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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부터 스페인어까지…5개 국어 독학한 中 104세 할아버지

    영어부터 스페인어까지…5개 국어 독학한 中 104세 할아버지

    중국 저장성에 거주하는 올해 104세 할아버지의 외국어 ‘열공’ 스토리가 화제다. 영어 일본어, 서반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등 총 5개 외국어 ‘달인’ 션주웨 씨(이하 션 할아버지)의 언어 습득방법은 오로지 독학이었다. 최근에는 초등생 손녀 샤오션 양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 강의 방식의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이번에도 독학이다. 지난 1918년 출생한 션 할아버지는 영어와 일본어의 경우 원서를 직접 번역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러시아어와 스페인어로는 시를 쓰고 일기를 적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할아버지는 최근 자신의 영어 발음 동영상을 인터넷 플랫폼에 게재, 누리꾼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10대 청소년들과 20대 대학생 누리꾼들은 “할아버지의 영어 발음이 미국 현지에 사는 미국인들의 억양과 매우 유사하다”면서 “세련된 발음의 할아버지가 최근 병상에서 투병 중에도 공부에 힘쓰는데 공부를 포기한 (자신들이) 부끄럽다”고 적었다. 또 다른 누리꾼도 “할아버지의 공부에 대한 열의를 보니 20대 중반인 우리가 새로운 공부를 위해 무엇인가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작은 시골마을 출신의 션 할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시기에는 평범한 가정 출신의 아이들이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어렵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션 할아버지는 자신의 SNS 온라인 계정을 통해 “출생 당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탓에 형님들만 우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면서 “부모님은 4남매 중 막내인 나에 대한 교육보다는 형들을 먼저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사회 생활을 시작했었다”고 했다. 이 무렵 션 할아버지는 형들이 구해주는 책을 읽고 독학 방식으로 공부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다. 그러던 중 할아버지가 스무살 무렵이었던 지난 1938년 그는 두 살 더 연상의 아내를 만나 혼인을 했다. 션 할아버지가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그 해였다. 이후 아내와 함께 고향인 저장성에서 자리를 잡은 할아버지는 결혼 후에도 학업을 계속 이어갔고 2년 후, 국립중앙대학교 사범대학(지금의 난징대학) 생물학과에 합격했다. 학사 학위를 받은 직후 그는 구이저우의 모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중 지인의 소개로 후난성 창사에 소재한 의학전문대학교에 편입하는데 성공했다. 이 시기는 중국 전역에서 항일 전쟁이 발발했던 기간이었다. 션 할아버지 역시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입대, 응급 의료진료팀 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제대 후 할아버지의 반평생은 고향에서의 교육 사업으로 점철됐다. 지난 1951년, 그는 항저우 소재의 대학교 강단에 서는 기회를 포기하는 대신 고향 저장성 진운 중학교 생물 교사로 부임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 이후 이 중학교에서 화학, 영어 등의 교사 수가 부족하다는 통보를 받고, 해당 과목을 교육하는 등 그야말로 ‘만능’ 교사로 유명세를 얻었다. 이후 션 할아버지는 지난 1978년 정년퇴직 후 그동안 생계를 위해 포기했었던 외국어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는 스페인어와 러시아어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어를 독학하기 시작한 것은 손녀 샤오션 양이 스페인 유학을 준비하게 되면서부터였다.그는 평소 독학으로 습득한 스페인어를 유학 준비 중인 손녀에게 직접 교육하는 등 손녀와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로 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같은 시기 스페인어와 유사점이 많다는 이유로 이탈리아어를 동시에 습득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93세의 나이로 조강지처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장남 내외와 차남 집을 오가며 생활하는 등 외국어 공부를 주춤하던 시기도 있었다. 주로 두 집에서 6개월 씩 돌아가며 거주하는 형편이었다. 특히 지난해 7월 경 션 할아버지는 심한 폐결핵 진단을 받은 뒤 지금껏 요얌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할아버지의 차남은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주로 책을 읽거나 시를 쓰고 국가 중대사에 관심을 기울였다”면서 “tv 프로그램은 주로 뉴스 종류를 즐겨 보며 세상 돌아가는 이슈를 두루 통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버지는 평소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즐기지 않는다”면서 “외국어 학습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에 대해서도 매우 애착을 가지고 있다. 평상시에는 고대 시와 사를 즐겨 읽고 또 쓴다고 했다”고 했다. 병원 간호사들은 션 할아버지의 병상 생활에 대해 책을 애지중지하는 환자라고 평가했다. 할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동 간호사들은 “할아버지는 평소 기상하자마다 안경을 쓸 겨를 도 없이 수시로 큰 소리로 시를 낭독하거나 외국어로 된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읽어주곤 했다”면서 “그 목소리가 우렁차고 발음이 또렷하다. 건강 상태는 청각이 좀 안 좋은 편이지만 책을 읽는데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한편, 올해 104세의 션 할아버지에게 장수 비결을 묻자, 그는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겠느냐”면서도 “과거에는 인생은 70세부터라고 말하곤 했지만, 살아보니 이제는 100세부터 진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명이 다 할 때까지 배움의 손을 놓지 않고 싶다”고 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2030 세대] 웃기 전에 생각할 것들/한승혜 주부

    [2030 세대] 웃기 전에 생각할 것들/한승혜 주부

    근래 소셜미디어에서 자주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김아무개’라는 동양인 여성으로 미 군복을 입은 사진을 프로필에 걸어 놓고 활동한다. 물론 이 ‘김아무개’는 내가 임의로 붙인 이름으로 당연히 가명이다. 이러한 김아무개가 유명해진 것은 SNS의 헤비유저들이 그의 사진을 캡처해 공유하면서부터인데, 그래서인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지에서 김아무개의 이름을 검색하면 유사한 게시물이 줄줄이 나온다. 대부분 드디어 본인도 김아무개로부터 친구 신청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듣기로 김아무개는 불특정 다수에게 마구잡이로 친구 신청을 한 뒤 수락해 준 사람에게 성적으로 유혹하는 내용이나 돈을 빌려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탈레반에게 인질로 붙잡혀 있는데 보석금 100만 달러가 필요하다”거나 “너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고 결혼을 원합니다” 유의 멘트는 얼핏 생각하기에도 이상하다. 문장 또한 번역기를 돌린 듯 부자연스럽다. 당연히 사진 속 여성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누군가가 만들어 낸 가짜 계정일 확률이 높고,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어설픈 사기 행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사람들은 김아무개의 프로필을 캡처해 종종 담벼락에 전시하곤 한다. “저 돈 없습니다” 혹은 “남자인 거 다 알아요” 하는 멘트와 함께 가짜 계정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피력하고, 그걸 본 사람들은 그 밑에 “앗, 김아무개 형님. 예쁘게 생기셔서 무서운 분”이라거나 “왜 이러고 산데요” 혹은 “관상을 보니 혁명을 하실 분 같군요” 등의 댓글을 달며 즐거워한다. 말하자면 김아무개 자체가 하나의 밈(Meme)이자 유머코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다른 이들처럼 웃을 수 없다. 웃음은커녕 마음 한구석이 착잡해진다. 이런 나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유머도 모르냐며 ‘프로불편러’ 납셨다는 유의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 역시 과거에 이상한 메시지를 받아 본 경험이 있다. 복권에 당첨됐는데 안타깝게도 보증금이 없어 수령이 불가능하다고, 100달러만 빌려주면 나중에 상금의 절반을 나누어 주겠다는 터무니없는 내용이나 “너의 좋은 미소. 너 한국인”과 같은 문법도 맥락도 맞지 않는 이상한 것들. 그 얄팍함과 황당함에 어이없는 실소를 흘린 적이 있으므로 그들이 왜 웃는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들이 비웃는 대상이 사진 속 인물이 아닌 그 뒤의 누군가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다만 나는 그러한 광경을 볼 때마다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혹여라도 그러한 광경을 사진의 ‘진짜’ 주인공이 보게 되는 경우 그가 느끼게 될 심정을,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수많은 사람에게 강제로 얼굴이 노출된 사람의 마음을, 자신의 얼굴을 두고 수많은 사람이 품평을 하고 비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의 안위를. 그걸 생각한다면 아마 프로불편러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쉽게 웃을 수 없을 것이다.
  • 코로나 언택트 시대의 교육…‘평범한 가정의 특별한 자녀교육 이야기’

    코로나 언택트 시대의 교육…‘평범한 가정의 특별한 자녀교육 이야기’

    어떻게 하면 자녀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모든 부모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자녀가 명문학교에 다니고, 좋은 직장에서 돈을 잘 버는 것으로 잘 키웠다고 할 수는 없다. 목남희 단국대 교수는 신간 ‘평범한 가정의 특별한 자녀교육’에서 자녀 교육의 성공 출발점은 가정이라고 단언한다. 목 교수는 그런 사례로 자신을 포함한 7남매, 16명의 손주를 바르고 정직하게 키워낸 부모님의 일생을 추적하면서 시작한다. 그의 부모는 지리산 아래 산골인 경남 하동군에서 1925년도에 태어났다. 구순을 훌쩍 넘긴 저자의 모친은 아직도 가계부를 일기처럼 매일 쓰고 있다. 60여년간 기록한 가계부가 가문의 역사책이 됐다. 모친은 환갑 때 한문서예대회에 출전하고, 88세 판소리에 도전할 정도로 배우고자 하는 열성이 높았다. 스마트폰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정도로 새로운 문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물론 이런 것을 고스란히 보고 배웠던 7남매는 이를 다시 자녀들에게 실천하고 있다. 천금과 권력을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건실한 가정, 화목한 가정이 곧 가정교육의 기초임을 강조한다. 야단 한 번 치지 않고 늘 자식 편이 되어 주었던 아버지와 훈육 교사를 담당할 정도로 엄격하였지만, 미국에 사는 딸에게 600통 이상의 편지를 보낼 정도로 자식을 지극히 사랑한 어미니, 두 분의 역할이 적절하게 균형과 조화를 이루었기에 성공적인 자녀교육을 이루어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부모님은 서로 매우 사랑했다는 것이다. 부모 두 분이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삶을 개척해나간 과정을 지켜보며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꿈을 키울 수 있었다. 대화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이러한 화목한 집안 분위기는 자식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게 이끌었을 것이다. 부모님은 단 한 번도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었고, 자식이 결정한 일은 전적으로 믿어주어 스스로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했다고 저자는 술회한다.이 책은 자식의 성공만을 위한 지침서가 아니다. 정직하고 행복하게 가족은 물론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되고 싶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훌륭한 자녀를 키워내는 비결은 바로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좋은 부모가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전세계에 대유행 중인 코로나19로 언택트가 강조되는 시대, 손 닿는 거리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저자 목남희 교수는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정치외교 학과를 졸업하고 도미, 미국 켄터키주립대학에서 회계과정을 이수한 후 클리블랜드주립대학에서 회계정보시스템 석사, 단국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공인회계사, 미국공인중개사 자격증이 획득했다.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 BP 미국본사에서 일반 회계를 담당했으며, 미국 제약사 셰링플라우의 한국 대표이사로 근무했다. 이후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로 10년간 재직했다. ‘경영학원론’(Management)을 공동 번역하면서 다수의 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하기 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불문학 120권 번역한 김화영 교수 “아무 것도 안할 때가 제일 행복”

