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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5일 만에 돌아온 괴물 6이닝 무실점, 8회 구원이 승리 날려

    105일 만에 돌아온 괴물 6이닝 무실점, 8회 구원이 승리 날려

    류현진(31·LA 다저스)이 6이닝 무실점 호투로 괴물 본성을 되찾았다. 류현진은 강판한 뒤 타선이 3점을 뽑아 승리 투수 요건을 갖췄으나 8회초 구원진이 동점을 허용하는 바람에 105일 만의 승리를 날려버렸다. 류현진은 16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와의 메이저리그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삼진 6개를 뽑으며 3안타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았다. 투구 수 89개를 기록한 류현진은 스트라이크 60개를 기록하는 공격적인 투구를 펼치며 단 하나의 볼넷도 내주지 않았다. 최고 시속은 149㎞였고 빠른 공과 커터, 체인지업, 낙차 큰 커브를 마음먹은 대로 구사하며 샌프란시스코 타선을 봉쇄하며 시즌 평균자책점을 부상 전 2.12에서 1.77로 떨어뜨렸다. 류현진은 팀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0-0이던 6회말 공격 1사 3루에서 대타 작 피더슨으로 교체됐는데 피더슨이 외야 희생플라이로 3루 주자 야시엘 푸이그를 불러 들여 다저스가 1-0으로 앞서며 승리투수 요건을 확보했다.류현진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른 것은 지난 5월 3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전 이후 꼭 105일 만이다. 당시 경기에서 왼쪽 사타구니 근육이 찢기는 부상을 당한 류현진은 오랜 재활을 거쳐 다시 다저스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했다. 류현진은 1회초 다소 긴장한 듯 선두타자 앤드루 매커친을 상대로 볼 3개를 내리던졌다가 3루수 땅볼로 처리했다. 이어 브랜던 벨트에게는 빗맞은 타구가 좌익수 쪽 파울라인을 맞고 관중석으로 넘어가는 2루타를 허용했다. 하지만 강타자 에반 롱고리아에게 낙차 큰 커브를 던져 우익수 뜬공을 잡은 류현진은 버스터 포지도 유격수 땅볼로 처리해 가장 힘든 1회를 무사히 넘겼다. 2회는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처리했다. 5번 고키스 에르반데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낚은 류현진은 브랜던 크로퍼드는 3루수 뜬공, 헌터 펜스를 1루수 땅볼로 처리했다. 3회에는 시즌 초반 완벽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첫 타자 앨런 핸슨에게 체인지업을 던져 헛스윙 삼진을 잡아낸 뒤 투수 데릭 홀랜드와 강타자 매커친도 삼진으로 잡아 3회를 ‘K·K·K’로 장식했다. 4회에도 삼자범퇴로 막은 5회 1사 후 위기를 맞았다. 크로퍼드에게 우전안타, 펜스에는 좌전안타를 맞아 1, 2루의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류현진은 핸슨을 상대로 볼카운트 1-2에서 바깥쪽 커터를 던져 루킹 삼진을 낚았고 이어 홀랜드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하지만 침체에 빠진 다저스 타선은 5회까지 류현진을 도와주지 못했다. 다저스는 1회말 2사 1, 2루, 2회에는 무사 2루, 4회 1사 2루, 5회에는 무사 2루와 2사 만루까지 득점 기회가 있었지만 적시타가 터지지 않았다. 다저스는 7회말 매니 마차도와 켐프의 적시타를 묶어 3-0으로 달아나 류현진이 무려 3개월여 만에 승리를 챙기고 팀도 5연패에서 탈출하는가 싶었지만 8회초 구원 퍼거슨이 매커친에게 동점 3점 홈런을 맞아 류현진의 승리를 날려버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김성곤의 시시콜콜] 조폭과 정치, 악어와 악어새인가

    [김성곤의 시시콜콜] 조폭과 정치, 악어와 악어새인가

    안상구는 깡패다. 골목 깡패는 아니다. 언론사 고위 간부와 대기업 회장, 검사 사이에서 비자금 장부를 들고 게임을 하는 이른바 ‘정치 깡패’다. 어설픈 그의 게임은 곧 들통이 난다. 비자금 장부를 통해 자기 몫을 챙기려다가 되레 손목이 잘리고 버려진다. 그리고 복수의 칼을 간다. 2015년 11월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고, 지금도 케이블TV에서 때가 되면 한 번씩 상영하는 영화 ‘내부자들’ 얘기다. 뜬금없이 영화 얘기를 꺼낸 것은 요즘 조폭과 정치인이 뉴스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한 공중파 방송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은수미 성남시장이 경기 성남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국제마피아파 중간보스 출신이 운영하는 코마트레이드와의 연루 의혹을 보도한 뒤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게시판에 ‘진상을 밝혀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이재명 경기지사는 검찰의 수사를 요청했다. 당사자는 연루는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뛴다. 그를 의심하는 다른 한편에서는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당 진영이 갈라져 온라인에서 갈등의 불꽃이 튀고 있다. 조폭의 역사는 참으로 뿌리가 깊다. 조폭은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국제적인 폭력조직의 대명사인 마피아는 로마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중국의 국민당 정부와 ‘삼합회’ 등과의 관계는 중일전쟁 시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종종 뉴스가 되기도 한다. 일본의 야쿠자도 막부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막부도 적절히 이를 활용했다고 하니 그때도 권력과 조폭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였던 것일까. 야쿠자의 뿌리는 막부시대 도박꾼인 바쿠토(博徒)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야쿠자라는 명칭이 가장 안 좋은 패라는 도박용어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한국에서는 요즘 집단으로 불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 폭력배라는 명칭이 쓰이고 있지만, 이에 대한 명칭은 다양하다. 건달, 깡패 등이 그것이다. 건달은 불교 용어인 건달바(乾達婆)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애초 인도에서는 허공을 날며 음료와 약품을 나른다는 신이었다는 데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놀고먹는 건달로 바뀌었다니 아이러니다. 깡패는 영어가 들어오면서 생겨난 말이란다. 영어 Gang과 패거리를 나타내는 패가 결합해서 태어난 용어라는 게 다수설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깡패는 언제부터 발호하기 시작했을까. 많은 이가 그 시원을 조선시대 보부상에서 찾고 있다. 보부상을 하려면 산적도 피해야 하고, 다른 패거리들과도 경쟁해야 해서 떼를 지어 다녔고 이들이 가끔 폭력성도 띠곤 하면서 부정적 이미지가 부여됐다. 그리고 전국을 돌며 관부 대신 정탐도 하고, 해결사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뿌리가 해방 후까지도 지속됐다고 한다. 깡패도 협객으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청산리 대첩의 독립영웅 김좌진의 아들로 불리는 김두한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깡패는 해방 이후 좌익대결 과정에서 정치와 결부돼 정치깡패로 변질된다. 경기 이천 출신으로 이승만 정부와 결탁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이정재는 정치 깡패의 대명사다. 그는 야당과 가까웠던 김두한을 능가했으며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용팔이(김용팔)를 꼽을 수 있다. 1987년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던 전두환 정권이 기존 야당이던 신한민주당과 손잡고 김영삼, 김대중 등 야당 중진들이 추진하던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려고 폭력배를 동해 난장판을 만든 사건이 이른바 ‘용팔이 사건’이다. 주역이 바로 용팔이라서 이름 붙여졌다. 지금은 그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당시의 일을 후회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정치 깡패라는 꼬리표는 떼지 못하고 있다. 조폭은 이권이 있으면 어디든 개입한다. 그리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칼부림도 서슴지 않는다. 깡패의 손에 칼과 도끼가 들리면서 깡패보다는 조직 폭력배로 불리기 시작했다. 노른자위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칼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1971년 조양은 등 ‘양은이파’가 칼과 도끼로 ‘신상사파’를 습격한 명동사보이호텔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정부의 주기적인 단속으로 설 자리를 점차 잃어 가면서 마약 등으로 갈아타거나 재개발·재건축 현장 등의 철거, 주가조작, 기업 인수·합병(M&A)에까지 손을 뻗쳤다. 사업을 확장·보호하고 이권을 얻어내려고 정치권이나 검·경 등에 선을 대는 것도 이들의 오랜 방식이다. 후원도 하고, 선거 때 사람도 동원하고, 낙선자에게는 각종 편의도 제공하고 후하게 대한다. 정치인은 기업인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물론 조폭이라는 명찰은 달지 않는다. 그러니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관계가 길어지면 서서히 이빨을 드러내고, 이권을 취하려 한다. 사진도 찍는다. 지난해 대선 때 안철수 후보가 전주에서 찍은 사진 속에 지역 조폭 출신들이 끼었다고 해서 논란되었다. 이번에 이재명 도지사도 성남시절 코마트레이드 사장 이모씨와 찍은 사진이 보도가 됐다. 다들 조폭인지 몰랐다고 한다. 이 지사도 “조폭이 신분 세탁을 해서 접근하면 어떻게 아느냐”고 항변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방송사 보도대로라면 과거 변호도 했고, 성남시장 재직 때 관련기업이 우수기업으로 선정되고, 사업도 수주했다면 그 정도 해명으로는 다소 부족하다. 시장이 아니라 공무원이 했다면 그 공무원을 가려내야 한다. 차량과 운전기사 지원설에 휘말려 있는 은수미 시장도 자원봉사자라는 말로 다 해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어차피 이 도지사 등도 자발적으로 수사 의뢰를 했으니 언젠가는 진위가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인은 온갖 사람과 어울릴 수밖에 없지만, 여과장치는 갖춰야 한다. 신분세탁을 하고 접근해 왔다는 이 모 사장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큰 그림을 그리는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떤 이는 친구가 대가 없는 돈이라며 건넨 후원금을 받은 뒤 자책하며 세상을 등졌다. 이 지사든 은 시장이든 한국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본인과 주변인의 통장을 잘 들여다봤으면 한다. 김성곤 논설위언 sunggone@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1945년 ‘소련 신탁통치 주장’ 가짜뉴스에 통일정부 수립 물거품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1945년 ‘소련 신탁통치 주장’ 가짜뉴스에 통일정부 수립 물거품

