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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지 좁아진 재야(개혁바라몌 달라지는 세상:15)

    ◎“도덕적 문민정부”… 투쟁론거 상실/「적대적」 시각서 「경쟁관계」로 전환 김영삼정부 출범후 재야가 느끼는 공통적인 정서는 「위기의식」이다.이른바 우파에 속하는 「자주·민주·통일 진영」이나 좌파로 불리는 「민중·민주계열」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문민정부의 강한 개혁의지및 실천과 도덕성,그리고 이에대한 국민의 높은 지지도 때문이다.사실 재야가 그 뿌리로 내세우고 있는 4·19의거,5·18광주민주화운동을 『현정부는 이들의 연장』이라고 규정 지은 김대통령의 태도는 재야수준과 맞먹는다.재야 스스로 설땅을 잃을만한 획기적인 역사규정인 셈이다. 도덕성은 한때 재야인사들의 전유물이었다.변절의 「멍에」처럼 이들에게 터부시 되는 영역은 없다.그런데도 그들은 스스럼없이 정부안에 들어가 개혁의 전위에 서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이들 「참여파」인사들에 대해 재야내에서는 단 한마디의 훼절시비 조차 없다. 많은 재야인사들도 변화를 인정한다.문익환목사는 『역대 정권들은 우리의 순수한 주권행사를 반국가적인 것으로 받아쳤다.그러나 현정부는 우리가 던지는 「공」을 잘 받아주고 있다』고 말한다.정부가 바뀌어서 그만큼 대결의 여지가 없어졌다는 얘기이다. 지난 4·13 보선때 광명에서 당선된 민자당 손학규후보의 후원회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재야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박형규목사·박용일변호사·부천 성고문사건의 권인숙씨 등등. 지난달 27일 결성된 민주당 이부영최고위원의 후원회 행사장도 마찬가지였다.한완상부총리,정성철정무제1차관등 이른바 「참여파 장·차관」들이 참석했다. 정부 쪽에는 한부총리,정정무제1차관외에 이미 김정남교문수석,이신범환경관리공단이사,윤무한통치사료담당비서관,김영준교문2비서관등의 재야출신들이 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며,반체제 지식인의 대명사였던 이영희교수는 통일원의 자문기구인 통일정책평가회의 회원으로,인명진목사는 부정방지위 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재야의 「지류」인 민중문화예술의 모임인 「민예총」이나 환경운동연합·전교조등도 궤도 수정을 서두르고 있는 게 역력하다.정부와 대화하고국민운동으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물론 재야의 다수그룹은 아직도 이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문익환 김근태 이창복씨는 『참여를 재야의 본류로 볼수는 없다』고 지적한다.즉 아직 재야의 큰 울타리에는 백기완씨등 독자그룹과 야당에 우호적인 이우재씨등 민중당그룹,정치적 국민운동체를 지향하는 중도그룹,전로협·전농·한총련등 대중운동조직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들 다수그룹은 『김영삼정부의 변화와 개혁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특히 김근태씨는 『선택적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달리 보면 현 정부의 개혁을 「적대적」이 아닌 「경쟁관계」로 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한쪽에선 참여가 곧 개혁이라는 논리로 뛰고있고,다른 한쪽에선 정부와의 경쟁 대열을 갖추려는 게 새정부의 개혁바람 이후 재야의 흐름이며 위상이다.
  • 일 왕실 결혼식 하루전/경찰서 로켓탄 피격/도쿄

    【도쿄 AFP 연합】 일본 나루히토 왕세자의 왕실결혼예식에 반대하는 극좌파들이 발사한 것으로 보이는 사제 로켓탄이 결혼식을 하루앞둔 8일 저녁 도쿄시내의 한 경찰서에 명중했다고 경찰이 밝혔다. 이 사제 로켓탄은 도쿄시내 세타가야 구의 데넨초후에 위치한 경찰서 건물로 날아들어 유리창을 박살냈다고 경찰은 말했다.인명피해 발생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 로켓탄공격이 천황제와 나루히토 왕세자의 결혼행사에 반대하는 극좌파세력들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했다.
  • 민주화·경제개발 이끈 “케네디”/스페인 현총리 펠리페 곤잘레스

    6·6 스페인 총선에서 집권 사회노동당이 승리함으로써 기록적인 4기 연임이 확실시되고 있는 펠리페 곤살레스 총리(51)는 스페인의 민주화와 경제근대화를 이끈 업적으로 11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유럽내의 대표적인 좌파 지도자다. 예측을 불허했던 이번 총선에서 그가 이끌어낸 사회노동당의 승리는 특히 유럽 각국의 사회당 몰락과 좋은 대비를 이뤄 앞으로 그가 펼칠 경제및 외교정책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75년 프랑코 총통이 사망하고 스페인이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지 7년만인 지난 82년 40세의 나이로 유럽 최연소 총리가 된 곤살레스는 젊은 수상답게 민주화와 경제정책을 과감히 추진,「스페인의 케네디」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3세때인 65년 벨기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 사회주의운동에 뛰어들어 총리에까지 오른 그지만 총선을 앞둔 지난 4월엔 소위 「필레사」사건으로 불리는 정치자금 스캔들에 연루돼 사임의사를 밝히는 등 정치적 신산을 겪기도 했다.
  • 스페인 사회당 재집권/82년이후 연속 3번째/과반의석 확보엔 실패

    【마드리드 로이터 AFP AP 연합】 펠리페 곤살레스 총리가 이끄는 스페인의 집권사회노동당(PSOE)은 6일 실시된 총선에서 정원이 3백50석인 하원에서 1백59석을 차지,중도 우파의 국민당(PP)을 18석 차이로 누르고 지난 82년 집권한 이래 연3번째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호세 루이스 코르쿠에라 내무장관은 개표를 끝낸 결과 사회당이 38.689,국민당은 34.82%를 각각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사회당의 의석수는 전번 총선때보다는 16석이 줄었으나 지역정당이나 공산당 주도의 좌파연합과 연립정부를 구성할수 있게 됐다. 제3당인 좌파연합은 18석을 차지햇다. 지난 89년 실시된 총선에서는 사회당이 1백75석을 차지했고 국민당은 1백7석을 차지했으며 좌파연합은 17석이었다. 곤잘레스 총리(51)는 81%의 개표결과가 밝혀진후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사회당의 승리는 사회당의 근대화및 민주화계획에 대한 스페인들의 지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좌우화합 노선… 열강도 지지/시아누크 「캄」 총리추대 배경

