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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친아’ 오상진, 대기업 임원 출신 父 최초공개

    ‘엄친아’ 오상진, 대기업 임원 출신 父 최초공개

    24일 오후 11시 10분 방송되는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서는 오상진, 김소영 부부가 딸 수아의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오상진, 김소영 부부는 아침부터 분주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딸 수아의 생일을 맞이해 부부가 직접 생일상을 차리기로 한 것. 특히 김소영은 “빵을 좋아해 제빵기능사 자격증까지 땄다”며 야심차게 생일 케이크 제작에 나섰다. 그러나 오상진은 아내의 케이크에 “집에서 만든 것 같다”, “아마추어리즘 케이크”라며 ‘눈치 제로’ 돌직구를 날렸고, 칭찬을 기대한 김소영의 사기를 한 방에 꺾어버렸다. 그런가 하면 ‘엄친아’ 오상진이 아버지에 대한 충격 발언을 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손녀의 생일을 맞아 오상진의 부모님도 축하 자리에 함께했는데. 오상진의 아버지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오상진과 ‘도플갱어급’ 싱크로율을 자랑해 등장부터 스튜디오를 술렁이게 했다. 그런 아버지를 향해 오상진은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지만 그 안에 반감도 있다”라며 숨겨온 속내를 털어놔 이목을 집중시켰다. 
  • [마감 후] 피해자가 숨지 않는 사회/신융아 기획취재부 기자

    [마감 후] 피해자가 숨지 않는 사회/신융아 기획취재부 기자

    21일로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된다. 그 이전까지 스토킹은 쓰레기 투기나 노상방뇨 수준의 경범죄로 처벌됐지만, 스토킹 행위가 폭력이나 강간, 살인 등 중대범죄로 이어지자 이를 막기 위해 별도의 스토킹처벌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법이 시행되고도 지난 1년간 최소 네 차례 이상 스토킹 살인을 막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법 시행 한 달도 안 돼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30대 여성이 서울 중구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전 연인으로부터 스토킹 살해됐다. 당시 가해자에게는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져 있었지만 앙심을 품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조치는 없었다. 피해자가 경찰에서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로 두 번이나 긴급호출했지만 위치 파악에 대한 기술적 결함으로 경찰 출동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 보호 조치를 강화하고 가해자에게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다음달에도 사건은 또 터졌다. 이번에는 전 여자친구를 성폭행해 신고된 가해자가 경찰의 보호를 받는 피해자 대신 그 가족을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의 어머니가 숨지고 동생이 중태에 빠졌다. 경찰이 성폭행 사건 조사 후 가해자를 구속하지 않고 보낸 것이 논란이 됐다. 올해 2월에는 헤어진 연인의 영업장을 수시로 찾아가 행패를 부리던 5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가 풀려난 뒤 이틀 만에 피해자를 찾아가 범행을 저지르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이 구속영장도 신청했지만 검찰이 이를 반려한 것이 문제가 됐다. 경찰은 대응책으로 유치장에 입감할 수 있는 잠정조치 4호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갖가지 문제점과 대응 방안이 나왔던 터라 지난달 신당역 사건이 또 발생했을 때 전문가들도 더이상 새롭게 내놓을 대책이 없다고 했다. 그제서야 정부와 국회는 스토킹처벌법을 개정해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고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을 제정하겠다고 했다. 스토킹처벌법 제정 단계에서부터 꾸준히 제기됐던 것이지만 우려한 일들이 벌어지고 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 스토킹 문제나 행위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만 규정한 것, ‘행위’와 ‘범죄’를 구분하는 모호한 기준도 오랫동안 지적됐다. 이제 남은 건 더는 실행을 늦추지 않는 일뿐이다. 피해자 보호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가 숨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8월 말 내놓은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스토킹 가해자의 절반이 과거 연인, 학교나 직장 구성원, 친구 등 지인이었다. 이는 스토킹 범죄로 피해자의 인간관계와 일상생활이 크게 영향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피해자의 37.9%는 일상 회복을 위해 피해 사실의 공식적 인정과 가해자 처벌을 원한다고 했다. 가해자의 집요한 합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끝까지 대항했던 신당역 피해자가 탄원서를 통해 호소한 내용도 피고인이 온당한 처벌을 받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가정과 학교에서도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어릴 때 이성 친구가 집적이거나 괴롭히면 어른들은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라며 쉽게 웃으며 넘기곤 했다. 하지만 괴롭힘과 좋아함의 표현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설령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것이라면 잘못된 표현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괴롭힘이 좋아함으로 왜곡돼선 안 된다.
  • 야생 곰에 습격당한 日 등산객, 격투기 기술로 쫓아내 (영상)

    야생 곰에 습격당한 日 등산객, 격투기 기술로 쫓아내 (영상)

    한 등산객이 자신을 향해 덤비는 야생 곰을 격투기 기술로 쫓아내는 순간이 카메라에 잡혔다. 1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일본 사이타마현 지치부시 후타고산에서 한 남성이 하산 중 자신을 습격한 곰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발로 차서 쫓아냈다. 당시 남성은 가파른 산을 내려가는 모습을 기록하고자 자신의 머리에 쓰고 있던 헬멧에 액션 카메라를 장착하고 있었다. 때문에 곰이 남성을 습격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찍혔다.지난 5일 유튜브에 올라와 지금까지 조회수 200만회 이상을 기록한 영상을 보면 남성이 하산 중 잠시 위를 볼 때 곰이 달려드는 모습이 카메라 시야에 들어온다. 그는 깜짝 놀라 소리를 치면서도 반사적으로 곰을 밀쳐 떨어뜨린다. 만일 남성이 발 디딜 곳을 찾고자 아래쪽을 보고 있었다면 곰에게 물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그런데 곰은 습격에 실패하고 나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남성은 자신에게 계속해서 달려드는 곰을 막고자 주먹으로 내려치는가 하면 발로 찰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곰을 향해 소리 치는 걸 멈추지 않는다. 그러자 곰은 겁을 먹었는지 더는 달려들지 않고 자리를 피한다. 이후 남성은 영상을 확인하고 자신이 먼저 곰의 영역을 침범한 사실을 알았다. 실제 영상에는 작은 곰 한 마리가 보이는 데 어미인 곰이 새끼를 지키고자 그를 공격했던 것이다. 그는 “곰이 나를 덮친 이상 미안하긴 하지만 내 몸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 가라테를 배우긴 했지만 지금은 종합격투기를 좋아해 주먹을 내지르는 대신 내려치기를 사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곰이 다른 등산객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걸 막고자 지자체에 곰에게 습격받은 사실을 알렸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곰 개체 수가 늘면서 사람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6월 북부 삿포로에서는 곰이 주택가 등을 배회하며 난동을 부려 4명을 다치게 하고 사살됐다.
  • 두산 감독 된 ‘푸른 피’의 이승엽… “3년 안에 한국시리즈 치르고 싶다”

    두산 감독 된 ‘푸른 피’의 이승엽… “3년 안에 한국시리즈 치르고 싶다”

    “2023시즌을 시작할 때는 ‘준비된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겠다.” ‘라이온 킹’ 이승엽(46)이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취임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푸른 피’가 흐른다는 이야기까지 듣는 이승엽 신임 두산 감독은 18일 서울시 잠실구장에서 열린 ‘제11대 두산 베어스 감독 취임식’에서 “23년을 선수로 뛰는 동안 스트레스, 압박감, 승리에 관한 부담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면서도 “그런데도 야구가 내 천직이다.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야구를 다시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며 왜 자신이 프로야구로 돌아왔는 지를 설명했다. 현역 시절 ‘국민타자’로 사랑받은 이승엽 감독은 지난 14일 두산과 계약 기간 3년, 처음 사령탑에 오른 감독으로는 최대 규모인 총 18억원(계약금 3억·연봉 5억)에 ‘1군 감독 계약’을 했다. 이승엽 감독은 KBO리그에서만 467홈런을 치고, 일본프로야구 시절을 포함해 한일통산 626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한 말 그대로 한국 최고의 타자다. 통산 홈런 1위이고,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2003년 56개)도 섰다. 은퇴 후 해설위원으로 전 구단 선수와 만났고, KBO 홍보대사와 기술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야구장학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최강 야구’라는 야구 예능에 출연해 식어가는 야구의 인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힘썼다. 그는 이제 감독으로 평가를 받겠다며 감독으로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날 취임식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승엽 감독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냐는 질문에 “기본기, 디테일, 그리고 팬”이라면서 “현역 시절 홈런타자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선수 이승엽’은 언제나 기본에 충실했다. 디테일에 강한 일본야구를 몸으로 경험하면서 그 철학은 더욱 강해졌다”며 기본을 강조했다. 이어 “기본은 땀방울 위에서 만들어진다. 선수 시절 맞붙었던 두산은 탄탄한 기본과 디테일을 앞세워 상대를 강하게 압박했던 팀이다. ‘허슬두’의 팀 컬러를 다시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가을야구, 더 나아가 7번째 우승도 그 토대에서 시작할 것이다. 프로야구에 가장 중요한 건, 팬이다. 아무리 강한 야구, 짜임새 있는 야구라도 팬이 없다면 완성되지 않는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팬들에게 감동을, 그라운드 밖에서는 팬들에게 낮은 자세로 다가가는 ‘팬 퍼스트 두산 베어스’가 목표다”라고 설명했다.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것에 대해선 “내게 가장 많이 붙는 단어가 ‘초보감독’이다. 코치 경험도, 지도자 연수도 받은 적이 없다”면서도 “2023시즌이 시작되면 지금의 평가를 ‘준비된 감독’으로 바꾸겠다. 나는 현역 23년 동안 야구장 안에서, 은퇴 후 5년간 야구장 밖에서, 28년 동안 오직 야구만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찾아올 수 있는 ‘감독 이승엽’을 준비해왔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두산에서 등번호를 77번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 이승엽 감독은 “숫자 7을 좋아해서 언젠가 지도자가 되면 77을 달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롤모델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는 특정 감독을 지칭하지 않고 “선수 때 느꼈던 감독님들의 장점을 뽑아서, 이승엽 감독다운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짧게 답했다. 본인의 야구 스타일에 대해선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다”면서 “상황에 맞는 야구를 하겠다. 주자가 3루에 있을 때, 상대 야수진이 뒤에 있으면 땅볼로 1점을 내고, 전진 수비를 하면 희생플라이를 치는 야구를 하고 싶다”며 스타일을 추구하기 보다 유연하게 경기를 풀어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마디로 이기는 야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삼성 팬들과 삼성 사령탑이 된 박진만 감독에게 한마디를 해달라는 짓궂은 질문에는 오히려 “삼성 라이온즈에서 받은 큰 사랑은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삼성 팬들께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보답하고 싶다”면서 “박진만 삼성 감독은 동갑내기 친구다. 나는 두산 승리를 위해 뛸 것이다. 박 감독도 응원한다. 나와 박 감독 등 젊은 사령탑이 힘을 모아 돌아선 프로야구 팬들의 발길을 조금이나마 돌릴 수 있다면 좋겠다”며 삼성 팬들에 대한 감사와 박진만 감독에 대한 예의를 표시했다. 또 삼성 시절 인연이 깊은 김한수 수석코치를 선임한 것에 대해 “서로를 잘 아는 사이다. 언젠가는 꼭 김 수석코치와 함께 지도자로 일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왔다”면서 “고토 고지 코치는 두산과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일하실 때 대화를 한 경험이 있다. 선수들과 잘 융화한다고 들었다. 조성환 코치는 나와 친구다. 나와 함께 좋은 팀을 만들어갈 지도자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코치들의 선임 이유도 같이 설명했다. 두산이 보강해야 할 부분에 대해선 “올 시즌 두산 팀 평균자책점은 4.45, 팀 타율은 0.255다. 특히 실책이 117개로 많았다. 실책이 나오면 경기의 향방이 갑자기 바뀐다. 홈런과 안타를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팀의 실수로 실점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수비를 보강해 더 단단한 야구를 하고 싶다”고 기본기를 강조했다. 또 전력 보강을 위해 “예비 FA인 포수 박세혁”을 잡아야 한다면서 “혹시 박세혁이 팀을 떠난다면 보강이 필요하다. 나는 포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좋은 포수가 있다면 야수, 투수진이 편하게 경기할 수 있다”고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두산 내야수 안재석을 까다로운 타자로 만들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이승엽 감독은 소통하는 감독이 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프런트, 코칭스태프와 대화를 자주 하겠다. 선수들에게는 경기장에서는 엄격하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다”면서 “야구장 안과 밖을 확실하게 구분하겠다. 기회는 동등하게 줄 것이다. 더 열심히 하는 선수에게 마음이 가긴 할 것이다. 그래도 성과를 내는 선수가 먼저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선수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들 전달했다.두산의 아픈 부분인 신인 김유성, 이영하 등 학교폭력 관련 이슈에 대해선 “굉장히 민감하고 어려운 부분”이라고 입을 열고는 “구단으로부터 설명을 듣긴 했다. 김유성 선수는 충분히 사과하려 한다고 들었다. 피해자 부모님께서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잘 해결되길 바란다. 필요하다면, 나도 가서 사과드릴 용의가 있다”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승엽 감독은 두산 팬들에게 “내년 이맘때에는 마무리 훈련이 아닌 포스트시즌을 치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계약 기간인 3년 안에는 한국시리즈도 치르고 싶다”면서 “팬들께는 더 낮은 자세로 다가가겠다. 내가 선수 때 하지 못했던 팬 서비스를 감독으로는 꼭 하겠다. 때론 동네 아저씨처럼 대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친근하게 다가갈 것을 다짐했다.
  • “정말 좋아해요”… 사흘간 日 사로잡은 케이팝

