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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술이 술술]1984/글쓴이:조지 오웰

    조지 오웰의 ‘1984’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미래소설 또는 정치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2차 세계대전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48년에 36년 후의 세계를 나타냈기 때문에 미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전체주의 사회의 문제를 소설로 나타냈으므로 정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소설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아메리카와 영국을 가리키고 있지만, 독자들은 작가가 스탈린 당시의 소련을 모델로 하여 이 작품을 쓰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미래 사회를 다양하게 그리고 있는 흔한 가상 공상소설들이나 소련에 대한 비판이라는 협소한 주제에 갇힌 정치소설과는 구별된다. 그것은 어빙 하우가 “현대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언”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 속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가능성들이기 때문이다. 오웰이 미래를 상상해서 나타내고 있는 ‘1984’의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의 세 커다란 초국가(超國家)로 나뉘어 끝없이 전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이다. 주인공인 6079호 윈스턴 스미스가 살고 있는 곳은 오세아니아의 제일 지대인 런던이다.‘당’이 자신의 권력을 의인화하여 내세운 ‘대형’(big brother)이 지배하고 있는 오세아니아는 사상 통제와 과거 통제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특징을 보인다. 사상 통제란 ‘INGSOC’이란 정당에서 다른 사고 방식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텔레스크린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철저히 감시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찰과 함께 ‘신어’(新語)를 통해서 사상을 통제하기도 한다.“해마다 낱말이 줄어드는” 이 신어는 언어에서 이단적인 사고와 행위의 표현을 없애서 범죄의 의식마저 불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다. 곧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말의 의미를 없애서 “장기를 모르는 사람이 장기의 ‘퀸’을 알 수 없듯이” 모든 이단적인 사고의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 통제란 당의 독재 권력을 절대화하기 위한 과거의 날조를 뜻한다.‘1984’의 세계는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는 논리에 따라서 과거의 모든 기록은 당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된다. 물론 이러한 통제는 소련과 같은 일당독재 체제 하의 전체주의 국가를 비판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1984’년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의 세계 안에서 그러한 문제를 본다.‘이라크 민중을 향한 무자비한 폭격’과 ‘이라크 민중의 해방’이라는 명분의 기묘한 결합, 여러 정당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개혁들’끼리의 갈등….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과연 ‘해방’과 ‘개혁’이라는 정치적 ‘신어’들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우리들이 생각하는 진리는 과연 얼마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습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만드는 데 있다. 프롬의 말처럼 “조지 오웰의 ‘1984’는 분위기의 표현이며 경고이다. 그것은 인간의 미래에 관한 절망적 분위기의 표현이고, 역사적인 변화 과정이 없이는 전세계의 인간이 인간성을 상실한 자동 기계가 될 것이며, 이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되리란 사실에 대한 경고이다.” ■생각해보기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언어가 미치는 영향은. -‘역사’는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정치권력에 의해 씌어지는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삶에 대한 기술적 통제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그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생각해보자. -국가 권력의 거대화와 정보 독점에 따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중3∼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정치, 사회문화 -함께 읽어 볼 책과 고전:멋진 신세계(헉슬리), 동물농장(조지 오웰), 소유의 종말(제레미 리프킨·민음사), 일반언어학강의(소쉬르), 영화(매트릭스, 공각기동대) -기출논제:중앙대 2000학년도 정시 논술, 고려대 2002학년도 수시2학기 논술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 [씨줄날줄] 수소경제/우득정 논설위원

    미국의 문명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은 1990년대 중반 ‘노동의 종말’‘소유의 종말’이라는 저술을 통해 기존 사회 통념을 통째 흔들어 놓았다.2002년에는 ‘수소혁명-석유시대의 종말과 세계 경제의 미래’라는 저술에서 수소가 미래의 에너지가 될 것임을 단언했다.‘해저 2만리’의 작가 쥘 베른이 1874년 발표한 공상과학소설 ‘신비의 섬’에서 예견한 수소 에너지시대의 도래를 선언한 것이다. 리프킨의 전제는 단순하다. 한정된 화석연료인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는 2002년 기준으로 204년,40.6년,60.7년 후면 바닥난다. 최근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중동 두바이유에서 보듯 석유는 더이상 값싼 연료가 아니다. 지구촌 분쟁의 씨앗이다. 화석연료는 재생 불가능할 뿐더러 공해유발 물질이다. 영국의 기상학자 존 휴튼은 화석연료가 초래하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대량 살상무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리프킨이 주목한 것이 지구 표면물질의 70% 이상, 우주 질량의 75%를 구성하고 있는 수소다. 수소는 어느 곳에서나 흔히 구할 수 있다.‘에너지의 민주화’‘영원한 에너지’‘마법의 에너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수소는 단위 질량당 에너지량이 가솔린의 4배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3년 의회 연설에서 “수소 기술은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에너지 기술”이라면서 향후 5년간 수소 기술개발에 12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미 1990년대부터 ‘수소에너지개발법’을 제정하고 에너지부 주도로 수소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2002년 “연료전지가 수소사회의 문을 여는 열쇠”라면서 3년내 자동차 및 가정용 연료전지를 실용화하겠다고 천명했다. 특히 아이슬란드는 풍부한 자연에너지를 활용해 수소 자원을 생산하는 ‘북구의 쿠웨이트’가 되겠다는 ‘2040년 수소사회’ 프로젝트를 주요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석유수입 세계 4위로 에너지 과다 소비국으로 분류된 한국도 뒤늦게 수소기술 개발경쟁에 뛰어들었다. 산업자원부가 3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보고를 하면서 수소경제 마스터플랜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선진국보다 5년 뒤졌다는 수소기술 격차를 얼마나 빨리 단축시킬지 주목된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안양의 ‘농촌’ 동편마을을 살리자!”

    “안양의 ‘농촌’ 동편마을을 살리자!”

