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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평화·통일의 새 이정표(사설)

    ◎한소 정상회담의 시대사적 의미 오늘날 국제사회에 있어서의 동북아,그 속의 한반도의 존재와 의미는 무엇인가. 전후 냉전구조를 청산하는 역사적·시대적 조류에서 한반도는 어제까지만 해도 뒤처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도 급속한 변화의 흐름속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후의 냉전지대이자 마지막 화약고로 지목되던 한반도의 해빙을 위해 한국·미국·소련이 팔을 걷어 붙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역사와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주역은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육속하는 두 나라의 지도자,한국의 노태우대통령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아닐 수 없다. ○두 정상 만남 자체가 「수교」 한소정상의 만남은 북한의 개방화와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겨냥한 우리 북방외교의 일대 결실이다. 여기에는 물론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외교를 이데올로기에서 분리한 이른바 「신사고 외교」에 힘입은 바 크다 할 것이다. 한국과 한반도문제 유관국인 소련과의 관계개선은 따라서 우리의 북방외교와 고르바초프 페레스트로이카가 시대적 추세의 접점에서 만난 단계적 과실이라 할 수 있다.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한반도 분단사상 최대의 정치적 사건이라 할 수 있고 실질적인 수교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노대통령이 지적했듯이 두 정상간에 원칙적인 이견은 없었을 것이다. 설혹 이견이 있었다 하더라도 만남 그 자체가 「정상화의 시작」이라고 할 때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는 막중한 것이다. 한반도 분단이 동서대결과 냉전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적 산물임에 비추어 볼 때 한소 정상회담과 그 만남의 상징성은 동시에 냉전시대를 청산하는 세계사적 흐름의 뚜렷한 새 이정표임에 틀림없다고 본다. 그동안 우리쪽의 북방정책과 소련의 대한정책 사이에는 분명한 시차가 있었던 것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정확히 말해 한국이 「정식수교」를 서두른 반면 모스크바측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평양측과의 「균형」을 고려하여 경제협력 이상의 정치적 교류를 주저하는 태도를 보여온 것도 사실이다. 노·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은 두 나라 사이의 그같은 입장및 접근자세의 차이와 방법론을 일거에 뛰어넘는 국제외교적 묘미와 새 전례를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냉전체제의 종식과 세계적인 화해및 군축추세에 있어서도 미소는 여전히 세계질서의 두 주축임에 틀림없다. 두 정상의 만남과 한소간 거리단축이 미 부시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정상회담에 연이어 성사됐다는 점에서도 한반도적 한계를 초월하는 세계사적 의미가 부각되고도 남는다. ○냉전체제의 마지막 해소 40여년전 한반도 전쟁의 열화와 그 이후의 분쟁은 오랜 고통과 시련끝에 사라지려 하고 있다. 또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 그 오랜 분쟁의 시작은 전쟁이었다. 또 전쟁의 결과는 분단상태의 고착이었다. 국가와 민족,체제와 이념,사회와 문화의 분단이 한반도를 세계사의 엑스트라로 남게 했다. 한국과 소련 두 나라의 정상은 이제 그것을 청산하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시대사적 문제해결의 관문에 들어선 것이다.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제일 먼저 북한의 개방과 변화를 국제여론앞에서 정중하게 촉구했다. 사실 역사적인측면에서건 현실적인 관점에서건 한반도 문제해결의 유관국은 크게 보면 수없이 많다. 그러나 대표적으로는 미·소와 중국·일본이 될 것이다. 그래도 역시 한반도 문제해결의 궁극적인 귀착점인 평화정착과 통일의 당사자는 결국 남북한 이외에 다른 나라가 될 수 없다.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은 또한 어디까지나 반전쟁적·평화적이어야 한다. 남북한은 그동안 부분적인 대화와 교류를 통해서도 아직까지 뚜렷한 긴장완화를 조성하지 못했다. 정치와 체제,이념적으로 대립했고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결했다. 지금부터 그러한 대립과 대결양상은 종식돼야 한다. 노대통령은 한반도 문제해결과 관련하여 한국측이 절대로 군사적 우위에 서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긴장완화와 평화정책,통일지향에 있어 전쟁적 해결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에 호응해야 한다. 생각하면 40년전 동족전쟁의 시발은 무엇이었던가. 북한측의 사회주의 혁명전략이었다. 북한은 지금부터라도 단일민족의 긍지와 사명감을 되살려 한반도가 전후 냉전체제의 마지막 「해결자」로 되는 한몫을 담당해야 한다. ○넘어야 할 절차,거쳐야 할 과정 이제 어떤 여건변화나 전제조건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한국·소련 관계발전에 있어서의 「대전환」은 가능성이 아닌 현실의 상황이 돼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소 관계가 앞으로 지향할 바 실질적인 절차와 거쳐야 할 과정이 적잖이 남아있음에 유의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그에앞서 소련이 직면하고 있는 대내적인 현실여건에 대해서도 깊은 인식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소련의 경제사정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부의 경제적 지원을 절대 필요로 하고 있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한소간 경제교류 내지 협력관계의 개선발전에 있어서 우리는 그러한 정세분석과 현실인식에 입각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대동북아 기본정책이 대단히 치밀하고 원대한 계획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그는 이미 86년엔 블라디보스토크연설을 통해서,이어 88년에는 크라스노야르스크연설을 빌려 소련이 지향할 바 세계전략과 대아시아정책을 천명한 바 있다. 그가 추진하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그라스노스트가 근본적으로는 「강대국 소련」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 국가정책과 세계전략의 소산임을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 북방정책은 그 단계적 결실에 비추어 매우 일천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소관계의 「정상화」가 주권국가 외교주체로서의 우리에게 주는 보상이 크면 클수록 경우에 따른 실패가 주는 대가도 적잖으리라는 점을 추찰해 보는 일도 중요하다. 우리 나름의 전략과 원려로서 실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할 것이다.
  • 한·소 정상회담 청와대 발표문

    1,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세계정세및 한반도에의 평화와 안정,그리고 양국관계에 대한 기탄없는 의견을 나눴다. 회담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두 대통령은 각급문제에 대해 요점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두 대통령은 회담의 내용에 만족했으며 앞으로 양국관계발전을 위해 이런 기회를 다시 갖도록 하고 양국관계가 계속 발전되기를 희망했다. 2,노대통령은 세계전체의 변화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신사고에서 비롯돼 개방과 개혁이 전후 냉전체제를 근본으로부터 바꿔 이 세계에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가 증진되고 있는데 대해 높이 평가했고 미소간의 몰타정상회담,워싱턴 정상회담이 세계평화 구축의 노력으로 큰 결실을 맺기를 희망했다. 이에대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지난날의 대결적인 세계가 변하고 있고 한국과 소련 스스로도 변화해야 하고 변하고 있으며 이러한 입장에서 한소 두 나라 관계도 변화해야 한다는 결심에 따라 노대통령의 제의를 수락해 오늘 회담을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연설,글라스노야레스크연설에서 밝혔듯이 방대한 태평양지역과 아시아의 국가간 관계도 발전돼야 하며 이러한 많은 나라들의 협력을 요청하는 그러한 여망도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특히 한국이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한국정부와 국민이 소련대표단을 따뜻하게 환영해준 데 대해 사의를 표명했다. 3,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 개방과 화해의 조류가 동북아와 특히 한반도에 파급되어 이 지역에 냉전체제의 대결이 불식되고 안정과 평화가 정착되도록 관계 국가가 협력해야 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두 대통령은 국토분단속에서 분쟁의 위험을 안고 있는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4,두 대통령의 한소간의 관계정상화 노력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멀지 않은 장래에 완전한 수교관계를 이루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두 대통령은 외교 정치 경제 과학기술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한소관계가 서울올림픽 이후 발전되어 온 데 만족을 표시하고 이러한 교류 협력관계가 한단계 더 높은 발전을 이룩해 나가도록 하는데 합의했다. 두 대통령은 한소 양국관계가 외교단절과 불행했던 과거를 씻고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는 것은 한소 양국 발전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고 남북한관계를 개선하는데 기여한다는 확신을 함께 나누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한소 양국정상간의 만남 자체가 한소 관계정상화 노력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양국관계가 매우 중요한 전환점에 들어섰음을 온 세계에 말해주는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특히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양국관계를 성숙시켜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결실을 맺어가자고 말했다. 5,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는 남북대화를 통해 해결되어야 하며 각분야에 걸쳐 교류나 협력이 진전돼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남북 관계개선을 위해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는가라고 물은데 대해 첫째는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남북 정상회담을 수락하여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도록 소련이 종용해줄 것과,둘째 북한이 개방과 개혁으로 나와 우리는 물론 국제사회의 모든 나라와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도록 지원해 줄 것,셋째 남북한간의 모든 문제를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루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도록 소련이 지원해 줄 것을 희망했다. 노대통령은 한국이 북한의 고립을 결코 원하지 않으며 북한은 더이상 우리와 적대·대결·경쟁하는 상대가 아니라 협력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6,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한소 양국의 지리적 근접성과 경제구조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교역과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증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오늘 논의하고 합의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한국의 정부대표단과 소련의 정부대표단이 곧 협의하도록 하고 경제협력촉진을 위해 정부와 경제계인사로 구성되는 양국 대표단이 합의된 내용을 실천하기 위해 협의를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7,한국정부는 오늘 정상회담이 한소 양국 관계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일 뿐만 아니라 분단된 한반도에서 냉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평화적인 통일을 열어가는 새로운 시대의 시발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두 대통령은 오늘의 만남이 한소 양국 관계발전 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공영을 위하여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데 대해 뜻을 함께 했다.
  • 한·소 조속수교 합의/양국정상 적절한 때 교환방문