    “나는 지금 우리나라의 파쇼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인데 성명 석 자가 반파쇼의 위원장이 되고, 나는 총동원 조직을 마음에 합당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인데 성명 석 자가 위원회의 상무가 되어 있다. 이만 정도는 참을 수 있지만….”대하소설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는 1946년 1월 5일자 서울신문에 개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모스크바 3상회의가 결의한 신탁통치 문제를 놓고 극우와 극좌 진영이 벌인 헤게모니 싸움에서 양쪽이 그의 이름을 멋대로 도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홍명희는 당시 서울신문 고문이었다. 당시 한민당과 이승만이 주도하던 극우 진영은 김구의 임시정부를 앞세워 ‘반탁’ 대중운동에 총력전을 펴고 있었다. 임시정부는 1945년 12월 28일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이하 총동원)를 결성해 대중운동으로 미군정 권력을 이양받으려 했다. 공산당, 인민당 등 좌익도 30일 반파쇼공동투쟁위원회(이하 반파쇼)를 결성해 ‘반탁’의 주도권 다툼에 뛰어들었다. 양쪽에 일제 병탄기 항일 민족통일전선을 추구한 신간회를 주도했던 홍명희는 명분 확보와 외연 확장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해가 바뀌면서 반파쇼 측은 돌연 반탁의 기치를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 지지’(찬탁)로 바꿨다. 반파쇼는 1월 3일 개최한 ‘민족통일자주독립촉성시민대회’를 애초 공지한 것과 달리 외상회의 결정 지지 행사로 진행했다. 본의 아니게 ‘반탁’과 ‘찬탁’에 양다리를 걸치게 된 홍명희로서는 묵과할 수 없었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탁통치는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밝힌 바 있었다. 좌익의 시민대회 이후 국론은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의 길로 들어섰다. 정국 주도권은 극좌와 극우의 손으로 넘어갔다. 해방 후 가장 강력했던 여운형, 김규식 등 중도 혹은 좌우합작 추진 세력은 민주통일전선 기치를 꺼내기조차 힘들었다. 이들은 우선 통일된 임시정부를 세운 뒤 신탁통치를 거부해도 늦지 않다고 설득했지만, 흥분한 대중들에게 먹혀들 리 만무였다. 한민당의 공식 입장과 달리 ‘반탁 운동’에 회의적이었던 수석총무 송진우가 12월 30일 암살당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국론 분열에 이어 분단, 나아가 골육상잔의 길로 내몬 찬탁·반탁의 충돌은 어이없게도 한 토막 ‘가짜뉴스’에서 비롯됐다. 1945년 12월 27일 석간신문들은 합동통신을 받아 미국 번스 국무장관이 정부로부터 받았다는 훈령 한 토막을 보도했다. “번스가 (3국 외상회담) 출발 당시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하여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이것을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점령”이라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소련이 한반도 38도선 이북을 집어삼키기 위해 신탁통치를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조선의 자주독립은 어디로, 독립·신탁론 대립”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 서울신문은 “아(조선) 독립 문제 표면화” “미, 즉시 실현 주장”이라는 제목 아래 훈령 내용이라고 전해진 것만 간단히 보도했다. 출처도 애매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이 기사는 미군 태평양사령부가 발행하는 태평양판 성조지에 보도된 것을 합동통신이 전재한 것으로 취재원도 없었다. 훈령 내용 역시 그동안 미 국무부가 밝힌 입장과 전혀 달랐다.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한다는 내용도 알려진 것과 정반대였다. 그러나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28일자에서 1면 전부를 ‘탁치’에 대한 반대 여론으로 채웠다. 29일 미 군정청에서 외상회의 결정문을 발표했다. ‘한국에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수립하며, 최장 5년간 신탁통치를 하되 미국과 소련 대표로 구성되는 공동회의가 임시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확정한다’는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신탁통치만 앞세워 간단히 처리했고, 나머지 지면은 ‘반탁 운동’으로 채웠다. “한국은 신탁통치를 받게 되겠지만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그 기간은 최장 5년”이라고 보도한 서울신문과 대조를 이뤘다. 신탁통치를 한사코 밀어붙인 것은 미국이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2년 전후 식민지 신탁통치 구상을 처음 밝힌 이래 1943년 영국의 앤서니 이든 총리와의 워싱턴 회담에 이어 11월 스탈린과의 테헤란 회담에서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안을 공식화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선 ‘신탁통치 20년’ 안을 제시했다. 루스벨트에 이은 트루먼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다. 10월 20일 존 카트 빈센트 미 국무부 극동국장은 외교정책협의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조선은 자치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미국은 따라서 우선 신탁관리제를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조선에서 반탁 운동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빈센트는 1월 16일 “조선 임시정부가 통일적인 통치와 치안의 능력을 보여 줄 때에는 탁치를 실현하지 않겠다는 것이 미국뿐만 아니라 연합 3국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그날 동아일보는 소련이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소련이 한국에서 ‘신탁통치의 원흉’으로 악마화되자 스탈린은 1월 23일 윌리엄 해리먼 주소련 미국대사를 불러 ‘회담 과정을 공개하겠다’고 통보했다. 24일 관영 타스통신은 회담 과정을 소상히 보도했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다짜고짜 “근거 없는 타스통신 보도”라고 비난했다(1월 26일자). 27일 미 국무부는 “타스통신 보도가 맞다”고 확인했다. 가짜뉴스임이 드러났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뒤였다. 한민당을 중심으로 한 친일파들은 즉각 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세력의 일원이 됐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친일 매판의 과거를 세탁하고 ‘민족지’로 분식했다.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민족적 염원은 분단 정부 건설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이승만과 한민당의 꿈은 성큼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대성공은 이후 가짜뉴스의 거대한 뿌리가 됐다. 그 대상이 소련과 좌익에서 북한과 민주세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북한 관련 뉴스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학 교수의 말마따나 “백지수표”처럼 이용됐다. 아무렇게나 쓰고 말해도 되는 대상이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때 조선일보 25일자 사설엔 이런 대목이 있다. “(남파 간첩들이) 민심을 흉흉케 함으로써 사태를 격화시켰으리라는 것도 십분 짐작이 가기도 한다….” 남파간첩 배후설이다. 1986년 11월 16일자엔 ‘세계적 특종’이라며 1면 톱으로 김일성 주석 암살 의혹을 보도했다. 김 주석은 다음날 조선중앙TV에 나타났다. 이후 성혜림 망명설, 김정일 국방위원장 정신병설, 평양 계엄령 선포설, 조명록 전 군총정치국장 쿠데타설 등 ‘아니면 말고’ 식의 가짜 기사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2010년 천안함 사건 때는 북한의 인간어뢰설을 제기해 세계적인 비웃음을 사더니, 2012년엔 김정남이 일본 도쿄신문 고미 요지 편집위원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통해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필요로 이루어졌다”고 밝혔다는 기사를 창작했다. 2018년 1월 북한 공연단을 이끌고 남쪽을 방문한 현송월은 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3년 ‘음란물 제작 취급 혐의로 공개 총살’당한 인물이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할 때 방문 취재기자들에게 1인당 1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가짜뉴스에 청와대 대변인이 발끈했지만, 이런 전례를 생각하면 특별한 ‘가짜’도 아니었다. ‘해방일기’의 저자 김기협 교수의 1945년 12월 27일 ‘일기’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동아일보가 아직 살아 있는 신문이라면 해마다 12월 27일에는 1945년 12월 27일 내보낸 이 기사에 대한 사과문과 반성문을 실어야 한다. 언론이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사례로 이 기사는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극악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짜뉴스의 거대한 뿌리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가짜뉴스를 잘 활용해 최고의 영향력을 구가하는 매체가 달라졌을 뿐이다. 혹자는 법적 처벌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북한 관련 오보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눈 밝은 시민들의 양심과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게 현실이다. 논설고문
  • 폭염 날린 홈런쇼… 넥센 김하성 생애 첫 ‘미스터 올스타’

