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경제」 유가·통상체계 재편에 초점
◎OPEC의 통제능력 회복 노력/미 업은 사우디는 증산 계속할듯/가격안정 전망속 11일 총회 주목
걸프전쟁이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남에 따라 이 결과가 향후 국제유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원유가의 흐름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우리경제의 특성상 우리도 이 관심권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국제석유시장 전문가들의 전망은 대체로 배럴당 16∼18달러 수준의 하향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낙관론쪽이 지배적이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최근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석유수출기구(OPEC) 회원국들의 행동으로 미루어 낙관론을 펴는 것은 너무 성급하지 않느냐는 견해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다소 비관적인 이들의 전망은 걸프사태이전인 지난해 7월 OPEC 회원국들이 합의한 배럴당 21달러 수준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실제 종전후 원유시장의 관리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25일 빔에서 OPEC회원 6개국 대표가 비공식 모임을 가진 뒤부터 국제원유가는 비록 소폭이지만 속락의 흐름을 멈추고 일제히 반등세로 돌아섰다.
부시대통령의 종전선언이 발표된 28일 런던에서는 북해산 브렌트유의 4월 인도분이 19.6달러였다. 다국적군의 지상전 돌입으로 조기종전의 기대가 높았던 22일의 배럴당 17.25달러보다 2.35달러가 오히려 뛴 것이다.
국내 원유평균도입단가에 영향을 미치는 싱가포르시장의 오만유도 비슷했다. 22일의 배럴당 13.45달러에서 28일에는 1.75달러가 오른 15.20달러로 거래됐다.
이같은 수준의 유가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직전인 지난해 7월의 시장수준과 비슷하나 벌써부터 들먹거리고 있다는 사실은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전에 따라 「중동대형」으로 군림하게 될 미국과 이를 등에 업고 앞으로 OPEC내 주도권을 다시 잡게될 사우디의 의중이 무엇이냐가 현재로선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다.
사우디는 25일 열린 OPEC 6개국의 비공식모임에 불참했다. 비록 비공식모임인데다 오는 11일 열릴 OPEC 임시총회에 앞서 사전 의견조정의 성격이 컸지만 사우디의 불참을 놓고 해석이 구구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우디의 OPEC내 입지가 다시 강화됐고 향후 국제유가는 사우디의 입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이미 전쟁중 자국을 지원하고 있는 다국적군을 돕기 위해 끊임없는 원유증산을 꾀해왔다. 당초 생산쿼타물량인 하루 5백50만배럴보다 우리나라의 3일 소요물량인 2백50만배럴이나 많은 8백만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전쟁으로 이라크와 쿠웨이트로부터 공급이 끊긴 4백80만배럴엔 못미치지만 이같은 증산은 국제유가 안정에 크게 기여해온게 사실이다.
문제는 많은 OPEC 국가들이 바라는 것처럼 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걸프사태전의 생산쿼타량으로 돌아가는 데에 과연 사우디가 동의할 것이냐는 점이다.
이에대해 석유전문가들의 견해는 다소 부정적이다. 사우디뿐 아니라 사우디를 원격조정하게 될 미국도 다국적군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있다는 점을 우선 지적한다.
전쟁에 참여한 서방세계에 무리를 주지않는 유가와 산유량을 사우디가 절대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사우디는 걸프전에서 1백35억달러를 출연한 최대 전비부담국가이다. 전후 복구 및 전비충당을 위해서도 더 많은 원유를 팔아야 할 처지다.
복구가 끝나면 생산을 재개할 쿠웨이트도 유가상승을 막는 주요 요인이다. 폐허가 다된 국가의 재건을 위해서는 원유증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때 유가회복을 노리는 많은 OPEC 국가들이 있긴하나 원유시장의 평균유가는 배럴당 16∼18달러선을 유지할 것이라는 것이 석유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이같은 국제유가는 배럴당 19.40달러인 국내기준유가와 비교하면 3.40∼1.40달러나 낮은 수준이다. 이 차이를 석유사업 기금으로 거두거나,아니면 국내기름값을 15∼5% 정도 인하해야 된다. 이에대해 동자부 고위당국자는 『우선은 이 차이를 석유사업기금으로 흡수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당분간은 국내기름값 조정은 하지않겠다는 뜻이 명백하나 이 문제는 국내물가문제 등과 관련지어 볼때 앞으로 상당한 논란의 소지를 안고있다.
