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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68세대 “새 정치 실험”

    유럽에 새 물결이 일고 있다. 60∼70년대 반 체제운동을 주도했던 ‘68세대’가 성숙한 정치인으로 변신,유럽 정치무대를 주름잡고 있다. 젊은시절 유럽의 정신 세계를 압박하고 있던 권위주의에 도전했던 이들은 이제 금리인하,고용창출,공공지출 확대를 통한 성장추구 등을 내세우며 기존 정책들을 뒤엎고 있다. 젊은 혈기 탓에 ‘실패한 혁명’을 맛보아야 했던 이들의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68세대’의 주체와 성격,미래를 진단해본다. ◎혁명은 지금도 진행중/30년전 佛서 깃발 올린 개혁성향 좌파/佛·獨·英·伊서 집권… 변신에 관심 집중 유럽의 ‘68혁명’ 세대들이 정치무대에 전면 포진,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기성 질서의 저항세력으로 대별됐던 좌파적 색채의 68세대는 30여년이 지난 지금 성숙한 정치인으로 변신,유럽을 차례로 점령하면서 ‘실패로 끝난 혁명’의 뒤늦은 완성을 추구하고 있다. 68혁명의 진원지 프랑스에서는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를 우선 꼽을수 있다. 68시위가 발발하자 외무부 관리였던 그는 이에 동조하여 대학 강단으로 되돌아갔으며 이후 사회당에 입당,정치인으로 나섰다. 죠스팽 내각의 장클로드 게소 교통주택장관 등 공산당 소속 4명의 관료는 시위 당시 핵심적 역할을 했다. 68세대의 강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국가는 독일·대다수 각료들이 68세대다. 세계 최초의 환경정당으로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은 전적으로 ‘68세대’가 만든 정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사민당 총재인 오스카 라퐁텐 재무,요슈카 피셔 외무,오토 실리 내무,위르겐 트리틴 환경장관 등이 선두주자. 특히 슈뢰더와 실리는 역시 68세대들이었던 독일 적군파들의 변호사를 자임했다. 프랑스로 넘어가 68시위를 주도했던 다니엘 콘 밴디트는 현재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중이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 재무,로빈 쿡 외무,잭 스트로 내무,피터 멘델슨 무역장관 등도 68세대의 기수들. 브라운은 68년 당시 글래스고대학 급진학생노조 회장이었고 스트로는 전국학생연맹 의장이었다. 제3의 길을 주창한 토니 블레어 총리도 같은 범주에 든다. 좌익 민주당 소속의 마시모 달레마 이탈리아 총리도 60년대 말 좌익 청년시위를 주도했던 골수 사회주의자로 올리비에로 딜리베르토 법무장관과 함께 이탈리아 68세대를 대표한다. ◎좌파정권 정책과 전망/고용확대·성장추구·복지강화 초점/금리인하·정부지출 확대 불가피… 이전 정책과 상충/각국사정 복잡·다양… 정책 협조·성공에 부정적 시각 유럽연합(EU) 좌파정권들은 고용창출과 공공지출 확대를 통한 성장추구,복지정책 강화 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전의 우파정권들이 내년 1월1일 출범 예정인 유로화(유럽단일통화) 도입을 위해 펴온 공공부채 및 재정적자 감축정책 등 기존 정책들과는 상충되는 점이 많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경기부양과 실업자를 축소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공공지출을 늘려 나가겠다고 종전 정책를 뒤집었다. 마시모 달레마 이탈리아 총리도 경기회복을 위해 재정적자 확대를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열린 EU 정상회담에서 각국 지도자들이 주장한 금리인하는 종전 정책을 기본부터흔들었다. 과거 우파정권들은 강한 유로화를 위해 현금리 고수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이들의 새로운 정책이 착근에 성공할 지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국 지도자들의 입지강화를 위해 자국민용 정치적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뒤젠베르크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EU 지도자들의 발언은 금융정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그동안 활성화된 유럽의 자유시장경제제도와 각국의 다양한 국내 사정도 이들 연대의 실현 가능성에 회의를 던지게 한다. 우선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각국 입장의 교통정리가 급선무다. 그러나 모두 고만고만해 서로가 어느누구도 교통경찰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68세대는 ‘또다른 실패’를 맛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68세대의 정의와 변천/68년 佛 학생·반체제운동 주도/기성세대 거부 유럽·美 젊은층 지난 68년 5월 프랑스 학생운동과 6월의 반체제운동을 주도한 대학생과 젊은층,이들에 동조해 시위를 벌이거나 청년문화를 이끌어갔던 당시 유럽과 미국 등지의 20∼30대를 68세대라 일컫는다. 전후 경제적 풍요 속에서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권위주의를 거부하며 체제에 도전,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의 청년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프랑스는 2차대전의 폐허에서 완전히 재기,경제적으로는 사상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완고한 권위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미니스커트가 유행했지만 교회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보수화된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 집단이었던 셈이다. 운동권 학생은 물론 노동자,지식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학생조직으로는 ‘프랑스학생연합(UNEF)’‘3·22운동’ 등이,노동자단체에서는 ‘프랑스 노동총동맹(CGT)’‘프랑스민주노조연맹’‘프랑스 교원노조(FEN)’가 그리고 정치단체로는 베트남위원회 등이 참여했다. 이념적으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를 비롯해 트로츠키주의자,마오저뚱주의자,체게바라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세력이 뛰어들었으나 내부적 통일성은 없었다. 이후 변질 과정을 겪게 되지만 오늘날의 생태주의,여성 권리와 남녀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모색하는 페미니즘,반전·반핵운동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면서 범사회적 저항운동과 문화운동의 기수가 됐다. ◎68세대 탄생 당시 주요 사건 ▲62년 2월8일=프랑스 우익 폭탄테러 발생.시위대 8명 사망 ▲63년 11월22일=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 ▲64년 8월7일=미군 통킹만 보복공습 ▲65년 4월17일=미 대학생 1만5,000명 백악관 앞에서 반전시위 ▲66년 4월=마오저뚱(毛澤東)문화혁명 시작 ▲66년 11월=미니스커트 돌풍 ▲67년 7월27일=미 주요 도시 최악의 인종폭동 ▲68년 4월4일=마틴 루터 킹 피격 사망 ▲68년 5월30일=프랑스 총파업 ▲68년 8월22일=소련,체코 프라하 침공 ▲69년 4월28일=드골 프랑스 대통령 사임 ▲69년 11월15일=워싱턴서 25만명 반전시위 ◎70년대 신좌파와의 차이/70년대,공산주의와는 다른 진보적 반체제 운동/90년대,노동자 권익보호 등 정치정책노선 치중 68세대가 주도한 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의 ‘신좌파’(New left)운동은 반체제운동이었다. ‘진보’를 뜻하는 좌파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당시 모든 인습과 제도에 저항했다. 그러나 권력 장악이 목표였던 정치적 좌파(구 좌파),즉 공산주의 노선과는 다른 다분히 이념적·이상적인 것이었다. 신좌파운동의 대표격인 68년 프랑스 5월운동은 드골 정부의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를 배격해 일어났고 미국의 학생민권평화운동은 베트남전으로 드러난 추악한 자본주의체제 지배세력에 대한 저항. ‘프라하의 봄’으로 상징되는 체코 반체제운동은 소련 동유럽의 전통적 좌파가 대상이었다. 반면 90년대 말부터 유럽을 강타하고 있는 새 조류는 30년이 흐른 지금 주역은 그대로지만 ‘새로운 신좌파(New New left)’로 불릴 만큼 노선엔 차이가 있다. ‘좌파 정당’들의 새로운 ‘정치정책노선’으로 70년대 이후 환경·여성·반핵·지역자치운동의 신사회운동으로 계승된 기존의 신 좌파운동과는 대별된다. ‘개량적 좌파정책’,‘중도좌파’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자본주의 장점을 취하면서 직업교육 의료혜택,연금제도 등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을보호하겠다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제3의 길’이 대표적 예다.
  • 문화관광위/國監 하이라이트

