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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위협 끝나지 않았다”/클린터 연두교서/「스타트Ⅱ」연내비준 촉구

    ◎「제네바합의」 북핵저지 이끌어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24일밤(현지시간)연두교서를 통해 북한과의 핵합의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중단시키고,지속적인 사찰로 우리자신과 우방들에게 안전장치가 될 수 있는 현명하고 훌륭한 합의였다고 옹호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TV로 전국에 방영된 가운데 1시간20분에 걸쳐 행한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냉전종식에도 불구하고 핵위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하고,올해안으로 제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Ⅱ)을 비준할 것을 상원에 촉구하는 한편 핵확산 금지조약(NPT) 연장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 세계화시대 창조적언론 선도한다/정론지로 대변신을 선언하며(사설)

    서울신문은 대변혁의 세계질서속에 새로운 세기를 개척하는 세계화의 출발점에 선 오늘의 시대상황에서 정도의 언론으로 걸어나갈 새로운 진로를 밝히고자 한다.우리는 광복과 창간 50주년을 맞아 제2 건국이라는 시대적사명에 투철한 「권위있는 정론지」로 대변신 할 것을 다짐 한다.이러한 노력은 새 발행인의 취임을 계기삼아 제2 창간의 결의로 기울여 나갈 것이다. ○일류국가 건설의 과제 이념투쟁이 끝난 세계질서는 무한경쟁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민주화이후 계속된 대대적인 개혁으로 우리사회역시 대변천의 시대를 맞고 있다.망국과 전쟁의 시련을 독립과 건국,그리고 발전의 승리와 영광으로 바꾼 우리의 지난 1백년사는 한국인이 누구인가를 세계에 보인 자랑스러운 기록이었다.우리의 다음 한 세기는 민주와 번영의 토대 위에 변혁의 도전을 국력배가의 전기로하여 통일과 선진의 민족공동체,세계중심국가의 건설이라는 금자탑을 쌓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세계화 목표는 바로 그러한 새 역사창조를 위한 시대적·국가적 비전이 아닐 수 없다.그것은 우리가 다음 세기에 세계의 주도적 위치를 확보하느냐 아니면 변두리 국가로 떨어지느냐를 결정짓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의 자기혁신이 필요하지만 특히 언론의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이 중요함을 직시한다.스스로의 과거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성과 아울러 언론의 자세와 행태가 논란되고 있는 오늘에 대한 성찰의 바탕 위에서 진지한 자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론·국책담는 공기로 변혁의 시대,창조의 시대의 국론을 바로 이끌수 있는 정론의 그릇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상업주의와 선정주의,투쟁주의의 왜곡이 없이 공동체의식과 지도철학,그리고 새로운 방법론을 담는 그런 국가적 공기의 역할을 담당할 자세가 되어있는가. 건국과 더불어 탄생하고 국가와 함께 발전해온 서울신문은 최고 권위지로서 바로 그러한 정론의 그릇,국론과 국책을 담는 공기로서의 소명을 자임하지 않을 수 없다.그것은 언론의 바른 길이 증면경쟁과 같은 물량의 무한경쟁이 아니라 합리성과 전문성,그리고 책임성을 갖춘 보도와 논조의 질적경쟁에 있다는 확신에서다.시대적변혁의 무한성과 그것이 안고 있는 통합과 분화의 모순성은 혼란을 막고 앞길을 밝혀줄 고도의 규명능력을 요구한다.정보홍수 속의 정보빈곤을 가져올 정서적 획일보도나 시대인식의 혼선을 조장할 상업적 영합주의 논조의 풍미를 우리는 경계 한다.우리는 국가발전의 설계도를 요구하는 책임있는 사회지도층의 갈증을 풀어주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변화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대응방안을 아쉬워하는 지식층·관료층·기업인,그리고 중산층의 고급지에 대한 수요에 부응하려 한다. ○국민적 공감대 확산노력 세계화를 위한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모든 분야에서의 일류화 과제는 특히 정치와 언론의 질적 수준향상을 전제로 한다.우리가 지향하는 언론의 고급화는 선진국의 고급지수준에 손색 없는 질적향상을 통해 우리사회의 견인력을 강화하는데 기여 할 것으로 믿는다.그리하여 세계화를 주도하는 사회주류의 형성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명제를 안고 우리는 먼저 국가의 목표와국정의 기본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새로운 편집의 초점을 맞출 것이다.국경없는 세계화시대는 오히려 확고한 국가적 정체성을 요구하고 있다.국가의 운영을 위한 국민적 선택인 정부의 민주적 정통성에 대한 시비가 종식됨으로써 우리는 이제 정상적인 정부와 국민간의 관계를 가꿀수 있게 되었다.그것을,언론이 지난 시대와 같은 불화와 대립을 조장하던 낡은 잣대로 저해한다면 국가적 발전역량을 훼손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다.독립투쟁과 민주투쟁이라는 한국언론의 전통은 이제 국가건설을 위한 창조적 역할로 전환되어야 한다. ○합이성과 전문성에 바탕 세계일류국가 건설의 동력을 극대화하는 정부와 국민간의 협력관계의 발전은 우리의 언론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우리는 긍지와 소신을 가지고 정부와 국민간의 의사소통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교량 역할을 충실히 맡아 나갈 것이다.어디까지나 합리성과 전문성에 바탕을 둔 국정지표의 평가논리를 펴 나갈 것이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독자층을 위한 전문적정보와 수준 높은 논평을 제공해나갈 것이며,취재의 국제화를 추구하고 심층취재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며 과감한 지면개혁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서울신문은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시계추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오늘과 미래의 좌표를 제시하는 균형추로서 확고한 위치를 지켜 나갈 것임을 거듭 다짐한다.
  • 집요한 유엔외교(일본 「21세기 야망」:4)