    ◎아들주도 민족전선 승리도 한몫/내전불씨 크메르 루주 포용 미지수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캄보디아 총선결과 최고민족회의(SNC)의장인 노로돔 시아누크공이 새로운 연립정부의 총리직을 맡게됐다.시아누크는 또한 국가수반으로서의 권한을 계속 보유하는 한편,군과 경찰 최고사령관직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시아누크공의 위상 강화는 지난달 23일부터 6일간 유엔의 주도로 실시된 선거개표 결과 그의 아들인 라나리드가 이끄는 민족연합전선(푼신펙)의 승리로 드러나면서 이미 예견됐었다. 개표가 거의 완료된 2일 현재 야당인 민족연합전선은 전국 득표율에서 45.3%를 기록,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을 6.7% 포인트나 앞서기는 했으나 예상대로 과반수 득표에 실패,국민화합의 상징인 시아누크공 말고는 총리직에 적당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표과정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권력상실에 위기의식을 느낀 현 훈센정권은 끊임없이 부정선거 시비를 제기했음은 물론이다. 시아누크는 또한 캄보디아 13년 내전의 배후세력인 주변열강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얻고 있을 뿐만아니라 이번 총선의 바탕이 된 91년의 파리평화협정을 이끌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범국민화합 차원에서 이 나라 내전의 꺼지지않은 불씨인 크메르루주의 「존재」도 인정,어떤 형태로든 포용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 출범하는 연립정부에 내전 4개 정파를 모두 참여시킨 시아누크공은 파란만장한 캄보디아 역사의 산 증인이다. 41년 18살의 소년군주에서 출발해 정치가와 죄수 그리고 말년에는 망명게릴라 수반까지 격동의 시기에 경험할수 있는 모든 것을 겪었다. 그는 과거 국왕재임 17년간에는 「균형의 정치」를 폈었다.좌파와 우파를 모두 수용함으로써 정치적 분란을 막았던 것이다. 올해 70세인 시아누크는 이제 캄보디아 비극의 현대사와 자신의 굴절된 삶을 영광스럽게 끝낼 기회를 맞게된 것이다.「프놈펜의 봄」을 선도해온 그가 동족간의 살상으로 처참하게 분열된 국민감정을 어떻게 치유해갈 것인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과테말라 정정 혼미

    ◎반정부시위 장갑차로 진압/의회,군에 현정권축출 촉구 【과테말라시티 로이터 AP 연합】 흐르헤 세라노 대통령이 헌정 중단을 전격 선언한데 대해 헌법재판소가 즉각 이를 위헌으로 선언했으며 좌파의 반정부 투쟁선언과 함께 의회도 군에 현정권 축출을 촉구하는 등 과테말라 정정이 갈수록 혼미속으로 깊게 빠져들고 있다.이와 관련해 세라노 대통령은 27일 비상조치 발표후 처음 촉발된 반정부시위를 장갑차를 동원해 진압하는 등 계속 초강경 대응함으로써 향후 사태추이를 더욱 불투명하게 했다. 과테말라시티 시민 1천여명은 이날 대법원청사앞에서 세라노 대통령이 이틀전 현정중단 조치를 취한 처음으로 대통령퇴진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이에 대해 당국은 장갑차를 앞세운 군병력을 투입해 최루탄을 쏘며 시위 군중을 강제 해산시켰다. 세라노 대통령은 이날 시위진압 직후 대법원에 도착해 마리아 루이사 벨트라레나 데 파딜라 전교육장관을 대법원장에 임명하는 등 앞서 취한 대법원 새 인선을 공식화했다.
  • 불 침체경제 일으키기 “대수술”(특파원코너)

    ◎21개 국영기업 민영화 배경/우파 집권으로 7년만에 또다시 추진/만성 재정적자 축소·경쟁력강화 포석 프랑스 우파정부의 대대적인 민영화계획은 침체에 빠진 국가경제를 근원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혁명적인 수술로 평가되고 있다. 민영화정책은 지난 86년 첫 좌·우동거체제 당시에도 우파정부에 의해 추진됐으나 국유화정책의 신봉자인 좌파 미테랑대통령에 의해 저지됐었다.그러나 올해 총선에서 의회다수세력으로 재부상한 우파세력이 7년만에 또다시 추진하고 나섰고 미테랑대통령도 이미 각료회의 석상에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기는 했으나 이번에는 국내경제 상황과 의석분포등 여러가지 여건으로 미뤄 볼 때 민영화조치를 저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실업률이 증가되는 등 악화일로를 걷고있는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치유하며 국내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했고 그 결과로 나온 자구책이 민영화조치다.민영화가 추진될 경우 올연말까지 4백억프랑(약5조8천억원)의 재원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이는 발라뒤르총리가 최근 발표한 경제성장및 고용증대 추진에 충분한 규모로 외채상환및 재정적자 해소를 위한 5개년계획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 공공사업 부정 연루/이,제노아시장 구속

    【로마 AP 연합 특약】 개혁바람이 15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좌파민주당의 유명정치인인 제노아의 클라우디오 부르란도 시장이 콜럼버스축제 공공사업 부정에 연루돼 19일 구속됐다. 주요도시 시장이 개혁과 관련해 구속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정세변화 부응… 현실노선 채택/일 사회당 새 강령 선언의 속뜻

