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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에 즐기는 궁궐·종묘… ‘궁중문화축전’ 10일 개막

    올해로 6년째인 궁중문화축전이 처음으로 가을에 열린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은 오는 10일부터 11월 8일까지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등 4대 궁궐과 종묘에서 행사를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 매해 4월에 열린 궁중문화축전은 지난 5년간 약 250만명이 즐긴 국내 최대 전통문화 축제다.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개최 시기를 가을로 연기하고, 온라인 행사를 대폭 늘렸다. 개막일부터 18일까지는 현장 행사를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오프라인 주간’이다. ‘경회루 판타지-궁중연화’ 공연, 한방향첩을 만들어 보는 ‘창덕궁 약방’, 궁궐의 식생활 문화를 체험하는 ‘경복궁 생과방’ 등이 열린다. 현장 행사는 사전 예약해야 관람할 수 있다. 온라인 프로그램은 궁중문화축전 유튜브에서 진행된다. 영조·사도세자·정조의 이야기로 구성한 음악 드라마 ‘시간여행 그날, 정조-복사꽃, 생각하니 슬프다’, 다큐멘터리 ‘왕국에서 황제국으로’ 등이 공개된다. 게임 콘텐츠를 궁궐에 접목한 ‘랜선 어린이 궁중문화축전’도 선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문화재청(www.cha.go.kr), 한국문화재재단(www.chf.or.kr), 궁중문화축전(www.royalculturefestival.org)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완전 양식 성공했다던 민물장어… 4년전 공식발표는 ‘뻥튀기’

    완전 양식 성공했다던 민물장어… 4년전 공식발표는 ‘뻥튀기’

    “2020년엔 민물장어를 완전 양식 기술로 대량 생산하는 게 가능해질 겁니다.”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은 2016년 민물장어 완전 양식에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대표적인 보양식인 민물장어도 광어나 우럭처럼 완전 양식으로 길러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단 것이었다. 일본과 미국도 성공하지 못한 ‘꿈의 기술’을 세계 최초로 완성하겠다는 장밋빛 전망이었다. 수과원이 약속한 해가 됐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수산과학계 일각에선 ‘사실상 실패’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당시 발표가 지나치게 성과를 부풀렸다며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과원의 민물장어 완전 양식은 어떻게 된 것일까. 수과원이 민물장어 완전 양식과 관련한 성과를 외부에 공표하기 시작한 건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수과원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민물장어 인공 종묘(실뱀장어) 생산에 성공해 완전 양식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밝혔다. 수정란에서 부화한 3㎜의 ‘렙토세팔루스’(민물장어 유생)를 양식이 가능한 실뱀장어로 변태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민물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6~10개월간 유생 단계를 거친 후 실뱀장어 상태로 민물로 돌아와 성장한다. 현재 민물장어 양식은 이렇게 민물로 돌아온 실뱀장어를 잡아 10개월에서 2년간 인공적으로 키우는 불완전 양식이다. 수정란에서 부화한 유생을 실뱀장어로 키우는 걸 성공했다는 건 완전 양식에 근접했다는 의미다. 4년 뒤인 2016년 수과원은 마침내 민물장어 완전 양식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수정란에서 부화해 기른 실뱀장어(인공 1세대)를 어미로 키워 새끼(2세대)를 낳게 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특히 수과원은 인공 2세대 민물장어를 10만여 마리나 얻었다고 밝혀 학계를 흥분시켰다. 하지만 수과원이 내놓은 민물장어 완전 양식 성과는 이게 마지막이었고, 여태껏 감감무소식이다. 당시 발표가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 수과원이 얻었다는 인공 2세대 민물장어 10만여 마리는 부화한 유생이 아닌 수정란이었던 것으로 14일 서울신문 취재 결과 확인됐다. 또 수과원의 ‘수산시험연구사업 연차 평가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간 생산된 1세대 민물장어는 187마리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상당수 폐사해 45마리만 생존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완전 양식에 성공했다고 말하기엔 너무 적은 숫자다. 학계 일각에선 2세대가 1세대의 새끼란 걸 입증할 유전자 검사도 2년이나 지난 뒤 이뤄졌다며 당시 발표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민물장어 완전 양식사업은 올해까지 총 1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사업인 만큼 수과원이 그간 연구 결과를 정확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의원은 지난 7월 상임위원회에서 “완전 양식에 성공했다고 말하려면 (최초 어미부터) 1세대와 2세대의 유전자가 동일하다는 것이 검증돼야 하고 양산체제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 와 있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수과원 관계자는 “2016년 연구 결과 발표 당시엔 연구원 전체적으로 자신감이 넘쳐 목표나 비전을 과도하게 설정한 측면이 있었다”며 “과학계와 산업계가 보는 완전 양식 성공 개념이 다른 만큼, 앞으로는 일정량 이상 생산이 될 때만 완전 양식이란 표현을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종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한국,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국에 세 번째 당선

    한국,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국에 세 번째 당선

    한국이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무형문화유산 정부간위원회 위원국에 당선됐다.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한국이 178개 협약 당사국 중 투표에 참가한 146개국 가운데 80개국의 지지를 얻어 2020~2024년 임기 무형유산위원국으로 선출됐다고 문화재청이 11일 밝혔다. 한국이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국으로 당선된 것은 2008년, 2014년에 이어 세 번째다. 무형문화유산 정부간 위원회는 4년 임기의 위원국 23개국으로 구성된다. 한 번 임기가 끝나면 2년을 쉬어야 한다. 이번 선거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그룹 내 1개 위원국 자리를 두고 한국과 인도가 접전을 벌였다. 문화재청은 “위원국 진출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결정, 무형문화유산 보호 관련 국제협력 등 주요 논의와 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한국은 2020년 연등회, 2022년 한국의 탈춤, 2024년 장 담그기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종묘 제례악(2001), 판소리(2003), 강릉 단오제(2005),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2009), 가곡, 대목장, 매사냥(2010), 택견, 줄타기, 한산모시짜기(2011), 아리랑(2012), 김장문화(2013), 농악(2014), 줄다리기(2015), 제주해녀문화(2016), 씨름(남북공동, 2018) 등 총 20종목이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국도 천도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국도 천도

    도읍지는 한 시대의 역사를 이끌어 나가는 중심지다. 왕조가 바뀌면 국호를 개칭하거나 국도를 천도하는 것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삼국을 통일한 고려도, 고려를 대신한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나라의 수도를 옮긴다는 것(遷都)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사로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을 타파하고 민심을 일신하는 데 천도만큼 효과가 크고 빠른 것도 없다. 서울의 부동산 광풍은 때아닌 세종시로의 수도 이전이란 핵폭풍을 불러왔다. 마치 620여년 전 태조 이성계의 한양 천도를 떠올리게 한다. 1392년 7월 17일 개성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른 태조는 신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즉위 한 달도 채 안 돼 천도를 공포하고 후보지 물색에 나섰다. 나라를 세우면 국호를 새로 정하고 제도 정비가 급선무다. 얼마나 천도가 급했으면 국호를 바꾸지도 않고 태조 즉위 2년 뒤까지 여전히 고려라 불렀을까. 왜 태조는 그토록 급하게 도읍을 옮기려 한 것일까. 고려 말부터 조선 건국을 전후해 “개성의 지기는 이미 쇠했다”거나 “개성은 신하가 임금을 폐하는 망국의 터다”라는 참설이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신하로서 임금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자신도 언젠가 다시 신하에 의해 폐왕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등으로 이미 지덕이 다한 개성을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자 했다. 서둘러 1392년 8월 13일 도읍을 한양으로 옮길 것을 명하고 이틀 뒤 15일에는 이염을 보내 궁실을 수리토록 하고, 9월 30일엔 종묘 터를 물색했지만 신료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다음해 2월 1일 친히 잠저 때의 친구요, 정치적 고문인 정중화가 올린 새 도읍지, 지금의 세종시와 가까운 계룡산 신도안을 향해 출발 8일 만에 도착했다. 닷새 동안 머물면서 직접 산세와 지형을 꼼꼼히 살펴본 태조는 마음에 들어 국도 건설을 추진토록 했다. 수천 명의 인부를 동원해 시작된 국도 공사는 10개월 만에 경기도 관찰사 하륜의 건의로 중지됐다. 그 이유가 첫째, 한 나라의 수도는 중앙에 위치해야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 계룡산은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통일신라의 수도인 경주가 너무 동쪽에 치우쳐 있어 대구 천도 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었고, 불편을 덜기 위해 충주·원주·청주·강릉·남원 등에 오소경을 두기도 했다. 둘째 계룡산 신도안이 금강과 너무 떨어져 있고 해안에서도 멀어 물자 수송이 불편하다는 점이다. 셋째 풍수지리적으로 계룡산 도읍지도 개성처럼 곧 망할 땅이라는 것이다. 놀란 태조는 하륜에게 서운관의 비밀문서들을 주어 고려 왕릉과 개성의 길흉 여부를 조사시킨 결과 사실로 확인되자 다시 천도 후보지를 물색하도록 한 곳이 지금의 서울 신촌 일대 무악이다. 태조가 친히 무악에 올라 땅을 살펴보고 이곳에 궁궐을 지어 천도하고자 했지만, 무악을 천거한 하륜을 제외한 모든 신료들이 하나같이 무악이 나라의 중앙에 위치해 운송도 좋기는 하나, 주산이 낮고 골짜기에 끼어 있어 도읍지로 좁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차선책으로 선정된 곳이 고려의 남경 터였던 지금의 경복궁 일대다. 지루하게 3년을 끌어 왔던 천도 문제는 1394년(태조 3) 10월 8일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마무리됐다. 국도인 개성을 버린 것이나, 계룡산 신도 공사를 중지한 결정적 이유는 실용성보다 망할 땅이란 풍수지리적 결함 때문이었다. 세종시로의 수도 이전은 부동산의 광풍도, 풍수지리설도 아닌 통일 후 국가의 백년대계란 틀에서 봐야 한다. 모름지기 한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못 다스려지고는 통치술에 있지 지리의 성쇠에 달린 것이 아니며, ‘도읍을 정할 때는 무엇보다 군왕의 통치술이 풍수도참설보다 앞서야 한다’는 삼봉 정도전의 충정이 새롭게 다가온다.
  • ‘서울, 사대문, 중심업무지구’…다 갖춘 곳 나왔다

