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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 일가족 집단탈출/회령∼홍콩 탈북대장정 28일

    ◎재미장인이 북 왕래하며 탈북 주선/“남한출신” 박대… 10·26 새벽 두만강 건너/친척뻘 사회안전원 대동 국경검문 피해/농가일 거들며 숙식해결… 중국대륙 종단 뉴욕 플러싱에 살고 있는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재미교포 최영도씨(79).6·25전쟁 뒤 미국으로 건너와 어렵게 사업을 이루었지만 평생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왔다.전쟁중에 남하하면서 북한에 남겨두고 온 딸 현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94년 최씨는 교포사회에서 귀가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미국인신분이면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을 만날 수 있고 송금도 가능해졌다는 것이다.잘만하면 이산가족을 북한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최씨는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딸이 고향인 회령시 남문리에 살고 있는 것을 알았다.백방의 노력끝에 지난해 처음 북한으로 가는 비행기편에 몸을 실었다.최씨는 할머니가 된 딸 현실로부터 사위 김경호를 처음으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서울 출신인 사위 김경호는 6·25때 인민군에 강제로 징집됐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어쩔 수 없이 북한에 눌러앉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김씨는 부인 최씨와 결혼한 뒤 한동안 평양에 살았으나 결국 출신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57년 처가의 연고지인 함북 회령시 농업지구로 쫓겨났다.김씨는 농사를 짓다가 최근에는 공업지구의 공장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최영도씨는 지난해부터 몇차례 딸집을 방문,쌀도 사주고 돈도 줘봤지만 어차피 북한에서 살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것을 깨달았다.현실씨는 특히 94년7월 김일성 사망당시 아파 병석에 있다가 문병온 이웃주민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가 「어버이수령 상중에 미소를 지었다」는 이유로 신고를 당해 심한 고초를 당한 적도 있다.남편 김씨는 당시 돼지 한마리를 뇌물로 바치고 풀려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사회에 대한 회의는 깊어만 갔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최영도씨는 지난해 딸과 사위를 방문한 자리에서 탈북계획을 은밀하게 꺼냈다.회령부근에는 김경호·최현실부부와 금철등 5남매의 가족 등 모두 16명의 일가가 살고 있었다.김씨부부는 기왕에 북한을 떠나려면 일가를 모두 데려가기로 했다.어차피 일부만 탈출하면 남아 있는 피붙이는 죽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최영도씨 등은 치밀한 연구끝에 홍콩을 통해 남한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이에 따라 ▲회령에서 두만강도강 ▲중국종단 ▲중국에서 홍콩으로 가는 3단계 탈출계획을 세웠다.우선 회령에서 두만강을 건너는 것이 문제였다.16명이나 되는 일가가 한꺼번에 움직이면 남의 눈에 쉽게 띄는 데다 일행 가운데는 임산부와 어린아이가 포함돼 있었다.고심 끝에 주민의 동태를 감시하는 사회안전부 안전원을 일행에 합류시키기로 했다.김경호씨는 처가의 먼 친척뻘인 안전원 최영호를 지목했다.돈과 자유를 약속하는 대가로 설득에 성공했다. 탈출감행일인 10월26일 새벽 2시.17명의 일행은 회령을 떠나 두만강을 향했다.대규모 일행이었지만 사회안전부 요원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두려움은 없었다. 일행은 두만강에서 「10군단」으로 통칭되는 국경경비대에게 포착됐다.10군단은 탈북자를 막기 위해 창설된 특수부대였다.그러나 안전원 최영호가 『식량을 구하러 간다』면서 100달러를 건네주자 경비병은 입을 다물지 못하며 통과시켜 주었다. 이날 새벽 4시.일행은 두만강을 건넜다.두만강은 그동안 강바닥이 높아져 물이 어른의 허리까지밖에 차지 않았다.10월 하순의 새벽이었지만 흥분과 긴장·기대감 때문에 물이 차갑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두만강을 건너자 최영도가 고용해둔 조선족이 기다리고 있었다.중국땅으로 넘어갔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북한당국은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자를 잡아들이기 위해 이른바 「조교(북한출신 중국교포)」나 국가보위부·사회안전부 요원을 각지에 파견하고 있었다. 일행은 조선족 안내인을 따라 용정과 심양·북경·광주·심천을 거쳐 홍콩으로 향했다.일행은 중간중간 농번기의 중국농가에서 일손을 도와주고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28일간의 장정끝에 11월23일 드디어 홍콩의 문턱에 도착했다.그러나 홍콩으로 진입하는 관문의 경계가 심했다.최근 중국인의 불법진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받았다. 홍콩에 들어선 뒤 곧바로 행정부인 정청을찾았다.그리고 신계지역에 위치한 상수특별감호소에 수용돼 조사를 받았다.김경호씨의 일가는 남한으로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씨일가는 며칠 있으면 지금까지 북한을 탈출,남한으로 망명한 최대규모의 일가가 되게 된다.
  • 조순 서울시장 시민에 사과성명/“재발없게 특단조치”

    조순 서울시장은 31일 시내버스 업체 및 공무원들의 비리와 관련,『노선 조정과정에서 버스업체로부터 공무원이 뇌물을 받은 것에 대해 민선시장으로서 무거운 죄책감을 느낀다』는 내용의 대시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조시장은 성명에서 『민선자치 출범 이후 서울의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들의 참여와 협조속에 교통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죄송스러울 따름』이라며 『이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 “공권력 도전 처벌 강화 절실”/오석홍 서울대교수 국정신문 기고

    ◎경찰인력 증원·장비확충도 시급한 과제 파출소에서 경관이 살해되고 순찰차가 탈취된데 이어 일부 학생들의 과격 폭력시위가 시민들을 근심에 휩싸이게 하는 등 나라 전체가 연일 「공권력 부재」현상에 노출되고 있다.이같은 상황에서 오석홍 서울대 교수(행정학)가 우리사회의 공권력 부재의 원인을 진단하고 공권력 선진화 방안을 제시한 글을 19일자 국정신문에 기고했다.다음은 오교수의 기고문 요약이다. 근자에 경찰을 업수이 여기는 작태가 늘어나고 경찰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까지 증가해 정부 내외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특히 경찰을 공격하는 강력범죄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파출소 안에서 경찰관이 살해되는가 하면 일개 술주정꾼에 의해 경찰차가 파손·탈취되기도 했다. 왜 경찰에 대한 공격이 예사로이 자행되는가.경찰은 왜 스스로조차 범죄로 부터 적절히 방어하지 못하는가.오늘날 경찰의 어려운 처지는 무엇으로 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세 갈래로 찾아 볼 수 있다. 첫째로,가장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은 우선 경찰의 인력이 부족하고 예산이 부족하다.장비가 적절치 않다. 인력배치 계획과 업무수행 계획이 부적절하거나 허술하다.열악한 처우와 근무조건 하에서 격무에 시달리는 경찰관들의 사기가 저하되어 있다. 두번째 원인은 부정적인 유산에서 찾을 수 있다.지금까지 나라를 지켜온 경찰의 업적,그리고 진충보국의 많은 희생을 결코 잊을 수 없다.그러나 경찰이 멍에로 물려받은 오욕의 역사를 또한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오욕은 피동적인 것도 있고 자업자득인 것도 있다.피동적인 오욕은 과거 정당성 없는 독재정권,부패·타락한 정권의 지휘하에 놓여 있었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비난대상인 정권이 시키는대로 하지않을 수 없었던 경찰은 정치간여,민주화세력 탄압 등등에 빠져들었다. 또 지난날 정치·행정의 체질화된 부패속에서 경찰만이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직권남용,인권유린,무사안일,그리고 군림적 대민자세도 비난대상이었다.이런 요인들이 경찰의 신망을 손상시켜왔다.경찰의 신망이 입은 과거의 상처는 경찰을 얕보는 작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다. 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시민의식의 결여와 시민의 탈선이나 민주화의 과정에서는 문화지체에 빠진 자들과 일탈자들이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주권재민의 뜻을 잘못 헤아리고 방종하는 자들은 공권력에 대한 공격에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이런 방종과 일탈에 대해 처벌구조는 너무 느슨하다.경관에 대한 어지간한 공격은 사과하고 연줄을 동원하면 그럭저럭 풀려나는 관행이 병폐이다.과거정권에 대한 공격은 가혹하게 다스렸지만 법집행자에 대한 개인적 공격에는 너무나도 관대했다. 경찰의 범죄에 대한 대항력을 강화하고 공권력을 선진화하는 방안은 총기장전 휴대 등 물리적 대응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경찰의 인력보강,사기진작,훈련강화 등 내부관리시책들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경찰이 과거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미지개선 사업,신망제고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끝으로 우리 국민은 민주시민의식을 함양하고 공익을 위한 자율규제정신을 길러야 한다.정당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경찰관을 공격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은 엄정하고 강력해야 한다.
  • 전자시대 범죄(외언내언)

