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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배우란 직업, 인생을 걸만하다고…”

    “내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배우란 직업, 인생을 걸만하다고…”

    나지막하고 안정된 말투,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키는 편안한 미소. 국민 배우 한석규(49)가 자신의 이미지에 딱 맞는 옷을 입고 돌아왔다. 새 영화 ‘파파로티’(오는 14일 개봉)에서 한석규는 건달인 성악 천재 장호(이제훈)를 가르치는 까다로운 음악 선생 상진 역을 맡아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지난 6일 서울 중구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한석규에게 모처럼 따뜻한 영화에 출연한 소감부터 물었다. “좋은 선생님, 멘토가 되는 스승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큰형님도 존경하는 두 분의 선생님 덕분에 본인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부럽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인 데다 캐릭터의 진폭이 큰 인물이라서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한석규와 극 중 배역 상진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학창 시절 중창단에서 노래하며 성악가를 꿈꿨던 한석규는 ‘차선책’으로 배우가 됐고, 한때 이탈리아 유학까지 다녀온 촉망받는 성악가였던 영화 속 상진도 자신의 꿈을 접고 지방 예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둘 다 음악을 좋아하는데 꿈을 접었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하지만 제 꿈은 잘 접힌 것 같아요(웃음). 상진은 참 복잡다단한 캐릭터죠. 꿈을 잃어버리고 실패했다는 좌절감에 아무 생각 없이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그의 앞에 질투가 날 만큼 뛰어난 제자가 나타납니다. 제자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는 꽤 괜찮지 않나요?” 스승과 제자의 평범한 이야기처럼 보이던 영화는 한석규와 이제훈의 실감나는 연기로 생명력을 발휘한다. 처음에는 장호가 건달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래도 시켜 보지 않았던 상진이 장호의 노래를 듣고 감명받는 장면, 고아로 자라 가정 환경이 불우한 장호를 아들처럼 돌보고 제자의 능력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영화는 요즘은 잊힌 사제지간의 정이나 각박해진 사회에서 멘토를 갈구하는 대중의 심리를 관통한다. “평소 교육방송(EBS)의 청소년 대담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데 10대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문제점은 물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시스템도 다 알고 있더군요. 그걸 보며 참 답답했고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마음 같아서는 온 국민이 교육에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요즘 시대는 제가 청소년기를 겪었을 때와는 또 다른 상황인 것 같아요. 이번 영화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 역을 맡아 “이런 우라질…” 등의 욕을 했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제자에게 “이놈의 XX” 같은 친근한(?) 욕을 상당히 자주 퍼붓는다. “평소에 욕을 거의 안 하는 편인데 이번에 주변에서 잘한다고 부추겨 좀 과하게 선을 넘은 것 같아요. 제가 분위기에 취해 욕을 너무 많이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평상시 촬영 현장에서 후배들과 편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빨리 친해지고 싶을 때 가끔 욕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욕을 하면 다들 놀라요. 우스운가 봐요.” 그는 이번 영화에 함께 출연한 후배 이제훈에 대해 ‘진솔한 배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석규가 출연한 영화 ‘초록물고기’를 초등학교 5학년 때 보고 자란 이제훈은 대선배에게 밀리지 않는 호연을 펼쳤다. “후배로서 제훈이는 정말 최고죠(웃음). 저를 어려워하면서도 좋아해 주는 것이 느껴졌어요. 제훈이의 가장 큰 매력은 연기에 진솔하게 접근한다는 점이죠. 그런 마음은 꼭 분석하지 않아도 관객들에게 읽히거든요. 30~40대가 되면 연기 테크닉은 늘고 싶지 않아도 늘어요. 더 중요한 건 연기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죠. 같은 장면을 찍고 또 찍을 정도로 욕심도 많은 제훈이는 가능성이 많은 배우입니다.” 화두는 자연스럽게 연기 이야기로 이어졌다. ‘접속’ ‘쉬리’ ‘8월의 크리스마스’로 1990년대 충무로를 주름잡았던 1세대 국민 배우 한석규. 하지만 늘 최고였던 그에게 2000년대 접어들어 공백기와 침체기가 찾아왔다. 그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배우 생활 초반이던 30대부터 그런 시기가 올 거라고 예상했어요. 연기가 제게 큰 기쁨을 주는 만큼 언젠가는 깊은 좌절감을 안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것은 선배도, 후배도,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막상 위기가 닥쳐오니까 힘들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순간에도 나를 끄집어내 주는 것은 결국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 그가 오랫동안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던 것도 그의 이런 연기관과 관련이 있다. 한석규는 그를 재발견하게 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흥행한 이후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도 모두 거절했다. “시간이 지나서 인터뷰 때 한 말을 돌아보면 후회되기도 하고 덧없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배우는 말로 하기보다는 몸으로 하는 직업이고 연기를 꾸준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관객은 그냥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저를 읽어 냅니다.” 두 차례의 허리 수술 이후 건강상의 문제로 65㎏의 체중을 유지해야 하는 덕에 동안 외모를 간직하고 있다는 한석규. 네 명의 자녀 중에 대를 이어 연기자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저는 누군가 (연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하)정우나 많은 연기자 2세를 보면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어렸을 때부터 당연히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에게 배우는 인생을 걸어 볼 만한 직업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배우는 사람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직업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언젠가 한 단어로 규정지을 수 없는 사람을 연기해 보고 싶고요. 저는 아직도 그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제 음악 묻지 말아요, 규정짓기 싫으니

    제 음악 묻지 말아요, 규정짓기 싫으니

    싱어송라이터 정란(31)의 이름은 아직 낯설다. 하지만 재즈 팬이라면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무릎을 탁 칠 것이다. 누군가는 재즈 탱고그룹 라벤타나와 라틴밴드 로스 아미고스의 객원 보컬로 기억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2년 전 조윤성 챔버소사이어티와 함께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선 그를 떠올릴 것이다. 아니면 12년 전 서울 삼청동 라이브 카페 재즈스토리 무대에 선 소녀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음악 세계에 발을 담근 지 10여년 만에 직접 쓴 13곡을 빼곡하게 채운 1집 ‘노마디즘’을 내놓은 정란을 지난 4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음반을 듣고선 한참 갸우뚱거렸다. 세번 거푸 들었다. 처음에는 겉돌았다. 그런데 들을수록 묘하게 감겼다. 장르를 구분 짓는 건 무의미했다. 인상을 늘어놓을 수 있을 뿐이다. 서늘하면서도 몽환적이다. 한없이 차갑다가 갑자기 뜨거워진다. 라벤타나와 로스 아미고스 시절 불렀던 라틴 재즈와는 달랐다. 언뜻 MPB(브라질 팝 음악) 느낌도 묻어나지만 잠시뿐. 초점이 흔들린 자신의 얼굴과 전신을 담은 앨범 재킷과 ‘노마디즘’이란 제목이 묘하게 어울렸다. “무언가를 규정짓기보다 애매모호함을 좋아해요. 초점이 흔들린 앨범 재킷이나 노마디즘이란 제목도 마찬가지죠. 평론가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순 있지만 제게 무슨 장르냐, 어떤 심정으로 노래했냐고 묻는다면 답하고 싶지 않아요. 음악을 던져 놓으면 해석하든 장르를 규정짓든 그건 듣는 사람의 몫이에요. 음악도 삶도 한곳에 정착하고 싶지는 않아요. 정착하다 보면 집착하고 무언가를 쟁취하려 아등바등하게 되거든요.” 앨범 프로듀싱은 네덜란드의 베이스 연주자 루번 사마마의 몫이다. 헤이그 왕립음악원 동문이자 정란의 음악 동료인 프로듀서 홍지현이 다리를 놓았다. 홍지현이 건넨 몇 개의 데모트랙을 들은 사마마는 정란의 음악 색깔에 매료돼 흔쾌히 프로듀서 제의를 수락했다. “기성 가수, 음악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걸 원치 않았어요. 신선함을 원했죠. 언어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없었어요. 둘 다 돌직구 스타일이라 돌려 말하지 않았어요. 한국 사람들은 서로 상대가 제안하기를 기다리지만 사마마와 저는 서로 아이디어를 내놓기 바빴어요. 하하하.” 음반 제작·배급사 포니캐년코리아는 홍보 문구에서 그를 ‘한국의 제인 버킨’이라고 칭했다. 좀처럼 규정짓기를 싫어하는 정란의 반응이 궁금했다. “사람들은 낯선 음악을 들으면 편의상 기존 음악가과 비교해요. 처음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조그마한 스티커를 붙이는 정도는 괜찮겠다 싶었죠. 원래 버킨을 좋아해요. 영화, 연극, 음악을 구분짓지 않고 끊임없이 창작해 온 열정이 대단하죠. 다만 그 표현 때문에 틀에 갇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있어요. 대중들이 ‘한국의 버킨’이란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쉽게 접근하는 장점이 있지만 수식어가 붙는 순간 이미지가 고착되는 단점도 있잖아요.” 독특한 음색과 발성, 자작곡의 색깔은 제도권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담임교사를 따라 삼청동 라이브 카페에 갔다가 사장의 권유로 노래를 불렀다. 그날 이후 운명은 바뀌었다. 그는 “다음 날부터 공연했다. 입소문이 나서 다른 클럽에서도 노래했는데 돈도 엄청 벌었다. 지금은 구경도 못 할 큰돈이다. 한달에 400만원쯤 벌었다”며 웃었다. 이어 “대학에 가서도 학교는 안 가고 공연만 하러 다녔다. 1주일에 3번씩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앨범 한장 안 낸 내가 ‘EBS 스페이스공감’에만 5번이나 출연했더라”고 덧붙였다. 또한 “대학에선 교수가 커리큘럼에 따라 어떤 책을 보라고 얘기해 준다면 난 알아서 찾아보고 연구할 뿐이다. 굳이 대학에서 음악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곳에 정주하길 싫어하는 정란은 조만간 소프라노 임선혜에게 바로크 성악 발성을 배울 계획이다. 네덜란드의 기타리스트 크리스티안 구티에레스, 리코디스트 권민석과 함께 7월쯤 이탈리아 성가곡 레퍼토리로 하우스콘서트를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원래 그레고리안 성가를 좋아해요. 운전할 때 누군가 확 끼어들어도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고 있으면 욕이 안 나와요. 지금은 이메일로 레퍼토리를 상의하는 단계인데 벌써 흥분돼요.”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양현석, YG배당금 10억 기부

