 모욕 등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타인의 자존감을 깎아내려 정서적 피해를 입히며, 자신의 잘못은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교수는 설명한다. 이런 분노중독자를 상대하다 보면 스스로 분노에 휩싸여 추후에 후회할 말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교수의 조언이다. 세 번째 유형인 수동 공격자(passive-aggressor)는 분노중독자와 유사하지만, 더 교묘한 형태로 상대를 공격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짜 미소를 짓거나 마치 상대를 우려하는 것처럼 꾸며 자신의 비난과 분노를 감추기 때문에 진의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수동 공격자를 상대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그들로 인해 느끼는 모욕감이 나 혼자 만들어낸 착각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박사는 “그러나 이들의 태도에서 불쾌함이 느껴진다면 착각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동을 탓해도 좋다”고 전했다. 다음 유형인 ‘죄책감 전도자’(guilty-tripper)는 “책임전가의 귀재”라고 교수는 말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해 자기 부탁이나 요구를 들어주도록 유도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죄책감 전도자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면 “완벽한 사람(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관념을 버리는 것이 좋다”고 교수는 조언한다. 만약 죄책감 전도자가 당신의 실수를 이용하려 들면, 순순히 사과하고 잘못에 대해 적합한 수준의 책임을 져 사태를 마무리해 버림으로써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하자. 교수는 “이들은 자기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에게는 쉽게 흥미를 잃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유형은 ‘험담꾼’(gossip)이다. 이들은 직장 내 스캔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이들이 거론하는 가십의 직접적 대상이 되는 것도 물론 모욕적인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남의 이야기를 몰래 퍼뜨리는 그들의 행태 자체가 불쾌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을 ‘교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차라리 관심을 끊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교수는 말한다. 그는 “사실상 험담꾼들을 억제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그들의 발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게 된다”고 조언했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쉰들러리스트 수용소장이 내 할아버지라니”…독일 흑인의 절규

    “쉰들러리스트 수용소장이 내 할아버지라니”…독일 흑인의 절규

     영화 ‘쉰들러리스트’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나치 수용소장이 자신의 외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독일 흑인여성의 영화 같은 삶이 심금을 울리고 있다.  9일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책 ‘내 할아버지는 날 쏴죽였을 거야 : 한 흑인 여성이 가족의 나치 과거를 발견하다’의 저자 예니퍼 테게(45·)는 최근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 강연에서 자신의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담히 털어놨다.  나이지리아 유학생인 부친과 독일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테게는 생후 4주 만에 독일 뮌헨의 한 가톨릭 보육원에 맡겨져 수녀들의 손에 의해 자랐다.  가끔 딸을 보러 보육원에 들르던 생모는 딸이 3살 때 입양가정에 들어가면서 발길을 끊었다가 21살이 되던 해부터 다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당시 뮌헨에서 보기 드문 흑인 여성으로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면서도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을 나와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등 안정된 삶을 살던 테게가 끔찍한 진실과 마주한 것은 38살이 된 2008년 8월 어느 날이었다.  그는 심리학 서적을 찾아보러 함부르크 중앙도서관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생모가 쓴 책을 발견했다.  도서관에서 집어든 빨간색 책을 넘겨보다가 표지에 실린 흑백사진의 주인공이 친모인 모니카 괴트라는 사실과 함께 악명높은 나치 간부 아몬 괴트(사진)가 바로 자신의 외할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아몬 괴트는 폴란드 푸아쇼프 강제수용소장을 지내며 유대인 8000명 학살에 관여한 인물로 교수형을 받는 순간까지 ‘하일 히틀러’(히틀러 만세라는 뜻의 나치 구호)를 외친 골수 나치당원이었다.  특히 1993년 영화 ‘쉰들러리스트’에서 유명 배우 랠프 파인즈가 괴트로 분해 실감 나는 악역 연기를 선보여 악명이 더욱 널리 퍼진 상태였다.  역사에 기록된 악당과 자신이 가족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테게는 거울을 들여다본 뒤 턱선, 코와 입 사이의 주름이 괴트와 닮았단 사실을 깨닫고 “외할아버지로부터 내가 뭔가를 물려받았을까”라는 두려움에 떨었다고 전했다.  흑인 혼혈인 자신은 나치의 이상형인 순수 아리아인과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외할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나를 죽였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고까지 털어놨다.  유달리 이스라엘 친구들이 많았다는 사실도 죄책감을 더했다.  테게는 소르본 대학에 다닐 때 사귄 이스라엘 친구 집에 여행을 떠났다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귀국 비행기를 놓친 뒤 아예 눌러앉아 텔아비브 대학에서 중동·아프리카학과 히브리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이스라엘을 (여행지로) 골랐고 비행기를 놓쳐 눌러앉은 이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비밀을 알게 된 지 2년 만에 홀로코스트 생존자였거나 희생자의 후손인 이스라엘 친구들에게 자신이 수용소장의 손녀라는 사실을 털어놨으나 예상 외로 친구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를 위로했다고 한다.  비극에 맞닥뜨린 테케의 선택은 일을 그만두고 모친의 책과 관련 다큐멘터리, 온라인 검색 등을 통해 어두운 가족사를 정면으로 파헤쳐 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를 책으로 공개한 테게는 자녀들에게도 가족사를 이야기해줬다면서 “아이들이 나처럼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정신적 충격에 빠지지 않기를 바랐다. 다만 영화 ‘쉰들러리스트’는 좀 더 나이가 들면 보여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인생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 나아졌다”며 “이제 더는 외할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다만 충격적 진실을 극복한 테게와 달리 모친과 외할머니는 트라우마와 혼란 속에 일생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테게의 저서를 보면 외할머니인 루트 이레네 칼더는 자신의 딸이자 테게의 모친인 모니카에게 괴트는 “전쟁영웅”이자 희생자라고 강변해오다 1983년 자살 직전에야 “내가 사람들을 도와줬어야 했다”며 후회하는 말을 남겼다. 모니카 역시 유대인 희생자와 함께 촬영한 다큐멘터리에서 “아버지는 유대인들이 전염병을 퍼뜨렸기 때문에 그들을 쏜 것”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테게는 “(전쟁) 2세대는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마주하는 데 큰 어려움을 갖고 있지만 우리 세대는 다르다. 우리는 책임과 죄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며 조상의 죄가 후손 개개인에게 상속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목사 아빠’ 후회하는 기색 없었다

