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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권석주(GS건설 상무)은경(계원예술대 교수)석찬(사업)씨 부친상 조용구(영동대 교수)씨 장인상 권석기(홍익대 교수)오식(현대건설 전무)씨 형님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2)3410-6920 ●노광열(넥스티어 과장)복영(KB국민은행 종로중앙지점 부지점장)선영(한국고전번역원 선임행정원)은영(NC백화점 씨씨스카이 매니저)씨 부친상 전상대(자영업)조영훈(이데일리 금융부장 겸 부국장)김재훈(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설윤환(하얏트호텔 팀리더)씨 장인상 채경희(한국암웨이 차장)씨 시부상 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2227-7550 ●배수향(경북도의원)씨 시모상 7일 김천제일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30분 (054)420-9491 ●최준호(전남도립옥과미술관장)씨 부친상 6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8시 (062)250-4455 ●김성수(보경건설 대표)문수(한일ENG 대표)치수(KB투자증권 자금팀장)씨 모친상 정광운(한국전력공사)씨 장모상 7일 여의도 성모병원, 발인 9일 오전 5시 (02)3779-1963 ●권만영(자영업)영철(하늘사랑교회 목사)씨 모친상 김영식(부산교통공사 기획본부장)씨 장모상 7일 부산 해운대백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51)711-1452 ●이상민(워너뮤직코리아 클래식마케팅팀 부장)씨 모친상 7일 서울대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10분 (02)2072-2022 ●황창하(구룡포 황외과 원장)용하(대웅제약)씨 부친상 최재경(대구지검장)씨 장인상 7일 경북대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53)200-6141 ●이계홍(신일토목 대표)씨 별세 길범(대구지법 판사)씨 부친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7일 오전 (02)3410-6902 ●고영수(삼성카드 회원지역총괄 상무)영진(김치나라 대표)씨 부친상 7일 충주 건국대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43)840-8444 ●백태현(부산일보 논설위원)씨 부친상 유재영(SK에너지 석유1공장장)씨 장인상 7일 부산 좋은강안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 (051)610-9672
  • “우리말 시적 감각, 중국어로 표현”

    “우리말 시적 감각, 중국어로 표현”

    “주변에서 도와준 분들이 많아 러시아어 시집에 이어 중국어 시집도 펴내게 됐습니다. 외국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우리말 시가 러시아어와 중국어로는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러시아 대사, 주중국 대사를 거친 40년 경력의 베테랑 전직 외교관이 틈틈이 써온 시를 모아 중국어 번역을 곁들인 시집 ‘인연’(인민출판사)을 펴냈다. 주인공은 지난 7월 외교부를 떠나 삼성경제연구소 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이규형(62) 전 대사. 이 전 대사가 시집을 펴낸 것은 2005년 외교통상부 대변인 시절에 쓴 우리말 첫 시집 ‘때로는 마음 가득한’과, 2009년 한국어·러시아어 시집 ‘또 다시 떠나면서’에 이어 세 번째다. 이 전 대사는 4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중국어·러시아어로 시를 쓸 수준은 못 되는데 인복이 많아 주러시아 대사관과 주중국 대사관에서 만난 통·번역 전문가들과 학자, 시인 등의 도움을 받아 시집을 펴내게 됐다”며 “주변에서 좋은 시적 표현을 러시아어와 중국어로 배울 수 있어 좋다는 평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어·중국어로 낸 시집 ‘인연’은 주중 대사 시절 친분을 쌓은 리자오싱(李肇星) 전 중국 외교부장의 추천서가 담겨 눈길을 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6·25 북한군 남침, 9·28 서울 수복 1보 방송한 전설의 아나운서 위진록

    [김문이 만난사람] 6·25 북한군 남침, 9·28 서울 수복 1보 방송한 전설의 아나운서 위진록

    [상황 1] 1950년 6월 25일 오전 7시. “임시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시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새벽 북한 공산군은 38선 전역에 걸쳐서 전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우리 국군이 건재합니다. 거듭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황 2] 1950년 9월 28일 일몰 직전. “여기는 서울중앙방송국입니다. 여기는 서울중앙방송국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그리고 서울시민 여러분, 오늘 새벽 유엔군과 대한민국 국군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완전히 탈환하고 패주하는 공산군을 추격하며 북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침과 서울 수복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 제1성은 이렇게 다급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시 KBS 아나운서 위진록(85)씨. 북한군이 점령한 서울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또한 1950년 11월 도쿄에 자리한 유엔군총사령부(VUNC) 아나운서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격동의 현대사의 물줄기와 함께 파란만장한 삶의 길을 걸었다. 그의 이력을 얼핏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한다. 월남한 뒤 경성역(서울역)에서 역부로 근무하다가 8·15 해방을 맞이하고 만 19세때 서울중앙방송국(KBS)의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한 이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초창기의 현장 일선에서 활약했다. 김구 선생 장례식 실황중계, 이승만 대통령의 수행기자 등 현대사의 한복판을 지켰던 것이다. 현재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는 위씨가 잠시 귀국했다. 자서전 ‘고향이 어디십니까’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난 15일 그를 만났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고 인사를 건네자 “규칙적인 생활과 생각, 그리고 책을 읽고 독후감을 꾸준히 기록한다. 아마 늙지 않는 비결인 것 같다”면서 웃는다. 주로 어떤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번역물도 읽고 영어와 일어로 된 책도 읽는다”고 대답한다. 그는 평소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최근 펴낸 자서전도 그동안 열심히 메모해둔 결과물이다. 그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 미국 이민길에 올라 LA 해변에서 햄버거 장사를 하면서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지금은 현지에서 수필가, 방송인,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수필집과 음악 에세이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을까. 한창 전쟁중인 1950년 11월 일본 도쿄와 오키나와에 있는 유엔군총사령부 방송 아나운서로 가게 된 배경부터 설명한다. “연희송신소(당시 고양군 연희면)에서 기거하면서 방송을 할 때였습니다. 하루는 도쿄의 맥아더사령부 심리작전국 방송담당자 매튜 중령을 만났습니다. 그는 제 방송을 자주 듣는 편이며 2차대전때 종군 아나운서로 이름을 날린 CBS의 월터 크롱가이트와 목소리가 아주 닮았다고 했습니다. 이어 ‘한국전쟁도 이제 끝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면서 한달정도 도쿄에 가서 방송일을 할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하더군요.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좋다고 대답했지요.” 맥아더 사령부의 심리작전국은 6·25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도쿄에 유엔군총사령부 방송국을 창설하고 NHK 방송망을 통해 이미 방송을 시작하고 있던 터였다. 남한과 북한으로 보내는 별도의 송신소가 작동이 됐음은 물론이다. 방송은 NHK 본사의 여러 스튜디오를 필요에 따라 사용했다. 방송은 전쟁에 관한 뉴스가 최우선이었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소식, 스탈린 독재하의 소련의 내막, 김일성이 소련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해설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방송원고는 모두 미국인이 작성한 것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서울을 떠난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아군 수중에 있던 평양에 공산군이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평양시민들이 대동강 철교를 더듬으며 필사적으로 피난하는 모습을 보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흥남 지역에서 미 해병1사단의 해상탈출 등을 보도하면서 한달 예정이었던 체류기간이 무기한 연기 됐지요. 그렇게 도쿄에서 8년을 보낸 뒤 오키나와 사령부로 옮겨 14년을 더 근무하고 자식들 교육을 위해 식구들과 미국 이민을 가게 됐습니다.” 그는 오키나와 시절을 회고하면서 베트남 전쟁과 연관된 일화를 떠올린다. 1968년 가을 한달동안 종군기자로 베트남에 파견된다. 이때 비둘기 부대가 주둔한 나트랑 외에 맹호와 청룡부대 주둔지 등을 두루 방문했고 사이공에서는 주월한국군 채명신 사령관과 수차례 만나기도 했다. 또 베트남 전쟁이 확전되면서 한국군의 파병은 계속됐다. 자연스럽게 오키나와는 베트남에 주둔해 있는 한국군을 위해 위문차 오가는 연예인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 됐다. 이때 길옥윤과 패티 김 등 여러 연예인들과 친분을 맺기도 했다. 얘기를 다시 ‘6·25 남침 제1성’으로 돌렸다. 방송국장의 지시로 38선상(경의선의 한 중간역)에 있는 여현역에 도착한 것은 1950년 6월 10일이었다. “민심을 살피기 위해 38선이 보이는 지점에 중계차를 세우고 38선을 오가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일을 했지요. 특이 동향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6월 24일 밤 저는 아나운서실 숙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후배 아나운서와 11시에 야간방송을 끝내고 다음날 아침 방송순서를 점검하고 숙직실로 쓰고 있는 제2 스튜디오로 가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퉁탕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것은 새벽 5시 10분이었습니다. 방송국 수위와 육군대위가 스튜디오에 급히 들어왔던 것이지요.” 육군대위는 종이 한장을 내밀면서 즉시 방송하라고 명령하듯이 말했다. 종이에는 ‘오늘 새벽 북한 공산군이 38선 전역에 걸쳐 공격을 시작했다. 국군은 모두 원대에 복귀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방송시작이 6시 30분이고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상부의 허락 없이 방송할 수 없다고 했다. 잠시후 민재호 방송국장이 국방부 정훈국장에게 확인한 뒤 원고를 급히 작성하고 제1보를 내보냈다고 위씨는 회고했다. “서울수복이 됐는데도 그해 6월 말에 이미 행방불명되거나 처형됐다고 알려진 선배 아나운서들의 소식은 여전히 알 수 없었습니다. 평양에서 온 방송요원을 상대로 열성적으로 도운 아나운서들은 그들과 함께 도주하듯이 북쪽으로 갔고 자백서를 쓰고 포섭당해 그들 밑에서 방송한 아나운서들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으니까요.” 필사적으로 숨어 다니며 살아남은 그는 동료와 선배들이 하던 일을 도맡아 하는 등 한동안 연희송신소에서 기거하면서 열심히 방송을 하게 된다. 이국땅에서 60여년을 살고 있지만 그 기억의 편린까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2남 9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군청 토지측량기사로 일하던 아버지는 42세때 늑막염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들과 평안북도 선천으로 이사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난 때문에 직업전선에 뛰어들 생각이었지만 돈이 없어도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말에 평양사범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좋은 목소리와 뛰어난 노래 실력을 인정받아 합창과 독창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학교 브라스 밴드에서 트럼본 연주를 했다. 아울러 문학서적에 심취했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들자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등 학교생활에서 일탈, 모란봉 주위를 쏘다녔다. 결국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발각돼 3학년때 퇴학당했다. 이후 형이 있는 남신의주역으로 가서 역부로 생활한다. 톨스토이와 헤르만 헤세 등의 문학서적은 꾸준히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얼마 후 어머니와 누이가 살고 있는 서울에 온 그는 낙원동 근처의 한 회사에서 사환으로 일하다 경성역의 역부로 취직한다. 이어 해방이 되면서 누이가 종로2가 근처에 술집을 열자 외상값 받으러 다니는 일을 하게 된다. 1947년 서울중앙방송국에서 ‘방송극 연구생’ 모집공고를 보고 응시해 합격한다. 그후 2주일 만에 방송드라마에 출연한다. 당시 동기생으로는 장민호, 민구, 송영란, 윤길숙 등이었다. 같은 해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하면서 아나운서의 길을 걸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20세기 격동기를 한 마리 늑대처럼 멀리에서, 가까이에서 조국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아직도 내 마음의 눈물 줄기에는 희망의 꽃망울이 살아 있다”면서 ‘백년동안의 고독’을 쓴 남미의 작가 마르케스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또한 유대교 랍비이자 시인인 사무엘 울만의 말처럼 “청춘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아니냐”라고 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위진록은 1928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개성, 평북 선천 등을 전전하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40년 평양사범학교에 입학하고 1942년 3학년때 중퇴했다. 남신의주역 역부, 서울의 한인회사, 일본광고회사 대리점 등의 사환을 거쳐 서울역 역부로 일하면서 1945년 해방을 맞았다. 1947년 KBS 제1회 ‘방송극 연구생’ 모집에 합격했다. 장민호, 민구, 조남사 등과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했다. 같은 해 9월 KBS 아나운서 모집에 합격해 만 19세로 최연소 아나운서 기록을 세운다. 1948년 KBS 제1회 방송극 대본 공모에 입선했으며 김구 선생의 장례식 중계 등 격동기의 방송 일선에서 활약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남침, 9월 28일 서울수복의 제1보를 방송한 아나운서로 기록에 남아 있다. 그해 11월 일본 도쿄의 유엔군총사령부방송(VUNC)에 파견돼 22년동안 도쿄와 오키나와에서 근무하다 미국으로 이민했다. LA에서 햄버거 장사 10년, 서점 등을 경영하면서 동네 신문을 발행했다. 재미 방송인협회 고문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수필집 ‘하이! 미스터 위’(1979년), ‘잃어버린 노래’(1993년), ‘낙타의 속눈썹’(1997년), ‘위진록의 커먼센스’(1999년), ‘클래식, 내마음의 발전소’(2011년) 등이 있다.
  • 동물의 왕국? 편견의 왕국! 있는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보다

