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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 30년 양당체제 무너지나

    이스라엘 30년 양당체제 무너지나

    이스라엘의 30년 양당체제가 종말을 맞고 있다. 지난 1973년 창당 이래 노동당과 함께 이스라엘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해온 리쿠드당의 몰락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28일 치러지는 총선에서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권한대행이 이끄는 카디마당이 1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극우 성향의 군소정당들이 선전하면서 리쿠드당의 3당 지위마저 위협받고 있다. ●리쿠드,3당 지위도 ‘흔들’ 돌풍의 주인공은 러시아권 이민자 출신의 아비그도 리버만이 이끄는 이스라엘 베이테누(‘이스라엘은 우리집´이란 뜻)당과 극우 종교정당인 국민연합-민족종교당.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은 여론조사 공표가 허용된 마지막날인 26일 채널2 텔레비전 조사에서 15석의 예상 의석을 확보,12석에 그친 리쿠드당을 제치고 카디마당(34석)과 노동당(19석)에 이어 3당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민연합-민족종교당도 또 다른 조사에서 12석을 확보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예루살렘 포스트는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의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카디마당과 리쿠드당 모두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의 선전은 전체 유권자의 15%를 차지하면서 빈곤층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러시아권 출신 유대인 이민자들의 지지 덕분이다. 예루살렘 포스트는 영토안의 아랍인들을 본국에 돌려보낼 것을 주장하는 이 당의 강령이 정착촌 철수를 추진하는 카디마당과 저소득층 복지 예산을 삭감하려는 리쿠드당에 실망한 러시아권 이민자들의 정서를 파고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들 러시아권 이민자들 사이에서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의 지지율은 44%를 기록, 일주일새 무려 9%포인트가 뛰었다. 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리쿠드 당수의 초조함도 극에 달했다. 그는 보수 유권자를 겨냥해 “진정한 대안을 원한다면 이스라엘 베이테누당 같은 ‘위성정당’들에 현혹돼선 안 된다.”며 지지표 결집을 유도했다. ●카디마당 “미사일은 발사됐다” 리쿠드당과 달리 카디마당은 느긋한 표정이다. 당의 선거 운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아비 디히터 후보는 “미사일은 이미 발사됐다.”면서 “남은 문제는 미사일이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혼수 상태에 빠진 아리엘 샤론 총리를 대신해 당을 이끌고 있는 올메르트 대행은 최근의 지지율 하락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그는 26일 유권자들을 향해 “2010년까지 국경을 획정하려는 계획이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충분한 의석을 달라.”고 호소했다. 영국 BBC방송은 “샤론의 퇴장으로 지지층 일부가 이탈했지만 당 강령인 팔레스타인과의 분리 정책 지속 및 새로운 국경 획정에 대한 합의가 존재한다.”며 카디마당의 승리를 점쳤다. 남아 있는 문제는 카디마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파트너가 어느 당이 되느냐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이스라엘 베이테누당과의 연정 가능성을 점친다. 그러나 AFP 통신은 리버만 당수가 팔레스타인과의 분리 정책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올메르트 대행과 일치하지만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 문제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한편 하마스에 의해 팔레스타인 총리로 지명된 이스마일 하니야는 27일 “이스라엘의 어떠한 국경 변화 정책도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도 이스라엘의 일방주의는 평화를 지속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신들은 총선 승리에 고무된 카디마당이 일방적인 국경 획정 계획을 밀어붙일 경우 심각한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물고기 뛰노는 남천으로

    경북 경산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오염하천인 남천(南川)이 1년 내내 맑은 물이 흐르고 고기가 뛰노는 생태하천으로 되돌아온다. 경산시는 남천 정화사업계획이 최근 국비 지원사업으로 확정됨에 따라 오는 2010년까지 사업비 350억원(국비 262억 5000만원 등)을 투입, 생태하천으로 복원키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계획안에 따르면 남천면 구일리 구일교∼시내 서상동 서옥교(3.0㎞) 구간에 자연생태습지·생태수로·징검여울·자연관찰데크·고무수중보 등을 설치키로 했다. 둔치에는 수변휴식처·자연관찰로·야생화단지·생태정원·자전거도로·분수시설 등을 갖춘 휴식공원을 조성한다. 이와 함께 하천 유지수 공급을 위해 구일교∼시내 대정동 하수종말처리장(7.5㎞) 구간에 송수관로를 매설키로 했다. 이 관로를 통해 2급 수질의 하수처리장 방류수 10만t(1일)을 서옥교까지 끌어올려 하천하류로 흘려 보낼 계획이다. 최병국 경산시장은 “이 사업을 통해 수질 5급 이상으로 썩어가는 남천을 생태하천으로 되살리고,22만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사설] 끝내 법 문턱 못 넘은 새만금 환경론

    4년 7개월에 걸친 새만금사업 법정 공방이 농림부 등 사업 강행론자측의 승리로 끝났다. 대법원은 어제 환경단체 등이 제기한 새만금사업계획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경제성이 없다거나 환경영향평가 의견수렴절차에 하자가 있다는 환경론자 등의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수질오염 가능성 역시 항소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추후 보완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환경론자들과 개발론자들이 ‘3보1배’와 ‘삭발농성’으로 팽팽히 맞서면서 국론분열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던 새만금사업이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법률적 판단으로 종결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새만금사업 공방과정에서 날로 중요성을 더해가는 환경 보존의 가치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시화호 오염사태에서도 확인했듯 성급한 개발지상주의는 돌이키기 힘든 환경 재앙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고기각 주문보다 일부 대법관들이 보충의견을 통해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여건에 맞춰 환경친화적인 개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 것을 주문한 점에 주목한다. 새만금사업이 지속가능한 개발사업의 전형이 될 수 있도록 환경대책에 만전을 기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사회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새만금으로 흘러드는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에 대한 수질오염 총량제를 도입할 것을 권고한다. 이를 위해 하수종말처리시설 등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새만금사업이 최종 마무리되기까지 10년 이상 소요되는 만큼 용도변경에 따른 대규모 개발에 앞서 철저한 환경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환경단체들도 이제 반대 일변도의 투쟁전략을 접고 개발이 환경친화적으로 이뤄지도록 감시의 눈길을 게을리 해선 안 될 것이다. 새만금사업은 정치논리로 시작된 국책사업이 얼마나 많은 후유증을 남기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따라서 이같은 소모전이 재연되지 않으려면 정책 공약단계부터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그것이 새만금 공방이 남긴 교훈이다.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1) 지식과 마음의 활용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1) 지식과 마음의 활용

