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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자유 촉구/중국보도 간부들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의 일부 보도기관 간부들이 최근의 개혁개방 정책과 관련,언론자유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다고 중국 및 홍콩신문들이 14일 보도했다. 홍콩의 명보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는 지난주말 북경에서 개최된 「여론감독과 개혁개방」이란 주제의 한 회의에서는 중국의 뉴스보도 매체들이 정치적 보복없이 사회의 진실을 보도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북경의 보도기관 편집책임자들과 당정지도자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좌익적 사고와 잔존하는 모택동주의가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비난하고 『당국은 「비판적인 보도」를 「반동적인 보도」라고 일괄매도해서는 안되며 또 정부의 매체감시가 사회의 어두운 면 노출방지로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 김낙중 간첩사건을 보고/이철승(특별기고)

    최근 한준수 전연기군수의 관권선거폭로가 여론과 언론의 집중표적이 되고 있다. 그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어찌보면 정권의 도덕성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7일 국가안전기획부가 발표한 김락중간첩사건에 대해서는 여론과 언론이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느낌이다. 그저 일과성의 한 사건으로만 치부하는 듯하다. 그러나 김락중사건은 관권의 선거개입보다도 훨씬 더 중대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정권의 차원을 넘어 우리 국가의 안위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락중간첩사건은 북한공산정권의 대남적화야욕을 위한 통일전선전략이 이제 마무리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은 남한에 침투시킨 폭력혁명세력을 국회에 진출시켜 합법적인 원내투쟁을 벌이려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이다. 북한은 이미 상층부의 통일전선전략은 완성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의 여야 정치지도자들은 북의 김일성을 「선의의 동반자」로 규정하고 있다. 각 경제단체와 사회단체의 대표들은 앞을 다퉈평양으로 달려가 김일성을 참배하려 한다. 문제의 「민중당」지도자들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면담하기까지 했다. 북한은 이처럼 학생층에 이어 상층부의 통일전선전략도 성공한 것으로 판단,마지막단계로 소위 민중정당을 원내에 진출시켜 중산층과 서민층을 파고들자는 속셈인 것이다. 북한은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김락중등을 통해 「범진보세력연합작전」으로 분위기를 조성한뒤 친북한인사를 적극 지원,당선 가능성을 높인다는 전략을 세운것이다. 이에 중산층세력이 크게 반발할 경우 남한에 침투된 5만의 고정간첩과 1백50만의 반체제 세력을 충동,사회혼란을 일으키고 군의 개입을 유도해 최악의 사태를 조성한다는 계략이다. 이를통해 대남적화통일을 완수하고 그것이 안될 경우에는 「여급예로 해망)즉,너와 내가 함께 죽어버리자는 악랄한 수법이다. 그렇다면 사태가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를 반성해보아야 한다.최근 일부에서는 안기부를 폐지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는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외치고 있다. 폭력혁명을 꿈꾸는 좌익세력을 양심수로 석방하라는 외침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2년동안 8차에 걸쳐 열린 남북총리회담은 아무런 내실도 없이 형식적인 평화무드만 조성하고 있다. 게다가 국회는 문을 걸어잠그고 대권운동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시점에 이 사건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해이된 반공의식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요즈음 국민들 특히 젊은층 가운데는 「반공」이란 말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이들이 많다. 옛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제국이 해체되는 마당에 무슨 낡은 이데올로기냐는 이야기이다. 또 북한은 어차피 우리의 형제인데 그릇된 이념으로 적대감만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아직도 세계사의 흐름에 역행,북한의 교조적인 주체사상에 동조해 폭력으로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엄존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또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졌어도 북한의 공산정권은 엄연히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 정권은 6·25전쟁을 일으켜 동족을 학살하고,김현희를 시켜 KAL기를 폭파하고,도끼로 사람을 내리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누가 이러한 일들을 우리의 동족으로서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우리와 핏줄은 같지만 우리사회를 혼란시켜 폭력혁명을 이루려는 것이 그들의 실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반공을 외쳐야만 하는 것이다. 충과 효와 마찬가지로 반공의 의미도 세월이 가면서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선열들이 피땀으로 이뤄낸 이 조국을 굳건히 지켜나가자는 근본정신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이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이에 귀가 솔깃한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만일 이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면 우리나라는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은 당장 국회를 열고 이 사건을 초당적인 차원에서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그래야만 바람직한 통일의 방향도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김락중의 검거로 북한의 야욕이 사라졌다고 보면 크나큰 오산이다. 김은 하나의 공작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 우리사회 곳곳에는 몇수십,몇백의 김락중이 침투해 사회혼란의 기회만 엿보고 있다.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 독 좌·우익 시위 돌입/로스토크시 3천명 몰려… 유혈 우려

    【로스토크 AFP AP 로이터 연합】 수천명의 독일 좌익및 우익 급진주의 세력은 29일 양측간 충돌이 우려되는 가운데 예정대로 구동독지역 로스토크시를 중심으로 독일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인 시위에 들어갔다. 경찰은 이에 따라 약 3천명의 폭동 진압경찰을 로스토크 시내 일원에 투입해 시위대를 태우고 시내로 들어오는 차량 검문검색을 강화,예상되는 좌·우익 충돌 방지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어 시위는 초기에 다소 주춤하는 양상을 보였다. 신나치주의에 반대하는 무정부주의자·학생·자유주의자등으로 구성된 2천∼3천명의 시위대들은 이날 신나치주의자들이 지난 5일동안 야간공격을 가했던 로스토크시 교외의 리히텐하겐에 있는 외국인 난민수용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 시위대는 멀리 슈투트가르트·프랑크푸르트·라이프치히등지로부터 버스·기차·승용차등을 이용해 로스토크로 몰려들었다.
  • 월북작가 함세덕/작품세계 재조명/서연호교수 「계간문예」에 논문발표

