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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개혁반대파 곧 숙청”/송평·와인지등 구체거론

    ◎당 중앙군사위/군부에 개혁지지 「반좌투쟁」 지시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이 주도하는 제2단계 개혁개방정책이 당내 보수강경파들로부터 각종 방해공작과 저항등을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등은 주요 보수좌파지도자들을 숙청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홍콩신문들이 5일 보도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와 친중국계 월간 경보는 이날 『천안문사태이후 모택동주의 부활을 시도해온 일단의 당정간부들이 당규율검사를 받게될 것』이라고 전하고 지난 2월부터 북경에서 나돌고 있는 해임대상은 당인사담당 정치국원 송평,당중앙선전부장 왕인지,인민일보사장 고적,국무원 문화부장(대행)하경지등이라고 보도했다. 또 성도일보는 인민해방군에 대해 최근 개혁정책에 대한 지지를 촉구하고 좌익사조에 대한 반대투쟁을 고무하며 군지휘부의 연경화를 촉구하는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지시가 하달됐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북경발 특파원기사에서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가 지난 2월29일 예하 각군 기관 및 부대 지휘관의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당중앙군사위로부터의 6개항의 「중앙정신의 관철」을 요구하는 지시를 하달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중국군부에 하달된 중앙군사위의 지시사항가운데 중요한 내용은 ▲개혁개방속도를 보다 빨리할것 ▲반좌투쟁을 강화할것 ▲군지휘관의 연령을 낮출것 등이라고 밝혔다.
  • 주은파 지하조직 「해돋이」적발/3명 구속

    ◎현대자 불법 노사분규 배후조정/다른 좌익조직 4∼5개 회사내 활동 확인 【창원】 국가안전기획부 경남지부는 21일 현대자동차 노사분규와 관련,배후에서 분규를 조종해온 「주사파」지하조직인 「해돋이」조직원 김진규(28·현대자동차노조 정책연구부차장)김병우(26·〃부원)김재권씨(26·〃)등 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또 노사분규과정에서 교통사고로 입원치료중인 서영호씨(30·현대노조 정책연구부 부장)는 불구속 입건하고 가담정도가 경미한 김태홍씨(28·현대자동차노조원)는 훈방조치했다. 서씨등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학습해오면서 주사파의 하부조직 「해돋이」의 핵심조직원으로 활동,현대자동차노조 전임 이상범위원장을 반민주세력으로 몰아 퇴진시키고 이헌구위원장을 당선시켜 지난달 1월 현대자동차노조의 불법파업을 배후에서 조종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안기부 경남지부는 이번 수사를 통해 현대자동차노조 내부에 아직 4∼5개의 지하 좌익조직이 활동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정모씨등 6명에 대한 신원과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 이효석은 변절자 아니다/이상옥교수,가산의 문학·생애 재조명

    ◎예리한 감성지닌 심미주의자/프로문학 참여는 “단순한 외도” 작가 이효석에 대해 기존의 평가와는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책이 나왔다. 서울대 영문학과 이상옥교수가 최근 펴낸 「이효석­문학과 생애」는 가산 이효석(1907∼1942)사후 50주년을 맞아 그의 문학과 생애를 재조명하고 있다.이제까지 이효석에 대한 연구는 그를 단지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로만 알려지게 할만큼 미흡한 것이었다.더욱이 그는 동반자 작가로서 나중에 탐미주의적 세계에 몰두했다는 이유로 식민지적 현실에서 도피한 비굴한 지식인으로까지 간주되는 등 그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인 것이었다.이에 대해 저자인 이교수는 이제까지 이효석연구에 있어서의이분법적 사고를 배제하고 이효석의 양면 가치지향적인 성격을 고려한다면 그의 변신은 변절도 도피도 아니라고 주장한다.이교수는 먼저 프롤레타리아문학에 대한 이효석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것으로만 머물러 있었지 결코 그 관념의 구체적 행동화라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었다』고지적한다. 그 이유로 이교수는 『이효석이 프롤레타리아문학에서 요구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행하기에는 너무나 여린 정감과 예리한 감수성을 갖추고 있었다』고 설명한다.따라서 이효석이 20년대 말기에 동반자 작가로서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일종의 시류 순응적이고 세태 추종적인 외도에 불과했으므로 이에서 탈피,탐미주의적인 작품세계로 옮아갔던 것이 그로서는 어려운 일도 질책받을 만한 일도 아니었다는 분석이다.이교수는 또 이효석이 당시 서구의 심미주의 문학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나름대로 심미주의 이론을 확립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며 이효석의 탐미문학이 단순한 현실도피의 방편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그는 특히 『이효석은 타고난 심미주의자였다』며 이효석의 변신이 『자기자신의 작가적 체질과 동질성을 띠고 있는 문학적 본령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고 풀이했다.그러나 그는 이효석의 심미주의문학 역시 좌익이념문학과 마찬가지로 수작이 없으므로 이효석문학의 진가는 자연과 성의 문제를 천착하는 작품들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평론가 김철씨,아버지주제 단편소설 9편 분석(문학)