    “정말 좋아해요”… 사흘간 日 사로잡은 케이팝

    “혼토니 스키데스….”(정말 좋아해요) 지난 15일 일본 도쿄 고토구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케이콘 2022 재팬’(KCON 2022 JAPAN)의 MC를 맡은 가수 겸 배우 황민현이 공연 도중 건넨 마이크에 대고 한 일본 여성 관객이 이렇게 외쳤다. CJ ENM의 케이팝 공연 겸 한류 축제인 케이콘 2022 재팬이 지난 14~16일 사흘간 약 6만 5000명의 참여로 성공리에 치러졌다. 케이콘 오프라인 공연은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중단됐다가 올해 재개됐다. 온라인 생중계에도 약 870만명이 접속했다. 김현수 CJ ENM 음악콘텐츠본부장은 “올해 케이콘으로 케이팝은 물론 케이(K) 컬처 전반에 대한 인기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두 번째 날 공연에는 그룹 ‘TXT’(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비롯해 아이브, 뉴진스, JO1, 프로미스나인, DKZ, ATBO 등 인기 그룹이 총출동해 화려한 퍼포먼스로 일본 팬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이번 공연은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객석의 ‘함성’이 금지됐다. 일본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가 등장할 때면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봉을 흔드는 방식으로 뜨거운 팬심을 전했다. 진행을 맡은 황민현과 가수들은 능숙하진 않지만 최대한 준비한 일본어로 “만나고 싶었다”, “끝까지 즐겨 주길 바란다” 등의 표현으로 일본 팬들과 마음을 나눴다. 특히 아이브가 공연장 내 일본팬 수십명과 함께 대표곡 ‘러브 다이브’에 맞춰 춤을 추는 ‘드림 스테이지’를 선보인 순간 객석도 열광했다. 무대에 올랐던 한 중년 남성이 공연 후 감격한 모습이 화면에 잡혀 눈길을 끌었다. 케이팝의 일본 순항은 다음달 29~30일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열리는 CJ ENM의 연말 음악 시상식 ‘MAMA AWARDS’(마마 어워즈)로 이어질 예정이다.
  • 에코, 애트우드...세기의 지성이 보여주는 통찰력

    에코, 애트우드...세기의 지성이 보여주는 통찰력

    세계적인 소설가들의 오랜 생각을 보여주는 책들이 출간됐다.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는 물론,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통찰력이 반짝인다. ‘에코의 위대한 강연’(열린책들)은 움베르토 에코가 밀라노에서 매년 열리는 인문학축제인 ‘라 밀라네지아’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었다. 에코는 첫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성공을 거둔 뒤 철학과 미학, 대중문화 비평 등 소설과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다 2016년 별세했다. 이 축제를 좋아해 세상을 뜨기 전까지 거의 매년 강의했다. 강연집은 미와 추의 본질, 절대와 상대, 불, 실존과 허구, 역설과 아포리즘, 거짓, 불완전성 등 12개 주제를 다룬다. 무거운 주제들을 파헤치는 에코의 발걸음은 종횡무진이다. 각종 명화와 영화, 성경과 신화, 문학 작품과 광고 문구 등을 들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아들을 바치라는 신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였던 아브라함, 히틀러가 그린 정물화의 추함, 거짓말에 관한 칸트의 어리석은 말, 비밀결사 장미십자회, 보잘것없는 음악을 예찬한 프루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해박한 지식으로 풀어낸다. 책의 전체 주제를 관통하는 글은 서문 격에 해당하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다. 거인과 난쟁이는 기존의 것을 지키려는 자들과 혁신을 추구하는 자를 가리킨다. 에코는 문화적 혁신이 대부분 과거의 거인에게서 왔고, 난쟁이인 우리가 치열하게 맞서면 혁신을 이끌고 미래를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마거릿 애트우드가 2004년부터 2021년까지 쓴 62편의 글을 모은 ‘타오르는 질문들’(위즈덤하우스)은 ‘시녀 이야기’, ‘그레이스’, ‘증언들’과 같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작품을 쓰기까지의 일화, 그리고 그가 평생 헌신한 문학, 환경, 인권, 페미니즘을 주제로 쓴 글이 담겼다. 어린 시절 환경 운동가이자 곤충학자인 아버지와 퀘벡의 숲에서 보낸 일, 유명 작가가 되기까지 거처를 옮기고 다양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린 경험, 밭을 일구고 탐조하며 보내는 여가 등이 생생하다. 영미 문학사에 대한 지식과 독창적인 해석, 눈에 띄는 여성 작가들에 대한 애정도 듬뿍 담겼다. 출판사 측은 “서평, 서문, 강연 형식의 글은 탁월한 작법 이론을 바탕으로 한 문학비평의 모범”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사회 변화에 맞춰 모두 5부에 걸쳐 글을 실었는데, 당시 미국 또는 전 세계 상황을 고려해 읽어도 좋을 법하다. 예컨대 1부인 2009년 미국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공격과 이라크 전쟁, 미국발 금융 위기가 일어난 시기의 글이다. 2부는 2010~2013년 오바마 정부 때이고, 마지막 5부는 2020~2021년이다. 애트우드는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친 시기를 날카롭게 조명하고,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적 문제를 질문하고 답한다.
  • ‘킹덤2’ 들고 부산 찾은 사토 신스케 “내 열정 바닥 나는 일 없을 것”

    ‘킹덤2’ 들고 부산 찾은 사토 신스케 “내 열정 바닥 나는 일 없을 것”

