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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출세길 열어준 리카싱… 홍콩 문제로 은인에서 원수로

    시진핑 출세길 열어준 리카싱… 홍콩 문제로 은인에서 원수로

    푸저우시 간부때 리카싱에게 투자 부탁 시, 권좌 오를 때까지 크고 작은 도움받아 장쩌민·후진타오 前주석도 리카싱 중시 2012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 앞두고 리카싱, 시의 친중 후보 지원 요청 거부 올 홍콩 시위 땐 자제 요구로 눈엣가시1993년 1월 뺨이 통통하고 머리숱이 많은 39세의 중국공산당 간부가 홍콩을 찾아갔다. ‘아시아의 상신(商神)’으로 불리던 리카싱에게 중국 남동부 푸저우시에 투자해 줄 것을 읍소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중국은 1989년 톈안먼 사태 여파로 경제가 극도로 부진했다. 리카싱은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 그해 8월 푸저우를 방문했다. 마을 곳곳에 리카싱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그는 푸저우의 발전과 자신의 출세가 보장됐다고 느낀 듯 환히 웃으며 리카싱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가 바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최근 로이터통신이 묘사한 시 주석과 리카싱의 특별한 인연이다. 시 주석에게 있어서 리카싱은 지금의 권좌에 오르는 데 크고 작은 도움을 준 ‘은인’이지만 홍콩 시위 사태가 7개월째 이어지면서 둘의 관계도 극적으로 변했다고 중화권 매체들은 전했다. 이제 시 주석은 91살의 리카싱에게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가 홍콩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베이징의 비난을 경청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25일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리카싱은 1928년 중국 광둥성에서 태어났다. 1939년 일제가 이 지역을 침략하자 이듬해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피신했다. 그때부터 생계를 책임지고자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1950년 전 재산을 투자해 자신의 회사를 차려 초고속 성장을 거뒀다. 최근 알리바바 설립자 마윈과 텐센트 창업자 마화텅이 등장하기 전까지 수십년간 ‘아시아 최대 부호’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덩샤오핑(1904~1997)이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자 가장 먼저 중국 투자를 단행해 ‘모범 기업인’으로 칭송받았다. 장쩌민·후진타오 주석도 리카싱을 중시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2013년 시 주석이 국가 전면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2012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앞두고 당시 부주석이던 그가 리카싱에게 렁춘잉 후보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리카싱이 이를 거부한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리카싱은 시 주석이 집권한 뒤로 중국 투자 비중을 크게 줄였다. 이에 중국 정부는 보란듯 지난해 발표한 ‘중국 개혁개방에 공을 세운 100인’에서 리카싱을 제외했다. 중국 언론매체들은 그를 ‘기득권자의 전형’으로 비난하며 조리돌림하고 있다. 로이터는 “중국공산당은 홍콩 기업인들이 시위 사태에 적극적으로 맞서 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리카싱은 공평하게 양측(시위대·홍콩정부)의 자제를 요구하는 데 그쳐 중국 당국을 화나게 했다”고 분석했다. 홍콩 혼란의 도화선이 된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이 자산 압류 수단으로 활용되면 리카싱도 시진핑의 반부패운동 명분하에 본토 자산을 몰수당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한국 “문희상 의장 좌파의 충견” 민주 “인신공격 중단을”

    한국 “문희상 의장 좌파의 충견” 민주 “인신공격 중단을”

