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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지역색 (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지역색 (상)

    ●조선시대 한양은 ‘경조 5부’ 행정구역으로 구분 오늘의 서울에도 강·남북이라는 지역 차가 실재하지만, 전통적으로 서울은 지독한 지역색이 작용하던 도시였다. 대개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양태를 보였다. 조선 500년 내내 개천(청계천)을 경계로 북쪽과 남쪽 두 개 구역으로 양분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종로를 중심으로 한 조선인 거주지역과 남산아래 본정통(충무로) 중심의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진화했다. 광복 이후 갈라진 좌우 이데올로기는 결국 국토의 허리를 남과 북으로 끊어놓았고,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 전개된 남·북한의 체제 안보경쟁이 강남개발을 촉발했다. 이때 서울은 한강을 경계로 강북과 강남 두 개의 도시로 양분됐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은 두 개의 도시로 이뤄졌다. 서구개념으로 치면 강북은 구도심(Old Town)이요, 강남은 신도심(New Town)이다. 한강은 나루터와 나룻배가 사라진 대신 다리로 촘촘하게 이어졌지만 두 도시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격차도 심화된 느낌이다. ‘한강의 기적’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한강 이남의 초고속 성장사였다. 양극화는 한강을 사이에 둔 남과 북 양극에서 빚어진 현상일 수도 있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만큼 문화적 이질성도 고착화하고 있다. 몇 년 전 조사에서 강남과 강북 아파트의 평균매매가 차이가 3.3㎡당 무려 1337만원이었다. 강남이란 ‘나’와 ‘남’이 다름을 보여주는 주거의 ‘차별 짓기’를 통해 몸값을 부풀린 아파트 왕국이다. 서울 강남·북을 뺨치는 지역색이 조선시대 한양에 존재했다. 도시학자들은 서울을 전통도시와 근대도시가 공존하는 ‘이중 도시’(Dual City)로 분석한다. 도시사학적 시각에서 서울의 공간적 특성을 근대 이전과 이후로 나눠 본다면 근대 이전 서울은 남촌과 북촌으로, 근대 이후는 강남과 강북으로 양립하고 있다. 조선시대 한성부(서울시청)는 ‘경조 5부’(京兆 5部)라고 하여 동부·서부·남부·북부·중부 등 5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눠 다스렸다. 오늘날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경기도 시흥·과천·용인·광주였다가 서울로 편입된 한강 이남 10개 구를 제외한 한강 이북 15개 구 가운데 사대문 안에 해당하는 종로·중구·서대문·동대문 등 4개 구가 옛 경조 5부의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경복궁과 사대문을 축으로 나눠보면 북부는 경복궁~창덕궁 사이, 동부는 창덕궁~흥인지문 사이, 서부는 돈의문~숭례문 사이, 남부는 숭례문~흥인지문 사이쯤이다. 5부(部)가 곧 5촌(村)이다. ●사색당파, 제사·옷고름·갓끈 등으로 차별화 경조 5부 가운데 북부(가회동·계동·안국동·재동·경운동)와 동부(이화동·동숭동·혜화동·충신동)를 북촌체제로, 서부(정동·새문안)와 남부(필동, 묵동, 남산동·주자동, 인현동)를 남촌 체제로 구분할 수 있다. 개천을 경계선으로 긋는다면 북쪽은 권문세가와 현역 벼슬아치 그리고 그들을 돕는 아전(衙前) 및 겸인(?人)들의 주거지구였다. 개천부터 목멱산(남산)까지 남쪽에는 지체 낮은 관리나, 퇴락한 양반, 별 볼 일 없는 무반들이 주로 모여 살았다. 서울연구가 전우용은 ‘서울은 깊다’에서 “남촌 사람들은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을 즐겼고, 북촌 사람들은 떡을 자주 만들어 먹었다는 ‘남주북병’(南酒北餠)이란 속담은 두 구역 사람들의 기질이나 처지가 그만큼 달랐음을 일러준다”고 분석했다. 동·서·남·북촌이 양반이나 관료 그리고 그들을 떠받치는 아전들의 거주구역이라면 중촌(中村)은 중인(中人)들의 터전이었다. 의관, 역관, 율사, 화원, 도사 등 중인에다 상인, 군속들이 중부(다동·무교동·수표동, 입정동, 주교동, 관수동) 일대에 둥지를 틀었다. 오늘의 을지로와 청계천변이라고 보면 된다. 중인이란 용어도 중부 혹은 중촌에 사는 사람에서 생겼다. 케케묵은 조선의 행정구역인 경조 5부를 들먹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중인이 사는 중촌을 제외한 4개의 양반 촌을 중심으로 조선 중기 사색당파(四色黨派)가 발원했기 때문이다. 동인의 거두 김효원(1532~1590)이 낙산 아래 동촌에 산다고 하여 그 일파가 동인(東人)이 되었으며, 이에 맞선 심의겸(1535~1587)이 인왕산 아래 서촌에 살았다고 하여 서인(西人)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동인 중 남산 아래 진고개에 사는 일파가 남인(南人)이 되었고,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거주하는 몇몇이 북인(北人)을 형성했다.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 이후 정권을 잡은 서인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분리됐다가 노론이 영조와 정조를 거쳐 고종에 이르기까지 150년 이상 득세했다. 노론의 거주지가 이른바 북촌이었다. 풍수에서 한양의 최고 명당은 백악 아래 경복궁이었다. 다음이 응봉 아래 창덕궁과 종묘, 성균관 자리다. 백악과 인왕산 사이 장동·청류계·백운동·옥류동·인왕산동도 빠지지 않았고, 백악과 응봉 사이 지금의 율곡로 일대도 최고 길지의 하나였다. 남산을 바라보는 풍광이 좋고 터가 넓어 권문세가들이 큰 집을 짓고 교류했다. 이에 비해 남산골은 음지였으나 배수가 잘되고 지하수가 풍부해 하급관리들이 살 만한 곳으로 쳤다. 고종 대인 1864년부터 1887년까지의 기록인 ‘매천야록’에서 황현은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고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이 섞여서 살았다”라고 썼다. 조선 말기 북촌에는 노론이 살았고, 소론과 남인, 북인은 주로 남촌에 어울려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붕당(朋黨)은 제사 모시는 법, 옷고름이나 갓끈 매는 법을 서로 달리 하면서 차별 짓기를 했다. 사화(士禍)가 이 같은 지역색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금의 강·남북 구별 짓기가 무색할 지경이다. ●서촌은 새문안·정동, 상촌이나 윗대로 불러야 서울의 지역색과 구역분화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1924년 발행된 개벽 6월호 ‘경성중심세력의 유동’에서 소춘은 “경성은 오촌(五村), 양대, 자내(字內), 오강(五江)으로 나뉜다”라고 주장했다. 조선후기 들어 신분과 계층이 세분화되고 신분에 따라 거주지역이 정해진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오촌은 경조 5부의 지역공간과 겹친다. 양대는 윗대(웃대)와 아랫대로 나뉜다. 윗대는 상촌(上村)이라고도 했는데 경복궁 주변의 육조 관아가 있던 사직동·내자동·당주동·도렴동·체부동·순화동·통의동에 살던 아전이나 겸인, 내시의 거주지를 일렀다. 아전이란 ‘관아 앞에 사는 사람’이라는 조어였고, 겸인은 권문세가의 경호원 또는 비서격이었다. 이들은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을 통해 궁을 드나들었다. 인사동을 중심으로 중촌에 살던 중인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였다. 정교는 ‘대한계년사’에서 “상촌인은 평민 중에서 각 부의 서리 및 공경가의 겸인이 되는 자인데, 그들은 평민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자라고 칭한다”라고 했고, 정래교는 ‘임준원전’에서 “경성의 민속은 남과 북이 다르다. 백련봉 서쪽에서 필운대까지가 북부인데 주로 가난한 집들로 얻어먹는 사람들이 산다. 그러나 때때로 의협 있는 무리가 의기로 서로 사귀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며, 약속을 중히 여긴다. 또 시인 문사들이 시를 다투었다. 풍속이 그러했던 것이다”라고 윗대의 풍속을 평했다. 또 이가환은 ‘옥계청유첩서’에서 “경복궁의 남쪽은 육조이다. 그 서쪽은 좁은 땅이다. 때문에 서리들이 많이 살며 일에 익숙하고 질박한 이 적다”라고 윗대의 지역을 구분했다. 요즘 서촌이라고 부르는 경복궁 서쪽지역이 바로 윗대이다. 일제강점기 옛 옥류동과 인왕산동을 강제로 합쳐 만든 새로운 동 이름인 옥인동 쪽으로 흐르는 옥계천의 상류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촌에 빗대 서촌이라고 불렀지만 애당초 잘못된 지명이다. 서촌이란 조선시대 경조 5부 중 돈의문 부근을 지칭하던 지명임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경복궁의 서쪽이라 하여 서촌이라고 한다는 논리대로라면 북촌은 동촌이 돼야 할 판이다. 구태여 새로운 지명이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윗대 혹은 상촌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아랫대(下村)는 중촌과 남촌 중간지대를 지칭하는데 지금의 오간수문~광희문 사이쯤이다. 이 일대에 자리 잡았던 어영청이나 훈련원 소속 군병들이 주민을 이뤘다. ‘개벽’(1924년 6월)에서 “우대(웃대)는 육조 이하 각사에 소속된 이배, 고직 족속이 살되 특히 다방, 상사동 등지에 상고 통칭 시정배가 살았고…아래대(아랫대)는 각종 군속이 살았으며 특히 궁가를 중심으로 하여 경복궁 서편 누하동 근처는 대전별간파들이 살고…”라고 구역특징을 설명했다. 황성신문(1900년 10월 9일자)은 “사대부의 말투는 극히 화미절이하며, 북촌 사람들의 말투는 매우 부드럽고 조심스러우며, 남촌 사람들의 말투는 빠르며, 상촌사람들의 말투는 공경스러우며, 중촌사람들의 말투는 기민하며, 하촌사람들의 말투는 상스러우며…”라면서 조선말 오촌, 양대사람의 인적특성을 총정리했다. 자내란 한양도성을 쌓거나 보수, 경비하고자 한성부가 담당구역을 정한 구역을 말한다. 천자문의 ‘천(天)자’이면 이 글자가 적힌 구간에 거주하는 사람을 뜻했다. 성안을 돌아다니며 계란이나 채소, 장작을 팔았고 분뇨를 퍼다가 가축을 키웠다. 오강은 한강과 용산, 서강 등 3강에 마포삼개와 망원을 합해 오강이라고 이름 붙였다. 오강주민들은 나루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나루터에서 잔뼈가 굵은 사공, 짐꾼이거나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떼다 파는 기가 센 사람들이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봉심의식·단종제… 강원서 왕릉 테마 문화제