    전쟁사에서는 무기의 발달과 인간의 잔인성,죄의식간의 묘한 반비례 현상을 읽게된다.동·서양을 가릴것없이 칼과 창을 가지고 싸운 전쟁은 선혈이 낭자한 끔찍스런 전쟁으로 묘사된다.그러나 한 손가락만 당기면 요란한 폭음과함께 저 멀리의 적군이 나뒹구는 총과 포가 발명되고 부터 전쟁은 조금은 낭만적이기까지 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물리적 거리와 살상행위에 대한 죄의식의 강도는 반비례하는 것 같다.총·포가 다시 전폭기와 미사일로 발전하고 병사는 마치 컴퓨터로 게임하듯 버튼을 눌러 불특정다수를 살상하는 전자전 시대가 왔다.그러나 살상의 규모만큼 병사의 죄책감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시대의 변화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범죄의 개념이나 죄의식도 변한다.특히 요즈음 처럼 전자과학·기술의 발달속도가 빠르다 보면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는지 좇아가기가 힘들 지경인 것이 사실이다. 서울지방법원은 2일 국가전산망에 침입,고위공무원들의 인터넷 비밀번호를 빼내고 서울대 전산망등에 침입했던 컴퓨터 해커에 대해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란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 남의 집 담을 넘어들어가 금고나 장롱을 열고 금품을 훔쳤다면 누구나 쉽게 도둑질이라며 규탄하고 당사자는 죄의식을 갖게 된다.엄한 처벌이 뒤따른다.그러나 컴퓨터시대라고는 하지만 책상머리에 앉아 컴퓨터로 남의 전산망에 침입,정보를 훔쳐낸 것에 대해선 그것이 엄청난 가치를 가진것이라 해도 이를 절도라는 범죄행위,처벌의 대상이라고 쉽사리 인식하지 못하는것 같다.범인도 크게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이는 시대에 뒤진 감각이다.버튼을 눌러 대규모 살상을 하는 행위처럼 경제적 사회적 피해가 더 심각할 수 있는 엄연한 범죄 행위인 것이다.앞으로 사법부가 전자시대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를 초기단계에서 엄격하게 단죄,분명한 죄의식이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황병선 논설위원〉
  • 마약퇴치 대상받은 조영곤 검사·임대환 사무관

    ◎“마약수사는 마치 전쟁…”/야쿠자낀 국제조직 검거 최대성과/한·중·일 공조수사체제 확립 절실 「한·중·일 공조로 중국거점 국제히로뽕 밀조·밀수조직 적발」「히로뽕원료인 중국산 염산에페드린 3백㎏ 압수」「해외유학생의 신종마약 타이스틱 적발…」 제6회 마약퇴치대상을 받는 서울지검 강력부 마약수사반이 지난 1년동안 「마약과의 전쟁」에서 얻은 굵직한 성과다. 서울지검 강력부 마약수사반 대표로 대상을 받는 조영곤검사(사시 26회)는 『잦은 지방출장과 잠복근무를 하면서도 말없이 임무를 수행해온 수사반 전체의 노력에 대한 대가이자 더욱 열심히 하라는 채찍이라고 생각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한·중·일 3국의 공조로 일본폭력단이 낀 중국거점 히로뽕밀조조직을 검거한 것을 최고의 성과로 꼽았다.이 과정에서 협조를 아끼지 않은 관세청 마약계(대표 임대환 사무관)에 대해 고마워했다.관세청 마약계는 서울지검과 함께 대상수상단체로 뽑혔다. 마약수사반은 항상 긴장 속에서 비상대기한다.한번 출장을 가면 범인을 잡기까지 최소한 1주일가량 잠복하기가 일쑤다. 조검사는 『지난 2월 전북 김제의 마약밀조공장을 덮치기 전 혐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1주일가량 수사반원과 떠돌이처럼 행세하며 미행·추적을 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조검사가 마약전담수사에 발을 디딘 것은 지난해 3월부터다.그 전에는 부산지검과 서울지검 형사3부에서 조직폭력배 수사를 맡았다.94년9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지존파사건」도 직접 지휘했다. 『강력부로 옮겨 마약수사를 전담하면서 마약의 폐해와 실체를 인식하게 됐습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호기심으로 마약에 손에 댔다가 폐인이 되는 것을 보고 전쟁에 임하는 각오로 수사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마약범죄는 개인만이 아닌 가족,나아가 국가까지 멍들게 하는 최악의 범죄라고 거듭 강조한다. 최근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변호사를 통해 마약을 건네받았다가 발각되자 죄책감을 못이겨 자살한 최문재씨(42)도 마약폐해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좋은 집안에다 교육도 잘 받았지만 마약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비참한 종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마약사범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국내 마약전과자는 비교적 단속이 허술한 중국으로 건너가 히로뽕과 히로뽕의 원료를 제조해 해상이나 일본 등을 통해 국내로 밀반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이를 막으려면 중국 등과 공조수사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조검사는 『우리 사회에서 마약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지속적 단속뿐만 아니라 국민의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절실히 요구된다』며 『철저한 단속으로 마약사범에게 국내 반입과 활동이 어느 나라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시키겠다』고 다짐했다.〈박홍기 기자〉
  • “나치하 저질러진 범죄 일반국민 죄책감 없다”/킨켈 독 외무

    【본 로이터 연합】 독일은 유태인 대학살에 책임이 있지만 일반 독일인들은 나치하에서 저질러진 범죄에 대해 집단적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고 클라우스 킨켈 독일외무장관이 8일 밝혔다. 킨켈 장관은 이날 워싱턴의 미유태인회의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죄의식은 개인적인 것이며 상속되거나 집단적으로 느끼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 생활 적응 못하는 귀순자 많다/김형덕씨 밀항기도 계기로 본 실태

    ◎제도적 지원불구 체제차이로 방황/사기피해 늘어… 자활의지 부축해야 북한을 탈출한 귀순자들 가운데 남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94년 9월 귀순한 김형덕씨(22)가 거액의 외화를 갖고 중국으로 밀항을 기도하다 7일 적발된 사건도 대표적인 사례이다.김씨는 『남한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괴로웠고,북에 있는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다.심지어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90년 들어 지금까지 귀순한 북한동포는 모두 1백26명.한 때 러시아에서 일하던 벌목공들이 혹독한 여건에 못 견뎌 「귀순러시」를 이룬 지난 94년에는 48명이 자유를 찾아왔다.70∼80년대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의 체제가 크게 흔들리며 굶주림과 불안감으로 귀순자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 귀순자가 늘어나자 정부는 지난 94년 12월 그동안의 각종 특별보상금을 주던 「귀순용사」를 「망명동포」로 격을 낮추고 한때 선별입국의 방안까지검토했다.이들에게는 월 최저생계비의 20배에 해당하는 「정착금」을 지원하는데,그나마 예산이 넉넉치 못해 지급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올해 보건복지부의 귀순동포 지원예산은 30여명분으로 1인당 4백90만원선이며 별도로 주거 지원비가 8백40만원선이다.이밖에 안보강연회 등에서 강연료 등을 벌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 문제가 아니다.체제의 차이에서 느끼는 심리적 갈등이 훨씬 더 크다. 경제감각이 익숙지 않아 사기를 당하는 일도 많다.북에 두고온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폭음을 하는 등 생활이 흐트러진다. 지난 해 9월 충북에서 데이트하던 남녀를 공기총으로 쏘아 중상을 입히고 총을 맞고 쓰러진 여자를 성폭행해 경찰에 구속된 신광호씨(28·충북 음성군 음성읍)는 국민들에게 크게 충격을 주었다. 또 기관원을 사칭해 사채업자를 납치,폭행하고 금품을 뜯다가 적발된 이모씨(39),술을 마시고 파출소 기물을 부순 혐의로 구속된 김모씨(37)등도 우리를 안타깝게 한 사례이다. 물론 적응에 성공해잘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지난 87년 일가족을 이끌고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았던 김만철씨(56)는 장남 광규씨(30·토지공사 근무)를 결혼시키고 경남 해남에서 양로원과 노인병전문진료소 등을 개설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살고 있다. 그 역시 송아지를 수입해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1억1천여만원을 사기당한 일이 있다. 나이가 어린 귀순자들은 남한에 와서 대학진학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91년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탈출해 귀순한 안혁(28),강철환씨(28)는 귀순 이듬해 한양대에 입학했고 89년 귀순유학생 전철우씨(28)는 한양대를 졸업하고 최근 개그맨으로 데뷔,김용씨(49)에 이어 연예인으로 활약한다. 정부 관계자는 『몇푼의 정착금보다 자활의지를 키워주고 우리 사회에 적응하는 훈련을 다각적으로 베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 부모와 자녀교육/강세영계명대교수·여성학(굄돌)