    동물의 왕국? 편견의 왕국! 있는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보다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존 리더 지음/남경태 옮김/김광수 감수/휴머니스트/992쪽/5만 3000원 아프리카는 역동적이다. 대륙에 포함된 국가는 54개인데, 언어는 약 2030개다. 지구상에 통용되는 언어의 3분의 1쯤 되는 숫자다. 유전적 다양성도 풍부하다. 평균 신장이 가장 큰 마사이족과 가장 작은 피그미족이 공존하는 게 좋은 사례다. 게다가 인간을 포함해 얼마나 많은 종류의 동식물들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진화를 거듭해왔는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은 대체로 단편적이다. 아프리카 하면 황폐한 사막, 약육강식으로 점철된 ‘동물의 왕국’, 저개발과 야만이 판치는 땅이란 이미지가 퍼뜩 떠오른다. 그나마 알고 있는 지식마저 편향적이다. 우리가 여태 접해 온 아프리카의 역사가 다른 대륙, 예컨대 유럽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됐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를 그럴싸하게 표현한 듯한 ‘검은 대륙’ 별칭 또한 따지고 보면 인간의 어둠이 존재하는 땅이라는 유럽 쪽의 낙인에 다름아니다. 진보적 사관의 아프리카 출신 학자들이 ‘아프리카의 눈’으로 역사를 보긴 하지만 이 또한 이데올로기의 그늘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에 견줘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는 한결 균형 잡힌 시각에서 쓰여졌다. 작가이자 사진기자인 저자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오랜 기간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살았다. 런던 유니버시티칼리지 인류학과 명예 연구교수로 재직할 정도로 이론적 기반도 탄탄하다. 무엇보다 기자 경력을 가진 만큼 아프리카를 대단히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번역자는 책을 ‘아프리카 평전’이라 했다. 대륙 자체에 인격을 부여하고, 출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연대기 형식으로 정리했다는 뜻이다. 책은 아프리카의 자연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대륙의 탄생과정과 지리, 기후 등의 외양을 기술하는 데 책 앞부분의 4분의 1 정도를 할애하고 있다.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사람의 이야기는 그 뒤에야 비로소 등장한다. 이는 저자가 일반적인 역사 서술 방식이 아닌, 폭넓은 문명사의 관점에서 아프리카를 기술하려는 의도를 가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책이 가진 미덕 가운데 하나는 학제 간 벽을 허물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정해진 방향이나 해석의 틀을 거부하려면 폭넓은 지적 토양이 필요할 터. 책은 지질학, 지리학, 고고학, 고생물학, 언어학, 인류학, 농업경제학, 기생충학 등 방대한 학문 영역을 종횡무진 오간다. 저자는 이처럼 각 학제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아프리카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을 명료하게 짚어낸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교사부터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

    “교사부터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

    “학생들이 행복하려면 우선 교사부터 행복해야 한다.” 17일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서울국제교육포럼에서 소냐 류보머스키(46)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행복해지기 위한 긍정적 행동’이라는 주제의 기조 강연을 통해 ‘행복’이라는 단어에 특히 힘을 줬다. 류보머스키 교수는 “감정은 전염되며, 특히 리더의 감정상태는 전염성이 강하다”면서 “교사는 학급을 이끌어 가는 리더다. 서울시가 추구하는 행복교육이 성공하려면 이런 점에 신경을 쓰라”고 조언했다. 그는 18년째 행복에 관해 연구하고 있는 긍정심리학 분야 신진학자다. 특히 27만 5000명을 대상으로 한 225건의 연구를 통해 제시한 ‘행복의 과학’으로 유명하다. 교육자가 아닌 심리학자가 ‘행복교육의 국제적 조망’이라는 주제의 서울국제교육포럼 기조 강연을 맡은 이유다. 국내에도 2007년 번역된 그의 저서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에는 목표에 대한 헌신, 친절 실천, 감사 표현, 스트레스 관리 등 행복과 관련한 12가지 방법이 소개됐다. 소냐 교수는 기조강연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학생들의 행복에 대해 조언했다. 그는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특히 경쟁적이다. 한국 학생은 남하고 나를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노력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네 아이의 엄마이며, 얼마 전 딸을 출산한 그에게 “아이들이 우울해하면 엄마로서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 거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은 50%가 유전, 10%가 환경, 그리고 나머지 40%는 의도적인 활동”이라며 “좋은 습관을 키워주는 일이 엄마로선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민법 쉬웠다… 사무관리론 향후 현장문제 늘 듯