    폭염 날린 홈런쇼… 넥센 김하성 생애 첫 ‘미스터 올스타’

    깜짝 등판 강백호 강속구로 2K 이대호 9년 만에 홈런레이스 V 울산구장 1만 1500명 만원관중섭씨 33.1도까지 치솟았던 지난 14일 울산 문수야구장. KBO리그 올스타전을 찾은 야구 팬들은 폭염속에서도 만원 관중(1만 1500명)을 이루며 뜨거운 열정을 즐겼다. 48명의 올스타 선수들도 풍성한 볼거리로 팬들에게 보답했다. 이날 올스타전에서는 나눔 올스타(한화, LG, 넥센, KIA, NC)가 드림 올스타(두산, SK, 삼성, 롯데, KT)를 10-6으로 꺾었다. 정규시즌 홈런 1~2위를 다투고 있는 최정(SK·29개)과 김재환(두산·28개)이 버티고 있는 드림 올스타의 홈런포가 침묵한 반면 나눔 올스타는 4개의 아치를 합작했다. 나눔 올스타가 드림 올스타를 누른 것은 4년 만이다. ‘미스터 올스타’의 영광은 넥센 유격수 김하성에게 돌아갔다. 홈런 2개를 포함해 3타수 2안타 1볼넷 4타점 3득점 활약으로 나눔의 승리에 앞장섰다. 4타점은 역대 올스타전 최다 타점 타이 기록이다. 기자단 투표가 한창이던 8회초 쐐기 3점 홈런을 터뜨린 게 결정적이었다. 김하성은 26표로 3안타(1홈런) 2타점 2득점을 기록한 제라드 호잉(한화·25표)에 불과 한 표 앞섰다. 생애 첫 ‘미스터 올스타’의 영광을 누린 김하성은 트로피와 함께 부상으로 K5 승용차(2985만원 상당)도 받았다. 김하성은 올스타전에 앞서 열린 퍼펙트히터 이벤트에서도 우승해 상금 300만원도 함께 챙겼다. 김하성은 “퍼펙트히터를 준비할 때 방망이가 가볍게 돌았다. 좋은 기운이 이어진 것 같다”며 “후반기가 남았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 팀이 가을야구에 갈 수 있도록 하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말했다. 괴물 신인 강백호(KT)도 못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고교시절 투타를 겸업했지만 프로에 와선 타자로만 나서고 있는 강백호는 6회초 드림올스타의 6번째 투수로 깜짝 등판했다. 최고 150㎞에 육박하는 강속구로 오지환(LG)과 이용규(한화)를 연달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강백호는 박치국(두산)에게 마운드를 물려주고 좌익수로 보직을 변경했고, 타자로는 3타수 1안타 1삼진을 기록했다. 홈런 레이스 우승은 이대호(롯데)에게 돌아갔다. 결승에서 호잉과 나란히 10아웃을 당하는 동안 3홈런을 기록한 뒤 연장에서 이겼다. 먼저 나선 호잉이 3아웃 동안 홈런을 때리지 못한 반면 이대호는 첫 아웃카운트를 소진하기 전 왼쪽 담장을 넘겼다. 이대호가 올스타전 홈런레이스를 우승한 것은 2009년 이후 9년 만이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돌아온 오타니, 적응 속 타니?

    돌아온 오타니, 적응 속 타니?

    팔꿈치를 다쳐 부상자 명단(DL)에 올랐던 오타니 쇼헤이(24·LA 에인절스)가 복귀전에서 지명타자로 출전했지만 무안타로 침묵했다. 오타니는 4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세이프코필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시애틀과의 원정 경기에서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4타수 무안타 3삼진을 기록했다. 당분간 ‘투타 겸업’에서 벗어나 지명타자로만 나오기로 한 오타니는 이날 시애틀의 좌완 선발 웨이드 르블랑을 만나 고전했다. 2회초 첫 타석에서 루킹 삼진으로 돌아섰고, 4회초에는 좌익수 파울 아웃으로 잡혔다. 7회초에도 르블랑에게 루킹 삼진을 당한 오타니는 9회초 에드윈 디아스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에인절스는 1-4로 패했다. 오타니의 시즌 타율은 .280으로 내려갔다. 부상 전 오타니는 타자로서 타율 .289, 6홈런 등을 기록했다. 투수로서는 9경기에 등판해 4승1패 평균자책점 3.10의 성적을 남겼다. 오타니는 시즌 초반 투수와 타자로 모두 좋은 모습을 보이며 ‘이도류’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나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지난달 7일 캔자스시티전에 선발 등판해 4이닝 1실점을 하고 조기 강판당했다. 당시에는 오른손 중지 물집이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른쪽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 2도 염좌로 밝혀지면서 이틀 후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오타니는 자가혈치료와 줄기세포 주사 치료를 받았고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치료 효과를 확인한 후 지난달 29일부터 이틀간 타격 훈련을 시작했다. 주말에는 시뮬레이션 경기에도 참가했다. 앞서 빌리 에플러 단장은 오타니가 올해 안에 투수로도 출전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3주 동안의 추이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염상진과 염상구를 만나다 -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염상진과 염상구를 만나다 -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사람덜이 워째서 공산당 허는지 아시오?...(중략)...가난하고 무식헌 것덜이 믿고의지헐디웂는 판에 빨갱이 시상 되먼 지주 다 쳐웂애고 그 전답 노놔준다는디 공산당 안헐 사람이 워디 있겄는가요.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덜이 빨갱이 맹근당께요”(태백산맥 1권, 248p) 소설 태백산맥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 중의 하나다. 김범우 집안의 가복(家僕)이자 일자 무식꾼인 문서방은 공산당과 빨갱이를 ‘대놓고’ 말하고 있다. 문학과 영화에서조차도 빨갱이와 공산당을 ‘대놓고’ 말하기 힘든 시절이었던 1983년 9월, 소설 태백산맥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4년간의 자료조사와 6년간의 집필 끝에 원고지16,500매에 달하는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시대와 이념의 금기(禁忌)를 정면으로 다룬다. 광복 이후부터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애써 외면하였던 우리 현대사의 한 면을 과감히 드러낸 작품, 소설 태백산맥을 기념하는 벌교의 태백산맥문학관으로 가 보자. 소설 태백산맥의 내용은 이러하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과 함께 좌익에 의해 장악되었던 벌교가 다시 진압 세력인 우익 군경의 수중에 들어간다. 이 와중에 좌익과 우익의 갈등은 심해지고, 무고한 사람들까지 많은 피해를 입는다. 더구나 이승만 정권의 농지개혁안에 대한 소작인들의 반발은 날로 극심해진다. 이럴 즈음 1950년 6·25의 발발과 함께 벌교는 다시 좌익 세력들에 의해 장악되고, 이들은 인민의 해방을 감격스럽게 맞이하지만 또다시 살육의 참상을 겪는다. 전쟁이 고착화되자 퇴로가 막힌 인민군과 빨치산 세력은 지리산 일대에 근거지를 두고 무장 투쟁을 계속하지만, 군경의 진압 작전에 따라 이들의 투쟁은 점차 무력해지고 빨치산 대장 염상진은 퇴로가 막히자 결국 부하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하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바로 이러한 소설 태백산맥의 강렬한 주제와 메시지를 다시금 곱씹을 수 있는 공간이 벌교에 위치한 태백산맥 문학관이다. 2008년 11월에 개관한 태백산맥 문학관은 자리 선정도 제대로다. 소설 첫 시작 장면인 현부잣집과 소화의 집이 있는 벌교 제석산 끝자락에 터를 잡아 개관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문학관은 소설 태백산맥이 땅속에 묻혀있던 역사 진실을 세상에 드러낸 주제의식을 형상화하기 위하여 산자락을 파내서 특이하게 설계된 건물로 세워졌다. 문학관은 총 1층과 2층으로 나뉘는 데, 연면적이 1,375.8㎡에 이르며 건축면적만으로는 979.7㎡에 달하는 넓이다. 이곳에는 작가 조정래의 육필원고 등 증여 작품을 포함하여 159건 719점이 전시되어 있다. 따라서 소설 태백산맥의 독자들에게는 작품의 깊이를 더더욱 음미하고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이 충분히 마련된 셈이다. 건물 내부는 총 6개의 마당으로 구역이 나뉘어지는 데, 첫째 마당에는 태백산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자료조사, 집필, 작품의 탄생을 알린다. 둘째 마당에는 16,500매에 달하는 작품의 육필 원고를 셋째 마당에는 작품을 둘러싼 이적성 시비와 논란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넷째 마당에는 작가 조정래의 문학 세계를 그리고 있다. 다섯째 마당에는 문학 사랑방이 있으며 여섯째 마당에는 작가의 방으로 꾸며져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소설 태백산맥을 읽은 독자라면 한 번은 방문해도 좋을. 2. 누구와 함께? - 태백산맥의 배경을 이룬 역사적, 문학적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지인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좋다. 3. 가는 방법은? -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홍암로 89-19. 벌교 버스터미널 지나자마자 좌회전(150M 지점) 4. 감탄하는 점은? - 태백산맥의 육필 원고와 치열한 작가의 고민의 흔적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늘 한산한 편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작가의 육필 원고. 건물이 지닌 건축학적 아름다움.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벌교는 꼬막정식이 유명하다. 원조수라상꼬막정식, 외서댁 꼬막나라, 제석꼬막회관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tbsm.boseong.go.kr/main.ph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낙안읍성, 보성 녹차밭, 순천만 정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소설 태백산맥을 읽은 독자라면 의미가 있는 장소다.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과 장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소설의 재미를 뛰어 넘어 우리 민족 역사가 건너온 질곡의 세월을 느끼게 해 준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구석구석 찾는 재미…떠나볼까 시간여행