    요즘 졸업과 입학준비에 분주한 모습을 보면서 자녀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참여와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생각해 본다.첫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한 서류를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어머니와 어린이가 함께 찍은 사진」을 첨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이러한 사진은 거의 모든 유치원에서 예외없이 요구한다고 한다.학사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유치원 및 일정소개를 위한 「어머니 모임」이 한번 있는데 이날 행사는 상오에 시작되고 「어머니 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었다.대부분의 유치원에 이러한 형식의 행사가 계획되어 있을 것이다.그런데 자녀교육 기관으로서는 가장 초기적인 단계임에도 아버지의 역할은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자녀와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하는데 대해 갈등과 죄책감을 느끼는 아버지도 많다고 한다.한편 어떤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중 자녀교육상담은 상오 9시부터 10시까지여서 주부가 아닌 아버지나 직장생활을 하는 어머니는 청취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더욱이 상담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이를 반영하듯 상담전화는 주로 주부들로부터 걸려오는 것 같다.그런데 이 방송사의 자녀교육상담은 주부가 양육을 전담하다시피 하는 유아는 물론 고등학생 자녀에 대한 상담도 포함하고 있다.자녀교육을 중요시하지 않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아버지들,그리고 남성들처럼 직장생활을 하는 어머니들의 자녀교육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는 체계적으로 무시되고 있는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자녀교육을 주부에게 전적으로 채임지우고 있거나 혹은 직장생활을 하는 부모들에게 양립시키기 어려운 생활방식을 요구하는 셈이다.
  • 막노동꾼 서울대 수석 영광/인문계열 합격 장승수씨 「인간 승리」

    ◎“삯바느질 홀어머니께 영광 돌립니다”/대학생 동생 뒷바라지 가장노릇/법관되어 어려운 이웃들 돕겠다 고교졸업 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막노동을 하던 25살의 청년이 서울대 인문계 수석을 차지했다.불굴의 집념과 끈기의 인간승리다.장승수씨(25·대구 경신고 졸·대구시 동구 불로동)는 올해 서울대 입시에서 법학과를 지원,1천점 만점에 9백3.89점을 얻어 인문사회계열 수석을 차지했다.합격자를 발표한 30일 대구시 수성동 보성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중 수석합격의 소식을 전해듣고 『어릴 때부터의 꿈인 훌륭한 법관이 돼 저희처럼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웃들의 거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81년 고향인 칠곡군 왜관에서 대구로 이사온지 석달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에서 남동생과 함께 살아왔다. 그동안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하는 가운데 틈틈히 책을 보며 5번의 도전 끝에 영광을 안았다.고교를 졸업하던 90년 서울대 법대에 응시해 낙방했다.공사판을 전전하며 92년 고려대,93년과 94년 서울대에 도전했으나 모두 고배를 마셨다. 지난 해에는 먼저 대학에 입학한 동생 승대군(23·고려대 경제학과 3년)의 학비를 보태느라 대학시험을 포기했다.그러나 막노동과 가스배달 등으로 학원비를 벌충하며 대학진학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떨어지면 공사장에서 돈을 모아 학원으로,학원비가 떨어지면 다시 공사장으로 나갔다.스스로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오늘의 영광을 차지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교 졸업시 내신성적이 10등급 중 5등급으로 중간에 그쳤으나 지난 해 수능시험에서는 1백83.7점을 받아 인문계에서 전국 5위를 기록할만큼 실력이 향상됐다. 장씨는 『늦었지만 공부에만 전념해 우리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돕는데 앞장서겠다』며 『어려운 환경이지만 항상 배워야 한다고 가르쳐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삯바느질과 노동으로 두 아들을 키운 어머니 이계생씨(53)는 『막노동으로 지친 몸으로 밤에 단칸방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남들처럼 뒷바라지 못하는 죄책감으로 가슴이 미어졌다』며 대견스러워했다. 고3때 담임이던 이규덕교사는 『장군은 성격이 활달하고 재학시절 무엇이든 한번 결심하면 끝까지 해냈다』며 『학교에서 입학금과 졸업할 때까지의 학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1천만원짜리 전셋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친지와 주민들의 축하를 받은 장씨는 고교졸업 후 5년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활짝 편다고 말했다.
  • 「오랜 관행」 따라 한 걸태질이라고?(박갑천 칼럼)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주검 누여놓고 장례절차 문제로 입씨름질하는 일도 있었다.집안따라 지방따라 예법·법도가 다른데서 오는 티격태격.그때 딴성바지의 「소리」를 잠재워버리는 말이 있다.『조용히들 하시오.이렇게 하는건 우리 과갈이오』 과갈이란 오이와 칡.둘 다 덩굴이 얽히고 설키면서 뻗는 식물이다.그래서 일가친척을 이르면서 쓴다.따라서 이때의 과갈은 우리집안에서 해내려오는 관행이라는 뜻이다.우리 관행이 이러하니 남들은 감놔라 배놔라 하지말라는 괘괘뗌.그 말 뒤로는 조용해진다. 그 관행은 무의식적인 언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작곡가 바흐의 반응같은 경우이다.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다.장례에 쓸 검은천을 사려고 하인이 돈을 달라고 한다.그러자 바흐는 그런일이라면 내 아내한테 말할 일이지 왜 나한테 묻느냐고 퉁명부린다.돈은 모른채 작곡만 해온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관행도 있다.정확하기로 이름난 칸트는 술마시는데서도 그랬다.정량을 넘는 법이 없었다.그가 죽음을 앞두고 몹시 목말라하니까 간병인이 포도주에 물을 타서 먹였다.하도 맛있게 마시자 한잔 더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칸트선생 대답은 『안돼.과하면 취해』.좋은 관행을 저승으로까지 가져가려 했음이던가. 물론 나쁜 관행도 있다.6·25때 어떤 해병부대에서 임관돼오는 장교에게 양주를 맥주컵에 가득 따라주면서 단숨에 마시라고 윽박질렀다는 관행같은 것.머뭇거리면 『야 임마,너는 입향순속도 몰라?』하면서 철컥 권총에 탄환을 쟀다니 덴겁할 일이다.누군가 심장마비로 죽고서야 없어졌다던가. 그렇게 잘못된 관행을 깨부순 사람도 있다.「동국여지승람」(순천조)에 나오는 바 고려때의 순천부사 최석같은 사람.그 고을에서는 부사가 갈리면 말 여덟마리를 내놓으면서 골라 갖게 하는것이 관행이었다.최부사는 억지로 주는 말을 돌려보내면서 자기말이 낳은 새끼까지 그 고을에서 났다하여 함께 보낸다.고을사람들은 그 뜻을 기려 팔마비를 세운다. 츱츱한 행적의 전직대통령이 자기허물을 「해명」하면서 이렇게 궁땄다.『잘못되기는 했지만 그건 우리 정치의 오랜 관행이었고…』.그 「오랜 관행」따라 걸태질했다는 논리였다.그의 재임중 어떤 공직자가 오랜 관행 따라 갈퀴질해서 챙기고 상납하고 하다가 파직당했을 수 있다.그 공직자의 죄책감에 면역을 심은 것이 「오랜 관행」.한데 대통령이 그에 앞장선 사회를 우리는 살아왔었구나.
  • 「독일 반파시즘영화 감상회」 마련/한국 영상자료원서 7일∼11일

