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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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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익반군,인질 20명 석방/니카라과/좌익반군,기자 9명 추가 억류

    【킬랄리(니카라과) AP 로이터 연합】 좌익 산디니스타계 국회의원과 정치인,군인등 38명을 억류한 채 4일째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니카라과의 우익 콘트라 게릴라들은 22일 이번 일진극에 대한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인절중 20명을 전격 석방했다. 콘트라 게릴라들은 나머지 인질 18명도 몇시간 내에 석방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프란시스코아 마오르가 정부 협상대표가 밝혔다. 이들의 인질석방조치에 따라 좌우익 반군간의 유혈 내전 재발위기를 몰고온 이번 인질극이 해결을 위한 중요한 돌파구가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익 콘트라반군게릴라에 맞서 부통령과 다수의 야당정치인을 억류한채 나흘째 인질극을 계속하고 있는 나카라과의 좌익 산디니스타계 게릴라들은 22일 인질극현장을 취재중이던 기자 9명을 인질로 삼아 군경부대와 강경대치하고 있다.
  • 니카라과 인질극 정정 혼미/부통령 등 억류

    ◎정부·야당 무조건 석방 촉구부 【마나과 로이터 AP AFP 연합】 니카라과 정부와 야당은 21일 2개 좌·우익게릴라 단체들이 각각 억류중인 비르질리오 고도이 부통령등 80명에 달하는 정부요인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으나 게릴라단체들은 이들을 억류한 채 인질극을 계속하고 있다. 바올라 차모로 니카라과 대통령은 이날 좌익 산디니스타계와 야당등 2대 정치세력지도자와 긴급회담을 갖고 산디니스타를 추종하는 게릴라단체와 우익 콘트라반군 잔당들에게 억류중인 정부인사들을 무조건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니카라과 정부·야당이 정치현안등을 놓고 이처럼 공동보조를 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차모로 니카라과 대통령은 이날 산디니스타계 지도자등과 긴급회동을 가진 후 기자회견을 통해 인질 석방을 촉구하면서 미주기구(OAS)에 75명의 인질석방을 위해 특사를 파견해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 미,수리남에 한국군투입 기도/83년에 좌익정권 전복 계획

    ◎슐츠 전 국무 회고록서 밝혀 미중앙정보국(CIA)이 지난 83년 3월 남미의 수리남에 「한국인 특공대원」을 보내 좌익성향의 부테르세정권을 전복시키려 했음이 당시 미국무장관 조지 슐츠에 의해 처음 확인됐다. CIA의 이같은 기도는 슐츠 전장관의 강력한 반대로 결국 실행되지는 않았으나 동기야 어찌됐든 미국이 수리남과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한국인을 이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슐츠는 지난 82∼89년까지 자신의 국무장관 재직시절을 다룬 1천1백여쪽 분량의 「혼란과 승리」(Turmoil and Triumph)라는 제하의 회고록(미맥밀리언출판사)에서 「수리남의 위기」에 관해 언급하면서 CIA의 한국인 특공대원 투입계획을 폭로했다. 슐츠는 이 책 2백92∼2백97쪽에서 『(83년) 3월말 CIA측은 부테르세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한국인특공대원 50∼1백75명으로 구성된 일단의 병력이 수리남 수도 파라마리보를 공격한다는 계획을 브리핑했다』고 밝혔다. 지난 75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수리남은 브라질및 가이아나와 접하고있는 인구 42만명(90년말 현재)의 작은 나라로 80년 2월 육군상사이던 부테르세가 군사쿠데타로 민정을 전복시키고 정권을 장악,소련과 쿠바의 지원아래 남미 최초로 반미좌익정권을 수립하려고 하자 CIA는 부테르세를 제거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슐츠의 이같은 회고록 내용에 대해 우리 군관계자들은 『전혀 아는 바 없다』면서 『더욱이 미국이 한국특수부대나 한국인 용병을 동원해 한국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나라의 정권을 전복시키려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우며 특히 현역군인이 용병으로 동원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아르메니아­아제르 영토분쟁 5년(포연속의 코카서스에 가다:하·끝)