    양현석, YG배당금 10억 기부

    양현석(44) YG엔터테인먼트 대표가 YG 대주주로서 받은 현금 배당금 10억원 전액을 수술비가 없어서 고생하는 어린이 환자들에게 기부한다고 5일 밝혔다. 양 대표는 YG를 통해 “주주들에게 현금을 배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즐거웠는데 나에게 이렇게 큰돈이 배당될 줄 몰랐다”면서 “오래전부터 주식으로 처음 번 돈을 기부하겠다는 생각을 실천하게 됐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또 “이번 기부는 모두 YG의 음악을 좋아해 준 사람들 덕분이다. 그분들에게 받은 사랑을 아픈 아이들에게 직접 전달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코스닥 상장사인 YG는 지난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지난해 실적과 관련, 주주들에게 보유주식 1주당 현금 300원을 배당하기로 결정했다. 356만 9554주(34.5%)를 보유한 양 대표는 10억여 원을 받게 됐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쪽대본 받고 벼락치기 긴 호흡 연기 부담 컸지만 내 안에선 에너지 샘솟았죠”

    “쪽대본 받고 벼락치기 긴 호흡 연기 부담 컸지만 내 안에선 에너지 샘솟았죠”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하 ‘…해원’)에 정은채(27)가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 의아했다. 홍 감독은 ‘오! 수정’의 고(故) 이은주를 제외하면 신인 여배우와 일한 적이 없다. 윤여정, 정유미, 예지원, 문소리, 송선미, 고현정 등 한 번 일했던 배우들과 거듭 작업한다. ‘…해원’을 보고 나면 홍 감독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질 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에피소드를 붙여 놓았던 홍 감독의 최근 작과 달리 ‘…해원’은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학교 교사이자 영화감독(물론 유부남)인 성준(이선균)과의 관계를 혼란스러워하는 여대생 해원의 현실과 꿈이 뒤죽박죽된 기이한 며칠을 다뤘다. ‘…해원’은 지난달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대되기도 했다. 캐스팅 과정이 궁금했다. 홍 감독은 촬영 당일 아침 쪽대본을 주는 걸로 유명하다. 배우를 섭외하면서 시나리오를 건네는 다른 감독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지난해 설에 서울에 혼자 있는데, 마침 감독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고요. ‘내가 지금 작품 하나 구상 중인데 같이 할래요?’가 전부였죠. 그땐 감독님도 어떤 얘기를 하려는지 모르셨을 것 같네요. 하하하.” 많은 배우가 선망하는 홍 감독과의 작업이다. 냉큼 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껏 알던 현장과는 달랐다. 첫 촬영 날 그가 알고 있던 건 학생과 선생이 만나는 장면이란 게 전부. “미리 어떻게 연기를 하겠다고 준비할 수가 없잖아요. 대본을 아침에 받기 때문에 부담은 있었죠. 짧은 시간에 숙지해야 하니까요. 게다가 감독님은 컷도 별로 없고, 대부분 장면이 긴 호흡으로 가거든요. 하다 보니까 훨씬 더 집중하게 되고 이상한 에너지가 내 안에서 나오던데요.” 의상 담당자들이 따라붙는 다른 영화와 달리 실제 자신의 옷을 입고 찍는 점도 흥미로웠다. “촬영 전에 연출부가 내 집 옷장을 찍어 갔다. 그중 감독님이 몇 벌을 고르면 촬영 날 그 옷을 입었다. 평소 작업복처럼 후줄근하게 입던 옷들만 고르셨다”며 웃었다.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알아 가는 과정도 재밌었다고 했다. “해원은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인물이에요. 처한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고 장면마다 감정 기복이 심하죠.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흔들리는 청춘이랄까요. 늘 어떤 경계에 서 있어요. 새로운 사람에게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건 싫어해요.”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해원과 정은채는 닮은 구석이 제법 많았다. 무엇보다 묘하게 사람을 집중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어떤 질문에도 즉답하는 법은 없었다. 머릿속에서 한 번, 입안에서 또 한 번 곱씹었다. 말주변이 없거나 생각이 짧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고민을 많이 했던 이들에게 나오는 신중함이다. 남다른 이력 때문일 것이다. 중1을 마치고 정은채는 가족과 떨어져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가톨릭계 기숙학교에서 5년을 보내고, 런던의 센트럴세인트마틴 예술대학에 진학했다. 센트럴세인트마틴은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매퀸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배출한 명문이다. 하지만 그는 “미술을 좋아해서 그쪽을 전공했다. 중·고교 시절부터 기숙학교에 갇혀 살아서 그런지 다른 세상과의 소통을 꿈꿨다. 그게 연기였다. 2학년이 됐을 때 더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더라. 집에서 반대를 많이 했는데 무작정 휴학을 하고 서울행 비행기표를 끊었다”고 했다.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닌 데다 방송이나 충무로에 지인이 있던 것도 아니다.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는 “그땐 백지 상태여서 외려 더 용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2008년 귀국했는데 서울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그의 부모는 부산에 산다). 연영과 학생들 졸업 작품이나 단편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나와 같은 꿈을 꾸고 막 시작하는 학생들과 작업을 하면서 막연했던 연기의 실체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 시행착오를 거듭했지만, 너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지금도 그때 경험들이 힘과 에너지가 된다”고 말했다. 2010년 ‘초능력자’로 데뷔했으니 이제 겨우 4년차. “씩씩한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고 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단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낯을 가리는 편이었다. 어려서부터 남들 앞에 나서서 장기 자랑하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화 현장은 많은 사람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데, (기숙학교 경험 때문인지) 혼자가 익숙한 사람이라 아직 쉽지 않다. 배우란 직업은 늘 대중 앞에 나서야 하는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시선이 따라붙는 일도 불편하다. 늘 사람과의 관계가 고민스럽고 어렵다”고 말했다. 또래 배우들이 성공과 인기에 목을 매는 것과도 달랐다. 느긋하고 담담했다. “데뷔 전에도 초조하진 않았어요. 사람마다 때가 있고, 기회가 주어질 때 잡으면 그뿐이죠. 유명해지고 싶단 생각은 지금도 안 해요. 그걸 의식하기 시작하면, 나 자신을 구속하면 너무 끔찍할 것 같아요. 일부러 데뷔 전이나 똑같은 생활을 하려고 해요. 혼자 민낯으로 동네 극장도 가고, 공연도 보고, 산책도 하고요. 옥수동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아직 동네가 낯설지만, 맛집부터 하나씩 찾아봐야겠네요. 하하하.”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이수만 “성공적 삶은 자신이 좋아해서 선택한 일을 즐기는 것”

    이수만 “성공적 삶은 자신이 좋아해서 선택한 일을 즐기는 것”