    ◎“시적·서정적 리얼리즘의 본보기” 평가 월북작가 함세덕(1915∼1950)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명한 고려대 서연호 교수(연극평론가)의 소논문이 최근 발표돼 관심을 모은다. 서교수는 이달말 나오는 「계간문예」가을호에 기고한 「함세덕의 생애와 작품세계」라는 제목의 소논문에서 『그 동안 좌익작가에다 월북작가라는 정치적 제약으로 그에 관한 연구가 부진했던데다 수년전 해금된 뒤에는 「친일작가」니 「모방작가」니 하는 연극계 일각의 무분별한 폄하와 오해로 인해 본격적인 연구의 결실을 보지 못했다』고 전제하고 그의 대표작 「동승」은 시적·서정적 리얼리즘의 본보기를 창출해낸 수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서교수는 함세덕의 처녀작인 「산허구리」(1936)와 「무의도 기행」(1941)이 아일랜드 작가 싱그의 「바다로 가는 기사들」을 모방했다는 주장에 대해 이 작품들은 그가 성장한 인천 바다연안과 인근 섬 일대를 무대로 그곳 주민들의 현실적인 삶을 소재로 씌여진 것들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을지는 몰라도 모방·모작은 아니라고반박했다. 서교수는 그의 작품들이 싱그의 작품과 소재나 배경,인물,분위기등에서 유사하지만 바다를 인간을 패배시키는 절대적인 힘으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현실문제는 배제한 채 인간의 패배를 숙명적인 실존으로 부각시킨 싱그와는 달리 바다를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싸워야 하는 대상으로,또 식민지시대의 서민들의 고달픈 현실을 제시하는데 치중했다고 분석했다. 서교수는 또 「무의도 기행」이 식민지 시대에 발표된 독창성을 살린 리얼리즘문학의 수작으로 높이 평가했다. 한편 「친일작가」라는 평가에 대해 서교수는 작가 스스로 일제에 소극적으로 반항하였고 민족문화발전에 역행적 역할을 했다는 자기고백을 소개하고 일제말기에 발표된 그의 모든 작품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가 친일적인 작가였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교수는 대부분의 친일작가들처럼 지난날 친일작가였다는 양심적 반성과 광복이후 우익진영 인사들의 온갖 추태,그리고 좌익진영의 위장된 진보적 선전과 부추김에 감염되어 일찍이 그가 신기원을 열어 놓은 서정적 리얼리즘(동승)의 예술성을 스스로 방기하고 어설프게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길로 변신을 시도했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 “소설 「태백산맥」은 역사왜곡”/김종오씨 비판

    80년대 최대화제작인 조정래씨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을 비판적 시각으로 조명한 「소설 태백산맥 그 현장을 찾아서」(종소리간)가 나왔다. 한국현대사문제연구소 연구원 김종오씨(56)가 펴낸 이 책은 민족적 관점의 역사시각에서 소설「태백산맥」이 갖는 오류에 대해 조목조목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김씨는 이 책을 통해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소설형식에 맞춰 썼을 뿐 실제에 있어서는 역사의 기록에 불과하다』라고 작가가 주장하는 「태백산맥」이 『자기편견의 편협한 좌익시각과 고정관념에 의해 창조된 또 하나의 왜곡된 역사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김씨에 따르면 현장검증결과 「태백산맥」이 역사의 상당부분을 왜곡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방적인 좌편향 시각으로 빨치산을 낭만적이고 고결하게만 그려놓고 있다는 것. 총3부로 구성된 이 책의 제1부 「태백산맥기행」에서는 소설현장확인과 증언,문헌분석 등을 통해 태백산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제2부 「태백산맥과 14연대 반란사건」에서는 「태백산맥」의 출발점이 되는 여순반란사건과 제주 4·3사태의 실상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제3부 「문학과 역사에 끼친 태백산맥의 영향」에서는 「태백산맥」이 우리 역사와 문학에 끼친 영향과 그 문제점에 대해 다루고 있다.
  • 스리랑카 정부군 민간인 4만 학살/전 경찰간부 폭로

    【콜롬보 로이터 연합】 스리랑카 정부의 암살대(일명 검은 고양이)가 좌익반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남녀와 어린이등 약4만명을 살해했다고 전직 고위 경찰간부인 프레마다사 우두감폴라가 18일 폭로했다. 스리랑카 경찰청의 전직 부감찰감이었던 우두감폴라는 15일 자신의 은신처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88년부터 90년까지,조금 더 확장하면 91년까지 사이에 「검은고양이」운동으로 약4만명이 살해됐다』고 말하고 『의회내의 검은 고양이들은 집권 통일국민당(UNP)이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 이인모는 누구/38년동안 전향 거부한 빨치산출신 고정간첩

    이인모씨(75)는 34년간의 영어생활 끝에 지난 88년 풀려난 「미전향 좌익수」출신.함경남도 풍산군 안산면산. 최근 공개된 52년 4월28일자 광주고등군법회의 「피의자 신문조서」등 당시의 재판기록에 따르면 이씨는 50년 8월 인민군소위의 계급을 달고 조국보위위원회 군사지도원의 자격으로 남파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41년 일본 도쿄공고 1년을 중퇴한 이씨는 50년 8월 경남군사위원회 지도원으로 진주에서 의용군모집등 인민군의 작전을 지원하다 그해 9월 인민군 후퇴시 경남 거창 덕유산에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전개,12월 대공세때 한쪽다리에 총탄을 맞고 체포됐다. 이씨는 7년복역후 59년 만기출소했으나 61년 고정간첩혐의로 다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끝까지 전향을 거부하다 76년 만기출소.그러나 사회안전법에 의거,88년 동법이 폐지될때까지 청주보안감호소에서 다시 감호생활을 했다. 국내 연고자가 전혀 없는 이씨는 서준식씨(민가협의장)의 주선으로 현재 경남 김해에서 김상원씨(51)의 보호를 받고 있다.지난해 7월 뇌졸중이 발병,거동이 불편한 상태인데 북한에는 부인 김순임씨(64)와 딸 이현옥씨(42)부부및 외손자 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회담반대” 시위대 1백50명 경찰서 체포/G7정상회담 이모저모