    ◎소설속의 아버지상 시대따라 변천/일제통치­6·25전쟁중엔 「부재의 얼굴」/70년대들어 작가들의 복권노력 시작 우리 소설에 나타나는 아버지의 모습들은 어떠한가.흔히 관용 인내 부드러움 등을 상징하는 모성에 대응하여 권위 질서 억압 제도 등을 뜻하며 이원적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유효한 잣대의 하나인 부성이 우리 문학에선 어떤 방식으로 추구,반영되고 있는가.최근 국민서관에서 출간된 「아버지의 얼굴」은 아버지를 주제로 한 소설모음집으로 위의 물음에 미흡하게나마 답해 준다. 문학평론가 김철씨에 의해 엮어진 「아버지의 얼굴」은 김원일 임철우 이경자씨 등 작가 9인이 각각 아버지를 주제로 쓴 단편소설들을 수록하고 있다. 대부분 분단상황과 긴밀히 맞물려 있는 이 소설들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아버지와의 화해를 모색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원일씨의 「어둠의 혼」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세계와 첫 대면하는 소년의 심리를 묘사한 소설.여순반란사건으로 시체가 된 아버지와 세계가 소년에겐 불가해한 대상일 뿐이다.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공포와 연민이 묘하게 뒤섞인 것이지만 굶주림이라는 현실의 중압이 소년의 그같은 감정의 지속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창동씨의 「용천뱅이」는 현실의 중압에 잊혀지거나 잊으려 애썼던 것들이 언젠가 다시 대면해야 할 것임을 깨우쳐 준다.과거 좌익활동에 가담,가족에게 고통을 주었던 아버지와의 재상봉은 과거를 잊으려 했던 주인공에게 과거의 역사와 질곡을 돼새기게 하는 계기가 된다. 아버지와의 화해는 임철우씨의 「아버지의 땅」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진지구축작업중 철사가 감긴 유골을 발굴한 한 병사의 생각은 6·25때 좌익활동을 하다 어딘가 땅에 묻혔을 아버지에게로까지 미친다.발굴한 유골을 장례 치르는 일이 병사에겐 다름아닌 아버지를 고이 잠재우는 진혼곡인 것이다. 김성동씨의 「오막살이집 한 채」는 그같은 화해의 정점을 보여준다.좌익활동을 이유로 예비검속에 붙잡혀가 결국 6·25때 시체로 발견될 아버지가 소년에겐 신비와 숭앙의 대상으로까지 비쳐지고 있다. 최윤씨의 「아버지 감시」는 그같은 아버지 신비화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일러주는 작품이다.그러나 월북했던 아버지를 외국에서 만나 그의 변함없는 이상을 확인하는 일이 주인공으로선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반적으로 「아비 살해」의 모티브 즉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주인공이 비로소 세계와의 대면을 시작하는 구도는 성장소설의 고전적인 문법에 속하지만 우리 소설사에서 그리 익숙한 방식은 아니다.왜냐하면 급격한 근대성의 도입과 식민지경험,연이은 분단 등은 이미 부권을 청산의 대상으로서 철저히 파괴해 놓았기 때문이다.부정되어야 할 부권은 더이상 남아 있지 못한 형국인 것이다.따라서 분단시대의 「아버지」는 이데올로기적 금기와 억압과 맞물려 「실종」 또는 「타살」의 상태였음을 부인키 어렵다.즉 아버지는 공격을 통해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니었고 존경을 통해 모방해야 할 대상은 더더욱 아니었으며,「아버지는 없다.입밖에 내서는 안 된다」가 분단시대 작가들을 짓누른 잠재의식이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70년대부터 시작되는 작가들의 아버지 되찾기는 천덕꾸러기 아버지의 때는 늦지만 바람직한 복권 시도로 보여진다.그들은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 왜 그냥 그렇게 떠나셨나요』하고 묻는 격이다.근래 작가들의 아버지 찾기는 아버지가 겪었던 역사를 짚고 넘어감으로써 단절을 극복하고 한국소설의 스스로의 힘과 형식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되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철씨는 책말미에 붙인 해설에서 아버지를 찾아나선 작가들의 여정이 『분단의 상황이 지속되는 한 끊임없이 계속될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내다봤다.
  • 개방방해 보수파 고위직 복귀 금지/등소평 지시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은 최근 개혁·개방정책을 방해하는 등력군·호교목 등 좌익보수파의 당내 고위직 복귀를 금지하고 연말의 14차 당대회에서 대폭적인 인사이동을 삼가도록 지시했다고 홍콩의 친중국계 월간지 경보가 4일 보도했다. 등은 이 지시에서 좌익분자들의 간섭은 반당소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들은 반화평연변을 너무 자주 강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같은 등의 지시는 보다 대담한 개혁개방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만이 사회주의를 살려나갈 수 있다는 그의 신념 때문으로 보이며 따라서 진운을 비롯한 보수파의 입지가 크게 약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보수파들은 지난 8월 소 공산당 붕괴이후 경제자유화정책을 맹렬히 비판하고 심지어 당내에서 고르바초프나 옐친과 같은 인물들을 뿌리뽑아야 한다면서 개혁개방정책에 제동을 걸어왔다. 그러나 강택민 총서기와 이서환·교석 정치국원 등 온건개혁파들은 등의 지시를 배경으로 인민일보·광명일보 간부들을 포함한 보수세력에 대한 반격과 설득작업에 나서고 있다고 경보는 지적했다.
  • 엘살바도르 내전종식/정부­반군,12년만에 원칙합의

    【유엔본부 AP 로이터 연합】 엘살바도르 정부와 반정 좌익세력은 지난 81년이래 12년간 끌어오면서 7만5천여 희생자를 낸 내전을 종식시키기로 지난1일 원칙 합의했다.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사무총장 중재로 유엔본부에서 휴전협상을 벌여온 엘살바도르 정부와 파라분도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 반군세력은 이날 성명에서 『내전 종식을 위한 확정적 합의에 도달,모든 중요 현안에 관한 협상을 마쳤다』면서 오는 2월1일자로 휴전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양측은 그러나 내전 종식에 관한 기본합의에도 불구,모든 현안이 타결된 것은 아니며 반군병력 해체등 평화협정 이행에 관한 구체적 일정을 마련키 위해 오는 5일 뉴욕이나 멕시코에서 협상을 재개,오는 16일 멕시코에서 최종적 휴전합의문에 공식서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호네커 칠레 망명길 열릴까

    ◎추방 피해 주소 대사관 피신/칠레 정부,독 눈치보며 머뭇 한때 위세가 하늘을 찔렀던 에리히 호네커 전동독 공산당 제1서기(79)가 독일통일등 세계정세 격변에 따라 국제미아로 전락,갈곳없는 신세가 됐다. 베를린 장벽 탈주자에 대한 발포명령을 내린 혐의로 독일 법정에 서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올 초 소련으로 피신,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그가 러시아공화국측으로부터 출국통첩을 받고 모스크바 주재 칠레대사관으로 다시 거처를 옮기게 된 것. 그가 칠레 대사관으로 피신한 것은 재직당시 피노체트 우익정권의 탄압을 피해 국외망명에 나섰던 칠레 좌익세력들을 대거 받아들였던 인연으로 파트리시오 에일윈 현 정부가 그에게 「빚」이 있기 때문이다.딸도 칠레인과 결혼,현재 산티아고에 살고있다. 클로도미로 알메이다 모스크바주재 칠레대사도 살바도르 아옌데 좌익정부당시인 70년대초부터 호네커와 「오랜 친구」로 지내오다 73년 아옌데 피살과 피노체트 정권등장후 동독에 망명,76년부터 87년까지 호네커의 보호를 받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칠레정부측의 공식입장은 호네커의 정치망명에 관한한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헬무트 콜 독일총리와 절친한 관계인 에일윈 칠레 대통령도 앞서 『정치망명은 독재정권의 박해를 받고있는 인사들에게 허용되는 것이나 독일은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호네커는 국제법상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김춘수 그리고 박노해(송정숙칼럼)