    ◎한반도평화·경협증진 공동노력/노대통령·고르바초프회담/“북한고립 원치 않는다” 노대통령 회견 【샌프란시스코=특별취재반】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4일 하오(한국시간 5일 상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역사적 한소 정상회담에서 한소수교에 합의했다. 양국 정상은 또 상호 적절한 시기에 때가 되면 서울과 모스크바를 각각 교환방문키로 했다.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하오 5시20분부터 6시20분까지 1시간동안 페어몬트호텔에서 이루어진 역사상 첫 한소 정상회담에서 서울올림픽이후 외교·정치·경제·과학기술·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한소관계가 발전돼온 데 대해 만족을 표시하고 멀지 않은 장래에 완전한 수교관계를 이루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이 발표했다. 양국 대통령은 동북아와 한반도지역에서 냉전체제의 대결이 종식되고 안정과 평화가 정착되도록 관계국이 협력해 나가며 특히 분쟁의 위험을 안고 있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를 정착시키는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는 데의견을 같이했다. 양국 대통령은 양국의 관계정상화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고 남북한 관계개선에 기여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으며 특히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이와관련,『양국 정상의 만남 자체가 한소관계의 정상화 노력이 시작됐고 양국관계가 매우 중요한 전환점에 들어섰음을 온 세계에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국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문제는 근본적으로 남북한 당국간에 대화를 통해 해결되고 교류와 협력이 진전돼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소련이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느냐』라고 묻는 질문에 ▲북한의 김일성주석에게 남북정상회담을 수락토록 종용하고 ▲북한이 개방과 개혁으로 국제사회에 나와 모든 나라와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키도록 지원하며 ▲무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남북한간에 평화정착이 이뤄지도록 소련이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노대통령은 『북한의 고립을 결코 원하지 않으며 북한은 더이상 우리와 적대·대결·경쟁상대가 아니라 협력의 동반자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두 나라 대통령은 한소 양국의 지리적인 근접성과 경제구조의 상호보완성을 바탕으로 교역과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증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양국 대통령은 이날 합의된 양국 수교·경제협력증진 등 모든 사항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한국정부 대표단과 소련정부 대표단이 곧바로 실무협의를 갖도록 했으며 특히 경제협력과 관련해서는 양국정부와 경제계인사로 대표단을 구성,빠른 시일내에 협의에 들어가도록 했다. 노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뒤 페어몬트호텔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 회담결과 한소 양국관계는 86년간의 단절과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됐다』고 선언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오늘 회담에서 원칙적으로 이견이 있는 것은 없었다』고 밝히고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대화도중 양국 정상간의 상호방문 얘기가 오갔으며 피차간 적절한 시기에 때가 되면 방문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대변인은 이날 한소 정상회담에 대한 우리 정부의 평가를 발표,『오늘 정상회담이 한소 양국관계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은 물론 한반도에서 냉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열어가는 새로운 시대의 시발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부시특사 사전접견 이에앞서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10시(한국시간 5일 상오 2시)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서 부시 미대통령이 미소 정상회담 결과를 노대통령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특별히 파견한 존 리드백악관 의전장을 만난 데 이어 솔로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그레그 주한미대사·리처드슨 한국과장을 접견했다.
  • 노대통령·고르바초프회담 이모저모

    ◎「86년 단절」 잇는 첫 악수… 화기 넘친 1시간/“반갑다”·“꼭 만나고 싶었다” 첫 인사/고르비 일정쫓겨 회담 1시간 지연/노대통령 회견장 성황… 소 방송 “전세계에 센세이션”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역사적인 샌프란시스코 회담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일정 지연때문에 당초 예정보다 1시간20분 늦은 4일 하오 5시20분(현지시간)부터 진행. 이날 한소 정상회담이 열린 페어몬트호텔 신관23층 스위트룸은 한쪽의 창이 태평양을 면해 있는 방으로 노태우대통령이 창을 향해,고르바초프대통령은 태평양을 등뒤로 해 양측 배석자와 나란히 착석. 회담시작직전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바쁜데도 만나 뵙게 돼 반갑다』고 인사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나도 바쁘지만 꼭 노대통령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인사. 노대통령은 회담서두에 창밖의 태평양을 가리키며 『저 건너편에 우리 한반도·소련 그리고 아시아가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멀리 보면서 태평양서쪽의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자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태평양지역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지역이며 이곳의 평화와 번영은 모두에게 소중한 것』이라고 화답.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회담을 과일에 비유,『우리가 시작한 새로운 시발을 잘 익도록 해 모든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으로 성숙시켜 나가자』고 말하는 등 회담 중간중간에 양국 대통령은 위트와 유머도 섞어가면서 화기로운 회담을 진행했다고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이 전언. ○고르비,“시간 아쉽다” 당초 이날 하오 6시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캄차카로 향할 것으로 알려졌던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일정이 순차적으로 늦어져 노대통령과의 회담이 6시20분에야 끝나자 서둘러 회담장을 떠났는데 노대통령과 헤어지면서 『시간때문에 아쉽다. 오랜 시간의 비행계획이 남아있고 떠나는 일정이 급해 정말 아쉽다』고 말하며 『오늘 우리의 만남은 건설적인 양국관계의 출발』이라고 다시한번 의미를 강조. 이날 회담이 예정보다 늦어진 것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레이건 전 미대통령과의 조찬을 1시간정도 늦게 시작해 그후일정이 자동적으로 순연했기 때문이라고. ○…한소 정상회담과 노태우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한국기자들에게 별도로 회담내용을 발표. 이대변인은 『페어몬트호텔의 23층 페어몬트특실에서 1시간동안 열린 이날 회담에서 양국정상은 아주 솔직한 의견을 나누었으며 의례적인 것이 아니고 핵심적인 문제에 상호입장을 충분히 얘기해 합의를 도출한 회담이었다』고 소개. ○환한 표정으로 회견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양국정상회담이 끝난지 40분만인 하오 7시 정각에 시작,노대통령의 준비된 성명서 발표와 가지들의 일문일답으로 35분간 진행. 감색 양복을 입은 노대통령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의 결과가 당초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둔 듯 환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인 페어몬트호텔 1층 베네치아홀에 입장한 뒤 곧바로 노창희의전수석의 통역으로 기자회견을 개시.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만남이 한반도 냉전의 얼음을 깨는 첫걸음이라는 내용등 중요 대목에 이르러서는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을 응시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노대통령은 7쪽의 성명서를 20분가량 읽어 내려간 다음 한국기자 2명(조선·한국)과 미국(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영국기자(파이낸셜타임)등 4명의 질문을 차례로 받고는 상세하게 답해 주었는데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지 코니강기자의 감회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끝에 『샌프란시스코시장과 시민들이 3일을 노태우 날로 지정해 주고 4일을 고르바초프의 날로 지정해 주는 알뜰한 협조와 정성을 보여준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치하,역사적 정상회담 장소를 제공한 샌프란시스코시에 대해 고마움을 표명. 노대통령은 마지막 질문자인 영파이낸셜 타임지 기자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 끝나자 『여러분을 기다리게 한데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보너스로 한분만 더 질문 받겠다』고 조크,굳어있던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를 일순 바꾸는 여유를 보이기도. ○미·소측,삼엄한 경호 ○…이날 회담장인 페어몬트호텔에는 미국과 소련측 경호원들이 경비견까지 동원한 삼엄한 경비를 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부터 내외신기자들의 접근을 차단.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미경제인 오찬장인 본관에서부터 복도를 따라 30여m 걸어와 회담장인 신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회색 더블보턴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꽉 짜인 일정 때문인지 다소 피곤한 표정. 이날 회담장에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국빈으로 방미했기 때문에 모든 편의시설이용의 우선권을 소련측이 행사해 모든 엘리베이터 사용이나 경호절차를 소련측이 전담. 이 바람에 우리측 수행기자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측 대표단을 뒤따르려다가 소련측 경호원들의 제지로 기록사진사 1명만 회담장 입장이 가능했으며 이 사진사도 회담시작 20여분전에 미리 소련측 안내를 받아 회담장인 23층에서 대기. ○미소회담 설명들어 ○…한소 정상회담을 6시간여 앞둔 4일 상오 10시(한국시간 5일 상오 2시) 노대통령은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서 솔로몬 미국무부 동아태차관보로부터 미소 정상회담결과에 대해 1시간15분동안 설명을 듣고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에 대비하는등 분주한 일정. 솔로몬차관보는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이 성과를 거둬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갖게된 데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한다는 부시대통령의 인사를 전한 뒤 『부시대통령은 아울러 노대통령의 방일을 통해 일왕과 일총리가 「솔직한 사죄」를 함으로써 미국의 주요한 아시아맹방인 한일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된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언. ○김대표위원과 통화 ○…노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이 끝난 뒤 하오 10시30분쯤 서울로부터 걸려온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의 국제전화를 받고 정상회담결과 등에 대해 20여분간 환담. 김대표는 노대통령에게 『이번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은 냉전시대를 종식시키려는 노대통령의 의지와 우리국민 모두의 노력을 전세계에 과시한 것이며 우리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과 동북아안정을 앞당기는 획기적 계기였다』면서 『이번 회담은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경의를 표시. ○라이사,한인상점에 ○…고르바초프대통령부인 라이사여사는 4일 샌프란시스코 시내 관광중 한국교포 김혜자씨(31)가 경영하는 가게에 들러 약 10분간 담소를 나누면서 부군고르바초프대통령과는 또다른 내조자로서의 한소외교에 한몫을 담당. ○…소련의 모스크바방송은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이 전세계적으로 『진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방송은 노대통령이 한소 정상회담에서는 쌍방의 수교문제와 경제협력 증대문제뿐 아니라 한반도평화 및 통일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하면서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이 회담은 만남 그 자체에 「큰 의의」가 있다고 역사성을 부여한 로이터 통신의 보도를 인용,소개했다.
  • 「신사고 바람」의 주역 고르바초프/정상회담 계기,재조명 해본다

