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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권·재야·시민단체/북,총체적 좌익화 기도/구국전위사건이 남긴것

    ◎한총련·포철 등에 조직원 침투 지시 28일 검찰이 발표한 구국전위 사건은 북한 공작지도부가 한총련과 노동계에 깊숙이 침투,학생운동및 노사분규를 배후조종해 왔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번 수사결과 북한 공작지도부는 구국전위를 통해 우리 노동계나 재야·학생운동권내를 조종하고 있는 실상이 명백히 드러났다. 특히 북한 공작지도부는 지난해 10월 보낸 지령문에서 「한총련에 대한 배후지도 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여 나가도록 지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밝혀져 학생운동의 구심점인 한총련이 북한의 지령을 의해 움직여 왔다는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검찰은 이같은 지령문과 한총련이 주도해온 각종 집회 및 시위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한총련이 사실상 북한의 목소리와 궤를 같이 하는 이적단체임이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한총련은 2기출범 선언문에서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 수용 ▲반미 자주화 ▲국가보안법 철폐 등 북한의 기본노선을 그대로 표방했다. 구국전위가 학생운동권을 상대로 벌여온 대남공작은 매우 치밀하다. 우선구국전위는 지난해 12월 조직원 김진국을 통해 K대 제적생인 조혁(수배중)을 포섭한뒤 전대협 전간부 4백여명으로 구성된 「전대협동우회」를 조직하도록 했다.구국전위는 이어 이들을 상대로 한총련과 연계,학생운동권을 배후 조종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구국전위 조직총책인 안재구씨(61)가 지난1월 북한에 보낸 보고서는 이를 뒷받침한다.이 보고서에는 「전대협동우회는 주체사상을 확고한 사상으로 갖고 있으며 남조선혁명의 전위대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안씨는 또 지난4월 전대협동우회의 수련회에 참석,주체사상을 교육하는 등 지속적인 포섭활동을 펴왔다. 안씨는 게다가 경북대 총학생회장이던 아들 영민씨(25)를 대구·경북지역 주사파그룹에 침투시켜 이 지역 학생운동을 조종하는 등 간첩활동에 자식까지 동원했다. 검찰 관계자는 『북한이 전대협동우회를 한총련의 전위조직으로 이용,학생운동권을 움직이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총련과 북한공작지도부와의 구체적인 연계 실상을 캐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수사결과 북한은 학생운동권과 함께 노동계에도 깊숙이 침투,극렬한 노사분규를 촉발시키도록 구국전위 조직원들에게 지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창업이래 한번도 노사분규가 일어나지 않았던 포항제철에 침투하기 위해 포철의 하청업체인 제철화학 등에 조직원을 위장취업시켜 포철노조의 활동에 관한 정보를 수집,보고토록 한 것은 그 실례중 하나다. 북한은 이와함께 지령문을 통해 각종 시민운동단체와 정치단체 등까지도 노동당 영향권에 결집시키도록 지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북한측이 혁명투쟁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남한 내에서 일정량의 역할을 인정받고 있는 학생운동권,재야·시민단체들의 총체적인 좌익화를 기도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 컴퓨터통신망 이용,폭력투쟁 선동/주사파 「좌경이념 전파」 실태

    ◎중고생도 대상… 북혁명영화 복제,의식화 활용 한총련의 주사파 운동권 학생들은 대중화된 컴퓨터 통신망과 영상매체등을 이용,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주체사상을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좌경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대학에 갓 들어온 신입생들을 포섭해 전문적으로 의식화 교육을 실시,이른바 「혁명전사」로 키우는 것은 물론 일부 중·고등학생에게 파고들어 의식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안기부가 28일 발표한 「최근 좌경이념실상」에 따르면 주사파를 비롯,좌익 운동권학생들은 자신들의 이념을 다수에게 전파하기 위해 영화나 비디오등 효과가 큰 영상매체와 컴퓨터통신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기존의 개별 접촉과 유인물·대자보등을 통한 의식화 수단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일본의 조총련과 범민련 해외본부등에서 밀반입한 북한 혁명영화를 「보안」상 제목만 바꿔 대량복제해 학생들의 의식화자료로 활용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즉,북한 김일성을 찬양하기 위해 제작한 「조선의 별」과 「민족의 태양」을 「한국의 스타」로,북한의 대표적 혁명가극 「피바다」를 「블러드씨」로 제목을 바꾸었으며 문예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임꺽정」「새」등은 각각 「007시리즈」와 「백정」·「버드와이저」등으로 표제를 붙여 배포해 왔다. 게다가 이들 운동권 학생들이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현실을 비판하고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소형영화및 비디오등을 직접 제작해 학생을 비롯,노동자들의 투쟁의식을 부추기는 선동자료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기부는 특히 이들은 최근 들어 자신들의 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새로운 통로로 컴퓨터통신망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컴퓨터통신망은 통제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선호도가 높다는 분석이다. 현재 36만여명이 가입되어 있는 「천리안」과 「하이텔」등 컴퓨터통신에 한총련등이 자체 전자게시판을 개설,사회주의 폭력혁명투쟁을 선동하는 글을 게재,좌경이념을 전파하고 있다. 한총련은 지난 4월20일 이같은 통신망에 제2기 출범식을 홍보하는 내용의 글을 띄웠으며 운동권단체 「현대철학동호회」도 지난해부터 「국제사회주의자들」·「사노맹 중앙재건위」등의 이름으로 「천리안」에 투쟁논리를 합리화하고 폭력혁명을 부추기는 글을 실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함께 최근 검찰의 수사에서 드러났듯이 북한 중앙방송등 대남방송을 정기적 또는 수시로 청취해 만든 청취록을 대학가에 은밀히 배포하고 있는 것도 주사파학생들의 중요한 이념전파 수단이다. 특히 부산대 사범대학생회가 지난해 8월 중·고생을 대상으로 방학중 「청소년을 위한 푸른 교실」을 개설,반미의식을 전파시켰으며 전대협은 90년 5월 서울 K고교생들에게 반미·친북의식화활동을 전개하고 북한방송 청취서클결성을 기도한 사례에서 보듯 이념전파를 위해서라면 대상을 고려하지 않고 손을 뻗치고 있다는게 안기부의 분석이다.
  • 워싱턴의 문선명·박보희씨/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26일 하오 2시.워싱턴시내의 고급호텔인 옴니 쇼람호텔에서 열린 「세계평화를 위한 청년연합」이란 생소한 단체의 창립총회에는 세계 1백60여개국에서 왔다는 4천여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참석했다. 이윽고 단상의 주요인사들이 사회자의 소개로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그 단상 바로 중앙에는 통일교 문선명교주와 그의 부인 한학자씨가 자리를 잡았고 그 좌우에는 에드워드 히스전영국총리,알렉산더 헤이그전미국무장관,로드리고 카라조전코스타리카대통령등 저명인사들이 줄지어 앉아있었다.최근 평양의 김일성장례식에 참석,김정일을 단독면담했던 박보희세계일보사장도 단상 한옆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통일교의 새로운 조직 발대식인 이날 행사에 참석한 주요인사들은 세계 전역에서 왔다는 청년들에게 각기 축사를 했으며 1시간 반에 걸친 창립총회의 대단원은 문교주의 연설로 장식되었다.문씨는 『좌익과 우익의 이념적 대결은 이제 끝났습니다.인류의 미래는 하나님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을 필요로 하고있습니다』고 역설했다.문교주의,발음이 서투르다싶은 영어연설 중간중간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신도들이 보낸 열광에의 답례인듯 문씨는 청년연합 활동기금이라며 즉석에서 1백만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총회가 끝나자 장내는 곧바로 갖가지 조명속에 공연장으로 바뀌었다.젊은 참석자들의 무료함을 달래기라도 하듯 정상급 미국 가수와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의 공연등 화려한 무대가 펼쳐졌다. 단상의 인사들도 단아래로 내려와 공연관람을 위한 자리에 착석했다.단아래로 내려온 박보희씨에게 특파원들의 질문세례가 퍼부어졌다. ­서울에 언제쯤 돌아갈 계획인가. 『잘 모르겠다』 ­당분간 미국에 머무를것인가. 『그렇다』 ­클린턴대통령에게 전할 김정일의 구두메시지가 있다고 했는데 백악관측과 그 문제를 협의했는가. 『어제 저녁 워싱턴에 도착했다.오늘행사로 바빠 아직 아무것도 못하고있다』 이날 행사장의 분위기는 박씨가 북경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문선명총재의 참사랑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신념에서 방북했다』고 한 말을 실감나게 했다.문교주의권위는 절대적이었다. 반공에 앞장서왔다는 절대 권위의 문교주와,부자가 권력의 대를 잇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공산정권의 공통분모가 과연 무엇일까.
  • 「주사파」 격리는 철저해야 한다(사설)