    지난주의 한 TV에 김춘수 시인이 등장했었다.가파르게 수척한 칠순의 시인이 구사하는 남도사투리는 알아듣기가 매우 거북했다.그렇기는 하나 그 말에 담긴 진률한 목소리는 TV같은데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숨을 죽이고 귀기울이며 들어야 했다. 육신의 고통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의 체험담은 오늘의 시인이 지닌 그 이기적인 정직성을 이해하게 했고 그중의 한 대목인 「3개의 빵」에 대한 삽화는 오래오래 지워지지않을 부조로 새겨진 느낌이 들었다. 일제하의 일본유학시절 관헌의 끄나풀을 못알아본 실수로 그는 감옥에 간 적이 있다.거기서 거물급 좌익사상가인 일인 노교수와 잠깐 부딪는다.굶주린 탓에 피골이 상접한 대학생 정치범 앞에서 「김이 무럭무럭나는 빵을 3개씩이나」차입받고 앉았던 노교수는 그 빵에 시선이 못박힌채 신음하며 마주앉아 있는 젊은이를 묵살한채 혼자서 독식을 해버렸다. 그 노교수가 출옥한 뒤 「감옥까지 다녀온 경력」을 과시하며 펼쳐갔을 「사상운동」을 생각하며 시인은 인간성의 한계앞에스스로 부끄러워진다고 했다.그래서 그는 예수만이라도,인간의 자존심을 위해 예수만이라도 『있어 줘야겠다』고 말한다.그 말이 이상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날의 시인의 고백중 관심을 끈 것은 그의 「80년도의 행적」이다.그는 이른바 5공시대에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다.평소에 증류수를 느끼게 하는 맑음과 순수함을 풍기던 시인의 이 느닷없는 「정치리환」은 당시의 문단을 놀래준 이변이고 당혹이었다.그래서였던지 「신세력」과의 피치못할 관계설이 소문으로 떠돌았었다.의리로도 친분으로도 거역하지 못할 「관계」때문에 거절이 허락되지 않았다는,그 소문으로 사람들은 양해를 자청한 셈이다. 그러나 TV에서의 고백에 의하면 그의 「의원직」은 강압도,피치못할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 『60살이던 그때의 내게,이상하게도 그일은 호기심이 생겼다』는 것이다.정치라는 것이 무엇하는 것인지 한번 경험해보고도 싶었고 문화예술,교육같은 분야에서 도움이 되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에도 솔깃해지더라는 것이다.그의 그 무섭도록 이기적인 정직성이 토해놓는 이 고백이,신뢰감도 주고 위안도 준다.호기심이나 솔깃함이 짓밟혀 결국은 『괜히 들어온게 아닌가』하는 회의를 부르는 것으로 끝났지만,그것 역시 정치적 역량의 문제였음을 체험한 그로서는 「한 체험의 소득」을 중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런 그에게서는 성숙한 해답같은 것을 기대하게 한다.이제는 우리도 이만한 해답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위선에 찬 궁한 답이나 일차방정식같은 우답,가짜대답들에는 염증이 났으니까. 자기와 반대되는 뜻을 가진 시인,그러니까 이른바 참여파의 이념시인에 대해서도 명징한 답을 그는 가지고 있다.그런 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다만 그 시인들이 「자신들것만 시다」라며 다른 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는 김춘수시인은 최근의 박노해시인을 생각나게 했다.「얼굴없는 노동자시인」으로 80년대의 일부를 영웅처럼 차지했던 시인이다.그는 지금 영어의 몸이다. 그가 최근 법정에 서서 「거대한 꿈의 환상에서 깨어났음」을 고백했다.1차공판때인 몇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주의」를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정정당당」을 최대의 자존심으로 삼았던 참여파 시인이다. 그런 그가 『무거운 침묵속에서 사회주의의 붕괴를 지켜보았다』고 말했다.또 「자본주의 체제가 승리했음」을,「경쟁을 통한 자기성취와 끊임없는 자기갱신이 승리의 요인임」을 인정했다.그러면서 그는 「소월」과 「미당」같은 순수파 시인들의 작품을 옥중에서 읽은 소감도 피력했다.『국어를 갈고 닦은 그들의 노력을 평가한다』는 것이다.동양적 예의나 겸손의 미덕같은 것을 기준으로 보면 버릇없는 「평가」이긴 하다.거인같은 민족시인들을 국어의 갈고닦음 속에 축소시켜버리려는 듯한 맹랑함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가 구사한 어휘가 지닌 본래의 뜻만 살려도 시인들의 크기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다만 김춘수시인의 유감처럼 「그것은 아니다」라고 했던 것을 「그것도 기다」라고 인정한 박노해의 그 변화가 놀랍다.그 변화의 성숙성때문에 우리는 『자유와 인권,민주가 가득한 사회를 바라며 혁명을 꿈꾸는 자는 반드시(앞으로도)생겨난다』는 그의 예언도 미소로 수긍할수 있는 것이다.또한 「겨울나무처럼 잎을 떨구고 추위를 견디고 있는」박노해시인의 겨울에 연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시대의 홍수가 남긴 상처를 가슴에 품고 시인들은 진주를 키운다.김춘수,박노해들 말고도 우리시대의 고통을 품고 있는 진주조개같은 시인과 예술가들이 우리시대에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 파 구공산당 제1당 복귀/총선 결과

    ◎28개 정당 난립… 연정 진통 예상 【바르샤바 로이터 연합】 폴란드의 구공산당인 민주좌익동맹(DLA)은 29일 연대노조 그룹인 민주연합(UD)을 간발의 차로 누르고 최대 정당으로 복귀했다. 또 이번 총선 결과 하원(세임)에 28개 정당이 난립,안정된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는 힘들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7일 실시된 총선 결과가 98% 개표된 이날 저녁 현재 민주좌익동맹은 득표율에서는 12.07%를 기록,12.23%를 얻은 민주연합에 뒤졌으나 의석수에서는 1석을 앞서 권력에서 밀려난지 2년만에 다시 최대 정당으로 복귀했다. 민주좌익동맹측은 이에 따라 민주연합과 이번 총선에서 3를 차지한 공산계 농민당(PSL)과의 연립정부 구성을 제의했다. 그러나 총선 결과에 따라 총리를 임명해야 하는 레흐 바웬사 폴란드 대통령은 구공산당이 최다 의석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정부에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현대사 왜곡 절대 없어야”/노 대통령,국사편찬위원 11명과 오찬

    노태우대통령은 16일 박영석위원장등 국사편찬위원회위원 11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 하며 유엔총회 연설과 멕시코방문결과를 설명하고 불편부당의 공정한 사관을 당부했다. 노대통령은 이자리에서 『역사의 단절은 있을 수 없으나 그렇다고해서 역사의 어느 한 단면이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거나 각종 좌익폭력활동에 관련된 사실들을 민족주의나 인도주의적 사관에서 미화시켜 사회에 확산시키는 행태가 정당화 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일부 사학자들이 유물변증사관에 입각하여 현대사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할 일』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우리 현대사에 있어 부끄러운 면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잡아 정통성문제등에 합의를 이루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며 우리 국가사회의 장래는 여기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백범 암살 배후 없다/안두희씨 거듭 주장(조약돌)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씨(75·인천시 중구 신흥동)는 11일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위해하려한 권중희씨(55·서울 서대문구 북가좌1동 384의 10)에게 『백범 암살의 배후는 없다』면서 『자신은 군입대전 서북청년당 총무부장이었으며 당시 미 정보기관인 OSS소속 중위의 부탁으로 정치정보를 수집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또 백범 살해동기는 자신이 정보를 수집한 결과 여순반란사건,국회 프락치사건등에 한독당 좌익세력들이 많이 가담한 사실을 알아내고 한독당 당수인 김구선생을 찾아가 『좌익세력들과 함께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따지자 김구선생이 『지금은 그런 것을 논할때가 아니며 좌·우익 모두 힘을 합쳐 통일을 위해 노력할 때』라며 자신을 꾸짖은데 격분,김구선생을 살해했을 뿐 『배후는 없다』고 주장했다.
  • 신의주서 반정 시위/지난달 4천명 참가/소 사태에 자극 받은듯

    【도쿄 연합】 소련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직후 북한 신의주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었다고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이날 도쿄의 한반도관계 소식통을 인용,지난 8월27일 신의주 시내에서 약 4천명의 북한 주민이 반김일성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인민군과 경찰이 즉각 진압작전에 나섰으나 유혈사태까지에는 이르지 않았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북한의 반정부 시위는 소련 공산당 좌익 강경파의 쿠데타 실패에 자극받아 발생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전했다.
  • 스웨덴 집권사민당 총선 참패/59년 집권 막내려… 칼손 내각 해체