    ◎“이념보다 빵”… 실용주의 노선 추구/동구권 개혁ㆍ냉전종식에 큰역할 베를린장벽 붕괴등 동구의 대변혁을 가져오고 2차대전이후 지속되던 냉전체제를 화합의 새시대로 바꿔가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기왕에도 세계 여론의 주목대상이었지만 4일 한반도주변상황에 역사의 새 지평을 열 전격적인 한소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다시 한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소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리투아니아공화국에 대해 소련이 천연가스의 공급감축등 경제봉쇄란 강경조치를 취했는데도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세계는 말로만 이를 비난했을뿐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지원할 수 있는 실제행동은 전혀 취하지 않았는데 이는 순전히 고르바초프가 서방측이 취할 어떤 행동으로 타격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만큼 고르바초프는 서방 세계로부터 절대적인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가 올해초 미시사주간지 타임으로부터 80년대의 인물로 선정된 것이라든지 지난달 영국에서 전유럽을 대상으로 창간된 유러피안이 창간특집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유선거로 통합유럽의 대통령을 뽑을 경우 고르바초프가 1위를 차지할 것이란 결과가 나온 것등이 고르바초프에 거는 서방세계의 기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또 과거의 다른 지도자들과는 달리 아시아에도 유럽에 못지 않은 관심을 갖는 지도자로 평가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86년 7월 소련이 아시아ㆍ태평양국가의 일원임을 천명한 블라디보스토크연설 이래 89년 9월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한반도정세의 전반적인 개선으로 한국과 경제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는가 하면 지난 3월 김영삼 민자당대표의 방소때는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싶다고 밝히는 등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꾸준히 눈길을 돌리고 있다. 물론 이는 일본을 선두로 한 한국 등 아시아의 신흥경제세력들이 이룩한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경제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진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의 새 조류를 재빨리 간파,때를 놓치지 않고 그 조류에 올라타며 스스로 그 흐름의 방향을 조정해 나가는데서 세계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고르바초프의 탁월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4일의 한소정상회담 개최도 이같은 고르바초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소정상회담을 발판으로 한국과 소련과의 경제협력이 강화되면 자연 일본도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으며 일본까지 소련경제에 참여하게 되면 아시아쪽에 주도권을 뺏기는 것을 우려,구미경제도 대소경제협력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3일 미소정상회담을 마감하는 백악관회견에서 자신의 일본방문계획을 피력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이며 한소에서 소일,소ㆍ구미로 이어지는 소련경제회복 전략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85년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한 이래 그에겐 언제나 개혁세력이나 수식어가 따라다녔으나 사실 그에겐 개혁세력이라기보다는 실용주의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고르바초프가 내세운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에게 있어선 인간의 삶의 질이 최우선이며 여기에 위배될때는 기존의 이념 따위는 언제든 버릴 수 있다. 그가 지난 85년 소련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한 즉시 개혁과 개방을 제1의 기치로 내건 것도 종래의 이념이나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실제로 국민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실용주의적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오랫동안 우방이었던 북한의 불만을 무릅쓰고 전격적인 한소정상회담을 갖는 것도 현실을 속박하는 과거로부터의 틀은 과감히 깨뜨려야 한다는 그의 사고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련내에서 최근 옐친 등 급진개혁파가 급격히 부상함으로써 이들 급진개혁파들이 개혁세력으로 지칭되고 고르바초프자신은 여기서 떨어져 중도노선의 정치인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은 이제야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옐친등 이른바 새 개혁세력의 주장도 역시 그 뿌리는 고르바초프가 내건 페레스트로이카에 두고 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는 여전히 소련개혁의 아버지일 수밖에 없다.
  • 미ㆍ소 정상,대결시대 종식 선언의 의미

    ◎아태지역 새질서 구축의 “청신호”/“북한개방이 평화정착 열쇠”판단/소도 냉전구도 청산을 강력 희망/크렘린,한ㆍ일 등과 경협 확대… 긴장완화 추구 미국과 소련의 두 정상은 3일 양국정상회담을 마무리짓는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정상회담으로 미소양국의 대결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회담의 구체적인 성과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평가들이 있겠지만 이번 회담으로 전후냉전체제를 이끌어온 두나라는 대결시대를 마무리하고 상호협조의 터를 다지는 하나의 이정표를 마련했다. 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입문제에 대해 양측의 이견이 아직 좁혀지지 않았으나 지난 6개월여 계속돼온 동유럽의 변화는 이번 미소의 만남으로 사실상 마무리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이제 세계의 관심은 한반도를 비롯,중국ㆍ베트남 등 마지막 남아 있는 아시아공산국들의 변화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도 3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미와의 새관계를 바탕으로 앞으로 태평양권에도 새질서를 발전시키겠다』고 말해 다음의 외교목표를 아시아지역에 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이 계획의 일환으로 아태국들과의 경제협력체 구성을 위해 내년초 일본방문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노태우대통령과의 전격적인 한소정상회담 합의와 대한수교의사는 고르바초프의 이러한 정책의 구체적인 첫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은 고르바초프 집권이후 아시아 지역에서의 새 질서모색을 위해 정기적으로 여러 제안들을 내놓았다. 지난 86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에서 중국과의 화해를 천명한 것을 비롯,그해 11월에는 아태지역의 비핵화 등 군축을 제의한 「뉴델리 선언」,그리고 88년에는 이 지역국들의 경제협력과 집단안보 구상을 골자로 한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을 내놓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아프가니스탄과 캄보디아주둔 베트남군의 철수가 이뤄졌고 89년 5월과 금년 4월 두차례에 걸쳐 중국과의 수뇌회담이 성사돼 양국 국경의 병력감축 합의가 발표됐다. 그동안 동유럽에서는 소위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페지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산정권이 무너지는 일대 변혁이 진행됐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 등 아시아 공산국들은 좀체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들도 80년대 들어 정치체제를 고수하면서 경제적인 변화만 추구한다는 소위 「위로부터의 개혁」방식을 도입,나름대로 변화를 모색했지만 그 정도는 너무 미약했다. 정치와 경제체제를 한꺼번에 바꿔버린 동유럽의 변혁물결이 일자 이들은 결국 체제안보를 위해 변화시도 자체를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6월 북경의 천안문 사태가 그 단적인 예이다. 북한은 동유럽 각국에서 유학생들을 불러들이고 남북대화를 교착상태에 빠지게 했다. 소련으로서는 아시아지역에서 유럽에 상응하는 군축,그리고 시베리아를 포함한 극동지역 개발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변화노력을 이곳에서 펼칠 때가 된 것이다. 아시아에서 동서대결구도가 청산되지 않는한 북한이 가지고 있는 전략적인 가치를 소련은 포기하기 어렵다. 북한은 주한미군과의 대치지역이고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발진한 소태평양함대가 태평양으로 빠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소양국은 한ㆍ미ㆍ소 3국이 북한을 설득,개방을 촉진함으로써 남북한 대화와 미ㆍ북한관계개선 그리고 이 지역의 군축에 진척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한다는데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과의 수교를 단기적으로 북한에게는 충격이겠지만 결국 이지역의 긴장완화를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다는 게 소련의 판단인 듯하다. 북한의 충격완화를 위해 일시적으로는 주한미군철수,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대체 등 북한의 입장을 부분적으로 지지하겠지만 소련이 한반도에서 바라는 것도 결국은 독일식의 해결방안일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북방4개섬 반환문제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개선도 아시아지역의 새질서 구축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과의 본격 협력시대를 열어 새 아태협력체를 구성시키겠다는 것이 소련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북한ㆍ중국을 포괄하는 구상이다. 고르바초프의 내년 방일은 이런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동유럽의 변혁물결과 본격화될 소련의 아시아정책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유럽대륙에서와 같은 화해의 새바람이 불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오는 9월 북경아시아게임을 고비로 중국도 대외개방과 민주화를 추진할 것이란 전망들이 있으나 아직은 뚜렷한 변화조짐이 없다. 노대통령은 3일 한소정상회담을 위해 출국하면서 출국인사를 통해 『우리의 분단상황은 결코 21세기로까지 이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10년안에 한반도의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남북한과 미ㆍ소ㆍ중ㆍ일 등 관련국이 무엇보다 먼저 할일은 이 지역의 긴장완화와 대결구도 청산일 것이다. 남북한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에게 주는 이번 미소정상회담의 의의는 바로 이런 노력의 첫발을 내딛게 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 외교수립 일정과 전망(한·소 새 시대:5·끝)