    ◎전화속의 쿠데타… 아제르정정 불안/좌익정권 들어섰어도 경제난 가중/시민들 공산통치시절 질서 그리움도 아제르바이잔군과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군간의 최초의 휴전은 아그람시가 함락된 이튿날인 지난 7월24일 자정을 기해 이루어졌다.3일간으로 예정됐던 이 휴전은 27일을 기해 1주일 더 연장됐다.카라바흐측은 3일 『아제르바이잔군이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한 휴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10여일째 불안한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카라바흐측은 이번 공세를 통해 일단 아제르바이잔측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협상상대로 간주하게 하는 성과를 얻어냈다.앞으로 전개될 평화협상에서 중요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다.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휴전을 성사시킨 것만해도 크게 안도하는 양상이다.지금 국내사정으로 보아 아르메니아군이 밀면 밀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아제르바이잔측이 매달리는 것은 국제적인 중재뿐이다. 수도 바쿠시를 비롯한 아제르바이잔의 주요 도시들에서는 자정부터 이튿날 상오 5시까지 통금이 실시되고 있다.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고 총동원령이 내려져 17세부터 35세 사이 남자들은 전원 출국이 금지돼 있다.그런데 쿠데타로 집권한 현아제르바이잔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전쟁대책이 아니라 쿠데타 뒤처리같은 인상이다.쫓겨난 엘치베이대통령에 대한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일이 오는 29일로 확정됐다.굳이 대통령직을 내놓지 않겠다고 고집하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대통령직을 뺏겠다는 것이다. 전선이 무너지고 피란민이 60만명에 달하는 나라에서의 국민투표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새 정권 출범과 함께 총리·국회의장을 비롯,국방장관 등 주요부처 장관 대부분이 경질되고 3일에도 쿠데타에 반대한 타이르 케리밀 최고재판소장이 해임됐다. 지난 6월4일 당시 카라바흐지구 사령관이었던 수레트 구세이노프(35)대령은 예하병력 2백여명을 이끌고 전선 반대방향인 바쿠시를 향해 진격해 들어왔다.오래 전부터 반란기미를 보인 그를 무장해제하기 위해 전날밤 정부군이 카라바흐 북서쪽 간자시에 위치한 그의 본거지를 기습,60여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이 싸움에서 이긴 그는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바쿠시쪽으로 4백여㎞를 진격해 들어와 엘치베이 대통령의 사임과 의회해산 등을 요구했다. 반란에 성공했지만 통치기반이 전무한 구세이노프는 지난 82년까지 13년간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제1서기를 지낸 가이다르 알리예프(70)에게 손을 내밀어 권력을 나눠 가졌다.그는 구소련공산당 정치국원까지 올랐다가 고르바초프대통령때 「부패 정치인」으로 청산됐던 인물이다.알리예프는 6월15일 임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의장과 대통령대행으로 선출돼 본인으로선 「화려한」 재기를 이루었다.구세이노프는 총리직과 함께 국방·내무·안보 등 주요부서를 장악했다. 엘치베이대통령은 6월18일 밤 새벽 단신으로 바쿠시를 빠져나와 나키체반자치주의 고향마을로 피신해 버렸다.나키체반 자치주는 카라바흐와는 반대로 아르메니아 영토내에 떨어져 있는 아제르바이잔인 자치주이다.최근들어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쪽은 수시로 아르메니아군의 공격을 받아 풍전등화와 같은 곳이다. 이렇게 해서 92년 3월 민주독립국가 실현을 내걸고 엄청난 지지속에 출범했던 엘치베이 대통령정부 대신 좌익연합정부가 들어서게 됐다.의회는 해산되고 공산주의자와 구의회대의원 각 25명씩으로 국민의회(밀리 마질리스)가 새로 구성됐다.구세이노프는 취임일성으로 『아르메니아군에게 빼앗긴 실지회복과 국가계획경제를 통해 국민생활을 향상시키겠다』고 약속했다.알리예프는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외교의 제1목표로 내세웠다. 알리예프의 복귀와 군부 쿠데타의 성공은 이 지역 민주주의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결과적으로 엘치베이정부는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에서도 패배를 계속했고 경제도 전혀 개선시키지 못했다.현재 7백만 인구중 1백만명,전체 노동인구의 25%에 해당하는 숫자가 실업자이다. 많은 시민들은 전쟁의 공포 못지않게 물건을 찾아다니기에 바쁘다.바쿠시내에서 만난 한 시민은 『민주주의가 무슨 소용인가.질서도 먹을 것도 없는 민주주의보다는 차라리 강한 지도자가 질서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공산주의 시절에는 질서와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그게 아직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아제르바이잔은 타민족과의 분쟁,거듭되는 정치적 불안,그리고 경제난으로 인한 국민불만 등 소연방해체 뒤 독립한 여러 공화국들이 앓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이다.그러나 보다 심각한 것은 아제르바이잔인들 스스로 이 문제들을 풀 능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 페루 미국대사관앞 폭탄테러 5명 사상

    【리마 로이터 AP 연합】 페루 좌익 게릴라들이 27일 리마 주재 미대사관앞에서 차량폭파 테러를 감행해 민간인 1명이 숨지고 경찰 등 적어도 4명이 부상했다고 페루 경찰이 밝혔다. 경찰은 게릴라들이 이날 상오 리마 중심가 도로변에 있는 미대사관으로부터 30여m 떨어진 지점에서 차량폭파 테러를 감행했으며 이로 인해 차를 타고 지나던 민간인 1명이 숨지고 대사관 경비요원 1명 등 최소한 4명의 현지인이 부상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관리들은 미국인 부상자는 없었다며 폭발후 대사관 안에서 몇 건의 화재가 있었으나 모두 진화됐다고 말했다.
  • “이 의원 151명 숙정수사 대상”/전직총리 4명도 포함

    ◎마피아 연루·사기·독직 등 혐의/비정치권 지도급인사 6백명도 【로마 로이터 연합】 이탈리아 의회 의원 1백51명이 검찰로부터 부패혐의 수사대상임을 공식 통고받았다고 이탈리아의 ANSA통신이 14일 보도했다. ANSA통신은 17개월간 계속되고 있는 이탈리아의 부패 숙정작업의 최근 현황을 보도하며 이같이 밝히고 이중 38명은 상원(의석 3백15) 의원이며 1백13명은 하원(의석 6백30) 의원이라고 분류했다. 전직 총리가 4명이나 포함된 이들의 혐의는 마피아 연루,사기,독직,부패,선거법 위반,정치자금 불법 모금 등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을 정당별로 분류하면 기민당 74명,사회당 49명,사민당 9명,좌익민주당5명,자유당 4명 등이며 나머지는 분리주의 북부리그를 비롯한 군소정당 소속이다. 의원들의 혐의사실은 기업인들에게 수익성이 큰 정부사업의 계약이나 국영은행의 대출 등을 대가로 뇌물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기업인을 비롯해 정치권 밖의 지도급 인사 6백명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있다.
  • 주일미군기지 겨냥 사제 로켓 발사소동