    ◎보수계 중도 우파 연정 들어설듯 【스톡홀름 AP UPI 연합】 북지국가를 추구해온 스웨덴의 집권사회민주당이 15일 의회선거에서 참패,59년 집권의 막을 내렸다. 인그바르 칼손 총리는 16일 자신이 이끄는 사회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중도­우익정당들에게 패배함에 따라 테이지 페터슨 국회의장에게 사표를 줄,수리됐으며 이에따라 사회민주당정부는 해체됐다. 칼손총리는 또 이날 국회의장이 과도정부의 수반으로 남아줄것을 요청했다. 이날 부재자투표를 제외한 집계결과 부수당·중도당·기민당·자유당등 비사회주의계열 4개정당이 3백49개 의석중 과반수선에서 불과 5석 미달하는 1백70석을 차지한 반면에 사회민주당과 좌익당은 종전의석에서 모두 21석이 줄어든 1백54석에 불과한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보수당의 칼빌트 당수가 비사회주의계열 정당을 기반으로 연정을 주도할 것으로 보이며 25석을 차지한 신민주주의당이 보수계 중도우파연정구성의 열쇠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극좌를 표방해온 녹색당은 1석도 얻지못했을 뿐아니라 의회진출이 필요한 4%의 득표도 하지 못해 의회에서 축출될것으로 보인다. ◎“고인플레속 무거운 세금”에 염증/봉급의 60%가 「복지세금」… 근로의욕 “실종”/「사회민주」 한계 노정… 체제조정 불가피(해설) 사민당의 참패는 가난한 사람이 없고 소득격차가 적은 복지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엄청난 공공부문 지출을 통한 비효율적인 국가독점체제를 유지해온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지나친 세금과 각종 경제규제에 대한 국민들의 누적된 불만이 표출된 셈이다. 사실 스웨덴의 경제는 최근 들어 침체일로를 걸어왔다.근로자 평균급료의 60%를 세금으로 거둬가기 때문에 근로의욕이 땅에 떨어졌고 실업률은 3.1%로 지난해의 2배이자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상태로 전락했으며 인플레율은 9%로 유럽최고를 기록해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는 실정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제규제가 심하고 수지타산 뿐 아니라 근로자들의 휴식까지도 신경써야하기 때문에 투자의욕이 위축돼 지난해에만 8백억크로네(약 10조원)의 자본이 해외로유출됐을 정도다. 스웨덴경제를 멍들게한 또하나의 요인은 실업수당등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회복지비용이다.당연한 결과로 경제성장은 최근 5년간 유럽최저수준에서 맴돈데 이어 올해는 마이너스가 예상된다. 이같은 여건에서는 ▲세금감면 ▲기업규제완화 ▲경쟁체제 촉진 ▲전국민의 30%에 해당되는 공무원들의 급료삭감 ▲병원 탁아소 양로원의 사유화등 보수계 야당들이 내건 선거공약이 먹혀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집권 사민당도 이같은 분위기를 인식한 나머지 지난해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누진소득세를 일부 경감하고 지난 7월에는 각종 경제규제 완화와 국가지원금 축소 의무가 수반되는 EC(유럽공동체)에의 가입을 신청하는등 뒤늦게나마 체제보완을 시도했으나 이미 떠나가버린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가 표현하듯 사회복지를 정부가 책임지는 사회민주주의가 어느정도 단계까지는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최근 몰락의 길을 걷고있는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윤추구동기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할 경우 일정한계 이상의 도약이 불가능함을 이번 스웨덴 총선결과는 우리에게 웅변으로 증명해 주고있다.
  • 외언내언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추구하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이상은 북구식 복지사회주의의 건설에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다.소련 쿠데타 저지후 사회주의 완전포기의 대세에 밀리면서도 『스웨덴에서 배우고 싶다』며 사회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하던 그가 인상적이기도 했다.북구식 복지사회주의는 그가 아니더라도 많은 세계사람들의 오랜 선망의 대상이었다.◆가난한 사람이 없고 소득수준의 격차가 적은 사회.요람에서 무덤까지를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이상사회가 북구사회주의의 목표다.북구는 그목표에 가장 가까이 가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대표적인 나라가 스웨덴.한데 정작 그 스웨덴사람들은 실망하고 변화를 바라기 시작했다는 소식.◆15일 총선에서 집권사회민주노동당의 패배가 확실하다는 것.스웨덴의 사민당은 36년의 한때를 제외하곤 32년부터 60여년을 장기집권하면서 세계제일의 복지국가를 건설한 민주사회주의 정당으로 유명하다.최근의 여론조사에선 사민당과 좌익당(옛공산당)의 지지율이 35.9%.감세와 철저한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하는우익의 부르주아4개 당 지지율은 49.5%.◆연이은 제로내지 마이너스 성장과 실업률의 배증등 경제부진이 직접적인 이유.하지만 최대의 원인은 고복지·고부담사회민주주의정책의 한계노출.근로소득의 60%를 세금으로내도 부족한 복지부담의 한없는 증가.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해외투자 도피사태.일하는 자보다 놀고 먹는자가 많아진 사회분위기.국민들은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분배에는 강하나 생산에는 약한것이 사회주의의 최대 약점.소련공산당의 붕괴나 스웨덴사민당 퇴조도 바로 그 약점때문 아닌가.스웨덴의 복지사회주의도 60년만의 한계인데 소공산당의 붕괴가 70년만의 일이고 보면 그 세월이 사회주의실험의 한계인가.북구도 한계라면 고르비도 서구자본주의 말고는 갈길이 막연하다.고르비같은 이상도 없이 끝나버린 공산주의의 고수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앞날이 걱정이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8·끝