    “얼마 전 소녀시대 티파니양이 수상 소감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인데 행복한 일을 하면서 상을 받게 돼 더 행복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게 바로 정답 아닐까요?” 4일 오전 11시 서울 관악캠퍼스 체육관에서 열린 2013학년도 서울대 입학식에서 축사자로 나선 서울대 농대 71학번 이수만(61) SM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열정을 가진 사람에게 성공의 기회가 찾아오고 가장 성공적이고 가치 있는 삶은 자신이 좋아해서 선택한 일을 즐기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표는 “좋아서 시작했던 일도 힘든 순간이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이때 자기 책임 의식을 갖고 자신의 행위와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책임감 있게 어떤 일을 완수했을 때 얻은 성취감은 인간에게 부와 명예, 그 어떤 성공보다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라고 말해 입학식에 참여한 6000여명의 학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 그는 “미국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무엇인가 할 때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었듯이 이제 한국이라는 이름이 강력한 백그라운드가 될 수 있다”면서 “지금부터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서울대 학생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어떻게 코리아 브랜드를 융성시킬지 답을 찾아봐 달라”고 주문했다. 케이팝 열풍의 기반을 개척해 간 주인공답게 자신의 경험과 실제 사례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저는 케이팝 문화를 통해 한국의 브랜드 가치 상승과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로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꿈을 꿔 왔습니다. 신입생 여러분도 더 큰 그림과 사회적 책임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꿈에 도전하길 바랍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온달전’에 빠진 늦깎이 日 대학생, 韓 학사모 쓰다

    ‘온달전’에 빠진 늦깎이 日 대학생, 韓 학사모 쓰다

    “춘향전, 바보온달전이 모티프가 된 판타지 만화 ‘신(新)암행어사’를 보고 한국 고전에 푹 빠졌어요. 온달전을 좋아해서 열심히 리포트를 썼더니 교수님이 우수작으로 뽑아 학생들에게 돌려 읽히시더군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26일 서울대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쓴 일본인 오쓰카 사유리(37)는 들뜬 얼굴로 유창한 한국말을 쏟아냈다. 오쓰카는 국어국문학과 09학번. 유학생으로 동기들보다 14~15년 늦게 대학생활을 시작한 그는 “시원섭섭한데, 솔직히 말하면 공부하면서 힘든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시원한 마음이 좀 더 크다”고 말했다. “똑같은 걸 읽는 데 다른 친구들보다 서너 배는 시간이 더 걸렸어요. 한국어 공부는 좋지만 졸업을 하기 위해 필수로 들어야 하는 영어 수업도 고역이었죠. 그래도 졸업이라니 신기해요.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인걸요.” 서른살이 되던 해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 데는 한 권의 만화책이 결정적이었다. 어느 날 남동생이 툭 하고 던져준 윤인환 작가의 만화 ‘신암행어사’였다. “바보온달의 이야기가 충격적이었어요. 지위 높은 공주가 바보 남편을 위해 헌신한다는 건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온달과 평강의 유대감에 감탄하면서 살아생전 이런 연애를 꼭 한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1시간에 3000엔(약 3만 5000원)을 주고 한국어 과외를 받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좀 더 생생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접하고 싶었던 그는 결국 2007년 2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시작한 한국어 공부는 서울대 입학으로 이어졌다. “서울대에 입학했을 때 정말 기뻤어요. 하지만 전혀 연고 없는 곳에서 시작한 대학 공부는 쉽지 않았어요. 수업에서나 대화할 때 느껴지는 뿌리 깊은 반일 감정 때문에 마음 아팠던 적도 많았지요.” 그는 앞으로 한국에 머물면서 문화교류를 통해 한·일 양국의 이해를 돕는 일을 할 계획이다. “물론 나이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서울대 졸업생이라는 걸 보고 반기다가도 제 나이를 말하면 금세 조용해지거든요. 하지만 포기는 없어요. 제가 꼭 하고 싶은 일이니까요.” 글 사진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피플 인 스포츠] 천재 리디아 고와 독대하다… 그녀의 골프 ‘뒷담화’

    [피플 인 스포츠] 천재 리디아 고와 독대하다… 그녀의 골프 ‘뒷담화’

    만 14세 9개월에 남녀 프로골프대회 최연소 우승, 15세 4개월에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최연소 우승, 15세 10개월에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최연소 우승…. 최연소 기록의 연속이다. 43년 만의 아마추어 우승(LPGA 투어 캐나디언오픈)같은 소소한(?) 기록은 제쳐두고도 그렇다. 1997년 4월 24일 서울에서 태어난 뉴질랜드 교포 소녀 리디아 고를 만나려고 LPGA 투어 혼다대회가 열리는 태국 촌부리 지방의 파타야 올드코스를 사흘 내내 누볐다. 뜨거운 햇볕을 머리에 이고 코스를 쫓아 다니며 건넨 말은 고작 “많이 덥지?”였다. 그린을 빠져나와 미디어 출입이 금지된 선수 라운지로 들어가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난 24일 4라운드가 끝난 뒤 캐디백을 멨던 정성규씨와 말을 튼 게 행운이었다. 슬쩍 미디어 패스를 뒤집어 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경비원을 지나쳐 늦은 점심을 막 시작하려던 리디아와 마주 앉았다. ‘블로킹’ 심하기로 소문난 어머니 현봉숙씨도 슬쩍 미소만 머금었다. 그와의 단독 대좌, 아니 뒷담화는 그렇게 어렵사리 성사됐다. 기록들은 쟁쟁하지만 내뱉는 말마다 영락없는 16세. “좋아하는 선수는요, 미셸 위 언니랑요, 필 미켈슨이에요. 미셸 언니는 풍기는 ‘포스’가 장난이 아니고요, 미켈슨은 쇼트게임의 귀재잖아요. 정말 그거 하나는 끝내줘요.” 마침 먼저 경기를 마친 미셸이 지나가다 인사를 건넨다. “어, 너 한국말 잘하네, 언제 그렇게 늘었어?” 아는 사이끼리는 영어로 말문을 트는 일이 없다고 했다. 기자가 “미셸이 부쩍 키가 큰 것 같다”고 하자 리디아는 “그게 아니고요, 살이 쑥 빠져서 그래요. 사실 후배들한테 그렇게 잘해주기 때문에 언니를 더 좋아해요”라며 눈을 찡긋거렸다. 나흘 동안 리디아는 최고령 출전자인 줄리 잉스터(53)부터 ‘천재 소녀’ 렉시 톰슨(18·이상 미국)까지 모두 10명과 같은 조에서 공을 쳤다. 현봉숙씨는 “프로대회가 좋은 것 하나는 다양한 성격의 예비 경쟁자들을 두루 겪어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가장 까탈스럽냐고 물었다. 3라운드를 함께 돈 카리 웹(호주)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눈치도 빠른 리디아는 “에이, 가끔 코스에서 신경질 내는 것 같은데, 프로니까 그럴 수 있고요. 사실 딱 부러지는 면도 있어요”라고 대선배를 감쌌다. 웹은 이날 페어웨이 왼쪽, 오른쪽을 오가는 드라이버샷 난조 탓에 5오버파 77타로 무너졌다. 마지막 라운드를 함께 한 미야자토 아이(일본)와 포옹하며 작별한 뒤 리디아는 “아이 언니가 제일 편해요, 정말 친절해요. 아이짱이라고 불릴 만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리디아는 11살 때 뉴질랜드오픈에 나선 이후 이번 대회가 14번째 프로 대회라고 했다. 이번 주 뉴질랜드 PGA선수권대회에도 출전하는데 남자대회라고 했다. 놀라서 성대결이냐고 묻자, 리디아는 “정색할 건 아니고요, 초청받았으니 그냥 재미삼아 나가보는 거예요”라고 받아 넘겼다. 정성규씨가 아이스 커피 마시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리디아는 어머니 눈총에 딴 곳을 쳐다보며 능청을 떤다. “내년이면 대학 준비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고민이에요. 어디 좋은 대학 없어요? 캘리포니아에 있는 거면 다 좋은데….” 유난히 좋아하는 달달한 커피가 허락되는 건 일년에 딱 한번, 성탄절 스타벅스에서란다. 글 사진 촌부리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종교 플러스]