    선거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가능하게 한 문희상 국회의장의 역할에 여야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자유한국당은 24일 문 의장을 “좌파의 충견”이라고 맹비난하며 법적 조치를 예고했고, 더불어민주당은 문 의장의 의사진행을 치켜세우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 남은 개혁법안을 모두 처리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당은 문 의장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고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사퇴 촉구 결의안 제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 등을 예고했다. 한국당은 ‘임시국회 쪼개기’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무력화하고, 안건 순서를 변경해 선거법을 상정한 민주당의 모든 행위가 문 의장의 편파적 의사진행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어제 문 의장은 참으로 추했다”며 “파렴치한 의사진행으로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 출신의 문 의장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국회법도 위반해 가며 권력의 편에서 국회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의장은 한국당에 국회법이 정한 모든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최대한 절제하고 배려하는 회의 진행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회의장에 대한 한국당의 치졸한 인신공격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며 엄호에 나섰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한국당 “‘좌파 충견’ 문희상 의장, 형사고발·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한국당 “‘좌파 충견’ 문희상 의장, 형사고발·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사퇴촉구 결의안·권한쟁의심판 청구도”“아들에 지역구 물려주려 여당 시녀 전락”“국회법 위반 명백…입법부 수장 인정 못해”文의장, 23일 선거법 합의안 기습 상정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4일 범여권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의 선거법 합의안을 기습 상정한 문희상 국회의장의 전날 본회의 의사 진행에 대해 형사 고발과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심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국회 농성을 벌이고 있는 로텐더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 의장에 대해 “좌파의 충견 노릇을 하고 있다”며 직권남용·권리방해 혐의 형사고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사퇴 촉구 결의안 제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법을 개정해 국회의장이 함부로 의사봉을 두드리지 못하게 하겠다”면서 “의장의 중립 의무를 훨씬 강화하는 내용을 국회법에 못 박고, 의장이 책무를 저버리면 탄핵당할 수 있도록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예산안 날치기 때도 중립·공정의 책무를 내팽개치더니 어제는 더 야비해졌다”면서 “문 의장의 파렴치한 의사진행은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이어 “국회법 해설서에도 회기결정에 대해 무제한 토론을 허용해야 한다고 나오지만 문 의장은 이를 거부했다”면서 “국회법을 위반한 것이다. 문 의장은 부끄러운 줄 알길 바란다”고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입법부 수장이 여당의 하명을 받아 그대로 따르는 모습이 부끄럽다. 참으로 추하다”면서 “문 의장이 왜 이렇게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는지 국민은 안다. 아들에게 지역구를 물려줘 ‘아빠찬스’를 쓰려는 것 삼척동자도 다 안다. 우리는 더 이상 문 의장을 입법부 수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문 의장은 지난 23일 오후 7시 57분쯤 개의를 선언한 직후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요구에 “회기 결정의 건을 상정한다”면서 “심재철 등 108인으로부터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요구가 제출됐지만, 무제한 토론이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못박았다. 이에 찬반 토론을 신청한 주호영 한국당 의원이 단상에 올라 “본회의 부의 안건에 대해 의장은 반드시 무제한 토론을 실시해야 한다”면서 “국회법상 규정이 명백함에도, 의장이 임의로 거부하면 형사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발했다.그러나 회기 안건에 필리버스터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장 방침에 따라 토론 제한시간 5분이 지나 마이크가 꺼졌다. 이후 다음 토론자인 윤후덕 민주당 의원의 진입을 막으려는 한국당 의원들간 실랑이가 길어지자 이인영 원내대표가 의장석에 다가갔고, 이에 문 의장은 “토론종결 요청이 들어와 종결한다”고 선언한 뒤 회기 결정의 건 표결에 돌입했다. 안건은 찬성 150인, 반대 4인, 기권 3인으로 통과됐다. 한국당 의원 수십명은 일제히 의장석 앞으로 달려가 ‘아빠 찬스 OUT’ 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의장 사퇴, 아들 공천, 무제한 토론” 등 구호를 외치며 거세게 항의했다. 지난 10일 본회의에 이어 문 의장 아들이 경기도 의정부 지역구를 넘겨받아 출마하려 한다는 비난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문 의장은 이날 오후 9시 40분쯤 더불어민주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본회의 27번째 안건이었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앞당겨 상정하는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표결에 부쳤다.한국당의 거센 반발에도 의사일정 변경이 의결되자 문 의장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전격 상정하고 한국당이 신청한 무제한 토론의 시작을 선언했다. 심 원내대표는 공직선거법에 대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된 ‘4+1’ 선거법 개정안을 위헌으로 규정했다. 심 원내대표는 “지역구 투표와 비례투표를 연동, 연결시키기 때문에 직접선거라는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면서 “여당과 제1야당 표를 합하면 약 80%까지 사표가 될 수 있다. 누구 표는 계산이 되고 누구 표는 계산이 안 돼 평등선거 원칙에도 반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4+1’을 구성하는 민주당과 군소야당을 향해 “이념이고 원칙이고 다 버리고 오직 밥그릇에만 매달리는 이 추태가 부끄럽다”고 비난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조선의 독립, 자유를 완성하기 위하여, 조선 민족의 자유와 행복을 도모하기 위하여, 최후 성공이 있을 때까지 왜적과 계속 투쟁하라! ” 만주를 호령하던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말했다.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전과를 거둬 군신(軍神)으로 추앙받았지만 양세봉을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양세봉은 1896년 7월 15일 평북 철산군 세리면 연산동에서 소작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마을 서당 문지기로 일하며 귀동냥으로 천자문과 논어, 명심보감 등을 익힌 것이 배움의 전부였다. 훈장의 안중근 의사 이야기는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양세봉은 죽음을 앞둔 안 의사가 남긴 “슬퍼하지 마라. 대장부로 태어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데 무엇이 슬프단 말이냐”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1912년 아버지가 갑자기 병환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양세봉은 겨우 16세에 가장이 됐고 임재순과 결혼했다. 일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양세봉은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향했다. 흥경현(현 신빈현) 영릉가를 거쳐 한인 집단 거주지인 홍묘자 사도구에 정착했다. 1919년 4월 홍묘자에 있던 홍동학교 교장 이세일은 3·1운동 지지 시위를 주도했는데 양세봉도 동참했다. 이후 양세봉은 천마산대에 가입해 본격적인 독립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1920년 12월 최시흥이 청장년 500여명으로 조직한 천마산대는 경찰서,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밀정과 일경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던 항일 유격대였다.●“중국인, 관운장보다 유능한 장군으로 흠모” 천마산대는 일제의 공격을 받자 만주 유하현으로 가 광복군총영에 합류했다. 양세봉은 군기 검사관이 됐다. 그 뒤 만주 지역 독립운동단체들은 대한통의부로 통합, 무력 부대를 설치했는데 오동진이 사령장이었고 양세봉도 두령이라는 작은 자리를 맡았다. 1923년 5월 양세봉은 평북 창성을 습격하고 일본군 10여명을 사살하는 등 전투에 참여했다. 그 후 새로 출범한 참의부 소대장이 돼 압록강을 건너가 유격 투쟁을 이어 갔다. 평북 초산과 강계에서 일경 수명을 사살했고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경비선을 타고 압록강을 지나갈 때 저격을 지휘해 일제가 간담을 쓸어내리게 했다. 1924년부터 남만주에는 정의부가, 북만주에는 신민부가 설립돼 참의부와 함께 3부 체제가 됐다. 양세봉은 참의부 중대장으로 승진한 뒤 정의부로 옮겨 갔다. 3부는 1929년 4월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우여곡절 끝에 국민부로 통합됐다. 흥경현 왕청문에 자리잡은 국민부는 조선혁명군을 창설했다. 국민부는 선민부 토벌에 나섰다. 조선민회라고도 불렸던 선민부는 한인 변절자들이 이끌고 있었다. 일제의 조종을 받아 독립군을 색출하고 가족을 살해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양세봉은 부사령을 맡아 선민부 지휘부와 지부를 습격해 우두머리와 일당을 모조리 죽여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931년 9·18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이듬해 1월 조선혁명당과 군 간부 10여명이 회의 도중 습격을 받아 체포되고 이후 두 달 동안 간부 83명이 붙잡혀 혁명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지역 부대장들의 추천으로 양세봉은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양세봉 장군은 부대를 재정비하고 속성군관학교를 세우는 한편 조직적인 항일 투쟁에 나섰다. 또한 왕동헌, 이춘윤, 양희부 등 중국 지도자들과 협력해 ‘요령농민자위단’을 결성했다. 당취오가 총사령인 ‘요령민중자위군’과도 힘을 합쳐 자위군의 특무대 사령으로서 대일 연합작전을 벌였다. 괴뢰정부인 만주국 군대가 흥경현을 점령하자 연합부대는 20여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탈환했다. 일본군은 400여명의 사상자와 500명 가까운 실종자를 냈다. ‘제1차 흥경혈전’이다. 그 중심에 양세봉 장군이 있었다. 다음달 일본군은 비행기까지 동원해 흥경으로 돌진해 왔다. 2차 혈전에서도 연합부대는 악전고투 끝에 일본군을 물리쳤다. 연합부대는 1932년 8월 청원현을, 다음달에는 석탄 탄광이 있는 무순을 공격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연합부대가 지나갔던 평정산 마을 주민 3000여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32년까지 한중 연합부대는 일만 연합군과 200여 차례 전투를 벌였고 장군은 그때마다 크고 작은 승리를 거뒀다. 한편으로 멀리 경상도까지 소부대를 보내 경찰서 등을 파괴하고 악질 경찰을 살해했다. 1932~1933년 압록강 주변에서만 26차례 파괴 공작을 벌였고 일본 군경 243명을 사살했다. 1933년 5월 서원준을 황해도에 밀파해 사리원 경찰서 등을 습격한 것은 신문이 호외로 다룰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럴수록 일제의 추격은 집요해졌다. 조선인 변절자를 이용해 혁명군을 체포하고 가족과 친구까지 살해했다. 혁명군 수백명을 처형해 머리를 매달았다. 장군의 체포에도 혈안이 돼 현상금을 걸었다. 1934년 3월 장군은 중국 동북인민혁명군 사령관 양정우와 연합했다. 장군은 공산주의에 적대적이었지만 항일을 위해 신념도 버렸다. 조선혁명군과 인민혁명군은 진주령 일본군 기차 습격, 노구대 격전, 쾌대무자 전투 등 연합작전에서 연전연승, 일본군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 그해 9월 18일 일제의 지시를 받던 박창해는 장군과 면식이 있던 압동양을 보내 “저희 부대가 양 사령관께 오려고 합니다. 함께 가서 무기를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라며 유인했다. 장군은 경호대원만 데리고 따라나섰고 일행이 소황구에 이르렀을 때 어둠 속에서 압동양이 옥수수밭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매복하고 있던 일군들이 기습 사격을 가했고 장군은 가슴에 총탄 두 발을 맞았다. 장군은 “조선독립혁명을 완성하고 가지 못하는 나는… 민족의 죄인입니다”라고 자책하며 20일 오후 1시쯤 숨을 거뒀다. 15년 동안 풍찬노숙하며 일제와 싸웠던 영웅은 이렇게 희생됐다. 한인들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며 슬퍼했다. 장군의 나이 38세였다.한인들은 시신을 위치가 드러나지 않게 평장(平葬)했다. 같은 달 26일 양세봉의 죽음을 알고 향수하자촌에 일군이 몰려와 한인 70여명을 모아 놓고 시신을 내놓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하는 수 없이 마을 둔장(屯長)이 묘의 위치를 말하자 일군은 시신을 파내 놓고 마을 노인 김도선에게 작두로 머리를 자르라고 했다. 김 노인은 “나는 조선 사람이다. 조선 사람이 어찌 자기 사령관의 머리를 자를 수 있단 말이냐”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김 노인의 머리를 베고 장군의 머리를 가져갔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 없는 장군의 시신을 다시 고구려산성 아래에 묻었다. 장군은 전투에선 호랑이 같았지만 마음은 너무나 따뜻했다. 계급을 불문하고 대원들을 평등하게 대했고 거친 밥을 똑같이 나눠 먹었다. 이불을 덮어 주고 발을 씻겨 주기도 했다. 배움이 부족한 ‘소작농 장군’이었지만 인격으로 감동시켰다. 장군의 비서였던 박윤걸(중국에서 작고)씨는 “중국인 이춘윤은 관운장보다 더 유능한 장군이라며 흠모했다”고 말했다.●김일성 아버지와 의형제… 가족들 평양에 정착 광복 후 북한은 장군의 가족을 평양으로 데려가 정착시켰다. 장군은 김일성의 아버지와 의형제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1961년 후손들이 유골을 북한으로 이장했고 장군은 애국열사릉에 옮겨져 묻혔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도 이회영 선생 묘소의 바로 왼쪽에 장군의 가묘가 있다. 남북 양쪽 국립묘지에 묘소가 있는 독립투사는 장군이 유일하다. 우리 정부는 1962년 장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조선의 독립, 자유를 완성하기 위하여, 조선 민족의 자유와 행복을 도모하기 위하여, 최후 성공이 있을 때까지 왜적과 계속 투쟁하라! ” 만주를 호령하던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말했다.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전과를 거둬 군신(軍神)으로 추앙받았지만 양세봉을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양세봉은 1896년 7월 15일 평북 철산군 세리면 연산동에서 소작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마을 서당 문지기로 일하며 귀동냥으로 천자문과 논어, 명심보감 등을 익힌 것이 배움의 전부였다. 훈장의 안중근 의사 이야기는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양세봉은 죽음을 앞둔 안 의사가 남긴 “슬퍼하지 마라. 대장부로 태어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데 무엇이 슬프단 말이냐”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1912년 아버지가 갑자기 병환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양세봉은 겨우 16세에 가장이 됐고 임재순과 결혼했다. 일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양세봉은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향했다. 흥경현(현 신빈현) 영릉가를 거쳐 한인 집단 거주지인 홍묘자 사도구에 정착했다. 1919년 4월 홍묘자에 있던 홍동학교 교장 이세일은 3·1운동 지지 시위를 주도했는데 양세봉도 동참했다. 이후 양세봉은 천마산대에 가입해 본격적인 독립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1920년 12월 최시흥이 청장년 500여명으로 조직한 천마산대는 경찰서,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밀정과 일경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던 항일 유격대였다.●“중국인, 관운장보다 유능한 장군으로 흠모” 천마산대는 일제의 공격을 받자 만주 유하현으로 가 광복군총영에 합류했다. 양세봉은 군기 검사관이 됐다. 그 뒤 만주 지역 독립운동단체들은 대한통의부로 통합, 무력 부대를 설치했는데 오동진이 사령장이었고 양세봉도 두령이라는 작은 자리를 맡았다. 1923년 5월 양세봉은 평북 창성을 습격하고 일본군 10여명을 사살하는 등 전투에 참여했다. 그 후 새로 출범한 참의부 소대장이 돼 압록강을 건너가 유격 투쟁을 이어 갔다. 평북 초산과 강계에서 일경 수명을 사살했고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경비선을 타고 압록강을 지나갈 때 저격을 지휘해 일제가 간담을 쓸어내리게 했다. 1924년부터 남만주에는 정의부가, 북만주에는 신민부가 설립돼 참의부와 함께 3부 체제가 됐다. 양세봉은 참의부 중대장으로 승진한 뒤 정의부로 옮겨 갔다. 3부는 1929년 4월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우여곡절 끝에 국민부로 통합됐다. 흥경현 왕청문에 자리잡은 국민부는 조선혁명군을 창설했다. 국민부는 선민부 토벌에 나섰다. 조선민회라고도 불렸던 선민부는 한인 변절자들이 이끌고 있었다. 일제의 조종을 받아 독립군을 색출하고 가족을 살해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양세봉은 부사령을 맡아 선민부 지휘부와 지부를 습격해 우두머리와 일당을 모조리 죽여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931년 9·18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이듬해 1월 조선혁명당과 군 간부 10여명이 회의 도중 습격을 받아 체포되고 이후 두 달 동안 간부 83명이 붙잡혀 혁명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지역 부대장들의 추천으로 양세봉은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양세봉 장군은 부대를 재정비하고 속성군관학교를 세우는 한편 조직적인 항일 투쟁에 나섰다. 또한 왕동헌, 이춘윤, 양희부 등 중국 지도자들과 협력해 ‘요령농민자위단’을 결성했다. 당취오가 총사령인 ‘요령민중자위군’과도 힘을 합쳐 자위군의 특무대 사령으로서 대일 연합작전을 벌였다. 괴뢰정부인 만주국 군대가 흥경현을 점령하자 연합부대는 20여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탈환했다. 일본군은 400여명의 사상자와 500명 가까운 실종자를 냈다. ‘제1차 흥경혈전’이다. 그 중심에 양세봉 장군이 있었다. 다음달 일본군은 비행기까지 동원해 흥경으로 돌진해 왔다. 2차 혈전에서도 연합부대는 악전고투 끝에 일본군을 물리쳤다. 연합부대는 1932년 8월 청원현을, 다음달에는 석탄 탄광이 있는 무순을 공격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연합부대가 지나갔던 평정산 마을 주민 3000여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32년까지 한중 연합부대는 일만 연합군과 200여 차례 전투를 벌였고 장군은 그때마다 크고 작은 승리를 거뒀다. 한편으로 멀리 경상도까지 소부대를 보내 경찰서 등을 파괴하고 악질 경찰을 살해했다. 1932~1933년 압록강 주변에서만 26차례 파괴 공작을 벌였고 일본 군경 243명을 사살했다. 1933년 5월 서원준을 황해도에 밀파해 사리원 경찰서 등을 습격한 것은 신문이 호외로 다룰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럴수록 일제의 추격은 집요해졌다. 조선인 변절자를 이용해 혁명군을 체포하고 가족과 친구까지 살해했다. 혁명군 수백명을 처형해 머리를 매달았다. 장군의 체포에도 혈안이 돼 현상금을 걸었다. 1934년 3월 장군은 중국 동북인민혁명군 사령관 양정우와 연합했다. 장군은 공산주의에 적대적이었지만 항일을 위해 신념도 버렸다. 조선혁명군과 인민혁명군은 진주령 일본군 기차 습격, 노구대 격전, 쾌대무자 전투 등 연합작전에서 연전연승, 일본군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그해 9월 18일 일제의 지시를 받던 박창해는 장군과 면식이 있던 압동양을 보내 “저희 부대가 양 사령관께 오려고 합니다. 함께 가서 무기를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라며 유인했다. 장군은 경호대원만 데리고 따라나섰고 일행이 소황구에 이르렀을 때 어둠 속에서 압동양이 옥수수밭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매복하고 있던 일군들이 기습 사격을 가했고 장군은 가슴에 총탄 두 발을 맞았다. 장군은 “조선독립혁명을 완성하고 가지 못하는 나는… 민족의 죄인입니다”라고 자책하며 20일 오후 1시쯤 숨을 거뒀다. 15년 동안 풍찬노숙하며 일제와 싸웠던 영웅은 이렇게 희생됐다. 한인들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며 슬퍼했다. 장군의 나이 38세였다. 한인들은 시신을 위치가 드러나지 않게 평장(平葬)했다. 같은 달 26일 양세봉의 죽음을 알고 향수하자촌에 일군이 몰려와 한인 70여명을 모아 놓고 시신을 내놓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하는 수 없이 마을 둔장(屯長)이 묘의 위치를 말하자 일군은 시신을 파내 놓고 마을 노인 김도선에게 작두로 머리를 자르라고 했다. 김 노인은 “나는 조선 사람이다. 조선 사람이 어찌 자기 사령관의 머리를 자를 수 있단 말이냐”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김 노인의 머리를 베고 장군의 머리를 가져갔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 없는 장군의 시신을 다시 고구려산성 아래에 묻었다. 장군은 전투에선 호랑이 같았지만 마음은 너무나 따뜻했다. 계급을 불문하고 대원들을 평등하게 대했고 거친 밥을 똑같이 나눠 먹었다. 이불을 덮어 주고 발을 씻겨 주기도 했다. 배움이 부족한 ‘소작농 장군’이었지만 인격으로 감동시켰다. 장군의 비서였던 박윤걸(중국에서 작고)씨는 “중국인 이춘윤은 관운장보다 더 유능한 장군이라며 흠모했다”고 말했다. ●김일성 아버지와 의형제… 가족들 평양에 정착 광복 후 북한은 장군의 가족을 평양으로 데려가 정착시켰다. 장군은 김일성의 아버지와 의형제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1961년 후손들이 유골을 북한으로 이장했고 장군은 애국열사릉에 옮겨져 묻혔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도 이회영 선생 묘소의 바로 왼쪽에 장군의 가묘가 있다. 남북 양쪽 국립묘지에 묘소가 있는 독립투사는 장군이 유일하다. 우리 정부는 1962년 장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한국 필리버스터에 민주는 쪼개기 임시회… ‘동물국회’ 재현