    현실에서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을 스크린에 옮기는 데 천재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일본 감독 사토 신스케(52)는 모든 것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감독이란 이미지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영화학도 이미지가 강했다. 그의 이름을 국내에 알린 것은 ‘아이엠 어 히어로’(2016)였다. 21만명이 관람했다. 보잘것 없는 고교생이 좀비들이 판치는 세상을 구한다는 내용인데 원작 만화의 캐릭터를 실감나게 스크린에 옮겼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누야시키: 히어로 VS 빌런’(2020)은 어느날 문득 인류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갖게 된 노인과 젊은이의 대결이란 황당한 설정을 스크린에 실감나게 옮겼다.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나중에 진시황이 되는 영정(요시자와 료)이 대장군을 꿈꾸는 소년 신(야마자키 겐토)과 손잡고 천하통일을 이루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린 하라 야스히사의 만화 원작을 영화로 옮긴 ‘킹덤’(2019)으로 국내 팬에게도 낯익은 사토 감독이 ‘킹덤 2: 아득한 대지로’를 들고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오픈 시네마’ 섹션 시사회를 지난 11일 밤 가졌다. 원작 만화는 2006년부터 지금도 연재 중이며 누적 판매부수 9200만부를 넘겼다. 다음달 16일 국내 개봉하는 ‘킹덤 2’는 10억엔의 제작비로 57억엔을 벌어 들였고, 일본에서만 두 편 합쳐 100억엔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 12일 해운대구의 한 레지던스 응접실에서 만난 사토 감독은 50분 내내 다소곳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본인의 답이 통역을 통해 충분히 전달되는지 눈여겨 보고, 부족하다 싶으면 두세 번에 나눠 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매년 한 작품을 빠지지 않고, 어떤 해는 두 편을 내놓기도 하며, 애니메이션 감독, 시나리오 작가, 게임 제작자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원동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1편이 넷플릭스에 있으니 미리 보고 2편을 꼭 극장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터뷰는 그의 영화철학과 세계관을 엿보는 데 치중했다. 다음은 일문일답.-몇 번째 한국과 부산 방문인지 궁금하다. “서울은 자주 찾아왔지만 부산은 처음이다. ‘아이 엠 어 히어로’ 가운데 좀비들이 아웃렛에 출몰하는 장면을 경기도 파주에서 한달 반 정도 걸려 촬영했다. 일본에서는 좀비물이라고 하니까 손사래를 쳤다. 마침 파주에 맞춤한 장소가 있어서 촬영할 수 있었다. 서울에는 친구 결혼식 등으로 여러 차례 다녀왔는데 부산은 처음이다.” -시사회를 가진 ‘킹덤 2-아득한 대지로’를 직접 소개한다면. “1편은 천하대장군이 되겠다는 목표로 노예로 태어난 주인공 신이 마을을 나와 꿈을 향해 모험을 떠나 내란을 해결하는 내용이었는데 2편은 신이 실제로 대장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병사로서 전쟁에 참가하고 수행하는 부분에 집중해 얘기가 진행된다.” -매년 거르지 않고 작품을 내놓고 다방면으로 활약한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는 이유와 원동력이 궁금하다.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를 너무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계속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게 원동력인 것 같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면 이제 그것을 영화로 접목해서 연결하게 되고,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까 끊임없이 작업을 진행하게 되는 것 같다.” -일하다 보면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식는다거나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안 돼 답답하거나 짜증이 나거나 그럴 때도 있을 것 같은데. “당연히 그런 부분도 있지만 작품을 만드는 일 자체가 다음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작품을 하다보면 생각하지도 못한 여러 만남을 갖게 되고, 기대하지 않은 것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작품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주 많다. 그것이 내 인생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열정이 없어지는 날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의 한 영화평론가는 ‘아이 엠 어 히어로’를 보고 단순히 원작 만화를 코스프레한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살아있는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평가했다. 일본 영화가 드디어 정신 차렸다고 평가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원작을 활용해 실사로 만드는 일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만화가 원작인 경우가 많았다. 만화와 영화는 비슷한 것 같지만 격이 다르고 미디어도 다르다. 영화와 만화가 일치해서도 안 되고 아주 달라도 안 되며 영화로 표현하기 어려운 구석도 있다. 원작은 존중하지만 살아 있는, 인간성을 지닌, 실제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100% 만화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 인간성을 중심으로 실사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평론가의 지적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킹덤2’에서도 실제 주인공이 여행을 하면서 인생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고 여정을 해나가는지 영상으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메이킹 필름을 보면 손수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거나 배우가 총을 든 각도까지 지도하더라. 어떻게 영화를 구성하고 준비하는지. “배우들의 움직임이라든지 표현이라든지 미리 정해서 하는 유형이다. 배우가 줄거리에 맞춰 문 쪽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찍는다면 그 캐릭터에 맞춰 이런 식으로 문을 열지 않을까 세세한 부분까지 배우와 얘기하며 미리 정하는 편이다. 물론 배우 스스로 표현하고 싶은 대로 놔둘 때도 있지만 배우들의 움직임까지 어느 정도 제어를 해야만 감독만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를 영어로 ‘모션 픽처’라고 한다. 사람의 움직임이 매우 중요하다. 큰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미세한 움직임으로도 그의 느낌 같은 것들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의 완성도도 빠뜨릴 수 없는데 꼭 이쪽에서 찍고 싶다, 저쪽에서 찍고 싶다, 맞춰가면서 작업한다.”-다른 감독들과 비교해 영화를 빨리 찍는 편이라고 생각하는가. “TV 드라마 촬영 현장에 가본 적이 있는데 너무 빨리 촬영해 놀란 적이 있다. 그와 비교하면 나는 당연히 느리겠지만 정해진 장면을 딱 필요한 만큼 완성도 높게 찍고 끝내기 때문에 나중에 편집으로 잘라내는 촬영분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한마디로 느리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대한 철학, 다른 감독과 영화를 만드는 방법의 차이는. “같은 말을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여러 가지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아주 작은 것도 크게 될 수 있고, 그래서 테마를 넓히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된다. 작은 것 하나가 세상을 풍족하게 만드는 것처럼 영화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관객은 아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제 그런 여지까지 염두에 두고 작업하게 된다. 나는 사회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고 판타지나 엔터테인먼트로 즐기는 영화를 만드는데 미학과 예술성에 약간 집중하는 편이다. 그런 영화들에도 여러 숨은 의미가 있는데 그런 의미를 찾아내 만드는 것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누야시키: 히어로 VS 빌런’도 아주 재미있게 봤다. 만들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그 영화도 어쩌면 있을 수 없는, 상상 속의 세상이다. 로봇이 짓는 슬픈 표정을 컴퓨터그래픽(CG)으로 표현하는 일이 아주 어려웠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정말 몇 컷밖에 안되는 장면들을 만드느라 엄청난 시간과 공력을 들여야 했다. 할아버지와 고교생 대결 구도는 사회 문제로 부상되는 세대 갈등과 대립을 조명하고 싶어서였다. 작품으로 잘 전달돼 만족한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일본도 많은 문제를 갖고 있고 영웅의 출연을 기대하는 그런 잠재심리가 상당히 많은 것 같다. 현실은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데 만화의 상상력을 스크린에 옮기는 작업이 매우 힘들었을 것 같다. “절대로 현실에서는 영웅이 될 수 없는 인물이 한 순간 영웅으로 변신하는 일을 영화로 만들어 영웅이란 존재가 도대체 뭘까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영화다. 개인적으로도 재미있었다.” -한국 팬들의 반응을 들을 수 있었는지, 일본과 한국 팬들의 반응에 차이가 있는지. “한국 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는 못했다. 한국영화 작품이나 정보를 많이 접하는데 엔터테인먼트 등에서 일본을 앞서고 이게 영향을 줘 영화도 많이 발전했다고 느낀다. 우수한 한국영화를 많이 접한 한국 팬들이 사랑해준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기쁜 일이다. 내 영화는 일상에서 그려내는 판타지라 많이들 좋아해 주신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 작품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위안이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나도 완성된 작품을 보고 약간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로 감정이 공유된다. 다른 나라 국민들도 내 영화를 보고 그런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게 해외에서 방영되지 않더라도 그런 점을 염두에 두며 작업한다.”-할리우드나 외국 제작자들이 관심을 표명하는지. “10년 정도 사이에 인터넷을 통해 외국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늘어났다. 일본은 다양한 경로로 얻은 정보를 접한 뒤 작품을 보지만 해외는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영화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좋다고 생각한다. 있는 곳이 다르다 해도 영화를 본 느낌은 공유되니까 좋다. ‘아이 엠 어 히어로’ 때는 한국 스태프들이 함께 했고, ‘킹덤2’에는 중국인 스태프들이 힘을 합쳤다. 서로 배우고 각자 다른 대목에 놀라는 부분도 적지 않다. 그렇게 영화 제작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고, 내 의식이나 세계관도 넓어졌다고 느낀다.” -언어나 자막의 한계를 뛰어넘어 글로벌 팬들을 만나고 싶은 갈망이 있을텐데. “나도 여러 아이디어가 있고 해보고 싶은 여러 일들이 있는데 일본 시장만 겨냥해 여럿 중에 한 작품을 골라 왔다. 그런데 글로벌 마켓을 지향하면 선택의 폭이나 기회가 넓어진다. 시장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글로벌 마케팅의 장점이라고도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에서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영화가 있다는 말인가. “예산 문제도 있고, 아주 많은 장벽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만 해도 3년 만에 정상화됐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포용하게 됐고, 언어와 자막의 한계를 뛰어넘어 많은 이들이 함께 즐기는 방식으로 영화가 발전하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2가 12월에 공개된다. 상영관의 한계가 자꾸 보이는 것 같은데 이를 뛰어넘으려면. “영화는 상영관 스크린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예전 영화를 곧바로 찾아 볼 수 있는 점은 좋지만 스크린으로 봐야만 ‘어떻게 이걸 못 봤지 ’ 하는 대목을 찾을 수 있다. 음악도 레코드나 CD 등 여러 미디어가 있지만 결국 라이브 공연 관람이 가장 좋다. 영국과 일본의 연극 업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코로나 영향은 있었지만 라이브나 연극을 통해 실물의 가치를 본다면 없어지지 않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스크린으로 봐야 된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매우 진지하게 임하는 것 같다. 영화 제작에 매달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즐기는지 궁금하다. “CF도 TV도 출연하지 않고 오직 영화만 하고 있다. 예전에는 영화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일, 예를 들어 책을 보거나 산에 가 그림 그리는 일, 여행을 간다든지 했는데 이제는 코로나 영향도 있어서 그러지 못해 아쉽다.”
  • [서울광장] 평강공주, 선화공주, 그리고 계산공주/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평강공주, 선화공주, 그리고 계산공주/서동철 논설위원

    알지 못했던 과거의 인물을 새롭게 만나는 것은 즐겁다. 그 인물이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인간적 매력까지 담고 있다면 재미는 더욱 커진다. 백제 계산공주(桂山公主)가 꼭 그렇다. 그는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의 딸이다. 무술을 연마해 전쟁에 나선 계산공주는 고대사회 우리 여성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고구려 평강공주, 신라 선화공주의 진취적 기상을 뛰어넘는 계산공주의 존재는 ‘백제 공주’의 빈칸을 채워 넣는 의미도 있다. 백제지역 문화계가 먼저 역사 자원으로 계산공주의 중요성에 눈뜬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지난달 공주에서는 ‘백제 계산공주 콘텐츠 활성화 방안’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계산공주를 백제의 대표 문화콘텐츠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실천적 노력도 이어졌다. 지난 월요일 ‘제68회 백제문화제’ 폐막식에서 선보인 ‘계산공주 쇼케이스’ 공연이 그것이다. ‘공주’(公主)가 갖고 있는 정형화된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여전사 계산공주’를 조명했다. ‘삼국유사’에는 이런 스토리가 있다. 나당연합군이 강가에 군대를 주둔시켰는데, 새 한 마리가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불길한 점괘에 소정방이 싸움을 그만두려 하자 김유신이 신검(神劍)을 뽑아 겨누었고, 새는 갈기갈기 찢긴 채 좌중 앞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동경잡기’에는 백제 왕이 김유신의 신묘한 계책을 걱정하자, 공주는 “우리에게는 자용병기(自勇兵器)가 있으니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고는 까치가 되어 신라군 진중으로 날아가 깃발에 앉아 지저귀자 김유신이 칼로 가리켰고 까치는 땅에 떨어져 사람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1936년 채록한 설화는 종합판이다. 의자왕의 아름다운 딸 계산은 어렸을 때부터 검법을 좋아해 그 심오한 뜻을 깨우쳤다. 남해의 여도사로부터 선술(仙術)을 습득했는데, 자용병기를 발명해 스스로 천하무적이라 일컬었다. 이 무기는 철로 만든 활과 칼인데, 신장(神將)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이것을 쓸 때 공중을 향해 주문을 외치면 홀연히 많은 군사가 나타나는 신비로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계산공주의 신술이 김유신의 신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신라군에게 붙잡힌 계산공주는 김유신이 풀어주자 백제로 돌아갔고, 의자왕에게 신라와 화평하라고 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용병기를 부수고 부소산에 숨어 버리는 것으로 설화는 마무리된다. 모두 신라 중심의 기록이다. ‘삼국유사’의 일화는 ‘태종춘추공’조에 담겨 있고, 17세기 출간된 ‘동경잡기’는 경주지역 설화 모음이며, 계산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설화 역시 경주지역에서 채록한 것이다. 그럼에도 신라가 주어(主語)인 ‘승자의 전설’에 패망국 백제의 공주가 이만큼이라도 적극적 성격의 인물로 그려진 것은 인상적이다. 그런 점에서 실제의 계산공주는 기록에 나타난 면모보다 훨씬 지혜롭고 강건한 인물이었을 것 같다. 계산공주는 우리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물론 ‘역사적 인물’로 대우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설화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의 상징이나 은유일 경우가 많다. ‘삼국유사’는 신라의 백제 공략에 대한 당위성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소정방과 새의 일화를 끌어들였다. ‘동경잡기’는 경주 건천의 작원(鵲院)이라는 땅이름의 유래를 설명하고자 전래설화를 차용한 것이다. 애써 가공 인물을 창작할 이유는 전혀 없다. 계산공주는 자신의 운명을 넘어 국가의 운명까지 개척하고자 했던 강인한 여성상을 보여 준다. 개인적으로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별종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두고 편가름이 없던 시대 일반적 여성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녀 역할에 편견을 가진 시대를 너무 오래 살아 ‘신기한 공주’로 보는 것은 아닌지 반성도 하게 된다.
  • “아이 깨면 환불” “오토바이 소리 안 나게”…도 넘은 배달앱 ‘갑질’[이슈픽]

    “아이 깨면 환불” “오토바이 소리 안 나게”…도 넘은 배달앱 ‘갑질’[이슈픽]