    구석구석 찾는 재미…떠나볼까 시간여행

    1905년 경부선 개통, 1914년 호남선 개통으로 ‘한밭’은 철도를 중심으로 한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인 대전(大田)으로 급성장한다. 교통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행정 수요가 이곳으로 몰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대전 원도심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 14개에 이른다. 그만큼 대전이 근현대사의 교통·행정의 중심 도시로 성장해 왔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대전 원도심 여행은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하철 중구청역에서 내리면 바로 전시관을 찾을 수 있다. 대전역과 두 정거장 거리여서 외지인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전시관을 둘러본 뒤 중앙로를 따라 대전역으로 가는 길 곳곳에서 근현대사 건물과 빵집 ‘성심당’ 등 원도심 맛집을 만날 수 있다. 도시 곳곳에 숨은 근현대사 건물들을 하나하나 찾는 1920~1930년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나 보자.①웅장한 유럽식 건축양식 ‘근현대사전시관’ 대전을 오랜만에 찾는 사람이라면 대전근현대사전시관보다는 충남도청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등록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옛 충남도청은 내포신도시로 도청이 이전된 후 현재 근현대사 전시관으로 탈바꿈해 시민들의 소중한 역사 공부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웅장한 유럽식 건축양식이 돋보이며 일본 시즈오카현 청사 본관과 비슷해 1930년대 관공서 건축양식을 보여 주는 자료로도 평가된다.건물 벽돌에 새겨진 일본의 상징인 벚꽃 모양을 본 이들은 다소 불쾌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또한 역사가 남긴 유산이다.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벽돌을 제거하려 했지만, 너무 단단해서 결국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었을 만큼 웬만한 현대 건축물보다도 튼튼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건물이기도 하다. 본관 1층은 구한말 이후 대전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고, 대전형무소에서 출옥하는 안창호 선생의 사진도 볼 수 있다. 영화 ‘변호인’ 등의 촬영 장소이기도 했던 고풍스러운 계단을 걸어 올라간 2층에는 역대 도지사들의 옛 물품과 1920년대 제작된 무게 1t짜리 금고 등이 전시돼 있다.②일제시대 건축 보고 싶다면 ‘관사촌거리’로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10분 남짓 거리에는 관사촌이 있다. 옛 충남도지사 공관과 부지사 관사, 국장급 관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관사들이 이처럼 함께 모여 마을을 이룬 사례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조성 당시에는 일제 고위 관료들이 머물렀고, 6·25 전쟁 때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임시 거처로도 활용됐다. 서양식과 일본식이 혼합된 1930년대 건축양식을 보여 주는 건물로, 옛 충남도청과 함께 드라마,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대전시가 충남도에서 공관을 매입해 도시재생 사업에 따라 ‘테미오래’라는 이름의 문화 공간으로 새로운 탄생을 준비 중이다. 올해 말쯤 시민과 관광객에게 공개된다.③도심 속 퍼지는 청아한 종소리 ‘대흥동성당’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형상을 한 대흥동성당은 고딕 양식의 적벽돌 구조가 대부분인 여느 성당 건축물과 달리 시멘트 벽돌로 마감해 기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서울 명동성당보다 큰 성당을 지으려고 했지만 완공하고 난 뒤 명동성당의 실제 크기를 잘못 측정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명동성당보다 작게 지어졌지만, 개발이 더뎠던 주변 원도심과는 오히려 잘 어울려 보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당시는 대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했다. 대전 원도심 투어를 하는 이들은 낮 12시나 오후 7시 대흥동성당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기도 한다. 1969년부터 매일 같은 시간에 종을 치며 50년째 성당의 종지기로 살아온 조정형(71)씨는 이 동네에서 이미 유명인사다. 한번은 성당 종소리가 달라졌다며 주민들의 항의가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그가 성지순례로 자리를 비운 사이 ‘대타’가 종을 쳤던 것이다. 소리가 달라졌음을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그의 종소리는 주민들에게 친숙하고도 독특하다. 대흥동성당은 등록문화재 643호로 지정돼 있다.④예술 공간으로 재탄생 ‘옛 대전여중 강당’ 대흥동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위로를 얻은 이들은 인근 대전갤러리로 가보자. 무엇보다 한국 고유의 초가지붕을 연상케 하는 대전갤러리의 지붕은 부드러운 곡선미로 보는 이의 마음을 잔잔하게 한다. 이곳은 원래 1937년 대전여중 강당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2003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는 지역 예술가를 위한 문화전시관인 대전갤러리로 재탄생했다. 대전갤러리는 근대건축물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시대의 변화 속에서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창조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⑤슬픈 역사 홀로 지켜본 ‘옛 대전형무소 망루’ 대전 중촌동 옛 대전형무소 자리의 망루는 ‘왜 빨리 철거하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흉측한 외관을 하고 있다. 이곳은 일제시대 때 우리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6·25 전쟁 때는 좌익과 우익이 번갈아가며 교도소를 장악해 서로를 죽인 학살의 장소였다. 슬픈 역사를 지켜봐 왔던 망루는 원래 동서남북에 1개씩 모두 4개가 있었지만 현재는 대전 자유회관 옆에 1개만 남아 있다. 시신을 생매장했던 망루 인근의 우물 자리도 참혹했던 역사의 증인이다. 옛 대전형무소 자리의 역사적 의미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모임인 ‘중촌마을 역사탐험대 그루터기’에 의해 재조명됐다. 대전시가 옛 대전형무소 관광자원화 조성공사를 올해 말까지 진행하고 있다. 대전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사진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 제공 ■여행수첩(지역번호 042) →맛집:대흥동성당 인근 원조진로집(226-0914)은 두부 두루치기의 원조로 알려진 식당으로 매콤한 두부 두루치기와 오징어 두루치기가 주메뉴다. 원래 가락국수를 팔던 조그만 포장마차에서 술안주로 두부 요리를 만들던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귀빈돌솥밥(255-9198)은 전주식 돌솥비빔밥 전문점으로 정갈한 맛이 일품이다. ‘모든 나물은 리필이 되니 많이 많이 드세요’라고 적힌 수저통 메모에서 식당의 인심이 전해진다.
  • 아쉬움 남는 이정후의 태극마크 불발

    아쉬움 남는 이정후의 태극마크 불발

    이정후(넥센)에게도 ‘선동렬호’의 자리는 허락되지 않았다. 선동렬 야구국가대표팀 감독 및 코칭스태프는 1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코치진 회의를 마친 뒤 최종엔트리 24명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이정후의 이름은 없었다. 외야수에는 손아섭(롯데), 김현수(LG), 박건우(두산), 김재환(두산), 박해민(삼성)이 자리했다. 모두 쟁쟁한 선수들이었지만 작년 신인왕이면서 올해도 .321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이정후(넥센)의 대표팀 합류 불발은 의외라는 평가가 많다. 이정후는 좌우 타자 균형을 맞추려는 코칭스태프의 시도탓에 아깝게 고배를 들었다. 김현수(LG)가 좌익수, 손아섭(롯데)가 우익수로 일찌감치 한자리씩을 차지한 뒤 이정후는 중견수 후보로 거론되긴 했었다. 그런데 면면을 살펴보다 보니 김현수, 손아섭, 김재환, 박해민이 모두 좌타자인지라 마찬가지로 왼팔을 쓰는 이정후가 배제된 것이다. 대신 5월 타격 부진을 딛고 6월 반등에 성공하며 타율 .303을 기록중인 박건우가 남은 자리를 차지했다. 넥센 팬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결과다. 타율만 따지면 같은 좌타자 중에서 이정후가 김현수(.370), 손아섭(.348)에 비해선 낮지만 박해민(.304), 김재환(.302)보다는 높기 때문이다. 좌타자란 이유뿐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고려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더군다나 만약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딸 경우 병역면제의 혜택도 입을 수 있는데 이정후는 아쉽게 기회를 놓쳤다. 오죽하면 대표팀의 이종범 코치가 ‘부자 국가대표’에 대한 일부 따가운 시선을 우려해 슬쩍 양보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선 감독은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져서 많이 뽑지 못해 야구인으로서 아쉽다”며 “기량이 좀처럼 못 올라오는 것은 기본기가 충실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안타까운 현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정후의 경우 우타자가 필요해 마지막에 아쉽게 빼게 됐다.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프로야구] 양석환 역전 2루타… 감독님께 안긴 500승