    ◎“철군 반대” 인터뷰로 워싱턴 “발칵”/이틀뒤 배시사령관,“본국 소환” 통보/카터,경위 설명 불구 끝내 해직 명령/“한국내 전술핵 제거땐 위험” 하원 군사소위 증언서 강조 배시사령관의 민간인 특별고문인 짐 하우스만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그해(77년) 5월18일 수요일 이었다.그는 1946년이래 한미 양국군의 고문역으로 서울에서 근무해온 베테랑 한국통이었다.그가 주한미군 철군관계를 취재하러온 워싱턴포스트 도쿄특파원 존 사르와 함께 오겠다는 것이었다. 사르는 도쿄의 한국 망명 좌익인사들과 친하며 스나이더대사가 그에게는 어떠한 브리핑도 하지말 것을 직원들에게 지시했다고 들은바 있어 그를 만나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그러나 하우스만은 유엔사령부가 이미 존 번부사령관의 인터뷰를 허가했으며 나에게는 2사단의 역할에 관한 간단한 질문 몇가지만을 하게될 것이라며 만날 것을 간청했다. ○한국군 장성 견해 어필 결국 「20분간만」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그는 좀 야위었지만 저돌적으로 보이는 30대의 젊은이였다.몇가지 질문을 받는동안 그가 군사문제에는 별지식이 없음을 알게 됐다.마지막에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찬반견해를 물었다.『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김일성이 전쟁도발의 충동을 받게될 것이라는 한국군 장성들의 견해를 순수한 군사적 견지에서 동의한다』면서『그러나 일단 어떤 결정이 내려지면 우리는 최대한 열심히 수행해나갈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다음날인 19일 밤10시쯤 배시사령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조지 브라운합참의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워싱턴포스트지 1면에 실린 존 사르의 기사 때문에 워싱턴이 발칵 뒤집혔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르에게 크게 문제될만한 얘기는 하지 않았고 또 대부분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얘기했기 때문에 문제된 영문을 알수가 없었다. ○“커터 게획 도전” 보도 자정이 막 지나서 배시사령관으로부터 또한차례 전화가 왔다.가능한한 빠른 비행기편으로 워싱턴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직접 경위설명을 하라는 본국 정부의 소환령을 전했다.한국전쟁때 맥아더사령관이 트루만대통령에 의해 소환된 이래 대통령이 해외주둔 장성을 소환한 일은 두번째였다. 문제의 워싱턴포스트지 복사본을 구한 것은 다음날 새벽 6시였다.「위험한 결정­주한미군장성들,카터 철군계획 신랄한 비판」이라는 제목의 1면박스로 내가 카터대통령의 미군철군계획을 「실책」이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돼 있었다.또 철군이 전쟁을 야기시킬 것이라는 한국군장성들의 견해가 내 견해로 나타나 있었으며 『많은 군관계자들이 카터의 철군 구상에 도전하고 있다』는 인용도 있었다.더욱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대통령 발표 정책에 대해 일선 장군들이 공공연히 이견을 나타내는 이례적인 현상들이 정책수행 직전에 나타나고 있다』는 인용구였다. 다음날 도쿄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우연히 가족들과 함께 탄 짐 하우스만을 만났다.딸인듯한 젊은 여자와 이야기하고 있던 그가 내옆에 와서 앉자 그 여자도 함께와 뒷자리에 앉았다.우리는 사르의 보도내용들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얼마후 그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떴을때 그녀가 옆에 앉아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몇가지 질문에 답하다보니 그녀는 하우스만의 딸이 아니었다.그제서야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그녀는 어깨에서 테이프 리코더가 든 백을 내려놓으며 『멜린다 닉스,CBS기자에요』라고 답했다.나중에 온 하우스만은 그녀가 사르의 부인이라고 보충설명을 해줬다. 그녀는 「특종」을 하기 위해 도쿄에서 내렸고 나는 극성스러운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피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비행기 안에서는 내내 브라운 합참의장에게 제출할 경위서를 작성했다.워싱턴에 도착해서 안 일이지만 이 철군계획은 이미 지난 5월5일께 최종결정됐으며 유엔사에는 이에앞서 4월말 버나드 로저스육참총장이 방한했을때 이미 통보한 것으로 돼있었다. 해럴드 브라운국방장관과 카터대통령을 만난 것은 5월21일 대통령집무실에서 였다.카터대통령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들어왔다.『싱글로브장군,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데 익숙해 있소.8년동안의 해군생활에서도 그랬고 조지아주지사를 맡으면서도 그랬소』 대통령은 또 철군에 대해 합참의장과 국방장관도 동의했다고 말했다.그러나 내가 듣기로는 합참은 철군의 3개방안을 분석하라는 지시만 받았지 철군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을 지시받은 것은 아니었다.합참은 결국 가장 지연된 방안을 건의하면서 그것이 미안보에 중대한 위험을 안겨줄지 모른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브라운장관이 그 대목을 삭제했었다.나는 장관을 쳐다봤다.그는 창밖의 로즈 가든을 내다보고 있었다. 대통령은 또 『장군의 직속상관인 배시대장의 우려도 결정전에 충분히 참고를 했소』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최종결정을 내리기전 배시와 상의하겠다고한 말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이어서 그는 『당신에 대한 확신이 서지않아 국방장관에게 해직을 명령했소』라고 말했다. 나는 존 사르기자와 인터뷰한 경위를 설명했다.철군계획이 확정된 사실을 모르고 그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으나 일단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는 최선을 다해 그를 수행할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한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해직 결정을 재고해줄 것을 요청했다.그러나 대통령은 단호히 거절했다.누군가가 대통령이 나를 군법회의에 회부시키든가 아니면 강등시키려했다고 한말이 생각났다. 다음날 아침 워싱턴포스트는 「대통령,싱글로브소장 참모장직 해임」이라는 제목으로 브라운장관의 말을 인용,1면 톱으로 보도했다. 25일에는 하원군사소위원회에서 증언이 있었다.방청석은 초만원이었다.나는 질의에 앞선 진술에서 ▲결코 민간의 군통치원칙을 무시하지 않았다 ▲헌법을 준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신문을 이용 군통수권자에게 도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점등을 강조했다.여러가지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을 묻는 질문들이 쏟아졌고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지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미 지상군과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술핵이다.만일 우리가 이들 지상의 수단들을 제거해버린다면 우리의 억지력은 더이상 신뢰할 수 없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증언은 오전 오후 7시간동안 진행됐고 마지막에 스트래튼위원장은 북한군의 군사적 우위와 명백한 침략의도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카터대통령의 고집스런 주한미군철수결정은 의회의 반발을 가져올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미 지원사령부로영전 다음날 워싱턴포스트는 역시 1면 머리기사로 「카터의 대한정책 정면 비난」이라고 스트래튼위원장의 말을 인용,보도했다.백악관은 즉시 반격에 나서 브라운국방은 내셔날 프레스클럽에서 로저스육참총장이 이미 나에게 결정사실을 통보했었으며 주한미군 지휘관들도 철군에 동의했다는등 변명을 늘어놓았다.그러나 나에게는 주한미군정책에 관하여 일체 함구령이 떨어져 있었다. 27일 로저스총장이 새보직을 통보했다.조지아주 맥퍼슨에 있는 미육군지원사령부 참모장이었다.참모부인원만도 2천여명에 달하는 미육군의 12개사령부중 가장 큰부대로의 영전이었다. 결국 카터대통령은 철군정책과 관련 대외적인 대통령의 권위를 확인했고 나의 영전조치로 군내부의 불만을 무마한 셈이었다. 다음해 4월27일 나는 조지아공대 ROTC생도들을 대상으로한 연설에서 카터대통령의 중성자탄 생산연기및 파나마운하정책에 대해 내견해를 밝혔다.소련의 상응조치를 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의 중성자탄 생산의 일방중단은 군사적으로 어리석고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또 파나마운하의 관할권 이양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다. 이같은 견해가 또 AP통신을 타고 보도됐다. 다음날 나는 국방성으로 소환됐을때 알렉산더 육군장관과 로저스 육참총장에게 사의를 밝혔다.35년간의 군생활이 이렇게 마감됐다.마침내 위험한 임무는 끝난 것이다.
  • 「주사파」여 망상서 깨어나라/이철승 전신민당대표최고위원(특별기고)