    ◎與 “崔 교수 사상논쟁 토론회 갖자”/월간조선 이념논쟁 도마에 “사회적 선정주의 본질 흐려”/야 “언론중재위가 나서야” 3일 언론중재위원회와 한국방송광고공사,한국언론회관 등을 감사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서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고려대 교수를 향한 월간조선의 이념논쟁 공세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정치학 교수 출신인 국민회의 吉昇欽 의원은 언론중재위 국감에서 “崔교수를 지지하는 전문가들과 월간조선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을 동수로 구성해 토론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하고 “토론회에서 합의점이 나올 수 있다면,우리나라의 이념 대립이나 사상 대립에 큰 공헌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吉의원은 또 “崔교수와 관련된 이념논쟁이 빚어진 것은 인사청문회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므로,언론기관이 검증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제,“그러나 그가 월간조선에 그려진 것처럼 사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吉의원은 “崔교수가 사귀는 사람들도 보수진영이 대부분이고 6·25 등에 대해 우파,좌파의시각을 넘어 객관적으로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의 辛基南 의원도 “이번 사건은 강한 세력과 약한 개인이 맞섰고, 사회적 선정주의가 사안의 본질을 흐리기 쉽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을 연상케 한다”면서 “역사적 결단이라는 표현만 갖고 崔교수가 6·25를 미화했다거나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무리한 주장으로서 어떤 의도가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자민련의 鄭相九 의원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崔교수의 언론중재 신청이 있으면 신중히 심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나라당 朴成範 의원도 “법원에 맡길 것이 아니라 언론중재위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獨·英 각료급 협의체 구성/슈뢰더·블레어 회담

    ◎‘제3의 길’ 정책협력 합의 【런던 AP DPA 연합】 독일과 영국은 2일 전세계 경제위기에 대처하고 유럽의 미래를 이끌어 가기 위해 ‘제3의 길’로 불리는 중도좌파적 정책목표 달성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영국을 방문중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총리와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는 이날 정상회담을 마친 뒤 양국의 공통적인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각료급 상설 협의체를 구성,정기적으로 양국간 협력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슈뢰더 총리도 취임 후 첫 해외방문지로 영국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하고 “사회 정의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현대 경제를 이끌어가느냐가 중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양국 정상은 또 세계 금융위기 대처방안을 논의했으며 양국 모두 금리 문제에 관해 중앙은행에 압력을 가하거나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獨 슈뢰더내각 공식 출범/좌파성향 유럽통합 새 외교정책 시사

    ◎티어제 동독 출신 첫 하원의장에 선출 【베를린=南玎鎬 특파원】 독일의 새 정부가 27일 공식 출범했다.사민당(SPD)과 녹색당은 이날 하원(분데스탁)에서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총리로 선출했다. 16년 16일간 집권한 정치 거목 헬무트 콜 총리의 퇴장과 동시에 이루어진 슈뢰더 총리 시대의 시작은 유럽내 보수주의가 사라짐을 예고하는 것이고 유럽통합의 진로에 좌파 성향이 지배할 것임을 시사한다. 또 유럽 통합에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경제력에 걸맞은 위상 재정립을 추구해온 독일은 신정부 출범에 때맞춰 거리낌없는 외교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전후 세대인 슈뢰더는 당초 예측대로 최근에 있었던 프랑스의 제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행사 초대를 거부해 새로운 대외정책이 뒤따를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한편 하원은 이날 볼프강 티어제 사민당 부총재(55)를 동독 출신으론 처음으로 신임 하원의장에 선출했다.8년간의 통합노력에도 심리적 골을 남겨두고 있는 동서독 통일의 완결 작업에 슈뢰더 정부가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둘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유럽‘제3의 길’로 들어섰다/EU 13개 회원국 신좌파정권 탄생

    ◎사회적책임 확대한 정책 추진 합의 유럽이 이른바 ‘제3의 길’로 들어섰다.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중 13개국이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성격의 정권이 들어서며 대세를 이루고 있다. 25일 폐막된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결정된 ‘유럽의 정책’들을 들여다보면 쉽게 감지된다.갖가지 정책들이 시장경제원리를 바탕으로 깔고 있되 사회적책임 확대를 접목시키고 있다. 유럽 정상들은 금리인하를 촉구하면서 고용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정책으로 전환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는 점을 강조했다.실업률 감소로 대변되는 사회적책임을 강조한 부분이다. 정상들은 또 이번 회의를 계기로 정책상의 공통분모를 넓히되 기조를 사회연대를 통한 복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설정키로 했다. 마거릿 대처식의 ‘신자유주의’ 물결이 득세했던 80년대 유럽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유럽 경제의 중심인 독일을 16년간 이끈 우파의 헬무트 콜 총리가 퇴진하면서 유럽의 ‘제3의 길’에 탄력이 붙었다. 독일이 유럽연합의 의장국이 되는 내년이면 유럽의 변화는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날 것 같다.
  • 또 색깔론 인가(사설)