    ‘목사 아빠’ 후회하는 기색 없었다

    주민 야유 속 “우리도 책임” 한탄도 경찰 “덤덤히 재연”… 부부 구속 수감 “왜 얼굴을 가려요. 저런 사람들도 인권이 있습니까.” “뭐 잘한 게 있다고 차에다 모시고 다닙니까.” 딸을 마구 때려 사망케 하고 11개월간 집 안에 시신을 방치한 혐의(아동학대치사 및 사체유기)를 받고 있는 아버지 이모(47)씨와 계모 백모(40)씨를 태운 경찰 호송차가 5일 오전 11시 50분쯤 부천 소사구에 있는 부부의 집 골목에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주민 100여명의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다. 주민 김모(46)씨는 “시신이 집 안에 있는데도 11개월이나 아무도 몰랐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며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게느냐”고 한탄했다. 집 앞에 호송차가 멈추자 포승줄에 묶인 이씨 부부가 차례로 내렸다. 이들은 두꺼운 점퍼에 하늘색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둘은 “목사로서 죄책감이 없느냐, 딸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장검증은 1시간여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씨 부부는 나무막대와 빗자루로 딸의 손바닥, 팔, 허벅지 등을 5시간가량 때리는 것을 재연했다. 딸의 사망 이후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정체불명의 가루를 시신에 뿌린 후 이불을 덮는 모습, 그래도 시신에서 썩는 냄새가 나자 여러 개의 촛불을 피우는 장면 등도 보여줬다. 경찰 관계자는 “부부 모두 그동안 진술했던 내용대로 당시 상황을 태연하고 무덤덤하게 재연했다”며 “후회하거나 당황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현장검증 후 부부는 빠르게 호송차에 올라탔다. 사라져가는 호송차 뒤로 주민들은 다시 한번 비난을 퍼부었다. 집 현관 앞에는 누군가 숨진 막내딸을 기리기 위해 놓아둔 국화꽃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경찰은 이날 오후 이씨 부부를 구속하고 추가 조사를 한 뒤 다음주에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예정이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32] 오늘 당신이 암 선고를 받는다면

