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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뭇잎 흰반점 현상」 피해 극심

    ◎기준치 넘는 「오존」 오염이 원인/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조치 시급/응용생태연 조사 결과 자동차 매연가스의 오염이 극심한 지역에 나타나는 나뭇잎의 흰반점 현상이 서울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 한 학회의 관찰에 의해 밝혀졌다. 한국응용생태연구회(회장 이경재 서울시립대교수)는 9일 서울시내 전역의 나뭇잎에 오존의 피해로 깨알같은 반점이 나타나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자동차 덜타기 시민의식 전환과 당국의 교통대책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이 연구회는 지난해부터 이같은 현상이 일부지역의 진달래,철쭉,개나리,복숭아나무의 잎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던 것이 올해들어 서울시내 전역으로 번졌는데 특히 진달래와 철쭉의 피해가 크다는 것이다.이같은 현상이 심한 지역은 남산 팔각정 주차장인근,남대문인근,잠실 장미아파트,서울시립대교정,개포동 시립도서관,종묘주차장 시민공원 등이었다. 이교수는 『피해가 심한 진달래,철쭉이 지난 8월 초록색 대신 탈색된 잎으로 변한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며 가을들어 잎이 말라 버리는오존피해는 식물의 성장을 정지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말라죽게 돼 생태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이제 아황산가스 대신 매연가스를 걱정하는 선진국형 대기오염피해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서울시내에 1백80만대의 자동차가 운행중인데 이중 36%가 디젤유를 사용하고 있어 올들어 오존농도가 10회 이상 기준치를 넘어선데다 더위와 가뭄의 영향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생태연구회는 이에따른 대책으로 시민들의 자율적인 자동차운행 횟수 줄이기와 당국은 자동차 배기가스의 배출규제를 현행의 3분의 1까지로 강화하고 엔진에 촉매장치 부착을 의무화해 엔진의 효율을 높여 배기가스를 줄이는 방안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회는 독일의 경우 산림에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어 국민운동으로 자동차 대신 자전거타기를 권장하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우리나라도 멀지않아 심각한 오존피해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경처 박희만교통공해과장은 『자동차가 대기오염의 70%를 점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버스의 디젤유 배출이나 저공해차개발이 외국에 비해 5∼10년 뒤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에따라 디젤유 엔진의 후처리장치를 개발중에 있으며 매연배출의 규제도 강화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세계문화유산(외언내언)

    남태평양의 발리섬을 찾아 본 한국인들은 『왜 제주도가 발리섬 만큼 유명한 세계적 관광지가 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영화「남태평양」으로 유명해진 발리섬 보다 우리의 제주도가 훨씬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은 자연의 경우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에도 존재한다.세계적으로 이름난 문화유산에 비해 우리의 문화유산이 결코 뒤처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화유산에 대한 세계의 인지도는 매우 낮다. 그런점에서 문화체육부가 오는 23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석굴암과 팔만대장경 및 종묘를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등록신청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보존을 위한 국제협약」에 따라 72년 설립된 기구로 회원국이 신청하는 각국의 문화 및 자연유산을 세계유산으로 공표하고 각종 간행물을 통해 전세계에 소개하며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이 위원회에 등록된 세계유산은 95개국의 4백11개.문화유산 3백5개,자연유산 90개,혼합유산 16개다.우주선에서 볼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인공구조물이라는 중국의 만리장성,세계7대 불가사의중 하나로 꼽히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사원,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등이 그속에 포함돼 있다.92년 유네스코 협약에 가입한 일본도 4개의 유산(문화2개,자연2개)을 등록시켰는데 88년에 가입한 우리는 이제야 처음 등록신청을 하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려면 ▲독특한 예술적 업적,즉 창조적인 재능의 걸작품을 대표할것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것 ▲지극히 희귀하거나 아주 오래된것등 까다로운 여러 기준을 충족시켜야만 한다.오는 12월에 있을 심의에서 우리의 3개 문화재가 등록되면 창덕궁·수원성곽·무녕왕릉등 5개의 문화재와 설악산 한라산등 자연도 세계유산으로 등록신청되리라 한다.늦었지만 좋은 결과 있기 바란다.
  • 석굴암의 석굴 등 3건/세계문화유산 등록

    석굴암의 석굴 해인사 대장경판고,종묘 등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공인된다. 문화체육부는 14일 우리민족의 문화적 우수성과 독창성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해 오는 23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이 3건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신청한다고 밝혔다.
  • 보안법 철폐 등 요구/전국연합 시민대회

    민주주의 민족통일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회원 7백여명은 10일 하오 3시 서울 종로3가 종묘공원에서 「신공안탄압분쇄와 국가보안법철폐를 위한 시민대회」를 갖고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는 공안정국조성음모는 중단되어야 하며 국제정세의 변화와 민족의 이익에 부합치 않는 정부당국의 남북대결정책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결의문에서 ▲남북화해와 민족통일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의 즉각 철폐 ▲북에 대한 적대정책의 중단과 남북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등을 촉구했다.
  • 유교문화의 영향(백제를 다시본다:26)