    한국 필리버스터에 민주는 쪼개기 임시회… ‘동물국회’ 재현

    한국 “역사의 죄인”… 필리버스터 돌입 첫 주자 주호영 “의회 민주주의 깨졌다” 문재인 정부 비판하며 자정 넘겨 지속 민주 “26일부터 바로 임시회 소집할 것”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지난 4월 이후 8개월 만에 ‘동물국회’를 재현했다. 향후 더불어민주당의 ‘쪼개기 임시회’와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이어질 전망이어서 국민은 2019년 그리고 20대 국회가 ‘난장판’으로 마무리되는 모습을 어쩔 수 없이 지켜보게 됐다. 앞선 패스트트랙 충돌 때처럼 직접적인 몸싸움은 없었지만 개혁 취지가 무색해진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여당과 국회 협상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극단적인 대여투쟁만 고집하는 제1야당의 무책임한 행태는 또 다른 의미의 동물국회였다. 한국당은 이날 본회의 개의 전부터 예산부수법안에 무더기 수정안을 제출하고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며 본회의 저지 의지를 나타냈다. 예상대로 첫 번째 안건 처리부터 여야는 강대강으로 맞붙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이번 임시회 회기를 내년 1월 9일에서 오는 25일까지로 줄이기 위한 임시회 회기결정 수정안을 처리하려 하자 한국당 의원들은 단상 앞으로 몰려나와 “의장 사퇴”, “아들 공천”, “공천 대가” 등 고성을 지르며 회의 진행을 방해했다. 4번째 안건 상정을 앞둔 문 의장은 주세법 개정안 대신 선거법 개정안을 먼저 처리하자는 의사일정 변경 요청이 올라오자 표결을 통해 이를 받아들였다. 27번째 안건이었던 선거법 개정안이 갑작스레 상정되자 한국당 의원들은 “역사의 죄인” 등을 외치며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표결 결과를 뒤집을 수 없었다. 한국당은 결국 오후 9시 49분쯤 신청해 뒀던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필리버스터 1번 주자로는 4선인 주호영 의원이 나섰다. 주 의원은 장시간 필리버스터를 대비해 기저귀까지 찬 것으로 전해졌다. 주 의원은 “무리하게 출범시킨 패스트트랙을 뒤로 돌릴 수 없으니 불법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넘어가자는 문 의장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로써 의회 민주주의는 깨졌다”고 했다. 주 의원은 탈원전, 입시 등 다양한 주제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 비판을 하며 자정을 넘겨 필리버스터를 이어갔다. 주 의원이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을 언급하자 민주당 의원이 “들을 게 있어야 듣지”라며 항의했다. 그러자 주 의원은 “들을 거 없으면 나가세요”라고 맞받아쳤다. 상당수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빠져나갔고 본회의장에 대기 중인 의원들은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때 잠시 눈을 감은 문 의장을 향해 한국당의 한 의원이 “의장님 졸지 마세요”라고 외쳤고 문 의장은 다시 정면을 응시하기도 했다. 한국당 외에도 민주당과 정의당은 선거법 찬성 의견을, 바른미래당은 반대 의견을 밝히기 위해 각각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조를 짜 임시국회 회기 및 필리버스터가 종료되는 26일 0시까지 본회의장에 남아있기로 했다. 민주당의 요구로 26일 임시국회가 또 소집되면서 선거법 개정안은 이르면 26일 표결이 가능할 전망이다. 회기가 짧을수록 표결 처리도 빠르게 할 수 있는 만큼 민주당은 ‘쪼개기 임시회’를 통해 검찰개혁법과 유치원 3법 등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시진핑, 마카오 격려 뒤 홍콩 압박… “국가보안법 제정하라”

    시진핑, 마카오 격려 뒤 홍콩 압박… “국가보안법 제정하라”

    람 장관, 강경진압 조사위 설치 퇴짜 맞아 시진핑 “홍콩경찰 지지” 강경 대응 지시반환 20주년을 맞아 마카오를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 모범 사례’로 칭찬한 직후 중국 당국이 홍콩에 대해 국가보안법 제정을 압박했다. 중국은 홍콩 시위대 강경 진압에 대한 조사위원회 설치 건의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마카오를 방문한 시 주석은 사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20일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곧바로 중국 국무원 소속 홍콩연락판공실에서 법무부장(우리의 법무부 장관)을 지낸 왕전민 칭화대 교수는 21일 베이징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홍콩이 지체 없이 국가보안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콩의 헌법 격인 기본법 23조는 홍콩 특별행정구가 독자적 법률을 제정해 국가 전복과 반란을 선동하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홍콩 정부는 2003년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했다가 홍콩 시민들의 반발이 커지자 이를 철회했다. 홍콩 정부가 ‘범죄인인도법’(송환법) 개정 강행으로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가장 큰 정치적 위기를 맞은 가운데 중국이 노골적으로 국가보안법 도입을 촉구하고 있어 홍콩의 정치적 갈등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이런 상황에서 홍콩 수반인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중국 지도부에 시위대의 일부 요구를 수용하자고 요청했다가 묵살당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1일 보도했다. 지난 14∼17일 베이징을 방문한 람 장관은 시위대의 5대 요구안 가운데 하나인 ‘경찰 진압 과정을 조사할 독립된 위원회 구성’을 베이징 당국에 제안했다. 하지만 시 주석은 람 장관에게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고 홍콩 경찰을 굳건히 지지한다”며 되레 시위대에 대한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앞서 람 장관은 올해 10월에도 독립 조사위 설치와 체포된 시위대 일부 사면 등을 수용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가 철회했다. 베이징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그간 중국 당국이 람 장관을 건너뛰고 홍콩 경찰에 직접 시위 진압 지시를 내렸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면서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꾸렸다가 자칫 중국의 개입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베이징에서 이 요구를 수용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민주화 열망 홍콩, 서민의 분노 중남미… 그들의 ‘봄’ 언제 올까

