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좌파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참전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방배동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3연패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조총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992
  • “盧대통령 지지세력은 김정일 호감세력”홍사덕 색깔 발언 파문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가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세력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호감세력이라고 주장,파문이 일고 있다.청와대,열린우리당은 물론 민주당까지 “색깔공세”라며 비판하고 나섰다.반면 자민련은 한나라당 입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홍 총무는 5일 오전 중앙당사에서 열린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여론조사 기관의 선배,동료들에게 들은 결과,전체 국민의 10%가 김정일 위원장에 호감을 갖고 있고,또 10%는 호감도 악감도 아닌 그저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며 “이를 합치면 20%인데,이 20%가 확고한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세력”이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열린 운영위원회의에서도 “노 대통령이 취임 이래 오로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4월 총선에서 좌파 정당이 제1당이 되도록 하는 노력뿐”이라며 열린우리당을 ‘좌파 정당’으로 몰아붙이는 등 ‘색깔공세’를 계속 펼쳤다. ●민주당도 강력 비판 ‘색깔공세’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민주당은 오랜만에 열린우리당과 한 목소리로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민주당은 “색깔론을 편 홍 총무가국민과 노 대통령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유종필 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은 과거 수십년간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색깔론과 용공조작의 최대 피해자로서 군사정권의 후예인 한나라당의 색깔론에 대해 그 대상이 누구이든지 분노와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한나라당을 몰아붙였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선거에 임박하면 나타나는 구시대적 색깔론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열린우리당 정동채 홍보위원장은 “한나라당의 무기는 40년대 기름만 먹는 구식 항공모함과 같은 색깔공세와 지역감정 자극뿐”이라고 비판했다.그는 이어 “최병렬 대표가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겠다.’고 했는데 비판은 하지 않고 색깔공세와 지역갈등을 자극하겠다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자민련은 옹호 반면 자민련은 한나라당을 옹호했다.유운영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20%에 불과한 자기 지지세력과의 소위 코드정치를 함으로써 나머지 80% 국민을 소외시켜 오늘의 국정혼란을 자초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며 “홍 총무지적을 반면교사삼아 국민 80%의 우려와 불안을 해소하는데 국정의 최우선과제를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분당 방지용? 정치권에서는 홍 총무 발언이 ‘분당 방지용’이라는 해석도 있다.과거 정권에서 정권보호 차원에서 ‘매카시즘적 색깔공세’를 폈듯이 분당사태 등 한나라당 내분 격화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색깔론을 폈다는 것이다. 당무감사 결과 유출로 당내 갈등이 깊어지면서 분당 가능성을 우려,노무현 대통령과 노 대통령 지지세력에 대한 색깔공세로 이를 희석시키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日열도에 뿌리내리는 신보수](2)퇴조하는 호헌세력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 정부가 자위대 파병을 각의에서 결정한 엿새 뒤인 지난 12월15일 국회와 의원회관 사이의 보도에서 조그만 집회가 열렸다.중의원에서 개최 중인 외교방위위원회의 자위대 파병 심의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집회였다.청년 노동자,학생들로 구성된 ‘월드 액션’ 집회의 참가자는 20명을 넘지 않았다.이들은 확성기로 호소하고,전단을 나눠주기도 했으나 지나는 시민들은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았다. 풀뿌리 신보수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사회민주주의 세력을 포함한 중도,좌파진영의 설 땅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보수화 진전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자,시민들에게 파고들지 못한 이들 진영의 전략 부재,노력 부족이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퇴조를 불렀다. 패전 후 일본 정치 ‘55년 체제’의 한 축을 이뤄온 사회당의 후신인 사민당 당사는 일본의 ‘여의도’에 해당하는 도쿄의 한복판 나가타초에 널찍히 터를 잡고 있다.자민당 당사를 뺨치는 커다란 당사이지만 국회의원은 중·참의원 합쳐 12명에 불과하다.의원 253명의 대부대를 거느렸던 사회당 시절(1959년),90년대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한 적도 있는 ‘좋은 시절’과 비교하면 이만저만한 격세지감이 아니다. 작년 총선에서 현역 12명이 낙선하는 바람에 의원을 포함,의원 1명당 3명의 비서가 한꺼번에 ‘실직’했다.정당보조금도 깎여 45명의 직원이 있는 당 본부 운영도 큰 부담이다. 지난달의 당 대회에서 제1야당 민주당과의 통합 제안도 나왔을 만큼 당의 진로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도이 다카코 당수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후쿠시마 미즈호 체제가 출범했으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후쿠시마 당수는 “유사법제에 찬성한 민주당과는 하나가 될 수 없다.사민당에는 사민당의 길이 있다.”고 통합에 극력 반대이다. 민주당(제1야당)의 간 나오토 대표는 “지켜보고 있다.”고 하지만 통합도 생각하는 눈치다.올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다시 의석이 줄어든다면 사민당의 앞날은 그야말로 깜깜하다.공산당(중·참의원 29명)이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 미국계 통신사의 일본인 기자인 히토미 가오리(30·여)는 “평화헌법을 지킨다는 호헌(護憲)은 중요하지만 연금 같은 현실적 문제에 사민·공산당이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없었다.”고 말했다.사민·공산당의 패인이 호헌만을 전면에 내걸었을 뿐,정작 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문제에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주간지 중 거의 유일한 좌파 성향인 ‘슈칸긴요비(週刊金曜日)’는 지난해 8월 ‘패전으로부터 58년,되살아나는 내셔널리즘’이란 21쪽짜리 특집기사를 꾸몄다.6월의 유사법제 통과,이라크 파병의 배경에는 내셔널리즘의 부활이 있다고 본 때문이다. 일본 사회의 우편향을 걱정하는 이 주간지의 야심찬 특집에도 불구하고 반향은 적었다. 편집장 오카다 모토하루는 “3만부의 부수로는 영향을 주기 어렵다.”고 한숨을 내쉰다.1993년 창간 당시 5만부로 출발한 이 잡지의 쇠락은 중도·좌파 진영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오카다는 “90년 이후 경제번영이 끝나고 일본이 침체에 빠지면서 답답한 마음이 커졌다.그런 느낌을 해소하기 위해 강한 일본,강한 국가를 바라는 사람이 늘어났다.”면서 “이런 경향을 우파의 논객,정부가 이용하고 우파 잡지들은 그 틈새에 부수를 늘렸다.”고 풀이한다. 슈칸긴요비의 대칭축에 있는 우파성향의 ‘사피오(SAPIO)’는 지난달 슈칸긴요비의 특집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본의 애국심-어디가 나빠’라는 26쪽짜리 특집을 내놓았다. ‘김정일이 납치를 시인함으로써 일본의 애국심은 눈을 떴다’는 기고를 포함한 이 특집은 서문에서 “분출하는 ‘일본 내셔널리즘’ 비판의 와중,전후 58년간 터부시돼 온 ‘나라를 위해 싸우는 마음’이 시험받고 있다.”고 쓰고 있다.이 잡지는 최근 3만부를 늘려 15만부가 됐다.불황 속의 출판계에서 이례적인 부수 증가다. 호헌이 편집 방침인 슈칸긴요비의 퇴조,‘내셔널리즘 비판’을 비판하며 애국심을 전면에 내세운 사피오의 활기는 변화하는 일본의 축소판이다. 릿쿄대학의 이종원 교수는 “호헌,혹은 사민주의 세력은 반전 평화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일본에서 시대적 역할이 끝난 것 같다.”고 풀이한다.그는 “낡은 사고,낡은 언어만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가지 못했고,새롭게 태동한 내셔널리즘,지역주의(동아시아)를 적극 평가하면서 일본의 새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4일 선거 출마자와 당 간부가 참석한 사민당 간담회.출석한 43명 중 38명이 낙선자였다.이들은 “‘호헌’이라는 말을 젊은층들은 잘 모른다.”면서 사민당의 슬로건인 ‘호헌’의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선거 결과만을 놓고볼 때 사민세력의 부활이 불가능할 것 같지만 반드시 ‘종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이오 준 정책대학원대학 교수는 “사민·공산당 지지자의 고령화가 현저해 두 당이 세력을 늘리기는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사민 세력의 종언이라고 하기도 어렵다.”면서 “여당인 자민·공명당에도,야당인 민주당에도 사민세력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이들 사회민주주의적 사고를 살려나갈지가 관심거리”라고 말했다. marry04@ ■저널리스트 우오즈미의 진단 |도쿄 황성기특파원|저널리스트인 우오즈미 아키라(魚住昭)는 “그렇게 되면 안되겠지만 사민주의 세력이 없어질 가능성이 꽤 높다.”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그는 “혼네(본심)와 다테마에(입장)가 일치하는 새로운 사민주의,즉 가난하고 약한 사람도 행복하게 먹고 살아갈 수 있는,전쟁만은 안된다는 사상을 분명히 갖춘 세력,지금의 사민당을 대체할 세력이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총선 결과는 일본 유권자가 사민주의 세력을 퇴장시키려고 한 것인가. -내셔널리즘의 만연이라고 할까,그런 현상이 최근 10년 동안 급격히 일어났다.9·17 북·일 정상회담에서 나온 납치사건 시인도 사민주의,사민당적인 것에 대한 반감을 강화했다.그런 의미에서 사민주의는 필요없다는 생각이 급속히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아사히신문 조사(2003년 11월)에서 갓 당선된 중의원의 70%가 개헌에 전향적이었다. -산업의 공동화라고 할 정도로 일본 기업이 해외로 가고 있다.그만큼 일본에 있어서 해외 권익이 중요하게 되고 있다.그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군사력이다.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요구도 있지만,한편에서는 장래 해외 권익을 지키려는 일본 경제계의 속셈도 깔려 있다.헌법 9조 개정도 연동하고 있다.당연히 개헌이 일어날 것이다.우리처럼 개헌이 “위험하다.”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니까,(개헌을 막기에는)상당히 절망적 상태다. 그만큼 절망적인가. -예를 들어 동해에서 일본 어선,화물선이 북한 공격을 받아 침몰됐다고 하자.지금의 여론은 절대 북한을 용서할 수 없다.그런 일이 일어나면 일본 여론은 들끓을 것이다.정당방위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해외 공장에서 일본 권익이 침해되거나 몇명이 살해된다든가 하면,과거의 상하이사변같은 일들이 지금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전쟁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망언을 하는 사람이 300만표를 얻는 일은 10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지금 일본 상황은 굉장히 위험하다.더욱이 일본인에게는 과잉 동조(同調) 성향이 있어서 학교,회사 같은 조직이 요구하는 이상으로 동조해 간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구조개혁’과 내셔널리즘과의 관련성을 지적하는 의견이 있다. -못사는 사람도 생활할 수 있도록,계층 대립이 나오지 않도록 한 것이 전후 일본 시스템이었다.고이즈미는 부자와 못사는 사람을 분명히 가르는 미국식 시장원리주의를 일본에 정착시키려 하고 있다.전락해가는 사람이 많다.자영업자,농민,직업이 없는 젊은이들은 불안감을 갖게 되고 갈 곳이 없는 분노는 내셔널리즘으로 흐르게 된다. 정치건 미디어건 중도·좌파의 힘이 없다. -태만의 결과다.이들 진영의 정치가,지식인들은 목숨걸고 헌법 이념을 지켰어야 했는데,그렇게 하지 않았다.이념을 유지해 가는데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자민당도 그렇지만 민주당(제1 야당)은 더 안된다.오히려 젊은 민주당 의원들이 더 무섭고 과격하다. ●우오즈미는 1951년생.히토쓰바시 대학 법학부 졸업.교도통신 기자를 거쳐 1996년 프리랜서로 독립.저서로는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돼버린 걸까’,‘특수검찰’ 등.
  • [日 열도에 뿌리내리는 신보수](1)일본의 신보수 탄생 배경