    ◎미·독등 부유국,중심 호화호텔 모두 독점 ○…6일 상오 회담장으로 통하는 도로 곳곳에는 수백명의 좌익 시위대들이 경찰바리케이드 앞에서 회담반대시위를 벌이고 일부는 바리케이드를 뚫고 회담장 가까이 진출했으며 1백50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전세계 18개국에서 모인 좌익 및 환경보호주의자들은 6일 회담장 부근에서 역시 3일간의 「별도 정상회담」을 시작하고 G7이 경제발전만을 앞세워 빈국들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난. ○님펜브크서 만찬 ○…6일 저녁 8시부터 헬무트 콜 독일총리 초청으로 만찬이 벌어진 뉨펜부르크성은 바로크 양식의 거대한 궁전으로 1664년 바이에른 왕국의 루드비히왕이 여름 궁전으로 쓰기위해 건립했다. 궁전내는 호수가 2개 있으며 건물 길이만도 6백m나 되는 조각가 바델리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화려한 실내장식과 성주위를 둘러싼 넓은 공원으로 유명하다. 공원내에는 주성이외에도 파고덴부르크·바덴부르크 등 조그마한 성들이 산재해 있다. ○정상들 속속도착 ○…이날 상오10시30분부터 1시간여에 걸쳐 막스 요셉 광장에서 진행된 환영사열식은 유럽공동체(EC)드로르위원장,미야자와 일본총리,메이저 영국총리,아마토 이탈리아총리,멀로니 캐나다총리,부시 미국대통령,미테랑 프랑스대통령 순으로 진행. 각국 원수들은 콜 독일총리와 함께 각각 15분여동안 사열을 마친뒤 바로 콜총리가 주최하는 오찬장으로 향했다. ○돈의 위력을 입증 ○…이번 회담으로 뮌헨시내 중심가의 호화 호텔들이 대부분 각국 정상과 대표단에 의해 「매점」돼 「돈의 위력」을 새삼 여실히 증명. 쉐라톤호텔의 경우 부시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무려 2백50만마르크(한화13억원)를 들여 내부를 수리했는데 특히 부시대통령이 이틀간 머무는 40평 크기의 스위트에는 대리석 욕조와 임시도서관을 설치하는데만도 50만 마르크(2억5천만원)가 소요됐다고.반면에 7일밤 도착하는 옐친 러시아대통령을 위해서는 마리오트호텔에 13평짜리 숙소가 마련됐는데 이는 하루 6백마르크(30만원)로 콜총리의 2천마르크(1백만원)짜리에 비하면 3분의 1도 되지 못하는 것이어서 빈부차를 여실히 증명.
  • 문화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6·29」그후 5년)