    최근 발간된 ‘월간 조선’ 11월호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교수의 해방전후 인식과 6·25전쟁관을 문제삼고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월간 조선은 ‘崔章集 위원장의 충격적 한국전쟁관’이라는 기사에서,崔교수가 ‘좌파는 혁명적,우파는 반혁명적’ ‘6·25 최대희생자는 북한민중’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며 그의 사상에 의혹을 제기했다.崔교수는 이에 대해 “논문의 어휘와 문장을 의도적으로 문맥과 분리하여 인용함으로써 사상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모해(謀害)하고 있다”고 반박했다.월간 조선측이 ‘제2의 건국’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했으면서도 정작 질문은 崔교수 저작물의 논점을 집요하게 문제삼았다는 것이다. ‘논평은 자유로되,사실은 신성하다’는 게 언론의 대원칙이다.그래서 우리는 월간 조선의 보도태도에서 언론활동을 넘어선 정치공세의 느낌을 받는다.어떤 목적을 갖고 몇개의 단어를 추려내어 ‘끼워 맞추기식’으로 왜곡해서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은 ‘사실 입각’이라는 언론의 규범에 어긋나기 때문이다.월간 조선의주장들이 사실이라면 崔교수는 국가보안법에 걸려 감옥에 가도 몇번은 갔을 것이다.따라서 문제를 삼은 일부 표현도 객관적이고 학문적으로 해석을 해야지 극우 냉전적 시각에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한나라당도 즉각 崔교수를 공격하고 나섰다.安商守 대변인은 “崔교수의 6·25관은 우리의 이념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면서 위원장직의 해임을 요구했다.한나라당은 또 崔교수 저서의 요지가 대한민국의 건국 자체를 부인하고 있어 ‘제2건국’을 위한 정지작업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고,당 부설 연구소에서 崔교수의 각종 저술을 정밀검토하도록 했다.정부가 崔교수의 사상과 이데올로기에 이끌려 간다면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崔章集 교수는 이론과 실천면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정치학자다.그럼에도 그에게 집중되는 색깔론 공세를 보며 우리는 金泳三정부 초기 극우 보수세력이 韓完相 당시 통일부총리와 金正男 교문수석을 공격했던 일을 떠올리게 된다.보수세력의 일제공격에 밀려 두 사람이 퇴진한뒤부터 金泳三정부의 개혁정책이 좌초하기 시작했으며,특히 대북정책에서 갈팡질팡하는 계기가 됐다.이번에도 극우 보수 반개혁세력은 崔교수를 표적삼아 공격함으로써 金大中정부의 정체성에 ‘색깔’을 덧씌우려 하고 있다.그러므로 정부는 반개혁세력의 공세에 밀리지 말고 소신있게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개혁에 실패하면 우리나라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 獨 외무 피셔·伊 총리 딜레마/거리의 투사서 유럽정치권 核으로

    ◎피셔­고교 중퇴… 녹색당의 간판스타/딜레마­공산주의 이념 몸에 밴 독설가 거리의 혁명 전사 두 사람이 유럽 정치권의 핵으로 변신했다. 19일 독일 외무장관에 내정된 녹색당 하원 원내의장 요시카 피셔(50)와 로마노 프로디를 이어 이탈리아의 새 총리로 지명된 마시모 달레마 좌익민주당 당수(49).두 사람은 모두 이념이 주도하던 시절 극좌파 투쟁가로 활동한 전력의 소유자.두드러진 공통점은 자신들이 속한 당을 시대에 맞게 탈바꿈시켜 권력 중심무대에 옮겨놓았다는 점이다. ▷요시카 피셔◁ 세계 최초의 실험적 환경정당인 녹색당의 간판스타이자 3선 의원이다.학력은 고등학교 중퇴가 전부로 노동자시절 대학의 철학강좌를 도강했을 뿐이다. 60∼70년대 택시기사,노동자,서적 외판원 등을 전전하며 지하에서 무정부주의 극좌 혁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60년대 말 베트남전 반대 시위로 구속됐다.“폭력은 이념과 남자다움의 혼합체였다”고 회고. 81년 신생 녹색당에 입당,연방의원과 헤센주의 환경장관 등을 지냈다.3차례 결혼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마시모 달레마◁ 공산주의 이념과 비밀정치가 몸에 밴 2선 의원.13살때 공산당 의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공산당 대회에서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자 토글리아티에게 꽃다발을 증정하기도 했다. 만년 야당 신세이던 공산당의 이름을 베를린 장벽 붕괴후 좌익민주당으로 바꾸고 자유시장경제 이념을 수용했다. 무뚝뚝하고 독설을 내뱉는 스타일.피사대학 철학과 출신으로 60년대 말 가두시위의 단골 참석자.75년 공산주의청년동맹 책임자로 이름을 내기 시작,86년 당 서기국원,94년 당수직에 올랐다.
  • 피노체트는 누구/73년 유혈쿠데타로 집권… 17년 철권통치

    ◎반대파 무자비한 탄압… 4,309명 사망·실종 【산티아고(칠레) 외신 종합】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73년부터 90년까지 칠레를 철권 통치한 독재자. 1915년 칠레의 항구 도시인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나 18세 때에 사관학교에 들어가 지정학을 공부했다. 73년 당시 아옌데 대통령에 의해 군 총사령관에 임명됐고 그후 한달만에 유혈 쿠데타로 아옌데 대통령을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88년 집권 연장을 묻는 국민투표가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자 마지못해 다음해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으나 파트리시오 아일윈 후보가 당선되는 바람에 90년 3월12일 퇴임했다. 그러나 재임중에 개정했던 헌법에 따라 면책특권이 부여된 종신직 상원 의원에 취임하는 등 퇴임 후도 미리 대비를 해놓는 치밀함을 보였다. 피노체트는 칠레식 독재 모델로 경제성장을 달성해 부유층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경제건설과 공산주의로부터 칠레를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좌파 등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해 악명을 떨쳤다. 관계 보고서에 따르면 그의 집권기간에 3,197명의정적들이 살해됐고 보안군에 의해 체포 구금됐다 실종된 사람도 1,102명에 달했다. 또 수십만명이 체포,고문당하거나 외국에 망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제3의 길/張淸洙 논설위원(外言內言)

    ‘제3의 길’을 주창하여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는 영국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앤터니 기든스 교수가 11일 한국을 찾았다.영국의 자존심으로까지 불리는 기든스 교수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21세기를 향한 개혁 이념으로 내건 ‘제3의 길’의 이론적 지주다. 기든스 교수의 사상세계의 핵심인 ‘제3의 길’은 한마디로 기존의 좌파이념과 시장경제의 장점을 접목한 새로운 실용주의적 중도 좌파노선을 지향하는 정치이념이다.특히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좌파 이데올로기는 위기에 봉착했고 우파 자본주의 역시 불평등이라는 치명적인 한계를 노출하고 있기 때문에 좌우의 이념을 초월하는 실용주의적 중도 좌파노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든스 교수의 ‘제3의 길’은 21세기를 주도할 새로운 정치이념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독일 총선에서 ‘제3의 길’을 핵심슬로건으로 내걸었던 사민당의 슈뢰더가 승리함으로써 21세기 정치·경제 이데올로기의 대안으로 더욱 무게를 싣고 있다. 탈냉전과 함께 세계적으로 나타난 빈부격차,사회적 차별,개인주의화,각종 범죄 증가,가족파괴,환경오염,민주주의에 대한 근본개혁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20세기의 실패한 좌우 이데올로기로부터 혁명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최근 우리 대학가에서도 ‘제3의 길’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제3의 길’은 급진적 보수주의와 보수화된 사회주의를 거부하고 공동체적 동반자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적 자본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통일국가의 정치이념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는 주장들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특히 기든스 교수는 한국방문에서 ‘제3의 길’은 한국처럼 좌우대립을 겪어 온 국가에서는 의미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좌우대립은 물론 지역대립에 시달려온 한국인들에게 이 모든 갈등을 뛰어넘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제3의 길’은 한국에서 지역갈등 해소의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金大中 대통령이 좌우의 구분을 뛰어넘는 명제를 국민에게 제시한 점이 이같은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고 했다.‘제3의 길’이 21세기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을 할지 여부는 예측하기 어렵다.그러나 기든스 교수가 한국을 다녀간 후 ‘제3의 길’의 여진은 오래 남을 것으로 본다.
  • 伊 프로디 내각 총사퇴/정부 불신임안 1표차로 하원 통과