    21세기 일본의 첫 총선거(중의원)가 치러진 작년 11월 9일,하나의 키워드가 창조됐다.보수 양당제로의 재편,사민·공산당의 몰락이 일어난 열도를 읽어낼 새 흐름,풀뿌리 신보수이다.열도에 뿌리내려가는 신보수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간단하다.그 흐름이 주류가 되어가고,그 핵인 젊은 세대들이 일본의 주역으로 성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그들은 어떤 일본을 구상하고 있는가,그들이 주역이 되는 일본에 대해 우리는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풀뿌리 신보수,침몰해 가는 사민주의,그들과의 새 한·일 관계를 3회에 걸쳐 제시한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세밑인 12월18일 게이오대학.강연에 나선 작가겸 와세다대 교수인 헨미 요(59)는 200여명의 청중 앞에서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고 운을 뗐다. 그의 수수께끼는 이렇다.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다나카 히토시 외무성 심의관 집에 지난 9월 폭발물이 설치됐다.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는 ‘당연한 일”이라는 망언을 했다.“자기와 생각이 다른 인물을 암살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공인으로서 있을 수 있는 국가는 일본 밖에 없다.이런 발언을 하는데도 어떻게 300만표를 얻었는지,그리고 비인간적인,상식적이지 않은,있어서는 안될 발언을 한 그가 어떻게 도쿄도 지사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지.왜 이런 발언을 해도 인기가 있는 건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인가.” 이렇게 호소한 헨미는 “자연발생적인 파시즘의 전조”라고 지금 일본의 현상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다나카 심의관 집에 폭발물을 설치한 범인들이 체포된 것은 12월19일이었다.조총련과 사민당,일본교직원노동조합 건물에 총격을 가하거나 정치인들에게 실탄과 협박문을 보냈던 이들은 ‘도검(刀劍) 벗의 모임’ 회원들이었다.전통적인 우익단체와는 다른 자생적 신보수다.면면을 보면 치과의사,미용실 경영자,주지 등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40∼50대 보통 시민이다. 2001년 한·일 역사교과서 파동을 일으킨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일반 참가자들도 ‘보통’을 자처하는 시민들로 추정된다.이 모임의 가나가와현 지부에 2001년부터 4월부터 10개월간 참가해 회원들을 조사한 우에노 요코(25·당시 게이오대 학생)에 따르면 회원들은 스스로를 ‘침묵하는 다수’로서 보통시민의 감각을 지녔다고 생각한다.2차대전 패전 후 태어난 30∼40대가 주축인 이들은 좋아하는 정치가로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침묵하는 다수”였던 야마모토 헤루미(37)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접하고 1999년 행동파로 변신했다.신보수 정치인의 산실인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인 그는 ‘청년의 모임’을 만들어 1인 시위를 해오다 지금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 간사를 맡아 가두서명 등 “행동부대”로 일하고 있다. 야마모토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실감한다.재작년 9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기 전만 해도 술자리에서 납치,안보 문제를 꺼내면 시큰둥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진지하게 응해온다.군대보유,천황제,애국심을 강조하는 그는 납치 해결 전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해서는 안되는 대북 강경론자이다.그가 주도하고 있는 ‘청년의 모임’ 회원들은 주축이 10대에서 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산케이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도요가쿠엔대학 전임강사 사쿠라다 준(38)은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보수논객이다.그는 천황제,헌법 9조 개정을 통한 군대보유,야스쿠니(靖國)신사 존속,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기본법을 주장하지만,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과격보수와는 약간 다르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일본이 진주만 공격에 나선 것은 “미국의 석유금수 조치로 절망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비유하는 사쿠라다는 “북한을 만족시켜서도 절망시켜서도 안 된다.”고 대북 지원 필요성을 주장한다.그런 점에서 야마모토보다는 온건하다. 좌파 주간지 ‘슈칸긴요비(週刊金曜日)’의 다케우치 가즈하루(33) 기자는 이들을 “좌절을 겪으면서 경제대국의 재현,국제사회에서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군사력에 대한 갈망을 키워가고 있는 세대”라고 정의한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얻은 것은 내셔널리즘”이라고 분석하는 간사이가쿠인대학 아베 기요시(39)교수의 말처럼 풀뿌리 신보수는 1990년대 거품경제의 붕괴와 더불어 저변을 넓히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극우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50)가 등장,젊은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만화 ‘전쟁론’ 등을 통해 침략전쟁을 미화하고,군대 보유를 알기 쉽게 설명해 군사 내셔널리즘의 토양을 다졌다. 이런 가운데 신보수의 지형을 넓히고,단결토록 만든 “패전 후 첫 퍼블릭 메모리”(헨미 요)는 역시 2002년 9월 북한의 납치 시인이었다는 데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일본 국회에서 지한파로 꼽히는 고바야시 유타카(39·참의원)는 일본의 최대 적을 “북한”이라고 꼽는다.그도 헌법 9조 개헌 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신보수 대열에 서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흐름이 “과거 히노마루(일장기)를 흔들던 군국주의적인 것과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가네코(63·회사이사)는 올해 두 종류의 연하장을 만들었다.나이든 사람에게 “일본 안보의 위기감”을 주제로,젊은층에게는 “싸우는 일본은 어디로 갔는가.”였다.건설회사 간부로 20여년간 해외를 다니며 ‘강한 일본’을 체감했던 그는 지금의 ‘약한 일본’에 위기감을 느끼는 ‘보통 시민’이다. marry04@ ■ 오구마 게이오대 조교수 |도쿄 황성기특파원|게이오대 조교수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는 “영국,프랑스에서 경기가 좋지 않았던 70∼80년대 이민 배척 운동이 태동한 것처럼 지금의 일본이 그렇다.”면서 “네오나치즘을 했던 사람들이 과거의 나치즘을 알고 했다기보다 경제적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택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선진국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 내셔널리즘이 탄생한 배경은. -1990년 전후 냉전 종언과 불황이 동시에 일본에 찾아왔다.지금은 가난하지도 않지만,과거처럼 고도성장이 되는 시기도 아니다.그런 점에서 첫째,목표가 없어졌다.과거처럼 가난을 딛고 풍부하게 된다거나 좋은 생활을 추구하는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둘째,냉전이 끝나고 미국 일극체제가 되면서 일본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요구가 강해졌다.미·일 가이드라인 수정,자위대 파병 요구 같은 것들이다.셋째,전쟁을 경험한 사람이 사회에서 점점 물러나면서 전쟁기억이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이 세가지가 현재 내셔널리즘으로 불리는 현상의 배경이다. 특징이라면. -패전 직후의 (전통적)우익과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는 분명 다르다.예전의 우익,보수는 전전(戰前)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지만 교과서 모임측은 전전을 모른다.그때를 살지 않았으니까.고도성장기 이후의 사람이 많다.전쟁 전을 몰라서 “전쟁이 좋다.”거나,“한·일병합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라든가 해도 그 말에 리얼리티가 없다. 이전의 보수,우익은 한국 중국에 대해 전통적인 멸시가 있었다.가난한 시절의 한국,중국밖에 모르기 때문이다.지금의 20∼30대들은 한국과의 우호나 한국 문화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얘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일병합은 옳았다.”는 형태로 나타난다. 목표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헤매고 있고,미국의 압력에 의한 군사요구의 흐름 속에서,자신 속에 전쟁체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그래서 명확히 뭔가에 몰두할 수 있는 내셔널리즘이 필요한것이다.신흥종교를 추구하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할까.그들은 ‘천황'에 충성심을 갖지도 않고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 내셔널리즘을 가르치는 세력은 누구인가. -단순히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전통적인 우익들이 먼저 있다.자민당 지지 기반과 연결돼 있고,신도(神道)의식,야쿠자 조직과도 연결돼 있다.이들은 이익 기반과 연결돼 있다.‘새 역사교과서 모임’ 같은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이들은 조직과 연결돼 있지 않고,신도의식 같은 것도 없다. 2002년 북한의 납치 시인이 일본내 여론을 폭발시키고 보수진영을 단결시켰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오구마는 1962년 도쿄 출신.도쿄대 농학부를 거쳐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10년간 근무.도쿄대에서 박사학위 취득한 뒤 현재 게이오대 종합정책학부 조교수.저서로는 ‘민족과 애국-전후 일본 내셔널리즘과 공공성’,‘치유의 내셔널리즘’ 등.
  • 하이 서울, 예스 서울신문/창간정신 그대로...국민 속으로