    ◎사회주의 이념 퇴색… 기존정책 한계/당내 좌·우파 대립… 정식 채택까진 험로 예상 일본의 제1야당 사회당이 냉전후 국제정세흐름과 국내 정계재편 움직임에 대응,창당이념인 사회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하는등 보다 현실적 노선으로 당기본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사회당의 이같은 기본정책전환은 13일 발표된 「93년선언」초안에 나타나고 있다.오는 6월 최종안을 마련,올연말 당대회에서 정식 채택될 「93년선언」은 지난 86년의 「신선언」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강령적 문서」로 앞으로 사회당의 기본정책이 된다.그러나 당내 좌파의 저항으로 자위대,원자력발전문제등의 현실노선에서 일부 후퇴,정책전환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93년선언」은 사회주의와의 결별,자위대의 조건부인정,한국승인,일·미방위조약인정등 국내외 정세흐름에 대응,현실노선을 강화하고 있다.사회당은 그동안 엄연한 현실인 자위대와 일·미안보조약을 인정하지 않고 한·일기본조약도 조건부 승인하는등 현실과는 동떨어진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93년선언」은 당의 성격을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에 기초한 국민정당』이라고 정의,사회주의와의 결별을 분명히했다.사회주의 포기선언은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등 사회주의체제가 역사의 뒷무대로 퇴장하고 있는 국제정세를 반영,사회주의가 더 이상 당이념이 될수 없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수 있다. 사회당의 또다른 중요한 정책전환은 자위대의 조건부 인정이다.「93년선언」은 최소한의 자위력까지 규모를 축소한 자위대는 「합헌」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지난 80년대 중반부터 자위대정책을 둘러싸고 크게 흔들려온 사회당이 비록 조건을 달았지만 자위대를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회당의 이같은 정책전환은 자위대의 존재및 국제공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일본사회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수 있다.그러나 사회당은 ▲자위력은 영토·영해·영공에 한한다 ▲바다건너 침공능력이 없는 장비에 한한다 ▲타국에 대한 공격능력과 의사가 없다고 주변국들이 안심할수 있도록 군축을 단행한다등 최소 규모의 자위대를 지향하고 있다. 사회당은 일·미안보조약과 한·일기본조약을 인정,일본의 우방인 양국과의 관계개선도 모색하고 있다.지금까지 친북한정책을 취해온 사회당은 최근 야마하나 사다오(산화정부)위원장의 한국방문을 추진하는등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으나 한국의 야마하나위원장 초청거부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사회당은 이번 정책전환을 계기로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사회당의 기본정책전환은 그러나 당내 좌·우파의 대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좌파들의 반발로 자위대문제와 관련,「합헌」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93년선언」에 사용하지 못하고 「헌법이 인정한다」는 표현으로 대신했으며 『노후화된 원자력발전시설의 교체필요성』도 삭제돼 기존 원자력발전시설만 인정하는 결과가 되었다. 좌·우파의 이러한 대립으로 「93년선언」이 정식 채택될때까지는 많은 격론이 예상되며 당내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채 당지도부가 채택을 강행할 경우는 당의 분열가능성도 배제할수 없고 채택에실패할 경우에는 지도부 인책론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당내의 이같은 구조적 문제로 정권담당과 다른 정당과의 연립정권을 지향한 이번 기본정책전환은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사회당」을 과시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할수 있다.
  • 불 우파/“좌파성향” 이주민 줄이기/국적법 개정 착수 의미

    ◎“신인종차별정책” 진보언론들 비난 공세 지난 3월 총선에서의 압승으로 국회의 지배세력이 된 프랑스 우파가 드디어 보라는 듯이 우파적 입법 작업에 손을 댔다.승리의 칼을 휘두르는 우파의 첫번째 표적은 국적법이다.11일 이법의 개정안 심의를 국회가 시작했다.의도는 이민 유입을 되도록 막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국적 취득 절차를 까다롭게 고치는 것이 주안점이다. 그 가장 큰 골자는 현재 출생지주의를 채택,외국인의 자녀라도 프랑스 영토에서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국적을 부여하던 것을 16세와 21세 사이에 본인의 요구가 있어야만 부여한다는 것이다.국적 선택을 본인의 자유 의사에 맡긴다는 명분으로 포장돼 있다.그러나 새 법이 시행될 경우 적용을 받게 될 이주자들은 불만과 불안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자유의사에 맡긴다지만 국적을 신청하려면 프랑스의 행정처리습관을 보아 여러가지 서류의 제출등 번잡한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 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당국이 국적 여부를 미적미적 미루면서 미운 털을 뽑아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이 있다.새 국적법은 결국 선별적인 국적 부여를 위한 「여과장치」이며 새로운 인종차별정책이라고 진보적 언론들은 지적한다. 국적법의 개정은 단순한 법의 개정이 아니라 강한 정치성까지도 띠고 있다.이주자들은 대개 빈민층을 형성하며 성향은 좌파 지지쪽이다.그래서 우파 정당은 관대한 이민정책이 사회당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이민은 사회당 정권유지에 필요한 보험증권이라고 비아냥거렸다.이제 실력을 잡은 우파는 벼르고 벼르던 국적법을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 개정에 불만을 보이는 이들도 우파의 당파적 이익과 관련된 정치성을 지적하고 있다. 일반 국민은 이민의 증가를 반기지 않는다.새 국적법은 우파 지배의 국회에서 쉽게 통과될 전망이다.
  • 라빈의 대팔 양보책에 불만/샤스당 연정탈퇴 위협 안팎