    천주교 농부학교 수강생 모집 천주교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는 ‘제8기 천주교 농부학교’(3월 5일 개강) 수강생을 모집한다. ‘농부인 노아는 포도밭을 가꾸는 첫 사람이 됐다’ 주제의 농부학교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과 귀농 ▲귀농과 지역 순환사회 ▲가톨릭 에코포럼 ▲도시에서 농부로 살아가기 ▲생태살림 집짓기 ▲귀농자의 몸 돌보기 ▲귀농 이론과 실재 등의 강의로 진행된다. 수강생들은 강의별 두 차례의 농사 실습과 귀농 현장실습에 참가한다. 강의는 매주 화·목요일 오후 7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708호에서 열린다. 김제 금산사 ‘내비둬 콘서트’ 전북 김제 금산사는 23일 오후 7시 아카펠라 그룹 ‘아카시아’를 초청해 ‘내비둬 콘서트’를 연다. 금산사의 내비둬 콘서트는 ‘이것이다, 저것이다 분별하는 나의 삶을 템플스테이 여행에서만큼은 놔둬 보자’는 의미를 담은 행사. 집착과 분별의 삶에서 정신적인 휴식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하도록 도와주고자 마련한 콘서트다. ‘아카시아’는 이날 콘서트에서 돈별곡, 자전거, 너를 좋아해, 비켜 등 창작 아카펠라 곡을 선보인다. 멤버들이 자신들의 음악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지친 삶에 ‘멈춤의 가치’를 선사한다.
  • 카니발의 나라 브라질서 견공 카니발 개최

    카니발의 나라 브라질에서 화려한 견공 카니발이 열렸다. 올해로 11회를 맞은 이번 대회에선 1살짜리 골든 리트리버 종 ‘토르’가 영예의 1등을 차지했다. ‘토르’는 대회를 후원한 동물사료회사로부터 견공용 사료 14kg을 부상으로 받았다. 견공을 위한 행사는 세계적인 카니발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난 3일(현지시각) 개최됐다. 최소한 관중 4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견공 카니발에는 견공 500여 마리가 각각 최고의 미를 뽐내며 주인과 함께 참가했다. 깃이 높은 셔츠 차림를 곱게 차려입은 개, 코믹한 중절모를 쓰고 턱시도를 빼입고 주인을 따라 나선 개 등이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주최측은 대형 스피커를 설치한 트럭을 개로 분장, 행사장에서 삼바 음악을 울리며 카니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대회에 참가한 주인들의 견공 사랑을 남달랐다. 푸들과 요키를 아빠와 엄마로 둔 암컷 강아지에게 맞춘 웨딩드레스를 곱게 입혀 대회에 참가한 브라질 주민 앙헬리카는 “개인적으론 견공 카니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애견이 워낙 행사를 좋아해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애견이 어느 때보다 즐거워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하와이 풍의 셔츠를 입힌 애견을 데리고 대회에 참가한 78세 노인은 “이미 여러 번 견공 카니발에 참가했다.”면서 “대회에 나올 때마다 애견이 너무 좋아해 마음이 좋다.”고 말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한국인 선호 옆얼굴 연령대 따라 차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얼굴 옆모습이 연령층에 따라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가톨릭대 서울성모치과병원 교정과 국윤아·박나선 교수팀이 미국 애리조나대학 치과교정과 박재현 교수와 함께 국내 성인 2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얻은 결과이다. 연구팀은 남녀 35명씩을 조사대상자로 선정해 20~30대, 40~50대, 55세 이상으로 나눈 뒤 선호하는 옆얼굴형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젊은 층은 입술 옆모습이 턱과 직선을 이루는 ‘일자형’을 선호한데 비해 중·노년층은 입술이 들어가고 턱이 상대적으로 앞으로 나온 옆모습을 좋아했다. 연구팀은 다시 20대 성인 20명의 옆얼굴 방사선 사진을 촬영한 뒤 한국인의 심미적 기준치에 가까운 옆모습 실루엣을 남녀별로 13세트씩 제작해 선호도를 평가했다. 이 평가에서도 젊은 층은 입술이 턱과 직선을 이루는 실루엣을 선호했으며, 중·노년층은 입술이 들어가고 상대적으로 턱이 앞으로 나온 옆얼굴을 골랐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구강악안면외과학회지 최근호에 발표됐다. 국윤아 교수는 “이 연구에서 선호하는 옆얼굴형이 연령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환자가 원하는 얼굴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연령을 고려한 평가가 필요하며, 교정 목적의 양악수술을 할 때 이런 점을 고려해 치료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어린이·청소년 책꽂이]

    잘 자라라 내 마음(윤아해 글, 이영림 그림, 스콜라 펴냄) 쑥쑥 자라는 내 마음의 나무는 어떻게 생겼을까.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자책하는 준이, 어떤 일도 잘할 자신이 없다. 그럴 때마다 마음 속 나무 ‘쑥쑥이’는 “그림은 네가 제일 잘 그린다”며 용기를 돋운다. 자존감의 기초가 되는 자기 인식, 자기 조절, 자기 동기화, 공감, 대인관계 등을 다룬다. 1만원. 아만다는 책만 좋아해!(모 윌렘스 글·그림, 정미영 옮김, 살림 펴냄) 미국 최고 삽화상인 칼 데콧상을 세 차례나 수상한 모 윌렘스의 신간. 의젓한 소녀 아만다가 귀염둥이 악어 인형과 펼치는 생각놀이다. 책을 좋아해 늘 책을 끼고 사는 아만다를 바라보며 악어 인형은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아만다가 책보다 나를 좋아하지?”, ‘너무 싸잖아’ 등 아만다와 악어 인형에 얽힌 6개의 단편을 통해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존재의 가치를 되새긴다. 1만 2000원.
  • ‘마이 리틀 히어로’서 따뜻한 감동 전하는 세 배우를 만나다