    정부가 「주사파」등 극좌 폭력세력을 뿌리뽑아 사회로부터 완전 격리시키기로 한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필요한 조치다.왜냐하면 대학이 더 이상 좌경폭력세력의 온상이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이대로 계속 방치했다간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갈등만 깊어지고 결국 아까운 국력의 낭비만 가중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가에 침투한 주사파 학생들의 실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그간 검찰과 경찰의 수사결과 그들의 운동노선과 목표는 김일성 주체사상에 입각해 남한을 폭력혁명으로 공산화하는데 있는 것으로 분명히 드러났다.더욱이 그들은 전체학생에 비해 비록 수적으로는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고 학생운동을 주도하고 있으며,오염된 사상을 빠른 속도로 전파하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체험했듯이 그들은 한마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나아가서는 전복하려는 극좌 폭력세력이다.이미 학생이 아니며 학생신분을 방패로 쓰는 극좌 정치세력이다.그들은 학생이라는 이유로 보호받아야 할 명분도 가치도 없는 것이다.그들의 실상이 분명해진 만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차원에서라도 하루빨리 척결해서 사회로부터 완전 격리시켜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주사파」등 좌경폭력세력이 북한의 대남전략·전술의 전위로 준동하게 된 것은 몇가지 대학내외적 요인들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먼저 들 수 있는 것이 체계적인 공안사건 수사가 없었다는 점이다.게다가 좌익세력은 첨단장비로 활동하는데 수사기관의 인력이나 장비는 원시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역부족이었다.체제전복 세력이 민주화투쟁 세력으로 위장해 국민들은 좌경세력에 대한 당국의 발표가 있어도 별로 우려하지 않는 판국이었다.정치적 고려때문에 공안사범에 대한 사면·복권·가석방등의 조치가 반복되면서 좌경세력의 창궐을 부추긴 점도 부인할 수 없다.진심에서 우러나는 개전의 정을 보이지 않는 이상 구속과 사면의 악순환이 다시는 있어선 안될 것이다. 대학이 좌경폭력세력들의 천국이 된데는 학교당국의 책임도 크다.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미온적인 학사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의 잘못을제대로 나무라고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의지가 교직원들에게 결여되었던 점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주사파를 뿌리뽑는 일은 당국에만 맡겨선 안된다.국민 모두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저들은 앞으로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될 경우 보다 극단적인 투쟁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사회적 동정심을 유도하기 위한 엉뚱한 사건의 함정을 꾸밀지도 모른다.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되겠다.
  • 주사파 북지침따라 투쟁했다/경찰자료가 말하는 「평양 연내 실태」

    ◎「구국의 소리」 단파방송 녹취… 실천/팩스로 받은 지령,결의문에 “재생” 경찰청이 26일 밝힌 「좌익운동권 학생들의 북한 연계실태」자료는 운동권 학생들의 부인에도 불구,주사파가 북한의 투쟁지침에 따라 행동해 왔음을 여실히 입증해주고 있다. 경찰은 정황으로 미뤄볼때 북한이 대남적화 혁명주력군으로 주사파 대학생들을 이용하고 있으며 대남방송인 「구국의 소리」와 팩시밀리 등을 통해 투쟁지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찰이 주사파 학생들의 북한 연계를 입증할 가장 확실한 증거로 제시한 점은 「구국전위」등 3건의 간첩단사건에 주사파학생 48명이 연루돼 구속된 사실이다. 지난 6월14일 적발된 「구국전위」 간첩단사건의 경우 「대구·경북지역 총학생회연합」의장 허성만군(22)등 주사파 대학생 23명은 간첩혐의로 구속된 이른바 조선노동당 남조선지하당 「구국전위」 총책 안재구씨(61·대학강사)에게 포섭돼 북한지령에 따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핵심간부로 활동하다 구속됐다. 또 같은 날 적발된 영남지역 「일심단결」사건에서는 총책 정찬수씨(30)등이 주사파로 활동하다 제적된뒤 주사파 핵심 10여명과 함께 노동현장에 위장취업해 활동했다.이들은 이적단체인 「일심단결」을 결성,북한의 「구국의 소리」방송을 녹취해 「학생운동의 새바람,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의 각종 이적 유인물을 만들어 대학가에 뿌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반국가단체인 「자민통」사건에서도 역시 주사파 핵심인 허탁군(26·서울대)등 6명은 전국 28개 대학에 소조직을 구성해 「구국의 소리」의 지령을 받아 학내외 시위를 배후조종해오다 다른 학생을 포함,주사파학생 19명이 무더기로 구속되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 간첩단 사건에서 보듯 학생운동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주사파 배후에 불순세력이 연계돼 있는 연결고리로 확신하고 있다. 실제로 구국전위 총책 안씨가 지난 해 8월 북한으로부터 받은 지령문에는 『한총련이 이론과 투쟁경험에서 미숙한 점이 적지않으나 지금까지 우리 당의 의도에 맞게 투쟁진로를 확정하고 선도적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현지 지하조직선이여러면에서 배후작용을 늘리고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경찰은 또 한총련내 주사파 학생들이 북한방송 청취용 단파라디오를 필수품으로 갖고 있으며 북한방송을 청취해 투쟁지침으로 활용하거나 이적유인물 제작에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9일 한양대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구국의 소리」 방송 녹취문이 수거되고 지난 4월 불심검문으로 검거된 제2기 한총련출범식 기획단 요원 소지품 속에서 「김일성 신년사」등 북한방송 녹취문 6종이 발견된 것을 근거로 하고있다. 경찰은 이때문에 지난 93년부터 한총련이 제작·배포한 각종 이적유인물 3백98종이 북한의 「구국의 소리」방송을 녹취해 인용하거나 이를 근거로 작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대남방송인 「구국의 소리」 내용은 『한총련에 대한 현정권의 파쇼탄압 책동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파쇼 탄압의 즉시적인 중지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청년학생들은 UR국회비준 반대투쟁및 김영삼정권의 반민족적인 책동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할 것이다』등 한총련에 대한 각종 지령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경찰은 이와함께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 등에서 「구국의 소리」 방송이외에 팩스등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투쟁지침을 전달받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91년 6월부터 지금까지 전국 57개 대학에서 1백56차례에 걸친 대북팩스,전화,서신교환을 해왔으며 이를 통해 「범청학련 결성,통일대축전행사 협의」「팀스피리트훈련 완전중지요구 공동결의문」작성등을 해왔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 김일성 사망이후 ▲전남대 분향소 설치 ▲애도플래카드및 대자보 게시(전국 54개 대학) ▲김일성 사망관련 선전지침서 등이 잇따른 것도 한총련내 주사파 학생들이 북한과 연계돼 있음을 입증하는 방증자료로 보고있다.
  • 「노해투사」 재판부,공판서 이례적 사상강의

    ◎“폭력적 평등추진은 유죄”/이정임피고에 징역2년·집유3년 선고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는 인간의 자유·평등을 실현한다는 목표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지만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것은 우리 헌법과 조화될 수 없습니다』 서울형사지법 합의23부(재판장 김황식부장판사)는 26일 좌익단체인 「노동계급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자들」에 가입,활동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정임피고인(24·여)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이례적인 「사상강연」을 해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는 우선 『자본주의가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자본집중,실업,빈곤,제국주의전쟁 등 많은 모순과 병폐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주의가 출현했다』고 전제하고 사회주의를 두가지로 분류했다. 이가운데 폭력혁명으로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세운다는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용납될 수 없는 반면 생산수단의 사유화도 일부 인정하면서 의회주의와 평화적 개혁을 통해 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수정사회주의는 우리 헌법과도 조화될 수 있다는 게 재판부의 견해였다. 『헌법 제9장에서 경제규제와 조정및 사기업의 국·공유화를 허용한 것은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것입니다』 재판부는 또 『이처럼 인간의 이기심을 억제하고 박애정신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본주의는 성공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소련과 동구의 몰락도 단순히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사회주의권에서 수정된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인정한 결과로 분석했다. 이날 「강연」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피고인이 북한을 동경하지 않는 「비주사파」라는데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북한의 기본방침과 궤도를 같이하고 있는 만큼 북한에 동조한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대목.이에따라 재판부는 국가보안법 위반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비합리적인 사상에 사로잡혀 있지만 반윤리적 파렴치범은 아니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피력한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석방했다.
  • “주사파 사회서 격리”/좌경화 차단대책/김 법무,각의보고