    지식과 지혜의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 과학은 지식을 탐구하지만, 철학은 지혜를 일군다. 이것이 과학과 철학의 근본적 차이일 것이다. 한국의 철학교육은 과학이 쳐다보지도 않는 어설픈 지식의 개진을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철학은 지혜를 일구지만, 기존의 지혜가 어느 정도 진실하고 신뢰할 만한가를 분석한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가 무엇일까? 지식은 나에게 결핍된 것을 후천적 학습으로 습득해서 얻는 일종의 소유이지만, 지혜는 이미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다. 지식은 인간의 취약한 본능을 대신한 지능의 작품이다(1회 글). 동물의 본능처럼 자가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가발전할 본능의 능력이 미비하기에 인간은 본능을 대신하는 지능을 요청한다. 지능은 자기에게 필요한 생존의 기술을 밖에서 구한다. 이것이 지식의 인위적 탐색인 과학의 시작이다. 그 탐색은 본능의 선천적 능력과 달라서 거듭거듭 반복된 추리와 검증의 단계를 거쳐서 완성된다. 과학적 지식은 축적해 나가야 한다. 지식은 다양하나 기본적으로 인간이 세상을 지배해서 편리하게 살기 위한 도구로서 넓은 의미의 기술이다. 그래서 지식은 소유론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상을 편리하게 살기 위하여 취득해야 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인간이 이미 자기 속에 깃들어 있는 능력을 현시하기만 하면 된다. 지혜는 취득되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의 필연성을 읽는 눈이다. 그래서 무식한 사람도 사려가 깊으면 지혜인이 될 수 있다. 그는 지식이 결코 좌지우지할 수 없는 세상의 필연성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지혜는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엮고 있는 필연성의 이해와 직결된다. 그런데 어떻게 그 지혜의 능력을 계발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그 능력이 무상(無償)으로 나타나지 않으므로 지혜의 길로 들어가야 한다. 지혜계발의 길은 지식추구의 길과 정반대의 길을 간다고 노자는 피력했다. 왜냐하면 지혜는 지식을 소유하고 축적하는 마음을 버릴수록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도덕경’(48장)에 ‘학문을 하면 지식이 날로 늘어나지만, 도(道)를 닦으면 소유하고 있는 것이 날로 줄어든다.’고 하였다. 중국 송대의 노자 주석가인 이가모(李嘉謀)는 ‘학문을 하면 지식을 추구하므로 날로 그것이 늘고, 도를 닦으면 망상을 제거하므로 날로 줄어든다.’고 노자의 저 말을 주해했다. 왜 그럴까? 본능을 대신하는 지능이 발달할수록 지식은 증대하고, 그만큼 지식에 의하여 세상을 더 편리하게 장악하려는 소유욕은 더욱 강렬해진다. 모든 소유욕의 가장 깊은 안쪽에 다 이기심과 자의식이 감추어져 있다. 왜냐하면 지능이 비록 본능을 대신하였으나, 본능이 지닌 충동적인 이기적 자아생존의 욕망이 지능의 우회적인 전략을 통하여 보다 세련되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지식이 생존전략의 기술로서 지능의 인위적 능력에 뿌리를 박고 있다면, 지혜는 본능과 달리 본성의 능력에 축을 박고 있다. 본능이 이기배타적인 소유론적 욕망을 나타낸다면, 본성은 자리이타적인 존재론적 욕망을 띤다. 욕망의 개념은 마음이 자기 아닌 다른 타자와의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는 성향을 말한다. 존재론적 욕망의 의미는 이기적 소유욕을 위하여 타인과 세상을 희생시키는 탐욕이 아니고, 타자와 세상이 존재하는 그대로 편안하게 존재하게끔 도와주는 원력(願力)을 말한다. 이것이 본능과 본성의 차이점이다. 인간은 본능상 자기중심적이면서, 동시에 본성상 타인에게 기쁨을 주고 슬픔을 위로해 주고 싶은 그런 상반된 성향을 묘하게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상반된 본능과 본성이 서로 가는 방향에서 다르지만 공통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 공통점은 둘 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는 자연적이고 자발적 욕망의 기호(嗜好)를 선천적으로 띠고 있다는 것이다. 동물의 경우에 본능과 본성의 구별이 없고, 오직 본능 하나에로 동물성이 귀착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 묘하게도 그 둘이 엇비슷하나 다르다. 이런 관계를 구조주의에서 상관적 차이(pertinent difference)라 부른다.‘좌/우’,‘장/단’,‘선/악’처럼 서로 다르나 일방이 있기에 타방이 성립하는 상관성을 일컫는다. 본능과 본성은 차이 속에서 함께 동거하는 상관적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본능과 본성의 상관적 차이는 ‘이기심/자리심’,‘배타심/이타심’,‘소유론적 욕망(탐욕)/존재론적 욕망(원력)’의 이중관계와 같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인공적 지능이 자연적 본능을 대신함으로써 동물적 본능의 제한적이고 닫혀진 생존필요성의 추구가 무한히 가변적으로 열려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능은 생존유지의 직접적 차원을 넘어서 소유의 영역을 무한히 인공적으로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지능을 좋게 보면 그것은 무한한 지식의 축적이나, 나쁘게 보면 그것은 무한한 소유적 탐욕의 대명사가 된다. 그 동안 인류는 이 소유론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지식의 추구를 최대의 가치로 여겨 무한팽창을 장려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런데 본능과 본성처럼 이 지능과 본성도 상관적 차이의 이중성을 구조적으로 띠고 있다. 이 지능의 소유욕이 우세하면, 본성의 존재론적 욕망(존재하는 세상을 기쁘고 편안하게 존재케 하려는 원력)은 인간의 마음에서 감추어진다. 이것은 마치 지능의 경쟁심이 본성의 이타심을 은폐시키는 것과 같다. 이 사실을 노자가 ‘도덕경’에서 하고 싶었던 것이겠다.‘도를 닦으면 날로 소유욕이 줄어든다.’는 것은 지식욕이든 물질적 탐욕이든 자아중심적인 지배욕이 줄어야 본성이 지혜의 길을 열어 놓는다는 것이다. 지식욕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세상을 편리하게 살게끔 세상을 장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지식은 다 도구적이다. 그런데 앞의 글에서 여러 번 지적되었듯이, 가치는 필연적으로 반(反)가치를 수반한다. 도구도 양날의 칼처럼 가치와 반가치를 동반한다. 가치가 큰 도구일수록, 반가치의 해독도 그만큼 크다. 컴퓨터의 가치를 부정할 사람은 없겠다. 그러나 그 해독의 크기가 얼마나 엄청날지 아직 우리는 다 모른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그 해독의 일부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컴퓨터를 다 파괴하고 원시상태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주장은 방직기계를 없애고 물레를 돌리는 수공시대로 되돌아가자는 낭만주의적 경제학의 발상과 같다고 하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본성의 지혜는 지능의 지식축적과는 정반대로 이기적, 자아중심적, 인간중심적 사고를 버릴수록 더욱 찬연하게 마음 안에서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류사는 지식추구의 가치만을 숭상하고, 그 반가치의 해독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20세기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과학은 사유하지 않는다.’라고 그의 저서 ‘무엇이 사유라 불리워지는가?’에서 언명했다. 과학은 도구적 소유적 지배지식만을 생각하지, 인간이 모든 자연과 다 함께 존재하는 공존과 공명의 사유를 망각했다는 뜻이겠다. 하이데거의 말은 과거의 철학이 과학을 크게 키우는 데 그 역할을 다했으므로, 이제 그런 철학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사유의 도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지식의 가치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과학이 존재의 지혜를 사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의 가치를 지혜스럽게 활용하는 것도 마음의 본성이 지능의 힘을 견제하는 능력을 갖도록 하는 데 있겠다. 컴퓨터의 반가치적 해독을 줄이는 길은 흔히 말하는 실효성이 없는 사이버매체의 도덕이 아니라, 마음의 지혜를 여는 본성의 존재론적 발현일 것이다. 과학교육의 중요성만큼 지혜의 발현을 위한 존재론적 사유도 역시 중요하다. 지혜는 자의식 대신에 자의식을 비우는 공부를, 소유적 가치와 공격적 힘의 축적 대신에 자기와 세상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보는 평정심을, 이기적 탐욕 대신에 일체를 존재하는 그대로 다 아끼려는 원력을 각각 활용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바로 본성의 활용이다. 1세기경(?) 인도 대승불교의 고승, 아슈바고샤(한자명 馬鳴)는 그의 저서인 ‘대승기신론’에서 유명한 삼대(三大)사상을 말했다. 그는 불법의 본질인 공성(空性)의 위대성을 비로자나불인 법신불에, 공의 바다로부터 파도처럼 솟는 만상 존재의 불가사의한 기(氣)의 힘을 노사나불인 보신불에, 그리고 마음의 지혜스런 활용의 보기를 석가모니불인 화신불에 각각 비유했다. 화신불인 석가모니가 어떻게 마음을 활용해야 세상이 구원되고, 모든 만물이 다 고통에서부터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그와 같이 오셨고(如來)’,‘그와 같이 가셨다(如去)’는 것을 아슈바고샤는 암시하려 했다. 법신불은 신구교 신학에서의 성부에, 보신불은 성령에, 그리고 화신불은 성자의 의미와 매우 유사하다. 우리는 종교의 벽을 넘어서 석가세존과 예수 그리스도가 다 인간의 본성을 활용하는 지혜를 가르치고 가셨다는 것을 유념해야겠다. 서양의 연금술에서 ‘현자의 돌’(philosopher´s st one)을 찾기 위해 연금술사들이 눈을 밖으로 돌려 많은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 현자의 돌만 찾으면, 납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그들은 꿈꿨다. 그러나 그 현자의 돌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안에 이미 아득한 옛날부터 있어 왔다. 그 돌은 불교적으로 보면 여의주다. 여의주는 용이나 거북이 물고 있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 이미 깃들어 있다. 우리도 그것을 늘 바깥에서 찾으려 했다. 지식교육과 함께 우리는 늦기 전에 마음을 지능에서 본성에로 옮기는 마음의 활용법인 지혜의 교육도 가르쳐야 한다. 지식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나이’처럼 근육의 힘을 주나, 반가사유상처럼 자기와 세상을 안심시키지 않는다(7회 글). 현자의 돌이나 여의주가 본성이다. 본성은 지능이 쉴 때에 깬다. 지혜는 본성의 발현이다. 지식은 자아의 꽃이나, 지혜는 무아의 열매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송두율 칼럼] ‘한국 모델’의 재구성

    [송두율 칼럼] ‘한국 모델’의 재구성

    얼마전 필자는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관여해 온 독일어권의 제3세계 문제에 관한 전문학술지로서 ‘주변부’를 뜻하는 ‘Peripherie(페리페리)’의 창간 25주년을 기념하는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 잡지는 근대화이론과 종속이론 사이의 뜨거운 논쟁이 있었던 1970년대를 뒤로하고 제3세계의 발전 전망에 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80년대 초부터 발간되어 제3세계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이론의 부침을 정리해왔다. 제3세계의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렸던 80년대의 비관적인 분위기 속에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공 신화는 물론, 민족해방과 사회주의 건설을 개발전략의 축으로 설정했던 제3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도 다루었다. 그러나 그러한 신화를 창출한 동아시아 국가들도 90년대 중반부터 세계화를 추동하는 투기성 금융자본의 파도에 휩쓸려 고초를 겪었으며 아직도 그때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중국·인도·브라질 등 인구와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도 세계화의 경쟁대열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최근에 잡지는 동서냉전의 종결과 함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완전승리를 선언한 ‘역사의 종말’이 전하는 메시지, 즉 제3세계에도 자본주의이외에 어떠한 대안이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둘러싼 많은 논쟁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세계화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는 탈규제·자유화·사유화를 근간으로 해서 세계 도처에서 ‘자본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선택을 지금 강요하고 있다. 한때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질문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야만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지금의 강요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해 보는 여유마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가능한 세계 가운데 가장 좋은 세계’라고 확신하는, 어떤 의미에서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정서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종말 없는 자본주의’와 ‘세계화’는 ‘역사의 종말’과 동의어다. 그러나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구호 밑에 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밑으로부터의 세계화’가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에 대한 비판은 무엇보다도 사회로부터 유리된 시장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난폭한 자본주의(capitalismo selvaje)’에 대한 질타로부터 시작되었다.‘밑으로부터의 세계화’의 핵심은 ‘지속 가능한 발전’과 ‘사회적 연대’다. 전자는 한정된 자원과 관련된 생태계가 주된 문제이고 후자는 빈곤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사회관계의 재구성 문제다. 한국에서 이 두가지 문제는 지금 여러 가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새만금과 양극화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80년대 제3세계 개발이론에 있어서 특이한 위치를 점했던 ‘한국 모델’의 비판적 재구성이 현재 절실해지고 있다. 생태계 문제와 양극화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는 길에 결코 왕도는 없다. 얼마 전부터 논의되는 ‘네덜란드 모델’이니 ‘핀란드 모델’이니 하는 성공적인 모델도 참고는 될지언정 그대로 복사해서 사용될 수는 없다. 모델은 이를 설정하는 주체의 역사적·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맥락을 떠나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대국 틈새에서 지상의 유일한 분단국가가 세계화의 도전 속에서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기에 더군다나 그렇다. 합리적 정책 선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생각의 틀을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 기존의 ‘한국 모델’은 미래를 다분히 ‘현재 플러스 알파’로서 생각해 왔다. ‘한국 모델’의 재구성은 현재가 ‘미래 마이너스 알파’일 수도 있다는 자기반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미래는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적금이 아니라 이미 원금까지 축내고 있는 어음할인과 비슷하다는 것을 먼저 기억하자.
  • [일요영화]

    [일요영화]