    ◎고이왕때 경학사상 바탕 관제 정비/6좌평 16관계는 주례·예기 모델로/4세기엔 경학박사 배출… 일에 파견/성왕땐 태학교육 확충… 졸업생 대부분 관직에 등용 백제의 사상은 유교문화가 근간을 이루었다.이는 백제불교가 계율불교로 자리잡는데도 유교의 영향력이 컸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백제유교의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물론 원시유교와도 부딪치지만,북방으로부터 남하한 백제건국 집단과 직결된다.이들 건국집단은 대륙의 선진학술을 수용,경학론이에 입각한 백제유교를 펼치기 시작했다. 백제는 한성시대부터 이미 한대의 경학을 받아들였다.한의 경학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한의 군현이었던 낙낭·대방과 가까이 인접한 지리적 여건 때문이었다.그래서 백제사상은 고조선 이후 전승되어 온 원시유교적 본질과 한대의 경향을 기본으로 틀을 잡아나갔다.이러한 경학사상을 국가사회의 문물제도에 접목시켰다.우리는 여기서 유교가 도교나 불교 보다 먼저 사상적으로 백제를 선점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유교의 영향은 백제초기인 3세기경 국가제도정비에 우선 나타난다.백제가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어느 정도 갖춘 것으로 보는 고이왕(AD 234∼286년)때의 중앙관제 제정이 그것이다.고이왕은 중앙관제를 6좌평 16관계로 제정했는데,이는 「주례」의 육관제와 거의 같은 것이다.공복제도를 갖춘 것도 이 시기에 해당한다.그리고 고이왕은 남당에서 정사를 보았다.「예기」명당편에 나오는 남당은 군주가 신하들과 이야기하고 정사를 말하는 장소로 기록되어 있다. ○사회예속에도 영향 유교사상에 의해 국가제도가 정립된 것처럼 일반사회의 예속 또한 유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유교는 인간도덕성을 매우 중시하면서 예의를 숭상했다.특히 원시유교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예의사상은 백제에까지 면면히 이어졌다.중국의 사서 「주서」백제조는 이를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백제는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였다.절을 하는 예는 두손으로 땅을 짚고 공경하는 뜻을 표했다.혼례는 중국 풍속과 거의 같았고,부모와 지아비의 상에는 3년동안 복상했다」는 것이다. 백제가 체제를 굳건히 다지면서 강력한 통제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유고사상이 깔려있다.국민을 복종케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술과도 직결된 유교사상은 학술의 발전을 가져왔다.4세기경 백제를 중흥시키는데 공헌한 근초고왕(AD 346∼375년)은 박사 고흥으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케했다.그 사서는 바로 「서기」다.국가 중흥기에 국사로서의 정사를 편찬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동시에 통치차원에서도 필수적인 국가사업이었을 것이다. 백제가 학문을 중시한 흔적은 「주서」이역전에도 나온다.「풍속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즐기고 경서와 사서를 좋아했는데,그중에 뛰어난 이는 한문을 읽어 글을 지었다」고 기술했다.또 백제는 중국으로부터 모시박사와 강례박사를 데려왔다는 기사도 보인다.여기 나오는 박사들은 중국에서 초빙한 학자를 가리킨다.그러나 백제에도 일찍이 박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앞서 말한 근초고왕때 국사를 편찬한 박사 고흥의 존재를 통해 분명히 파악된다. 우리는 고흥이라는 인물의 백제박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 이유는 근초고왕 즉위 뒤에 중흥의 시대를 맞은 백제는 중국에서 처럼 관학의 기초를 마련하고 전문학자를 양성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이 분야를 연구한 어떤 학자는 근초고왕 26년(AD 371년)에 고구려를 크게 무찌른 백제가 한산으로 천도한지 얼마 안되어 학교를 창설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고구려가 세운 태학의 충격을 받아 동진의 태학제도를 청사진으로 그리고 이 학교에서 경학을 전수받고 처음 박사로 임명된 케이스가 고흥이라는 것이다. 우리 역사기록에는 없지만 일본 사서에는 또 다른 백제의 박사가 등장한다.근초고왕 재위연간에 해당하는 시기에 일본에 간 박사 왕인이 그 사람이다.근초고왕의 왕명을 받들어 일본에 갔다가 돌아온 아직기의 추천으로 「논어」10권과 「천자문」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간 왕인은 일본왕의 태자 도도차랑자의 스승이 되었다.또 경서에 통탈한 그는 왕자 이외에 군신들에게도 경사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왕인,일왕자 교육 일본의 사서 「고사기」는 왕인의 이름을 화이로,「일본서기」는 왕인으로 적고 있다.화이나 왕인은일본식 발음으로 다 같은 「와니」(Wani)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자이름의 표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그리고 「고사기」에는 백제 근초고왕 때 사람으로 되어있으나,「일본서기」는 아신왕 말년쯤에 일본으로 건너온 것 처럼 기록했다.30∼40년의 차이는 발견되지만 왕인이 일본에 유교를 전파한 스승임에는 틀림이 없다.백제는 AD 475년 날로 세력을 확장한 고구려의 핍박속에 웅진(공주)으로 남천하기에 이른다.이어 백제의 중흥대업을 꾀한 성왕(AD 523∼554년)은 도읍을 사비로 옮기면서 여러 제도를 정리,개정했다.내관 12부,외관 10부로 구성된 22부나 22첨노제가 그것이다.이들 관제는 10간12지와 오행사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백제의 중앙집권체제는 도읍을 사비로 옮긴 뒤에 완비되었다.이와 더불어 성왕은 무령왕이 웅진시대에 중국에 남량의 제도를 본떠 학교를 확충하고 오경박사를 둔 전통을 이어받아 이를 더욱 강화했다.그래서 성왕 때 들어와서는 전경전사가 비로소 등장하거니와,경학교육을 전담한 종래의태학교육은 신설된 22부의 하나인 사도부가 담당하게된다. ○실용교육도 병행 이 사비시대는 유교주의교육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시기이기 도 하다.특히 상류계층은 태학에서 정규교육을 받아 학문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을 것이다.따라서 이들은 주요관직에 등용되었다.중국의 군현제와 흡사한 첨노의 지방장관은 모두 상류층 자제로 충원했다는 기록이 「양서」백제전에 나온다.백제가 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해 4세기 후반에 창설한 태학교육이 6세기에 만개한 것으로 보면 옳다. 오경박사나 전경박사로 불리는 학관 말고도 전업박사가 나타나는 것도 이때다.전업박사의 존재는 AD 553년(성왕 31년)「백제가 왜국의 요청에 따라 다음해에 의,역,역등의 박사를 일본에 보내주었다」는 「일본서기」기록에서 드러나고 있다.백제는 경학 위주의 관학성격의 교육을 실용교육과 병행하는 방법으로 발전시켰다.따라서 6세기 후반 백제의 교육은 의학을 포함한 여러 전문분야로 확대된다.이는 전통경학이 사회전반에 스며들어간지 오래여서 새로운 실용학문을 추구한 일종의 학술적 경향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이같은 백제의 선진교육은 일본의 고대학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다만 1세기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백제교육제도가 뒤늦게 일본에서 복제되어 나타나고 있다. ◎삼국의 유고/고구려·백제선 교육·통치와 직결/신라는 지리적 여건상 2백∼3백년 뒤져 유교는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나라들이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특히 우리나라는 중국과 인접한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유교문화를 일찍 수용했다. 우리나라에 공자의 사상을 집대성한 유교가 부분적으로 처음 들어온 시기는 대략 BC 3세기경 위만조선과 한사군시대로 여겨진다.이 시대의 유교는 예의에 입각한 사회정의와 윤리적 정절을 강조하는 이른바 원시유교다.다시 말하면 중국 은대의 상고신앙을 중심으로 한 종교문화와 주대의 인문주의적 예제문화가 유입된 것이다. 고대국가 가운데 맨 먼저 유교를 수용한 나라는 고구려다.고구려 유교를 자세히 전하는 자료는 없지만 몇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유교문화를 가늠할 수 있다.그 하나가 사서의 편찬인데,「유기」와 「신집」을 국가사업으로 찬수했다.그리고 교육제도의 정립은 가장 큰 고구려 유교문화의 소산으로,오늘날의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 태학을 소수림왕 2년(AD 372년)에 설립한 것이다. 백제는 알려진대로 고구려계가 남하하여 세운 고대국가다.따라서 건국 초기부터 유교체제의 통치력을 갖추었다.그 뿐이 아니라 국가차원의 종묘제도 방식을 수용함으로써 유교의 교사지례를 실천했다.이는 온조왕이 창업 6년만에 동명왕묘를 세웠다는 것과 후대의 왕들이 즉위하는 해에 친히 제사를 지냈다는데서 나타나고 있다. 신라의 경우는 한반도 동남쪽에 외지게 자리잡은 데다 중국과도 거리가 멀어 유교수용시기가 늦다.법흥왕 재위시기인 AD 520년에 가서야 율령을 반포하고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기에 이른다.그리고 「국사」편찬은 진흥왕 6년(AD 545년),국학은 삼국통일 후인 신문왕 2년(AD 682년)에 설치하는 등 유교문화가 고구려와 백제보다 2백∼3백년 뒤늦은 시기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 그린벨트 건축규제 완화/비거주자도 유리온실 설치/10월부터