    ◎최고형 구형… 사면·복권 배제/이적도서·영화 등 규제 강화/공안수사기관 조직·인력 대폭 보강 법무부는 25일 주사파등 좌경세력과 이들의 배후조종세력을 철저히 가려내 법정최고형 구형으로 중형선고를 유도,사회로부터 장기간 격리시키고 이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사면·복권·가석방대상에서 제외시키는등 극렬좌익세력에 대한 사법처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김두희법무부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학원좌경화 실상과 대책」이라는 보고를 통해 『80년이후 정치적인 고려에 따라 이들 좌경세력에 대해 은전을 베풀어 왔으나 그 세력이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장관은 또 이적도서·영화·비디오·PC통신등에 대한 감시를 강화,좌익이념 확산을 막고 좌경세력의 실상을 고발·비판하는 단체 및 인사들의 신변을 적극 보호하는 등 좌경세력이 발붙일 수 없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장관은 이를 위해 안기부·경찰 등 공안수사기관과의 공조체제를 강화하고 대학당국과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강구하는 한편 공안수사기관의 조직및 인력을 대폭 보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장관은 이 보고에서 학원좌경화요인으로 ▲과거 정권의 정통성시비로 반체제세력이 민주화투사로 위장한채 세력을 확장하는 등의 정치적 요인 ▲정보·통신의 발달로 좌경사상 전파가 용이하고 사회부조리가 팽배,반사적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급진사상이 서식할 수 있었던 사회·경제적 요인 ▲학원내적 요인 등 3가지를 들었다. 김장관은 특히 학원내적 요인과 관련,『대다수 학생들의 무관심속에 일부 좌경학생들이 학교분위기를 지배하는 등 학원문화가 왜곡되고 있다』고 전제,학칙위반자에 대해서는 단호히 처리하고 사상·통일교육교과과정을 마련토록 대학당국에 촉구하기로 했다. 현재 전국대학총학생회장 1백31명중 민족해방계열(NL)이 64명,민중민주계열(PD) 22명 등 전체의 66%인 86명이 좌경성향 학생으로 파악됐으며 공산권 붕괴이후 세계사회주의를 부르짖는 트로츠키파가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고 김장관은 밝혔다.
  • 「종합 통일정책」 새로수립/정부,「상반기국정추진 종합평가 보고회」

    ◎학원·노동계 침투 「주사파」 지속 단속/초고속정보망 조기구축 정부는 북한의 권력승계및 정착과정을 예의주시하면서 모든 가능성에 다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종합적 통일정책을 수립,추진할 방침이다. 정부는 19일 김영삼대통령 주재 아래 청와대에서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한 올해 상반기 국정추진상황 종합평가보고회」를 열고 김일성의 사망으로 조성된 남북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남북간에 이미 합의된 정상회담의 개최원칙을 견지하면서 새로운 상황에 맞는 절차를 협의하는 한편 남북기본합의서에 입각한 공동위원회의 재가동을 추진함으로써 남북대화국면을 주도적으로 전개해나갈 계획이다. 정부는 또 북한의 핵활동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남북대화및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통해 핵문제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이와 함께 간첩과 폭력혁명 주창자등 체제전복세력을 철저하게 색출해 국가의 기본질서를 수호하는 한편 노동계등에침투한 「주사파」등 좌익사상오염원을 지속적으로 단속할 방침이다. 정부는 산업평화를 저해하는 사범을 엄벌한다는 방침 아래 근무조건의 개선과 무관한 정치적 목적의 불법쟁의행위와 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분규행위를 엄단하고 총파업선동등 노조간의 연대투쟁과 외부세력의 노사분규조종등 제3자개입사례를 철저히 차단하기로 했다. 또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국내제도를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98년 GNP 6천5백달러,교역규모 2천6백억달러를 달성,세계 10대경제선진국(G­10)에 진입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로 했다. 정부는 초고속정보통신망의 조기구축을 위해 오는 11월까지 통신망구축,재원조달,응용서비스및 기술개발,민간투자촉진방안등 부문별계획을 포함하는 종합추진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 연계활동 주목받는 남북 두단체

    ◎사노맹/주사파 배후… 조직 재건한듯/사로청/김정일체제 핵심 전위조직 ◎사회주의혁명 목표… 92년 핵심 검거/사노맹/7∼30세 젊은층 관리… 사상 주입활동/사로청 박홍 서강대총장이 주사파 학생들이 남한의 좌익조직인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로맹)을 통해 북한 사회주의노동자청년동맹(사로청)의 지시를 받아 활동하고 있다고 폭로함에 따라 사로맹과 사로청의 실체와 조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사파」의 국내 배후조직으로 지목된 사로맹은 92년 4월 공안당국에 의해 백태웅(구속중·전서울대총학생회장),박기평(구속중·필명 박노해)등 핵심인물 39명이 일망타진된 이후 사실상 와해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로맹은 89년 11월 28일 출범 이후 와해될때까지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통해 남한을 사회주의 국가화한다는 목표아래 2년여동안 한때 조직원이 3천5백여명에 달할 정도로 남로당이후 최대의 반국가좌경지하단체를 구성,전국의 학원및 노동현장에서 암약했다. 이 조직의 뿌리는 86년 5월 구성된 반국가단체 「제헌의회그룹」(CA)이며 출범선언문등에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의 건설과 궁극적으로는 북한정권과 연공통일을 노골적으로 밝혀왔었다. 당시 수사에서 사로맹이 직접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해온 사실은 밝혀내지 못했으나 북한등 국제사회주의 세력과 연대를 모색한 사실은 드러났다. 사로맹은 백태웅등 핵심인물의 구속으로 와해된 뒤에도 잔존세력에 의해 꾸준히 조직복원을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공안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주사파는 사로맹­사로청­김정일의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는 박홍총장의 주장과 관련,검찰공안관계자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와 1천만 노동자를 주축으로한 사회주의국가건설을 목표로 하는 사로맹의 노선에는 다소의 차이가 있다』고 밝히고 『현재로서는 주사파와 사로맹의 연계및 배후조종혐의가 파악된 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사로맹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로청은 회원수만 5백여만명을 웃도는 북한 최대의 정치단체로 김일성 사망 발표 사흘만인 지난 11일 사로청 위원장 최용해가 김정일에대한 충성을 선언할 정도로 김정일후계체제 강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김정일의 「핵심전위조직」이다. 사로청은 구소련의 「콤소몰」(공산주의청년동맹),중국의 「공산주의청년동맹」(공청단)과 같은 청년조직으로 46년 2월 창설된 「북조선 민주청년동맹」(민청)의 후신이다. 만 14∼30세 사이의 청소년및 청년들은 이 단체에 의무적으로 가입토록 돼있는데다 만 7∼13세의 소년단도 실제 이곳에서 관할함으로써 결국 7∼30세 사이의 모든 젊은이를 사로청이 통합,관리하고 있다. 사로청의 주요사업 내용은 청년들을 당적 사상체제로 무장시켜 예비당원을 길러내고 산업현장에서 노역을 선동하는 동시에,남한 각계각층 청년과의 통일전선을 강화,반미자주화와 통일투쟁을 벌이고 김정일 후계체제를 강화하는 것 등으로 돼있다. 사로청에는 중앙조직으로 조직부·국제부·소년단·사업부·학생청년부·체육부·노동청년부·재정정리부 등의 부서와 노동청년신문사 및 사로청 출판부를 산하에 두고 있으며 지방조직으로는 도·시·군·초급단체 지부와 군지부를 두고 있다. 사로청 위원장은 전인민무력부장 최현의 아들인 최용해로 그는 지난해 2월 8차사로청 대회에서 『당과 수령을 견결히 옹호·보위하는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자』고 충성을 맹세한 데 이어 지난 11일 『우리는 오늘 이 비통한 마음과 크나큰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영도를 충심으로 높이 받들어 나감으로써 김일성 수령님이 개척한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할 것이다』고 충성서약을 했다.
  • “김일성망령 몰아내자”/우익노병들 나섰다