    ◎경협과 맞물린 수교… 「택일」만 남아/소서 차관요구… 우리측 「카드」가 관건/「조속」은 확실… 대사급여부 관심 집중 세계의 시선은 지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한소 정상회담에 쏠리고 있다. 4일 하오 4시(한국시간 5일 상오 8시) 페어몬트호텔에서 열리는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한소 정상회담은 동북아질서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 한소 양국은 당연히 수교문제를 논의할 것이고 그만큼 양국수교는 냉전시대를 종식시킨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외교 기념비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의제인 이 문제에 대해 양국 정상이 어떠한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할 지는 미지수다. 이번 회담자체가 청와대와 크렘린간의 성층권 사이에서 이뤄짐에 따라 양국 실무진간의 교섭을 통해 정상회담 토의내용에 대한 「기본틀」을 만들어내지 못한 데다 소련측도 그동안 보다 비중있는 미소 정상회담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국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양국간 수교를 이른 시일내에 달성하기로 합의할 것이라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물론 자유분방한 성격의 담판형인 고르바초프의 외교스타일로 볼 때 현지 회담장 분위기에 따라 구체적인 수교일정시한까지 전격 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양국간 국교정상화는 미수교상태에서 정상회담을 갖는 이례적 측면과 최근 양국간의 우호적인 분위기로 볼 때 다만 시간문제일 뿐이다. 고르바초프를 수행중인 니콜라이 쉬슬린 소공산당 중앙위외교고문겸 대변인과 미하일 아르바토프 소과학원의 미국­캐나다연구소장 등 고르바초프의 외교분야 「싱크탱크」들도 이같은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측에서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조기 수교달성」과 소측의 희망사항인 「경협확대」의 조화가 수교스케줄과 깊은 함수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경협증진문제에 있어 우리측이 만족할 정도로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 들였다고 판단될 경우 소측은 파격적으로 국교정상화의 구체적 일정에 합의해올 수도 있다. 소측은 지난달 31일 미소 정상회담개최와 관련,배포한 자료에서 소련내 극동지역을 새로운 국제경제협력의 특별지역으로 선정,합작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또 소련극동의 나홋카항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소측은 특히 수교합의와 함께 우리측의 50억달러 상당차관공여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측은 이같은 소측의 움직임에 대해 아직까지 언급을 회피하고 있지만 소측에 제시할 협상카드로 상당한 액수의 차관공여방침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외무부의 고위당국자는 4일 『양국간 교섭 특히 수교문제를 논의할 때는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소련의 무한한 잠재력을 감안해 보면 소측에 차관을 줘도 무방할 것』이라고 밝혀 차관공여를 중요한 협상카드로 사용할 방침임을 시사한 바 있다. 더불어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무역협정 등의 체결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이럴 경우 양국간 수교는 더이상 미룰 수 있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만큼 빠르면 7월중에 달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양국정상은 또 이번 회담에서 수교일정에 합의하고 이에대한 구체적인 실무협상은 양국외무장관을 단장으로 한 수교교섭단을 통해 타결토록 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상회담까지 개최된 마당에 양국외무장관회담은 너무나도 공식적이며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최호중외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외상은 서울과 모스크바를 교환방문하든지,유엔본부등 제3국에서 2,3차례 공식접촉,양국정상간의 합의를 구체화할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정황으로 볼 때 최장관이 6월말이나 7월초쯤 모스크바를 공식방문,수교의정서에 서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외교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한 수교단계는 중단단계없이 곧바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자는 것이 우리측의 시종일관된 입장이나 소측이 중간단계를 굳이 주장한다면 「이른 시일내에 수교를 달성한다」는 전제아래 상주대표부를 설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상주대표부가 설치될 경우 양국간 국교수립은 당초 기대보다 1·2개월 늦은 8·9월경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관련,정부일각에서는 소측의 지나친 경협요구를 피하면서 북한및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방법으로 상주대표부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너무 이른 시기에 한소 수교가 달성된다면 북한­중국 관계의 밀착이라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상이 초래되고 이는 한소 관계개선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양국정상회담의 결과는 개별적인 기자회견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양국간 수교는 단지 시간문제일 뿐 기정사실이라고 판단된다. 양국간 수교와 함께 서울과 모스크바에 상주대사관이 연내 설치될 것으로 예상되며 우리측은 이외에도 레닌그라드,블라디보스토크,타슈켄트(한인교포가 가장 많은 지역) 등지에 총영사관을 설치할 것으로 전망된다. 때맞춰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대통령간의 수교기념 상호교환방문도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한소관계는 수교직후인 올 하반기부터 정치·경제·문화·체육등의 분야에서 본격증진될 것으로 보이며 한반도의 긴장완화및 평화정착에도 커다란 기여를할 것으로 예상된다.
  • 페어몬트호텔의 정상대좌/이경형 정치부차장(오늘의 눈)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3일(미국시간)의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한소간의 앞날을 말해주듯 우리나라 초가을 하늘처럼 푸르고 맑았다. 샌프란시스코 시당국은 노태우대통령이 도착한 이날을 「노태우대통령의 날」로 선포했고 한소 정상회담을 위해 이날 밤 이곳에 도착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날」은 4일로 하기로 했다. 시가지 곳곳엔 대형태극기가 드리워져 있고 한소 정상회담이 열릴 페어몬트호텔 주변에는 대형 중계차량들이 진을 치고 있다. 세계3대 미항으로 일컬어지는 샌프란시스코만을 굽어보는 유서깊은 페어몬트호텔이 위치한 나브힐일대의 호텔에는 한소 양국의 보도진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각국 언론인 3천여명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샌프란시스코의 대지진으로 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이곳은 8개월여만에 「냉전종식을 위한 대지각 변동」이 기대되는 노ㆍ고르비회담으로 다시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한소양국은 정상회담 장소를 두고 소련측은 소련총영사관이나 총영사관저로 하자고주장한 반면 우리측은 소련의 외교특권이 미치지 않는 중립적인 제3의 장소로 하자고 막판까지 신경전을 벌이다 결국 이 호텔로 낙착됐다. 노대통령의 숙소가 이 호텔인 데 비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숙소가 소련총영사관저임을 감안할때 한소 양국정상의 첫 대좌가 우리측의 주장대로 수용된 것은 그런대로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지금부터 1백년전인 1896년 고종이 러시아공관으로 가서 정사를본 아관파천의 쓰라린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는 첫 정상의 만남이 「미국내의 소련땅」에서 이뤄지지 않은 것을 한소관계의 대등한 출발의 신호로까지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얄타체제의 최후 유산인 한반도분단이 해소되지 않고는 비록 독일이 통일되고 유럽에서 자유와 개방의 물결이 넘친다 해도 사가들은 진정한 냉전구조의 청산이 이뤄졌다고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북방정책」과 「글라스노스트」의 만남으로 이 지구 최초의 분단국의 아픔이 가셔지기를 기대해 본다.
  • “「한반도 적대」 종식 목적”

    ◎중국,당원용 통신에 한ㆍ소 정상회담 소개 【북경=우홍제특파원】 중국당국은 노태우ㆍ고르바초프 정상회담에 관한 내용을 당원들에게만 내부적으로 배포하는 자료인 「참고소식」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했다. 발행날짜가 2일로 된 이 「참고소식」은 서울발 UPI통신과 도쿄발 일본지지(시사)통신보도를 인용한 것으로 한소 두나라 대통령의 이번 회담이 가장 큰 목적은 분단돼 있는 조선반도에서의 적대상황을 종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참고소식」은 또 이번 회담은 외교관계가 없는 한소양국 지도자가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어서 크게 주목을 끌고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회담은 남조선의 북방정책에 더 큰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보이며 남북한간의 긴장완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중국당국은 지금까지 한소 정상회담에 관한 내용을 일반언론매체가 보도치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 천안문사건 1주년 계기로 본 오늘의 위상(뉴스 추적)