    【로마 AFP 연합】 오스카 루이지 스칼파로 이탈리아 대통령은 9일 의회의 불신임을 받은 로마노 프로디 총리의 사표를 수리하고 그에게 과도정부를 구성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앞서 이날 이탈리아 하원은 프로디 총리가 이끌던 중도좌파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313,반대 312의 단 1표차로 통과시켰다. 2차 대전 이후 두번째 최장기 집권기록을 세운 프로디 내각은 지난주 강경파 공산당 의원들이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불만으로 프로디 내각에 대한 지지를 철회,취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었다.
  • 독일 슈뢰더의 집권(사설)

    독일 총선에서 중도좌파 정당인 사민당이 16년만에 집권에 성공,총리가 확실시 되는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독일 통일을 이루고 유럽 통합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온 기민당의 헬무트 콜총리가 패배의 쓴 잔을 마신 것은, 독일 국민들이 콜총리의 16년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낀데다 집권 기민당이 통일의 후유증인 실업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에 반해,슈뢰더가 이끄는 사민당은 경제활성화와 사회정의를 공약으로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다. 단독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사민당은 녹색당과 좌파연정을 협의하고 있는데,녹색당은 원자력발전과 북대서양조약기구 문제등에서 과격한 주장을 하고 있다.사민당이 녹색당과 정책적 조화를 어떻게 이뤄갈 지 주목된다.10%선에 이르는 실업문제만 해도 슈뢰더가 집권 제일성으로 ‘실업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심각하다.그럼에도 경제활성화과 노사정 합의를 통해 실업을 극복하겠다는 프로그램과 복지확대 정책은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독일 사민당의 집권은 독일 국내정치뿐 아니라 유럽 정치,나아가 세계 정치에서도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사민당의 집권으로 유럽연합(EU)15개국 가운데 절대다수 국가에 중도좌파 정권이 들어섰다.지난 3년동안에 일어난 이같은 엄청난 변화는,동서냉전 시대의 유제(遺制)인 우파정권으로서는 새로운 세기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유럽인들의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또 하나 주목할 점은 슈뢰더가 내세우고 있는 정치철학 혹은 거대 담론의 실험이다.새로운 사회주의 또는 ‘제3의 길’로 표현되는 이 담론은,경쟁과 이윤을 최고가치로 하는 극단적 자본주의도,시장과 사회를 철저히 통제하는 극좌적 사회주의도 결국은 인류의 행복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역사적 반성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지양적 융합’이라는 이 담론의 타당성 여부는 아직 실천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다.그럼에도 영국의 블레어 총리,프랑스의 조스팽 총리,이탈리아의 프로디 총리등 젊은 중도좌파 정치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된 슈뢰더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이뤄낼 지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결과물을 검토하기 앞서 실험과정 자체만으로도 세계사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독일 사민당의 집권으로 한·독 관계에 당장 큰 변화는 없겠지만,슈뢰더의 지향점을 주시해서 우리의 대외정책이나 통일정책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 英·佛 “獨逸을 짝궁으로 잡아라” 경쟁/유럽 역학구도 변화 조짐

    ◎英­친분 이용 3국 연대 거론 등 ‘구애 손짓’/佛­위기감속 獨 총리 유럽국가중 첫 초청 요즘 유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을 먼저 짝궁으로 삼기 위해 필사적이다.독일의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유럽의 헤게모니 구도에 틈이 보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흐름을 먼저 눈치챈 것은 영국.프랑스와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던 헬무트 콜 총리 정부가 퇴진하자 영국이 재빨리 틈새를 파고 들었다. 유럽은 누가 뭐래도 영국과 프랑스,독일의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인다고 분석된다.황금의 삼각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만약 셋중 둘이 조금이라도 가깝다면 유럽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유럽의 현실. 영국이 게하르트 슈뢰더 차기 독일 총리라면 콜 총리의 지원아래 독주해온 프랑스를 제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더구나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슈뢰더와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터.명분으로 영·독·불 중도좌파정권 동맹을 내걸었다. 블레어 총리는 슈뢰더의 승리가 확정되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각국 지도자들 중 가장 먼저 축하전화를 걸었다.그리고 세나라 중도좌파 정부가 공조하는 ‘3자연대’을 거론하며 독일에 구애의 화살을 쐈다. 로빈 쿡 외무장관은 보다 노골적이었다.슈뢰더는 과거 독일과 프랑스의 밀월관계를 떠받쳐온 축에 해당되지 않는 신세대 인물이기 때문에 영국에 보다 우호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애써 감추지 않는다. 영국은 ‘유럽의 삼각구도’에서 물론 프랑스를 밀어낼 생각은 없다고 했지만 프랑스로서는 불안하기만 할 것이다“자신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보다(토니 블레어의)신 노동당에 가깝다”는 슈뢰더의 영국에 대한 화답은 프랑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국가에선 처음으로 슈뢰더를 초청했다. 영국과 독일의 움직임에서 비롯됐다.정치적으로 대처식 자유시장 경제를 고수하는 블레어보다는 리오넬 조스팽의 전통적 사회주의쪽에 가깝다는 게 프랑스로서는 유리하다. 결국 열쇠는 독일의 슈뢰더가 쥐고 있는 상황이다.패전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유럽의 중심축이 되어 보겠다는 게 전통적인 독일의 외교 전략.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등거리 전략을 구사해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 사민당 웃지만… 赤·綠 연정 산넘어 산/슈뢰더의 독일시대