    ◎「민족회의」 결성… “대한민국 정통성 수호” 결의/국론분열 좌익책동 배격 다짐/“김일성의 반민족적 죄과 단죄해야 한국전쟁의 장본인 김일성조문파문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해방후 좌익들과 싸웠던 「우익노병」과 각계 원로인사들이 16일 「자유민주민족회의(민족회의)」를 결성,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기폭제로 나섰다. 이 모임은 김일성사망과 관련,일부 야당 국회의원의 조문발언과 한총련 대학생들의 분향소 설치등으로 물의가 빚어지면서 자유·민주수호애국연합,한국기독교교회청년협의회등 80여개 민간 단체및 정치·법조·언론·학계·종교계등 저명인사들이 기존의 관변 반공단체들과 달리 자발적으로 대거참여해 구성한 것으로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이철승반탁·반공 건국학생운동기념사업회장과 김점곤평화연구원장·장지양전공군참모총장·오제도변호사등 원로인사 5백50여명은 이날 상오 10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민주평화통일등을 실현하기 위한 「자유민주민족회의」결성대회를 열었다. 대회에는 채명신예비역중장·김재춘전중앙정보부장·박용만민자당고문·이도형한국논단발행인·양동안교수·정재호전국회의원등과 함께 육사8기를 비롯,원로 반공인사들이 참석했다. 상임공동의장을 맡은 이철승씨는 대회사에서 『최근 김일성 사망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국론분열양상이 나타나는등 해방 이후 최대의 체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수호하기 위해 모든 애국단체와 자유민주주의 인사들이 힘을 모아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이 모임체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6·25 전범 김일성은 비록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반민족적 죄악은 반드시 민족과 역사가 단죄할 것』이라면서 『김일성 독재체제와 반민족 노선을 계승하는 자와의 남북정상회담을 엄중 경계한다』고 선언했다. 참석자들은 또 『북한의 통일전선 동조세력들의 작태를 우리 주변에서 단호히 배격한다』면서 『북한 동포들이 반세기에 걸친 조선노동당의 일당 독재에서 해방될 때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민족회의는 이날 김일성 사망에 애도를 운운하며 반민족적인 망언을 한 국회의원은 즉각 사과하고 의원직을 사퇴할 것과 일본 무라야마총리의 김에 대한 조의 표명은 우리 국민을 모독한 것으로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을 경우 오는 23일 방한을 저지하겠다는 장수동통일정책개발원장이 내놓은 긴급동의안을 채택,시행하기로 했다. 한편 이들은 이날 이찬혁전노총위원장등 12명을 상임공동의장으로 선출하고 오는 8월12일까지 체제를 완전히 정비,본격적으로 민주평화통일운동을 비롯해 북한 민주화촉진과 자유인권회복·해외동포의 평화통일 역량강화·이산가족 재회및 북한과의 다각적 교류추진 등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북5도민,조문 규탄대회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는 16일 하오2시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청내 통일회관에서 실향민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일성 죄상 규탄및 친북 용공분자 분쇄 궐기대회」를 갖고 김일성에 대한 조문을 주장하는 세력에 대해 엄중처벌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대회를 마친뒤 하오 3시쯤 이북5도청 광장에서 친북 용공세력을상징하는 허수아비 화형식을 갖고 구기삼거리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이날 결의문을 통해 『김일성 사망으로 남한에서 「주사파」를 비롯한 친북 회색분자들이 김일성 빈소를 마련하고 조문하는 등 반민족적·반민주적 망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면서 『국토분단 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실향민들로서는 김일성사망으로 빚어진 국민의식의 혼란을 좌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의문은 또 『김일성의 죄상을 규탄함으로써 국론분열을 불러 일으키는 친북 용공분자들의 정체와 책동을 단호히 분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 간첩단 「구국전위」 조직원 8명 긴급검거령

    ◎“철도·지하철분규등 선동 혐의”/총책 안재구등 23명은 구속 송치/공안당국 국가안전기획부와 국군기무사·경찰청은 2일 조선노동당 남조선 지하당인 「구국전위」조직원 31명을 적발,이 가운데 총책 안재구씨(61·경희대 강사)등 23명을 간첩및 국가보안법위반등 혐의로 구속,송치하고 이범재씨(32·학원경영)등 핵심인물 8명에 대해 긴급구속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고 밝혔다. 안씨는 91년 5월 일본을 통해 국내에 침투한 조총련 공작원 백명민씨(40)로부터 지령을 받고 노동운동가·학생운동권·출소좌익수등을 대상으로 동조세력을 규합,「구국전위」를 결성한뒤 재야·학원·노동단체에 침투시켜 노사분규에 개입하거나 학생운동을 배후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안당국은 특히 「구국전위」 서울·경기지역책인 박래군씨(32·학원경영))가 포섭한 하부조직망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세포조직원 7∼8명이 철도와 지하철노조에 침투,활동한 혐의를 잡고 이번 철도및 지하철 연대파업사태를 배후조종하거나 직접 개입했는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사결과 총책 안씨는 조직을 결성한 뒤 국내정치·경제·학원·재야운동권의 동향을 수집,11차례에 걸쳐 대북보고를 하는등 간첩활동을 해왔으며 북한으로부터 공작금 명목으로 일화 3천2백여만엔(한화 2억9백만원)을 받아 은행또는 암달러상을 통해 환전해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안씨는 또 지난해 8월 현대계열사의 노사분규현장에 조직원 김진국씨(31·구속)를 파견,파업투쟁상황을 탐지하는가 하면 현장에 침투시킬 조직원을 물색한 혐의도 받고 있다. 안씨는 북한으로부터 『전국연합의 구성체들인 전노협·전농·한총련·전교조 등의 핵심인물들을 장악하고 전북농민회를 통해 전농 중앙으로 진출하라』는 지령등 모두 13건의 지령을 받아 간첩활동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 44년전의 상처 되새기며/살아남은 한 다신 없어야/이문구(기고)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에 화가여생이란 말이 있다.법에 저촉되어 재앙을 입은 집의 자손이란 뜻이라고 한다.이제 말 자체는 역사소설 같은 데서나 쓰임직한 말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의 뜻까지 함께 은퇴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6·25와 더불어 하루아침에 쑥밭이 된 좌익 집안의 자식으로 어렵게 살아온 전쟁 피해자이자 전형적인 화가여생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필자와 비슷한 환경으로 정서적인 폐허에서 젊은 날의 방황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더욱이 그 환경의 불리함을 무릅쓰고 권위주의 군사문화에 작가적인 저항으로 일관하여 마침내 문민정부 출현에 나름껏 일조를 한 줄로 여기는 사람이라면,오늘 다시 맞는 6·25에 대한 회포 또한 남다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6·25의 상처는 44년전의 신음소리를 아직도 이어오는 보훈병원을 비롯하여 휴전선과 판문점과 국립묘지와 산야에 널려있는 전적비며 엊그저께 문을 연 전쟁기념관에 이르기까지 가시적인 것만 해도 이루 다 줘섬길 수가 없이 허다한 터다.그러나 그 무엇보다도응어리가 깊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 즉 전쟁에 희생된 집안의 결손가족,이산가족들의 사무친 여한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전형은 누구인가.가슴에 서린 채 못다한 만단설화를「그때 겪은 얘기를 책으로 쓰면 열 권도 넘을 것」이라는 한 마디로 줄이면서 체념으로 입을 다무는 사람들이다.아는 병도 쇠면 백약이 무효인데 하물며 보이지 않는 상처를 반세기 가까이나 가슴에 끓여온 그들의 여한일 것이다. 그들의 피맺힌 여한의 대상은 물론 전범자다.그리고 그 전범자에 대한 여한에 있어서 보훈가주과 화가여생 사이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터다.이는 필자가 자기나름에 유추하여 모개흥정식으로 일매지어 하는 말이 아니다.6·25야말로 남북간 공동의 패전이자 민족 전체의 패배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경위가 엄연히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6·25의 재현을 기대하는 것이나 아닌가 싶게 혐의쩍은 사람들링 사회 일각에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오늘날의 정부를 「미제에 의한 예속성과 매판성을 갖는 식민지의 대리정권」운운하는 이른바 주사파의 존재는,화가여생의 악조건 속에서 권위주의 군사문화와 맞서는 동안에 스스로 보이지 않는 상처를 수도 없이 멋내었던 필자로서는 일말의 모욕감을 넘어 차라리 헙헙한 심정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전범자가 사료 조절이나 다름없는 식량 배급표로 주민의 생존권을 근저당하고 「쌀밥과 고깃국과 기와집」이란 신기루로 혹세무민하여 「이조」보다도 퇴보적인 「김조」를 꾸며 인주로 군림하고 세습하는 것이 어떻게 「주체의 위업」이며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것인지 실로 불가사의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불가사의한 것은 아무리 북한의 대남방송으로 주체사상에 대한 과외공부를 해왔다고 해도 걸핏하면 민중·민족·민주·진보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이 자식은 아비의 존호를 대원솔로 올리고 아비는 세자로 책봉한 자식의 권위 안보를 위해 원솔란 작호를 더하여,모든 것을 부자지간에 겸지우겸하는 근세적 전제군주 체제에 대하여 상식적인 비판은 커녕 자못 우러르고 있다는 사실이다.그렇다면 5·16이래 군사문화에 맞서 민주화·문민화를 부르짖다가 희생된 사람들은 무엇이란 말인가.남한의 군사문화는 저항의 대상 북한의 군사문화는 추앙의 대상이란 말인가.남한의 국민은 혁명과 피가 아쉬운 「민중·민족」이고 「당원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식의 계급사회 북한의 주민은 이미 혁명을 통해 「김조」의 신민이 되었으니 혁명을 혁명하여 배급표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까닭이 없다는 것인가.북한의 회담꾼이 6·25의 본질을 거듭 일깨워 준 「서울 불바다」협박이 핵문제에 맞추어 다시 포장한 군사문화의 기본 강령임을 생각하면,남한에서 자기도 모르게 「어버이 부자」의 「효자동이 충성동이」로 「김씨조선」의 식민이 되어 「책으로 쓰면 열권도 넘을」여한의 재생산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 6·25 44돌… 학도병 참전 용사들의 회고 특별대담