○미의 세계무역 신질서 확립 시도/“UR 조기타결” 밀어붙이기 전환/한국,협조통해 쌍무압력 피해야
걸프전쟁의 종전에 따라 미국이 「힘」을 바탕으로 한 승리의 여세를 몰아 새로운 국제통상질서의 확립을 모색하는 가운데 대한통상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미 통상마찰과 관련,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는 등 미상무부와 일부 언론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미 행정부처가 한국의 대미 약속사항의 이행여부를 지켜보겠다는 소극적인 입장인데다 특히 대한통상마찰의 진원지였던 미 상·하원과 언론,민간업계에서는 한국의 입장변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상공부가 최근 통상담당인 유득환 제1차관보의 방미결과를 토대로 대미 통상홍보를 강화하는 등 정부당국이 걸프전쟁 이후 새로운 한미 통상마찰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으나 조만간 재개될 UR협상 등과 맞물려 종합적이고 조직적인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한미 통상관계는 지난해말 미국과 EC(유럽공동체)간의 대립으로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UR협상의 진전과 상당한 함수관계를 지니고 있다. 미국이주도하는 국가간의 다자간 협상인 UR협상이 실패할 경우 미국은 곧바로 힘을 바탕으로 한 쌍무적 통상압력을 행사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신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무역질서의 창조를 위해 부심하는 강도는 걸프전쟁에 못지 않다.
부시 미 대통령은 걸프전쟁의 종전직전인 지난달 26일 백악관에서 의회지도자들과 만나 행정부가 곧 의회에 제출할 신속승인절차(패스트트랙) 연장안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신속승인절차란 미 의회가 미 행정부에 부여한 일괄협상권한. 미 행정부가 이 절차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오는 5월말까지 상대국과 통상협정을 체결해야 하며 이에앞서 90일전인 2월말까지 의회에 체결의사를 통보해야 한다.
미 의회가 UR협상이 더이상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행정부의 일괄 협상권한 시한연장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미 행정부는 UR협상을 더이상 추진할 수 없게 된다.
당초 미 의회는 이 시한연장에 반대하는 입장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 걸프전쟁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힘입어 연장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따라서 UR협상 시한이 1∼2년 정도 더 연장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미국내의 최근 보호무역주의 회귀움직임이다.
미 의회는 보호주의적 움직임을 본격화,칼 레빈상원의원(민주)이 지난달 30일자로 대외무역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는 슈퍼 301조를 5년동안 더 연장하고 보복조치의 내용도 대폭 강화하는 법안을 제출한데 이어 맥스 보커스 상원의원(민주) 등도 지난 7일자로 또 다른 내용의 슈퍼 301조 연장 및 강화법안을 제출한 것이다.
이밖에 외국인 투자를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을 비롯,각종 외국인 투자를 엄격히 규제하는 법인들이 무더기로 입법이 추진되는 등 다각적인 보호주의강화 입법활동이 추진되고 있다.
이같은 미 의회내의 보호주의강화 움직임은 앞으로 주요 교역상대국에 대한 미국의 쌍무적인 통상압력이 한층 강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걸프전쟁이 진행중이던 지난 2월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한미 양국간 서비스분야 양허협상에서 미국측이 의료보건 및 법무서비스를 포함,서비스시장의 대폭적인 개방을 촉구,올들어 대한 시장개방공세의 포문을 열었다.
따지고 보면 미 행정부가 지난해말 UR협상에서 입장이 대립된 EC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고 어정쩡하게 협상시한을 연기한 것도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EC국가들과의 의원만 협조관계를 의식해기 때문이다.
이제 걸프전쟁이 끝난 마당에 UR협상의 재개와 함께 미국이 주도하는 통상전략을 구사,UR협상을 조기타결로 유도할 것임은 분명하다.
정부로서는 한미 통상관계에서 미국의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는 통상의 지혜가 필요하다는게 통상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또한 다자간 무역협상인 UR협상의 타결에 진력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미국측으로부터 쌍무적인 통상압력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농산물을 비롯,서비스분야 등에서 신축적인 입장으로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