    ‘마이 리틀 히어로’서 따뜻한 감동 전하는 세 배우를 만나다

    피부색이 다른 천재 소년과 삼류 음악감독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뮤지컬 오디션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자신의 꿈을 이루는 소년 영광(지대한)과 그 아이로 인해 이기적이고 속물근성이 가득했던 유일한(김래원)의 변해 가는 모습을 통해 감동을 안겨준다. 김래원(32)의 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실제로 다문화 가정의 소년인 지대한(왼쪽·12), 황용연(오른쪽·13)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해피 바이러스 전하는 배우 될래요” 편견 맞서 꿈 이루는 소년役 지대한, 축구 국가대표 꿈꾸는 소년役 황용연 영화를 보고 나면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과 천진한 미소를 잊을 수 없게 된다. 바로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주인공 영광 역을 맡은 지대한과 영광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친구 성준 역의 황용연이다. 스리랑카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지대한은 몇 개월에 걸친 전국 오디션 끝에 발탁됐다. 800여명의 아이들을 만난 감독은 처음 지대한을 봤을 때의 강렬한 느낌을 잊을 수 없어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영광 역에 전격 발탁했다. 지대한은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한 소감에 대해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영화에 출연했다. 엄마가 영화 주인공이 됐다니까 잘하라고 하면서 무척 좋아하셨다. 영화는 재미있는데 (스크린에) 내가 나오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진다”면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극중 영광은 노래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소년으로 뛰어난 춤 실력까지 선보인다. 지대한은 영광 역에 낙점된 뒤 1년여 동안 꾸준히 트레이닝을 받았다.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병행해 난이도 높은 동작도 무리 없이 성공했다. “노래할 때 호흡이나 소리 크기 연습을 많이 하고 춤출 때는 턴하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힘든 점도 많았는데 (김)래원 형이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개그콘서트’의 유행어도 해주고 함께 게임도 하면서 긴장을 많이 풀어줬어요.” ‘과속스캔들’ 같은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는 지대한은 “연기하는 것도 재밌었고 연예인 형들이랑 만나는 것도 좋았다. 영화에 함께 출연한 (이)광수형이 관객 100만명이 넘으면 학교에 오겠다고 했는데 친구들이 정말이냐고 자꾸 물어본다”면서 웃었다. 한국인 아버지와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황용연은 KBS 다큐 프로그램 ‘인간극장’에 출연해 관심을 받았다. 장래 희망이 영화배우인 황용연은 축구 국가대표를 꿈꾸는 인물을 맡아 밝고 코믹한 연기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냥 배우가 멋있어서 되고 싶었어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여진구와 한가인을 좋아해요. 연기를 잘하는 것 같아서요. 사실 카메라만 있으면 어색해져요. 없으면 잘되는데…(웃음). 아직 부족하지만 꿈의 계단에 올라왔다는 것이 기뻐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누나,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황용연은 처음 영화 관계자들이 찾아와 출연을 제의했을 때 거절했다. 혹시 자기 때문에 영화를 망칠까 봐 걱정돼서다. 하지만 어려운 눈물 연기도 곧잘 해내며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피부색이 달라서 어려운 점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가끔 영어 수업 시간에 틀어주는 비디오 테이프에 흑인이 나오면 애들이 놀리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혼내 주셨다”고 말했다. 어려운 질문에도 씩씩하게 답하던 황용연은 부모님 이야기를 하자 얼굴이 어두워졌다. “저희끼리 밥도 해먹고 청소도 하는데 그 점이 좀 힘들어요. 특히 생일 때 엄마 아빠 생각이 많이 나요. 하지만 목사님이 잘 돌봐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사람들에게 해피 바이러스를 전해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 빛내주며 나도 힐링” 음악감독으로 스크린 복귀한 김래원 처음에 김래원이 이 영화의 주인공을 한다고 했을 때 다소 의아했다. 멜로 영화에 어울릴 것 같은 그가 여배우가 아닌 소년과 호흡을 맞추는 휴먼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 왔던 이야기라고 말했다. “20대 후반에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죽음을 앞두고도 아이가 편안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용감한 아버지를 보고 지금까지 본 어떤 남자보다 멋있고 강인한 모습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아이에게 포커스가 많이 맞춰지는 부분도 있지만 영광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일한의 이야기가 따뜻하고 심플해 너무 마음에 들었죠.” 군 제대 직후 SBS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 출연했던 그는 “남자 주인공의 순애보라고 알고 출연했는데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르고 내가 연기적인 면에서 할 수 있는 부분도 많지 않아 이번 영화에서 그 목마름을 채웠다”면서 “내가 어색하더라도 영광의 감정이 더 돋보이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아이가 제대로 살아야 나도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97년 청소년 드라마 ‘나’로 데뷔한 뒤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등을 통해 청춘 스타로 인기를 누린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첫발을 내딛는 대한이의 좋은 연기 선생이 되어줬다. “저도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어떤 눌림 같은 것이 있었는데 대한이도 연기가 설정되어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간 배웠던 것을 깨끗이 밀어내고 대한이가 최대한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했죠. 아이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으면 대사를 하지 않아도 좋다고 이야기해 줬어요” 그는 실제로 피아노와 지휘를 배우며 음악감독 일한 역을 준비했다. 맨해튼 음악학교 출신임을 내세운 허세 가득한 일한은 대형 작품을 망치고 아동 뮤지컬을 전전하며 재기를 꿈꾸는 인물로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영광을 맡아 오디션에 나서게 된다. 그도 일한처럼 성공에 대한 욕심이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10대 때 오디션에 무수히 떨어지며 더 열심히 하려 했던 시절이 있었죠. 20대 때는 정말 독하게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요. 고집도 무척 셌고요. 하지만 이제는 그동안 다져진 기본기를 바탕으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저만의 것을 담으려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적어도 1년에 한편은 나중에 제 아이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영화를 하고 싶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다문화 가정을 다룬 이번 영화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영화 속에도 나오지만 다문화 가정이 이해를 받아야 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일한은 처음에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저는 아이들과 연기를 하면서 단 한번도 그런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이 정말 밝고 귀여웠거든요. 다만 영화가 개봉되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다가 또 그것 때문에 외롭고 상처받을까 봐 걱정이 됩니다. 아이들이 주변 사람의 사랑을 감사하게 받고 혹시 어려움이 닥쳐도 잘 이겨내는 친구들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엽기·충격 그 자체…‘아기머리 초콜릿’ 인기

    엽기·충격 그 자체…‘아기머리 초콜릿’ 인기

    아무리 초콜릿을 좋아해도 이건… 최근 영국에서 실제 아기 머리 와 같은 크기 와 모양의 ‘엽기 초콜릿’이 인기를 끌고 있다. 화이트 초콜릿으로 만든 이 ‘아기머리 초콜릿’는 무게 약 1㎏, 열량은 5000㎈에 달한다. 이는 성인 1일 권장 열량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 초콜릿이 아기의 눈과 코, 입을 ‘무서우리만치’ 리얼하게 닮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작품을 만든 이는 영국의 예술가 애나벨 드 베턴이다. 그녀는 아기의 얼굴을 본 따 만든 주형에 화이트 초콜릿을 녹여 부은 뒤 이를 천천히 식혀 ‘서프라이징 초콜릿’을 만들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특별 주문을 받고 생각해 낸 아이디어”라면서 “‘머리 전체’를 먹을 수 있도록 모두 식용 초콜릿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보자마자 충격을 느꼈지만 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으며 이에 충실했을 뿐”이라면서 “최근에는 ‘아기 머리 초콜릿’ 주문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초콜릿의 가격은 개당 35파운드(약 6만원)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나는 유럽의 한국 마에스트로

    나는 유럽의 한국 마에스트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2012년 12월 31일. 110년 역사를 가진 독일 함부르크 라이스할레 대공연장은 관객으로 가득찼다. 2023석은 물론 입석까지 촘촘하게 자리했다. 장내가 잠잠해지자 검은 머리에 넉넉한 풍체를 지닌 동양인 지휘자가 등장했다. 송년음악회장을 찾은 현지인들에게는, 외국인인 그가 독일의 자부심과 철학이 담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하다니, 의심반 기대반이었을 터. 4악장 ‘환희의 송가’가 끝나는 순간 기립박수가 터지고 함성과 휘파람이 이어졌다. 엄숙한 독일 공연장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 지휘자는 2013년의 첫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음악으로 같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하지만 유럽에서는 지휘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영칠(43)이다. 10일 불가리아 소피아필하모닉의 신년 정기연주회, 15일 러시아 모스크바필하모닉 신년음악회 등 줄줄이 이어지는 음악회 준비로 그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프랑스에서 불가리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이메일로 이날 공연의 소감을 알려왔다. “베토벤 9번으로 독일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건 자랑스럽고 감사하고, 즐겁고 북받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잘 모르는 한국의 지휘자가 그들을 일어나 박수치게 했다니, 어떤 느낌인지 알겠죠?” 그는 미국 뉴욕 메네스대에서 호른을 전공하고, 2000년 뉴욕 주립대에서 연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불가리아 소피아의 음악 아카데미에서 지휘를 수료하며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다.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동유럽에서 차곡차곡 경력을 쌓았다. 불가리아 플로브디프 필하모니의 종신 객원지휘자(2006), 보스니아 사라예보 필하모니의 객원 상임지휘자(2007)가 된 데 이어 불가리아 소피아 필하모닉과 플레벤 필하모닉의 종신 객원지휘자(2009), 폴란드 오폴레 필하모닉의 2012년 시즌 상임지휘자, 체코 야나체크 필하모닉 객원 지휘자로 임명됐다. 지난해에는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상주하는 유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선임됐다. 환경운동가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민간교향악단으로, 로만 헤어초크 전 독일 대통령, 클라우스 퇴퍼 전 독일 환경부 장관,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장,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 등이 후원하고 있다. ‘최초’라는 수식어도 다양하게 달고 있다. 2010년 터키 이즈미르 국립교향악단과 한국 국적 음악인으로 최초로, 2011년 모스크바필하모닉과는 아시아인 최초로 초청연주를 했다. 한국음악을 사랑하는 그는 2009년에는 영국 런던 카도간홀에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초청으로 지휘한 자리에서 박재은 작곡가의 ‘아리랑’을 초연하기도 했다. 유럽을 사로잡은 비결이 무엇일까. 그는 “솔직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 그게 음악의 본질이죠. 요즘 음악은 내면보다는 외형을 중시해서 감정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 연주를 할 때는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겁고, 음악이 사랑스럽습니다. 아마도 이 느낌이 전달돼 관객들이 좋아해주는 것 아닐까요.” 물론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그동안 겪은 텃세와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텃세보다 힘든 건, 한국의 무관심이다. “함부르크 신년음악회에, 제가 알기로는 한국인 관객은 없었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에 한국인 지휘자가 서는데 한국 사람이 아무도 안 온다는 것을 독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어떤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부끄러웠죠.” 그는 이어 “중국과 일본은 예술인들에게 무한한 관심과 격려가 있지만 우리는 유명해져야 관심을 갖는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많은 한국인 예술가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준다면 외국인들의 텃세 정도는 이겨낼 수 있다”면서 애정을 당부했다. “지휘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올 상반기에도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오는 2월 13일에는 멕시코 오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3월 20일과 22일에는 일본 NHK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회를 할 예정이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인간의 조건’ 쓴 한승태씨