    ◎엔화 앞세워 안보리상임국 진출노린다/유엔헌장 개정회의서 상임국수 늘리기 로비/비용분담금 12% 넘어… 갈리총장도 호의적/“정치대국화” 우익 지식인들 앞장… 일 국민 56%가 찬성 여론 『패전국 외교는 50년간 침묵한다』영국 외교관들이 잘 인용하던 말이 지금 지구 반대편 아시아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일본이 패전 50년간의 오랜 침묵을 깨고 국제정치적 파워로서의 등장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그 침묵을 깨는 소리는 많은 아시아인들에게 일본의 전후 경제지상주의와 평화주의 한시대를 마감하는 조종의 소리로 들려온다. 일본은 지금 경제지상주의로 축적한 힘과 국제무대에서의 왜소한 정치적 파워의 불균형을 깨기 위해 「사무라이의 칼」을 뽑고 있다.경제적 파워에 걸맞는 정치·외교적 영향력의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그 야망의 결정체가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일본외무성의 총합외교정책국은 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 시나리오와 함께 21세기 정치대국 일본의 위상을 구상하고 있다.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상은 외무성 기관지 「외교포럼」 신년호에서 『글로벌 협력이라는 일본외교의 큰 좌표축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일본은 유엔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노 외상의 이러한 발언은 일본 외무성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상임이사국 진출을 꾀하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자민당 총재인 고노 외상은 각료가 되기 전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며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그는 오자와 이치로 신진당간사등의 적극적인 국제공헌론과 보통국가론을 「신국가주의의 대두」라고 강력히 비난했었다.그러나 그러한 고노 자민당총재도 외무성에 들어가자 관리들이 추진하는 정치대국화의 큰 흐름에 합류되고 있다.보수·우익 정치인,지식인들은 관리들보다 앞서서 정치대국화의 나팔을 불고 있다. 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은 일본외교의 최대 목표다.1995년은 일본의 패전 50주년인 동시에 유엔 창립 50주년이기도 하다.유엔은 50주년을 맞아 헌장개정등 기구개편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은 이를 활용,상임이사국의 야심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일본 사회에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유엔분담금을 내는 일본이 당연히 안보리상임이사국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확산되고 있다.일본의 유엔분담금(93년)은 12.45%로 미국(25%)다음이고 상임이사국인 영국·프랑스·중국등 3개국을 합친 액수보다도 많다.유엔도 든든한 물주 일본이 필요하다.냉전 종식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민족분쟁등이 발생하면서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돈이 모자라기 때문에 일본의 엔화가 필요한 것이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자주 일본을 방문하여 유엔상임이사국이 되고 싶은 일본의 야망을 대변하고 있다.그는 더 나아가 일본은 유엔평화유지군에 참가하기 위해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역설한다.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어야 한다는 대합창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엔블록이 형성된 아세안국가에서도 들려온다.그렇다고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서는 상임이사국의 수를 늘리는 유엔헌장개정과 기구개편이 필요하다.그러나 헌장개정은 모든 상임이사국과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결코 쉽지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일본과 독일에 주어진 적국조항도 없어져야 한다.강대국들의 정치적 역학관계도 미묘하다.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국론도 아직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반대하는 세력이 적지않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는 상임이사국이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최근 총리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6%가 상임이사국 진출을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사회당의 반대속에 지난 92년 만들어진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은 일본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PKO협력법은 상임이사국 진출의 교두보이며 군비증강의 명분을 제공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은 PKO협력법을 바탕으로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평화유지활동을 적극화하고 있다.평화유지활동은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한 실적을 쌓아가는 중요한 과정인 동시에 과거 군국주의적 이미지를 평화주의 이미지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일본은 생각하고 있다.자위대가 거의 반세기만에 다시 아시아대륙에 상륙하고 그 활동범위를 세계로 확대하고 있지만 군국주의의 상징인 일장기는 평화의 상징인 유엔깃발 아래 묻히고 있다.일본은 이 때문에 냉전이후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유엔중심주의를 강조하고 있다.유엔은 평화라는 이름아래 정치·군사력의 증강을 꾀하는 일본의 야망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다. 일본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유엔은 걸프전이후 그 위상과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현실주의자들은 여전히 미국중심의 세계질서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상주의자들은 신질서는 유엔중심의 세계공동체 형성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이같이 유엔의 역할이 증대되는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국제정치의 결정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패전국이 반세기만에 세계적 정치대국이 되는 것이다. 일본사회에는 상임이사국이 되기전에 과거 침략사의 청산으로 아시아국가들의 불신감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않다.그러나 그러한 양심의 소리는 경제적 슈퍼파워와 국제정치력을 모두 갖춘 강대국,새로운 일본의 등장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거추장스럽고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시간의 문제이며 우리하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새로운 현실에 대한 대응 전략이다.
  • 러군,뼈대뿐인 건물에 무혈입성/체첸 대통령궁 접수하던 날