    [프로야구] 양석환 역전 2루타… 감독님께 안긴 500승

    LG, 한화에 시즌 첫 위닝 시리즈 류중일, 873경기 만에 ‘대업’LG가 짜릿한 역전극을 펼치며 한화에 시즌 첫 위닝 시리즈를 거뒀다. 류중일 감독은 개인 통산 500승을 채웠다. LG는 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홈경기에서 한화를 6-5로 눌렀다. 4-5로 끌려가던 8회말 1사 후 한화 우완 불펜 안영명을 상대로 김현수와 채은성의 연속 안타로 1, 2루 기회를 잡은 뒤 후속 타자 양석환이 풀 카운트 승부 끝에 슬라이더를 받아 쳐 좌중간 담을 직접 때리는 2타점 역전 2루타를 쳤다. 마무리 정찬헌은 1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를 지켰다. 기선은 한화가 잡았다. 1회초 선두타자 이용규의 좌전 안타, 백창수의 좌익수 쪽 2루타로 만든 무사 2, 3에서 이성열의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뽑고 1사 3루에서 재러드 호잉의 좌익수 희생플라이로 추가점을 냈다. 2회에는 LG 유격수 오지환의 치명적인 실책이 나왔다. 2사 2루에서 하주석의 강한 타구가 오지환 앞에서 튀어 올랐고, 공은 글러브를 맞고 외야 쪽으로 흘렀다. 기록상 안타였지만, 오지환의 수비가 아쉬웠다. 이어진 2사 1루에서는 이용규의 땅볼 타구를 잡은 오지환이 2루수 정주현이 아직 베이스에 들어오지 못했는데도 송구해 공이 1루 더그아웃 근처까지 흘렀다. 이사이 1루 주자 하주석이 홈까지 밟았다. LG는 0-4로 뒤진 2회말 1사 후 채은성과 양석환의 연속 타자 홈런으로 추격을 시작했다. 한화에서도 실책이 나왔고, 이게 추격의 빌미가 됐다. 유격수 하주석이 3회말 선두타자 정주현의 땅볼을 잘 잡고도 1루에 악송구한 것. LG는 이형종의 좌전 적시타로 1, 3루 기회를 잇고 박용택의 적시타로 한 점을 만회한 뒤 이어진 1, 3루에서 김현수가 2루 땅볼로 한 점을 보태 4-5로 따라붙었다. LG는 5회, 6회 득점 기회를 놓쳤지만 8회 다시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양석환은 추격 솔로포와 역전 2루타 등 4타수 3안타 3타점으로 맹활약했다. 류중일 감독은 873경기 만에 개인 통산 500승(361패 12무)을 채웠다. KBO리그 역대 11번째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프로야구] 빨간 마법 열손가락

    [프로야구] 빨간 마법 열손가락

    7회초 무사 1·2루 때 타석에 들어선 멜 로하스 주니어(KT)가 삼성의 구원투수 우규민의 3구째 시속 137㎞짜리 직구를 힘차게 밀어쳤다. 쭉쭉 뻗은 타구는 좌익수 왼쪽까지 날아갔다.그사이 냅다 뛴 로하스는 2루에 안착하더니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더그아웃에 있던 김진욱 KT 감독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KT 구단 역사상 길이 남을 첫 사이클링히트(한 타자가 한 경기에서 단타·2루타·3루타·홈런 모두 기록)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로하스는 29일 대구에서 열린 KBO리그 삼성과의 원정경기에서 2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전해 1회에 투런 홈런과 3루타, 5회에 단타, 7회에 2루타를 엮어 사이클링히트를 완성해 냈다. 2015년 1군 무대에 뛰어든 ‘막내 구단’ KT 역사상 첫 사이클링히트다. 올 시즌 KBO리그 첫 번째이자 통산 25번째 대기록이다. 외국인 타자로만 따질 경우 매니 마르티네스(삼성·2001년 5월), 에릭 테임즈(NC·2015년 4·8월), 로저 버나디나(KIA·2017년 8월)에 이어 사이클링히트를 만든 네 번째 선수가 됐다. 지난해 6월 조니 모넬의 대체 선수로 KT 유니폼을 입은 로하스는 부침을 이겨내고 대기록을 완성했다. 첫해에 한국 무대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타율이 한때 .160까지 떨어졌지만 코치진의 의견을 받아들여 타격폼을 조금씩 수정했다. 그결과 .301이라는 준수한 타율로 데뷔 시즌을 마무리했다. 2년차를 맞은 올해도 부진을 겪으며 이달 중순엔 8번 순번까지 밀리기도 했지만 이내 타격감을 되찾았다. 이날도 로하스는 1회에만 무려 4타점을 쓸어담으며 팀의 14-4 대승을 만드는 데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다섯 번 타석에 들어서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출루했다. 4타수 4안타(1홈런) 5타점 2득점 1볼넷의 더할 나위 없는 맹활약이었다. 로하스는 “아직 실감 나지 않지만 KT 창단 첫 기록의 주인공이 돼 너무 기쁘다”며 “마지막 타석에서 2루타에 욕심부리지 않고 집중한 게 사이클링히트를 치게 된 비결 같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MLB] 19세 소토, 형님들 놀래킨 3점포

    [MLB] 19세 소토, 형님들 놀래킨 3점포

    미국프로야구(MLB) 현역 최연소 선수인 후안 소토(만 19세 208일·워싱턴)가 데뷔 두 번째 타석에서 ‘대포’를 쏘며 형님들을 놀라게 만들었다.소토는 22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 내셔널스 파크에서 샌디에이고를 맞아 6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전해 0-0으로 맞선 2회 무사 2·3루 때 초구를 때려 왼쪽 담장을 훌쩍 넘겼다. 비거리 129m를 찍었다. 전날 데뷔전에서 대타로 1타석 나섰다가 삼진으로 물러나더니 이날 괴력을 뿜었다. 이로써 2012년 9월 홈런을 기록한 브라이스 하퍼(당시 19세 211일·워싱턴) 이후 최근 6년 새 홈런을 때린 유일한 10대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소토는 “마이너리그에서 하던 대로 열심히 뛰다 큰 환호성을 듣고서야 홈런이란 걸 알았다”며 얼떨떨하게 소감을 밝혔다. 하퍼로부터 “소토는 매우 특별한 선수”라는 말도 들었다.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에서 태어난 소토는 2015년 워싱턴과 15만 달러(약 1억6000만원)에 계약하며 빅리그 꿈을 키웠다. 올 시즌 마이너리그 최하위 리그인 싱글A에서 출발한 뒤 더블A까지 빠르게 올라오며 기대감을 키웠다. 이날도 3회 유격수 앞 땅볼, 7회 좌익수 라이너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6회말 중전 안타를 날리는 등 4타수 2안타(1홈런) 3타점 2득점을 뽑으며 10-2 승리를 주도했다. 시즌 타율은 .400(5타수 2안타)을 달렸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데뷔 두 번째 타석에서 3점 홈런, 소토 19세 괴물 맞네

    데뷔 두 번째 타석에서 3점 홈런, 소토 19세 괴물 맞네

    만 19세로 전날 미국프로야구(MLB) 현역 최연소 데뷔전을 치른 후안 소토(워싱턴)가 21일(잏하 현지시간) 데뷔 두 번째 타석에서 3점 홈런을 날렸다. 소토는 워싱턴의 내셔널스 파크로 불러 들인 샌디에이고와의 3연전 첫 경기에 좌익수 겸 6번 타자로 선발 출전해 2회 무사 주자 1, 3루 상황에 첫 타석에 들어서 상대 선발 투수 로비 에를린의 초구를 그대로 받아쳐 422피트를 날아가 왼쪽 담장을 넘긴 스리런으로 연결했다. 당연히 더그아웃에 일단 들어갔다가 관중의 기립박수에 다시 나와 답례했다. 팀은 그의 선제 결승 홈런을 앞세워 10-2 완승을 거뒀다.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에서 태어난 지 19년 208일로 2012년 9월 2일 주릭슨 프로파(텍사스)가 데뷔 타석에서 홈런을 날렸을 때 19년 195일이어서 역대 두 번째 어린 나이에 데뷔 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물론 내셔널스-엑스포스 프랜차이즈 선수로는 최연소 데뷔 홈런이다.싱글 A의 31타석을 시작으로 어드밴스드 싱글 A, 더블 A 등 세 등급 마이너리그 39경기에 나와 타율 .362에 14개의 홈런을 날려 지난 주말 세 리그를 승격해 ‘콜 업’됐다. 멀티 플레이어 하위 켄드릭이 이틀 전 아킬레스건을 다친 데다 좌익수 애덤 이턴(발목)과 백업 자원 브라이언 굿윈(손목), 유망주 빅터 로블스(팔꿈치)와 라파엘 바티스타(무릎) 등 외야수 자원들이 줄줄이 부상 중인 바람에 불려 올라왔다. 그는 전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경기 8회에 대타로 데뷔 타석에 나와 상대 구원 에릭 괴델에게 삼진을 당했는데 이날은 첫 타석에서 3타점을 올린 데 이어 3회말에는 유격수 앞 땅볼로 물러났지만 6회말 중전 안타를 날리고 7회말 좌익수 라이너 타구로 물러나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2015년 워싱턴 구단과 150만 달러에 계약한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ESPN 키스 로로부터 워싱턴 선수로는 두 번째이자 전체 42번째 유망주로 꼽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프로야구] ‘슬로’ 임찬규 LG 8연패 끊었다