    불문학 120권 번역한 김화영 교수 “아무 것도 안할 때가 제일 행복”

    까딱 잘못 하면 눈으로만 읽게 된다.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를 수 차례 반복해도 문장의 뜻을 알까 말까다. 알베르 카뮈를 글의 세계로 인도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 장 그르니에(1898~1971)의 에세이 ‘섬’. 1980년 첫 초역 출간돼 10만 부(추정) 이상 팔린 책이 40년 만에 새 번역으로 다시 나왔다. 그때 번역한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 다니던 30대 젊은 교수는 이제 70대가 됐다. 지난 3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본인도 어렵다는 책을 다시 내놓고 싱글싱글 즐거워하는 기색이었다. “나도 모든 문장을 다 100% 이해하며 번역하는 게 아니에요. 이러리라고 짐작하는 거지.” ‘섬’을 읽으며 헤맸을 법한 독자에겐 ‘안심되는’ 고백이다. 그는 “전엔 살짝살짝 고쳐서 독자한테 친절하게 하려고 했지만, 그러면 글이 가지고 있는 맛은 변질된다”면서 ‘떠먹여주는 번역’은 지양하고, 그르니에 특유의 금욕적이고 비밀스러운 문장을 그대로 살리려 노력했다. “40년 세월 동안 독자도 더 현명해졌으리라고 가정하는 거죠.” 그르니에게 한국에 소개되기까지는, 그르니에와 까뮈 같던 평생의 사제 관계 덕이 컸다. “출판사 다섯 군데서 퇴짜를 놨는데, 그 때 마침 고등학교(경기고) 은사셨던 이어령 선생님이 나한테 ‘문학사상’ 편집위원을 하래요. 그 때, 그르니에의 ‘공의 매혹’, 바슐라르의 ‘수련’을 번역해 잡지에 소개했는데 독자들이 반응했어요.” 이를 보고 대학 선배이기도 한 박맹호 민음사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번 가지고 왔던 그 원고가 ‘문학사상’에 실은 그 사람 글이오? 빨리 가져와요.”(180쪽)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카뮈가 ‘아무런 회한도 없이, 처음으로 이 ‘섬’을 펼쳐 보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 한다’(15쪽)는 책, 젊은 김 교수를 매혹시켰던 그르니에의 문장은 다시 봐도 매력적이다. 세상사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기조 아래,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사이의 골목길을 요리조리 헤쳐나가듯” 이야기하는 게 그의 글이다. “말이 섬 같아요. 한 문장이 섬이고 그 사이 바다가 있어요. 말하는 것을 통해서 말하지 않는 것을 더 많이 말하는, 그런 책이에요.” 가령 ‘말 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버린다. 공의 자리에 즉시 충만이 들어앉는다.’(29쪽, ‘공의 매혹’) 같은 문장들이 그렇다. 이런 그르니에를 두고 김 교수는 ‘견고한 통나무나 대리석을 더 이상 깎을 수 없을 때까지 깎아 내어 진면목을 찾아내는 조각가’(176~177쪽)라고 평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책을 ‘덜 친절하게’ 번역한 교수의 생각이 궁금했다. “어차피 안 읽을 사람은 안 읽을 것”이라고 말문을 연 그에게서 달라진 세태에 대한 진단이 이어졌다. “모두가 대학에 가는 시대가 되면서,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래를 위해서 대학에 가요. 대학에서는 진리가 아니라 공평함을 배우죠. 쟤보다 내가 몇 점 떨어지는지가 중요하니까, 사지선다형 밖에 안해요.” 그의 말에 따르면 객관식으로 평가 받는 세대는 짧은 요약본 위주의 정보 외에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문학은 요즘 세태에 적극적으로 반하는 텍스트 양식이다. “스토리뿐 아니라 글 쓰는 방식, 전체 구조, 동원된 문장의 배열 방식이 곧 문학이에요. 아닌게 아니라 대입 시험 때문에 모든 걸 요약해놨는데, 요약본을 봤다고 해서 ‘마담 보바리’를 읽은 게 아니잖아요.” 스토리를 꿰고 나면 끝나는 문학이 아닌, 40년 만에 다시 읽어도 새로운 책이 그가 말하는 진정한 문학이다. 파트릭 모디아노,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등 수많은 프랑스 문호들의 책 120여권을 번역했지만, 김 교수는 ‘프로 번역가’ 라는 말 대신 ‘책을 선택하는 사람’ 이길 원한다. 번역으로 밥 벌어 먹지 않고, 본인이 소개하고 싶은 책만 번역했기 때문이다. 평생 해왔던 강의와 연구, 번역과 시작(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중 무얼 할 때가 가장 행복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무것도 안 할 때가 제일 행복하죠.(웃음) 그냥 바깥을 내다 보고 있을 때, 세상이 내 속으로 흘러 드는 것 같을 때…. 그러다 그 생각이 원고지로 옮겨질 때가 좋고, 너무 심심하면 번역도 해요.” 그가 생각하는 번역 일의 좋은 점은 딴 짓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번역 일은 내 생각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이 생각을 해둔 거예요. 그런 건 다른 일 하다가 다시 봐도 돼요. 내 글은 매달려야 하니까 그렇게 할 수가 없죠.” ‘굉장히 기분파’인 교수는 번역을 하다가도 따분하면 놔두고 다른 글도 쓰고 시도 쓴단다. “계획은 없어요. 그 때 그 때 기분 좋은 것만 하는 거죠. 내가 나를 아니까 가만 놀지는 않을 거고, 뭔가 하고 싶은 게 있겠지…” 그런 그는 그날도 모디아노의 소설 ‘잠자는 추억’의 원고를 막 출판사에 넘기고 나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글로벌 In&Out] 외국인, 한국 문학을 읽다/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타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외국인, 한국 문학을 읽다/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타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외국인으로서 한국 문학을 읽을 때,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문학에 사용된 언어는 일상어와 달라 복잡하고 각양각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복잡하고 다양한 언어가 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언어 외에도 다른 점을 고려해 보면, 한국 문학에 매료되는 다른 한 가지는, 그 안에서 포착되거나 반영된 사회문제들이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 문학을 접한 시기가 거의 10년 전이었고 학부 때 한국 문학 강의를 들었다. 주로 시를 위주로 배워서 한국 시의 특징을 배우게 되었다. 한국 시는 인도네시아 시보다 자연적인 요소를 많이 사용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시에서 사용된 언어도 더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갈수록 순수를 지향하는 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시라든가, 저항 시 등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소설도 같이 배웠다. 사회문제를 다룬 시나 소설을 읽을 때는 그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전하는 사회, 문화, 풍습, 비판 등에 대해서도 같이 고려하게 된다. 한국 문학을 더 깊게 공부하자는 의지를 낸 계기다. 한국 시인 중에는 윤동주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시인 중 한 명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유일한 유고 시집은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이 번역된 것으로 알고 있다. 2년 전에 인도네시아어로도 번역되었다. 필자는 특히 윤동주를 매우 좋아한다. 처음으로 그의 시집을 접했을 때는 단지 그 제목에 매료되었을 뿐이었고 그 안에 실린 시들을 마저 읽지 못했다. 그러다가 시인에 대한 관심이 더 생기자 그의 시를 완전히 읽었고 그때부터 윤동주에 대한 애착이 깊어졌다. 한국시는 어렵지만 윤동주 시가 그나마 읽히기가 쉬운 시이다. 그가 사용한 언어가 대부분 거의 일상어이다 보니 외국인으로서 읽기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이면서도 그 안에 담긴 뜻이 깊다고 본다. 그의 대표적인 시에서 따질 수 있는 핵심어를 보면, 그가 살았던 시대의 상황을 같이 생각하게 만든다. 당시 윤동주 시인은 한국말로 시를 작성했으므로 억압을 받았을까, 윤동주 시인은 “시가 쉽게 쓰여져” 괴로워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당시에 일제강점기가 얼마나 끔찍했고 얼마나 압박했기에 “암흑기”라고 표현할 정도의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것이 바로 문학과 사회의 연관성이다. 특히 한국에 대해 배우고 가르치는 자로서 이 연관성을 깊이 고려해 보는 것을 중시하는 이유가 된다. 소설가로는 염상섭이 눈에 뜨인다. 필자는 그의 대표적인 소설, 즉 ‘만세전’ 혹은 ‘삼대’가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외국인으로서 이 작품을 읽으면 1920년대와 1930년대 한국 사회를 얼핏 엿볼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문학은 허구적인 요소가 드러나 있으나 그 점을 고려해서 문학을 통해 한국 역사, 문화 및 사회를 공부하게 되는 동기를 얻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염상섭의 두 가지의 작품을 읽으면 전자는 억압한 일제강점기에 한국 사회가 어떻게 몰락해 가고 있는지 한 지식인의 눈으로 볼 수 있고, 후자는 1930년대의 특히 한국 가족 제도가 어떤지를 알 수 있다. 리얼리즘 작가로서 널리 알려진 염상섭은 각 시대의 현실적인 요소를 소설 안에서 잘 포착했다. 윤동주와 염상섭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시인과 작가이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도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에 대해 더 공부할 수 있다. 문학의 매력이자, 한국 문학을 더욱 깊이 배우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은 외국인에게 한국 문학을 추천해 주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어를 할 줄 몰라도 다양한 언어로 된 번역판을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시도해 보시라.
  • [문화마당] 해외서 위상 높아진 한국문학, 그 이면엔/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화마당] 해외서 위상 높아진 한국문학, 그 이면엔/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지난 10월 15일, 김이듬 시집 ‘히스테리아’가 미국문학번역가협회가 주관하는 전미번역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전미 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수상작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번역상 중 하나로 꼽힌다. 영역은 제이크 레빈, 서소은, 최혜지가 공동으로 맡았다. 동시에 이 시집은 루시엔 스트릭 번역 문학상도 받았다. 이 상은 영어로 번역된 아시아 시 작품에 준다. 작년에는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최돈미 영역)이 수상했다.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느낌이다. 어느 영역에서든 문화의 해외 진출은 대체로 ‘수용자 집단의 관심ㆍ평가ㆍ적극 수용’ 단계를 밟아 확산된다. 첫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정부 등 공적 기관이나 민간 문화재단의 지원을 통해 해당 언어의 수용자를 생성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문학에서는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 등이 꾸준히 이 역할을 감당했다. 번역원은 2020년 8월 말 기준으로 38개 언어권에서 1874건의 번역, 40개 언어권에선 1447건의 출판 활동을 누적 지원해 왔다. 둘째 단계에서 좋은 평가를 얻는 데에는 작품의 역량과 번역의 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으로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한 후 ‘한강 이펙트’가 작용하면서 한국문학에 대한 해외 평가가 달라졌다. 편혜영의 ‘홀’(셜리 잭슨상), 황석영의 ‘해질 무렵’(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일본번역대상), 손원평의 ‘아몬드’(일본서점대상 번역부문),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그리핀 시문학상) 등 해외 수상 소식이 꾸준하다. 아직 위태롭지만 셋째 단계에 접어든 조짐도 보인다. 영미의 펭귄랜덤하우스와 하퍼콜린스, 프랑스의 갈리마르와 로베르 라퐁, 스페인의 플라네타, 일본의 지쿠마쇼보와 하쿠스이샤, 터키의 도안 등 각국의 대형 출판사들이 내놓는 우리 문학이 늘고 있다. 독자 반응이 좋아서다. ‘채식주의자’에 이어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26개국에 소개되고, 일본 21만부를 포함해 외국에서 60만부 가까이 판매되는 등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맘충’이 보편의 언어라는 것을 증명했다. 번역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0월 현재 외국에서 출간된 한국문학 서적은 총 4315권이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순으로 활발했다. 유럽에선 러시아어ㆍ체코어ㆍ폴란드어로, 아시아에선 베트남ㆍ타이ㆍ몽골로 확산하고 있다. 작가는 황석영, 고은, 신경숙, 한강, 이문열 순이고 젊은 작가 중에선 김애란이 오롯하다. 작품은 ‘토지’, ‘엄마를 부탁해’, ‘채식주의자’, ‘구운몽’, ‘태백산맥’, ‘소년이 온다’ 순으로 장편소설이 압도적이다. 이러한 성과에는 데버라 스미스, 최돈미 등 뛰어난 번역자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최돈미는 올해 자기 시집으로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라 있는 등 미국 문단 내 활약이 눈부시다. 지난 20년 동안 번역원 산하 아카데미를 통해서 양성한 한국문학 전문 번역자 1000여명의 기여가 컸다.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주요 7개 언어에서 이제 아랍어, 힌디어, 터키어 등으로 전략적 확장을 꾀할 때가 된 듯하다. 얼마 전 케빈 오록 신부가 선종했다. 1982년 외국인 최초로 한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신부는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문학의 영어 번역에 헌신해 왔다. 최인훈의 ‘광장’,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비롯해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등 우리 시조들이 그의 손을 거쳐 영어권 독자에게 읽혔다. 오록 신부의 빈자리를 메울 번역가들이 더 많이 배출돼야 한다. 그만한 인물을 키우기 위해 충분히 지원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개인의 관심과 애정에 기대 한국 문학이 확장하기만 기다릴 일이 아니다.
  • 기쁨나눔재단-이주글로벌 컴팩트 대응 시민사회 회의, 국내 가이드북 선봬