    ●돈 카밀로 신부의 작은 전쟁(EBS 오후 1시50분)돈 카밀로 신부는 국내에서는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으로 잘 알려진 소설 속에 나오는 캐릭터이다.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작품. 세계 2차대전 직후 1950∼6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이탈리아 중북부 시골마을 바사에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 시리즈에서 돈 카밀로 신부와 예수, 그리고 페포네 읍장이 주요 등장 인물로 나온다. 돈 카밀로 신부와 페포네 읍장은 각각 이탈리아 기독교 민주당과 공산주의 혁명 세력을 대변한다. 예수는 돈 카밀로 신부에게는 조언자이자 대화 상대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다혈질을 자랑하는 신부와 읍장은 정치적 입장과 관련해 아이들처럼 다툰다. 마을 사람들도 두 편으로 갈라져 다투기 일쑤다. 하지만 서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티를 내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돕는다. 이념 대립에 지친 이탈리아 상황을 반영하며 종국에는 협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돈 카밀로 신부와 혁명주의자이지만 따뜻한 심성을 지닌 페포네 읍장은 따뜻함과 유쾌함을 전달하며 세월이 지나도 사랑을 받고 있는 주인공들이다.‘작은 전쟁’은 6편에 달하는 시리즈 가운데 제일 처음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합작했다. 페르난델이 돈 카밀로 신부로, 지노 체르비가 페포네 읍장으로 단짝을 이뤄 5편에 함께 나왔다.1972년 여섯 번째 시리즈 촬영에도 함께 하려 했으나 페르난델의 건강 악화로 새로운 캐스팅으로 교체됐다. 서부 영화 ‘튀니티’ 시리즈로 유명한 테렌스 힐도 1983년 돈 카밀로 신부를 연기했다.1952년작.102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도니 다코(KBS1 밤 12시30분)이 영화에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안 감독에게 동양인 최초로 감독상을 안긴 ‘브로크백 마운틴’을 통해 국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젊은 배우가 나온다. 제이크 질렌할(26)이다. 히스 레저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카우보이가 바로 그.‘도니 다코’는 질렌할의 출세작이며.2004년 개봉한 재난 영화 ‘투모로우’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쾡한 눈빛에 입가에 띠는 묘한 미소가 매력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포함, 지난해에만 기네스 펠트로, 앤서니 홉킨스와 함께 한 ‘프루프’와,‘자헤드-그들만의 전쟁’ 등 3편에 잇따라 출연했다.‘도니 다코’는 지구종말, 시간여행, 정신분열 등 복잡한 이야기를 고등학생의 일상과 함께 엮어내는 500만 달러 저예산 영화다.2001년작.112분.
  • [판교청약 ‘3주 전략’] 동·서판교 장단점 비교

    [판교청약 ‘3주 전략’] 동·서판교 장단점 비교

    판교 청약에는 중요한 선택이 뒤따른다. 쾌적성이 앞선 서판교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역세권과 교통여건이 뛰어난 동판교를 고를 것인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경부고속도로를 축으로 나뉘는 동판교(경부선 동쪽)와 서판교(〃 서쪽)의 입지를 분석한다. ●쾌적성을 우선하면 서판교가 최적 서판교는 주거환경이 쾌적한 것이 장점. 자연친화적으로 개발한다는 뜻이다. 하천과 공원, 골프장 등이 모두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단지 뒤편으로 37만평 규모의 금토산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저밀도 개발로 평균 용적률이 148%에 불과하다. 용적률이 적은 만큼 쾌적할 수밖에 없다. 또 대형 평형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집중돼 판교신도시 내에서도 ‘부촌’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진원이엔씨와 모아건설 부지는 생태하천으로 복원되는 운중천을 등지고 있어 친환경 주거단지로 부각될 전망이다. 서판교 단지 주변으로는 유치원 2곳, 초등학교 4곳, 중학교 3곳, 자립형 사립고 등 고등학교 4곳이 들어설 계획이다. 교육여건은 동판교에 비해 약간 떨어지지만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서판교는 동판교보다는 교통여건이나 생활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강남으로 접근할 수 있는 도로가 경부고속도로뿐이고, 성남∼여주선 서판교역이 있지만 신분당선으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다. 서판교는 동판교보다 혐오시설이 경미하다. 변전소, 쓰레기자동집하시설 등이 건설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팽팽하지만 서판교의 경쟁력이 동판교보다 약간 높다는 의견이 많다. 내집마련정보사 함영진 팀장은 “서판교 금토산공원은 37만평 규모로 분당 중앙공원의 3배 이상으로 쾌적한 주거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통의 요지, 역세권으로 뜰 동판교 동판교의 최대 장점은 교통이다. 분당과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분당∼내곡 고속화도로, 분당∼수서 고속화도로 등이 가깝고,2009년 12월에는 신분당선도 완공된다. 때문에 대중교통을 통한 강남 접근성이 서판교보다 훨씬 좋다. 동판교 중심에는 신분당선 판교역이 들어선다. 때문에 판교역을 중심으로 한 역세권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특히 판교역 인근에는 중심 상업용지가 있어 백화점과 테마상가, 주상복합건물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교육여건도 서판교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판교 인근에 들어서는 에듀파크에는 교육정보기술 관련 고등학교, 대학원, 도서관 등이 세워진다. 단지 주변에 유치원 1곳, 초등학교 5곳, 중학교 3곳, 고등학교 3곳이 지어진다. 동판교에는 하수종말처리장, 쓰레기소각장, 쓰레기자동집하시설, 납골당 등 주민혐오시설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선다. 향후 집값에 영향을 미칠 변수다. 민간업체 가운데는 풍성주택과 이지건설만이 동판교에서 아파트를 공급한다. 서판교보다 임대아파트와 소형 평형이 상대적으로 많고 주상복합시설과 상업시설이 집중돼 평균 용적률이 175%로 높아 쾌적성은 떨어진다. 부동산114 김규정 차장은 “분당 등 다른 신도시의 선례를 볼 때 동판교와 같은 역세권 아파트가 주거선호도나 가격면에서 앞선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이현세 만화경] 표범, 그 위대한 인내심과 품격

    [이현세 만화경] 표범, 그 위대한 인내심과 품격

    어느새 친구의 아들들이 군에 가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 술자리에 모이면 군대 얘기가 안주가 된다. 군에 보내서 기어코 고생을 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어제의 육군 병장들이 막상 때가 되니 걱정되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걱정도 되고 궁금도 해서 얼마 전에 만화학과 제자들과 함께 전방 GOP 경계체험을 갔다. 한마디로 군대는 좋아졌다. 내무반은 일인침대와 휴게실로 꾸며져 쾌적했고, 목욕탕과 도서관도 만족스러웠으며 구타는 없어졌다. 이 세상 어떤 조직보다 사고율만 따져도 아들을 맡기기에는 가장 안전한 곳이 군대였다. 하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에게 군대는 여전히 힘들고 괴로운 곳이다. 몇 년 전에 군대를 소재로 한 만화 ‘까치병장’을 제작한 적이 있었다. 군대얘기를 소재로 한 대부분의 영화·연극·드라마·문학 작품들이 그렇듯이 내가 그린 ‘까치병장’ 역시 낯선 조직과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야기되는 갈등관계가 주요 소재였고,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 교훈을 담아냈다. 그런데 이번 GOP 경계체험에서 경계근무도 같이 서고, 대화시간도 가지면서 두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 하나는 여태껏 ‘문화상품의 소재로 주목받을 수 없었던 극적인 생활양식의 발견’이다. 영하 20도의 야밤, 전방의 철책선은 웅웅대며 울고 있었고, 가로등의 희뿌연 불빛 사이로 함박눈은 쏟아졌다. 이곳에서 GOP 근무 장병들은 해지기 전에 경계근무에 투입되어 날이 밝을 때까지 겨우 서너시간 쪽잠을 자가며 매일 똑같은 일상을 일년이나 반복한다. 이 장병들의 생활이야말로 젊은 시절 가장 혹독하고도 가장 극적인 삶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군인들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은 대개 충성과 명예, 용기 등이 차지했지만 이것은 어쩌면 극적인 소재만을 좇는 대중문화가 만들어 낸 순위 조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군인의 자질을 가진 병사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다수의 작가들은 서슴없이 ‘네팔의 구르카 용병’을 꼽는다. 강철처럼 단련된 신체, 올빼미에 견줄 만한 시력, 거기에다 물불 가리지 않는 용맹성까지. 그러나 대다수 작품들이 놓치고 있는 구르카 용병들의 가장 우수한 자질은 ‘인내심’이다. 한번 매복을 명 받으면 폭우가 쏟아지는 속에서도 몇날 며칠이고 움직이지 않고 적의 움직임을 찾아 전방을 주시한다. 이 인내심이야말로 구르카 용병을 최고라고 칭하게 하는 최고 요인이지만 이 덕목은 극적 요소로 전환이 어려워 작품화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군인의 최고 덕목은 인내심이고,GOP의 장병들은 극한의 인내심을 요구 받는다. 반대로 사회에서 소위 조직폭력에 몸 담았던 자원이 대체로 군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통계가 있었다. 그 이유는 체력이나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인내력 부족’이었다. 또 한가지 발견은 군에 오기 전에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하여 문화 예술을 접하기 어려웠던 병사들이 군에 와서도 문화적 인프라 부족 탓에 역시 문화예술과는 담 쌓고 사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젊은 장정들에게 주고 싶은 소프트웨어는 너무나 많지만 도서관이나 공연장, 전시장 같은 하드웨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곳이 병영이었다. 장병들은 우리 모두의 젊은 아들들이며 ‘군복 입은 시민’이다. 우리사회의 미래는 청년들의 몫이고,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한 왜곡된 가치관과 문화적 미성숙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병영에서 모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젊은 피와 탄력있는 육체를 가진 장병들을 생각하며 눈을 감으면 아름다운 표범이 보인다. 표범이라면 흔히 아름다운 점박이 무늬와 잘 빠진 몸매, 그리고 앙칼진 성격과 날카로운 발톱을 생각하고 가끔은 제 덩치보다 더 큰 사슴을 나무 위까지 물고 올라가는 힘을 떠올린다. 그러나 나는 표범을 생각하면 먼저 단 한번의 사냥에 모든 것을 걸고 몇날 며칠을 위장하고 풀숲에 숨어서 먹이를 노리는 표범의 노란 눈이 생각난다. 내게는 바람도 숨을 죽이고 있는 그 침묵의 인내심이 표범이다. 그리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하이에나처럼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 그 우아한 품격이 표범이다. 한때 한국의 모든 야산을 주름잡고 포효하던 표범은 지금은 철책선 남방 아래에는 한 마리도 없다. 옛날 표범과 함께 살았던 우리 조상 중 누구 하나가 표범의 종말을 알았을까. 앞으로 군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할 기회가 있다면 군의 덕목 중에는 인내심이 최고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범국민운동’으로 병사들이 좀더 많은 문화·예술 환경을 접할 수 있도록 시설을 확충해야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분명 GOP의 장병들은 ‘극한의 인내심’속에 생활하고 있고 병영체험을 하러간 학생들은 그 인내심을 경이와 존경의 눈으로 봤다. 장병들은 단절된 바깥세상의 문화예술을 그리워했고, 나와 함께 간 학생들은 집중력과 인내심을 배우고 왔다.
  • 아시아영화제 프리·섹스·무드