    ◎국·공립고등학교 신축 가능 오는 10월부터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안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도 그린벨트안의 농지에 유리온실을 설치할 수 있고 그린벨트내 버섯 재배사의 설치 허용면적도 3백㎡에서 5백㎡로 크게 확대된다. 또 그린벨트내에 1천㏊ 이상의 논이 있는 시·군·구에는 연건축면적 2천㎡ 이하의 미곡종합처리장 1개씩을 세울 수 있고 1백㎡ 이하 규모의 농산물 종묘배양실의 설치도 허용된다. 건설부는 이같은 내용의 도시계획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31일 입법 예고했다.개정안은 3분의 2 이상이 그린벨트인 시·군·구에서 고등학교 시설이 크게 부족하다고 교육부장관이 인정하는 경우 국·공립고등학교를 새로 지을 수 있도록 했다. 또 그린벨트내의 기존 도축장은 기존 면적만큼 증축이 가능하고 증축후의 면적이 법정최소기준 면적에 미달하는 경우 그 최소 면적까지 늘려 지을 수 있도록 했다.지금은 기존 면적의 2분의1 범위 안에서 증축을 할 수 있다.
  • 제천의식(백제를 다시본다:24)

    ◎능산리 금동향로 출토지는 제사터/건물규모 크고 고분 이웃… 사직 추정/송산리 개로왕 가묘도 제사터인듯 우리 민족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제천의식을 베풀었다.옛 기록에 나오는 부여의 영고.고구려의 동맹,예의 무천 등이 모두 제천의식이다.특히 국가형태가 완전히 갖추어지면서 국가경영과 관련이 있는 제례가 제도화하는 가운데 사직이나 종묘와 같은 제사유적이 생겨났다.이와 더불어 여느 민간사회에는 마을 주민들의 무병안령,다산과 풍요,풍어 등을 기원하는 제사터가 마련되었을 것이다. ○흔적 찾기 어려워 그러나 오늘날 백제강역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제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을 대하기는 쉽지가 않다.이런 상황에서 최근 김동용봉봉래산향로가 출토된 바 있는 충남 부여 능산리 유적이 제사터였다는 국립부여 박물관의 발굴조사결과가 나왔다.이 능산리 유적은 충남 공주 송산리 개로왕의 가묘(1988년 문화재연구소 발굴),전북 부안 변산반도의 죽막동유적(1994년 국립 전주박물관 발굴)과 함께 몇 안되는 백제제사유적으로 떠올랐다. 금동용봉봉래산향로는 출토상황으로 보아 분명히 백제멸망과 관련이 있거니와,제사유적으로 본건물터는 바로 앞에 자리한 능산리고분군(사적14호)과도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다시 말하면 이 자리에 세웠던 당초의 건물은 능들을 수호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곳이나,나라의 태평을 기원한 사직자리일 가능성이 많다.능이 아주 가까운 지역에 건물을 세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여기서 거두어들인 기와조각이 엄청난 분량이고 보면 건물규모도 대단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금동향로가 나온 능산리유적 건물배치상황을 통해 유사한 다른 유적 하나를 연상하게 된다.그것은 바로 고구려 고토인 중국(만주)길림성 집안현 국내성 밖의 동대자 제사유적(사직)이다.고국양왕 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제사유적에서는 능산리유적과의 유사성이 찾아진다.백제의 출자가 고구려에서부터인 것은 이미 건국신화나 역사사실을 통해 알려졌고,고고학적 유물들도 이를 입증한다. ○고구려 유적과 흡사 그러나이 능산리유적 건물터가 고구려 동대자 제사유적과 유사하다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다만 금동향로와 건물터의 관계와 중요성한 것이다. 충남 공주 송산리에서 발굴된 방단계단형무덤도 일종의 제사터로 볼 수 있는 유적이다.서울 송파구 석촌동 계단식돌무지무덤과 흡사하여 한성시대 백제계 무덤으로 추정되기는 하나 제사유적을 겸한 가묘로 보인다.백제 개로왕은 AD475년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성백제(BC18년∼AD475년)를 빼앗기고 죽음을 당한다.그 아들 문주왕은 부왕의 시신을 얻지못한채 웅진(공주)으로 천도하면서 일단 가묘로 만든 것이 송산리의 방단계단형무덤이 아닌가 한다.그러나 이 가묘는 개로왕을 위한 제사터 구실을 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백제의 제사유적을 말하면서 마지막으로 다룰 전북 부안군 죽막동 제사유적은 변산반도 해안절벽에 자리잡고 있다.국립전주박물관이 발굴한 이 유적에서는 구멍이 뚫린 원판(유공원판)과 구리거울(동경),활석으로 모방한 갑옷,굽은옥(곡옥),쇠칼,동물을 형상화한 토제품이 출토되었다.이 유적을 발굴한 국립전주박물관은 죽막동 제사유적은 AD 5세기를 전후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 죽막동 제사유적은 일본 오키노시마(충도)노천유적과 거의 비슷한 조건을 갖추어 주목을 끈다.부안 죽막동은 섬은 아니지만,해안가 절벽에 위치했다는 입지가 우선 비슷한 것이다.유적 형성시기는 부안 죽막동 유적에 비해 훨씬 늦은 AD 7∼8세기경으로 밝혀졌다.그럼에도 출토유물 성격도 비슷한 내용을 보여 백제의 영향을 받은 유적으로 보고 있다. 