    잊을 수 없는 친구 얘기부터 할까 합니다. 그냥 만나면 좋고, 못 만나면 그만인 사람이 아니라 나중에 일 할만큼 한 뒤에는 어디로든 함께 떠나 허름한 초막이라도 엮어 함께 노후를 보내자고, 그러다가 눈을 감으면 남은 사람이 뒷처리를 해주는 장례부조 약속까지 한 터이니, 살붙이 같은 친구였지요. 그 친구는 술을 좋아했습니다. 저와 만나면 계산이나 잇속을 따져 한 자락 깔거나 그딴 짓 하지 않고 술잔을 건넬 수 있어 참 좋다고 말해 쌓던 그 친구는 자기 삶에 대한 열정이 넘쳐 세상 일에 자주 분개했고, 콧물을 훌쩍이며 뭔가에 대한 연민에 가슴 아려하기도 했었지요. 그러던 친구가 어느 날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흔한 일이니 이상할 것도 없이 만나 소줏잔을 비우다가 일어났는데, 갈림길에 다다르자 그가 제 어깨를 감싸더니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야, 나 암이래. 두경부암”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게 벌써 취했나’ 싶어 다그치니 사실이었습니다. 씩씩한 척 말은 했지만 눈시울이 젖어 있었습니다. “며칠 됐는데, 아직 식구들한테 말도 못 했어”라면서 껴안는데,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그게 벌써 십 수년 전, 나이 마흔도 되기 전에 그가 받은 암 진단이 얼마나 두렵고 막막한 ‘선고’였겠습니까. 할 수 있는 것 다 했지만, 끝내 그 친구를 살려내지 못 했습니다. 늦은 결혼 탓에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하나 달랑 남겨두고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상처가 깊었습니다. 오랫동안 그 친구의 얼굴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상실의 공허를 감당하지 못해 한동안 세상을 겉돌기도 했습니다. 다른 일로도 몇몇 친구를 잃었지만, 내게는 그만한 아픔이 없었던, 어제일 같은 기억입니다. 그 때부터 ‘암’은 내게 막연하나마 불가항력의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는 세포입니다. 이 세포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정상 세포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자의 비정상적인 변이에 의해 생기는 세포입니다. 후자를 우리는 암이라고 말합니다. 정상적으로 세포는 세포 자체의 조절기능에 의해 분열하고, 성장하며, 나중에는 죽어 없어져 일정한 세포 수를 유지합니다. 이런 경우라면 어떤 원인으로 세포가 손상을 받아도 치료를 통해 회복해 정상 세포로서의 역할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사멸해 없어지므로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슨 연유에선지 세포의 유전자에 변화가 일어나면 비정상적으로 세포가 변이하면서 불완전하게 성숙하고, 과다하게 증식하는데, 이것이 바로 암(cancer)입니다. 정상 세포와 암세포는 다른 특성을 보입니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가 드러내지 않는 능력, 이를테면 주변의 조직이나 장기에 침입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정상 세포를 파괴하고, 이로 인해 신체 기능을 극한까지 떨어뜨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암세포는 증식을 억제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는 치료가 어렵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증식을 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상 세포를 파괴하거나 장기와 조직을 망가뜨리는 ‘짓거리’를 막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니 암이 두렵다고 여길 밖에요. 지금도 그런 인식이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니지만, 20년전, 아니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암 진단을 받으면 세상이 끝났다고 여겼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절박한 심정에 전국의 병원과 의사를 다 찾아 다니고, 한방에 민간요법까지 아는 대로 다 해보고, 그것도 모자라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웃지 못할 일들이지요. 정황이 이러니 환자가 차분하게 치료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환자는 낙담 천만인데, 주변에서 더 호들갑을 떨어대고, 마치 환자가 죽을 날이라도 받아든 듯 야단법석들이었지요. 암은 불치병이 아니며, 그러니 환자가 최적의 치료를 받아 완치해야 하며, 그러려면 환자의 심리를 파악해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은 그 후의 일이었습니다. 이 단계에 들어서 비로소 ‘환자의 단계별 심리’라는 그럴듯 한 반응체계가 제시됐습니다. ●‘충격’과 ‘현실인식’ 그리고 ‘달관’ 의사로부터 최종적으로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환자가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감정은 충격과 불안 그리고 그런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 의식입니다. 이걸 심리반응 1단계라고 합니다. 암이라는 사실을 안 환자의 첫 반응은 대부분 “내가 그럴 리가 없다”, “믿어지지 않는다”라는 식입니다. 환자는 이런 부정 의식을 통해 내면의 불안감을 소멸시키려고 하는데, 이는 일종의 심리방어 기전에 해당합니다. 사람들이 갖는 불안감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생성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유나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고, 실체를 모르는 현상이나 대상과 마주칠 때 발현된다는 특성을 갖습니다. 따라서 환자가 느끼는 불안을 해소하거나 줄이기 위해서는 불안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만으로도 불안의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심리 전문가들의 견해이고 보면, 가족이나 의료진이 환자를 위해 1차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은 나와있는 셈이지요. 환자가 느끼는 막연하지만 강한 불안을 구체적인 불안으로 환치시킨 뒤 이를 해소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환자가 ‘나의 병은 고칠 수 없다’고 믿는다면 ‘아니다. 고칠 수 있다’,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해야 하고, ‘나는 곧 죽겠지’라고 자포자기한다면 ‘그렇지 않다. 넌 죽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지요.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에 대처하는 방식은 모두가 다릅니다. 누군가는 ‘그래. 여기까지야’라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이런 것 쯤이야’라며 맞서는 자세를 보이기도 하지요. 여기서 두려움을 좀 더 구체적으로 특정해 볼까요. 불안의 실체를 알면 대응책을 찾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환자를 좀 더 효율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고, 그래야 긍정적으로 치료를 수용해 완치에 더 쉽고 빠르게 다가서니까요. 흔히 환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가족과 친구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자기조절능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 ▲육체의 상실과 무력감에 대한 두려움 ▲고통과 괴로움에 대한 두려움 ▲정체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 ▲슬픔에 대한 두려움 ▲퇴행에 대한 두려움 ▲절단과 부패, 매장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있으며, ▲치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 부담에 대한 두려움 ▲가족들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 ▲자기 병에 대한 가족들의 대응과 반응에 대한 두려움 ▲잊혀지거나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들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 단계를 거치면 반응성 우울기가 찾아옵니다. 2기 반응입니다. 이 때는 불면증과 식욕상실, 의욕감퇴, 슬픔과 일상적인 생활 패턴의 붕괴 양상을 보이며, 더러는 “왜 하필 나에게…” 하는 식의 분노감이 섞여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 이번엔 나구나”라며 자포자기하는 양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런 심리는 우울한 정서나 감정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만약, 암 진단을 받고 우울 증세를 보인다면 이 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울은 예기치 않게 힘겨운 상황과 마주치거나 죽음 등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했다고 믿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정서적 반응이지만, 환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필요로 한다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전문의들은 “이 단계에서는 환자에게 지지를 보내고,치료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럴 경우 우울과 슬픔의 정서가 의외로 쉽게 치료에 대한 순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반응 3기는 흔히 낙관기라고 말하는 단계입니다. 의사가 최선을 다해 치료할 것이며, 치료 결과가 좋으리라는 희망이 커져 이전까지 모든 상황을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던 환자 중 상당수가 자신의 처지나 상황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또, 실질적인 치료가 시작되어 병세가 호전되면 암과의 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했다는 믿음 때문에 희망적 자세가 한층 견고해지기도 합니다. 4기는 자신의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거나, 종교 등을 통해 절대자와 교접하려는 특성을 보이는 단계입니다. 이 때는 환자들이 특정 종교를 찾기도 하고,철학적 명제에 집착하는 등 나름대로의 인생관이나 생사관이 성숙해집니다. ●암을 치료하는 두가지 방법 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합니다. 암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큰 병원에서 제시하는 루틴한 치료법도 있고, 한의학적 접근도 있으며, 대체의학적 치료나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단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치료책은 병원을 찾아 정확하게 상태를 파악한 뒤 여기에 어울리는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물론 한의학 분야에서도 부분적으로 치료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 일반화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습니다. 의료계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넥시아’도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 문제는 아직 검증이나 논란이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았으므로 치료 효과를 속단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며, 따라서 이후의 검증 과정을 좀 더 지켜보는 것이 현명할 듯 합니다. 유럽 등지에서는 대체의학을 활용하는 추이도 뚜렷하지만, 인종과 섭생 등 생활 환경이 전혀 다른 우리가 확신 없이 그런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치료 효과에서 일관성을 구할 수 없는 민간요법은 더욱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민간요법으로 암을 치료했다는 황당한 얘기들이 더러 떠돌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돈 좀 벌어보려는 얄팍한 상술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큰만큼 물색없이 현혹되지 말기 바랍니다. 