    【도쿄 AFP 연합】 사제 로켓 5∼6발이 7일 상오 도쿄 남쪽으로 40㎞ 떨어진 가나가와현 소재 미군기지를 공격했으나 빗나갔다고 일경찰이 밝혔다. 경찰은 공격이 이날 상오 6시쯤 이뤄졌다면서 로켓이 자마 소재 미기지 정문에서 약 1백m 떨어진 길거리에 떨어졌다고 설명했다.이번 공격으로 다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로켓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또 일본내 다른 곳에서도 유사한 대미 테러기도가 있었는지 여부가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공격은 도쿄에서 서방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이 열리기 불과 몇시간전 발생했다. 사제 로켓은 지난주에도 도쿄 외곽 소재 미군 기지를 향해 발사됐으나 역시 빗나간 바있다. 당시 일좌익은 이 공격이 자기들 소행이라고 밝히면서 도쿄 G7 정상회담을 저지하기 위한 「첫 공격」이라고 경고했다.
  • 중국좌파,등 권위에 도전/“실사구시 입각,지도부 비판 마땅”

    【홍콩 연합】 중국의 좌파 이론가들은 현지도부의 견해와 정책및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실사구시의 원칙을 이용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중국특유의 사회주의이론과 정책에 도전했다고 홍콩의 더 스탠더드지가 6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중국의 좌파이론가인 등력군의 한 측근 보좌관이 좌파가 장악하고 있는 당내부 이론지인 「진이의 추구」를 통해 등소평의 이름을 직접 대지는 않았으나 『중요지도자들이 좌익사상을 항상 위험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실사구시의 원칙에 위배되는 과오를 범했다』고 비난했다.
  • 한국기업들(산동성이 부른다:4)

    ◎한국투자 기다리는 개방경제의 현장/4백29개사 진출… 업종도 다양화/임금은 국내의 15%에 생산성은 50% 이상 산동성 일대에는 최근들어 한국업체들이 물밀듯 밀려들고 있다.지난해 8월 한중수교이래 기다렸다는듯 많은 기업들이 청도를 비롯,위해 연대 제남 등지로 몰려들고 있다.산동성 당국의 통계로는 지난 5월말 현재 4백29개 업체가 3억6천5백만달러를 이미 투자했거나 투자준비중이다. 이곳에서 만나본 한국기업인들은 대체로 『이곳에 온걸 후회하진 않는다』『괜찮은 것 같다』『한국에서는 임금상승때문에 어차피 길이 없지 않느냐』며 이곳 투자에 조심스런 낙관을 표시했다. 산동성 연안에 투자한 업체들은 무엇보다도 한국과의 거리가 가깝고 훌륭한 수출항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곳 정착의 주요 이유로 꼽는다.다음으로는 기후나 사람들의 성품이 한국과 비슷하다거나 한국과의 여객선운항으로 교통이 비교적 편리해진 사실도 지적했다. 물론 이들이 중국으로 건너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곳 노임이 싸기 때문이다.이곳에 오면 여러가지 불편한점이 많고 간접비용도 많이 들어가지만 이같은 추가비용을 능가하는 인건비 절약요인이 이들을 중국땅으로 끌어들인 것이다.이곳 노동자들의 평균노임은 월 3백원(4만5천원)안팎으로 한국과 비교하면 15%에도 못미치고 있으나 생산성은 한국노동자의 50% 이상으로 지적되고 있다.한국투자업체인 연대코니정밀의 진석영총경리는 『생산성이 한국보다 떨어지는 것은 인력관리를 잘못한 때문이다.관리만 제대로 하면 한국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까지 주장했다.중국인도 젓가락을 사용하고 있어서 손재주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는 한국인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업체들이 이국땅에서 느끼는 불편을 얘기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우선 이곳에서는 한국만큼 전화사정이 좋지못해 통화중에 자꾸 전화가 끊기고 국제회선 부족으로 대낮에 서울로 전화걸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일부 업체들은 이곳 전압이 일정치 못해 기계를 돌리는데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심지어 낮에는 80V까지 떨어졌다가 밤에는 2백20V로 돌아올 때도 있고 정전이 잦다고 불평한다.그러나 연대같은 지역에서는 그것은 전선교체작업 때문이며 새로 건설중인 발전소가 곧 완공되면 전력부족이나 전압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청도는 물론 연대나 위해에서 한국기업들이 공통적으로 털어놓는 불만중의 하나는 뒤에 들어오는 한국업체들이 자꾸만 먼저 와있던 업체들 주위로 몰려든다는 점이다.한국의 중소업체들은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자리잡음으로써 기숙사를 짓는다거나 통근버스 비용지출까지 아껴야하는데 주변에 자꾸만 한국업체들이 들어서면 서로 노동자확보를 위해 경쟁할 수 밖에 없어 불리해진다는 것이다.많은 한국업체들이 공단에 들어가지 않으려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노사분규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이곳 노사분규는 노동자 구타나 노동자들의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공장내 공해문제 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한국업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노사분규를 방지하기 위해 공장내에 공산당조직을 설치토록 시당국에서 건의하고 있는 점인 것 같다.한국에서는 좌익사상을 가진 사람이 파업을 부추기는 주동자들로 여겨져왔으므로 아무리 공산국가라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다. 이곳 업체들은 후발업체들이 이곳에 올때는 이곳 한국업체협의회와 먼저 상의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그래야 공장부지를 선정할때 서로 조정을 해서 인력스카우트 잡음을 없앨 수 있고 여러가지 편리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한국인들은 공장건물을 한참 올리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이웃 한국업체를 찾아온다고 청도에 맨먼저 진출한 청도삼양식품의 신영호총경리가 밝혔다. 청도에 몰려든 한국업체들은 ▲중소업체들이 대종을 이루고 ▲독자기업이 많으며 ▲전량수출형에다 ▲주로 향·진에 공장을 설치하는 등 4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유정성청도시장이 밝혔다.투자품목은 완구제조 건자재 경공업 수산업 등 다양하다.하지만 지난해 한중수교 이후에는 대기업들도 조심스레 투자기회를 찾고 있다.예를들어 고려합섬 1억달러,대한방직 3천만달러,대농 2천만달러 등의 투자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며 이밖에도 1천만t 정유공장과 1백만t 시멘트공장건설이 검토되고 있다. 산동성 관리들은 한국기업들이 어떤 분야에 투자하길 원하느냐는 물음에 에너지 교통 항만시설 등 사회간접자본분야라고 설명한다.하지만 이 분야는 중국에 자본이 부족하므로 돈을 가지고 들어오라는 것이다.송법당 산동성부성장은 『우리는 발전도상국가이므로 정부차관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문제는 이같은 사회간접자본투자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지불보증을 해주는게 아니고 예를 들어 도로를 건설했다면 통행료를 받아서 투자금을 회수해가라는 식이어서 선뜻 달려들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많은 것 같다.
  • 이 여사 삶에는 겨레의 아픔이(박갑천칼럼)