오키노시마는 일본 규슈(구주)와 한반도 사이의 현해탄 망망대해 속의 섬이다.둘레는 약4㎞이고 해발 2백43m의 산이 우뚝 서있다.절해고도인데다 지형마저 험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상주하지는 않지만,여러 시대의 제사유적이 분포되었다.야요이(미생)시대로 부터 고훈(고분)시대를 거쳐 나라(나양)시대에 이르는 제사유적이 밀집되었다.그래서 사람들은 이 오키노시마를 「바다의 정창원」이니,「섬으로 된 정창원」따위의 호칭을 붙였다. 이 섬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근대화 이전의 에도(강호)시대부터다.그러나 본격적인 고고학 조사는 지난 1953년부터 이루어졌다.현재까지 23개소의 유적이 조사되었다.오키노시마 출토유물로는 굽은옥,철제무기류,토기,활석제 사용품 등이 있다.이들 유물은 거의가 바위 끝자락에 만들어 놓은 제사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오키노시마 제사유적을 좀 장황하게 설명한 감이 없지 않다.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그것은 오키노시마 제사유적은 일본에서 가장 일찍 나타나는 제사유적인 동시에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데 자리잡았다는 점이다.더 설명을 곁들이자면 오키노시마 유적은 우리 부안의 죽막동유적을 원형으로 삼아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유물을 수용했다는 사실도 포함될 것이다. 어떻든 한반도계의 유물이 오키노시마에서 나오는 것은 이른바 도래인과도 결부시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고,더 흥미로운 것은 고대인의 정신세계 마저도 정확하게 반영시켰다는 점이다.갑옷을 모방한 활석제 제사용품이 부안 죽막동유적 출토품과 같다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오키노시마 출토의 김동제용두도 경북 풍기와 강원도 양양 출토품과 거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가야유물도 나와 그리고 우리 가야고토의 여러 고분에서 흔히 출토되는 말띠드리개가 오키노시마에서도 나오고 있다.오키노시마가 극히 좁은 섬이라는 현실을 고려하면,실제 말을 타는 기마용 말갖춤(마구)의 일부라기 보다는 제의용으로 쓰였을 것이다.말갖춤 장식에 불과한 말갖춤까지도 신성시한 당시 오키노시마의 풍속을 엿보는 듯 하다.이렇듯 한반도의 문화는 현해탄 가운데 섬들을 징검다리로 삼아 일본열도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몇몇 백제의 제사유적을 살펴보았다.현재 뚜렷하게 나타난 유적이 3개소에 불과하지만,더 발견 될 수도 있다.이와 더불어 유적연구가 진전된다면 유적의 성격은 물론 백제인들의 기층심성에 깔린 제례의식이 어떠했는가를 어느 정도 규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특히 국가의 사직이나 종묘와 같은 제사유적이 민족의 정신적 구심력을 형성하는데 공헌한 역할론도 제기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제사의식/나라의 평안·풍년 등 기원/하늘·땅 등 자연물이나 조상숭배 고대인들은 우주 자연의 모든 현상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꼈다.그래서 이들 현상을 초월자 또는 절대적 존재로 상정하고 평안을 기원하거나 혹은 감사하는 천제나 제사 의식을 행했던 것으로 믿어진다.이 외경의 대상은 때로는 하늘 땅 해 달 혹은 자연물이 되기도 했다.우리 민족은 아주 먼 옛날부터 하늘을 공경하여 제천의식을 올리고 농경이 시작된 뒤로는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옛 기록에 나타나 있는 부여의 영고,고구려의 동맹,예의 무천 등이 그것이다.이 의식는 뒷날 조상 숭배사상과 합치되어 조상을 추모하고 자손의 번영,친족 사이의 화목을 도모하는 행사로 발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막상 제사유적이라고 부를 만한 유적은 오늘날에도 지방 곳곳에 남아있는 서낭당이나 장승,당산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숫자는 적은 편이다.선사시대의 제사 유적으로는 울주 반구대와 천전리(국보 147호),고령 양전동(보물 605호),흥해 칠포리,포항 인비동,영천 봉수리,영주 가흥리,여수 오림동,남원 대곡리 등의 암각화가 남아 있다. 역사시대는 백제 유적을 제외하면 통일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제주 용담동 유적(1992년 제주대박물관 발굴)과 수신동굴,그리고 동대자유적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고구려의 옛 수도인 국내성(지금의 집안)동쪽에 위치한 수신 유적은 「후한서」와 「삼국지」에 고구려 왕이 10월에 동맹을 올리던 동국대혈로 불리고 있다. 동대자 유적은 1958년 중국 길림성박물관에 의해 국내성 밖 5백m 지점에서 발견됐다.발굴 결과 이곳은 고구려 중기(18대 고국양왕 9년 또는 광개토왕 2년,392년)에 속하는 「국사」라는 사직과 종묘의 제사유적으로 밝혀진 바 있다.
  • 석굴암·팔만대장경·종묘/「세계의 문화유산」 등록 신청