동서양 의학계가 지금도 암을 잘 치료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하고 있고, 그런만큼 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제시한 두 가지 암 치료법은 ▲병원에서 충분히 검증된 방법을 적용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방법과 ▲완화의료입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두 가지 방법을 같이 적용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적극적인 암치료란, 몸안에 자리잡은 암 덩어리를 인위적으로 없애거나 줄이는 치료를 말합니다. 이를 위해 동원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수술과 항암화학요법, 그리고 방사선치료입니다.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이지만, 치료적 접근이 이것 뿐인 것은 아닙니다. 국소치료, 호르몬요법, 광역학치료, 레이저치료에 최근에는 면역요법이나 유전자요법까지도 적용하고 있으며, 간암 등에 흔히 적용하는 색전술이나 동위원소치료 등도 모두 이 범주에 포함됩니다. 이에 비해 완화의료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증상을 조절하는데 초점을 맞춘 치료로, 최근 들어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완화의료는 환자의 삶의 질에 집중하며, 앞서 거론한 적극적인 치료처럼 완치를 겨냥해서 접근하지 않습니다. 일련의 의료적 조치가 치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말기암이나 달리 적극적인 치료를 할 수 없을만큼 병약한 환자가 주요 대상입니다.  ●암 치료 방법의 선택 기준 사실, 쉽게 치료라고 말하지만, 모든 치료가 모든 환자들에게 이득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약이라도 잘 듣는 환자와 안 듣는 환자가 있을 수 있고, 또 모든 환자에게 이득을 주는 치료라도 반드시 빼앗아 가는 게 있습니다. 따라서 의료진이 치료 방식을 선택할 때는 환자가 얻을 ‘이득’과 ‘손해’를 따져서 결정하게 됩니다. 수술도 그렇고, 항암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술은 암 병변을 제거하는 근치적 접근이지만 불가피하게 정상 조직을 일정 부분 훼손할 수밖에 없고, 항암제도 당연히 정상 조직에 영향을 끼치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의료진과 환자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기준은 간단합니다. 오로지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치료라는 건 어치피 없으므로 그 치료를 통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면밀하게 따져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무슨 치료가 종합적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장하는가를 따지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만약 어떤 환자가 치료효과가 분명한데도 부작용이 두려워 특정 방식의 치료를 거부한다면 이는 현명한 결정이 아니겠지요. 어떤 치료든 일정 부분의 부작용이나 후유증은 감수해야 하니까요. 일부 말기암의 경우 치료로 얻는 손실이 이득보다 클 경우 적극적인 치료 대신 완화의료에 집중해 환자가 심신의 안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입니다. 또 일반적이지만, 암은 말기에 가까울수록 치료를 통해 얻는 이득보다 손해가 커진다는 점도 함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암 생존율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합니다. 암의 경우 보편적으로 ‘5년 생존율을 적용하는데, 이는 ‘치료를 시작한 날부터 5년 이내에 해당 암으로 사망한 환자를 제외한 환자의 비율’입니다. 이 경우 재발하거나 암이 진행중이더라도 현재 생존해 있으면 생존율에 포함됩니다. 일부에서는 보다 정확한 통게를 위해 ‘암의 징후가 없는 생존율’, ‘암의 진행이 없는 생존율’ 등으로 구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자녀들을 꼬옥 안아주세요” 서울아산병원이 최근 ‘암환자 자녀 마음건강 클리닉’을 개설했습니다. 환자가 아니라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클리닉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암은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인데, 특히 어린 자녀들에게는 무엇보다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인들이야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지만 성장기 자녀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강한 충격을 받게 되고, 이런 고통을 감당하는 일에 미숙해 자칫 큰 상처로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암 때문에 돌연 부모와 떨어져 생활해야 하며, 부모가 암을 치료하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스트레스에 직접·간접적으로 노출되어 혼란·불안·걱정·두려움 등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당연히 자녀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심하면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환자는 치료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에 더해 부모 역할을 못한다는 죄책감과 양육 스트레스 때문에 극심한 불안,우울감에 빠지는 사례도 허다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상태를 자녀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전문의들은 조언합니다. 만약, 아이들이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암 투병 기간이 길어져 아이들이 너무 오래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있다면 아이를 데리고 전문의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 교수는 “암을 치료 중인 부모가 보이는 태도가 아이들의 적응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환자 자신과 아이 모두의 마음을 꼼꼼하게 살피고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참고로, 이 병원에서 마련한 ‘암 환자 자녀의 마음건강 지키기 십계명’을 한번 살펴보지요. 1.환자 자신의 마음을 돌봐라. 2.암에 걸렸고,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솔직히 말하라. 3.아이들은 암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를 배운다는 점을 명심하라. 4.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줘라. 5.아이의 불안이나 걱정, 반항적인 행동을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여겨라. 6.아이의 잘못으로 암에 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라. 7.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줘라. 8.평상시와 똑같이 학습과 훈육을 지속하라. 9.배우자나 가족, 친구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라. 10.가족들이 힘을 모아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말하라.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자신이다 암으로 진단된 경우 많은 사람들이 ‘선고’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암이 주는 두려움이 짙게 배어있는 말입니다. 감기든 암이든 그냥 진단이라면 될 일인데 이런 식으로 암에 주눅이 든다면 환자에게 좋을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암,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의사들은 암까지도 자신이 가진 것 중의 일부라고 여기고 살살 달래면서 동행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까지는 못 하더라도 지금의 의학 수준이라면 충분히 희망을 가져도 됩니다. 요즘처럼 사람의 수명이 긴 세상이라면 평생 암에 한번이라도 노출될 가능성이 30∼40%쯤 됩니다. 10명 중 3∼4명이 걸리는 암이라면 일상적인 건강 수칙, 즉, 정기적인 검진과 건강한 생활을 하더라도 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그러니 지나치게 “암, 암”하면서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요. 국가암정보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2009∼2013년 국내 암 발생자의 5년 생존율은 69.4%에 이릅니다. 환자 10명 중 7명 가량이 5년 이상 생존한다는 뜻이지요. 성별 5년 생존율은 여자가 77.7%, 남자 61.0% 정도인데, 이는 성별 특성 때문이라기보다 여자의 경우 생존율이 높은 갑상선암과 유방암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앞서 말한 필자의 친구는 애써 의연한 척 했지만 치료가 진행되면서 희망보다 절망을 더 자주 생각했던 듯 합니다. 그래선지 의사를 만나면 “생각보다 병증 개선이 더디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는데, 아쉬운 것은 제가 그를 좀 더 사려 깊게 돕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가 낙담하면 같이 풀이 죽었고, 그가 힘들어 하면 저도 힘든 척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에게 저는 어떤 희망도 주지 못했고, 아픈 그를 더 아프게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새삼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래설까요. 지금 제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 때와는 다르게 대처하고 대응할 것 같습니다. 우선, 좋은 병원, 좋은 의사를 선택해 그를 믿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슬플 땐 슬퍼하고, 울고 싶다면 울게 하겠지만 음울한 기운에 휩싸여서 살지 않도록 돕겠습니다. 여생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여지껏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족들과 맛난 것도 먹고, 여행도 다니라고 떠밀고 싶고, 운동도 어거지가 아니라 하고 싶은 걸 골라서 재밌고 신나게 하도록 이끌겠습니다. 가끔은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감흥을 느끼는 일상, 가볍게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게 하는 일도 그 때는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만약 이런 일들을 주저없이 했더라면, 어쩌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똑같은 기간을 살았더라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무거운 회한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 친구도 길지는 않았지만 잘 살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덧붙여, 그 친구가 생의 마지막에서 그토록 힘들어 했던 그런 유의 연명치료는 받지 말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의학적으로 어떤 기대도 가질 수 없는 치료를 이미 가냘퍼진 그에게 강제하고, 강요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암이 다른 질환에 비해 치료가 어려운 건 맞지만 감당 못할 병은 아니고, 또 병원에 가보면 암 말고도 어려운 치료는 많습니다. 그럼에도 암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해 당장 내 몸에 없는데도 겁을 먹고, 진단 후에는 절망부터 먼저 하는 어이없는 시행착오를 겪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의 일이라고 여겨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닙니다. 제게 그런 일이 닥친다면 저는 심호흡을 하고 심장을 안정시킨 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제 삶의 계획을 조금 수정하겠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변수가 생긴 탓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끝’이라고 여기지는 않겠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는 게, 우리가 일군 의학이 그렇게 하찮지 않거든요. 그런 의학에다 저의 의지와 각오를 녹여 넣는다면 누가 뭐래도 희망의 여지가 훨씬 큽니다. 이제는 암도 희망인 그런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jeshim@seoul.co.kr
  • [아동학대 실태와 대책] “부모 자식은 갑을 관계… 무서워 학대 피해 말 못 해”