    “동편마을을 살리자.” 경기도 안양의 유일한 농촌마을인 동편마을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지역 시민단체와 자치단체가 발벗고 나섰다. 최근에는 지역 출신 영화인들까지 가세, 동편마을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형태의 영화를 제작하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안양유일의 가용 녹지공간 과천시와 경계를 이루는 동편마을은 동안구 관양동 관악산 끝자락에 자리 잡은 농촌 자연마을이다. 조선 중기 전주 이씨 익양군파가 집단 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됐다. 토지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규제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논과 밭이 주말농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동편마을은 높은 당도와 뛰어난 맛으로 한때 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명성을 날렸던 안양포도의 주산 단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같은 한적한 농촌마을에 정부가 임대아파트를 짓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민들이 술렁거리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수도권 13개 시·군에 그린벨트 820만평을 해제,15개 단지에 14만 6000가구의 국민임대주택단지를 건설하기로 한 것. 이 가운데 안양·군포·의왕 등 안양권 58만평에 모두 1만 4000가구의 임대아파트를 건설하며 동편마을 18만 5000평(3500가구)이 개발 예정지에 포함돼 있다. ●16개 시민단체 대책위 발족 정부의 이런 계획이 전해지자 안양지역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환경운동연합과 시민연대,YMCA 등 안양지역 16개 시민단체는 안양 동편마을 보전 범시민대책위를 발족하고 동편마을 보전을 위한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건교부가 주민의견이나 지역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안양지역 유일의 가용 녹지공간인 동편마을에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지역 현실을 무시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인데다 안양의 환경문제마저 야기한다.”고 밝혔다. 안명균 범시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은 “동편마을은 안양의 마지막 남은 가용토지인 동시에 관악산, 수리산, 청계산을 잇는 유일한 생태통로”라며 “수도권 과밀을 부추기고 환경을 파괴하는 대규모 택지개발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과밀 및 생태계 파괴 우려 동편마을을 구하자는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의 염원은 이를 소재로 한 영화제작으로까지 이어진다. 영화를 사랑하는 안양지역 젊은이들이 택지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농촌마을을 구하자며 영화 제작에 나선 것이다. 안양토박이 또는 연고가 있는 20∼30대 영화업 종사 청년들로 구성된 안양독립영화협회는 안양 유일의 농촌지역이 임대주택단지로 개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큐멘터리 형태의 영화 ‘동편마을 살리기’를 제작한다고 밝혔다. 영화는 50분 분량으로 택지개발로 사라질 동편마을을 통해 지역문화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무차별적인 개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향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협회는 이를 위해 영화 제작에 참여할 제작부와 연출부 스태프 약간명을 모집하는 한편 영화제작 경력이 있거나 영화애호가, 동편마을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협회는 빠른 시일 내에 스태프를 구성한 뒤 이달중 촬영에 들어가 5월 19∼21일 안양에서 개최될 안양변방영화축제 기간에 상영한다는 계획이다. 협회 총무 김병옥씨는 “영화는 딱딱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지역의 향수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제작된다.”며 “영화를 감상하면서 무분별한 개발계획이 지역의 전통과 역사, 환경 등에 미칠 영향 등을 세세하게 담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양시 역시 동편마을 개발 방침에 반대하고 있지만 건교부는 지난 18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동편마을 건설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키로 결정, 양측의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근 열린 시민 토론회에서 안양시는 “급격한 도시화로 가용토지가 전혀 없는 여건인데 대규모 인구 유발시설이 들어설 경우 도시기반시설이 크게 부족, 극심한 교통난을 야기할 것”이라며 개발에 적극 반대했다. 이에 대해 국토연구원 진정수 연구원은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100%를 웃도는 시점에서 안양의 주택 보급률은 90.9%에 불과하고 최저 주거수준에 미달하는 가구도 2만 2000가구에 달한다.”며 “수도권에서 택지개발 가능토지가 절대 부족한 형편에서 동편마을에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건교부 유성용 택지개발과장은 “안양은 군포, 의왕 등 인근 도시의 중심으로 공공임대주택 수요가 가장 많은 곳임에도 임대주택 건설을 미루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안양에는 관양동 지역 외에도 6곳의 개발가능지역이 있고 우려하는 교통, 환경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했기 때문에 임대주택을 건설해야 한다.”며 계획을 강행할 뜻을 밝혔다. 글 사진 안양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신중대 안양시장의 반대 논리 “전국에서 3번째로 인구밀도가 높은 안양은 현재 학교, 상하수도, 도로 등 도시기반시설 부족으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신중대 안양시장은 “관양동 동편마을은 안양에 남은 마지막 개발가능지역으로 이것마저 주택단지로 개발된다면 안양은 장래에 활용공간이 전무한 도시가 될 것”이라며 동편마을 임대주택건설 계획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신 시장은 “정부는 임대주택 공급확대를 명분으로 특별법까지 만들어 지방자치단체장의 의견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참여정부가 핵심적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지방분권원칙과도 전면 배치되는 행위”라고 잘라말했다. 또한 “수도권 인구억제를 위해 신행정도시 건설을 추진하는 정부가 인구집중을 조장할 대규모 임대주택을 건설하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신 시장은 특히 ”현재 안양에 있는 하루 60만t 처리 용량의 하수종말처리장을 인근 의왕·군포시와 함께 쓰고 있는데 동편마을과 의왕·군포 지역에 추진중인 대규모 임대아파트가 완공되면 하수종말처리장 용량 부족으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 시장은 “관양동 동편마을 일원 그린벨트에 대해 향후 광역도시계획 수립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관계 전문가의 충분한 검토과정을 거쳐 도시기본계획에 반영, 지역실정에 맞는 친환경적인 개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개발 저지를 위해 끝까지 반대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양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동편마을 개발 일지 ● 2004년 ▲2.17 건설교통부 안양시에 국민임대주택단지개발방안 제시 ▲6.30 국민임대주택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시행령 제정 ▲10.26 주민공람 요청 ▲11.9 안양시 반대입장 공식 표명 ▲11.16 안양시 건교부에 반대 의견서 제출 ● 2005년 ▲1.6 주택공사주관 주민설명회 ▲1.14 건교부 주거환경자문위원회 현장 확인 ▲1.27 동편마을 해법찾기 안양시민 대토론회 개최 ▲2.18 건교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통과 ▲2.23 동편마을 보전을 위한 범시민대책위 개발계획 철회 성명 발표.
  • [열린세상] 할머니 가설/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한시절 내 수업을 들었던 한 여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결혼을 하고 나서 5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터라 반가웠다. 그 친구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랬다. 한동안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가 좀 자랐으므로 다시 일을 하고 싶었다.‘그럴듯한’ 정규직 신규공채 시험에는 나이제한이 있다.20대 후반이면 이미 연령제한에 걸린다. 결혼한 여자가 정규직으로 재취업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그래서 교원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시험에 합격해서 지금은 연수중이다. 그녀는 과거 5년의 역사를 이처럼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4살짜리 딸아이는 누가 보살펴 줄 것인지 물어보았다.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시고 자기는 어머니께 수고비를 드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탁아와 보육시설이 빈약한 우리사회에서, 남아도는 나이든 여성들이 새로운 세대를 보살피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 친구의 말을 듣다 보니 크리스틴 혹스의 할머니 가설이 떠올랐다. 생물학적인 사고방식에 따르면 인간의 존재이유는 오로지 재생산에 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재생산을 위해 살아간다. 그것이 ‘이기적인’ 유전자의 절대명령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물들은 죽을 때까지 생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 여성은 50세 전후하여 폐경(완경)을 맞이한다. 재생산 능력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잉여의 존재들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가?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현상이었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제시된 것이 할머니 가설이다. 나이든 여성들은 직접적인 재생산은 마감했지만, 다른 여성들이 재생산한 존재를 보살펴 줌으로써 끝까지 재생산과 관련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가족과 사회 전체적으로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은 다른 세대를 보살피는 데서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찾는다. 여러 연구조사에 따르면 보살펴줄 대상이 있는 할머니들이 독거노인들보다 훨씬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들 한다. 이렇게 본다면 할머니 가설은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일자리 40만개 창출을 부르짖고 있다. 많은 여성단체들의 올해 사업목표가 일자리 창출이다. 저출산을 우려한 국가정책에 발맞춰 여성운동계 역시 대안적인 가족보다는 안정적인 이성애 가족의 재생산을 위한 모성보호와 탁아와 보육을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방점은 여성이 아니라 가족에 있다. 정부는 여러 여성 NGO 단체들이 오랜 세월 동안 구축해놓은 인프라를 통해 손쉽게 사회복지 차원의 일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다. 보육, 탁아, 간호, 보살핌 등은 나이든 여성노동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 나이든 여성들에게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사회복지수당을 주면서, 차세대, 혹은 사회적 약자 등을 돌보는 일을 맡기면, 빈곤노인의 일거리창출, 노년의 보람창출, 의료비절감 등 국가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기계화로 인한 일자리의 격감을 우려하면서 ‘노동의 종말’을 쓴 제레미 리프킨은 NGO와 같은 제3섹터에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할머니 가설이야말로 그런 주장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다른 맥락에서 보면 할머니 가설은 여성의 노동력을 철저히 동원함으로써 사회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결과 비정규직, 저임금, 불안정 여성노동예비군을 확실하게 만들어내게 된다. 여성노동운동이 예전에는 착취의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삼았다면, 이제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인해 착취는 정치적 화두가 못될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사회는 착취당해도 좋으니, 일자리를 달라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에 처해있다. 열심히 일자리를 창출한 결과 값싸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냄으로써 오히려 아무런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 모든 일자리의 비정규직화에 우리 모두 기여해왔는지 모른다. 할머니 가설이 그런 아이로니컬한 상황에 일조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 “청계천을 철새도래지로”

    청계천과 만나는 중랑천 하류가 철새 보호구역으로 지정된다.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까지 철새가 날아들 수 있는 생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청사진이다. 서울시는 15일 다음달 중으로 중랑천 하류를 철새보호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철새보호구역은 청계천 하류인 청계천종합종말처리장 앞과 중랑천 합수부분부터 한강에 이르는 Y자 모양의 3.3㎞(59만 1000㎡) 구간이다. 이곳에는 앞으로 갈대, 물억새 등 수변식물을 집중적으로 심어 차량통행을 포함한 도심 환경을 철새들로부터 은폐하고, 횃대와 같은 시설을 설치, 철새들이 중간 기착지로 이용하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시민들의 출입도 통제된다. 과거 환경오염의 대명사로 꼽혔던 중랑천에는 1986년 마련된 정비기본계획에 따라 현재 연간 40여종,5000여마리의 철새들이 찾아오는 등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겨울철새로는 흰뺨검둥오리와 넓적부리, 쇠오리, 알락오리, 여름철새로는 백할미새가 대표적이다. 서울시 문영모 자연생태과장은 “주변 청계천과 서울숲, 응봉산과도 생태적으로 연결돼 중랑천 하류를 관리하면 도심까지 철새가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피력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씨줄날줄] 대기업 일자리/우득정 논설위원

    올 들어 불거진 기아차 광주공장 채용비리 사건에는 ‘대기업’과 ‘정규직’이라는 두가지 유혹이 자리잡고 있다. 대기업이라는 보호막, 철밥통과도 같다는 정규직에 현혹돼 뒷돈과 함께 온갖 연줄과 편법이 총동원됐던 것이다. 대졸자 10명 중 6명 이상이 보다 간판이 그럴듯한 직장을 잡기 위해 졸업을 1년 이상 늦추는가 하면, 취업 재수,3수를 마다않는 세태이고 보니 마냥 탓하기만도 어렵다. 취업희망자들이 대기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우리나라 대기업(500인 이상) 근로자들은 100인 이하 중소기업 근로자에 비해 임금은 평균 62%나 높고, 평균 근속연수는 5.2년 길다. 청년실업을 걱정하는 이들은 눈높이를 낮추면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대기업을 향한 열망은 결코 식지 않을 것이다. 그토록 선망하건만 대기업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게 문제다.2003년 말 현재 300인 이상 기업체 근로자는 5인 이상 사업장 전체 근로자의 18.2%로 20년 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자동화·정보화·첨단화에 따라 대기업의 규모 증가만큼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은 탓이다. 외환위기라는 절망적인 분위기에 편승해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던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 갈수록 현실화되고 있는 꼴이다. 리프킨의 우울한 예언은 1990년대 중반 유럽에 이어 2000년 초 미국을 거쳐 2003년부터 이 땅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름하여 ‘고용없는 성장’이다.5대 그룹이 수출의 43%,5개 품목이 수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선진한국’을 구가하고 성과급 잔치를 벌이지만 그들만의 이야기일 뿐이다. 참다못한 정부와 노동계, 시민단체 등이 담합했다.‘사회 공헌’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에 일자리를 만들어내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은 지난해에는 시늉만 하더니 올해에는 나름의 성의를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의 경우 10여년 전부터, 나머지 대기업들도 ‘임금 총액’ 개념에서 인력수급을 관리하고 있어 밑의 물이 들어오면 위의 물이 넘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첨단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좋은 일자리’ 창출의 첩경이다. 또 그것이 ‘동반성장’의 첫걸음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지자체 68개사업 ‘환경 감사’

