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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3월 종달새/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종로통은 늘 살아 있다. 활기가 넘친다. 청계천, 을지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개인적으론 종묘 건너편 4가 거리가 푸근하다. 지금도 아날로그다. 풍광, 그리고 오가는 사람 마찬가지다. 어설픈 약장수가 구경꾼을 모으고, 주변 야바위꾼도 덩달아 신이 난다. 만능 세척제, 다기능 공구의 묘기꾼 역시 십수년 전 그대로다. 이렇게 정지된 공간이 4대문 안에 또 있을까. 한땐 꽤 큰 레코드 가게가 줄지어 있었다. 구하기 힘든 LP음반도 어딘가에 박혀 있었다. 가요, 클래식 가리지 않는다. 위일청 유가화 명혜원의 초기 음반을 여기서 만났다. 라벨, 사라사테, 파가니니의 다양한 버전도 이 곳에선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제 음반 가게는 거의 없다. 음반시장 쇠락 때문이다. 디지털의 그림자다.LP판 바늘을 구하러 자주 찾았던 가게도 한참 전 문을 닫았다. 판은 꽤 모았는데, 이따금 바늘 걱정이다. 홀로 남은 S가게의 간판이 오히려 어색하다. 그래도 거리는 지난날을 아쉬워 않는다. 봄비 뒤의 모습이 청명하다. 차이코프스키의 ‘3월 종달새’를 듣고 싶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이색거리 탐방] (5) 종로구 피맛길과 순랏길

    [이색거리 탐방] (5) 종로구 피맛길과 순랏길

    종로구에는 서민의 역사와 구수한 맛이 함께 어우러진 두 길이 있다. 종로를 끼고 도는 피맛길과 순랏길이다. 좁은 골목길이지만 나름의 유래에 따듯한 정감이 자리하고 허름한 음식점이지만 주인장의 깊은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꽃 피고 새 우는 춘삼월이 오면 광화문 피맛길 입구에서 종로3가 순랏길까지 느긋한 마음으로 걸어보심이 어떨지. ●봇짐을 풀고 즐기던 먹자골목 교보문고 후문에서 종각 쪽으로 너비 2m쯤 되는 종로 뒤 골목길에 들어서면 ‘피맛길(일명 피맛골)’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원래 조선시대 평민들이 6전(六廛)이 열리는 종로를 빨리 오가도록 만든 길이란다. 괴나리봇짐을 등에 지고 큰 길인 종로를 걷다 보면 ‘길을 비켜라. 대감님이 나가신다.’는 호령에 놀라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큰 길 뒤에 편안한 골목을 만들어 말이나 가마를 피한다고 해서 ‘피마(避馬)길’이라고 했다. 자연히 허름한 음식점들이 생기면서 ‘피맛골’이라는 운치있는 별칭도 생겼다. 길은 종로3가 단성사 극장 앞까지 이어진다. 건너편에도 피맛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도로확장으로 사라졌다. 피맛길은 ‘먹자 골목’이다. 교보문고 근처에는 ‘열차집’ 등 빈대떡 가게들이 많고 종로구청 근처에는 서린낙지 등 낙지집들이 즐비하다. 생선구이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도 한다. 청진동 근처에는 해장국집들이 많다. 오랜 경험에서 배어나는 맛이 잊지 못하고 또 찾게 만든다. 어디를 가나 대체로 5000원으로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서민들의 골목이다. ●순랏길을 대신한 종묘 돌담길 피맛길이 종로3가 근처에서 끝나면 그대로 순랏길을 탐방할 수 있다. 종묘공원 입구에서 왼쪽으로 반원을 그리는 길이 서순랏길이고 오른쪽으로 도는 길이 동순랏길이다. 순랏길은 조선시대에 육모방망이를 든 순라군이 한밤중에 도적 등을 막으려고 순찰을 돌던 골목이다. 길 근처에 순라청이 있었다는 유래에 따라 순랏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창덕궁이 가까워 조선시대에는 주변에 내시들이 많이 살았고, 일제시대에는 일반인들의 종묘접근을 막기 위해 일본 순사들이 눈을 부라리며 돌던 곳이다. 1.5㎞ 일방통행로인 서순랏길은 자동차 한대가 지나가면 그만인 한적한 골목이다. 멋지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가로수가 운치롭다.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종묘의 돌담 앞에는 나무의자도 있다. 동순랏길은 주택가의 작은 골목일 뿐이다. 맛집이 즐비한 피맛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서순랏길에도 맛집이 있다. 홍어삼합으로 유명한 ‘순라집’과 소껍질무침을 하는 ‘수구레집’이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워도 부담이 없는 곳이다. ●옛 정취는 간데없고… 종로구는 피맛길과 순랏길을 ‘역사문화탐방로’로 지정하고 보전에 애쓰고 있다. 하지만 실망할 수도 있다. 지저분하게 방치되고 볼거리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종각 근처의 피맛길에는 야릇한 분위기의 모텔들이 야금야금 들어섰고 종로2가에는 어느새 성인오락실들이 자리잡고 있다. 종로3가는 귀금속 골목으로 변모, 옛 정취를 생각하고 이곳을 찾는 사람을 실망시킨다. 순랏길도 골목 곳곳에 놓여 있는 노상 적치물이 쓴웃음을 짓게 한다. 종묘는 매주 화요일을 제외하고 문을 열지만 이벤트가 없어 아쉽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홍탁·수구레… 개성 넘치는 맛집들 피맛길에는 한두 집 꼬집을 수 없을 정도로 맛집이 수두룩하다. ‘열차집’‘전주집’‘대림식당’은 생선구이와 빈대떡 전문집이다. 종로2가 근처의 ‘전봇대집’(일명 고갈비집)도 맛집을 챙기는 연예인들이 종종 찾는다. 제일은행 본점 뒤의 ‘한일관’은 1939년부터 이승만 전 대통령 등 명사들이 드나들던 불고기집이다. 종각역 근처의 ‘신승관’은 화상(華商)이 45년째 운영하는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요리 음식점이다. 순랏길의 ‘순라길’은 순 흑산도 홍어를 열흘 이상 푹 삭힌 20여년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음식만화 ‘식객’의 작가 허영만 화백이 홍어삼합 부분을 이곳에서 취재해 더 유명하다. 홍어에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둘둘 말아 막걸리와 함께 먹고 마시는 맛이 탄성을 자아낸다. 홍어회, 홍어찜, 홍어탕이 크기에 따라 3만 5000∼6만원이다. ‘수구레집’의 수구레는 소껍질을 돼지껍데기처럼 삶아 고추장으로 양념해 볶았다. 술은 역시 막걸리가 제격. 쫄깃쫄깃한 고기 맛이 서민들의 고단한 시름을 잊게 한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2007 자치구 핫이슈](16)종로구 ‘청계 관광특구’ 조성