    ◎강경보수파 반격의 신호탄/군소정당 횡포 가능한 정치제도도 문제 이스라엘의 보수우파 종교정당인 샤스당의 데리당수가 「연정탈퇴위협」 카드를 사용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진보좌파정당 메레츠당 소속 알로니교육장관(여)이 유태교를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아 국민교육을 오도하기때문에 해임돼야한다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리내무장관에 대한 국고유용혐의 수사와 중동평화회담에서의 「지나친」 양보에 따른 불만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샤스당은 점령지 완전반환을 주장하는 메레츠당과 달리 영토와 평화의 교환이라는 중동평화회담의 기본구도 자체를 거부하는 보수세력의 정서를 대변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연정탈퇴위협은 그동안 밀려온 보수세력의 반격의 신호탄으로도 받아들여지고있다. 전체의석수 1백20석 가운데 5%에 불과한 6석을 차지하고있는 샤스당이 이처럼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은 완전비례대표제를 채택함으로써 군소정당의 횡포를 가능케 한 현정치제도의 구조적 취약성에 기인한다.「한지붕 세가족」연정을구성하고있는 중도 노동당이 44석,메레츠당이 12석으로 샤스당이 탈퇴하면 과반수에 미달한다.그렇다고 아랍계의원 5명을 연정에 참여시키기는 어렵다.이스라엘에서는 건국이래 45년간 단한번도 절대다수당을 낸적이 없고 지난해 총선에서도 10개정당이 의회에 진출하는 난맥상을 보였다. 이번 연정붕괴위기는 샤스당이 정부로부터의 자금지원혜택에 크게 의존하는 종교정당이라는 약점 등을 고려할 때 타협점을 찾을 공산이 크다.그러나 알로니장관이 보직변경에 대해 꽤 강경한 거부입장을 보이고있어 단언하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모처럼 활기를 띠고있는 중동평화회담은 이번 위기의 극복여부에 관계없이 진전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 문민정부 개혁의 이념적 성격/김병익 문학평론가(정경문화포럼)

    ◎진보주의 열정지닌 정통보수 지향/건전한 자본주의로의 복귀가 목표 정치권으로부터 관계와 교육계,이제껏 성역으로 치부되어온 군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쇄신 작업을 벌이고 있는 새 정권의 정력적이고 강경한 개혁의 정책이 결과적으로 타격을 가한 곳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특혜의 보수층만이 아니다.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입고 그 존재의 근거까지 동요되고 있는 곳은 김영삼 세력을 포함한 보수층과 보수주의를 공격하고 현실의 변혁을 주장하며 실천운동을 벌여온 재야와 진보주의 세력권일 듯싶다.부정과 부패를 자행해온 지도층에 대한 가혹한 해체과정을 지켜보며 격려와 지지를 보내는 시민들이 또한 대학생들이든 야당이든 혹은 어떤 단체든 80년대식의 비판이나 시위를 하는 데에 대해서도 눈살을 찌푸리는 반응을 보낼 만큼 진보적 혹은 급진적 세력이 동조를 얻기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다.아니 지난 시절에 변혁 운동에 앞장섰던 많은 지도자들과 중심 단체들이 「신한국 건설」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기까지 한 것이다.겨우 두 달 사이에 주체할 수 없이 터지고 파급되며 새 일이 발표되고 시행되는 이런 일련의 급격한 변화들을 바라보면서 곱씹어보는 나의 갖가지 생각들 중의 하나는 그것들의 이념적 양상에 관한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펼쳐지기 시작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변화들의 근본적인 성격은,기왕의 왕성했던 이데올로기적 측면으로 보자면 여전히 보수주의적인 것으로 판단된다.이 변화들은 체제의 변혁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며 그 개혁들은 우리가 고수해온 시장자본주의와 시민민주주의의 이념과 틀을 더욱 강화해주고 있기 때문이다.집권층의 개혁에의 집념은 강력하고 도전적이지만 그들은 법을 바꾼 것도 아니고 제도를 고친 것도 아니다.그것은 부패한 관행의 파괴이며 그나마 위로부터의 집권층의 시도이다.체제의 이념적 표현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경제 정책에서도 통치자는 「성장」에 목표를 두었고 그러기 위해서 복지나 평등 대신 「고통의 분담」을 외치며 그것에 노동자들도 참여해주기를 요구했다.정확히 말하면 타락해서 무능력해진 자본주의를 바로잡아 건강하고 효율적인 시장 경제를 성취하는 것이 정책의 목표이고 그런점에서 보수주의의 논리를 관철하는 것이 이 개혁의 이데올로기적인 뼈대이다.부패 구조를 통해 특혜를 받아온 기득권층을 제외한,그럼에도 오랜 이력으로 보수적 성향을 완강하게 지켜온 대다수 시민들이 이 변화를 적극 환영하는 것은 실제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자연스런 일이다. 새 정부가 보수적이고 그 개혁의 방향이 정통 보수주의로의 희귀임에도 몇해전만 해도 기승을 떨치던 진보 혹은 좌파의 세력들은 이제 왜 비판을 가하지 않고(아니면 못하고)오히려 그것에 동참까지 선언하는가.물론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동구권의 해체와 자본주의·사회주의간의 갈등 해소를 통한 지구상의 이념적 지각 변동이 우선 외적 작용을 가했을 것이다.거기에 마르크스의 논리 구조가 오늘의 정보화 사회에서는 적절치 않거나 수정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정체경제론 및 노동과 삶의 질적 변모로부터도 그 영향을 입었을 것이다.그러나 군부독재와 유신,산업화로 이어져오는 지난 한 세대 동안 점점 더 급진화로 에스컬레이트되어온 진보적 이념과 실천 운동에는 현실과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도 못지않게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그 비판과 저항은 몸은 비록 진보주의에 합류해 있지만 이념적으로는 자유­보수주의에 귀속될 것이었다. 이렇다는 것은 재야권 인사의 통치권 합류와 함께 새 정부의 개혁 중에는 진보주의적 정책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이인모씨를 북한으로 돌려보낸 것이나 전교조 대표들이 교육부 당국과 협상을 시작한 것,노조에 부당 행위를 한 기업주에 조처를 가하며 국제 노동절 행사를 허용한 것이 그런 양상의 한 모습들일 것이다.어떤 현실 정책에도 순수한 보수주의가 있을 수 없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임을 생각할 때 이런 정도의 이념적 전향성은 양념 정도에서 그칠지도 모른다.그러나 여기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개혁이 비록 보수주의 지향이라 하더라도 그 양상과 급격성은 변혁적인 것이며 그 변혁성이 진보주의의 그것과 비슷한 이상주의적 정열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언론에 더러 「혁명」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 그런 시민적 정서의 표현일 것이다.그러니까 우리는 지금의 과정을 보수파주의에서 정통 보수주의로의 개혁,타락하고 부패한 자본주의에서 건강하고 건전한 자본주의로의 변혁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진보주의적 열정을 지닌 보수주의이며 혹은 보수주의를 관철하기 위한 진보(주의적이 아닌)적 변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그래서 중산층은 이 이념적 지향성에 안도감을 가질 것이며 서민층은 그 개혁에의 열정에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의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건강한 시민 사회와 참여적 민주주의로 결과되기를 바란다.그 사회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도덕적으로 성숙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융합된 사회이다.그런 사회에서는 정통 보수주의가 이념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진보적 이상주의가 현실적 유효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억압없는 이상주의의 추구가 가능하고 콤플렉스가 작용하지 않는 보수파의 주장이 살아날 것이다.그럴 수 있을때 오늘의 우리의 진보주의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변혁의 대안을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를 위한 급진적 사유와 이상주의적 꿈도 자유로이 피어날 것이다.오늘의 보수주의 정권의 개혁은,잘 이루어진다면 진보주의적 실천 운동에도 좋은 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 옐친·루츠코이 불화 “위험수위”/국민투표 앞두고 서로 사임요구