    민법 쉬웠다… 사무관리론 향후 현장문제 늘 듯

    52년 만에 일반인에게도 응시 기회가 열린 2013년도 제1회 행정사 제2차 국가자격시험이 지난 12일 시행됐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제2차 시험 원서접수 기간인 지난 8월 26일부터 지난달 4일까지 수험생 총 2229명이 응시했다. 공단은 올해 일반 행정사 267명, 외국어번역 행정사 30명, 기술행정사 3명 등 최소 300명의 행정사를 뽑는다. 지난 6월 29일에 있었던 제1차 시험을 분석한 학원가의 평가는 “대체로 쉬웠다”는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제2차 시험 과목별 난이도는 어땠을까. 에듀윌 소속 강사들로부터 제2차 시험 총평을 들어 봤다. 민법 과목을 담당한 심정욱 강사는 “출제된 문제 모두 수험생들이 비교적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을 다뤘다”고 평했다. 계약 해제 효과, 도급에서 완성물의 소유권 귀속,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묵시적 갱신, 위임계약 시 수임인의 의무 등이 출제됐는데 수험생들이 답안을 작성하기에 별 무리가 없었다는 평가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민법은 법무사 시험을 비롯해 입법고등고시, 법원행정고등고시 등 다른 시험에서도 다뤄진다. 계약 부분과 관련해 여러 시험에 걸쳐 주로 등장하는 개념은 계약 체결상의 과실 책임, 동시 이행의 항변권, 제3자를 위한 계약, 매도인의 담보책임, 임대차 효력 등이다. 심 강사는 “다른 시험의 민법 과목 문제를 풀면서 미리 답안 작성 연습을 하면 행정사 시험에서도 좋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심 강사는 “답안을 작성할 때 먼저 논점을 밝히고 학설 대립이 있는 부분은 각 학설의 쟁점을 정리한다. 그리고 문제에 나온 개념과 관련된 다른 개념을 덧붙인다면 짜임새 있는 답안을 구성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송현 강사는 행정절차론 과목에서 행정예고와 행정상 입법예고의 관련성 및 차이점을 물은 3번 문제가 수험생들에게 다소 어려웠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다른 문제들은 평이했다는 것이 송 강사의 분석이다. 그는 “3번 문제는 행정예고 개념과 대상이 되는 것들, 그리고 예고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기술하고, 특히 행정예고를 행정상 입법예고로 갈음할 수 있는 경우를 명시해야 한다”면서 “행정상 입법예고가 행정예고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것, 행정예고 시 의견 제출에서 행정상 입법예고 규정을 준용한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입법예고 기간과 행정예고 기간이 다르다는 점, 더불어 의견 제출자에게 의견처리 결과를 통지할 의무가 행정예고에는 없고 행정상 입법예고에는 있다는 점도 명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 강사 역시 다른 시험 문제를 통한 주관식 연습을 강조했다. 경찰 경감 승진시험이 행정절차법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 행정조사기본법 등을 학습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사무관리론 과목은 행정업무의 효율적 운영에 관한 규정과 민원사무 처리에 관한 법률 관련 내용을 다룬다. 이근명 강사는 “네 문제 모두 행정기관, 행정사, 민원인 사이에서 실제 이뤄지는 실무를 활용했다”면서 “(약술형 문제 3번에서 요구한) 통합전자민원창구인 ‘민원 24’(정부민원포털)의 개념 및 부가서비스 내용은 규정에 명문화한 사항이 아닌 현장 세부적인 사항에 속한다”고 말했다. 이 강사에 따르면 1번 문제 답안에는 기안 문의 검토 및 결재의 의의를 각각 서술해야 했고, 2번 문제 답안에는 관인의 종류와 폐기 사유 및 절차 내용을 기입해야 했다. 4번 문제의 경우에는 답안지에 복합민원 처리를 위한 방문처리제의 절차 5단계를 순서대로 기술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올해 사무관리론 과목 문제를 고려할 때 이 강사는 “앞으로 현장 업무와 관련성이 높은 소재를 중심으로 문제가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고 향후 시험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행정사실무법 과목은 행정심판 사례와 비송사건절차법을 대상으로 출제된다. 이번 시험에서는 행정심판 영역인 행정처분에 관한 취소심판, 행정심판위원회 위원의 제척·기피·회피 문제와 비송사건절차법 영역인 비송사건 심리방법, 재판상 대위 관련 사건이 문제로 제시됐다. 심 강사는 “민법 과목과 마찬가지로 행정사실무법도 난도가 높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시험에 자주 등장하는 행정심판 사례로 운전, 건축, 보훈, 위생, 환경 관련 심판 사례를 꼽았다. 이어 비송사건절차법에서는 올해 제2차 시험 문제로 출제된 개념 외에도 비송사건 심리의 특징, 재판 방식 및 재판 불복 제도가 필수 체크 포인트로 선정됐다. 심 강사는 “평소 기본서를 충분히 정독해 기본 개념을 숙지한 후 기본서에 언급된 목차를 간추려 주관식 답안지에 스스로 작성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커버스토리-밥그릇이 부른 세대갈등] 내신 1%도 기간제 교사… 취업문 거의 닫혀… 결혼도 생존게임 내몰려

    [커버스토리-밥그릇이 부른 세대갈등] 내신 1%도 기간제 교사… 취업문 거의 닫혀… 결혼도 생존게임 내몰려

    “옛날이 좋았지. 내가 입사했을 땐 말이야, ‘양폭’(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만 마셨어. 그래도 우리 때에는 낭만이란 게 있었는데, 요즘 친구들은 참….”회사원 우모(27·여)씨는 관리자급 회사 상사들이 그들의 화려했던 ‘옛이야기’를 하면 빈정이 상한다고 했다. 우씨는 11일 “그 분들 나름대로의 고충이란 게 있겠지만 솔직히 비슷한 ‘스펙’으로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을 쟁취할 수 있었던 세대”라면서 “지금은 피 터지는 경쟁에 살아 남더라도 ‘나만의 공간’(집) 조차 마련하기 힘든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2030 세대’는 ‘5060 세대’가 만들어놓은 황금기에서 스스로를 ‘밀려난 세대’라고 말한다. 2030 세대가 바로 설 자리가 없다는 자괴감에서 나온 얘기다. 희망을 잃은 ‘3포 세대’(취업·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의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5년차 ‘임고생’(교원임용 고사 준비생) 차모(26·여)씨는 고등학교 때까지 이른바 ‘전교’에서 놀았다. 반 1등은 고정이고, 전교에서 3등 안에 들었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진학도 충분했지만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기에 물가와 학비가 비싼 서울보다 고향 근처에 있는 지방 국립대를 택했다. 그는 내신점수 상위 1%로 수시에 합격한 ‘지방 인재’였다. 차씨는 “입학 때부터 임용 시험이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나만 착실히 공부하면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씨가 졸업하던 해 임용 고사의 전공과목 지역모집 인원은 10명으로 뚝 떨어졌다. 졸업 동기만 33명이었고, 이미 재수·삼수 선배까지 있어 경쟁률이 30대 1을 웃돌았다. 차씨는 “처음 3년은 임고에만 올인했다”면서 “이제는 졸업한 지도 오래돼 다른 걸 해볼 엄두조차 못 낸다”며 말끝을 흐렸다. 차씨는 현재 지역 사립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다. 그는 “공부만 하다가 사람도 만나고 돈도 버니까 즐겁다”면서도 “운이 좋으면 기간을 연장해 계속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선생님처럼 무기계약직 신세가 될까봐 답답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교직원 구성원을 보면 나이 많은 선생님들이 정규직, 젊은 선생님은 비정규직으로 양분된 꼴”이라면서 “처음에는 나이가 많고 때때로 무능력한 정규직 선생님들을 보면 우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화가 났었다”고 토로했다. 회사원 이모(31)씨는 집 문제 때문에 결혼을 미뤘다. “서울 잠실에서 신혼집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예비 장모님의 한마디가 컸다. 이씨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직장에서 받는 연봉으로는 한 푼도 안 쓰고 십년을 모아도 서울에 그럴듯한 전셋집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게 현실”이라면서 “집 문제 때문에 여자친구와 헤어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이씨의 연봉은 3500만원. 대기업 3년차 사원인 이씨는 월급의 절반 이상을 모으고 있지만 “(부모님 집에서) 독립은커녕 돈도 없는데 집을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고 털어놨다. 결혼을 앞둔 또래 친구들도 “작은 결혼식이 유행이라지만 부모 도움 없이 서울에서 살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이씨는 대학 입시와 취업에 이어 결혼도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씨는 첫 수능을 망쳤고, 재수 끝에 서울의 4년제 대학에 턱걸이로 입학했다. 입학 후에도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학점과 스펙 쌓기에 열정을 다했지만 이씨는 졸업 후 2년간 취업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는 “우리 세대는 전셋값 상승으로 경제적 자립은 물론 신혼집 장만도 쉽지 않다”면서 “1980년대 초만해도 방 한 칸 월세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는 부모님 세대가 많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누가 시집을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이모(26·여)씨는 중소회사의 계약직 사원이다. 연봉은 대략 2400만원 . 이씨는 야근을 밥 먹듯이 하지만 각종 세금과 식대, 차비를 빼면 저축은커녕 생활비도 빠듯하다고 했다. 때문에 이씨의 부모님은 지금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권유한다. 이씨는 가끔 멀쩡한 대학에 스펙도 나쁘지 않은 자신이 왜 ‘낙오자’ 취급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이씨의 토익점수는 920점. 그는 계약직이지만 번역 업무부터 회사의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씨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온 삶인데도 윗사람들로부터 ‘요즘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면서 “그럴 때마다 ‘철밥통을 꿰차고 앉아 왜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싶다”고 꼬집었다. 이씨는 요즘도 토익 시험을 보고 있다. 그는 “그 분들은 왜 우리가 자격증에, 토익 점수에 목을 매는지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윤모(26)씨는 지난해까지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다가 올해 로스쿨로 진로를 틀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사실상 취직문이 거의 닫힌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서다. 현재 집에서 독립해 자취를 하는 윤씨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며 생활하고 있다. 윤씨는 “같은 도시에 부모님이 살고 계시지만 서로 스트레스를 줄까봐 잘 가지 않는다”면서 “하루 빨리 좋은 소식을 들고 달려가고 싶다”고 밝혔다. 윤씨는 “부모님이 ‘노력하면 된다’고 말할 때가 제일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윤씨도 1학년 때부터 학점과 취업에 필요한 각종 스펙을 착실히 준비하고 과대표 등 대학 생활도 열심히 했지만 취업이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윤씨는 이런 상황이 세대 갈등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2013 노벨문학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는 누구?…단편소설의 대가

    2013 노벨문학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는 누구?…단편소설의 대가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캐나다 여성작가 앨리스 먼로(82)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앨리스 먼로는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시골 마을 출신 단편소설의 대가로 꼽힌다. 단편소설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0대 때부터 단편소설을 써오던 앨리스 먼로는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1950년 첫 단편 ‘그림자의 세계’를 출간했다. 1968년 그의 첫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캐나다 ‘총독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이후에도 ‘당신은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1978년)’, ‘사랑의 진행(1986년)’ 등으로 캐나다에서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으로 여겨지는 ‘총독문학상’을 총 세 차례나 수상했다. 그의 장편소설 ‘소녀와 여성의 삶’은 미국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로 각색되는 등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앨리스 먼로는 ‘내가 너에게 말하려 했던 것’, ‘공공연한 비밀’, ‘떠남’ 등 12권의 단편집을 발표했고 전 세계 13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했다. 또 ‘좋은 여성의 삶(1998년)’, ‘떠남(2004년)’ 등으로 길러상을 두 차례 수상했고, 미국에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오헨리상을 받았다. 2009년에는 맨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당시 맨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작가들이 평생에 걸쳐 이룩하는 작품의 깊이와 지혜, 정밀성을 모든 작품마다 성취해 냈다.”고 선정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앨리스 먼로 연표.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 윙햄 출생 ▲1949년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 영문과 입학 ▲1950년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 재학 중 첫 소설 ‘그림자의 차원(The Dimensions of a Shadow)’ 발표 ▲1951년 제임스 먼로와 결혼 ▲1953년 딸 쉴라 출생 ▲1955년 딸 캐서린 출생(사망) ▲1957년 딸 제니 출생 ▲1963년 브리티시 콜럼비아 빅토리아로 이사, 서점 ‘먼로의 책들(Munro’s Books)’ 개점 ▲1966년 딸 안드레아 출생 ▲1968년 첫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으로 캐나다 총독 문학상 수상 ▲1971년 ‘소녀와 여성의 삶(Lives of Girls and Women)’으로 캐나다 서적상 연합회 상 수상 ▲1972년 제임스 먼로와 이혼 ▲1976년 제럴드 프레믈린과 재혼 ▲1978년 ‘당신은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Who Do You Think You Are?)’로 캐나다 총독 문학상 두번째 수상 ▲1979년 1982년까지 호주, 중국, 스칸디나비아 여행 ▲1980년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퀸스랜드 대학에서 레지던스 작가 생활 ▲1986년 ‘사랑의 진행(The Progress of Love)’으로 캐나다 총독 문학상 세번째 수상 ▲1990년 ‘내 유년기의 친구(Friend of My Youth)’로 트릴리엄 북 어워드 수상 ▲1995년 ‘공개 비밀들(Open Secrets)’로 WH 스미스 문학상 수상 ▲1998년 ‘좋은 여성의 삶(The Love of a Good Woman)’으로 길러상·전미 서평자그룹상 수상 ▲2004년 ‘떠남(Runaway)’으로 길러상 수상 ▲2006년 오헨리상 수상 ▲2009년 맨 부커 국제상 수상 ▲2013년 제럴드 프레믈린과 사별. 캐나다 서적상 연합회 평생 공로상 수상 ▲2013년 노벨 문학상 수상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종합] 노벨문학상에 캐나다 女작가 앨리스 먼로