    [2007 자치구 핫이슈](16)종로구 ‘청계 관광특구’ 조성

    왕년의 ‘정치 1번지’ 종로구는 이젠 ‘문화·관광 1번지’로 통한다. 서울에 온 외국인관광객 85%가 종로를 찾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로에는 상인 대표들이 모여 관광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하는 변변한 협의체조차 없었다. 그래서 올해를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종로 재창조’의 해로 삼았다. 문화·관광을 위한 전통 거리를 가꾸고, 프로그램을 만들며, 시설도 제대로 갖춘다는 복안이다. ●외국인이 돈쓰는 곳으로 만들자 김충용 구청장은 15일 “한국에 오는 외국인관광객 10명중 8∼9명이 종로를 찾는데, 정작 종로에 머물면서 쇼핑이나 음식, 공연은 즐기지 않고 그냥 휙 둘러보고 간다.”면서 “우리 문화재나 전통문화를 보고 감동을 해서 돈을 쓰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종로 주민들도 외국인들이 문화재에 대해 물어보면 누구나 자부심을 갖고 친절히 대답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방안을 찾아 보겠다.”고 덧붙였다. 종로구는 지난해 3월 서울시로부터 광화문 동화면세점∼숭인동 다산교 일대를 ‘종로·청계 관광특구’로 지정받았다.54만 602㎡에 1만 400여개의 점포가 밀집된 곳이다. 서울시 특구로 지정되면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이제껏 이렇다 할 사업을 펴지 못했다. 지난해 10월이 돼서야 관철동 삼일빌딩 앞에 관광안내소를 설치하고 11월에 관광특구 홈페이지를 열었다. 올들어 지난 5일에는 상인회 대표들로 구성된 종로·청계 관광특구협의회를 설립했다.15일에는 8곳에 관광안내 표지판을 설치했다. 다음달부터는 불법 노점상을 일제히 정비하고 관광객을 태운 대형버스가 주차할 수 있는 공용주차장을 신설한다. 공중 화장실을 늘리고 보도블록도 정비할 예정이다. ●먹고 입고 체험하는 프로그램 제공 종로구에는 경복궁, 창경궁, 종묘 등 전통 문화재가 즐비하다. 그러나 막상 종로와 고궁을 찾은 외국인들이 만족스럽게 즐길 프로그램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김 구청장은 “지금까지는 고궁의 문만 열어 놓았을 뿐이었으나 이제는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이 경희·경복·창덕·창경궁 등 4대 궁궐에서 궁중음식을 먹어보고 궁중의상도 입어 보는 체험 프로그램을 신설할 계획이다. 북촌한옥마을에서는 조선시대 양반 생활을 잠시 맛볼 수 있도록 한다. 원한다면 머슴으로 분장해서 마당청소를 할 수도 있다. 아울러 4월28일∼5월9일 하이서울 축제 기간에는 ‘종로·청계 특구’의 500여개 점포가 참여해 할인행사와 기념품 증정, 경품행사 등을 할 예정이다. 세운상가의 귀금속 점포, 광장시장 등도 할인 행사에 동참한다. 또 특구 안에 ‘만남의 장소’ 3곳을 만들어 연중으로 각종 축제의 중심지로 활용하기로 했다. 전통과 문화가 숨쉬는 곳이라고 해서 주민복지시설을 만드는 데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이에 따라 오는 4월1일에는 사직동에 수영장, 헬스장, 공연장 등을 갖춘 3층짜리 종로문화체육센터를 개관한다. 문을 열기 보름 전에는 주민들이 시설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행사도 갖기로 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종로 8경·8품·8미 찾습니다