    ◎“탈이념물결”… 다양한 소재·목소리 분출/등록제실시로 출판사 3천곳 신설붐/월북작가 해금… 「해방공간」문학사 복원/사전검열 폐지따라 공연예술의 자유 만끽/TV방송 공·민영시대로… 지나친 상업주의 경계해야 문화는 자율성과 다양성의 토양위에서 꽃을 피운다.강압적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화·자유화시대로의 길을 연 6·29선언은 바로 기름진 문화의 토양을 제공했다.6·29선언 이후 지난 5년동안 우리 문화는 그동안의 편협성과 경색에서 벗어나 폭넓고 자유로운 창작활동의 꽃을 피웠다.월북작가작품 해금,무용 및 연극대본에 대한 사전심의제도 폐지,출판활성화 조치등이 6·29선언의 정신에 따라 이루어졌고 예술가의 상상력을 억압하던 온갖 금기에서의 해방과 함께 탈이데올로기 현상을 겪으며 우리 문화는 비로소 참된 다양성을 획득해 냈다. ▷문화부기자 방담◁ 김정열차장(부장급) 이헌숙기자(차장급) 윤석규기자 김성호〃 백종국〃 김균미〃 김동선〃 ­6·29선언은 문화·예술계에도 민주화의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문학·출판·미술·공연·방송·영화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특히 공연대본에 대한 사전심의 및 출판물납본제도 등을 통해 실질적인 사전검열이 행해져왔던 출판계와 공연예술계에 대한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88년7월19일에 단행된 월북작가 작품 해금 조치는 그중 가장 뚜렷한 성과였습니다.6·29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한 88년 7·7선언의 후속조치로 나왔던 월북작가작품 해금조치는 박태원 이태준 임화 등 그동안 남한에서 접근과 출판이 용이하지 않았던 1백20여 월북문인들의 8·15이전 작품의 공식출판을 허용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운동권」 예술성 회귀 ­6·29선언은 20년대 이후 해방에 이르는 한국문학사의 공백을 메워 불구의 문학사를 고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또 문화 각 부문에 만연했던 「정치적 기준」을 「문화적 기준」으로 대체하는 상징적 조치로서 이후 보다 개방적인 문화 흐름을 선도하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운동권 문학에 있어서의 문학성의 강조경향,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열기 등도 국제정치환경의 변화와 함께 6·29선언으로 인한 자유화의 진전등 국내상황변화에 크게 힘입은 사례들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출판계의 민주화는 먼저 출판사의 폭발적인 증가로 나타났습니다.87년10월이 지나면서 명실상부한 등록제가 된 것입니다.신고만 하면 출판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된 거지요.80년이래 허가제의 내용을 갖는 이름뿐인 등록제가 자리를 잡은지 8년만의 일입니다.이를 계기로 6·29선언이 있기 전해인 86년말 2천6백여개에 그쳤던 출판사 수가 87년말 3천4개,88년말 4천3백97개,89년 5천97개로 늘었으며 현재는 2배에 가까운 6천개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88년12월 문화부는 공연법 시행령을 고쳐 20년동안 표현의 자유 시비를 불러 일으켜온 무용 및 연극대본에 대한 사전심의제도를 폐지했습니다.마침내 공연예술계가 공연소재와 표현방식 등 공연물에 대한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이는 공연당사자들이 공연작품에 대한 한계를 미리 설정해 놓고 작품을 구상·준비해 오던 때와 비교해 볼 때 한결 자유롭게 하고 싶은 작업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입니다.작업에 대한 자율성 확보와 함께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져야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비로소 적용될 수 있게 된 셈이지요.이에따라 체제비판적이거나 외설적인 내용 등을 이유로 공연이 금지됐던 「오장군의 발톱」(박조열작)「금지된 장난」(김훈작)「춤추는 인형들」(엄한얼작)등과 같은 작품들이 공연돼 공연의 다양화를 가져왔습니다. ­각 대학의 학생미술운동도 6·29선언을 계기로 활성화됐습니다.또 문예진흥원 등 관계당국은 행정적인 차원에서 과거 「민중미술」을 이끌어온 「현실과 발언」,민중미술협의회 등에 전시지원을 했습니다.6·29선언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군·빨치산소재 등장 ­영화와 방송분야도 6·29선언의 덕을 톡톡히 누리게 됩니다만 다른 분야에 비해 두드러진 대중성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제약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출판·학술 분야의 민주화는 분명 6·29선언에서 시작되었으나 구소련 및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 또는 개방까지기다려야 했습니다.출판사들의 등록이 자유로워졌고 이에따라 각종 출판물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실정법 위반 시비는 당연한 것이기도 했습니다.정치적인 결단인 6·29선언에 따른 입법조치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공연예술계는 자율화의 혜택을 크게 누렸습니다.정부는 제도권 밖의 「민족극」극단의 활동에도 관용을 보였습니다.이에따라 그동안 제도권내에서 유일하게 사회비판적인 내용의 창작극만을 공연해온 극단 연우무대가 설 자리를 잃고 새로운 위상을 모색해야 하는 재미있는 일도 벌어졌습니다.어떻든 공연여부로 화제를 모았던 극단 아리랑의 「아버지의 해방일기」와 「격정만리」등도 무난히 관객들의 앞에 올려졌습니다. ­6·29선언에서 비롯된 문화 전반의 민주화·자율화 분위기는 결국 문화의 다양화에 기여했습니다.문학·방송·미술·공연·출판·학술 등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되고 있습니다. ­문학의 경우만 해도 많은 소설가들이 그동안 금기로 되어왔던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김신의 「쫄병시대」,복거일의 「높은 땅 낮은 이야기」,고원정의 「빙벽」등 88년부터 쏟아져 나왔던 군병영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군의 비리까지도 일정부분 소설화했던 현상은 6·29선언 이전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것입니다.그리고 분단이나 빨치산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에서 좌익의 시각을 과감하게 수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이밖에 운동권 문학에서도 문학성을 강조하는 추세로 돌고 있습니다. ­6·29선언 뒤 몇년동안 북한원전과 기행문,마르크스·레닌 원전 등은 출간붐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그 결과 탈이데올로기 현상이 빚어졌고 동유럽 공산국가의 몰락으로 이념서적의 인기가 급락하고 말았습니다. ­90년대 들어 미술분야에서는 「민중작가」가 아닌 일반작가들도 통일문제를 들고나와 나름대로 이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소재로 삼는 대상이 다양해진 것이지요.이에 비해 「민중미술작가」들은 과거에 비해 그림들이 예술적으로 순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철학적·미학적으로 자기반성하는 자세를 가지면서 과거처럼 급진적이고 지나치게 선동적인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왔던 사회고발영화와 농도짙은 성애영화가 대거 등장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5공의 비리를 핵심권부에 맞춰 그린 정치소재의 「서울무지개」(감독 김호선)와 성을 소재로 한 「매춘」(감독 유진선)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또 「전쟁과 평화」「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국두」 등 구소련과 중국영화들이 국내극장가에 처음 나붙게 됐습니다.6·29 이후 본격화된 북방정책의 결과이지요. ○특수방송 잇단 설립 ­외형적으로 공영체제가 허물어지는 흐름에서 평화방송 교통방송 불교방송 등 특수방송이 잇따라 설립됐으며 지난해 서울방송 라디오·TV개국으로 공·민영 혼합체제가 구축됐습니다.또 토론프로그램이나 코미디·드라마 등에서 비판금지대상이나 소재의 벽이 허물어져 다양한 프로그램의 제작이 가능해졌습니다. ­통일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민족동질성의 뿌리를 찾아내기 위한 당국의 배려도 이젠 많이 늘어났다고 봅니다.올상반기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북한미술전이 그 한 예입니다.북한의 화가들이 작업한 수많은 원화들을 일반인들이 여과없이 접할 수 있었다는 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죠.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북방과의 문화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종교계의 경우 지나친 북방선교가 문제가 될 정도로 적극적인 북방진출이 이루어졌지요. ­자율화 민주화 과정에서 지나친 상업주의에 의한 문화왜곡등 부작용도 없지 않았습니다.올해들어 방송위원회가 대폭 개정한 방송심의규정은 자율화·민주화의 한계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점을 생각하게 해줍니다.이번 개정에서 오히려 내용이 강화된 것으로 ▲인권 보호 ▲방송언어의 순화 ▲광고의 국민건강을 위한 규제가 들어 있습니다. ­아무튼 6·29선언은 그 시행과정에서 많은 과제를 노정시켜왔으나 문화의 다양화 작업을 가능케했으며 탈이데올로기에 따른 한민족 문화의 뿌리 찾기등 값진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이같은 변혁은 바로 우리 문화의 총량을 제고하는 귀중한 계기였다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습니다. ◎전문가 평가/김윤식 문학평론가/자율성의 참뜻 되새길때 6·29선언이 5공화국에서 6공화국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였음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8개항으로 된 이 선언을 검토해보면 한갓 시국수습안의 일종이었음이 드러난다.이점에서만 보면 그것은 시류적인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건이다.그러나 좀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국민대단합이라는 커다란 명제가 놓여있다.국민대단합이라는 명제를 내걸었다는 것은 그것이 당시의 제일 중요한 과제였음을 새삼 말해주는 터이다.무엇이 국민대단합을 저해하고 있었던가.8개항의 수습책이 달성되지 않는 한 국민대단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8개항을 수습할 수 있는 기본항이랄까 원칙이란 무엇일까.이렇게 물을 때 우리는 쉽사리 그것이 자율성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사회 각 부문의 자치와 자율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각 부문별 자치와 자율의 확대는 다양하고 균형있는 사회발전을 이룩하여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해진 것은 8개 수습항목중 6번째에 해당되는 것이다.그러나 이 항목이 실상 6·29선언의 으뜸 항목임은 일목요연하다. 자율성의 원칙이 모든 문제해결의 기본항을 이룰 때 어떤 사회도 상당한 혼란을 면하기 어렵다.국가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의해 사회적 욕망분출이 조정되던 사회보다 자율성으로 그것을 해결하는 사회가 한층 바람직한 것이라면 그 바람직한 사회의 도래를 위해 상당한 기간의 혼란은 불가피한 법이다.이 원칙이 세계사의 변화라든가 후기 산업정보사회의 급속한 진전과 더불어 5년간을 두고 알게 모르게 실천되었음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이 자율성의 달성이 얼마나 소중한 과제였는가는 6·29선언에서도 지적된 물가안정이라든가 흑자경제 등 5공화국의 치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아도 알 수 있는 터이다.6·29선언이 단순한 시국수습책에 멈추지 않는,역사적인 문건으로 평가되는 참뜻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역사전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가 문화(문명)쪽이라는 사실은 새삼 강조해둘 필요가 없을까.문화란 개성에 바탕을 두는 것이며 따라서 무정부주의적인 성격으로 규정된다.자율성이 조금도 억압되지 않는 사회만들기야말로 문화의 방향성이라 함은 이를 가리킴이다.이 점에서 6·29선언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지향성의 표현이었다.기업문화,정치문화,교통문화 등의 표현이 가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그렇다면 새삼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이러한 자율성이 후기 산업사회 속에서 얼마나 지켜질 수 있느냐에 있다.그동안의 자율성의 옹호가 문화의 특성을 유감없이 드러내었음이 사실로 인정되지만 동시에 그것에 포위되어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도 사실로 인정되는 터이다.문화창출의 자율성이 문화유통의 자율성(상업주의)에 의해 좌우될 때 문화가 도리어 위협받게 되는 것,이 이율배반 앞에 놓인 것이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6·29선언의 한가지 귀결이다.자율성,그것은 문화쪽에서 보면 해결하기 어려운 일종의 배리가 아닐 수 없다.
  • 이스라엘총선 야당 승리/노동당,45석으로 집권당 눌러