    기쁨나눔재단-이주글로벌 컴팩트 대응 시민사회 회의, 국내 가이드북 선봬

    ‘이주 글로벌컴팩트 대응 시민사회 회의’는 지난 20일 ‘기쁨나눔재단’과 함께 ’안전하고, 질서 있고, 정규적인 이주를 위한 글로벌 컴팩트’ 이주 글로벌 컴팩트 가이드북(이하 ‘이주 글로벌 컴팩트 가이드북’)을 발간했다고 밝혔다.이주 글로벌 컴팩트는 2018년 12월 대한민국을 비롯해 152개의 유엔 회원국이 참여해 채택한 국제문서다. 이주민이 보편적 인권과 근본적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는 각국 약속의 산물이며,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인권조약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해당 가이드북은 국내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변호사, 학자들이 협력해 제작했다. 국내 이주 및 난민 활동가들과 변호사 학자들이 연합해 이주의 모든 차원을 아우르는 23개 목표에 걸친 내용 전반을 설명하고 국내 이행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목표 이행을 위해서 유엔 이주 네트워크 설립 및 각국 이행 평가를 위한 정기적인 국제회의 및 지역별 회의 등 구체적인 이행 절차도 포함하고 있다. 이 가이드북에 포함된 이주 글로벌 컴팩트 번역본은 국내에 최초로 정식 소개되는 번역본으로 타국에서도 유사 사례를 찾을 수 없다는 게 관계자 측은 설명했다. 이주 글로벌컴팩트 대응 시민사회 회의는 가이드북 발간을 시작으로 국내 이행 촉구와 이행 평가를 위한 활동을 지속해 나갈 전망이다. 아울러 이주인권 의제를 중심으로 이주 글로벌 컴팩트를 해석하고 국내법ㆍ제도의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이주 글로벌 컴팩트 가이드북’을 발간할 계획이다. 기쁨나눔재단 심유환 상임이사는 “이렇게 의미 있는 책을 여러 시민단체와 협력해 내놓게 되어서 뜻 깊은 마음”이라며 “이 책이 이주 글로벌 컴팩트의 실질적인 국내 이행을 위한 생산적인 사회적 논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집필에 참여한 전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김철효 박사는 “이주 글로벌 컴팩트에 대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평가회의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한국 정부는 이행 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있다”며 “가이드북이 이행 촉구를 위한 이주민 당사자와 시민단체들을 위한 좋은 길라잡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기쁨나눔재단은 국제구호개발 비영리기관으로 이주민 및 난민 지원 사업, 취약계층 청소년 지원(보호종료 아동 지원)에 대한 국내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한편 이주글로벌컴팩트 대응 시민사회 회의는2017년 결성했으며 소속 단체로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재단법인 동천, 사단법인 두루,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외국인이주ㆍ노동운동협의회,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 위한 모임, (사)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 친구들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똥밭에서 굴러 봐야 사람이다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똥밭에서 굴러 봐야 사람이다

    대학교 2학년 때 교직과목 신청을 했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졸업 후 생계 문제도 고민해야 했기에 교직 이수를 해서 교사가 되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범대 교학과에서 부르더니 검정고시 출신이 교직을 신청하려면 먼저 이런저런 서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나오지 못한 내가 어떻게 교사가 돼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을 가르치겠느냐는 얘기였다. 번거롭기는 해도 서류를 준비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으나 난 그 자리에서 교직을 포기하고 수강 취소를 했다.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교육이란 사람을 가르치고 이끄는 일이 아닌가. 나 같은 놈이 함부로 덤빌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교육”이란 과연 뭘까? 40년 가까이 세월이 지난 후 조금씩 회의가 드는 요즘이다. 정상이란 무엇인가? 부모가 이끄는 대로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차곡차곡 학력을 쌓아야 정상적인 교육일까? 능력이나 인격도 좋은 성적, 좋은 대학에 정비례해 생기는 걸까? 나라가 학교가 부모가 정해준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비정상이 되는 사회, 그게 정상적인 교육이었던 걸까? 국정농단,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기어이 엘리트들의 민낯을 보고 만다. 일류대학, 일류학과가 키워 냈다는 인재들, 검사, 의사, 박사 등,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의 언행에는 판단 능력이나 합리성은커녕 최소한의 양심도 염치도 없는 듯 보인다. 악에 받친 혐오와 막말, 조금의 특권도 절대 내려놓지 않으려는 아집, 민중 따위는 개ㆍ돼지로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 온갖 편법과 탈법, 거짓으로 혹세무민하고도 누구 하나 책임지기는커녕 뻔뻔스럽기만 하다. 입으로야 매일 국민을 거론한다지만 정말 우리들의 조소와 조롱이 들리기는 하는 걸까? 아니면 그마저도 개·돼지가 짖는다고 무시하는 걸까? 도대체 어떻게 자라고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저렇듯 후안무치에 안하무인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그 일면을 본 듯도 싶다. 어린 후배들이 민주화 시위하는 모습을 보며 대학원 선배들은 마치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다 이해한다는 듯 훈수를 하고 지적질을 했다. 결국 타인을 위해 한 번도 아파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 혼돈의 시대에도 시위현장에 들어가 보지 않고, 오로지 부모가 이끄는 대로 자기만의 영달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 몸과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만 세상을 이해하고 경험해 본 사람들…. 어쩌면 우리네 교육이란 그런 사람들만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높은 자리에 올라 온갖 특권을 누리는 것이 배움의 목표가 되고 홍익인간(弘益人間) 따위의 교육이념은 고리타분한 도덕론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교직 수업을 포기했을 때 아쉽기는 했어도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억울은 오히려 요즘의 심정이다. 그런 교육을 하자고 내게서 기회조차 빼앗아버렸다는 말인가? 여전히 이런 교육이, 이런 대학이 정상이라고 확신하는지 되묻고 싶다. 학력(學歷)이 학력(學力)이 되지 못하고 지식이 지혜에 이르지 못하면 교육(敎育)은 교욕(校慾)에 불과하고 대학은 무지한 괴물들을 양산하고 만다. 나이 60이 넘어서야 비로소 깨달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오로지 자기 영달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답게, 마치 특혜의 고치라도 뒤집어쓴 듯, 자기들 외에 누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엘리트의 옥상에 서서 내려다보면 천하가 다 내 것인 양 우스워 보이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실패해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게 세상일이다. 우리 동네 텃밭 아저씨도 아는 얘기를 저들만 모르고 있다.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가 아니라 똥밭에서 굴러 봐야 비로소 사람이다.
  • 위안과 그리움… 마종기의 詩, 무겁고 차가운 외로움 떨치다