    ◎체첸병사 “탈환공격 게획없다”/러,“보급로 차단” 남부 포격강화 ○…러시아군이 체첸공화국 수도 그로즈니에 있는 대통령궁을 19일 접수하기 직전 그로즈니는 상공에 검은 연기가 자욱했지만 의외로 정적을 유지해 스산한 느낌이 정도. 이는 체첸군 병사들이 러시아군 포로들을 데리고 이미 4대통령궁에서 전원 철수해 쌍방간에 교전이 일체 없었기 때문. 체첸 병사들이 야음을 이용해 이날 상오3시 마지막으로 철수한 이후 체첸군이 러시아군에 대항,게릴라전을 수행하기 위해 그로즈니를 벗어났는지 수도중심부를 탈환키 위해 그로즈니 시대에 새로운 진지를 구축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편 체첸군은 그로즈니 중심부에 있는 기차역에서도 철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군의 손에 넘어간 체첸대통령궁은 이날 성오부터 계속된 집중포화로 건물이 거의 쓰러질 정도로 파괴된 상태. 이 건물은 이날 포격으로 포탄이 지하실까지 뚫고 들어올 정도로 허술해진 상태라고 한 체첸병사가 전언. ○…러시아군은 체첸대통령궁을 접수한 이후 체첸군에 대한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그로즈니 남부지역에 포격을 강화하기 시작. 체첸군은 이에 맞서 러시아군이 체첸 대통령궁 장악을 위한 공격기지로써 이용해온 그로즈니 시장에 대한 공격을 끈질기게 전개하고 있어 이곳은 여전히 쌍방간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러시아군이 19일 마침내 체첸 대통령궁을 접수함으로써 지난해12월11일부터 시작된 체첸에 대한 러시아의 공세가 서서히 막을 내릴 것이란 것이 체첸사태를 보아온 대부분 사람들의 시각. 체첸 병사들은 그동안 체첸 독립요구의 상징이었던 대통령궁에서 퇴각한 뒤에도 다시 반격할 것인가를 묻는 서방기자들에게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대통형궁을 왜 다시 탈환합니까」라고 되물어 탈환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기도. ○…국제적십자사는 19일 지난해 12월11일 체첸에서의 전투가 개시된 이래 지금까지 2천명이상이 사망하고 약5찬명이 부상했다고 이웃한 잉구세티아공화국이 집계한 수치를 인용해 발표. ◎“체첸사태 무역해결” 재확인/러 총리/옐친은 “수일내 종식” 【모스크바 연합】 체첸 대통령궁이 19일 하오 러시아군에 점령된 가운데 최근 두다예프 체첸자치공화국대통령측과 대화를 주도해 온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총리는 이날 『폭도들과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체첸사태를 군사적으로 해결할 뜻을 분명히 했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체르노미르딘 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두다예프측과 대화를 지속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처럼 잘라 말하면서 『체첸 군사작전은 곧 종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보리스 옐친대통령도 18일 체첸정부와 협상을 벌이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곧 체첸에 대한 군사작전이 끝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이어 러시아군은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탈환하기 위해 맹공격을 재개했다.
  • 체첸사태 개입으로/러 민주개혁 뒷걸음/미국무,“분쟁종식”

    【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15일 러시아의 체첸 침공을 「시장개혁과 민주개혁의 중대한 후퇴」라고 규정하고 체첸분쟁을 조속히 끝내도록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크리스토퍼 장관은 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시아외무장관과 체첸사태 등 양국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16일 제네바로 떠나기 앞서 NBC방송의 「언론과의 만남」 프로에 출연,러시아의 체첸 침공에 대해 『그릇된 발상으로 잘못 실행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 정책문맹의 정당내분(사설)

    새해들어 정책활동은 없이 특정인의 거취논쟁에만 몰두하고 있는 우리정당들의 모습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여당이나 야당이나 세계화와 지방화의 큰 흐름에 대비하는 지도체제의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그러나 정책과 노선 대신에 개인위상과 지분을 위한 술수싸움만 벌이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며 정치개조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으로 경계되어야 한다. 비록 지도체제개편을 위한 과도기적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민자당과 민주당은 정부의 국정목표제시와 신년업무보고등 집중적인 정책발표러시에 아무 정책대응이 없다.그 흔한 정당대표들의 연두기자회견이나 정책기구의 회의 한번 없이 토지실명제와 같은 대개혁정책이 나와도 대안은 고사하고 당론표명조차 없는 정당활동의 마비현상을 보이고 있다.이런 고질적인 「정책문맹」은 국가목표의 차질없는 실현뿐 아니라 정당자체의 존립을 위해서도 청산되어야 한다. 지금 민자당과 민주당의 당개혁움직임은 JP다,DJ다,KT다 하는 영어약자의주인공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선문답 같은 말재주나 괌이다,제주도다 하는 여행동정의 차원일 뿐 국민적 명분은 실종이다.당내활동이라도 가령,JP의 남은 할일이라는 것이 무엇이며,DJ나 KT는 전당대회시기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명한 노선과 정책방향을 밝혀야 정치소비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자세라 할 것이다. 민주선진국에서는 사람과 정책이 불가분이다.분명한 정책상표와 각론을 갖지 않은 지도적 정치인이란 생각하기 어렵다.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정치이지 정책이 사익의 정치를 꾸미는 장식물은 아니다.정책의 요소가 없는 벌거벗은 권력다툼의 정치는 정상적인 정당정치라고 할 수도 없다.지역성을 밑천으로 삼고 위협이나 일삼는 저급한 당파주의적 대결은 내부적 소모와 갈등의 장외확산을 통해 정치개조과정을 혼란과 불안으로 이끌고 정치의 안정적 발전을 방해하게 될 우려가 크다.그러한 낡은 정치로 일류국가건설의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연목구어격이라 할 것이다. 특정인의 거취는 당사자와 당내절차에 의해 해결되면그만이다.냉전종식이후 세계화의 새로운 질서와 지방자치선거,그리고 통일대비의 과제까지 내다보는 정당구조의 개편과제는 그런 특정인의 진퇴차원을 넘는 정책정당·국민정당의 건설차원이어야 한다.그러자면 여론형성과 정책생산등 정상활동의 중단은 있을 수 없으며 재창당이든 전당대회든 특정인과 지역을 중심으로 왜곡되어 있는 지금의 정당구조를 비전과 정책위주로 뜯어고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정치지도자라면 정책마인드부터 갖추어야 한다.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면 더이상 국민의 앙코르요청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민주내분… 신민표류… 안개속의 야권통합(새전개 ’95정국:6)