    최근 배달앱 이용 고객 중 ‘요청사항’을 통해 상식을 넘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례들이 잇달아 전해져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1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장님을 화나게 한 요청사항’이라는 제목으로 한 치킨집 주문 요청사항에 기재된 내용이 공유됐다. 해당 매장 주문서에는 요청사항에 “마스크 꼭 착용하고 요리 부탁, 봉투 꼼꼼, 무 꽉 채워 예쁘게 넣어주세요, 정량 안 떨어지게 넉넉히, 빠삭하게 튀겨서, 오토바이 소리 안 나게, 강아지 있으니 벨 노크 하지 말고 문 앞 의자 위에 흙 안 묻게 올리고 문자 전송 부탁, 절대 안 식게” 등의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다. 해당 글을 접한 네티즌들은 “이 정도면 바쁘다고 주문 취소하는 게 맞다”며 사장의 분노에 공감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배달앱을 통해 곱창집에 음식을 주문하면서 “아이 치즈스틱 좋아함. 아기 자니 벨 절대 ××. 노크 후 사진 보내주세요. 아이 깨면 환불. 절대로 ×××”라는 내용이 담긴 주문 메모가 공개된 바 있다.당시 곱창집 점주 A씨는 “후기 작성 이벤트로 나가는 음식은 무작위인데 없는 치즈스틱을 달라고 한다”며 “지난번 배달 때 기사가 계단 올라가는 소리에 아이 깼다고 별 1점 준 손님 같다”고 설명했다. A씨는 무리한 요청사항에 주문을 취소했다고. 이에 손님 B씨는 재주문을 했고 A씨는 다시 취소했다. 그러자 B씨는 A씨에게 “주문이 두 번이나 취소됐는데 왜 그러냐”는 문자를 보냈다. 이에 A씨는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로 남긴다. 저희는 배달 대행을 이용하고 있는데, 아이가 깨면 환불하겠다는 요청 사항에 배차가 안 된다. 양해 부탁드린다”고 설명했다. 이에 B씨는 “기분 나쁘다. 아이가 깨면 진짜로 환불 요청을 하겠냐”라며 “다짜고짜 전화하지 마라. 아르바이트생이냐. 주문 취소 권한이 있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맘카페에 올려도 되냐”며 A씨를 압박했다. A씨는 “많이 올려라. 저번에 노크 세게 했다고 별점 1개 주지 않았느냐. 자영업자에게 리뷰는 생명줄”이라며 “아이 키우는 게 유세가 아니니까 갑질 좀 적당히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나도 아이 키우는 처지고, 우리 어머니도 나 키울 때 손님처럼 생각 없이 행동하고 그러지 않았다. 다시는 주문하지 말아 달라”고 강하게 대응했다. 그 밖에도 “아이랑 먹을 거라 위생에 더 신경 써달라. 물티슈 20개, 냅킨 많이, 온수 1컵”을 요청한 손님이 있는가 하면 “아이가 순살을 좋아해서 몇 조각만 넣어주시면 감사요. 식구가 다섯이라 치즈볼 다섯개 챙겨주시면 (리뷰) 이쁘게 작성”이라며 리뷰를 빌미로 주문하지도 않은 메뉴를 요청하는 고객도 있었다. ‘리뷰’ 빌미로 갑질…소상공인 78%, 배달앱 리뷰로 피해 경험 배달앱 ‘배달의민족’이 운영하는 ‘배민사장님광장’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곤란한 손님에는 ‘당당하게 사이드메뉴 서비스 요청하는 경우’가 꼽혔다. 2위는 ‘레시피 무시하는 과도한 맛 변경 요청’(21.2%), 3위는 ‘2인분 같은 1인분 요청’(14.9%) 등이었다. 각종 앱을 통한 포장이나 배달 주문이 늘면서 손님들의 리뷰가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자영업자들은 이런 무리한 요구를 대놓고 무시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요청사항을 들어주지 않았다가 별점 테러를 당할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9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이 발표한 ‘배달앱 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소상공인 중 78.0%는 배달앱 리뷰로 인한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 경험으로는 ▲소비자의 잘못을 음식점의 실수로 전가(79.0%·중복응답) ▲이유 없는 부정적인 평가(71.7%) ▲리뷰를 담보로 하는 무리한 서비스 요구(59.7%) 등이 있었다.
  • ‘비밀의 집’ 서하준, 몸캠 피해 언급 “더는 얽매이지 않아”

    ‘비밀의 집’ 서하준, 몸캠 피해 언급 “더는 얽매이지 않아”

    배우 서하준(33)이 MBC 일일드라마 ‘비밀의 집’ 종영 인터뷰에서 15년 연기 인생을 돌아봤다. 서하준은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드라마 데뷔작 ‘오로라 공주’(2013년) 출연 당시와 달라진 점을 풀어놨다. 그는 “그때는 사실 정신이 없었다. 매체에 욕심이 있던 시기가 아니었고, 연극을 하면서 우연히 본 2번째 오디션에서 합격한 거다. 합격 연락을 받고 거의 이틀 뒤 촬영을 나간 걸로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이어 “‘오로라 공주’가 끝나고는 시스템이 몸에 익다 보니까 전력 질주한 것 같다. 스스로 달릴 줄 아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행선지는 어디인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때를 떠올려보면 지금은 마음에 안정과 평화가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연극 무대에서 활약한 것을 포함해 데뷔 15년차 배우가 된 지금, 서하준은 일일드라마 외 장르에 대한 의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제는 조금 욕심난다. 연기하는 건 똑같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조금 다른 촬영 시스템에서 연기를 해보고 싶다. 영화와 드라마가 다르듯, 드라마 속에서도 일일극과 미니시리즈, OTT 등이 약간씩 다르다고 한다”며 “일일극은 너무 달리다 보니까 디테일이 떨어져서 연기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다. 다른 환경에서 촬영해보고도 싶다”고 털어놨다.다양한 배역에 대한 욕심도 내비쳤다. 서하준은 “그냥 많이 해보고 싶다. 악역, 선역을 나누려고 하지는 않지만 굳이 나눈다면 구분 없이 다 해보고 싶다”며 “좋은 사람으로서 좋은 연기 보여드리고 싶다. ‘어떤 배우가 될까’라는 생각의 끝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는 게 최선이라는 거다”라고 말했다. 2016년 논란이 됐던 몸캠 유출 피해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했다. 서하준은 “지금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연기는 해야 되는 부분이고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며 “저를 사랑해주시는 팬들, 가족, 제가 지켜야 하는 회사 식구들을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좋은 모습으로 보답드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서하준은 ‘비밀의 집’에서 주인공 우지환을 연기하며 124부작을 이끌었다. ‘비밀의 집’은 사라진 엄마의 흔적을 쫓는 흙수저 변호사 우지환이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재벌가로 들어가는 복수의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극중 복수를 위해 결혼하는 연기를 선보인 서하준은 실제 결혼에 대해 “결혼 생각은 아직 없다”면서 “(결혼한 부부와 가정이) 부럽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아직 책임지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다.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결혼하게 된다면) 원래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딸을 갖고 싶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이더라”며 웃었다.
  • 이대호 “사직 오면 눈물 날 것 같아… 은퇴 다음날은 푹 잘 것”

    이대호 “사직 오면 눈물 날 것 같아… 은퇴 다음날은 푹 잘 것”

    “진짜 사직구장 못 올 거 같습니다. 오면 눈물이 날 것아요.”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40)는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은퇴 경기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팬들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면서, 은퇴를 맞는 자신의 심정을 담담하게 밝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사랑하던 롯데를 우승시키지 못하고 은퇴해서 마음이 무겁다”면서 “후배들이 노력해서 팬들에게 우승을 선물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이대호의 기자회견 전문 →은퇴를 앞둔 심정은 어떤가. -떨리고, 기대되고, 아쉬운 점도 있다. 저를 보기 위해서 많이 와주셔서 감사드리고 사랑받으면서 떠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아침에 출근할 때 가족과는 어떤 이야기를 했나. -딸이 아파서 아침에 병원을 다녀왔다. 아빠 은퇴하니까 딸도 긴장이 풀렸나 보다. 감기에 걸려서 병원 다녀왔는데. 딸이 아픈 바람에 슬플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딸이 아빠 울지 말라고 대신 아픈 것 같다. →마지막이라는 실감이 언제 들었나. -올스타전 끝나고부터 실감하고 있었다. 팬들이 주시는 사랑을 느끼며 은퇴할 때가 됐구나 싶었다. (은퇴식 날짜인) 10월 8일이 안 올 줄 알았는데 빨리 와서 아쉽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좋은 결과로 웃으면서 떠나겠다. →야구장 출근길은 어땠나. -‘진짜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새벽같이 오셔서 줄 서서 사인받으려 노력하는 팬들의 모습에 감사드린다. 비록 다 해드리진 못했지만 제 마음은 경기만 없으면 다 해드리고 싶었다. →오늘 경기에서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홀가분하게 열심히 준비했던 게 생각보다 결과가 잘 나왔다. 한국에 우승하고 싶어서 돌아왔다고 했는데, 후배들한테 짐을 맡기고 떠나는 게 미안하다. 저는 떠나지만, 제가 가진 야구 기술이라든지 노하우는 후배들에게 언제든 이야기해 줄 것이다. →은퇴 다음 날인 내일 계획은. -은퇴 투어 준비하면서 잠을 많이 못 잤다. 사인도 해야 하고, 은퇴사 준비하며 눈물도 많이 흘렸다. 딸이 감기 때문에 밤에 기침도 많이 했다. 내일은 일요일이고, 다음 날도 공휴일이니 집에서 푹 쉴 생각이다. →은퇴식 특별 유니폼은 어떤가? -마음에 든다. 제가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생각보다 예쁘게 나왔다. 팬들께서 벌써 준비하셔서 사인받으려고 들고 오신 걸 보니 감사할 뿐이다. →오늘 경기를 앞둔 마지막 연습은 어땠나. -후배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다. 유니폼 입는 게 마지막이라 느끼면서 할 말은 다 한 거 같다. 후배들이 성장해서 성적을 내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야구 인생을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기억에 남는 경기는 많다. 올림픽이라든지 아시안게임이라든지. 특히 국가대표가 기억에 남는다. 돌이켜보면 제일 처음 국가대표를 했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이 생각난다. 성적이 안 났을 때 비난받았고, 그게 기억에 남는다. 우승하고 금메달 땄을 때는 국민들이 좋아해 주시지만, 선수로 기억에 남는 건 열심히 하고 결과가 안 좋을 때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팬들에게 알아달라는 말을 못 하는 게 마음이 아프더라. 국가대표가 영광이지만, 성적 스트레스도 받는다. 선수들도 사람인데 열심히 안 하고 싶겠는가. 선수들도 이기고 싶다. 준비도 많이 했는데 성적 안 났을 때 위로해주시면 더 좋은 선수가 될 거다. 잘했을 때보다 못했을 때 위로해주시면 한국 야구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따로 기부 계획을 밝힌 걸로 안다. -구단이 저를 위해 (1억원을) 기부한다고 한다. 2년 전 롯데와 계약할 때 우승하면 옵션으로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걸었다. 팬들과 약속 못 지켜서 죄송하다. 은퇴 투어 하면서 제가 기부한 돈으로 수술해서 건강을 찾았다는 말에는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했다. 비록 우승은 선물 못 했지만, 아내와 상의 끝에 저도 1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도움 필요한 분 찾아서 좋은 데 쓰겠다. →롯데에서 우승은 못 했어도 일본에서는 했다. -소프트뱅크 우승했을 때 인터뷰한 게 기억난다. 거기서 우승했을 때 기분 좋았고 일본 선수와 헹가래하고 샴페인 뿌리며 좋았다. 그때 ‘제가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롯데가 우승했으면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부산 팬이 좋아할 거 같다’고 말했다. 결국 약속 못 지키고 가는 게 미안하다. 후배들도 노력하고, (롯데) 그룹에서도 힘을 써서 우리 롯데 팬이 염원하는 우승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은퇴 시즌 좋은 성적에 자부심을 느끼는가. -올해 은퇴를 생각하고 마지막까지 더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었다. 잘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더 노력하려고 했다. 마지막에 좋은 모습으로 나가는 게 믿음에 보답하는 거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운이 좋았다. 덕분에 이렇게 사랑 많이 받고 떠난다. →사직구장은 언제 다시 올 수 있겠나. -진짜 사직구장 못 올 거 같다. 오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여기 20년을 왔다 갔다 했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안다. 저도 모르게 유니폼을 입어야 할 거 같다는 마음이 들 거 같다. 방망이 들어야 할 거 같고. 가진 에너지를 다 써서 많이 힘든데 남은 한 경기, 9이닝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 →최동원 선배에 이어 영구결번이 됐다. -최동원 선배 때문에 야구를 했다. 최동원 선배의 정신력을 우리 후배들이 좀 더 안다면 이른 시일 내에 우승한다고 생각한다.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우승도 못 했을 것이다. 후배들에게 항상 말하는 게 희생이다. 아프다고, 쉬고 싶다고 쉬면 팀에 마이너스다. 어릴 때부터 무조건 뛰어야 한다는 게 제 마음속의 기본이었다. 부상도 사치라는 생각으로 뛰었다. →후계자를 지목한다면. -한동희 선수가 지금 우리 팀에서는 가장 잘할 거 같다. 1군에 김민수 선수나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가 있다. 그 선수들이 갑자기 좋아질 수도 있다. 잠재력 충분한 선수이니 기대 많이 하고 응원하겠다.→한미일 3개국을 다 경험했다. -일본도 도전이었지만, 미국은 정말 다 내려놓고 갔다. (2017년) 한국 돌아올 때도 힘이 있을 때 와서 롯데 팬에게 우승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걸 못 이뤄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죄짓고 떠나는 기분이고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지도자를 할 계획은 있나. -기회가 된다면 롯데에서 동고동락했던 선수, 코치들하고 같이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후배들이 많이 울었다. -(강)민호는 삼성에 있으면 안 되는 선수다. 정말 강민호와 손아섭 선수는 롯데에 뼈를 묻어야 하는 선수인데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민호와 아섭이는 힘들 때를 같이 겪었던 후배다. (성적이 나빴던) ‘비밀번호’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다. 그 선수들이 롯데에 없다는 거 자체가 롯데는 보석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선배로서 안타깝다. 저 다음 (롯데의 상징이) 강민호라 생각했는데 안타깝다. 아섭이도 정말 열심히 했다. 다른 팀 갔지만,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만 앞으로는 잘하는 롯데 선수가 다른 팀으로 안 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투수로 입단했는데 은퇴 경기에 투수로 나올 수 있나. -20년째 준비는 했는데 될지는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등판) 준비하다 대타로 나가서 홈런 친 기억이 있다. →스스로 야구 인생에 점수를 매긴다면. -50점이다. 개인 성적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정말 사랑받고 떠나서 행복하다. 그러나 제가 어릴 때부터 사랑한 롯데를 우승 못 시키고 떠난다는 생각에 50점이라 생각한다.
  • “드디어 한국에 갑니다” 2022 K-POP 커버댄스 페스티벌 인 태국 성료