    ◎「살인자는 우리안에」 「거짓말쟁이」 등 6편/왜곡된 정치성 재조명… 예술성 뛰어나 구 동독시절 반파시즘은 지성세계를 광범위하게 지배한 기본사조였다.그러나 그것은 주로 공산주의 투쟁과 연계됨으로써 획일적인 정치이슈로 의미가 축소되는 경향이 있었다.볼프강 슈타우테,에리히 엥엘,프리드리히 볼프 등 40년대 주요 반파시즘 감독들.이들은 이같은 정치적으로 왜곡된 반파시즘을 거부하고 그 참된 의미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하려는 시도를 거듭했으며,이를 통해 주제의식에서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주목받는 다양한 반파시즘영화들을 만들어냈다. 한국영상자료원(이사장 신우식)은 7일부터 11일까지 반파시즘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한 「독일 반파시즘 영화감상회」를 마련한다.소개될 작품은 △「살인자는 우리안에」(감독 볼프강 슈타우테,7일 상영) △「글라이비츠사건」(감독 게르하르트 클라인,8일) △「거짓말장이 야곱」(감독 프랑크 바이어,9일) △「약혼녀」(감독 귄터 뤽커·귄터 라이쉬,10일) △「너의 알려지지 않은 형제」(감독 울리히봐이스,11일) △「여배우」(감독 지그프리드 퀸,11일) 등 6편.이 가운데 특히 주목할만한 작품은 동서독을 통틀어 전후에 만들어진 첫 독일영화로 꼽히는 「살인자는…」을 비롯,「글라이비츠…」「너의 알려지지 않은…」등 3편이다. 「살인자는…」은 나치시대 무고하게 희생된 영혼들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단지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독일인의 이중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글라이비츠…」는 19 39년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폴란드 라디오방송국 글라이비츠 습격사건을 재연한 작품.또 「너의 알려지지 않은…」은 한 영사기사가 느끼는 사회의 냉대,배신에 대한 공포,부조리,고립 등 심리묘사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기존 투쟁영화와는 달리 주인공을 탈영웅화시켜 통제사회에서의 인간의 심리적 파멸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상영시간은 평일 하오 6시,토요일 하오 2시·4시.
  • “설계도 수시 변경” 시인/「우성」 피고인

    ◎설계·감리관련자는 책임회피/「삼풍붕괴」 25명 첫 공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관련,업무상 과실치사상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삼풍백화점 이준(73)회장과 이한상(42)사장 등 관련 피고인 25명에 대한 첫 공판이 30일 하오 2시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이광렬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이준피고인은 이날 공판에서 『대형참사로 죄책감을 느끼며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임형재(49·우원종합건축사무소장)피고인등 건축설계및 감리자와 부실시공 관련자들은 대부분 88년 삼풍백화점 건설 초기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대해 『기억이 없다』 『당시 책임자가 아니다』라고 자신들의 붕괴사고 관련성을 한결같이 부인했다. 그러나 건설 당시 기초공사를 맡았던 우성건설 현장직원 정순조(41)피고인 등은 『착공 초기부터 모든 공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삼풍백화점등 공사관련자들이 1∼2장의 낱장으로 된 별개의 설계도면을 통해 공사를 진행했다』면서 『공사의 전과정에 걸쳐 일관된 도면이 아닌 수시로 작성된 도면으로 공사가 진행됐다』고 말해 시공과정에서 설계도면이 자의적으로 변경됐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 비너스호 어제 귀환/이 항해사/기념사진 찍다 북 공안원에 적발

    북한에 쌀을 싣고 갔다가 청진항에 억류됐던 삼선 비너스호(선장·장병익·40)가 억류 8일째인 14일 하오 4시45분 쯤 포항 신항에 입항했다. 선장 장씨 등 선원 21명은 오랜 기간의 억류로 다소 긴장된 표정이었으나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장씨는 기자들에게 『1등 항해사 이항천씨가 지난 2일 상오 10시 쯤 자동 소형 카메라로 갑판에서 청진항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10여장을 찍다 북한 공안원에게 적발됐다』며 『이씨는 5일 하오 2시 쯤 청진 통행감시소에 연행돼 사진촬영 경위 등에 대해 조사받은 뒤 13일 상오 8시30분 쯤 배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장씨는 또 쌀을 모두 하역한 6일 상오 8시 북측으로부터 출항명령이 오지 않아 이상하게 여기던 중 삼천리공사 지도원과 과장이 이 날 아침 이씨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보내주겠다는 말을 듣고 억류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1등 항해사 이씨는 오랫동안 북측의 조사를 받은데다 죄책감 때문인지 초췌한 모습이었다.선원들은 그의 몸 상태가 양호하지 않다고 전했다.안기부 등 관계 당국은 이씨에 대한 구타 등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여부 등을 조사했다.
  • 호루라기 부는 사람이 없다/문용린 서울대교수·교육심리학(시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작년과 올해에 걸쳐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대형 참사로 민심조차 흉흉하다.언제 어디에서 불의의 변을 당할지 몰라 불안해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급증한다는 역이민의 추세가 올해를 고비로 주춤하고,국외로 탈출하려는 이민자 수가 오히려 급증하지 않을까 예상되기도 한다. 이번 삼풍참사에 온 가족을 잃은 어떤 유가족이 『도대체 이런 나라가 다 있는가』하고 한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그리고 어느 신문엔가 「한국인인 게 부끄럽다」는 사회면의 큰 제목을 보면서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미 많은 진단은 나와있다.부정부패의 순환고리가 연이어져서 온갖 건축물들의 공사가 허술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책임질줄 모르는 이기적인 관행이 굳어져서 모든일을 눈가림과 때우기로 해치우게 된다는 것,생명에 대한 외경의식이 희박하고 물질적 욕심에만 치우쳐서 타인의 안전과 공익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는 것등이 그것이다. 그런 모든 진단이 다 옳다.그러나 그런 진단은 이 모든 문제의책임을 국민 모두가 함께 지자는 의미로 낙착되는 허점이 있다.우리가 원하고,찾아내야할 원인은,국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고,모두가 함께 반성하자는 책임분산의 변명이 되는 원인이 아니라,구체적으로 어느 누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으므로,그런 일을,그런 사람들이 다시는 거듭하지 않도록 하자는 정보를 제시할 원인이다. 과연 그런 진단이 가능할까? 막연한 진단이 아니라,분명한 원인을 제시하면서,그런 사태를 사전에 예방할 구체적 방책이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리라고 본다. 요즈음의 복잡다단한 산업사회가 도덕적으로 건전한 사회로 유지되게 하는데 가장 요구되는 특징은 무엇보다도 먼저 엄정한 법집행에 있다.그러나 엄정한 법집행은 「법을 어긴자」에 대한 확인이 가능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따라서 「법을 어긴자」를 어떻게 찾아내는가의 여부가 엄정한 법집행의 관건이다.미국과 일본을 위시한 대다수 선진국에서 부정과 부패가 적은 이유는 엄정한 법집행에 있다고 볼 수 있으나,더 정확히 말하면,「법을 어긴자」에 대한 확인과 변별이 다른 어느 사회에서보다 더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그럼 법을 어긴 자에 대한 높은 확인율과 변별률은 경찰과 검찰의 질 높은 수사력 때문인가? 그렇지만은 않다.오히려,수사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시민 제보자」들의 높은 양심수준 때문이다. 예컨대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다고 하면,이곳저곳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죄책감을 가진 시민들이 기꺼이 아주 사소한 일일망정 수사기관에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는 것이다.삼풍참사를 두고,과연 어느 누가 양심의 가책을 제보했는가? 경찰과 검찰이 모두를 찾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삼풍과 관련해서 조금이라도 양심에 걸리는 일을 한 사람이 사망자들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자기가 한 일을 털어놓아 준다면,원인은 더 명쾌하게 밝혀지리라 믿는다. 결국 양심있는 시민 제보자의 결여가 삼풍을 비롯한 여러가지 한국적 대형참사의 원인이자 결과인 셈이다.삼풍백화점 건물붕괴 직전에 대피 여부를 놓고 대책회의가 있었다고 했다.그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중의 단 한사람만이라도 「양심에 입각한 용기있는 반역」을 시도하여 대피를 알리는 비상벨을 울렸다면,사태는 지금과 아주 달라졌을 것이다.이런 사람을 가리켜 「호루라기 제보자(whistle blower)」란 말을 도덕 심리학자들은 쓴다.이른바 정의와 진리,그리고 양심에 입각해서 동료와 소속집단의 비리와 부정을 폭로하고,고발하며 제동을 거는 사람을 말한다.회사측에서 보면 배신자가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이는 자기의 개인적 이득이 아니라,양심과 정의에 입각한 제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형 참사의 원인은 「호루라기 제보자」의 결여에 있다.설사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를 배신자로 몰아붙이려는 풍토를 가지고 있다.산업사회 이후의 사회는 대단히 복잡다단하여 「호루라기 고발자」의 왕성한 활동 없이는 도덕적으로 건전한 사회가 유지되기는 어렵다.
  • 회견 자청 삼풍 이 사장/김태균 사회부기자(현장)