    ◎99.3%개표 결과/대중동정책 크게 변화할듯 【예루살렘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 야당인 좌익 노동당이 23일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고 집권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이스라엘 점령지역의 정착촌 건설이 중단되고 중동평화회담이 진척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등 이스라엘의 중동정책이 크게 바뀌게 됐다. 24일 99.3%의 비공식 개표 결과에 따르면 이츠하크 라빈 당수(70)가 이끄는 노동당과 좌익 연합정당들이 집권 리쿠드당과 우익 연합정당들을 62석대 58석으로 누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당과 리쿠드당의 단독 의석은 총 1백20 의석수 가운데 각각 45석과 32석으로 현재의 다같은 38석에서 노동당 의석이 크게 늘어난 반면 리쿠드당은 지난 69년이래 최대의 참패를 기록했다. 이로써 노동당은 지난 77년 리쿠드당으로 넘어갔던 권력을 되찾아 재집권하게됐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미국측의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으나 최근 이스라엘의 대아랍정책과 관련,이스라엘과 외교 마찰을 빚어온 미국도 노동당의 승리를 환영할 것이라고 한 미국 외교관이밝혔다.
  • 독 좌익지 6·25직후 이틀 침묵/공산당지시따라 북침론 유포

    ◎한국대사관 자료수집 【베를린 연합】 한국전 발발 당시 한반도와 같은 분단상황하에서 소련에 의한 점령군 철수압력이 고조되고 있던 독일은 전쟁초기 대부분의 신문이 관련 논평·사설과 전황보고를 머리 기사로 게재하는등 한국전의 발단과 그 파급효과에 대해 유례없는 관심을 표명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23일 주독 한국대사관이 수집한 6·25 당시 독일신문의 각종 한국전 관련기사들에 의하면 특히 언론은 전쟁이 소련의 조종을 받은 북한에 의해 도발됐다는 점을 예증하면서 소련의 압력에 의해 남한에서 미군이 철수한 것이 전쟁의 주요한 유발요인이 됐음을 강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디 차이트는 같은달 29일 한국문제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던 소련 프라우다지가 6월10일 최후통첩과 다름없는 조선민주조국통일전선 중앙위원회의 성명을 게재,사실상 전쟁을 예고했다고 밝혔으며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는 7월3일 독일의 좌익일간지들이 전쟁발발후 이틀간 침묵하다가 공산당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돌연 북침론을 유포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 태 새총리 아난/작년 쿠데타후 과도총리 역임