    “드디어 한국에 갑니다” 2022 K-POP 커버댄스 페스티벌 인 태국 성료

    지난 1일 오후 2시(현지시간) 태국 방콕 북부에 위치한 퓨처파크 랑싯 쇼핑몰에서 ‘케이팝(K-POP) 커버댄스 페스티벌인 태국’ 행사가 열렸다. 문승현 주태국 대한민국 대사는 축사에서 “최근에는 한국과 태국이 함께 교류하는 아이돌들도 태국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같은 한태 교류는 양국의 우정을 투텁게 하고 소프트파워 성장에 좋은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 이후 오프라인으로 3년 만에 개최된 이번 축제에 대한 관심은 참가자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큰 환호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쇼핑몰 각층마다 곳곳에서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보며 뜨거운 박수와 호응을 보냈다. 관객들의 열기는 시원한 실내를 뜨겁게 달구면서 지나가는 발걸음도 멈추고 함께 즐기는 모습도 가득했다. 조재일 주태국 한국문화원장은 “코로나 사태 이후 3년 만에 한국문화원, 서울신문, 한태교류센터가 힘을 모아 오프라인으로 개최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뛰어난 실력을 가진 태국의 2PM 닉쿤, 블랙핑크 리사, 갓세븐 뱀뱀, NCT 텐, (여자)아이들 민니 등이 K팝 가수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전 세계와의 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의미가 매우 크다” 전했다. 세븐틴의 고맙다를 커버한 13인조 ‘건스쿼드’(GunSquad)가 태국 우승을 거머쥐며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았다.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구성된 건스쿼드는 학생, 엔지니어,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큰 공통점은 역시나 바로 케이팝을 사랑하는 마음이다.팀 리더 보스는 “같이 춤을 춘지 3년 정도 됐다”며 “예전부터 케이팝 커버댄스를 좋아해서 태국 대표로 참가하고 싶은 마음에 팀을 결성했는데, 실제로 태국 우승팀이 되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멤버 전원이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정말 많이 구경하고 싶고 무엇보다 서울에서 열리는 전세계 결승에서 최종 우승을 하고 싶다”는 각오도 밝혔다. 마지막 소감을 전하고 우승팀은 관객석의 팬들에 둘러싸여 한참 동안 함께 사진을 찍어주며 태국 무대 우승을 즐겼다. 홍지희 한태교류센터 대표는 “코로나 이후 감격스러운 무대가 열린 것 같다. 팀들이 그 사이 더욱 발전한 것 같다”며 “상황이 어려운데도 다들 열심히 노력한 것 같아서 감동적”이라고 전했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2022 케이팝 커버댄스 페스티벌’은 세계 최초, 세계 최대의 케이팝 온·오프라인 한류 팬 소통 프로그램이다. 서울시,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서울관광재단, 뉴에라, 올케이팝, 펜타클이 후원했다. 각국의 우승팀은 오는 15일 서울 월드 파이널 최종 결선에 초청돼 다국적 케이팝 팬들과 함께 뜨거운 교류의 무대를 즐기게 된다.
  • “술취해 大자로 뻗어?” 우영우 박은빈, 유일한 일탈은?

    “술취해 大자로 뻗어?” 우영우 박은빈, 유일한 일탈은?

    배우 박은빈이 tvN ‘유퀴즈 온더 블록’에 출연했다. 5일 공개된 예고편에 따르면 박은빈은 ‘유퀴즈’에서 ‘바른생활소녀’ 생활상을 공개했다. 박은빈은 과거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의 인터뷰에서 “공부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걸 못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한쪽은 좀 소홀히 해야겠죠. 그런데 아직은 그렇게 포기하고 싶지 않고, 둘 다 하고 싶어요”라며 학업과 연기생활 모두에 대한 의욕을 드러낸 바 있다. 실제로도 박은빈은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반장, 학생회장, 선도부 활동까지 아우르는 등 학교생활을 충실히 해냈다. 대학도 실기시험에서 유리한 연극영화과가 아닌 일반학부에 지원, 서강대 사회과학계열에 합격했다. 대학에서도 복수전공으로 심리학, 신문방송학 학위를 모두 받았다. 이와 관련해 박은빈은 ‘유퀴즈’에서 학창시절 유일한 일탈이 혼자 노래방 가기였을 정도라고 부연 설명했다. 유재석이 “일탈이라고 하면 수업시간에 나 홀로 학교 담장 밖으로 몸을 던져봤다. 이런 해방감이 일탈”이라고 하자 박은빈은 “나도 비슷하게 있다. 스케줄을 쪼개서 최대한 수업 많이 들으려고 했는데 늦게 와서 교문이 잠겨 있길래 담장을 넘어본 적 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제대로 놀아본 적 있냐”는 질문에도 박은빈은 “활동적인 걸 좋아해서 워타파크에 가본 적이 있고, 사륜구동 오토바이를 타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답답했던 조세호가 “은빈씨, 술 취해서 대(大)자로 뻗어서 자본 적 없냐”며 바닥에 눕고 유재석이 “놀다 보니 해가 뜬다든가”라고 하자 생각에 빠졌다. 박은빈은 “종방연 끝났을 때 자리를 지키느라 (그런 적 있다). 술 잘 안 마시지만 맨 정신으로 버티는거 괜찮다”라며 ‘철옹성’ 같은 바른생활 면모로 폭소를 자아냈다. ‘유퀴즈’ 박은빈 편은 5일 오후 8시 40분 방송된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광부의 딸’이자 페미니스트 가수 로레타 린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광부의 딸’이자 페미니스트 가수 로레타 린

    영화 ‘광부의 딸’ 주제곡을 만든 컨트리 음악의 여왕 로레타 린이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고인이 4일(현지시간) 아침 미국 테네시주 자택에서 잠자다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로레타는 1960∼70년대 컨트리 음악계를 대표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 페미니스트였다. 자신의 인생 경험을 녹여 곡을 썼고 늘 강인함과 독립심을 여성에게 심어주는 가사를 붙였다. 그녀는 켄터키주 탄광 마을에서 8남매를 둔 광부 가족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통나무 오두막은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대공황 때 빈털터리가 된 아버지는 밤새 탄광에서 일하고 낮에는 옥수수를 길렀디. 가족의 고단한 삶에 위안이 된 것이 음악이었다. 어머니가 기타를, 아버지가 밴조를 연주하면 아이들은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고 2016년 AP 통신 인터뷰를 통해 돌아봤다. “아빠가 ‘로레타, 그 큰 입 좀 다물렴. 이 홀 안의 모두가 듣겠다’ 그러면 난 ‘아빠, 뭐가 달라지는데요? 그들은 모두 사촌들인데’라고 대꾸하곤 했어요.” 열다섯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당시에는 파이를 구워 그걸 맛있다고 먹는 남자와 데이트하는 유행이 있었는데 로레타는 그만 설탕 대신 소금을 넣어 구웠다. 그게 맛있다고 군인 올리버 린이 말했고, 둘은 한 달 뒤 결혼해 워싱턴주 커스터란 곳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네 아이를 키웠다. 올리버는 아내를 ‘두리틀’(Doolittle)이라 불렀고, 프로로 노래하라고 권하며 17달러짜리 기타를 사줬다. 자신의 이름을 딴 밴드를 결성한 그녀는 남동생 제이 리 웹도 멤버로 넣어 제로 레코드란 회사에서 데뷔 싱글 ‘아임 어 홍키 통크 걸’을 내놓았다. 1960년의 일이다. 워싱턴주에서 친해진 여성이 남편에게 버림 받은 얘기를 낡은 화장실 벽에 기댄 채 작곡했고 10분 만에 영감이 떠올라 가사를 썼다고 했다. 부부는 모든 카운티를 돌아다니며 라디오 DJ들에게 틀어달라고 공짜 음반을 뿌렸다. 이렇게 해서 이 노래는 컨트리 음악 차트 14위까지 올랐고 가족은 내슈빌로 이사한 뒤 데카 레코드와 계약했다. 2년 뒤 첫 앨범 ‘석세스’를 내놓아 1990년대까지 꾸준히 히트곡을 내놓았다. 1965년 발표한 ‘술 취해 집에 오지 마’가 처음 1위를 차지한 뒤 무려 15차례 더 영광을 차지했다. 통산 60장의 앨범에 18차례 그래미상 후보에 올라 세 차례 수상했다. 페미니스트들의 애창곡 ‘더 필’, 남편에게 접근하는 여자를 혼내주겠다고 다짐하는 ‘피스트 시티’ 등 체험담을 오선지에 그린 히트곡들을 연달아 내놓았다. 남편이 음악 활동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고, 그녀도 많은 인터뷰를 통해 고마움을 밝혔지만 둘은 종종 심하게 다퉜다. “남편이 한 방 먹이면 나도 먹이고, 늘 그런 식이었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그래도 올리버와는 1996년 먼저 세상을 등질 때까지 48년을 해로했다. 로이터 통신은 “남성 중심의 컨트리 음악계에서 대담하고 재능있는 산골 페미니스트로 명성을 쌓았다”며 “고인의 노래는 남녀 불평등, 피임약과 여성의 성적 자유 문제 등을 다뤘다”고 전했다. 1975년 발표한 ‘더 필’은 피임약이 있었다면 나중에 두 자녀를 낳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하는 내용의 노래였다. 이렇게 그의 노래 14곡은 당시로는 도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가사 때문에 라디오 방송 금지곡에 오르기도 했다. 그 무렵 동료 콘웨이 트위티와 듀오를 결성해 많은 히트곡을 내놓았다. 1976년에 시골마을 주부에서 컨트리 음악 여왕이 되기까지를 자서전으로 펴냈는데 제목이 ‘광부의 딸’이었다. 같은 제목으로 1980년 개봉한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린을 연기한 배우 시시 스페이섹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1980년대 들어 곡을 드문드문 발표했고 1990년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래도 앨범 몇 장을 내놓았는데 1993년 ‘홍키 통크 위민’에 돌리 파턴, 태미 와이넷이 협업했다. 나중에 음식에 관심을 돌려 로레타 린스 키친이란 레스토랑을 창업하고 인생 얘기와 조리법을 버무린 요리책을 시리즈로 내놓았다. 파턴의 돌리 우드를 본떠 테네시주에 로레타 린 목장을 열고 미술전, 캠핑장, 음악 공연 등을 개최했다. 2004년 자신의 광팬 잭 화이트가 그녀를 설득해 앨범을 다시 녹음하고 밴조가 등장하는 밴드를 조직해 음악에로 돌아왔다. 작사 실력도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나이 일흔둘에 새로운 청중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래미상 베스트 컨트리앨범으로 뽑혔다. 고인은 미국 최고 권위 음악상인 그래미상을 받았고, 1988년 컨트리 음악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2013년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시민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받아 목에 걸었다. 그 뒤에도 새 곡과 옛 노래를 리메이크한 ‘풀 서클’ 앨범을 발표했고 지난해에도 ‘스틸 우먼 이너프’란 곡을 써 마고 프라이스, 타냐 터커와 듀엣으로 노래하기도 했다. 2017년 졸도해 투어 공연을 중단했고 이듬해 집에서 넘어져 골반을 다쳐 고생했다. 타블로이드 매체들은 그녀의 건강이 나빠졌다고 보도했지만 연주하고 녹음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 무렵 페이스북에 “오랜 세월 그들은 나보고 파산했네. 집이 없네, 사기를 치네, 술 마시네, 미쳤네, 불치병이네, 심지어 죽었네 했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그런 낡고 쓰레기 같은 타블로이드들이 날 희롱할 정도면 딴 사람들은 박살낼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난 조금만 손을 뻗으면 그놈들에게 ‘피스트 시티’ 먹일 수 있다고!”라고 적었다. BBC 음악 전문기자 마크 새비지는 지난 60년 동안 팬들에게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당당함을 보여줬다며 그런 요소가 그녀의 음악을 믿을 만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2004년 인터뷰했을 때 로레타는 “난 실제의 삶을 좋아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오늘 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내 생각에 사람들이 내 레코드를 사는 이유는 나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그것을 꽉 잡는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여섯 자녀 가운데 클라라, 어니스트, 쌍둥이 페기와 팻시만 남아 있고 17명의 손주, 네 증손주를 뒀다.
  • 서인·노론에 맞선 남인들의 총본산… 사도세자 신원 등 영남만인소 주도 [이동구의 서원 산책]