    ◎야분열 언제까지/신민 일부의원·재야 「단일화」 에 긍정적/KT­동교동계 「전대」 결말이 최대변수 오는 6월27일의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눈여겨 볼 만한 정치권의 변화 가운데 하나는 야권의 통합여부라고 할 수 있다.민주당과 신민당,새한국당 및 재야정치단체의 통합노력 향방이다. 단일야당의 창출은 적어도 두가지 측면에서 당위성을 인정받고 있다.우선 우리나라 정당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이다.아울러 강력한 여당과 맞붙어 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유일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호남을 주된 지역기반으로 한 98개 의석의 제1야당이다.신민당은 12석에 대구·경북지역에서 강세를 보인다.새한국당(1석)및 무소속 의원(10석)의 일부와 재야쪽까지 가세한다면 1백20석 가까운 명실상부한 「전국당」의 모습이 가능해진다. 많은 정당이 선거에 참여,의석을 나눠갖는 복수야당의 출현도 민주주의의 한 모습일 수 있다.그러나 적어도 지방화시대의 길목에 갓 들어선 우리 정치의 현실과는 분명 괴리가 있다.야권통합이 보다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그럼 지방선거전에 국민들은 단일야당의 탄생을 볼 수 있을까.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민주당의 전당대회 논쟁과 신민당의 표류등 야권을 휩쓸고 있는 예측불허의 난기류 때문이다. 해를 넘긴 전당대회 논쟁으로 민주당에는 분당까지 점치게 하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이기택대표와 동교동계의 대립이 원만히 타결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야권통합이란 물을 건너간 것과 다름 없다.때에 따라서는 이대표 중심의 한무리가 탈당할 가능성도 엿보인다.통합은 커녕 야권분열만 가속화되는 것이다. 신민당쪽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양대 주주라고 할 수 있는 김동길·박찬종 두대표의 동반사퇴로 무주공산과 다름 없다.통합을 이끌만한 지도자가 없는 것이다.결국 야권통합이 이뤄지려면 민주당의 내분종식과 신민당의 체제정비가 선행돼야 하는 셈이다. 민주당의 전당대회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매듭지어진다면 통합은 급속히 이뤄질 수 있다.3월쯤 민주당의 이대표가 천명한 통합전당대회가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새한국당의 이종찬대표는 이미 민주당의 전당대회 논쟁을 중재하고 나설 정도로 통합에 적극적이다.신민당의 한영수의원등 5∼6명의 의원도 민주당과의 합당을 긍정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밖에 재야에서는 「통일시대 국민회의」의 김근태 공동대표와 최규성·천정패·이목희·장준영·최종진씨등이 통합을 서두르고 있다.이들은 이미 정당의 조직구조를 갖춘 이른바 「민주개혁세력통합추진위」를 구성,민주당의 통합제의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이밖에 조순환의원등 일부 무소속 의원들도 통합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야권통합이 성사된다면 그 형식은 일단 당과 당의 합당 형식이 될 공산이 크다.우선 「국민회의」인사들이 개별적인 입당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게다가 신민당의 법통을 그대로 잇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신민당에 배정될 올해 국고보조금 1백여억원을 그대로 수령하려면 통합 뒤에도 당의 법통은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과 신민당의 통합은 민주당과 재야가 먼저 합당한 뒤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통합에 소극적인 인사들이 신민당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대표직은 버렸지만 여전히 박찬종의원등이 변수가 될 수 있다.끝내 신민당이 통합문제에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일부 의원들이 민주당에 개별입당하는 형식이 될 수 밖에 없다.
  • 알제리 야권 평화안 마련/군정에 민주화협상 요구

    【로마 로이터 AFP 연합】 알제리 야당 지도자들은 10일 알제리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불법단체인 회교구국전선(FIS)을 포함한 야당대표들이 이날 로마에서 회담을 갖고 합의한 공동평화안은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민주주의 복귀 협상을 가질 것을 군사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 「일본개조론」의 표와 이(일본 「21세기 야망」:2)