    종로 8경·8품·8미 찾습니다

    종로구는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살거리·먹거리 등을 모아 ‘종로 8경’‘종로 8품’ ‘종로 8미’를 선정한다고 31일 밝혔다. 구 관계자는 “종로구는 600년 조선왕조의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관광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8경·8품·8미를 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잠정적으로 종로구는 경복궁·창덕궁 등 고궁, 국립공원 북한산, 청계천, 흥인지문, 종묘, 서울문묘, 탑골공원을 8경 후보로 정했다. 8품은 인사동 문화지구, 북촌 한옥마을 화랑·공방거리, 동대문종합시장, 대학로 문화지구, 종로3가 귀금속 상가, 광장시장, 창신동 문구·완구·신발·수족관 상가, 낙원동 악기 상가와 떡전거리로 선정해 놓았다. 또 청진동 해장국, 종로1가 낙지, 인사동 전통차·전통음식, 낙원동 아귀찜, 창신동 성곽냉면, 종로6가 곱창, 삼청동 전통음식, 대학로 퓨전요리 등은 8미 후보이다. 이 곳들을 중심으로 3월31일까지 구청 홈페이지(www.jongno.go.kr)에서 주민의견을 들어 최종 선정할 방침이다. 구 홈페이지(www.jongno.go.kr)나 문화진흥과(731-1156), 팩스(731-0329)로 의견을 내면 된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동해의 명물’ 명태 되살린다…연구 본격화

    동해의 명물 명태를 되살리자. 강원도 동해안에서 사라져 가는 명태의 자원 회복을 위해 동해안 심층수를 이용한 명태 인공종묘 생산연구가 본격 실시된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는 이달부터 시험선박을 동원해 동해 최북단 고성군 해역으로 우량 명태 어미 확보를 위한 시험조업에 나선다고 26일 밝혔다. 수산연구소는 시험조업을 통해 확보된 우량 명태 어미로부터 채란, 인공수정을 시킨 뒤 수정란을 방류하거나 수정란을 부화시켜 치어를 방류하는 자원회복 방안을 시도하게 된다. 특히 동해안 명태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이번 연구는 심층수연구센터, 해군, 해경, 고성군, 고성군수협 등의 유관기관과 어업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뤄지게 된다. 명태는 수심 50∼450m에서 서식하는 냉수성 어종으로 지금까지 인공 종묘 생산에 제약이 따랐으나 최근 들어 저온성을 특징으로 한 해양심층수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명태 종묘 대량생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고성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청소유발 부담금이라도 신설해야”

    “청소유발 부담금이라도 신설해야”

    “청소유발 부담금이라도 신설해 시위대에 물려야 합니다.” 종로구는 도심에서 1년 내내 시위가 끊이지 않으면서 함부로 버려지는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거둬들이는 지방세는 뻔한데, 청소 예산은 다른 곳보다 몇 곱절 많이 드니 대책을 찾아달라고 볼멘소리다. 종로 지역에서 배출되는 하루 평균 쓰레기양은 489t. 다른 자치구와 단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최고 수십배까지 많은 수준이다. 이 가운데 종이·목재·비닐 등 재활용 5종 품목이 155t으로, 흔히 주택단지 등에서 많이 나오는 음식물쓰레기(120t)를 앞지른다. 쓰레기 배출량이 많고, 또 유독 종이 등이 많이 버려지는 이유는 도심 집회가 많은 탓이다. 집회나 시위는 주로 대학로, 종묘공원, 광화문 등에서 열린다. 요즘에는 청계천 출발지인 동아일보사 앞에서도 심심치 않게 시위를 한다. 시위대 근처의 전경대 버스 주변에서도 쓰레기가 나온다. 아울러 세운상가 등지에선 상인들이 밤 사이에 무단으로 버리는 쓰레기도 만만치 않다. 쓰레기는 자치구 일용직과 대행업체, 위탁업체 등이 나눠 치운다. 쓰레기봉투에 담겨 배출되는 생활쓰레기는 대행업체가 주로 수거한다. 위탁업체는 빈병 등만 가져간다. 행사장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거나 무단으로 버려진 쓰레기의 처리는 구청 환경미화원들의 몫이다. 쓰레기 분리 수거 등이 자리를 잡으면서 각 자치구는 비용이 많이 드는 고용직을 줄이고 대행업체에 맡기는 처리량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종로구는 고용직이 199명이나 된다. 주말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 집에서 쉬던 고용직까지 모두 불려 나온다. 이 때문에 구가 지난해에 지불한 특별수당은 1억 1058만원. 올해 청소 관련 예산도 200억여원에 이른다. 종로구 관계자는 “환경이나 교통은 수요자부담 원칙에 따라 준조세를 물리면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 종로에 몰려와 버리는 쓰레기 처리비용은 고스란히 종로 구민들이 부담한다.”고 하소연을 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가회동 23만평 ‘역사문화지구’ 편입

    서울 종로의 기무사령부, 옛 미국 대사관 숙소, 현대 사옥 등이 층고 규제를 받는 ‘역사문화미관지구’에 편입됐다. 서울시는 제1차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종로구 가회동 기무사령부, 옛 미 대사관 숙소, 현대 사옥 등 13만 5735㎡(4만 1000평)를 역사문화미관지구로 추가 지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이에 따라 북촌 한옥마을 일대 역사문화미관지구는 종전 64만 5000㎡(19만 5000여평)에서 78만 735㎡(23만 6000여평)로 확대됐다. 역사문화미관지구로 지정되면 향후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층고가 4층 이하(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 최대 6층)로 규제된다. 반면 이 지역에 새로 한옥을 짓거나 기존 한옥을 개·보수할 때는 비용이 지원되고 세제 혜택도 주어진다. 이와 관련, 현재 15층 규모의 사옥을 갖고 있는 현대측은 추가 지정 과정에서 “지구 지정시 높이가 4층으로 제한돼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게 된다.”며 반대 입장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시는 “북촌의 역사적 가치 보전이라는 공익이 용적률을 40% 정도 손해보게 되는 현대측 사익보다 크다.”는 논리로 현대측의 입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해당 부지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역사경관 보호를 위해 역사문화미관지구로 편입시켰다.”며 “장기적으로 이 일대를 모두 한옥촌으로 유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또 종 세분화되지 않았던 북촌 일대 75만 9987㎡(22만 9896평)를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했다. 현재 북촌 일대는 일반주거지역으로만 지정돼 있으나 서울시가 한옥마을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용적률과 층고가 가장 낮은 수준인 1종으로 세분화한 것이다. 위원회는 아울러 종로구 장사동 116의4번지 일대 9539㎡(2886평)를 경관광장으로 지정했다. 이곳은 세운상가 재정비 촉진지구 내 부지로, 현재 도로와 상가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서울시는 1단계로 이곳에 2008년까지 토지·건물 보상비와 광장 공사비 등 850억 원을 들여 녹지축을 조성한 뒤 이를 남쪽으로 연장해 종묘와 남산을 잇는 남북 녹지축을 만들 계획이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박상견 세종종묘유한공사 사장 中 농업경제인 10대 영도인물에