    서인·노론에 맞선 남인들의 총본산… 사도세자 신원 등 영남만인소 주도 [이동구의 서원 산책]

    ‘왕권중심 개혁 정치’ 이언적 기려 작고 소박하게… 절제의 미학 구현 ‘전학후묘’ 서원 배치 전형 보여줘 삼국사기 등 고서 유물 최다 보유 수요일마다 주민들 한학 수업 진행 경북 포항에서 영천 방향으로 국도를 따라 가면 경주시 안강읍 주변에 ‘양동민속마을’이 있다. 성리학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 선생을 배출한 여주 이씨와 경주 손씨 양성이 서로 협동하고 경쟁하며 600여년의 역사를 이어 온 마을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이곳에서 영천 방향으로 8㎞쯤 떨어진 곳에는 201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옥산서원이 있다. 사회의 온갖 비리들은 왕권 중심의 정치를 통해서 개혁될 수 있다고 믿었던 회재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한때 평야로도 불렸던 경주 안강뜰의 서쪽 자옥산(紫玉山) 아랫마을에 위치한 옥산서원은 서인 또는 노론정권에 대항하는 남인의 총본산으로서 경주권 내 유림을 조직, 동원하는 위치로 그 영향력을 증대했다.1610년(광해군 2년)에는 제향자 이언적이 동방5현으로 문묘에 종사되면서 이황을 배향하는 도산서원과 함께 영남 남인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인식됐다. 옥산서원의 유림들은 노론인사 송시열(宋時烈)의 문묘종사를 반대하는 영남유소(1736년 영조 12년), 사도세자의 신원을 청하는 두 차례의 영남만인소(1792년 정조 16년, 1855년 철종 6년)와 대원군의 서원 철폐를 반대하는 영남만인소(1871년·고종 8년) 등을 이끌었다. 1884년(고종 21년)에는 복제개혁에 반대하는 만인소를 주관하기도 했던 곳이다. ●독락당과 옥산서원 옥산서원은 이언적 사후 19년이 지난 1572년(선조 5년)에 건립됐다. 이언적이 어린 시절 공부와 독서를 했던 곳이자 1532년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 정적들의 공격으로 파직되자 낙향해 독락당(獨樂堂)을 창건하고 약 5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이언적은 이곳에 머물면서 자연 경관을 좋아해 독락당 옆으로 흐르는 자계천 주변의 몇몇 바위를 징심대, 탁영대, 영귀대, 관어대, 세심대라 명명했고 많은 시를 남겼다. 특히 옥산서원 밖 북쪽 일대의 바위를 가리킨 세심대는 정조 임금이 이언적의 속대학혹문(續大學或問)의 서문을 내고 지방초시를 개최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 바위에 새겨진 세심대와 용추라는 글씨는 이황이, 계정이라는 정자와 독락당의 현판은 당대의 명필인 한석봉과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가 썼다. 옥산서원의 강당인 구인당의 편액은 1839년(헌종 5년) 추사 김정희가 썼다. 회재 선생 사후 19년이 지나 후학들에 의해 조성된 옥산서원은 독락당을 중심으로 각 건물이 조화롭게 배치되도록 했다. 서원의 출입문-누각-강학공간과 마당-강당-사당출입물-사당-사당 뒤쪽의 담장으로 이어지는 중심축에 건물이 배치됐다. 강당인 구인당을 비롯해 서원의 내삼문인 체인묘와 역락문, 누각인 무변루 등 앞쪽에는 강학공간을, 뒤쪽에는 제향공간을 형성해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하고 있다. 조선 서원 건물은 주변 건물보다 크거나 화려하지 않다. 절제되고 단아한 모습으로 조성돼 성리학적 세계관을 서원 건축물과 공간에 응축시켜 놓았다. 절제의 미학으로 표현되곤 한다. 특히 화려함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을 꺼리고 대자연을 자기 안으로 수렴하며 제향자의 정신이 반영된 최소한의 규모로 소박하게 지어진 게 서원 건물의 특징이다. ●탄탄했던 서원 곳간 옥산서원은 제향자의 내외손, 향촌사림, 지방관의 상호 협조하에 설립돼 설립 초기부터 경제적 기반이 탄탄했다. 창건과 동시에 경주 읍민의 토지가 모아졌고 당시 청도, 경산 군수를 역임했던 이언적의 서손인 이준 등 관의 적극적인 협조가 뒤따랐다. 서원 설립 초기 토지가 300여곡(1곡은 10두, 쌀 200석을 생산 가능한 토지)이나 됐다고 한다. 옥산서원의 전답 규모는 소수, 도산, 병산서원 등 영남의 대표적인 서원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여타 사액을 받지 못한 서원들에 비해서는 월등하게 크다. 서원의 토지와 노비 확보는 서원경제의 양대 기반이었다. 옥산서원의 호구단자 등에 나타난 노비 소유 규모는 설립 초기 58명에서 1801년 153명으로 늘어났다. 또 중요한 것이 국가 또는 관료, 사림들에 의한 서책, 어염 등 각종 현물 공여이다. 옥산서원은 정기적으로 소금과 각종 물품을 수송하기 위한 선척(배)도 영일, 장기, 흥해 등지에 여러 척 확보해 두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옥산서원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이지한 재무유사는 “현재도 서원 소유의 토지는 1만 2000여평에 달하나 실제 수입은 연간 1500만원 수준에 불과해 향사비로도 빠듯한 실정”이라고 말했다.옥산서원은 현존 서원 가운데 가장 많은 고문서, 필사본, 고서 등을 소장하고 있다. 이들 자료는 조선 중기 이후 서원과 향촌사회 연구에 귀중한 사료이다. 2004년 조사에 따르면 옥산서원이 소장한 고서는 총 943종 3977책으로 도선서원, 병산서원과 더불어 3000책 이상을 보유한 서원으로 꼽힌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보물 제525호)를 비롯해 동국이상국전집 등 다수의 귀중본이 있다. 삼국사기는 출간 후 남아 있는 판본의 수가 매우 적다. 반면 옥산서원 소장의 삼국사기는 1512년(중종 7년)에 경주에서 간행한 것으로 50권 9책의 완질이 남아 있다. 옥산서원에서 1862년(철종 13년) 5월에 작성한 ‘서책현재도록’에는 서원의 서책이 서원문 밖으로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과 관리자가 책을 열람한 사람과 날짜, 책명 등을 기록한 후 직접 돌려받도록 했고, 책을 잃어버리면 반드시 다른 것을 구해 놓도록 했다. 이 같은 각별한 장서 관리가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많은 장서가 전승될 수 있었다. 후손들은 “아직도 제대로 조사·연구되지 않은 유물들이 많다며 실제 남아 있는 고서는 6000여점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서원의 장서들을 제대로 보관하기 위해 1972년 회재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청분각을 건립해 유물을 보관했으나 충분치 못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2009년 ‘옥산서원유물전시관’을 새로 지어 유물의 훼손 방지, 도난 및 화재 예방 조치와 함께 일반인들의 열람이 가능토록 했다. 하지만 전시관은 40여평 남짓한 소규모에 불과해 대부분의 고서와 유물들은 수장고에 보관해 둔 상태다. 이지성 옥산서원 운영위원장은 “각종 고문서와 소중한 자료들이 비좁은 수장고에 보관만 된 채 제대로 연구가 되고 있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서 “전문 학예사 파견을 비롯해 체계적이고 활발한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교육관 설립 주변 환경 정비가 숙원 옥산서원은 매주 수요일이면 책 읽는 소리가 4시간여 동안 계속된다. 지역민 30여명이 서원 강당인 구인당(求仁堂) 마루에서 한학을 배운다. 5월에서 10월 초까지 가능하다. 날씨가 추워지면 강의와 수업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원 측은 현재 문화재청과 경주시, 경북도 등과 함께 교육관 설립을 추진 중이나 진척은 더디다. 이 운영위원장은 “메타버스 등 인공지능과 인터넷 등을 활용한 유학의 인성교육 등을 구상하고 있으나 서원의 능력만으로 한계가 있다”면서 문화·교육계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라고 있다. 서원 주변의 환경과 자연경관 훼손도 걱정이다. 자계천이 흐르는 옥산서원 주변은 경치가 좋고 계곡물도 맑으니 여름철이면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다. 이들로 인해 세심대, 탁영대 등 서원의 역사를 품고 있는 바위를 비롯한 자연 경관의 훼손이 우려되고 있다. 서원 관리를 위해 파견된 이지현 경주시 주무관은 “환경오염 방지와 서원 주변 경관 보존을 위해서라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서원이 요구하는 서원 관람 유료화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사진 찍는 의사, 찍다 보니 ‘월클’ 찍었다