    ◎「보통국가」 내세운 군사대국화 집념/“군 없는 경제력은 허상” 자위대 위헌론 종식/“「평화헌법의 구속」 벗어나자” 민족주의 대두/“힘 있을때 밝으로 뻗어야”… 섬나라 본색 드러내 일본의 21세기 구상.대학에서 첨단 과학·기술연구소에서, 정치판에서 열띤 논쟁으로 때로는 은밀한 전략으로 논의되고 있는 21세기 일본개조론.일본은 21세기를 앉아서 기다리지 않는다.경제신화로 세계정상에 올라서며 민족주의적 주체성과 자신감을 되찾은 새로운 일본은 21세기로 다가가 이를 자신들의 세기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국가개조론은 밖으로는 냉전의 종언이라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과 안으로는 38년간의 자민당 일당지배가 막을 내린 중대한 정치적 전환기를 맞아 활발해졌다.세계사 변화에 대응,새로운 일본을 만들어야한다는 대합창이다.그 대표적인 일본개조 구상이 주목받는 뉴리더 오자와 이치로 신진당 간사장의 「보통국가론」이다.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공헌하지 않으면 안될 일본이 안전보장을 국제공헌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안전보장면에서도 오늘의 일본에 어울리는 국제공헌을 할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자와가 그의 저서 「일본개조계획」에서 말하는 보통국가론이다.일본도 평화헌법의 구속에서 벗어나 국익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군사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논리다.경제력뿐만이 아니라 군사력도 외교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변화하는 일본의 실체다. 그러나 국가개조론은 오자와의 전유물만은 아니다.「일본개조계획」은 그의 이름으로 발간됐지만 오자와는 서문에서 각 부문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책이 완성됐음을 밝히고 있다.보통국가는 많은 지식인·전문가들이 그리는 21세기 일본의 새로운 모습인 것이다.「일본개조계획」은 더욱이 정치서적은 팔리지 않는다는 출판계의 불문율을 깨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반국민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일본서점에서는 그밖에도 「책임있는 변혁」,「21세기비전 일본의 개혁」,「하이테크국가 일본의 선택」등 일본의 대변혁을 역설하는 많은 책들이팔려나가고 있다. 일본개조론은 93년8월 자민당정권이 무너지고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의 연립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본열도의 거대한 흐름으로 나타났다.일본은 마치 국가개조라는 거대한 용광로로 빨려들어가는 듯했다.그러나 지금은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오자와가 창출해낸 연립정권이 무너지고 지난해 6월 자민·사회당 연립정권이 등장하면서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국가개조론은 잠시 잠복하고 있다.평화주의를 강조하는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위원장이 총리가 되고 「작은 일본」을 지향하는 고노 요헤이 자민당총재가 외상을 맡게 되자 일본은 마치 평화주의 유토피아로 회귀하는 듯하다.일본내에는 실제로 자위대가 해외에서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1국 평화주의」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게 현실이다. 그러나 무라야마 총리의 등장은 일본내에서 가장 강력한 평화주의 집단인 사회당의 몰락을 역설적으로 예고하고 있다.사회당은 학교에서 국가를 부르거나 국기에 대한 경례조차도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이라고 강력히 반대했었다.그러나 무라야마 위원장은 총리가 되자 그토록 반대하던 자위대 존재에 대해서도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사회당은 전후 반세기 동안 맡아온 평화주의 지향의 역사적 임무를 마치고 이제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평화주의는 일본을 약하게 만들었다』 국가개조의 이론 제공자인 지식인들과 변혁의 선두에 선 정치인들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그러나 전후 일본의 시대적 흐름이었던 평화주의에도 그 밑바닥에는 민족주의가 면면히 흘러오고 있었다.평화주의와 「군사력 없는 경제발전」 모델은 일본의 궁극적인 국가 목표가 아니라 시대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에 지나지 않았다. 군사력 없는 경제발전 모델을 선택한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그의 저서 「세계와 일본」에서 『당시 일본이 재무장하는 것은 경제적·사회적·사상적으로도 불가능했다.그러나 국가의 안보를 언제까지라도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전후 일본이 경제부흥에 에너지를 집중투자하는 전략을 선택했듯이 전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세계에 퍼져있는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국가전략으로 대전환하고 있다.냉전후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족분쟁은 일본 안보와 자원 확보및 시장 접근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뉴리더들의 공통된 현실인식이다. 뉴리더들은 그러나 밖으로만 눈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그들은 내부개혁도 병행하고 있다.자민당 장기집권아래 구축된 관·민협조체제의 이른바 「일본주식회사」의 부정적인 면을 개조하고 있는 것이다.생산자 중심의 관·민협조체제는 냉전시대에는 매우 유효한 냉전대응형 구조였다.그러나 막대한 무역흑자를 가져온 관·민협조체제는 냉전이 끝나고 경제가 세계질서의 중심이 되면서 일본 폐쇄성의 상징으로 미국을 비롯한 무역적자국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철저한 실용주의자들인 뉴리더들은 미국등과의 더이상의 마찰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 좀더 열린 「일본주식회사」를 지향하는 몸짓을 하고 있다.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내부개혁은 더욱 강력한 세계전략을 위한 준비라 할 수 있다.일본은 힘이 있을 때마다 밖으로 눈을 돌렸음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일본의 외부지향 움직임은 미국이 경제적 자신감 상실로 국내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과 맞물려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일본은 미국과의 전략적 동맹관계를 중시하고 있지만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뉴리더들은 미국을 지원하는 지금까지의 「2차적 역할」에 만족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한 뉴리더들이 그리는 일본 개조의 완결편은 21세기 대국이다.국가개조는 일본이 아직은 강대국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새로운 일본은 급변하는 세계변화에 대응할수 있는 기동력 있는 국가건설를 지향하고 있다.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일본은 21세기 어느때 아시아에서 중국의 가장 중요한 대항세력이 될지 모른다.그때 일본은 오자와가 구상하고 있는 보통국가가 될 것이다』라고 예측한다.일본의 보통국가는 군사대국으로 가는 길이다.
  • 일,러·중·한과 안보대화 강화

    【도쿄=강석진특파원】 일본 정부는 냉전종식으로 인해 안보환경이 크게 바뀜에 따라 그동안 미국 일변도로 취해온 안보대화를 러시아·중국·한국으로까지 확대하는 등 전면적으로 다각화할 방침이라고 도쿄신문이 4일 보도했다. 방위청은 이를 위해 올해부터 군비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방위심의관과 기획실을 신설하는 등 본격적인 체제 구축을 위한 조직개편도 단행할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러시아 등 주변 국가와 안보대화에 역점을 두는 것은 「냉전시대는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면 충분했으나 동서 냉전이 끝난 지금에는 미국과 기축관계를 유지하면서 주변 국가와 신뢰관계를 강화해 지역 전체의 안정성을 높여야만 일본의 평화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북,「평화협정」 체결 희망/미에 사과요구… 「송환협상」 진전없어