    아시아영화제 프리·섹스·무드

    노골적 섹스•신들 全裸 性交(전라 성교) 장면도 여태까지의 大賞(대상) 곧 감독상의 관례를 깨뜨리고 작품상 감독상이 두개로 나누어 수상된 것도 「아시아」영화제의 이변이었지만 「섹스」와 잔혹의 싸움에서 前者가 이겼다는 얘기가 된다. 감독상을 차지한 申相玉(신상옥)감독의『李朝女人殘酷史(이조여인잔혹사)』가 작품상을 차지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 때문. 주최국인「필리핀」에 돌아간 주연남우상 「릭•로드리고」의 출연영화『이고로타』가「필리핀」 측의 자신만만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고배는 마셨지만 이작품이 준「쇼크」는 컸다. 山속 추장의 딸과 도회청년과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대담한「섹스」묘사로 주목을 끌었다. 全裸(전라)로 性交(성교)하는「신」이 기성•교성을 발하면서 2분씩 여러 번 나타나는데 단지「무브먼트」만 없을 뿐이다.이 영화는 지난해 이곳서 9개월에 걸친「롱•런」을 한 작품인데 노골적인「섹스•신」들은 國內(국내)공개때는「커트」되었었다고.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홍콩」의『죽음의 終末(종말)』, 日本의 『大部』『검은 도마뱀』등에도「섹스」는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李朝女人殘酷史』에도 역시『섹스』가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는 평을 받았으나 예의 殘酷調(잔혹조)가 점수를 잃게 한 셈. 기미 알아차린 홍콩측이 출품작 바꿔 작품상차지 이러한 움직임을 알아차린「홍콩」측은『鐵手無情(철수무정)』을 내놓았다가 슬그머니『三笑(삼소)』란 唱劇(창극)으로 바꾸어 결국 작품상을 탔다. 잔혹을 거부한 이번 심사의 흐름은 심사위원들 가운데 독실한 불교도, 회교도가 많았다는데 그 원인이 있었다는 얘기다. 어느 심사위원은「도꾜」나 서울에서「페스티벌」때는 영화의 주제가 疾病(질병)이었는데 이젠「섹스」로 바뀌었다고 의미있는 웃음을 지었다. 감독상은 한국측의 경합-申相玉(신상옥)감독이 8점, 뒤쫓은 李星究(이성구)감독이 6점이었다. 주연 남우상은 ①「릭•로드리고」②申榮均(신영균) ③中代達也(日•『御用舍』주연) 의 순위로서 申榮均 은「네이티브」하다는 평. 주연여우상은 1위 金芝美(김지미)『너의 이름은 여자』2위도 金芝美(李朝女人殘酷史) 3위가「샤리토•솔리스」(比•『이고로타』) 4위가 尹靜姬(윤정희)(『당신』)였다. 尹靜姬는「섹시」하다는 평을 받았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이번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의 金喜甲(김희갑)씨가 최고득점을 했다는 것.10점만점에 9.18점을 얻어 당당 최고득점. 주연여우상•감독상을 비롯하여 6개부문에 걸쳐 빛나는「트로피」를 한국이 차지한「아시아」영화제 시상식은「마닐라」하늘아래『아리랑』의 감격적인「멜로디」를 메아리지게 했다. 20일 하오7시에 열린 폐회식에선「마르코스」比대통령,「빌레가스」「마닐라」시장, 그리고 3천여명의「필리핀」시민이 초록색 노랑 치마저고리로 단장한 「아시아의 톱•스타」金芝美(김지미)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30여명의 교포들은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회 부회장 이병일씨는 식이 진행되는 동안 단상 중앙「마르코스」대통령의 오른쪽에 나란히 앉아 韓•比 두나라의 우의를 다짐했으며 폐회연설을 했다. 심사결과가 발표되는 동안「코리어」의 이름이 여섯번 울려 퍼질때마다 박수가 장내를 진동했다. 悲劇(비극)부문기획상(장구와 춤)부터 시작하여 감독상(申相玉『李朝女人 잔혹사』)「시나리오」상 (李恩成(이은성)•작품『당신』) 편집상 유재원 (『봄•봄』) 조연남우상 金喜甲(『새 색시』) 그리고 여우주연상의 차례로 한국 대표들이 단상에 올라가 「트로피」와 상장을 받을 때마다 「코리어!」란 환호가 터져나왔다. 「갈라•쇼」구경온 교포는「아리랑」민요에 눈물흘려 이러한「코리어」에의 열광은 뒤이어 펼쳐진「갈라•쇼」에서 최고도에 달했다. 「후라이보이」의 「판토마임」과 擬聲(의성)「쇼」는 웃음을 폭발시켜 진행이 중단되는 소동까지 벌였다. 金芝秀양의 부채춤,「패티•金」의『4월이 가면』이 갈채를 받았으며,『아리랑』이 울려 퍼지자 교포들은 손수건을 적셨다. 한편 21일 하오8시 이곳『산•미구엘』회관에서 베풀어진『한국영화의 밤』에선 이번 영화제에서 기획상을 탄『장구와 춤』과 주연 여우상을 차지한『너의 이름은 여자』가 상영되었다. 이 모임엔 「잉글레스」「필리핀」외무차관을 비롯, 영국대사,「파키스탄」대사등 많은 외교사절이 참석했으며 金芝美를「베스트•액트레스•인•아시아」가 아니라 「베스트•액트레스•인•더•월드」라고 격찬했다. [ 선데이서울 69년 6/29 제2권 26호 통권 제40호 ]
  • 코피 한잔 시켜놓고 몇시간

    코피 한잔 시켜놓고 몇시간

    주제(主題)=「데이트」와 시계(時計) MC=몇 년 전 『시계와 데이트』라는 노래가 크게 유행된 적이 있읍니다. 「데이트」쯤은 오히려 늦는게 예의인줄 아는 불쌍한 이 땅「이브」들을 한탄하는 노래였죠. 「코피 한잔」을 시켜 놓고 「내속을 태우는」요즘의 어느 「히트·송」의 울부짖음도 사연인즉 이런 것이 아닙니까? 전양자(全洋子)=전 숙녀답지 못하게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못된 버릇이 있읍니다. (웃음) 보통 약속 5분전 쯤「데이트」현장에 도착하지요. 상대방이 시간을 어길때는 10분 정도까지 기다려 줍니다. 박경원(朴敬遠)=전 30분 전 쯤 약속 현장에 도착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놓여요. 요즘처럼 「택시」잡기가 힘든 때는 차라리 일찌감치 나가 상대방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게 훨씬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양자(全洋子)=같은 10분이라도 내가 기다리는 10분과 상대방이 나를 기다리는 10분과는 천양의 차가 있는 것 같아요. 또 상대방이 정든 사람이라도 된다면 그 10분은 백분 정도의 시간성을 가질 수도 있는게 아니겠어요? MC=남녀 대학생 여러분들은 어느 정도 기다립니까? 김사라=5분 정도까진 시간이「오버」돼도 기다립니다. 그것도 순전히 인간적인 배려에서…. 신유근=난 최고 3시간 정도까지 기다려 본 적이 있읍니다. 나중엔 기다린게 아니라 음악이 좋아 그냥 앉았던 거지만-. 상대가 여자면 그렇게 안기다리고 남자인 경우에 한해서 좀 끈질기게 기다리는 괴벽(怪癖)이 있읍니다. 오충근=난「데이트」상대가 미녀이면 2시간 쯤, 추녀이면 2분쯤 기다립니다. 미녀와 추녀를 똑같은 시간 동안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지요. 김미란=10분쯤 기다립니다. 그 이상은 죽고싶은 생각이 들어 더 앉아 있을래야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웃음) 전양자=고물 시계가 사랑하는 사람들의「데이트」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때가 있읍니다. 고장이 났으면 차라리 시계 바늘이 꼼짝 달싹을 말든지…. 열심히 움직이기는 하는데 한 시간에 30분 정도밖에 가지를 않는 거예요. 그걸 믿고「데이트」를 약속했다간 그 결과는 뻔한 거지요. MC=시계와「데이트」에 얽힌 좀 더 재미난 경험담들을 얘기해 보기로 하죠. 박경원=내 시계는 이틀에 1분 정도가 빨라집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시계로 인해 약속이 파탄된 적은 없어요. 전양자=여고때 고물 시계를 속아서 산 적이 있어요. 열심히 고쳐도 시간은 열심히 안맞는데 당해 낼 재간이 없더군요. 가짜 시계 파는 악덕상인들이야 말로 가짜 중에선 1급 악질이지요. 김신호=전 하숙을 하고 있읍니다. 남자만 여섯명이 한집에서 살고 있죠. 한번은 이런 장난을 했어요. 한 친구가 토요일 저녁 때 돌아 와서는 이발을 한다, 목욕을 한다, 옷을 다린다 법석을 떠는게 아니겠어요? 일요일「데이트」를 모두가 직감했죠. 그날 밤 그 친구가 잠든 사이 방안에 있는 시계를 모조리 한 시간씩 앞 당겨 놨어요. 주인 집 시계까지…. 다음 날 이 친구 나갔다가 두어 시간 후에 돌아와서는 옷도 안 벗고 이불 속으로 직행하더군요. 끙끙대는 모습이 보기에도 딱할 정도였죠. 자기가 시간을 맞춰 나가지않은 것은 모르고 아가씨가 안 나오니까 완전히 사랑의 종말이 온 걸로 속단해 버린거예요. 전양자=전 남자 친구와의「데이트」도중 극장안에선가 이강천(李康天)감독에게「픽·업」되어 영화 배우가 되었읍니다. 「데이트」가 일생의 운명을 뒤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죠. 그날 시계라도 고장이 나 그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가 깨졌더라면 오늘의 영화 배우 전(全)아무개는 없었을게 아니겠어요? [ 선데이서울 69년 6/22 제2권 25호 통권 제39호 ]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록그룹사운드 효시 ‘키보이스’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록그룹사운드 효시 ‘키보이스’