    강원도에서 ‘준경·영경묘 봉심의식’과 ‘단종문화제’ 등 조선시대 왕릉을 테마로 한 문화제가 곳곳에서 열린다. 17일 삼척시와 영월군에 따르면 조선시대 국왕의 준경·영경묘 등 왕릉급 참배를 재현한 봉심의식과 비운의 왕 단종의 넋을 기리는 단종문화제가 줄줄이 펼쳐진다. 삼척지역 주민들이 오래도록 지켜온 조선왕조 발상지 준경묘·영경묘 봉심행차를 재현하는 행사가 19일과 20일 삼척 죽서루 등에서 열린다. 봉심행차는 국왕이 종묘나 왕릉을 참배하던 의식으로, 국왕을 대동한 관찰사와 수호군, 유생, 나졸들이 행차하는 화려한 모습을 재현한다. 국가사적 제524호로 지정된 준경·영경묘는 태조 이성계의 선조묘다. 19일 각종 세미나와 관찰사 봉심행차가 재현되고, 죽서루 광장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인 줄타기 한마당 행사가 펼쳐진다. 48회째를 맞는 단종문화제도 오는 25일부터 사흘간 장릉과 동강 둔치 등 영월읍 일대에서 펼쳐진다. 올 단종제는 ‘단종, 몸짓으로 말하다’를 주제로 25일 장릉에서 전국 일반 및 학생백일장과 도전퀴즈탐험이 열리며 동강 둔치에서는 민속예술경연대회와 정순왕후 선발대회가 개최된다. 저녁에는 개막식과 함께 불꽃놀이·유등 띄우기도 펼쳐진다. 26일에는 가장행렬을 시작으로 장릉에서 단종과 충신 제향이 거행되고 헌다례와 제례악·육일무·소품발표가 선보인다. 동강 둔치에서는 국장을 치르기 전 단종의 넋을 기리는 견전의(遣奠儀)를 거행한 뒤 야간 칡줄행렬에 이어 군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축하공연과 단종 위패를 모시고 숙종 때부터 시작된 길이 70m, 무게 6t의 동서 양편 칡줄다리기·칡줄 돌며 소원빌기가 진행된다. 삼척·영월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리조트 할인·수목원 공짜… 오려두면 5월엔 ‘대박 아빠’

    리조트 할인·수목원 공짜… 오려두면 5월엔 ‘대박 아빠’

    올해 처음 시행되는 ‘관광 주간’에 맞춰 전국의 숙박업소와 음식점, 유료 관람시설 등 관광 관련 업체 1000여곳에서 대대적인 할인행사가 펼쳐진다. 전국의 관광지마다 262개의 관광주간 특별 이벤트도 마련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5월 1∼11일 관광 주간을 맞아 정부 부처와 각 지자체, 1168개 관광 업소가 동참한 가운데 전국 각지에서 여행·체험 행사와 할인 제도를 시행한다고 15일 밝혔다.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관광 주간 제도는 가을(9월 25일∼10월 5일)에도 한 차례 시행될 예정이다. 관광 주간에는 경복궁 등 4대 궁과 종묘 입장료가 50% 할인되고, 코레일 관광전용열차가 증편돼 20~30% 싼 가격으로 운영된다. 국립수목원과 국립자연휴양림 등은 초등학생 가족에 한해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전국 26개 지역의 시티투어도 할인 요금으로 손님을 맞는다. 한화리조트, 오크밸리, 파인리조트 등 전국 251개 숙박시설과 대구 안지랑곱창거리, 봉평메밀음식협회 등에 소속된 438개 음식점, 춘천 물레길 카누체험 등 9개 창조관광기업, 23개 쇼핑센터, 난타 등 9개 인기공연 집단 등도 이번 할인 캠페인에 동참했다. 자세한 내용은 관광 주간 홈페이지(spring.visitkorea.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부 부처 장차관과 기업 대표 등도 여름 휴가를 관광 주간에 가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염상섭 만나려면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염상섭 만나려면

    지난 1일 횡보 염상섭(1897~1963) 상이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에서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종로출입구 쪽으로 옮겨져 설치됐다. 김영중의 작품인 염상섭 상은 함께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 형태의 조각품으로 1996년 ‘문학의 해’에 문인들이 한국근대문학을 대표할 인물로 염상섭을 뽑은 것을 기념해 설치됐다. 처음 종로구 종묘광장 입구에 설치됐던 상은 2009년 종묘광장 정비사업 때문에 엉뚱하게 삼청공원으로 이전됐었다. 이후 염상섭 상에 걸맞은 장소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문화계와 시민사회는 광화문이라는 새 터전에 만족하는 눈치다. 지식인, 문인, 언론인으로서 그가 생전에 활동한 곳이기 때문이다. 염상섭은 지금도 광화문 근처에 모여 있는 경향신문, 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 동아일보, 조선일보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하며 작품활동을 폈다.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개벽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두 파산’, ‘만세전’ 등의 작품이 있고 ‘삼대’를 탈고한 뒤 매일신보에 연재한 ‘무화과’와 ‘백구’를 후속작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울릉도 상징 원조 ‘명이나물’을 지키자