    ‘서울, 사대문, 중심업무지구’…다 갖춘 곳 나왔다

    6.17및 7.10부동산 대책의 영향으로 부동산 시장이 술렁이는 가운데, 확실한 흥행 요소를 갖춘 서울 중심지 분양사업은 더욱 주목받을 전망이다.서울에서도 사대문 내 중심업무지구를 배후에 둔 물량은, 대부분 정비 사업을 통해 공급되므로 분양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희소성이 높다. 특히 입지가 뛰어난 구도심이 새롭게 신도심으로 변모하는 대규모 분양 사업일 경우 단기간에 높은 청약 경쟁률로 분양이 마감되곤 한다. 서울 사대문 내 광화문 CBD(중심업무지구)에 위치한 세운지구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힐스테이트가 첫 분양에 나서며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이 지난 7월 31일 견본주택을 열고 본격 분양에 나섰다. 이 단지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1, 3-4∙5블록에 지하 8층~지상 27층, 3개동, 총 1022세대 규모의 주상복합단지로 조성된다. 세부 구성은 아파트 535세대와 도시형생활주택 487세대이며, 이번에는 도시형생활주택 487세대가 먼저 분양된다. 전용 25㎡ 24실, 42㎡ 96실, 45㎡ 48실, 46㎡ 72실, 49㎡ 247실로 구성돼있다. 이번 물량은 전국 만 19세 이상이라면 청약통장 필요 없이 누구나 청약이 가능하며, 재당첨 제한도 적용되지 않는다.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은 세운지구에서도 핵심 입지에 위치해 교통, 편의, 자연 등 서울 도심의 풍부한 인프라 시설을 모두 가깝게 누릴 수 있다. 우선 쿼드러플 역세권 입지의 뛰어난 교통환경이 돋보인다. 실제 도보권에는 지하철 2∙3호선 환승역인 을지로3가역과 지하철 1∙3∙5호선 환승역인 종로3가역이 자리해 4개 노선을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을지로3가역을 통해서는 종로 도심권과 강남을 이어주는 3호선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한 대중 교통환경을 자랑한다. 단지 주변에는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롯데영플라자, 롯데마트 등 대형쇼핑시설과 광장시장, 방산시장 등 재래시장이 있어 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현대시티아울렛, 두타몰 등이 자리한 동대문상권의 접근성도 좋다. 쾌적한 자연환경도 자랑한다. 특히 청계천 바로 앞에 위치해 청계천 조망이 가능하며, 남산, 종묘공원, 남산골공원, 장충단공원 등의 녹지시설도 가깝다. 또 주변에는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도 자리하고 있다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은 힐스테이트의 다양한 평면설계가 적용돼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혔다. 도시형생활주택은 1룸~2룸 구조의 14개 타입으로 구성돼, 소비자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패턴에 맞춰 평면을 선택할 수 있어 지역 내에서도 가치가 차별화될 전망이다.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의 견본주택은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일원에 위치한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이버 모델하우스와 견본주택을 동시에 오픈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더워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더워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징게맹갱 외에밋들’이라 부른다. ‘김제 만경 너른 들’이란 뜻의 사투리다. 한자는 약간 다르지만 ‘광활’이란 보통명사가 전북 김제에선 같은 의미의 지명으로도 쓰인다. 얼마나 넓고 평탄한 땅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평선이 귀한 나라에서 막힘없이 열린 땅은 자체로 진귀한 볼거리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그 어디쯤에선가 벼가 꼿꼿이 몸을 일으키고, 해바라기가 방긋 웃고, 백련은 살그머니 머리를 내민다. 시계추를 조금만 뒤로 돌려도 어느 논배미 하나 일제의 수탈과 탄식의 역사를 비껴가지 못했던 곳. 이제 그 땅 위로 평화와 풍요가 머문다.‘징게맹갱 외에밋들’이 만경강과 만나는 곳에 외줄기로 이어진 길이 있다. ‘새만금 바람길’이다. 만경강 둑방길, 서해를 지키던 초병들이 다니던 오솔길, 갈대숲을 지나는 갯벌길, 봉수대로 오르던 산길 등을 이어붙여 조성한 길이다. 만경강 하류의 진봉면 소재지에서 시작해 새만금 간척지와 만날 수 있는 심포리 거전 갯벌까지 10㎞ 정도 이어져 있다. 코스는 세 개로 나뉘었지만, 갈 길 바쁜 여행자들은 ‘새창이다리’에서 출발해 삼국시대 포구로 사용되던 전선포와 백제시대 창건된 망해사(望海寺)를 잇는 1코스 ‘과거의 길’을 걷는 게 보통이다. 자전거를 타는 이들도 많다. 만경강과 인접한 완주와 김제, 군산 등이 자전거 도로로 연결돼 있다. 다만 ‘새만금 바람길’ 구간만큼은 걷기 전용이다.●둑방길·오솔길·갯벌길·산길 이은 ‘새만금 바람길’ 들머리 구실을 하는 ‘새창이다리’의 옛 이름은 만경대교다. 군산 대야면과 김제 청하면을 잇는 콘크리트 다리로, 1933년 일제강점기에 세워졌다. 조성 목적이야 자명하다. ‘징게맹갱 외에밋들’에서 수확한 쌀을 군산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서다. 1988년 바로 위에 새 만경대교가 들어선 이후 인도교로만 쓰이고 있다. 새창이다리 약 4㎞ 아래엔 노을전망대가 있다. 해발 고도가 2m쯤 되려나. 겨우 둔덕이라 할 정도의 높이지만 사방이 툭 트여 전망대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팔각정과 안도현 시인의 ‘만경강 노을’ 시비 등이 전망대 주변에 조성돼 있다. 저물녘에는 이름만큼이나 환상적인 노을이, 노을전망대에서 망해사까지는 갈대밭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망해사는 지평선의 끝자락, 그리고 막 수평선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400년 이상 살아온 팽나무 두 그루와 작고 소담한 경내 풍경이 인상적이다. 절집 위의 진봉산 꼭대기엔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징게맹갱 외에밋들’과 종착지에 다다른 만경강의 장쾌한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이맘때 청하산 아래 연밭에선 하소백련이 절정을 이룬다. 하소는 새우(蝦) 모양의 늪(沼)이다. 이름을 풀자면 ‘새우 모양의 늪에 핀 하얀 연꽃’이란 뜻이다. 늪이 깃든 산의 이름도, 이 일대의 행정명도 청하, 푸른(靑) 새우(蝦)다. 이름치고는 퍽 독특하다. 벽골제는 김제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달달 외웠던 삼한시대 3대 수리시설 중 하나다. 약 1700년 전인 백제 비류왕(330) 때 ‘징게맹갱 외에밋들’에 물을 대기 위해 조성됐다. 당시만 해도 최첨단 농수공급시스템이었던 벽골제는 둘레가 44㎞에 달할 만큼 거대한 규모였다고 한다. 현재는 4㎞ 정도의 둑과 비석 등이 남아 있다. 벽골제 관광지 안에 박물관, 미술관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시설들이 조성돼 있다. 차분히 돌아보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밤의 벽골제도 독특하다. 쌍용 조형물 등 여러 시설물에 경관조명이 켜지면서 빛의 정원으로 변한다.●지평선 끝·수평선 시작의 절경 간직한 망해사 김제 동남쪽의 모악산 일대는 어딘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는 곳이다. 그 발치에 불교, 기독교를 비롯해 증산도 등 토착신앙의 성지들이 매달려 있다. 먼저 모악산 바로 아래 있는 대찰 금산사부터. 통일신라 때 창건돼 미륵신앙의 성지로 추앙받는 사찰이다. 절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미륵전(국보 62호)이다. 겉모양은 3층, 내부는 통층인 건물이다. 충남 부여 무량사의 극락전도 통층 구조지만 미륵전보다 한 층 낮다. 미륵전 안에는 높이 11.82m의 미륵불, 8.79m의 협시불 등 거대한 미륵삼존입불이 모셔져 있다. 미륵불 아래에는 거대한 철 좌대가 있다. 만지면 소원을 이뤄 준다는 영험한 좌대다. 현재는 출입이 금지됐지만, 사찰 측에서 일반에 공개할 방법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한다. 미륵전에는 층마다 미륵불의 세계를 나타내는 전각명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 1층은 대자 보전(大慈寶殿), 2층은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은 미륵전(彌勒殿) 등이다. 미륵전 주변은 문화재의 보고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만나는 불전, 석탑, 석등, 방등계단 등이 모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라고 보면 틀림없다. 본전인 대적광전도 웅장하다. 서울 종묘처럼 단층 구조이면서 옆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개창 시기 이 절집의 위세를 가늠할 수 있는 모습이다. 한때 보물(476호)이었으나 1986년 화재로 전소되면서 안타깝게도 지위를 잃었다. ●문화재의 보고 금산사… 남녀평등의 금산교회 금산사에서 조금 내려오면 금산교회다. 익산의 두동교회와 함께 ‘남녀칠세부동석’의 ‘ㄱ’ 자 건물로 유명한 곳이다. 금산교회에선 유교적 제약이 엄연했던 일제강점기에도 여자와 남자가 함께 예배를 봤다. 비록 출입문이 나뉘었고, 천장 대들보의 상량문도 여자 쪽 언문(한글)과 남자 쪽 한문으로 다르지만, 평등한 공간을 지향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머슴이 목사가 되고 상전이었던 지주가 그를 받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도 전해 온다. 더 아래 금평저수지 오른쪽엔 ‘동곡약방’이 있다. 증산교 창시자 강일순이 1908년 약방을 차리고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환자를 돌봤다는 곳이다. 이 일대 농가들이 동곡서원, 황극후비소 등 증산도 관련 건물로 바뀌는 등 성지화되고 있다. 금평저수지 맞은편엔 증산법종교 본부 영대와 삼청전이 있다. 등록문화재(185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증산법종교는 강증산의 외동딸 강순임이 창건한 증산도의 한 교파다. 영대는 강일순 부부의 무덤을 봉안한 묘각, 삼청전은 증산미륵불을 봉안한 건물이다. 글 사진 김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평선장바지락죽은 바지락죽 전문점이다. 회무침과 전 등 바지락 요리를 주로 낸다. 김제 시내에 있다. 수미원우렁쌈밥은 이름처럼 쌈밥만 내는 집이다. 곁들여 나오는 제육볶음 등은 특이할 게 없지만, 김제 쌀로 지은 밥과 싱싱한 채소를 맛보려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다. 만경읍에 있다. 미즈노씨네 트리하우스는 만경읍 시골마을에 터를 잡은 카페다. 마을 당산목 위에 지은 트리하우스를 보려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벽골제 경관조명은 밤 10시까지 이어진다. 오후 5시부터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벽골제농경문화관 등 벽골제 관광지 안의 실내 시설은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 체육 요람이자 예술 총아… 서울 맨 위에서 격동의 역사를 목도하다