    위안과 그리움… 마종기의 詩, 무겁고 차가운 외로움 떨치다

    마종기 시인은 우리 시단에서 퍽 이채로운 위상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생애의 많은 시간을 미국에서 살았지만 그는 슬럼프 없이 균질적 시 쓰기를 해 온 모어(母語)의 사제요, 순수 참여의 틀을 넘어 지성적 사유를 통한 위안의 시 쓰기를 지속해 온 서정의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그의 열두 번째 시집 ‘천사의 탄식’이 나왔다. ‘시인의 말’에 “아주 멀고 멀리 산 넘고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고달픈 말과 글을 모아서 고국에 보낸다”라고 적었던 그 작품들이 실렸다. 30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귀국해 국내 독자들과 만나고 지인들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 왔던 그였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그러질 못했다.시인은 시집 뒤표지 글에서 “시는 사랑의 한 표현 방법이고 체온 나눔이고 생환 훈련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한세상 시를 사랑하며 살았다”라고 했다. 그 세계에 대한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메일과 카카오톡을 동원해 지난날로부터 이번 성과에 이르기까지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올해는 봄에 귀국하려고 시집 출간도 그렇게 잡아 놓았는데 갑자기 터진 코로나 난리 때문에 귀국을 못했습니다. 지난달에는 영시집 ‘Forty Two Greens’(마흔두 개의 초록)가 뉴욕의 코드힐 프레스(Codhill Press)를 통해 출간됐습니다.” 거기서도 여전히 그는 현재형의 시인이다.●체온 나눔의 시간들 그리고 사람들 이번 시집에 ‘아내의 꽃’이라는 정갈한 시가 있다. 평생 이국에서의 외로움을 함께해 온 아내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그에게 아내는 언제나 “따뜻해지고 느긋해져서/ 어깨가 다 가벼워지는” 세월을 나누어 온 반려자일 것이다. “아내는 평범한 여성입니다. 미국에 와서 결혼한 이후 너무 외로워 시를 썼고 서울 친구들에게 발표를 부탁하며 의사 생활을 이어 왔는데 시를 읽어 달라고 할 사람이 없었어요. 아내와는 시에 대해 나누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이 바로 그 외로움 때문에 시를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영화 ‘패터슨’에도 인용된 의사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인이 되는 첫째 조건이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되뇌면서, 어쩌면 아내는 좋은 시를 쓰라고 그동안 자신의 시에 관심을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요즘 아내가 제 시를 읽겠다고 합니다.” 두 분의 사랑과 체온 나눔의 시간이 지극한 울림으로 전해져 온다.마종기는 1939년 일본 도쿄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과 서양무용가 박외선 선생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학문적, 예술적 역량과 감성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게 틀림없을 것이다. 시인은 미국으로 향할 때 손에 50달러를 쥐어주며 헤어졌던 선친의 급작스런 별세 소식에 서러움과 죄책감을 토로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전형적인 문사셨어요. 청빈한 삶을 기리셨고 가난한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예술가형이셨지요. 단 한 가지 무용에만 몰두하셨던 분이죠.” 청년 마종기는 연세대 의예과에 입학했고, 1959년 1월에 ‘현대문학’ 초회, 이듬해에 완료 추천을 받고 시인이 됐다. 올해는 그러니까 등단 갑년(甲年)이 되는 셈이다. 마종기는 드뷔시나 사티 같은 인상파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의 시도 그 방향으로 가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우선 살아남아야 했고, 시는 자신에게 먼저 위로가 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마종기의 초기시에는, 이국 생활을 예감이라도 한 듯, 처연한 유랑 의식이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시인은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 영원한 떠돎이라는 실존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그에게 시는 천천히 위안과 그리움의 세계로 번져갔다. 그런 세계를 함께해 준 스승은 누구였을까? “한 분이라면 최민순 신부님을 들겠습니다. 가톨릭계에서는 존경받는 영성 신학자셨고 이탈리아어 ‘신곡’이나 스페인어 ‘돈키호테’를 직역해 세간을 놀라게 한 번역가셨지요. ‘현대문학’ 등단 소감도 신부님께 올리는 편지 형식으로 썼지요. 선친 장례 미사도 명동성당에서 친히 챙겨 주셨습니다.” 문인 중에는 박두진 선생을 들었다. 그분의 착하고 조용하신 성정도 좋아했고 그분의 단호한 강골도 좋아했다. 학생 때부터 선생을 따랐고, 그분이 ‘현대문학’에 등단시켜 주셨고, 첫 시집 ‘조용한 개선’(1960) 서문도 써 주셨다. 그렇게 부모님과 스승에 대한 체온 나눔의 기억으로 그는 이국 생활을 견뎌 왔고 지금까지 ‘마종기’일 수 있었으리라.●‘변경의 꽃’에서 ‘아내의 꽃’까지 1965년 공군사관학교 군의관이었던 마종기는 그해 여름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성명에 이름을 올렸다가 군인은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심문을 받고 감방에 수용됐다. 기소유예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쫓기듯 나와 산 것이 벌서 55년째다. 그는 1968년과 1972년에 황동규, 김영태와 함께 3인 시집 ‘평균율’을 두 번 펴냈다.“그 친구들과 함께 펴낸 ‘평균율’은 제게 큰 의미가 있지요. 고국을 떠난 게 1966년이었고 5년간 미국에서 수련의로 살아낸 그 시절은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고 한편으로는 저를 괜찮은 의사로 만들어 주기도 했어요. 그때 두 친구가 우정의 선물을 준 거죠.” 이번 시집 표지 캐리커처도 김영태가 그린 것이 들어갔다. 언젠가 시인은 “김영태 시인이 보낸 편지가 제일 많더라”고 추억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을 향한 시인의 사랑이 깊게 전해져 온다.1969년에 방사선과 전문의에 합격한 뒤로 그는 의대 교수로서 평화로운 삶을 누린다. 그 과정에서 낸 세 번째 시집 ‘변경의 꽃’(1976)은 이국에서 살아온 이의 떠돌이 의식과 그리움을 담은 결실이었다. ‘변경의 꽃’이야말로 이국에 살던 시인의 초상이 아니었겠는가. 그러고 보니 ‘변경의 꽃’으로부터 그는 ‘담쟁이 꽃’, ‘박꽃’, ‘축제의 꽃’으로 ‘꽃’을 변형해 오다가 이번에 ‘아내의 꽃’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시인은 가장 아끼는 시집으로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를 들었다. 나도 ‘이슬의 눈’(1997)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시집이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혼돈의 시간을 겪어 정서적으로 시의 도움이 절실하던 때의 시집이라 더 애착이 간다”고 떠올렸다. 한 편 읽어 보자.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바람의 말’) 그 ‘바람의 말’을 넓혀 온 트라이앵글이 의학과 시와 신앙이 아니었을까? ●의사-시인-신앙인 ‘선순환의 삶’ “제 시에서 의학과 신앙이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의사였으니 의학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은 자연스럽지요. 신앙 역시 외국에서 살아오느라 더 깊어지거나 흩어졌을지 모르지만 가톨릭 교인으로 60년 살아왔으니까요.” 그는 의학이나 신앙이 시의 모멘텀이 되는 때는 있었지만 가급적 그 몸체가 다 보이는 것은 경계해 왔노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시집은 조금 달랐다. 시인은 지난봄 원고를 보내고 첫 교정지를 받았는데 팬데믹으로 모든 게 정지되자 다시 찬찬히 원고를 들여다보았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후회가 없겠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때 등단 소감에 좋은 믿음의 시인이 되겠다고 썼던 생각이 났고, 몇 편 버리고 서너 편 신앙적 시들을 넣게 됐다고 한다. “의학은 육체의 치유, 시는 정신의 치유, 신앙은 영혼의 치유를 위한 매개체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다고 믿음과 시를 합치면 감동이 떨어지게 되고, 의학과 시도 한쪽으로 기울면 둘 다 역할을 못할 것입니다. 서로 우러르고 가까이에서 아끼는 상태가 돼야겠지요.” 그만큼 ‘의사’와 ‘시인’은 어느 하나가 주(主)가 되고 다른 하나가 종(從)이었던 것이 아니라 마종기에게 상호의존적인 수평적 축이었던 셈이다. 선진 의학을 5년간만 공부하고 돌아가겠다고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틈에 시인은 그 땅에서 반세기 이상을 살았다. 오하이오에서 의사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플로리다로 옮겨 사는 시인은 아들 셋과 손주들이 멀리 살고 있어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게 전부라고 한다. 평생 고독했지만, 자신의 시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분을 만나면 갑자기 자신을 겹으로 싸고 있던 무겁고 차가운 외로움이 다 날아가버린다고 했다. 의사-시인으로 “한길로 살아온 길이 외진 길”(‘이슬의 명예’)이었다지만, 그의 ‘변경의 꽃’으로서의 시작(詩作)은 지금부터 다시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 마종기’의 생으로 시작될 것이다. 위안과 그리움을 “내 나라도 보이던 따뜻하고 편한 그 색깔”(‘노을의 주소’)에 담은 ‘천사의 탄식’이 보내준 소중한 만남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체험기] “미니링크! 카톡 읽어줘”…운전중 안전하게 카톡 확인되네