    ◎외교고립속 경제난… 내우외환의 중국/서방국가들,차관동결ㆍ기술이전 중단/1천6백만 기업 도산… 실업자 1천만/공업생산 연증가율 21%서 8%로… GNPㆍ수출도 줄어 민주화 요구의 함성을 총칼로 잠재우고 드넓은 광장 곳곳을 붉은 피로 물들게 했던 「6ㆍ4천안문사건」. 중국당국은 1년전 세계를 경악케 만든 미증유의 이 대사건이 국내외에 준 충격과 상처를 될 수 있는 한 작게 줄이려는 노력과 함께 무력진압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등 갖가지 처방을 다하고 있으나 사건이 남긴 깊은 흉터는 좀처럼 없어질 것 같지 않다. 중국은 6ㆍ4사건으로 말미암아 외교적 고립과 개방ㆍ개혁의 후퇴를 겪어야 했고 서방세계는 민주화 요구시위를 무차별 진압한 폭거에 항의,대중국 경제제재의 고삐를 좀처럼 풀려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또 중국권력구조의 강성화와 사회주의 재무장의 계기가 됐으나 권력투쟁과 새로운 사회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한중교류에도 적잖은 마이너스 영향을 주었다. 이밖에도 비록 중국안에서는 민주화의 싹을 무참히 밟아버린 사건이었지만 동구 소련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민주개혁에는 촉매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6ㆍ4사건이 지난 1년동안 중국 안팎의 정세에 미친 충격파와 이에 따른 변화 및 전망 등을 부문별로 살펴본다. ▷국제정세와 6ㆍ4◁ 중국은 천안문사건이란 큰 희생을 동구변혁의 밑거름으로 제공했다. 사회주의국가들 가운데서는 지난 78년부터 가장 먼저 개방ㆍ개혁을 추진했지만 시위군중을 무력진압한 유혈사태 이후 사회주의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동구각국 지도자들은 6ㆍ4사건으로 중국의 이미지가 크게 악화됐을뿐 아니라 외교적으로 따돌림을 받고 경제가 파탄국면에 놓이는등 최악의 결과가 파생됐음을 깊이 인식,자국내의 민주개혁요구를 폭넓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하게 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중국당국의 무력진압에 찬성의 뜻을 나타냈고 지난 연말 교석당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일행을 맞아 강경사회주의 노선을 고수하는 다짐을 했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국민의 손에 처형당한 사실은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공산당 일당독재포기의 계기로 작용했을 것 같다. 6ㆍ4사건은 무력으로 민의를 짓밟는데 대한 대가가 엄청난 국익손실이란 점을 세계에 알렸으며 전반적인 민주화추세를 가속화한 것으로 지적된다. 이는 또 사회주의국가들이 더이상 마르크스주의만으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준 것이기도 하다. 한편 중국지도층은 지난 2월 소련의 공산당 일당독재포기선언 이후 외교적 고립감이 가중되자 동병상련의 입장인 북한과의 유대를 더욱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제3세계국가 순방에 나서는 등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정립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북한을 크게 의식하는 북경당국의 태도는 한국의 대중국진출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등 서방국가들이 중국과 크게 거리를 두고 있는 한 중국의 순방외교도 실효를 거두기 힘들며 대만의 탄성외교가 오히려 빛을 보고있는 실정이다. 대만은 6ㆍ4사건 때문에 중국의 대외적 이미지가 손상되자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외교관계에 있는 국가들과도 수교를 추진,적잖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대중국경제제재◁ 6ㆍ4사건으로 중국이 받는 가장 큰 고통은 서방세계의 경제제재조치이다. 중국은 세계은행(IBRD)및 서방국가들이 종전에 제공했던 각종 공공차관을 동결하고 기술이전을 중지하는 등 갖가지 경제제재를 가함에 따라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게다가 조자양(전당총서기)등 개혁파가 실각함에 따라 중앙통제식 경제운용이 강화된 터여서 주름살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의 경제성장률은 88년 11.2%의 절반이하 수준인 3.9%에 머물렀고 1인당 국민소득은 인민폐의 평가절하와 인구증가 등의 요인이 겹쳐 오히려 40달러 줄어든 3백달러선에 그쳤다. 긴축시책으로 무려 1천6백만개의 개인기업이 도산했고 국영기업도 2만개나 조업을 중단했다. 전국적으로 1천만명이 넘는 완전실업자들이 북경 상해 광주 심수 등지로 몰려 다니며 일자리를 구하는 맹류현상이 두드러져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공업생산증가율은 21%에서 8%선으로 급격히 둔화됐다. 중국이 현 시점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미국이 그들에 대한최혜국대우(MFNㆍMost Favoured­Nation Status)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MFN은 한마디로 어떤 특정국가에 대해 제3국보다 불리한 대우를 하지 않는 것이지만 보통 제3국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 제시된다. 종전에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MFN을 적용해 왔지만 이를 폐지할 경우 미에 수출되는 중국상품의 관세는 하루 아침에 10∼20%에서 60∼1백10%로 껑충 뛰게 된다. 그 결과 연간 1백20억달러의 대미수출은 30억∼50억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해 60억 달러,올해 90억달러에 이를 중국의 대미무역수지 흑자를 감안하면 MFN의 폐기는 중국경제의 숨통을 죄는 것과 같다. 지난달 24일 부시 미대통령은 오는 3일 만료되는 중국에 대한 이같은 최혜국대우를 1년 연장한다고 밝혔다. 비록 중국의 인권탄압이 심하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상호교류를 안 할 수 없는 데다 홍콩ㆍ한국ㆍ일본 등 주변 국가들도 피해를 본다는 이유에서 였다. 특히 홍콩은 중국의 대미수출 물량가운데 70%를 중개하기 때문에 가장 큰 선의의 피해자가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밖의 주변국들도 중국경제의 구매력이 낮아짐에 따라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의회는 중국의 민주화 및 인권문제가 개선된다는 보장이 없는 한 부시대통령의 결정을 번복시키거나 1년의 적용기간을 6개월 혹은 9개월로 줄이는 등 조건부의 대우조치를 취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중국의 미소작전과 향후전망◁ 6ㆍ4사건 1주년을 맞이하면서 북경당국은 대내외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많이 쓰는 것 같다. 지난달 1일엔 북경과 티베트라사에 대한 계엄령을 해제한데이어 10일에는 비록 주동자를 제외시키긴 했지만 천안문시위관련자 2백11명을 전격 석방했다. 또 얼마전 중국의 실질적인 최고실권자 등소평은 서독전총리 슈미트에게 『지난해 사건발생의 책임을 학생들에게만 돌릴 수 없다. 중국의 지도층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강택민총서기도 미ABC­TV 앵커 바버라 월터스와의 회견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달 23일 과거에는 반혁명 폭란으로 규정했던 천안문시위를 「정치 풍파」로 표현하고 그동안 탄압대상이 됐던 지식인들의 사회활동참여를 촉구했다. 6ㆍ4사건은 자산계급 자유화를 추종하는 반혁명 분자들이 사회주의 중국을 전복시키려 했기 때문에 충성스런 인민해방군이 이에 맞서 싸워 당과 조국을 구한 것이라던 종전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북경당국의 이러한 미소작전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같다. 인권탄압을 비난해온 서방국가들을 무마시켜 경제제재가 완전히 풀리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최혜국대우 문제 외에도 중국은 세계은행 차관을 계속 얻어야 하며 일본으로부터 50억달러의 장기저리차관을 들여와야만 90년이후 5개년개발 계획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 세계은행은 29일 이사회에서 대중국제재문제를 논의했으나 겨우 3억달러의 조림용 차관공여를 허용했을뿐 나머지 차관은 계속 동결시키기로 했다. 차관외에도 과학기술도입ㆍ군사협력 등 중국이 서방세계의 신세를 져야 할 사항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미소작전은 치열한 권력투쟁의 잠재성을 가진것 같다. 지난달 27일 주해경제특구를 시찰한 중공당정치국상임위원 이서환은 『6ㆍ4사건책임이 지도층에게도 있다는 등소평과 강택민동지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 시위학생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이붕총리의 태도는 틀린 것이다』라고 공언,현지도층의 내분을 가시화시켰다. 한편 이붕과 함께 강경보수파로 알려진 양상곤국가주석은 『천안문 시위무력진압은 중국사회주의를 구하기 위해 취해진 정당한 행위』라고 남미순방길에서 밝혔다. 결국 겉으로 드러난 대로라면 등소평ㆍ강택민ㆍ이서환등 비교적 개방지향의 인사들이 같은 편이고 이붕ㆍ양상곤과 이들 보수세력의 대부격인 진운 당중앙위고문이 등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등은 오랜 라이벌인 진이 지난 4월말쯤 자신에게 천안문사건 최종 책임의 화살을 겨누자 이를 피하는 것은 물론 서방세계의 제재도 종식시키고 대내적으로도 불만이 큰 지식계층을 무마하는 등 다목적의 전략을 택한 것 같다. 그러나 『고위층에도 책임이 있다』는 말은 결과적으로 강경보수파를 지목하는 것이어서 앞으로 중국의 권력투쟁은 가열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 같다. 한편 모두 80대 중반을 넘어선 등이나 진이 사망할 경우 앞으로 중국의 정국은 예측하기 힘든 변화의 길을 걸을 것이며 만약 지난해 천안문시위에 동조했다가 실각,현재 심장병을 앓고 있는 조자양이 죽게 되는 날이면 제2의 6ㆍ4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을 것 같다. 민주개혁을 주장했던 조에게 지식인ㆍ학생 등 중국인들이 거는 기대가 매우 큰데다 지난해 천안문시위도 조와 같은 노선을 취했던 호요방(전당총서기)의 사망을 계기로 점화됐던 것이다.
  • 한밤 차량 6대 불타/대전ㆍ천안서/이틀새 3건… 방화 추정