    체육 요람이자 예술 총아… 서울 맨 위에서 격동의 역사를 목도하다

    첫 돔구장 ‘장충체육관’… 스포츠 중심지김일·천규덕·장영철이 이끈 프로레슬링가난한 시절 찌든 마음에 통쾌한 선물로 김수영·박인환·변영로 등 문인·예술가전쟁 후 활동무대 명동서 국립극장 개관남산으로 이전한 후 문화의 새 뿌리로 ‘남산서울타워’ 1980년 일반에 처음 공개서울·지방 사람·외국인 인기 관광 코스서울은 역사 이래 한반도에 영토를 둔 나라들의 각축장이었다. 조선의 도읍이 되면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됐고, 지금까지 역사의 중심축이다. 이곳에 있는 유무형의 문화재가 지난날 이야기라면, 시민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2000년 역사의 단층 위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역사의 한 줄이 되고 있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7차 남산산책’ 편이 지난 11일 열렸다. 참가자들은 남산의 동쪽 장충체육관에서 출발해 남산 정상을 지나 남산의 서쪽 남대문시장까지 서울미래유산을 찾아 함께 걸었다.1960년대 중반 장충체육관은 우리나라 스포츠의 중심지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돔구장이었으며 각종 운동경기와 다양한 행사가 열린 곳이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던 종목은 프로레슬링과 권투였다. 아련하게 귓전에 맴도는 말, ‘여기는 장충체육관 특설링입니다’. 프로레슬링이 열리는 날 체육관은 만원이었다. 박치기의 왕 ‘김일’, 당수의 명수 ‘천규덕’, 비호 ‘장영철’ 세 명은 우리나라 프로레슬링을 이끄는 주축이었다.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 링 위의 그들은 일상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뚫어 주는 명약이었다. 상대 선수의 공세와 반칙에 당하던 김일 선수가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가 체중을 실어 상대방의 머리를 향해 박치기를 하면 관중과 텔레비전을 보던 사람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손뼉을 치고 환호했다. 김일 선수의 박치기가 상대 선수의 이마에 꽂힐 때마다 사람들은 “잘한다”, “잘한다”를 외쳤다. 천규덕 선수의 당수가 상대 선수의 가슴팍을 내리칠 때도 그랬다. 레슬링 경기가 끝나면 동네 아이들은 항상 모이는 친구 집에서 레슬링을 했다. 김일 선수의 박치기를 따라 했다가 머리에 혹이 나는 아이들도 있었다.김일 선수는 장충체육관에서 프로레슬링 세계 챔피언이 됐다. 권투에는 김기수 선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권투 세계 챔피언인 그도 장충체육관의 스타였다. 1963년 개장한 장충체육관은 2012년부터 리모델링을 시작, 2015년에 재개장했다. 새롭게 단장한 그곳에서 배구와 격투기 등 여전히 각종 운동경기가 열려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한때 사람들 사이에서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에서 무상으로 지어 줬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장충체육관 부근에는 1971년에 지어진 장충리틀야구장이 있다. 서울에 하나밖에 없는 유소년야구장이다. 이곳에서 야구를 하며 뛰어놀던 어린 선수들은 1983년, 1985년, 2014년에 세계리틀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어릴 때 이곳에서 야구를 했던 선수 가운데 박찬호와 이승엽도 있었다. 배우 송강호와 김혜수가 열연한 영화 ‘YMCA야구단’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장충리틀야구장 위에 있는 테니스장도 1971년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테니스 선수인 이덕희와 김봉수, 이형택 등 테니스 스타의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 호주 오픈 본선 진출, US오픈 16강, 프랑스 오픈 본선 진출 등 이덕희 선수의 ‘한국 최초 기록’은 화려하다. 이번 미래유산 답사 코스는 아니지만 장충체육관 북쪽 약 1㎞ 거리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자리에 동대문운동장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경성운동장으로 시작, 해방 이후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1959년에 재개장한 뒤 잠실에 종합운동장이 생기면서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프로야구와 축구가 없던 시절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리는 축구와 야구의 인기는 지금의 프로 경기 못지않았다. 특히 동대문야구장은 봉황기, 황금사자기, 청룡기, 대통령배 대회 등이 열리면 출신 지역과 학교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TV는 물론 라디오에서도 경기를 중계했다. 그 시절 최동원 선수는 최고의 고교야구 스타였다.장충체육관, 장충리틀야구장, 장충테니스장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국립극장으로 연결된다. 국립극장의 역사는 1950년 지금의 서울시의회 본관 건물에서 시작됐다. 첫 공연 작품은 ‘원술랑’이었다. 그해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7일 동안 5만명이 넘는 관객이 공연을 관람했다. 팬레터가 쇄도했다. “사랑하는 이를 눈물로 웃으며 보내는 예쁜 공주, 화랑 원술랑을 사모했던 것이 잘못일까?”라는 당시 어떤 팬이 보낸 팬레터의 한 대목이 남아 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국립극장은 대구에서 문을 열게 된다. 휴전협정을 맺은 다음해 미국 여배우 메릴린 먼로가 위문 공연 차 우리나라를 찾았다. 당시 ‘춘향전’에 출연한 배우 백성희와 촬영한 기념사진이 남아 있다. 전쟁이 끝난 명동에 김수영, 박인환, 오상순, 이봉구, 변영로 등 문인과 음악가, 미술 분야의 예술인이 모여들었다. 1956년 박인환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노래로도 만들어진 시 ‘세월이 가면’을 남겼다. 폐허가 된 명동에서 예술혼은 그렇게 피어나고 있었다. 박인환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57년 국립극장은 명동에 둥지를 튼다. 환도 기념 공연 작품은 카를 쇤헤어의 ‘신앙과 고향’이었다. 희곡 현상 공모도 했다. ‘딸들은 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 제1회 당선작이었다. 1961년 극장 리모델링을 시작해 1962년 3월에 새롭게 개관했다. 이때 ‘국립극단’이 발족됐다. 국립극장은 명동 시대를 끝내고 1973년 10월 지금의 자리인 남산으로 이전한다. 국립극장 남산 시대의 문을 연 개관 기념 공연은 ‘성웅 이순신’이었다. 240여명이 출연한, 당시 한국 연극 사상 최대 규모의 작품이었다.국립극장을 뒤로하고 남산서울타워로 향한다. 조선 시대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남산순환버스가 다니는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 있지만 무더운 날씨와 한정된 시간 때문에 남산순환버스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남산 정상 못 미쳐 넓은 터가 버스 종점이다. 