    【뉴욕 연합】 북한은 미군헬기 조종사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중인 토머스 허바드 미국 국무부 부차관보에게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 한국을 배제시킨 가운데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싶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시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서울주재 미국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29일 보도했다. 한 미국관리는 북한이 미국에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북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희생시킬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타임스는 전했다. 미국 관리들은 북한이 허바드 부차관보에게 북한군부는 미군헬기가 첩보활동을 했으며 결코 방향을 잃고 월북한 것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사과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북한을 방문한 미국 관리로서는 최고위급인 허바드 부차관보는 28일 북한 외교부관리들과 2시간반동안 회담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억류중인 보비 홀 준위도 만나지 못했다고 미국 관리들은 말했다. 이 관리들은 북한이 아직홀 준위를 석방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그러나 북한이 초기단계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타협의 여지는 아직 남아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조종사 즉각석방”/클린턴 거듭 촉구 【워싱턴·런던 로이터 UPI 연합】 북·미간 미군 헬기 조종사 송환협상이 별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28일 조종사의 즉각 송환을 거듭 촉구했다. 클린턴은 『홀 준위의 즉각 석방을 바라고 있고 그를 억류할 아무 이유가 없다는 점을 북한에 밝혀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토머스 허바드 미국무부 부차관보가 현재 평양에서 북한측과 협상을 진행중임을 들어 이 문제에 관한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홀 준위 처리 문제와 북·미 합의 이행을 연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답변하길 거부했다. ◎“영공침범 자백” 북한은 29일 미군헬기 사건과 관련,생존조종사 보비 홀 준위가 썼다는 「자백서」를 발표하고 홀 준위가 북한땅을 불법 침입한 사실을 인정한 뒤 용서를 애원했다고 주장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이 「자백서」는 홀 준위가 지난 25일 작성한 것으로 북한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홀 준위는 자백서에서 헬기가 격추되던 지난 17일 「감시정찰 비행업무」를 수행했으며 이에 앞서 11월초 한국에 파견된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정찰비행을 했었다고 말한 것으로 중앙통신은 전했다.
  • 미,50년대 북·중에 원폭 투하계획/합참본부 한국전 극비문서 공개

    ◎중국의 대북원조 종식시키려 단행 검토 미국이 한국전쟁 직후인 지난 54년 북한과 중국·만주일대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에 관한 극비문서사본이 한 대학 연구소에 의해 공개됐다.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소장 최영희·사학과)는 27일 이 연구소 객원교수인 방선주박사(워싱턴 거주)가 지난달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지시로 비밀해제된 한국전 관련 극비문서중 하나인 「한반도와 인도차이나에서의 중국 공산당의 침략예측 보고서」(Possible CHICOM Aggression in Koreaand Indochina) 사본을 보내왔다며 이날 전문을 공개했다. 미 합동참모본부가 54년 4월17일 작성한 이 극비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종결됐음에도 불구,중국이 북한에 대한 대규모 군사원조등 미국에 대항하는 적대행위를 계속할 경우 만주와 북한내 군사시설물에 대한 원폭투하를 가장 우선적으로 실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한반도 일원에서 중국의 전쟁수행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중국 본토에 대한 대규모 공중폭격을 단행해야 한다』면서 『미지상군의 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재래식무기 및 원자폭탄을 투하,적군을 일시에 섬멸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어 『중국에 대한 공중폭격을 감행할 경우 중국의 공산화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중국내 목표물에 대한 신중한 선별폭격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와함께 중국해안과 연안 도서들을 봉쇄하는 한편 중국본토 상륙을 위해 대만의 국민당 군대를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이번 작전계획은 미합참본부 「합동전략계획위원회」(JointStrategic Plans Committee)가 54년 4월16일 내부회의를 거쳐 작성한 것으로 각 예하부대는 이 계획에 따라 필요한 세부 작전계획을 수립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림대 이삼성교수(정치외교학)는 『미국은 실제로 54년 5월 베트남 서북부 「디엔비엔푸」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열세에 몰리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월맹군 진지에 원폭을 투하하려 했으나 NATO회원국과 아시아국가들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 바 있다』며 『중국 원폭투하계획도 미아이젠하워 정부의 공산진영에 대한 「대량보복전략」(Massive Retaliation)의 일환으로 보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또 『미국은 실제로 지난 58년 한국에 「제4미사일 사령부」(The Fourth US Missile Command)를 설치,이곳에 전술핵무기인 「어네스트 존」을 배치한 바 있다』고 밝히고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50년대 중·후반기 미국의 대한반도 핵정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지구촌 성탄절 표정/정정따라 웃고 울고