    경북 울릉군이 울릉도를 상징하는 ‘명이나물’(산마늘) 지키기에 나섰다. 최근 들어 육지에서도 명이나물 재배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면서 울릉도 명이나물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릉도 개척 당시 섬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서 ‘명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만큼 울릉도 주민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나물이다. 명이는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생채 ㎏당 1만 8000~2만원(지난해 기준)의 비싼 가격에 팔린다. 아미노산과 비타민 함량이 많아 강장, 피로 해소 등에 탁월한 웰빙식품으로 주목받으면서 육지에서도 재배를 시작했다. 이 때문에 어디서든 명이를 생산해 싼 가격에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과 화산섬 울릉도의 특별한 환경에서 자라는 명이가 ‘정통’이란 주장이 맞서고 있다. 상주시 농업기술센터는 지역 특화 시범사업으로 추진한 산마늘 평지 재배에 성공했다고 9일 밝혔다. 낙동면 승곡리 조용권(55)씨의 밭 2000㎡에 산마늘을 심어 처음 230㎏을 수확했다. 시 농업기술센터는 내년부터 산마늘 재배를 다른 농가들로 확대할 계획이다.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황상철(63)씨는 밭 1만㎡에서 곧 명이를 수확한다. 3~4년 전 조성한 명이 밭 1만 6000여㎡ 가운데 일부다. 명이는 4년 이상 키워야 최고 품질을 인정받는다. 2004년 예천군에 귀농한 손진욱(65·용문면 사부리)씨는 2009년부터 소백산 국사봉(717m) 자락 4000㎡ 밭에서 명이를 생산하고 있다. 이에 울릉군과 지역 경찰 등은 이날부터 6월 말까지 명이 종묘 육지 반출 특별 합동단속에 들어갔다. 올해 수확기(4월 21일~5월 10일)를 앞두고 벌써 일부 농가가 국유림 등지에서 불법 채취한 명이 종자를 돈을 받고 판매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불법으로 산나물, 산약초 등을 캐다 적발되면 최고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군 관계자는 “특산물인 명이가 육지로 뿌리째 불법 반출돼 전국 곳곳에서 연간 30t가량 생산되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명이를 지키기 위해 불법 행위 단속은 물론 지리적 표시 단체 표장 출원, 훼손된 자생 군락지 복원 및 보존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울릉도 명이는 현재 350여 가구가 60만여㎡에서 재배해 연간 400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염상섭 像 광화문으로

    염상섭 像 광화문으로

    1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앞에서 제막식을 가진 ‘횡보 염상섭의 상(像)’을 시민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횡보 염상섭의 상’은 1996년 문학의 해에 염상섭이 한국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된 것을 기념해 종로구 종묘공원 입구에 설치됐다가 2009년 종묘공원 정비 사업 과정에서 삼청공원 약수터로 옮겨진 뒤 5년 만에 다시 광화문에 자리 잡았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시청각장애인 문화해설사 16명 경복궁 지키는 명예 수문장으로

    시청각장애인 문화해설사 16명 경복궁 지키는 명예 수문장으로

    “도성과 궁궐을 지키는 수문장이 된다니 무척 영광스럽습니다.” 시각장애인 골프 국가대표 선수이자 최고령 종로문화관광해설사로 뛰는 조인찬(61)씨는 26일 이같이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는 다른 시각장애인 4명, 청각장애인 11명과 오는 30일 오후 2시 경복궁 홍례문 앞에서 ‘경복궁 명예 수문장’으로 임명된다. 종로구는 명예 수문장으로 경찰, 소방관 등 매년 한 명만 선발했다. 하지만 장애인 16명으로 구성된 종로문화관광해설사의 노력을 인정해 처음으로 단체를 임명했다. 구 관계자는 “장애인들에게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는 데 기여한 게 인정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는 2011년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시청각장애인을 문화관광해설사로 양성했다. 이들은 이런 과정에서 배웠던 내용에 이해와 재미를 더해 재구성하고 장애인 눈높이에 맞게 고궁의 역사를 소개했다. 단순한 해설을 떠나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 해설사’를 자처한 것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종묘, 북촌 등 5개 코스에서 2012년 175회 1097명, 지난해 147회 973명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했다. 임명식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주관 아래 국왕 행차와 수문장 임명의식 재현, 명예 수문장 임명, 축하 공연 순으로 진행된다. 왕실 호위군 갑사(甲士)를 선발하는 활쏘기, 갑옷·깃발·무기 등 수문군의 복식과 소품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 부대 행사도 이어진다. 김영종 구청장은 “이번 임명은 장애인 문화관광에 대해 높아진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눈길 끄는 출마 예상자] 신장열 울주군수 예상 후보

    [눈길 끄는 출마 예상자] 신장열 울주군수 예상 후보

    신장열(61·새누리당) 울주군수는 29년간의 공직 생활로 익힌 전문성으로 도농 복합의 군 행정을 한 단계 향상시킨 행정 전문가다. 2008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재선에 성공했다. 울산시 종합건설본부장, 도시국장 등을 지내면서 도시계획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2011년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부회장과 울산시 구청장·군수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소통의 지도력도 쌓았다. 그는 군의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각종 민원에도 흔들림 없이 추진해 균형 발전을 이끌었다. 기업 육성·지역경제 활성화, 영남알프스 산악관광 기반 구축과 해양스포츠제전 유치 등의 성과도 거뒀다. 조사료 자급률 100% 달성을 비롯해 영남권 1호 로컬푸드 직매장 오픈, 연안바다목장 조성 및 고소득 수산 종묘 방류, 봉계 경관단지 조성 등 농어촌 지역의 균형 발전도 이끌어 호평을 받았다. 소외계층 복지사업에도 힘써 군이 기초생활 보장 분야 최우수 기관, 복지정책평가 최우수 기관 등에 뽑혔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독자의 소리] 종자주권 회복 물 건너가나/강대성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국내 굴지의 토종종자기업 농우바이오가 매각된다. 농우바이오는 창업 30여년 만에 창업주 고희선 회장의 타계로 장남 등 유족들이 상속을 받았으나, 1200여억원에 이르는 상속세 납부를 위해 유족들이 보유한 지분을 처분하기에 이르렀다. 농협을 비롯해 사모투자 전문업체 2개사가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농업단체들이 우려하는 것은 농우바이오가 누구에게 팔리느냐에 따라 종자주권 회복은 물론 종자산업의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IMF 때 매각된 흥농종묘와 농우바이오의 공통점은 창업주가 척박한 국내 종자산업을 일군 선구자라는 것과 두 기업 모두 IMF를 전후로 우리 농업인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또한 경영을 승계한 2세들이 결국 수성에 실패하고 3자에게 넘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종자산업을 농업계의 IT산업으로 보고 창조경제의 핵심 산업군으로 육성하고자 5000억원을 투입하는 골든시드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하지만 농우바이오의 향방에 따라 골든시드프로젝트가 될지 실버프로젝트로 전락할지 기로에 서 있다. 종자산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장기투자를 해야 하는 기간산업이다. 만약에 농우바이오가 사모투자업체에 인수된다면 장기투자는 물론 종자산업의 전문성도 지키기 어렵다. 농우바이오는 지금이라도 매물을 거두고 독자 경영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우리 농업인이 참여하는 소액 주주제를 도입하여 경영권도 방어하고 종자주권을 지킬 방법은 없는지 묻고 싶다.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강대성
  • 서울 종로에 사과나무를~