    ◎72년 주미대사등 거친 외교통 중재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아난 신임태국총리(59)의 첫과제는 국내의 정국긴장을 풀고 실추된 국제신인도를 회복시키는 일이다. 지난해 3월 쿠데타발생후 과도총리를 맡아 지난 3월 총선이 무사히 끝나자 4월초 총리직에서 물러났던 아난은 55년 외무부관료로 공직생활을 시작,24년간 외교가에서 잔뼈가 굵은 외교전문통이다. 76년 중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주장,좌익성향의 인물로 분류돼 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던 그는 79년 외교관직을 떠나 기업가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72년 주미대사로 근무할때 지난해 쿠데타의 주역 수친다 크라프라윤과 관계를 맺기 시작,쿠데타후 과도정부의 총리로 임명됐던 그는 군부의 대규모무기구매계획을 거부하는등 군부에 대항하기도 했으며 아난내각은 역대태국내각중 최상의 내각이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아난새총리는 지난 총선에서 당선돼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민주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 체코분리 추진 「민주운동」 총선서 압승할듯/독 민간기구 조사

    【프라하 AFP 로이터 연합】 체코슬로바키아에서 5∼6일 양일간 실시된 연방 및 지방의회 선거에서 체코공화국과의 분리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슬로바키아 민주운동(HZDS)이 슬로바키아공화국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총선후 재편과정에서 연방 분리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독일의 민간조사기관인 INFAS가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메치아르 전슬로바키아총리가 이끄는 HZDS는 지방의회선거에서 35·9%를 얻어 최다 득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좌익계인 HZDS를 이끄는 메치아르는 슬로바키아의 독립요구와 경제개혁완화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으며 자신들이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체코공화국과의 분리를 추진할 것이라고 다짐해왔다. 슬로바키아공화국은 체코연방 총인구의 3분의1을 차지하며 체코공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있다. 이 조사에 의하면 또 체코공화국에서는 바츨라프 클라우스 재무장관이 이끄는 우익 민주국민당(ODS)이 지방의원선거에서 36%를 득표,역시 최다득표를 보였다.
  • 공학전공한 농민… 좌익·개혁파서 지지/폴란드 새총리 파브라크

    5일 폴란드 내각을 이끌 새 지도자로 선출된 발데마르 파브라크 농민당 당수는 올해 33세로 폴란드 최연소 총리. 그는 공학도출신이지만 바르샤바 북서쪽에 위치한 자신의 고향에 대규모 농장을 소유하고 있는 농민으로 좌익에서부터 시장경제 개혁주의자 정당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으며 지난 89년 공산당통치가 막을 내린 이래 바웬사 대통령이 주도한 자유노조에 뿌리를 두지 않은 사람으로 총리가 된 최초의 인물이다. 파브라크 신임총리는 헌법개정및 사영화 그리고 다른 주요 개혁을 정체시키면서 외국투자가들을 몰아낸 의회내 장애요인을 타개하기 위해 실질적인 의회연합을 이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있으나 지금까지 답보상태를 보여온 정치및 경제개혁을 추진해 나가는데 헌신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이와관련,내각과 바웬사 대통령및 많은 의회의원들과의 갈등으로 최근 행정이 마비상태를 보여왔다고 지적하고 앞으로는 공동의 계획에 기반을 둔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균형 있는 정부를 건설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 이 새대통령 스칼파로/정부요직 두루 거친 보수인사

    이탈리아 의회에서 25일 신임 대통령에 선출된 오스카 루이지 스칼파로 하원의장(73·기독민주당)은 이탈리아 제헌의원의 한 사람으로 46년 건국 이래 줄곧 의원직을 유지해온 보수적 성향의 정치 원로. 매일 새벽 기도를 거르지 않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스칼파로는 종교적 믿음과 의회의 전통에 똑같이 충실해왔다는 점과 연립정부를 이끄는 기민당에서도 특정계파에 속하지 않은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점에서 야당의 지지를 받아 지난 4월24일 하원의장에 당선됐다. 그는 그러나 하원의장에 당선되자 현지 신부를 의회로 초청,기도를 부탁하는 등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 이번 대통령 선출투표에서도 일부 좌익계 및 파시즘 의원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스칼파로는 오랜 정치 생활동안 83∼87년에 내무장관직을 역임하는 등 정부 내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87년에는 코시가 대통령에 의해 총리에 지명됐으나 의회의 동의를 얻는데 실패,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1918년 북부 노바라시에서 태어난 스칼파로는 파시즘 치하에서 투옥된 정치적 반대자들의가족들을 돌보며 청년시절을 보냈다.
  • 등 개혁 지지 출판물 배포금지/중국강경파,「좌익」 비난 반발

    【북경 로이터 연합】 중국 강경파 공산주의자들이 최근 최고실력자 등소평의 경제개혁정책을 지지하는 출판물 배포를 저지,보수­개혁노선을 둘러싼 중국 내부 권력투쟁의 새로운 쟁점이 되고 있다고 중국 소식통들이 17일 밝혔다. 이 소식통들은 중국인민대학의 당위원회가 지난 14일 지난 89년 군이 무력진압한 천안문민주화시위의 지지자들을 「혼란 선동자」와 「격변뒤의 엘리트들」로 묘사한 「역사의 조류」라는 책자에 대해 금지 명령을 내렸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 터키 반정단체 파리서 암약(특파원코너)