    [아동학대 실태와 대책] “부모 자식은 갑을 관계… 무서워 학대 피해 말 못 해”

    경기 부천 초등학생 시신 훼손 사건은 사회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아동 인권 침해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서울신문은 18일 과거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경북 칠곡 계모 사건, 울산 계모 사건, 대구 친부 사건 등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서 피의자를 직접 조사했던 경찰관을 개별적으로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반복되는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해법의 일단을 찾아보고자 한다. 직접 발언 형식으로 정리했으며 그들의 요청에 따라 3명 모두 익명으로 처리했다. 2013년 칠곡 계모 사건 수사 경찰관 A씨 아동학대 사건에서 보이는 부모 자식의 관계는 ‘갑을(甲乙) 관계’와 같은 것이다. 피해자가 살아 있을 때는 부모가 무서워 학대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당시 피해자 김모양에게는 두 살 많은 언니가 있었는데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김양 언니도 계모와 함께 재판에 넘겨졌는데 김양 언니가 판사와 일대일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엄마가 때릴까 봐 시키는 대로 했다”며 거짓 진술 사실을 털어놨다. 다행히 피해자가 전에 다녔던 학교 교사, 아동보호센터 관계자들의 진술을 통해 아동학대 정황을 찾을 수 있었다. 피해자를 부검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멍 자국 등 아동학대를 의심케 하는 흔적이 아주 많았다. 현재 아동학대와 관련해서는 교사나 보육기관 종사자에게 신고 의무가 주어져 있다. 신고가 이뤄지면 아동보호기관이 아동학대가 발생한 가정을 방문하지만 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어떤 일인지 확인하려 하면 부모가 거부하기 일쑤다. 피해를 입은 아이를 못 만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신고에서 사법기관 개입까지 바로 연결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2013년 울산 계모 사건 수사 경찰관 B씨 아동학대는 열에 아홉은 집 안에서 이뤄지지만 집 안에 폐쇄회로(CC)TV 등이 설치돼 있는 것도 아니라서 증거를 수집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 특성이 있다. 학대 장면을 목격한 형제자매가 있더라도 ‘친부모가 살인을 했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데다 법원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정상이라는 진단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제정신이 아니고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때려 피가 나면 끌어안고 우는 부모가 있을 정도로 분노조절장애나 순간적 판단 착오 사례가 많다. 상당수 부모는 아이에 대한 걱정도 하지만 자기가 직장은 어떻게 다닐지,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지 않을까 하는 등의 걱정도 한다. 끝까지 본인이 죽게 만든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에게 죄책감은 있는데 일반인이 느끼는 감정의 30%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구속되면 어쩌나 하며 자기의 안위를 더 걱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4년 대구 게임 중독 친부 사건 수사 경찰관 C씨 친부는 아이가 죽고 나서도 한동안 같이 생활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PC방에도 지속적으로 다녔다.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사실 시신을 유기한 이유도 간단했다. 집에 시신을 뒀는데 부패하면서 냄새가 많이 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시신을 베란다로 옮겼다가 그래도 냄새가 심하니까 인근 빌라에 있는 쓰레기장에 버렸다. 시신이 발견되기 어렵게 만들려면 더 먼 곳에 숨기려 했을 텐데 집에서 1~2㎞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버리고 왔다. 그만큼 사리 분별이 안 되고 행동이 즉흥적이다. 범행을 한 날도 PC방에 가려고 하는데 아이가 울어서 때리고 입과 코를 막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학대를 제어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영아가 사망한 사건이어서 죽음의 흔적 등 증거는 없었다. 사건 해결은 진술에 의존하기 때문에 부부가 공모를 하면 밝히기 힘들다. 다행히 아내가 남편에게 아이의 행방을 꾸준히 추궁했기 때문에 입증이 그나마 수월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아들 시신 훼손父 “나는 사형받아도 충분…어쩔 수 없다”

    아들 시신 훼손父 “나는 사형받아도 충분…어쩔 수 없다”

    아들을 숨지게 하고 시신을 훼손해 냉동보관해 온 아버지가 변호인에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A군(2012년 당시 7세)의 아버지 B(34)씨는 지난 17일 폭행치사, 사체 손괴·유괴 등의 혐의로 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앞서 변호인을 면담하고 뉘우치는 의미가 담긴 말들을 했다. B씨의 국선변호인에 따르면 그는 면담 과정에서 “나는 사형을 받더라도 충분하다.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B씨가 수사과정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데 면담할 때 언행에는 뉘우치는 뉘앙스가 있었다”고 전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와 마찬가지로 변호인에게도 아들을 죽이지는 않았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변호인은 “B씨가 아들이 숨진 것에 대해 ‘당시 넘어져서 뇌진탕을 입었다’고 얘기했다”면서 “현재까지 B씨에게 적용된 폭행치사나 사체 훼손 등 주요 범죄사실은 (아내와 공동으로 저지른 것이 아닌) B씨 단독 범행으로 돼있다”고 설명했다. B씨는 앞서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아내에 대해 선처를 요청하기도 했다. B씨는 지난 2012년 10월 씻기 싫어하는 아들을 욕실로 끌어당기다가 아들이 넘어져 다쳤다고 주장해 왔다. 다친 상태로 방치한 아들이 한 달 뒤 숨지자 부엌에 있던 흉기로 시신을 훼손하고 집 냉동실에 보관했다. A군의 어머니 C(34)씨는 “남편이 아들을 지속적으로 체벌했고 당시 직장에서 남편의 연락을 받고 집에 가보니 아들이 이미 숨져 있었다”면서 “남편의 권유로 친정에 간 사이 남편이 아들의 시신을 훼손, 냉동실에 보관한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한편 경찰 프로파일러들을 투입해 범죄심리분석 등 면담 조사를 벌인 결과 A군의 부모는 낮은 죄책감 등 공감능력이 결여돼 있으며, 교활함과 범죄행위에 대한 합리화 등 반사회적인 ‘사이코패스’ 성향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희소 불치병’ 두살배기 아들 살해한 父 ‘징역 4년’

    희소 불치병을 앓는 두살배기 아들을 숨지게 한 아버지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수원지법 안산지원 제1형사부(부장 이영욱)는 희소병을 앓는 아들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기소된 박모(41)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만 2세에 불과한 유아인 자신의 아들을 질식시켜 살해해 그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 “피고인의 범행으로 피해자는 사망에 이르는 순간까지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고, 유족도 큰 충격과 고통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지난해 10월 12일 오전 4시 11분쯤 경기도 시흥 자신의 집에서 정상 뇌의 80%가 없는 수두무뇌증이라는 불치병을 갖고 태어난 두살배기 아들을 돌보다가 아들의 입과 코를 테이프로 막아 질식사하게 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실직한 상태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중 아내마저 가출하자 불치병을 앓던 아들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피고인도 앞으로 자신이 아들이 죽였다는 죄책감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만 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셰익스피어 고전 틀, 수조와 함께 깨지다