    ◎팔 자치권 경축… 순례객 1만명/베들레헴/임시휴전속 음식·땔감 이중고/보스니아 아기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맞아 성지 베들레헴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평화와 화해를 기원하는 축하행사가 펼쳐졌다. 특히 올해는 하루도 쉴틈없이 계속된 분쟁으로 인해 아직도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지역이 많아 성탄이 주는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고 할수 있다. ▲베들레헴=이스라엘 점령지 요르단강 서안에 위치한 베들레헴에서는 지난 87년 팔레스타인 유혈봉기 이래 가장 흥겨운 축제분위기가 연출됐다. 올해 이스라엘로부터 자치권을 얻어낸 팔레스타인인들은 국기를 흔들고 국가를 연주하며 성탄의 기쁨을 만끽했으며 1만여명의 순례객들이 캐럴을 부르고 폭죽을 터트리는등 들뜬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들은 또 팔레스타인 국가를 부르며 감격해 했으며 국기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의 초상화를 자랑스럽게 흔들었다. ▲사라예보=32개월째 내전이 계속돼온 보스니아에서는 성탄 기념행사는 엄두를 내지 못할 형편이지만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중재로 임시휴전이 발효돼 그나마 이번 성탄을 총성없이 보내게된 것에 위안을 삼고있다. 그러나 내전에 지친 이들에게는 성탄행사보다는 당장의 배고픔을 면할 음식과 추위를 막을 땔감의 확보가 절실해 처절감까지 감돌고 있다. 사라예보의 상점과 슈퍼마켓은 텅빈 상태이며 사람들은 총탄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불안감때문에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 거리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크리스마스 트리로 쓸 나무는 이미 장작불로 사라진지 오래다.사라예보 시민들이 성탄절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평화를 위한 기도뿐이다. ▲워싱턴=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24일 국내외 주둔 미군 10명에게 전화를 걸어 성탄절에도 근무에 임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감사의 뜻과 성탄 축하인사를 전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또 라디오 연설을 통해 전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한편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북한에 억류중인 미군병사가 조속히 가족의 품에 돌아올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날 저녁 딸 첼시아와 함께 성탄선물 쇼핑을 즐기기도 했다. ▲벨파스트=북아일랜드공화군(IRA)과 영국정부간의 평화협정 체결에 따라 25년만에 처음으로 기독교도 지역 아이들과 카톨릭 지역 아이들이 함께 모여 캐럴을 부르며 성탄을 축하했다. 성탄절을 맞아 이곳 종교지도자들은 종교적 갈등으로 빚어진 분쟁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의 정신으로 종식되기를 소망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바티칸 시티=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탄 전야의 자정미사에서 성탄의 기쁜 소식이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계 50개국 2억5천만명이 시청하는 가운데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거행된 이날 미사에서 교황은 감옥,수용소,병원등지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져 용기와 희망을 갖기를 바란다고 강론했다. ▲바그다드=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24일 발표한 성탄절 메시지에서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지 않고있는 서방국가들을 비난했다. 후세인 대통령은 서방의 경제제재로 인한 식량과 의약품의 부족으로 어린이와 노인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이는 예수의 사랑과 정의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우 데 자네이루=브라질의 리우의 빈민들은 이번 성탄절을 한 사회운동가의 기아퇴치운동으로 좀더 따뜻하게 맞이했다.그동안 많은 봉사활동으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데 소우자씨가 전국적인 모금운동으로 6백t의 식량을 마련,5만여 빈민가족에게 성탄선물로 나눠주었다. 혈우병환자로 수혈과정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인 그는 『배고픈 사람들이 배불리 먹는 것을 보는 것이 노벨상을 타는 것보다 즐겁다』고 말했다. 소우자의 이같은 구호운동은 리우 외에도 브라질 전역 16개 도시로 확산돼 이번 성탄절은 그 어느해보다 훈훈한 인정이 감돌고 있다.
  • 사이비기자 둘 구속/폭로위협 금품 갈취

    【수원=김병철기자】 수원지검 강력부 이기동검사는 22일 경인매일신문기자 유종식씨(33),수도권일보기자 황선인씨(33) 등 2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갈) 혐의로 구속했다. 유씨 등은 지난 9월 경기도 용인군 용인읍의 유선방송업자 심모씨(38)에게 유선방송 관리비 인상의 부당성 등을 기사화할 것 처럼 밝힌뒤 군청 기자실로 찾아온 심씨로 부터 2백만원을 받은 혐의이다.이들은 또 지난 5월 중순 용인군 용인읍 D식품회사에 찾아가 이사 이모씨(45)에게 폐수 불법처리사실 등을 기사화할 것 처럼 말한뒤 같은달 30일 이씨로부터 1백5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 라이베리아 내전종식/평화협정 체결 합의

    【아크라 로이터 연합】 라이베리아의 군벌들과 민간 정치인들이 거의 5년간의 내전을 종식할 평화협정에 합의했다고 정부 관리들이 22일 말했다. 이틀동안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열린 평화회담에서 서명된 협정은 오는 12월28일 밤 12시를 기해 휴전에 들어가며 내년 11월14일 총선 실시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이 관리들은 밝혔다. 지난 8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이보리 코스트로부터 전직 공무원 찰스 테일러가 이끄는 반군들이 라이베리아로 침공한 이후 내란과 무정부상태에서 약 15만명의 주민들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 보스니아 23일부터 휴전/카터발표/세계,“5국과 평화협상 용의”

    【팔레(보스니아) 로이터 연합 특약】 보스니아사태에 중재역할을 맡은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은 20일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오는 23일부터 보스니아에서 휴전을 시작하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팔레에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와 군사령관 라트코믈라디치를 만난 카터는 『휴전은 유엔평화유지군의 감시를 받을 것이며 세르비아계의 공격을 받고 있는 이슬람계 영토인 비하치시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카라지치와 믈라디치는 이날 카터가 기자들에게 『오늘 아침에 가장 큰 성과는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들이 오는 23일부터 보스니아에서 휴전을 시작하기로 한 데 동의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팔레(보스니아) AFP 로이터 연합】 라도반 카라지치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지도자는 19일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뒤 4개월의 즉각휴전을 포함한 7개항 휴전성명을 발표하고 5개국 접촉그룹이 제안한 평화협상에도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카라지치는 이날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카터 전미대통령은 우리가 협상테이블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면서 『우리는 얼마전까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내용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5개국 평화안에 대해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공화국」을 경제·군사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거부해 왔던 카라지치가 이같은 휴전성명을 발표한 것은 매우 전향적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보스니아 회교정부측은 이미 5개 접촉그룹이 제안한 평화안을 수용할 뜻을밝힌 바 있어 이번 합의의 실천여부에 따라 32개월간에 걸친 보스니아 내전을 종식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미 새의회는 북 과신말라/미 헤리티지재단 「대북전략」 제시