    |베이징 이지운특파원|16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2회 중국농경산업 고위급 토론회’에서 한국 기업인 ‘세종종묘유한공사’가 2006년 중국 농경 산업 모범기업으로 선정됐다. 이 회사의 박상견 사장은 2006년 중국 농업 경제인 10대 영도인물로 선정됐다.jj@seoul.co.kr
  • [Local] 고성에 한해성 수산종묘배양장

    동해안의 특성을 살려 고급 특산 수산종묘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한해성(寒海性) 종묘배양장이 강원도 고성에 건립된다. 강원도 환동해출장소는 12일 200억원을 들여 2009년까지 고성 해양심층수 단지에 종묘배양장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종묘배양장에서는 동해안 특산종이면서도 점차 자원이 감소하고 있는 털게와 명태, 도루묵, 북방대합 등 연간 1000만마리의 한해성 종묘를 생산하게 된다. 한해성 종묘배양장 건립은 유엔 해양법 발효에 따른 연안국가간 신어업협정 체결로 연근해어장 축소와 자원감소로 인한 어업 경영악화를 극복하고 수입수산물의 증가에 대비,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동해안산 고급 수산물의 수요와 가치를 찾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고성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조선은 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는 비참한 환란을 겪어야 했을까. 한마디로 17세기초 명·청 교체기의 격랑 속에 조선 지배층이 국제정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2007년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370년이 되는 해이다. 북핵 문제를 놓고 6자 회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듯,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정세는 예측불허다. 우리가 과연 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러시아·일본 등과의 숨가쁜 외교전에서 북핵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가며, 미래를 당당하게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 병자호란을 살피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에 외교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되짚어보기 위해서이다. 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의 눈을 통해 ‘병자호란´의 안과 밖을 살펴본다. 역사평설 ‘병자호란´이 매주 목요일 연중기획으로 독자를 찾아간다. 편집자 주 ●준비 없이 전쟁을 선택하다 1636년(인조 14년) 봄. 조선 조정에서는 청나라를 황제국으로 인정하느냐의 여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같은 해 3월, 청의 수도인 선양(瀋陽)에서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皇太極)가 황제로 즉위한다는 소식이 조선에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척화파(斥和派) 신료들은 “개·돼지만도 못한 오랑캐 추장에게 황제 칭호는 가당치도 않다.”며 “정묘년(丁卯年,1627년)에 그들과 맺은 맹약을 파기하고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들은 이어 ‘황제 운운’하는 내용을 담은 국서를 가져온 청나라 사신 용골대(龍骨大)의 목을 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주화파(主和派) 신료들은 “청이 명을 능멸할 정도로 세력이 강해진 현실을 인정하여 그들의 요구를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사신을 박대해서도 안된다.”고 맞섰다. 최종 결정권자인 국왕 인조는 양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척화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곧 이어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조정이 청과 맺은 맹약을 파기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장차 발생할지도 모르는 청의 침략에 대비하라는 내용으로 인조가 평안감사에게 보내는 극비교서(敎書)를 가져가던 금군(禁軍) 전령이 용골대 일행에게 교서를 빼앗긴 사건이었다. 자신의 목을 치라는 험악한 분위기에 놀라 황급히 달아나고 있던 용골대 일행에게, 다른 곳도 아닌 조선 영토 안에서 국왕의 밀찰(密札)을 빼앗긴 것이다. 척화냐, 주화냐를 놓고 정쟁만 무성했던 와중에 정작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어지는 정보 전달체계가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1636년 12월6일. 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질풍같이 내달렸다. 병자호란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병력을 의주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대로(大路) 바깥에 위치한 산성들 속으로 집결시켰던 조선군은 청군의 침입 사실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했다. 청군이 조선군과의 접전을 피해, 곧장 서울로 진격하는 속전속결의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임진강 이북의 방어를 책임진 도원수 김자점(金自點)은 청군이 침입했다는 최초의 보고를 묵살하고 조정에 제때 알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적이 다가오자 싸우지도 않고 도주해 버렸다. 청군이 이미 개성을 지나 양철평(良鐵坪-지금의 은평구 녹번동)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전해진 12월14일. 서울 도성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아이들과 노약자들, 부녀자들의 울부짖음속에 피란행렬이 줄을 이었고, 조정 신료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인조는 왕실 가족들과 종묘에 모셔져 있던 역대 국왕의 신주(神主)들을 강화도로 먼저 옮기도록 했다. 이어 자신도 강화도로 들어가려 했으나 청군이 이미 김포에서 강화로 이어지는 길을 차단해 버렸다. 인조는 어쩔 수 없이 남대문까지 갔다가 강화도 행을 포기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돼지´에게 무릎을 꿇다 1637년(인조 15년) 1월 중순. 준비 없이 들어왔던 남한산성의 상황은 참혹했다. 청군이 산성을 완전히 포위했고, 삼남으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군량이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청군은 연일 서양식 최신 대포인 홍이포(紅夷砲)를 쏘아대면서 항복하라고 종용했다. 조선 조정이 목이 빠져라 고대하던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 때문에 동상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성을 지킬 의욕을 잃은 장졸들 가운데는 항복하자고 시위를 벌이는 자들까지 나타났다. 그 와중에도 신료들은 척화와 주화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인조는 눈물을 보이며 대책을 호소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1월26일.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청군은 바다에 익숙하지 못하여 수전(水戰)을 치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강화도 조선군 지휘부의 방심이 불러왔던 결과였다. 청군은 이에 앞선 1월22일, 조선에서 노획한 선박에 홍이포까지 싣고 강화도에 대한 상륙작전을 벌였다. 조선군이 변변한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강화도는 함락되었고, 피란했던 왕실 가족과 중신들은 전부 포로가 되었다. 강화도의 함락 소식은 남한산성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1월30일. 