    민주화 열망 홍콩, 서민의 분노 중남미… 그들의 ‘봄’ 언제 올까

    홍콩, 송환법 폐기했지만 강경 진압 오랜 경제난·사회적 불평등에 폭발베네수엘라·칠레 등 반정부 시위전 세계적으로 올해는 ‘저항의 해’였다. 홍콩과 프랑스, 이탈리아, 중남미 다수 국가에서 정부에 분노한 시민들의 함성이 거리를 덮었다. 홍콩에선 지난 6월부터 주말 시위가 일상이 됐다. 정부가 반중 운동가를 중국에 인도할 수 있도록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을 추진하자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같은 달 16일 홍콩 전체 인구(750만명)의 30%에 달하는 200만명(주최 측 추산)이 거리로 나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여파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송환법을 폐기했고, 여당은 지난달 24일 홍콩특별행정구 구의회 선거에서 몰락했다. 2014년 우산혁명으로 떠오른 조슈아 웡은 이제 홍콩 민주화 운동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베네수엘라와 칠레, 볼리비아, 콜롬비아 등에서도 생활고에 지친 시민들이 무능한 정부를 질타하는 거리 시위를 벌였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권 교체도 이뤄졌다. 중남미에서 몇 십년간 볼 수 없었던 대규모 연쇄 시위를 두고 일부에선 2010년 말 중동·북아프리카 반정부 시위인 ‘아랍의 봄’에 빗대 ‘라틴의 봄’으로 부른다. 오랜 경제난에 지친 베네수엘라에서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수년째 이어졌다. 올해 1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마두로를 두고 찬반 시위가 격해지면서 10여명이 숨졌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시는 지하철 요금을 인상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사회 불평등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지금까지 20여명이 숨졌다. 칠레 정부는 지난달 개최하려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취소했다. 볼리비아 첫 원주민 대통령으로 14년 가까이 집권한 에보 모랄레스는 선거 부정 반대 시위가 퍼지자 지난달 대통령에서 물러나 아르헨티나로 망명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대출 막혀 집 포기” vs “분수 맞게 살아라”… 둘로 갈라진 30대

    “대출 막혀 집 포기” vs “분수 맞게 살아라”… 둘로 갈라진 30대

    부동산 시장 ‘큰손’ 30대 빈부 격차 갈등 주택 보유자 “강남 진입할 사다리 걷어차”무주택자는 “분수에 맞게 살라는 것” 찬성 시가 9억원 이하 아파트 가격 상승 조짐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역대급 집값 안정화 정책을 둘러싸고 최근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30대 사이에 날카로운 전선이 형성됐다. 서울을 비롯한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를 살 때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을 주제로 격론이 벌어졌다. 30대는 40~50대보다 부양가족 수가 적어 가점 위주의 서울 청약 시장에서 소외된 세대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가 많아 상대적으로 대출 규제가 덜하고, 증여 등 ‘부모 찬스’로 내 집 마련을 하는 데 큰 거부감이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한국감정원의 ‘연령대별 아파트 매입 비중’에 따르면 30대의 서울 아파트 매입 비중은 31.2%로 전 세대 중 가장 높았다. 이들은 주로 결혼 초기 자녀의 학군을 많이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비강남권에서 시작해 자녀가 성장하면 강남이나 목동 등으로의 입성을 노린다. 정부의 15억원 초과 아파트 대출 규제에 30대가 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30대에서 벌어지는 ‘부동산 공방’은 빈부 격차에 따른 갈등 성격이 짙다. 주택 보유자들은 “정부가 강남 3구로 진입할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2017년 부모의 지원과 대출을 바탕으로 성동구에 매매가 8억원짜리 24평형 아파트를 구매한 대기업 사원 김모(37)씨는 “현재 아파트 가격이 13억~14억원으로 올랐고 대출을 더 받아 강남 3구로 한번 들어가 보려 했는데 이번 대출 규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모(32)씨는 ‘보유세 폭탄’에 대해 “일찌감치 대기업 생산직에 취업해 열심히 모아 집을 마련했는데, 정부가 집값을 2배로 올려놓고선 유주택자를 죄인 취급하며 세금 징벌을 때리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반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환영하는 30대도 적지 않다. 이들은 대체로 무주택자들이다. 직장인 강모(35)씨는 “은행에 수백만원 월세(대출 원리금)를 20년씩 내는 것을 감수하면서 집을 사려는 건 허세에 불과하다”며 “정부의 대출 규제는 자기 분수에 맞게 살라는 조치”라고 반겼다. 직장인 유모(32·여)씨는 “30대가 무슨 15억원짜리 집이냐. 극히 소수의 ‘금수저 30대’만 대출 규제에 반대하지 30대 대다수는 찬성한다”면서 “비강남권에는 10억원 이하 아파트가 널렸는데 강남에 살지 못하면 다 실패한 인생이냐”고 반문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30대의 60%는 비수도권에 살고 있고,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를 사려는 서울 거주 30대는 고작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시가 9억원 이하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선 시세보다 3000만~4000만원 인상된 가격의 매물이 잇따라 나왔다. 한 부동산 중개인은 “정부가 9억원 초과 15억원 이하 주택의 담보대출비율(LTV)을 기존 40%에서 20%로 낮추자 이에 따른 반사 효과로 40% 대출이 가능한 9억원 이하 아파트들이 ‘9억원’이라는 상한선을 목표로 오름세를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대출 막혀 집 포기” vs “분수 맞게 살아라”… 둘로 갈라진 30대

    “대출 막혀 집 포기” vs “분수 맞게 살아라”… 둘로 갈라진 30대

    부동산 시장 ‘큰 손’ 30대 빈부 격차 갈등집 보유자 “강남 진입 사다리 걷어차” 불만무주택자는 “분수에 맞게 살라는 것” 찬성시가 9억원 이하 아파트 가격 상승 조짐 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역대급 집값 안정화 정책을 둘러싸고 최근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30대 사이에 날카로운 전선이 형성됐다. 서울을 비롯한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를 살 때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을 주제로 격론이 벌어졌다. 30대는 40~50대보다 부양가족 수가 적어 가점 위주의 서울 청약 시장에서 소외된 세대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가 많아 상대적으로 대출 규제가 덜하고, 증여 등 ‘부모 찬스’로 내 집 마련을 하는 데 큰 거부감이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한국감정원의 ‘연령대별 아파트 매입 비중’에 따르면 30대의 서울 아파트 매입 비중은 31.2%로 전 세대 중 가장 높았다. 이들은 주로 결혼 초기 자녀의 학군을 많이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비강남권에서 시작해 자녀가 성장하면 강남이나 목동 등으로의 입성을 노린다. 정부의 15억원 초과 아파트 대출 규제에 30대가 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30대에서 벌어지는 ‘부동산 공방’은 빈부 격차에 따른 갈등 성격이 짙다. 주택 보유자들은 “정부가 강남 3구로 진입할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2017년 부모의 지원과 대출을 바탕으로 성동구에 매매가 8억원짜리 24평형 아파트를 구매한 대기업 사원 김모(37)씨는 “현재 아파트 가격이 13억~14억원으로 올랐고 대출을 더 받아 강남 3구로 한번 들어가 보려 했는데 이번 대출 규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모(32)씨는 ‘보유세 폭탄’에 대해 “일찌감치 대기업 생산직에 취업해 열심히 모아 집을 마련했는데, 정부가 집값을 2배로 올려놓고선 유주택자를 죄인 취급하며 세금 징벌을 때리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반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환영하는 30대도 적지 않다. 이들은 대체로 무주택자들이다. 직장인 강모(35)씨는 “은행에 수백만원 월세(대출 원리금)를 20년씩 내는 것을 감수하면서 집을 사려는 건 허세에 불과하다”면서 “정부의 대출 규제는 자기 분수에 맞게 살라는 조치”라고 반겼다. 직장인 유모(32·여)씨는 “30대가 무슨 15억원짜리 집이냐. 극히 소수의 ‘금수저 30대’만 대출 규제에 반대하지 30대 대다수는 찬성한다”면서 “비강남권에는 10억원 이하 아파트가 널렸는데 강남에 살지 못하면 다 실패한 인생이냐”라고 반문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30대의 60%는 비수도권에 살고 있고,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를 사려는 서울 거주 30대는 고작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시가 9억원 이하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선 시세보다 3000만~4000만원 인상된 가격의 매물이 잇따라 나왔다. 한 부동산중개인은 “정부가 9억원 초과 15억원 이하 주택의 담보대출비율(LTV)을 기존 40%에서 20%로 낮추자 이에 따른 반사 효과로 40% 대출이 가능한 9억원 이하 아파트들이 ‘9억원’이라는 상한선을 목표로 오름세를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집값 잡은 건 외환위기뿐…급매물 쏟아지진 않을 듯”

    “집값 잡은 건 외환위기뿐…급매물 쏟아지진 않을 듯”