종점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일행이 출발했던 장충체육관의 돔 지붕이 보인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정상으로 올라간다. 짧은 오르막길을 다 오른 후 오른쪽으로 돌아 전망데크에서 서울 도심을 조망했다. 서울 도심에 조선 시대 한양도성의 경계를 그려 본다. 발 딛고 서 있는 남산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성곽은 출발 지점인 장충체육관 뒤편으로 이어져 동대문을 만난다. 동대문을 지난 성곽은 낙산 줄기 주택가 사이를 비집고 올라 낙산 정상에서 숨을 고른다. 성곽은 백악산(북악산)을 지나고 그 품에 조선 시대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 경복궁을 품었다.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다시 남산으로 흘러온다. 그 가운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청계천이 흐른다. 청계천의 상류를 웃대라고 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서촌은 웃대의 한 마을이었다.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계곡 물줄기가 만든 풍경이 선경이라 시인 묵객들이 모여들었다. 겸재 정선이 살던 집은 현재 경복고등학교 자리다. 백사 이항복은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의 한쪽 끝부분에 필운대라는 둥지를 틀었다. 송석원시사는 중인 출신의 문인들이 시서화를 창작하는 공간으로 유명했다. 하류는 아랫대로 군영이 많았다. 조선 후기에 군사체제와 경제체제가 흔들리자 군영의 군인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리기도 했다. 현재 훈련원공원이 있는 곳이 훈련원이었는데, 조선 후기 훈련원 군사들이 농사지은 배추가 유명해 ‘훈련원 배추’로 팔렸다고 한다. 청계천 중류 중촌은 저잣거리이자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종로 남대문 주변에는 시장이 있었다. 의원, 역관, 꼭지(광통교와 수표교 등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활동했던 한양의 거지 조직), 전기수(소설을 읽어 주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사람)가 서로 얽혀 살았다. 지리적으로 중촌의 북쪽은 북촌이다. 당대 권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중촌의 남쪽에는 남촌이 있었다. 양반 중 무반 쪽 사람들과 벼슬 없는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 그곳이 남산 기슭이었다.남산 정상 전망데크는 여러 곳이다. 그곳을 돌아다니며 도심 풍경을 봐도 좋고 남산서울타워 전망대(유료)에 올라 전망을 즐겨도 좋다. 남산서울타워는 전체 높이가 236m가 조금 넘는다. 남산의 해발고도가 270m다. 1971년 탑신과 철탑의 공사를 마쳤다. 전망대는 1975년에 생겼으며 일반에 공개된 건 1980년이다. 남산서울타워는 관록의 여행지이자 유행을 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 사람은 물론 지방에 사는 사람, 외국인 등 서울을 찾은 사람들의 인기 관광코스다. 남산서울타워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며 굽어보는 시야에 인천 앞바다까지 들어온다. 남산서울타워를 뒤로하고 남대문 쪽으로 내려가는 길, 한양도성 성곽이 길을 안내한다. 백범광장을 지나 남대문 쪽으로 향한다. 오전 10시에 출발한 걸음은 낮 12시를 조금 넘겨 도착했다. 배가 고프다. 남대문시장으로 향한다. 오늘의 도착지 서울미래유산 남대문시장, 조선 태종까지 거슬러 오르는 시장의 역사를 뒤로하고 먹을 것이 넘쳐나는 골목으로 향한다. 50년을 넘긴 밥집이 여럿이다. 국밥에 곰탕, 닭곰탕, 칼국수, 갈치조림 등 한 끼 밥도 좋고 길거리 음식도 좋다. 돌아보니 출발했던 장충체육관 앞에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장충동 족발거리도 있었구나! 글 장태동 여행작가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세운 재개발 기대주 ‘루비온 오피스텔’ 2차분 분양

    세운 재개발 기대주 ‘루비온 오피스텔’ 2차분 분양

    도심 세운상가 주변 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일대 부동산 시장에 수요자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와 청계천·을지로 일대를 다시 정비하기 위해 지정된 지구로 서울 4대문 내 역대 최대 정비사업으로 불린다. 이러 면에서 대형 개발 호재와 맞물려 일대 분양현장들도 탄력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금번 2차 분양을 시작한 ‘종로 루비온 오피스텔’도 개발 중심지역에 들어설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당 현장의 경우 세운4구역, 세운2구역을 도로하나 사이로 두고 있어 종로구 내에서도 높은 미래가치가 부각됨에 따라서다. 현장은 서울시 종로구 인의동 28-26 일대에 위치하며 지하 2층, 지상 14층 규모로 단일타입 총 181세대의 오피스텔과 지하 1층, 지상 1층의 근린생활시설로 이뤄졌다. 당 현장은 1차 분양 100% 완료를 하고 금번에 2차 분양(회사보유분)을 돌입했다. 오피스텔은 일대 광화문·을지로·명동·종로 등 서울 강북 중심지와 직결되는 업무·상업의 핵심 요지에 자리 잡아 관심이 높을 전망이다. 특히 1,2,3,5호선 환승역인 종로역을 통해 환승 없이 서울 주요지역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또한 사업지 인근에는 대기업, 제약회사, 관공서, 외국계금융회사, 패션종사자, 서울대학병원 등이 위치해 입지상으로도 폭넓은 수요층 확보가 가능하다. 종묘공원,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등의 문화유산과 대학로, 청계천 등이 있고 서울 도심 속 경트럴파크(약 900,000㎡규모)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녹지공간을 지척에 두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내외국인 관광객들의 수요가 많고, 광장시장, 동대문 패션타운, 종로보석상가 등의 편의시설이 산재해 인접해 풍부한 배후수요도 기대해볼 수 있다. 규제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작년 12.16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15억원을 초과하는 고가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됐고 9억원 초과 주택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은 40%에서 20%로 낮아진 바 있다. 고가주택은 정부에서 담보대출을 예의주시 하고있어 소액투자가 힘들어진 상황에 자금부담 없이 투자 할 수 있는 오피스텔이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관측한다.한편, 루비온 오피스텔 입주는 2021년 10월 예정으로 현장공사가 진행중이고 계약금 10%, 중도금60% 무이자, 잔금 30%이다. 입주시까지 계약금 10%만 납부하면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친자연농법 농민 이근우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친자연농법 농민 이근우