    ◎개혁·보수파 대표… 곧 결별할듯/유일업무 박탈·전용차 등 압수/옐친/보수언론 동원 반대통령운동/루츠코이 국민투표를 5일 앞두고 러시아 보혁 양진영의 득표운동이 가열되는 가운데 옐친대통령과 루츠코이부통령 두사람의 대립도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다.옐친대통령은 이미 여러차례 루츠코이의 사임을 요구했고 루츠코이는 지금 옐친의 불신임을 위해 뛰고 있다. 현재 개혁·보수 양세력을 대표하는 두사람의 불화는 앞으로 25일의 국민투표 결과에 관계없이 어차피 「같이 일하기 힘든」수준에 이르렀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지난 주말 루츠코이는 주로 보수성향의 언론들을 통해 반옐친운동을 전개했다.17일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 편집국에 앉아 여러 대의 전화로 소위 「시민과의 대화」를 통해 옐친불신임의 당위성을 역설했다.이 내용들이 조간인 이 신문의 20일자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19일에는 경제개혁 방향을 놓고 예고르 가이다르 전총리와 TV공개토론을 가졌다.루츠코이는 또 20일 보리스 옐친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날 경우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계획임을 천명,옐친에 정면승부를 통고했다. 그는 이어 21일에는 중도좌파 최대 조직인 시민동맹 당대회에서 연설하기로 돼 있다. 옐친대통령은 자신의 허락없이 부통령이 모스크바를 떠날 수 없는 점을 이용,그를 모스크바에 묶어놓고 있다.그래서 루츠코이는 모스크바안에서만 득표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옐친대통령은 지난 17일 루츠코이의 수족을 묶기 위한 일단의 추가조치를 단행했다.우선 그가 맡고 있던 유일한 업무인 농업개혁총괄추진역 자리를 박탈했다.형식상으로 루츠코이는 이제 아무 하는 일 없는 부통령이 됐다.루츠코이측의 주장이긴 하지만 최근 그에게 지급된 메르세데스 승용차가 압수됐고 경호원수가 절반으로 줄었으며 주치의도 없어졌다. 대통령실은 19일 『루츠코이의 메르세데스는 수리하기 위해 잠시 가져갔다』고 해명했다. 루츠코이는 표면상으론 옐친 개인에 대한 신임보다도 개혁정책 전반에 대한 공격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국민투표 질문지 4개중에서 「개혁노선에 대한 찬반」을 묻는 두번째 질문에 투표를 던질것을 강조하고 있다.『지금의 개혁노선이 계속되면 러시아는 장사치·부패관료·외국자본의 손에 완전히 넘어간다』는게 그가 내세우는 주논거이다. 옐친정부의 무능과 그의 측근인사들에 대한 공격의 강도도 계속 높여가고 있다.가이다르,겐나디 부르불리스전국무장관,부총리인 블라디미르 슈메이코,알렉산더 쇼힌 등이 국가재산을 헐값에 처분해 착복했다는 증거를 수천 페이지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1년 대통령선거에서 정부통령 후보로 나서 보혁의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으며 압승을 거뒀던 두사람이다.두사람의 불화는 어떻게 보면 마비직전에 이른 러시아 국정의 현주소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5)