    6·25때 홍안의 미소년으로 전장을 누볐던 학도병들은 몇차례 강산이 바뀌는 세월속에서 이제 이순을 넘긴 노년의 옛전사로 변했다.하지만 이들의 가슴속에는 동족상잔의 아픔이 지금도 어제일처럼 살아있다.포연의 전장에서 불퇴전의 용기로 살아남은 유성덕 서울대광고교장(63)과 정년탁대한학도의용군회 총본부 전회장(63)의 대담을 통해 그날을 되새기고 오늘날 젊은이들이 가져야할 자세등을 되짚어본다. ◎“펜대신 총으로…” 5만여명 구국전선에/조국사수 일념에 사격훈련만 받고 전투/곳곳서 맹활약… 포항선 71명 장렬한 산화/“자유만끽” 요즘 젊은이들,기성세대의 체험 곱씹어 보아야 ▲유교장=사실 저는 의식적으로 6·25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하지만 또 한시도 기억에서 떨쳐버리지 못하는게 바로 6·25지요.중학6년(18세)때 학도병으로 자원해 나갔다가 온 몸을 크게 다쳐(왼쪽 손가락 4개와 오른 손가락 2개,양쪽 발가락절단,발뒤꿈치 골수염) 지금도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하는 불편한 상태입니다.하지만 해방이후 북쪽의공산당이 싫어 평양에서 단신으로 내려와 학도의용병으로 참전해 죽을 고비를 넘긴끝에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에서 교육자로 평생을 지내고 있으니 그래도 행복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6·25발발 직후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할 당시를 생각하면 우리 남쪽은 정말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지요.북한군에 밀려 대구와 부산만 겨우 남아 있었으니까요.피란지인 부산에서 중학교 영어 실력이지만 미군부대에서 일하다 학도의용군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50년 8월 초쯤으로 기억됩니다.어린 나이였지만 「펜대신 총을 들어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자」고 모두들 나서는 분위기였습니다.전투에 나가 더이상의 북한의 공세를 막아야한다는 생각에 미군부대에 보고도 않고 곧바로 의용병모집 장소로 달려갔습니다.함께 지원한 2백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경주에서 3일동안 사격훈련을 받고 안강전투에 참가했지요.갑자기 모집한 학도병이고 보니 복장도 교복차림에 군복,미군작업복등 각양각색이었어요.우리가 배속된 부대가 김석원준장(작고)이 이끄는 수도사단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당시 학도병들은 일정지역에 모아 부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모이는대로 그때 그때 전투지역으로 보냈지요.그만큼 병력은 부족하고 전황은 다급했다는 이야기지요.정회장도 학도병에 자원할 당시 중학생이셨지요. ▲정전회장=저는 중3때 광주지역에서 학도병으로 참가했어요.사실 호남지역에는 6·25이전에 이미 빨치산등 좌익세력이 적지않았어요.학교에도 좌익에 물든 사람이 꽤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학생은 물론 선생까지 좌우로 갈라져 있었어요.어린 눈에 좌익분자들이 사람을 백주에 죽이는것을 보고 까무러쳤습니다.좌익학생들의 연대파업등을 수없이 보았습니다.그래서 전쟁이 발발하고 학도병을 모집한다고 하니까 공산당의 폐해를 피부로 경험한 학생들이 너나없이 몰려나갔지요.4일동안 간단한 사격훈련등을 받고 12사단에서 배속돼 주로 태백산과 노령산 일대에서 전투를 했었죠.훈련받을 때 총이 모자라 인민군의 딱총도 함께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어릴때 공산당의 잔학상을 보아왔던 때문인지 사람이 죽는다는걸 별로 무섭게 느끼지도 않았던것 같아요.안강전투는 대단했다면서요. ▲유교장=지금생각해도 정말 대단했습니다.우리로서는 더이상 밀리면 부산·대구까지 내주어야 하니까 몸으로라도 끝까지 사수해야하는 마지노선이었어요.죽거나 부상당해 후송되는 학생들 말고는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습니다.당시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학도의용병의 사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지요.학도병들의 용기는 현역병을 훨씬 능가했습니다.살아남겠다는 생각없이 그야말로 물불을 가라지 않고 싸웠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을 겁니다.지금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나 싶어요.형산강을 피로 물들이고 일주일여 사투를 벌이니까 북한군이 물러서기 시작하더군요.이후 포항탈환작전에 참가,시가전을 벌였고 고성,함흥등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습니다.포항 시가전에 참가했을때 어느 중학교에는 인민군과 우리 군과 학도병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기도 했습니다.결국 그들을 포항에서 물리친 것이지요.북진이 계속되고 김일성이 다급해지니까 중공군에 도움을 요청,이른바 중공군의인해전술이 시작돼 우리는 다시 남으로 밀리게 됐지요. ▲정전회장=교장선생님도 지적하셨지만 당시 학생들의 전의는 대단했습니다.군대 안가려고 일부러 손가락까지 자르던 일부 징집대상 젊은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끓는 울분을 토로했던 기억이 납니다.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언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한마디로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지요.죽음을 초월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이런일도 있었어요.태백산자락 어느 전투에서 북한군과 밀고 밀리는 전투를 벌였어요.어느 지점을 며칠만에 지나는데 태극기로 자신의 얼굴을 덮고 반듯이 누운 한 젊은이를 발견했어요.죽은 줄알고 다다가 보니 목숨이 붙어있더군요.전투중에 실종된 학도병이었습니다.이 친구는 부상을 당해 낙오가 되고 기력이 떨어져 움직일 수 없게되자 가지고 있던 총을 인민군이 사용할 수 없도록 완전히 분해해 버리고 태극기로 얼굴을 가리고 죽음을 기다린 것이지요. ▲유교장=당시 학병들의 참전은 아군의 전투력증강에 상당한 보탬이 된것으로 압니다.정회장은학병모임일도 보신걸로 알고 있는데요. ▲정전회장=대한 학도의용군회 회장을 여러해 맡았습니다.학도의용군은 50년 6월 전쟁발발때부터 51년 4월 이승만대통령이 복교령을 내리기 직전까지 전쟁에 참여했던 학생들로 중학생과 대학생들로 구성됐었습니다.50년 6월28일에 피란가던 서울시내 각대학 학도호국단 간부 2백여명이 수원에서 합동비상학도대를 조직한 것이 시발이었습니다.이후 각 군소재지 학교에서까지 이들이 결성돼 눈부신 활약을 벌였어요.군번도 없고 계급도 없이 말입니다.5만여명 정도가 참전했고 7천여명이 전사했습니다.당시 정규군병력이 15만에도 못미치는 상황이었으니 규모면에서도 대단한 것이지요.그중에서도 중학생이 가장 많았습니다.1·4후퇴때는 북한에서 2천여명의 학생들이 넘어와 참전했었고 부산지역의 학생 7백여명은 유엔군에 편입돼 일본에서 훈련을 받은뒤 다시 돌아와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었죠.가장 비참했던 전투는 포항전투로 1기로 참전했던 3사단 학도의용군 71명 전원이 이름없는 고지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역사적으로 학생들의 애국심이 이처럼 높았던 나라는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외에는 없다고 외국전문가들도 이야기합디다. ▲유교장=학병들의 정신은 지금도 면면이 내려온다고 생각됩니다. ▲정전회장=그렇습니다.지금도 국립묘지에 가보면 6·25당시 어린 나이에 나라를 지키겠다고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학도의용군들의 묘역이 있습니다.지금도 당시 같이 전투에 참가했던 동료들을 만나면 그때의 이야기들을 하곤 합니다.당시 장성들을 만나도 학도병들의 애국심과 용기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제가 보기에 학생운동의 맥은 일제시대의 광주학생운동과 해방직후 반탁반공운동,4·19의거,그리고 6·25때의 바로 이 학도의용군으로 이어지지않았나 생각합니다.역사속에 면면이 흐르고 있는 피끓는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당시 절박했던 상황이나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선배들의 정신을 너무 모르는 것같아 안타깝습니다.세계적인 변화속에서 반공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안쓰럽고요. ▲유교장=독사에게 물려본 사람만이 독사가 무서운 줄 알듯 전쟁을 겪은 사람만이 전쟁의 고통과 공포를 알 수 있지요.자유역시 마찬가집니다.자유를 빼앗겨본 사람만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요즘 젊은이들은 민주화 민주화하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지만 진정 자유가 박탈된 상태,전쟁이 주는 공포는 체험해 보지 못했습니다.기성세대의 뼈아픈 체험을 한번쯤은 곱씹어 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기성세대를 무조건 이해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가슴에 담고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자신들의 포부를 펴나가라는 것이지요.일제와 6·25를 겪으며 고난의 역정을 걸어온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부인의 대상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열어나가는 좌표로 인식돼야합니다. 학생들이 사회의 모든 일에대해 지나치게 간여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정치는 정치인에게 국방은 군에 맡기고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주길 바랍니다.또 국민역시 각성해야 할 부분이 적지않다고 봅니다.지난 현충일 연휴때 나들이 인파로 주요도로가 모두 만원을 이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날의 어려움을 모두 잊지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전회장=지금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의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주변국들의 정세에 맞춰 겉모습만을 바꾼 것뿐입니다.그런데도 학생들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폭력시위를 벌이는 것을 보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나름대로 애국심을 가진 행동이라고 주장할지 몰라도 북한과 김일성을 찬양하는 학생운동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시대에 맞게 어른들과 선배들의 충고에도 귀기울일줄 알아야죠.통일에 대한 문제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고루 반영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6·25전 좌익활동 학계의견 정리