    일이 있어 김천역에 내렸다가 혹시나 하고 전화를 했다. 2년 만의 만남은 뜻밖에도 바로 내 차 뒤에서 이루어졌다. 2년 만에 전화를 했는데 바로 차 뒤에서 형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면서 차에서 내려 형을 만났다.“어, 주대.” “어, 형.” 그러고도 한동안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전화기로 이야기를 했다. 우습고 좋았다. 술집으로 직행했다. 만화 주인공처럼 호감 있게 잘생긴 분이 이빨이 다 빠져 할아버지가 된 분, 치료할 돈이 없어 그만 영영 할아버지로 사는 분 이근우. SNS 활동을 하며 알게 된 형은 농사꾼이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농사 얘기가 나왔다. “시설 재배를 안 해. 물을 안 줘. 농약은 당연히 안 쓰지. 비료도 안 줘. 소똥도 안 줘. 소똥은 90프로가 미국 사료 배설물이야. 소가 지엠오를 싸는 거지. 소똥은 항생제 덩어리야.” “아, 형, 무슨 얘기라요?” “응, 그렇게 채소를 해. 네가 쓰는 글하고 비슷해. 대신 생선 찌꺼기를 줘.” “무슨 얘기신지?” “응, 채소를 그렇게 한다는 거야.” “아, 혀응~ 채소한테 생선을 줘요?” “응. 가끔 고라니도 줘. 고라니가 10년에 한 번 채소밭에 와서 죽을 때가 있어. 그러면 그걸 그냥 두면 썩어. 그 썩은 놈을 그냥 채소가 먹는 거지 뭐.”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형은 모르는 게 농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꾸러미’를 한다고 하는데 꾸러미는 또 뭔지? “모르는 게 농사야. 꾸러미로 소비자한테 직접 보내. 2만원이야.” 아, 진짜 무슨 얘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우선 꾸러미가 뭔지를 알아야 했다. 옆자리 형수가 끼어든다. “이 사람은 본래 이래요. 알아듣게 설명하는 걸 싫어해요. 상대가 알아듣든 말든 혼자 얘기해요. 호호호.” “형수님. 근데 형이 지금 무슨 말씀 하신 거라요?” “네, 채소를 유기농법으로 재배해서 소비자들에게 꾸러미로 싸서 직접 보낸다는 얘기라요. 꾸러미는 채소를 택배로 보내기 좋게 싸는 것을 말해요.” “몇 명에게나 보내요?” “한 30명?” “그럼 돈이 돼요?” “가난하게 먹고 살아요.” 형이 다시 끼어든다. “농사는 자연의 질서에 위배되는 거야. 자연의 질서를 위배해야 인간이 살아. 자연농법이라고 떠드는 건 다 사기야. 친자연농법이 맞는 얘기지. 자연에, 거대질서에 좀 빌붙어 사는 거야. 자연농법은 없고 자연에 가까운, 자연과 비슷한 농법이 있다는 거야. 그게 친자연농법이지. 작물이 원하는 걸 줄 수 있다면 대규모 재배도 가능해. 그래서 마누라님이 시장에 가서 생선 대가리를 사 와서 자두한테 주고, 고추한테 주고, 채소한테 주는 거지. 주대야, 근데 너 그림 그릴 때 관람객 생각하고 그리냐? 아니잖아. 근데 나는 소비자 생각하면서 농사 지어. 그게 너하고 나하고의 차이야.” 조금씩 형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며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형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이 나서 자신의 농사 철학을 발표했다. “토종이란 것은 없어. 고추도 고구마도 다 외국에서 들어온 거야. 그럼 진짜 토종은 뭐냐. 종자로 번식하는 게 토종이야. 종묘사에서 씨앗 사다가 기르면 한 해만 돼. 그다음 해에 그 채소에서 난 씨앗을 심으면 하나도 싹이 안 나와. 근데 내가 마누라하고 키우는 것은 씨앗을 받아서 다음해에 심으면 똑같은 튼튼한 채소가 나오지. 내가 재배한 놈의 씨앗을 받아서 다시 키우는 게 토종 재배야. 아이스박스 2000원, 택배비 4000원, 아이스팩 200원. 그리고 채소. 다 해서 2만원. 이게 내 삶이야. 주대야, 너는 얼마냐?” 그랬다. 형은 자연농법이 아니라 친자연농법으로 채소를 재배해서 꾸러미로 소비자에게 직접 보내 주신다. ‘너의 삶은 얼마냐’ 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혹시 이듬해 싹도 나오지 않는 종묘사 씨앗 같은 글이나 쓰고 그림이나 그리며 사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길섶에서] ‘좀비농장’ 농막에서/문소영 논설실장

    농막(農幕)은 ‘농사짓는 데 편리하도록 논밭 근처에 간단하게 지은 집’이라고 국어사전은 정의한다. 그러나 농막은 법적 지위가 있다. 농지법 제2조에 정의가, 농지법 시행규칙 제3조2항에 ‘농자재 및 농기계 보관, 수확 농산물 간이 처리 또는 농작업 중 일시 휴식을 위해 설치하는 시설로 연면적 20제곱미터 이하로, 주거목적이 아닌 경우로 한정한다’고 돼 있다. 즉 6평 이하여야 하고 숙박이 안 된다. 지난 주말 경기도 가평에서 농사짓는 번역가의 농막을 방문했다. ‘좀비농장’. 100평 가까운 땅을 개간해 상추와 고추, 고구마, 옥수수, 들깨,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 매실나무(매화)를 열심히 기르고 있다. 산비탈을 끼고 있는 농지의 끝에 지은 농막은 언덕배기에 있어서, 전망이 마치 아테네 신전 같았다. 거기서 참숯에 돼지목살을 구워 먹고 코펠에 내린 커피 한 잔을 마시니 잡스러운 세상일을 모두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배터리가 5%도 안 되는 부실한 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충만했다. “자고 가라”고 했으나 숙박은 불가했다. 또 다른 수확도 있었으니, 종묘상에서 사라진 고구마 모종을 좀비농장에서 끊어 온 것이다. 시기가 좀 늦었지만, 그래도 11월에는 뭔가 수확할 수 있겠지. symun@seoul.co.kr
  • 길이 경쟁 열올리는 출렁다리, 144곳 연2회 점검하기로

    길이 경쟁 열올리는 출렁다리, 144곳 연2회 점검하기로

    경복궁과 종묘 등 주요 문화재 5개와 전국에 있는 지하 공동구 28곳을 국가핵심기반으로 지정해 보호·관리하게 된다. 행정안전부는 23일 정부세종2청사에서 25개 부처와 17개 시도가 참석하는 ‘2020년 2차 안전정책조정위원회’를 열어 이러한 내용의 국가핵심기반 일제정비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국가핵심기반은 국가의 기능과 국민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설·시스템·자산 등을 지칭하며 관리 기관이 매년 별도의 보호 계획을 수립하고 관리 실태를 점검·평가해야 한다.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숭례문 포함), 종묘 등 문화재 5개가 이번에 국가핵심기반으로 지정됐다. 지하에 묻힌 전력·통신선, 가스관, 상하수도 등을 모아 관리하는 시설인 지하공동구 28곳도 국가핵심기반에 포함됐다. 문화재와 공동구가 국가핵심기반으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전체 국가핵심기반은 모두 340곳으로 늘어난다. 위원회는 또 전국의 출렁다리를 3종 시설물로 지정을 확대해 연 2회 의무적으로 정기 안전점검을 하도록 했다. 출렁다리는 현재 전국에 171곳이 있고 이 가운데 28곳만 현재 3종 시설물로 지정돼 있다. 행안부는 내년까지 3종 시설물을 116곳 더 확대해 144곳까지 늘린다. 3종 시설물로 지정되지 않은 출렁다리도 연 1회 안전점검을 시행하도록 했다. 현재는 점검을 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규제받지 않는다. 최근 5년 내 자체 안전점검을 한 곳은 78곳에 그쳤다. 위원회는 이밖에 또 지난해 광주 클럽 붕괴사고처럼 안전수칙 위반에 따른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규정 미이행 시 제재를 강화하고, 사고 발생 위험이 큰 연안해역을 전수조사해 위험구역을 재지정하거나 등급을 조정하기로 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똑똑 우리말] ‘경신’과 ‘갱신’의 쓰임/오명숙 어문부장