    [종합] 노벨문학상에 캐나다 女작가 앨리스 먼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캐나다 여성작가인 앨리스 먼로(82)가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앨리스 먼로를 수상자로 하는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캐나다 국적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여성 작가의 수상은 13번째다. 앨리스 먼로는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 윙엄에서 태어나 1968년 첫 단편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으로 데뷔했다. 앨리스 먼로는 소설 속 섬세한 스토리텔링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인물의 심리상태를 명료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낸다는 평가도 받아왔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에서 언론학과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1951년 결혼을 하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대학 재학시절인 1950년 첫 소설 ‘그림자의 차원’을 발표하기도 했다. 앨리스 먼로는 이후 남편과 함께 캐나다 빅토리아에 정착해 서점 ‘먼로의 책들’을 열었다. 1968년 그의 첫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캐나다 ‘총독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이후에도 ‘당신은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1978년)’, ‘사랑의 진행(1986년)’ 등으로 캐나다에서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으로 여겨지는 ‘총독문학상’을 총 세 차례나 수상했다. 그의 장편소설 ‘소녀와 여성의 삶’은 미국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로 각색되는 등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앨리스 먼로는 ‘내가 너에게 말하려 했던 것’, ‘공공연한 비밀’, ‘떠남’ 등 12권의 단편집을 발표했고 전 세계 13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했다. 또 ‘좋은 여성의 삶(1998년)’, ‘떠남(2004년)’ 등으로 길러상을 두 차례 수상했고, 미국에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오헨리상을 받았다. 2009년에는 맨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당시 맨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작가들이 평생에 걸쳐 이룩하는 작품의 깊이와 지혜, 정밀성을 모든 작품마다 성취해 냈다.”고 선정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앨리스 먼로 연표.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 윙햄 출생 ▲1949년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 영문과 입학 ▲1950년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 재학 중 첫 소설 ‘그림자의 차원(The Dimensions of a Shadow)’ 발표 ▲1951년 제임스 먼로와 결혼 ▲1953년 딸 쉴라 출생 ▲1955년 딸 캐서린 출생(사망) ▲1957년 딸 제니 출생 ▲1963년 브리티시 콜럼비아 빅토리아로 이사, 서점 ‘먼로의 책들(Munro’s Books)’ 개점 ▲1966년 딸 안드레아 출생 ▲1968년 첫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으로 캐나다 총독 문학상 수상 ▲1971년 ‘소녀와 여성의 삶(Lives of Girls and Women)’으로 캐나다 서적상 연합회 상 수상 ▲1972년 제임스 먼로와 이혼 ▲1976년 제럴드 프레믈린과 재혼 ▲1978년 ‘당신은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Who Do You Think You Are?)’로 캐나다 총독 문학상 두번째 수상 ▲1979년 1982년까지 호주, 중국, 스칸디나비아 여행 ▲1980년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퀸스랜드 대학에서 레지던스 작가 생활 ▲1986년 ‘사랑의 진행(The Progress of Love)’으로 캐나다 총독 문학상 세번째 수상 ▲1990년 ‘내 유년기의 친구(Friend of My Youth)’로 트릴리엄 북 어워드 수상 ▲1995년 ‘공개 비밀들(Open Secrets)’로 WH 스미스 문학상 수상 ▲1998년 ‘좋은 여성의 삶(The Love of a Good Woman)’으로 길러상·전미 서평자그룹상 수상 ▲2004년 ‘떠남(Runaway)’으로 길러상 수상 ▲2006년 오헨리상 수상 ▲2009년 맨 부커 국제상 수상 ▲2013년 제럴드 프레믈린과 사별. 캐나다 서적상 연합회 평생 공로상 수상 ▲2013년 노벨 문학상 수상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 영화] ‘블루 재스민’ 우디 앨런의 허영과 불안, 평단 사로잡다

    [새 영화] ‘블루 재스민’ 우디 앨런의 허영과 불안, 평단 사로잡다

    ‘블루 재스민’은 최근 몇 년간 우디 앨런 감독이 내놓은 작품 중 최고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2005년 ‘매치 포인트’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왕성하게 영화를 찍던 감독이 ‘왓에버 웍스’ 이후 4년 만에 미국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다. 로튼토마토 등의 평점 사이트에서는 90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기록했고, 재스민 역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은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영화는 미국 뉴욕발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비추며 시작한다. 일등석에서는 칼 라거펠트의 트위드재킷을 걸치고 에르메스의 버킨백을 손에 든 재스민이 신경증적으로 수다를 쏟아내고 있다. 뉴욕의 최상류층이던 재스민은 샌프란시스코의 서민층으로 추락하는 중이다. 완벽한 남자인 줄 알았던 남편 할(알렉 볼드윈)은 금융 사기를 주도한 죄로 철창 신세가 됐다. 샤토 마고의 최고급 와인을 마시며 어떤 전용기가 좋은지를 화제로 올리던 시절은 허망한 과거로 변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동생 진저(샐리 호킨스)가 살고 있다.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진저는 정비공인 남자 친구 칠리(보비 카나베일)와 소박한 일상을 보낸다. 재스민은 동생 집에 얹혀살게 되고도 좋았던 과거를 잊지 못한다. “너는 늘 그런 수준밖에 안 돼”라며 동생을 무시하고, 천한 일은 할 수 없다며 일자리도 구하지 않는다. 재스민은 달콤한 과거의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깨어나 비루한 현실을 마주할 때는 외면하거나 신경증에 빠진다. 영화가 샌프란시스코와 번갈아 비추는 뉴욕에서의 풍족한 시절은 그 자체로 하나의 꿈 같아 보인다. 재스민은 진저에게도 여기 아닌 어딘가에 더 나은 삶이 있다고 은근히 부추긴다. 문제는 감미로운 유혹에 그치는 줄만 알았던 속삭임이 이들 앞에 당장이라도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은 선택지로 제시될 때다. 파티에 참석한 두 사람은 우연히 마음에 맞는 남자를 만난다. 진저는 음향 회사에 다니는 남자 알(루이스 C K)과, 재스민은 정치인을 꿈꾸는 부유한 외교관 드와이트(피터 사스가드)와 사랑에 빠진다. 꿈은 이제 눈앞에서 현실처럼 아른거린다. ‘반지의 제왕’ ‘바벨’ 등을 통해 국내 관객에게 얼굴을 알린 블란쳇은 감독의 페르소나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원제는 ‘우울한 재스민’ 정도로 번역될 테지만 재스민의 허영과 불안, 강박은 블란쳇의 푸른 눈을 통해서야 오롯이 응시된다. 영화의 결말에는 작은 반전이 있다. ‘블루 재스민’은 반전 이후 블란쳇의 마지막 표정으로 기억될 영화다. 98분.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극장마다 영어 제목…도통 무슨 소리인지