    공시가도 상승에 “집 있으면 죄인” 격앙 “잠깐 주춤해도 집값은 결국 또 오를 것” 15억 아파트 전세 반환용 대출도 금지 “대출 규제는 위헌” 하루 만에 헌법소원지난 16일 대출 규제에 이어 공시가 상승에 따른 세(稅) 부담까지 연이틀 ‘부동산 규제 강타’의 타깃이 된 다주택자와 강남3구 주민들은 “집 있으면 죄인”이라며 불만을 쏟아 내고 있다. 특히 임대사업자들은 “결국 재계약 때 임대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라 세금 전가로 서민층만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다주택자의 세금 회피성 매물이 시장에 풀리면 집값이 안정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17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달 시세 조사 대상인 서울 125만 2840가구 아파트를 분석한 결과 서울 아파트 3곳 중 1곳은 9억원을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초구와 강남구는 9억원 이상 아파트를 보유한 가구가 90% 이상이다. 정부가 공시가격을 ‘시세 9억원 이상’ 주택 중심으로 올릴 계획인 만큼 사실상 고가 아파트가 즐비한 강남권을 겨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강남 주민은 부동산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 ‘무조건 집 팔라는 압박 아니냐’는 글을 올리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이번 정책은) 그간 공시지가가 현재 시세와 차이가 커서 단독보다 아파트가, 고가 아파트보다 중저가 아파트가 상대적으로 세금 부담이 컸던 것을 바로잡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선미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예상보다 강력한 이번 규제 때문에 서울 주택 가격이 하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기적인 정책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관측이 대부분이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절세 효과’보다 훨씬 커서다. 서울 서초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는 “할 수 있는 모든 규제책이 나왔지만 외환위기 당시의 외부요인 빼고 제도로 부동산 가격을 잡은 적이 없다”면서 “다주택자들이 반발하긴 해도 집값이 장기적으로 오를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섣불리 집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정부가 4만 가구 서울 주택 공급 계획을 밝혔지만 실제 입주까지 3~5년이 걸리고 변수도 많은 데다 공급이 그래도 부족해 매물이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다주택자들이 핵심 지역보다는 비인기 지역 물건을 처분할 가능성이 크고 저금리 등 유동자금이 많아 집값이 잠시 주춤했다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갑작스러운 ‘초고강도 규제 폭탄’에 부동산 업계와 금융권은 혼란을 빚었다. ‘15억원 초과 주택담보대출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한 대출 규제가 시행된 첫날인 이날 대치동, 도곡동, 반포동 등 초고가 아파트가 많은 강남권 은행에서는 대출 문의가 이어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15억원이 넘는 주택에 대한 계약을 이미 진행하고 있거나 주택 구입 관련으로 대책 발표 이전에 상담을 받았던 고객들의 문의가 대부분”이라며 “대출 가능 여부와 대출 조건 변동에 자신이 해당하는지를 묻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재건축·재개발이 진행 중인 반포동과 개포동은 이주비, 잔금대출 등에 대한 문의가 잇따랐다. 금융위원회는 전날 발표와 달리 15억원 초과 아파트를 담보로 한 ‘임차보증금(전세금) 반환용 대출’을 18일부터 금지한다고 밝혔다. ‘12·16 부동산 대책’에 따라 15억원이 넘으면 대출이 전면 막히지만 전세금을 빼주는 용도에 한해서는 16일 이전처럼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40%까지 받아 집을 살 수 있는 ‘맹점’이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갭투자 형태로 15억원 초과 주택을 구입한 사람은 세입자를 내보낼 때 다른 세입자를 구해 전세금을 돌려주거나 스스로 전세금을 마련해야 한다. 한편 정희찬 안국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중 대출 규제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황운하 “나도 곧 검찰에 소환될 듯”

    황운하 “나도 곧 검찰에 소환될 듯”

    이른바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의 축이 되어버린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자신에 대한 검찰 소환을 예감했다. 황 청장은 “저와 함께 근무했던 참모들과 수사관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고 있다”며 “토착화된 부패비리 척결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업무에 매진했던 경찰관들이 왜 이런 수난을 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어 열심히 일한 공무원이 도리어 죄인 취급받는다면 어느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려고 하겠느냐며 울분을 표현했다. 본인의 검찰 소환에 대해서는 “(검찰 조사에서) 명쾌하게 설명해주면 의혹이 해소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지는 않다”며 “그러나 공명심과 승부욕이 강한 검사들이 그럴듯한 수사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리수를 감행할 위험도 매우 높다고 본다”며 검찰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이어 검찰이 기소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이에 짜맞추어 나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검찰은) 수사권도 기소권도 다 가지고 있는데다가 영민한 두뇌까지 활용하면 없는 죄도 있는 것처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검사들은 진실발견보다는 머리속에 그려놓은 틀에 사건을 맞추어 나가는데 익숙해 있는 편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도를 얻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란 뜻의 맹자의 말씀인 득도다조(得道多助)의 힘으로 헤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청와대와 경찰의 울산시장 선거 ‘하명수사 및 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김태은 부장검사)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소환해 참고인 진술을 받았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간택’ 쌍둥이 진세연은 죽고 김민규는 부활했다 “격랑 엔딩”

    ‘간택’ 쌍둥이 진세연은 죽고 김민규는 부활했다 “격랑 엔딩”

    ‘간택’ 진세연-김민규-도상우-이열음-이시언 등이 한 발의 총알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격랑 엔딩’으로 ‘핵부스터’ 사극 탄생을 예감케 했다. 지난 14일 첫 방송된 TV CHOSUN 특별기획 드라마 ‘간택-여인들의 전쟁’(이하 ‘간택’)은 2.7%(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 돌파, 분당 최고 3.3%(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까지 치솟으며 호기로운 시발점을 끊었다. 국혼 행렬을 습격한 괴한들의 잔혹한 총격으로 생이 뒤집어진 다섯 인물, 진세연-김민규-도상우-이열음-이시언이 ‘왕실 한복판’으로 모이게 되면서 핏빛 조선에 몰아칠 파란의 서막을 예고했다. 무엇보다 ‘간택’은 섬세한 연출력의 사극 명장 김정민 감독과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최수미 작가가 손을 잡아 베테랑과 신인의 조합으로 기대를 모은 만큼, 군더더기 없는 전개력 속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강렬한 몰입을 끌어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기발하게 뻗어 나가는 이야기에 감정을 어루만지는 능수능란한 미장센이 더해지며 신선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극이 탄생된 것. 더욱이 진세연의 탄탄한 연기력, 김민규의 섬세한 감성, 도상우의 사투리 연기 변신, 이열음의 순수한 열연, 이시언의 팔색조 연기가 더해지면서 안방극장에 눈 뗄 수 없는 매력을 선사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강은보(진세연)-이경(김민규)-이재화(도상우)-조영지(이열음)-왈(이시언) 등이 조선을 뒤집어버린 괴한들의 총격으로 삶이 박살 난 채, 피바람이 분 ‘왕실’로 모여드는 첫 장이 공개됐다. 경사스러운 왕의 혼례 행렬을 총을 든 괴한들이 습격했고 왕비 강은기(진세연)와 조선의 왕 이경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던 상황. 혼란의 한복판에서 강은보는 동업자 왈로부터 왕과 왕비를 죽인 ‘총’이 하필 자신이 운영하는 비밀스러운 정보 거래 상점 ‘부용객주’에서 이름 모를 객에게 팔아넘긴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함했다. 그러나 강은보는 곧 왕을 죽인 것은 아무래도 ‘간택’에서 탈락된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김만찬(손병호)이나 풍양 조씨 가문의 수장 조흥견(이재용)일 것이라 추측했다. 뒤이어 ‘왕을 죽인 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어마어마한 포부를 품고 수종 무녀라는 신분을 십분 활용해 어둠으로 가득 찬 왕실 빈전에 숨어들었다. 하지만 강은보가 왕의 머리에 박힌 탄환을 찾아내 총을 쏜 자의 정보를 얻고자 이경의 시신에 손을 댄 순간, 죽은 줄 알았던 이경의 손끝이 움찔거리더니 강은보의 손을 낚아채며 벼락같이 눈을 뜬 것. 심지어 부활한 이경은 강은보를 제압한 뒤 정체를 물었고 기겁하던 강은보는 있는 힘껏 들이받은 후 겨우 도망쳐 달아났다. 결국 ‘왕의 부활’로 인해 파란의 조정은 다시 한 번 뒤집어졌고, 기적적으로 다시 숨을 쉬게 된 이경은 왕비 강은기의 시신을 마주하고 통한의 울음을 터트렸다. 더욱이 차기 왕으로 수렴청정이 가능한 일자무식 보부상 이재화가 대궐로 불려오게 되면서 궁 안에는 ‘왕이 두 명’인 초유의 사태가 펼쳐진 터. 조선의 주류 세력 김만찬과 조흥견이 ‘왕’을 누구로 세울 것인지 한껏 힘겨루기를 하는 가운데, 조흥견이 묘수를 내어 ‘이경이 천군이 되실 운명이라 살아난 것이다’라고 조언하면서 대왕대비(정애리)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어 ‘주역’의 문구를 인용해 ‘부정이 탄 혼례라 사단이 벌어진 것이니 왕비 일가에게 책임을 물어 민심을 안정시키라’고 조언했다. 할 수 없이 대왕대비는 왕비 일가를 ‘대역죄인’으로 몰아 강은기 일족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한편 왕의 소생을 목격하고 놀라 궁에서 뛰어나오던 강은보는 누군가에게 납치당했고 눈을 뜨자 자신의 아버지를 알고 있다는 대제학 백자용(업효섭)을 마주하게 됐다. 강은보는 놀랐지만 기억을 잃은 뒤 늘 궁금했던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용기를 내어 백자용을 따라나섰다. 그렇지만 강은보가 아버지 강이수(이기영)를 만나려는 찰나, 조정에서 들이닥친 군사들이 강이수를 압송해갔고 강은보는 형장으로 끌려가는 강이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차오르는 눈물에 당황했다. 과연 괴한들의 총격으로 궁을 향해 모이게 된 다섯 인물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궁금증을 폭증시켰다. 한편 ‘간택’ 2회는 오늘(15일) 오후 10시 5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與, 전두환 ‘호화 오찬’에 “후안무치 놀랍다…인신구속해야”