    ◎지도부 시큰둥… 녹색당 정책과 마찰/기민·기사당과 大聯政은 “공약 위반”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사민당(SPD)이 마냥 좋기만 한 게 아니다.정권을 단독으로 인수할 수 있는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해법은 다른 정당과 연합하는 방안. 우선 떠오는 상대는 녹색당.사민당은 선거전에서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하겠다”고 공언해왔다.더구나 녹색당은 선전하면서 사민당과 손을 잡으면 연방 하원에서 의석이 과반수를 넘는다. 그러나 막상 선거결과가 나오자 사민당 지도부는 녹색당과의 연정 구성에 시큰둥하다.한마디로 손을 잡는데 걸림돌이 있다는 얘기다. 녹색당은 특히 △휘발유값 3배 인상 △북대서양 조약기구 해체 △원자력발전소의 ‘즉각’ 폐쇄 △일부 마약의 합법화 등 사민당이 수용할 수 없는 정책들을 고집해 왔다.슈뢰더는 수차례에 걸쳐 녹색당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촉구했었다. 사민당이 택할 수있는 다른 카드는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대(大)연정’을 구성하는 길.이같은 기미를 알아채기라도 한듯 기민당과 기사당 지도부는 ‘연정 협상의 문은 닫혀있지 않다’면서 ‘사민당이 먼저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라고 흘리고 있다. 그러나 걸림돌은 있다.유권자와의 약속 위반이라는 정치 도의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사민당은 선거운동을 하면서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과 ‘대연정’을 구성하는 사태가 일어 나지 않도록 구 동독 공산당 후신인 민사당(PDS)의 의회 진출을 막아달라고 호소했었다. 또 있다.기민당의 자매 정당인 기사당이 ‘대연정’에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기민당이 사민당과 손을 잡기 위해서는 기사당과의 협력관계를 포기해야 하지만 2차 대전후 50년동안 운명을 함께 해온 터이고 보면 ‘대연정’의 길도 험난하기만 하다. ◎슈뢰더의 정책방향/복지·외교 등 ‘강한 독일 만들기’ 펼듯 게하르트 슈뢰더 정부는 대내적으로는 중·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유럽과 미국 등 서방 진영과 동반자 관계수립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신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뭐니뭐니해도 400만명에이르는 실업자 군단을 감축하는 작업.기민당은 이미 선거전에서 10.3%의 높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 법인세 인하와 임금 부대비용 삭감 등 기업의 투자환경을 개선해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목청을 높여왔다.공급위주의 해결책이다. 반면 사민당의 슈뢰더는 일자리 공유를 해법으로 제시해 왔다.주당 35∼38시간의 근로시간을 30시간까지 단축해서 일자리를 나눠갖자는 것이다.고용확대를 위해 노·사·정(勞社政) 3자 연대 가능성이 관심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富)와 사회정의의 조화를 강조해온 슈뢰더는 또 중·저소득층에 유리한 세제개혁을 단행할 것같다.소득세의 최고와 최저세율을 각각 4%포인트씩 낮추고 법인세율은 47%에서 단계적으로 35%로 내리겠다고 밝혔다. 저소득층의 복지를 염두에 두는 방안이다.선거기간 최저 및 최고 소득세율을 11.9∼14%포인트,법인세는 빠른 시일안에 35%로 내리자는 세제개혁안을 제시했었던 기민당의 정책과 쉽게 대비된다. 군사 및 외교 정책에서는 독일의 입지를 굳힐 게 확실시된다.유럽과 미국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협력하는 ‘대서양주의’를 출발선으로 삼을 것이다.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의 유럽과 미국의 관계 재정립을 모색할 게 분명하다. 유럽내에서도 친 프랑스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영국과의 양자 연대나 영국 및 프랑스와의 3자연대를 모색해 제 색깔을 내려할 것이다.특히 내년은 독일이 유럽연합(EU) 의장국이 되는 해인 만큼 EU 고용창출협정 체결 등을 통해 외교역량을 한껏 과시하려 들 것으로 전망된다. ◎슈뢰더는 누구/‘독일의 블레어’… 상점견습생서 21세기 리더로 독일의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는 게하르트 슈뢰더(54)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과격한 마르크스주의자를 거쳐 독일 정계의 신세대 정치인으로 떠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1944년 나치병사였던 부친의 유복자로 태어나 편모 슬하에서 다른 4형제와 가난하게 자랐다.17세 때 상점 견습생이 되었으나 야간학교를 다니며 대입자격시험에 합격,명문 괴팅겐 대학 법과에 입학.76년에 변호사가 되었다. 야간학교 재학중이던 63년 사민당에 가입했고 정열적인 활동력과 정연한 논리,탁월한 언변으로 78년 사민당청년조직인 ‘젊은 사회주의자’(유조스)의 의장에 선출됐다. 80년에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래 86년 니더작센 주의회 사민당 원내의장,90년 주총리 등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 들면서 편향된 이념에서 벗어나 사민당의 온건파 지도자로 부상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뛰어난 용모와 화술 등 탤런트적 이미지로‘신(新) 중도’‘제3의 길’을 역설해 변화를 원하는 독일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성편력도 화려해 지난해 9월 세번째 부인과 이혼한 뒤 20세 연하의 기자 출신 도리스 쾨프(33)와 네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녹색당의 피셔/세계 첫 환경정당… 거리투사서 정계스타로 사민당의 연정 첫번째 상대로 꼽히는 녹색당은 70년대에 결성된 세계 최초의 환경정당.83년 총선에서 27석을 얻어 연방 하원에 진출한 제3당.통일후에는 옛 동독의 민주화운동 시민그룹 ‘동맹 90’과 통합하면서 급속히 세력을 넓혔고 94년 선거에서는 49석을 얻었다. 지지기반을 넓히기위해 대중적 이미지를 심으려는 온건파들과 당초의 정강을 고수하는 강경파들간의 알력이 있다.올초만해도 12∼13%에 달했던 지지율이 북대서양조약기구 해체 등을 요구하면서 선거 직전에는 5∼7%까지 떨어졌다. 녹색당을 이끄는 인물은 요시카 피셔 녹색당 하원 원내의장(50).환경정당을 정치의 중심무대로 끌어 올린 3선 의원.학력은 고교 중퇴가 전부. 60·70년대 무정부주의 운동을 하다가 70년대말 제도권으로 들어 왔다.극좌파가 나치만큼 비인간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자동차 공장 노동자,야간 택시기사 등으로 일하며 틈틈이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도강’했다.81년 녹색당에 입당했고 연방 의원과 헤센주 환경장관을 2차례 역임했다. ◎콜 16년 집권 마감/‘통독의 거인’ 역사속으로… 총선에서 패배해 물러나게 될 헬무트 콜 총리(68)는 독일 통일 달성과 함께 유럽 통합을 이끈 ‘유럽 정치계의 거인’이었다. 1930년 세무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15세때 2차대전 종전을 맞았다.프랑크푸르트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역사와 법률,정치학을 전공했으며 58년에는 문학박사가 됐다. 59년 라인란트 팔츠주(州)의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69년에는 주 총리,그리고 73년에는 기민당 총재로 선출됐다.82년 사민당·자민당 연정이 붕괴되면서 헬무트 슈미트 총리가 사퇴하자 전격 뒤를 이었다. 통일후 계속된 높은 실업과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싫증이 16년만에 총리에서 물러나게 했다.가족들의 외부노출을 극도로 꺼려했던 것으로도 유명했다.
  • 계간 ‘현대상사’ 특별호/‘한국 좌파의 목소리’ 담아