    ■100년 역사와 발자취 서울신문이 세상에 태어난 지 올해로 꼭 100년을 맞았다. 1904년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후 서울신문,대한매일을 거쳐 다시 서울신문으로 돌아온 길은 잠깐의 영광에 이은 오랜 질곡의 역사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유언론의 표상이었다.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고,의병운동을 적극적으로 알려 항일투쟁의식을 고취시켰다.외세의 경제적 침투를 반대하고 자주적 산업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신교육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인 것도 대한매일신보였다.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계승하여 1945년 11월22일 다시 태어났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지조있는 선비 위창 오세창을 사장으로 주필 이관구,편집국장 홍기문으로 진용을 짰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애당 권동진과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는 고문으로 추대됐다. 서울신문은 중립지(中立紙)를 표방했지만,언론매체들이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공(人共)’을 국호로 하자는 몽양 여운형이 인사말을 싣고,홍벽초 고문과아들 홍기문 국장이 모두 월북한 데서 알 수 있듯 좌파적 색채를 지녔다. 정부에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던 서울신문이 반공지(反共紙)로 노선을 바꾼 것은 1949년 5월3일 공보처의 발행정지처분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당시 공보처장은 “서울신문이 반정부적이고 이적행위를 하는 신문이라는 비난사례가 허다했다.”고 강변했다.그는 “서울신문은 대통령 지방순시 등 정부발표기사를 타지보다 소홀하게 취급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부는 이후 좌익계열의 간부진을 퇴진시키고 우익인사들로 하여금 서울신문을 속간케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주식 48.8%가 일본인으로부터 이전된 정부소유의 귀속재산이어서 가능했다. 작가인 월탄 박종화 선생이 새로운 사장으로 선임된 것은 이런 작업의 결과였다.이헌구 유치진 김동리 등 우익문화예술단체 문총(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멤버들이 대거 참여했다.이후 주주총회 및 간부인사에서 정부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신문은 그러나 정부의 통제가 미치기 시작한 이후에도 일부 정치적 보도를 제외하고는 비판적인 논조를 버리지 않았다. 1952년 경남 거창군내 6개 마을에서 공비내통혐의자뿐 아니라 양민 500여명까지 무고하게 집단학살하고,또 이를 덮으려 한 이른바 거창양민학살사건 때도 그랬다. 서울신문은 당시 사설에서 “우리는 국민방위군사건의 비극이 생겼을 때 울었지만,거창사건을 말살하려던 웃지 못할 희극을 보고는 또 한번 울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후 미묘한 정치적 상황에서는 정부를 옹호하면서,사회적 문제에는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유지한 서울신문의 불행한 전통은 2002년 사원이 대주주인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종수 기자 vielee@ ■지령 어떻게 되나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의 지령을 이어간다.1904년 7월18일 창간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는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구국의 필봉을 휘두르며 독립정신과 민족정기를 고취하다 한일병합으로 폐간되기까지 6년동안 1651호를 발행했다.그러나 대한매일이 그랬듯이,한일병합 이후 1945년 미군정청에 의해 정간될 때까지 발행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지령은 계승하지 않는다.시대와 역사와 발행 주체가 다른 총독부 기관지의 지령을 합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재창간된 서울신문 지령은 1904년에 창간돼 한일병합 때 폐간된 대한매일신보의 지령,광복이후인 1945년 11월22일 창간돼 1998년 11월10일자로 종간한 서울신문의 지령,그 다음날자로 창간돼 2003년 12월31일자로 종간한 대한매일의 지령을 합한 것이다.2004년 1월1일자 서울신문의 지령은 20095호이다. 독자의 눈과 귀 역할 충실히 대한매일신보가 항일의 기치를 드높였던 전설적인 독립언론인 데 비해 대한매일은 권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미완의 언론이었다.1904년 영국인 배설(裵說)과 양기탁(梁起鐸)선생 등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박은식(朴殷植) 신채호(申采浩) 장도빈(張道斌) 등 애국지사 논객들이 총집결해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침략과 관료의 무능에 맞선 자유언론의 표상이었다.그러나 1998년 11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발행된 대한매일은 같은 이름의 대한매일신보사가 만든 신문이지만 권력의 그림자를 벗지 못했다. 서울신문 임직원들은 1945년 11월22일 서울신문이 창간된 뒤 여당지 또는 관제언론이라는 오명과 질곡의 역사를 겪으면서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정부가 대주주인 신문이 권력의 고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지난(至難)한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1998년 2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관제언론의 피해자라고 믿고있던 DJ정권은 서울신문을 정론지로 탈바꿈한다는 명분으로 그해 11월11일자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다. 하지만 독자와 임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가 아니라 새 권력의 일방통행식 결정이었다. 임직원들은 대한매일로 제호가 바뀐 뒤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이어받고 정론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그러나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한 진정한 독립언론으로 거듭나기는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고,1999년 중반부터 민영화를 다시 추진하여 2002년 1월 결실을 맺었다.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회복해야 한다는 얘기는 2002년 후반기부터 나오기 시작했다.민영화로 터진 물꼬는 막을수 없었다. 최대 주주인 우리사주조합은 지난해 11월18일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회복하는 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72.71%,반대 26.05%로 통과시켰다.12월3일 열린 주주 총회도 전폭적으로 사주조합의 제호 회복안을 받아들였다. 황수정기자 sjh@
  • 반가워 땡땡/佛대표만화 땡땡 24권 국내 첫 완간 10대 소년기자의 좌충우돌 모험그려