    환경훼손 여부에 대한 사전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인·허가 없이 공사를 강행해온 지방자치단체들이 무더기로 감사원 감사를 받게 됐다. 이에 따라 불법이 판치는 지자체의 ‘개발사업 밀어붙이기’ 관행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환경부는 지난 2002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각 지자체의 개발사업 실태를 조사한 결과, 법령을 위반한 채 공사를 강행한 48개 지자체의 68개 개발사업에 대해 감사원에 직무감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44개 개발사업(33개 지자체)은 해당 지자체가 환경성 검토 협의 없이 인·허가를 내주었고,24개 개발사업(20개 지자체)은 환경성 검토는 물론 인·허가도 받지 않은 채 사전공사를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법령에 규정된 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개발사업을 강행하는 지자체의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감사청구를 했다.”면서 “앞으로도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사례에 대해선 철저한 법적 조치에 나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남 순천시의 경우 상급단체인 전남도의 인·허가 및 환경부와의 환경성 검토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주암하수종말처리시설 공사를 강행했으며, 경북 의성군도 생활폐기물처리시설을 지으면서 인·허가 없이 사전공사를 벌였다. 강원도 양구군 등 33개 지자체는 환경보호가 요청되는 지역에서 도로 확·포장 공사나 하천공사 등을 시행하면서 환경성검토 협의를 받지 않고 공사를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법은 환경성 협의가 완료되기 전에는 개발사업에 대한 허가를 내주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LCD빅2’ 삼성·LG 입지 손익

    ‘LCD빅2’ 삼성·LG 입지 손익

    LCD 세계시장의 두 공룡(恐龍)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LPL)가 각각 충남 아산 탕정과 경기 파주 월롱에서 7세대LCD 1단계 공장건설과 가동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란히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두 기업의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 매출을 합치면 세계시장의 40%를 상회하며 시장점유율도 서로 엎치락뒤치락, 각축을 벌이고 있다. 삼성은 오는 3월,LG는 내년초 각각 1단계 공장을 가동한다.7세대를 넘어 향후 8,9,10세대 이후까지 차세대 LCD의 사활을 건 기술개발과 글로벌마케팅의 전초기지가 될 아산·파주 LCD 공장의 입지여건·인재확보전과 지역경제 기여효과 등을 견줘 본다. ●‘국토의 중심’ 대(對) ‘수도권 프리미엄’ 삼성전자 관계자는 “탕정이 수도권인 파주보다 심리적으로 먼 점은 인정하지만 경부고속전철(KTX)과 수도권전철, 경부고속도로에 인접해 실제 접근성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LCD가 수출되는 인천공항까지는 164㎞로 2시간 거리. 앞으로 수출물량이 늘어 배로 실어 나를 경우 이용하게 되는 평택·당진항은 직선거리 30㎞, 도로로는 35㎞로 30분 거리다. 충남도 관계자는 “휴전선에서 멀어 심리적 안정감도 파주보다 우월하다.”고 말했다.“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데다 비수도권 지역이어서 국토의 균형개발 명분에서도 앞선다.”고 덧붙였다. 파주 LG필립스는 서울 중심부에서 직선거리 35㎞, 인천공항과 인천항이 50㎞내로 인접해 있다. 서측에 자유로, 동측에 국도 1호선(통일로)과 경의선철도가 각각 3㎞ 이내에 있다. LPL은 파주에 입지를 정하면서 남북대치 상황에서 휴전선이 인접한 데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와 함께 상습수해, 중국발 황사의 주 내습지역이라는 점을 집중 검토했다. 지질·지리학적인 검토결과 파주의 타 지역과 달리 수해위험이 없으며, 황사는 크린룸과 다중 필터링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필립스와 50대50의 지분을 가진 LG는 필립스를 설득해 당초 공장부지를 100년 무상임대해 준다는 중국의 파격적인 유치 조건에도 불구, 파주를 입지로 정했다. 결과적으로 남·북한 접경지역에 글로벌 다국적기업이 진출하는 바람직한 선례를 만들었다. ●KTX로 34분 VS 전철로 40분 삼성전자 탕정공장 인근엔 천안에 단국대·호서대 등 8개 대학이, 아산지역에 순천향대 등 4개 대학이 있다.IT분야가 강점인 호서대 등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삼성전자에 들어갈 만한 인재는 많지 않을 듯하다. 삼성 관계자는 “초우량기업 삼성전자의 일원이 된다는 자긍심이 가장 큰 인재유인 요인”이라면서 “서울 등 우수 인재 확보에도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석·박사급 연구인력은 수시로 채용한다. 지난해에 1200명의 기술·연구인력을 포함,2000여명을 신규 채용했다. 올해도 이 수준을 상회할 전망이다.KTX를 이용하면 서울역에서 천안·아산역까지가 34분 걸린다. 삼성은 출·퇴근때 탕정단지와 이 역 사이 7㎞를 오가는 셔틀버스로 직원들을 수송한다. 서울시청에서 탕정까지 승용차로는 1시간30분(109㎞), 경부선 서울역∼천안역 간은 1시간5분(97㎞), 수도권 전철 서울역∼천안역은 급행으로 1시간19분 걸린다. LPL 월롱공장은 도로나 철도 어느쪽을 이용해도 서울에서 대체로 1시간 이내 거리다.2008년 경의선복선전철이 완공되면 배후도시인 운정신도시와 용산역간 전철 운행소용시간은 40분에 불과하다. 파주는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대학 설립이 규제돼 자체의 지역 인재확보는 불가능하지만, 서울 지역 대학의 화학·금속공학·전자공학·기계공학 전공자들을 인재풀로 활용할 수 있다. 내년도엔 두원공과대학이 공장 인근 월롱면 위전리에 개교한다. LPL 직원의 연봉은 LG전자보다 많아 그룹내 최고수준을 보장받고 있다. 이 회사 파주총무팀의 허만복 부장은 “서울 지역 LCD 관련학과 재학생들 사이에 ‘파주로 가자.’는 구호가 취업목표이자 유행어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LPL은 지난해 3000명을 채용했고 올해도 비슷한 수준 이상의 인력을 채용할 예정이다. 서울에 인접한 지리적 이점과 산학지원 및 협력을 통해 우수 인재를 우선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공장 신축상황 정보전 치열 양측의 1단계 공장 신축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 생산동의 배치와 신축 공정 진척상황 등 현장 정탐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LPL 관계자는 “삼성 탕정단지는 외진 곳에 위치한 반면 월롱단지는 외부에 노출된 위치여서 (현장 정보수집에)불리하다.”고 말했다.LPL의 경우 현장에 들어가려면 경기개발공사와 부지조성 공동사업시행자인 파주시청의 낯익은 담당자들도 일일이 출입증을 제시해야 하고, 단지내 외부인 사진촬영은 일절 금지시키고 있다. 삼성 탕정공장은 인구 50만명의 천안과 오는 2008년 이후 17만여명이 입주할 아산신도시를 배후도시로 두고 있다. 충남도는 국도 45호선과 연결되는 628번 지방도를 탕정단지가 완공되는 오는 2009년까지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국도 45호선은 경부고속도로, 평택·당진항과 서해안고속도로로 이어진다. 공업용수는 대청호 광역상수도를 공급받아 충당한다. 삼성은 탕정단지에 사원아파트를 세울 계획이다. 단지내에 중학교와 고교(충남외국어고)도 1개교씩 설립된다. LPL 월롱공장의 경우 서울을 잇는 자유로(낙하 IC로 진입)의 8차선 확장과 함께 군도 3호선이 현재 2차선에서 오는 6월 말까지 4차선으로 확장된다. 또 군도 5호선도 수도권광역 교통대책사업에 포함시켜 오는 2007년 6월까지 확장된다. 접경지역지원법으로 단지내 하수종말처리장 사업비 1740억원 전액이 지원되는 혜택을 받았다. 서인천 송전로∼신파주변전소∼LPL단지간 송전선로 11.72㎞가 35기의 고압송전철탑으로 연결된다. 팔당댐∼봉암정수장∼단지간에 하루 22만 2000t의 광역상수도가 공업용수로 공급된다. 파주 LPL은 오는 2008년 이후 50만 인구가 입주할 운정택지지구와 기존 금촌·교하택지지구, 일산신도시를 배후도시로 하고 있다.LPL은 금촌 등지에 300여가구의 아파트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30만평 이상의 첨단산업체는 사원용 공동주택지를 선분양받을 수 있도록 입법예고된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라 운정지구에 사원주택단지를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지역경제 기여도 ‘괄목’ 삼성 탕정단지중 1단지는 오는 2009년 완공,2단지는 2009년까지 부지조성이 완료된다.1단지는 오는 3월 1라인 가동을 시작한다.1라인은 1870×2220㎜짜리 LCD 6만장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1·2단지 모두 가동하면 연간 200억달러, 협력업체를 합치면 모두 800억달러의 생산효과가 예상된다. 삼성 직원 2만명과 협력업체 직원 2만명 등 4만명이 고용된다. 현재는 모두 5000여명이 고용돼 있다. LPL 월롱단지는 오는 내년초 1단계 공사를 마쳐 7세대 LCD 생산을 시작한다. 내년엔 1950×2250㎜ LCD 9만장을 생산할 계획이다.2010년쯤 단지내 공장이 풀 가동하면 연간 생산량이 25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고용효과는 2만여명, 이로 인한 인구 유입은 12만 5000명에 이른다. ●주민반발 민원 삼성의 탕정2단지와 문산읍 선유리와 당동리에 들어설 LG 협력단지 주민들이 보상가 불만과 환경오염, 주거지 인접 등을 이유로 환경단체와 연계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LG 공장의 전력공급용 고압송전철탑 경유지 지역 주민의 지중화 요구도 거세지만 최근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주민이 제기한 소청을 지상설치계획의 타당성을 들어 사실상 기각한 상태다. 파주 한만교·아산 이천열기자 mghann@seoul.co.kr
  • [논술이 술술] 엔트로피 글쓴이/제러미 리프킨