    올해 예순여덟인 이인득여사의 생애에는 광복후의 우리겨레 아픔이 어린다.그래서 남의 얘기일수만은 없다.우리 모두의 얘기로도 되는 쓰리고도 아린 행로이다.우리들의 비탄과 우리들의 오열이 그에게서 배어나온다. 그는 스물다섯에 6·25를 맞는다.다섯살·세살의 두아들을 둔채 전선에 나간 남편은 전사했다.여기까지는 그나이또래 우리의 여성들이 겪은 일중의 하나일 뿐이다.아니,그보다 더 비통한 경우들도 얼마든지 있다.부모는 좌익한테 남편은 우익한테 잃은다음 자식은 피란길에서 잃은 사례등등 동서냉전시대가 우리에게 강요한 고통이 어디 한두가지에 그치는 것이던가. 이여사의 아픔은 그에 비길때는 덜하다 할수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세월이 흐른다음 되풀이된 고통의 시련은 가혹했다.남편의 전사통지서를 받은지 20년후 월남전에 나간 작은아들의 전사통지서를 받는 것이 아니던가.어쩌면 남편의 전사통지서를 받았을 때보다 더한 충격을 이때 받았다고 할 것이다. 두싸움 모두 겨레의 뜻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약자로서 큰힘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버린 결과였을 뿐이다.그 한싸움에서는 남편을 잃고 그상처가 하마 아물어갈무렵 또다른 싸움에서 아들을 잃었다.그옛날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때 두다리 뻗고앉아 분(질장구)을 치며 노래불렀다는 것이지만 범인이 그렇게 생사를 초월할수 있는 것도 아니다.현충일을 앞두고 찾은 국립묘지에서 그는 두묘역을 오가며 말라버린 눈물로 울음을 삼켰던 것이리라. 저 고려말의 학자 이곡의 「가정집」에 나오는 박행의 여인 조씨도 이여사 같은 슬픔을 짓씹었던 경우이다.친정아버지 조자비는 삼별초의 항몽전때 관군으로 탐라에서 죽고 시아버지 수령궁녹사 한광수는 일본정벌 나갔다가 군중에서 죽고 남편인 대위 한보는 합단과의 싸움에서 죽고 외딸은 남매를 낳아놓고 죽지않던가.나라의 명운과 같은 궤적의 슬픈 삶이었다는 공통점에서 대조가 된다. 일세의 문장이었던 노산 이은상은 일찍이 그 아우를 잃고서 「무상」이라는 글을 남겨 사람들 마음에 감동의 파문을 일으켜온다.『아니디아(Anitya:무상이라는 뜻)!어허 천지가 무상하구나.과연 무엇이 무상인고.…』로써 읊조려나가는 명문이다.한많은 말과 눈물을 지그시 삭이면서 글로 표현해내지 못했다 뿐 어찌 노산의 심경에 미치지 못한다고야 하겠는가.아들손자 며느리와의 노후가 부디 행복하기를.
  • 국회 현지조사단 이부영의원의 실태보고(중앙아의 한인사회:하)