    [저자와 차 한 잔] ‘인간의 조건’ 쓴 한승태씨

    섭씨 영하 10도 안팎의 날씨에도 얇은 셔츠에 얇은 점퍼 하나만 걸친 채 나타났다. 2007년 겨울 전남 진도 서망항의 꽃게잡이배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편의점과 서초구 서초동 주유소, 충남 아산의 돼지농장과 당진의 자동차부품공장 용역직, 강원 춘천의 오이 비닐하우스까지 거친 그의 이력으로 보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이력에 어울리지 않게 손가락이 하얗고 길었다. 춘천의 한 대학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스물여섯 무렵부터 한 달 죽도록 일한 대가로 100만원 남짓 쥐는 밑바닥 일터들을 맴돌았다. 위장취업의 불온함, 그 흔했던 문학수업,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돈이 필요해 그런 곳을 돌아다녔다. 중학생 때 작가가 되면 좋겠다고 꿈꿨던 것을 편의점과 주유소에서 일하던 2008년 가을쯤, 신림동 고시원의 가로 1.2m에 세로 2.3m 방에서 기억해 내고는 농업, 축산업, 제조업 일자리를 모두 거친 뒤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를 부제로 거느린 ‘인간의 조건’(시대의창 펴냄)을 쓴 한승태(31·필명)씨를 26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만났다. 그는 서문에 ‘누구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법한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보여주고 싶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잊힐 게 분명한 사소한 사항들로 책을 가득 메우고 싶었다’고 적었다. 그의 의도대로 깨알같은 사연들이 넘쳐난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비닐하우스 일을 그만 둔 게 지난해였습니다. 그때부터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돈을 모아 원고를 쓰고 돈이 떨어지면 일하는 식으로 지냈습니다. 지금은 도배일을 하고 있고요. 그냥 무거운 것 들어주고 기술 배우는 수준이지요. 일당 5만원입니다. 신림동과 난곡 일대에서 일하는 팀에 속해 있습니다. 오늘은 연락이 안 와 놉니다. 일 있는 날 전화 오면 형편 닿는 사람이 일하는 식이지요. 제가 지금 거주하는 신림동과 난곡 일대에도 저와 비슷한 또래, 처지의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책은 어떻게 낸 거지요. 비닐하우스 일을 그만 둔 지난해 가을부터 쓰기 시작해 올해 4월 마쳤습니다. 제 책에 가장 흥미를 느낄 만한 출판사를 골랐는데 그게 시대의창이었습니다. 원고 일부를 읽어보시고 곧바로 연락이 와 나머지를 모두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보냈더니 곧바로 일주일이 안돼 책을 내자고 했어요.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편집자 이정남씨는 “워낙 원고 정리가 잘 돼 거의 손 댈 것이 없었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책의 성격상 정확한 르포르타주로도 훌륭하고도 개성 넘치는 문학으로도 읽힐 수 있어 출판사 입장에서 포지셔닝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나중에 한씨를 통해서 들으니 출판사는 대통령선거와 새 정부 출범 등의 워낙 큰 이슈에 묻힐까 우려했다고 했다.   →그래서 다 쓰고 난 뒤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홀가분한 느낌이었습니다. 짐을 벗었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다 썼으니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지요. 전 그냥 제가 떠돌던 곳들이, 동시대 사람들이 아무런 관심도 애정도 기울여주지 않는 공간에서 시간이 멈춘 듯 공존하는 게 너무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느껴지고 했어요. 해서 이쪽의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살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그 얘기를 다 마친 셈이지요.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했어요. -네, 그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요. 스스로 많이 닮고자 노력했어요.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요. -정말 쓰는 게 즐거웠는데요. 쓰는 동안 제가 갖고 있는 불안감 때문에 괴로웠지, 쓰는 것은 즐거웠어요. 과연 (독자들이) 받아주기나 할까, 계속 글만 쓸 수는 없어 생계비를 버느라 잠깐 멈추고 그랬지요. 제 머리 속에 들어 있던 거를 다 쏟아냈으니 만족합니다. 자신에 대한 불안감말고는 딱히 어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술도 못 마시면서 배 위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견뎌냈어요. -재미있는 게요, 돈 많은 사람들은 막 먹이고 그럴텐데요. 그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 입이 하나 줄면 그게 좋은 거예요. 술 마시라고 하는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면 ‘너 안 먹으면 좋지, 내가 더 먹을 수 있으니’ 이렇게 돼요. →워낙 키가 크니 군대에서 혹시 ‘고문관’ 아니었나요. -네, 키만 컸지. 체력이 뛰어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특히 제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 그래도 제가 운이 좋았던 건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서. 좋게좋게 넘어가고 그랬던 거 같아요.   →책에는 비닐하우스 여주인과 다툰 뒤 하우스 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을 때-그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그는 정말 키가 크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와 웃다가 짐짓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쩼든 큰 키 때문에 가는 곳마다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이 나온다.   -특별히 그런 일 구하다 보면 키 큰 사람 좋아해요. 전구 가는 용도(?)로도 쓸모있지만,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이 토익이나 뭐 그런 것들이 스펙이 되듯 제게도 스펙이 되는 거지요. 인력시장에서 전 스펙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어요. 한국사람이지, 30대 초반이고 키도 아주 크고, 최고의 스펙이라 할 수 있죠.(웃음)   처음 출판사를 통해 인터뷰를 섭외할 때부터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아 할 것 같았다. 두 가지 이유를 어렵지 않게 댈 수 있었다. 역시나 그랬고 몇번의 밀당 끝에 마주앉기는 했다. 앞으로도 평생 비슷하게 살텐데 취업에 어려움이 따른다며 사진 촬영을 극구 마다하는 그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돼지농장에서 Belle & Sebastian의 노래들을 흥얼거렸다는 대목에서 지독한 패러독스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던데요. 늘 책보고 음악 듣지요. -예. 배에서도 일기를 썼어요. 그런 것들이 다 모여 책이 된 거고요. 늘 떠돌아 다녔으니 여자친구를 만나거나 할 상황도 아니었고. 만난 사람만 만나고 그렇지요. →형님들이나 아저씨들이 뭐라 하지 않나요. -상관 안하세요. 배 처음 탈 때는 굉장히 무섭고 두려웠는데 그곳 사람들, 의외로 관대해요. 처음엔 한두 번 뭐라 핀잔도 하고 눈치도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용납되고. →돼지농장에서 자돈(子豚)을 버리는 끔찍한 경험 같은 것들이 내면화되거나 해 괴롭거나 하지는 않는지요. -물론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게 있지요. 누구나 그러는 건데 가끔식 떠오르거나 연상되곤 하지요. 길에서 죽은 고양이 시체를 봤을 때 그런 것들. 굳이 그런 이미지 때문에 생활을 못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요. 또 워낙 제가 잘 잊는 편이라. 너무 자연스럽게 돼지농장 사람들의 꿈은 다 로또였어요. 사회 초년생들이야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나가는 과정을 밟겠지만 그곳 사람들이야 극단적으로, 초월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지요. 그곳을 빠져나오든가 굶든가 둘 중의 하나인 거지요. 혼자인 저야 논외지만 그들은 가족도 있고 아이 공부도 시켜야 하고 부모도 모셔야 하고, 빚도 있으니까. 현재와 미래를 단계적으로 그려볼,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럴 경황이 없는 거지요. 그래서 더 공상적이 된다는 그런 느낌으로요. →함께 일했던 분들이 보고 싶거나 그런가요. -연락하고 싶기는 한데, 이를테면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제가 일만 하며 어느 곳을 떠돌다 만나면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으니 선뜻 연락하기도 힘들고 같이 일할 때에는 제 개인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그렇게 일하는 분들 역시, 멀리 있는 인연을 가까이 끌어 당기는 것에 부담스러워 하는 걸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분들끼리는 당장 배 위나 돼지농장에서 닥친 상황,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만 신경쓰니까. 그런 연락을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부자가 됐으면 합니다. 부자가 돼 하고 싶은 일하며 사는 것인데 제게는 글 쓰는 일이 되겠지요. 생계비 걱정 않고 글 쓰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전업작가로 살려면 한달 얼마 정도? 물론 다른 이에 견줘 한참 낮겠지요. -한달에 80만~90만원 정도. 또 그런 게 죽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쉽지는 않지요. (책에 나오는) 고시원 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임시로 가는, 도저히 생활이 안되는 공간고요. 싼 데를 찾아보면 한달에 방세 30만~35만원, 식비는 30만원, 이것도 처음엔 아껴서 먹어요. 하루에(한끼가 아니다!) 7000원 정도씩 먹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확 먹어버려서 대중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아껴도 한 30만원 들어요. 여기에 공과금 전화세 교통비 등 합쳐 그 정도만 있으면 글만 쓰며 살 수 있지요. →문학 인생의 설계 같은 게 있나요. -당장은 없어요. 제 특성이기도 하지만요. 눈앞의 것만 확 처리하는 게 바쁘니까. 글 쓰며 살아야겠다, 생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뭔가를 채워넣지 못하죠.. →2권을 생각하나요. -이걸로 끝입니다. 다음 책은 아마 다른 주제일 겁니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요. -이 책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책을 읽을 때 가슴에 뒀던 것은 사람들이 위로와 위안 받았으면 좋겠다, 이 정도로 생각했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 앞에서 얘기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함께 최근에는 존 툴 케네디가 쓴 ‘바보들의 결탁’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미국의 한 또라이 백수가 부모님 재산 축내며 살다가 안되겠다 싶어 직장 구하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워낙 이 친구 정신세계가 독특해 계속 쫓겨나는 일을 실었어요. 얼핏 굉장히 우울하게 들리는 얘기인데 너무 유쾌하게 썼어요. 캐릭터가 특이하고 좋아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1984’나 ‘동물농장’을 보고 오웰이 유머가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앞의 책을 보면 유머가 충만하죠. 제 나름대로 중점을 뒀던 대목은 이 책에도 진지한 정치적 사회적 성찰을 요하는 그런 부분이 있는데 이런 이슈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출판사에서는 치밀하고 객관적인 르포르타주와 특이하지만 잘 쓴 문학작품의 경계가 혼재해 포지셔닝이 쉽지 않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제겐 후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좋은 읽을거리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진지한 사회적 성찰은 이미 좋은 책들이 많고 제가 깊이를 따라갈 수 없이 훌륭한 책들이 많아요. 제 책은 아카데믹하기보다 엔터테인먼트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비꼬는 글의 맛, 그런 것을 좋아해요. 더글러스 애덤스의 책이나 영국 작가들에 그런 게 특히 많은데 그런 걸 살리려고 조금은 했어요. →그러면 앞으로도 알바하고 글 쓰고, 그런 그림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겠네요. -네. 새 봄에는 누가 소개해줘 경남 합천의 대나무농장에 가서 일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 틈틈이 계속 글 써야죠.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미혼의 여성대통령, 아버지가 만든 ‘제2부속실’ 없앨 듯