    【대전연합】 대전과 충남 천안지역에서 지난 이틀간 방화로 보이는 3건의 화재가 발생,차량 6대가 불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3일 상오3시30분쯤 대전시 서구 변동 60의10 대원공업사내 자동차 수리공장에 주차돼 있던 서울5마 2257호 봉고 승합차(운전자 이창만ㆍ30ㆍ대덕구 송촌동)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나 이 차가 전소되고 인근에 있던 대전7너 5484호 봉고트럭과 충남7라 9433호 승용차 일부를 태워 3백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이날 상오3시40분쯤 충남 청안시 다가동 서울 냉동상회앞 길에 세워졌던 수덕운수 소속 충남7아 6340호 8t트럭에서도 원인모를 불이 나 운전석 및 적재함에 있던 필름재료 등을 태워 2백60만원의 재산피해를 낸뒤 40여분만에 꺼졌다. 경찰은 차량 문이 잠긴 상태에서 운전석 부근에서 불길이 번진 점 등으로 미뤄 방화사건인 것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또 지난 2일 상오4시50분쯤 대전시 서구 괴정동 65의5 이종식씨(38)집 앞에 세워진 이씨의 대전1거 3591호 엑셀승용차와 김신남씨(41)의 충남7다 6172호 봉고트럭에 방화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불이나 이들 차량 2대가 전소됐다.
  • 4계파,오늘 동경서 평화회담

    ◎캄보디아 「11년 분쟁」 종식에 “청신호”/신 데탕트 여파로 내전 지속 명분 상실/휴전협정 체결… 연내 총선ㆍ연정 가능성 11년간 계속된 캄보디아 내전 종식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평화회담이 4,5일 이틀간 일본 도쿄(동경)에서 열린다. 이번 회담은 현 프놈펜정권(헹삼린정권)을 이끄는 훈센총리와 전 국가원수인 시아누크공,크메르 루주(구폴포트정권)의 큐삼판의장,구론놀정권의 손산 전총리 등 연합국민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3대 무장반군세력 등 4대파벌의 수뇌들이 전원 참석,휴전협정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이같은 희망적 관측은 그동안 분쟁해결을 막아왔던 외부지원세력의 입장에 변화가 있었고 더 이상의 내전지속이 어느 파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교전당사자들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데서 도출된 것이다. 현 프놈펜정권을 지원하고 있는 베트남과 소련,반군세력을 지원하고 있는 중국과 크메르 루주를 제외한 2개파를 지원하는 미국은 모두 국제사회의 데탕트분위기 확산에 따라 내전종식을 지연시킬 명분을 잃어버린 상태다. 지난 79년 캄보디아침공으로 크메르 루주정권을 타도한 베트남은 크메르 루주 지원세력인 중국과 최근들어 외무차관접촉을 갖고 내전종식과 민족통일을 상징하는 최고국민평의회 구성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양국관계가 빠른 속도로 정상화 되고 있다. 미국과 소련도 이번 워싱턴정상회담에서 지역분쟁 해결노력을 거듭 다짐하는 등 내전종식쪽으로 견해차를 좁혀가고 있는 실정이다. 휴전협정이 예정대로 조인된다면 연내에 파리회의를 소집,협정내용을 보장할 국제감시기구를 구성하고 유엔평화유지군파견과 휴전감시,4개정파가 참여하는 자유총선,새정부 구성의 정치일정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프놈펜정권과 반군세력간의 이견이 완전 해소된 것은 아니다. 우선 반군세력을 지원하는 미국과 캄보디아국토의 90%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현 프놈펜정권은 내전 종결후 세워질 연립정부에서 크메르 루주가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대해 반군세력들은 현실적으로 강력한 전투력을 갖고 있는 크메르 루주를 배제시켜서는 휴전이 성립될 수 없으며 계속 외세에 이용당하게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고,특히 크메르 루주측은 프놈펜정권의 즉각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또 유엔휴전감시기구의 역할에 대해서도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훈센정권은 권한을 최소화해 즉각 휴전하자는 입장인데 반해 반군세력들은 강력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시아누크공이 집권하다 70년 외유중 론놀에 의해 추방됐고 75년 폴포트정권이 무력으로 론놀정권을 진압한 뒤 79년 베트남군을 앞세운 헹삼린정권에 의해 타도되는 등 숱한 정변을 겪은 캄보디아 국민들은 이제 지리한 내전의 터널끝을 바라보며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 고르바초프 귀국뒤 급진파와 연정 모색/소 소식통 전망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국내의 문제를 해결키 위해 방미를 마치고 귀국한 뒤 급진파와의 연정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3일 밝혔다. 이들은 『고르바초프의 중도파는 급속히 퇴조하고 있으며 소련사회는 점점 급진적으로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들은 이어 『보수ㆍ급진파로부터 모두 공격을 받는 리슈코프총리가 물러나게 되어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자로 자처하는 대통령 자문평의회 위원인 샤탈린이 뒤를 잇게 될 가능성이 많다』고 밝혔다. 이들은 샤탈린이나 그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 급진파를 포함하는 정부를 이끌게 될 경우 공산당의 지배가 종식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 전략핵감축·무역협정 서명

    【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미국과 소련은 2일 상오(이하 한국시간) 장거리 핵미사일 3분의1 감축을 골자로 하는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예비협정 및 무역협정을 비롯한 주요 현안들에 극적 합의,서명했다. 조비 부시 미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이틀간 모두 4차례로 나뉘어 열린 양국 공식정상회담을 마치면서 이같이 밝혔다. 두 정상은 START 예비협정 외에도 ▲화학무기생산금지및 폐기 ▲핵실험제한검증방법 개선 ▲핵에너지 평화적 이용 ▲미국의 대소 곡물 판매 및 ▲항공협정등에도 서명했다고 말했다. 또한 유럽배치 재래식 군사력(CFE) 감축협상의 연내 타결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미소 관계 강화를 상징하는 뜻에서 내년말까지 베링해협에 「국제공원」을 설치하기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발표됐다. 부시는 정상회동에 이어 조인이 이뤄진 후 성명을 통해 『세계가 너무도 오래 기다렸다』고 지적하면서 『냉전은 종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르바초프도 이번 합의가 『(미소) 양국은 물론 전세계 모두에 중대한 의미를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심야 안마시술소 기습단속/윤락녀등 1백여명 적발

    서울시경 강력과는 1일 새벽 서울시내 장안동과 강남일대의 호화안마시술소 10곳에 대해 일제단속에 나서 숙소안에 쇠파이프와 가스총 등을 감춰두고 있던 강남구 역삼동 707 백암안마시술소 종업원 신종식씨(35) 등 8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흉기소재)혐의로 입건하고 쇠파이프 2개와 가스총 6정을 압수했다. 경찰은 또 안마시술소에서 화투놀이를 하고 있던 손님 홍모씨(35ㆍ강서구 화곡동) 등 55명은 도박혐의로,신원제씨(30ㆍ강동구 암사2동 524의70) 등 26명은 윤락행위방지법위반혐의(장소제공)로,서영민씨(35ㆍ성북구 길음동 125의7) 등 6명은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혐의로 각각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경찰은 이번 단속결과 대부분의 안마시술소가 공공연히 도박을 방조하고 술을 판매하고 있을뿐 아니라 관광호텔수준의 대규모 목욕시설을 설치하는 등 허가기준을 위반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관련공무원이 이를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업주와 관계공무원을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 정상회담 성사배경과 전망(한ㆍ소 새 시대:1)