    가요평론가/저널리스트.1956년 충주에서 출생. 월간지 ‘여원’‘수정’ 등 취재기자를 거쳐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문화사 편집부장 역임. 현재 한국대중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가요작가협회 편집위원, 그리고 서울 wbs-FM 원음방송 ‘박성서의 가요사 5060닷컴‘과 부산 mbc ’박성서의 음악파일’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첫 록그룹 음반은 ‘빗속의 여인´이 아닌 ‘그녀 입술은 달콤해´ 지난 한해 가요계의 큰 변화 중 하나는 ‘포크’와 ‘그룹사운드 음악’을 주축으로 하는 이른바 ‘7080 음악’이 부활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LP 음반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그룹사운드 사상 최초의 음반은? 지금까지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신중현이 이끌던 그룹 ‘에드포’의 첫 앨범에 담긴 ‘빗속의 여인’을 꼽는다. 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필자가 취재한 결과 ‘키보이스’가 발표한 노래 ‘그녀 입술은 달콤해’로 확인됐다.‘에드포’‘코끼리 캄보’와 더불어 우리나라 록그룹사운드의 효시를 이루는 5인조 그룹 키보이스의 ‘그녀 입술은 달콤해’가 처음 취입, 발표된 것은 1964년 7월3일. 이는 ‘빗속의 여인’(64년말)보다 5개월 앞선다. 따라서 ‘그녀 입술은 달콤해’는 그룹사운드 최초이자 최고(最古)의 음반인 셈이다. 당시 키보이스의 멤버는 차중락(싱어), 김홍탁(리드기타), 옥성빈(리듬기타)), 차도균(베이스기타), 윤항기(드럼) 등이다. 이 라인업이 갖춰진 것은 1963년 늦가을. 이 음반의 실제 주인공들인 당시 키보이스의 멤버들을 직접 만나봤다. 멤버 중 차중락씨는 이미 고인이 됐고 옥성빈씨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김홍탁, 윤항기, 차도균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존재 자체를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필자가 제시한 음반과 그리고 당시 취입 날짜가 기록된 마스터 카드, 그리고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을 들려주자 이들은 매우 놀라워했고 어렴풋이나마 조금씩 당시 상황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설핀사운드(Surfin Sound)를 모방하는 그룹으로 출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 의거, 그리고 5·16으로 이어지는 60년대는 그야말로 격동의 연속이었다. 이 무렵 영국에서는 리버풀 출신의 비틀스가 요란스레 ‘I Wanna Hold Your Hand’을 외쳐대고, 롤링 스톤스가 폭발적이면서도 괴상한 불협화음으로 세계 젊은이들의 심장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의 60년대는 ‘보릿고개’ 시절이었다. 작가 김승옥의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드러나 있듯 60년대 젊은이들은 현대에 동화되지도 못하고 전통에 대한 미련도 없는 우울한 세대였다. 가요사적 측면에서 보면 64년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대히트한 해로 61년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로 촉발된 신가요의 붐이 다시 트로트로 급선회한다. 그러나 이때 미8군무대를 중심으로 그룹사운드가 고고한 탄성을 알리며 ‘젊은이들만의 또 다른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미8군 무대를 통해 활동을 시작했던 키보이스는 ‘이미테이션(카피) 그룹’이었다. 비치 보이스와 비틀스의 노래·연주가 이들의 연습 테마였고 무대에서의 주요 레퍼토리였다. 때문에 이들의 초기 사운드는 ‘설핀 사운드’가 주류를 형성한다. 미국에서는 50년대 베이비붐 세대를 거쳐 풍요로운 60년대, 여유와 놀 거리를 찾던 틴에이저들에 의해 캘리포니아 사운드, 즉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가 열광적 지지를 받은 시기였다. 한국에 온 젊은 미군들에게도 예외일 수 없었다. 키보이스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인지 ‘한국의 비틀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비틀스의 등장이 당시 각국의 록그룹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특히 기타 3대와 드럼만으로도 노래와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획기적으로 제시해 주었고 이것이 곧 세계 그룹사운드의 형태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된다.5인조 키보이스 역시 초기에는 기타 셋, 그리고 드럼과 보컬로 구성됐다. 키보이스는 ‘Ky’에서 시작 키보이스의 태동은 가수 윤항기로 부터 시작된다. 윤씨의 회고. “해병대 군악대 복무 중이던 60년대 초 휴가때면 친구들과 어울려 록그룹의 꿈을 지폈지요. 그때 함께 어울렸던 멤버들이 나중에 키브러더스에 합세하는 김광정,‘김치스’의 리더가 되는 유희백 그리고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는 차도균이었습니다.” 차도균은 62년 KBS 신인 콩쿠르를 통해 발탁돼 작곡가 손석우로부터 곡을 받아 ‘타고난 팔자’ 등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당시 방송국 전속가수 제의를 마다하고 본인의 취향인 팝을 부르기 위해 미8군 무대에 나섰던 패기 넘치는 젊은 싱어였다. 보컬을 강화하기 위해 차도균은 사촌동생 차중락을 가세시키고 연습시절 함께했던 유희백이 떠난 자리에 ‘한국 기타의 파이오니아’로 일컬어지는 김홍탁을 불러들였다. 한국 록 역사에서 ‘김홍탁가(家)’라는 확실한 계보를 구축하는 김홍탁의 가세로 키보이스는 한국 록그룹 사상 가장 개인기가 출중한 초호화 라인업을 갖춘다. 이들이 처음 모여 사용한 그룹명은 ‘더 키즈’였다. 당시 미 8군쇼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이름 끝에 ‘키’자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작곡가 손목인의 장남인 ‘후랭키손’, 그리고 신중현은 ‘잭키’,‘히키신’으로 통했다. 또 윤항기는 ‘항키, 차도균은 ‘도키’로 불리었다. 해서 이들은 처음 그룹명을 ‘더 키즈’로 정했으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보다 분명한 뜻을 가진 ‘Key(열쇠)’, 즉 ‘키보이스(Key boys)’로 팀 이름을 바꾼다. 한국 록의 1세대 키보이스는 미8군 쇼 가수들을 공급하는 업체 ‘대영’에 소속되면서 미8군 무대에 진입한다. 아울러 일반 무대로의 진출을 위해 발표한 노래가 바로 ‘그녀 입술은 달콤해(김영광 작사·곡)’였다. 이로써 당시 젊은 작곡가 김영광에 의해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록 스타일의 노래가 탄생됐던 것. 김영광의 곡이라는 점도 록 그룹사운드 역사상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당시 서울 장충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이들의 첫 음반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곡이 ‘정든 배는 떠난다’이다. 이 노래는 나중에 에보니스 나훈아 등에 의해 리바이벌된다. 첫 발표때 리드보컬은 가수 송기영이 맡았다. 송기영은 활동기간 동안 10여장의 음반을 발표했음에도 음반 어디에도 얼굴 사진이 공개된 적이 없다. 그래서 얼굴 없는 가수로 불렸다. 지금도 도대체 그가 누구였는지 가요계 관계자들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 지면을 통해 그의 실체를 비로소 밝히자면 바로 작곡가 김영광이었다. 이에 얽힌 에피소드와 비화는 후에 소개하기로 한다. 키보이스의 인기는 일반무대에서도 여전했다. 세시봉 디쉐네 등 음악감상실의 무대를 통해서 대중적 영향력을 과시했던 이들은 64년 여름 KBS-TV에 출연해 한국 최초의 록 그룹사운드임을 과시한다. 그해 12월 내한했던 영국의 5인조 록그룹 ‘리버풀 비틀스(리버풀5)’와 경복궁 합동공연의 파트너로 선정된 주인공 역시 키보이스였다. 이 공연은 프로모터가 오리지널 비틀스가 내한했던 것처럼 홍보해 사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무렵 부산 해운대에서 한국 록그룹사운드 사상 처음으로 단독 야외공연을 펼치며 인기를 얻는다. 초기 키보이스 멤버들은 모두 넉 장의 음반을 남기고 67년에 해체한다. 이후 윤항기는 71년 ‘키브러더스’를 결성하며 컴백했고 이후에도 솔로로 활동했다. 리드싱어 차중락은 66년 키보이스 시절 솔로로 발표하는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Anything That Part of You)’을 발표하면서 솔로로 전향했다. 이후 ‘사랑의 종말’ ‘철없는 아내’ 등을 발표하며 이듬해 가수왕에 등극했고 차도균 역시 67년 ‘가이즈 앤 돌스(Guys & Dolls)’에 잠시 몸담았다가 68년 12월 ‘꽃잎에 새긴 사랑’을 발표하며 다시 솔로로 전향했다. 스탠더드 팝보다 헤비메탈 사운드를 추구하던 김홍탁 역시 이후 ‘HE5’‘HE6’ 등을 거치면서 당대 최고 인기그룹으로 부상하며 그룹사운드 황금기를 주도한다. 이들 초기 멤버들은 키보이스를 떠나서도 솔로로, 그룹으로 각기 가요사에 큰 획을 그었다. 초기멤버 중 옥성빈만이 잔류하게 된 키보이스는 다시 조영조 장영 등과 함께 제2기 키보이스를 결성, 활동하게 된다. 키보이스의 대표곡인 ‘해변으로 가요’ ‘바닷가의 추억’ 등은 모두 2기 키보이스 시절의 발표곡들이다. 이들에 의해 굳건히 명맥을 이어온 키보이스는 이후로도 3,4기 등으로 이어지며 키보이스 계보를 이어간다. <계속>
  • 이란 ‘핵무기’ 단서 발견