인조는 남한산성의 서문을 나와 현재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삼전도(三田渡)로 향했다. 이윽고 그는 높다란 수항단(受降壇) 위에 앉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의 예를 바쳤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세번 큰절을 올리고, 한번 절할 때마다 세번씩 머리를 바닥으로 조아리는 오랑캐식 항복 예식이었다. 원래 조선의 지식인들은 홍타이지를 포함한 여진족들을 인간이 아닌 ‘금수(禽獸)’로 경멸했다. 일부 인사는 심지어 청 태종을 ‘황태극(皇太極)’ 대신 홍태시(紅泰豕)라고 불렀다.‘붉고 큰 돼지’란 뜻이다. 그런데 인조가 ‘인간’도 아닌 ‘돼지’에게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청 태종은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은 뒤 사로잡은 포로들을 이끌고 철수길에 올랐다. 그러면서 인조에게 또 다른 다짐을 받아냈다. “내가 끌고 가는 조선인 포로들 가운데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도망치는 자는 불문에 부친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 단 한발짝이라도 청나라 땅을 밟은 뒤에 도망쳐 오는 포로는 조선 조정이 도로 잡아 보내야 한다.” 무시무시한 약조였다. 날이 갈수록 영토는 넓어지는데 인구가 부족했던 청은 조선인 포로들을 보배로 여겼다. 그들은 훌륭한 노동력이자 값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청은 10만이 훨씬 넘는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인조로부터 이같은 다짐을 받아냈던 것이다. 훗날 실제로 청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왔던 포로들은 이 ‘약조’ 때문에 청으로 다시 박송(縛送)되었다. 그리고 그 포로들은 청군에 끌려가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에 신음해야 했다. 호란 후에도 인조는 어렵사리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조선인 포로들의 통곡소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누가 안추원의 비극을 책임질 것인가? 1664년(현종 5년). 항복 후 27년이 지나 한 남자가 청에서 도망쳐왔다. 마흔한살의 안추원(安秋元)이 그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 개성 부근에서 살았던 열세살의 소년 안추원은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피란했다. 하지만 이듬해 강화도가 함락될 때 그는 청군의 포로가 되었고, 선양으로 끌려갔다. 그는 선양에서 한족 출신 대장장이에게 팔린 신세가 되었다. 호란이 끝난 뒤, 포로로 끌려왔던 조선인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몸값을 치르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하지만 안추원은 그렇지 못했다.1644년 명이 멸망하자 청은 베이징에 입성한다. 베이징을 새로운 수도로 정한 청 조정은 선양의 거주민들에게 베이징으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스물한살이 된 안추원은 그의 주인에게 이끌려 베이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18년이 지난 1662년(현종 3). 서른아홉의 장년이 된 그는 조선으로의 탈출을 결행한다. 산해관(山海關)을 통과하여 만주 벌판을 가로질러야 하는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산해관에서 청군에 붙잡히고 말았다. 베이징으로 송환된 그는 이마에 글자가 새겨지는 묵형(墨刑)에 처해졌다.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비원(悲願)은 처절했다. 다시 2년이 지난 1664년, 안추원은 마침내 청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정확히 27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가 사선을 뚫고 조선에 도착했을 때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여전히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금지하고 있던 청의 존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27년만에 목숨을 걸고 탈출한 자국 백성을 어찌 차마 돌려 보내겠는가. 청이 알까봐 쉬쉬하는 가운데 안추원은 내륙으로 옮겨졌다. 안추원은 고향을 찾았다. 하지만 고향에는 아무도 없었다. 병자호란으로 그의 가족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목숨을 걸고 다시 찾은 고향이었지만 그는 당장 생계조차 막막했다. 조정은 그를 받아주었을 뿐 생계대책을 마련해 주지는 않았다. 귀향의 감격도 잠시 뿐 배고픈 그에게 아무런 피붙이도 남아 있지 않은 고향은 그저 또 다른 이역이었을 뿐이다. 안추원은 절망 끝에 베이징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청으로의 귀환은 탈출보다 훨씬 위험했다. 1666년(현종 7). 그는 결국 고국을 탈출하려다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후 그가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처형되었을 것이다.2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던 그가 온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백성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 영의정까지 올라 안추원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하지만 위정자들의 오판에 떠밀려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비극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까? 병자호란을 통해 수많은 ‘안추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비극’을 불러왔던 최고책임자인 인조는 왕위를 유지했고, 책임을 져야할 신료들의 상당수도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전쟁 발생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적과의 싸움마저 회피하여 국왕과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은 인조 말년 최고위직인 영의정까지 올랐다. 오늘날. 병자호란의 참상을 떠올리면서 현실을 돌아본다. 꼭 10년전 ‘IMF 외환위기’가 불러온 칼바람 속에서 스러져갔던 수많은 민초들. 비극을 초래한 책임자들의 과실 또한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수많은 생령들을 도탄에 빠뜨려 놓고도 자신의 과실을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들의 ‘무책임’은 시공을 초월하여 유전되는 것일까. 비극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내지 못하면 또 다른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소용돌이치고 정치권의 난맥상과 민생의 어려움 때문에 걱정이 쌓여가고 있는 오늘, 370년전 병자호란의 비극을 되돌아보는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교수> ●필자 한명기 교수는 ▲1962년생 ▲1985년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 졸업 ▲1997년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졸업(문학박사) ▲1998∼2001년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 ▲현재 명지대 사학과 교수.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논저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광해군’(2000) 외 다수 ●청태종 송덕비(위 사진) 병자호란 이후 청이 조선에 강요해서 세운 청 태종 송덕비. 병자호란의 전말을 적었다. 사진은 일제시대에 촬영된 것으로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 삼전도에 있었다. 현재도 삼전동에 있으며 사적 101호로 지정돼 있다.
  • 문화와 유적, 그 사이길을 걷다