    ‘KBS 2TV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가 지난 14일 31.6%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지난 5일 나스닥이 장중 9845.69포인트를 기록하면서 신고가를 갱신했다.’ 위 문장에 사용된 ‘경신’과 ‘갱신’의 쓰임은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 한자 ‘更新’은 ‘경신’ 또는 ‘갱신’으로 읽을 수 있다. ‘更’이 ‘고칠 경’과 ‘다시 갱’ 두 가지의 음훈을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장에 따라 구분해 써야 한다. 먼저 ‘경신’은 기록경기 따위에서 종전의 기록을 깨뜨리거나 어떤 분야의 종전 최고치나 최저치를 넘어서는 경우에 쓰인다. ‘마라톤 세계 기록 경신’, ‘주가 연중 최고치 경신’ 등과 같이 체육이나 경제 관련 글에서 사용된다. ‘갱신’은 주로 법률관계의 존속 기간이 끝났을 때 그 기간을 연장하는 일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전세 계약 갱신’, ‘여권 갱신’ 등처럼 쓰인다. ‘시스템 갱신’ 등과 같이 컴퓨터에서 기존 내용을 변동된 사실에 따라 변경·추가·삭제하는 일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도 ‘갱신’을 사용한다. ‘경신’이 이미 있던 것을 고쳐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에는 ‘갱신’으로 바꾸어 써도 된다. 즉 ‘노사 간에 단체 협상 경신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였다’나 ‘그의 이론은 논리학과 철학에 경신을 일으켰다’고 할 때의 ‘경신’은 ‘갱신’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종묘 개량 경신’ ‘환경 경신’ 등도 ‘종묘 개량 갱신’, ‘환경 갱신’으로 바꾸는 게 가능하다. oms30@seoul.co.kr
  • 서울시, 도로 열 식히고 미세먼지 제거하는 ‘클린로드’ 7곳서 운영

    서울시, 도로 열 식히고 미세먼지 제거하는 ‘클린로드’ 7곳서 운영

     서울시가 여름철 아스팔트 온도를 낮추고 도로먼지 제거에 효과가 있는 클린로드를 시내 7곳에서 운영한다고 14일 밝혔다.  클린로드는 도로 중앙선에 작은 사각형 모양으로 설치된 시설물로, 지하철역에서 유출돼 버려지는 지하수를 도로면에 분사한다. 시는 지난해 여름 세종대로 340m 구간에 클린로드를 설치해 하루 세번 가동시켰다. 여름철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른 아스팔트를 식혀주고, 도로 미세먼지를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올해는 발산역, 증미역, 효창공원앞역, 종로3가역, 종묘 앞, 장한평역 등 6곳에 추가로 설치한다. 기존에 설치된 세종대로 클린로드는 15일부터 가동하고, 나머지 6곳도 순차적으로 가동한다.  시는 ‘2020 클린로드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 전체 역사 368곳과 서남·중랑·탄천·난지 등 4개 물재생센터에 클린로드 설치가 가능한지 조사 중이다. 연구가 끝나면 확대 설치를 검토한다.  김학진 시 안전총괄실장은 “여름철 뜨거워진 아스팔트 지면온도를 낮추고 타이어 분진 등으로 발생하는 미세먼지 제거에도 효과가 있는 클린로드를 확대 설치하게 됐다”며 “물 분사로 인해 보행 중이나 차량통행시 불편함이 있을 수 있으니 시민들의 이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꽉 막힌 서울 종로·강남대로 체증 10% 줄어든다

    꽉 막힌 서울 종로·강남대로 체증 10% 줄어든다

    서울에서 교통 체증이 가장 심한 종로, 강남대로의 차량 흐름이 다음달부터 10%가량 빨라진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차량정체와 사고가 잦은 95개 도로(총 300㎞)를 선정해 신호 운영체계와 신호기, 차선 등을 종합적으로 개선한다고 4일 밝혔다. 우선 차량정체가 가장 극심한 것으로 분석된 종로, 왕산로, 경인로, 강남대로 등 4개 도로를 이달 말까지 집중적으로 개선하고 나머지 91개 도로는 연말까지 작업을 마칠 예정이다. 경찰이 먼저 손대기로 한 4개 도로는 출퇴근 시간대 평균 통행 속도가 시간당 12.2~17.4㎞에 그치는 상습 정체 구간이다. 경찰은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종로1가, 종로2가~종묘공원 구간에서 우회전 전용으로만 사용하던 1개 차로를 직진 겸용으로 쓰기로 했다. 동대문구 왕산로의 경동시장 교차로는 버스전용차로가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변경되는 구간이어서 버스와 일반 차량이 자주 뒤엉키는 곳이다. 경찰은 이 구간에 버스 우선신호를 설치해 버스와 일반 차량의 흐름을 분리할 예정이다. 신설동역부터 성바오로병원의 평균 통행속도가 6.8% 개선되는 효과가 예상된다. 경찰은 노약자 보행이 많은 경동시장과 청량리역 환승센터 앞 횡단보도 보행신호를 지금보다 8~18초 늘려 보행자 안전을 강화한다. 경찰은 구로구 경인로의 동양미래대학부터 구로소방서까지 240m 구간에 1개 차선을 늘리기로 구로구와 협의했다. 이 구간은 차선 수가 3개에서 2개로 줄어 병목현상이 극심한 곳이다. 차로가 늘어나면 양천과 목동 방향 차량을 분산하게 돼 통행 속도가 약 29.7% 개선될 것으로 경찰은 내다봤다. 강남구 강남대로의 논현역과 교보타워 교차로에는 차로별 신호기가 설치된다. 버스, 좌회전, 직진 차량의 교통량에 따라 녹색불 통행 시간을 최적화하겠다는 취지다. 신호기 교체만으로도 신사역~논현역 구간 통행 속도가 9.7%가량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4개 도로 개선 효과를 분석한 다음 나머지 91개 도로(227㎞)에 대해서도 올해 안에 개선 작업을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꽉 막힌 종로·강남대로 뻥 뚫리게…신호 바꾸고 차선 늘린다

    꽉 막힌 종로·강남대로 뻥 뚫리게…신호 바꾸고 차선 늘린다

    상습정체구간 서울 95개 도로 연말까지 개선구간 따라 통행속도 6.8~29.7% 개선 효과서울에서 교통 체증이 가장 심한 종로, 강남대로의 차량 흐름이 다음 달부터 10%가량 빨라진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차량정체와 사고가 잦은 95개 도로(총 300㎞)를 선정해 신호 운영체계와 신호기, 차선 등을 종합적으로 개선한다고 4일 밝혔다. 우선 차량정체가 가장 극심한 것으로 분석된 종로, 왕산로, 경인로, 강남대로 등 4개 도로를 이달 말까지 집중적으로 개선하고 나머지 91개 도로는 연말까지 작업을 마칠 예정이다. 경찰이 먼저 손대기로 한 4개 도로는 출퇴근 시간대 평균 통행 속도가 시간당 12.2~17.4㎞에 그치는 상습 정체 구간이다. 경찰은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종로1가, 종로2가~종묘공원 구간에서 우회전 전용으로만 사용하던 1개 차로를 직진 겸용으로 쓰기로 했다.동대문구 왕산로의 경동시장 교차로는 버스전용차로가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변경되는 구간이어서 버스와 일반 차량이 자주 뒤엉키는 곳이다. 경찰은 이 구간에 버스 우선신호를 설치해 버스와 일반 차량의 흐름을 분리할 예정이다. 신설동역부터 성바오로병원의 평균 통행속도가 6.8% 개선되는 효과가 예상된다. 노약자 보행이 많은 경동시장과 청량리역 환승센터 앞 횡단보도 보행신호는 지금보다 8~18초 늘리고, 보행신호와 차량신호 사이에 빨간불을 넣어 보행자 안전을 강화한다. 경찰은 구로구 경인로의 동양미래대학부터 구로소방서까지 240m 구간에 1개 차선을 늘리기로 구로구와 협의했다. 이 구간은 차선 수가 3개에서 2개로 줄어 병목현상이 극심한 곳이다. 차로가 늘어나면 양천과 목동 방향 차량을 분산하게 돼 통행속도가 약 29.7% 개선될 것으로 경찰은 내다봤다.강남대로의 논현역과 교보타워 교차로에는 차로별 신호기가 설치된다. 버스, 좌회전, 직진 차량의 교통량에 따라 녹색불 통행 시간을 최적화하겠다는 취지다. 신호기 교체만으로도 신사역~논현역 구간 통행속도가 9.7%가량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강남대로의 우성아파트와 뱅뱅사거리는 간선도로와 접속도로의 교통량을 반영해 신호 체계를 개선할 예정이다. 오후 4시 30분~6시는 강남대로 위주로, 오후 6~10시는 주변 접속도로 위주로 신호를 운영한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4개 도로 개선 효과를 분석한 뒤 나머지 91개 도로(227㎞)에 대해서도 올해 안에 개선 작업을 마칠 계획”이라며 “이런 노력으로 시민 생활이 더 안전해지고 코로나19 극복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4대궁과 종묘·조선왕릉 안내해설 6월 1일부터 재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코로나19로 지난 2월 8일부터 중지했던 4대궁과 종묘, 조선왕릉 문화재 안내해설을 다음 달 1일부터 순차적으로 재개한다고 28일 밝혔다. 경복궁·종묘는 6월 1일(매주 화요일 휴무), 창덕궁·창경궁·덕수궁·조선왕릉(매주 월요일 휴무)은 6월 2일, 실내 시설인 덕수궁 중명전과 석조전은 6월 9일(매주 월요일 휴무) 순으로 안내해설을 시작한다.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안내해설 회당 인원은 궁궐 20∼30명, 왕릉 10명으로 제한한다. 창덕궁 후원은 60명, 종묘는 30명~60명(학생 단체)까지다. 경복궁은 공간이 넓은 전각 위주로 해설 관람 동선을 변경해 운영한다. 아울러 다변화하는 외국 관광객 수요에 대비해 경복궁은 인도네시아어와 베트남어 해설을, 창덕궁에서는 러시아어 해설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반려독 반려캣] 푸른색+노란색…양쪽 눈 색 다른 ‘오드아이 고양이’ 화제