    [체험기] “미니링크! 카톡 읽어줘”…운전중 안전하게 카톡 확인되네

    인공지능(AI) 비서에 한번 맛을 들리면 헤어나기 힘들다. TV를 리모컨으로 켜듯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내 목소리가 스마트폰의 리모컨이 된다. 출근 준비를 하는 도중 AI 비서에서 날씨를 물어본 뒤 그날 입을 옷을 정하곤 한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 입을 때에는 “음악을 틀어달라”고 말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하루동안의 업무 스트레스를 음악으로 다스릴 수 있다. 처음에는 제대로 작동이 될까 반신반의했지만 한번 해보고는 이젠 별의 별 것을 다 AI비서에게 시키는 사람이 됐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최근에 새로 내놓은 ‘미니링크’를 사용해보니 카카오톡 송수신 기능에 특화된 AI 음성 인식 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굳이 미니링크로 카카오톡을 보내보면 편리한 데다 신기하기까지 했다. 기기 우측의 버튼을 한번 누르면 카카오톡에 온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미니링크 스피커를 통해 들을 수도 있고 AI스피커·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에서도 재생이 가능하다. 우측 버튼을 짧게 두번 누르면 읽고 있던 카카오톡 대화방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기기가 음성을 제대로 읽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카톡을 보내려 하면 다급한 목소리로 “아니 보내지마”라고 말해 취소해야 한다. 전면에 커다란 호출 버튼을 누른 뒤 ‘카카오톡 읽어줘’라고 요청해도 된다. 누르기 편한 전면 버튼 쪽을 더 많이 이용했다.카카오톡 메시지 보내기 기능은 운전중에 효과가 극대화됐다. 가끔 운전 도중 카카오톡이 오면 신호등 앞에 멈춰서기 전까지 메시지 내용이 너무 궁금했는데 미니링크를 이용한 뒤부터는 그러지 않아도 됐다. 차량용 거치대도 동봉돼 있어서 설치해놨다가 필요할 때마다 전면 호출버튼을 누르니 편리했다.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틀어 달라고 해도 된다. 음악도 들을 수 있지만 카카오 계열 음악 서비스 업체인 ‘멜론’하고만 연동되는 건 아쉽다. 집에 있을 때도 다른 AI비서 대신에 미니링크를 종종 이용하곤 했다.‘나는 배가 고프다’라는 말을 영어로 번역해달라고 명령하면 곧바로 ‘I am hungry’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영어 발음을 귀에 익히는 효과도 있어서 어학 공부를 할 때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좀 긴 문장을 번역해달라고 하면 갑자기 미니링크가 무슨 명령어인지 못 알아듣는 일이 잦아서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운동을 할 때가 많은데 그때도 미니링크에게 ‘스쿼트 하자’라고 명령하니 번호를 붙여가며 ‘20개씩 4세트’의 스쿼트를 독려했다. 홀로 속으로 숫자를 새면서 할 때는 좀만 힘들어도 잠시 쉴 때가 많았는데 미니링크가 구령을 붙여주니 꾀를 안 부리고 운동을 마칠 수 있었다. 팔굽혀펴기나 크런치, 플랭크도 하자고 요청하면 미니링크가 같은 방식으로 도와준다. 또한 명상을 하자고 할 수도 있고, ‘공부용 소리를 틀어줘’라고 하면 그에 맞는 음향이 나와서 집중력이 더 높아지는 효과가 있었다.밖을 돌아다닐 때는 동봉된 줄을 이용해 목걸이처럼 사용할 수 있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의 라이언과 죠르디 모양으로 앙증맞게 생겼기 때문에 액세서리 같은 느낌도 난다. 가끔씩은 ‘어울리지 않게 왜 이렇게 귀여운 것을 목에 걸었냐’는 지인의 비판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며칠 착용하고 다니니 ‘원래 저런 애’라며 신경을 안 쓰는 분위기가 생겼다. 고성능 마이크가 두 개 내장돼 있어서 엄청 시끄러운 곳이 아니라면 시내 길거리 등에서도 음성 인식이 잘되는 편이었다. 길을 가다 갑자기 내일 장봐야 할 물건이 생각나서 ‘샴푸 메모해놔줘’라고 말하면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 기능으로 해당 메시지가 전달됐다. 무게도 31g에 불과해 목에 걸었을 때 전혀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가벼울 수 있었던 것은 배터리가 300mAh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배터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기술이 적용돼 한번 충전하면 5일 이상 사용 가능하다.주로 좋은 점을 신나게 열거했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헤이 카카오’라고 말로만 부르면 알아듣고 실행되는 게 아니라 처음에 일단 기기의 버튼을 눌러야 반응을 한다는 것이 가끔 번거로웠다. 카카오톡을 보낼 때도 누구에게 보내달라고 하면 미니링크가 제대로 찾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무엇이라 번호를 저장해놨는지 기억이 안나서 이름과 직책을 수차례 외쳤지만 ‘XX전자 XXX 부장님’이라는 식으로 복잡하게 저장해놓은 사람에게는 카카오톡이 보내지지 않는 일이 있었다. 휴대성이 강조된 AI 음성 인식 기기이지만 정작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남의 시선이 신경쓰여 미니링크에 명령어를 입력하기 수줍을 때가 많았다. 스마트폰에서 사용중이던 AI비서로는 대체가 안 되는 기능들이 대거 구비돼야 사용성이 더 높아지는데 아직까지는 차별성 있는 기능들이 많이 장착되지는 않았단 점도 향후 풀어야 할 숙제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취약계층 청소년 돕는 비대면 봉사활동 시범사업 추진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취약계층 청소년 돕는 비대면 봉사활동 시범사업 추진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이사장 이광호)은 취약계층 청소년의 학습 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진행되는 비대면 봉사활동 시범사업을 8월부터 오는 11월까지 운영한다. 비대면 봉사활동 시범사업은 ▲시각 장애 청소년을 위한 영어 음성 책자 제작 및 점자 책자 제작 지원 ▲청각 장애 청소년을 위한 온라인 교육 및 홍보 영상물 제작 ▲다문화 청소년을 위한 화상시스템을 활용한 온라인 돌봄 활동 등 총 3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시각 장애 청소년을 위한 영어 음성 및 점자 책자 제작 지원 활동은 국립서울맹학교와 협력해 14명의 중·고등학생 봉사자가 9월 말까지 총56권의 영어 음성 및 점자 책자 제작을 진행한다. 청각 장애 청소년을 위한 온라인 교육 영상 및 홍보 영상 제작 활동은 12명의 청소년이 오는 11월까지 참여해 국립서울농학교 수업에 필요한 교육 영상 제작과 홍보 영상물을 제작하는 봉사활동이다.다문화 청소년을 위한 화상시스템을 활용한 온라인 돌봄 활동은 10월부터 11월까지 대학생 봉사자와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에서 모집한 다문화 초등학생을 연계해 학습 및 고민·진로 상담 등을 진행하는 활동이다. 또한 다문화 청소년의 메이커 활동을 도와 지역사회에 필요한 물건을 제작함으로써 사회 참여를 경험해 볼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메이커 활동은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서 개발한 활동으로 목재를 이용해 지역사회에 필요한 물건을 제작, 기부하는 일련의 사회 참여 활동이다. 아울러 매 회 지도자가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비하고자 한다. 시각 장애 청소년을 위한 비대면 봉사활동에 참여한 성심여자고등학교 유선아 학생(17)은 “이번 점자책 제작을 통해 시각 장애인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며 “영어 번역과 음성 책자 제작을 하면서 나도 함께 성장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진흥원은 다양한 협력 기관과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해 전문성 및 효과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며, 활동이 종료되는 12월에는 비대면 봉사활동 운영 사례와 성과를 담은 자료집을 제작 및 배포해 청소년들이 다양한 비대면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이광호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은 “취약계층 청소년의 학습적 어려움 해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청소년 봉사자가 자신의 재능을 활용한 나눔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청소년자원봉사활동의 참여 방식의 하나로 비대면 봉사활동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디지털 세상이 만들어낸 ‘가격의 착시’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디지털 세상이 만들어낸 ‘가격의 착시’

    우리에게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카네기의 자기관리론’ 같은 책들로 유명한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미국에서 처세술, 자기계발서라는 장르를 탄생시켜 전 세계에 퍼뜨린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의 책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잘 팔린다. 하지만 그의 배경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진정한 성공 비결은 ‘성(姓) 바꾸기’였다고 한다. 그의 본명은 데일 카네기(Carnagey)였고, ‘철강왕’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사업가 앤드루 카네기(Carnegie)와는 전혀 무관한 가문의 인물이다. 하지만 처세술과 자기계발서를 팔기 위해서는 당시 미국인들에게 성공한 사업가로 각인된 앤드루 카네기와 영어철자가 같은 Carnegie로 바꾸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고,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많은 사람이 ‘카네기’라는 이름만 보고 그의 책을 갑부가 쓴 성공서로 생각했고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분들이 많겠지만, 그렇다고 그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미국에서는 합법적으로 이름과 성을 바꿀 수 있다. 그가 앤드루 카네기와 관련 있다고 말한 적이 없었고, 단지 그런 인상만 주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의 책을 철강왕이 쓴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베이조스의 전략 소비자들에게 착각을 유도하는 방법은 데일 카네기가 만들어 낸 것도, 그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도 아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다. 아마존이 2007년에 선보여 돌풍을 일으킨 킨들(Kindle)은 세계 최초의 전자책 단말기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 제품이 최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의 사업전략 때문이다. 베이조스는 방송에 나와 제품을 소개하면서 “킨들에서는 전자책을 9달러 99센트에 살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아마존이 출판사들과 그 가격에 책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출판사들에는 금시초문이었다. 대개 15달러 안팎이던 책값을 킨들에서 30% 이상 할인해 주기로 한 출판사는 없었다. 그런데 베이조스는 왜 일방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소비자들에게 착시현상을 일으키기 위함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소비자들은 ‘아, 종이책의 인쇄, 물류, 판매에 드는 비용이 책값의 30%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비용을 뺀 책의 ‘내용값’은 10달러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물론 베이조스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킨들에서는 모든 책이 10달러 이하’라고 선언한 순간 사람들 머릿속에서 전자책의 가격은 정해지고, 10달러가 넘는 책은 ‘비싸다’라는 심리적 저항감이 생기게 된다. 베이조스가 노린 것은 그런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감이다. 독자의 눈에 출판사들은 변화에 저항하면서 지나친 이익을 가져가려는 ‘적’으로, 아마존은 독자와 저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좋은 기업으로 보이게 하려는, 기가 막힌 전략이었다. 다만 이 전략에 문제가 하나 있었다면 출판사들이 그 가격에 책을 공급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 따라서 그 이후로 아마존과 출판업계 사이에 길고 긴 싸움이 이어지게 됐다. ●기준점 효과 얼마 전 배달대행업체들이 배달료를 인상하자 언론이 앞장서서 소비자들의 불만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3000원짜리 커피 하나 주문하는데 배달료가 4000원이라니”라는 말로 요약되는 이 불만은 커피 한 잔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그걸 배달하는 비용보다 비싸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무슨 자료를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음식점에서 기다렸다가 받은 음식을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위험천만한 질주를 해서 정해진 시간에 맞춰 계단을 뛰어오르는 사람들의 노동의 가치를 얼마나 산정해야 하는지 소비자들은 잘 모른다. 그들이 아는 것은 ‘예전에는 배달비가 3000원이었다’는 사실뿐이다. 그 가격이 어떻게 산출됐는지, 그게 적절한 산출이었는지는 상관없고, 올랐다는 사실이 싫은 것이다. 이를 행동경제학에서는 앵커링(anchoring) 혹은 기준점 효과라 부른다. 연봉이든 가격이든 한 번 정해지면 그 후에 일어나는 협상은 그 숫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이다. 베이조스가 킨들을 들고 나와서 출판사와 협의도 없이 9달러 99센트를 대대적으로 선언한 이유는 바로 이 효과를 노린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가격이 기준점이 돼 버리면 출판사와 서점들은 하루아침에 소비자들에게 그보다 높은 가격을 설득해야 하는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베이조스가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은 전자책에서만이 아니다. 그는 아마존에 연간 회원으로 가입하면 모든 급송 배달이 ‘무료’라는 조건을 내걸어 큰 인기를 끌었다(현재 미국 가정의 절반 이상이 이 서비스에 가입해 있다). 그런데 배달이 무료라는 건 무슨 뜻일까. 배달, 특히 급송 배달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따라서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당연히 소비자가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 무료다. 회원비는 있지만 많지도 않고, 정액이기 때문에 무제한 무료 급송 배달을 회원비로 충당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돈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바로 투자자들이다. 이들은 아마존이 전자상거래 시장을 완전히 평정하면 큰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하며 아마존에 투자했고, 아마존은 그들에게서 받은 돈으로 소비자들의 배달비를 내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마존과 경쟁할 상대가 없어지고, 소비자에게 아마존 외의 다른 대안이 없어질 때 즈음이면 배송비는 야금야금 오를 것이다. 하지만 부수적인, 그러나 더 중요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바로 ‘배달(노동)은 싸다’는 착시현상이다. ●적정가격 3년마다 한 번씩 재검토의 대상이 되는 도서정가제의 개정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도서정가제를 폐지하자’는 주장과 오히려 ‘도서정가제를 더 강화하자’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 때문에 촉발된 이 논의는 궁극적으로 ‘책이라는 콘텐츠의 적정가격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도서정가제를 폐지할 경우 할인 폭이 커지고 가격은 내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책은 얼마가 적정가격일까. 사실 적정가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의 가격이 지금보다 크게 내려가도 책은 출간된다. 문제는 적정가격이 아니라 적정품질과 다양성이다. 우선 할인율이 커지는 순간 그 할인율을 적용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대형 온라인 서점 외에는 대부분의 소규모 서점들은 문을 닫게 된다. 이렇게 바뀌는 생태계에서는 수익성이 가장 중요하게 돼 흥행이 될 책들이 서점을 채우게 되고, 흥행성은 없어도 좋은 책을 쓰거나 번역하려는 작가들은 집필할 기회를 잃게 된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으로 촉발된 새로운 판짜기에서 ‘노동의 가치’나 ‘콘텐츠의 품질’ 같은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디지털 테크기업들은 ‘모든 정보는 공짜’라는 대전제 아래서 작동하고, 승차공유서비스의 운전자나 음식배달원 같은 긱(gig) 노동자들은 로봇으로 대체될 때까지만 유지해야 할 중간 단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들어 낸 콘텐츠, 사람이 하는 배달은 공짜가 아니며 사람은 (로봇이 대체할 수 있는) 노동력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엄연한 사실에서 고개를 돌리게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책의 가격이 낮아져도 똑같은 품질과 다양성을 가진 서적들이 지금보다 더 낮은 가격에 우리 손에 들어올 거라는, 전혀 근거 없는 환상을 심어 주고 자신들의 배달은 공짜이니 자기네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부추긴다. 그렇다면 아마존이 종이책 시장의 절반, 전자책 시장의 75% 이상을 장악한 미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며칠 전 뉴욕타임스에는 미국의 도서시장이 펭귄랜덤하우스 같은 소수의 대형 출판사들이 독식하는 세상이 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특히 베스트셀러를 띄워 주는 아마존의 알고리즘 때문에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출판계가 동질화하고 있고, 그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단다. 이들은 마치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가 독차지한 할리우드 영화판처럼 소수의 흥행작품으로 시장을 쓸어담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지불하는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물건의 값을 깎으면 모두가 똑같은 저가, 저품질의 제품을 소비하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배달비를 적게 지불하면 인간의 노동이 가치 없는 세상이 만들어진다. ‘비싼 건 비싼 값을 하고, 싼 건 싼값을 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맞다. 코드 미디어 디렉터 ■박상현은 한국과 미국에서 사회학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 사단법인 ‘코드’의 이사이며 미국 패이스대학의 방문 연구원이다. 다양한 매체에 테크와 미디어, 시각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라스트 캠페인’,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등을 번역했다.
  • [이경우의 언파만파] 인공지능과 말뭉치