    클라우지우스가 1865년에 열역학 법칙을 발표한 뒤,‘엔트로피’는 근대 과학의 기조와는 사뭇 다른 개념의 속성 때문에 과학 이외의 영역에서 가장 많이 주목하고 다루어진 과학 개념으로 자리잡아 왔다. 수많은 인문, 사회학적 저작들에서 ‘엔트로피’는 근대 물질 문명의 한계를 비판하기 위한 주요한 개념으로 인용돼 왔으며, 특히 현대에 와서는 생태계의 위기, 과학기술의 한계와 관련, 더욱 주목받고 있다. 열역학 법칙은 두 개의 법칙으로 구성돼 있다. 제1법칙은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해서 생성하거나 소멸될 수 없고 오직 형태만이 바뀔 뿐이라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이에 따르면 에너지는 계속 사용하더라도 고갈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예를 들어 석탄을 태우면 에너지 총량에는 변화가 없을지 모르지만 에너지는 탄산가스와 그밖의 기체로 변하여 공기 중에 흩어진다. 에너지의 손실은 없지만 태워서 일을 얻을 석탄은 다시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질 세계의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이다. 이에 따르면 에너지와 물질의 형태 변화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이뤄진다.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질서가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가 증가하는 상태로만 변할 수 있으며, 그 되돌림은 불가능하다. 이 때 사용 불가능한 형태로 바뀌어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엔트로피’라고 한다. 곧 엔트로피란 더 이상 일로 바꿀 수 없는 에너지의 양에 대한 척도이며, 엔트로피의 증가는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감소를 뜻한다. 최근 우리에게 ‘노동의 종말’이나 ‘접속의 시대’ 등의 저작으로 친숙해진 미국의 사회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은 이러한 ‘엔트로피’ 개념을 바탕으로 현대의 자원 고갈과 생태계의 위기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근대 이후 인간은 ‘발전이란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는 것이고,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의해 세계는 더욱 질서있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왔다. 그러나 오늘날 에너지 자원의 고갈과 심각한 환경 위기는 기술의 발전이나 생산 효율의 증가가 에너지의 추출이나 흐름을 더욱 빠르게 하고, 결국 이것은 에너지 분산이나 세계의 무질서를 촉진시킬 뿐임을 드러내고 있다. 리프킨은 이러한 상황에서 근대 이후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벗어날 것을 강조하며, 현재와 같은 고(高)엔트로피적 사회를 저(低)엔트로피적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이행이 불가피하다. 생태계의 조화 및 재생 능력의 한계 안에서 경제적 생산과 사회적 소비를 절제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엔트로피’법칙은 난폭한 약탈자로서의 지금까지 인간의 역할에 대한 반성과 현대 물질문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의 인류 문명이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으며, 대량 생산 및 대량 소비에 익숙해진 현재의 생활상을 유지하면서 그러한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은 없다는 사실이 날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독서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고1∼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과학, 윤리와 사상, 사회문화, 한국지리, 경제지리 -함께 읽어 볼 책과 고전:가이아(제임스 러브록·김영사), 우리 공동의 미래(세계환경발전위원회·새물결), 작은 것이 아름답다(슈마허·범우사), 인류의 위기(로마 클럽·삼성미술문화재단) -기출논제:1997·1999학년도 이화여대 자연계 모의 논술,1996학년도 연세대 정시 자연계 논술,1998학년도 경희대 정시 인문계 논술,2000학년도 한양대 정시 논술 ●생각해보기 -‘엔트로피’의 개념과 의의는? -쓰레기나 교통 문제 등을 예로 들어 ‘엔트로피’적 관점에서 그 원인과 궁극적인 해결 방안을 써보자. -석유에 기초한 현대 문명이 석유의 고갈로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 방안을 써보자.
  • [씨줄날줄] 로미오와 줄리엣/우득정 논설위원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한번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음조차도 갈라놓을 수 없는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사랑을 꿈꾼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400여년이라는 시공을 넘어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것도 가장 완벽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덫에 걸려 안타까운 종말에 이르는 주인공을 그렸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인 죽음조차도 지울 수 없는 사랑의 향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젊은이는 커플링 반지를 낀 눈 앞의 연인을 로미오나 줄리엣인 듯 착각하고, 황혼녘에 다다른 이들은 기억 저 너머 빛바랜 흑백사진에서 가슴 저민 향수와 함께 로미오와 줄리엣을 찾아낸다. 중년의 일본 여성들이 ‘겨울연가’의 발자취를 더듬어 한국 땅을 찾는 것도 삶의 무게에 짓눌리기 전 열병과도 같았던 첫사랑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라고 하지 않았던가. 영화 ‘러브 스토리’나 ‘타이타닉’ 등이 세계인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원조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세속적인 계산이나 이기주의가 똬리를 틀기 전, 한점의 티끌마저도 타락의 징벌인 양 두렵게 느껴지던 시절, 바로 그 영혼에 아침이슬처럼 다가온 사랑이었던 까닭에 모두가 가슴 두근거렸으리라. 영국 BBC는 최근 이탈리아 북부 작은 도시에서 실제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슷한 비극적인 사랑의 종말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남편(71)의 극진한 보살핌 끝에 아내(66)가 4개월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으나 바로 직전 시름에 빠진 남편은 자살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지금도 가슴터질 듯한 지극한 순애보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오늘날 세태다. 젊은이들의 결혼조건을 보면 ‘사랑’보다 ‘돈’이 먼저다. 올리비아 핫세가 줄리엣으로 출연한 고전판(1968년)이나 클레어 데인즈가 출연한 현대판(1996년)을 본 네티즌들은 “사랑 때문에 왜 죽니”라고 되묻는다.‘이혼율,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라는 ‘첨단한국’에 걸맞은 반응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따금 실락원을 그리워하고 꿈꾼다. 시인들이 죽는 날까지 젊은 시절 꾸었던 꿈의 자락을 놓지 않듯이.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아메리칸 드림’ 몰락 예견한 2권의 책

    경제가 어렵고, 전망이 불투명할수록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선지 올 초 서점가엔 유독 미래를 전망하는 신간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중 신선한 시각으로 많은 역작을 내온 미국의 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과 독일 총리를 지낸 헬무트 슈미트의 미래전망은 꽤 의미 있게 읽힌다. 지난 2000년 ‘소유의 종말’에서 ‘소유의 시대’가 가고,‘시간과 체험의 상품화’란 새로운 국면을 진단했던 리프킨은 이번엔 아메리칸 드림이 몰락하고 유럽의 시대가 온다는 도발적 예측으로 관심을 모은다. 또 헬무트 슈미트는 20세기 세계사의 산 증인답게 매우 현실적인 예측을 내놓고 있다. ■ 유러피언 드림/제러미 리프킨 지음 아메리칸 드림이 미국인을 넘어 전 세계인의 꿈으로 보편화한지는 이미 오래됐다. 무한한 기회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이 말은 아무리 불신이 팽배한 시기에도 미국인들이 가슴 속에 품고 세계 최고를 향해 진군해가는 동력이었다. 그러나 미래의 비전을 가장 정확하게 읽어낸다는 미국인 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은 미국인들이 종교만큼이나 애지중지하는 아메리칸드림에 깊은 회의를 나타낸다. 아니 회의를 넘어 몰락을 예견한다. 그가 내세우는 미래의 비전은 이제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유러피언 드림’에 있다. 제러미 리프킨은 이 책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을 고하면서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내의 관계를, 동화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부의 축적보다는 삶의 질을, 무제한적 발전보다 환경 보존을 염두에 둔 지속가능한 개발을 중시한다. ●미국 물질만능주의·한탕주의 성행 저자에 의하면 미국의 이상이며 세계인들이 선망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자수성가 신화가 물질만능주의로, 개척과 모험정신은 한탕주의로 변질됐다. 개발과 정복, 부의 축적과 출세 지상주의로 대변되는 아메리칸 드림은 개척시대의 사고방식에 젖은 케케묵은 꿈으로 오래 전에 폐기돼야 했으며, 실제로 쇠퇴하고 있다. 저자는 저명한 미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서 냉전 종식후 시장 지향적 자유민주주의가 최종적 승리를 거두고, 다른 대안이 없다고 주장한 것에 편견이 숨어 있음을 꼬집는다. 민주국가에서 개인이 속박당하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것을 강조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곧 역사의 종말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러피언 개별국가 아닌 거대한 집합체 유러피안 드림에서 그가 주목하는 대상은 독일, 프랑스 등 개별 국가가 아니라 유럽연합, 즉 EU란 거대한 집합체다.EU 국민들은 이제 자신들을 프랑스인, 독일인이라기보다는 유럽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지적한다. 저자는 미국의 50개 주를 아메리카합중국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 각국을 EU의 일부로 생각해야 하며, 독일과 미국이 아니라 독일과 캘리포니아주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EU는 아직 유아기지만 GDP, 삶의 질, 환경, 교육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을 능가하며 새로운 슈퍼파워로 부상하고 있다.‘포천’이 선정한 140개 대기업 가운데 미국 회사(50개)보다 유럽회사(61개)가 더 많다. 미국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를 주시하는 동안 유럽에서 전혀 다른 경제혁명이 진행되고 있지만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유럽의 변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가늠하지 못하고, 그에 대응할 준비도 돼 있지 못하다고 경고한다. ●EU 공동체속 개인 자유 신장 미국과 EU가 궁극적으로 엇갈리는 것은 주권 문제다. 미국은 국가권위를 최고로 보고 국가 내에서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받을 수 있다는 과거 민족국가 시대의 주권개념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유럽인들은 보다 더 큰 공동체에 포함되어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때 개인의 자유가 신장된다고 본다. 점점 경계가 모호해지는 글로벌 세계에서 EU는 국가법보다 보편적 인권규약을 상위에 놓고 있으며, 실제로 인권 협약을 위반한 나라에 병력을 파견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지배와 일방주의적 사고가 팽배한 미국과 달리 공존과 조화를 추구하는 유럽에서 지은이는 미래의 비전을 본다. 결국 유러피언 드림은 인종과 종교 분쟁이 항시 잠재해 있는 21세기의 범세계적 갈등을 포용하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역설한다.2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미래의 권력/헬무트 슈미트 지음 독일 총리를 지낸 헬무트 슈미트(87)는 20세기의 독일뿐 아니라 세계 역사의 산 증인이다. 그래선지 그가 미수를 앞두고 내놓은 세계 정세와 미래를 진단한 ‘미래의 권력’(나누리 옮김, 갑인공방 펴냄)은 결코 가벼이 읽히지 않는다. 그는 미래의 전망을 좌우할 중요한 요소로 인구팽창과 환경오염, 기술과 경제 세계화로 인한 권력 집중현상, 국제 금융시장의 취약성에 따른 위기, 확산일로에 있는 소형무기 등을 지목한다. 이들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따라 세계의 미래상은 예측할 수 없는 극단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제국주의화 경향을 보이는 미국이다. 앞으로도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미국의 영향력이 지배적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대외정책의 전통으로 자리잡은 고립주의적 역사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미국이 국제사회에 취해야 할 자세를 제시한다. 이슬람 세계를 존중할 것, 악의 축이니 악당국가니 하는 멸시적인 표현을 중단할 것, 석유 수급 문제가 최대 관심사임을 솔직히 밝힐 것, 이스라엘 안전을 확보하는 데 관심이 높음을 인정할 것 등등이다. 저자는 21세기엔 강대국의 판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중국, 인도가 강대국 대열에 편입되며, 특히 중국은 민족·종교 분쟁 등 내부적 불안요인만 극복하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내다본다. 또 유럽연합이 공동시장과 유로 덕분에 경제 강대국이 될 것이며,30년 뒤엔 세계 경제가 유럽연합, 미국, 중국의 삼각구도를 이룰 것이라고 예측한다.1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분당~수서 도시고속도로 ‘악취 끝’