    미혼의 여성대통령, 아버지가 만든 ‘제2부속실’ 없앨 듯

    대한민국 최초의 싱글 여성 대통령을 맞아 청와대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사상 처음으로 여주인을 맞게 되는 청와대에서는 그동안 ‘퍼스트 레이디’인 영부인의 비서 업무를 맡았던 제2부속실이 사라지는 것이 제일 큰 변화가 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은 제2부속실을 굳이 존속시킬 필요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제2부속실은 영부인의 일정 및 행사 기획, 활동 수행 및 비서업무, 대내외 네트워크와 관저생활 등 영부인의 24시간을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김윤옥 여사를 보좌하는 제2부속실의 직원은 모두 6명이다. ●대통령 부인 일정관리·행사 수행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선거운동을 할 때부터 같이 일했던 미용 담당자, 코디네이터 등도 제2부속실에 소속되어 있다. 제2부속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대통령 부속실에서 독립시켜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김두영 전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은 육영수 여사 시절 제2부속실 업무에 대해 “어린이 관련 행사 사회를 보고, 청와대에 들어온 진정서 내용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조직은 대통령령으로 결정 가능한 사항인 만큼 모든 결정은 새 대통령이 하게 되지만, 아버지가 만든 제2부속실이 딸에 이르러 사라지게 됐다. ●행안부 “의전상 변화 없을 것” 의전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정부의 주요 의전행사를 맡은 행정안전부 의정관 관계자는 “여성 대통령의 취임식은 의전상 변화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선인이 굳이 퍼스트 레이디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은 정치적 비중이 낮거나 사회적 소외계층을 돌보는 것이어서 이 같은 역할은 국무총리실이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박 당선인은 1974년부터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한쪽에서는 정상 부부가 동반하는 외교 행사를 대비해 ‘퍼스트 젠틀맨’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미혼 여성 지도자의 부부동반 만찬에는 총리 부인이나 외교장관 부인이 배석하기도 한다. 현재 세계 정상 가운데 박 당선인처럼 미혼인 여성 정상은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를 포함해 3명이 있다.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아이슬란드 대통령은 합법적인 동성애자이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던 남편과 사별했다. 길라드 총리는 팀 매티슨과 정식 결혼이 아닌 사실혼 관계에 있다. 매티슨은 미국 미셸 오바마 여사가 주최한 퍼스트레이디 모임에 유일한 청일점으로 참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매티슨은 ‘퍼스트 젠틀맨’이 아니라 ‘퍼스트 블로크’(bloke·남성을 뜻하는 속어)라 불렸다. ●태국 女총리는 나홀로 행사에 박 당선인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남편은 요아힘 자우어 훔볼트대 교수다. 그는 별명이 ‘오페라의 유령’이다. 자우어 교수는 정상회담에 가끔 참여하긴 하지만, 대중 앞에 나서길 꺼리고 ‘메르켈의 남편’이라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하지만 오페라를 워낙 좋아해 가끔 메르켈 총리와 함께 음악 축제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고 해서 ‘오페라의 유령’이란 별명이 붙었다.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도 공식 행사에 거의 남편을 대동하지 않는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因緣 죽음은 門일 뿐…시공을 뛰어넘어 500년간 반복된 운명