    [이경우의 언파만파] 인공지능과 말뭉치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대부분 언론과 전문가들은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예측했다.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됐다. 정확한 예측도 있었는데, 바로 인공지능(AI)이었다. 그즈음 인공지능은 발전을 거듭해 스스로 학습하는 기술을 갖추게 됐다. 알려준 것만 아는 게 아니라 스스로 다른 것들도 익혔다. 이른바 ‘딥러닝’이다. 사람의 뇌가 생각하고 배우는 과정을 모방한 기술이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이기는 데도 딥러닝이 있었다. 딥러닝 기술을 장착한 인공지능에 ‘빅데이터’는 활짝 날게 하는 바람이 됐다. 빅데이터는 말 그대로 아주 거대한 양의 데이터다. 사전적 의미로는 기존 데이터베이스로는 수집하거나 저장, 분석 등을 하기가 어려울 만큼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문서나 이메일은 물론 음성, 영상, 이미지, 각종 소셜미디어의 게시물과 댓글까지 포함된다. 구글의 인공지능은 구글과 각종 소셜미디어 등에서 오가는 빅데이터를 이용해 선거 결과를 예측한 것이다. 번역 엔진도 빅데이터를 이용한다. 인공지능에 원문과 번역문을 학습시켜 언어 사이의 번역 규칙들을 파악하게 한다. 이때 질 좋은 언어 데이터가 많아야 정확도가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챗봇이나 인공지능 비서 등의 효율도 높아지려면 언어 데이터가 많아야 한다. ‘언어 빅데이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언어 빅데이터는 달리 말하면 ‘말뭉치’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1998년부터 10년간 ‘21세기 세종계획’이란 이름으로 말뭉치 구축 사업을 벌였다. 이 기간에 약 2억 어절의 말뭉치를 구축했다. 이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는 성과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후 10년간 이 사업은 중단됐다. 그사이 미국은 2000억 어절 이상, 중국은 300억 어절, 일본은 150억 어절 정도의 말뭉치를 구축했다. 2018년부터 다시 우리도 5년간 155억 어절을 목표로 말뭉치를 구축하고 있다. 이 결과의 일부가 지난주 공개됐다. 국립국어원이 ‘모두의 말뭉치’(https://corpus.korean.go.kr)에 공개한 자료에는 13종 18억 어절이 들어 있다. 최근 10년간의 신문 기사, 서적 2만 188종이 담겼다. 여기에 음성 대화, 메신저 대화, 방송 자료까지 들어 있다. 컴퓨터의 한국어 이해에 쓰이는 형태와 구문, 의미 등 언어 단위별로 분석한 자료도 1100만 어절이다. 저작권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이어서 누구나 파일을 내려받아 이용할 수 있다. 지속적인 뒷받침과 관리가 필요하다. 어문부 전문기자 wlee@seoul.co.kr
  • [서울광장] ‘진보 프리미엄’ 너무 오래 누렸다/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진보 프리미엄’ 너무 오래 누렸다/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시금치 한 단이 6000원을 육박했다. 물난리 통에 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 그 모양새가 집값 폭등과 닮기는 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집값 상승은 수해에 신선식품 물가 폭등과 비슷한 것”이라고 했다. 장마가 끝나면 시금치는 원래 가격으로 반드시 돌아온다. 벌써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농담처럼 치솟은 집값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나. 어떻게 아파트가 시금치인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부동산 정책에 국민 다수가 지지하고 있다”더니 등 떠밀려 처분한 자신의 강남 아파트는 “MB(이명박) 때도 올랐다”고 되레 화를 냈다. 네티즌들은 당장 팩트체크를 했다. 그 아파트는 MB 재임 기간 5000만원 올랐고, 문재인 정부 3년 만에 무려 5억원 뛰었다. 정치 셈법으로만 단련된 정치 언어들은 국민을 화나게 한다. 20년 집권쯤은 끄떡없어 보이던 여당 지지율이 야당에 최근 역전됐다. 코로나19 재확산 정국에 반등했다지만 예전의 지지율이 지속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청와대는 “자체 조사로는 대통령 개인 호감도가 여전히 높다”며 애써 태연하다. 그럴 때는 아닌 듯하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니라 뿌리내리는 시중의 언어들이다. 진보 정권에 무능, 오만, 불통의 수식어는 익숙해졌다. 파시즘, 전체주의, 신독재 이런 무참한 단어들이 자리를 잡는 중이다. 포퓰리즘과 전체주의를 자양분 삼았던 독재자들이 문 대통령과 여당의 행태에 골고루 은유되기를 반복한다. 대통령이 될 생각조차 없었던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도 처음부터 독재자가 되기로 마음먹지는 않았다. 기존 정당을 혐오하는 국민 분노를 업고는 놀랍게 변해 버렸다. 정권에 비협조적인 판사들을 찍어 냈고 의회를 건너뛰는 온갖 행정명령을 기록적으로 남발했다. “당신 같은 대통령”이라던 국민 환호가 “반민주 독재자”로 등을 돌리기까지는 2년 남짓. 민심이 시력을 교정하는 데는 그때나 지금이나 긴 시간은 필요치 않다. 외교부 장관은 뉴질랜드 외교관 성추행 문제를 놓고 “대통령이 불편한 위치에 계시게 된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엉뚱한 사과를 했다. 국정원장은 내정되자마자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겠다”는 일성을 공개했다.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히틀러를 “반은 평민이고 반은 신”이라는 프로파간다로 치켜세워 여론을 결집했다. 한때는 멀쩡했던 문학도가 스스로 상식을 팽개쳤던 이유는 하나다. 체제를 위해 히틀러 한 사람을 신화로 만들어야 했다. 상식을 이탈한 행태들이 권력 주변부에서 끊임없이 불거진다. 이른바 ‘조국백서’를 보면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어떻게 이런 궤변을 활자화할 수 있었는지 놀랍다. “한국 사회의 상층 엘리트들 사이에서 작동하는 일반적 관행과 도덕성에 비춰 보면 상식 범위 안의 일”이라며 조국 딸의 입시 비리 의혹은 비리가 아니라고 단정한다. 이런 퇴행들에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말이 있다. “정직하고 머리 좋은 사람은 절대로 좌파가 될 수 없다. 정직한 좌파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가 좋은 좌파는 정직하지 않다.” 40년쯤 전 세상을 뜬 프랑스 정치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의 일갈은 지금 우리 상황을 미리 본 듯하다. 한국 진보의 위기를 이 문장보다 더 아프게 때리는 말은 없다. 우연일까. 아롱의 명저 ‘지식인의 아편’은 거의 희귀 서적이다. 타계한 안병욱 교수의 34년 전 번역본만이 절판되지 않고 겨우 명맥을 잇는 수준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서점가만 일별해도 지금껏 우리가 진보 이론을 학문과 교양의 가치로서 얼마나 절대 우위에 뒀는지 체감할 수 있다. 진보 경제의 고전이자 진보 정부의 변함없는 부동산 정책 교본인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만 해도 그렇다. 여러 출판사가 다양한 해설 버전으로 경쟁하듯 내놓고 있다. 이런 현실은 보수가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국 정치 현실에서 오랫동안 약자였던 진보주의에 압도적 신뢰를 보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보가 누린 프리미엄은 크고 길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많은 국민들의 정신이 번쩍 들기 시작했다.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더 많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이미 나왔다. 진보의 전유물이던 ‘기본소득’이 보수 야당의 새 정강정책으로 채택된 마당이다. 세상이 달라졌고, 진보의 이름으로 프리미엄을 거저 얻어 가기에는 밑천을 너무 많이 들켰다. “내 편 네 편 가르고 말로만 민생을 외쳤다”는 조응천 의원의 자성을 계속 독백으로 무시해도 되겠나. 청와대와 여당은 더 늦기 전에 뜨겁게 반성해야 한다. sjh@seoul.co.kr
  • 속도 내는 불광천 문화벨트… ‘은평 컬처노믹스’ 새길 연다