    셰익스피어 고전 틀, 수조와 함께 깨지다

     올 한 해 셰익스피어(1564~1616) 서거 400주년을 맞아 대거 소개될 그의 작품 중 서막이 오른다. 국립극단의 새해 첫 작품 ‘겨울이야기’다.  ‘겨울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후기 로맨스극으로, ‘오셀로’의 질투와 비극으로 시작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끝나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결정판으로 일컬어진다. 셰익스피어가 1588년 영국의 인기 작가 로버트 그린의 소설 ‘판도스토-시간의 승리’를 희곡으로 각색했다. 원작은 긴 시간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던 주인공 판도스토가 다시 만난 자신의 딸과 사랑에 빠지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으로 끝나는 반면 ‘겨울이야기’는 화해와 용서를 통해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연극은 5막으로 구성됐다. 1~3막은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가 왕비 헤르미오네와 자신의 친구이자 보헤미아의 왕인 폴리세네스가 사랑에 빠졌다고 오해한 후 빚어지는 갈등과 파괴를, 16년의 세월을 건너뛴 4막에선 레온테스의 딸 페르디타와 폴리세네스의 아들 플로리젤의 사랑을, 5막에선 죽은 줄 알았던 헤르미오네의 소생을 다룬다. 연출은 헝가리 출신의 로베르트 얼푈디가 맡았다.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이안 카라마조프 등 주요 배역을 맡으며 배우로 연극을 시작했다. 1995년 연출에 도전한 뒤 2008년 헝가리 국립극장 예술감독에 최연소로 취임해 5년간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얼푈디는 “‘겨울이야기’를 한국에서의 첫 연출작으로 맡게 돼 뜻깊다. ‘겨울이야기’는 사랑과 배려를 말하는 아름다운 희곡이다. 가족의 헤어짐, 오랜 세월 방랑 끝의 재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인물과의 만남, 화해와 용서로 맞이하는 행복한 결말 등 셰익스피어 로맨스극의 특징들을 완벽하게 갖춘 걸작”이라고 말했다. 상상력을 뛰어넘는 시각적 이미지 연출로 유명한 얼푈디는 이번 작품에서도 고전의 틀을 깬 신선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보여줄 예정이다. 작품 속 상류층이 머무는 시칠리아는 거울처럼 빛이 반사돼 보이는 아름다운 벽으로, 하층민이 거주하는 보헤미아는 어두운 지하 공간으로 꾸며 공간의 대비를 확연하게 드러낸다. 작품 후반부, 16년 만에 헤르미오네가 기적적으로 소생하는 장면은 물이 가득 찬 높이 2m의 수조가 깨지면서 환상적으로 연출된다. 얼푈디는 “‘겨울이야기’는 많은 연구자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는 특별한 작품이다. 전·후반부 사이에 16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전·후반부가 완전히 달라진다. 전반부의 공포영화 같은 분위기는 중반 이후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하게 바뀌고 마지막엔 또 분위기가 반전된다. 무대와 인물의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10~24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5만원. 1644-2003.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은 걸까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은 걸까

    영화를 통해 사색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더없이 반가워할 소식이다.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본업인 극영화 연출로 돌아왔다. 31일 개봉하는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을 통해서다. 2008년 ‘팔레르모 슈팅’ 이후 7년 만이다. 벤더스 감독은 그간 다큐멘터리 제작, 연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국내용 포스터가 할리우드 인기 배우 제임스 프랭코와 레이철 매캐덤스를 내세웠다고 해서 로맨틱 멜로를 기대하면 큰 오산이다. 영화 작법도 할리우드의 그것과는 거리가 상당하다. 그다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아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의 고삐를 쥐고 있어야 한다. 차라리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가 따라가기 쉬운 편이다. 영화는 예술가가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다. 창작은 경험과 상상의 산물. 타인의 고통을 자양분 삼는 것은 과연 괜찮은 것인지 에둘러 화두를 던진다. 전도유망한 작가 토마스(제임스 프랭코)는 폭설이 내리던 날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예기치 못한 사고와 맞닥뜨린다. 눈썰매를 타고 놀던 한 어린아이를 치어 숨지게 한 것이다. 비극적인 사고에 토마스는 자살까지 시도하며 정신적으로 방황하게 된다. 이후 그는 창작자로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잘나가는 소설가가 된다. 영화 속 시간은 4개월, 6년, 4년, 2년을 성큼성큼 건너뛰며 중간중간 아이를 잃은 케이트(샤를로트 갱스부르) 등의 모습을 병렬식으로 끼워 넣는다. 관객들은 그때그때 등장인물들의 달라진 관계와 심리 상태를 따라잡아야 한다. 극적으로 강조하는 것 없이 덤덤하게 보여줄 뿐이다. 이야기는 토마스가 죄책감을 씻는 것으로 매듭을 짓지만 영화가 단순하게 극복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에 여운이 길다. 2009년 ‘안티 크라이스트’로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 국내 개봉작이 늘고 있는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할리우드 배우의 앙상블을 접할 수 있다는 게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주로 유럽 무대에서 활동해 온 갱스부르는 미국 무대로 영역을 넓히는 모양새다. 내년에는 처음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나온다. ‘인디펜던스 2’다. 마침 벤더스 감독이 작업한 다큐멘터리가 두 편이나 스크린에 걸려 있으니 함께 즐겨 보는 것도 괜찮겠다. 직접 연출한 음악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 재개봉 중이며 제작을 맡은 춤 다큐멘터리 ‘라스트 탱고’는 31일 개봉한다. 118분. 12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희귀영상]배 눌렀더니 새끼가?…사람 덕에 순산하는 가오리

    [희귀영상]배 눌렀더니 새끼가?…사람 덕에 순산하는 가오리

    바다에서 잡은 가오리의 배를 눌렀더니?? 지난 26일 유튜브에 게재된 40초가량의 영상에는 바다에서 잡은 노랑가오리의 배에서 새끼 가오리들이 태어나는 모습이 담겨 있네요. 보트 위 한 남성이 고통스러워하는 어미 가오리의 배를 누르자 새끼 가오리가 어미 배에서 나오기 시작합니다. 남성들에게 잡힌 가오리는 새끼를 가득 밴 가오리였던 겁니다. 남성이 난산 중인 어미 가오리의 배를 위에서 아래로 누르자 뱃속의 새끼 가오리들이 줄이어 밖으로 나옵니다. 어미 가오리는 적어도 14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어미 가오리는 오래 살지 못할 듯합니다. 왜냐하면 어부들이 어미 가오리를 잡자마자 독이 있는 꼬리를 잘라냈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에 어부들은 새끼와 어미 가오리를 방생했다고 하네요. 가오리 가족들이 건강하길 바랄 뿐입니다. 사진·영상= Javier Capello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2015 연구결산] ‘견공’이 유독 인간과 친밀한 이유는?

    [2015 연구결산] ‘견공’이 유독 인간과 친밀한 이유는?