    문화와 유적, 그 사이길을 걷다

    서울시는 초·중·고교생들이 뜻깊은 겨울 방학을 보내도록 도심 4대문 안의 문화유적을 걸으면서 둘러보는 ‘4대문안 도보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도보 관광은 하루 3시간 정도 전문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시내 궁궐과 문화재, 문화시설 등을 들러보는 프로그램이다. 종묘·창경궁과 경복궁·효자동 등을 방문하는 전통문화 중심지역 코스와 덕수궁·정동의 근대문화 중심지역 코스, 청계천 등을 방문하는 역사생태 복원지역 코스 등 5개 지역에 7개 코스가 마련돼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송파 112층·중구 130층 등 추진… 서울시 반대로 미지수

    서울시 자치구의 초고층건물을 향한 ‘러브 콜’이 뜨겁다. 지역내에 서울의 랜드마크가 세워지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고, 그에 따른 가시적인 경제 및 홍보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고층건물은 도시의 상징으로서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하지만 한편으로는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도시미관을 헤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 교통문제를 비롯한 환경영향평가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서울시, 문화재청, 국방부 등의 반대를 뿌리치고 자치구의 초고층 건물 건립의 꿈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어디에 세워지나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지역 중 가장 주목되는 곳은 단연 송파구다. 롯데그룹은 송파구청 청사 맞은 편에 112층(555m)짜리 제2롯데월드 건립 계획을 세웠다. 또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가 건설교통부의 용역으로 마련한 ‘압축도시 개발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송파신도시에는 30∼40층의 고층빌딩 숲이 조성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보고서는 신도시의 개발밀도를 높이고, 넓은 녹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층건물을 짓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중구는 서울시가 도시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해 재개발을 추진 중인 세운상가 일대에 130층짜리 초고층 빌딩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주변에는 30∼40층의 건물을 세워 청계천변에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만든다는 복안이다. 마포구 상암동의 디지털미디어센터(DMC)는 130층(540m)으로 디자인했다. 방송, 영화, 게임,IT 등 디지털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한 세계최고층 비즈니스센터로 만들 계획이다. 철도공사는 용산구 철도기지창에 최고 100층짜리 복합빌딩 신축을 추진 중이고, 성동구 성수동 뚝섬에는 현대차그룹이 110층 빌딩을 세우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곳곳에 걸림돌 초고층빌딩은 그 높이의 매력만큼이나 어려움도 크다. 우선 가까이 있는 도로와 경계선에 따라 높이에 제한을 두는 ‘사선제한’을 고려해야 한다. 서울처럼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곳에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또 문화재 경계에서 27도로 사선을 그었을 때 이보다 높아질 수 없도록 한 ‘앙각제한규정’도 신경써야 한다. 택지가격이 크게 올라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현대자동차가 추진하는 뚝섬 110층 건물이나, 용산의 복합빌딩, 중구의 초고층 건물 건립 계획이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중구는 지난해 말 ‘한국초고층건축포럼’이 심포지엄을 열어 “종묘 청계천 남산까지 이어지는 녹지축의 복원과 도심재생을 위해 세운상가에 초고층 건물을 세우는 것이 옳다.”고 주장해 건립에 탄력을 받은 듯 보였다. 그러나 “4대문 안에 건물높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서울시의 입장이 워낙 확고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상암DMC는 사업자 선정에 어려움을 겪으며 원점을 맴돌고 있어 향후 일정이 불투명한 상태다. 이밖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교통영향평가, 전력수급 및 상·하수도 문제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아 실현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제2롯데월드, 해결책 찾나 그나마 송파의 제2롯데월드는 실마리가 풀리는 듯하다. 제2롯데월드의 경우에는 국방부의 고도제한이 걸려 있었다. 공군측은 “제2롯데월드가 서울공항의 비행안전구역 일부에 포함되므로 군용항공기지법에 따라 고도제한이 필요하다.”며 신축에 제동을 걸었다. 롯데측이 송파구에 첫 설계안을 제출한 1995년 이후 제자리를 맴돌던 제2롯데월드 건립은 이달 중에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 관계자는 “비행안전성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자문단의 의견을 구하고 있다.”면서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행정협의조정위원회를 열고 이달안에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건축허가 후 착공에 들어가 5년내 완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송파구의회가 지난해 말 ‘세계 최고층 건축물 건립 촉구 건의안’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출하면서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청계천변 초고층 빌딩 들어서나