    이란의 핵활동 목적이 핵무기를 제조하기 위한 것임을 입증하는 단서가 드러났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달 31일 이란이 핵무기 설계도가 담긴 문건을 암시장에서 구입한 사실이 적시된 15쪽 분량의 보고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 문건에는 농축 우라늄과 열화 우라늄을 핵탄두에 장착할 수 있도록 반구(半球) 형태로 만드는, 핵무기 제조의 핵심 기술이 포함돼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보고서는 2일 개막되는 IAEA 긴급이사회에 제출돼 심도있게 논의될 예정이다. 보고서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핵발전소 건설을 위해 일련의 핵 활동을 펼쳐왔다는 이란 정부의 해명은 거짓으로 판명된다. 이란의 한 고위 관리는 그러나 이날 “우라늄 농축을 다시 시작한다.”고 밝히는 등 핵 문제의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란의 반체제 망명자 알리레자 자파르자데는 “이란이 파키스탄 핵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암시장 조직을 통해 핵탄두 설계도를 입수했으며, 북한의 전문가들이 이란에 파견돼 핵무기 제조 기술을 가르쳤다.”고 주장한 바 있다. 출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국 정부 관계자는 “이란이 봉인하고 있던 노트북에서 입수한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러나 IAEA가 이 보고서를 근거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를 결정하더라도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 등의 합의에 따라 안보리 상정과 제재 논의는 3월 IAEA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미뤄지게 된다. 안보리 회부 결정을 ‘외교적인 해결의 종말’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이란 정부의 핵사찰 거부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IAEA 이사회의 안보리 회부 결정이 내려지면 4일부터 IAEA의 사찰을 거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결국 두손 든 ‘코니카 미놀타’

    |도쿄 이춘규특파원|무려 130년의 역사를 가진 ‘코니카미놀타’ 카메라 브랜드가 종말을 고하게 됐다. 코니카미놀타 홀딩스는 20일 카메라용필름 사업으로부터 전면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디지털카메라의 기술이나 관련 자산 등은 소니로 넘어간다. 지금까지 판매된 카메라나 관련제품의 애프터서비스도 소니에 위탁한다. 필름카메라와 디카의 생산은 3월말에 중지하고 필름이나 인화지의 생산은 올해 말에 끝난다. 코니카미놀타의 카메라 부문 매출은 전체의 20%에 못미치는 2000여억엔(약 1조 8000억원). 앞서 고급카메라 업체인 니콘도 필름카메라로부터 사실상 철수를 표명하는 등 디카의 급속한 보급, 짧은 제품수명 등 경쟁격화에 따른 카메라업체의 재편작업이 가속화되고 있다. 코니카는 1873년 창업,1902년 인화지 제조와 판매를 시작한 브랜드다. 미놀타는 1928년 창업, 캐논, 니콘과 함께 세계 3대 카메라 업체로 명성을 날렸다. 코니카와 미놀타는 2003년 8월 경영을 통합, 디카에 집중했다. 하지만 디카의 핵심부품인 전하결합소자(CCD) 등 핵심기술을 갖고 있지 않아 경쟁력이 떨어졌다. 또 예상 이상으로 디카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통합 이후 영업적자가 계속됐다고 한다. 회사측은 카메라사업 철수와 함께 그룹 종업원의 11%정도인 3700명 정도를 내년 9월까지 줄일 예정이다. 회사측은 “신제품 개발이나 비용절감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카메라 철수배경을 밝히고, 앞으로는 복사기 등 사무기기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taein@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부토건-조남욱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부토건-조남욱 회장家