    ◎문체부,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석굴암 등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재를 중국의 만리장성,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같은 세계적인 문화재로 공인받기 위한 절차가 진행된다. 문화체육부는 오는 9월 석굴암,팔만대장경,종묘 등 문화재 3건을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센터에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등록해 줄 것을 신청하며 12월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된다고 14일 밝혔다. 최근 이 문화재를 답사한 유네스코 사무국의 기획전문가 알페오 토넬로씨(39)는 『석굴암과 팔만대장경및 종묘는 보존 가치가 높은 문화재여서 등록이 가능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세계유산위원회에 등록된 유산은 고구려시대 화가 담징의 금당벽화가 그려진 일본의 호류사,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등 86개국의 4백11건이다.
  • 부여 능산리 유적/발굴할수록 규모 커진다/국립부여 박물관

    ◎“사방 60m 넘는 초대형 유적 가능성/집터 7곳… “백제 건축기법 밝힐 자료”/원찰·재실·빈전·사직터 아닌가 추정/3차발굴 7월13일 마무리… 예산없어 아쉬움 원찰인가,재실인가,빈전인가,아니면 사직인가.지난해 말 금동용봉봉래산향로를 들어낸 부여 능산리 집터가 파면 팔수록 더욱 규모가 큰 백제 유적으로 드러나고 있어 고고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관장 신광섭)은 지난 4월30일부터 실시한 제3차 발굴조사 결과 이 집터는 동서 60여m,남북은 60m를 넘는 초대형 유적일 가능성인 큰 것으로 밝혀냈다. 이 유적이 있는 곳은 사비도성의 외성인 나성과 능산리고분군 사이 좁은 골짜기.박물관측은 지난 24일 가진 발굴 지도위원회의에서 이 곳이 능산리고분에 묻힌 사람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법당인 원찰이거나,능묘에 제사를 지내는 재실이 아니면 왕실이 상을 당했을 때 왕이나 왕비의 관을 잠시 두었던 빈전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장경호 문호재연구소장 같은 이는 중국 길림성 집안현에 있는 귀중한 고구려 중기 종묘 사직터인동대자유적과 구조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백제의 사직터였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지금까지 이 유적에서 발굴된 집터는 모두 7곳.지난해 3개의 건물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데 이어 올해 4개 건물지가 발굴됐다.박물관측은 이 유적이 가로 37.4m,세로 18m 규모인 제5건물지를 상부 중심축으로 건물들이 화랑의 형태로 사방을 둘러싼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이 추정이 옳다면 앞으로 이 유적에서는 이왕에 발굴된 숫자 이상의 건물지가 더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또 건물군의 중심에서도 건물지의 일부가 확인됐다.만일 절이라면 김당에 해당하는 위치다.추가조사에서 이곳이 금당지로 확인되어 절이었음이 분명해지면 그 앞에는 또 탑이 세워져 있었을 가능성이 커진다.이처럼 이 유적은 전체적인 발굴이 끝나기 전에는 그 성격이 어떻게 판명될지,또 앞으로 어떤 유물을 얼마만큼 쏟아낼지 도무지 알수 없는 상태다. 고고학계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지금까지 거의 알려진 것이 없던 백제시대 건축기법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자료들을 뚜렷이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특히 발굴 현장에는 화재로 무너진듯 탄화된 건물 재목과 기왓곳이 유지된채 겹겹이 쌓인 기왓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지도위원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이처럼 의미있는 유적으로 밝혀지자 이상수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연구실장은 지도위원회에서 『많은 예산이 들더라도 발굴과 함께 보존을 위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면서 전체에 거대한 뚜껑을 덮어 영구보존을 덥고 관람객들이 둘러볼수 있도록 해 역사의 교훈을 후세에 남기는 산 교육장으로 만드는 방식을 제시해 공감을 얻기도 했다. 능산리 건물지에 대한 제3차 발골조사는 오는 7월13일 일단 마무리된다.그러나 이후 책정된 발굴 예산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따라 부여박물관은 이 유적의 중요성이 입증된 만큼 장마가 끝나는대로 발굴주체인 충청남도에 별도의 예산을 요청해 추가발굴에 들어가기로 했다.
  • 시민들,“파업지지” 전단 찢고 욕설/철도·지하철 파업 사흘째 표정