    속도 내는 불광천 문화벨트… ‘은평 컬처노믹스’ 새길 연다

    서울 은평구는 ‘북한산 큰 숲, 내일을 여는 은평’이라는 슬로건처럼 북한산, 봉산, 앵봉산, 이말산, 백련산, 비단산 등 6개의 산과 불광천, 진관천 등 2개의 하천이 흐르는 천혜의 자연을 갖춘 도시다. 조선 시대에는 사신이 오가는 사행길로서 정치, 외교, 군사, 문화적으로 중요한 길목이었으며 북으로는 의주, 남으로는 부산까지 남북의 양끝에서 천리라는 뜻의 ‘양천리’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국내 유일 북한산 한문화체험특구를 비롯해 천년고찰 진관사, 사계절 각기 다른 꽃이 피는 도심 속 힐링 공간 봉산 편백숲, 벚꽃길이 멋진 불광천, 도시재생의 모범사례 산새마을, 구산동 도서관마을 등 다양한 문화관광 콘텐츠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문화는 곧 은평구의 미래 먹거리”라고 말하는 김미경 은평구청장을 지난달 29일 만나 취임 2주년을 맞은 소감과 ‘은평식 컬처노믹스’에 대해 들었다. -왜 문화에 집중하는가. “은평에서 46년간 살아온 은평 토박이이다 보니 누구보다도 은평만의 고유한 스토리와 자랑거리를 잘 안다. 그런 문화적인 자랑거리를 경제 에너지로 변화시키고 싶다. 현재 은평구는 자급자족할 만한 마땅한 산업구조가 없는 상황이다. 은평구가 가진 문화관광 콘텐츠를 최대한 활용해 도시 위에 문화를 입히는 일이야말로 은평의 미래 먹거리를 마련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주민의 쉼터인 불광천을 방송문화 거리로 바꾸는 사업이 착실하게 진행 중이고 은평의 문화 콘텐츠를 묶어 문화관광벨트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불광천 문화관광벨트 조성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은평이 보유한 문화 콘텐츠가 다양하지만 개별화돼 종합적인 관리가 미흡하고 문화예술단체들의 활동이 부분적, 일시적으로 전개돼 발전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지역 문화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문화예술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가 판단했다. 상암동~불광천~혁신파크~한문화특구로 이어지는 문화벨트 구축으로 미래 문화관광산업을 육성해 나갈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뜸하지만 수색역 맞은편인 상암동은 각종 방송국이 있고 많은 연예인이 오가다 보니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자연스럽게 은평으로 유입시킬 계획이다. 올해는 신사교에서 신응교 사이를 1구간으로 지정하고 방송문화종합센터 건립과 불광천 환경개선 사업을 집중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DMC역 인근 삼표산업 기부채납 부지에는 다문화박물관이, 증산 공공주택 내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에는 케이팝 뮤직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진관동 기자촌에는 국립한국문학관이 건립될 예정이며 그 인근에 한국고전번역원, 사비나미술관이 이미 개관해 운영 중이다. 진관사, 은평한옥마을,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한문화체험시설 등도 유기적으로 연결할 계획이다.” -모든 발전은 교통이 뒷받침돼야 할 텐데, 여전히 교통이 열악한 편이다. “2008년 이후 은평뉴타운과 고양 삼송, 원흥, 향동, 지축 지구 등 신도시 공공주택의 급격한 공급 확대로 교통수요가 나날이 늘어가는 데 반해 광역교통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신분당선 서북부연장선 사업이 조기 착공돼야 한다. 해당 사업은 2016년 서울 서북부지역의 광역교통난 해소를 목적으로 용산~은평뉴타운~삼송 간 약 18.6㎞를 연결하는 광역철도로 지정됐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조사 관계기관 중간점검회의 시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해 사업 추진이 어렵다는 의견을 들었다. 하지만 신분당선 연장선 예비타당성 보완 및 주민 서명을 추진했다. 은평구는 경제성 논리만을 앞세운 예비타당성 제도를 개선해 통일로의 교통정체 해소 및 서울 서북권의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핵심 광역교통수단인 신분당선 연장선이 반드시 조기 착공돼야 하며 이를 위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고자 한다.”-민선 7기 임기 절반을 돌았는데 기억에 남는 정책이 있다면. “은평구민 49만명 중 28만명이 지지 서명을 해서 국립한국문학관을 유치한 게 기억에 남는다. 국립한국문학관은 내년 10월에 착공해 2023년 12월 개관을 목표로 한다. 또 진관동에 국제 규격의 빙상장과 인라인 롤러장을 유치했는데 목동 아이스링크처럼 향후 지역의 체육 랜드마크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 밖에 서울연구원 유치, 서울시립대 제2캠퍼스 유치 등이 기억에 남는다. 또 은평구를 자원순환 도시로 만든 점이다. 지난해 2월 ‘자원순환도시 은평추진단’을 발족해 자원순환 및 재활용, 생활폐기물 감량을 내용으로 지속적인 캠페인을 하고 있다. 특히 ‘모아모아 사업’은 매주 1회 재활용품 거점 배출일을 지정, 8가지 품목 분리배출을 이끌어 내고 재활용품 원형을 보전해 분리수거하는 체계로, 지난해 10월부터 갈현동에 거점 10곳을 시작했으며 올해 3월부터는 거점을 20곳으로 늘렸다. 반응이 좋아 7월부터는 은평구 전 지역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또 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으로 안정적인 폐기물처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건립사업 설계 내용은 구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으며 지난 5월부터 매월 1회씩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 진행 상황을 상세히 공개하고 있다.”-마지막으로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구청장으로 지내면서 은평구는 선한 마음들이 살아 있는 곳이란 것을 매일 확인하게 된다. 원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주민 한 분 한 분을 만날 때마다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고 그래서 잘 웃게 된다. 은평구는 40년 넘게 산 곳이지만 나중에 정치 생활을 접고도 살아갈 곳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중에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살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항상 주민께 감사드리며 은평을 서북권 대표 도시로 만들기 위해 남은 임기 동안에도 최선을 다하겠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김미경 구청장 ▲1965년 전남 영암 출생 ▲고려대 정책대학원 행정학 석사 ▲4, 5대 은평구의원(2003~2010) ▲8, 9대 서울시의원(2010~2017) ▲제18대 대선 문재인 대통령후보 서울시민캠프 상임대표 ▲제19대 대선 문재인 대통령후보 보훈안보 공동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 ▲참좋은지방정부협의회 사무부총장(2018~2020) ▲서울시구청장협의회 사무총장(2019~2020) ▲민선 7기 은평구청장(2018~) ▲저서 ‘미경이의 특별시’(2014), ‘서서울에 가면 우리는’(2018)
  • [근대광고 엿보기] 셰익스피어 작품 최초 소개 광고

    [근대광고 엿보기] 셰익스피어 작품 최초 소개 광고

    ‘영국 대문호 사옹(沙翁) 만년 대저(大著) 사극 마구베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를 극장 ‘유락관’에서 공연한다는 1917년 7월 11일자 매일신보 광고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광고 속의 맥베스는 1917년 미국 존 에머슨 감독이 만든 무성영화다. 셰익스피어는 1616년에 사망했으니까 사후 301년 만이다. 1906년에는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 번역본에서 ‘세이구스비아’로 처음 언급됐다고 한다. 이후 셰익스피어는 ‘索士比亞 (색사비아)’, ‘酒若是披霞(주약시피하)’ 등으로도 표기됐다. 유락관은 1915년 9월 경성 중구 본정(本町) 1정목(一丁目), 지금의 명동 밀리오레 자리에 세워진 일본인 전용 상설영화관이었다. 남촌으로 불리는 당시의 명동과 충무로 지역은 일본인 거주지이자 상권의 중심지였다. 이 광고가 한글과 한자로 제작된 것을 보면 특정 계층의 한국인들도 유락관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광고에 설명자, 즉 변사 3명이 소개되어 있는데 모두 일본에서 활동하던 일본인이다. 관람료는 1등석 2원, 2등석 1원, 3등석 50전이다. 당시에 쌀 한 가마니 가격이 5원 안팎이었다. ‘200만 원의 작품을 사소한 50전으로 관람할 수 있다’고 과대 홍보하고 있다. 제작비가 200만 원이었까. 倫敦(윤돈·런던)에서 최저 2파운드, 紐育(뉴육·뉴욕)에서 최저 10달러, 도쿄 제국극장에서 5원의 관람료를 받는 작품이라고도 했다. 일본인 극장은 두 개가 더 있었다. 한국 최초의 상설 영화관인 경성고등연예관은 1910년 현재의 서울 을지로 옛 외환은행 본점 자리에 들어섰는데 1915년 세계관으로 개칭됐다. 다른 하나인 대정관은 지금의 중구 인현동 1가에 있었다. 대정관을 세우고 운영한 일본의 니타상회가 나중에 경성고등연예관을 사들이고 유락관까지 세워 세 극장을 모두 운영했다. 유락관은 관객 정원이 1000여명에 이르던 남촌의 대표 극장이었다. 1918년부터는 희락관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영화를 상영했고 1945년 광복 직후 소실돼 없어졌다. 지금도 밀리오레가 있는 땅의 지가가 전국에서 가장 비싸듯이 희락관이 있던 곳은 당시에도 입지가 가장 좋은 곳이었다. 길 건너 남산 기슭은 왜성대라고 불리던 곳으로 경복궁 자리로 옮겨가기 전까지 조선총독부 청사가 있었다. 그 주변 예장동 일대는 일본인의 집단 거주지여서 일인들에게 접근성이 좋은 곳이었다. 부산에도 유락관이 있었다. 일본인 전관거류지(全管居留地·일본인이 모여 사는 마을)가 확대되면서 1922년 동구 좌천동에 유락관이 들어섰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경제 블로그] “최태원 ‘바이오 결실’… ‘딥체인지’ 가속 페달”

    [경제 블로그] “최태원 ‘바이오 결실’… ‘딥체인지’ 가속 페달”

    SK 직원들에겐 남모를 고충이 있습니다. 최태원 회장이 연일 강조하는 ‘딥체인지’ 때문입니다. 이것의 의미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성원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직원들이 상당수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근본적 변화’ 정도일 텐데요. 이를 친근하게 설명하기 위해 최 회장이 얼마 전 사내방송에서 ‘라면먹방’에 나선 것이 화제가 됐습니다. 국내외 석학들이 모이는 SK 지식경영의 장 ‘이천포럼’을 앞두고 이를 홍보하려는 것이었는데요. 영상 속 최 회장은 라면 국물을 ‘원샷’합니다. SK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인 환경을 강조하기 위한 거라고 하네요. 최 회장이 처음 딥체인지를 언급한 것은 2016년 확대경영회의에서입니다. 그 내용이 하나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회적 가치 경영입니다. 관계사별로 사회적 가치를 수치로 측정해 매년 공개하고, 사회적기업에 대대적인 투자도 감행합니다. 처음에는 회사가 공개하기 꺼리는 난감한 정보도 있어 반론도 있었지만, 이젠 연례행사로 자리잡았습니다. 기업 문화도 마찬가지인데요. 공유오피스·수평임원제·재택근무 등은 다른 기업들엔 아직도 먼 미래의 일이지만, SK엔 이미 와 있는 현재입니다. 사회적 가치 경영을 넘어 이제는 바이오 분야에서도 딥체인지를 이뤄낼 것인지 주목됩니다. 코로나19 이후 바이오는 신산업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인 만큼 섣부르게 성과를 강조하긴 부담스럽지만, 최근 좋은 소식들이 속속 들려옵니다. 최근 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한 SK바이오팜, 여기에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 개발도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단계라고 합니다. 미국의 기업가 빌 게이츠도 주목하고 있다고 하죠. 재계에서 최 회장은 종종 ‘학자 같은’ 인물로 평가됩니다. 학식이 풍부하며 토론도 즐긴다고 하죠. 1993년 SK가 처음 신약 개발에 나섰을 때 대다수는 “왜 그런 데다 투자를 하느냐”며 반론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회사가 지금껏 흔들리지 않고 바이오 분야에 투자할 수 있던 것은 최 회장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버텨줬기 때문이라는 게 SK의 설명입니다. 경영자의 민첩함과 학자의 뚝심. 최 회장의 딥체인지는 어쩌면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최 회장의 딥체인지가 조만간 바이오에서도 결실을 이룰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제28회 공초문학상] “광부가 금 캐듯… 모국어 빛 발굴하는 게 시인의 몫”

    [제28회 공초문학상] “광부가 금 캐듯… 모국어 빛 발굴하는 게 시인의 몫”