    [프로야구] ‘슬로’ 임찬규 LG 8연패 끊었다

    박용택·김현수 활약 더해 롯데 제압LG가 충격의 8연패 늪에서 벗어났다. LG는 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8 KBO리그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거센 추격을 뿌리치고 3-2로 신승했다. 지난달 29일 삼성전 패배로 시작된 8연패에서 마침내 탈출했다. 선발 임찬규는 6이닝 8피안타, 무사사구, 5탈삼진, 1실점으로 시즌 5승(3패)째를 거뒀다. 직구 최고 시속은 142㎞에 불과했지만 낙차 큰 커브와 예리한 체인지업으로 타이밍을 빼앗았다. 타선에서는 중심 타자인 박용택과 김현수가 각각 1타점, 2타점으로 연패 탈출에 큰 힘을 보탰다. LG는 1회 이형종이 좌익 선상 2루타를 때렸고 김현수가 중전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반격에 나선 롯데는 3회 2사 2루에서 손아섭의 중전 적시타로 1-1 균형을 맞췄다. LG도 다음 공격에서 리드를 되찾아 왔다. 3회 1사 후 이형종, 오지환, 박용택의 연속 안타와 김현수의 3루 땅볼을 묶어 2득점을 추가했다. 끌려가던 롯데는 8회 손아섭의 2루타와 정훈의 적시타로 1점 차로 추격했다. 그러자 LG는 마무리 정찬헌을 조기에 투입해 남은 아웃카운트 두 개를 모두 유격수 땅볼로 처리해 급한 불을 껐다. 정찬헌은 9회에도 삼자범퇴로 마무리해 8연승 뒤 8연패 악몽을 끝냈다. 고척에서는 한화가 넥센을 4-1로 눌렀다. 타선에선 하주석과 김태균의 투런포가 터졌고, 마운드에선 제이슨 휠러가 5와3분의1이닝 동안 삼진 8개을 뽑으며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창원에서는 SK가 NC를 6-5로 힘겹게 이겼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MB 정부 댓글 공작 최초 기획은 기무사…청와대 보고 문건 나와

    MB 정부 댓글 공작 최초 기획은 기무사…청와대 보고 문건 나와

    이명박 정권 시절 국가정보원, 경찰, 국방부 등 권력기관을 동원한 댓글 공작을 국군 기무사령부(기무사)가 최초로 기획한 정황을 담은 문건이 나왔다.한겨레는 12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문건을 공개하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 문건은 기무사가 이명박 정부 출범 3개월여 뒤인 2008년 6월 4일 청와대에 보고한 A4 3장짜리 보고서로 ‘참고자료(6.4 청와대 보고)’라는 제목이다. 이 문건에서 기무사는 국정원·경찰청·합참·기무사 등 ‘기관별 사이버 인력’ 현황을 정리한 뒤 ‘비노출 특수팀 운영’을 건의했다. “좌익세(력)의 반정부 선전·선동에 대응, 정부 지지 여론 확산”을 특수팀의 임무로 설정하고 ▲좌익성향 기사·칼럼에 대응하는 성명·논평 게시 ▲세미나 등을 통한 홍보 및 좌파 불법행위 비판 ▲새로운 엔지오(NGO)를 만들어 대학생 교육·조직화 등 단계별 활동을 제시했다. 기무사는 이 조직의 운영과 관련해 “정부의 직접 지원(은) 지양”하고 “정부 광고 및 용역 알선 등 간접지원”해야 한다며 보안을 강조했다. 또 “인터넷상에서 좌익세와 이념·사상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전투적 미디어”를 설립해 “특수 민간팀 운영과 병행”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기무사는 특수팀 팀장으로는 “좌익 추적 전문 프리랜서 기자”라는 김성욱씨를 추천했다. 김성욱씨는 실제로 이후 국정원이 2008년 12월부터 2009년 9월까지 수천만원을 지원한 민간 여론조작 조직 ‘알파팀’의 팀장을 맡았다. 결국 ‘비노출 특수 민간팀’이었던 알파팀의 기획자는 기무사였고 국정원은 실행자였던 셈이다. 이제까지 이명박 정권 시절 권력기관을 동원, 전방위적으로 이뤄진 댓글 여론 조작은 청와대와 국정원이 주도해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기획을 청와대가 했는지, 또는 국정원이 제안한 것인지는 그 동안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었다. 이번 기무사 문건으로 국정원(당시 김성호 원장)이 2008년 말부터 댓글공작팀인 ‘알파팀’을 조직하고, 2009년 원세훈씨가 국정원장에 취임해 댓글 공작을 본격 지휘하기에 앞서 기무사가 댓글 여론 조작 계획을 청와대에 제공했음을 보여준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당, 서울 김문수·대구 권영진 등 후보 확정… ‘올드보이 vs 안정감’ 평가 엇갈려

    한국당, 서울 김문수·대구 권영진 등 후보 확정… ‘올드보이 vs 안정감’ 평가 엇갈려

    자유한국당의 6·13 지방선거 후보 라인업이 사실상 확정됐다. 지지율 약세의 불리한 상황 속에 가장 먼저 후보를 무대 위로 올렸지만 ‘친박(박근혜)계 올드보이’를 중앙 정치 무대로 복귀시켰다는 비판과 ‘안정감 있는 기성 정치인’으로 역전승을 노려볼 만하다는 평가가 엇갈린다.한국당은 11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의 공천을 확정하는 등 17개 광역단체 중 호남 3곳(광주·전북·전남)을 뺀 14곳의 후보를 확정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김 후보 외 권영진 대구시장 후보, 이철우 경북지사 후보, 송아영 세종시장 후보를 비롯해 30여명의 기초단체장 후보 공천을 확정했다. 인재 영입에 난항을 거듭하면서 한국당의 주요 광역단체장 후보 자리는 ‘올드보이’들에게 돌아갔다. 실제 14명의 광역단체장 후보 중 9명이 전·현직 출신이다. 김 전 지사를 비롯한 김태호(경남), 남경필(경기), 이인제(충남), 유정복(인천), 서병수(부산), 권영진(대구), 김기현(울산), 박성효(대전) 후보가 해당한다. 이인제, 유정복, 박경국(충북), 정창수(강원도) 후보는 중앙 부처 장차관 출신이다. 이인제 후보는 김영삼 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냈고, 유정복 후보는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 각각 농림축산식품부,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냈다. 박경국 후보는 안전행정부 1차관, 정창수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국토해양부 1차관 출신이다. 한국당은 행정 경험을 갖춘 후보를 대거 투입해 유권자에게 정책의 연속성이나 행정력, 안정감을 강조하겠다는 전략이다. 홍준표 당 대표도 최근 연일 “지방선거는 행정력을 갖추고,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나가야 한다. 검증된 일꾼이 가장 안정적 후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올드보이 전략은 새 피 수혈로 경쟁력을 높이는 선거와는 거리가 있다. 특히 김문수, 이인제 후보 등은 지난해 탄핵 국면에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는 등 ‘친박’ 이미지가 강해 ‘표 확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문수 후보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서울시장 출마식에서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별건 수사를 계속해 징역 24년이 나왔는데 과도한 점이 상당히 있다”면서 “그런 식으로 털어서 안 나올 사람이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태극기 집회 등의 행보로 표 확장성이 떨어지지 않겠나’라는 지적에 “표보다 중요한 게 진리라고 생각했다. 한때 좌익의 삶을 살았지만 그것이 전 세계 조류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뼈아프게 느꼈다. 제가 느낀 진실을 안다면 중도도 공감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류현진 ‘괴물본능’ 되찾다…오클랜드전 6이닝 8K 시즌 첫 승 신고