    사례 하나.샤를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절대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그런 드골 대통령은 재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소설가 앙드레 말로에게 자신의 인기를 이렇게 자랑한 적이 있다.“내 라이벌은 ‘땡땡(Tintin)’ 하나뿐이여∼!” 사례 둘.1982년 벨기에 천문학회는 목성과 화성 사이에서 발견된 소행성에 ‘에르제(Herge) 행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자국 만화가 ‘에르제’(본명 조르즈 레미,Georges Remi,1907∼1983)의 75회 생일을 기념하자는 천문학자들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사례 셋.지난 1월말 열린 세계적인 만화축제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 개막식은 프랑스 남서쪽 보르도 인근의 소도시 앙굴렘의 ‘마렝고 광장’을 벨기에 만화가 에르제의 이름을 따 ‘에르제 광장’으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프랑스가 ‘허구의 아들’로 입양한” ‘땡땡’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국내 최초로 완간 동그란 얼굴에 닭벼슬 머리,키 140㎝의 10대소년 기자 땡땡은 프랑스가 전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영웅이다.프랑스 일간지 ‘르 주르날 드 디망쉬’에 따르면 프랑스 가정의 절반이 땡땡 시리즈를 소장하고 있고,50여개 언어로 전세계 60여개국에서 3억부 이상 팔렸다. “땡땡은 디즈니의 모든 캐릭터를 합친 것보다도 의미있다.”(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는 말이 허풍처럼 들릴 수 있지만,미국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이를 그대로 긍정한다.“땡땡은 내 작품 세계에 디즈니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이 최근 국내의 솔 출판사를 통해 24권 전량이 최초로 번역·완간됐다.1980년대 중반 월간 소년만화잡지 ‘보물섬’을 통해 부분연재되거나,90년대 중반 출판이 시도됐었지만 전편이 완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지난 99년에는 MBC에서 ‘틴틴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21편이 방영되기도 했다.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교재로도 쓰여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소년 기자 땡땡이 흰강아지 밀루와 함께 동서고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겪는 모험담형식이다.콩고 이집트 티베트 페루 등 유럽인들에게 이국적인 지역들을 주무대로,나중에는 바다밑,극지,사막,심지어 달까지 악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간다.조지 루카스가 “영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땡땡의 모험’을 원형으로 했다.”고 고백할 정도.여기에 각국의 지리·역사·문화·과학 등을 재미있게 녹여내 프랑스 초등학교에서는 교재로도 사용된다.팔레스타인 문제,남미의 정치·경제적 상황,영국의 인도 식민지 문제 등 20세기 세계사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담겨 있다. 땡땡은 1929년 당시 21세의 젊은 만화가 에르제가 벨기에 가톨릭계 보수 일간지인 ‘20세기’의 어린이잡지인 ‘르 프티 벵티엠’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필명인 에르제는 본명의 머리글자 ‘GR’를 거꾸로 해 불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벵티엠’을 통해 ‘소비에트에 간 땡땡’으로 처음 시작한 땡땡 시리즈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인기가 높아졌다.1930년 첫 출판 당시 고작 5000부가 팔렸던 ‘소비에트에…’는 지난 81년 재출간때는 3개월 만에 10만부가 팔려 나갔다.에르제는 1930년부터 1976년 ‘땡땡과 카니발 작전’까지 벨기에의 카스테르만 출판사를 통해 23권의 땡땡 시리즈를 내놓았다.24권인 ‘땡땡과 상어호수’는 원작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에서 스틸 컷을 뽑아 만든 것이다. ●‘땡땡 스타일’의 핵심은 명료성 에르제는 생전 ‘소심하다’느니 ‘결벽증 환자’라는 놀림을 살 정도로 ‘명료성’에 집착했다고 한다.미려하고 깔끔한 외곽선을 얻기 위해 종이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선을 반복해서 긋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에르제의 ‘명료성’은 작화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이야기 전개방식,칸 구성,인물 창조 등 곳곳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명료함은 ‘땡땡 스타일’이라는 별명을 낳았다. 1969년 미국이 유인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기 15여년 전에 그려진 ‘달 탐험 계획’(1953년)과 ‘달나라로 간 땡땡’(1954년)을 보면 왜 유럽 과학자들이 동호회까지 만들어가며 땡땡 시리즈에 열광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정확한 과학기술 지식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달 착륙 과정은 지금보아도 실감이 날 정도.이것 말고도 로켓,수륙양용전차,가변익 비행기,잠수함 같은 복잡한 기계들을 정확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상상,만화적이지만 정교한 그림으로 묘사해냈다. ●땡땡의 정치적 성향? 땡땡은 종종 서구중심적·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초기작인 ‘소비에트로 간 땡땡’에서처럼 구소련을 부정선거와 납치,고문이 자행되는 나라로 그리는가 하면,‘서구가 미개한 동양을 개화시켰는데도 은혜를 모른다.’는 식으로 동양 식민지인들의 독립운동을 폄하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은 에르제의 한계라기보다는 당시 유럽인들의 한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히려 땡땡 시리즈는 뒤로 갈수록 ‘푸른 연꽃’(1946년)에서처럼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변화된 시선을 담아낸다.일본의 남만주 기차선로 폭파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푸른 연꽃’은 제국주의로 경도되는 일본과,그를 지지하는 서구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다. 땡땡은 ‘티베트에 간 땡땡’(1960년)에서는 중국인 친구 창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한다.달라이 라마는 “서구인들이티베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소중한 책”으로 ‘티베트에…’를 소개하기도 했다.기본적으로 땡땡은 다른 문화의 소중함을 이해·포용하려고 노력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다. 사실 땡땡의 ‘색깔’은 프랑스 국회에서도 공식적인 격론을 벌이는 문제다.국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캐릭터인 만큼 각당의 ‘영입 경쟁’이 치열한 것.프랑스 우파 제1당인 공화국 연합당은 “특출한 애국심과 역사관으로 볼 때 땡땡은 우리 당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이에 맞서 온건 좌파인 사회당은 “중국인 소년 창을 구하고 동지로 삼는 반인종주의적 행동으로 볼 때 땡땡은 사회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쨌든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의 땡땡에 대한 의견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의 한 마디로 통일되는 듯 싶다.“고마워요,에르제.” 채수범기자 lokavid@
  • 명분없는 자위대파병 재검토해야/ 간 나오토 日민주당 대표

    |도쿄 황성기특파원| 11월9일의 총선에서 중의원 180석의 거대 야당으로 약진한 민주당의 간 나오토 대표는 인터뷰 도중 자위대 파병에 반대입장을 되풀이 강조했다.35분간에 걸친 인터뷰의 3분의 1을 파병문제에 할애할 정도였다.그는 1일 도쿄의 민주당 본부에서 가진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이라크 국민이 반드시 자위대를 환영하는 상황도 아닌데도 대의명분 없는 파병을 하려고 있다.”고 비난했다.다음은 간 대표와의 일문일답 내용. 일본 외교관 피살로 자위대 파병에 대한 일본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라크 지원법이 지난 7월 통과됐을 때 민주당은 반대했다.이번 사건이 있건 없건 반대입장은 불변이다.원점에 되돌아가 검토해야 한다. 위험하니까 반대하는 것 아니다.자위대 파병에 대의명분이 없다.이라크 전쟁은 9·11테러 이후 테러를 지원하는 국가나 단체가 테러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이라크를 선제공격하는 것이 테러방지에 도움이 될까 어떨까 하는 당시의 의문은 걱정대로 됐다.테러가 오히려 확대된 것이다.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상상했던 방법은 실패했다고 본다.그 실패라는 관점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바꿔나가야 한다.고이즈미 총리는 실패했다고 얘기하지 않고 있다.(부시 미 정권과)약속했기 때문에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자위대를 보내려고 하고 있다. 간 대표가 지금 총리라고 하면 실제로 자위대 파병에 계속 반대할 수 있겠는가. -선거(11월9일)에서 약속한 이상 자위대는 파병하지 않는다.다만 무조건 파병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이라크 사람이 주체가 되는 과도정부가 들어서고,그 정부의 요청,유엔의 절차가 있다면 지원은 할 수 있다.그러나 지금처럼 미국 점령통치에 협력하거나 관계하는 파병은 내가 총리라면 하지 않는다. 파병하지 않는다면 미·일 관계가 악화될텐데. -그런 우려가 있지만,미국도 민주주의 국가다.선거로 국민이 나를 뽑았다면,국민의 의견이기도 하다.미국도 이해할 것이다.어떤 경우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인도지원,부흥지원에 도움이 되는 것은 한다. (파병하지 않으면 미·일 관계가)일시적으로 어렵겠지만,프랑스나 독일,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봐라.이라크 전쟁에 대해 미국에 찬성하지 않았다.일시적으로는 어려운 관계가 됐지만,그렇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에서 동맹관계가 깨졌냐 하면 나토는 그렇지 않다.(부시)정권이 하려는 것이 적절하다면 적극 협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국의 판단에 따라 협력을 결정한다. 자위대 파병문제를 따질 것인가.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해 놓았다.(외교관 피살)사건도 있으니까 강력히 소집되도록 요구하겠다. 선거얘기를 묻겠다.자민·민주 2대 정당으로의 재편이 어느 정도 진행된 선거였다.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권교체를 목표로 했다.산으로 비유하면 6부 능선에서 단숨에 정상까지 가려고 했다.그동안 갖가지 정계재편이 있었으나 안정된 야당이 생기는데 시간이 걸렸다.민주당은 이번에 177석(이후 3명이 입당해 180석이 됨),37%를 획득했다.진정한 2대 정당제의 형태가 정돈됐다고 생각한다.8부능선까지는 왔으니까 다음 기회에는 거기에 혼을 불어넣는,정권교체를 실현하겠다. 우리 당은 특히 젊은 의원이 많다.3분의 1(58명)이 신인(초선)이다.그 신인을 잘 단련시켜서 다음에는 정권교체하고 싶다.국민들도 정권교체를 바라는 사람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정권교체의 시기는. -차기 총선(중의원)이다.고이즈미 정권이 중간에 쓰러지거나 여당이 분열될 가능성은 있지만 그 가능성은 적다. 사민당과 통합할 생각은. -사민당의 새 당수(후쿠시마 미즈호)가 민주당과의 통합은 없다고 천명했다.우리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선거공약으로 헌법개정과 관련해 창헌(創憲)을 내걸었다.자민당보다 더 과격하다는 느낌이다.민주당은 정말 개헌에 나서는가. -우리 당에 헌법조사회가 있고,국회에도 있다.중간보고도 나왔다.그렇다고 해서 1년동안에 금방 헌법 초안을 만들어 개정절차에 나간다 하는 것은 아니다.논의로서 새 헌법을 만든다고 하면 어떤 형태가 좋은가,어떤 부분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 창헌의 뜻이다.2005년까지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낸다는 자민당에 비해 우리가 유연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2005년 자민당이 헌법 개정안을낼 경우 응할 방침인가? -헌법개정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자세는 아니다.세계 속에서 57년간 헌법개정하지 않는 곳은 드물지 않는가. 고이즈미 정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간단하다.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이다.정치라는 것 말만 해서는 안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래도 2001년 4월부터 계속 정권을 쥐고 있지 않은가. -나도 신기하다.모든 여론조사를 보면 정책은 안된다고 하면서도 고이즈미 정권은 지지한다고 한다.이상한 현상이다.고이즈미씨는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인 형태로 지지를 묶어내는데 능수능란하다.자민당 정치는 좋지 않지만 고이즈미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천재적인 사람이다. 여러 차례 고이즈미 총리와 논전을 벌였는데,토론상대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14차례 토론했다.처음에는 아주 쉬운 말을 쓰니까,토론상대로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막상 해보니 하는 방법이 너무나 똑같다.즉 이야기를 딴데로 돌린다거나,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거나,대답하기 어려워지면 다른 화제로 바꾼다.따라서 깊이있는 논의가 되지 않는다.예를 들어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게 좋았는가,테러를 없애기 위한 것과 전쟁은 틀린 것 아닌가 하고 따지지만 대답을 하지 않는다.본질적인 문제에는 대답하지 않고 ‘간 대표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논점을 흐리고 다른 데로 돌린다.알맹이 있는 논의가 되지 않는다.말을 잘 얼버무린다.논쟁에 익숙해 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역공격을 받는다.질문한 사람이 오히려 변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에는 몇 차례 갔는가. -6,7회정도이다.최근 간 게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전이다.후쿠오카에서 배를 타고 부산에 가서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까지 갔다. 친분있는 한국 정치인은. -김종필 전 총리를 몇차례 만났고,김근태,정대철,이인제씨를 안다. marry04@ ▲57세▲야마구치 현 출마▲도쿄공업대 응용물리학과졸▲1971년부터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특허사무소를 운영하면서 1976년 중의원에 첫 출마▲3차례 낙선 끝에 1980년 중의원 첫 당선▲1996년 연정 때 후생상▲같은해 민주당을 결성▲대표,간사장직을 오가면서 지난 해 연말 다시 대표직에 복귀▲부인과의 사이에 두 아들 ■간 대표 대북관 간 대표는 두차례 북한을 방문한 적 있다.그는 그동안 일본 정부나 여야가 북한에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정권을 맡지 않고 있으니까,작년(북·일 정상회담) 이후의 배경은 몰라 자세히 얘기할 수 없다.”는 전제를 달면서 “그렇지만 북·일 관계의 오랜 역사는 새롭게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 예로 든 것이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였다. 그는 “납치문제가 장기간 방치된 것은 일본 경찰도,외무성도 우리 일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일본의 관료조직이 무사안일주의라 할까,진정한 의미에서 위기관리가 되지 않았다.예전부터 사회당은 물론 자민당도 이 문제에 대해 엉거주춤했다.”고 지적했다.“미국 추종주의 외교나 대북 자세에서 보듯 말해야 하는 것에 대단히 약하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중도좌파적 색채로 분류돼온 간 대표조차도 대북 송금을 제한하는 법안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일본에서 나가는돈이 일본이나 북한에 좋다면 몰라도,일본 안전보장에 관한 것이라면 어떤 형태의 컨트롤이 있으면 좋을 것”이라는 견해.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으로 대표되는 대북 강경론자의 논조와 비슷한 점은 뜻밖이었다.일본인 납치문제와 핵문제 해결에 북한이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지 않는 한 북·일 관계개선은 힘들 것이라는 뉘앙스였다. ■간 대표 주변인물 ● 간 겐타로 (장남) |도쿄 황성기특파원|인터뷰 말미에 그의 주변인물 3명에 대해 물었다.먼저 아들 겐타로의 출마.일본 정치인들의 세습제를 비판했던 그가 아들을 출마시켜 “말과 행동이 틀리다.”는 비판을 받았다. 간 대표는 이렇게 해명했다.“은퇴한 뒤 선거기반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일반적인 의미의 세습이다.아들이 선거구를 물려받았은 것이 아니다.내가 출마하라고 하지 않았다.오카야마(겐타로가 출마한 지역)에서 “꼭 나가달라.”고 권했다.그래서 아들 본인이 결정했다.최종적으로는 본인의 결정이었다.나는 본인의 결정을 인정한 것이었다.세습이라기보다는 2대째 정치인이라고 할 수있다.” ●오자와 이치로 대표대행 전 자유당 당수로 선거 직전 합병함으로써 민주당의 대약진에 기여한 일등공신이지만 보수적인 색깔에다 ‘파괴꾼’이라는 별명에서 엿보이듯,쉽게 조직에 동화되지 못해 민주당의 잠재적인 불안요소이다. 간 대표는 “오자와는 힘있는 분이고 경력이 있는 분이다.나와는 정반대이다.내가 시민운동이라는 권력에서 먼 곳에서 올라왔다면,오자와는 권력,그것도 자민당의 프린스같은 존재였다.경력이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손을 잡으면 가장 힘이 커질 것”이라고 대답을 대신했다. ●다나타 마키코 前회상 무소속인 그가 국회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당·무소속 모임’이라는 원내단체에 가입했다. 민주당 입당 가능성을 물었더니 “지금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다만 “고이즈미 정권에 비판적인 분이니까…”라는 말을 통해 다나카 의원에게 고이즈미 저격수 역할을 은근히 기대하는 듯했다.
  • 한총련 무너지나/대학총학생회장 77% 비운동권 당선 취업난등 반영분석… 해체론 힘실려