    ◎회교권 여건 고려 국내교회 선교 신중을/자치주 거론은 무리… 공관설치 서둘러야 ▷우리정부 지원◁ 구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전세계적으로 냉전이 사라지면서 우리에게도 50여년 막혀 있었던 대륙이 열리게 되었다.연변,연해주,중앙아시아등 북방의 동포들과도 교류하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50년 가까이 분단된 시대를 살며 좌익이다 우익이다,남이다 북이다,민주다 반민주다 하며 아옹다옹 다투고 민족역량을 엉뚱하게 소모하면서 꽤나 힘들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우리는 편하게 산 편이다.고향을 잃고 정착지마저 잃고 게다가 강제로 쫓겨가면서 식구마저 잃고 질기디 질긴 질경이처럼 살아남아야 했던 중앙아시아의 동포들에 비하면 말이다. 타슈켄트주 시장에서 만난 이주민 1세 동포 아주머니들은 모두가 우리말을 잘했다.그래도 오순도순 동포끼리 살면서 우리말은 잊지 않은 것이다.반찬거리나 하라며 풋고추를 건네주던 아주머니,어찌 그리 인심도 좋을까.사위는 김씨,며느리는 이씨하며 환하게 웃던 한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또 하나의 귀중한 「이웃」을 발견했다. 중앙아시아 방문기간 내내 우리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회교근본주의의 영향,탈러시아화 및 이슬람화 정책으로 인한 우리 동포의 불이익 사례,민족간 불균등과 차별정책으로 인한 피해,한국 교회의 선교활동이 미치는 영향,우리 동포들의 연해주 등지로의 이주 가능성,공관 설립의 필요성 등이었다.그러나 소연방 붕괴후 우리 동포들이 받고 있는 차별이나 불이익은 연초의 국내언론 보도처럼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었고 자치주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었다.언어정책 등의 탈러시아화 경향으로 인한 우리 동포들의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수십년에 걸쳐 피눈물로 건설한 정착지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할만큼 심각하지는 않았고 대부분의 동포들이 실제로 이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민족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조차 1% 정도의 인구를 가진,1백20여개 민족 중의 하나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이러한 사정은 현재나 향후에 우리 동포들이 혹 겪을 수도있는 민족분규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한인들을 그 주요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다민족국가 내에 전반적인 민족정책의 부산물로 나타나게 되는 결과일 것이라는 의미이다.따라서 이 지역에서 한인들의 문제와 관련하여 해당국가에 민족정책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자칫 내정간섭적 성격이 돌출되어 외교적 마찰을 초래할 우려도 있는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확산은 비이슬람 교인들에 대해서는 분명 중대한 위협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이런 점에서 이란,아프가니스탄 등의 지역과 인접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지역의 한인들에게도 잠재적 위협요소인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한인들이 집중되어 있는 우즈베크공화국과 카자흐공화국은 아직 이슬람이 종교로서보다는 민족전통의 문화로서의 의미를 더 강하게 지니고 있으며 양국 지도자들도 근본주의의 확산을 적극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하였다.따라서 장기적으로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싶다.다만 아직도 내전이 계속되어 한인 동포들이 국경을 넘어우즈베크 등지로 피란해 오는 타지크공화국의 사정을 고려하면 정말 신중하고 장기적인 대책도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선교활동은 한글 교육을 비롯한 여러가지의 자선사업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그러나 자칫 경쟁적인 선교활동이 한인동포의 장래에 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는 없는지 신중히 고려되어야 한다. 십자가도 걸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한인들은 기독교를 믿는 민족이라고 여겨진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우리 교회의 선교활동이 부디 현지 실정에 맞게,우리 동포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올해 말까지 카자흐공화국과 우즈베크공화국에 설치키로 되어 있는 공관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설치되어야 한다.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 현지의 분위기다.공관 및 한국 교육원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의 각종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민족문화를 부흥시키는 동시에 남북 공관 사이에 상호 협조적이고 공정한 활동을 보장하여 아직까지도 분열된 모습을 보이는 각 한인단체들을 한데 아우르고 모든 동포들에게 통일된 조국의 상을 주어야 한다.이제 그곳에서도 통일의 기운을 싹 틔워야 하는 것이다.조국은 둘인데 어느 한 곳 제대로 도움주는 곳이 없다는 어느 동포의 푸념을 이제는 가슴에 새겨야 한다.
  • “법질서 파괴 불용” 강경 선회/3부장관 합동회견 배경

    ◎한총련 과격폭력시위에 실정법 적용/북한과 불법전화통화 이적행위 간주 정부가 1일 최근 과격양상을 보이고 있는 대학생들의 집회 시위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기로 한것은 법질서를 어기는 행위는 사회개혁차원에서 어떤 경우라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안당국은 새정부가 출범한 이후 민주화조치를 가시화하고 국민화합을 위해 좌익사범들에 대해 사전영장발부를 자제하고 사실상의 수배해제조치를 내리는등 과감한 유화정책을 취해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는 최대한 허용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호응,재야단체와 학생들도 문민정부 출범이후 과격폭력시위를 자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정부가 이같은 유화정책에서 강경대응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하게 된 것은 학생들의 시위때 또다시 쇠파이프가 난무하는등 과격해지고 있는데다 「한총련」간부들이 북한학생과 전화통화를 하는등 명백한 실정법 위반행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한총련」측이 대학로에서 출범식정리집회를 가진뒤 자진 해산하겠다는 당국과의 약속을 깨고 도심으로 진출,과격 폭력시위를 벌였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적법절차를 밟지않고 2시간동안 북한학생들과 전화통화를 해 이른바 「범청학련」을 결성한 것이다. 이와함께 학생들이 전경들을 무장해제시켜 장비를 불태우고 「전·노체포결사대」를 조직해 연희동으로 진출하려다 진압 경찰관 97명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점이다. 검찰은 특히 일부 학생들이 시위진압중인 경찰관의 무기를 빼앗고 부상을 입힌 행위를 중시,이들을 모두 색출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혐의로 구속수사할 방침이다. 또 북한측과 전화통화를 한 한총련 집행간부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위반(회합 통신)혐의를 적용,엄벌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검찰은 「전대협」의 후신으로 출범한 「한총련」이 국가보안법의 이적단체적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압수한 유인물과 디스켓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검찰 분석으로는 「한총련」의 기관지인 「대학생」이 김일성의 신년사를 사진과 함께 삭제없이싣고있는 사실과 지난달 이 단체산하 「조국통일특위」에서 「돌아오지않는 밀사」등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북한영화를 전국 10여개 대학에서 상영해 온 점,북한학생들과 전화통화한 사실등이 모두 이적단체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31일 대검회의실에서 열린 유관기관회의에서는 「한총련」의 이같은 최근 동향과 성격에대한 집중논의가 있었으며 실정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는 단호히 대처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 회의에 참석한 검찰관계자는 『사회주의가 급격히 몰락하는등 국제정세의 변동이 가속화되고 있음에도 북한의 태도는 변화하지않고 있는 마당에 이념적인 혼란을 야기시키고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위태롭게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야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방침』이라고 밝혔다.
  • 독,새 망명관계법 반발속 하원통과