    ◎공권력 투입설에 농성장 “초긴장”/“운행에 감사” 기관사 4명에 화환 철도파업 사흘째이자 지하철 파업 이틀째인 25일 밤늦게 경희대 등에서 농성중인 지하철노조원 등에 대한 경찰의 강제해산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분위기가 급변. 경찰은 밤늦게 심야경비관계자회의를 소집하는 등 바쁘게 움직였으며 농성노조원들도 술렁이는 분위기. 한편 시민들은 주말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갖고 교통질서를 지키는 등 의외로 차분한 모습. 지하철은 혼잡하기는 했으나 토요일이라 출근길 시민이 다소 줄어든 덕에 전날처럼 북새통을 이루지 않았고 도로사정도 교차로나 수도권의 주요 외곽진입로를 제외하고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서울시내에서는 이날 하오 여의도와 종로일대에서 6·25행사로 연예인행진 등이 펼쳐졌으나 대부분 시민들이 일찍 귀가,불편을 덜었으며 주말을 맞아 근교로 나가려던 사람들도 감소하는등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시민의 노력이 역력. ○…25일 밤 11시쯤 모처에서 긴급소집된 대책회의에 참석한뒤 청사로 돌아온 대검찰청 송종의차장과 최환공안부장은 『공권력투입이 임박했느냐』는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채 『좀더 지켜보라』고 답변,공권력투입이 임박했음을 시사. 또 검찰상황실에도 전직원들이 철야로 비상대기하면서 전국에서 올라오는 팩스상황보고를 챙기느라 부산. 특히 이날 하오3시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간 광주 금호타이어 노조원들이 회사간부를 감금하는등 과격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이같은 파업이 27일 예정된 전노대의 연대파업에 불을 댕기지나 않을까 바짝 긴장하는 모습. ○…경희대에 모여있던 서울지하철노조원 1천여명과 학생들은 26일 새벽 공권력투입 임박순간 정문에서 노조원들이 농성을 벌이는 크라운관에 이르기까지 5백여m거리에 폐타이어와 널빤지등으로 삼중바리케이드를 치고 쇠파이프를 든채 경찰투입에 대비. 특히 크라운관내에서 농성을 벌이던 노조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사태추이와 향후 노조의 앞날을 걱정하는등 술렁이는 분위기. 그러나 파업주동자들은 구호와 노래를 외치며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리기위해 애쓰는 모습. ○…지하철 2호선 선릉역 플랫폼에서 이날 하오1시쯤 인근 파출소 방범위원회 10여명이 운행중인 기관사 4명에게 화환을 전달. 방범위원장 김종섭씨(48)는 『지하철이 이만큼이라도 운행되는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려는 것』이라고 화환증정의 의미를 풀이. 한모씨(55)등 화환을 전달받은 기관사들은 『파업으로 몇년만에 운전대를 잡았다』면서 『하루빨리 직원들이 돌아와 서로 인사를 나누며 근무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하오 서울 종로4가 종묘공원에서 열린 「전기협 탄압규탄 노동자 시민대회」에서는 다수의 행인들이 지하철 노조 파업의 정당성을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유인물을 찢어버리는등 냉담한 모습. 대회장 인근 종로3가와 5가의 휴지통엔는 시민들에게 배포됐던 유인물이 가득차 있어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을 단적으오 입증. 대학생들에게 욕설을 했던 행인 김모씨(56·상업·서울 은평구 불광동)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민의 불편을 아랑곳 않고 파업을 강행한 지하철노조를 지지하는이유를 모르겠다』면서 『대학생들이 반정부 성격의 집회라고 무조건 참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일침. ○…주말인 이날 하오 서울역에는 열차표를 환불받으려는 시민들로 크게 붐벼 평소 주말이면 행락객등 열차를 이용하려는 시민들로 붐비던 예전과 대조. 서울역에는 하오 10시40분에 출발하는 서울발 부산행 새마을열차 등 19편의 임시열차 예약승객등 모두 1만여명의 승객들이 표 환불을 요구. 서울역측은 이날중으로 지난23·24일 환불객 8천여명의 2배가 넘는 1만7천여명의 여행객들이 환불을 할 것으로 추정.
  • 보신탕… 안먹는 처지이긴 하지만(박갑천 칼럼)

    삼복은 아직 멀었건만 때이른 더위 때문인지 보신탕집 찾는 발길들이 잦아진다.개고기 먹는건 야만이라느니 개고기 먹는 한국의 상품은 안사겠다느니 하는 외국사람들 떠세가 가끔씩 외신을 타기도 하지만『까짓것 오불관언』.이번 여름 백그릇쯤 채워 보겠노라는 축도 있다. 좋아들 하긴 한모양이다.얼마전 한 식품관계 월간지가 조사한 결과에도 그게 나타난다.성인남녀 1천2백여명을 대상으로한 조사였는데 먹어본 사람은 76.2%였다.남자만의 경우는 88.5%이며 보신을 위해 먹는 것이 으뜸이었다(40.6%).이들의 67.5%는 외국인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고 20.9%만이 재고해야 한다는 반응.『허한을 보하고 콩팥 기능을 도와 양기를 좋게 한다』는 개고기이니 누가 뭐래도 먹어야겠다는 생각들이다. 먹는것 제일주의의 중국이고 보면 그들은 어떤동물 무슨식물 할것 없이 맛과 약효를 모조리 실험했다.당연히 개고기 식용의 역사도 깊을 수밖에 없다.은의 폐허에서 발견된 갑골문자는 소·말·돼지·개의 뼈에 쓰인 글자이니 그때 이미 개고기를 먹었음을 짐작하게 한다.「예기」의 곡례하편이나 월령편 등에서는 천자가 먹고 종묘의 제사에도 올렸던 것임을 알려준다. 우리의 개고기 먹은 역사도 오래일 것이나 고대의 습속은 분명하지 못하다.고려때는 몽골의 영향인지 구워먹기도 했던 모양이다.조선조로 와서 특히 개노린내를 풍기는 것은 김안로와 개고기 얘기.공포정치를 한 권신인 그는 개고기 산적(구자)을 좋아했다.그래서 아첨배들이 개를 뇌물로 바치고서 벼슬을 얻어하고도 있으니(조선왕조실록 중종31년조)가히『개가 웃을일』아니었는가. 「동국세시기」는 삼복중 가장 좋은 음식으로 개장(구장)을 꼽는다.「열양세시기」도 양기를 돕는 음식이라 써놓고 있다.그런가 하면 조선시대 부녀자의 생활지침서였던「규합총서」는 요리법에까지 언급한다. 개의 피가 고기맛을 돋운다는것,날차조기(자소)잎을 개장국에 넣으면 개냄새와 고기의 독을 없앤다는것,개를 잡을 때는 매달아 죽여야 냄새를 없앤다는것 등등.『눈망울까지 누런 황구는 여자에게 성약이요,배와 네다리와 꼬리까지 검은 개는 신경의 성약이니남자에게 유익하다』.이어 개찌는법(증구법)도 소개하고 있다. 지게에 목이 매달려 혀를 내민채 비명속에 죽어가던 어린날의 친구 「노랭이」생각 때문에 개고기를 안먹는다.안먹는 처지긴 하지만 남의 음식문화에 용훼하는 일부 코큰이들의 씨식잖은「견도주의」에만은 오기가 솟는다.
  • 그린벨트 농업시설 규제 완화/부재지주에도 유리온실 설치 등 허용