    ◎한반도 냉전종식의 역사적 전기/북방ㆍ개혁정책 일치… 양국수교 “초읽기”/통일여건 조성에 큰 파급효과 예상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6월4일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은 한소 수교임박이라는 양국관계에 뿐 아니라 냉전체제의 종식이라는 세계사적 시각에서 그 의의가 엄청나게 크다. 노ㆍ고르비회담은 우선 한소 수교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한소 양국간에는 지난해 4월 서울과 모스크바에 각각 무역사무소가 교환설치된 이래 1년도 채 못돼 금년 2월과 4월에 주모스크바 한국영사처,주서울 소련영사처가 설치되었으며 이번에 한소 정상회담이 예상을 뒤엎고 전격적으로 성사됨으로써 양국수교는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노ㆍ고르비회담에서는 한소 관계정상화가 핵심적인 의제로 등장될 것이 틀림없으며 미수교국간의 정상이 회담을 갖는 사실 자체가 이미 수교에 대한 기분적인 인식이 일치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는 「조속한 시일내에 한소 관계를 정상화 한다」는 수교원칙에 합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수교원칙을 토대로 양국 수교교섭단이나 양국 외무장관이 빠르면 7월중에 1∼2차에 서울과 모스크바 및 유엔본부 등을 오가며 수교에 따른 구체적인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소 수교는 9월이전에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한소간의 관계긴밀화 발전속도에 따라서는 노대통령의 연말 방소,2차 한소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않다. 한소 정상회담의 전격 성사배경에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장래를 경제적 번영으로 귀결시키려는 소련측의 실질적 욕구와 남북관계개선 방법을 「서울­모스크바­평양」이라는 우회적 방법으로라도 구사해야겠다는 우리의 입장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소련으로서는 신흥공업국인 한국의 건설ㆍ제조업분야 등을 유치,자국의 시베리아개발,일반국민들의 생필품수급확대 등 경제번영의 촉매가 되게하고 또한 한국경제의 소련진입이 경제대국 일본으로 하여금 소련경제부흥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유발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듯하다. 한국으로서는 남북관계진전,나아가 민족공동체로서 남북 통일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해야하나 북한이 한사코 폐쇄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북방외교를 통해 북한을 개방쪽으로 움직이게할 필요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북방외교의 관건인 「모스크바」를 평양으로 가는 우회징검다리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 바로 이번 노ㆍ고르비회담 추진의 결정적 배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소 정상회담의 또 하나의 의의는 남북한 관계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소련의 개혁ㆍ개방물결이 베를린장벽을 허물고 동구에 자유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킴으로써 2차대전후 지속되어온 냉전체제의 급속한 붕괴가 이뤄진 최근의 세계적 화해 무드가 「분단 한반도」에 까지 불어닥친 것이다. 냉전체제의 최후의 산물인 남북한 분단의 해소없이는 진정한 데탕트가 이뤄질 수 없다는 인식이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차 있었다면 소련과의 관계정상화 없이는 방북외교의 완결을 기할 수 없다는 판단이 노대통령에게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노ㆍ고르비회담은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남북통일 여건조성이란 면에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은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을 절대 고립시키지 않으며 그들의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노대통령의 솔직하고도 진지한 메시지를 확인한 뒤 이를 북한측에 전달하면서 남북대화재개 등을 종용하고 북한도 개방의 길을 걷도록 권고할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산이 소련의 충고를 끝내 거부할 경우에 구사할 수 있는 대북압력카드는 매우 다양할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폐쇄노선을 고수하면서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핵 개발관련 기술지원의 중단을 들 수 있다. 이미 소련은 북한의 핵개발을 공식비판한데 이어 소련핵기술팀을 철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북한의 고도무기체계가 소련무기체계로 이뤄져있는 점을 감안할때 군사적 압력이 용이하고 석유공급도 압력수단으로 구사할 수 있으며 북한외채의 80%가 소련채무인점도 충분한 영향력 행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은 『비록 사회주의가 어렵더라도 자본주의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포기는 물론 사회주의가 얻은 전리품도 포기하는 것』(5ㆍ24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이라는 폐쇄노선을 다짐했지만 결국은 소련의 압력을 점진적으로 수용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단된 남북대화나 인적ㆍ물적교류가 이번 노ㆍ고르비회담으로 다시 가동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러한 남북 관계진전은 통일시대 개막의 여건을 성숙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한소 관계발전이 가속화될 경우 시베리아개발에 한국의 자본ㆍ기술이 지금도 현지에 나가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때 그같은 「결합」은 남북한 관계진전에 새 전기를 제공할 것이다. 한편 한소 정상회담→양국 관계정상화로 이어질 북방외교성취는 집권후반기를 맞고 있는 노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위상제고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되며 내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외치로 보상하는 효과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이번 노ㆍ고르비회담은 분단시대를 열게 했던 주역과 관계정상화를 통해 분단을 해소하고 청산해간다는 의미에서 북방외교의 완결이자 분단시대의 종식을 앞당기는 결정적 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한ㆍ소 최근 접촉 일지 ▲78년 4월=KAL기 소 무르만스크 남쪽 2백마일 빙판에 강제착륙 ▲〃 9월=한국각료로는 처음으로 신현확보사장관 세게보건기구총회참석자 소련입국 ▲79년 4월=한소 국제전화 개설 ▲83년 9월=KAL기 사할린부근 상공서 소전투기에 피격 ▲88년 1월=소련,서울올림픽참가 공식발표 ▲〃 8월=박철언대통령정책보좌관 극비방소,수교교섭 개시 ▲89년 3월=최호중외무부장관,방콕에서 아태 경제사회위원회 총회에 참석한 리가초프 소 외무차관과 접촉 ▲〃 4월=소 연방상공회의소 서울사무소 개설,대한무역진흥공사 모스크바사무소 개설 ▲〃 6월=김영삼민주당총재 방소 ▲〃 11월=한소 영사처 상호교환 개설 합의 ▲90년 2월=주모스크바영사처 개설 최호중외무장관 한소 외무장관회담제의 ▲〃 3월=공로명 초대 주소 영사처장부임,주한 소련영사처 개설,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일행 방한 ◎한ㆍ소관계 7백50년 약사/1884년한ㆍ노 수교조약… 공식외교 개시/무역사무소 작년 개설,양국관계 급진전 한국과 소련 양국은 서기 1246년 당시 고려 왕자인 왕준ㆍ왕전형제가 몽고 수도 카라코룸에서 몽고왕 정종즉위식을 계기로 러시아 수스달 공국의 제로슬라브대공과 솔란게스왕자와 첫 접촉을 가진 이래 이번 노태우대통령ㆍ고르바초프 소대통령간 정상회담성사까지 7백50여년간 공식ㆍ비공식관계를 유지해왔다. 한소 양국이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1861년 중로 북경조약체결로 연해주땅이 러시아영토가 됨에 따라 한로 국경이 두만강을 경계로 접하면서부터. 이후 부동함을 얻으려는 러시아의 남진정책으로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며 1884년에는 한보 수교통상조약이 체결돼 양국간 공식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한국전쟁이후 한소 양국간 적대관계가 지속됐으나 70년대 들어 한국정부는 6ㆍ23선언등을 통해 소련을 포함한 비적성 공산국가와의 교류및 관계개선용의를 표명했다. 6공들어 한국정부의 적극적 북방정책추진과 함께 한소간 인적 교류가 증대되었으며 88년 8월 박철언 당시 대통령정책보좌관이 극비 방소,양국 수교교섭을 시작했다. 특히 88년 서울올림픽에 소련선수단이 참가함으로써 양국관계진전에 결정적 전기가 됐으며 한소 양국은 지난해 4월 서울과 모스크바에 각각 무역사무소를 교환개설했다. 이어 11월 공식관계의 시초라고 할 영사처교환설치에 합의,양국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에따라 지난 2월 주소 영사처가 개설되고 공노명대사가 초대 주소 영사처장으로 부임했으며 소련측도 3월 중순 시로추크를 영사처장대리로 임명,영사처업무를 정식개시했다. 이에앞서 지난해 6월 당시 김영삼민주당총재가 소련과학원산하 세계경제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했으며 3월에는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과 박철언 당시 정무1장관 등 당정고위인사들이 소련을 또다시 방문,고르바초프등 소련측 고위인사들과 만나 한소 관계정상화에 합의했다. 이어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간에 이를 뒷바침하는 친서가 교환됨으로써 양국은 1904년 국교단절이래 86년만에 다시 공식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평을 열었다.
  • 소 급진개혁파 목소리 더 커질듯/옐친 러시아공 대통령당선의 여파