    【본=유세진특파원】 독일 하원은 26일 수천명의 좌익 시위자들이 의사당 봉쇄 시위를 계속하는 가운데 동구·발칸반도 및 제3세계로부터 쇄도하는 이민의 유입을 저지하기 위한 엄격한 새 망명 관계법안들을 통과시켰다. 하원은 지금까지 유럽에서 가장 관대한 독일의 망명법을 엄격하게 개정하기 위한 이날의 표결에서 과거 누구나 신청할수 있었던 정치적 망명의 권리를 박탈하는 법안을 5백21 대 1백32,기권 1표의 3분의2 이상 다수결로 통과시켰다. 독일에서 작년 외국인 난민수용소를 습격하는 신나치파의 폭력사태를 유발시킨 한 요인이었던 망명요구 난민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이 법안은 망명지지자 1만명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12시간의 토론끝에 통과되었으며 야당인 사민당이 표결에서 여당에 가세했다.
  • 과테말라 헌정중단/세라노대통령/의회해산… 「포고령통치」 선언

    ◎군쿠데타 우려,선제행동 추징 【과테말라 AFP 로이터 연합】 호르헤 세라노 과테말라 대통령은 25일 헌법의 효력을 부분적으로 중단,의회및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해산하고 앞으로 자신의 포고령에 의해 통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라노대통령은 이날 전국에 중계된 라디오와 TV 방송 연설을 통해 『나는 헌법을 일시적으로·부분적으로 중단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60일이내에 새 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조치는 지난 21일 군대까지 동원된 바 있는 전국적인 파업등 시위로 인해 법과 질서가 공백상태이기 때문에 취해진 것이라고 세라노대통령은 말했다.그는 또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96년 1월에 권력을 양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세라노대통령은 30여년에 걸친 군사통치가 계속된 과테말라에서 지난 91년 1월 첫 민간대통령으로부터 처음으로 평화적으로 정권 이양받아 취임했다. 과테말라의 노조·학생단체·야당 의원·언론등은 경제난과 군이 좌익 게릴라·노조원·학생등에 인권유린을 해온데 대한항의로 지난 수개월동안 시위를 해왔으며 지난 21일 시위는 최고 절정에 달했었다. 이날 발표는 그동안 군의 쿠데타 가능성이 자주 시사됐기 때문에 군의 쿠데타를 우려해 취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과테말라 경찰은 이날 수도 과테말라시티의 주요 건물들과 대법원장·검찰총장의 집을 포위하고 민간 라디오방송국 1곳을 접수했다.
  • 「혼자만 잘 살믄…」(화제의 책)

    ◎60대 노인 삶통해 인간의 심성표현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좌익단체에서 활동하다 6·25 직후 사회안전법으로 수형생활을 한뒤 줄곧 고향인 경북 봉화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60대 후반의 한 노인이 털어놓은 삶의 이야기. 편지형태로 구술된 11편의 글은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본성에 거스르지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한 인간의 생활철학과 심성을 진솔하게 보여준다.또 자연과 이웃에서 느끼는 소박한 즐거움이 느껴지는 가운데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체화된 역설의 철학이 진하게 배어있다.고집스럽게 자신의 삶을 지키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완고한 노인네의 모습과 함께 역사와 사회 그리고 이웃에 대한 무디지않은 시선이 곳곳에서 드러난다.전우익 지음 현암사 4천5백원.
  • 국왕·군주제 반대/일 좌익,연일 방화

    【도쿄 AFP 연합】 일본 서부 교토(경도)시에서 국왕과 군주제에 반대하는 급진좌익세력의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2개 사원이 파손됐다고 현지 경찰이 발표했다. 이들 2개 절에서 발생한 화재는 각각 천장과 마루바닥을 태운 후 즉각 진화된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경찰은 24일 하오에도 교토의 경찰초소 1개와 관영 영빈관 1채가 아키히토국왕의 오키나와현 방문을 반대하는 급진좌익세력이 장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폭발물에 의해 파손됐다고 밝혔다.
  • 「이」,“점령지 무기한 봉쇄”/각의 의결

    ◎팔인 근로자 유입 전면 차단/평화협상 주도권잡기 포석 추정 【예루살렘 AP 연합】 이스라엘 정부는 11일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무기한 봉쇄,이들 지역의 팔레스타인인 근로자들이 이스라엘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스라엘 내각은 점령지내 폭력사태를 진정시키려면 자국민과 팔레스타인인들을 분리시켜야하며 곧 재개될 중동평화회담에서 이스라엘측이 양보했을 때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내려면 이러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제의를 받아들여 이날 이같이 의결했다. 그러나 일부 좌익성향 각료들은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을 분리시키는데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사실상 지난달 31일부터 이미 봉쇄된 상태에 놓인 점령지내 경제가 극심한 타격을 받고있어 이들 지역에 대한 원조증액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들어 라빈 총리의 계획에 반대했다.
  • 독 극우폭력기 기승/극우세력 맹공격

    【본 로이터 연합】 독일에서 신나치등 극우세력들의 폭력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과 때를 같이해 극좌세력들이 점차 폭력화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루돌프 자이터스 내무장관이 4일 말했다. 자이터스 장관은 이날자 주간 벨트 암 존탁지와의 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좌파세력들이 주로 외국인들을 상대로 했던 극우 폭력세력들에 대한 공격에 나섬에 따라 정치적 극단주의 경향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독일 연방호헌청(BFV)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좌익세력들의 폭력행위 건수는 약1천여건에 달했다.
  • 새정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7)