    서울 종로에 사과나무를~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라는 대중가요 가사처럼 서울 종로가 사과나무 거리로 다시 태어난다. 경북 영주시는 지역 사과 홍보를 위해 종로구 일대에 100여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기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식목일인 다음 달 5일 종로구 경복궁과 지하철 안국역 사이 화단 등 2곳에 수령 2~3년짜리 사과 묘목 60여 그루를 심을 계획이다. 종로4가 종묘 앞 회전교차로 내 녹지대에도 40여 그루의 사과 묘목을 심는다. 묘목은 ‘아리수’, ‘홍로’, ‘감홍’ 등 국산 품종이다. 시는 앞서 2007년과 2010년에 각각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공원과 청와대 녹지원에 250그루와 14그루의 사과나무 묘목을 심은 바 있다. 시는 서울과 영주의 기온 차가 그리 크지 않아 사과의 생육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지만, 서울의 일교차가 영주만큼 크지 않아 색상은 다소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김병각 영주시농업기술센터 주무관은 “종로 사과나무의 가지치기 등 관리 업무는 영주시와 서울시가 공동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종로구는 2000년 종로1가 제일은행 본점 앞 녹지대 등 종로 일대 4곳에 사과나무 15그루를 비롯해 앵두나무, 감나무, 모과나무 등 유실수와 소나무 등 총 17종의 수목 5600여 그루를 심었으나 관리 부실 등으로 상당수가 고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생황’ 대중화 앞장서는 연주가 김효영

    [김문이 만난사람] ‘생황’ 대중화 앞장서는 연주가 김효영

    봄은 생(生)이요, 동(動)이다. 지천에서 잔뜩 웅크리고 지내던 만물이 기지개를 켠다. 두꺼운 옷을 입었던 꽃망울들이 ‘까꿍’하며 하나 둘 얼굴을 내민다. 싱그러운 봄바람이 그것을 시늉하며 코끝을 간질인다. 저절로 눈을 감으니 잠시 취해버린다. 몽환 속에서 김홍도의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가 나타난다. 큰 소나무 아래에 한 사내가 ‘생황’(笙簧)을 처연하게 불고 있다. 그림 오른쪽 위에는 ‘균관삼차배봉시 월당처절승룡음’筠管參差排鳳翅 月堂凄切勝龍吟)이라는 글자가 날렵하게 적혀 있다. 무슨 뜻일까. ‘길고 짧은 대나무통은 봉황의 날개인가, 월당의 생황소리는 용의 울음보다 처절하네’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그림 속의 생황 연주자는 주나라의 태자 진(晉)이란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산수에만 뜻이 있어 계곡에서 노닐다가 15세 때 한 도사를 만나 생황을 배우고 나더니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버렸다는 전설도 있다고 한다. 김홍도의 ‘월하취생도’(月下吹笙圖)에도 한 서생이 맨다리로 양 무릎을 세우고 파초를 깔고 앉아 ‘생황’을 불고 있다. 뿐만 아니다. 신윤복의 ‘연당(蓮塘)의 여인’에서는 생황을 든 여인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고 ‘선유도’에서는 뱃머리에 걸터앉은 여인이 생황으로 풍월을 연주하며 뱃놀이의 흥을 돋우고 있다. 에구 어찌할거나, 염양춘(艶陽春)이다. 벌써 봄이 무르익어가는구나! 여기에 나오는 ‘생황’은 어떤 악기일까. 우선 그 역사를 잠시 되짚어본다. 아악(雅樂)에 쓰이는 관악기 중 하나로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알고 보면 천년 세월을 간직한 천상의 악기로 전해져 온다. 고구려, 백제 시대 때부터 널리 연주됐다는 기록이 ‘수서’와 ‘당서’ 등에 나타나 있으며 통일신라 때 제작된 오대산 상원사의 동종 비천상에 생황을 연주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세종 때 제조된 생황은 회례연에서, 성종 때에는 종묘제례악에서 향비파, 해금, 대금 등과 함께 연주됐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황엽장(簧葉匠)의 사망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생황을 만들 수 없게 되자 중국에서 구입해 연주했다는 내용이 ‘악장등록’과 ‘영조실록’에 전한다. 조선후기에 들어 생황이 널리 연주됐다는 사실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에도 잘 나타나 있다. 최근에 와서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서 기생 매향이 생황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며 세종문화회관 정면 벽의 부조 ‘비천상’에서도 두 선녀가 생황과 피리를 불고 있다. 생황은 우리나라 전통 관악기 중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화음악기로 음 빛깔이 밝고 아름다우며 합주에 자주 쓰인다. 특히 단소와 만드는 2중주는 ‘생소병주’(생황과 단소 합주)라고 할 정도로 조화를 잘 이룬다. 바가지 형태의 토대에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죽관(17, 24, 36관 등)을 꽂아 음정을 만들고 취구(吹口)를 통해 들숨 날숨으로 여러 화음을 내는 악기가 바로 ‘생황’이다. 전통적으로는 17죽관, 오늘날에는 24관의 생황이 주로 쓰이고 있으며 개량형태로 36관과 37관으로도 연주되고 있다. 생황은 생김새가 봉황이 날개를 접은 모양이라고 해서 봉생(鳳笙)이라고 하며 ‘하늘의 소리’ ‘천상의 소리’로 불리는 아름답고 신비한 악기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황이 다른 전통악기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이유는 조선시대 때 두 차례 큰 전쟁을 겪으면서 그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고, 조선후기에 다시 살아났으나 주로 기생과 상류층의 취향이라는 점에서 자생력을 제대로 얻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생황이 요즘 들어 젊은 연주자들에 의해 봄이 생동하듯 다시 연주되면서 예술인과 일반인들에게도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효영(40)씨가 1년에 100회 이상 무대에 설 만큼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생황 연주자로 알려져 있다. 독주무대만 한 달에 5~6회 정도 갖는다. 그러기를 13년째. 생황을 들고 전국은 물론 해외무대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이기도 한 그는 ‘해금, 생황, 피아노 앙상블 사이의 사계이야기’ ‘김효영 생황음반 환생’ ‘김효영 생황음반 두 번째 환생, 향가’ 등의 음반을 내고 생황의 소리를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삼청각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매주 수요일 오전 일반인들을 위한 연주회를 갖는다. 어째서 생황이 봄을 부르는 악기라고 할까. “우선 생긴 모양을 보십시요. 여러 죽관들이 생명의 솟아오름을 나타내고 있지요. 두 번째는 수룡음(水龍吟)을 들 수 있습니다. 수룡음은 한국의 전통악기 중 유일한 화음악기인 생황의 깊고 부드러운 음색에다 그 위로 하늘거리듯 맑고 고운 가락이 잘 어우러지는 곡입니다. 소리 자체가 봄꽃이 피어오르듯 반짝반짝거립니다. 특히 ‘신수룡음’은 겨울이 지나 다시 환생하듯 샘솟는 봄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생황을 ‘마치 봄볕에 모든 생물이 돋아나는 형상을 상징하고 물건을 생(生)하게 한다’는 뜻으로 기록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대표적인 생황곡으로 알려진 ‘염양춘’(무르익어가는 봄)은 전통가곡 중 계면조 ‘두거(頭擧)의 선율을 기악곡으로 만들어 차분하면서도 유려해 봄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생황은 과거에 단소와 이중주를 많이 했으나 지금에는 해금, 피아노 등 전통과 서양악기 사이에서 다양한 협주를 통해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생황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빼어난 화음을 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음색 또한 참으로 신비합니다. 현대음악과도 잘 어울려 국악의 대중화는 물론 우리 국악창작의 앞날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2009년 발표한 첫 번째 앨범 ‘환생’을 통해 전통의 수룡음을 오늘날 분위기에 맞게 재해석한 ‘신수룡음’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또한 2011년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향가와 생황의 만남’이라는 독주회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새로운 접목을 시도했다. ‘서동요’ ‘혜성가’ ‘제망매가’ ‘처용’ ‘찬기파랑가’ ‘헌화가’ 등 신라시대 향가 6곡을 생황의 선율과 화음에 맞게 창작곡으로 연주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 그는 “천년 전, 향가와 생황은 함께 존재했으며 생황에 담긴 신비로움은 여러 변화를 겪으며 다양한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면서 “향가의 낯선 어투에 담긴 내용은 지금도 충분히 음악적으로 공감되며 당시를 상상하게 된다”고 말한다.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인간사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 두려움, 슬픔, 관용, 용서, 고백 등을 담을 수 있는 것이 생황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뿐만 아니다. 그는 생황으로 동요, 클래식, 속주, 아르페지오 같은 새로운 주법을 선보이기도 하고, ‘방자전’ ‘왕자호동’ 등 영화와 발레음악, 그리고 컴퓨터 음악과의 크로스오버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넬라판타지아’, 피아졸라의 ‘탱고’, 비발디의 ‘사계’ 등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을 생황으로 거침없이 연주하면서 생황 전도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중국과 스페인, 오스트리아, 페루 등 외국 연주회를 통해 우리나라 전통 생황의 소리를 알리기도 했다. 오는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파리에 머물면서 다양한 창작활동과 현지 연주자들과 교류를 가질 예정이다. 이때에도 유럽 여러 나라에서 생황 연주회를 통해 한국 전통생황의 우수성을 알릴 계획이다. 어떻게 해서 생황과 인연을 맺었을까.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피아노를 곧잘 쳤다. 국악고등학교에서는 피리를 배웠다. 추계예술대를 나온 그는 여자 피리 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국립국악원에 들어갔다. 1년 정도 지날 무렵 스승인 손범주 선생의 권유로 추계예술대학원에서 생황연주와 작곡 등을 공부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피리를 배울 때 음색에 반해 처음 시작하게 됐는데 생황을 처음 본 순간 더 강렬한 매력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생황의 계보는 조선시대 마지막 장악원의 연주자 박덕인을 비롯 근대에 이르러 김계선, 김태섭, 정재국, 손범주 등으로 이어지며 최근에는 김씨를 필두로 여러 생황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의 꿈에 대해서는 “그동안 악기연주의 명맥을 어렵게 어이온 명인들의 노력과 최근 젊은 연주자와 작곡가들이 생겨나면서 대중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국내외로 열심히 뛰면서 한국형 생황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김효영은 스승 권유로 대학원때 생황 전공… 속주·아르페지오 새 연주법 개발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국악고등학교에서 피리를 배웠다. 추계예술대학을 졸업하고 국악원에 들어갔다. 이때 스승 송범주의 권유로 생황을 배웠고 추계예술대 교육대학원에서 생황을 전공했다. 생황연주는 28세 때부터 시작해 13년째 생황의 레퍼토리를 넓혀오고 있다. 동요, 클래식, 탱고도 연주하고 속주, 아르페지오 같은 새로운 연주법도 개발했다. 발레, 영화음악, 컴퓨터 음악을 넘나들며 생황 연주를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이기도 하다. 2005년 ‘고양 국악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아트 프론티어’로 선정됐다. 2013년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신진여성 문화인상’을 수상했다. 주요 독주회로는 ‘춤추는 생황’(2009, 서울 남산국악당), ‘천년의 사랑’(2010, 아람누리새라새극장), ‘환생’(2010, 국립부산국악원, 국립제주박물관), ‘전주세계소리축제초청 생황콘서트’(2011, 전주소리 문화의전당 연지홀), ‘국악열전 천년의 숨길, 마음에 귀 기울이다’(2012, 경기도 국악당), ‘컨플루언스앙상블 콘서트(2013,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김효영생황 단편영화 herstory’(2013, 대학로예술극장) 등이다. 음반으로는 ‘김효영 생황음반 환생’(2009)과 ‘해금, 생황, 피아노 앙상블 사이의 사계이야기’(2010), ‘김효영 생황음반 두 번째 환생, 향가’(2012) 등이 있다.
  • [저자와 차 한잔] ‘광인 정도전’ 펴낸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