    ◎광복과 함께 새출발/오욕의 역사 청산… 공공지로 재탄생/「서울신문」으로 제호바꿔 11월22일 창간/지령 13738호… 대한매일신보정통성 계승/사장 오세창·주필 이관영 등 새 진용 포진 군국주의 일제의 패망은 한국언론계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켰다.제도적 탄압장치였던 출판법등 언론계 악법이 미군정에 의해 폐기된데 이어 허가제였던 신문 출판물이 등록제로 바뀌어 갖가지 출판물과 신문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간부진 사표 수리 일제치하 36년동안 총독부의 기관지 역할을 하던 매일신보(이하 매신)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쳤다.오욕으로 얼룩진 지난날의 역사를 청산하고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으로서의 「서울신문」으로 거듭나기위해 대대적인 개편수술을 받게된 것이다.개편작업은 1945년9월8일 한반도 진주후 이남지역에 대해 군정을 실시하던 미군정청이 해방전 영업국장이던 이상철 임시관리인으로 임명(10월2일),매신의 간부중 일부를 개편토록하는 조치로부터 시작됐다.매신처리 실무를 위임받은 그는 10월9일 매신중역회의를 열었다.이 회의에서 사의를 표명한바 있는 사장 이성근과 상무 정인익의 사표를 정식 수리하는 한편 10월25일 신문사의 명칭변경이며 새중역진 선임문제등 주요사항을 토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매신의 자치위원회는 신문사의 처리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자치위원회란 9월23일부터 경영간부가 없는 상태에서 매신의 운영을 장악,신문을 만들어온 편집국과 공무국등 사원 6백명이 결성한 단체였다.위원장은 문화부기자 윤희순으로 적지않은 발언권을 행사했다.자치위는 10월23일자 지면에 「매신은 어디로」라는 성명을 통해 이 신문은 『특정 정당의 기관지나 개인의 소유가 절대로 될수는 없고 공정한 민중의 기관으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견해를 피력했다.이는 자치위가 『불편부당 엄정중립의 보도기관으로 새롭게 발족할것』을 앞서 선언했던것과 일관된 논리였다. 자치위의 이러한 반응속에 주총은 예정대로 10월25일 개최됐다.주총에서 사장에 오세창이 추대됐고 부사장은 이상협,전무취체역 김형원,상무 이상철,주필겸 편집국장 이선근등 간부진용이 결정됐다.그러나 자치위의 강력한 반대의사에 부딪혔다. 주총의 결정이 자치위와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것이 표면적 주장이었으나 실상은 간부진용에 우익인사들이 너무 많은데 불만을 품은 때문이었다. 양측의 막후교섭이 시도됐으나 타협점을 찾기는 어려웠다.이에따라 개편실무를 맡았던 이들은 모두 사퇴하게 됐고 매신은 표류할수밖에 없었다. 매신이 자치위와 개편실무자 사이에 이처럼 표류하고 있을 무렵 매신의 처리문제는 국내 각정당과 사회단체는 물론 언론계 전체의 집중적인 이목을 끌기도 했다.단순한 호기심의 시선이 아니라 차제에 완벽한 인쇄시설을 갖춘 이 신문사를 접수하려는 직·간접의 암중모색이 여러차례 시도된것이다.천도교세력을 뒤에 업은 공진항이 10월초 매신접수를 시도한데 이어 동아와 조선 양지가 매신인수를 한차례씩 꾀한바 있다. ○개편안 싸고 대립 이러한 상황속에 놓이게된 매신에 대해 그동안 관망상태에 있던 미군정청은 새로운 갈래의 매신개편작업의 필요성을 느껴 본격적인 중재를 결심하게 된다.11월10일재산조사를 이유로 매신에 대해 정간명령을 내렸다.그리고 이관구에게 「공정한 언론을 펴는 참다운 신문」을 만들도록 부탁하기에 이른다. 매신에 대한 정간명령은 자치위에게 여간 큰 충격이 아니었다.그래서 정간되던날 자치위는 「3천만 민중의 정당한 공기로서의 신문이 새롭게 출현해야 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재확인한채 일단 한발 물러서게 됐다.증폭된 갈등속에 난항을 거듭하던 매신의 개편작업은 이로써 순조롭게 진행하게 됐다. 매신개편의 대권을 위임받은 이관구는 내외에서 모두 수긍할수있는 인사들로 경영 편집진용을 구성하는등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우선 사장에 위창 오세창을 추대했다.근대 신문계의 선구자이자 3·1민족대표 33인중 하나인 지조높은 항일민족주의자로서 그의사회적 덕망과 이미지는 새롭게 선보일 서울신문에 걸맞는 인물이었다. 위창과 함께 역시 민족대표 33인중 한분인 권동진과 당시 문단의 원로 홍명희를 상징적인 고문의 위치에 영입함으로써 그 진용을 더욱 강화시켰다.이관구와 함께 매신개편작업에 참여한 하경덕이 부사장에 내정됐다.그는 저명한 교육자요 사회학자로서의 깨끗한 이미지와 함께 탄력있는 자유주의 신념의 소유자였다.중후하고 사려깊은 논조를 감당해 나갈 주필에는 이관구가 선임됐다.일제하 독립운동사에서 귀중하게 평가받고있는 민족주의자와 좌파계열의 연합체인 신간회에 참여한바있어 좌우 어느 편에서도 무난히 받아들여질수 있는 인물이었다.특히 해방전 동아와 조선에서 항일언론의 선봉에 섰던 논객으로서의 경력은 금상첨화였다. 당시 최고의 언론인들을 각부 데스크에 앉히고 이를 지휘할 편집국장에는 어문학계의 권위자인 홍기문이 내정됐다. 그리고 신문경영에 오랜 경험을 가진 원로 이원혁과 조중환이 상무에 실업가 김동준이 전무에 내정,안정된 신문운영을 기할수 있는 진용이 구성됐다. 제호는 이관구의 제의를 간부진이 숙의끝에 받아들여 「서울신문」으로 확정했다.제호의 글씨는 서예가이자 취체역인 김무삼이 썼다. 그리고 매신으로부터의 인수재산 확인도 마무리지어졌다. 우선 자치위산하에 있던 사원 6백명의 인원을 고스란히 흡수하기로 했다.인수받은 재산과 시설은 현 프레스센터 자리에 있던 연건평 1천8백30여평 규모의 4층 콘크리트 건물인 구사옥과 그 부속건물을 비롯,부산등 지방에 산재해 있던 당시 35만3천원 상당의 부동산과 독일제 알버트윤전기 4대등 최우수 인쇄설비 일체,지사 지국의 배급망까지를 포함하는 것이었다.이 규모는 신문사로서 해방전후 유일무이한 것이었다. 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개편,서울신문으로 거듭나기 위한 이 모든 준비작업은 11월21일 하오2시 5층 옥상에서 오세창초대사장의 취임식을 가짐으로써 매듭을 지었다.그리고 이튿날인 22일 독립한 이 민족의 진실된 언론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서울신문이 마침내 그 첫지면을 이땅에 드러냈다.발행일자는 1945년11월23일이었다. 당시 사회적 관심의 열도를 반영하듯 미군정장관 아놀드를 비롯,조선인민당위원장 여운형,국민당당수 안재홍,한국민주당수석총무 송진우등의 인사들이 언론정세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대의 경의와 기대를 보내오는 가운데 혁신된 속간호를 내놓게 된것이다. 『「서울신문」으로 「매신」이 경생』이라는 5단 크기의 컷(1면 중앙)과 함께 속간 첫호의 모습을 선뵌 서울신문의 이날짜 지령은 제13738호로 기록돼 있다. 이는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매일신보 지령을 그대로 계승한것으로서 서울신문의 계보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는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었다.
  • 독 극우폭력기 기승/극우세력 맹공격