    ◎좌파지식인의 고민과 갈등/오늘의 한국사회 어떻게 볼까 현재의 한국 사회를 좌파 지식인은 어떻게 바라볼까. 계간 ‘현대사상’은 최근 발간한 특별증간호에서 ‘한국 좌파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좌파쪽 지식인들이 겪고 있거나 생각하는 고민과 갈등,문제점,과제 등을 담았다. 현대사상은 비록 좌파가 사회주의의 몰락 등으로 설자리를 잃고 있지만 좌파적 시각과 진단은 현재의 모순과 갈등을 치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기획의도를 소개했다. 정영태 인하대 교수는 ‘세기적 전환기와 진보세력의 과제’라는 기고문에서 “우리 기억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한 반민주적 인사들과 제도가 다시 부활하는가 하면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재벌사들이 계열사를 늘리고 경제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현정부와 진보적 지식인들을 싸잡아 비판했다. 정교수는 또 진보세력에게는 “그동안 외국에서 수입한 이론이나 사상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을 뿐 아니라,노선이나 정책적 입장에 따라 서로 비난하고 성과물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감정적대립을 서슴지 않았고,진보세력 내에서도 지배집단이 형성해온 연고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성구 한신대 교수도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 비판’이라는 글에서 “위기상황에서는 국가개입이 더욱 필요하다”며 시장논리를 바탕으로 한 구조조정 정책에 비판을 가했다. 김교수는 “대규모 기업도산과 은행도산,대량 실업을 대가로 한 창조적 파괴는 자본주의 국가가 감당할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것이며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시장경쟁의 매커니즘만으로 재생산을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지난 20년 동안 시장원리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국가의 경제 개입이 감소하지 않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은 기업과 금융에서의 독점화를 가져오고 국가와 독점자본간의 유착관계를 공고히 하며 공기업 매각조치도 국내 제조업에 대한 해외통제의 강화와 생산력의 대외종속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국가 또는 공공부문 확대와 국가에 대한 민주적 통제,재벌지배 체제의 해체와 사회화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종욱 국민대 교수는 ‘지식인의 무책임성에 대한 자기 반성과 제안’이라는 글에서 “IMF와 같은 국난을 예측하지 못한 사회과학도들의 무능과 무책임성은 한국 지식인 모두의 참담한 자화상”이라면서 “각종 언론매체에서 자신의 이론과 지식을 과시하던 수많은 지식인들의 미사여구는 결국 우리의 사회현상과 무관한 공허한 말잔치로 끝난 셈”이라고 반성했다. 또 좌파세력에 대해서는 “그동안 정통성이라는 미명하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건전한 비판조차 허용치 않는 독선을 주저하지 않았고 급기야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경도로 치달아 주체사상에 대한 무비판적 동조가 ‘진보적’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는 현상마저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한편 가을호와 겨울호 사이에 나온 이번 특별호에는 임지현 한양대 교수,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김명인 인천대 강사,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대표,김명환 성공회대 교수,이원영 도서출판 갈무리 편집인,손호철 서강대 교수,김재현 경남대교수,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가했다.
  • 獨 콜 총리 5연임 가능할까

    ◎최고 30% 뒤지던 사민당 슈뢰더에 3%차 추격/경제사정 좋아져 막판 대역전극 가능성 충분 27일로 다가온 독일 총선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16년간 집권해온 헬무트 콜 총리(67)의 다섯번째 연임 성공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여당인 콜의 기민련(CDU)연합은 독일의 경제적 풍요에 편승,장기 집권해왔지만 이번에는 형편이 다르다.국민들이 늙고 오래된 정권에 질려 있기 때문이다.야당인 사민당(SPD) 기세가 어느 때보다 등등하다. 사민당 총리후보 게르하르트 슈뢰더(53)는 패기 있는 이미지로 강한 독일을 내세우며 차별화에 성공했다.12%에 이르는 실업률,대폭 삭감된 연금 등 콜의 아픈 곳을 골라 공략하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콜을 눌러왔다. 콜이 보수 중산층의 안정 심리에 호소하고 있지만 슈뢰더도 중도 실용주의 수정 좌파 노선을 내세워 보수 중산층도 둘로 갈라졌다. 하지만 선거전이 진행될수록 슈뢰더가 말만 그럴싸할 뿐 구체적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콜이 맹추격을 하는 양상이다.올 초만 해도 슈뢰더의 SPD에 15∼30%까지 뒤지던 콜의 CDU연합은 8월 후반 이후 3∼4%차로 바짝 따라 붙었다. 콜의 행정 연륜과 나아지는 경제상황 등으로 미루어 저울추가 콜 쪽으로 급격히 기울 여지는 막판까지 남아 있는 셈이다.
  • 존 실버 총장(朴康文 코너)

    미국의 존 실버 박사는 윤리학자,법철학자,그리고 권위있는 칸트철학 연구자다. 미국 트리니티 대학교를 나와 예일 대학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일 대학교,텍사스 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고,71년 보스턴 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다른 대학 출신이 총장으로 왔다고 누구도 트집잡지 않았다. 96년까지 26년동안 보스턴 대학교 총장으로 있었는데,그가 너무 오래 그자리에 있다고 누구도 헐뜯지 않았다. 그는 총장직을 떠난 뒤 이사장이 되었으면서도 교수로서 전공분야의 강의를 맡고 있다. ○美 대학사회 통렬히 비난 그는 촘스키 같은 정치적으로 좌파적인 교수들을 맹공했다. 이는 진보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던 대학사회에서 인기가 없는 행동이었다.그가 총장직에 있으면서 89년 ‘직사’(直射)라는 책을 써서 미국사회와 미국 대학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다.누구도 이런 처신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도 별난 대학교 총장이었다. 그의 글은 직설적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좌충우돌로 자기 주장이나 비판을 폈다. 대학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이를 실천에 옮겼다. 총장직에 있는 동안 보스턴 대학교의 재정을 안정시키고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그는 교사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다. 교사를 양성하는 미국의 교육대학원들은 인기가 없어 지원자가 적어지자 합격기준을 자꾸 낮추었다. 이 때문에 우수한 학생은 교육에 뜻이 있어도 입학하려 들지 않았다. 실버총장은 보스턴 대학교 교육대학원의 합격기준을 놀랄 정도로 올려버렸다. 당연히 정원을 채울 수 없었다. 이런 엉뚱한 조치를 정부의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의 과감한 시도는 성공한다. 우수한 학생을 모은다는 소문이 나자 몇 해 지나지 않아 성적좋은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교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훌륭한 연구업적을 남기는 교수보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교수가 더 중요하다. 신입생들을 경험없는 조교들에게 내맡겨서는 안된다. 강의실은 비밀스런 종교의식이 거행되는 곳이 아니다. 강의는 공개되어 동료교수와 학생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가 지적한 교수사회의 병폐를 보자. 학장이나 총장이 의욕적으로 개혁하려 하면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교수들이 기어코 몰아낸다. 새로운 학문적 견해를 가진 젊은 교수에게 늙은 교수들이 자리를 주려 하지 않는다. 한번 전임이 되고 나면 나태해지는 교수들이 있다. 강의하거나 학생을 지도하기보다는 학교 밖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자문담당이 되기를 더 좋아하는 교수들이 많다. ○오른손 장애 딛고 성공 그곳도 교수사회는 한국과 비슷한 구석이 있구나 싶은데,그래도 실버박사 같은 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만은 크게 다른 것 같다.무엇보다도 정부가 대학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나는 실버박사가 총장일 때 그의 저서에 서명을 받으려고 하버드 대학교 앞 서점에서 만난 일이 있다. 그는 왼손으로 서명해준 뒤 또 왼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오른손은 없었다. 손 하나가 없다고 해서 대학교 총장직을 수행하는 데 아무런 지장은 없겠지만 그때 놀라움은 컸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오른손이 왜 없느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전쟁터에 나가서 다쳤다면 용사의 표상이다. 어려서부터 그랬다면 어려움을 극복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 러 정치권 합종연횡/주가노프­인기 1위… 옐친과 타협은 최후카드