    ◎공산독재 몰락과 우리현실을 보며…/“우리식대로 살자”는 북의 허성 듣는가 수일전 소련에서 전인류 원한의 상징인 거대한 레닌동상이 맥없이 헐려 내리는 것을 보는 순간 반탁·반공전선에서 싸워 대한민국을 세우고 자유전선을 지키다 살아남은 한사람으로서 오랜만에 승리감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냉엄한 우리 현실앞에 착잡한 심경을 어찌할 수 없었다. 공산통치기간중 전세계에서 목숨을 잃은 1억5천만명이 넘는 참혹한 희생자와 6·25동란때 자유전선에서 희생된 3백만명이 넘는 영혼들의 명복을 빌었으며 반세기동안이나 이산의 고통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1천만 남북동포들을 마음으로 위로 했다. 세기말적 사건인 소련의 붕괴는 「공산주의의 죽음」이라는 세계사적,보편적 하나의 예이다. 74년에 걸쳐 소련과 세계에 군림하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가치관으로 세계인구 3분의1을 지배하던 소련공산당이 드디어 붕괴되고 연방해체의 위기에까지 직면해있다. 그러나 아직 민주화혁명을 겪지 않은 아시아 등 지역 공산국가들은 「공산주의의 죽음」이라는 세계대세에 저항하여 공산체제를 지탱해 보려고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다. 중국은 「사상의 만리장성」을 쌓자고 하고 쿠바와 베트남은 사상교육을 강화,반공투쟁을 봉쇄하고 있다.북한은 「우리식대로 살자」는 구호를 주민의 뇌리에 주입시키고 소련 대신 중국을 종주국으로 삼으며 남한의 좌익세력을 조종,남한정부의 전복투쟁을 벌이면서 북한체제를 안정시키는 공세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그러나 아시아의 공산체제도 대세에 역행할 수 없어 조만간 붕괴될 것은 역사적 필연이라 확신한다.이 숨가쁜 현실에서 우리의 할일은 무엇인가.그간 우리의 정치 잘못으로 북한의 대남통일전선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이 때문에 우리는 정부 각기관에 침투된 「공산분자」를 가려내고 철없이 날뛰는 좌익 혁명세력을 잘 다스리면서 경제력회복과 각종 부조리를 척결하고 바른정치·바른언론으로 정치·경제·사회적 안정을 공고히 한뒤 의외로 빠른 장래에 북한공산체제의 붕괴와 함께 도래할 각종 혼란을 막고 통일에 대비한준비를 범국민적으로 착실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북방정책과 대소정책은 성과가 없지않아 있었다.그러나 북방정책과 경협을 포함한 우리의 대소정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첫째로 정치 기득권의 창구만을 고집하지 말고 정부와 민간·학계및 연구기관 등으로 다양하게 우수한 정보수집력과 분석능력이 총동원되는,각계각층이 망라된 「대책위」같은 것을 제도화해야 할것이다.둘째로 대소정책은 오늘의 소련방의 해체와 공화국의 독립이라는 두가지 현상을 놓고 오늘은 소연방,내일은 공화국식으로 우왕좌왕하거나 무원칙의 경쟁적사업 진출로 추태를 보이지말고 어느것이 국익이 될것인가를 살펴 종합적인 판단력과 안전성확보에 주력하라는 것이다.셋째로 소련과 같은 구조적·사상적으로 변화하는 체제와의 교섭은 더 이상 비밀외교나 단독창구에 의존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우리가 빚을 내서까지 30억달러를 군부와 KGB등에 업혀 있던 고르바초프에게 일방적창구를 통해 제공하기로한 정부의 당초의 처사는 경솔했다고 생각한다.오늘의 소련의 정정으로 보아 자칫하면 그 경협의 상환계획은 원인무효가 될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 당장 경협의 미집행분을 전면보류하고 미일 등이 특별대책반을 구성,소련사정을 면밀히 분석,신중히 대처하고 있듯이 대소정책을 전면재검토하여 신중하게 대응해 나가야 할것이다. 또한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들돝 잡으려다 집돝 놓친다」는 속담처럼 대소정책에 매달려 있기에는 우리의 경제사정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금년에 1백억달러가 될것이라는 무역적자,3백60억달러가 넘는 외채,생산성저하,기술부족,물가폭등,난맥적인 주택정책,막심한 태풍피해,그리고 과소비,외화낭비,도덕성타락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만큼 경제사정은 험난하다.정부는 우선 이같은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할것이다. 독일통일은 많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지만 독일민족의 끈끈하고 우수한 민족성과 경제력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한마디로 대북한정책·통일정책은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북한의 대남정책은 소련등 외부정세가 아무리 바뀌어도 소위 「사회주의불패론」을 내걸고 6·25전범자인 김일성이 살아있는한 대남통일전선전략을 한치의 변화없이 밀고 나갈 것이다. 김일성이 무너질때 북한의 사정은 아비규환의 혼란이 일어날것이며 북한 동포들의 난민이 쏟아져 나올때 정부는 무엇으로 이를 대비할것인가.통일바람만 부추기고 있을때가 아닌 중대한 전환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북한의 상투전술에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할것이다. 우리의 통일정책은 인류보편의 정경대원칙을 견지하면서 루마니아 소련보다 더 큰 혼란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는 김일성에게 환심을 사려하기보다는 김일성정권이 얼마나 반민족적 반인간적 독재정권인가를 남북한동포와 해외동포,나가서는 전세계인류에게 알리고 북에서 신음하는 동포를 구제하며 국제적연대에 의해 북한의 개방을 불가피하게 만들며 자유와 다원체제로서의 통일을 이룩하는 명백한 국민적 합의를 이룩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대북정책·통일정책을 성과 있게하려면 우리의 내부정돈부터 하여야 한다.국내 각계·각층·각기관에 독버섯처럼 박혀 있는 공산간첩·좌익파괴분자들을 낱낱이 뿌리 뽑아야 한다. 소련에 이번 정변이 났을때 쿠데타세력을 지지·찬양하는 대자보가 수개대학에 나붙고 있었던 실상을 우리는 어찌 보아야할것인가. 북한은 3만5천여개의 김일성동상을 만들어 인민에게 충성을 강요하고 있다.남한의 주사파좌익학생들은 바로 그 김일성동상을 가슴에 묻고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여야정치지도자들이나 지식인 언론계가 건국과정에서 6·25자유수호전선에서 희생된 선대의 덕으로 자유와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동안 소련과 동구권의 시민과 같이 이나라 좌익세력의 뿌리를 뽑는다는 책무를 잊어버리고 있는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 검거된 「반제 PD그룹」의 실체

    ◎서울등 대도시 노동자에 의식화 교육/「강군 치사집회」등 불법 시위 배후조종 찰에 검거된 「반제·반파쇼 민중민주주의 혁명그룹」은 마르크스·레닌사상을 혁명의 지도이념으로 삼아 무장봉기를 통해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려 한 이적단체라고 경찰은 밝히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초 박성인등의 주동아래 올해의 상황이 혁명적 시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서울 구로구 개봉동·시흥동·난곡동등 3곳에 비밀 아지트를 구축한 뒤 부산·울산·서울 구로공단·부천등 공장지대에서 노동자를 선동하는등 지하활동을 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4월 강경대군의 치사사건 뒤에는 각종 집회와 시위에 조직원을 총동원,「천만 노동자의 이름으로 민중권력 수립을 선포하자」는 등 폭력혁명을 선동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전노협」「전국노련」등 재야 노동단체의 조직원들을 침투시켜 전국 총파업등 강경투쟁노선을 취하도록 배후 조종하고 서울 성수공단에서는 「동부민주노동자연합」이라는 조직을 결성,노조 간부및 노동자들을 의식화시켜 왔다는것이다. 이들은 「노동자 계급의 주도아래 민중과 연대,무장봉기를 일으켜 민중권력을 수립한 뒤 북한과 연공 통일을 실현한다」는 목표아래 좌익 지하조직들을 규합,「한국사회주의노동당」의 창당을 위한 강령안을 마련하는 등 체제전복 활동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들에 대해 지난 6개월동안 지속적으로 수사를 펼쳐 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광역지방의회선거 뒤 「민족해방계열(NL)」이 주도하는 운동권이 위축된 반면 「민중민주주의 그룹」이 최근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를 지지하는등 운동권내에서의 세력확장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지난21일 외국어대와 26일 고려대에 나붙은 소련 강경보수파의 쿠데타를 지지하는 대자보와 옐친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주목되고 있다. 이들 대자보는 공산당 강경보수파의 쿠데타를 『제국주의와 소련내 부르주아에 대한 사회주의의 승리』라면서 『소유스 그룹을 중심으로 한 당과 군부세력의 투쟁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강변하는가 하면 『옐친은 소수에불과한 부르주아및 프티 부르주아의 이익만을 위해 소련사회주의체제를 서방제국주의에 팔아 넘겼다』고 억지를 썼다. 따라서 소련공산당과 연방마저 해체·붕괴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아직도 허망한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꿈꾸는 이들이야말로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존재들이라는 것이 당국의 견해이다.
  • 고르비가 제시한 미래의 소련