    ◎올 하반기부터 올 하반기부터 개발제한 구역(그린벨트) 안에서 농작물의 재배시설이나 가공시설을 새로 짓거나 늘리는 데 대한 제한이 대폭 완화된다. 22일 농림수산부와 건설부에 따르면 개발제한 구역에 설치할 수 있는 버섯 재배시설의 경우 지금의 3백㎡(90평) 이내에서 5백㎡(1백50평)까지 늘려주기로 했다.개발제한 구역 안에 살지 않아도 그 안에 농지를 지니고 있고,또 실제로 농사를 지으면 시설설치를 허용한다. 실제로 거주하면서 영농에 종사하는 사람으로만 제한하는 유리온실 설치자격도 완화,농사만 지으면 거주여부를 따지지 않는다.지금은 설치할 수 없는 버섯과 난 등의 종묘 조직배양 시설도 1백㎡(30평)까지 설치할 수 있게 된다. 농협이 운영하는 미곡 종합처리장에 한해 6천6백㎡(2천평) 미만까지 설치를 허용하되,군당 한 곳으로만 제한한다.이밖에 현재 증축만 가능한 도정공장의 경우 이전까지 허용하며,늘릴 수 있는 도축장 시설의 면적도 기존 시설의 50%에서 1백%로 높인다. 건설부는 도시계획법 시행규칙을 개정,이같은 내용을 반영할 방침이다.
  • 어업규제 대폭 완화/김 대통령,바다가꾸기대회서 강조

    김영삼대통령은 17일 수산정책 방향과 관련,『이제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하며 단순한 1차산업이 아닌 식품산업으로 인식을 전환해 부가가치를 높여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경남 양산 국립수산진흥원에서 열린 「제1회 풍요로운 바다 가꾸기 대회」에 참석,바다를 청소하고 종묘를 방류한 뒤 수산인들과 오찬을 나누던 자리에서 『어업규제에 따른 어민의 불편을 해소시키기 위해 현실에 맞지 않는 수산관계법령을 과감히 정비하고 일률적인 어업개발도 동서남해의 해역별 특성을 살리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수산인들은 불법어업의 자율추방등 자기혁신과 어민자율운동으로 선진수산업을 창조하는데 앞장서달라』고 당부하고 『정부는 수산분야가 소외되지 않도록 적극 지원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김대통령은 『바다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자원의 보고』라면서 『더이상 오염시키지 말고 더욱더 아름다운 곳으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특히 깨끗한 바다처럼 임기동안 깨끗한 정치를 해나가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 “쓰레기 소각장 설치 반대”/4개구주민 종묘공원서 집회

    서울 강남·도봉·강동·노원등 4개 구 지역주민 1천여명은 7일 하오1시 종로구 종로3가 종묘공원에서 「쓰레기정책 전환촉구 시민대회」를 갖고 서울시의 소각장설치강행을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이날 결의문에서 『쓰레기재활용이 세계적인 추세인데도 불구하고 소각장건설을 강행하는 것은 서울시의 행정편의주의와 관료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쓰레기분리수거 확립 ▲대기오염방지대책 ▲주민의사 수렴보장이 없는 소각장설치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이들은 이날 하오3시 집회를 마치고 명동성당까지 가두행진을 했다.
  • 중요 무형문화재 제도/문체부,관련규정 개정

    정부는 30여년의 역사를 가진 중요무형문화재 제도에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다고 판단해 문화재보호법중 관련규정을 개정,제도를 개선 키로했다. 문화체육부는 3일 지난 62년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다라 64년 12월27일 종묘제례악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이후 현재까지 94종목이 지정되고 보유자 1백80명이 공예·민속·음악 등 우리의 전통문화의 보존과 전승에 기여하고 있으나 30년이 지나는 동안 시대상황이 변해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현재 문화계에서는 ▲보유자의 인정과 관리가 전수자가 모자라며 ▲종목간의 불균형들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문체부는 현행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위해 오는 10일 보유자·전승자·문화재위원·학계·언론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의 집에서 세미나를 개최하고 결과를 참고할 계획이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는 ▲예능 24종목에 전승자 9백7명 ▲놀이와 의식36종목에 전승자 8백22명 ▲공예기술 34종목에 전승자 2백72명이다. 정부는 종목이 많은 공예분야에 기능 보유자가 44명밖에 되지않고 이수자나 전수희망생들이 많지않아 이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 수산·유통업 불편개선 초점/경제행정규제 완화 특징·내용

    ◎육상양식어업 시도지사 허가폐지/3천㎥미만 도산매업 신고만으로 3일 정부가 발표한 경제행정규제 완화계획은 추진방식을 지금까지의 개별 건수 위주에서,중점 개선과제 위주로 바꿔 ▲수산업 ▲농축산물 유통 ▲유통산업 규제 등 3개 부문의 불편을 크게 완화한 것이 특징이다. 규제완화 작업은 새 정부 출범후 지금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추진됐다.모두 1천93건의 개선대상 과제가 확정됐고 지난 4월말 현재 8백77건의 제도개선(진도율 80.2%)이 끝났다. 그런데도 기업을 비롯한 일반 국민들은 아직도 규제완화의 효과를 직접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그동안의 작업이 체계적·종합적으로 추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따라서 새로운 발상으로 「탈규제」 차원에서 행정규제 개혁을 추진한다는 목표아래 규제완화 추진방식을 새로이 바꾼 것이다.이날 발표된 3개 부문 완화계획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시행시기) ▷수산업◁ 둘 이상의 어업허가를 받은 어선에 대한 조업시기 제한을 없앤다(94년6월).육상양식 어업 및 육상종묘 생산어업에 대한 시·도 지사의 허가제를 없앤다(95년 상반기).호수·댐 등 내수면 낚시업 허가제를 등록제로 바꾼다(〃).원양어선의 생산량 보고를 매월에서 반기 별로 완화한다(94년 6월).원양어업 허가시 양육항 지정을 없앤다(〃).93년말 이전에 해외투자 허가를 받아 외국에서 설립,운영하는 편의국적 어선(제3국적선 54척)의 우리나라 국적 취득을 허용한다(94년7월). ▷농축산물유통◁ 산지 유통시설 설치를 위한 농지 전용규제를 현행 3천3백㎡에서 7천㎡로,대체 농지 조성비 면제로 7천㎡까지로 각각 완화한다(94년 하반기).거래제한 지역을 고시한 경우 연쇄화사업 등록자나 물류시설을 확보한 민간업자 등도 산지 직거래,시장 일괄구매를 허용한다(95년 상반기).서울시와 각 직할시에 있는 양곡산매업자의 당해 시 외의 지역에서의 양곡매입 금지조항을 없앤다(94년 상반기).전통식품의 지정권한을 시·도지사에서 시장·군수로 위임하고 농어민과 생산자단체의 작업장 면적요건(3백30㎡) 구비조항을 없앤다(94년10월).정육점 등에서도 대포장 부분육으로 가공해 판매할수 있도록 하고 운송도중 파손 또는 훼손된 상품도 재포장 판매를 허용한다(94년 상반기). ▷유통산업◁ 공단개발시 물류시설 용지를 공장용지와 같은 가격으로 분양한다(94년 하반기).매장면적 3천㎡ 미만의 도산매업 개설은 신고만으로 허용한다(〃).공공성 유통단지에 대해 공업단지 조성사업에 준하는 지방세 감면혜택을 준다(95년 상반기).컨베이어 시스템 등 물류자동화 설비,공산품용 저온보관소,포장기 등도 투자세액 공제대상으로 인정한다(95년3월).연간 할인특매 기간(60일)의 범위 안에서 1회당 실시기간 제한(15일 이내)을 없앤다(94년6월).
  • 전국 12개지역에서 오늘 동시다발 집회/전국연합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은 16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1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7일 하오 서울 종묘공원등 전국 12개 지역에서 「광주항쟁정신계승 국민대회」를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한다고 밝혔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도 17일부터 22일까지를 「5·18정신계승 투쟁기간」으로 정하고 17일 서울시내 10개대생 1천4백여명 각 대학별로 5·18 집회를 갖기로 했다.
  • 불탄일 제등행사