    극장마다 영어 제목…도통 무슨 소리인지

    영어가 극장을 점령했다. 외화 중 열에 아홉은 영어 제목을 사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의 한국어 잠식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제목의 영어 편중은 영화에서 유독 심각하다. 이달 극장에서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외화의 제목만 살펴봐도 이 같은 현상은 확연히 드러난다. ‘킬링 시즌’(Killing Season)과 ‘스트릿 오브 블러드’(Streets of Blood), ‘컨저링’(The Conjuring), ‘브랜디드’(Branded), ‘애프터 루시아’(After Lucia) 등이 모두 영어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달 개봉 외화 44편 중 한자 언어권인 일본 및 중국 영화 13편을 제외하면 순수 한국어 번역 제목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Medianeras) 등 5편에 그친다. 앞서 개봉한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송 포 유’(Song for You), ‘실버라이닝 플레이북’(Silver Linings Playbook), ‘애프터 어스’(After Earth), ‘테이크 쉘터’(Take Shelter) 등 예는 무수히 많다. 원제를 그대로 옮기는 것도 아니다. ‘마스터’(The Master)나 ‘킬링 소프틀리’(Killing Them Softly), ‘사이드 이펙트’(Side Effects)처럼 관사나 목적어, 복수형은 생략되기 일쑤다. ‘섹슈얼 어딕션: 꽃잎에 느껴지는 쾌락과 통증’(Pleasure or Pain)이나 ‘아메리칸 오지’(A Good Old Fashioned Orgy), ‘테이크 다운’(Welcome to the Punch)처럼 원제와는 다른 영어 제목을 억지로 붙인 경우도 있다. ‘월드 워 Z’(World War Z)는 ‘세계대전 Z’라는 원작 소설이 알려져 있는데도 굳이 영어 제목을 썼고, ‘레드: 더 레전드’(Red 2)는 원제에도 없는 영어를 덧붙였다. “너무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면 영어 원제를 유지하는 것이 영화계의 분위기”라는 한 영화 수입사 관계자의 말처럼 영어 제목은 이제 되돌리기 어려운 흐름이 됐다. 이유가 뭘까. 영화 수입사에서 꼽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작품이 인터넷을 통해 국내에 미리 알려졌거나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경우 원제가 가지고 있는 후광 효과를 고려할 수밖에 없고, 영화의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는 좋은 한국어 제목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영화 수입사 관계자는 “‘제목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쉽고 명확하게 관객에게 기억되느냐인데 이미 알려진 원제를 바꿀 경우 인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외화마다 적게는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한국어 제목 안을 내지만 원제의 느낌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우디 앨런 감독의 ‘Vicky Cristina Barcelona’가 막장 드라마 느낌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로 바뀌면서 두고두고 영화 팬들에게 비판받았듯 “괜한 한국어 제목은 안 만드느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가 “원제를 번역하면 영화의 느낌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적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일종의 절충안으로 최근 크게 늘어난 것이 콜론(:)을 사용해 부제를 다는 방식이다.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Now You See Me), ‘포가튼: 잊혀진 소녀’(Forgotten) 등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는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작품이 여러 편으로 이뤄진 경우 각 편을 구분하기 위해 쓰였지만 지금은 ‘레드: 더 레전드’에서처럼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추세다. 한 영화 수입사 관계자는 “원제를 살리면서 원제의 불명확한 의미도 부연하는 방식”이라면서 “10~40대까지 다양한 영화 관객을 타깃으로 삼기 위해 한국어와 영어를 병용하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어 제목이 ‘대세’로 굳어진 상황에서도 좋은 한국어 제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영화 팬들이 적지 않다. 이용철 영화평론가는 “원제를 한국어로 직역한 것도 반드시 좋은 제목이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 “‘파리는 안개에 젖어’(La Maison Sous Les Arbres·1971)처럼 한국어를 사용하면서도 영화의 의미와 느낌을 살리는 것이 좋은 제목”이라고 말했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세상의 끝까지 21일’(Seeking a Friend for the End of the World) 정도를 제외하면 올해 괜찮은 번역 제목은 찾기 어렵다”면서 “수입사에서는 영어 제목을 쓰는 것이 세련됐다고 여기는 것 같지만 번역 제목을 붙인다고 해서 관객들이 볼 영화를 안 보거나 안 볼 영화를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한손으로도 가벼운 ‘페이퍼백’ 왜 한국에서만 외면받을까요

    한손으로도 가벼운 ‘페이퍼백’ 왜 한국에서만 외면받을까요

    값싸고 가벼워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페이퍼백(문고본). 1935년 펭귄북스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세계 출판가를 정복(?)했다지만, 유독 한국에서만은 외면받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서점가에서 문고본은 전성기를 누렸다. 200종 이상의 책을 냈던 삼중당문고, 을유문고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후 단행본의 고급화, 컬러화가 이뤄지면서 문고본은 속수무책으로 자취를 감췄다. 현재 출간되고 있는 대표적인 문고본 시리즈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인문·사회분야에서는 살림출판사의 살림지식총서, 책세상의 책세상문고·우리시대, 시공사의 디스커버리총서 등이다. 장르소설 분야에서는 민음사의 펄프, 북스피어의 에스프레소 노벨라 등이 있다. 페이퍼백이 국내 출판시장에서는 자리잡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책의 가치를 ‘소비용’보다 ‘소장용’으로 더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첫 손에 꼽힌다. 겉치레를 중시하는 국민성에 출판시장을 주도하는 여성 독자층의 책 디자인 중시 성향 등이 맞물려 문고본보다는 양장본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출판사 은행나무의 이진희 주간은 “출판시장을 주도하는 20~30대 여성 독자들은 겉표지, 책 디자인 등 예쁜 책을 찾기 때문에 양장본을 더 선호한다. 때문에 출판사들도 표지 디자인에 주력하다보니 뛰어난 디자인이 많아 번역서의 경우 일본 출판사에서 우리 표지를 가져다 마케팅에 이용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책을 휴대용으로 지니며 간편하고 빠르게 소비하는 독서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양은경 민음사 외국문학팀 과장은 “우리는 인문·교양 분야 등의 독서 습관이 주로 교육과 연관해 형성되다 보니 이야기를 쉽게 소비하는 문화가 없다”고 파악했다. 시장 규모가 작아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도 페이퍼백의 번성을 막는 이유로 꼽힌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인구가 1억명 이상은 되어야 초판에서 기본 5000부는 팔릴 수 있는데 기껏해야 1000~2000부 팔리는 국내 시장에서는 이윤이 남지 않으니 출판사들도 꺼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휴대의 편리함, 작은 판형 등 페이퍼백과 비슷한 장점을 지닌 전자책이 페이퍼백을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내는 현상을 가속화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현재는 전체 출판시장에서 전자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1~2%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콘텐츠가 좋아지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독자들은 굳이 문고판 책을 사기보다 전자책을 선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출판계 안팎에서는 페이퍼백의 추락은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독자는 출판사들이 책을 내지 않으니 못 본다고 하고, 출판사들은 팔리지 않으니 안 낸다는 것이다. 지난 2010년부터 장르소설 문고본 시리즈를 내온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문고본은 최소한의 가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도록 하자는 취지이지만 책을 사는 사람은 사실 한정돼 있다. 독자 수요에 대해서는 사실상 회의적”이라고 했다. 결국 출판사로서는 양장본 책을 만들어 가격을 높이는 쪽이 가격저항력도 없어 더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페이퍼백에 대한 독자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한 예로 올해 출간 10주년을 맞은 살림지식총서 시리즈는 현재 466호까지 나왔다. 한 달에 평균 3권씩 낼 정도로 활발하게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최진 살림출판사 지식총서팀장은 “매월 재인쇄에 들어가는 책이 20종에 이르고 전체 466권 가운데 100권은 3쇄 이상 찍을 정도로 독자들이 꾸준히 찾는다”며 “이는 좋은 콘텐츠가 독자들을 이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페이퍼백 시장에 눈을 돌리는 게 미래의 독서 인구를 늘리는 방편이 될 수가 있다고 조언한다. 백원근 연구원은 “인터넷서점 중고책방이 인기를 끄는 데서 알 수 있듯 콘텐츠가 좋은 염가의 책에 대한 수요층은 분명히 있다. 독서 생태계를 넓힌다는 측면에서도 문고판 시장에 독자를 끌어들이려는 출판사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당신의 책]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미즈키 아키코 지음, 윤은혜 옮김, 중앙북스 펴냄) 국내 한 항공기 1등석에서 승무원에게 추태를 부려 물의를 빚은 일명 ‘라면 상무’ 사건은 세간의 분노와 더불어 1등석 승객에 대한 호기심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일본과 외국 항공사에서 근무한 전직 일본인 스튜어디스가 전체 좌석의 3%에 해당하는 국제선 1등석 승객들을 16년간 밀착 서비스하면서 파악한 공통적인 성공 습관을 소개한다. 그중 하나가 입국 서류 작성 때 승무원에게 절대 펜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기록하는 습관 때문에 항상 자신만의 필기구를 지니고 다닌다는 설명이다. 기내에서 신문을 보지 않는다는 점도 독특하다. 뉴스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집이나 공항 라운지에서 읽고 나오기 때문이다. 1등석 승객들이 역사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사실도 재밌다. 228쪽. 1만 3000원. 베케트에 대하여(알랭 바디우 지음, 서용순·임수현 옮김, 민음사 펴냄) 사뮈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성공 이후 작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부조리 연극의 대표 작가로 부각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베케트 문학의 진면모를 파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세계적인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이 책에서 베케트를 절망의 작가로만 바라보는 일반적 편견에서 벗어나 베케트 작품 안에서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의 흔적을 탐색한다. 바디우는 베케트의 사유가 “긍정의 지점들을 따로 떼어 내 고양하는 사유”라고 평가하며 “베케트의 모든 재능은 거의 과격할 정도로 긍정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선언한다. 바디우의 사유 속에서 베케트는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면서도 진리의 희망과 사랑의 행복을 노래하는 작가가 된다. 바디우 전공자인 서용순 영남대 인문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와 베케트 전공자인 임수현 서울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번역했다. 280쪽. 1만 6000원. 코난 도일을 읽는 밤(마이클 더다 지음, 김용언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셜록 홈스를 창조한 뛰어난 스토리텔러 아서 코난 도일의 글쓰기에 대한 탐구서. 퓰리처상을 수상한 문학비평가인 저자는 일생 동안 셜록 홈스 모험담에 열정을 바쳐 온 오랜 팬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셜록 팬들의 모임인 ‘베이커가 특공대’의 회원이기도 하다. 책은 홈스의 미스터리 소설뿐 아니라 덜 유명하지만 매혹적인 코난 도일의 다른 작품들도 소개한다. 다작 작가였던 코난 도일은 과학 및 역사소설을 비롯해 에세이와 회고록도 다수 남겼다. 저자는 모든 종류의 스토리텔링을 아우르는 이야기꾼 코난 도일의 면모를 조명하며 ‘좋은 이야기는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어린 시절 ‘바스커빌 가문의 개’와 처음 맞닥뜨린 기억에서 출발해 홈스 탐정 소설의 특징과 코난 도일의 글쓰기 방법을 해설한다. 부제 ‘스토리텔링의 모든 기술’은 코난 도일의 걸작 ‘추적의 모든 기술’에서 따왔다. 276쪽. 1만 3000원. 남자, 죽기로 결심하다(만프레트 볼퍼스도르프 외 지음, 유영미 옮김, 시공사 펴냄) 여성 우울증의 위험성은 널리 알려졌지만 상대적으로 남성 우울증에 대한 인식은 높지 않다. 남성은 여성 이상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쉽게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병을 키우게 된다. 남자니까 울면 안 되고 많은 돈을 벌어야 하며 늙어서도 약해져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 책은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한 남성 우울증의 실체를 파헤친다. 독일 남성우울증 전문 정신의학자인 만프레트 볼퍼스도르프 박사는 “남성 우울증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고, 정보가 부족하며, 여성과 달리 자신의 감정을 잘 살피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남성 우울증은 결코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으며, 가족과 이웃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두고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288쪽. 1만 3000원.
  • ‘비너스 몸매’ 정아름, 노하우 전수 위해 강단 선다