    “공초 선생은 시를 손끝으로 잘 써서, 시적 기교가 좋아서 시인이 된 게 아니에요. 무한대의 자유로운 시의식과 무소유의 세계관을 자신의 삶의 방식과 혼연일체 육화시켜나간 분이에요. 내 나이가 선생과 비슷해지다 보니, 한발 물러서고 여유가 생기면서 ‘선생의 문학 정신과 근접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희수를 넘긴 시인은 먼저 간 선생의 나이를 넘겨서야 그 뜻을 안다. 제28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한 오탁번(77) 시인의 말이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시인은 등단 이래 54년 간 오롯이 문학을 살아낸 인물이다. 그는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된 이후 시·소설이 차례로 당선된 신춘문예 3관왕이며,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한국 문학을 연구하며 후학들을 가르쳐왔다. 2008년부터 2년 간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고, 시 전문 계간지 ‘시안’(詩眼)을 창간해 15년을 이끌었다. 수상작 ‘하루해’는 그의 자평에 따르면 ‘싱거운 시’다. 그도 그럴 것이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는 그의 열 번째 시집 ‘알요강’(현대시학)에 담긴 시편들 중 ‘하루해’는 가장 얌전하다. ‘싱거운 시’는 그가 정년 퇴임 후 내려 간 고향 충북 제천에서 매일 같이 마주하는 풍경에서 나왔다. “수채화 그리듯, 보이는 그대로 그린” 풍경이다. 또한 ‘하루해’는 시인이 생각하는 예술혼이 그대로 담긴 시편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 이중섭은 제주도 내려 가서 애들이 발가벗고 멱 감는 걸 그렸어요. ‘무찌르자 공산당’ 같은 구호가 없어도, 사람들은 그걸 보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마주하는 인간의 절대 빈곤, 고독을 느끼죠. 그런게 ‘예술’이에요.” ‘벼 익는 논배미마다 지는 해가 더딘’ 가을 농촌 정경을 그린 ‘하루해’를 두고 이병초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문명과 거리를 둔 가을의 갈피를 순정하게 보여줌으로써 돈과 속도에 쫓기는 오늘을 고요히 성찰하도록 한다.’ 시집 ‘알요강’에 담긴 시인의 시를 보다 보면 유독 갸웃하게 되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누군가는 오타인 줄 알았다던 ‘닁큼’ 같은 단어들. ‘닁큼’은 ‘머뭇거리지 않고 가볍게 빨리’라는 뜻을 지닌 부사 ‘냉큼’의 큰 말로 순 우리말이다. 손자의 ‘알요강’(어린아이의 오줌을 누이는 작은 요강)을 사러 간 늙은 할아버지의 동작이 ‘냉큼’ 마냥 빠를 수 없다는 게 시인의 설명이다.“모국어의 빛나는 점, 좋은 점을 발굴해서 독자들한테 알리는 게 시인의 임무예요. 땅에서 금 캐고, 석탄 캐는 게 광부의 일이듯이.” 백석, 정지용의 시처럼 가장 좋은 시는 번역될 수 없다는 게 시인의 오래된 생각이다. 시인이 처음 문학을 접하게 된 것은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학원’이라는 잡지를 만나서다. 1952년 전쟁통에 창간된 학생잡지 ‘학원’은 이청준, 김원일, 황동규 등 수많은 학원세대를 낳았다. 한겨울, 방 안에서 잉크가 얼 정도로 가난해서 추웠던 시절, 가진 건 문학밖에 없었다고 그는 추억했다. “글을 안 쓰고 있으면 배 속에서 기생충이 꼼지락 대는 것만 같아요. 내가 우주 속에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 스스로를 증명해 나가는 것이 문학입니다.” 시와 소설 등 문학으로서의 도구를 여러 개 지녔던 그는 “시는 나를 힐링하는 것이라면, 소설은 노동에 가깝다”고 말했다. 시인은 2018년에 소설 전집을, 지난해 열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내년까지 부지런히 쓰면 열 한 번째 시집과 함께 2003년에 냈던 시 전집의 두 번째 버전을 낼 수 있을 것 같단다. 오랜 소망은 시와 소설이 합쳐진 듯한, 환상문학에 기반한 자전적인 장편 소설을 쓰는 것이다. “달나라 여행, 해저 탐험처럼 문학으로 썼던 거짓말 같은 일들이 다 현실로 이뤄졌잖아요. 문학이 상상하면 현실로 빚어지지요.” 시인의 오랜 상상도, 현실로 빚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오탁번 시인은 ▲1943년 충북 제천 출생 ▲1964년 고려대 영문과 입학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입학 ▲1976년 수도여자사범대학 조교수 ▲1983년 고려대 국문과 박사 졸업 ▲1983~2008년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 ▲1987년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94년 동서문학상 수상 ▲1997년 정지용문학상 수상 ▲2008년 고려대 교수 정년 퇴임 ▲2008~2010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2010년 김삿갓문학상 수상, 은관문화훈장 수훈 ▲현 고려대 명예교수·원서문학관 관장
  • [금요칼럼] SNS 단상/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SNS 단상/황두진 건축가

    SNS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의 약어다. 한국어로는 누리소통망,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으로 번역하지만 통상 영어 발음 그대로 ‘에스엔에스’라 부른다. 한 단어로 퉁치기에는 종류도 많다.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개방형, 지인 위주의 폐쇄형이 있고 서비스마다 제공하는 여러 통신 수단까지 더하면 선택의 여지는 엄청나다. 개인별 경험은 다르겠지만 에스엔에스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지 이미 수십 년이 됐다. 기존의 대면 대화나 전화, 편지, 혹은 학계 등 일부 분야에서만 쓰던 전자메일 정도밖에 없던 상황에서 이것은 실로 신나는 경험이었다. 축구 감독 퍼거슨 같은 사람은 ‘에스엔에스는 시간 낭비’라고 비난했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많은 사람이 이 대열에 즐겁게 자발적으로 뛰어들었다. 오직 시간 낭비라면 사용자가 줄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효용은 분명히 있다. 가령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최적의 수단이다. 편리한 만큼 문제도 늘어났다. 서로 소통하려면 같은 플랫폼을 공유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결국 플랫폼 여러 개에 가입해야 한다. 각각의 아이디며 패스워드 관리는 이제 그 자체로 현대인의 일상 프로젝트가 됐다. 남들이 다 쓰는 플랫폼에 가입을 안 하고 있으면 사회생활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실제로 여러 사람이 소통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대중적인 플랫폼을 안 쓰면 나머지 사람들은 정말 불편해진다. 퇴근 이후나 주말에 날아오는 업무 관련 메시지는 이제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타인의 태도와 매너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은 역설이다. 발송 예약 서비스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친절한 에스엔에스는 드물다. 알면서 못하는 것인지 다른 이유로 안 하는 것인지. 결국 장점이 단점이다. 대면 대화는 당사자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이것을 시간ㆍ공간 대칭성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전화는 시간은 같지만 공간은 서로 달라도 된다. 그래서 처음 등장했을 때 그야말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에스엔에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도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여러 사람이 참여해서 소통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이것은 역으로 만인이 만인의 삶에 언제 어디에서나 개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피로감은 이제 너와 나의 구별이 없다. 최후의 성역이었던 비행기마저 정복됐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예약 서비스는 온 국민의 행복을 위해 법제화할 단계가 됐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상대가 내일 아침에 받아 보면 될 내용도 혹시 내가 잊을까 봐, 혹은 아침에 타이밍을 놓칠까 봐 미리 보내는 경우가 생긴다. 내용을 미리 작성해 놓고 정해진 시간에 보낼 수 있으면 이 문제는 대폭 해결될 것이다. 시간ㆍ공간 비대칭으로 갈 거면 좀더 확실하게 그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맞다.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나의 경우 전화를 제외한 모든 알람은 꺼 놓는다. 물론 수시로 확인한다는 전제가 있다. 폐쇄형 에스엔에스의 경우 가볍게 수다나 떨고 약속이나 잡을 때 쓰지, 가급적 ‘논의’ 수준의 대화는 하지 않는다. 심지어 논쟁은 금물이다. 그건 만나서, 혹은 최소한 전화로 한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도 문자의 한계를 서로 겸허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개방형 에스엔에스는 상대가 불특정 다수인 것을 알기 때문에 조금 더 조심스럽다. 그냥 개인 방송국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같다. 주제나 소재는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방송이라 지켜야 할 선이 분명히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고전적인 대면 대화만큼 좋은 것은 없다. 코로나야, 물러가라.
  • “특수재난 대응 총괄조직 신설해야”

    “특수재난 대응 총괄조직 신설해야”

    불산·질산 유출 등 화생방 사고 수습 중요 美 소방관 특수재난 매뉴얼 번역서 출간 특수재난 대응 요원 한국 기준 마련 목표 환경부·원안위 참여… 훈련장 만들었으면“화학·생물·방사능(화생방) 등 특수재난에 대응하는 소방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의 ‘화생방 전문가’ 김흥환(37) 소방위는 17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구미공단 불산 가스 유출 사고’, ‘질산 탱크로리 전복 사고’ 등과 같은 화생방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이를 현장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건 우리 소방관들”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소방위는 대표적 사례로 미국 9·11테러를 들었다. 그는 “당시 비행기가 미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직후 항공유가 불길과 만나 큰 폭발이 이어졌고 화학물질이 건물을 뒤덮었다. 그 당시 주저 없이 건물 내로 몸을 던진 건 수많은 소방관이었다”고 말했다. ●화생방 전문가 되려 軍→소방으로 진로 바꿔 소방청에 따르면 김 소방위는 육군사관학교(육사) 장교 출신 첫 소방관 기록을 세웠다. 2006년 육사를 졸업하고 육군 화생방 병과를 거쳐 전역한 뒤 2015년 화생방 분야 경력직으로 소방관이 된 이례적 케이스다. 김 소방위는 “사병 관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군보다는 소방 쪽이 화생방 분야 전문가가 되는 데 더 좋은 환경이라 생각해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고 입직 배경을 설명했다. ●육아휴직 때 947쪽의 재난 사례·대응법 번역 김 소방위는 최근 ‘특수재난 초동대응 매뉴얼’ 번역서를 냈다. 이 책은 미 소방관 교육기관인 국제소방훈련협회(IFSTA)가 미 화재예방협회(NFPA) 기준을 기반으로 소방관의 특수재난 대응 능력 강화를 위해 펴낸 매뉴얼을 번역한 것이다. 화학·방사성·폭발성 물질과 대량살상무기 등 특수재난 사례와 실무 중심 대응 방법을 총 947쪽 분량에 담았다. 그는 “제가 번역한 책을 통해 동료들이 미국의 화생방 전문요원들은 현장에서 어떻게 임무를 수행하는지 등을 알게 되는 등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번역서가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2016년 여름부터 약 1년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낮에는 육아를 하고 아이가 잠든 시간 이후에 번역을 하는 일이 반복됐다. IFSTA로부터 저작권을 얻는 건 더 큰 장애물이었다. 김 소방위는 “IFSTA에서 개인에게 저작권을 줄 수 없다고 해 출판사를 찾느라 힘들었다. 이 과정에서 개인 돈으로 1만 달러를 지불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김 소방위는 정부에 화생방 재난을 총괄할 수 있는 부처나 조직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그는 “환경부는 화학물질,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방사능 등 관련 법도 다 다르고 이 같은 위험을 총괄할 수 있는 부처나 조직이 없다”면서 “막상 현장에 처음 뛰어들어야 하는 소방관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방관 등 특수재난 대응요원의 한국형 기준을 만드는 게 목표다. 김 소방위는 “소방청뿐 아니라 환경부, 원안위 등 특수재난 관련 부처가 모두 함께 모여 특수재난 대응요원의 자격 기준을 만들고, 관련 전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특수재난 대응 훈련장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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