    [저자와 차 한잔] ‘광인 정도전’ 펴낸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

    “우리 국민은 지구 상의 그 어느 민족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지도자들만 제대로 서면 세계를 이끌어가는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백성이 주인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쓰다가 그 꿈을 다 펴지 못하고 사라져간 삼봉의 정신이 오늘 우리 사회와 지도층의 가슴 속에 되살아나야 합니다.” 박봉규(61) 건국대 석좌 교수가 이 같은 요지를 담은 책 ‘광인 정도전’(아이콘북스)을 펴냈다. ‘정도전 조선 최고의 사상범’에 이어 2년 만에 펴낸 정도전 연구서다. “백성에 미친 남자라는 뜻에서 광인(狂人)이란 말을 붙였습니다. 민생에 허덕이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 진실한 인생 앞에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박 교수는 조선을 대표하는 경세가(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자 민본 정치인으로 다산(茶山) 정약용과 함께 삼봉(三峰) 정도전을 오래전부터 존경해 왔다. 하지만 다산이 일찍부터 여러 각도에서 연구되고 존경받고 있는 것과는 달리 삼봉이 왜곡된 평가에 묻혀 있는 사실이 안타까워 40대 때부터 그의 사상과 업적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졌다 한다. “흔히 삼봉은 신권(臣權)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신권과 왕권의 대립을 연상시키는데, 그가 주장하는 신권이란 결국 민권입니다. 신권은 민권을 대변하는 하나의 도구로 봐야 합니다. 왕은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 되기도 하니, 관리들 가운데 기량과 자질이 출중한 사람이 재상을 맡아 왕과 협의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자는 것이지요.” 왕에 대한 견제와 권력의 균형을 추구하자는 게 삼봉의 사상이라는 주장이다. “이론을 겸비한 실천적 혁명가 정도전의 경세론은 고스란히 조선의 문물과 제도 속에 녹아내려 500년 통치의 반석이 됐습니다. 조선의 정치 및 헌법 체계는 그의 ‘조선 경국전’을 따랐고, 경제 체제는 고려말 그가 주도해 만든 과전법의 틀을 지켰습니다. 또 ‘불씨잡변’을 저술해 불교를 비판함으로써 이후 조선조 유가들의 불교에 대한 태도를 결정지었습니다.” 정도전은 또한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궁궐, 종묘, 사직, 관청, 시장, 도로 등 도시 계획을 총지휘하고 작명까지 했다. 하지만 이방원과 갈등을 빚다 역적으로 몰려 살해된 그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았다.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아 그렇지! 개국 초에 이 건물들에 경복궁, 그리고 근정전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인 사람이 정도전이 아니었던가’라는 데 생각이 미쳐서야 그는 무덤 밖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가 죽은 지 467년 만이었습니다.” 고려 말은 남의 토지를 빼앗고 양민을 노비로 만드는 등 권세가들의 횡포가 극심한 시기였다. 한 사람이 경작하는 토지의 주인이 많을 경우 7~8명이나 돼 소작인들이 소출의 8~9할을 세금으로 내는 등 사회 양극화가 극에 달했다. “오늘날에도 그때만큼 심한 건 아니지만 사회 양극화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제대로 못 먹으면 사회 통합, 사회 발전이 안 됩니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삼봉의 사상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저자는 경북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숭실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지난 30여년간 경제 부처에서 근무한 뒤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등 산하 기관장을 지냈다. 현재 인성교육 범국민실천연합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에서 공학도들을 대상으로 경제 정책을 강의하고 있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지상파 하이라이트]