    견공(犬公)이라는 말이 있다. 개를 의인화해 높여 이르는 말로 3만년 이상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이 지내온 반려동물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사람과 개가 유독 친밀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5년 한해 인간과 개를 주제로 한 세계 각국 연구팀이 발표한 서적과 논문들을 정리해봤다. - 개는 인간 행동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별한다 지난 2월 일본 교토대 연구팀은 인간의 아주 오랜 친구인 개들은 우리가 자신들에 하는 행동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개는 일반적으로 사람 특히 주인이 무언가를 가리키면 해당 방향으로 달려간 뒤 냄새를 맡는 것이 상식이다. 이에 착안한 연구팀은 34마리의 개를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실시했다. 먼저, 한 연구원이 각 개를 대상으로 음식이 숨겨진 그릇이 있는 곳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개들은 해당 위치로 달려가 그릇 속에서 음식을 찾아내 먹는 모습을 보였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같은 연구원이 음식이 들어있지 않은 그릇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개들은 역시 목표를 향해 충실하게 달려갔지만 먹이를 얻지 못했다. 이어 지시를 했던 연구원이 실제로 음식이 든 다른 위치의 그릇을 향해 다시 가리키자 거의 모든 개가 그의 지시를 무시했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원이 각각의 개를 향해 실제 음식이 있는 그릇을 가리키자 다시 개들은 해당 장소로 열심히 뛰어가 먹이를 발견했다. 연구를 이끈 다카오카 아키코 박사는 영국 B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개들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경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개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회적 지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능은 오랜 기간 인간과 살아오면서 선택적으로 진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동물의 기억력 평균 20초…개는 무려 2분   지난 2월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연구팀은 개와 침팬지 등 동물들의 기억력을 테스트하는 실험을 실시한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팀은 비둘기와 돌고래, 개코 원숭이와 침팬지와 개 등 총 25종의 동물들을 대상으로 ‘빨간점’을 보여준 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빨간점’과 ‘검은 사각형’을 보여줬다. 그 결과 동물들의 단기 기억 유지시간은 평균 27초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개코 원숭이와 돼지꼬리원숭이, 다람쥐원숭이 등의 기억력은 곤충 벌과 비교했을 때 매우 근소한 차이로 높았다. 사람과 매우 유사한 행동양식을 보이는 침팬지의 경우, 단기기억시간은 평균보다 낮은 20초였으며, 인류의 오랜 동반자인 개는 이중 가장 높은 2분을 기록했다. 개가 주인에게 훈계 및 훈련을 받아도 다시금 나쁜 버릇이 반복되는 것은 이러한 단기기억능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개도 ‘죄책감’ 느낄까? 개는 실수로 화병을 깨거나 물을 엎질렀을 때, 마치 눈치를 보듯 고개를 푹 숙이고 꼬리를 내린 채 ‘애처로운 눈빛’으로 주인을 바라본다. 주인은 이를 ‘미안해하는 애완견의 표정’이라고 단정내리기 쉽다. 하지만 개의 이러한 표정은 죄책감이라기보다는 그저 오랜 시간 인간의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로 살아오면서 터득한 하나의 ‘노하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8월 호주 애들레이드대학교의 수의학자인 수잔 하젤은 “개가 죄책감을 느끼거나 표현할 줄 안다는 증거가 없다. 슬픈 눈으로 꼬리를 내리고 바라보는 것은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이후 주인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서 나타나는 행동에 가깝다”면서 “이러한 행동은 뇌를 거치는 행동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습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는 ‘사고’를 쳤을 때 주인이 먹이를 주지 않거나 혼낼 것을 두려워한다. 마치 ‘내가 잘못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은 그저 주인이 독자적으로 생각을 이입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 개는 선천적으로 인간을 구별할 줄 안다 지난 8월 미국 에모리대학 연구진은 개를 대상으로 뇌영상촬영기술(fMRI)을 이용한 검사를 실시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개의 측두엽이 사람과 개의 얼굴을 분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개는 선천적으로 사람과 같은 영장류를 구별하고 기억하는 인지능력이 있으며, 이 때문에 유독 사람과의 친분이 더욱 빨리 두터워질 수 있었다는 것. 연구를 이끈 에모리대학의 신경과학 전문가 그레고리 번스 교수 연구진은 우선 개가 안전한 뇌영상촬영기기(fMRI)에 들어간 뒤 움직이지 않고 모니터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훈련을 시켰다. 훈련 과정에서 강압적인 태도나 진정제 등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이후 연구진은 실험에 참가한 개들에게 사람의 얼굴을 담은 사진과 다른 생명체 또는 사물의 얼굴을 담은 사진을 보게 하며 fMRI를 촬영한 결과, 유독 사람의 얼굴을 볼 때에는 측두엽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자신과 같은 개의 얼굴을 볼 때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 인간과 개는 언제부터 친구가 됐을까?  인간 최고의 반려동물인 개는 언제부터 우리의 친구가 됐을까? 이달 초 중국과학원 쿤밍(昆明) 동물연구소와 스웨덴 왕립기술원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개는 3만 3000년 전 동아시아에서 처음 가축화되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간 학계에서는 인간과 개가 언제부터 함께 살았는지,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 속시원하게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늑대와 개의 화석이 매우 유사해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거 발굴된 갯과 화석 분석을 통해 개의 가축화를 길게는 3만 년 전부터 짧게는 신석기 시대인 1만 년 전 정도로 추정해 왔다. 이번 공동연구팀의 결과는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에서 발굴된 회색 늑대를 포함한 총 58개 갯과 화석의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을 분석해 얻어졌다. 그 결과 개의 가축화는 지금으로부터 3만 3000년 전 지금의 중국 대륙 남쪽 부근에서 시작됐으며 이 개들은 1만 5000년 전 아시아를 벗어났고, 1만 년 전 유럽에 도달했다고 결론지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장애아 부모’의 두려움, 절망… 그리고 희망