    ◎제네바합의 이행 철저 점검/핵보유허용 10년 과다 양보/경수로비용 미국부담 “부당”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계 연구소인 헤리티지재단은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의 의뢰로 「새 의회의 현안과제」라는 정책지침서를 마련,15일 배포했다.농업에서부터 무역에 이르기까지 총 19개 항목에 걸쳐 헤리티지재단 소속 전문가들이 기술한 이 보고서는 이미 공화당의 차기 하원의장내정자인 뉴트 깅그리치 의원에게 제출됐다.이 보고서 가운데 「미국의 아시아 정책」중 북한부분을 요약한다. ◇미국의 아시아정책 ▲북한=제 103회기동안(지난 2년간) 의회는 미·북한협상의 방관자로 있었다.클린턴행정부가 만든 지난 10월의 북미합의는 향후 10년간 핵동결,특별사찰,핵시설해체의 3단계를 거쳐 핵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는 내용이다.그러나 북미합의는 북한 독재정권에 대한 신뢰에 크게 의뢰하고있다.따라서 북한이 합의사항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는지를 철저히 점검하는 것이 앞으로 수년간 의회가 해야할 과제중의 하나며 이는 매우 중요하다. 새 의회는 이번 합의가지니고있는 몇가지의 문제점에 대해 분명히 대답을 해야할 것이다. 첫째,북한을 너무 믿는다는 점이다.북한은 지난 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은 했지만 실제 7년동안은 핵시설에 대한 국제사찰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둘째,북한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줌으로써 그들의 핵개발계획을 종식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북미합의는 북한측에 대해 8∼10년동안은 중요한 핵시설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있다.경수로의 중요부품이 반입될 때까지는 특별사찰을 받지 않으며 그들의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은 비록 가동은 하지 않으나 경수로가 모두 완공될 때까지는 해체되지 않는다.결론적으로 북한은 상당히 연장된 시기까지 핵무기제조능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셋째,북한의 경수로제공에 따른 부담을 미국의 납세자들이 떠맡도록하는 것은 잘못이다.미국은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최종순간에 남한과 일본이 경수로건설에 따른 부담을 거부할 경우 미국이 원자로교체비용을 떠맡겠다고 동의했다.그 비용은 40억달러나 된다.미국의 납세자가 어렵게번 돈을 왜 북한이 국제합의를 지키도록하기위해 그들에게 주어야하는가.
  • 세계,“점령지 일부 포기”/카라지치회견/보스니아 평화안 6항 제시

    【사라예보·워싱턴 외신 종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는 14일 일부 영토의 포기와 억류된 유엔 평화유지군의 전원석방,유엔 차량의 자유로운 통행 등이 포함된 6개항의 보스니아 평화계획을 제시했다. 이날 미 CNN­TV와 가진 회견에서 카라지치가 발표한 평화안에는 이밖에도 사라예보와 인근 지역에서의 즉각적인 휴전과 사라예보 공항의 개방,인권의 보장,19세 이하 보스니아 회교도 포로의 석방 등이 포함돼 있다. 한편 카라지치는 『이제 보스니아 위기를 해결할 때가 됐다』면서 『카터 전 미대통령이 보스니아 내전 당사자인 세르비아계와 회교정부 양쪽을 모두 방문해 주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카터 전대통령은 이에 대해 『보스니아내의 세르비아계와 카라지치의 평화안에 대해 얘기를 나눴으며 이 평화안으로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고 보스니아에 기꺼이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콜드 피스(임춘웅칼럼)

    요며칠 사이 콜드피스(Cold Peace)라는 말이 부쩍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우리말로 번역을 하자면「차가운 평화」「얼어붙은 평화」정도의 말이 될 것이다.어떤 사람은 이를 냉전의 대응개념으로 내세우기 위해 냉화라고도 번역하고 있다. 지난 5∼6일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던 유럽안보협력회의(CSCM) 52개국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처음으로 쓴 신조어다.옐친은 정상회담 기조연설을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방안을 거부하면서 『유럽은 지금 새로운 콜드피스 시대에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동구권의 와해와 함께 나토에 맞서 생겼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되자 미국은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인 동유럽제국을 나토에 흡수시키기 위해 그동안 꾸준히 정지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러시아의 불만인 즉슨 미국이 나토를 내세워 옛소련의 영향권에 있었던 나라들까지 모두 미국의 영향하에 두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안보회의에서의 「반란」이외에도 러시아는 최근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해야 된다는 주장을 펴며 미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했으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의 중동평화 방안에도 다른 목소리를 내보였다. 보스니아 사태에서도 러시아는 서방국들의 이해와는 명백히 상반된 입장을 견지했다. 이번 옛소련 영토였던 체첸공화국에 대한 군사력투입도 서방의 개입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의도였던게 분명해 보인다. 이같은 러시아의 일련의 외교적 몸짓은 소연방이 무너진 이후 보여왔던 러시아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러시아의 새로운 변신은 무엇보다 91년 소연방해체 이후 극도로 혼란에 빠졌던 러시아경제가 이제 한고비를 넘겨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든데서 온 자신감에서 비롯된게 아닌가 여겨진다.때맞춰 러시아내 민족주의 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지난해 12월총선에서 러시아민족주의자들의 약진이 눈부셨던 것이다. 쉽게 얘기 하자면 이제 한숨 돌렸으니 옛소련의 영광을 되찾아 보자는 심산일 것이다. 러시아는 러시아 만으로도 강대국이 될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는 나라다.반세기에 걸쳐 세계를 양분했던 소련제국의 영토와 인구,인력자원 대부분이 러시아의 것이다.러시아는 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가운영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자연자원을 자급할수 있는 땅덩어리를 갖고 있다.방대한 소련군사력의 태반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를 일시에 파멸시킬수 있는 핵무장을 하고 있는 나라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후 영국의 재상 윈스턴 처칠은 전후 소련의 패권추구를 경계해 콜드워(Cold War·냉전)란 말을 만들었다.그냉전이 끝난후 러시아의 대통령이 미국의 독주를 경계해 콜드피스란 말을 쓰고있다.역사의 유전을 실감한다. 갚을 능력도 없는 나라에 30억달러씩이나 왜 돈을 빌려 주었느냐며 으스댈 때가 아니다.여전히 강력한 러시아가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에 유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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