    ◎야블린스키­이해득실 따지는 분위기로 돌아서/레베드­“일단 나라 구하고 보자” 대통령 지지 러시아 정치권의 합종연횡(合縱連衡)이 시작됐다. 러시아 국가두마(하원)가 7일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 서리에 대한 2차 총리 인준을 거부하고 옐친 대통령 탄핵 준비에 돌입,막판 힘겨루기에 들어가면서 정치권이 ‘세(勢)’읽기 및 손잡기에 들어선 것이다. 옐친과 대칭점에 선 사람은 주가노프 러시아 공산당수. 의회 내 최대 다수당이라는 사실을 이용,입지를 최대한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2주 동안 그의 인기는 1위로 뛰어올랐다. 그에게 있어 옐친과의 타협은 최후의 선택이다. 야블로코당 당수 야블린스키는 이제까진 주가노프와 함께 대 옐친 강경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점차 이해득실을 따지려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총리서리 2차 인준을 앞두고 주가노프가 농민당 등 의회 내 좌파세력을 규합,반 옐친·체르노미르딘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에도 그는 1차 인준 때와 달리 잠잠했다. 자유시장경제주의자인 그는 시장경제 복원을 내세우는 주가노프와는 끝까지 한 배를 탈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궁지에 몰린 옐친에게 현재 큰 힘이 되는 것은 레베드 크라스노야르스크 주지사다. 군부의 쿠데타설을 주장,군장성 출신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제고시키고 있다. 옐친에게 무력개입을 하지 말라는 등 경계선을 치면서도 옐친 지지 입장을 밝혔다. 2000년 대선의 막강한 후보인 그는 ‘일단 러시아 배를 위기에서 구하고 보자’고 주장하며 옐친을 지지한다. 옐친이 무사하다면 대선 직전까지 옐친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내 최대 재력가로 정치권의 막후 실력자 베레조프스키. 96년 대선때 옐친에 자금을 대줘 승리를 안겨줬다. 막판에 그의 손이 어디로 향할지는 미지수다. 베레조프스키의 날카로운 세 읽기가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극우민족주의 정당인 자유민주당의 지리노프스키 당수도 옐친편이긴 하지만 정치적 입지가 약해 지지효과는 미미하다.
  • 러시아·일본·홍콩/“살길은 오직 금융개혁뿐”

    ◎러시아/GDP 작년보다 1.3% 감소… 정치불안 겹쳐/수출 줄고 수입·실업은 늘어 경제회생 막막 러시아의 갖가지 경제지표가 최악의 상황을 예고한다.정치권마저 분란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져 러시아가 정치,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릴 전망이다. 국가통계위원회는 19일 올들어 7월까지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나 감소했다고 발표했다.산업생산은 9,050억루블(1,30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1.3%가 줄었다.특히 7월에는 9.4%나 주저앉았다.94년 12월이후 최악의 수치였다. 수출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상반기의 수출규모는 354억달러.지난해보다 13%가 적은 것이다.주력 수출품인 원유가 25%,천연가스는 18.4%나 줄었던 게 큰 이유였다. 늘어난 것은 수입액과 실업률.상반기동안 수입액은 280억달러.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8%가 늘어난 것이다.7월의 실업률은 11.4%로 6월보다 0.2%가 증가했다.834만8,000명이 실업자다. 주가와 루블화 가치는 경쟁이라도 하듯 연일 곤두박질이다.다른 나라도 러시아를 돕기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러시아 정부가 최근 일본에 약속돼 있었던 8억달러의 조기집행을 요청했다.그러나 대답은 싸늘했다.한마디로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IBRD)이 함께 나서지 않는한 끼어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다 좌파 야당세력들은 옐친 대통령의 하야와 조기총선을 촉구하고 있다.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대통령에 대해 탄핵절차를 밟겠다고 공언하고 있다.정치지표 역시 경제지표 못지않게 최악의 상황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은행 부실채권 구제기금 조성 소걸음/도산 막으려 공공자금 투입·합병 추진 【도쿄=黃性淇 특파원】 일본 정부는 주요 은행의 도산을 막기 위해 사실상 공공자금 투입을 늘리기로 했다.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와 금융구조 개편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대장상은 19일 국회 예산위에서 “주요 은행의 도산은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주요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무담보대출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은행들의 부실화를 막고 예금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30조엔(2,060억달러) 규모의 부실채권 구제기금을 조성한다고 발표했으나 이중 실제로 사용된 돈은 6%인 1조8,000억엔에 불과했다. 일본의 은행들이 안고 있는 부실채권은 87조엔.당초 집권 자민당은 가교(架橋)은행을 세워 부실은행을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해왔었다.그러나 금융구조 개편은 크게 진척되지 못했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하야미 마사루(速水 優) 총재는 이날 국회에서 “19개 주요은행의 부도를 막기 위해서는 합병을 하거나 자금수혈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장기신용은행 처리와 관련,스미토모(住友)신탁은행과의 합병을 촉진하기 위해 공공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홍콩/헤지펀드 추방­홍콩달러·증시보호 안간힘/8천억원 들여 단기 효과… 비판론 만만찮아 【홍콩 연합】 홍콩 정부는 요즘 국제 헤지펀드 투기꾼들로부터 홍콩달러화와 증시를 보호하기 안간힘이다. 홍콩의 중앙은행격인 금융관리국(HKMA)의 조셉 얌(任志剛) 총재는 19일 국제 투기꾼들과의 힘겨루기가 장기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국제 투기꾼들이 홍콩을 떠날 때까지 개입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관리국은 14일부터 휴장 3일간을 제외하고 19일까지 모두 50억홍콩달러(8천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자금을 증시에 투입했다. 지난 13일 6천6백선이던 항성(恒生)지수를 19일 7천6백22로 15% 끌어 올렸다. 러시아 루블화의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항성지수는 제자리를 지켰고 20일에도 개장초부터 전날보다 232포인트 오르는 상승세를 지속했다. 홍콩 정부가 유례없이 증시에 개입한 궁극적인 목적은 헤지펀드의 홍콩달러 공략 고리를 끊어 홍콩달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홍콩 증권계의 일부에선 장기적으로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헤지펀드들이 일단 물러섰다가 9월이나 10월 기회를 보아 재공략해올 수도있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900억달러의 막강한 외환 보유고가 있지만 정부가 외환 시장과 증시에 개입해성공한 사례가 세계적으로 드물다며 회의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아 ‘결전’의 결과가 주목된다.
  • 朴노해씨­사노맹 주역… 전향 자세보여/석방 인사 면면