    因緣 죽음은 門일 뿐…시공을 뛰어넘어 500년간 반복된 운명

    영화팬을 설레게 한 1억 2000만 달러(약 1288억원)짜리 프로젝트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작가 데이비드 미첼의 동명 원작 소설을 ‘매트릭스’ 시리즈를 만들어 낸 래리·앤디 워쇼스키 남매(최근 형 래리가 성전환 수술을 받아 라나로 개명. 이하 워쇼스키 남매)와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의 톰 티크베어 감독이 어떻게 요리할지 궁금했다. 톰 행크스·핼리 베리·짐 스터게스·짐 브로드벤트·벤 위쇼·휴 그랜트 등 눈이 휘둥그레질 법한 캐스팅에 배두나가 주연급인 손미-451역을 맡아 더 관심을 끌었다. 13일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라나 감독은 “아내가 집에서 김치를 담가 먹을 만큼 한국 음식을 좋아해 (서울이) 너무 친숙하다. 예전부터 놀러 가자고 했는데 미리 와 보면 영화 속 미래의 서울을 상상하는 데 제약이 있을 것 같아 참았다.”고 말했다. 이어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부터 배두나의 모든 작품을 봤다. 처음부터 손미는 한국 배우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두나를 떠올렸다. 복제인간이지만 인간적인 순수함을 간직한 동시에 혁명을 이끄는 강인한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 기적같은 배우”라고 밝혔다. 동생인 앤디도 “배두나는 국보급 배우”라며 거들었다. 배두나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감독들 이름을 보고 어떻게 내게 왔을까 신기했다.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을 먼저 읽고 시나리오를 봤는데 왠지 잘할 수 있겠더라.”면서 “계약 조건에 캐스팅과 영화 내용에 대한 함구령이 있었다. 일찌감치 캐스팅 사실을 자랑하고 싶었다.”며 웃었다. 배두나의 상대역을 연기한 스터게스는 “영국·스페인 촬영 때는 내가 이곳저곳을 안내했으니 서울에선 두나가 구경시켜 줄 걸로 믿는다. 특히 소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500년 동안 반복된 인연과 운명을 다룬 영화의 얼개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여섯 개의 시공간 속 인물과 사건은 보이지 않는 끈을 통해 연결돼 있다. 1849년 태평양을 항해하는 상선에 탄 변호사 어윙(스터게스)과 그의 목숨을 노리는 의사 헨리 구스(행크스)가 먼저 나온다. 1936년 영국에는 영화 제목이자 모티브로 쓰이는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를 쓴 천재 작곡가 프로비셔(위쇼)와 동성 연인 식스미스(제임스 다아시), 프로비셔의 재능을 탐하는 노회한 작곡가 비비안 에어스(브로드벤트)가 등장한다. 1973년 미국에서는 핵발전소를 둘러싼 음모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 버린 여기자 루리자 레이(핼리 베리)를 쫓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2012년 런던에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았다가 갱단에게 쫓기게 된 출판편집자 캐번디시(브로드벤트)가 있다. 2144년의 서울에서는 복제인간 손미(배두나)와 반군장교 장혜주(스터게스)가, 문명이 사라진 2321년의 빅아일랜드에서는 메로(베리)와 자크리(행크스)가 수백 년을 뛰어넘어 운명적으로 만난다. 원작은 여섯 개의 이야기를 병렬적 구성으로 보여 주다 마지막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에서 멈춘 뒤 하나씩 갈등이 해소되는 형식을 취했다. 하지만 워쇼스키 남매와 티크베어는 원작을 분해·재조립했다. 여섯 개의 이야기를 쪼갠 뒤 등장인물들이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순간을 찾아내 그때마다 장면 전환의 고리로 활용했다. 여섯 개의 이야기가 모여 메타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모자이크식 구성인 셈. 앤디 감독은 “각색 과정이 게임을 하듯 재밌었다. 주요 인물의 관계를 전생과 후생에 걸쳐 분석했다. 시나리오와 촬영은 물론 편집까지 연결 고리를 찾는 작업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배우들은 하나의 역할만 맡는 것이 아니라 최대 여섯 개의 이야기(톰 행크스·휴고 위빙)에 다른 캐릭터로 등장시킨 대목도 영화를 관통하는 ‘윤회’(輪廻)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우리 인생은 우리 각자의 것이 아닙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타인과 연결돼 있죠. 과거와 현재도요. 우리의 모든 악행과 선행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 거죠.” “죽음은 하나의 문일 뿐 그 뒤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등의 대사 또한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여섯 개의 이야기에 각각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배우와 입체적인 캐릭터를 직조한 감독들의 능력은 아카데미 각색상을 줘도 아깝지 않다. 하지만 머릿속에 가상의 관계도를 만들어 영화를 보지 않는다면 뒤죽박죽 엉킬 가능성도 있다. 2시간 52분의 상영시간 내내 집중력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북미에서 지난 10월에 개봉, 2647만 달러(약 284억원)의 수익에 그쳤다. 이에 대해 앤디는 “오늘의 미국은 엉망(mess)이다. 그러니까 롬니(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그렇게 지지를 얻은 것이다. 미국 관객은 처음 10분 동안 이해하지 못하면 영화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는 다르다. 영화에 영혼과 철학을 담는다. 같은 뱀파이어 소재의 ‘트와일라잇’과 박찬욱의 ‘박쥐’가 다르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티크베어 또한 “할리우드 영화는 맥도날드 같다. 식당에 가기 전 메뉴를 알고,뭘 먹을지 결정한다. 반면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여섯 개의 요리가 나오는 심오한 코스 요리”라고 덧붙였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한국에서 내년 1월 10일 개봉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 노벨평화상의 역설/함혜리 논설위원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만들어진 노벨상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힌다. 노벨상 6개 부문 중에서도 평화상은 특별한 권위를 부여받았다. 다른 상을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와 한림원 등에서 선정하는 것과 달리 평화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선정과 시상 권한을 갖고 있다. 노벨이 유독 평화상만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맡긴 이유를 두고 온갖 설이 분분하다. 유언장을 작성한 당시 노르웨이는 스웨덴에 합병된 상태였고, 노르웨이가 중재와 협상을 통해 각종 국제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거나, 노벨이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 겸 평화운동가를 워낙 좋아해 그렇게 정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아무튼 노벨은 유언장에서 ‘국가 간 우호, 군비 감축, 평화 교섭 등에 실질적 공을 세운’ 인물이나 단체에 상을 주도록 했다. 하지만 노벨의 숭고한 뜻과 무관하게 평화상은 정치적 시류에 따라 선정 기준이 정해지는 경향이 강해 종종 비난을 받았다.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1939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적이 있다. 히틀러는 영국 체임벌린 총리와의 회담에서 더 이상 다른 나라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당시 노벨위원회에서는 이를 히틀러가 야욕을 버리고 평화를 선택했다고 생각하고 후보에 올렸다. 그해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이 본격화됐으며 2차대전 기간인 1939~1943년 노벨 평화상 시상은 중단됐다. 반면 상을 받고도 남을 공적을 쌓은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다섯 차례나 후보로 추천됐지만 결국 업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최근에는 2009년 수상자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구설수에 올랐다. 취임 8개월밖에 안돼 업적을 쌓을 시간도 없었던 그를 선정한 데 대해 세계 최강국의 현직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고려가 너무 많이 작용했다는 냉소적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올해 유럽연합(EU)의 수상을 두고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재정위기로 남·북 유럽의 갈등이 고조되고, 유로존이 분열 일보직전인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역대 최악의 노벨평화상’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노벨의 사망일인 지난 10일 오슬로 시청에서 평화상 시상식이 열렸지만 결코 평화롭다고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영국·체코·스웨덴 등 6개국 정상은 일찌감치 시상식 불참을 선언했고, 밖에서는 수상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평화상이 분열의 상징이 되어가는 이 상황을 노벨이 안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공부하는 야구선수, 서울대 담장 넘다

    공부하는 야구선수, 서울대 담장 넘다

    ‘공부하는 야구선수’로 유명했던 서울 덕수고 이정호(18)가 지난 7일 발표된 서울대 체육교육과 수시전형 최종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고교 야구선수가 서울대에 입학한 것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 체육특기생 전형이 없어 일반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 이정호는 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부모님이 운동선수는 항상 부상의 위험이 있는 만큼 공부도 열심히 해 미래를 준비하라고 조언했다.”며 “부모님 뜻을 따라 공부를 포기하지 않은 게 서울대 합격이란 영광으로 이어졌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정호는 초등학교 때까지 반 석차 1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야구를 시작한 중학교 1학년 이후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교 진학 후에는 더 떨어져 1학년 때 최종 내신 등급이 5.8등급이었다. 하지만 2학년 때부터 고교야구 주말리그제가 시작되면서 낮에는 공부, 밤에는 훈련에 집중하며 서울대 입시에 매달렸다. 주말리그제는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주중 학교 수업을 모두 받게 하는 제도. 이정호는 오후 5시까지 학교 수업을 들은 뒤 밤 10시까지 야구부 훈련을 진행했다. 집에 돌아온 밤 11시부터는 자율학습을 하며 부족한 공부에 매달렸다. 하루 잠자는 건 단 3시간. 코피가 쏟아지면 휴지로 막고 공부했다. 일주일에 3~4일은 코피가 쏟아졌다. 문제집은 눈물과 코피로 얼룩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눈물겨운 노력 덕에 내신 성적이 평균 2등급까지 올랐다. 이정호는 “힘들긴 했지만 즐기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좋아해 열심히 했고, 외국어는 학교 시험 문제를 통째로 외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창배 덕수고 야구부장은 “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어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라고 조언했다.”며 “열심히 노력한 제자가 자랑스럽다.”고 기특해했다. 포지션이 우익수인 이정호는 야구선수로서도 충실했다. 올해 고교야구 대회 23경기에 나가 타율 .310을 기록했다. 특히 청룡기 야구대회에선 12타수 6안타 4득점을 기록하며 타율 .500을 기록했다. 그는 이광환 전 LG 감독이 이끄는 서울대 야구부에 들어갈 예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미국이나 일본으로 유학을 가 공부와 운동을 함께 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연구하고 싶다.”고 말한 그는 “프로 선수의 꿈도 아직 버리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프로가 되면 서울대 야구부 출신 1호가 될 수 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오바마, 클린턴에 한 수 배웠나

    ‘골프광’으로 유명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일요일인 2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의 앤드루스 공군기지 내 골프장에서 함께 골프를 쳤다. 오바마의 ‘골프 친구’인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클린턴과 가까운 테리 매컬리프 전 민주당 전국의장이 동반자로 참여했다. 오바마와 클린턴은 지난해 9월 함께 골프를 치면서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편해졌던 관계를 해소한 바 있다. 이날 골프 회동은 클린턴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재선 고지에 오른 오바마 대통령이 보은(報恩)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들이 골프장에서 ‘발등의 불’로 떨어진 재정절벽 해소 문제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들 두 전·현직 대통령은 지난달 ‘골프닷컴’이 역대 미국 대통령을 대상으로 선정한 ‘골프광’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5위에 오른 오바마는 4년의 임기 동안 100회 이상의 골프를 쳤고, 구설에 오른 적도 많다.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이 전개되던 와중에도, 태풍 피해가 심했던 지난여름에도 골프를 즐길 정도였다. ‘골프광 대통령’ 3위에 오른 클린턴은 재임 8년간 400여 차례나 필드에 나갔다. 특히 벌타 없이 다시 치는 ‘멀리건’을 유난히 좋아해 ‘빌리건’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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