    류현진 ‘괴물본능’ 되찾다…오클랜드전 6이닝 8K 시즌 첫 승 신고

    6이닝 90개 공 던져 삼진 8개…안타·볼넷은 1개씩선발 두 경기 만에 무실점 첫 승 신고, 평균자책점도2.79↓류현진(31·LA 다저스)이 첫 등판의 부진을 깔끔히 씻어내고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류현진은 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오클랜드와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홈경기에 시즌 두 번째 선발 등판, 6이닝 동안 안타와 볼넷 하나씩만 내주고 삼진 8개를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투수가 됐다. 90개의 공을 던진 류현진은 다저스가 4-0으로 앞선 6회말 무사 1, 2루 때 자신의 타석에서 대타 족 피더슨으로 교체됐다. 결국 다저스가 4-0으로 이겨 류현진은 시즌 첫 승리를 수확했다. 5회 2사 이후 스티븐 피스코티의 중전안타가 이날 오클랜드의 첫 안타였을 만큼 류현진의 투구는 위력적이었다. 류현진이 날카로운 컷 패스트볼(커터)을 앞세워 공격적인 투구를 하고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제구력까지 되찾으면서 오클랜드 타자들의 방망이는 마냥 헛돌았다. 이날 류현진의 빠른 볼 구속은 MLB닷컴 기준으로 시속 91.9마일(약 148㎞)까지 나왔다. 포수 오스틴 반스와 배터리로 시즌 첫 호흡을 맞춘 류현진의 영리한 볼 배합도 돋보였다. 류현진은 타석에서도 시즌 첫 볼넷과 안타로 멀티 출루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류현진은 지난 3일 애리조나와의 올해 정규시즌 첫 등판에서 3⅔이닝 5피안타 3실점으로 부진해 선발진 잔류 여부마저 불투명해진 상황이었다. 더욱이 당초 9일에서 12일로, 다시 11일로 등판 일정이 두 차례나 변경되는 ‘5선발의 비애’를 겪은 뒤에야 시즌 처음 홈 경기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류현진은 반등의 발판을 놓았다. 시즌 평균자책점을 7.36에서 2.79로 뚝 떨어뜨린 류현진은 17∼19일 샌디에이고와의 원정 3연전 중 한 경기에 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류현진은 1회 볼넷 하나를 허용했지만 루킹 삼진 두 개를 잡아내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선두타자 마커스 세미언을 좌익수 뜬공으로 보낸 뒤 맷 채프먼을 풀카운트 끝에 볼넷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제드 라우리를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으로 낮게 들어가는 커터로 3구 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크리스 데이비스도 4구째 바깥쪽에 꽉 찬 커터에 방망이를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삼진을 당했다. 역시 왼손 투수인 션 머나야와 맞선 다저스 타선은 1회말 선두타자 크리스 테일러에 이은 코리 시거의 연속 솔로 홈런으로 류현진에게 2-0의 리드를 안겼다. 류현진은 2회 맷 올슨에게는 낙차 큰 커브 결정구로 역시 루킹 삼진을 잡아내며 세 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히고 조너선 루크로이, 피스코티를 각각 유격수 앞 땅볼로 아웃시켜 삼자범퇴로 끝냈다. 3회에도 류현진의 ‘삼진 쇼’가 이어졌다. 첫 타자 제이크 스몰린스키를 3구째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을 잡았고, 머나야를 2루수 땅볼로 처리한 뒤 세미언에게는 높게 던진 커터로 다시 헛방망이질을 유도했다. 타순이 한 바퀴 돌았지만 오클랜드 타자들은 여전히 류현진을 공략하는 데 애를 먹었다. 류현진은 4회 2∼4번의 상대 중심타선을 삼자범퇴로 요리했다. 4번 타자 데이비스는 두 타석 연속 류현진의 커터에 루킹 삼진을 당했다. 류현진은 5회 2사 후 피스코티에게 중전안타를 맞아 이날 첫 피안타를 기록했지만 스몰린스키의 빗맞은 타구를 2루수 엔리케 에르난데스가 호수비로 걷어내 큰 위기 없이 넘겼다.6회에는 대타 트레이시 톰슨과 세이먼을 잇달아 삼진으로 돌려보내는 등 다시 세 타자만 상대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다저스는 6회말 맷 켐프의 솔로포와 로건 포사이드의 적시타로 두 점을 보태 류현진의 마음을 더 편하게 해줬다. 2회말 2사 후 첫 타석에서 볼넷을 골라 출루한 류현진은 4회말 2사 1루에서 깔끔한 좌전 안타를 쳐 지난해 8월 25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전 이후 229일 만에 안타를 추가했다. 6회말 자신의 타석에서는 피더슨에게 방망이를 넘겼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치권, 4·3 진상규명·특별법 처리 촉구

    제주 4·3사건 70주년을 맞이한 3일 여야는 올바른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국회에 계류 중인 제주4·3특별법이 처리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를 높이 평가하면서 제주4·3특별법 처리를 거듭 촉구했다. 추미애 대표는 “민주당이 앞장서서 여기(4·3특별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백혜련 대변인도 “70만 제주 도민의 숭고한 희생과 염원이 담긴 특별법 개정에 야당의 적극적이고 진심 어린 협력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동시에 제주 4·3사건을 ‘무장폭동’으로 규정했다. 홍준표 대표는 “제주 양민들이 무고한 죽음을 당한 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이 4월 3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날을 제주 양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날로 잡아 추념한다는 것은 오히려 좌익 폭동과 상관없는 제주 양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8년 CNN과 인터뷰할 때 제주 4·3은 공산폭동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은 제주 4·3사건을 “우리 역사 최대의 홀로코스트”라고 규정했다. 최경환 평화당 대변인은 “4·3 항쟁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구체적 계획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4·3사건특별법’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의동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제주 4·3 항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과거 냉전 시기 좌우 진영의 극한 대립에 있다”면서 “국민 통합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제주 4·3 항쟁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논평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 12년 만에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완전한 해결’을 언급했다”며 “이를 위해 ‘4·3사건특별법’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뉴스를부탁해]“DJ도 제주 4·3은 공산폭동이라고 했다?”

    [뉴스를부탁해]“DJ도 제주 4·3은 공산폭동이라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제주 4·3은 공산폭동이라고 말 한 바 있습니다”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이 또 논란입니다. 홍 대표는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해 희생자를 기렸습니다. 그리고 두어시간 뒤인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홍 대표는 “제주4·3추념식이 열리는 4월 3일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위원장인 김달삼이 350명 무장 폭도를 이끌고 새벽 2시에 제주 경찰서 12곳을 습격했던 날”이라고 적었습니다. 이어 “이 날을 제주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날로 잡아 추념한다는 것은 오히려 좌익폭동과 상관 없는 제주 양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8년 CNN과 인터뷰 할 때 제주4·3은 공산폭동이라고 말 한 바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팩트체크가 필요한 대목입니다.예전 신문과 CNN 웹사이트, 구글 등 포털사이트를 뒤져 봤습니다. 하지만 제주4·3 관련 언급을 인용보도한 기사를 찾지 못했습니다. CNN 웹사이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대중평화센터에 물어봤더니 “당시 인터뷰 원문을 구하려고 노력했으나 구하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구글을 검색하니 ‘김대중사이버기념관’이라는 웹사이트에서 고 김 전 대통령이 1998년 11월CNN과 기자회견한 내용을 한글로 번역한 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평화센터에 따르면 이 웹사이트는 김 전 대통령의 팬들이 만든 것이라 ‘공식’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극우단체들이 해당 사이트의 인터뷰 일부를 발췌해 ‘전가의 보도’처럼 쓰고 있기에 내용을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CNN의 질문은 이랬습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1948년 제주 4·3사태에 대한 진상을 서로 언제 공개할 방침인가?”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제주 문제가 국회에 청원돼 있다. 정부로서는 과거의 억울한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문제의 대목은 다음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면서 “이 문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해서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나옵니다.홍 대표와 극우 성향의 시민단체 등은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라는 말에 꽂힌 것 같습니다. 앞뒤 맥락을 자르고 그 부분만 물고 늘어집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 답변의 무게는 되려 뒤에 실려 있다고 봐야 합리적입니다. 시작이 공산주의자 폭동이라 할지라도 무고한 많은 이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라는 게 답변의 취지지요.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은 진실을 밝히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이 정부의 할 일이라고 분명히 짚었습니다. 극우의 생각은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보수 성향의 ‘제주 4·3진실규명을 위한 도민연대 준비위원회’는 지난 1월 17일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국회에 제출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과 관련해 준비위는 “4·3의 성격부터 논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준비위는 “4·3특별법 개정안은 4·3의 정의를 경찰과 서북청년회의 탄압에 대한 제주도민의 저항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해 일으킨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김 전 대통령의 CNN 인터뷰를 제시합니다.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도 김 전 대통령의 CNN 인터뷰를 “거짓의 DNA가 있는 좌파들이 공산당 폭동 부분을 떼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고 왜곡했다”고 주장합니다. 김 전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이 이렇게 인용되는 것에 대해 김 전 대통령 측은 강력히 반발합니다. 박한수 김대중평화센터 대변인 겸 기획실장은 지난 1월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밝힌 제주 4·3사건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습니다.“제주 4·3사건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제주 지역에서 발생한 양민 학살 사건이다. 나는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수십년 동안 ‘폭도’, ‘빨갱이’들로 매도되어 살아온 것에 국가가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3사건은 현대사의 치부이자 살아있는 우리들의 수치다.” 박 대변인은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일부 단체에서 김 전 대통령의 진의와는 별도로 일부 내용을 악의적으로 발췌해 왜곡하고 있다.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이자 억울한 희생자와 유족에 또 다른 아픔을 주는 행위”라면서 “홍 대표의 페이스북 발언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제주 4·3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제주4·3연구소에 따르면 “4·3의 배경은 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 착종돼 있어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4·3은 1948년 4월 3일 딱 하루 벌어지고 끝난 일이 아닙니다. 제주4·3특별법은 4·3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합니다.1947년 3월 1일 경찰이 시위군중에 발포해 6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학계는 이 사건을 4·3사건의 도화선으로 봅니다. 이후 남로당 제주도당은 경찰 발포에 항의하는 3.10 총파업을 주도합니다.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 이상이 참여했습니다. 당시 남한에 주둔하던 미군정은 제주도 상황을 심상치 않게 보고 군을 투입해 파업 주동자를 검거하는 등 장기간 남로당 진압에 나섭니다. 이에 남로당이 이끄는 350명의 무장대는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제주의 12개 지서와 우익단체를 공격하며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경찰과 서북청년회의 탄압 중지, 통일정부 수립 등이었습니다. 미군정은 강도 높은 진압작전으로 맞섰습니다.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주도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본토 군 병력을 제주도에 증파합니다. 그러나 여수 14연대가 반기를 들면서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제주에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은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면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엄포를 내립니다. 중산간지대 마을들이 이른바 빨치산, 게릴라부대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고 보고 대량학살에 나선 것입니다. 무자비하고 무차별한 학살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계속 이어졌습니다. 보도연맹 가입자, 입산자 가족들이 대거 예비검속돼 죽임을 당했습니다.무려 7년 7개월 동안 계속된 4·3은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끝났습니다. 다시 홍 대표의 페이스북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홍 대표는 “4월 3일은 양민의 무고한 죽임을 당한 날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4·3 추모정신의 본질을 흐리고 이념의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한 무리한 해석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홍 대표는 “4·3특별법 개정할 때 이를 시정해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날을 추모일로 고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홍 대표에 묻고 싶습니다. 그럼 3만명이 넘는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날은 언제입니까? 4·3이라는 숫자만 떼내면 특별법 개정안 통과에 협조하시겠습니까?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뉴스를 부탁해]궁금한 뉴스를 서울신문에 부탁하세요. 화제가 되는 이슈를 요리조리 뜯어보고 속 시원히 풀어드립니다.
  • “두 번 다시 우리 같은 비극 없어야”···제주 4·3 피해자의 눈물