    ■긴급출동 24시(KBS1 밤 10시 55분)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과 파고다공원에 인접한 종로2가 파출소는 시내 어느 파출소보다 112 신고 건수가 많기로 유명하다. 노인들의 아지트로 불리는 종묘·파고다 공원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노인과 관련된 민원도 유난히 들끓는다. 게다가 생계형 범죄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잡히더라도 곧바로 풀려나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데…. ■달라졌어요(EBS 밤 10시 45분) 미운 정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결혼 21년차 부부가 있다. 자식만 아니면 당장이라도 이혼하겠다는 부부는 신혼 때부터 서로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남편은 아내도, 자식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서 화만 낸다. 아내는 대화가 되지 않는 남편에게 등을 돌리고 자식들만 바라본다. 고부 갈등의 골도 깊어진 상황이라 하루하루가 험난하다. ■둘이서 세계로(MBC 오후 6시 20분) 종횡무진 미국 뉴욕을 누비고 있는 두 남자, 영화감독 봉만대와 배우 여현수. 이들은 필름 속을 걷는 듯한 도시 전경들에 감탄을 터뜨린다. 하지만 뉴욕의 물가는 가히 살인적이다. 맨해튼과 사뭇 다른 정취를 느끼며 영화 속 브루클린을 회상하고, 치즈 가득한 정통 뉴욕 스타일 피자를 맛보는 두 남자의 ‘내 멋대로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오 마이 베이비(SBS 밤 8시 55분) 뮤지컬 배우 김소현, 손준호 부부가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김소현이 공연과 강의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육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시댁, 친정 부모님까지 총동원해 시간표에 따라 아이를 돌보는 ‘가족 공동 육아’ 덕분이다. 프로그램에서 김소현은 육아 비법을 전하고 개성 강하고 엉뚱한 매력을 뽐내는 이들의 아들도 처음 공개한다. ■요리비전(EBS 밤 8시 20분) 허준의 ‘동의보감’을 보면 ‘홍합은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몸이 허약하고 손상돼 여위는 것을 다스린다’고 돼 있다. 경남 마산만의 홍합은 크고 작은 섬들 사이에서 풍성한 플랑크톤을 먹으며 자라고 있다. 홍합을 양식하는 실리도에서 아주 특별한 홍합 요리들을 찾고 홍합탕과 홍합부추전에 담긴 삶의 지혜를 알아본다. ■힐링로드 만남(OBS 밤 11시 5분) 북한 땅인 함경남도 두류산에서 발원한 임진강은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을 관통해 남으로 흘러온다. 한반도의 허리를 흐르는 임진강 최상류, 휴전선과 인접한 최북단 마을인 연천군 북삼리는 곳곳에 철조망이 둘러쳐진 출입 제한 구역이 많은 긴장의 땅이다. 잘 보존된 자연과 그 자연을 닮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일상을 조명한다.
  • [서울신문 보도 그후] 여의도 면적 8배 ‘바다숲’ 연내 조성

    정부가 올해 서울 여의도 면적의 8배에 해당하는 ‘바다숲’을 조성한다. 해양수산부는 올해 바다사막화에 따른 어장 갯녹음을 치유하기 위해 바다숲 2374㏊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를 위해 해수부는 328억원을 투입해 갯녹음이 심각한 바다 18곳에 인공어초 설치, 종묘 방류 사업 등을 펼치기로 했다. 바다숲 조성 예산이 지난해(198억원)보다 66% 증가하면서 바다녹화 사업도 탄력을 받게 됐다. 바다숲은 갯녹음으로 황폐해진 바닷속에 물고기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사업이다. 해초를 심고 작은 물고기의 먹이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정부가 바다숲 조성사업비를 크게 늘린 것은 갯녹음 현상이 해마다 증가(연간 1200㏊)해 바닷속이 심각하게 황폐화되고 있지만, 치유 예산과 관심 부족으로 바다숲 조성사업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해수부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바다 갯녹음 피해 면적은 1만 7600㏊에 이르고 해마다 1200㏊ 이상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주요 암반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어서 실제 피해 면적은 이보다 훨씬 넓을 것으로 보인다. 또 갯녹음 현상으로 어획량이 40% 정도 줄어들고 연간 650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조성한 바다숲은 3334㏊, 연평균 666㏊에 불과하다. 예산 부족으로 연간 갯녹음 치유면적이 신규 발생 면적의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해수부는 올해와 같은 수준의 예산을 투입하면 2020년쯤부터는 신규 발생면적 대비 치유면적이 비슷해져 전체 면적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해수부는 2020년까지 1만 5000㏊, 2030년까지 3만 5000㏊의 바다숲을 조성할 계획이다. 오광석 수산자원정책과장은 “갯녹음 치유는 장기적으로 집중 투자해야 한다”며 “효율적인 수산자원 보호·육성 사업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마지막 주 수요일엔 영화·국립공연 할인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영화 관람료와 프로농구, 배구 등의 입장료가 할인된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조선 4대 궁궐과 종묘, 조선왕릉은 무료 개방된다. 국립공연 시설의 공연도 무료나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오는 29일 ‘문화가 있는 날’의 시행을 앞두고 이 같은 혜택 내역을 확정해 21일 발표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 시간대(오후 6~8시)에 상영되는 영화 1회분에 대해 관객들은 누구든 관람료를 8000원에서 5000원으로 할인받을 수 있다. 국립공연 시설 공연도 무료 또는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국립극장, 국립국악원은 ‘문화가 있는 날’에 맞춰 특별 무료 공연을 개최한다. 29일 예술의 전당도 뮤지컬 ‘영웅’의 영웅석 300석, 최자현 피아노 리사이틀 전석 등을 30% 할인해 판매한다. 전국 국·공·사립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 등 전시관람 문화시설도 무료 또는 할인된 가격에 입장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해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의 개관 특별전도 이날 무료 개방된다. 이날 프로농구와 프로배구 경기장에도 초등학생 이하의 자녀와 부모가 동반 입장하면 입장료 반값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문화포털 사이트의 통합정보안내(www.culture.go.kr/wday)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문화가 있는 날’/서동철 논설위원

    지난해 11월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이미 도심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많은 시민이 다녀갔지만, 7000원의 관람료에 살짝 마음이 무거웠던 사람도 없지 않았다. 가족 단위 관램객이라면 부담은 조금 더했을 게다. 서울관을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많은 문화시설이 무료로 문을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도 상설전은 물론이고 데이비드 호크니전과 중국인도현대미술전 같은 특별전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첫 번째 ‘문화가 있는 날’은 설 연휴 시작 전날인 29일이다. ‘문화가 있는 날’은 문화융성위원회가 주도하는 사업이다. 문화융성위는 그동안 문화 여건을 개선하는 작업을 조용히 벌여 왔다. 올해부터 이렇게 개선된 문화 환경을 국민이 실생활에서 체감토록 하겠다는 뜻이 ‘문화가 있는 날’에는 담겨 있다. 전국의 국공립 문화시설은 대부분 무료로 공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 같은 국·시립 박물관과 경복궁을 비롯한 고궁, 종묘, 조선왕릉이 그렇다. 국립극장과 국립국악원은 무료 공연을 마련한다. 예술의전당의 ‘새해맞이 음악회’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한국 근·현대 회화 100선전’처럼 민간기획자가 참여한 전시는 입장료를 30~50% 할인해 줄것을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민간의 문화·체육 단체와 시설도 적극 호응하고 있다.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같은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대표적이다. 오후 6시에서 8시에 시작하는 영화에 한해 할인율 40%를 적용키로 했다. 우선 3사의 전국 직영 상영관 140개가 대상이다. 축구와 야구, 농구, 배구와 같은 프로스포츠도 입장료 50% 할인을 추진한다. 오는 29일 부산과 고양에서 열리는 남자농구, 청주의 여자농구, 천안의 남자배구, 화성의 여자배구 경기부터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입김이 미치는 않는 다른 부처의 문화시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부처 간 칸막이 없애기’의 성공사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의 과학관과 국방부의 전쟁기념관, 환경부의 국립생태원, 해양수산부의 국립해양박물관, 여성부의 여성사전시관, 국가보훈처의 독립기념관, 국세청의 조세박물관, 산림청의 국립수목원이 무료 개방에 참여한다. ‘문화가 있는 날’에는 역설적으로 문화 혜택이 아직은 골고루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 시작은 소박하지만 명실상부한 ‘문화가 있는 날’로 성장하기 바란다. 필요충분조건은 당연히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일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이슈&논쟁] 태릉선수촌 철거