    ◎金洛中씨­진보적 통일운동가 무기수/張玲子­2차례 수감… 건강 악화로 나와 이번 ‘8·15특사’에는 대형 공안사건 등 사회의 이목이 집중됐던 각종 사건의 주인공들이 다수 포함됐다. ◇權魯甲 전 의원=국정감사 선처 명목으로 한보그룹으로부터 2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징역 5년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정치적 부담을 우려,지난 3·13 대통령 취임 사면에서는 제외됐었지만 이번에 잔형 면제와 복권조치로 자유의 몸이 됐다. 지난 1월 지병인 당뇨병과 고혈압이 악화돼 검찰의 형집행 정지로 풀려나 서울 강북삼성병원으로 주거지를 제한받고 있었다. ◇朴基平(필명 박노해),白泰雄씨(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자생적 사회주의세력인 사노맹의 양대 주역으로 91년과 92년에 각각 검거돼 무기징역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朴씨는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운동권에서 일약 ‘얼굴 없는 민중 시인’으로 떠오른 인물.수감 중이던 지난해 출간한 수상집 ‘사람만이 희망이다’에서 “시장경제 옹호론자가 아니지만 결코 사회주의자도 아니다”고 공언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 화제를 뿌렸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白씨는 제헌의회(CA)그룹의 좌파 이론가로 활동하면서 운동권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불렸다.지난해 ‘사노맹 결성은 사회주의체제 건설을 위한 것이 아니라 全斗煥·盧泰愚정권에 대한 이념적 저항운동’이라며 사노맹 해체 및 재건 포기를 선언,金壽煥 추기경과 재야인사 등 141명이 사면·석방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黃仁五·仁郁 형제,金洛中씨(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북한의 ‘장관급’ 여간첩 李善實과 연계,남한내에 대규모 지하당 조직을 주도하다 92년 당국의 수사끝에 실체가 드러난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핵심인물들이다. 전 민중당대표인 金씨는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가 55년 월북,북한에 포섭된 뒤 민주개혁과 사회진보를 위한 협의회(민사협)고문 등을 맡으며 진보적 재야인사 및 통일운동가로 활동하다 적발돼 무기수로 복역해 왔다. 중부지역당 총책으로 적발된 黃仁五씨는 사북중 2년 중퇴가학력의 전부로 ,80년4월 사북사태를 주도한 뒤 같은해 6월 부산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대회장 폭파기도사건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중부지역당 편집국장으로 적발된 동생 仁郁씨는 서울대 서양사학과 대학원에서 아프리카 역사를 전공했으며,87년1월 북한방송 청취내용을 운동권 최초로 교내 대자보로 부착해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는 운동권 출신. 1심 재판 진행중이던 93년1월 서울대 교수들이 선처를 원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張玲子씨=건강악화로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張씨는 82년 이른바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사건’에 이어 94년에는 거액의 어음부도 사건을 일으켜 세간을 두번 놀래킨 큰 손.82년 당시 남편 李哲熙씨와 함께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92년 잔형 5년여를 남기고 가석방됐으나 107억여원을 편취하고 5억원을 부도낸 혐의로 2년여만에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다시 수감됐다. ◇鄭守一씨(무함마드 깐수)=레바논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해 국내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암약한 고정간첩으로 96년 검거돼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이번에 감형됐다.
  • 정부와 언론/대립과 갈등… 민주화 기여(한국문화 50년:1)

    ◎초창기 서울신문­동아­경향 순 정간·폐간/5共때 강제 통폐합… 이젠 구조조정 태풍 건국 50년을 맞이하는 우리 문화 50년은 감동과 의지,그리고 희망이다.또 전쟁과 경제개발과 민주화의 험난했던 지난 반세기를 꿋꿋이 헤치고 세계 현대사에 우뚝 선 한국을 이뤄낸 힘의 원천이다.가난과 고통의 어려움 속에서도 분야분야 소중한 꿈으로 간직해온 우리 문화 50년을 장르별로 나누어 중요했던 역사적 순간들을 도설(圖說)로 엮어본다. 정부수립 이후 언론과 정부는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 관계를 보여왔다.정부는 언론의 정당한 비판을 수용하기 보다는 탄압으로 일관했고 언론은 불굴의 기개로 이에 맞섰다.이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신문들에 대한 신생정부의 첫대응은 정부수립 직후 ‘언론정책 7개항’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주로 좌파신문을 대상으로 국시위반,정부모략 등 보도 금지항목을 제시한 것으로 사실상 이승만정부의 정권 안정을 위한 것이었다. 정부는 이에따라 기자 검거,신문 정간을 자행했다.언론과 정부와의 최초의 집단적 대립은 49년 5월3일 정부에 비판적인 서울신문을 뚜렷한 이유없이 정간시켰을 때였다.서울의 주요 일간지 통신사 편집국장 모임인 담수회가 대통령에 재고요청서를 제출했고 중앙청기자단과 조선신문인협회 등도 일제히 정간해제를 요구했다. 56년 동아일보 무기정간,경향신문 폐간 등 정부의 탄압이 이어졌다.언론계는 자구책으로 57년 4월7일,한국신문편집인협회를 결성했다. 정부의 제도적 언론탄압은 크게 3차례.첫번째는 5.16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포고로 발효된 ‘사이비 언론인 및 언론기관 정화’.전국 912개 보도기관 중 82개만 남게 됐다. 두번째는 71년12월 정부는 ‘사이비기자’를 없앤다는 구실로 발행인들이 ▲프레스카드 소지 ▲지방주재기자 인원제한 등을 자율 결의케 했다.세번째는 80년11월 국보위에 의한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 제정.소위 ‘제도권언론’시대가 열리게 됐다.5공(共)하에서 언론은 정부의 탄압을 심하게 받았다.87년 6.29선언과 그해 11월 언론기본법 폐지로 상당부분 자유를 되찾았고 신문창간 러시를 이뤘으며 대부분의 신문사에 노조가 창립됐다. 6공과 문민정부에서도 정부의 언론에 대한 간섭은 계속됐다.90년대들어 경제호황으로 인한 광고 증가로 증면경쟁이 벌어졌다.또 각사는 전자신문 등 뉴미디어경쟁시대로 돌입했다.그러나 IMF 한파로 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언론사는 구조조정에,언론인은 명퇴바람에 휩싸이는 등 우리 언론 역사상 최악의 시기를 맡게 됐다. 그러나 건국50년 아침,불쑥 자라오른 자유언론의 싹이 희망으로 다가온다. □언론계 변천사 48년 9월 정부 언론정책 7개항 발표 49년 5월 서울신문 정간으로 언론계 최초의 조직적 반발 59년 4월 한국신문편집인협회 결성 60년 7월 신문등록에 관한 법률 공포 61년 5월 1차 통폐합 언론기관 일제 정비 64년 언론의 상업화·신아·중앙 창간 71년 12월 2차 통폐합.프레스카드 발급 74년 12월 광고 탄압.동아 백지 광고 80년 11월 3차 통폐합 국보위 언론정비 87년 11월 언론기본법 폐지 88년 신문창간 러시.언론 노조 결성 94년 증면 경쟁 95년 뉴미디어 경쟁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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