    ◎“대구폭동­제주 4·3사건 항쟁일수 없다”/박헌영의 「미군정 타도」 폭력 노선이 원인/민중사관 주장 극복… “분명한 폭동” 결론 「대구폭동」인가 「10월항쟁」인가,「제주도 4·3사건」인가 「제주도 4·3항쟁」인가.지난 봄 교과서의 역사용어 변경을 위한 시안을 놓고 벌어졌던 이같은 논란은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비록 논의 차원이기는 했지만 새 정부가 그처럼 진보적인 사관을 교과서개편 문제에까지 개방했기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만큼 정부의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들썩거렸을 만큼 파문이 길었던 것은 이 시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 시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6·25 44주년을 앞두고 이 문제가 다시 기억되어야 하는 것도 「10월 항쟁」「4·3항쟁」이라는 시각이 수용된다면 6·25 또한 「민족해방전쟁」이라고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성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는 『「10월항쟁」이나 「4·3항쟁」이라는 표기는 첫째 국내의 민중사관,둘째 북한의조선전사,셋째 중국의 혁명사관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단언했다.그들의 시각에 따르면 일제하의 독립운동은 이른바 「민족해방투쟁」인 만큼 8·15는 광복이 아닌 「민족해방」이다.또 일제하 「민족해방투쟁」은 8·15이후 미군정 치하 남한에서 「민중항쟁」이라는 형태로 계속 진행된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이같은 논리에 따라 그들은 「민족의 통일염원을 저버린 대한민국의 건국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징벌을 받게되며 6·25는 북침이었을지도 모르는 단지 한국전쟁일 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현강연세대교수는 『그같은 민중사관을 그동안 적지않은 학자들이 편향적이 아닌가 우려하면서도 용인해 온 것은 학문의 자유를 존중했기 때문』이라면서 『학계를 벗어나면 용인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학자들은 「폭동」과 「사건」이라는 단어의 차이만큼 현재 국사 교과서의 표기대로 「대구폭동」과 「4·3사건」을 차별화한다. 이현희성신여대교수는 먼저 『「대구폭동」은 폭동일 뿐』이라고 말했다.아무리 진보적인 연구성과가 나와 있다고 해도 그 때를 체험·목격한 격앙의 세대가 악의적의 공산 파괴공작의 맥락에서 비롯된 당시 상황을 증언·열변하고 있는 한 달리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덕규이화여대교수는 『1948년 대구에서 일어난 사건을 폭동으로 보느냐 항쟁으로 보느냐는 문제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는 우리 국가의 이념까지 연결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현희교수는 그러나 『과거 일반화된 표기였던 「4·3제주폭동」은 그 간의 연구와 지역적 특수성으로 볼 때 「폭동」이라 표기하기에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 학계 대다수의 시각』이라고 전하고 『이같은 시각은 교과서에 「4·3사건」이라고 표기됨으로써 이미 수용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승조고려대교수는 이 두 사건을 남로당 총책 박헌영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남로당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하자 1946년 가을부터 폭력투쟁 노선으로 전술을 바꿨으며 이는 좌익세력에 대한 과신과 우익 세력에 대한 과소평가에서 비롯된 과오로「대구폭동」과 「4·3사건」이 대표적이라는 것이다.한교수에 따르면 박헌영이 보기에는 미군정이 국민적 지지기반을 갖지 못했고 보수세력도 한줌 밖에 안되므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계산했다.한편으로는 북한 인민군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해 3만명의 경찰과 5만명의 국방경비대를 상대로 폭력과 무장투쟁을 하다 좌익세력은 모두 소진됐다.또 박헌영은 남로당 조직에게 모두 총탄이 되어서 「5·10총선거」를 저지할 것을 명했으나 많은 인명의 살상과 대량 구속을 초래했을 뿐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저지하지 못했다.결론적으로 상대방의 전력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극한투쟁을 벌이다 좌익세력의 총 붕괴를 재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정통주의적 입장에 서는 학자들 사이에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좌익·혁신적인 학자들에 비해 무기력하고 나약하며 기회주의적인 경향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좌파학자들에게 보수·반동·어용으로 낙인찍히며 공격당할까 두려워 사실과 다른 억지주장을 하고 있음에도 이의나 반론을 제기하기를 꺼려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우려 속에서도 이제 폭동을 폭동이라고 제목소리를 내는 학자가 많아졌다는 것은 폭동이냐 항쟁이냐의 논쟁을 계기로 우리 학계가 한부분의 건강은 되찾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평가이다. ◎46년10월 대구폭동/경찰서 등 방화·군수 살해/식량요구 시위가 발단… 경남북 등 확산 「대구폭동」은 1946년10월1일 상오 쌀을 나누어준다는 풍문을 듣고 대구시청 앞에 모인 1천여명의 시위가 발단이 됐다.당시는 미군정 아래 좌우대립으로 정국불안이 계속되고 물자부족과 군정당국의 식량공출로 생활고가 극심한 가운데 좌익계열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주도한 이른바 「9월총파업」이 전국을 휩쓸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태는 하오 들어 시위군중이 1만여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하오7시쯤 대구역 앞에서 경찰의 사격으로 한 시민이 숨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흥분한 시민들은 이튿날인 2일 아침부터 경찰서·역·시청 앞 등에서 대규모시위를 벌였고 당초 식량배급을 요구하던 구호도 애국자석방,조선인에게 행정권이양 등 정치적 문제로 발전되어갔다.경찰서를 점거해 무기를 탈취하고 대구시청 간부의 집을 습격하기에 이르렀다.이에 군정당국은 하오7시 대구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미군의 출동으로 대구의 소요사태는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시위는 다음 날인 3일 저녁부터 영천·달성 등 주변지역으로 번져나가 11월 중순까지 경북전역과 경남·전남·강원지역에서 계속됐다.시위가 일어난 대부부의 지역은 경찰서가 습격당하고 교량·철도가 파괴됐다.특히 시위가 극심한 영천의 경우 경찰서·군청·재판소가 불타고 군수가 살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48년4월 4·3사건/좌익의 지서습격이 원인/9년간 희생자 3만∼8만명 추정 「4·3사건」은 제주도에서 1948년4월부터 만9년동안 최소 3만명에서 최대 8만명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를 낸 해방후 최대의 유혈사태였다. 사건은 단독정부수립을 위한 5·10총선을 한달남짓 앞둔 4월3일 상오2시,산중에 집결해 있던 제주도민 2천여명이 도내 15개 경찰지서 가운데 14개를 일제히 습격하면서 시작됐다.이들은 「미군철수」와 「단독선거반대」 「이승만매국도당타도」 등 구호를 외치며 일부는 일본군이 남기고 간 99식소총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좌익세력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미군정은 즉각 1천7백여명의 경찰을 비롯,국방경비대와 우익인사들인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된 대규모 진압군을 파견했다.이에 봉기대와 이에 동조한 도민들은 한라산으로 들어가 장기적인 유격전의 성격으로 전환됐다. 이후 봉기대를 주민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근거지가 되는 마을전체를 불살라버리고 주민들을 집단이주시키는 군·경의 소개작전과 이에 맞선 봉기대의 격렬한 저항이 이어졌다.이 과정에서 양민을 포함해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이 사건은 또 진압을 명령받은 군대가 이를 거부하고 소요를 일으킨 48년10월 「여순반란사건」을 촉발시키기도 했다.「4·3사건」은 1957년4월2일 마지막 「빨치산」 오완권이 생포되어서야 비로소 막을 내렸다.
  • 용공시비 말린 소설 「태백산맥」/영화는 이렇게 찍고 있다