    ‘비너스 몸매’ 정아름, 노하우 전수 위해 강단 선다

    ‘비너스 몸매’ 정아름이 직접 자신의 몸매 관리와 골프 노하우를 전파하기 위해 나섰다. 정아름은 오는 9월부터 명지대학교 사회교육과정 ‘위드스타 클래스’의 강사로 나서 직접 몸매 관리 노하우와 골프티칭을 강의한다. 최근 ‘라이프 스타일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받고 있는 정아름은 각종 행사와 자기 계발 강의의 섭외 1순위로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대중에게 인정받고 있다. 이런 정아름이 이번 ‘위드스타 클래스’ 강의에 나선 이유는 역시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 대중들이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다. 정아름은 “‘라이프 스타일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주위에서 항상 내 몸매 관리 등 여러 가지 노하우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안타까웠다”며 “이렇게 강의를 할 좋은 기회가 생겨 내 방법을 알기를 원하는 많은 이들에게 직접 전수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위드스타 클래스’는 인기 높은 셀러브리티들이 직접 자신의 전문 분야 노하우를 전달하기 위해 기획된 강의로 그 취지가 공개된 후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끌며 수강을 원하는 이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강의프로그램을 개발한 명지대학교 측은 유명 스타들이 직접 강의에 나서면서 대중들에게 더 쉽고 친근하게 전문적인 지식을 얻게 하도록 이번 강좌를 기획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으로 미스코리아 출신이면서 각종 방송과 온라인을 통해 자주 핫이슈를 만들어냈던 정아름을 강사로 섭외한 것. 정아름은 오는 9월부터 명지대학교 사회교육과정 (http://ice.mju.ac.kr ) ‘위드스타 클래스’ (http://www.withstarclass.com )의 강사로 나서 직접 몸매 관리 노하우와 골프티칭을 강의한다. 정아름은 최근 자신의 9등신 ‘비너스’ 몸매를 과시한 화보를 공개해 각종 포털사이트 검색어를 장악한 바 있다. 또 모델, 작가, 골퍼, 트레이너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대한민국 대표 스포테이너로 인정받고 있다. 이에 중국 현지에서도 관심을 모으며 ‘정아름의 안방 글래머 다이어트’의 중국어 번역판까지 출간될 예정이다. 정아름은 SBS ‘스타킹’에서 ‘안방 보톡스 운동법’을 소개하며 화제가 됐고 XTM ‘절대남자’에서는 ‘정아름의 퓨전 트레이닝’이라는 코너를 진행하며 관심이 쏠렸다. 또 MBC ‘뉴스 투데이’에서는 ‘1분 피트니스’를 진행했고 자신이 운영 중인 블로그 ‘나스타일(narstyle.kr)’을 통해 자신의 몸매 관리 비법을 꾸준히 공개하며 열성 팬들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위드스타클래스’에는 정아름 외에도 스포츠댄스강사 박지우, 이탈리아 요리 셰프 박찬일, 영화 전문지 ‘씨네21’ 의 커버를 담당하고 있는 유명 사진작가 손홍주, 최근 패션계의 대세인 ‘콜라보레이션’을 주도하고 있는 고태용, 여행작가 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태훈, 축구 국가대표 팀닥터로 유명한 ‘달리는 의사’ 최주영, 70여권의 영미소설을 번역한 조영학, 장근석의 프로젝트팀 ‘팀H’ 의 멤버 빅 브라더, 직접 연예 매니지먼트 계에서 활동했던 권혜진, 은퇴 설계 관련 프로그램 개발로 유명한 김상영 등이 강의에 참여할 예정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영어 좀 한다고 막하면 쓰나… 번역도 엄연한 문학인데

    영어 좀 한다고 막하면 쓰나… 번역도 엄연한 문학인데

    “‘프린스’(prince)라고 하면 우리는 다 왕자라고 번역하죠? 하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프린스가 왕자인 경우는 10분의1도 안 돼요. ‘벤허’에선 족장이고 마키아벨리 저서에선 군주, ‘전쟁과 평화’에서는 대공이라는 뜻이죠. 미남, 동네왕초라는 뜻도 있고 이렇게 프린스의 의미가 15가지나 되는데 우리는 한 가지만 외워 놓고 10가지를 써먹으려 하는 거지.” 이윤기와 함께 ‘1세대 번역가’로 꼽히는 소설가 안정효(72)의 입에서 오역 사례가 줄줄 나왔다. “번역도 문학”이라고 믿는 그에게 단어의 한 가지 뜻에만 기대어 언어의 깊은 감각을 간과하는 오역은 분통 터지는 일이다. 그래서 40여년 번역 인생을 집대성한 책을 펴냈다. 10년간 수집한 3000여편의 영화 자료, 2000여개의 오역 사례를 모은 ‘안정효의 오역사전’(열린책들)이다. 832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은 그의 표현을 빌자면 ‘편집자들이 몇명이나 나가떨어진 목침만 한 책’이다. 그는 “영어 조금 한다고 푼돈이나 벌어야지 하고 번역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좋은 직업을 엉터리로 해서 되나 하는 생각에 진짜 교과서, 성경 쓰는 기분으로 썼다”고 했다. “사람들이 가장 착각하는 게 뭐냐면 난 영어를 잘하니까 번역하겠다는 거예요. 샘 해밍턴이 한국말 잘한다고 번역 잘할 것 같아요? 어림도 없어. 번역은 우리말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거죠.”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에서는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그리스에서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소명의식을 갖고 번역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훌륭한 작가들이 번역을 하는데 우리는 그냥 무성의하게 한글로 옮기면 되는 줄 알아요. 번역의 개념이 없던 초창기엔 책 하나를 6~7명에게 나눠서 번역을 시키고, 문장을 마음대로 자르고 고치는 출판사들과 싸움도 많이 했죠.” 1970년대 중후반 영자지 문화부장을 지낸 그를 번역의 길로 이끈 건 당시 ‘문학사상’ 주간이었던 이어령 선생이었다. 그가 대학 시절 영어소설을 7편이나 썼다는 소문을 듣고 197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패트릭 화이트의 ‘폭풍의 눈’ 번역을 맡긴 것이다. 그는 꼬박 밤을 지새워 하루 만에 원고지 100장 분량의 번역본을 넘겨 이어령을 놀라게 했다. “몇 달 뒤에 문학사상에서 ‘백년동안의 고독’을 연재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원래 하기로 했던 스페인어 번역자가 못하겠다고 나가떨어진 거야. 시간은 촉박하니 나한테 영어책으로 번역해 달라고 한 거죠. 그런데 번역이라는 건 쉬었다가 하면 안 돼. 내친김에 해야 얘기가 연결이 되지. 원고지 3000장짜리를 40일 동안 해서 007가방 2개에 넣어 갖다줬어요. 이어령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직원들한테 ‘야, 그거 앞뒤 줄거리 맞나 읽어 봐라’ 고 하셨죠(웃음).” ‘가시나무새’, ‘캐치 22’ ‘가브리엘라’ 등 그가 먼저 출판사에 출간을 제안해 국내에 소개한 해외 명작도 부지기수다. 그도 그럴 것이 서강대 재학 시절 그는 영문학 교수였던 외국인 신부가 인정하는 ‘원서 킬러’였다. 방학 때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도서관에 나가 서가의 책을 모두 읽어 치웠다. 더 읽을 것이 없자 손을 댄 게 영어 원서였다. “학생들이 ‘어떻게 해야 영어를 잘해요?’하고 물으면 신부님은 ‘안정효처럼 하라’고 하셨대요. 저한텐 영어 수업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요. 배울 게 없으니까.”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자기 관리에 엄격하다. 매일 새벽 3~4시에 일어나 오전 10시까지 일에 매진한다. “자유업이라는 게 사장도 없지, 자기 마음대로 아니에요? 그러니 내가 스스로 통제해야지. 하루 할 일을 정해 놓고 어겨본 적이 없어요.” 재게 움직이는 건 아직도 구상해 놓은 책이 한가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펴낸 소설 ‘솔섬’에서 갈라진 얘기를 장편소설 ‘선지자’로 낼 계획이고, ‘할리우드 키드’라는 별명을 지닌 영화광인 만큼 세계 명배우 열전도 펴낼 생각이다. 만화가였던 예전 꿈을 살려 만화수상록도 내고 싶다는 그는 문득 빵 얘기를 꺼냈다. “좋은 빵을 만들려고 밀 농사를 직접 짓는 제빵사가 있더군요. 번역도 그렇게 공을 들여야 좋은 문학이 나와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대학출판부 부활의 꿈, 학술 서평으로 연다