    ‘부여 출신의 3형제가 서로 도와 세운 건설사.’ 국내건설업 면허 1호 업체인 삼부토건의 유래다. 삼부토건의 삼(三)은 삼각형과 안정,3형제 등을 의미한다. 부(扶)는 창업주인 고 조정구 총회장의 고향인 부여와 자조(自助)를 뜻한다. 즉 삼부는 부여출신 3형제인 조정구·창구·경구 3형제가 창업했다는 뜻이다.3형제가 서로 도우며 안정적으로 회사를 끌고 가겠다는 의미도 있다. 삼부토건은 60,70대까지만 해도 국내 건설면허 1호 업체라는 명성에 걸맞게 도급순위 3위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기업문화는 성장에 걸림돌이 됐다. 창업주인 조 총회장뿐 아니라 대를 잇고 있는 큰아들 조남욱(73) 삼부토건 회장은 지금도 10대 선조까지 제사를 지낼 정도다. 보수적인 기업문화 탓에 여러차례 도약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80년대부터는 기업순위가 밀려 현재는 도급순위 26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삼부토건은 ‘성실시공’이란 창업정신과 호텔업을 중심으로 제2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엄격한 한학교육 받으며 성장한 창업주 조정구 삼부토건의 창업주인 고 조정구 총회장은 1914년 11월 충남 부여군 장암면 석동리에서 부친 조동일씨와 모친 풍천 임씨 사이에서 4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 총회장이 5세때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총명함을 보이자 부친은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가정교사를 둬 조 총회장을 가르쳤다. 조 총회장은 15세때인 1928년 장암면장 남정국씨의 맏딸 삼순씨와 결혼을 했다. 이후 부여공립보통학교와 일광심상고등소학교를 다녔다. 고3 때에는 장남인 조 회장을 낳았다. 조 총회장은 자식까지 생겼으나 공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경성공업고등학교(현 서울기계공고) 건축과에 입학했다. 경성공고를 졸업하고 1936년부터는 경기도청에서 건설관련 공무원으로 출발했다.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1948년 3월 사직서를 제출,12년 동안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곧바로 삼부토건을 설립했다. ●성실시공이 성공의 밑거름 창업 초기 삼부토건은 이렇다할 공사를 따내지 못했다. 삼부토건이 따낸 첫 공사는 창업 한달 뒤인 1948년 4월 성동소방서와 돈암동소방서의 부서진 문을 고치는 공사였다. 토목공사라기보다는 보수공사였다. 그러나 조 총회장은 공사 규모에 연연해하지 않고 ‘성실시공’이라는 창업정신으로 임했다. 삼부토건의 성실성이 알려지면서 경기도 상공국의 지하식당 수리공사, 서울시 부녀병원 수리공사, 전매국 통상염고 신축공사 등 굵직한 공사를 도맡았다. 삼부토건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된 계기는 군공사를 싹쓸이하면서부터다.1951년 해군본부의 해군병원 수리공사를 맡은 3개 건설업체 가운데 삼부토건만이 예정된 기간에 공사를 끝내면서 군당국으로부터 신뢰를 쌓았던 것이다.1951년에만 삼부토건은 진해에서 4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공사를 수주했다. 1960년대 초 전국에서 가장 열악한 지역은 제주도였다.1948년 4·3 사건이라는 정치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주도가 개발이 낙후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건설업체들의 수익성 때문이다. 섬이라는 특성 탓에 장비, 자재, 인부 조달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도 정부는 건설단가를 제주도와 내륙을 동일하게 적용했다. 제주도 공사 참여가 바로 적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조 총회장은 제주도 개발사업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해군공사를 도맡으면서 알게된 해군 준장 출신의 김영관씨가 제주도지사를 맡으면서 삼부토건이 제주도 사업을 맡아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던 것이다. 수익을 생각하면 당연히 거절해야 했지만 조 총회장은 “우리가 공사를 하지 않으면 제주도민들은 한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 살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감안한 끝에 수락했다. 제주도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40㎞에 달하는 제주∼서귀포 횡단도로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경부·경인고속도로, 잠실개발사업 등으로 한단계 도약 1968년에 착공된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는 삼부토건을 비롯한 국내 건설업체들에게는 모두 도약의 기회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는 종전 불도저나 포클레인 등 구식 장비에만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2000대에 달하는 당시로서는 첨단 중장비가 투입됐다. 건설업체들은 정부보증으로 부족한 중장비를 구입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부터 본격적인 기계화 시공이 이뤄진 것이다. 삼부토건은 충북 옥산∼충북 현도 구간 21.3㎞, 경북 봉산∼경북 금천 구간 16.2㎞을 맡았다. 경인고속도로는 합작회사 형태로 건설을 맡았다.1967년 경인고속도로가 착공될 때는 시공업체가 삼안산업이었지만 정부가 공기 단축을 위해 당시 도급순위 1∼3위였던 현대건설, 대림산업, 삼부토건을 공사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1970년대 초에 시작된 잠실개발사업도 오늘날의 삼부토건을 있게 한 대공사다. 잠실주변을 흐르는 성내천과 탄천을 막지 못하면 잠실개발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삼부토건은 이들 지류를 막기 위해 하루에만 1000여명의 인력과 500대의 중장비를 투입하자 물 길이 멈춰서면서 100만평에 달하는 매립지가 생겨났다. ●90년대 들어 사세 주춤, 제2의 창업 선언 삼부토건은 60,70년대만 해도 국내에서 도급순위 3∼4위에 달했다. 그러나 삼부토건은 70,80년대 활발했던 해외건설 사업에 소극적이었다. 다른 건설업체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리비아 등 대규모 건설공사에서 재미를 봤지만 삼부토건은 제한적으로만 해외사업을 해나갔다. 철저하게 해외 현지시장을 조사해야 부실시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 진출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 건설업을 기반으로 제조업, 중공업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것도 꺼렸다. 주로 국내시장을 공략했다. 삼부토건이 처음으로 해외공사에 뛰어든 시기는 1973년. 말레이시아 제2연방고속도로 공사 성공을 계기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순환공사, 네팔의 쿨레카니 댐 건설공사, 사우디아라비아 상수도 확장공사 등을 잇따라 따냈다. 이처럼 삼부토건이 해외건설에 뒤늦게 뛰어들어 기회를 잃었지만 내실경영으로 인해 1979년의 제2차 석유파동을 견뎌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삼부토건 기술력이 빛을 발한 것은 국내 최초의 하저터널을 성공리에 마쳤을 때다.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도버해협의 유로터널도 두 번이나 무너졌을 정도로 하저터널 공사는 선진국에서도 어려워하는 공사였다. 그러나 삼부토건은 1990년부터 7년에 걸친 공사 끝에 별 사고없이 지하철 5호선 마포∼여의나루역 공사를 성공리에 끝냈다. ●미래 유망산업인 호텔업에 진출 삼부토건은 1980년 경주 도뀨호텔을 인수하면서 호텔업에 진출한다.1981년에는 강남구 역삼동에 부지 5000여평을 매입했다.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가 결정됐기 때문에 호텔을 짓게 되면 올릭픽 기간에 200만명으로 추산되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삼부토건이 호텔을 짓기로 한 데는 80년대 들어 국내외 건설 수주가 어려워져 자체 사업을 통해 매출을 올리자는 전략도 담겨 있었다. 삼부토건은 서울올림픽 개최 불과 70여일 전인 1988년 7월 라마다르네상스 호텔을 준공했다. 호텔업에 진출할 때의 전략대로 라마다르네상스호텔은 개관 6개월동안 19억여원의 영업수익을 올렸다. 올해로 창사 58년을 맞은 삼부토건은 몇차례의 부침 끝에 현재는 2005년 기준으로 도급순위 26위(도급액 7938억원)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삼부토건은 르네상스서울호텔, 삼부건설공업㈜, 경주 콩코드호텔,㈜여의상사, 삼부스포츠프라자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조 총회장의 장남인 조 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른바 ‘KS’ 출신이다. 그렇다 보니 조 회장의 인맥은 정계, 재계, 경제계에 널리 퍼져 있다. 경기고 졸업 동기로는 성백인 서울대 명예교수, 이면영 홍익대 이사장, 최영철 변호사, 한건희 전 육군 소장 등이 있다. 서울법대 졸업 동기로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비롯해 박우동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이대순 한국대학총장협회 이사장 등이 있다. 조 회장은 대학 졸업 뒤에는 조달청의 전신인 외자청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서 20년 가까이 공무원 생활을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선거계장, 선거과장, 총무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1973년에는 대통령으로부터 홍조근정훈장을 받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조 회장은 외자청에 다니던 29세때 부친의 권유로 서울대 사범대를 나온 후 교사를 하던 김양희씨와 결혼했다. 조 회장의 장인은 초대 상공부 전기국장을 지내고 한국전력의 전신인 조선전업 부사장을 지낸 김영년씨다. ●재계·관계에 퍼져 있는 혼맥 조 회장은 3남1녀를 뒀다. 연세대 가정학과 출신인 장녀 명선(47)씨는 이용걸(49)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기획단장과 결혼했다. 이 단장은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장인인 조 회장의 고교·대학 후배인 셈이다. 명선씨의 결혼에는 이 단장의 외삼촌이면서 삼부토건 상무까지 지냈던 신억상씨가 중매를 했다. 행정고시 23회로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 단장은 기획예산처로 자리를 옮겨 재정정책과장, 기획총괄과장, 사회재정심의관 등을 두루 거친 기획예산처 내 선두주자다. 장남인 조승연씨는 1997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인창고, 경희대 상대를 졸업하고 미국 MBA까지 마친 차남 조시연(44) 삼부토건 이사는 박선정(35)씨와 결혼했다. 조 이사의 장인은 신라교역 회장인 박준형씨다. 한국원양어업협회 제14대 회장을 지낸 박 회장은 신라수산, 신라엔지니어링, 비전힐스 골프장, 신라문화장학재단을 거느리고 있다. 조 이사의 부인 선정씨와 선정씨 언니인 민정씨는 모두 ‘미래회’멤버다. 미래회는 재계 유력 인사들의 부인과 며느리 등 23명으로 구성돼 있다. 불우이웃돕기 등 자선활동을 하는 미래회에는 선정씨 자매 외에도 최태원 SK 회장의 부인 노소영씨, 한솔 조동길 회장의 부인 안영주씨, 한국타이어 조양래 회장의 며느리 이수연(이명박 서울시장 딸)씨 등이 회원으로 있다. 조 회장의 막내 성연(39)씨는 가톨릭의대 외래교수의 딸인 최지영(34)씨와 결혼했다. 성연씨도 아버지를 돕기 위해 삼부토건 공무부장으로 재직중이다. 조 이사는 삼부토건 현장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건설 현장의 자재 조달과 구매 등을 맡는 핵심부서다. 조 회장이 삼부토건에 입사하기 전 조달청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조달업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때문에 삼부토건의 사실상 후계자인 조 이사에게 현장지원 업무를 맡도록 했다.MBA를 마친 조 이사는 영어실력도 유창해 해외사업도 관여하고 있다. 후계구도와 무관하게 삼부토건의 모든 업무는 아직까지는 조 회장이 좌지우지한다. 엄격한 유교집안 탓에 장자인 조 회장이 회사일과 집안일 모두를 결정한다. 한달이면 한두차례 모든 형제들은 조 회장 집에 모인다. 조 회장의 첫째 동생인 조남원(61) 부회장은 물론 경주에서 콩코드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조남립(53) 사장도 제사에 반드시 참석한다. 삼부토건 관계자는 “조 회장의 두 아들은 물론 조 회장의 동생들도 조 회장에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할 정도 가부장적인 분위기”라면서 “조 회장도 아버지인 조정구 총회장에게 그렇게 배우고 자랐기 때문에 가풍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형을 끝까지 보좌하고 있는 조남원 부회장 조 총회장의 차남인 조남원 삼부토건 부회장은 금융인인 고 신동필씨의 딸인 용옥(60)씨와 결혼했다. 고려대를 나와 미국 로욜라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용옥씨를 만났고, 귀국과 함께 외환은행에 다녔던 용옥씨와 결혼한 것이다. 조 부회장은 1975년 삼부토건에 입사,30년동안 건설 외길을 걸어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알코바 하수종말처리장, 타이프 스포츠센터, 말레이시아 MBA사옥, 파키스탄 물탄∼미안찬누 도로건설 등과 같은 해외건설 공사를 완벽하게 끝내 세계속에 ‘건설 한국’의 입지를 다진 토목 전문가다. 조 부회장이 삼부토건의 해외파트를 도맡았던 것은 유학생활을 통해 얻은 외국어 실력 덕분이다. 형인 조남욱 회장보다 1년 먼저 삼부토건에 입사했다. 조 부회장은 현재 대한건설협회 대의원 및 이사,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도로교통협회 부회장, 한국엔지니어협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장학재단인 숙정재단을 설립하고 사회복지법인인 재활재단 이사를 맡아 사회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조 부회장의 부인인 용옥씨는 삼부토건의 유통업 계열사인 ㈜여의상사의 감사로 있다. ●호텔 계열사를 넘겨받은 조남립 회장 조 총회장의 3남인 조남립 삼부토건의 계열사인 경주콩코드호텔 대표로 재직중이다. 조 총회장의 장녀 옥주(68)씨는 이화여대를 다니면서 연세대를 다니던 정병렬(작고)씨와 만나 졸업 뒤 결혼했다. 잠시 공무원생활을 한 병렬씨는 결혼과 동시에 장인회사인 삼부토건에 입사, 금융담당 상무까지 지낸 뒤 81년 퇴사했다. 한때 선일레미콘이라는 별도의 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숙명여대를 졸업한 정자(65)·남숙(작고)씨 등은 모두 연예결혼했다. 차녀 정자씨의 남편은 선도전기 대표이사 회장인 전경호(65)씨. 마산고와 성균관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전씨는 학창시절 친구의 소개로 정자씨를 만났다고 한다. 4녀 남숙씨는 학창시절 교회의 성가대에서 알게된 정홍식(58)씨와 결혼했다. 연세대를 졸업한 홍식씨는 당초 삼성그룹에 입사, 그룹비서실에서 근무했다. 그는 삼부토건의 계열사인 여의상사의 총무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보문관광·도큐호텔·라마다르네상스 등 그룹내 계열사를 돌며 장인을 도왔으나,1987년 주방기기 납품업체인 HRS를 차려 독립했다.HRS의 홈페이지에 월요예배 코너를 따로 만들어 설교를 전할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chungsik@seoul.co.kr ■ 故조정구 총회장 11대 장남 조남욱 회장은 13대 父子 국회의원 삼부토건 창업주인 고 조정구 총회장과 큰 아들인 조남욱 회장은 공통점이 많다. 부자(父子)가 모두 국회의원과 대한건설협회장을 지냈다는 점이다. 조 총회장은 지난 1981년 3월 제11대 한국국민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대한건설협회장을 여러차례 역임했던 조 총회장은 건설업체들의 도움으로 국민당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건설업체의 뜻대로 조 총회장은 국회 경제과학위원회에 배정돼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하나하나 고쳐나갔다. 하지만 조 총회장은 당초 약속대로 4년동안만 국회의원을 지낸 뒤 기업인으로 돌아왔다. 정치에 미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 회장도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 대한건설협회장을 맡고 있던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민정당 비례대표로 출마해 당선됐다.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씨가 합당했을 때는 김종필씨의 지역구였던 부여의 지구당 위원장직도 넘겨받기도 했다. 조 회장이 아버지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계속 정치를 할 뜻이 있었던 것이다. 부여 지구당위원장직도 넘겨받았기 때문에 다음번 총선에서는 지역구 출마도 가능했다. 하지만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김종필씨가 부여에 직접 출마했다.1996년 총선에서는 김종필씨가 민자당을 탈당한 뒤 자민련 후보로 부여에 출마했다. 조 회장은 그 당시 여당 후보로 출마할 수 있었지만 당선 가능성이 떨어져 아예 정치의 뜻을 접었다. 조 회장처럼 부자가 모두 국회의원을 한 경우는 현직에만 9명이 있다. 대표적으로 6선을 지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일 민주당 의원이 있다. 정주영(제14대 전국구 의원)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 정몽준 의원은 무소속으로 활동중이다. 한나라당에는 김무성(김용주 전 의원 아들), 남경필(남평우 전 의원 아들), 정문헌(정재철 전 의원 아들), 이종구(이중재 전 의원 아들), 유승민(유수호 전 의원 아들) 의원이 있다. 국민중심당에는 정진석(정석모 전 의원 아들), 열린우리당에는 노웅래(노승환 전 국회 부의장 아들)의원이 있다. chungsik@seoul.co.kr ■ 조남욱회장 남다른 백제문화사랑 삼부토건 조남욱 회장은 백제문화에 애정이 남다르다. 물론 조 회장 고향이 부여이기 때문에 백제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일 수도 있다. 부여는 백제가 서기 538년 천도(遷都)한 뒤 660년 패망할 때까지 문화적 전성기를 이룬 도읍지였다. 하지만 조 회장이 백제문화권개발에 앞장서는 데는 고향이라는 이유말고도 다른 사연이 있다. 백제문화는 일본에 전파돼 일본 고대국가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만큼 위대한 것인데도 신라문화권 개발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쳐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이 본격적으로 백제문화권 개발에 나선 것은 1990년대부터다.1990년 국립부여박물관 공사를 시작했고,1994년에는 ‘백제 작은길’과 ‘백제 큰길’을 착공했다. 또 그해 일본 규슈 미야자키 남향촌 등의 유적지를 답사한 뒤 백제문화가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조사했다. 남향촌은 ‘백제마을’이라고 불릴 만큼 백제문화의 영향이 깊이 서려 있는 곳이다. 1998년에는 백제역사재현단지 조성 사업에 앞장섰다. 부여 규암면 합정리 일대 100만평 부지에 3700여억원을 들여 역사재현촌, 민속박물관, 호텔, 컨벤션센터, 예술인촌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그해 4월 열린 기공식에는 조 회장을 비롯해 김종필 국무총리,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 심대평 충남지사 등 300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공사는 속도를 냈고 조만간 백제의 역사와 백제인의 생활상·문화·유적 등을 총망라한 ‘백제역사문화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올 상반기 중에는 사비(지금의 부여)시대 백제 왕궁과 능사(능을 지키기 위해 세운 절) 5층 목탑도 일반에 공개된다. 또 2010년까지 산업교역촌, 개국촌, 장제묘지촌, 전통민속촌 등이 순차적으로 문을 연다. 백제역사재현단지에는 생태숲인 백제숲도 들어선다. 충남도가 2008년까지 8억원을 들여 단지내 왕궁촌 주변 43㏊에 백제풍의 생태숲을 조성키로 한 것이다. 백제숲에 백제시대에 많이 자생했던 것으로 옛 문헌을 통해 밝혀진 소나무와 박달나무, 느티나무, 떼죽나무 등 각종 나무 3만 8000그루와 가시연꽃, 감국, 개미취, 나리꽃, 원추리, 인 동덩굴 등 3만 2000포기의 초화류를 심어 백제시대 분위기를 연출할 계획이다. chungsik@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로마의 전철 밟는 미국의 폭주”