    ◎길림시절:6/「조선인 길림소년회」 조직설/민족주의자들이 28년경 만든 단체/“27년 결성주도”… 대조직가로 행세 김일성은 좌익문헌을 읽은 것이 자기 「혁명활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봉건군벌 장작상이 지배하는 중국의 오지 길림에서 그것도 1927년에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헌을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그런데 이 불가능한 일을 김일성은 전기에서 억지로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독서조 지도 억지 그는 한달에 열람료를 10전씩 내어 오마항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갔고 또 육문중학교에서 두번이나 도서주임으로 되었다고 주장한다.나중에는 몸소 비밀독서조를 조직하고 독립운동가가 경영하는 정미소의 방 한칸을 독서실로 만들어 거기서 좌익서적을 탐독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령 그가 도서주임이 되었다 하더라도 부유층의 자제가 가는 육문중학교가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구입할 리가 없고 봉건군벌이 경영하는 우마항의 도서관도 그런 책이 있을 턱이 없었다.또 비밀독서조란 것도 29년에 상월선생이 한 독서모임을 자기가 조직한 것처럼 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회고록은 이와같이 별로 좌익서적에 접하지도 읽지도 않았던 그를 대독서가로 만들어 놓았다.그 다음에는 그를 대조직가로 변신시키는 차례인데 그 첫번째가 길림소년회 결성이다. 「우리가 길림에서 처음으로 내 온 조직은 조선인길림소년회였다.그 때 길림에는 민족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소년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름뿐이고 길림시내의 소년들은 그런 조직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우리는 1927년 4월에 손정도네 예배당에서 조선인길림소년회라는 합법적조직을 무었다. 나는 김원우·박일파와 함께 이 모임을 지도하였다.모임에서는 조직부와 선전부·문화체육부와 같은 소년회의 부서들을 내오고 학교와 지역별로 되는 반도 조직하였다」 여기서는 길림소년회의 조직자가 「우리」로 되어 있고 김원우·박일파의 이름도 보이지만 여태까지의 전기들은 한결같이 김일성 혼자가 길림소년회를 결성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시점조작 들통 조선인길림소년회는 여러가지 증거로 보면 27년이 아니라 28∼29년에 조직된 것으로 보인다.최형우는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에서 김일성이 길림에서 「소년운동 지도자의 일인으로 일년유여의 시일」심혈을 짜냈다고 쓰고 있다.따라서 김일성은 28년부터 29년 5월에 퇴학할때까지 1년 남짓 소년회에 있었던 것으로 된다.또 이명영교수는 1917년생인 최진무씨가 13세가량이었을 때 길림소년회 회원이었다는 증언을 소개하고 있다.이 증언에 의하면 29년경 김일성은 길림소년회 회장이었다. 그런데 회고록은 이 기림소년회 이외에 길림에는 민족주의자가 만든 이름뿐인 소년회가 따로 있었다고 하고 있다.김일성이 참가한 소년회는 민족주의 조직이 아니라는 주장인데 이것은 사실을 정반대로 말하고 있다. 1930년 당시 길림에는 두가지 소년단체가 있었다.그 하나는 길성소년탐험대로서 공산당의 종파인 ML파의 표현단체 주중한인청년동맹 계열이었다.대장은 김일영,제1반장은 허성,제2반장은 진규삼이었으며 정미소 복흥태를 거점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고록의 상기 인용문에 나오는 「독립운동가가 경영하는 정미소」란 김일성이 있었던 길림소년회가 아니라 이 길성소년회가 거점으로 한 복흥태를 말한다.그는 자기와 그 입장이 반대되는 이 공산주의 길성소년회의 거점을 제멋대로 「길림소년회의 독서실」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일성은 29년 5월에 길림소년회를 떠났는데 이 조직은 29년 11월에 길림소년탐험대라 개칭하였다.30년의 일본기록은 민족주의단체 국민부산하인 남만한인청년총동맹의 지휘를 받는 이 소년조직에 대하여 그 본부도 구성원도 적지 않고 있다.그러나 회고록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조직의 본부는 손정도의 예배당이었다. 이 길림소년회에 대한 1930년의 일본기록은 다음과 같다. 「소년회.예년 5월 제1요일을 소년데이로 정하고 운동회 등을 열고 있다.본년(1930년)은 5월4일이 마침 소년데이에 상당하므로 당일 유길학우회원 김인기,박일파의 사회로 신개문 외 야소례배당에 소년 약20명을 모아서 간단한 기념식을 행하였다. ○29년경 “회원” 증언 그후 소년데이라고 쓴 지제의 수기를 하나씩 배급하여 오후1시부터 강남공원으로 가서 과자를 일동에게 분배하여 유희를 하고 동 5시경 무사히 철수,해산하였다.」 요컨대 조선인 길림소년회란 28∼29년은 정의부,29∼30년은 국민부에 속하는 소년단체였다.김일성은 이러한 소년회에 28년 무렵에 들어가 29년경에 회장으로 되었다.그리고 만약 길림소년회가 27년에도 있었다면 그가 이해 8월경에 입회하더라도 그것 자체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소년회가 「27년 4월 그가 결성한」조직일 수는 없다. ▷주해◁ ①「세기와 더불어 1」208면 이하 ②같은 책 238∼9면 ③평전 113면 ④평전 112면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5)