    사진 찍는 의사, 찍다 보니 ‘월클’ 찍었다

    올 세계 최대 사진전 ‘IPA’ 2관왕울릉도 공중보건의 때 사진 시작취미·전공 공통분모, 시너지 효과“사진, 본업이면 재미없고 괴로워”직장인의 퇴근길은 가벼울수록 좋다. 무겁다는 것은 그만큼 처리할 잔업이 남았다는 의미이기도 한 탓이다. 그러나 서영균(38)씨의 퇴근길엔 무거운 짐이 한가득이다. 카메라와 삼각대, 각종 렌즈까지 챙긴 짐은 마치 군장을 연상하게 할 정도다. 서씨는 영상의학과 전문의다. 병원에서 종일 환자들의 CT, MRI 자료를 보고 병을 찾아내는 그는 퇴근 후엔 풍경의 사연을 찾아내는 일을 한다. 27일 경기 수원화성 동장대 인근에서 만난 서씨는 이미 삼각대를 펼쳐 놓고 동장대에 물드는 저녁노을을 담아내는 중이었다. 취미 생활이지만 “본업이 사진이고 부업이 의사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사진에 진심이다. 지난 16일에는 세계 최대 사진전인 2022 IPA 프로페셔널 부문에서 2관왕(도심 사진, 심사위원 톱5)에 올랐다. 수상작인 ‘타임 웨이브’(Time Wave)는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원형으로 이어 붙인 것으로 한쪽에는 노을이 물드는 풍경이, 한쪽에는 밤이 찾아온 풍경이 담겨 있다. 서씨의 사진 생활은 울릉도에서 공중보건의로 복무하던 시절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냥 지나치기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처음 섬에 들어갈 때는 가벼운 카메라를 들고 갔지만 나중에는 아예 고급 장비를 들고 갔다. 서씨는 “재미가 들려 쉬는 날이면 사진을 열심히 찍으러 다녔다”면서 “등산을 좋아해서 산에 다니다 보면 일출 시간이 되기도 하고 멋진 풍경을 만날 수도 있어 질리지 않고 사진 찍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사진에 재미를 느낀 것이 그의 전공 선택에도 영향을 줬다. 서씨는 “사진을 먼저 좋아한 것이 인턴, 레지던트 과정에서 영상의학을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면서 “두 분야가 눈썰미, 관찰력 면에서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상의학은 현대 의학에서 점점 중요성이 커지는 분야라 어떤 병의 징후가 보이는지 판단하는 그의 눈썰미가 중요하다. 직업 특성상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퇴근 후를 주로 이용해 찍는다. 사진의 주 배경이 저녁 시간대인 이유다. 서씨는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찍는데, 아직 아이들이 어려 가족 나들이 갔을 때 삼각대를 설치해 놓고 찍거나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은하수를 찍으러 가거나 한다”며 웃었다. 단순한 취미 수준을 넘어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도 하고, 사진으로 쌓는 이력이 많아지다 보니 가족 역시 그의 취미를 적극 응원해 준다. 서씨는 부업을 본업으로 삼고 싶은 이를 위해 현실적인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일은 재밌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사진이 취미가 아니라 일이었다면 괴롭지 않았을까 한다”면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있으면 정말 좋긴 하겠지만 부업을 본업으로 하고 싶으신 분들도 주어진 현실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여성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일이 ‘여성혐오’라고?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여성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일이 ‘여성혐오’라고?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4일에 일어난 서울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고 말해서 많은 사람의 분노를 샀다. 그의 발언에 반박한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그 사건은 그릇된 남성 문화,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위치하지 않다는 잘못된 차별 의식이 만들어 낸 여성혐오 범죄가 맞다고 주장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박 전 위원장의 말이 맞다. 김 장관 같은 사람들은 “범인이 여성을 ‘혐오’해서 죽이지 않았으니까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좋아해서 쫓아다닌 거니까 살인죄로 처벌받아도 그게 여성 ‘혐오’는 아니라는 거다. 이건 여성혐오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 문제에 관심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다. 오죽했으면 한 신문은 기사에서 박 전 위원장의 말을 두고 “그가 언급한 여성혐오(misogyny)는 단순한 혐오(hate)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편견과 멸시 등을 포괄하는 개념인 것으로 분석된다”는 설명까지 붙였을까. 그런데 여성혐오는 “그런 개념으로 분석”되는 게 아니라 그게 정의다. 박 전 위원장이 내린 정의도 아니고 선진국에서는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정의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그 신문기사를 쓴 여성 인턴기자는 여성혐오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만 기사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써야 한다는 생각에서 ‘박 전 위원장이 정의하는 여성혐오는 이렇다’라는 투로 썼거나, 아니면 여성혐오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스크에서 이를 박 전 위원장만의 생각인 것처럼 바꾼 듯하다. 이런 식의 기사는 ‘여성혐오’를 그 단어를 읽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해석해도 되는 하나의 ‘주장’ 정도로 축소시킨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이런 궁금증이 들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여성혐오를 ‘여성을 병적으로 싫어하고 미워하는 일’이라고 정의하지 않나? 범인이 피해자를 병적으로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면 여성혐오는 아닐 것 같은데?” 여성혐오는 영어 단어 misogyny(미소지니)의 번역어인데, 이 영어 단어는 그리스어 misos(혐오)와 gun(여성)이 결합돼 만들어진 말이다. 이런 단어에 국어사전에서 굳이 ‘병적으로’라는 제한을 둔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냥 여성을 싫어하는 건 정상이고, 병적으로 싫어해야 여성혐오라는 얘기일까? 물론 그런 종류의 ‘병’은 정신질환 진단의 국제 표준인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 존재하지 않는다. 국어사전의 이런 비과학적이고 낡은 정의는 바뀔 때가 됐다. 그런 이유로 한국의 여성들 중에는 여성혐오라는 표현보다 영어 단어인 ‘misogyny’를 외래어로 받아들여 ‘미소지니’라고 표현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영어사전은 미소지니를 어떻게 정의할까? 옥스퍼드 영어사전과 미리엄웹스터 영어사전 모두 20세기 내내 ‘여성에 대한 혐오’(hatred of women)라는 아주 단순한 정의를 적어 놓은 게 전부였다. 한국에서 사용되는 ‘여성혐오’와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변화가 생겼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2002년에 이 단어의 정의를 확장해 ‘여성에 대한 증오, 멸시, 뿌리 깊은 편견’(hatred or dislike of, or prejudice against women)이라고 바꿨고, 그보다 10여년 늦었지만 미리엄웹스터 사전도 그와 거의 동일한 정의로 변경한 것이다. 한글 위키피디아에서 제시하는 ‘여성혐오’의 해석도 이들 사전을 따르고 있고, 박 전 위원장의 발언도 바로 이렇게 일반화된 정의를 가져온 것이지 그가 새롭게 만들어 냈거나 주장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신당역 살인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를 좋다고 쫓아다닌 건데 그게 ‘여성에 대한 증오, 멸시, 뿌리 깊은 편견’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얘기지? 2014년 미국에서 일어난 끔찍한 여성혐오 사건이 있다. 누구도 여성혐오 범죄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이슬라비스타라는 한 작은 동네에서 22세의 남성이 인근 대학교 기숙사와 주변에서 자기 또래의 여성들만 골라 6명을 총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이 범인은 범행 전에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자신을 거부한 여자들을 징벌하고 싶다”고 말했다. 살해당한 여성들은 범인을 “거부한” 적도, 어떠한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범인의 눈에는 그들 모두가 똑같은 ‘여자’였을 뿐이다. 따라서 이 범행을 두고 여성혐오라고 말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성이 동일한 집단으로 묶여 혐오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 후에 서울에서 일어난 ‘강남역 살인 사건’의 범인도 거의 똑같은 진술을 했다.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왔다는 게 범행의 이유였다. 하지만 범인의 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대상(여성)만이 아니다. 그는 ‘징벌’(punish)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징벌은 법적 혹은 도덕적 규칙을 어긴 데 대해 벌을 주는 행위를 말하고 이를 실행하는 사람은 그렇게 할 만한 권위를 가졌다고 가정할 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범인은 이 단어를 사용했을까?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사고방식은 두 가지다. 우선 그는 자신(남성)이 만나자고 할 때 상대(여성)가 순응하는 것이 ‘룰’이라고 믿고 있다. 자신의 요청을 거부한 여성들은 그 룰을 어긴 것이다. 게다가 이런 일이 반복될 경우 남성인 자신이 거부한 여성들에게 벌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그 살해범만의 생각일까? 인류사회는 정도만 다를 뿐 암묵적으로 이를 당연시하거나 용인해 왔다. 이번 신당역 사건을 비롯해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한국 언론에서 별생각 없이 사용하는 ‘보복살인’이라는 표현이 그렇다. 보복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주체가 먼저 피해나 억울한 일을 당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흔히 그렇듯 신당역 사건의 범인은 꾸준히 가해만 했을 뿐이고, 그 결과 검찰의 구형을 받은 것이다. 그가 희생자에게서 받은 ‘피해’라는 건 만남을 거부당했다는 것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은 이를 쉽게 ‘보복’이라는 틀로 바라본다. 남자가 여자에게 만나자고 강요하고 스토킹하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라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까 폭력적인 대응”을 했다는 이상훈 서울시 의원의 발언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귀를 의심할 만큼 충격적인 발언이지만 주위에는 이렇게 남성의 편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여성혐오를 여성에 대한 증오를 넘어 ‘멸시’와 ‘뿌리 깊은 편견’으로 해석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의 말과 행동은 단순히 특정 개인이 여성을 싫어한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여성혐오적 언행은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서 나오고, 이는 인류 역사상 오래된 문화적 편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리스 신화 속 판도라 이야기와 유대·기독교 문서에 등장하는 이브와 선악과 이야기는 둘 다 “인류는 여성 때문에 타락하게 됐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신화는 당시에도 이미 존재하던 여성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 여성혐오가 생겨난 이유라고 보기는 힘들다. 인류역사에서 대규모 학살과 전쟁은 예외 없이 남성들에 의해 저질러졌지만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은 여성이 세상을 타락하게 했다고 믿는다. 작가인 니나 레나타 에런에 따르면 미소지니라는 단어가 17세기 영어에 처음 등장하게 된 계기는 “(남자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공격글에 대한 반박문이었다. 이게 고대의 신화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성을 상대로 폭력을 사용하는 남자들이 하는 “(여자인) 네가 말을 듣지 않으니까 내가 때리는 거 아니냐”는 황당한 주장을 들어본 적이 없을 뿐이다. 인류는 이제 이런 남자들의 어처구니없는 주장과 폭력의 근원이 여성혐오임을 인식하게 됐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여성혐오라는 표현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멸시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다시 정의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여가부 장관은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오터레터 발행인
  • 1.5평 공간서 불판 앞 10시간, 500인분 ‘완판’… 안 먹어도 배불러요 [나를 살리는 밥심]

    1.5평 공간서 불판 앞 10시간, 500인분 ‘완판’… 안 먹어도 배불러요 [나를 살리는 밥심]