    대학출판부 부활의 꿈, 학술 서평으로 연다

    미국에선 매년 11월 ‘대학출판주간’ 행사가 열린다.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처음 대학출판주간을 선포한 이래 정례화된 행사로, 대학출판부의 한 해 성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자리다. 대학출판부가 지성의 토대가 되는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올해로 설립 76년이 된 미국대학출판협회(AAUP)에는 133개 대학출판부가 속해있으며, 연간 1만 2000여종의 종이책과 전자책을 출판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출판부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단법인 한국대학출판협회 소속 63개 대학출판부가 연간 출판하는 학술신간은 1000여종이다. 회원은 63개 대학이지만 실제 활발히 활동하는 곳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학당국으로부터 많은 재정지원을 받는 미국과 달리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국내 대학출판부의 처지를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대학출판부의 역할이 강의교재 출판, 연구실적 출판 등으로 한정지어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다. 대학출판부의 위기를 타개하고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올해 창립 32년을 맞은 한국대학출판협회가 팔을 걷어붙였다. 학술도서 서평집 ‘시선과 시각’을 창간하고, 1년간의 준비를 거쳐 최근 첫 호를 선보인 것. 신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서평이 더 나은 책 출판을 이끌어내는 밑거름이 된다는 신념이 바탕이 됐다. 권원순 한국대학출판협회장은 “좋은 책을 발굴해 평단과 연구자,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것”이라며 “아울러 출판계에 건전한 비평문화를 발전시켜 보자는 의도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248쪽 분량으로 발간한 창간호에는 대학별 대표도서 27편과 분야별 신간도서 58편 등 총 85편의 서평을 게재했다. 또한 ‘학술출판과 서평’을 주제로 표정훈 한양대 교수, 최익현 교수신문 편집국장, 신명아 경희대 교수의 글을 특집기사로 소개했다. 이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대학출판부의 역할과 책임, 국내 학술출판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 등에 관한 기획 좌담을 실었다. 최익현 교수신문 편집국장은 “교수 업적평가에서 단행본 저작이나 번역은 논문이 대우받는 정도에 미치지 못하다보니 양질의 학술출판은 점점 힘겨워지게 된다”면서 “책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더 많은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게 가교역할을 하는 서평의 복원”이라고 지적했다. 표정훈 한양대 교수는 “교재 출판과 학술연구실적을 인쇄해서 단행본 형식으로 출판하는 ‘학술인쇄제작’을 학술출판과 동일시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학술콘텐츠를 출판콘텐츠로 바꾸어서 구체적인 출판 과정을 거쳐 하나의 출판물로 내놓는 것이 대학출판부의 학술출판 활동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연인의 입술 같은 순두부찌개, 詩語로 맛봅니다

    연인의 입술 같은 순두부찌개, 詩語로 맛봅니다

    # 이어령 시인에게 김 자반은 켜켜이 쌓인 모정(母情)의 지층이다. ‘어느 날 어머니가 김 한장 한장/양념간장을 발라 미각의 켜를 만들 때/하얀 손길을 따라 빛과 바람이 칠해진다네.(…중략)김 자반을 씹으면 내 이빨 사이로/여러 켜의 김들이 반응하는 맛의 지층/네모난 하늘과 바다가 찢기는 맛의 평면’(김 자반) # 도종환 시인에게 시래기는 고갱이를 지킨 헌신이자 앞장서 땅을 뚫고 나온 생명력이다.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중략)/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우기 위해/서리에 젖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시래기) 시집 ‘사람’으로 현대인물 찬양 논란을 빚었던 한국시인협회가 ‘시 밥상’으로 반전에 나섰다. 정겹고 질박한 한식 76가지를 시의 언어로 무치고 버무린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문학세계사)을 엮어낸 것. 76명의 원로·중진 시인들은 평범한 음식에서 고향 물맛과 햇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을 담아 깊고 아련한 맛의 풍광을 펼친다. 신달자 시협 회장은 펴내는 글에서 “한식의 맛을 시의 입맛으로 발화해 혀를 넘어선 상상의 입맛으로 시인 개인의 고유 경험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 시집을 묶게 된 것은 감격”이라면서 “그 어떤 내용의 시보다 공감과 위로의 힘을 키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밥, 감자떡, 추어탕, 매생이국, 동치미 등 익숙하고 소박한 서민의 음식들은 시인의 조탁된 언어 속에서 오감을 새롭게 일깨운다. 누군가는 한 끼 때우려고 먹는 김밥이 이병률 시인에겐 굴리고 굴려서 기쁨이 되고 멋진 날이 되는 음식이다. ‘김에서는 바람의 냄새/단무지에선 어제의 냄새/밥에서는 살 냄새/당근에선 땅의 냄새/아이야/모든 것을 곱게 펴서 말아서 굴리게 되면/좋은 날은 온단다’(김밥) 공광규 시인에게 ‘순두부찌개’는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지고 뭉개지기 쉬운 뇌 같은 것’이며 ‘연인의 입술이나 덜 익은 사랑 같은 것’이다. 김윤 시인에게 ‘매생이국’은 ‘막사발 속에서 따뜻한 말을 거는 흰 눈 펄펄 날리는 녹청 바다’다. 일품 파는 어머니가 잔칫집에서 눈칫밥 먹으며 말아주던 묵. 그 맛을 한영옥 시인은 ‘헛헛한 뱃속 그득하게 부풀려 주는 식물성의 화평’이 주는 ‘서러움의 배부름’으로 기억한다. 개인의 경험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간 시인들도 있다. 오세영 시인은 ‘비빔밥’에서 민주·복지 국가를 발견한다. ‘음식 나라에선/비빔밥이 민주국가다./콩나물과 시금치와 당근과 버섯과 고사리와 도라지와/소고기와 달걀-이 똑같이 평등하다.’(비빔밥) 원구식 시인에게 ‘삼겹살’은 불판 위의 혁명이다. ‘그러니까, 삼겹살을 뒤집는다는 것은 세상을 뒤집는다는 것이다/(…중략)/경고하건대 부디 조심하여라/혁명의 속살과도 같은 이 고기를 뒤집는 순간/우리는 어느새 입 안 가득히/불의 성질을 가진 입자들의 흐름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삼겹살) 이번 시집은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 지원을 통해 해외 독자들에게도 소개될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다문화 엄마, 이젠 한국-베트남 문학 전도사

    다문화 엄마, 이젠 한국-베트남 문학 전도사

    네 아이를 둔 베트남 출신 다문화가정의 엄마가 한국·베트남을 오가는 문학 전도사가 됐다. 베트남 대표 아동문학가인 또 호아이의 ‘귀뚜라미 표류기’(여유당 펴냄)를 우리말로 옮겨 한국 어린이들에게 소개한 류티씽(38)을 4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하대 한국학과에서 아동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가 남편의 나라인 한국과 고국 문학의 가교 역할에 나선 것은 한·베트남 수교 2년 뒤인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베트남 하노이국립대 3학년생이던 그는 재학생으로는 처음으로 한국·베트남 비교문학을 전공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선배들은 다들 중국, 일본, 서양 문학과의 비교 연구를 선택했지만 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싶었어요. 두 나라는 식민 역사, 내전 등 닮은꼴 역사를 가져서인지 문학 작품에도 비슷한 정서를 지니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매력이 있었죠.” 한국문학 사랑에 빠진 여대생은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모교에서 강사로 일하면서 ‘한국의 전설’, ‘한국의 민담’을 베트남어로 펴냈다. 베트남 유학생이던 한국인 남편과 1998년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그는 2000~2007년 프랑스 파리에 잠시 거주할 때는 한국문화원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채만식의 작품에 푹 빠져서였다. “채만식 특유의 풍자와 해학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의 작품을 다 읽었어요.” 아동문학에 주목한 건 네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부터였다. 어린 시절 자신이 매료됐던 ‘귀뚜라미 표류기’를 한국어로 풀어 낸 건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였다. “작고 힘없는 존재인 귀뚜라미와 개미가 온갖 고난을 겪으며 강인해지는 걸 보면서 아이들도 꿈과 희망, 모험심을 키웠으면 했어요.” ‘귀뚜라미 표류기’에서 주인공은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제2의 고향’인 한국은 그에게 어떤 세상일까. “남녀평등은 아직 먼 것 같아요. 남녀가 함께 일해도 엄마들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죠. 왕따, 학교폭력 같은 현실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고 친구와 잘 어울려도 늘 걱정을 달고 살아요.” 베트남엔 한국문학을, 한국엔 베트남문학을 퍼져 나가게 하고 싶다는 그에겐 더 큰 꿈이 있다. “문학은 힘이 세요. 엄마, 아빠 나라의 좋은 작품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와 정서를 공유하면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정체성과 자부심을 찾지 않을까요. 한국이 건강한 다문화 사회로 나가는 데 작은 힘을 보태고 싶어요.” 글 사진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가자’ 폭격에 세 딸 잃고도 “증오하지 않는다”

    ‘가자’ 폭격에 세 딸 잃고도 “증오하지 않는다”

    2009년 1월 16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에서 쏜 포탄이 떨어졌다. 난민촌에서 일하던 의사 이젤딘 아부엘아이시의 집에도 여지없이 포탄이 날아들었다. 그는 평소처럼 이스라엘TV에 전화를 걸어 가자의 상황을 알리는 중이었다. 폭격으로 세 딸이 숨진 직후 절규하는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이스라엘에 생방송됐다. 또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퍼졌다. 지난 수십년간 이어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 지긋지긋한 전쟁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부엘아이시가 이스라엘에 복수를 다짐하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증오나 복수를 택하지 않았다. 세 딸이 죽고 자신은 살았다고 깨달은 순간부터 그 비극이 좋은 일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리랑TV는 3일 오전 7시 ‘코리아 투데이’에서 ‘그러나 증오하지 않습니다’(I Shall Not Hate)의 저자인 아부엘아이시의 삶을 소개한다. 전 세계 20개 언어로 번역·출간된 저서는 자신과 죽은 세 딸, 그리고 가자지구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 딸이 사람들의 생각, 마음, 영혼에서 희망이라는 의미로 부활하기를 바란 그는 책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평화와 희망을 호소했다. 아부엘아이시는 이스라엘에 점령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자발리야 난민촌에서 자랐다. 유엔이 주는 우유 배급표를 모아 팔고 지우개를 잃어버릴까 실에 꿰어 걸고 다녔다. 어린 시절 그의 꿈은 교육을 잘 받아 난민촌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집트에 유학한 뒤 산부인과 의사가 됐다. 가자와 이스라엘의 병원을 오가며 돈을 벌었다. 풍족했던 삶에 2008년 그늘이 드리워졌다. 세 딸을 남겨놓고 아내가 급성백혈병을 앓다 숨진 것이다. 아픈 아내를 병원으로 옮기고, 다시 시신을 집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는 검문소의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운명을 맡겨야 하는 난민의 처지를 절감했다. 그리고 몇 달 뒤인 2008년 말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를 재침공했다. 아부엘아이시는 최근 저서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생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프로그램에선 아부엘아이시와의 인터뷰 내용을 방영한다. 외세의 침입, 식민 통치, 영토 분할까지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닮은꼴 역사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한반도의 분단 현실과 관련해 남북한이 한민족임을 강조했다. 희망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는 뜻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그 속에서 “이스라엘의 안전이 우리의 안전”이라 말하는 아부엘아이시의 평화, 공존의 메시지를 들어볼 수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가출 소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꿈 전도사로 거듭난 32세 스타 강사 김수영