    불기 2538년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제등행사가 14일 하오6시부터 4시간 서울 종로일대에서 열렸다. 승려와 신도들은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봉축대법회가 끝난 뒤 종로구 조계사까지 3·6㎞를 등불을 들고 행진하며 부처님의 광명이 온 누리에 비쳐지기를 기원했다. 제등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종묘공원안에서는 시민합창제,우리가락 한마당,희망의 등불 밝히기등의 행사가 개최됐다. 이에 앞서 조계종 총무원장 탄성스님을 비롯,승려와 신도 5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봉축대법회에서 탄성스님은 『우리들의 잘못과 곪은 상처를 단호하게 도려내되 크나 큰 포용과 단결로 안팎의 힘을 결집할 때 오늘의 한국불교는 민족과 역사앞에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봉축대법회는 개회식과 예불에 이어 종하스님의 축원문낭독,경전봉독,총무원장 봉축사낭독,월하종정 법어발표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 대학생 시민 4천명/UR규탄·저지 대회/어제 종묘공원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소속 시민·학생 4천여명은 16일 하오4시 서울 종로3가 종묘공원에서 「UR협정조인규탄및 국회비준저지결의대회」를 갖고 『지난 15일 조인된 마라케시의정서는 민족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재협상할 것과 국회비준거부를 촉구했다.
  • 해금 인간문화재 김천흥옹 손녀 바이올리니스트 신경씨

    ◎할아버지 예술혼 대이어 빛낸다/22일 예술의 전당 초청독주회 통해 국내무대 데뷔/독 유학,베를린심포니와 3차례 협연/김옹 “최선 다하는 예술가 되어라” 당부 할아버지의 해금과 손녀의 바이올린,동·서양을 대표하는 이 두 찰현악기의 명인기가 대를 뛰어넘어 전수되고 있다.해금의 인간문화재 심소 김천흥옹(86)과 22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유망신예초청연주회」를 통해 국내 음악계에 데뷔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신경씨(27).이들이 바로 「음악의 동서화합」을 이룬 화제의 주인공이다. 김옹은 독일로 유학을 떠난뒤 10년만에 만난 손녀가 그동안 올곧게 예술가의 길을 갔는지를 지켜보겠다며 연주회 날을 벼르고 있다.신경씨는 신경씨대로 『가진 것 만큼은 남김없이 보여주겠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서양음악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선대에서 풍류가락깨나 잡아보았던 경우는 크게 드물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이들 조손이 유독 화제를 모으는 것은 김옹이 전통예술계에 우뚝한 거봉인데다 신경씨 또한 국제음악계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은뒤 국내음악계에 화려하게 데뷔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옹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에서 일무와 해금으로,제39호 「처용무」에서 춤으로 각각 지정된 유일한 2종목 보유자.김옹이 해금을 처음 접한 것이 13살때 이왕직아락부에 들어가면서 부터라고 하니 70년 이상을 말총활과 함께 살아온 셈이다. 그러나 김옹의 3남3녀 가운데 예술로 대를 잇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신경씨의 아버지인 둘째아들 정완씨(60) 또한 사업가로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따라서 신경씨의 이번 연주회는 2대에서 사그라질뻔 했던 김옹의 예술혼이 3대에서 다시 환한 빛을 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의미도 있다. 신경씨는 『할아버지는 음악을 통해 도가 트이신 분』이라고 말한다.그런 그도 어릴때는 할아버지의 공연을 보러가서는 졸기가 일쑤였다고 한다.「예술가로서 할아버지의 존재」는 독일에 유학해 연주자로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인식되기 시작했다.할아버지처럼 평생토록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달았다는 것이다.할아버지의 「피」와 함께 「정신」까지 이어받은 신경씨는 그뒤 베를린음대대학원을 졸업하던 지난해 봄부터 3차례나 베를린심포니와 협연하고 올가을에도 초청을 받아놓고 있는등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김옹은 『유행가는 몇번 들으면 염증이 오지만 베토벤같은 클래식음악은 들을수록 좋아진다』고 토로한다.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의 경지가 높아지면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곡이라도 음악적인 우열을 판단할수 있다는 것이다.이때문에 신경씨는 요즘 「국악인」 할아버지가 자신의 연주에 내릴 평가가 두렵다. 신경씨는 얼마전 그런 할아버지로 부터 아주 큰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할아버지는 설겆이를 하던 그에게 『예술가는 그런거 안해도 된다』고 말했다는 것.설겆이를 면케 해주어서가 물론 아니다.예술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엄격한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자신을 「예술가」로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그 할아버지의 손녀이어선지 신경씨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서 음악을 하는가」를 평생 고민하는 연주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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