    【본 로이터 연합】 독일에서 신나치등 극우세력들의 폭력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과 때를 같이해 극좌세력들이 점차 폭력화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루돌프 자이터스 내무장관이 4일 말했다. 자이터스 장관은 이날자 주간 벨트 암 존탁지와의 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좌파세력들이 주로 외국인들을 상대로 했던 극우 폭력세력들에 대한 공격에 나섬에 따라 정치적 극단주의 경향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독일 연방호헌청(BFV)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좌익세력들의 폭력행위 건수는 약1천여건에 달했다.
  • 불 새 사회당수 로카르는 누구/6차례 대권도전… 온건파대표

    ◎좌파진영 통폐합 빅뱅론 주장 지난달의 총선거에서 대패해 집권 다수당에서 소수당으로 전락한 사회당은 4일 집행위원회를 열고 당 지도체제를 「임시지도부」라는 집단 지도체제로 바꾸고 그 의장으로 전총리 미셸 로카르(62)를 선출했다. 사회당의 새 집단지도 체제인 임시지도부 의장으로 선출됨으로써 사실상 당수가 된 미셸 로카르(62)는 여러차례 대통령 자리에 도전했었고 95년 대통령 선거에도 역시 도전할 의사를 밝히고 있는 인물.그는 시장경제 원칙의 존중을 주장해 사회주의자 가운데서는 온건한 노선을 취하고 있다. 미테랑 대통령 밑에서 81∼85년 농업장관을 지냈으며 에디트 크레송 여총리로 바뀌기 직전인 88∼91년 총리직을 맡았고 총리재직중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다. 로카르는 95년 대통령입후보를 강력히 희망해왔으며 이번 총선거 운동기간중 사회당의 발전적 해체와 좌파 진영의 재통합,이른바 「빅뱅」(대폭발)을 주장해 왔다.
  • 불 동거정부 총리에 발라뒤르 유력/1·2차 총선이후의 정국흐름

    ◎드골파 급부상… 미테랑­시라크행보 관심 프랑스 총선거 2차투표가 28일 5백77개 선거구중 과반수 득표자가 없는 4백97개 선거구에서 실시돼 우파 연합이 압승하고 집권 사회당은 참패했다.이에 따라 프랑스는 의회 지배 세력 우파가 좌파인 대통령과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제2차 「동거」정부시대를 맞게 됐다. 1·2차투표 결과 우파 야당 프랑스민주동맹(UDF)과 공화국연합(RPR)이 주축이 된 연합체 프랑스동맹(UPF)이 하원 총의석 5백77석의 80%가 넘는 4백84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으며 사회당은 54석,공산당은 23석을 차지했다.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환경정당인 녹색당과 환경세대당은 한 사람의 대표자도 의회에 진출시키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집권 사회당은 하원 의석수가 종전의 2백67석(46%)에서 54석(10%)으로 줄어든데다 리오넬 조스팽,롤랑 뒤미,미셸 로카르등 당의 중진과 여러명의 현직 각료들이 의원직을 잃었다.반면 공산당은 예상과는 달리 20석 이상을 얻어 원내교섭단체를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선거를 위해 임시 제휴했던 두우파정당중 자크 시라크 전총리가 이끄는 공화국연합이 2백48석,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의 프랑스민주동맹은 2백13석을 차지했고 기타 우파가 23석을 차지했다.두 당의 제휴는 이번 선거의 종료와 함께 끝나고 1995년 대통령 선거를 향한 대립경쟁 관계로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에 따른 주요정당의 하원의석 변동상황은 다음과 같다.▲사회당 2백67→54 ▲프랑스민주동맹 1백28→2백13 ▲공화국연합 1백27→2백48 ▲공산당 26→23 ▲기타 우파 23 ▲기타 좌파 16. 가장 큰 큰리를 거둔 당은 드골주의자들의 정당인 공화국연합이다.사상 최대의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당원들이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하려 했으나 국민에게 오만하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고 지도부가 자제하도록 당부했다. 공화국연합의 자크 시라크 당수는 사회당의 선거 패배와 함께 미테랑 대통령이 사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미테랑 본인은 임기를 채우겠다고 밝히고 있다.제휴했던 중도우파 프랑스민주동맹의 지스카르 데스탱 당수는 『헌법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지난해와는 달리 시라크의 미테랑 조기퇴진 압력에 반대하고 나섰다. 총리로는 86년 1차동거때 재무장관이었던 시라크 진영의 에두아르 발라뒤르가 당세로나 여론으로나 가장 유력하다.그러나 대통령측 퇴진을 요구하는 진영의 총리를 맞기는 곤란하다고 미테랑측이 말하고 있어 다른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새 의회는 4월1일 개원하며 새 총리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금주중이나 내주초 의회에서 인준될 것으로 보인다.
  • 이스라엘 오늘 대선

    【예루살렘 AFP 연합】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는 24일 차임 헤르조그 현대통령의 후임으로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으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고위 간부들과 만나게 될 임기 5년의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1백20명의 의원중 61표를 얻어야 당선이 가능한 이번 선거에서는 이츠하크 라빈총리의 지지를 받고 있는 좌파의 에제르 와이즈만 전공군참모총장(68)이 우파 후보인 도브 쉴란스키 전국회의장을 물리치고 무난히 당선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 불 총선 우파연합 압승/하원 1차투표서 40% 지지 획득