    “두 번 다시 우리 같은 비극 없어야”···제주 4·3 피해자의 눈물

    “군인도 민간인 죽이고, 경찰도 민간인 죽이고, 거기에 누구하고 누구하고 할 것 없이 그냥 다 잡아 죽여버리고···. 하다못해 집에 들어가서 가족들 있는데 다 죽이고, 불 붙여 버리고···.”‘제주 4·3 사건’(이하 제주 4·3)의 참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언입니다. 올해로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특별전, 역사기행, 학술대회, 문화제 등 이 사건을 추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됐습니다. 또 2009년 이후로 중단됐던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이 재개됐습니다. 제주 4·3은 비단 1948년 4월 3일에 제주에서 있었던 일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1947년 3월 1일 미국 군사정부(미군정) 경찰이 제주도민들을 향해 발포한 사건을 시작으로, 좌익 진영의 무장대가 1948년 4월 3일 일으킨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진 무장대와 군·경 토벌대 간 무력 충돌, 그리고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최대 약 3만명의 도민들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6·25 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이기도 합니다. 제주 4·3은 분단을 우려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무장대의 봉기가 있기 전에, 광복 직후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통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주 독립과 통일된 나라를 요구한 제주도민들의 열망이 스며 있습니다.김용선(73)씨의 아버지는 제주 4·3 이후 행방불명됐습니다. 지금의 제주 조천읍 조천리에 살던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1948년 2월 21일 사망하자 부산에 살던 김씨 가족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뱃길이 막혀 부산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김씨 가족은 같은 해 4월 3일 이후 큰 시련을 겪습니다. 그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김씨의 증언을 통해 제주 4·3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주 4·3이 생존 피해자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를 돌아보고 오랜 기간 우리 사회가 ‘덮어두었던’ 제주 4·3을 어떤 역사로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합니다. 기획·제작 오세진 기자·이승아 PD촬영 곽재순·이승아 PD
  • 류현진 시즌 첫 경기 피안타 5·볼넷5 묶어 3실점 조기강판

    류현진 시즌 첫 경기 피안타 5·볼넷5 묶어 3실점 조기강판

    3과 3분의2이닝 동안 75개 투구 .. 삼진은 단 2개제구력 난조로 스트라이크 40개에 불과, 4회말 2사 3루에서 교체류현진(31·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2018시즌 첫 등판에서 제구에 애를 먹으며 조기 강판당했다. 류현진은 3일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방문경기에 선발로 나서서 3⅔이닝 동안 5안타와 볼넷 5개를 내주고 3실점했다. 삼진은 2개를 잡았다. 류현진의 한 경기 볼넷 5개는 지난해 5월 12일 콜로라도 로키스전(6개)에 이어 개인 통산 두 번째로 많은 수다. 시범경기에서 새로 장착한 투심 패스트볼과 변형 커브를 점검하는 데 주력한 류현진은 이날도 포심, 투심 패스트볼은 물론 커브, 커터, 체인지업, 슬라이더 등 다양한 구종을 섞어 애리조나 타자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제구, 특히 커브를 마음먹은 곳에 던지지 못하면서 볼넷을 많이 내주고 투구 수도 늘면서 고전했다. 류현진은 4회도 채우지 못했지만 75개의 공을 던졌다. 이중 스트라이크는 40개에 불과했다. 류현진은 3-3 동점을 허용하고 4회말 2사 3루에서 교체됐다. 구원 투수 페드로 바에스가 4회를 실점없이 마무리해 류현진의 실점은 늘어나지 않았다. 류현진의 평균자책점은 7.36으로 치솟았다.애리조나에서 활약했던 투수 김병현의 시구로 시작한 이날 경기에서 다저스 타선은 1회초부터 류현진에게 힘을 실어줬다. 애리조나 선발투수 타이후안 워커를 상대로 톱타자 족 피더슨의 2루타에 이른 코리 시거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냈고, 1사 후에는 야스마니 그란달의 우중월 투런포가 터져 3-0으로 앞서 나갔다. 리드를 안고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도 1회말 첫 두 타자는 평범한 내야땅볼로 요리했다. 하지만 ‘천적’으로 꼽히는 폴 골드슈미트에게 가운데 펜스를 바로 때리는 큼지막한 2루타를 허용했다. 류현진을 상대로 지난해까지 타율 0.429를 기록했던 골드슈미트가 올시즌 9타수 만에 터트린 첫 안타였다. 이어 류현진은 A.J. 폴록에게 체인지업을 던졌다가 좌익선상을 타고 흘러나가는 2루타를 얻어맞아 시즌 첫 실점을 기록했다. 이후 크리스 오윙스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체인지업으로 루킹 삼진을 잡아내고 추가 실점은 막았다. 2회에는 2사 후 알렉스 아빌라에게 볼넷을 허용했으나 투수 워커를 유격수 땅볼로 요리했다. 선두타자 제이크 램의 1루수 쪽 안타성 타구 때 빠른 베이스 커버로 직접 아웃시키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러나 류현진은 3회 큰 고비를 맞았다. 첫 타자 데이비드 페랄타의 큼지막한 타구를 좌익수 맷 켐프가 호수비로 걷어냈지만 케텔 마르테에게 중견수 뒤로 빠지는 3루타를 내줬다. 이후 제구가 심하게 흔들렸다. 골드슈미트에게 볼넷을 허용한 뒤 폴록을 빠른 볼로 3구 삼진으로 쫓아내 한숨 돌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오윙스를 다시 볼넷으로 내보내 2사 만루 위기에 몰린 뒤 램에게 연속 볼 네 개를 던져 밀어내기로 두 번째 실점했다. 안타 한 방이면 역전까지 허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릭 허니컷 투수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해 기분 나쁜 흐름을 끊으려 했다. 류현진은 후속타자 닉 아메드를 좌익수 뜬 공으로 잡아내고 위기에서 벗어났다. 2회까지 30개의 공을 던진 류현진은 3회에만 투구 수 30개를 기록했다. 류현진은 4회에도 선두타자 아빌라를 볼넷을 내보내 스스로 경기를 어렵게 몰고 갔다. 워커를 3루 땅볼로 병살처리했지만 페랄타에게 중전안타를 맞은 뒤 마르테에게 중견수 쪽 3루타를 내줘 3-3 동점이 됐다. 다저스 벤치는 류현진을 더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바에스가 골드슈미트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 류현진은 이날 3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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