    내년 한총련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각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가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결과가 주목된다. 경찰청과 인터넷 대학뉴스 매체 ‘유뉴스’ 등에 따르면 27일까지 전국 4년제 대학 207개 가운데 절반 정도인 103개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 결과가 확정됐다. 지금까지는 비운동권의 강세가 두드러진다.101개 대학 가운데 비운동권 후보가 76.7%인 79곳에서 당선됐고 한총련 계열이 21.4%인 22곳,좌파계열이 1.9%인 2곳에서 당선됐다. 90년대 후반부터 한총련의 핵심인 민족해방(NL) ‘자주’ 계열의 메카로 불리던 홍익대에서 비운동권 후보가 당선됐고,한양대는 3년 연속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을 배출했다.지방에서는 부산대,경상대,충남대,조선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에서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을 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총련 해체’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건국대와 한양대에서는 한총련 계열 후보까지 한총련 해체를 주장했다.한편에서는 부산 동아대와 덕성여대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학생조직인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의 결성이 추진되고 있다. 한총련 소속인 동국대 구자룡(23) 신임 총학생회장은 “선거에서 한총련 후보들이 비운동권 학생회 등과 함께 ‘새시대 새학생 운동’을 할 것을 공동 공약으로 내걸었다.”면서 “‘이념 일변도’가 아닌 학생,사회와 함께하는 한총련으로 변화·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학생회 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도 눈에 띈다.충남대·전북대 등은 연장투표 끝에 겨우 투표율 50%를 넘겼다. 경찰청 정보국 관계자는 “취업난과 대학생들의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진 점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면서 “특히 ‘한총련 반대’를 내세우고 있는 비운동권 후보들의 약진은 그만큼 대학사회에서 한총련의 위상이 낮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아직 한총련 해체를 단정짓기는 이르다.올해 한총련 의장을 배출한 연세대를 비롯해 서강대,경희대,단국대 등 한총련의 활동이 두드러진 대학에서 28일 이후 선거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이곳에서는 한총련 계열이 우세하거나 한총련 계열 후보가 단독 출마한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총련 핵심 관계자는 “많은 대학에서 한총련 후보들이 무난하게 당선되거나 승인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한총련 붕괴’를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장택동 이두걸기자 taecks@
  • 홍콩 야당 지방선거 압승

    |홍콩 연합|홍콩의 친중국계 좌파 정당 민건련(民建聯)이 7·1 민주화 시위 이후 처음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민주파에 참패했다. 이에 따라 중국과 홍콩 정부는 7·1 민주화 시위에서 표출된 홍콩 시민들의 민의를 수렴해 민주화 조치를 구체화할 수밖에 없게 됐다. 홍콩 유권자들은 23일 400명의 구의회 의원들을 선출하는 지방선거에서 ‘홍콩 기본법 23조(국가안전법)’ 입법을 지지하는 민건련에 등을 돌렸다. 가장 많은 206명의 후보를 낸 민건련은 7·1 민주화 시위의 여파로 겨우 64개 의석 확보에 그쳐 현재보다 20개 의석이 줄었다. 특히 구의회 선거에 출마한 민건련 소속 입법회(국회) 의원 3명도 탈락해 조직망이 가장 뛰어나다는 민건련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혔다. 반면 120명의 후보를 낸 야당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모두 93개의 의석을 차지해 1999년 구의회 선거 때의 86석보다 7석이 늘어났다. 7·1 민주화 시위 이후 처음 실시된 이번 구의회 선거는 내년 9월 입법회 선거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어 홍콩의 정치적 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의지를 측정하는 잣대로 받아들여져 왔다. 영섬(楊森) 민주당 주석은 “정부는 이번 선거를 통해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이번 선거를 통해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분명해졌다.”고 덧붙였다. 우콕힝(胡國興) 선거관리위원회 주석은 이번 선거 투표율이 44%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면서 이는 1999년의 35.8%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건련의 창욕싱(曾鈺成) 주석은 24일 구의회 선거 참패에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 지구 자전주기 길어지는 이유는?/서울대 수시1차 합격자 심층면접 영어지문 출제등 난이도 작년수준

    서울대는 18일 인문계와 자연계의 수시 2학기모집 1단계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심층면접 구술고사를 실시했다.학교측은 지난해와 비슷한 난이도와 유형의 문제를 제시했지만 일부 학생들은 처음 보는 지문에 당황해하기도 했다. 심층면접은 대부분의 단과대에서 2단계 전형 총점 300점 가운데 200점을 반영,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올해 심층면접은 지난해에 이어 인문계에서 영어 지문과 국한문 혼용 지문이 출제됐으며,시사적인 내용의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 인문계는 기본소양평가로 ‘인식의 객관성’이라는 주제로 영어 지문으로 제시된 영국의 좌파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역사론’(On History)의 요지를 말하게 했다.이어 역사론과 국한문 혼용 지문으로 제시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와의 관계를 설명한 뒤,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돈키호테와 시종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가 출제됐다. 오후에는 ‘자유·평등·국가의 개입을 통한 분배’를 주제로 영어 지문의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과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지문으로 제시,삶에 대한 국가의 통제 정도와 물질적 만족의 관계에 대한 그래프를 해석하는 능력 등을 물었다. 자연계 기본소양평가의 경우 학과마다 고등학교 교과과정 수준에서의 지식을 바탕으로 대학 수학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과 과학적 문제 해결·응용 능력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학업적성평가는 수학,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등 지원자가 선택한 1과목에 대한 심층 질문이 주어졌다. 학교측은 올해 심층면접의 난이도가 지난해와 비슷했다고 설명했으며,수험생들도 대부분 “그다지 까다롭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그러나 자연대와 공대에 응시한 일부 수험생들은 ‘지구의 자전주기가 길어지는 이유’ 등 일반 교과과정에 나오지 않는 심층적인 문제가 많아 당황해하는 모습이었다.이번 2004학년도 수시모집 최종 합격자 명단은 12월5일에 발표된다. 이두걸기자 douzirl@
  • 日총선 ‘막판 票心잡기’