    ◎4개 지하비밀조직이 이민자들에 「혁명세」등 징수/쿠르드족과 연대… 본국공산주의자·폭력투쟁 지원 파리에는 「혁명세」를 내지 않으면 안되는 주민들이 있다.터키인과 쿠르드인 이민자들로서 소규모 가게를 열고 있는 사람들이다.혁명세는 터키의 반정부 좌익지하조직과 쿠르디스탄독립운동단체가 공산혁명을 위한 활동자금 명목으로 거둬간다. 프랑스 경찰이 파악하기로는 혁명세를 거둬가는 단체로 마르크스레닌주의자조직,터키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과 그 별동대 티코,쿠르디스탄노동당 등 4개가 있다.이 단체들은 동조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기부금」이라고 말하고 있다.목적과 이념에 찬동하여 흔쾌히 돈을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혹시 보복이라도 있을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돈을 바치는 사람들에게는 세금일 수밖에 없다. 이 단체들은 폭력투쟁에 의한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 건설을 꿈꾸고 있는 점에서는 목적이 서로 같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조직은 터키의 이스탄불에 5천명의 「전사」를 두고 도시 게릴라 활동과 정부요인및 경찰관 살해 등폭력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국가주요시설 폭파 기도 사건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파리에서는 터키노동자문화협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혁명세를 징수하고 있다. 농촌게릴라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는 터키마르크스레닌주의공산당이란 단체는 1990년 1월 이후 터키 국내에서 일어난 여러 건의 살인 사건에 연루돼 있으며 티코라고 불리는 무력별동대를 운용한다.파리에는 재불터키노동자문화연합이라는 이름의 조직을 두고 있다. 터키 영토내의 쿠르드족은 1천2백만명이나 된다.이들의 오랜 염원은 독립이다.좌익 쿠르드인들은 터키에 혁명이 일어나 현체제가 붕괴되어야만 쿠르디스탄(쿠르드인의 나라)독립이 성취된다는 일념으로 터키인 반정부투쟁 공산주의자들과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다.파리에 있는 쿠르디스탄위원회와 쿠르디스탄애국노동자협회가 쿠르디스탄노동당이란 무력독립운동단체의 재불활동기관이다. 혁명세 징수가 업주들에게서 돈을 뜯는 깡패집단의 행위와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쿠르드인 단체의 구성원들은 단호히 부정한다.『우리는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모금을 하고 있다』면서 『팔레스타인인이나 유태인이나 베트남인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우리는 범죄조직이 아니다』하고 말하고 있다. 쿠르드족을 포함한 터키인 이민자는 프랑스에 약 40만명,파리 시내에는 1만4천명,파리 생활권에는 약 8만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이들의 가게는 파리의 북역부근을 중심으로 한 10구 일대에 밀집돼 있다.혁명투쟁조직들의 전사들은 이 가게들을 돌며 혁명세를 거두고 영수증까지 끊어준다.1989년 한햇동안 쿠르디스탄노동당이 거둔 혁명세만 프랑스 경찰 추산으로 약 6백만 프랑(약6억4천만원)이다. 『액수를 정하지 않고 성의에 따른다』고는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전화로 얼마를 준비해 두라 일러 두고는 그 날짜를 어기면 액수를 더 늘려 요구하는 수도 있다.한 가게는 1991년 11월27일 2만프랑(약2백40만원)을 내라는 전화를 받았다.이날 납부하지 않자 다음날에는 2만5천프랑,또 그 다음날인 29일에는 3만프랑을 요구했다.이날이 되자 터키마르크스레닌주의공산당의 전사 일곱명이 돈을 받으러 왔다.이들은 경찰에 체포됐다. 업주들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에게도 몇십프랑에서 몇백프랑의 혁명세가 부과되기도 한다.여러 단체가 자주 징수해 가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카페의 종업원인 쿠르드족 출신 터키 청년은 4개의 단체에 5백 내지 6백프랑씩 모두 2천 프랑이 넘는 돈을 최근에 냈다.그의 한달 수입은 4천프랑이다.그는 1년에 여러 차례 이 세금을 내고 있으며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동족과 쿠르디스탄 해방을 위해 이를 감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경찰은 이 조직들이 프랑스에서 테러활동을 벌일까봐 우려하고 있다.이 조직들의 「전사」들 가운데 불법무기 소지로 검거된 예가 있었다.그러나 이 단체들은 『우리가 혁명하려 하는 것은 터키에서이지 프랑스에서는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 경찰은 이들이 헤로인등 마약의 거래에도 손을 대고 있으리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으나 확증을 잡지는 못하고 있다. 이 단체들의 조직원들은 10년동안 동조자들의 지지속에 떳떳이 활동해온 자기들을 프랑스 경찰이 괜히 소환하거나 신문하여 괴롭히는 음험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프랑스 경찰의 입장에서는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골치거리로 여겨지고 있다.
  • 사노맹/안기부가 밝힌 「붉은 조직」의 정체·활동