    ◎제작진/“좌익 미화 않고 인본주의 지향/의구심어린 시선 보내지 말라”/공론심의 거쳐 추석전후 1부 개봉 계획 조정래씨의 소설 「태백산맥」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시비가 일면서 영화 「태백산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서편제」로 성가를 높인 태흥영화사의 이태원사장,임권택감독,정일성촬영감독이 다시 콤비를 이룬 「태백산맥」은 현재 70%정도 촬영을 마쳤다. 이들은 영화 「태백산맥」에 대한 일부 인사와 단체들의 의구심어린 시선은 『한마디로 기우』라고 일축하고 있다. 임감독은 지난해 11월 제작발표회에서 밝혔듯이 「태백산맥」이 빨치산을 미화하거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영화가 아님을 거듭 밝혔다.그는 최근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된 수 많은 사람들의 시대적 비극을 보여줌으로써 인본주의,즉 사람이 중심에 놓여지는 세상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무릇 이데올로기는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데 그 존재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6·25를 전후한 좌우익의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아픔만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이와함께 어느 영화감독을 막론하고 나름대로의 시각이 있기 때문에 소설과 똑같은 영화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태백산맥」의 경우에도 원작 소설 가운데 자신의 연출 방향과 맥을 같이하거나 독자들이 재미있게 생각했던 부분만을 수용했다는 것이다.그는 『예컨대 소설에서는 사범학교 출신의 중학교 선생 김범우가 시간이 흐르면서 다소 좌익쪽으로 기우는 것 처럼 보이지만 영화 속의 김범우(안성기반)는 줄곧 중도적인 인물로 묘사된다』면서 『김범우의 시선을 통해 이념이 인간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인본주의 사상을 그리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영화가 완성되면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게 돼 있는 만큼 지금부터 영화 「태백산맥」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태원사장 역시 『좌익이나 빨치산을 미화하는 영화라면 처음부터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임감독과 이태원사장,정일성촬영감독은 요즘 전남 벌교읍을 재현한 경기도 고양군 벽제 세트장에서 지식인 정하섭(신현준반)과 무당 소화(오정해)의 애틋한 사랑,우익 기회주의자 염상구(김갑수)가 빨치산 아내 외서댁(방은진)을 겁탈하는 장면,빨치산 하대치와 장터댁의 불륜 등 정사 신을 찍는데 여념이 없다.이들은 올 추석을 전후해 「태백산맥」 1부가 개봉되면 관객들이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한편 관계당국에서도 이미 「태백산맥」의 시나리오를 입수,검토를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용공 재야·노동세력 색출/10개공단 수사반 투입/경찰 보안과장회의

    ◎한총련대학생 13명 구속 경찰은 10일 한총련의 주요간부 41명의 검거와 함께 이적·용공성을 띠고 공단등에서 활동중인 지하 노동세력 검거에 수사력을 모으기로 했다. 김화남경찰청장은 이날 하오 경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방경찰청 보안과장및 보안수사대장회의에서 『북한의 핵문제로 위기상황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좌경세력의 책동이 어느때보다 우려되고 있다』면서 이같은 경찰의 방침을 시달했다. 경찰은 이날 한총련의 이적·용공행위와 관련,각급경찰서별로 형사·정보·보안담당 수사관합동의 수사전담반을 구성,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한총련 의장 김현준군(24·부산대 총학생회장)등 17명을 포함해 모두 41명을 추적중이며 50여명을 내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제2기 한총련 출범식과 관련,불온 유인물과 디스켓등을 출범식장으로 나르던 태광호씨(25·전북대졸)등 13명을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5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와함께 울산등 주요공단지역에 좌익세력들이 위장취업해 불온유인물을 제작하고 폭력노사분규를 선전·선동하고 있다는 정보에따라 울산등 10개 주요 공단에 3백43명으로 편성된 보안전담수사대를 배치·운영하기로 했다.
  • 일 극우세력이 움직인다/호소카와 저격… 드러나는 폭력성

    ◎「침략」 발언 반발… 테러활동 등 조직화/12만명 추산… “군국정당회의 전위대”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전일본총리가 30일 우익세력의 테러를 당했다.호소카와 전총리에 대한 이번 테러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우익단체의 폭력성과 일본사회 변화의 한 단면을 나타내고 있다. 우익단체 「송혼숙」의 전단원으로 알려진 범인은 호소카와 전총리의 「전쟁발언」에 반발,권총을 발포했다고 밝혔다.호소카와 전총리는 지난해 8월 총리취임 직후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었다』고 발언한후 우익단체의 협박과 규탄을 받아왔다. 우익단체들은 「호소카와총리의 발언은 국가를 모독한 행위」라며 선전차등을 동원,활발한 규탄활동을 해왔다.호소카와 전총리에 대한 발포는 이러한 규탄활동의 일환이며 최근 늘어나고 있는 우익단체의 정치인,언론등에 대한 테러사건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일본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우익단체들의 테러·게릴라사건은 최근 10년간 약 1백10건으로 나타났다.그중에는 『천황에게 전쟁책임이 있다』고 말한 모토시마 히도시 나가사키 시장과 가네마루 신 전자민당 부총재에 대한 저격사건도 포함되며 올해만도 아사히(조일)신문 침입사건,월간잡지 문예춘추사 사장집에 대한 발포등 4건의 테러사건이 발생했다.일본의 우익단체는 또 지난 92년 한국TV드라마의 일왕저격 장면에 대한 불만으로 요코하마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난입하기도 했다. 일본의 극우세력은 전전의 우익활동을 계승한 우익본류와 60년대말 신좌익운동에 대항,새로 만들어진 신우익으로 구별된다.일본우익은 좌익에 대항하는 세력이라는 점에서는 세계의 우익과 이념적 배경이 같다.그러나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점에서는 파시스트적이며 특히 일왕숭배론자들이다. 일본의 우익세력은 80년대 나카소네총리 취임이후 많이 늘어났다.매년 20∼30개 단체가 새로 생겼으며 현재는 약 9백80개 단체 12만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일본경찰은 추산하고 있다.우익단체중에는 단원이 1천명이 넘는 경우도 있지만 1명으로 구성된 단체도 있는등 그 규모가 매우 다양하다.그중에서 활동이 활발한 이른바 「행동우익」은 1백50개 단체의1만5천명정도. 일본우익단체들은 공산주의세계의 붕괴에 따라 종래의 반공일변도 운동으로 부터 반체제·국가혁신운동으로 전환하고 있다.우익세력들은 국가혁신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일왕중심의 정치 ▲자본주의경제의 개혁 ▲공산주의 배격 ▲아시아민족의 해방등을 강조하며 군국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우익단체들은 그러나 우익적 사고를 가진 세력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우익적 사고와 논리를 가진 세력들은 일본의 정계·학계·언론계등 일본사회 지배층에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이들은 적극적인 우익활동은 하지않지만 필요할 때마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우익의 논리를 옹호·지원하고 있다. 우익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은 결국 이러한 얼굴없는 우익세력들이 지향하는 일본의 국제적 지위향상을 위한 사회분위기를 잡는 전위대적인 역할이라 할수 있다.일본은 지금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에 있으며 국제변화에 기동적으로 대응할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국가개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파­불가리아/경제실정 규탄 시위