    청계천변 초고층 빌딩 들어서나

    ‘중구의 일편단심 초고층 빌딩 사랑의 결말은?’ 중구가 서울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심 초고층 빌딩 건축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다. 중구는 20일 “낙후된 강북 지역의 도심 개발과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용적률을 높이는 것보다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건물 높이의 제한을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지난 18일에는 한국초고층건축포럼 주최의 ‘도심 재생과 초고층 건축의 역할’이라는 국제 심포지엄을 후원하기도 했다. 이날 심포지엄 주제 발표자로 나선 고려대 건축과 여영호 교수는 “종묘와 청계천, 남산까지 이어지는 녹지축의 복원과 도심 재생을 위해서는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세운상가 일대의 높이 규제를 완화하고 초고층 건축물을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 교수는 “도심부의 초고층 건축물 건립을 위한 최소 부지로 8000평가량이 필요한데 어느 지역보다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세운상가 일대가 가장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청계천의 녹지 공간과 교차된 세운상가의 녹지 공간을 훨씬 효과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미 개발 포화상태에 다다른 강남보다 메트로폴리탄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는 강북 도심, 그 중에서도 현재 개발된 청계천 지역과 연계해 개발하는 것이 서울의 도심 기능을 회복하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또 “초고층 건축물이 그 자체 규모만으로 일반 건축물에 비해 상당한 부담감을 줄 수 있지만 저층부를 열린 공간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개방한다면 그 공간을 통해 북한산과 남산을 볼 수 있는 시각적인 경관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와 관련, “교통과 환경 문제를 감안하면 4대문 안에 초고층 빌딩 건축을 허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원칙을 고수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Metro] “세운상가 개발 신중해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자문기관인 이코머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가 서울시가 추진 중인 ‘세운상가 개발 계획’과 관련, 시에 재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8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이코머스는 지난 9월 “세운상가 개발시 인근 종묘의 경관을 저해하지는 않는지 신중히 검토해달라.”는 내용의 권고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이 단체는 권고문에서 “세운상가 일대를 너무 높이 개발할 경우 종묘 주변의 문화적 경관을 해칠 수 있다.”며 사전에 경관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코머스는 문화재와 기념물의 보호·보존을 위해 조사·연구를 수행하는 비정부기구로, 문화재 보존의 타당성 등을 조사해 유네스코에 자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시 관계자는 “국내법상 세운상가 일대는 문화재 보호구역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면서 “단 국제적인 단체의 권고인 점을 감안해 권고안을 우호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Seoul in] 노인단체·시민등과 종묘공원 대청소

    종로구(구청장 김충용) ‘훼손된 종묘광장 공원을 살리자’라는 슬로건으로 다음달 1일 오전 7시30분부터 종묘광장 공원을 이용하는 노인단체와 시민, 구민들과 함께 대청소를 실시한다. 노인단체들의 참여를 돕기 위해 종묘광장 공원 곳곳에 현수막을 설치했다. 자치행정과 731-1640.
  • ‘反FTA집회’ 오늘도 충돌하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29일 제2차 범국민 총궐기 대회를 예정대로 강행키로 한 가운데 경찰이 집회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양측간 충돌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경찰청은 28일 오전 전국 지방경찰청장 화상 회의를 열어 “29일 불법 시위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전·의경 및 경찰관 5만여명을 동원, 집회를 사전 차단하기로 했다. FTA범국본도 이날 오후 2시 광화문 열린 시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집회 금지 통고에도 불구하고 29일 집회는 평화적으로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범국본에 따르면 29일 오후 2시쯤 서울역 광장, 종묘공원 등에서 사전 집회를 연 뒤 오후 4시 서울광장에서 1만여명이 모여 본집회를 열 계획이다. 부산, 대구, 울산, 제주 등 10여곳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경찰은 전국의 가용 경찰력을 총동원해 서울지역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상경하는 농민 등 시위 참가자들을 출발지에서부터 사전 차단하기로 했다. 또 시위대가 서울광장 등 도심 지역에 집결하지 못하도록 미리 차단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시위대를 분산, 고립시킨 후 강제 해산을 종용할 방침이다. 김철주 경찰청 경비국장은 “지난 22일 1차 집회가 관공서, 기물파손 등 불법 폭력시위로 변질된 전례로 미루어 29일에도 폭력 시위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차벽(車壁)을 동원하는 등 모든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범국본은 기자회견에서 “29일 종묘에서 5000명 규모의 집회를 연 뒤 서울시청까지 행진하는 내용의 집회신고를 했지만 경찰이 24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불허 방침을 밝혔다. 자유롭고 평화적인 집회의 자유 보장은 헌법에 명시된 기본적 권리인 만큼 집회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범국본은 “집회는 평화적으로 진행할 예정이지만 경찰이 29일 집회에 탄압으로 일관한다면 연행되는 한이 있더라도 한·미 FTA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민주노총은 2차 궐기대회 당일인 29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3일간 전면 총파업을 벌이고 3차 궐기대회가 열리는 6일에도 전면 총파업을 할 예정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反FTA 시위 집행부 42명 체포영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등이 계획 중인 서울 2차 궐기대회를 경찰이 최종금지키로 해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범국본, 농민연합, 전국농민단체협의회 등은 29일 종묘공원, 서울역광장, 농협중앙회 앞 등에서 반(反)FTA 집회를 열겠다고 27일 신고했으나 경찰은 집회금지를 통보했다.경찰은 집회가 공공안녕질서를 위협할 수 있고 교통체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등을 금지 이유로 밝혔다. 집회 48시간 전까지로 규정된 법정신고 시한이 지나 합법집회는 불가능해졌다. 한편 경찰청은 폭력사태로 번진 지난 22일 범국본 집회 주최측 관계자 42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출석하지 않은 주최측 관계자 101명 가운데 출석요구에 3차례 불응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보도블록도 내년부터 물 청소