    ◎고르비체제 도전… 보수파와 마찰 불가피/“주권확대” 강력요구땐 「연방」재편 가속화 급진개혁파의 대표격인 보리스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에 선출됨으로써 집권 5년째를 맞은 고르바초프체제는 「개혁세력으로부터의 도전」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었다. 옐친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현고르바초프정권의 개혁의지가 미흡하다며 더 과감한 개혁을 요구해 왔다. 그런 그가 소연방 전체 인구의 50%이상을 차지하는 러시아공화국의 수반에 오름으로써 정치 경제 등 여러 면에서 앞으로 그의 목소리는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관심의 핵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러시아공화국의 주권확대문제이다. 최고회의의장 선거운동기간중 옐친은 연방당국과 러시아공화국간의 관계재정립을 요구,러시아공화국헌법이 연방헌법에 우선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러시아공화국은 소련영토의 4분의 3,에너지전체생산의 80%를 차지하는 소련최대 공화국으로 앞으로 본격적인 주권확대요구가 이곳에서 제기될 경우 여타 공화국에도 연쇄파급효과를 미쳐 소연방의 재편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옐친은 지난 24일 크렘린당국이 고심끝에 내놓은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경제개혁안에 대해서도 개혁 조치의 미흡을 이유로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 옐친은 단계적인 시장화가 아니라 일반기업에 더많은 자율권을 부여하는 급진적인 시장개혁을 즉각 실시하자는 입장이다. 이번의 경제개혁안 발표직후 물가폭등을 우려한 시민들의 사재기소동으로 벌써부터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크렘린당국이 과연 옐친식의 급진개혁요구를 어떻게 수용할지 관심거리이다. 정치개혁분야에서도 옐친은 공산당의 지배와 사회 각분야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관료세력들의 제거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어 잔여 보수세력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할 것 같다. 이번 최고회의의장선출과정서도 드러났듯이 이런식의 개혁요구가 수구세력들의 단결을 초래,자칫 군부ㆍ관료ㆍ당조직의 「수구대연합」 대 급진개혁세력간의 대결상태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옐친은 공산당의 일당지배체제를 실질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다당제의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인민대회대의원 3백여명으로 구성된 「지역간 그룹」은 현재 옐친의 주도아래 정당으로 출범할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옐친의 정치일선 복귀로 이 「지역간 그룹」의 정당출범시기 또한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 소련의 핵심현안인 민족문제에 대해서도 옐친은 크렘린당국과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크렘린은 리투아니아공화국등 발트해 3개 공화국의 연방탈퇴요구에 절대 불가입장을 고수하는데 반해 옐친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들은 이들의 독립을 궁극적으로는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각 공화국주민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한 전체 소련국민들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그의 존재는 여타 공화국의 분리독립운동에 새로운 힘을 더해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옐친 자신은 부인하고 있지만 러시아공화국의 주권확대요구가 연방탈퇴 수준으로 발전될 가능성 또한 배제키 어렵다. 고르바초프는 옐친 등이 요구하는 러시아공화국 주권확대가 연방와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벌써부터 경고하고 있다. 옐친의 러시아공화국 대통령당선으로 고르바초프는 그동안 추진해온 개혁의 의지자체에 도덕적 손상을 입은 셈이 됐다. 고르바초프가 자신의 페이스대로 통제가능한 개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아니면 급진개혁세력들의 요구대로 보다 과감한 개혁쪽으로 방향을 바꿀지 관심거리다. 옐친은 1931년 우랄지방에서 출생,81년 당중앙위 정위원에 선출됐고 85년 모스크바시당 제1서기로 정치국후보위원에 올랐다. 그후 87년 당중앙위서 당지도부를 정면비난했다가 정치국에서 축출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3월 인민대표회의 대의원선거때 모스크바시에서 89%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대의원으로 선출됨으로써 4년여만에 화려한 정치적 재기를 이루었다.
  • 무엇을 다루고 합의할까(워싱턴 미소정상회담:1)

    ◎「냉전이후 세계질서」 구상에 최대관심/군사동맹체 변화로 양국위상 크게 약화/쌍무관계 강화,강대국 역량만회 꾀할 듯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31일부터 6월3일까지 워싱턴에서 미소정상회담을 갖고 군축문제를 비롯,통독 및 리투아니아 독립문제 등 국제 현안을 심도있게 논의한다. 본지는 냉전종식을 선언한 지난해 몰타회동 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미소정상회담이 갖는 의미와 핵심의제 등을 4회에 걸쳐 풀어 싣는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의 이번주 워싱턴대좌는 냉전종식 후 최초로 열리는 미소정상회담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1945년 얄타와 포츠담에서 풀어진 실을 다시 감아 올릴 좋은 기회라고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지 계간 포린 어페어즈의 편집장 윌리엄 하일랜드는 말한다. 오는 31일부터 6월3일까지 계속될 이번 회담에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군축협정과 무역관계 등의 쌍무협조 문제를 매듭짓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중요한 성과를 달성하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그들이 냉전 이후의 새 질서에 관한 구상을 시작하느냐의 여부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미소간 이념대결이 사라진 것과 더불어 세계문제를 다루는 미소의 역량이 2차대전후 가장 불확실해진 가운데 열린다는 사실도 많은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작년 12월 폭풍우가 몰아치는 지중해의 몰타섬에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냉전종식을 선언한지 6개월만에 다시 갖는 이번 미소정상회담은 그후의 많은 변화 속에서 특히 소련이 이끌어 온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전면 붕괴되고 냉전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서구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새 역할 모색을 위해 고심중이며,강력한 통일독일의 장래가 시급한 국제문제로 부상한 시점에서 열리는 것이다. 더욱이 소련의 국내 안정문제와 진로는 몰타회담후 급격히 불확실해져 볼셰비키혁명 이래 최악의 상태로 지칭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독일 미국과 새로운 안보관계를 협상해야 하는 한편 국내에서 정치 경제 개혁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또 민족주의자들의 소요를 억제시키면서 동구정권의붕괴 사태에 대처해야 한다. 더구나 강력한 통일독일의 출현과 관련한 유럽에서의 새로운 세력균형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르바초프는 최소한 미국으로부터의 확고하고 광범위한 보장 없이는 전략무기 감축과 소련군의 동구 철수,통일독일의 나토 귀속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백악관국가안보담당보좌관 브랜트 스코크로프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군축이 아니라 독일의 정치적 지도를 다시 그리는 것이며 그 다음은 소련내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은 지구상 핵무기의 98%에 해당하는 5만5천기의 핵탄두와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이들을 과연 초강대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미소에 국경을 초월한 영향력 행사를 가능케 했던 군사동맹체는 침몰중이며,이에 따라 세계에 대한 미소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은 날로 약화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금전의 영역이 증대되고 있으나 세계무역에서 미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3,4%에 불과하다. 종전의 미소관계 성격이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파국을 막으려는 방법론에 치중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냉전종식후 국제생활의 새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역점이 바뀌었다고 소련의 미국ㆍ캐나다문제 연구소장 게오르기 아르바토프는 말한다. 바르샤바조약기구가 붕괴되고 독일이 통일을 향해 나아가면서 미국외교도 미소관계 중심에서 소련을 점차 유럽 주요강대국중의 하나로 보는 광범위한 미유럽관계로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미소가 유럽의 주요문제에 관해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이번에 논의하는 문제는 앞으로 개최될 일련의 다른 정상회담에서 정리된다. 미국이 참가하지 않는 6월25∼26일의 유럽공동체 정상회담(더블린),7월5∼6일의 나토회원국 정상회담(런던),7월9∼10일의 서방7개국 경제정상회담(휴스턴),6ㆍ7ㆍ9월의 미ㆍ영ㆍ불ㆍ소ㆍ 및 양독 외무장관회담,그리고 금년말로 예상되는 미국포함 전유럽 35개국 정상회담 등이 그것이다. 과거 서방의 통합요소는 안보문제였지만 미래의 통합요소는 무역재정등 경제문제가 될 것이다. 또한 비군사분야에서 세계의 힘의 중심은 둘이 아닌 셋,즉 일본과 동아시아,미국과 캐나다,독일과 유럽이 될 것이며 경제 초강국이 아닌 소련의 세계적 역할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장거리 또는 전략 핵미사일 감축 및 화학무기 비축 감축협정의 승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외무장관은 얼마전 모스크바에서 군축에 관한 예비합의에 도달한 바 있다. 따라서 워싱턴 정상회담후 미소관계는 더욱더 비무장화될 것이다. 오하이오대 역사학교수 존 가디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워싱턴과 모스크바간의 경쟁관계는 경쟁과 협조의 관계로 발전하고 시간이 더 지나가면 협조적 이해관계가 더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같은 미소협조는 냉전종식후 약화된 그들의 영향력을 쌍무관계 강화를 통해 만회,유지하려는 관성의 법칙을 반영하는 것일지 모른다.
  • 안보리 상임이사국/「캄」 자유선거 촉구/4개 정파에 통고

    【유엔본부 로이터 AFP 연합】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은 26일 캄보디아내 4개 분파가 지난 10년간 계속돼 온 캄보디아 내전종식에 있어 유엔의 도움을 바란다면 자유선거와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통고했다. 미국과 소련ㆍ영국ㆍ프랑스ㆍ중국 등 5개 상임이사국은 이날 이틀간에 걸친 회의를 마치면서 이같은 조건을 캄보디아 내전종식과 관련된 모든 정치협상의 최소 조건으로 포함시키는 데 합의했다.
  • 캄보디아 휴전협정 조인/4대 정파/11년 내전 종식… 새달 발효

    【아라냐프라테트(태국) AP 연합】 캄보디아 친베트남 정권과 이에 대항해온 크메르 루주등 3대 게릴라세력은 휴전협정에 서명했으며 내달 발효될 것이라고 게릴라 고위소식통들이 26일 전했다. 이들 소식통은 4대 정파가 휴전협정서명과 함께 향후 캄보디아를 관장해갈 최고민족평의회구성에도 의견을 모았다고 전함으로써 지난 11년간 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려온 내전이 종식될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들은 구체적인 협정내용이 내달 4∼5일 도쿄에서 열릴 예정인 캄보디아 평화협상에서 공개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4대정파가 오는 7월 파리에서 평화정착을 위한 회동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게릴라 세력의 하나인 크메르 인민해방전선(KPLNF)관계자는 휴전협정이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면서 『휴전이란 없다』고 강조,전투가 쉽게 종식되지 않을 것임을 위협하기도 했다. 태국 외교소식통들은 게릴라 세력이 도쿄회담을 앞두고 협상에서 보다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공세를 재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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