    與, 전두환 ‘호화 오찬’에 “후안무치 놀랍다…인신구속해야”

    더불어민주당은 1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군사 반란 40년인 전날 군사 반란에 가담했던 인물들과 ‘호화 오찬’을 즐긴 것에 대해 “뻔뻔하고 후안무치하다”며 맹비난했다.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는 전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전두환이 최세창, 정호용 등 40년 전 쿠데타 주역들과 함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고급 중식당에서 1인당 20만원 이상 고급 코스요리에 와인잔을 부딪치며 즐기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다”고 밝혔다. 임 부대표는 전 전 대통령 내외를 포함해 남성 5명, 여성 5명 등 모두 10명이 부부 동반으로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샥스핀 등을 곁들여 식사를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설훈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군사 반란의 주역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와인 축제를 벌였다”며 “자신의 과오에 대해 일말의 반성을 한다면 당연히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반란의 주역들과 축배를 들었다니 후안무치가 놀랍다”고 말했다. 설 최고위원은 “그 정도면 재판은 충분히 출석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 모욕, 법정 모욕을 중단하고 떳떳하게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형석 최고위원은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피해자는 국회 앞 천막 농성장에서 300일 넘게 풍찬노숙하는데, 12·12 군사 쿠데타 주역인 전두환을 비롯해 정호영 전 특전사령관, 최세창 전 3공수여단장 등 역사적 죄인은 40주년을 자축하며 고급요리와 와인을 즐기며 호의호식하고 있다”며 “이는 정의롭지 못하다, 공정하지 못하다”고 울먹이며 호소했다. 그는 또 “추징금 미납과 상습 고액체납자 전두환을 인신 구속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치정살인이 부른 ‘나비효과’… 홍콩, 中 일국양제에 반기 들다

    치정살인이 부른 ‘나비효과’… 홍콩, 中 일국양제에 반기 들다

    하나의 우연한 사건이 거대한 역사를 만들 때가 있다. 이른바 ‘나비효과’다. 1914년 6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찾아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에게 18세 청년이 총격을 가한 ‘사라예보 사건’으로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시작됐다. 2011년 4월 미국 백악관 연례만찬 행사에서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이 청중으로 온 부동산업자 도널드 트럼프에게 공개망신을 주자 트럼프가 이에 앙심을 품고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 지금 소개하려는 ‘찬퉁카이 사건’도 중국의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 원칙을 흔들고 동아시아의 정치 지형을 바꾼 ‘역사의 방아쇠’로 기억될 것 같다. 9일로 정확히 6개월이 된 홍콩 시위 사태의 원인을 설명하는 프리퀄(본편보다 시간적으로 앞선 과거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사법권 못 미치는 대만 사건 발생… 기소 불가 지난해 2월 8일 중국 광둥성 선전 출신의 홍콩인 찬퉁카이(21)가 동갑내기 여자친구 판샤오잉과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대만이었다. 판샤오잉은 열흘쯤 뒤인 17일 자신의 어머니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왓츠앱을 통해 “홍콩으로 돌아간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전 세계를 소용돌이에 빠뜨린 거대한 태풍의 시작이었다.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그때 두 사람은 타이베이의 한 호텔 방에서 심하게 다투고 있었다. 판샤오잉은 임신 중이었는데, 뱃속 아이 아빠가 자신이 아닐수도 있다는 사실을 찬퉁카이가 뒤늦게 안 것이다. 판샤오잉이 휴대전화에 저장된 동영상으로 새 남자친구의 존재를 확인해 준 뒤 “이 지경까지 왔으니 너와 헤어지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찬퉁카이가 순간적인 격분을 참지 못하고 판샤오잉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는 여행용 가방에 시신을 담아 숙소를 빠져나왔다. 타이베이의 한 지하철역 부근 공원 풀밭에 암매장하고 홍콩으로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판샤오잉의 신용카드로 돈을 찾아 자신의 은행계좌로 입금했다. 판샤오잉의 부모는 딸과 연락이 되지 않자 경찰에 신고했다. 찬퉁카이는 곧바로 체포됐고 범행 사실도 자백했다. 이 사건은 ‘단순 치정살인’으로 정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영미법을 채택한 홍콩은 영역 내 범죄에 대해서만 처벌하는 ‘속지주의’를 유지한다. 홍콩 당국 입장에서 찬퉁카이의 죄는 천인공노할 사안이지만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대만에서 벌어져 기소가 불가능했다. 다른 나라들과 그랬던 것처럼 미리 대만과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었다면 찬퉁카이를 송환하고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홍콩은 그러지 않았다. 대만과 정치·법률 분야에서 공조하면 대만을 보통국가처럼 보이게 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베이징 당국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찬퉁카이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였음을 안 대만 정부가 그에 대한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하지만 홍콩 당국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돼 있지 않아 송환을 위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무리를 해 가며 반중 성향인 대만 정부를 도울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 속내도 있었다. ●2047년 이후, 공포에 떨고 있는 홍콩 시민들 같은 해 4월 홍콩 사법당국은 찬퉁카이에 대한 살인 혐의 적용을 포기했다. 대신 여자친구의 카드로 돈을 인출한 것에 대해서만 절도죄 등을 적용해 29개월형을 선고했다. 그나마도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모범수로 복역했다는 점을 들어 18개월로 감형했다. 그는 올해 10월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평생을 감옥에서 지낼 것 같던 찬퉁카이에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비난 여론이 커지자 홍콩 정부는 “제2의 찬퉁카이가 생겨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1년 가까이 지난 올해 2월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개정에 착수한다고 선언했다. 홍콩 주민이 상대국법으로 징역 3년 이상 실형이 예상되는 범죄를 저지르면 용의자 송환 여부를 판단하는데, 대만처럼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국가·지역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사법 절차 없이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 여부를 결정하게 한 것이 골자다. 여기서 논란이 불거졌다. 행정장관이 용의자 송환 여부를 정할 수 있는 지역에 대만뿐 아니라 중국 본토가 포함된 것이다. 중국 정부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법이 통과되면 중국은 홍콩의 반중 인사들에게 반분열국가법(우리의 국가보안법에 해당) 위반 혐의를 적용해 홍콩 정부에 송환을 요구할 수 있다. 친중 성향인 행정장관은 이를 승인할 가능성이 크다. 안 그래도 홍콩인들은 중국이 광범위한 자치를 약속한 시한인 2047년 뒤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두려움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반체제 서점 관계자 실종(2015)과 샤오젠화 밍톈그룹 회장 실종(2017) 등 중국 공권력에 의한 납치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가 더 커졌다. 이 때문에 송환법은 홍콩인들에게 ‘말 안 듣는 사람들을 중국으로 쉽게 보내려는 법’으로 여겨졌다. ●확산되는 반중 시위… 전 세계 정치지형 변화 홍콩 정부는 범민주 진영의 반발에도 입법을 강행했다. 3월 9일 이 법안이 입법회(우리의 국회 격)에 제출됐다. 여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을 비롯한 친중파 의원들은 이 법안을 무조건 통과시키려고 나섰다. 민주당과 공민당 등 야당 의원들은 결사적으로 막았다. 70명으로 이뤄진 홍콩 입법회에서 친중파(41석)는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범민주 진영(29석)의 반대를 제압하고 5월 26일 이 법안을 법사위원회에 올려 가결했다. 해당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됐다. 형식적 통과 절차만 거치면 법이 발효될 순간이 코 앞에 왔다. 그러자 홍콩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자신들을 지켜야 할 정부가 되레 정상적인 사법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본토로 내보내려 한다는 배신감이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다.이후부터는 잘 알려진 그대로다. 6월 9일 홍콩 시민들이 첫 번째 거리 시위를 열었다. 100만명이 넘게 참석했다. 이후 주말 시위는 6개월째 이어지며 홍콩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 놨다. 지난달 24일 범민주 진영은 홍콩특별행정구 구의회 선거에서 85%가 넘는 의석을 가져오며 사상 처음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친중 성향이 우세하던 홍콩의 시민들은 완전히 돌아섰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중국과의 전쟁’은 2047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만도 이제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대놓고 말하고 있다. 차이잉원 총통은 2016년 1월 당선 뒤 잇따른 정책 미숙으로 내년 1월 총통 선거 패배가 확실시돼 왔다. 하지만 홍콩 시위 사태를 계기로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이변이 벌어졌다. 올해 8월부터 차이 총통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올라 대선 승리를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이제 대만에서 ‘반중’은 국시가 됐다.이런 분위기는 최소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물러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홍콩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홍콩인권법안)을 통과시켰다. 내친김에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신장 위구르 인권법과 티베트 인권법도 제정할 모양새다. 인권 문제를 고리 삼아 패권 경쟁국인 중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다. 한 20대 홍콩인 커플의 애정여행이 동아시아의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고 전 세계를 ‘친중 대 반중 구도’로 재편하는 결과를 낳았다. 앞으로 역사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 전 세계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홍콩 주말 시위 6개월… “직선제해야” 다시 대규모 집회