    ◎입이 열개라도 할말 없을텐데… 『피해보상을 위해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싶습니다』 5일 상오 10시10분쯤 서울 서초경찰서 수사과장실.붕괴사고로 구속된 삼풍백화점 이한상(42) 사장은 변호사 자격으로 찾아온 전 무소속 서울시장 후보 박찬종씨와 자리를 마주했다. 애꿎게 죽어간 원혼들에 대한 죄책감때문이었는지,아니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철창 밖의 분노한 여론이 두려웠을까. 이사장은 핏발이 선 눈에 퍽이나 초췌한 표정으로 박씨와 마주 앉았다.갑작스런 박씨의 방문에 처음에는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곧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수그렸다. 박씨가 어색하게 운을 뗐다.『부모·형제를 앗아가고도 사죄는 커녕 「내 재산도 날아갔다…」운운하는 이들을 보고있자니 하도 답답해 접견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대화는 약 20여분동안 계속됐다.이사장은 접견이 끝날 즈음,나지막한 목소리로 『피해자 가족과 국민들에게 아픈 상처를 남긴데 대해 사죄한다』고 말문을 열었다.마치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긴 숨을 들이쉬었다. 이어 『가족과 회사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털어놓았다.피해보상을 위해 아버지 이준(73) 회장과 가족 및 법인 명의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사장은 끝으로 박씨에게 기자회견을 주선해 줄 것을 부탁했다.자기의 이러한 뜻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릴 기회를 갖고싶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어딘지 앞뒤가 맞지않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재산을 헌납하면 그뿐이지 기자회견은 해서 무얼 하겠다는 것일까. 『이럴 때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은데…』.이사장의 말을 전해들은 한 경찰관의 말이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조차 민망스러울 정도로 그 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이사장.그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는 평범한 속담의 뜻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 “사흘이나버텼는데…은영아!”/7시간만에 구출”기쁨도잠시…가족들통곡

    ◎먼저나온 사촌 “찾아달라” 이틀간 호소/발견요원 “손 차다” 사망 간주… 구조 늦춰/심장마사지 2시간 의료진 끝내 눈물 『오! 하느님 이럴 수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71시간15분만에 2일 극적으로 구조된 백화점 아르바이트생 이은영양(21)이 가족들과 이종사촌 언니 권은정(22)양의 애타는 절규를 뒤로하고 구조 2시간15분만에 끝내 숨졌다. 구조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양의 아버지 이정규씨(46)와 어머니 송희만씨(44)는 딸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통곡했다. 이양은 이날 하오 5시5분쯤 B동 지하 1층 슈퍼마켓 입구에서 기적적으로 구출됐다. 같은 장소에 갇혀있다 30일 상오 9시쯤 구조된 권양의 애타는 호소 덕분이었다. 권양은 원기를 되찾은뒤 곧바로 구조반을 쫓아다니며 자신이 구조됐던 곳에 『이양도 같이 있었다』고 호소했다. 이양은 마침내 구조대원들에 의해 이날 상오 10시쯤 발견됐다.오른 손이 차가워 이미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가 다시 들어간 119구조대원이 왼손과 오른 손이 포개져 있는 등 움직인 흔적을 발견해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이양은 그러나 하오 2시쯤 본격적인 구조 작업이 시작됐을 때는 맥박마저 희미해 산소호흡기 등으로 응급처치를 받아 1시간여만에 위급한 상황을 넘겼었다. 이날 이양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권양은 『깜깜한 어둠속에서 서로 「꼭 살아서 나가자」고 다짐했지요.내가 구출되기 직전에도 은영이는 어둠속에서 내 다리를 주물러 주었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한쪽다리를 철제빔에 깔린 은영이가 「언니,다시 살더라도 다리병신이 될 것 같아 어떡하지」하고 물어왔어요』 그래서 권양은 이양의 왼쪽 다리의 신발을 벗겨주고 『은영아,이게 네다리가 맞냐』고 물었으나 이양은 『아니 모르겠어』라고 대답했고 이에 권양은 다시 『이게 바로 네다린데 네 다리는 멀쩡해』라고 위로해 주었다. 이들은 철제더미에 깔려 십자형으로 엇갈려 있었던 것이다. 이양은 또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도 다리가 철제 빔에 깔려 꼭 끼는 듯한 느낌에 『언니,바지를 찢어줘』라고 애원해 권양은 『너 치마를 입었는데…』라고 응답했다. 지난 3월부터 지하 1층 슈퍼마켓주류판매원으로 근무하던 권양은 평소 친구처럼 지내던 이양을 아르바이트원으로 소개,지난 19일부터 사고가 날때까지 10일동안 매장에서 함께 일했다. 이양은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웨딩숍에 취직할 생각으로 메이크업 기술을 배웠으나 일자리가 나지않아 취직될때까지 근무하겠다며 권양의 권유를 선뜻 받아들였다.그러나 2주예정으로 취직한 아르바이트일을 불과 4일 남겨놓은 상태에서 권양과 이양은 굉음과 함께 태풍같은 바람에 몸이 날리면서 커다란 돌더미속에 갇혀 버렸다. 권양과 이양은 구조대가 다가올 때마다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고 힘이 빠져 기력이 없을 때는 맨손으로 땅바닥과 주변에 있던 널빤지를 맨손으로 피가 나도록 긁었다. 마침내 사고발생 15시간만에 권양은 왼쪽 무릎에 가벼운 타박상만 입은 상태로 먼저 구출됐다.그러나 권양은 혼자 살아 나왔다는 죄책감에 병원 침대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결국 이양은 권양이 구조된 뒤 56시간만에 구조됐으나 필사적인 구조요청을 반증하듯 손가락은 이미 헐어버렸고 이양이 긁던 널빤지는 세로로 홈이 패 있었다. 『어둠속에서 은영이의 온기가 자꾸만 식어가는 것을 느꼈지만 꼭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어요.71시간이나 버텼던 은영이의 죽음이 너무나 억울해요』 권양은 말을 잇지못했고 구조된 직후부터 2시간동안 심장 마사지를 하며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의료진 10여명도 눈물을 떨궜다.
  • 익산 미륵사지 인물소묘 기와(한국인의 얼굴:25)