    ㅣ도쿄 황성기특파원|9일 치러지는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1석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여야의 막바지 각축이 치열하다.일본 언론들은 자민,공명,보수신당 등 연립 여당의 여유 있는 승리를 점치고 있다.경우에 따라서는 자민당 단독 과반수 획득도 가능한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제1야당 민주당이 뜻밖의 돌풍을 일으키고,자민당은 수성(守城)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지역도 나오고 있어 막판 접전이 주목된다. ●고이즈미 정권의 무난한 승리 예상 도쿄신문은 지난 3일자 ‘자민,단독 과반수 기세’라는 1면 머리기사를 내보내는 등 대다수 언론들이 자민당의 낙승을 점쳤다.과반수라면 중의원 480석의 241석 이상을 뜻한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취약지였던 대도시에서 자민당이 의외의 표몰이를 하고 있다.2000년 6월 총선 때 8대 13으로 민주당에 참패했던 도쿄의 경우 백중세를 보이는 이변을 낳고 있다.자민당이 대도시에서 호조를 보이는 이유는 도로 건설 같은 공공사업을 삭감하는 등 도시 유권자들이 볼 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도시형 정책을 취하고있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또한 망령 같은 실언 파동이 이번 선거에는 없는 점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착실히 표를 모으는 데 한몫 하고 있다.지난 총선 전 모리 요시로 당시 총리는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신의 나라”라는 실언으로 상당한 표를 잃은 바 있다.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자민당의 ‘얼굴마담’격으로 기용된 49세의 인기남 아베 신조 간사장 효과도 적잖아,부동층 표를 긁고 있다.업계,단체 등 조직표의 자민당 쏠림도 호조 이유의 하나이다. ●정권교체는 무리지만 민주당도 대약진 해산 당시 137석이던 민주당도 30석 전후의 의석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자유당과의 합병 효과,제1 야당에 힘을 실어 자민당을 견제하려는 유권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몸집을 크게 불릴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막판 스퍼트에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여론조사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자민당과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기 때문이다.자민당 거물 정치인의 “이상한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는 발언도 이런 추세를 두고 한 말이다.미야기·시가 현의 경우당선 예상자가 모두 민주당이 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이래저래 이번 총선을 계기로 자민,민주 양대 정당으로의 일본 정계 재편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분석된다.공산,사민당 등 좌파 군소정당이 쇠퇴하면서 개헌을 주장하는 자민,민주당의 동시약진은 일본 보수화의 방증이기도 하다. 한편 비서 월급 유용 의혹으로 의원직을 사퇴했던 다나카 마키코 전 외상은 당선이 무난할 것이라는 것이 일본 언론들의 예측이다. 자민당을 탈당,무소속으로 출마한 다나카 전 외상은 “정계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선거 후 그녀가 민주당과 손을 잡고 ‘안티 고이즈미’의 선두에 나설지가 관심거리다.일찍이 총리감으로 꼽혔으나 비서의 금품 스캔들로 지난해 낙마했던 가토 고이치 전 간사장도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marry01@
  • 세계 좌파정치인 모임·부시 ‘극과 극’ 발언/부시 “내 지도력아래 세계평화” SI “美 일방주의 정책 종식을”

    |상파울루(브라질)·워싱턴 외신 연합|전세계 좌파 정치인들은 29일 새로운 세계질서의 확립과 미국의 일방적 정책 종식을 촉구하며 사흘간의 제22차 상파울루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 총회를 폐막했다. 이번 총회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이 승인한 ‘상파울루 선언’은 전세계 빈국들에 타격을 주면서 부유한 나라들과 기업들에 유리하게 되어 있는 오늘날의 세계화 골격을 다시 짤 것을 촉구했다. 이 선언은 특히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미국 행정부를 가리켜 비난을 가했다. 선언은 “신 보수주의자들이 모든 형태의 세계 통치를 해체하고 유엔의 역할을 최소화하며 다변적 기구를 저해하고 일방주의와 시장의 신성화(神聖化)를 촉진하며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강자의 의지를 강요하려 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안토니오 구테레스 SI 의장은 미국의 일방주의가 SI가 촉구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질서 확립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면서 “2차대전 후 새로운 비전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9일 “세계가 나의 지도력 아래서 더 평화롭고 더 자유롭다.”는 메시지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이 내세우는 주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나는 적절한 시기에 (이라크 문제와 관련한)나의 기록을 옹호하겠으며 그것을 고대하고 있다.”면서 “나는 (선거운동에서)세계가 나의 지도력 아래서 더 평화롭고 더 자유로우며 미국은 더 안전하다고 말하겠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이라크에서 미군 사상자 수가 늘어나고 그것이 선거를 치르는 내년까지 이어진다고 해도 미국인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를 것으로는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高총리 靑에 모진소리 대권 꿈?

    고건 국무총리의 언행이 심상치 않다.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도 과거와는 딴판으로 강성발언을 잇따라 구사,그 배경에 궁금증이 쏠리고 있다. 고 총리는 21일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이 “지금의 국정혼란이 국회나 야당,언론의 책임이라고 보느냐.”고 묻자,“대통령과 측근,정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대뜸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들을 거론했다.평소 스타일대로 “아니다.정부 책임도 있다.”는 정도로 피해가겠거니 짐작했던 기자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특히 며칠 전부터 통합신당이 노 대통령 측근들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는 민감한 시점이어서 파장은 더욱 컸다. 고 총리는 또 박 의원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좌파적이다.”고 지적하자,언성을 높이며 “뭐가 좌파적이냐.인정할 수 없다.”고 역공을 취했다.이 역시 ‘고건답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과거 그는 의원들의 질문공세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원론적 답변으로 일관,“역시 행정가 출신답다.”는 평과 함께 “재미없다.”는 소리까지 들었었다.대통령에 대한 의원들의 비난을 감수하며 이해를 구하는 모습에선 전형적인 ‘순종형 총리’의 인상을 풍기기도 했다.그런데 지난 17일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이후로는 단호하게 소신을 밝히는가 하면,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만한 언급도 주저하지 않았다. 고 총리는 이날 한나라당 김동욱 의원이 “대통령이 토지공개념 발표 전에 총리와 상의했나.”라고 묻자,“(부동산 문제를)걱정하는 자리가 여러 번 있었다.”고만 말해 사전논의가 없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이에 김 의원이 “(대통령이) 책임총리제를 한다면서 총리와 상의도 없이 발표한 것이냐.”고 다그쳤고,고 총리는 “지금 책임총리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헌법에 있는 총리로서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답변했다.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책임총리 대접을 제대로 못받고 있다는 의미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앞서 고 총리는 20일 “내각 조기개편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용의가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고,17일에는 “나라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되면,여러분(의원들)이 원하시면 언제든 물러나겠다.”고 단호하게 답변했다.노 대통령의 언론관련 발언에 대해 “나라면 그런 표현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고 총리의 이같은 ‘변화’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과의 결별을 각오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대권주자를 꿈꾸는 고 총리가 김영삼 정권 때 소신 총리로 인기를 얻었던 이회창씨 케이스를 염두에 두고 승부수를 던졌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총리가 이번 대정부질문 전부터 직원들에게 ‘답변서를 피해가는 식으로 만들지 말라.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자신있게 답하라.’고 지시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송두율 파문 / ‘宋 옹호’ 강법무 손보나

    다음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인가? 강 장관의 최근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까지 문제삼고 나서 ‘해임건의안’이 양당 공조로 추진되는 것은 아닌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 장관은 송두율 교수에 대해 “‘김철수’라도 처벌할 수 있을까.”라고 발언한 데 이어 “송 교수의 입국은 결과적으로 우리 체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입국 자체를 ‘전향서’로 인식하듯 말해 처벌 면제를 거듭 시사했다. 이에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9일 “대통령과 장관 등 최고위직 인사들이 송 교수 사건과 관련해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 있다.”면서 “엄정한 법집행이 사명인 법무장관은 좌파적 관점보다는 중도나 우파적 관점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비판했다.그러면서 “좌파 시각의 사람이 맡아야 할 자리와 우파 시각의 사람이 맡아야 할 자리는 따로 있는데 강 장관은 법무장관보다는 인권위원장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한때 강 장관에 ‘호감’을 보였던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도 발끈하고 나섰다.전날 “왜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보도할수록 사건의 본질에서 멀어져 뭐가 뭔지 헷갈린다.”고 한 이창동 문화장관도 함께 겨냥해 최 대표는 “장관들이 자꾸 이런 식으로 헷갈리는 말을 하면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일침을 놨다. 최 대표는 “말을 좀 자중하고 최소한 검찰 수사가 결론날 때까지 기다려야지,장관들이 자꾸 한 마디 두 마디씩 하면 국민이 나라를 어떻게 보겠느냐.”면서 “이 문제만은 사후에라도 따져야겠다.”고 강조해 검찰 조사가 끝난 후 ‘정부 내 입국 배후세력설’은 물론 장관들의 발언도 집중 추궁할 뜻을 내비쳤다.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정부의 이런 자세는 ‘국민 70% 이상이 송 교수의 처벌을 바란다.’는 요구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배용수 부대변인도 “사건의 본질은 좌파 지식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냐의 문제”라며 “국무위원의 송두율 감싸기 발언이 색깔론 시비를 불러오기 위한 도발이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가세했다. 박정경기자 olive@
  • 책 /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 1~6