    [이슈&논쟁] 태릉선수촌 철거

    왕가의 무덤이 더 중요할까, 태극마크의 땀방울이 더 귀할까.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선수촌이 문화재청의 태릉(조선 중종의 두 번째 계비 문정왕후의 무덤) 복원 사업으로 완전히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인 가운데, 철거를 둘러싸고 체육계와 문화계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태릉선수촌은 지난 2009년 6월 조선왕릉이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당시부터 철거 권고를 받아 왔다. 문화재청은 “태릉·강릉은 조선왕릉 40기 가운데 가장 훼손이 심해 복원이 필요한 곳”이라며 진천선수촌으로 이전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체육계는 “선수촌의 철거·이전은 올림픽 등 각급 국제무대에서 메달을 수확한 한국 스포츠 요람이자 자존심을 짓밟는 처사다. 태릉선수촌이 철거되면 대한민국 스포츠 문화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일러스트 조기영 화백 cmseong@seoul.co.kr ■ <贊> 70년대 건물은 근대유산 가치 낮아 조선 제례문화 중심지로 복원해야 이창환 상지영서대 교수·문화재전문위원 지난 2009년 6월 27일 스페인 세계유산대회에서 조선왕릉이 탁월하고도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날은 태조 이성계가 승하한 지 601주년 되는 날이어서 의미가 더했다. 세계유산은 세계인류가 함께 보존하고 후세에 영원토록 계승할 가치를 지닌 인류의 유산으로 평가돼 등재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세계 각국은 자국의 문화적 우수성과 자긍심을 내세워 세계유산 등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반만년 문화민족을 자랑하는 우리는 그 어느 나라보다 문화적 우수성을 간직해 온 민족이다. 그러나 남한의 세계유산은 조선왕릉을 비롯해 종묘, 창덕궁, 석굴암, 경주역사유적, 고인돌, 해인사 등 9곳이며 제주의 자연유산을 포함해도 10여 곳에 불과하다. 이렇듯 세계유산은 그 가치를 인정받기가 매우 어려우며, 인정받은 가치는 잘 보존하고 이어 가야 할 인류 모두의 중요한 유산이다.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어언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최근 들어 세계유산 태릉의 능제복원을 놓고 문화재청과 일부 체육계 간에 갈등이 있어 애석한 마음이 든다. 왕릉 전문가로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와 능제복원 과정에 참여한 필자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당시 선수촌이 자리한 태릉과 강릉, 강남의 선릉과 정릉, 경마장과 종축장이 들어선 서삼릉 등은 원형이 일부 훼손된 곳으로 제외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국제학술대회와 외국 전문가들에게 자문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제외하고는 세계유산 등재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조언을 받았다. 조선왕릉 전체를 등재시켜야 500년을 이어 온 능원의 자연관과 사상, 조영 기술의 특징, 그리고 왕과 왕비의 역사를 담은 조선왕릉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일부 훼손된 능제시설의 복원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조건부였다. 태릉은 원래 문정왕후가 생전에 서삼릉에 있던 중종의 정릉을 강남으로 옮겨 같이 영면하려 했으나 명종 때 각종 민란과 중국 및 일본의 침략이 잦아지자 서울 도성의 북동 측에 능역을 조영하면 국가가 안정된다는 풍수가 남사고 등의 권유로 이곳에 조영됐다. 그래서 능원의 이름도 클 태(太), 편안할 태(泰)의 태릉이라 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이곳의 태릉과 강릉은 능원의 규모가 크고 문·무석도 조선시대 능원 중 가장 큰 규모를 갖고 있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조성된 역사와 조영적 특성을 지닌 덕분이다. 최근 체육계 일부에서 이곳의 시설에 대해 근대 유산으로서 가치를 거론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태릉과 강릉 지역의 체육시설이 들어 있는 곳은 태릉과 강릉 두 능원의 제례 동선과 참배객들의 집합공간, 재실, 향대청, 전사청, 제기고, 행각, 어정, 외금천교 등 능원의 중요시설이 자리했던 곳이다. 반드시 능제시설이 복원돼야 하는 자리다. 조선왕릉은 능원의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600여년을 이어 온 제례문화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세계유산이 됐다. 지금까지 600여년을 이어 온 제례 행위 공간을 복원해 진정성을 확보하고 유네스코와의 약속을 이행하며 보존 원칙을 지켜 줘야 한다. 6년 주기로 해당 세계유산의 보존과 주변 관리 상태를 모니터링해 유네스코에 보고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체육계 일부에서 주장하는 설립 당시 건물은 개축돼 없어지고, 현재 남아 있는 시설들은 1970년대 후반에 건립된 것이라니 근대 유산적 가치도 덜한 것 같다. 최근 국가에서는 많은 예산을 들여 충북 진천에 첨단 선수촌을 새로 지어 이미 입주를 시작했다. 건물의 추가 건설 계획이 잡혀 있거나 이미 건설 중인 곳도 있다고 하니 이곳에서 선수들의 기상을 크게 살렸으면 한다. 조선왕릉은 수도권의 생태 숲인 역사 경관림과 조선의 500년 역사가 깃든 곳으로 세계 인류의 공동 자산이 됐다. 인류가 함께 보존하고 향유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며, 우리 문화를 자랑하는 역사문화공간으로 이어 가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며 책무다. ■ <反> ‘태릉 = 한국 스포츠’ 공식 반세기 동대문운동장처럼 헐어선 안 돼 손환 중앙대 체육교육학과 교수 한국 스포츠의 메카, 한국 스포츠의 요람, 한국 스포츠 스타의 산실 등 한국 스포츠와 관련해 어떠한 수식어를 붙여도 잘 어울리는 곳, 바로 태릉선수촌이다. 태릉선수촌은 스포츠를 통해 한국이라는 국가브랜드 가치를 국제사회에 알린 출발지로서, 오늘날 한국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떨치는 데 많은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 스포츠=태릉선수촌”이란 등식이 성립하는 태릉선수촌이 건립된 지도 어느덧 반세기가 돼 간다. 그런데 조선왕릉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따른 문화재청의 태릉 복원 사업으로 태릉선수촌을 진천선수촌으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과연 한국 스포츠의 메카라 불리는 태릉선수촌이 동대문운동장처럼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도 되는 것일까. 태릉선수촌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통해 얻은 값진 교훈을 바탕으로 스포츠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념과 추진력에 의해 건립됐다. 태릉선수촌은 한국 스포츠사에 뚜렷한 존재감을 남기며 1960년대 중반 미래 한국의 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또 1966년 건립된 이후 한국 스포츠의 심장이라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한국 스포츠가 세계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으며,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인의 저력을 뒷받침해 줬다. 태릉선수촌은 분명 한국 스포츠의 발전과 행보를 같이한 역사적인 스포츠시설이다. 태릉선수촌이 건립된 후 지금까지 하계올림픽에 출전해 획득한 메달은 전부 234개인데, 그중에서 금메달이 81개로 가장 많다. 이러한 성과에서 선수와 지도자가 국가를 위해 피와 땀, 눈물을 흘리며 묵묵히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준 태릉선수촌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아마추어 스포츠의 비약적인 발전을 얘기할 때, 그 이면에서 수많은 스타 배출의 산실 역할을 한 태릉선수촌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으며, 그 영향 또한 지대하다고 할 수 있겠다. 최근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1971년 건축가 김수근씨가 설계한 공간 사옥 가운데 옛 사옥을 등록문화재로 등록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 이유는 국내 최고의 현대건축물로 꼽히기 때문이다. 공간사옥처럼 비록 50년은 안 됐지만 등록 기준에 비추어 태릉선수촌 역시 문화재로 등록되는 데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올해로 건립 47년이 된 태릉선수촌은 그동안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 곳으로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태릉 하면 문화유적지보다 태릉선수촌을 먼저 떠올릴 정도이며, 역설적으로 선수촌으로 인해 태릉이 더 유명해졌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태릉선수촌은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의 피와 땀, 눈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이며,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내재돼 있는 곳이다. 한국 스포츠의 혼이 살아 숨쉬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태릉선수촌이 동대문운동장처럼 없어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동대문운동장의 철거는 체육인을 비롯한 대다수 국민이 스포츠시설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범한 중대한 과오다. 이러한 잘못에 대해 체육인들은 스스로 반성하고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스포츠시설에도 충분히 문화재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태릉선수촌을 스포츠 문화유산으로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도록 보존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창의적 음식·나눔의 정신’ 세계서 인정