    ◎“공산정권 물러가라” 요구/폴란드/“정부 신임안 통과는 무효”/불가리아 【바르샤바·소피아 로이터 연합】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와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27일 수만명이 경제정책 실패등을 이유로 정부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시위를 벌였다. 바르샤바에서는 공산체제를 몰락시켰던 연대노조가 이끄는 노동자 2만여명이 좌익계인 현정부에 근로조건개선과 임금 억제정책 중지를 요구하며 시내 중심가에서 정부청사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흰색과 붉은색의 연대노조기를 들고 『공산주의와 도적은 물러가라』고 외쳤으며 정부는 노동자에게 더많은 몫을 부여하는 산업협정을 조속히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소피아에서도 이날 그리스정교회본부 앞 광장에서 수천명이 내각신임안이 통과된 것은 정치적인 술수라고 주장하며 정부퇴진을 요구했다. 불가리아 의회는 경제정책실패 등으로 사임압력을 받고 있는 류벤 벨로프 총리가 상정한 신임안을 찬성 1백25,반대 95로 가까스로 통과시켰는데 의결정족수를 4표 넘긴 이같은 투표결과는 정권유지를 위한 음모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종전 이후 두번째 비공산정부인 현내각은 정당을 기반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나 이전의 공산당인 불가리아사회당등 정치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 예견된 트집… 정치적 악용 속셈/북의 벌목공 납치주장 배경

    ◎3단계회담­남북대화 연계고리 끊기 포석/제3국서 교민 등 보복납치공작 우려도 북한이 21일 시베리아 북한벌목공들의 귀순에 대해 심한 반발을 보이며 협박하고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북측은 이날 대남전통문을 보내 우리측이 북한 벌목공들을 「납치」하고도 「귀순」으로 기만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의 송환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엄중한 후과(결과)」와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등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정부는 이같은 강경반응이 이미 예견된 것이긴 하나 대남전통문 형식으로 우리측에 전달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우리와 러시아정부측이 시베리아 벌목공들에 대한 귀순 허용방침을 표명하자 임업부 성명을 통해 우리측을 격렬히 비난했으나 정면대응은 피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달초 외교부의 이인규부부장을 러시아에 보내 북­러 임업협정과 북­러 사법공조협정을 들어 벌목공들의 한국 귀순 불허를 요청하는 한편 한국내 좌익 미전향 장기수 송환문제등으로 맞불을 놓아 그들의 인권실상 치부를 덮어 두려는데 주력해왔었다. 그러나 러시아측은 김영삼대통령의 러시아 방문(6월1일∼7일)을 앞두고 한·러 관계의 중요성과 국제사회의 벌목공 인권에 대한 여론을 의식,북한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날 전통문은 그간의 북측 기도가 실효를 거두지 못한데 따른 그들의 낭패감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북한으로선 벌목공들의 남한 귀순사실을 가능한 한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으면서 앞으로도 속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베리아 벌목공들의 탈출사태를 막기 위한 대항수단으로 대남전통문 이외에는 묘책을 찾기 어려웠던 것같다. 특히 북측은 우리측의 벌목공 귀순허용조치에 대해 『반민족적인 범죄로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 보복가능성을 시사했다.정부 관계자들은 그들이 시베리아 벌목공 뿐만 아니라 중동·아프리카 파견 북한노동자들의 유사한 탈출 및 한국 귀순러시를 막기 위해 해외 우리 근로자들에 대한 납치기도로 맞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협박성 경고의 이면에는 미북협상과 남북대화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리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즉 미북3단계회담의 진행과정에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이행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대화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우리측 입장에 미리 쐐기를 박으려는 기도일 수도 있다.
  • 「평화통일론」 직시하자/북의 남북전략 변화없다/이철승(기고)

    북측은 7·4공동성명도 남북합의서도 일방적으로 파기해 버리고 책임은 오히려 우리에게 전가시키는 선전을 일삼고 있다.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끝까지 일관성있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자주·평화·민주대단결이라는 「통일삼대원칙」이라는 것이다.우리는 북측을 대화에 끌어 넣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남북합의서 채택시에도 이 원칙을 수용하였다.그러나 남북양측이 일치된 개념을 가지고 이 원칙을 채택한 것은 아니었다.문제는 그 어구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우리측이 그 말장난속에 파놓은 북측의 함정을 무시해 버렸다는데 있다.그중에서도 가장 주의깊게 음미하여야 할 어구가 바로 「평화통일」이라는 것이다.통일방법에 대하여 김일성은 이미 60년대부터 「평화적방법」 「비평화적방법」 또는 양자를 배합한 방법이 있다고 공언해 왔다.그리고 「평화적 방법」이란 「남쪽에 현존하는 정부가 인민봉기에 의해서 인민정권으로 대체되고 그다음에 평양정부와 이 인민정권이 평화적으로 합작하는 것」이라고 했다.즉 김일성이 말하는 평화통일의 과정은 남쪽에서의 좌익사상에 의한 혁명봉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우리 북한전문가들은 이 평화통일이란 어구의 기만성에 대하여 거듭 경고를 한바 있지만 역대정부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었고 소위 주사파 학생운동권에서는 반정부 투쟁을 격화시킴으로써 김일성을 고무시키는 역할을 했다.그래서 일반국민은 판단의 기준을 상실한 상태에 있었다. 김일성의 대남전략에는 정부 당국간 대화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다만 남한정부타도의 조건을 성숙시키기 위한 책략으로서 7·4공동성명도 했고 남북합의서도 채택한 것이다.김일성은 남북합의서 발효후에도 「통일대화는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기관이 이를 독점해서는 안되고 각계각층이 참여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김일성으로서는 서울의 정부를 정통적 대화상대로 보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총이회담」으로 호칭되어야 할 회담을 「고위급 회담」으로 명명할 것을 고집했고 그 회담은 형식상으로만 진행시켰을뿐 정작 성과창출단계에 이르러서는 여러가지 구실을 부쳐 파탄시켰다.그리고 범민주대회와 같은 민간차원의 집회를 정당화시키는 선전을 했다.우리의 언론에서 「북괴」란 말이 사라진지 오래다.김일성「주석」이라고 모시기 시작했다.그러나 북의 언론은 지금도 우리 대통령을 「역도」로,총리를 「괴뢰총리」로 부르고 있다.그런데 우리는 그런 상대와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헛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핵문제를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정상논리는 북으로하여금 시간을 벌게하는 역작용을 하고 있다.북은 대미회담을 통해서 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우리는 NPT탈퇴선언을 해놓고 그 효력발생을 잠시 유보하고 있는 특수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전면사찰을 받을 의무가 없다」는 궤변으로 전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이제는 또 현휴전협정을 미국·북한간 평화협정으로 대치하여야 한다고 선전하면서 정전위 탈퇴를 위협함으로써 대미회담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평화협정운운은 미군철수를 정당화시킬 조건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북측이 대미수교를 위한 핵카드가 아니라 핵개발을 위한 「미국카드」를 사용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북은 아직도 NPT를 완전 탈퇴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국제사회로하여금 대화를 통한 해결가능성에 대하여 희망을 포기하지 않게 하면서 유엔제재를 적극화시키는데 대하여는 혼선을 빚게끔 심리전을 펴고있다.북이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해본다는 것은 일종의 망상일 따름이다. 북은 지금 체제유지에 여념이 없는 상태다.남북대화도 대미대화도 성사가 돼서 북한의 일부라도 개방이 된다면 이는 곧 체제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다.그래서 대화는 하되 성사는 안시킨다는 것이 북의 전술이다.북은 변하지 않는다.소련의 「스탈린」격하운동,중국의 「모택동」격하운동과 같이 「김일성」격하운동이라는 필연적 과정없이 북이 스스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우리의 대북정책은 이러한 점을 대전제로 해서 재정립하여야 한다.그리고 이 점을 국제사회에도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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