    김월회 등 옮김 창비 펴냄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식인 6명의 지적 편력과 문선,대담 등을 모은 기획시리즈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김월회 등 옮김)이 창비에서 나왔다.‘제국의 눈’(천광싱 지음),‘아시아라는 사유공간’(쑨거 지음),‘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추이 즈위안 지음),‘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왕 후이 지음),‘국민주의의 포이에시스’(사카이 나오키 지음)‘여럿이며 하나인 아시아’(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등 모두 6권이다. 문화·매체이론을 전공한 천광싱(타이완 칭화대 교수)은 타이완 내부의 심각한 현안인 성적(省籍) 모순의 문제,즉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문제를 탈식민·탈냉전·탈제국화의 거시적 관점에서 다룬다.그는 타이완을 동북아의 변방이 아니라 동남아 중심으로 설정하려는 타이완 지식인사회의 시도를 ‘하위제국주의’라고 통렬히 비판한다. 쑨거(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가 펼치는 동아시아담론의 핵심은 국가 단위의 경계를 강조하거나 그것을 간단히 부정하는 것은 모두 진정한 문제해결의 길이 아니라는 것.국민국가의 경계 안팎 모두를 고려하는 동아시아 단위의 사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추이 즈위안(미국 MIT 정치학과 교수)과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잡지인 ‘두수(讀書)’의 편집위원 왕 후이(중국 칭화대 교수)는 대표적인 신좌파 지식인.이들은 1990년대 이후 중국 지식인들의 현대화와 시장에 관한 유토피아적 사고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사회주의 시장화’는 중국이 서구근대의 자본주의 논리에 일방적으로 편입돼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카이 나오키(미국 코넬대 교수)는 인간과 인간의 진정한 만남과 교섭이란 관점에서 국민주의의 함정을 살피며,야마무로 신이치(일본 교토대학 교수) 또한 ‘국민국가론’을 다룬다.신이치는 근대국가를 만든 주체인 국민이야말로 국가를 바꿔나갈 수 있다는 ‘국민주체’를 강조한다. 창비측은 “각국의 기존 동아시아론은 국가주의 강화의 도구로 제기돼 온 것이 사실”이라며 “자국 중심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각국의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동아시아론을 꼼꼼히 독해할 필요가 있다.”고 기획취지를밝혔다.6만원. 김종면기자@
  • 송두율 파문 /뮌스터大 동문들 반응

    송두율 교수의 독일 뮌스터대 동문이나 수강생들은 국정원의 발표와 송 교수의 기자회견을 보고 전혀 예상치 못했다며 놀라는 모습이었다.그러나 송 교수가 친북 활동을 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동문도 있었다. 80년대 뮌스터대에서 송 교수의 지도를 받았던 성공회대 차명제(50) 교수는 “송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국정원 조사처럼 북한을 수시로 왕래하며 공작원 노릇을 했다고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당시 송 교수는 80년대 혼란스러운 세계질서 속에서 학문적 관심으로 남·북한의 경계를 넘나들었을 뿐,일방적으로 북한 체제를 동경하거나 정치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갖고 친북활동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는 “송 교수는 당시 가난한 유학생들이나 타고 다니는 중고차를 직접 몰고 다니는 등 경제적으로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거액의 공작금을 받는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 신분이었다면 그렇게 생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 교수와 독일에서 10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서울대 송영배(59) 교수도 “지식인의 입장에서 독재 상황에 처한 남한의 민주화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였지만,북한 노동당 입당과 정치국 후보위원 활동에 관련된 말은 한마디도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당시 유학생이면 누구나 느끼듯이 사회주의에 대한 학문적이고 막연한 동경을 했을 수 있지만,정치적인 측면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동문은 송 교수의 당시 모습으로 미뤄 친북활동 전력이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뮌스터대에서 송 교수의 강의를 수강했던 성균관대 송해룡(50) 교수는 “한마디로 송 교수는 ‘과대포장’된 인물”이라고 말했다.그는 “당시 송 교수는 정식 교수도 아니었으며,강의 도중 ‘한국은 인권억압이 만연해 존재해서는 안되는 나라’라며 좌파성향의 발언을 자주 해 동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고 말했다.송 교수의 지도를 받았던 한 지방대 교수는 익명을 요구하며 “송 교수와 같이 수학한 당시 유학생들은 송 교수가 북한을 왕래하는 등 친북활동을 했다는 사실을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국내에서는 자신의 입장 때문에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내년 11월 부시 축출하자”소로스, BBC인터뷰서 주장

    |워싱턴 연합|국제 금융투자가 조지 소로스는 최근 영국 BBC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독설을 퍼부으며 체제교체를 내건 부시 대통령을 “체제 교체하자.”고 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진보 좌파 성향의 백만장자로 알려진 소로스는 부시 대통령을 “극단주의자”로 규정하고 미국 극단주의자의 정책을 종식시키는 유일한 길은 부시 대통령을 “축출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소로스는 다만 부시 대통령을 “축출”하되 무력이 아닌 내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표를 통해 심판하자고 촉구했다. 소로스는 “미국에서 체제교체를 원한다면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서 “이는 표를 통해 부시 대통령을 권좌에서 밀어내기”라고 강조했다. 소로스는 미국의 극단주의자들이 9·11테러 참사를 이용해 그들이 예전에 주장했던 정책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면서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라고 지적했다고 미국 언론이 1일 전했다.
  • 이런 책 어때요 /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

    에릭 홉스 봄 지음 / 김동택 등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미국 흑인들의 척박한 현실과 삶의 애환으로부터 잉태된 음악인 재즈의 사회사.뉴올리언스의 홍등가와 대도시의 흑인 게토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재즈가 스윙시대에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다가 결국 소수의 엘리트 예술로 나아가게 된 변천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초기 뉴올리언스 재즈를 대표하는 시드니 베셰,스윙시대를 풍미했던 카운트 베이시,재즈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듀크 엘링턴,비참한 삶을 살다간 최고의 블루스 가수 빌리 홀리데이 등 재즈 거장들의 삶과 예술을 다룬다.저자는 유대인 출신 영국 좌파 역사학자이자 재즈평론가.1만8000원.
  • 국감 하이라이트 / 행자위

    23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는 증인으로 나온 반북인사들과 의원들 사이에 대북 문제를 놓고 고성과 설전이 오가면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국감장에 출석한 반북인사들은 북한내 인권탄압의 비판 활동을 펴고 있는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민주참여네티즌연대 대표 이준호씨,예비역대령연합회 서정갑 회장 등 모두 5명.그러나 통역을 통해 의원들과 토론을 벌이던 폴러첸은 다른 증인과 의원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지자 퇴장했다. ●폴러첸 “햇볕정책 반대하는 것 아니다” 폴러첸은 먼저 지난달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북한 기자단에게 폭행을 당한 것에 대해 “경찰이 왜 말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면서 “한국의 민주화,언론자유에 대해 문제제기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이 “한국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폴러첸은 “북한에는 말못할 세뇌와 통제가 가해지고 있고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세뇌와 통제,조작,인권무시 풍조가 있다.”고 답했다.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좌파적 생각,보수적 생각 양쪽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느냐.”는 물음에는 “햇볕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재정권에 의한 음모정책이라는 생각이 들며,대북송금 등 문제는 언젠가 통일이 되면 공개되고 친북인사도 공개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내가 죄인이냐” 反北인사·의원 말다툼 이어 지난달 30일 조선일보사 앞에서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 힘’ 회원들과 충돌한 경위를 질문받은 서 회장이 “지난 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친북인사 제1호’라는 광고를 내려다가 ‘대한민국이 김대중을 고발한다.’라는 내용으로 바꿨다.”고 답변하자 통합신당·민주당 의원들이 반발,5분 남짓 고성이 오갔다.또 통합신당 송석찬 의원이 서 회장에게 민족관과 통일관을 묻자 서 회장이 “이야기하려면 기니까 홈페이지를 참고해달라.”고 답했고,송 의원이 “대답을 해야지 무슨 태도냐.”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서 회장이 “내가 죄인이냐.당신이 국회의원이냐.”라며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자 통역에게 대화내용을들은 폴러첸이 “이같은 고성은 평양에서 들은 이후 처음이다.나가겠다.”며 불쾌한 표정으로 감사장에서 나갔다. 장택동기자 taecks@
  • 이런 책 어때요 /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존 버거 지음 / 박홍규 옮김 아트북스 펴냄 피카소는 이미 10대에 스페인의 미술학교에서 더 배울 것이 없었던 신동이었다.미술교사였던 아버지는 다빈치의 스승이 제자의 솜씨를 보고 그림을 포기해버렸듯이,아들의 재능에 놀라 자신의 화구를 물려주고 절필했다.피카소의 재산은 천문학적인 액수에 달하고,노년에도 젊은 여인과 해로했으며,1945년에는 공산당에 입당했다.영국의 대표적인 좌파 비평가인 저자는 유럽의 변방인 스페인에서 온 ‘침입자’이자 원시적 이상향에 기대어 근대의 야만을 비판한 ‘고상한 야만인’,진지한 사회주의자였던 피카소의 진면목을 비평가적 안목으로 파헤친다.1만 3500원.
  • 지령 20000호 - 각국 언론의 미래전략