    [김문이 만난 사람] 가출 소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꿈 전도사로 거듭난 32세 스타 강사 김수영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그렇게 자랐나 보다. 어린 시절 무척 가난했다. 사람들은 철부지, 말썽쟁이라고 했지만 나름대로 세상을 알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 또 너무나 외로워 가출을 했다. 싸움도 하고 죽도록 매를 맞아 깊은 상처도 입었다. 우여곡절 끝에 암울했던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꿈 많은 소녀로 변신해 보란 듯이 당당하게 살아갔다. 인생의 먹구름을 스스로 걷어내고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적었다. 그러다 보니 83개가 됐다. 그중 48개는 이미 이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작가, 배우, 요가 강사, 블로거, 기업인, 꿈쟁이 등이다. 올해 나이 32살의 김수영씨. 스타 강사로도 소문나 있다. 지난해 6월 이후 200여 차례의 강연에서 10만명을 만났다.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라는 책으로 30만명의 독자들과 만났고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책으로 20만명을 만났다. 그의 블로거에 찾아온 손님은 무려 150만명이다. 가출소녀였지만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꿈 멘토’, ‘꿈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길지 않은 인생에, 남달랐던 그의 인생 이력을 간단히 짚어보자. 중학교를 중퇴한 가출 소녀였다. 집은 가난했다. 폭주족과 어울렸고, 싸움에 휘말려 칼을 맞기도 했다. 그러다 ‘아직 우린 젊기에, 미래가 있기에’라는 서태지의 노래 ‘컴백홈’을 듣고 ‘나도 열심히 살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갔다. 검정고시로 친구들보다 1년 늦게 여수정보과학고에 입학했다. 1999년 학교에서 진행된 ‘도전 골든벨’ 방송 프로그램에서 골든벨을 울렸고 2000년 연세대에 합격했다. 졸업 후 골드만삭스에 입사했지만 8개월 만에 암세포가 발견돼 회사를 그만뒀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어내려 갔다. 73개의 꿈 리스트. 첫 출발은 한국을 떠나는 것이었다. 2005년 무작정 영국으로 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쳤다. 2007년 로열더치셸에 입사해 연 800만 달러의 매출을 책임지는 카테고리 매니저로 일했다. 2010년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를 냈다. 30만부가 팔렸다. ‘사람들에게 영감 주기’도 73개 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 사이 암이 완치됐다. 2011년 6월부터 1년 동안 휴가를 내고 유럽·아시아 여행길에 올랐다. 지구 반 바퀴를 돌며 365명의 꿈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를 펴냈다. 20만부나 팔렸다. ‘드림 파노라마’라는 회사를 만들어 꿈과 관련된 각종 이벤트를 열었다. 지난 2월엔 꿈을 이루도록 돕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버키 노트’도 출시했다. 오는 9월 다시 지구의 나머지 반 바퀴를 돌기 위해 떠난다. 이번엔 335명을 만나 꿈에 관해 인터뷰를 할 예정이다. 지난해 인터뷰한 이들까지 합하면 700명이 된다. 70억 지구의 0.0000001%다. 나름의 인류학적 보고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짧은 인생에서 이러한 이력들이 정말 가능했을까. 궁금해진다. 지난 27일 저녁 서울 홍대 앞 가톨릭청년회관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이 회관에서 젊은이들을 상대로 ‘미친(me-親) 꿈에 도전하라’는 주제로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강연 내용이 뭔지 먼저 물어봤다. “오늘날 청년들, 대학생들은 너무 따지다 보니 결론을 잘 못내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 모든 일을 엄마가 결정해 주다 보니 대학생이 되고 나면 멘토를 찾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저는 멘토링 자체를 반대합니다. 멘토링 또한 그 연장선상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젊은 친구들을 상대로 강연할 때는 소크라테스적인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그는 강연할 때 가끔 인도춤과 요가를 선보이기도 한다. 하여, 요가강사라는 이름이 따라다닌다. 여러 가지 수식어 중 어느 것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즉각 ‘꿈쟁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른 것은 세월이 지나면 변하겠지만 꿈쟁이만큼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게 이유다. 스타강사가 된 까닭을 물었다. “저는 연구를 많이 한 학자도 아닙니다. 더군다가 자기계발을 말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로지 제가 걸어왔던 ‘실천’만을 얘기할 뿐이지요. 다른 분들은 강의할 때 훌륭한 사람들을 예로 들지만 저는 제가 직접 겪은 얘기만 합니다. 거기에서 다들 진정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꿈에다 영감과 씨앗을 불어넣어 주는 그런 차별성도 있고요.” 그가 꿈쟁이, 꿈 전도사로 나선 계기는 무엇일까. 2005년 입사를 앞두고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암세포가 발견됐다. 평생 건강하게 살 것만 같았던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큰 충격에 빠졌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정신적 후유증이 너무 컸다. 방황했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이젠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앞으로 새로운 인생을 펼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적어 보았더니 73가지(지금은 83개)였다. 중매쟁이 같은 엉뚱한 꿈도 있었지만 모두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73가지 목표 중 중요도와 긴급한 정도를 점수로 매겼고 이 두 가지 조건을 기준으로 정렬을 했다. 목록의 첫 번째는 한국을 떠나 세계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한번뿐인 인생,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살아야만 할까. 인생의 3분의1 가까이를 한국에서 살았으니 다음 3분의1은 세계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3분의1은 가장 사랑하는 곳에서 살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꿈쟁이’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지구 반 바퀴를 돌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꿈에 관해 인터뷰를 했던 얘기는 그때부터 이어진다. “이스라엘에서 63세 할머니를 만났어요. 네 살 때부터 노래를 했는데 10년 전 후두암 판정을 받았대요. 그래도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꿈이란 그런 것이구나 새삼 느꼈지요.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한 독립운동가는 ‘그동안 죽을 고비를 일곱 번이나 넘겼다. 독립이 되고 나면 반드시 의사의 꿈을 이룰 것이다’라는 얘기를 했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70여개국을 다녀 보니 우리나라처럼 꿈을 꾸면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 좋은 나라는 별로 없었어요.” 그는 탈레반 사람들과도 꿈을 주제로 인터뷰했고 레바논에 가서는 TV에 출연해 아랍어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꿈 리스트 가운데 48개를 이뤄냈다. 여자의 몸으로 혼자 20㎏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기가 불안하지 않으냐고 했더니 “다 사람 사는 곳이다. 사고가 나려면 우리 집 앞에서도 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그걸 탓하지 말고 해결하려고 생각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는 광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직업을 따라 여수에서 10세 때부터 지냈다. 초등학교 5학년 소풍 가는 날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당시 TV에서 유행하던 ‘민지의 일기’를 패러디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 때 덩치 큰 학생한테 ‘잘난 척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후 그는 ‘왕따’를 당했다. 학교생활이 싫어졌다. 때마침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마저 매일 술을 마시고 툭하면 신경질을 부렸다. 학교와 가정,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자살할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렇게 외롭고 괴롭던 시절, 그나마 위안을 준 것은 바스콘셀레스가 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였다.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세상의 시선은 더욱 따가웠다. 소풍날 장기자랑 시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불렀지만 ‘까진 아이’라는 말만 들었다. 성질이 나서 담배도 피워 보고 술도 마시며 어설프게 호기를 부렸다. 선생님한테 찍혔다. 그래서 맞섰고, 돌아온 것은 매뿐이었다. 주먹으로, 발길질로, 몽둥이로 만신창이가 됐다. 학교 다니는 것이 점점 싫어졌다. 결국 가출을 하고 말았다. 친구집, 주유소 등을 전전했다. 패싸움을 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도 넘겼다. 중학교를 자퇴한 지 1년 반 만에 검정고시를 거쳐 여수정보과학고에 진학했다.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수능을 며칠 앞두고 ‘KBS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 고등학생 최초로 골든벨을 울리면서부터였다. 얼마 뒤 여수 진입 도로에 ‘여수정보과학고 골든벨 김수영, 연세대 인문계열 합격’이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미운 오리새끼가 어느 날 갑자기 백조로 둔갑한 느낌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50여개 회사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세계 최고 기업 중 하나인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그가 적어놓은 꿈 중에 부모에게 집을 사주고 해외여행을 시켜 준다는 약속도 지켰다. 가출 당시 함께 지냈던 친구들도 지금은 장사를 하면서 잘 살고 있단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어떤 모습이고 싶냐고 물었다. “지금은 개인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고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보람된 일을 하고 싶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뭔가 나눠 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또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같은 소설도 쓰고 싶다며 웃는다. 앞으로 1년간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로 떠나 또 다른 꿈의 여정을 펼칠 예정이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꿈쟁이’ 김수영은 광주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자랐다. 여수정보과학고 3학년 때 KBS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 고교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골든벨을 울렸다. 연세대에 진학해 영어영문학과 경영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2005~2006년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학교(SOAS) 중국국제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로열더치셸 카테고리 매니저, 골드만 삭스 애널리스트 등을 거쳤다. 현재는 여행가, 작가, 사업가, 마케터, 강연가, 블로거, 번역가,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제작자, 요가 강사, 인도 발리우드 영화배우, 예술가, 기획자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꿈의 파노라마’ 대표 꿈쟁이다. 위촉사항으로는 여수시 명예홍보대사, 서울시 드림멘토, 한국장학재단&어린이재단 명예홍보대사 등이 있다. 저서로는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2010년),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2012년), ‘드림레시피’(2013년 6월 예정) 등이다.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인도, 싱가포르, 네팔, 레바논, 중국, 타이완 등 25개국 해외 매체에서 그의 활약상이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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