    ‘장애아 부모’의 두려움, 절망… 그리고 희망

    내가 기다리던 네가 아냐/파비앵 툴메 지음/이효숙 옮김/휴머니스트/256쪽/1만 5000원 ‘너만 그런 건 아닌데 운이 나빴을 뿐이야.’ 어설픈 위로와 ‘생명은 소중하니까’, ‘그래도 부모니까’ 류의 감정의 군더더기도 일체 배제했다. 철저히 다운증후군 장애아를 낳게 된 젊은 아빠의 감정 변화와 현실에서 맞닥트리게 된 극명한 좌절감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오히려 만화에 대한 몰입도는 깊다. 임신과 출산 이야기에 수반되는 감동이나 축복의 감정은 이 만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아이가 태어나고 가장 행복해야 할 시간들은 악몽으로 변한다. 책 제목인 ‘내가 기다리던 네가 아냐’는 아빠인 파비앵이 정상적으로 태어나지 못한 딸 쥘리아에게 건넨 말이다. 죄책감과 더불어 심장기형인 쥘리아가 수술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대로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까지 담은…. 사실 이 만화가 시선을 잡은 건 개인적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둘째를 임신하고 있는 아내와 함께한 병원 초음파 검사에서 태아의 목덜미 투명대가 평균보다 더 크다는 진단을 받으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파비앵이 막내 쥘리아의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유독 신경 쓴 21번 염색체 이상(다운증후군)과 같은 증상이었다. 브라질에서는 다운증후군 위험을 측정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파비앵 부부와 달리 우리 부부는 염색체 이상을 확인하기 위해 융모막 검사를 선택했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 역시 파비앵처럼 적지 않는 날들을 괴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낙태까지도 상상했다. 결론적으로 우리 부부는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고서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장애아를 낳거나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는 건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이다. 파비앵 부부 모두 염색체 이상 증상도 없었다. 10년 만에 고국인 프랑스로 돌아온 파비앵은 쥘리아를 처음 본 순간 충격에 빠진다. 큰딸 루이즈와는 확연히 다른 외모에다 뻣뻣한 목덜미와 평평한 머리통. 그는 순간 다운증후군을 확신한다. 절망감이 엄습해온다. 자신이 꿈꾸던 삶을 더이상 살 수 없다는 두려움, 끊임없이 닥쳐오는 장애아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부담, 아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파비앵을 보고 ‘나쁜 아빠’라고 우리는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장애아를 낳는다는 건 ‘톨레랑스의 나라’라는 프랑스에서도 온갖 편견과 싸워 나가야 하는 현실임을 일상 경험을 통해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파비앵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공원에서 만난 다운증후군 아이를 보며 “임신 기간 동안 관리를 어떻게 했으면 요즘에도 저렇게 다운증훈군 애들이 나오지?”라고 냉소적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절망에서 끝나지 않는다. 책은 파비앵이 어떻게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지 그 과정을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화자의 시점을 쫓아 줌인한다. 파비앵은 큰 딸 루이즈가 편견 없이 동생을 대하는 모습, 각종 복지센터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통해 쥘리아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말한다. “쥘리아 우리에게 와 줘서 고마워.” 이 책은 장애아의 부모로서 파비앵 부부가 겪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장애와 맞서고 있는 부모들에게 묵묵한 위로와 공감을 안겨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팔달산 사건’ 박춘풍 사이코패스 아니다

    ‘팔달산 사건’ 박춘풍 사이코패스 아니다

    “(박씨는) 사이코패스나 반사회성 인격 장애로는 진단되지 않는다.” ‘수원 팔달산 토막 살인 사건’의 범인 박춘풍(56)씨의 뇌 감정 결과에 대해 김지은 이화여대 뇌인지 과학연구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법정 한쪽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는 ‘구조적 자기공명영상’(sMRI) 기법으로 촬영한 박씨 뇌의 3차원(3D) 영상이 비쳤다. 살인범 재판에서 처벌 형량의 참고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뇌 영상 감정을 시도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상준)가 22일 진행한 공판에서 김 교수는 “박씨는 충동성, 죄책감 결여, 우울성 등의 증상은 있다”며 “그러나 사이코패스의 기준치를 넘지 못했고,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하는 능력은 정상이었을 것”이라고 소견을 밝혔다.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과 죄책감이 결여돼 극단적인 자기 중심성을 표출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사이코패스의 뇌는 사회적 행동과 도덕성에 관여하는 전두엽이 일반인에 비해 덜 활성화돼 있다는 게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다. 살인 등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 교수는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의 전전두엽에 손상이 있다”며 “피고인 박춘풍의 뇌 손상이 인지 행동과 정신 장애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25~50% 정도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난 공판에서는 조은경 한림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박씨에 대한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PCL-R) 검사 결과 고위험 사이코패스 기준보다는 낮은 점수가 나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박씨는 지난해 11월 경기 수원시에서 동거녀의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 내 유기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박씨 측이 판결에 불복, 항소하면서 그가 사이코패스인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박씨 측 국선변호인은 “박씨가 PCL-R 기준치를 넘어서지 않았는데도 사이코패스로 판정받아 1심에서 사회적으로 영구 격리되는 처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어렸을 때 사고로 넘어지면서 오른쪽 눈을 다친 상태다. 박씨 측은 ‘의안’을 오랫동안 사용해 뇌를 다쳐 분노 제어 능력이 떨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박씨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판정받으면 항소심 선고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 사이코패스로 판정되면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돼 무거운 양형기준을 적용받지만, 일시적인 분노 장애 상태였음이 인정되면 폭행치사 적용까지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살인죄의 형량은 ‘징역 5년~사형’이지만 폭행치사죄는 ‘3년 이상 유기징역’이다. 박씨 측 변호인은 “박씨를 사이코패스로 몰아간 1심과는 다르게 판결할 사정이 생긴 만큼 향후 선고는 박씨에게 유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검사에서 주목받았던 기능적 자기공명뇌영상법(fMRI)은 박씨에게 시행되지 않았다. fMRI는 뇌가 활동할 때 혈류 안의 산소 소모량 차이를 측정해 사람의 의식과 감정 변화에 따른 두뇌 반응을 검사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사이코패스 진단의 보조 자료로 활용하려 했지만 박씨가 연습 과정에서 익숙하지 못해 시행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박씨의 2심 선고 공판은 오는 29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스마~일…‘환각버섯’ 키우다 체포된 男의 황당 머그샷

    스마~일…‘환각버섯’ 키우다 체포된 男의 황당 머그샷

    일명 ‘마법의 버섯’이라고 불리는 환각 버섯을 키우다 적발돼 체포된 남성의 독특한 머그샷(범인 식별용 얼굴 사진)이 공개됐다.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이 머그샷을 찍을 때면 보통 범죄가 들통 난 것에 대한 분노 또는 죄책감이나 당혹스러움 등이 드러난 굳은 표정을 짓기 마련인데, 이번에 체포된 남성은 누구보다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허핑턴포스트 등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자택에서 체포된 데이비드 칼브(41)는 자신이 운영하는 술집 한 편에서 직접 환각제를 재배하다 적발됐다. 그가 키우던 것은 환각성분이 다량 함유된 버섯으로, 그의 술집에서는 버섯용 나무 70그루 및 버섯의 성장을 돕는 약물이 든 병 10개 등이 발견됐다. 이 남성은 현장에서 마약법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된 뒤 곧장 경찰서로 이송됐는데, 경찰서에 도착한 그는 누구보다도 환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 경찰들을 당혹케 했다. 현지 경찰은 이 남성이 체포되기 직전 환각버섯으로 만든 약물을 스스로에게 주입했으며, 이 약물의 영향을 받아 비정상적인 감정에 빠진 상태로 경찰서까지 이송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경찰은 “올해 공개된 머그샷 중 가장 ‘환하고 행복해 보이는’ 머그샷이었다”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남성은 마리화나 또는 기타 약물을 다룬 범죄자들과 같은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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