    ◎남노당이후 최대 지하혁명조직/폭력통한 사회주의국 건설이 목표/지난 총선땐 조직원 8명 출마시켜/「전노협」·「전대협」에도 조직원 침투,정파투쟁 국가안전기획부가 15일 발표한 「사노맹」의 실체는 전국적 규모의 완벽한 조직체계를 갖추고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기도해온 해방직후의 「남노당」이후 최대규모의 좌경지하조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좌우익이 대립하던 건국초기의 혼란시대에 조직된 「남노당」맡고는 정부수립이후 「남민전」등 크고 작은 좌경조직들이 당국에 적발되기는 했으나 「사노맹」과 같이 조직원들의 수가 많고 체계가 완비된 조직은 없었다. 지난 89년 11월 출범한 「사노맹」은 2년 반밖에 되지않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국을 4개 지역으로 나눠 69개의 공장등에서 3천5백여명의 조직원을 거느릴만큼 대규모의 좌경조직으로 세력을 확장해 자유민주체제를 위협해온 것이 사실이다. 「…남한의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실날을 이어 사회주의 혁명투쟁에 살고 죽으려 한다」는 출범선언문에서 보듯 「사로맹」의 목표는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거쳐 남한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노맹」은 「빨치산의 혁명투쟁 전통을 계승」하여 94년 봄까지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한다는 중간목표를 세워놓고 전국의 공장과 학원에 조직원을 침투시켜 세력을 확장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이들은 이른바 「공장소조」등 공장침투조직말고도 「정파투쟁」을 벌여 「전노협」「전대협」등 다른 투쟁조직과 지하조직에까지 조직원을 들여보내 조직확대를 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출범이후 조직의 활동이 조금씩 드러나 당국의 수사를 받게돼 지난 90년 9월 중앙위원 남진현등 조직원 54명이 검거되고 지난해 3월에는 중앙상임위원인 박기평등이 붙잡히자 백태웅을 중심으로 조직을 보다 더 확대·전문화시켜왔다는 것이 안기부의 설명이다. 이같이 조직원을 확보한뒤 94년까지 결성한다는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창당계획은 모두 5단계로 나뉘어져 있고 올해부터 계획을 실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더욱이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건설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수단으로 「새건추」(새로운 민중당 건설을 위한 추진위원회)「민정추」「민중진영 단일정당 추진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합법정당인 「민중당」의 후보를 위원장으로 선출,세력을 침투시켰는가 하면 3·24총선에 「민정추」소속 후보 8명을 출마시켜 3천여만원을 선거자금으로 지급하고 선거운동을 「사노맹」에서 직접 관장하는등 합법적인 정치활동을 기도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은 「무장봉기 없이는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무장 폭력혁명만을 유일한 수단으로 강조하고 있다. 무장봉기를 위한 3단계 계획을 수립하고 무장력을 갖추기 위한 폭발물을 개발하려고 했는가하면 무기고 탈취계획까지 수립한 것으로 수사결과 밝혀졌다. 또 선전 선동의 면에서도 「시각매체연구소」라는 조직을 만들어 선전용 비디오와 영화를 제작하는가 하면 주간신문과 전국적 「정치신문」의 발간도함께 추진해왔다. 이처럼 치밀하게 짜여진 조직의 목표와 행동방향아래 각 분야에 침투한 조직원들은 각종집회 시위와 노사분규현장 등에서 과격투쟁을 일삼아 왔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수사에서는 「사노맹」이 직접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해온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북한등 국제사회주의 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번 수사에서 「사노맹」의 실체가 드러났다 하더라도 그 배후세력은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북한등과의 연계에 대해서도 수사를 계속한다는 것이 안기부의 방침이다. 이번 「사노맹」사건으로 소련과 동구의 공산주의의 몰락에도 아랑곳없이 폭력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체제전복투쟁이 계속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 좌익세력에 대한 적극적 대처와 경계를 늦출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페루헌정 조속 회복 촉구/미주기구서 결의안 채택

    【워싱턴 AP AFP 연합】 페루정부의 지난 5일 비상조치선포 이후 좌익공산반도들의 폭탄테러공격이 잇따라 발생하는등 페루사태가 여전히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미주기구(OAS)는 13일 페루정부에 대해 헌정중단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하는 한편헌정회복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페루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이날 워싱턴에서 긴급회동한 OAS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이와함께 현재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협상을 위해 고위급 대표단을 페루에 파견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앞서 후지모리대통령은 지난 12일밤 앞으로 6개월 이내에 자신의 정치제도 개혁에 관한 페루국민들의 찬반여부를 묻는 두차례의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 페루쿠데타 정당화 될수 없다(해외사설)

    라틴 아메리카인들은 지난5일 단행된 페루의 헌정중단및 의회해산조치를 쿠데타로 보고 있다.페루의 군부 지도자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격이라고 할수있는 이번쿠데타에 가담하고 있다.서방국가들은 외교관 추방및 경제제재조치에다 자유와 목숨이 위협받고 있는 페루국민들을 위해 이번 사태에 신속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페루정정은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인디언과 메스티조인들은 스페인계 백인후손들의 지배에 반발했으며 군과 좌익혁명 게릴라단체인 「빛나는 길」과의 전투로 2만5천명이 목숨을 잃었다.코카인 거래는 허약한 경제에 가장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였으나 부패와 폭력을 만연시켰다. 페루인들은 「빛나는 길」관련 범죄자들을 겁에질려 무죄로 석방하고만 재판관들에게서 좌절감을 맛보았다.또한 의회에서 다수를 확보하지 못한 후지모리 대통령은 자신이 발표한 경제와 국가안보 포고령이 의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것을 가슴아프게 지켜보아야만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쿠데타는 정당화될 수 없다.결국 후지모리의 포고령에 권위를 준 것은 의회였으며 대통령의 비상조치에 대해 의회에서 반대한 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군에게 국민과 자원을 아무런 제한없이 통제하도록 허용했다.그리고 정책수행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않은채 「비밀 서류」라는 명목으로 보도를 불허했다. 페루에 대한 강력한 제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유사한 문제가 볼리비아,브라질,콜롬비아등지에서 일어날 수 있다.이지역 국가들은 독재라는 유혹에 견뎌왔다.그러나 이번 페루사태를 계기로 이지역국가의 군부는 혁명이라는 위험스러운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최소한,미주기구(OAS)는 페루에 들어선 새정권에 대한 승인을 보류할 필요가 있으며 경제관계를 중단하고 폭력행사를 하지않았으면서도 감금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해야한다.미국은 이번 쿠데타를 공개적인 군부쿠데타로 규정,모든 원조를 중단해야한다. 미국의 이익과 원칙은 이번 경우에도 일치한다.「빛나는 길」의 봉쇄에다 마약밀매를 근절하고 민주주의를 유지하기위해 가장요구되는 것은 페루에 합법적인 통치가 하루빨리 자리잡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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