    전통의 세계 유수 언론들도 활자매체를 기피하는 새 독자층의 출현,온 라인의 약진 등 급변하는 언론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온 힘을 모으고 있다.새 매체 창간을 통해 미래 경영을 준비하는 워싱턴 포스트와 지역언론을 매입,새로운 언론그룹으로의 변신을 준비하는 르몽드의 경우를 소개한다.각각 진보와 보수 논조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르몽드와 워싱턴 포스트의 미래 준비는 어려운 새 언론환경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워싱턴 포스트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지난달 4일 워싱턴 일대 지하철 역 입구엔 새로운 신문이 등장했다.바로 타블로이드판 무가(無價) 일간지인 ‘익스프레스’.하루 500만부 이상을 찍는 워싱턴 포스트(WP)가 전액 투자한 자회사 신문이다. 신문과 유·무선 방송,각종 잡지,무가 주간지,교육기관 등 이미 30여개의 관계회사를 거느린 ‘미디어 왕국’ 워싱턴 포스트가 굳이 새로운 신문을,그것도 무가지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워싱턴 포스트는 ‘틈새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니 애플바움 익스프레스의 총무국장은 메트로(워싱턴 일대의 지하철)를 타는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층을 겨냥했다고 밝혔다.이들의 상당수는 신문을 읽지 않는 인터넷 세대이지만 교육이나 소득 수준은 상위층으로 기업 마케팅의 1차적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 500만부 이상 찍어 지하철을 타는 출근 시간에 맞춰 신문을 가볍고 재미있게 만들면 고정 독자층의 확보가 가능하고 무가지임에도 광고 수입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24쪽으로 만든 것도 지하철을 타는 15∼20분 동안 읽도록 감안해서다.발행 3주만의 자체조사 결과 95%의 독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애플바움 국장은 밝혔다. 익스프레스의 발간은 워싱턴 포스트가 오래 전부터 추구해 온 미래 전략의 하나다.1933년 82만달러에 포스트를 구입한 유진 마이어가 제시한 “신문은 노년층뿐 아니라 젊은층에도 어필해야 한다.”는 원칙이 21세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기본 컨셉은 ‘변화’와 ‘다양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독자층을 끊임없이 창출하는것이다.뉴스의 가치가 신문의 질을 결정하는 첫번째 요인이지만 지금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한 쪽에만 의존해선 곤란하고 신문과 방송 및 잡지까지 통틀어 결합하는 ‘포괄적 매체’를 지향한다. 1960년대 초에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를 인수하고 로스앤젤레스와 제휴,지역 신문 등에 뉴스를 공급하는 ‘포스트-로스앤젤레스 서비스’를 설립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특히 MSNBC나 PBS 방송과 공동으로 디트로이트 등 5곳에 세운 지역 방송국과 유선방송 및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이블 원’은 이제 워싱턴 포스트의 중추 사업이 됐다. ●신문+방송+잡지 ‘포괄적 매체' 지향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은 특히 경쟁이 심한 유선방송 분야에서 케이블 원의 생존전략을 제시했다.모든 경쟁사들이 관심을 갖는 대도시가 아니라 중소형 도시를 집중 공략하고 애프터 서비스를 24시간 이내에 완료한다는 원칙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온라인 매체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특이한 것은 이들의 웹 사이트를 워싱턴 포스트의 웹 사이트에 모두 집결시켰다는 점이다.예컨대 취업,부동산,자동차 등의 관련 웹 사이트는 별도의 자회사이면서 포스트의 웹 사이트에 모두 올라 있다. 스티브 콜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은 “신문의 기본적인 전략은 공정성을 바탕으로 권력을 견제하고 뉴스로 승부하는 것”이라며 “시대가 바뀌어도 진실을 말하는 게 신문 경영에서는 최선의 전략”이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온라인 신문은 강력하고 새로운 매체이며 오프라인의 독자를 창출하기 위한 중요한 원천 가운데 하나인 것도 분명하다고 말했다.신문을 구독하기에 앞서 소득이 높을수록 웹 사이트를 먼저 찾는다는 조사 결과도 최근 나왔다. ●온라인 매체에도 각별한 신경 때문에 워싱턴 포스트는 편집국 내에 별도의 웹 사이트 지원부서를 만들었으며 자회사인 포스트 온라인도 신문 기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기사 발굴에 나서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1세기가 넘는 본지의 명성을 이어가면서도 지역별·세대별·전문분야별 신문을 차등화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무가 주간지인 가제트는 메릴랜드 4개 카운티35개 지역에서 발간된다.6년 연속 미 전역에 걸쳐 올해의 지역신문으로 뽑혔으며 지역 경제와 정치,엔터테이먼트,부동산 등을 다룬다.기업 및 일반광고에 수입을 의존하면서도 흑자를 유지한다. mip@ 르몽드 |파리 함혜리특파원|지난 1944년 ‘세계에 대해 지적으로 정직한 시선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탄생한 르 몽드는 창간 이래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1951년 신문 주식의 최대 지분(30%)을 르 몽드 기자회가 소유하는 사원지주제 방식을 도입,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했다.또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광고보다 판매 수익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대원칙으로 창간 초기부터 고수해 왔다.지난해의 경우 총 매출액(4억 3590만 유로) 중 구독료 수입이 68%,광고 수입이 31%,기타 수입이 1%를 차지할 만큼 구독료 수입이 광고 수입보다 훨씬 많다. ●규모경제로 자본서 독립 모색 광고주인 기업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해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경제 사이클은 피할 수 없다.경기침체로 인한 광고수익 감소와 종이 값 인상에 따른 제작비용 상승 등은 거의 10년을 주기로 르 몽드의 경영에 치명타를 입혀왔다.그 타개책을 찾기 위해 르 몽드는 ‘언론 그룹’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올리비에 비포 기획실장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그 최종 목적”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0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의 지역 언론그룹인 ‘미디 리브르’의 주식 50%를 매입,최대 주주가 됐다.이어 2002년에는 텔레라마,라 비 등 잡지를 출간하는 출판그룹 라 비 카톨릭(PVC)의 주식 30%를 인수했다. 비포 실장은 “각 언론사의 독립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인쇄용지,잉크 등 제작 재료의 구매 규모를 키워 제작 단가를 낮추고,어느 한 매체의 수익이 저하되더라도 다른 매체의 수익으로 적자를 보전할 수 있다.”면서 “새로운 언론그룹의 명칭은 ‘라 비 르 몽드(La Vie Le Monde)’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 비 르 몽드’그룹은 르 몽드를 중심으로 기존의 자체 제작 출판물인 ‘르 몽드 에뒤카시옹’,‘도시에 에 도퀴망’,‘르 몽드 디플로마티크’,‘마니에르 드 부아르’,‘카이에 뒤 시네마’ 외에도 2000년 창간한 월간 ‘르 몽드 2’,2001년 창간한 주간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 외에 ‘텔레라마’,‘라 비’,‘레 주르노 드 미디’,‘미디 리브르’,‘앵데팡당’ 등을 포괄하게 된다. ●연말부터 주말판 잡지도 발행 르 몽드는 독자층의 변화와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현재 프랑스의 유일한 석간으로 남아 있는 르 몽드의 하루 평균 발행부수는 50만부 정도이며 이중 80%에 해당하는 40만부가 판매된다.가판대에서 사서 보거나 정기구독하는 사람들 외에 도서관이나 관공서,학교에서 보는 독자들도 많기 때문에 실제 독자는 200만명 이상이다. 이들 독자층은 최근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이전에는 도시 생활을 하는 좌파 성향의 남자가 주류를 이뤘고 중산층,고위직 공무원들이 대부분이었다.최근 독자층 분석에 따르면 남성이 58.4%,여성이 41.6%에 이르며 15∼34세의 젊은 독자가 34.5%를 차지한다.특히 전체 독자의 17%가 학생이며 이중 16.8%가 고등학생이다. 비포 실장은 “최근 들어 지방의 소도시에 사는 여성 독자층이 급속히 늘고 중하위직에,자유업 종사자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며 무엇보다도 젊은 층 독자가 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신문 지면구성이나 내용도 변화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창간 60돌 맞아 사옥 이전 요일 별로 특정 섹션 제작을 하고 있는 르 몽드는 올 연말부터는 주말판 잡지도 제작할 계획이다.이달 중 시험판을 제작,독자 및 광고주들의 반응을 분석해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하게 된다. 2004년 12월19일은 ‘르 몽드’가 창간 60돌을 맞는 기념비적인 날이다.이날에 맞춰 르 몽드는 파리 5구의 클로드 베르나르가(街)에서 13구의 오귀스트 블랑키 대로로 본사를 이전할 계획이다.르 몽드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력지에 머물지 않고 세계의 여론 주도층이 주목하는 유력 언론그룹으로 재도약하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르 몽드 사람들은 확신하고 있다. lotus@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