    분당∼수서간 도시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이 수년동안 시달려 온 악취의 고통에서 해방될 전망이다. 성남시는 17일 수정구 복정동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발생하는 악취제거와 처리장 증설을 위해 2007년까지 모두 650여억원을 투입, 하수처리장 개폐설비와 냄새제거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는 이를 위해 현재 2차처리시설인 표준활성슬러지법에서 끝나던 하수처리를 한단계 추가해 3차시설인 고도(高度)처리까지로 개선한다. 또 단계적으로 4개 하수처리장에 모두 덮개를 설치, 탈취설비를 증설할 계획이다. 고도처리시설에서는 지금까지 하수에 그대로 방류했던 질소와 인 등을 걸러내고, 덮개는 관로와 연결돼 메탄가스 등 냄새의 주범을 완전 제거하게 된다. 공사가 완료되면 현재 하루 22만t 처리규모의 처리장은 24만 5000t으로 2만 5000t이 늘어난다. 또 악취가 사라져 인근 주민들이나 하수처리장 옆 분당∼수서간 도시고속도로, 도시외곽순환도로 등을 이용하는 운전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방류수의 3차처리로 탄천의 수질개선에도 한 몫을 하게 될 전망이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경주시, 토양미생물로 악취 제거

    경북 경주시 수질환경사업소가 국내 최초로 특수토양미생물을 이용한 처리공법(HBR 프로세스)을 도입해 하수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해결했다. 16일 경주시에 따르면 생활하수와 축산폐수, 분뇨 등을 연계처리하는 하수종말처리시설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없애기 위해 12억원을 투입, 특수토양미생물 공법으로 악취발생을 해소했다. 시는 하수 및 분뇨처리장 오니저류조에 배양조를 설치해 배양조에서 증식된 토양미생물을 분뇨투입부와 축산폐수 유입부, 하수처리장 침사지 전단, 잉여슬러지 분배조 등으로 보내 악취를 사전제거하는 공법을 도입했다. 수질환경사업소는 분뇨투입구 등에서 나는 미세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대나무 500여 그루와 은행나무 200여 그루를 심어 쾌적한 환경을 조성했다. 시 관계자는 “하수처리장과 분뇨처리장이 악취를 일으키는 혐오시설로 인식돼 왔다.”면서 “토양미생물을 이용한 처리공법으로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말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1945년 8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다. 그러나 미처 봄날을 음미할 새도 없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진출해 38선을 그었다. 그 때 어느 유명한 신종교 지도자가 신도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선포했다.“미소의 두 힘이 서로 상대하여 버티나 태양이 중천에 오르면 밝은 세계가 되리라.” 태양은 누굴까? 중천에 오른다 함은? 전후 맥락 없이 튀어나온 이 선언에 신도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메시지만은 분명했다. 미국과 소련이 이 땅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것은 잠깐이고, 곧 민족의 구세주가 등장하여 외세를 물리치게 된다는 것! 누가 구세주일까? 김구, 여운형, 조만식, 이승만, 박헌영…. 아니면 김일성? 세상 사람들은 거물 정치가들을 놓고 누가 믿을 만한 민족지도자인지를 점쳤다. 극좌파, 중도파, 극우파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각자 선택의 폭은 넓었으나 민심의 합일점은 없었다. 지난한 시기였다. 그 때 정감록의 신봉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국난을 뚫고 나갈 진인은 어디 있는가. 계룡산에서 도를 닦았다는 진인, 지리산에서 뛰쳐나온 진인, 주역에 능통한 진인, 부처, 예수, 공자의 영이 내린 진인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고대해 마지않던 진인은 나오지 않았다. 해방정국은 갈수록 꼬이더니 남북분단은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정감록’에 보이는 6·25전쟁 제2차대전 이후 전세계는 미소를 정점으로 한 냉전질서에 편입되었다. 양측의 긴장이 팽팽해지더니 1950년 마침내 6·25전쟁이 터졌다. 한국이 안고 있던 내부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미소 양측의 대리전쟁이라는 설도 있다. 원인이야 어떻든 전쟁이 장기화될 때 괴로운 건 민중이다. 그들은 난리가 언제 끝날지, 살아갈 방도는 무언지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정감록 신봉자들은 가족을 이끌고 병화불입지지(兵火不入之地, 난리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땅)를 찾아 숨는 사람도 생겼다. 정감록 예언에 따라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삼풍리로 숨었던 사람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긴데, 전쟁 내내 인민군은 커녕 국군도 본 적이 없었단다. 그들은 정감록의 영험을 믿는 듯했지만 그곳은 어느 편 군대도 진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지독한 오지였다. 꼼꼼히 정감록을 살피던 민중의 눈엔 요거다 싶은 예언 몇 구절이 눈에 띄었다.‘호랑이와 토끼해를 당하여 남북이 서로 솥의 발 같이 대치하리라.’ 우연히도 전쟁이 터진 1950년은 호랑이해인 경인년이었다. ‘금강산 서쪽과 오대산 북쪽은 12년간 도둑의 소굴이 된다.’는 구절도 있어 강원도 북부에 있는 금강산과 오대산을 경계로 남북이 무력 대치한다는 예언으로 볼 수 있었다. 다만 12란 숫자는 논란거리가 되었다. 남북의 대치기간이 글자 그대로 12년인가, 또는 갑자, 을축 이런 식으로 12지를 10간과 조합한 1갑자 60년인가? 총성이 멎은 지 벌써 52년째, 글자 그대로의 12년은 이미 지났고 60년 한 갑자가 되려면 8년이 남았다.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을 상징한다는 대목도 회자(膾炙)되었다.‘인천과 부평 사이 밤중에 배 1000척이 정박한다.’고 했다. 수도권에 ‘시체 더미’가 쌓인다고도 했다. 맥아더 장군이 수많은 전함을 거느리고 인천에 상륙했고 서울을 탈환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럴 듯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 구절은 19세기 후반부터 민중을 떨게 했던 전쟁공포증의 흔적 또는 청일전쟁이 남긴 집단적 기억이 재현된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연재 제1회 참고). ‘정감록’의 또 다른 구절도 민중의 눈길을 끌었다.‘두 서쪽 땅 곧 황해도와 평안도는 3년간 천 리 안에 사람과 불 때는 연기가 없을 것이요, 또한 동쪽 골짜기, 즉 강원도는 심히 꺼릴 땅이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전쟁이 3년 동안 지속된 까닭으로 봤고, 뺏고 뺏기는 육박전이 벌어진 장소가 강원도였다는 예언으로 해석했다. 중공군의 개입,1·4후퇴도 예언되어 있었다.‘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면 평안도와 황해도 하늘에 원한 맺힌 피가 넘칠 것이다.’ 오랑캐라,1950년 한겨울 급작스레 대거 투입된 중공군으로 해석됐다. 중공군은 물밀듯 남하를 계속, 평안도 황해도를 삽시간에 휩쓸었다. 인해전술이란 말은 정감록에 안 보였지만 그 신봉자들에겐 1·4후퇴를 할 수밖에 없던 사정이 이해될 듯 했다. ●미국대통령을 ‘정도령’으로 착각? 그런데 ‘정감록’ 예언에 대한 기발한 풀이는 따로 있었다. 전쟁 당시 미국의 원수(元首) 트루먼! 트루(true)는 참 진(眞), 먼(man)은 사람 인(人)! ‘정감록’에 예언된 진인(眞人)은 다름 아닌 트루먼이라는 해석이다. 트루먼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의회의 자문도 받지 않고 미군의 파병을 결정했다. 트루먼이 아니었으면 공산군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났다. 일제 식민지 후반, 특히 1937년 7월 중일전쟁 이후 민중의 살림살이는 참 고단했다.1945년의 해방도 반쪽짜리였고 민중의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전쟁까지 터지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바로 그런 시점에서 미국은 각종 구호물자를 한반도에 대량으로 투입하였다. 수만의 병력과 현대식 무기를 동원하여 전쟁도 수행했다. 사람들은 새삼 미국의 위력을 실감했다. 어떤 이들은 이처럼 구차히 살 바에야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기를 바랐다. 국회로 보내주기만 하면 미국에 가 달러를 더 많이 동냥해 오겠다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런 판국이라 미국 대통령을 진인, 정 도령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1953년 미국 대통령이 아이젠하워로 바뀌자 그가 진짜 정 도령이란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말을 주고받은 민중도 많았다.“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그리고 일본은 일어난다!” 미국-믿다, 소련-속다, 일본-일어나다. 다소 장난스러워 보이는 말투지만 미소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란 인식이 확산된 결과 생긴 민중의 구호였다. 비록 패전국이긴 해도 일본을 조심해야 한다는 다짐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오래 전부터 민중은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 강대국들을 경원시했다.1894년 동학농민군이 내건 4대 구호 중에 ‘축멸양왜(逐滅洋倭, 서양놈들과 왜놈을 내쫓는다)’란 구절이 있어 그런 분위기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다가 일제 말기 조상 전래의 성, 말까지 빼앗기자 민중은 주변국가인 중국과 소련에 다소 기대를 걸었다.‘조지로 목친다.’ 이 말이 민간에 퍼졌다. 조지란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남부지방 사투리다. 그것으로 어떻게 목을 자를까? 조(조선), 지(지나, 중국), 로(로서아, 소련)가 힘을 합해 목(목인,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벤다는 예언이었다. 민중의 소망을 담았지만 꽤나 섬뜩한 내용이다. 누구나 한 번만 들어도 절대 잊을 수 없게, 그러나 아무도 그 뜻을 눈치 챌 수 없게 은어에 담았다. ●‘황해도서 난리 발생’ ‘삼국분기설’ 들먹 ‘정감록’으로 6·25전쟁의 참혹함과 미국의 개입을 읽었다니 얼핏 이해가 잘 안될 수 있다. 예언서에 보이는 오랑캐는 만주족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경고하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고려 때는 북쪽으로부터 거란족, 여진족, 몽고족의 침입이 잇따르고 홍건적의 난도 있었다. 조선 초에는 여진족의 침입이 만만치 않았다. 인조 때는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이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서북지역은 이민족의 침입로가 되다시피 했고, 그 지역 민중은 외침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기도 했다. 외침의 기억은 민중들에게 잊지 못할 일이 되었고, 이것이 ‘정감록’에 ‘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고’ 라는 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오랑캐의 말울음 소리는 현대에 와서 중공군의 남하로 이해되었다. 이런 변화는 ‘정감록’을 처음 전파시킨 조선시대 술사(術士)들로서는 전혀 예측 못할 일이었다. ‘정감록’에는 외침과 무관하게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서 발생할 난리가 예고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서북지방에 대한 차별이 무척 심해서 그 지역 사람들의 불만이 컸다. 순조 연간에는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여러 고을을 휩쓸었고, 그 와중에 많은 인명이 살상됐다. 