    [반려독 반려캣] 푸른색+노란색…양쪽 눈 색 다른 ‘오드아이 고양이’ 화제

    양쪽 눈 색깔이 서로 달라 신비한 매력을 내뿜는 오드아이 고양이가 숱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스코틀랜드폴드 종 고양이로는 보기 드물게 오드아이를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인기라고 전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예브게니 페트로프(29)는 얼마 전 반려묘로 ‘조셉’(2)을 입양했다. 페트로브는 “인터넷에서 처음 조셉 사진을 봤을 때는 진짜가 아닌 줄 알았다”라고 밝혔다. 양쪽 눈 색깔이 너무 뚜렷하게 달라 실재할 거라고 믿지 않은 것.하지만 조셉은 실제로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였다. 페트로프는 "5개월째 팔리지 않아 주인을 기다리는 고양이였다. 다음날 곧바로 입양해 데려와 함께 살았다"고 설명했다. 오른쪽 눈은 사파이어를 연상시키는 푸른빛을, 왼쪽 눈은 호박빛을 띠는 조셉은 오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단번에 인터넷 스타에 등극했다. 페트로프는 “오드아이는 페르시안 고양이나 터키시 앙고라 같은 고양이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스코틀랜드폴드 종에게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라며 자랑을 늘어놨다.고양이 눈동자는 모두 검은색이지만 동공 주위를 둘러싼 홍채 색깔이 각기 달라 ‘눈 색깔’이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그중에서도 오드아이는 홍채 세포의 DNA 이상으로 멜라닌 색소 농도에 차이가 생기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홍채 이색증’이라고도 불린다. 멜라닌이 많은 쪽은 노란빛을 띠며 멜라닌이 적은 쪽이 푸른빛을 띤다. 오드아이라고 시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종종 청력 문제를 겪는 고양이도 있다. 코넬고양이건강센터에 따르면 17~22%의 흰색 고양이, 40%의 파란 눈 고양이가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난다. 파란 눈과 흰색 털을 만드는 유전자 변형이 귀 내부 구조의 기형도 일으키기 때문인데, 특히 뇌에 소리 신호를 보내는 달팽이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흰 털에 파란 눈을 가진 개체는 난청일 가능성이 65~85%나 된다. 파란 눈이 있는 쪽 귀에 청력 이상이 오는 식이다. 일단 '조셉'은 청력에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오드아이 고양이 인기가 높아지면서 인위적으로 만든 품종묘도 덩달아 늘어난 탓에 일각에서는 고양이에게 청각장애를 부추긴다는 비난도 나온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인간문화재 아닌 전수교육조교, 첫 명예보유자 된다

    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전수교육조교 최충웅(79)·이상용(78)씨 등 15개 종목 전수교육조교 21명을 첫 명예보유자로 인정 예고했다고 21일 밝혔다. 명예보유자 제도는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가 고령 등으로 전수교육이나 전승활동을 정상적으로 펼치기 어려운 경우 그간의 공로를 기려 우대하고자 2001년 마련한 제도다. 지금까지 70명이 명예보유자로 인정됐고, 이가운데 54명이 별세했다. 하지만 보유자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활동해온 전수교육조교도 나이나 건강 등의 문제로 교육이나 전승활동을 하기 어려울 경우 명예보유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관련 법령이 개정됨에 따라 이번에 처음으로 전수교육조교 명예보유자가 나오게 됐다. 명예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전수교육조교 21명은 75세 이상, 조교 경력 20년 이상 대상자 가운데 지난 2월 전수교육조교 본인이 문화재청에 신청해 무형문화재위원회 검토를 거쳐 선정됐다. 명예보유자로 인정되면 매월 받는 지원금과 장례위로금이 늘어난다. 문화재청은 30일 예고기간 동안 의견 수렴과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인정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명예보유자 인정 예고 전수교육조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강정자(78)씨, 제8호 강강술래 김국자(80)·박부덕(78)씨, 제11-4호 강릉농악 차주택(80)·최동규(78)씨, 제12호 진주검무 조순애(77)씨, 제25호 영산쇠머리대기 정천국(80)씨, 제28호 나주의 샛골나이 김홍남(79)씨, 제41호 가사 김호성(77)씨, 제48호 단청장 박정자(81)·이인섭(77)·김용우(76)씨, 제73호 가산오광대 방영주(83)씨, 제82-2호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김금전(81)씨, 제87호 명주짜기 이규종(88)씨, 제90호 황해도평산 소놀음굿 이창호(94)·안금순(77)씨, 제97호 살풀이춤 김정녀(81)씨, 제140호 삼베짜기 양남숙(77)씨.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일제가 철거한 덕수궁 대한문 월대 되살린다

    일제가 철거한 덕수궁 대한문 월대 되살린다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덕수궁 정문 대한문 앞 월대(月臺)가 복원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대한제국 황궁인 덕수궁 대한문의 면모를 회복하기 위해 월대 재현 설계를 시작해 내년까지 축조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월대는 궁궐이나 묘단(廟壇)에 있는 주요 건축물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를 뜻한다. 국보인 종묘 정전과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에 월대가 남아 있다. 경복궁 광화문은 월대 복원 작업이 추진 중이다.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었다. 황성신문과 독립신문에 따르면 대안문 건립 시기는 1898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월대는 1899년에 공사가 시작됐고, 1900년에 새로 고쳤다는 문헌 기록이 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 대안문은 불타지 않았지만 보수하면서 1906년에 이름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쳤다.대한문 월대는 1910년대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사진을 보면 월대가 있지만, 1919년 고종 국장 사진에는 월대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월대 끝에 설치한 석수(石獸·동물 형상 석조물)만 존재한다. 대한문은 1970년 태평로 확장때 원래 위치에서 33m 가량 물러선 지점으로 옮겨졌다. 궁능유적본부는 대한문과 월대를 원 위치에 복원하는 방안은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해 원형 고증을 통해 현재 대한문 자리에 월대를 세우기로 했다. 오는 7월까지 설계를 마친 뒤 전문가 자문을 거쳐 내년에 월대 복원을 마칠 예정이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위성정당 앞세운 거대 양당… 의석 독과점 노려 연합정치 정신 유린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위성정당 앞세운 거대 양당… 의석 독과점 노려 연합정치 정신 유린