    홍콩 주말 시위 6개월… “직선제해야” 다시 대규모 집회

    수배된 시위대 11명 체포… 총기도 압수 시위대 수만명 “유화책 없으면 3파 투쟁”지난 6월 9일 시작된 홍콩의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이제 6개월이 됐다. 시위대는 지금까지 6000명 가까운 시민이 체포되고 대학생 1명이 숨지며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럼에도 지난달 24일 치러진 홍콩특별행정구 구의회 선거에서 압승하며 ‘민심의 응원’을 이끌어냈다. 다만 행정장관 직선제 등 시위대가 바라는 진정한 민주화를 얻어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8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이날 홍콩 도심 빅토리아 공원에서 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홍콩 재야단체 연합 민간인권전선 주최로 열린 이날 집회에는 홍콩 시민 80만명이 참여했다. 민간인권전선은 지난 6월 9일 시위(103만명 참여)와 같은 달 16일 시위(200만명) 등 홍콩의 대규모 집회를 주도한 단체다. 이들은 홍콩 최대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와 홍콩 정부청사, 경찰본부 등을 지나 홍콩의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까지 행진했다. 홍콩 경찰은 지난 7월 21일 시위 이후 “폭력 사태가 우려된다”며 민간인권전선이 여는 대규모 행진을 불허해 오다가 이날 집회와 행진을 허가했다. 앞서 치러진 홍콩특별행정구 구의회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전체 452석 가운데 388석을 ‘싹쓸이’하자 달라진 정치 지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말 집회와 행진이 홍콩 이공대 사태와 구의원 선거 이후 새로운 투쟁 동력으로 작용할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지 9일로 만 6개월이 되는 동시에 시위 현장에서 추락했다가 지난달 8일 숨진 홍콩과기대생 차우츠록의 사망 한 달을 맞는 날이어서다. 시위대는 이날 대규모 시위에도 정부가 유화책을 내놓지 않으면 9일부터 총파업과 동맹휴학, 철시(시장폐쇄) 등 ‘3파투쟁’과 대중교통 방해 운동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홍콩 경찰은 이날 일제 단속과 검거 작전을 통해 지난 10월 20일 몽콕 경찰서에 화염병을 던진 혐의 등으로 수배된 시위대 11명을 체포하고 이들이 갖고 있던 총기 등을 압수했다. 시위대의 총기가 압수된 것은 처음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고민정 “숨진 수사관 엉뚱한 죄인 만들고 미안함 없나”

    고민정 “숨진 수사관 엉뚱한 죄인 만들고 미안함 없나”

    언론·야당 비판…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애도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검찰 조사를 앞두고 극단적 선택으로 고인이 된 검찰 수사관 A씨를 둘러싸고 ‘하명수사’ 의혹이 계속 제기되는 것을 두고 “엉뚱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갔던 것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고 대변인은 6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청와대 자체 조사 결과 브리핑을 하면서 고인이 김기현 비리와 무관하다는 게 밝혀졌지만, 고인을 의혹 덩어리로 몰아간 이들은 ‘고인이 이 사건과 무관함이 밝혀졌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고 대변인은 “고인을 잃기 전 그를 둘러싼 의혹은 들불처럼 번졌고 그 생명의 빛이 꺼진 후에도 오해와 억측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거침없이 질주했다. 잠시라도 멈춰질 줄 알았던 기관차는 다른 목표를 향해 폭주했다. 고인에 대한 억측은 한낱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고인을 직접 알지 못하지만 청와대라는 한 지붕 아래 살았으니 오가며 눈인사를 나눴을지 모르겠다”면서 “대변인이 아닌 청와대 동료로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글을 맺었다. 앞서 고 대변인은 지난 4일 브리핑을 통해 ‘하명수사’ 의혹을 촉발한 김기현 전 울산시장 비위 관련 첩보가 생성된 과정에 대해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이 외부에서 제보된 내용을 일부 편집해 요약·정리했다”며 “고인이 된 수사관은 문건 작성과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두차례에 걸쳐 압수수색을 당하자 성실히 협조했다면서도 비위혐의가 있는 김태우의 진술에 의존해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듭해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국가보안시설에 해당해 형사소송법상 압수수색이 불가능하고 이를 허용한 전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데스크 시각] 홍콩 시위 사태가 일깨워 준 이솝 우화/류지영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홍콩 시위 사태가 일깨워 준 이솝 우화/류지영 국제부 차장

    지난달 말 홍콩을 다녀왔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홍콩 특별행정구 구의회 선거(24일)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정부 관계자와 대학교수, 홍콩한인회 간부 등을 만나 6개월째 이어진 홍콩 시위 사태의 근본 원인을 물었다. 뜻밖에도 이들은 ‘부동산 불평등’을 꼽았다.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을 폐기하고자 들고일어난 진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집값 문제였다는 진단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홍콩에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대학이 여럿 있다. 영국 ‘QS 2020년 세계 대학순위’에 따르면 홍콩대(25위)와 홍콩 과기대(32위)는 서울대(37위)보다 순위가 높다. 중문대(46위)와 홍콩 시립대(52위), 홍콩 시위대가 점거했던 이공대(91위)도 100대 대학에 들어간다. 홍콩의 인구가 우리나라의 7분의1인 750만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다. 그런데 이들 학교를 나와도 대졸자가 받는 첫 월급(중위소득)은 2만 홍콩달러(약 310만원)가 되지 않는다. 세계은행 기준 지난해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 8717달러(약 5800만원)로 한국(3만 1362달러)을 크게 앞선다. 홍콩의 경제수준을 감안하면 너무 빠듯한 액수다. 홍콩의 시간당 최저임금도 5800원 정도로 우리나라(8350원)보다 적다. 상당수 홍콩 주민들은 우리보다 훨씬 팍팍하게 산다고 봐야 한다. 월급이 작다면 주거비라도 저렴해야겠지만 홍콩의 집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지간한 아파트는 3.3㎡당 가격이 우리 돈 1억원을 넘는다. 전 세계 투기자본과 중국 본토의 검은 돈 등이 천정부지로 값을 올려놓은 탓이다. 명문대를 졸업해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 전세제도가 없는 이곳에서 ‘2030’세대는 월세살이를 숙명으로 여긴다. 문제는 이곳 평균 월세가 350만원가량 된다는 점이다. 부부가 대학을 나와 맞벌이를 해도 월급의 절반이 집세로 나간다. 일부 젊은이들은 결혼을 하고도 각자 부모 집에서 생활하며 연애하듯 살아간다. 신혼집이 없어서다. 심지어 어떤 부부는 일부러 혼인신고를 안 하고 아이를 낳는다. 한부모 가정인 것처럼 꾸며 사회적 약자에게 제공되는 임대주택을 얻기 위해서다. 제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기 힘으로는 조그마한 집 한 채 마련 못 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홍콩 시민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든 ‘집단 무의식’이 됐다는 설명이다. 모든 사회에서 법과 제도, 윤리 등 ‘상부구조’는 경제라는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이론이 홍콩에서만큼은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다. 홍콩 구의원 선거가 있기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MBC ‘2019 국민과의 대화, 국민이 묻는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최근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한 생각을 묻자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부동산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답한 뒤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됐다”고 마무리했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분명 문제가 있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늘 말했지만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인한 불평등 문제에는 아무 언급도 없었다. 청와대 어느 누구도 ‘불편한 진실’은 보고하지 않은 채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답만 해준 듯하다. 우리 대통령이 이솝 우화에 나오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한 여당 관계자를 만났다. 대통령이 몇몇 측근들로 이뤄진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다는 우려가 당내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투기를 방치하면 우리 역시 홍콩처럼 될 수도 있음을 대통령은 제대로 듣고 있는지 걱정이 크다. superryu@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구름에 달 가듯이 - 영월 김삿갓문학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구름에 달 가듯이 - 영월 김삿갓문학관

    “아임 유어 파더.”(I’m your father) 너무나도 익숙한 대사다. 헐리우드 대작 영화인 <스타워즈5: 제국의 역습>(1980)에서 천하에 나쁜 놈(?)이자 인기 캐릭터인 악당 ‘다스베이더’가 광선검을 휘두르며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던진 한 마디. ‘내가 너의 아버지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스타워즈 인기도 급등하고 만다. 이렇듯 각종 영화,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은 본격적인 시청률 상승을 위한 극약 처방으로 사용되어 왔다. 연인관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배다른 남매였으며, 세입자가 어릴 때 잃어버린 아들이며, 죽도록 사랑하는 여인은 집안의 원수의 딸이고, 동네 이사 온 막장 아주머니가 자신의 친어머니다. 요새는 그것도 약발(?)이 안 먹히자 아예 사돈의 팔촌이 형제가 되고 죽었던 사람마저 살려 낸다. 진짜 출생의 비밀의 원조를 확인한다. 영월 김삿갓 문학관이다. 강원도 영월을 가로지르는 남한강의 지류인 옥동천을 따라 영주방향으로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와석교를 건넌다. 갑자기 온 마을이 ‘김삿갓’으로 도배된 듯 세상천지가 김삿갓 글자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김삿갓 식당, 김삿갓 슈퍼, 김삿갓 면사무소, 김삿갓 민박 등등 전부 김삿갓이다. 김삿갓 마을로 제대로 온 것은 맞는 듯하다. 원래 이 마을의 이름은 조선시대부터 영월군 하동면(下東面)으로 불렸다. 흔히들 김삿갓으로 불리는 조선시대 시인 김병연(1807~1863)의 묘가 1982년 하동면 와석리 어둔마을에서 발견되자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09년 마을 이름을 아예 ‘영월군 김삿갓면’으로 바꾸었다. 감삿갓이라 불린 난고 김병연의 삶은 참으로 기구하였다. 말 그대로 출생의 비밀을 안고 한 평생 전국을 구름처럼 흘러 세월을 보낸 사내다. 그는 1807년(순조7년) 3월 13일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원래 그의 집안은 안동김씨 세도가였지만 5세 때 평안도 선천 지역의 부사였던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에 투항한 죄로 처형당한다. 이때 집안은 멸족이 된다. 할머니 전주 이씨는 광주의 관비로, 부친은 남해로 귀향을 가고 모친은 여주 이천으로 피신하게 된다. 이후 조부의 죄가 멸족에서 폐족으로 감형이 되자 모친은 세인의 괄시와 천대를 피해 영월 땅에서도 궁벽진 삼옥리로 이주하여 간신히 생활을 이어 가게 된다. 스무살 병연에게 비극이 시작된다. 그 해 영월 동현에서 실시한 백일장에서 병연은 친할아버지인 김익순을 호되게 비판하는 글을 지어 장원을 하였다. 그러나 후일 모친으로부터 집안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 스스로 여겨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자손이라고 자책하며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고 다녔으므로 김삿갓 또는 김립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당시 조선 후기 양반들이 짓던 한시의 전형적인 주제와 틀에서 벗어나 민중의 삶을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자유로운 형식의 시를 썼던 천재시인이기도 하다.바로 이런 김병연의 기구했던 삶과 문학을 기록하고 의미를 남긴 곳이 난고 김삿갓 문학관이다. 강원도 시책 사업인 "강원의 얼 선양사업"의 하나로 2003년 10월에 개관하였으며 김병연과 관련된 서책, 기증자료 등으로 총 3개의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김삿갓 문학관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 5개 만점) - 문학관 자체보다는 주변 계곡이나 경치는 훌륭하다. 여름에 방문 추천! 2. 누구와 함께? - 가족과 영월 계곡에 발을 담구다 가볍게 들리면 좋다. 3. 가는 방법은? -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김삿갓로 216-22 - 옥동천의 지류인 곡동천을 따라 꼬불꼬불 내려가야 한다. 경치가 훌륭하다. 4. 김삿갓 문학관 방문의 특징은? - 문학관보다는 인근에 김삿갓 계곡으로 이름난 옥동천, 곡동천 풍광이 아름답다. 5. 방문시 유의점은? - 여름의 경우 좁은 도로에서 운전 조심. 6. 꼭 가 볼 장소는? - 김삿갓 묘역, 김삿갓 문학공원 7. 토박이들로부터 확인한 추천 먹거리는? - 영월 시내 닭강정 ‘일미강정식당’, 동치미국수 ‘연당동치미’, 다슬기해장국 ‘성호식당’, 감자전 ‘고향’. ‘강원토속식당’, 송어회 ‘옥동송어장’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ywmuseum.com/museum/index.do?museum_no=7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고씨동굴, 별마로 천문대, 청령포, 한반도지형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김삿갓 문학관은 영월의 관광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건립된 기념관이다. 규모가 작고 큰 특징은 없으나 주변 자연 풍광이 훌륭한 곳이 영월 김삿갓면이다. 소백산 자락이 시작되는 곳으로 도시의 바쁜 삶에서 벗어난 고즈넉한 슬로시티의 여유를 체험할 수 있는 곳.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민족민주 영령의 성지… 산 자에겐 치열한 정치공간