    ◎소 새 연방 「국가연합」형태 예상/선거 통한 정통성 회복… 마지막 승부수/권위주의 청산… 민주사회 행보 가속/과도정부 이끈후 정치생명 단축 예상도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쿠데타이후 소련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그의 구도는 신연방조약체결을 통한 새로운 소련의 탄생과 시장경제로의 전환,그리고 KGB등 권력기관의 개편이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26일 쿠데타이후 처음 소집된 소련최고회의 연설에서 이같은 새로운 소련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고르바초프의 소련 미래상 제시는 쿠데타와 공산당 해체이후 나타나고 있는 크렘린의 권력공백을 최대한 줄이고 빠른 시일내에 소련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고르바초프는 조속한 소련의 정상화를 통해 쿠데타로 현저하게 약화된 정치적 지도력을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는 신연방조약체결후 대통령선거 실시를 제의했다. 고르바초프의 대통령선거실시 제의는 그의 마지막 승부수로 보인다. 그는 선거를 통해 정통성을 다시 확보하려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대통령선가 직선일 경우 고르바초프가 과연 출마할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선거법을 다룰 인민대표대회가 간접선거가 아닌 직접선거를 결정하더라도 그는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더 많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들은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는 옐친이 연방정부의 권한이 대폭 약화되는 상황에서 소련의 핵심인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을 포기하고 연방대통령에 도전할 가능성이 희박하기때문에 고르바초프의 연방대통령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연방대통령이 되더라도 그이 정치적 지도력은 소연방의 와해와 함께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는 과도기적 지도자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더욱이 오는 9월2일 소집되는 인민대표대회에서 쿠데타와 관련,고르바초프에 대한 불신임이나 탄핵이 있을지도 모른다. 고르바초프도 쿠데타를 저지하지 못한데 대해 책임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그러나 신연방조약 체결을 강조했다. 그는 우선 연방조약을 체결한후 각공화국의 독립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의했다. 그는신연방조약을 강조하면서도 독립을 희망하는 공화국의 독립허용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또 5년간의 독립과정을 명시한 헌법에 대해 언급하지않음으로써 공화국들의 보다 빠른 독립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소연방이 어떤 모습을 할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소연방이 국가연합이나 느슨한 형태의 연방 혹은 공화국연방체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경제정책 결정의 중심이 연방정부에서 공화국으로 이관되고 공화국간의 경제위원회 설치를 주장했다. 경제위원회설치 제의는 각 공화국이 정치적으로 독립을 하더라도 경제적 유대관계는 그대로 유지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르바초프는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시장기구의 창출과 토지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토지개혁은 과감한 토지의 사유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보다 빠른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로의 전환을 희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또 KGB등 권력기관의 개편을 주장했다. KGB의 권한을 제한하는 새로운 KGB법을 제정하고 KGB가 가지고 있는 국경수비대의 지휘권을 국방부에 이관하는등 KGB의 기구와 권한을 축소시키려 하는 것이다. 과거 공포의 대상이었던 KGB의 개편은 쿠데타에 저항한 소련 시민들의 자유의지를 더욱 고취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는 소련사회가 보다 빠르게 개방된 민주사회로 전환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지향하는 새로운 소련은 설사 그가 과도기적 지도자로 끝나더라도 다음 지도자에 의해 계승 발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은 지금 시민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 공산당 중앙위성명/요약 1.당은 모든 소련 시민들이 향유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원들에게도 부여된 정치적 자결권에 따라 그 해체를 선언한다. 2.당은 공공기관의 활동과 재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모든 자산을 국민들에게 반환한다. 3.당은 자유·민주주의의 강령에 근거한 좌익 세력들의 새로운 정당을 창설하기위한 작업을 시작해야한다.이 새로운 정당의 당원들은 사회의 지도적 역할의 수행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서 출발하고 나아가 다른 정당과 동등한 위치에서 합법적인 의정활동을 통해 정치적 과업들을 이룩할 것이다. 4.이같은 신당의 창설 가능성은 민주개혁운동,러시아공산민주당,공산주의자및 기타 좌익세력들과 함께 검토돼야 할 것이다. ◎고르비 최고회의 연설/요지 연방조약이 체결된 직후 우리는 대통령직을 포함한 모든 연방기관의 선거실시를 위한 준비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신연방조약이 체결된 뒤 우리는 연방이탈을 원하고 있는 공화국들과 실무적인 협상을 즉시 시작해야 한다. 이번 쿠데타는 히스테리컬한 신문기사나 당회의석상에서 장성들이 행한 연설 등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특별조치를 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는데도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었다. 소련최고회의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또 각료들이 창피할 정도로 무기력하고 비겁하게 쿠데타세력에 동조한 것으로 판명된 동시에 군을 책임진 기관의 최고 책임자들이 쿠데타를주도했다는 점에서 대통령으로서 커다란 책임이 있다. KGB가 바딤 바카틴 신임의장의 주도아래 완전 개편될 것이며 국경수비대에 대한 지휘권을 KGB에서 국방부로 이관할 것이다. KGB가 반헌법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최소한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위해 「장벽」이 설치돼야 하며 지난 봄 통과된 KGB에 관한 법률은 폐지되고 새로운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 소련의 군기관들은 그대로 계속 유지돼야 한다. 6년전부터 시작된 개혁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대통령으로 남아있는 한 어떤 경우에도 개혁과정을 포기하거나 속도를 늦추지 않을 것이며 당과 정부기관들이 일부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보타주를 했다. 시장경제체제 전환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걸림돌들이 제거되고 시장기구가 창설돼야 한다. 경제정책 결정의 중심이 연방정부에서 공화국으로 이관돼야 한다.공화국간 경제위원회가 설립되어야 하며 통화공급의 통제와 예산적자 축소를 위한 조치와 함께 토지개혁이 필요하다.
  • 미 종속 탈피… 중남미 「자조의 틀」 마련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담의 함축/“역내 관세장벽 철폐·교역확대” 선언/“인권·시장경제 존중”… 쿠바도 탈 고립 정치불안과 경제침체의 늪에서 지난 80년대를 고통스럽게 지내온 2억5천만 라틴아메리카인들이 90년대에는 과연 장미빛 꿈을 가질수 있을 것인가. 19일 하오(한국시간 20일 상오)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폐막된 제1회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담은 구체적 결실은 없었다 하더라도 이지역의 유일한 사회주의국가로 폐쇄돼있던 쿠바의 카스트로대통령을 대화테이블로 끌어냈으며 참가국 모두가 공통된 경제위기 인식의 바탕 위에 이의 타개를 위한 공동노력의 방향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거둔것으로 볼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19개국과 과거 식민종주국이었던 스페인·포르투갈을 포함,모두 21개국의 국가원수가 한자리에 모인 이번 회의는 그 결과에 앞서 과거 미국을 중심으로 종속적인 경제관계를 가져왔던 이들 국가들이 처음으로 스스로 문제해결을 모색하는 「자조」의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높게 평가돼왔다. 이들이 이틀간의 회의끝에 합의 발표한 「과달라하라선언」에는 ▲인권및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존중 ▲역내 무역장벽철폐를 통한 자유무역 실현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담의 연례화를 통한 지역통합기구의 설립 ▲역내교역위원회 설립 ▲UN에의 대표 파견및 UN의 민주화 촉구 ▲경제성장및 안정의 장애요소로 외채(중남미 총4천3백20억달러)에 대한 인식 일치 ▲식량 마약 주택 교육 환경문제에의 공동대처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실질적인 성과는 쿠바가 변화 가능성을 보인것과 몇몇 국가들끼리의 쌍무적 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비록 카스트로는 강한 어조로 미국의 대중남미정책을 비난하고 사회주의체제의 고수를 강변했지만 결국 인권및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존중을 내세운 과달라하라선언에 서명함으로써 벼랑끝에 선 쿠바경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더이상의 고립정책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인식을 대내외에 보여준 셈이다. 이같은 카스트로의 태도변화에는 다른 국가들의 끊임없는 압력도 작용했다.한예로 엘살바도르의 크리스티아니대통령은 18일 개막연설에서 『이 모임은 대립을 위한것이 아니라 상호이해를 모색하기 위한것』이라고 쿠바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회피했으나 카스트로의 오만스러운 기조연설을 들은 후에는 『카스트로는 세계 모든 나라가 버리고 있는 것에 집착을 계속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또 차모로 니카라과대통령과 곤살레스 스페인총리등도 민주화와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충고했다. 결국 쿠바는 좌익게릴라에 대한 무기지원을 중단한다는 조건으로 칠레·콜롬비아와 20여년 이상 단절돼왔던 영사관계와 부분적 교역관계를 트기로 하는데 성공했으며 29년만에 미주기구(OAS) 복귀 가능의 언질도 들었다. 또 현재 쿠바와 외교관계가 없는 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코스타리카·도미니카·파라과이등에 대해서도 쿠바의 자세변화에 따라서는 수교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다. 한편 이번 회의중 콜롬비아·멕시코·베네수엘라 3국은 별도의 정상회담을 갖고 내년 1월부터 발효될 자유무역협정에 조인키로 합의했다.이같은 라틴아메리카 국가간의 자유무역협정은최초의 것으로 이 지역의 자유무역지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 지역에서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별도로 정상회담을 열어 자국 영토내에서 핵무기의 생산및 저장을 금지하는 협정에 조인하기도 했다. 이번 회의는 멕시코의 살리나스대통령이 88년 취임후부터 추진해온 것으로 원래 내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도착 5백주년을 기념하는 형태로 마련되었지만 이번 첫회담에서부터 라틴아메리카의 지역경제협력문제와 공동관심사가 폭넓게 논의되는등 정치적 성격이 강하게 부각되었으며 앞으로도 이를 피하기는 힘들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정치와 경제에 있어서 미국이 워낙 깊숙히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 모임의 성패는 쿠바의 태도변화보다도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어떻게 지속시켜나가고 또 기존 OAS와의 조화를 어떻게 이뤄나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수 있다.
  • “한국 급진주의 「몰락의 길」 걷고있다”/소 이즈베스티야지 보도