    ‘창의적 음식·나눔의 정신’ 세계서 인정

    5일(한국시간)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김장문화’를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면서 김장이 한국인의 나눔정신의 본보기이며, 김치가 자연재료를 창의적으로 이용한 음식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무형유산위원회는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세대를 거쳐 내려온 김장이 한국인들에게는 이웃 간 나눔정신을 실천하는 한편 연대감과 정체성, 소속감을 증대시켰다”고 평가했다. 이로써 한국은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처용무, 매사냥, 택견, 아리랑 등 모두 16개의 인류무형유산을 갖게 됐다. 임돈희 문화재위원회 무형분과위원장은 “김장문화의 등재는 자연재료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공동체 사이의 대화를 촉진할 것”이라며 “한국 식문화 전체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이날 김장문화를 비롯해 등재 권고를 받은 23종목과 정보 보완 1종목에 대한 심의를 벌여 등재를 최종 결정했다. 김장문화는 지난 개별 심사에서 이탈리아, 일본 등의 등재 후보 6종목과 함께 만장일치로 등재권고를 받아 일찌감치 등재가 확실시됐다. 이날 새벽 일본 전통 식문화인 ‘와쇼쿠’(和食)도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257건(지난해 기준) 가운데 음식문화는 모두 6건이 됐다. 지금까지 식문화와 관련된 것은 프랑스의 미식술, 그리스와 스페인 등 4개국의 지중해 요리, 멕시코 전통 요리, 터키의 케시케키(제사음식) 등 4건뿐이었다. 한편 이번 등재 과정에서 유네스코가 우리 정부에 “김치가 인류무형유산 후보로 알려지면 등재 판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김치’를 둘러싼 신경전이 오가기도 했다. 당초 문화재청은 등재 신청 서류에 한글로 ‘김치와 김장문화’, 영문으로는 ‘Kimjang;Making and Sharing Kimchi’로 각각 표기했다. 2010년 음식문화를 처음으로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한 유네스코는 피자, 스시 같은 특정 음식의 등재를 금기시하고 있다. 특정 음식의 상업화를 도울 수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한국이 김치 종주국으로 인정받는 것을 우려한 중국·일본 등 주변국들의 견제가 심했다는 시각도 많다. 최근 중국의 언론매체 사이에선 ‘김치는 중국에서 유래됐다’거나 ‘김치가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느냐’ 등의 부정적 반응이 잇따랐다. 등재에 앞서 열린 의장단 회의에는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한 부의장국 자격으로 그리스, 브라질, 이집트 등 다른 5개 나라와 함께 참여했다. 이 같은 이유로 현지에 파견된 외교부, 문화재청 등 정부 대표단은 이날 한글 공식명칭을 ‘김장문화’로 급히 수정했고, 의장단 회의에선 한국의 김장문화로 한정한다는 의미에서 영문 명칭에 ‘in the Republic of Korea’를 추가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장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됐다

    김장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됐다

    한국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새롭게 등재됐다. 이로써 한국은 종묘제례·종묘제례악, 판소리, 아리랑 등에 이어 모두 16개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5일 오후(한국시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8회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우리나라가 신청한 ‘김장문화’가 등재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위원회는 김장문화가 한국인들이 이웃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고 정체성과 소속감을 제공하는 유산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3월 ‘김장문화’의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지난 10월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심사보조기구가 만장일치로 등재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는 의미의 ‘등재권고’ 판정을 내렸다.  지난 2일부터 7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회의에서는 ‘김장문화’ 외에 일본의 식문화인 와쇼쿠, 중국의 주산 및 주판셈 지식·활용, 아르제바이잔의 전통 말타기 놀이 등이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공예사로 보는 조선왕실의 삶과 문화

    공예사로 보는 조선왕실의 삶과 문화

    한국전쟁 때 불법 반출됐다가 최근 미국에서 압수된 대한제국 국새와 조선왕실 어보 등 인장 9점은 역사적 의의와 더불어 조선 왕실 문화의 정수를 담은 공예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조선은 국왕의 권위와 왕실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유교적 예제에 따라 국혼·국장·종묘대제와 같은 왕실 의례를 국가적 행사로 치렀는데 이때마다 최고의 인력과 물질을 동원해 궁궐, 왕릉, 종묘에 최고의 왕실 의물(儀物)을 제작했다. 장경희 한서대 교수가 펴낸 ‘조선왕실의 궁릉 의물’(민속원)은 규장각과 장서각이 소장한 ‘도감의궤’의 문헌 기록을 씨줄로, 5대 궁과 왕릉 및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현존 왕실공예품 유물을 날줄로 삼아 조선 왕실 공예품의 제작 과정과 미적 특질을 살펴보고, 왕실의 삶과 문화를 현재적 관점에서 복원한 조선 왕실공예사 연구다. 1부는 왕실의 기쁜 날, 궁궐 내 정전과 침전에서 거행되는 가례(嘉禮)와 관련된 의물을 중심으로 다뤘다. 왕실 행사 중 하이라이트는 국왕의 즉위식이다. 즉위식에서 새 국왕은 왕권을 상징하는 대보(大寶), 혹은 옥새를 물려받는다. 외교문서에 사용되는 대보는 상징성 때문에 여러 겹의 상자에 담아 전달한다. 조선 왕실의 의식을 그린 그림이나 반차도에는 정전 내에 대보와 그것을 담은 상자 등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통해 행사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엿볼 수 있다. 2부는 궁궐의 편전과 왕릉에서 거행되는 흉례(凶禮) 때 사용된 의물을, 3부는 왕실의 제삿날, 종묘에서 거행되는 길례(吉禮) 때 사용된 의장의물을 중심으로 살폈다. 장 교수는 책 말미에 조선시대 궁궐과 왕릉 및 종묘의 의물이 훼손된 채 방치되거나 잘못 복원된 현실을 지적하면서 문화재 정책 당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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