사실 서북지방은 18세기 이후 과거시험에서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 그럼에도 푸대접을 받았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정감록’이 가장 먼저 등장한 곳도 서북지방이었다. 대다수 서북지방 사람들은 조선왕조의 종말을 마다할 일이 없었고 그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할 때, 북쪽에서 반란이 재발해 남북에 두 나라가 대치한다는 남북분국설이 정감록에 기록된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기왕 분국설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 보태보겠다.‘정감록’에는 삼국 분기설도 나온다. 나라가 세 동강 난다는 예언인데, 이런 말은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유행했다. 우리 역사에 삼국시대도 있었고 후삼국시대도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고려 때도 이의민은 신라를 부흥시킨다는 구실로 경주일대를 소란케 했다. 이런 역사적 기억이 있어서겠지만, 민중은 나라가 혼란에 빠질 때면 3국 분기설을 들먹였다. 그런데 3이란 숫자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다. 미륵이 하생할 장소도 산이나 물이 셋으로 나뉘는 곳이었고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길지(吉地) 중에도 3도봉 같은 곳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알아 본 역사적 배경은 아랑곳없이 현대의 정감록 신봉자들은 ‘정감록’에 보이는 서북지역의 혼란상을 국토분단,6·25전쟁의 참상, 또는 1·4후퇴를 예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민중의 예언 해석에는 시대적 맥락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할아버지 세대가 그 구절을 뭐라 해석했든, 나는 내 시대의 문제를 푸는 새 해석을 좇겠다는 식이다. 이런 태도에서 예언 문화엔 층위랄까 나이테가 보태졌다. 현대의 민중이 미 대통령 트루먼을 ‘정감록’에 언급된 진인으로 본 것은 어떤가. 진인이란 새 왕조를 열 국왕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정씨 성을 가진 이가 나타나 계룡산 아래 도읍을 정한다고 보는 것이 사실상 정설이다. 우리 역사에서 진인의 도래설이 처음 나타난 것은 17세기였다. 그 때부터 오랫동안 해도진인설(海島眞人說, 섬에서 진인이 나온다는 예언)이 인기를 끌었다. 역모를 꿈꾼 사람들은 늘 진인의 출현을 주장했을 정도다. 어쨌거나 진인은 기존질서에 대항해 싸울 영웅이었다. 그런 진인이 1950년대에는 세계 최강대국을 이끄는 지도자, 기존질서의 사령관인 트루먼으로 둔갑했다. 합리적·체계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 신봉자들의 해석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논리적으론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시의에 맞기만 하면 민중은 꽤 엉뚱한 해석에도 환호한다. 수백 년 동안 ‘정감록’이 생명을 이어온 까닭은 그것이 시대상황에 맞게 새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서다. ●예언서는 민중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 해방 이후 미국의 중요성은 국가 차원에서든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든 날로 커졌다. 민중은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구절을 찾느라 열심이었다. 도대체 미국이란 나라가 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던 아득한 시절에 만들어진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기록을 찾는다? 여간 우스운 일이 아니지만 필요는 때로 발명이나 발견을 낳는다. ‘정감록’에서 꺼낸 트루먼 진인설과 인천상륙작전설은 억지스러운 발견이었다.1970년대 이후 민중은 미국에 대한 그 이상의 예언을 요구했던지 새 예언서가 등장했다.‘격암유록’,‘율곡비기’,‘송하비결’ 등이 새로 나온 예언서다. 그 중 어떤 것은 특정 종교단체가 배후 조종하여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 계통의 신종교 단체도 예언서를 빌려 지도자에게 절대권위를 부여한 흔적이 있다. 새 예언서에는 한·미관계가 자주 나온다. 어느 책에는 9·11사태(2001년 9월11일 발생한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도 언급되어 있다. 더욱 경악할 내용도 있다. 미국은 2004년 북한을 폭격하기 시작해,2005년까지 공격을 계속한다. 그리고 2004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는 재선에 실패하고 이슬람교도의 저격으로 사망한다는 등등의 예언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은 북한을 폭격하지 않고 있으며, 부시는 보란 듯 재선에 성공해서 백악관에 건재하다.2004년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 관심사는 한국 민중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빗나간 예언에도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 친미와 반미를 둘러싼 논쟁이 한국 사회의 중요 이슈로 등장했는데 민중의 다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지배질서에 반감을 품고 있다. 민중은 부시의 대북 강경노선을 못마땅하게 여겼기에, 부시의 낙선과 암살을 예언한 것이다. 민중은 부시를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부시의 북한 폭격설까지 예언으로 등장한 것이다.50년 전엔 현직 미 대통령을 진인이라 일컫던 것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있다. 민중이 직접 예언서를 저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중은 예언의 내용을 결정한다. 노스트라다무스든 ‘정감록’이든 사정은 똑같다. 민중의 심리를 정확히 반영한 예언서는 민중의 사랑을 받고 그 생명도 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예언서는 곧장 버림을 받는다. 민중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정감록’을 해석해왔다. 시대가 바뀌면 그 해석은 늘 달라졌다. 한 시대의 해석은 다른 시대가 되면 효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내가 정감록을 바라보는 관점은 통시대적이다. 미셸 푸코가 말한 지식의 계보학에 가까운 입장이다. 푸코의 말처럼 시공간이 바뀌면 지식과 기억은 변화된다. 요컨대 변화된 사물의 의미를 계보로 정리하는 것이 지식 계보학이다. 나의 정감록 산책도 그렇다. 정감록에 담긴 의미의 변천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것, 이것은 한국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를 읽는 새 방법일 것이다. 백승종(푸른역사연구소장)
  • [씨줄날줄] 딥 임팩트/우득정 논설위원

    지난 1998년 세계인들은 2편의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넋을 잃었다. 혜성과 지구의 충돌을 다룬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다. 그동안 과학적인 가설로만 존재했던 지구종말론은 20세기 말이라는 분위기에 편승해 영화관을 찾은 세계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두 영화는 시나리오 제작과정에 천재 천문학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전문가 등이 대거 참여해 현실감을 높임으로써 미국식 영웅주의와 휴머니즘이라는 도식적인 한계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속 가설이 이번에는 과학적인 검증절차를 거친다고 한다.12일(현지시간) NASA의 혜성탐사선 ‘딥 임팩트’호가 혜성 ‘템펠1’과의 충돌 임무를 띠고 6개월간의 대장정에 오른다는 것이다.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4일 딥 임팩트호에 탑재된 무게 370㎏의 작은 우주선이 ‘템펠1’의 표면에 충돌하면 혜성에서 방출되는 물질을 카메라와 분광기를 이용해 정밀 촬영한다는 프로젝트다. 혜성이나 소행성으로부터 지구를 지켜내려면 영화처럼 충돌이나 폭발을 통해 진로를 바꿔야 한다. 충돌 실험은 진로 변경에 필수적인 혜성과 소행성의 내부구조와 질량분포를 파악하기 위한 절차다. 천문학적인 재앙을 예고하는 종말론의 중심에는 76년마다 지구에 근접하는 핼리혜성이 자리잡고 있었다.1910년 접근 당시 핼리혜성이 늘어뜨린 꼬리부분을 지구가 통과하면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혜성 꼬리를 감싼 독가스에 질식사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어떤 이들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자살했다고 하지만 우려했던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스 밀도가 워낙 엷었을 뿐 아니라 성분도 독가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6500만년 전 멕시코만 부근에 떨어진 지름 10㎞의 소행성으로 인해 공룡이 멸종됐다는 설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고, 노아의 홍수도 지중해 지역에 떨어진 소행성 때문이라는 가설이 제기된 점 등을 감안하면 딥 임팩트호의 충돌 실험은 지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 같다. 1.5㎏ 크기의 소행성 충돌이라는 100만분의 1 확률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난 연말 서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것이 보다 시급하지 않나 싶다. 우리는 지구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훨씬 더 위협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회담 속개’ 北·美 속내 탐색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하원 대표단의 방북이 교착된 북·미관계와 6자회담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커트 웰든(공화·펜실베이니아) 하원 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공화·민주 양당 하원의원 6명은 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11일부터 14일까지의 평양 방문 계획을 설명했다. 방북단은 웰든 의원과 프레드 업튼(공화·미시간), 로스코 바트렛(공화·메릴랜드), 솔로몬 오티츠(민주·텍사스), 실베스트레 레이에스(민주·텍사스), 엘리엇 엥겔(민주·뉴욕) 의원 등이다. 이들은 먼저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보낸 측근들을 만난 뒤 북한(11∼14일), 한국(14∼15일), 중국과 일본 등 6자회담 당사국들을 차례로 방문한다. 방문 목적과 관련, 웰든 의원은 “북한에 미국이 대결을 원하지 않으며 북한 정권의 종말이나 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주려 한다.”면서 “관련국 모두에 6자회담을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외교전문가들은 이번 방북이 백악관과 평양, 웰든 의원 등 3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성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평양과 백악관은 서로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대화의 물꼬를 틀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긴장국면을 조성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북한측도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어떤 흐름을 보일지, 의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북한인권법안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탐색해 볼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 dawn@seoul.co.kr
  • 지진 문의·‘종말론 카페’… 쓰나미 신드롬