    “지금 예조판서 이이첨의 하는 짓은 괴이하기 짝이 없습니다.” 광해군 8년(1616년) 12월 한 유생의 상소가 조정을 뒤흔들었다. “전하의 팔다리 노릇을 하고 귀와 눈 역할을 하며 목구멍과 혀 노릇을 하는 관원들이나, …인재를 선발하는 일을 맡은 이들 가운데 이이첨의 복심이 아닌 자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무릇 지금 삼사에서 나온 간단한 상소문도 실은 이이첨에게서 나온 것이며 문무관을 뽑는 이조, 병조가 추천한 사람들 또한 이이첨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필자는 태학(성균관)생 윤선도였다. 일개 학생이었지만 그 내용이 얼마나 아팠으면 이이첨은 한동안 사람 눈을 피해 칩거했다고 한다. 윤선도가 함경도로 유배돼 논란이 잦아들자, 이이첨은 ‘잔당 척결’을 위해 다시 칼을 빼 들었다. 인목대비를 폐출하라! 광해군에게는 두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다. 하나는 서자 출신의 왕이라는 것, 둘째는 서자 중에서도 둘째라는 것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세자 책봉에서부터 왕위 승계에 이르기까지 매번 온갖 시달림을 당했다. 선조 말년엔 폐세자 논의가 공공연했고 세 살짜리 적장자 영창대군에게 왕위가 승계될 뻔하기도 했다. 즉위 후엔 명(明)이 승계의 정당성을 따졌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7년 전쟁 동안 구명도생이나 하던 선조 대신 사직과 국가를 지켰다. 전후에도 국가재건을 위한 제도 정비와 혁신에 앞장섰다. 개혁 군주로서의 자질은 뚜렷했다. 그러나 왕권의 문제에 관한 한 병적인 집착과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광해군의 이런 불안을 이용해 이이첨은 국정을 전단하고 권력을 독점했다. 말년엔 광해군조차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오죽하면 인조반정 때 도망가며 “이이첨의 짓인가”라고 물었을까. 이이첨의 집념은 유별났다. 22세(1582년)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현감 재직 중이던 1594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으며 1608년 성균관 사성으로 재직하면서 중시 갑과 장원으로 급제했다. 교원으로 있으면서 제자들과 함께 시험을 치러 장원한 것이었다. 재주와 집념은 특별했지만 그를 거두어 줄 사림은 없었다. 그는 무오사화의 발단이었던 이극돈의 직손이었다. 그를 받아 준 유일한 사람이 남명 조식의 제자 정인홍이었다. 강개한 의병장이었던 정인홍은 죽음을 무릅쓰고 세조 어진을 지킨 그를 애틋하게 챙겼다. 이이첨은 정인홍의 줄을 잡고 동인에 발을 디밀었다. 1592년 광해군 건저의 사건과 관련한 정철의 처리 문제로 동인이 남북으로 갈라질 때 북인의 편에 섰으며, 임진왜란 중 왜와 강화를 추진했다는 이유로 유성룡 등 남인을 조정에서 밀어낼 땐 북인의 전위대 역할을 했다. 북인이 1599년 홍여순의 대제학 임명 문제로 대북과 소북으로 분열할 땐 정인홍을 따라 소장파(소북)를 공박했다. 잇따른 권력투쟁에서 이이첨의 존재는 단연 돋보였다. 1608년 선조의 후계를 놓고 대북과 소북이 정면충돌할 땐 대북을 이끄는 존재가 됐다. 영의정 유영경 등 소북 지도부는 선조의 마음을 읽고 영창대군을 밀었다. 소북 안에서도 내분이 생겨 광해군 승계를 주장한 기자헌, 남이홍 등의 청소북과 유영경 등의 탁소북으로 분열했다. 이이첨은 정인홍과 함께 광해군 승계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유배형에 처해졌으나 선조가 급서해, 광해군의 총아가 됐다. 광해군은 즉위 후 선조의 유교까지 숨겨 가며 승계를 방해한 일곱 대신과 탁소북을 조정에서 몰아냈다. 대신 이원익(남인) 등을 영입해 대북, 남인 그리고 이항복(서인), 기자헌(청소북) 등을 중용해 연합정치를 추구했다. 이이첨은 예조판서 겸 대제학으로 이데올로기를 관장했다. 광해군 즉위년에 숙청된 이들의 사주로 명나라가 승계 과정을 조사할 사신을 파견했다. 걸림돌은 광해군의 친형이자 서장자인 임해군이었다. 이이첨은 임해군이 모반을 도모한다는 고변을 일으켰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3사를 동원해 임해군의 처단을 주장했다. 임해군은 강화도에 유배됐고, 그곳에서 의문사했다. 임해군은 성정이 포악하고 흉폭한 짓을 많이 저질러 그를 안타까워하는 이는 없었다. 고변의 효과에 눈뜬 이이첨은 이후 고변을 정적 제거에 적극 활용했다. 다음 표적은, 한때 선조가 염두에 두었던 순화군의 양자 진릉군. 1612년 ‘김직재의 옥’을 일으켜 진릉군을 추대하려 했다는 고변을 유도해 탁소북의 잔존세력을 제거했다. 이때부터 원성이 일기 시작했다. 1613년엔 계축옥사가 일어났다. 마침 ‘일곱 서자’의 강도 사건(칠서의 옥)이 일어났다. 이이첨은 이 가운데 박응서로 하여금 ‘서얼들이 자금을 모아 영창대군을 추대하려 했다’는 상소를 올리도록 했다. 수괴로 지목된 김제남(인목대비의 아버지)과 세 아들이 처형됐다.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유배됐다. 이에 반대하던 이덕형·이항복·신흠·이정구·김상용 등 서인과 남인들이 숙청됐다. 영창대군은 이듬해 유배지에서 이이첨의 심복(강화부사 강항)에 의해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계축옥사로 대북 세상이 됐다. 1615년엔 소명국의 고변을 이용한 ‘신경희의 옥’이 일어났다. 능창군이 표적이었다. 당시 시중에는 ‘정원군(능창군의 아버지)의 집에 왕기가 성하다’느니 ‘능창군(인조의 동생)의 기상이 비범하다’ 따위의 항설이 나돌았다. 능창군은 강화도로 유배했고, 정원군의 집은 허물었다. 집터엔 경덕궁을 지어 ‘서기’를 가로챘다. 윤선도의 병진소는 이즈음 나온 것이었다. 무고하면 상을 받고, 당하면 처벌당하니 온갖 고변이 횡행했다. 장령 배대유는 개탄했다. “김덕룡이라는 자는 간음하다 붙들리자 고변했고, 김언춘은 도둑질하다 붙들리자 모역을 고변했다.” 대미는 인목대비 폐모론이었다. 이이첨은 계축옥사 때에도 태학(성균관)생 이위경 등을 사주해 폐모소를 올리도록 했었다. 이이첨은 1617년 다시 폐모론을 전면적으로 전개했다. 11월 전현직 관리 1000여명과 종실 170여명이 인목대비의 폐출을 주장했다. 광해군이 거듭 거부했지만 이듬해 1월 우의정 한효순이 주도해 폐모정청이 열렸다. 광해군은 하소연했다. “나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이다지도 한결같이 혹독한 형벌을 내린단 말인가.” 이제 광해군도 이이첨을 이길 수 없었다. 5월 광해군은 인목대비를 폐출 대신 서궁(경덕궁)에 유폐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대북 안에서 폐모에 반대하던 기자헌, 정창연, 유몽인 등 골북, 중북은 숙청됐다. 남은 건 이이첨을 추종하는 ‘육북’뿐이었다. 8월엔 폐모론에 앞장섰던 허균마저 ‘남대문 벽서’를 핑계로 처형당했다. 독점은 완성됐다. 그러나 1623년 서인이 주도하고 남인과 전향한 북인이 동조한 인조반정을 막을 순 없었다. 광해군은 쫓겨나고, 대북은 멸종했다. 이이첨은 줄이 필요할 땐 광해군의 호위무사였지만, 권력의 중심에 서면서 스스로 권력의 화신이 됐다. 개혁 정책에는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다. 전후복구의 토대였던 대동법 실시에 반대했고, 명과 후금 사이의 등거리 실리외교에도 반대했다. 명이 요구한 지원군 파병을 주저하는 광해군을 비난하기도 했다. 민심을 결정적으로 돌아서게 한 궁궐 건설에는 앞장섰다. 전란 중 불탄 종묘나 창덕궁 중건 이외에 경덕궁, 인왕궁, 자수궁을 신축했다. 명분은 ‘창덕궁은 불길하다’, ‘경덕궁에 서기가 있다’ 따위가 고작이었다. 광해군이 유배당할 때 백성은 이렇게 조롱했다. “돈 애비야 돈 애비야 거두어들인 금은은 어디에 두고 이 길을 가느냐.” 민주화 이후 21대 총선처럼 지저분한 선거는 없다. 의석 독과점을 위한 거대 양당의 이른바 위성정당 때문이다. 사표를 막아 연합정치의 토대를 마련하려던 개정 선거법의 정신은 여지없이 유린됐다.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을 주도했으니 할 말이 없다. 1당을 내줄 순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지만, 실제 목표는 단독 과반이다. 하승수 전 정치개혁연합 사무총장은 그 배후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을 꼽았다. “그는 연합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다.” ‘대북’은 한때 조선사에서 가장 개혁적이었다. 광해군 초기 ‘연합정치’로 재건과 혁신의 동력을 확보했지만, 이이첨의 무모한 권력독점과 함께 몰락했다. 그런 부류는 언제나 있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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