    ◎집권사회당 18% 득표 “참패”/86년∼88년 이어 「좌우동거」체제 등장 【파리=박강문특파원】 프랑스 유권자들은 21일 하원의원 5백77명을 선출하는 총선 1차 투표에서 그동안 여러 스캔들에 이어 높은 실업률등 경제적 실책을 되풀이해 온 집권 사회당에 굴욕적인 참패를 안겨주었다. 이로써 프랑스에는 지난 86∼88년에 이어 사회당의 미테랑대통령과 우파 내각이 권력을 배분하는 「좌우동거」정부가 재등장하게 됐다. 3천7백만명의 유권자 가운데 약 68%가 참가한 1차 투표에서는 우파연합 프랑스동맹(UPE)을 결성한 공화국연합(RPR)과 프랑스민주동맹(UDF)이 약 40%의 지지를 얻었다. 반면 집권 사회당은 17∼18%만을 얻는데 그친 것으로 22일 상오(한국시간 하오)현재 내무부 공식집계 결과 밝혀졌다. 또 1차 투표에서는 우파연합 후보 77명이 각각 과반수 득표에 성공,당선이 확정됐으나 사회당은 단 한명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프랑스는 1차 투표에서 50% 이상의 득표로 당선자가 나오지 않은 선거구에서 오는 28일 2차 결선 투표를 실시하게 된다.정치분석가들은 1차 투표의 지지율을 근거로 볼 때 결선투표가 끝난 뒤 RPR와 UDF의 우파연합이 전체 의석의 5분의 4에 해당하는 약 4백60석을 차지하는 반면 사회당의 의석은 현재의 2백73석에서 80석으로 감소,이번 세기 들어 프랑스 의회가 가장 보수적인 성격을 띠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88년 총선에서는 사회당이 2백75석,RPR가 1백30석,UDF가 90석,나머지는 중도연합·국민전선 및 공산당등이 차지했었다. ◎장기집권 자퐈 궤멸위기/사회당 현의석수 70% 감소 확실시(해설) 21일 프랑스 총선거1차투표결과를 프랑스 언론들은 「우파 해일」과 「좌파 궤멸」로 표현했다.충분히 예고된 것이었으나 정작 그 해일에 떠밀려 버리자 집권 사회당의 지도층은 심한 낭패감을 금하지 못하면서 28일의 2차투표에 가느다란 희망을 걸고 있다. 이날 유효표의 과반수를 얻어 당선이 확정된 입후보자는 78명으로 76명이 우파 연합(UDF­RPR)소속이고 2명은 우파의 분리출마자들이다. 집권 사회당은 1차투표에서 단 1명의 당선확정자를 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현직농업장관 미셸 사팽은 12.5%로 득표하지 못해 낙선하고 말았다.전총리인 미셸 로카르를 비롯하여 롤랑 뒤마,리오넬 조스팽 등 거물도 낙선이 확실시되고 당수 로랑 파비위스조차 「불확실」로 분류돼 실로 참담한 모습들이다. 사회당의 참패요인은 경제 침체와 실업률의 증가,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 등이다.특히 주요지지기반인 노동자와 젊은이들이 사회당에 등을 돌렸다.선거전략면에서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의 프랑스민주동맹(UDF)과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의 공화국연합(RPR)이 연합하여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반면,사회당은 환경정당이나 공산당등과 함께 범좌파 결집에 실패했다. 사회당은 오는 28일의 2차투표에서 「회복」을 바라고 있지만 그 전망은 매우 흐리다.여론조사기구들은 사회당이 57∼67석을 얻는 것에 그칠 것으로 보고있다.선거전 2백67석(전의석의 46%)에서 무려 2백석을 잃게 되는 것이다. 사회당의 로랑 파비위스 당수는 『2차투표에 모든 것이 달렸다』면서 『모든 좌파·환경주의자·진보파들이 우파에 맞서 투표해줄 것』을 호소했다. 사회당의 연합 제의를 거부한 환경정당들도 우파 급류에 함께 침몰했다.89년 지방선거에서 10%의 지지를 얻으면서 급부상,92년 지방선거에서 14%까지 지지도를 높였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7.9%로 지지율이 하락했다.이는 경제 침체 때문에 「개발」보다는 환경보호를 외치는 정당이 외면당한 것이다. 26개의 의석을 가졌던 공산당은 9.4%의 지지를 얻었으나 의석이 20개 미만으로 줄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하게 되었고 국민전선은 12.8%의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의석은 잘해야 2석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미테랑의 “대외영향력 지키기”/불 대통령,러시아방문 의미

    ◎“총선이후의 동거정부” 정치구도 염두/러정국 불안 느끼는 미 등에 건재 과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이 16일 모스크바를 전격 방문,보리스 옐친러시아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대외과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테랑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국내 정치에서 궁지에 몰려있는 옐친대통령에게 서방측의 지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오는 21일 실시될 국회의원 총선에서 집권 사회당의 참패를 눈앞에 두고 있는 미테랑으로서는 꽤나 「여유」를 보인 셈이다. 현재 2백70석의 국회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미테랑대통령의 사회당은 총선이 끝나면 80여석의 제3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이에 반해 우파야당연합은 2백55석에서 4백50여석으로 늘어나 내각을 장악하게 될 전망이다.즉 좌파대통령에 우파내각이 들어서는 제2의 「코아비타시옹」(동거정부)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맞아 지금 사회당에서는 총선뒤 군소정당들과 대거 연합해 새로운 중도좌파연합을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이는 곧 미테랑대통령의 사회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 주장이다.대통령임기를 2년이나 남겨놓고 있는 미테랑에게 총선뒤 물러가라는 소리까지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국내정치상황에서 미테랑은 총선뒤에 그려질 국내정치구도를 염두에 두고 러시아행을 택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즉 불가피하게 내각을 현재의 우파야당에게 넘겨줄 지라도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대외적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계속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정국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나라에 프랑스의 외교력을 한껏 펴보이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러시아 정국이 뒷짐지고 볼만큼 낙관적이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임도 물론이다. 이번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직접적이고도 조속한 경제지원방안이 마련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다만 러시아에 대한 경제지원문제는 국제적으로 한층 활발하게 논의하도록 하는 계기는 될 것 같다.오는 7월로 예정된 서방선진7개국정상회담도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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