    ◎위험한 존재인식… 「침묵의 대다수」 등돌려/유럽·일 전철밟아 「테러」로 전술전환 가능성 소련정부 기관지 이즈베스티야는 한국의 급진주의가 지난 수년간의 민주화투쟁에 뚜렷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침묵하는 대다수」의 지지를 잃게됨에 따라 끝장의 길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신문은 지난 12일과 15일 연재한 「한국급진주의의 임종」이란 장문의 분석기사를 통해 지난 4월26일이래 강경대군 타살 및 일련의 분신자살 사건과 관련,한국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격렬한 대정부투쟁이 연속적으로 발생했으나 이같은 급진주의에 대한 전체국민의 호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때 사회적 진보의 추진력으로 평가되기까지 했던 한국의 급진주의가 이처럼 몰락의 길을 걷게된 것은 일반인들에게 사회적으로 위험한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며 이로인해 궁지에 몰린 급진파들이 유럽과 일본에서 그러했듯이 불원간 테러전술로 방향을 바꿀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다음은 이즈베스티야의 아가포노프 기자가지난 6월10일 서울에서 취재한 기사의 요약이다. ­지난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전경에 의해 난타당해 사망하자 한국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탄압정권」에 의해 유린되는 민주이념을 위한 투쟁에서 9명이 분신자살을 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쌓이고 맺힌」 울분의 폭발로 가두투쟁에 나선 급진파들에 대한 전체 한국인들의 호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유교전통에서 자살이 부모에 대한 배신으로 인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무엇을 위해 분신자살의 길로 나서고 있으며 이들이 생명을 바쳐 타도하려는 이른바 「독재」의 압력은 어느정도로 심각한 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30여년이상 안팎의 정세로 인해 극단적으로 이데올로기화된 군사독재라는 강경구조속에 갇혀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난후 빈곤과 독재외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던 이 나라에는 추상적인 민주주의 대신에 구체적인 경제발전계획이 국민에게 제시되었다. 기아가 이 나라에서 창궐하는 동안 사람들은 누구나 민주주의에대해 탄식하면서도 이를 대중적 의식화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고민하지는 않았다. 정치적 전체주의속에서 경제적으로 최대의 성취를 가져오게 되면서 굶주림이 배부름으로 바뀌자 정치적 급진주의가 커다란 난관으로 다가왔다. 학생측은 한국에서 「민족의 양심」이라는 영예로운 「작위」를 가지고 언제나 급진주의 운동의 선두에 나서게 됐다. 물론 국민들도 민주적 변혁을 요구했으나 이들 요구의 이면에는 「사회적 혁명」이란 갈망보다는 사회를 발전과 번영의 길로 나가도록 하기위한 새로운 정치적 조직을 바라고 있었다. 광주항쟁이후 7년간 급진파들은 민주화의 슬로건아래 의심의 여지없이 한국 정치의 추진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 기간중 정치단체결성 금지법이 취소되는등 공을 세웠다. 한국재야는 급진주의를 토대로 「점수」를 얻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87년 노태우 당시 민정당대표위원이 사회의 민주개혁과 정치적 자유에 기초한 국민화해안을 제시함으로써 급진파의 슬로건을 손안에 틀어쥐고 마침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급진파의 영향력은 구체적행동에 의해 나타나고 있었는데 국가의 정상화가 이들의 토대를 허물어뜨리게 됐다. 좌익 급진주의운동의 대열도 이탈자가 속출,언제나 급진파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던 학생층에서도 붕괴현상이 확연히 드러났다. 오늘날 1만내지 2만2천명 수준으로 위축된 급진파학생들은 한때 사회적 진보의 추진력으로 평가받았으나 오늘날에는 사회적으로 위험한 존재로 비쳐지고 있다. 서울 정치평론가들의 예측에 따르면 급진파들은 불원간 유럽이나 일본에서 그러했듯이 테러전술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겨우 수평선 위에 모습을 드러내 한국의 최대과제는 지난 87·88년사이에 공감대를 일으킨 허약한 국민화합을 어떻게 유지,발전시키느냐에 있다. 여기서 실패할 경우 급진파들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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