    ◎도타운 볼·턱… 후덕한 백제인 모습/이마 가운데 백호… 부처의 얼굴/붉은 안료로 데생… 예술성 높이 평가 고대미술에서 순수한 그림,다시 말하면 회화를 찾아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그림을 그린 바탕이 대부분 종이나 천,나무와 같이 빨리 부식이 진행되는 소재여서 오랜 세월을 견디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고대의 순수한 그림은 테라코타유형의 조각이나 돌과 금속을 이용한 조각속의 그림들 보다 상대적으로 희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면 삼국시대의 백제 기와에서 얼굴 그림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이 얼굴그림 역시 전북 익산군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 절터에서 나온 높이 16.1㎝의 기와 속에 들어있다.기와 뒷면에다 붉은 안료를 써서 그린 그림이다.훌륭한 솜씨의 소묘인데 현대감각의 데생기법을 능가할 정도다.표현의도의 요점을 명쾌한 필치로 십분 살려냈다. 이 인물상은 약간 옆얼굴을 하고 있지만 앞얼굴에 더 가깝다.그래서 두 눈과 코,입이 모두 표현되었다.구도대로라면 왼쪽 귀가 있어야 할텐데 일부러 생략한 듯 싶다.눈과 코가 비교적 큰데 비해 입은 자그마하다.이마를 마감하기 위해 든 붓끝을 눈두덩 언저리서 잠깐 멈추었다 위로 삐쳐 눈썹과 이마를 한꺼번에 그렸다.여기에 도탑게 그린 볼과 턱이 한몫을 단단히 거들어 이 인물상이 풍기는 인상은 후덕스럽다. 얼굴을 다 그려놓고 마지막으로 이마 한 가운데다 점 하나를 꾹 찍어 백호를 나타냈으니,그림의 얼굴은 부처임에 틀림이 없다.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미륵사 창건에 참여한 어느 화공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부처를 작화하는 불사에 꼬박 매달렸다가 짬을 낸 사이 자신의 얼굴을 그려본다는 것이 그만 부처를 닮아버려 얼른 백호를 찍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다. 불가에서는 하기야 곳곳에 불성이 있고 깨우치면 모두가 부처라고 가르친다.하지만 화공은 부처를 닮은 자화상을 그렸다는데 죄책감 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더구나 당시 미륵사는 왕이 발원하여 창건중인 대가람이었다.그래서 화공이 그린 얼굴은 백호가 있는 부처얼굴로 바뀌어 미륵사 어느 전각의 지붕에 올랐을것이다. 이 얼굴그림의 중요성은 작화기법에 있다.예술성을 한껏 지닌 회화를 소묘를 통해 창출했다는 점이 그것이다.그리고 붓이 닿는대로 물기를 흡수하는 기와의 단점을 극복하려고 빠른 그림을 그렸는 데도 걸출한 인물이 표현되었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이는 오늘날 서양화가 자랑하는 크로키 스케치로 속사를 의미하는 작화기법이다.그렇다면 백제의 화공들은 고대에 이미 크로키 스케치를 터득한 셈이다.목탄이나 연필을 쓴 것도 아니고 붓으로 구사한 속사였다. 소묘를 물론 서양화의 전유기법으로 여겨서도 안된다.동양화에서도 일찍 모필화에 의한 소묘가 전해오는 가운데 남종화와 북종화가 서로 다른 필법을 구사했다.더구나 미륵사 기와의 얼굴그림 소묘는 7세기 중반 작품이라는 사실에 크게 유의할 필요가 있다.
  • 김현희씨·여금주양이 말하는 남과 북/서울신문 첫 합동인터뷰

    ◎“진한 화장 짧은 머리… 평양패션 서양화”/“KBS듣고 남쪽 잘 산다는 것 알았어요”/“외화벌이 남자와 결혼하는게 여성의 꿈”/김/“요즘도 북한의 가족 찾는 꿈 꿔요”/여/“영어에 깜깜… 학교공부 힘들어요” 『현희언니,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나도 금주양이 보고 싶었어요』 15일 한국 프레스센터 20층 동백실에서 첫 대면한 김현희씨(34)와 여금주양(21)은 한동안 포옹을 풀지 않았다. 김현희.올해로 서울생활 9년째를 맞는 그가 북한탈출 귀순자를 만난 것은 김만철씨에 이어 두번째.그러나 여성 귀순자를 만나기는 여양이 처음이었다. 검은 블라우스 위에 베이지색 재킷차림의 김씨와 체크무니 재킷차림의 여양은 흡사 친자매같았다.지난해 4월30일 사회안전부 대위출신인 아버지 여만철씨(49)등 일가족 5명과 함께 동남아를 거쳐 귀순한 여양은 서울에 오기 전까지 김씨가 누구인지를 몰랐다고 한다.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선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해 일절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여양은 서울에 온 뒤 비디오 「마유미」와 그의 고백록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를 읽고 나서 김씨의 아픔을 알게 됐고 언니가 가여워 울었다고 한다. 『화면을 통해 봤을 때와 달리 가까이서 보니 정말 언닌 젊고 예쁘네요.언니가 똑똑하고 예쁘지 않았으면 공작원으로 뽑히지도 않았을 텐데…예쁘게 태어난게 「원수」인 것 같아요.아마 언니가 남쪽사람으로 북한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벌써 죽었을 거에요』 ○93년 평양 많이 변해 김씨와 여양의 연령차는 13살.그러나 나이차보다 더 큰 간극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시차 7년이었다.김씨가 마지막으로 평양을 떠난 87년까지 북한여성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먹고 사는 일이 전부였다.그러나 여양이 전하는 그 뒤의 북한,특히 여성사회엔 미미하나마 나름대로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88년 처음 평양에 갔을 때는 그곳 여자들이나 내가 사는 함흥여자들이나 별로 다른게 없었어요.그러나 93년 다시 평양에 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달라진 여자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머리모양이 짧아졌을뿐 아니라 브래지어 바람에 속이 훤히 드려다보이는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더라니깐요.거기다 화장도 서양식으로 진하게 하는 등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한 느낌을 받았어요』 여양이 전하는 북한의 이성교제 역시 김씨의 재북시절과는 많이 달라진듯 했다.김씨가 공작원 교육을 받던 87년엔 남녀가 대동강변을 손을 잡은채 돌아다니는게 「첨단 데이트」에 속했다는 것.그러나 요즘엔 남녀가 껴안은채 밀어를 나누는 모습을 대동강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여양은 말했다. 밝고 활달한 여양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던 김씨는 여양이 가족과 함께 자유를 찾은 사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북한이 어떤 사회인데,일가족이 고스란히 탈출할 수 있었다니 정말 천행에요』.김씨는 여양 일가의 귀순보도를 대하면서 함남 요덕 「2951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가족생각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이젠 가족생각도 희미해졌다』고 말한 김씨는 『가끔씩 여동생 현옥이와 남동생 현수가 나타나 큰 누나 때문에 식구들이 고생을 하게 됐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내가 스웨터 등 보따리 꾸려들고 우리가족을 찾아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가 지난 91년 3월 여의도침례교회서 세례를 받은후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 의해 목숨을 잃은 무고한 KAL858기 희생자들에 대한 속죄와 아울러 가족들의 무사함을 하느님께 빌기 위해서라고 한다. 올해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에 입학한 여양이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은 그가 북한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판자집과 거지 천국」에 판자집과 거지 대신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빌딩숲과 흘러 넘치는 경제적 풍요였다고 한다.여양은 북한에서 KBS 사회교육방송등을 통해 남한이 잘 산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았지만 이렇게 잘사는 줄은 몰랐다고 한다.북한에선 라디오를 구입하면 의무적으로 안전부에 등록하도록 돼있고 안전부는 채널을 납땜,남한방송청취를 원천봉쇄한다고 한다.그러나 일단 등록만 하고 나면 추후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수의 주민들이 몰래 고정납땜을 뜯어내고 남한방송을 듣고 있다는 것.특히 친한 학생들끼리는 남한방송에서 들은 내용을 서로 주고 받기도 하는데 그 가운데는 『남조선에선 거리 청소부도 집에 전화를 매놓고 산다』는 얘기도 들어 있다고 한다.놀랍게도 여양은 친척이 중국에 있는 남학생으로부터 6·25가 남침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고 밝혔다.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 북조선이 「지상의 낙원」임을 끝없이 세뇌하고 있지만 정작 북한주민들은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산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여양은 말했다.북한주민들은 주로 「귀국자」나 중국연변의 조선족,러시아벌목공들로부터 바깥 세상정보 특히 남한정보를 듣고 있는데 러시아벌목장에서 일하다 귀국하는 벌목공의 경우 품질이 좋은 남한치약을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 「MadeinKorea」란 글자를 긁어낸채 갖고 들어온다고 한다.여양은 그래도 평양에서 만든 치약은 품질이 괜찮은 편이지만 지방산 치약은 흰 치분을 물에 반죽해놓은 정도여서 대부분의 가정에선 소금으로 이를 닦고 평양치약은 손님 접대용으로 모셔놓는다고 말했다. ○6·25는 남침 들었다 북한청소년들의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여양은 『북한 청소년들은 꿈을 위대하게 갖지 않는다』고 말하고 요즘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 장사에 나서 돈을 벌겠다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최근들어 북한에서 군복무기피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한 여양은 이같은 풍조 역시 돈을 벌어 잘살아보겠다는 청소년들의 가치관과 무관치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씨가 『그전엔 김일성과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치겠다』며 입대를 자원하는 청소년들이 많았다고 말하자 여양은 『이젠 어쩔 수 없어 군에 가는 경우가 더 많다』며 김일성종합대학의 경우 전엔 고등중학교 추천 70%,군추천 30%로 신입생을 받아들였으나 이제는 고등중학교 추천 30%,군추천 70%로 그 비율을 바꿔 청소년들의 군입대를 회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양은 젊은이들의 군입대를 기피하는 이유는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과 사망,핵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맨먼저 죽게 될것이란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물론 군인은 일반 주민에 비해 훨씬 많은 식량(1일 800g)이 지급되지만 변변한 부식없이 쌀 30%,잡곡 70% 비율로 지은 밥만 먹곤 엄청 강도가 높은 훈련을 감당못해 영양실조에 걸리는 장병이 적지 않다는 것.이런 소문이 쫙 깔리는 바람에 젊은이들이 그럴듯한 구실이나 꾀병을 이유로 입영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여양은 인민군의 요양소는 대부분 영양실조로 쓰러진 군인들을 수용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젊은이들이 군입대를 기피할 목적으로 자주 써먹는 방법은 신검수검 직전에 엿을 잔뜩 집어 먹고 혈압을 올려 고혈압환자로 위장하거나 X레이 촬영시 러닝셔츠속 가슴팍에 담배곽에서 떼낸 은박지를 붙여 필름에 폐결핵 환부가 나타나도록 위장하는 것 등이라고 한다. 서울생활 1년을 맞는 여양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햄버거.『북한에선 돼지고기도 꿀처럼 먹었는데 여기와선 너무 자주 먹는 탓인지 이젠 신물이 났다』는 여양.그러면서 그는 『사람의 입이 참으로 간사한 것 같다』고 했다. 이미 4권의 고백록과 2권의 번역서를 낸 김씨가 독서에 취미를 가진 반면 여양은 TV시청을 즐기는 편이다.여양이 즐겨 보는 드라마는 KBS­2TV의「딸부잣집」과 SBS의 「이 여자가 사는 법」.김씨 역시 즐겨보는 TV프로로 「딸부잣집」과 뉴스프로를 꼽았다. 강연이나 신앙간증에 나서는 틈틈이 책을 읽고 쓴다는 김씨는 최근에 펴낸 「이은혜,그리고 다구치 아예코」를 얼마전에 구입한 컴퓨터로 썼다면서 『요즘엔 컴퓨터가 생활의 또다른 즐거움으로 추가됐다』고 말했다. 한편 얼마전부터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는 여양의 가장 큰 고민은 학교공부다.특례입학으로 진학은 했지만 영어에 깜깜한데다 교과과정이 북한과 다르기 때문에 따라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고 한다.또하나,여양을 괴롭히는 건 미팅이다.얼마전 같은 대학 법대생들과 그룹미팅을 가졌을 때 마음에 쏙드는 남학생을 발견,「찍었는데」 그 남학생이 다른 여학생을 파트너로 정하는 바람에 요즘 「열을 받고」있다는 것이다. ○청소년 군기피 확산 여양은 나이로 보면 분명 X세대지만 부를줄 아는 노래가 주로 가요곡집의 앞쪽에 실린 노래들 뿐이어서 노래방 가기를 꺼린단다.그러나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요즘 독한 마음 먹고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이상적인 남성상을 『비록 자판기 커피일망정 함께 나누며 나를 기쁘게 해주는 남자』라고 밝힌 여양은 같은 또래의 여대생들이 브랜드옷을 고집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몸에 잘맞고 색깔만 잘 받으면 됐지 메이커가 무슨 상관이냐』는 의젓함을 보였다. 서울엔 미인이 많은 것 같다는 여양 말에 김씨는 아마도 식생활이나 환경 탓일 것이라고 설명.북한여성들도 성형수술을 하느냐는 질문에 여양은 『돈을 주고 병원에서 쌍꺼풀수술을 하는데 시술수준이 낮은 탓인지 3년 못가 풀린다』고 말하고 수술이 잘못돼 고등중학교 학생이 할머니로 변하는 웃지 못할 일이 자주 벌어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여성들의 꿈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김일성종합대학이나 평양외대를 졸업,외화벌이 기관에서 근무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두사람이 똑같았다.여양은 그래서 『요즘 북한여성들 사이에선 시집 잘가는게 대학 15곳 다닌 것보다 낫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생지옥」에서의21년의 생활을 마감하고 자유를 마음껏 호흡하게 된 여금주양.그는 이제 배고픔과 유일사상체제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풀려난 것이다.더는 금요노동에 나오라는 지시도 받지 않게 됐으며 영농철 두달간의 노력동원으로부터도 해방이 됐다.어디 그뿐인가.스스로 능력을 키우고 노력만 하면 원하는 것을 움켜쥘 수 있는 가능성의 문앞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그래서 여금주양은 이제 행운의 여신과 손을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 ○인세 고스란히 저금 그러나 같은 북한에서 태어났어도 평생 벗지 못할 무거운 멍에를 지고 있는 김현희씨.그는 한 인간이 겪어야 하는 불행의 끝이 어디인가를 가늠하지 못한채 오늘도 번민과 죄책감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그는 10억원에 가까운 출판인세를 한푼도 쓰지 않은채 고스란히 저금해놓고 있다.KAL기 희생유족들과 합의가 이뤄질 경우 그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는데 쓰기 위해서다.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거듭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북한의 억압속에 신음할 가족생각에 하루도 눈물 마를 날이 없는 김현희.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 두 여인에게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준 이 불행한 시대상황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하루 빨리 청산해야할 공동의 빚이 아닐는지.여양은 4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서면서 『언니,외롭거나 마음이 아플 때면 제게 전화 하세요』라며 김현희씨를 다시 껴안았다.
  • 록 뮤지컬 「후즈 토미」(브로드웨이 “새바람”:10)