    동·서남아를 집어삼킨 지진해일의 공포가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상청 지진담당관실에는 지진해일이 일어난 지난해 12월26일 이후 시민들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한반도는 지진의 안전지대인지, 일본의 지진으로 해일이 일어나도 안전한지를 집중적으로 묻는다. 한산하기만 했던 ‘지진국가정보시스템’ 홈페이지(kmaneis.go.kr)도 방문자로 붐비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도 일본의 지진 피해 사례를 사진으로 보여주며 ‘대재앙’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아이디 ‘오로라’는 “일본의 피해가 이 정도라면 우리도 안전하다고 믿을 수만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불안감을 표시했다.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일부 사이트에서는 ‘종말론 카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일의 위력을 보여준 재난영화 ‘투모로우’의 비디오 대여순위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비디오 대여점 영화마을에서는 해일 피해 이전 17위권이었던 ‘투모로우’가 최근 11위까지 뛰어올랐다. 배급사측은 “신간위주인 국내 비디오 시장에서 출시된 지 몇 달이나 지난 영화의 순위가 갑자기 급반등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놀라는 분위기다.‘재앙 신드롬’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대목도 있다. 해수면 상승과 습지 산호초 등 자연방어벽 손상, 무계획적인 해안개발 등이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일반인들의 환경에 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숭실대 심리학과 이훈구 교수는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재앙을 격은 사회구성원들은 일시적으로 집단적인 불안감을 느낀다.”면서 “각종 재난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 말고는 재앙 신드롬을 극복할 특별한 대책은 없다.”고 단언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이젠 사람입국이다] 이젠 사람이 생산 중심…평생학습 필수

    [이젠 사람입국이다] 이젠 사람이 생산 중심…평생학습 필수

    |클레어몬트(미 캘리포니아주) 전경하특파원| “평생학습은 당신을 젊게 만들고 삶을 윤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평생학습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사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20세기 최고의 경영학자로 꼽히는 피터 드러커 교수가 ‘사람입국 신경쟁력 특별위원회’(이하 특위)에 보낸 축하 메시지다. 문국현 특위 위원장은 지난해 말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에 있는 그의 집에서 한국에서 드러커혁신상을 제정하는 취지를 설명하고 향후 방향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이번 만남은 그동안 드러커의 저서 10여권을 번역한 이재규 대구대 총장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지난 50년간 한국이 이룬 경제성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1952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고문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앞으로 30∼40년간 한국은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한국은 10년안에 전쟁의 상흔을 극복했고 지금은 경제강국이다. 한국의 지난 50년간의 성공은 20세기의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산업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나라다. 성공요인은 뭐라고 보는가. -교육이다. 한국에 두 번 갔는데 엄청난 교육열을 보고 놀랐다.50년대 미국 정부에 한국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장학금 제도를 만들도록 해 이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게 나에겐 큰 보람이다. 한국민은 학습의욕과 성취욕이 높다. 기업가 정신도 뛰어나다. 지난 50년은 당신이 언급한 지식사회로의 진입단계였는데. -아직 초입이다.50년간의 발전은 혁신이라기보다 진보에 의해 이뤄져왔다. 그러나 앞으로 20년 안에 제조업(manufacturing)과 육체노동자가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미국에서도 1953년 노동자의 3분의1이 생산직에 종사했지만 지금은 11%에 불과하다. 컴퓨터가 가져온 진정한 변화다. 지식사회로의 진입은 필연적인가. -기술변화라기보다는 인구학적 변화 때문에 필연적이다. 저출산으로 인구도 줄어들지만 경제성장으로 인해 수입이 괜찮은 제조업 종사자의 아이들도 이제는 공장이 아닌 대학에 간다. 생산의 중심이 기계에서 지금까지의 생산자본 중 가장 비싼 인적자본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결국 사무실과 공장에서 자동화가 필연적이다. 한국은 이민을 받아들인 경험이 없다. 반면 노령화사회로의 진입은 매우 빠르다. 인구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럼 생산성 문제 해결은. -지식노동자의 인사배치와 지속적인 학습, 두 가지가 중요하다. 지식은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전문적이다. 육체노동자는 똑같은 일을 하고, 그래서 서로 대체가 가능하다. 지식노동자는 아니다. 각자의 영역이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사, 특히 상위 직급의 인사배치가 중요하다. 인사에 관한 규칙도 세워야 한다. 지식이 전문화되었기 때문에 인사이동이 더 어렵고 그래서 더 중요하다. 또 지식은 없어질 수 있고 3∼4년만 연습하지 않으면 굳어진다. 계속 훈련받아야 한다. 그럼 교육이 더 중요해지나. -미국에선 교육자가 가장 빨리 성장한 직업군이다.2차 세계대전 전에는 7만 5000명의 교수진이 있었지만 지금은 250만명에 달한다. 늘어난 수만큼 앞으로 교육방법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지식사회에 있어 어느 수준에 와 있나. -유럽과 일본에 비해서는 경이적이다. 유럽은 정보기술에서 많이 뒤처져 있다.‘과거(yesterday)형’이라 할 수 있는 육체노동자조합이 유럽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산업사회에서 노동자의 결속’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다하고 쇠퇴하고 있다. 한국도 탈노조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또 한국은 산업사회에 과도하게 적응했기 때문에 지식사회에 힘이 달려 적응이 늦을 수도 있다. 급속한 성장에 따른 사회적, 정치적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앞으로 한국경제의 발전은 어디에 달려 있다고 보나. -10년 정도는 중국과의 경쟁,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에 달려 있다. 그동안 한국은 중국에 자리를 잘 잡았다. 다음은 인도다. 인도와 중국은 매우 다르지만 어렵고 가능성 있는 시장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인도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쓰는 나라다.1억 5000만명의 주요 언어가 영어이고 7500만명이 제2외국어로 영어를 쓴다. 이런 요인으로 인도는 지식경제에서 중요한 경쟁자이다. 인도에 자리를 잡은 외국은 아직 없다. 지식사회 발전을 위해 한국이 힘써야 할 점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국 고등학교 졸업생의 25%가 제조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을 위해 지적인 일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이 분야에서 성공하면 일본을 훨씬 앞서갈 수도 있다. 각국 정부가 취해야 하는 중요한 정책은.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육체노동을 분석하고 이를 독립적이고 경쟁적이며 숙련된 일련의 움직임으로 조직화하는 과학적 경영으로 세계 지도자가 됐다. 이것이 지난 50년간 경제적 성공의 기초가 되었다. 지금은 정보기술분야에 있어서 도입부다. 정부 뿐만 아니라 기업이 리더십을 가져야 지식근로자를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다. 제조공정에서 세부적인 기술들이 프로그램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그러나 사무실에서는 아직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기업의 시민의식을 강조한 까닭은. -우리 사회는 조직사회다. 최근까지 정치·사회과학과 경영학은 이를 깨닫지 못했다. 이전에는 미국 기업이 사회 자체를 구성했고 교회는 봉사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이 봉사의 중심에 서야한다. 기업은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도록 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왜 기업이 직원들의 사회활동 참여를 독려해야 하나. -큰 조직의 문제는 사람들이 은퇴한 뒤다.20대에 영리했던 기술자는 20년 후에도 자신이 여전히 기술자이며 일반 관리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들은 공동체 조직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럼 두 번째 경력을 만드는 건가. -한때 두 번째 경력을 믿었다. 오류였다. 훌륭한 두 번째 경력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그 예다. 나는 1929년 이후 같은 일을 해오고 있다. 내 일을 좀 더 잘하길 바랄 뿐이다. 필요한 것은 두번째 경력이 아니라 두번째 관심사다. 두번째 관심사는 왜 필요한가. -첫번째 승진에서 사람은 50명인데 일은 20개가 있다. 다음 승진에서는 사람수에 비해 자리가 더욱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직업 이후의 관심사가 필요하다. 두 번째 관심사가 있으면 계속 배울 것이다. 또 평생학습은 당신을 젊게 할 것이다. 평생학습을 하게 되면 뇌세포가 늙지 않는다. 뇌세포가 건강하면 육체적으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사람은 호기심이 없어지면서부터 늙는다. 배우면 젊어지고 삶을 즐길 수도 있게 된다. 지금은 무엇을 공부하나. -몇년전에는 페루 미술을 공부했었다. 지금은 프랑스 혁명 전후의 프랑스 정치와 영국의 보수주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lark3@seoul.co.kr ■ 피터 드러커는 누구 피터 드러커 교수는 190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만 96세를 맞았지만 지금도 공부를 하고 글을 쓴다. 자신이 만들어 낸 ‘지식근로자’ 개념의 전형인 셈이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20대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국제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갔다가 미국에 정착한 이후 여러 대학에서 정치학, 통계학, 철학, 경영학 등 강의를 했다.39년 나치의 종말을 예언한 저서 ‘경제인의 종말’,42년 ‘산업인의 미래’로 미국 정치·경제학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50년부터 뉴욕대 정교수로 20년간 일하고 71년부터 지금까지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시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강의하며 현대 경영학의 주춧돌을 놓았다. 또 제너럴모터스(GM), 제너럴일렉트로닉스(GE) 등 대기업에 컨설팅을 하면서 이론의 현실화에도 힘을 쏟았다. 국내에서 ‘경영의 실제(54년)’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93년) ‘21세기 지식경영’(99년) ‘다음 사회’(2002년) 등 저서가 번역돼 있다. ■ 드러커혁신상이란 드러커 교수의 이름을 딴 드러커혁신상 제정은 미국 캐나다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번째다. 오는 3월 드러커상 제정에 대한 세부사항이 발표되며 연말에 시상식이 열릴 예정이다. 드러커상은 미국에서 1991년 처음 제정됐다. 매년 11월 일반인들, 특히 소외계층의 삶을 개선시킨 비영리단체에 주어진다.1위 1곳,2위 2곳 등 총 3개 단체가 상을 받는다. 상금은 각각 2만달러와 2500달러다. 캐나다에서는 1993년 제정됐고 수상방식은 같다. 클레어몬트대학 드러커 경영대학원이 2년전부터 선정·시상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드러커 관련 사업을 드러커 경영대학원 테두리안에 두자는 드러커 교수의 뜻에 따른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드러커 재단이 총괄한다. 2004년 미국측 수상자로는 극빈층을 위한 차량제공 프로그램을 4년 동안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 ‘Wheel Get There’가 뽑혔다. 캐나다에서는 수상자 선정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동안의 수상자와 그들의 활동은 드러커상 홈페이지(www.drucker.org/award)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의 드러커상 운영은 국내 여건이 적극 고려됐다. 비영리단체가 아닌 공공부문이나 기업이 상을 받을 수 있으며 자금 조성에도 정부가 일정부분 참여할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상금을 기업과 독지가들의 후원으로만 마련한다. 드러커상을 총괄하는 클레어몬트 경영대학원의 코넬리스 클류버 교수는 “한국은 미국·캐나다와는 다를 수 있다.”면서 “한국적 상황에서 합당한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고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의사를 표시했다.
  •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네오콘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네오콘