    보도블록도 내년부터 물 청소

    “보도블록 찌든 때가 말끔히 없어지니까 속까지 시원합니다.” 22일 중구 서울시의회 본관 앞 보행자도로를 청소차량이 물로 씻어내는 모습을 본 한 시민의 말이다. 그는 “더러운 줄은 알았지만, 바닥에서 시커먼 물이 콸콸 쏟아질 정도라니 놀랍다.”고 혀를 내둘렀다. 서울시는 서울 대기질 개선을 위해 내년 2월부터 보도블록 물청소를 한다고 이날 발표하고, 실제 물청소 모습을 공개했다. 보도 물청소 차량은 폭 1.5m, 길이 3.6m로 소형이다. 보행자 통행을 방해하지 않고, 좁은 골목길까지 다닐 수 있다. 물탱크(1.5t)에 고압 살수장치(앞쪽), 회전브러시(뒤쪽) 등이 달려 있다. 인도를 지나면서 앞쪽에서 물을 분사하면 뒤쪽 회전브러시가 바닥의 먼지와 찌든 때를 쓸어낸다. 길이 20m짜리 물 호스가 앞에 달려 있어 보도 시설물, 벽면 등도 손쉽게 청소한다. 노즐을 바꾸면 가로수에 물도 줄 수 있다.1대당 가격은 3000만원. 우선 유동인구가 많은 종로·중·성동·동대문구 등 4개구에 보도 물청소 장비 12대를 투입하고 2009년까지는 전 자치구로 확대할 계획이다. 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 시내 간선도로를 물청소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는 규모가 작은 뒷길, 골목길도 물청소 대상으로 확대했다. 이번에는 보도 전용 물청소 차량을 개발,10월16∼23일 동대문∼종로4가∼종묘시민공원, 광화문∼정부종합청사에서 시범운행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길섶에서] 창덕궁의 새 안내판/황성기 논설위원

    새 단장했다는 안내판이 궁금해 늦가을 비가 살짝 뿌린 창덕궁을 어제 찾았다. 돈화문을 지나자마자 새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안내판을 보자고 둘러 본 것이어서 그렇지 무심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다. 비를 머금은 단풍나무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어른 키만 한 기와색 안내판은 설치미술 같다. 고궁의 고적한 느낌과 색감에 절묘히 조화를 이룬다. 나무나 철판에 페인트로 써 넣은 글씨가 벗겨지거나 할 염려도 없이 고급 알루미늄 재질을 썼다. 설명문도 간결하다. 곧 철거할 옛 안내판을 보니 울긋불긋 단청에 설명도 잔뜩 써 놓아 볼썽사납다. 창덕궁과 문화지킴이 협약을 맺은 아름지기라는 단체가 우리가 디자인할 테니 촌스러운 안내판을 바꾸자고 문화재청에 제안한 것이 먹혔다. 수억원이 들었다는 디자인 비용은 아름지기가 냈다. 안내판이 뭐 대수냐고 하겠지만 알기 쉽고 보기 좋고 문화유산과 어울리는 안내판이 우리에겐 없었다. 이런 안내판이 경복궁과 종묘에도 세워진다고 하니 그저 반가울 뿐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길섶에서] 청계천의 낮과 밤/ 진경호 논설위원

    집과 회사가 가까워 종종 찾는 청계천은 위안입니다. 수다스러운 개울이 일상에서 멍든 가슴을 간지럽히고, 결국은 피식 웃게 합니다. 청계천이 한여름 도심의 기온을 조금 낮춘다는데 시시콜콜한 일로 훅 달아오른 체온을 떨어뜨리는 효과는 더 큽니다. 한데 이 청계천의 낮과 밤 표정이 언제부턴가 달라졌습니다. 낮엔 주변의 직장인과 관광객, 그리고 어르신들이 세대 구분 없이 뒤섞여 거닙니다만 밤엔 어림없습니다.10∼20대 연인들이 점령(?)합니다. 조명 은은하죠, 적당히 컴컴하죠, 분위기 잡아주는 풀섶 있죠…. 마음의 틈새를 비집기엔 제격인 겝니다. 세대별로 이용시간대를 정해 놓은 것도 아니건만 청계천은 이렇게 해높이에 맞춰 직장인의 휴식터에서 가족의 산책길로, 다시 연인의 공간으로 탈바꿈합니다. 시간이 좀 필요할까요. 세대 구분 없이 늦은 밤에도 10대 연인,60대 부부가 따로 또 같이 뒤섞여 거니는 청계천 풍경을 보려면 말이죠. 하긴 갈 곳 없는 어르신들이 온종일 갇혀 있는, 건너편 을씨년한 종묘공원보단 그래도 한결 숨통이 트이긴 합니다만….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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