    ◎영그룹 「WHO」 노래 극화… 3년째 관객 밀물/사랑에 굶주린 장애소년의 정상회복 과정 그려/록뮤직 30곡으로 구성… 사이키 조명에 빠른 진행/“이 시대 마지막 정통 록 뮤지컬” 평… 롱런 예고 브로드웨이는 요즈음 20여년만에 찾아온 로큰롤의 열기로 후끈 달아 있다.50년대 중반 이후 엘비스 프레슬리,비틀즈,롤링 스톤즈로 이어져온 로큰롤이 브로드웨이의 정통 뮤지컬에 접목되어 대대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60년대말부터 70년대말까지 10여년간 로큰롤의 세계적 명성을 누려온 영국 보컬그룹 「후」(Who)의 69년 앨범 「토미」(Tommy)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뮤지컬 「후즈 토미」(TheWho’s Tommy)다. 지난 93년 4월 막을 올려 곧 공연 2주년을 맞는 이 뮤지컬은 장년층들의 향수는 물론 청소년층의 관심도 크게 불러일으켜 브로드웨이 44스트리트의 세인트 제임스 극장 앞에는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다.특히 수요일 하오2시의 낮공연은 단체 관람온 학생들로 북적인다. ○학생관객엔 할인혜택 극장측은 공연2주년을 맞아 4월과 5월 두달동안 1개월 앞서 예매하면 정상요금(30달러∼67달러)에서 50%를 할인해주는 파격적인 관람료의 사은행사까지 계획하고 있어 「후즈 토미」 열기는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헤어」(1968년 초연·1천7백50회 공연),「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71년·7백20회)와 함께 브로드웨이의 3대 록뮤지컬로 불리는 이 극은 전편이 30여곡의 록뮤직으로 구성돼 있으며 갑작스런 심리적 충격으로 귀먹고 말 못하고 눈 안보이는 장애인이 된 4살의 토미가 20년 동안 의지력으로 장애를 극복,정상인으로 돌아온다는 교육적 내용을 극적인 연출로 흥미진진하게 전개하고 있어 큰 감동을 선사해주고 있다. 「후즈 토미」는 브로드웨이에서 20여년만에 공연되고 있는 본격적인 록뮤지컬이며 또한 세인트 제임스 극장 역시 지난 64년 록뮤지컬 「헬로,돌리!」를 2천8백44회 공연이라는 공전의 기록을 세워 이번 작품의 롱런도 점치게 하고 있다. 기타리스트로 주로 작곡을 맡으며 그룹 「후」의 리더로 활약하던 피트 타운센드가 대본과 음악을 맡고,데스 매카너프가 연출을 맡은 이 뮤지컬은 주인공 토미의 출생부터 성장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 구성으로 돼 있다. 특히 4살의 토미(킴벌리 하논·여),10살의 토미(트라비스 그라이슬러),장성한 토미(피터 에르미데스)등이 시대별로 나오며 이들은 토미의 자아의식 변화에 따라 둘이 혹은 셋이 동시에 등장하기도 한다.또한 장성한 토미는 어린시절의 토미와 내면의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공중을 날아서 무대위에 나타난다. 막이 오르면 2차대전이 한창인 1940년,영국 런던의 공군 폭격기 기지창을 무대로 워커대위(마크 맥베이)가 미모의 남장 용접공(제시카 몰라스키)을 만난다.그들은 곧 결혼하게 되고 신혼의 꿈이 채 깨기도 전에 워커대위는 특수임무를 띠고 독일진영에 투하된다.그러나 곧 잡혀 포로가 된다.여기까지의 이야기인 프롤로그가 빠르게 진행된다. ○남편의 전사통보 받아 첫 장은 1941년 워커대위의 집.배가 부른 채 남편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던 부인에게 워커대위의 전사통지가 날아든다.그녀는 상심의 나날을 보내다 사내아이를 낳는다.사건은 1945년에 발생한다.워커대위의 집에서는 4살된 토미와 워커부인과 애인(리 모건)등 세식구가 단란하게 앉아 그녀의 21세 생일파티를 벌이고 있는데 사실은 죽지 않고 종전으로 석방된 워커대위가 나타나고 워커대위는 부인의 애인과 싸우다 그를 총으로 쏴 죽인다. 그 광경을 거실의 커다란 거울앞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토미는 엄청난 충격으로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고 눈도 안보이게 된다.워커대위는 정당방위로 무죄방면되나 토미가 한 순간에 장애자가 돼 버린 일은 부모들을 죄책감으로 짓누른다. 워커부부는 토미를 고치기 위해 병원에도,성당에도 가보나 소용이 없자 마지막에는 주술사에게 데려간다.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그러던중 토미는 부모가 직장에 나간후 돌봐주는 사촌형 케빈(안토니 배릴레)을 따라 핀볼(회전당구)오락장을 드나들게 된다. 그곳에서 토미는 그동안 잠재돼 있던 시각적 청각적 기능이 발산돼 놀라울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핀볼 플레이어로 등장한다.그는 또한 이곳에서 뛰어난 미디어 감각도 갖추게 된다. 그래도 그의 장애증상에는 전혀 차도가 없자 워커부부는 다시한번 병원에서 종합검사를 시키지만 여전히 소용이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워커부인은 상심하고 있던중 집에 돌아온 토미가 늘하는 버릇대로 거울앞에 서서 거울과의 대화를 주고받자 화가 치민 끝에 책상을 들어 대형 거울을 깬다. 거울이 깨지는 충격에 토미는 제정신이 돌아오고 그의 뛰어난 음감은 그를 최고의 록스타로 만든다.결국 이 시대의 상징으로 설정된 토미의 정신불안상태가 기적적으로 치유되는 것이다. 이 극은 병원에서 검사를 하거나 핀볼게임을 하거나 모든 극중의 내용들이 록뮤직에 맞춰 빠른 템포로 진행되고 조명 또한 사이키에 가까운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어 관객들에게 시종 박진감을 주고 있다.따라서 다소 어두운 내용임에도 지루함 없이 전개되며 특히 토미의 의식이 돌아오고 눈을 뜨며 말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또 이 극에서 어린 토미와 장성한 토미가 부르는 주제곡 「나를 보세요,나를 느끼세요,나를 만지세요,나를 고쳐주세요」(See Me,Feel Me,Touch Me,Heal Me)는 사랑에 굶주리고 고독감에 빠져 있는 장애인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노래로 퍼져나가고 있다.극이 끝난후에는 극중의 주인공들이 현관앞에 나와 장애인을 위한 모금활동을 벌여 감동한 관객들이 아낌없이 적선하는 광경도 연출했다. 이 뮤지컬의 구성은 특히 영국 소설가 제임스 배리의 아동극화 「피터 팬」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공상의 나라 아이인 피터는 장성한 토미와,피터에 이끌려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 소녀 웬디는 어린 토미와 대비된다.장성한 토미가 천장의 줄장치를 통해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는 모습은 피터가 나는 모습과 흡사하다. ○「피터 팬」과 비슷한 양상 뮤지컬 「피터 팬」은 79년9월 로브 이스코브의 연출로 브로드웨이의 런트 폰테인 극장에서 5백51회의 공연을 가진바 있다. 특히 「토미」앨범은 2년이상 연속 빌보드 차트에 올랐으며 주요 히트곡 「핀볼 마법사」(Pinball Wizard),「나는 자유」(I’m Free),「영감」(Sensation)등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그룹 「후」는 록뮤직을 청소년들이나좋아하는 「하찮은 음악」의 수준에서 어엿한 음악예술의 한 장르로 격상시켰으며 이로인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가진 세계 최초의 록 밴드가 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 시대의 마지막 정통 록뮤지컬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뮤지컬 「후즈 토미」는 당분간 롱런할 것으로 보여 록뮤직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누리리라는 가능성을 이 작품에서 찾기도 한다.
  • 무릎꿇고 비는태도 그대로(사설)