    민족민주 영령의 성지… 산 자에겐 치열한 정치공간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2차 국립서울현충원’ 편이 지난달 30일 동작구 상도동과 동작동 일대에서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7호선 상도역 4번 출구를 출발했다. 구립 김영삼도서관을 거쳐 김영삼 전 대통령 가옥에 방문했다. 김영삼 기념도서관은 내년 3월쯤 개관할 예정이어서 외관을 살펴보고 경과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현대정치사에 ‘상도동’이라는 뚜렷한 족적을 남긴 김 전 대통령 가옥 응접실에서 차를 대접받으며 김상학 비서관으로부터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과 연금생활 등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듣고 눈에 익은 사진과 기념품, 휘호, 단풍나무를 즐겼다. 가옥에는 손명순(92) 여사가 기거하고 있다.서달산 명물로 떠오른 숲속도서관 가는 길은 11월의 마지막 단풍으로 불타고 있었다. 현충원에서 호국지장사(옛 화장사)~박정희~김대중~임시정부 및 애국지사 묘역 순으로 둘러봤다.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앞에 화환이 즐비했는데 마침 전날이 고 육영수 여사의 94번째 생일이었다고 한다. 상도동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현충원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 다들 아쉬워했다. 묘역 곳곳에 깃든 숱한 사연들이 저마다 앞다퉈 얘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김 전 대통령 가옥과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해설을 맡은 엄태호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원은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의 만추 속으로 참가자들을 안내했다.동작은 서울과 과천을 연결하는 한강 남쪽의 중요 나루였다. 사람과 물자가 드나들던 동작진(銅雀津)이자 병선 6척이 주둔하던 군사기지 동작진(銅雀鎭)이기도 했다. 우리말로는 동재기나루라고 불렀다. 1954년 이곳에 국군묘지가 세워졌다. 풍수지리상 장군대좌형의 명당이므로 군인과 인연이 있는 땅이다. 본래 동작이란 무덤을 장식한 구리봉황을 뜻하므로 땅 이름과 땅 주인이 서로 들어맞았다. 삼국지의 영웅 조조의 성이자 무덤이던 동작대에서 딴 동작이라는 지명이 조선 한양의 한강변 나루터 마을에 붙고 그곳이 현대 서울의 동작구와 동작동이라는 지명으로 이어졌다가 결국 국립묘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국군묘지에서 1965년 동작동 국립묘지로 승격됐다가 1996년부터 국립현충원이 됐다. 국립묘지라는 명칭은 그대로 사용하되 묘역 관리기관의 명칭만 바꿨다. 2006년 국립대전현충원 등과 구별하기 위해 국립서울현충원이 됐다. 144만㎡의 부지에 무명용사 11만여위를 비롯해 모두 17만 9000여기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다. 신라를 통일한 문무대왕이 “아! 산천은 변천되고 세대는 바뀌기 마련이다. 저 오왕 합려의 북산 무덤에 색칠한 금오리가 남아 있지 않고, 위왕 조조 서릉의 망지는 동작이라는 명칭만 남았을 뿐이다…”라며 “내가 죽으면 동해바다에 장사 지내라”고 유언했다. 이 세상 영웅과 화려한 무덤이 다 사라지고 결국 ‘동작’이라는 이름만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조의 무덤에 구리로 만든 거대한 새를 세운 동작대에서 이름을 이어받은 동작구와 동작동에 국군묘지와 국립묘지가 세워지고 독립지사와 임정요인, 전직 대통령 등을 모신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장소인문학에서 말하는 땅의 내력이다.조선시대 한강이 오늘의 철도와 고속도로를 합친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할 때 왼쪽 서빙고나루, 오른쪽 노량나루의 중앙에 놓인 동작나루는 남대문을 나서서 용산 청파역을 거쳐 경기도 과천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 중 ‘경조오부도’에 이 길을 과천로라고 이름 붙였다. 청파역에서 노량나루를 건너면 시흥으로 향했다. 동작진을 건너 과천으로 가거나 노량진을 건너 시흥으로 가는 두 길은 수원에서 만나 삼남(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지방으로 이어졌다. 1899년 노량진~제물포 간 경인선과 1900년 노량진~용산 간 제1한강교(한강대교)가 놓이면서 동작진은 노량진에 밀렸다. 조선시대 가리기 힘들었던 두 나루의 우열은 근대기 들어 노량진이 앞섰다. 그 덕분에 비어 있던 동작진에 국립묘지가 깃들 수 있었다.옛 동작나루를 그린 실경산수화 2점이 전한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동작진’과 장시흥(1714~1789)의 ‘동작촌’이다. 동작진이 나루터를 포함한 마을 전체를 그렸다면 동작촌은 동작나루의 솟은 암산과 나루에서 사당, 과천으로 이어지는 길가에 즐비한 기와집을 클로즈업했다. 정선이 1744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동작진’은 오늘의 현충원을 중심에 두고 멀리 관악산과 청계산을 배경 삼았다. 동작나루 일대 한강을 동작강이라고 불렀다. 권문세가의 별서(별장)가 자리잡았다. 인조반정의 공신 이귀가 세운 창회정이 정선의 그림에 엿보인다. 광해군 때의 권신 박승종의 별서 퇴우정이 이름을 바꾼 것으로 짐작된다. 인조의 동생 능봉군이나 남용익, 이세필, 윤두수 등 문신의 별서도 상지동에 있었다. 조선시대 현충원 일대를 상지동이라고 했다. 현충원의 터줏대감 호국지장사는 신라 고찰 화장사다. 삼성동 대부분이 봉은사 땅이었듯 현충원 대부분이 화장사 소유였다. 선조의 조모 창빈 안씨 묘도 널찍하게 자리를 잡았다.동작나루에는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은 31세 때 ‘동작나루에서 진주로 가시는 부친을 송별하며’란 제목의 시를 남겼다. “나루터에 저 멀리 떠나가는 배/모래밭에 말 세우고 바라본다네…”로 시작하는 효심 어린 시를 썼다. 그러나 이 시를 쓴 해 부친이 진주에서 숨졌으니 마지막 이별 인사가 된 셈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도 동작나루 풍경을 그린 ‘동작진’이라는 시가 전한다. 동작나루는 정치의 공간이기도 했다. 숙종 때 남인의 영수 윤휴는 왕의 부름을 받자 “신의 애초의 뜻은 전하가 계시는 궁전의 뜰에 나아가 하직하려는 것이었습니다…”라면서 동작나루의 숙소에 3달을 머물며 출사 거부의 사직상소를 올렸다. ‘정치 쇼’였다. 그러나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세상이 바뀌고, 남인이 제거되면서 윤휴는 죄인이 돼 국문을 당한 뒤 사약을 받았다. 동작나루에서 여유작작하며 석 달을 버티다 동작강을 건넌 뒤 한 달 만에 저세상 사람이 된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민족민주영령들의 성지이자 국가 정통성의 뿌리다. 죽은 자의 공간이지만 산 사람들을 위한 정치공간이기도 하다. 혁명이나 변환의 시기나 행사 때마다 주요 인사들이 얼굴을 내미는 정치무대이기 때문이다. 246만명의 전사자와 전범자를 합사한 일본 야스쿠니신사가 국립묘지로 성지화되면서 참배 여부를 놓고 나라 안팎에서 논란이 빚어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조조의 무덤 동작대에서 전래된 동작나루의 전설이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어진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땅의 숙명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33회 양천고성 ■집결 장소:12월 7일(토) 오전 10시 양천향교역 2번 출구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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