    ◎길림시절:4/「공산서적 탐독」의 허구/“「국가와 혁명」 「자본론」 등 27년초 탐독” 주장/중국어번역판 29년께야 나온 사실과 상반/「타고난 공산주의자」 행세하려 날조 『길림에서의 나의 활동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더 깊이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나는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보다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의 저작들을 탐독하는데 더 열중하였다.당시의 중국은 대혁명기여서 소련이나 일본에서 발간되는 좋은 책들을 많이 번역출판하였다』 ○만주반입 시일 걸려 회고록에서는 김일성의 길림시절이 이상과 같이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헌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쓰고 있다.그는 이 시기 「공산당선언」 「자본론」 「국가와 혁명」 「임금노동과 자본」등 고전과 그 해설서,그리고 고리키의 「어머니」 로신의 「축복」 「아Q정전」 기타 「철의 흐름」「압록강가에서」 「소년방랑자」같은 혁명적인 소설을 많이 읽었다는 것이다. 물론 중학생시절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책 읽는데에 눈을 뜨는 시절이므로 김일성도 책은 일정하게 읽었을 것이다.그러나 적어도 이상의 책들은 거의 읽지 않았다.이러한 책은 길림에서는 구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당시 중국은 대혁명기여서 번역물이 많았다고 쓰고 있지만 중국혁명은 먼저 화남에서 시작되고 그것이 화중·화북으로 번졌다.따라서 좌익출판물도 맨처음은 광동,그 다음에 상해,그리고 북경과 같은 순서로 출판되어 나갔다.그러한 출판물이 만주에 반입되더라도 그것은 심양,하얼빈에 먼저 들어가고 이보다 오지인 길림에는 그후에야 반입되었다. 이러한 상식을 안 다음에 회고록의 선전을 분석해 보자. ㈀김일성은 길림에 온 27년에 「공산당선언」 「자본론」 「국가와 혁명」 그리고 「자본주의 최고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즉 「제국주의론」을 읽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78년의 「불멸의 자욱을 따라」부터 그렇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육문중학교에서 그가 직접 배웠던 공산주의자 상월은 상해에서 길림에 온 것이 29년 초였고 그가 휴대한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영문판이었다는 것,이 영문판을 중학생용으로 쉽게 풀어서 비밀소조에서 강의한 인물은 김일성이 아니라 상월 자신이었다는 것을 밝힌 바 있었다. ○상해서만 부분 출판 그런데 이번에는 레닌의 이 책을 일부러 그의 「독서목록」에서 빼고 있다.그 이유는 여러가지 추측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겟다. ㈁필자는 앞에서 화성의숙 시절에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는 회고록의 주장에 대하여 이 시절 화전에서는 그러한 책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는 점을 들어 그것이 헛된 주장임을 밝혔다.그런데 상월은 길림에 올 때 「제국주의론」이외에 다른 공산주의 서적을 가져온 흔적이 없다.이 점을 보면 김일성은 29년에 가서도 이 책은 읽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크게 된다. ㄷ)필자는 일찍이 중국에서 자본론이 부분적으로나마 번역출판된 것은 1930년 상해에서 있은 일이었고 따라서 26년의 화전이나 27년의 길림에서 김일성이 이 책을 읽었다는 말은 성립이 안된다고 비판하였다. 그런데 김일성은 이번에는 이러한 자기 주장을 대폭적으로 바꾸어 버렸다.자기가 동대탄에 숙소를 정하고 있을 때,와서 같이 생활한 박소심이 일본어판 자본론을 읽고 있다가 자기에게 해설해 주었다고 변경한 것이다. 일본문헌에서는 박소심은 조선공산당 재건파의 하나였던 서울­상해파의 중진으로 되어 있다.김일성으로 보면 「종파」였던 박소심이 과연 그와 동숙하고 있었겠는가부터가 의문이 되지만,하여간 그는 이런 말을 끄집어 냄으로써 오히려 자본론을 자기가 읽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한 셈이 되었다. ㄹ)레닌의 「국가와 혁명」은 27년,광동의 영동민국일보 부간 「혁명」에 이춘번(가백년)이 번역,연재하기 시작하였고 그 단행본은 29년에 출판되었다.김일성은 고리키의 「어머니」도 읽었다고 하는데 이 책 역시 29년 10월에 심단선(하연)이 「모친」이란 이름으로 번역하여 상해에서 출판하고 있다. 이런 책을 길림에서 27년에 읽어치웠다는 주장은 무식한 김일성이나 그의 아첨꾼인 어용작가들 이외는 아무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ㅁ)이 밖에 이번 회고록에서 김일성이 읽었다고 새로 선보인 책이 있다.「임금노동과 자본」「철의 흐름」「축복」「아큐정전」「압록강가에서」「소년방랑자」 등등이 그것인데 일일이 고증하지 않더라도 읽지 못하거나 읽지 않았던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재경분자이었을뿐 김일성은 이상과 같이 당시 중국에서는 번역되지도 않았던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을 러시아어나 일본어가 아닌 「중국어 번역본으로 읽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그것도 그가 길림에 있지도 않았던 27년 상반기,「길림에서 혁명활동을 벌이는 첫 사업」으로 이러한 독서를 했다는 것이다. 그가 이러한 조작을 일삼는 것은 그 이유가 뻔하다.그는 당시 좌경화되어 있었지만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그런데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던 그는 지금 자기가 타고난 공산주의자처럼 행세하고 있다.이 때문에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헌을 읽었다고 내세움으로써 당시의 자기를 「공산주의자」로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 ①「세기와 더불어1」207면 ②평전 131면 ③평전 129면 ④평전 217면 ⑤평전 1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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