    찬땅에 무릎꿇고 108배(배)를 드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속을 시리게 한다.스승을 폭행한 철없는 동료학생들의 허물을 대신 사과드리기 위해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엎드렸을 그들이 안쓰럽고 대견하다.그러면 그렇지 우리 자식들인데 그들이 다 잘못되었을 리가 있겠는가.동료 학우들이 저지른 과오가 얼마나 자책스러우면 11월의 차가운 땅기운을 무릅쓰고 그렇게 엎드려 사죄하겠는가. 그 대학의 건학이념인 불상에 발길질을 하다가 그것을 나무랐다는 이유로 스승에게 폭행을 자행한 동국대사건은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 것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학교와 학생들이 보여준 기민한 대처와 수습력은 불행한 중에서도 다소의 위안을 준다.중한 벌과 덜 중한 벌을 가려서 처분하고 책임을 통감한 보직교수들의 사퇴가 있었던 일도 적절하지만,그보다도 동료학생들을 대신하여 깊이 사죄하는 학생들에게서 우리는 많은 노여움을 삭일 수 있었다.그것은 그들이 알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그런저런 도리를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않는 것이 그들인 것만 같아 앞날이 아득하던 우리에게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지않다는 것을 확인해주어 고맙다. 우리를 참으로 아프게 하는 것은 보름씩이나 치료해야 할 스승의 상처가 아니다.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밖에 길러놓지 못한 우리의 실패에 대한 자괴감의 정신적 상처가 더 큰 고통이다.부모도 몰라보고 스승도 몰라보는 그 도덕적 맹목의 자식들을 두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처참하고 불행한 일인가. 부모가 자식들에게 규범교육을 하고 나라가 젊은이의 훈육을 고민하는 것은 자식들이 그들의 삶에 실패하지 않게 하는 중요한 핵심이 거기 내재해 있기때문이지 어른의 잇속을 위해서가 아니다.그러므로 조금만 뉘우치는 기색이 보여도 거기서 희망을 찾고 노여움을 삭인다.그들이 장차 『못쓰게 버려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사회경영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오늘의 기성세대들은 원망을 듣는다.황폐하고 타락한 품위잃은 오늘의 사회를 책임져야 한다고도 말한다.그러나 가난과 폐허의 사막에서 헤어날 길이 막막했던 세월속에 오늘을 일궈오느라고 너무도 고생해온 세대들인 그들은 그러는 동안 더러 저지른 허물을 지금 와서 추달당하는 일이 억울하고 회한스럽다.대책없이 패륜한 자식과 제자를 앞에 놓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죄책감에 죽고싶도록 낭패스럽다. 그런 스승과 부모앞에 사죄의 무릎을 꾼 학생들에게 어른들은 눈물로 호소한다.우리 이제는 정신을 가다듬어 이 땅이 더는 도덕적으로 오염되지 않도록,더는 파렴치의 천국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비장하게 각오를 새로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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