    일상에 균열이 생겨도 예기치 못한 일로 무너져 내려도 먹어야 삽니다. 지난달 말 코로나19로 중단됐던 ‘한강달빛야시장’이 3년 만에 문을 열면서 푸드트럭이 돌아왔습니다. 가게마다 길게 늘어선 줄 앞에서 사장님의 손도 무척 바빠졌습니다. 손님에게 든든한 한 끼를 파는 푸드트럭 사장님들은 어떤 밥심으로 일하는지 야시장 현장을 찾았습니다.코로나 직격탄… 3년 만에 열린 야시장 지난 18일 오후 11시 서울 서초구 반포대교 아래 한강공원을 수놓았던 야시장의 불이 모두 꺼진 뒤 푸드트럭 사장 장현(40)씨와 최낙규(40)씨는 한강공원 주차장에 트럭을 대고 벤치에 앉았다. 아침 일찍 최씨의 아내가 싸 준 김밥을 먹은 뒤 12시간여 만에 다시 김밥과 샌드위치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최씨는 “음식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맛있고 좋은 음식을 제공해도 정작 본인은 밥을 잘 못 먹는 경우가 많다”면서 “온종일 음식을 하고 나면 맛있는 음식보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물에 후루룩 밥 말아 먹는 게 제일 좋다”고 말했다. 장씨도 “준비해 온 걸 다 팔고 나면 뭘 먹어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장장 10시간 넘게 서서 일했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는 힘찼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스테이크 500인분을 ‘완판’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2016년부터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매년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밤도깨비 야시장’에 참여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각종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갈 곳을 잃은 푸드트럭은 주로 아파트 장터를 지켰고 한 달에 3~4일밖에 쉬지 않고 일해도 수지를 맞추기 어려웠다. 두 사람이 각각 트럭 한 대씩을 운영하면서 버텼지만 올 초 결국 한 대를 팔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야시장이 3년 만에 재개되면서 푸드트럭 시장도 다시 활기를 되찾을 거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장씨는 “앞으로 더 많은 행사가 열리고 푸드트럭도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열릴 것 같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저녁되면 물도 못 마시고 화장실 못가 야시장이 열리는 날 장씨는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집기류와 전날 준비한 재료와 소스, 미리 손질해 숙성시킨 소고기 100㎏가량을 푸드트럭 냉장고에 싣고 집을 나선다. 식자재 마트 두세 곳을 들러 당일에 필요한 신선한 야채 등을 구입한 뒤 최씨를 만나 나머지 재료를 싣고 야시장이 열리는 한강공원으로 향한다. 두 사람이 일주일에 취급하는 고기만 원육 800㎏가량. 요리를 전공하고 20년 가까이 음식을 해 온 최씨는 “고기 손질에만 10시간가량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오후 1시 30분 잠수교 옆 달빛광장에 1t짜리 푸드트럭 39대가 차례로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푸드트럭 ‘람보르끼니’는 이날 2번 자리를 배정받았다. 장씨가 “자리는 돌아가면서 배정받는데 오늘 자리는 우리끼리 유배지라 부르는 곳”이라고 귀띔했다. 시장 초입에 자리잡으면 안내데스크처럼 손님에게 질문은 많이 받지만 장사는 안쪽이 더 잘된다는 얘기다. 오후 2시쯤 모든 트럭이 자리를 잡자 간판이 걸리고 하나둘 조명이 켜졌다. 트럭에 오른 장씨와 최씨도 앞치마를 두르고 재료를 다듬고 손질하기 시작했다. 황소를 로고로 한 유명 슈퍼카 브랜드의 이름을 재치 있게 변용한 상호명을 보며 재미있다는 반응, 지난번에 왔다가 못 먹고 갔다며 영업시간을 물어보는 손님이 슬슬 모이기 시작했다.오후 4시가 넘어가자 람보르끼니 등 몇몇 가게 앞에는 줄이 생겼다. 푸드트럭의 주방도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야시장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물 한 모금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동안 입소문이 난 덕인지 입구 자리에도 불구하고 9시 50분쯤 주문을 마감할 때까지 손님이 이어졌다. 장씨는 “개장 첫날만큼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면서 “첫날 세 시간을 기다렸다가 못 드시고 돌아가신 분이 계셨는데 어제 다시 오셨길래 무료로 드렸다”고 말했다. 삼겹살, 흔하지만 모두 좋아해 선택지난 21일 오후 7시 영등포구 한 식당에서 푸드트럭 ‘라이프오브자메이카’ 팀의 회식이 열렸다. 주말 내내 야시장에서 일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한 팀원과 든든하게 먹기 위해 오랜만에 마련된 자리다. 푸드트럭에서도 삼겹살을 파는 라이프오브자메이카 팀의 이날 회식 메뉴도 삼겹살이었다. 푸드트럭 대표 간종혁(30)씨는 “삼시세끼 고기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며 한국인의 솔푸드로 삼겹살을 꼽았다. 함께 동업하는 심윤영(31)씨도 “남이 구워 주는 고기가 제일 맛있지 않으냐”며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먹으니 행복하고 편하다”고 말했다. 푸드트럭 메뉴를 삼겹살로 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심씨는 “사람들이 가장 대중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인데 의외로 푸드트럭에는 삼겹살 메뉴가 없더라”면서 “한편으로는 삼겹살이 너무 흔해 과연 팔릴까 고민을 많이 해서 준비했는데 첫날 사람들이 많이 와서 뿌듯했다”고 말했다.푸드트럭, 여러 곳 다니며 추억 쌓는 맛 간씨와 심씨, 그리고 유다원(31)씨 세 사람이 동업하는 라이프오브자메이카는 2020년 밤도깨비 야시장에 지원해 1차 합격했지만 그해 코로나19로 장이 열리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잇따라 행사가 취소되면서 심씨는 제빵 자격증을 따 빵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3년 만에 다시 야시장이 열리게 되면서 심씨는 주말마다 빵집에서 일을 마친 뒤 푸드트럭 일을 돕는다. 심씨는 “일할 땐 너무 힘들지만 푸드트럭만이 누릴 수 있는 추억이 있다”고 했다. 간씨도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푸드트럭만의 큰 매력”이라며 “보통 식당에서는 사장이 카운터를 보는 경우가 많지만 푸드트럭에서 사장이 직접 프라이팬을 들고 요리를 해야 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1.5평 남짓한 푸드트럭 주방에서 주문과 요리, 서빙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려면 대표와 직원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이날 요리에 따라 손님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유씨는 “가끔 무대처럼 사람들이 오매불망 쳐다보며 기다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가끔은 쇼맨십을 발휘해 불쇼를 보여 줄 때도 있다”며 웃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장점이다. 유씨는 “짧은 만남이지만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게 재밌다”면서 “이전에 한 번은 아예 한국말을 못 하는 외국인 손님이 왔는데 언어가 안 통해서 음식으로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야시장이 열릴 때마다 아르바이트로 참여하는 임효경(23)씨는 “손님이 고맙다고 하거나 고생한다며 격려해 줄 때 성취감이 있다”고 말했다. 일정 변수·메뉴 다양화 고민해야 어려운 점은 예상치 못한 변수에 늘 맞닥뜨리게 된다는 점이다. 간씨는 “행사마다 인원수를 예측하기 어렵고 재료를 미리 어떻게 준비할지 계산하는 것도 까다롭다”면서 “코로나19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거나 일정에 변수가 많은 것도 어려움”이라고 했다. 이어 “하지만 푸드트럭의 재고 관리나 위생은 훨씬 더 철저하게 관리하니 걱정하지 말고 많이 드시러 오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야시장 진행 과정에서 갑작스레 일정이 변경된 것은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지난달 말 처음 시작할 땐 금요일과 토요일 일정으로 공지됐으나 첫날 인파가 몰리자 교통 체증 문제로 토요일과 일요일로 변경됐고 9월 초 두 차례나 갑작스레 휴정됐다. 이 과정에서 시민이 헛걸음을 하는 등 혼란을 겪었고 푸드트럭도 재고 처리에 어려움을 겪었다.다양한 메뉴 개발과 장소 대여도 관건이다. 야시장이나 대학 축제 등 큰 행사 외에 푸드트럭의 영업이 허가된 장소가 많지 않다 보니 푸드트럭도 빨리 많이 팔 수 있는 메뉴로 단순화하는 모습이다. 한국인 친구와 야시장에 놀러 온 외국인 노시퍼(36·남아프리카공화국)는 “3년 전 야시장에 왔던 추억 때문에 다시 찾아왔는데 음식이 대부분 고기뿐이라 조금 아쉽다”고 했다.
  • 김연아 5살, 공효진 10살…연하男과 결혼 많아진 이유

    김연아 5살, 공효진 10살…연하男과 결혼 많아진 이유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김연아(32)가 다섯 살 연하인 그룹 ‘포레스텔라’ 멤버 겸 팝페라 가수 고우림(27)과의 결혼을 발표했다. 배우 공효진(42) 역시 10세 연하 가수 케빈오(32)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전에는 배우 한혜진과 8세 연하 기성용, 최지우와 9세 연하 사업가가 결혼해 가정을 이뤘다. 혼인 건수는 줄고 있지만 연상 아내와 연하 남편의 혼인 건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5쌍 중 1쌍이 연상녀·연하남 부부였다. 관련 통계를 처음 집계한 1990년(8.8%)의 2배가 넘는 수치이자 역대 최대다. 여자 연상 부부 비율은 2016년(16.3%)부터 2017년 16.9%, 2018년 17.2%, 2019년 17.5%, 2020년 18.5% 매년 증가하고 있다. 남아 선호 사상 쇠퇴 등으로 2030년에는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많아진다는 점도 연상녀와 연하남의 만남을 더욱 늘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부잣집 시집 옛말… 여성의 수입↑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결혼을 더 이상 신분상승의 도구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생긴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연하 남편과 결혼을 많이 하는 여성 유명인들의 경우 ‘걸어 다니는 기업’이라 할 만큼 소득이 높기 때문에 굳이 부잣집에 시집가서 커리어에 제약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결혼정보업체는 “경제력을 갖춘 여성이 주도적으로 배우자감을 고르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남성의 인식 변화도 영향을 끼쳤다. 연상의 여성과 만남을 하고 있는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결혼 비용에 대한 부담이 없고, 넓은 이해심으로 보다 성숙한 만남을 이어갈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도 예쁘고 능력있는 누나는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나이 뿐 아니라 재혼, 다문화, 1인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시선 역시 이러한 만남의 형태가 확장되는 이유다. 성 역할에 대해 고정적이지 않고, 가치관이 맞는 사람을 만나 가족을 이루겠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앞으로도 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조건보다는 행복감, 감정에 충실”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의 논문 ‘연상녀-연하남 부부의 결혼결정 과정: 30-40대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설문 참여자 A씨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냥 조건 보지 않고 사랑해서 내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조건보다는 사랑을 선택했다. 서로의 조건을 보기보다 자신의 감정에 더 솔직했던 것. 그게 결혼을 경험한 연상연하 커플의 공통점이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B씨 역시 “나이가 어리지만 그냥 어린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의지가 되고 그러니까 좋아하는 거지, 철이 없는데 나이만 어리다고 누가 좋아해요? 나이는 상관이 없다”라고 결혼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밝혔다.
  • 김태형, 아내가 세 아들 살해…“면회 거절해 이유 모른다”

    김태형, 아내가 세 아들 살해…“면회 거절해 이유 모른다”

    10년 전 세 명의 아이들을 잃은 배우 김태형이 아이들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지난 22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서는 10년 전 세 아이를 잃어버린 아빠인 배우 김태형의 최초 고백이 그려졌다. 김태형은 지난 2012년 아들 세 명을 한꺼번에 잃은 아픔을 갖고 있다. 아내 A씨가 모텔에서 세 아들을 살해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만에 근황을 전하게 된 그는 “자의적으로 연기 활동을 그만둔 건 아니고 제가 개인 가족사가 있어서 좀 사람도 기피하게 되고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활 자체가 영위가 안 되더라. 공황장애도 오고 운전을 하면 매일 다녔던 길인데도 막 엉뚱한 길로 갔다. 운전도 안 되겠다 싶어서 운전도 못했다. 그 정도로 상당히 공황 상태에 있었다”고 말했다. 김태형은 “좋은 엄마였다. 제 기억으로 아이들한테 잘해주고 자기가 사치를 한다던가 그런거 없이 아이들한테 정말 잘해줬다”며 “어느 순간, 아이들 대하는 게 거칠어졌다. 짜증도 많이 냈다. 왜 저렇게 짜증을 부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 아내는 말도 없이 집을 나가 문자 한통을 남기고 연락이 두절됐다. 김태형은 “저한테 아이들하고 바람 좀 쐬고 오겠다 그러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그러고 돌아오지 않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아내와 연락이 안 되자 경찰에 가출 신고를 했다. 일주일 후 ‘아내 분 찾았다’는 말에 ‘애들은요?’라고 물었더니 ‘잘못됐습니다’라고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김태형은 “표현을 못한다. 그냥 패닉이다. 혼이 나가있는 거다”면서 “아이들이 엄마하고 같이 나간 그날부터 찾아서 장례 치르는 날까지 정확히 10일인가 걸렸다. 열흘을 아무것도 안 먹고 술만 마셨다”고 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여전히 아내의 살해의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저는 지금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수사기관에서도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기자들 가십 거리로 좋잖나. 그게 생활비가 부족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렇게. 그것만큼은 제가 못 견디겠더라”고 토로했다. 당시 아내는 김태형이 이유를 묻고자 면회를 갔으나 거절했다. 김태형은 “큰아이가 여덟 살, 둘째가 여섯 살, 셋째가 세 살이었다. 어린 나이였지 않나. 그러니까 그렇게 뭐 속을 썩이거나 그러지 않았다. 저한테는 뭐 기쁨, 행복함만 주고 가서 더 미안한 거다. 해준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 기억과 추억은 이만큼 남아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김태형은 다시 아이들의 유골을 뿌린 장소로 갔다. 손엔 생전 아이들이 좋아했다는 과자가 들려 있었다. 그는 “까놓고 그냥 여기 뿌릴 순 없고 우리 애들이 이 과자를 좋아해서”라며 오열한 뒤 “아빠가 열심히, 열심히 살다 너희들 만나러 갈게. 기다려. 반드시 기다려. 아빠 갈게”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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