    “지금 중국도 포스트 김정일 시대를 대비하고 있는데 유독 노무현 정부만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정권과 사랑하고 있다.”마이클 호로위츠 미국 허드슨 연구소 종교담당 선임연구원이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겨냥해 독설을 퍼부어 ‘네오콘’이 또한번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를 뜻하는 네오콘은 미국 패권주의와 북한 적대국가에 대한 강경노선을 추구한다.9·11 테러 이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것도 이와 같은 배경에서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지만 기본적인 노선에서 네오콘과 갈등을 겪을 소지를 안고 있다. 네오콘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해 한국의 정계 지도층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그들과 노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도 미국의 입장과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대외정책을 펴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네오콘이란 백과사전에 따르면 네오콘은 네오 콘서버티브(neo-conservatives)의 줄임말이다. 미국 공화당의 신보수주의자들 또는 그러한 세력을 통틀어 일컫는다. 힘이 곧 정의라고 믿고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세계의 패권국이 되는 것을 최대의 과제이자 목표로 삼는다.1980년대 초 레이건 정권에서 세력을 얻은 뒤 클린턴 정권에서는 권력에서 밀려났다가 공화당의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오로지 힘을 바탕으로 불량국가에 대한 선제공격 등을 감행함으로써 미국이 훨씬 적극적으로 국제문제에 개입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인물은 부시 정권의 핵심 인물인 체니, 럼즈펠드, 울포위츠, 리비 등이다. 정계와 언론계는 물론 싱크탱크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유대인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네오콘의 기원과 활동, 주장 네오콘의 사상적 교조(敎祖)는 “야만인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자연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주장한 미국의 정치철학자로 유대계인 스트라우스(Leo Strauss)다. 스트라우스의 사상적 후계자들은 미국과 서양문명을 구제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힘의 사용이 정당화된다고 생각한다. 스트라우스 교수의 수제자는 앨럼 블룸 시카고대 교수로 1980년대 초 ‘미국 정신의 종말’이라는 저서에서 좌익 학자들이 대학에서 냉전시대의 안보 개념을 흐려놓아 민주주의 국가들을 무너뜨리려는 적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나무랐다. 이러한 사상은 네오콘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정치적 기틀과 가치를 제공했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싱크탱크요 네오콘의 결집지가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라는 단체로 1997년 6월에 창립됐다. 신보수주의는 원래는 20세기 초 서유럽에서 진보주의에 대립하여 자유주의적 전통을 보존하려는 정치적 신념체계를 지칭했다.1970년대에 나타난 신보수주의는 대체로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미국제일주의, 평등화의 거부, 그리스도 부흥으로 요약된다. 네오콘은 냉전시대의 승리자요 세계 유일 초강국인 미국은 21세기를 미국의 원칙과 이상을 전파할 세계적 지도력을 상실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세계 평화를 수호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미국은 그 힘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이 도래하기 전에 이를 방지하여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여야 한다고도 한다. 따라서 국방비의 증액을 주장한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와의 유대를 강화해 비민주적인 국가를 견제할 것을 요구한다. 세계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권장하고 국제질서 유지를 위한 미국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과 네오콘 네오콘과 결부지어서 생각할 문제가 이라크 전쟁과 한국의 파병이다. 네오콘을 등에 업은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주창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선제 공격한 것은 미국의 힘을 과시하고 소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불량국가를 응징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재국가의 지도부를 교체해 세계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파병은 어떻게 볼 것인가. 테러에 항전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와 주장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정부도 고심했을 것이다. 파병을 반대하는 여론을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미국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전통적인 관계와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파병에 반대한 사람들은 정부의 파병 결정이 줏대 없는 종속적인 행동이었다고 비난한다. 나아가 김선일씨 피살 사건도 파병을 결정한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구실로 이라크 침공을 자행하고 이라크 국민들을 끊없는 항전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부시와 네오콘 세력에 분노의 화살이 향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위대한 여행/에자르트 샤퍼 지음

    성탄절은 종교적 의식을 떠나 이제 대중적으로 명절화했다. 예년 같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음이 들떠 있을 법도 하건만, 올핸 영 마음이 편치 않다. 그만큼 힘든 한해였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젠 고던 날들을 떨쳐버리고, 새 희망과 용기를 품게 할 무언가가 필요한 시기. 여기 온가족이 함께 읽으며 지친 서로의 마음을 보듬고 용기를 북돋워줄 이야기 한 편이 있다. ‘위대한 여행’(에자르트 샤퍼 지음, 젤레스티노 피어티 그림, 김인순 옮김, 솔출판사 펴냄)은 러시아에 전해내려오는 민담을 바탕으로 한 짤막한 이야기다. 예수가 태어날 즈음 러시아의 한 어린 왕이 진정 위대한 왕을 경배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 갖은 풍상을 겪으면서 궁극적 삶의 가치와 마주한다는 내용이 줄거리의 뼈대다. 주인공인 러시아의 작은 왕은 언젠가 하늘에 위대한 왕의 출현을 알리는 별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을 조상대대로 전해듣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별이 나타났고, 그는 위대한 왕을 경배하기 위해 황금과 진주, 보석, 아름다운 천, 모피, 꿀 등 진귀한 선물을 가지고 홀로 여행에 나선다. 동반자는 작고 강인한 러시아 토종말인 ‘바니카’가 전부다. 그러나 여행은 고난과 험난함의 연속이다. 낮엔 남의 집 헛간에서 잠을 자고 밤이 되면 별을 따라 뛰고 걷는 여행을 계속하지만 가는 곳마다 굶주리고 병든 자들이 마음 약한 어린 왕의 발길을 붙든다. 그는 위대한 왕에게 바칠 선물들을 하나하나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여행은 한없이 늦어진다. 꿀을 탐내는 벌떼의 공격을 받아 온몸이 퉁퉁 붓기도 하고, 헛간에서 아이를 낳은 거지여인을 돌봐주는 등 험난함 속에서 결국 바니카마저 죽고 만다. 어느 항구에 이른 작은 왕은 아름다운 과부 여인을 보고 첫 눈에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매맞는 그 여인의 어린 아들을 대신해 갤리선의 노를 젓겠다고 무모하게 나선다. 이후 30년의 세월동안 발에 족쇄를 찬 채 노예생활을 한 작은 왕은 더 이상 노를 저을 힘이 남아 있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처음 배를 탔던 항구에 버려진다. 그는 한 부자 젊은이의 도움으로 기운을 차리게 되는데, 그로부터 “갤리선에서 버려지는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씀을 실천할 뿐”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작은 왕은 다시 별을 따라 힘겹게 걷기 시작하고,“30년 전 헛간에서 자신을 도와준 한 귀인을 평생 마음의 왕으로 모셔왔다.”고 말하는 한 노파를 만난다. 그리고 어느 도시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는 곳에 도착한 그는 눈 앞에 자신 만큼이나 처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위대한 왕을 만난다. 하지만 숨쉴 힘조차 남지 않은 작은 왕은 꺼져가는 숨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속삭인다.“왕이시여, 저의 마음을…그리고 그 거지 여인의 마음을…저희들의 마음을 받아주겠습니까?”. 78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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