    “로마의 전철 밟는 미국의 폭주”

    제국의 흥망을 다룰 때 가장 흔히 등장하는 예가 로마다. 기원전 1세기부터 고대 서양 최대의 제국으로 500여년을 지탱해온 로마가 멸망하는 과정은 이후에도 여러 제국의 등장과 멸망에서 상당 부분 되풀이되었기 때문. 새뮤얼 헌팅턴을 비롯한 많은 세계적 지성들은 로마의 쇠퇴가 지나친 해외팽창에 의한 제국화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로마의 제국화가 결국 내부갈등을 낳고 이것이 로마 공화정의 붕괴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오늘날 로마의 전철을 밟고 있는 나라로 미국을 지목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점으로 50여년에 걸친 동·서 냉전이 종식된 이후 제국화로 치닫고 있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모래의 제국’(로버트 메리 지음, 최원기 옮김, 김영사 펴냄)은 서양 지성사의 두 흐름인 역사 진보론과 역사 순환론의 관점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문제점들을 파헤친 책이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외교정책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서구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를 외친 ‘역사의 종말’, 그리고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화’로 구체화된 역사 진보론이다. 인류가 원시-야만-계몽-문명시대를 거쳐 단계별로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진보를 계속할 것이라는 진보의 관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역사 진보론의 반대편에는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로 대표되는 역사순환론이 있다. 각기 다른 문명이 흥망성쇄를 거듭한다는 이 관념은 20세기 슈펭글러와 토인비를 거쳐 오늘날 역사진보론의 폭주를 견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로 백악관을 출입했던 저자는 역사순환론의 시각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세계를 자기입맛에 맞게 재편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십자군 같은 등장이 위험천만한 자살행위라고 경고한다. 더욱이 내정간섭, 정권교체, 선제공격이라는 미국의 거침없는 행보는 역사상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한다. 또 미국의 핵심 정치세력인 네오콘(신보수파)의 실체를 보여준다. 네오콘은 ‘미국은 특별하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신세계를 환영하며, 세계의 여타 국가들이 미국이 제시하는 이상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선 그들의 고유문화를 포기하게끔 만들 수도 있다고 본다. 냉전 종식 이후 이들이 주도하는 미국의 해외개입정책은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발칸반도에서 민족·종교간의 해묵은 증오를 인식하지 못하고 문명의 경계를 넘어 이슬람 편에 섰으나, 현재 보스니아는 이라크에서 미군을 상대로 싸우는 이슬람부대를 양성하는 집결지가 되었음을 상기시킨다. 진정 민주주의를 지키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이 직면한 전쟁이 ‘문명의 충돌’시대라는 현실인식과 함께, 국제적 개입을 최소화하라는 것이 저자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다.1만79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끝나지 않은 2000년의 전쟁/마크 가브리엘 지음

    이른바 세계종교라 불리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한 뿌리에서 나온 종교다. 이슬람은 강고한 유일신 신앙과 종말론 사상 때문에 기독교의 한 파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형제종교’는 갈등과 반목을 거듭해 왔다. 그것은 두 종교의 신학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은 동정녀 탄생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나아가 이슬람은 예수가 무함마드 이전 시대에 마지막으로 부름받은 위대한 예언자이자 치유자임도 인정한다. 하지만 예수를 신의 아들이나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메시아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원죄의 개념을 모르는 만큼 대속(代贖)의 필요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두 종교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기독교 대 이슬람,2000년간의 전쟁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기독교와 이슬람의 진정한 화해는 불가능한 것인가. 독실한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슬람 학자 마크 가브리엘이 쓴 ‘끝나지 않은 2000년의 전쟁’(김명신 옮김, 퉁크 펴냄)은 이같은 난제에 성의있는 답변을 시도한다. 서구의 시각에서 볼 때 이슬람만큼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닌 종교도 없다. 서양에서의 이슬람상(像)은 적잖이 왜곡돼 왔다. 이슬람은 흔히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란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다.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해 이스탄불로 개칭한 오스만제국은 이스탄불을 종교적인 국제도시로 만들려고 했다. 패전국의 기독교문화까지도 수용하는 정책을 폈다. 학자들은 이를 뒷받침하는 예로 이스탄불에 남아 있는 그리스 정교회 본부를 들기도 한다. 이슬람과 기독교, 이들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에 더욱 더 싸우는 것일까. 두 종교의 화해를 위해 노력해온 한 신부는 아직도 ‘반(反)코란적인 광견병’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사람들, 특히 기독교인들은 성경과 코란이 너무도 흡사함에 놀랄지도 모른다. 아담과 이브가 따먹은 금단의 열매, 노아와 홍수, 롯과 악의 도시, 이집트의 모세에 대한 상세한 설명 등 코란에 나오는 성경 이야기는 한둘이 아니다. 모름지기 종교란 본질이 다를 수 없다. 악을 가르치는 종교는 없고, 악을 뿌리뽑기 위해 악을 행하라고 명하는 종교 또한 없다. 종교는 죄가 없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혹자는 오늘날 이슬람과 서방세계의 갈등을 문명충돌론이나 선과 악이 대결하는 성전으로 몰고가기도 한다. 테러와 전쟁의 원인은 석유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것들은 물론 일면적인 고찰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명쾌한 답변을 유보한다. 다만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슬람과 기독교는 결코 다른 명제를 추구하지 않음을 강조할 뿐이다. 아랍에는 “커가면서 제 아비를 닮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란 어차피 환경의 산물이다. 이슬람도 기독교도 숙명적으로 자신의 옹색한 울타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어쩌면 성경에도 나오듯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사실만이 진실인지 모른다. 이 책의 결론 또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산업인력공단 ‘직급파괴’ 혁신인사

    정부부처에 이어 산하 공공기관에서도 서열과 직급을 파괴하는 파격인사가 잇따르고 있다. 노동부 산하의 한국산업안전공단(이사장 박길상)은 9일 조직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혁신적인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1급 59명을 비롯, 무려 1200여명에 달하는 전 직원에 대한 이번 인사는 연공서열과 직급·직렬이 파괴된 파격적인 인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선 업무능력이 우수한 2급의 임태영, 고재철, 김성일 팀장 등 3명은 1급 자리인 부천·성남·강릉산업안전보건센터 소장으로 전격 발령됐다. 또 역량이 뛰어난 3급 차장 10명도 2급에 해당하는 팀장 직위에 임명했다. 그 동안 관행처럼 지켜지던 ‘1직위 1직급’ 시대가 종말을 고한 셈이다. 반면 1급 9명과 2급 33명 등 1∼2급 직원 42명은 일반 팀원으로 발령했다. 또한 상하 및 동료간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본부와 연구원 팀장급 이상 35명에 대해서는 직위공모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일선 기관장의 책임경영체제 구축을 위해 그동안 본부에서 팀장 임명을 하던 것을 일선 기관장이 알아서 임명하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이같은 파격적인 인사는 보건복지부, 국정홍보처 등 정부부처뿐만 아니라 국민연금관리공단, 공무원연금공단, 철도공사 등 정부산하 공공기관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길상 공단이사장은 “직급파괴로 조직내의 건전한 경쟁을 유발하고 업무성과를 높이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2006 韓美 군사·경제 동맹 전망’ 특별인터뷰

    ‘2006 韓美 군사·경제 동맹 전망’ 특별인터뷰

    |워싱턴 이도운특파원|2006년은 한국과 미국의 동맹 관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으로는 전시작전권 이양과 전략적 유연성 등 한·미동맹의 근간을 바꿀 수도 있는 중요 현안들이 줄지어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국가간 ‘경제 동맹’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한·미간 협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미 해병대지휘·참모대학의 브루스 벡톨 교수와 국제경제연구소(IIE)의 마르커스 놀란드 선임연구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새해 군사 및 경제 동맹 관계를 전망해 봤다. ■ 브루스 벡톨 美해병대 지휘·참모대학 교수 ▶2006년에 한·미간의 가장 중요한 군사 현안은 무엇일까? -올해만 놓고 보면 미군이 수행했던 주요 안보 임무를 한국군으로 이양하는 문제가 있다. 또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대해 한국 정부가 어떤 태도로 대응해 나갈지도 관심거리다. 전시비축물자(WRSA-K) 처리 방안도 걸려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향후 15년간 한국군이 개혁과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군과 어떤 식으로 통합을 모색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한국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의 이양을 협의하자고 미국측에 요청했다. 미국측에서 볼 때 이 문제는 어느 정도 중요한 문제인가? -미국에 중요한 현안이다. 한국에는 더 중대한 문제일 것이다. 만약 전시작전권이 한국으로 넘어간다면, 북한과의 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 대통령이 유일한 최고사령관이 된다. 현재의 전시작전권은 미국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미연합사가 한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이 협의해 결정한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현재 한미연합사에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에 대비한 지휘체계가 명확하게 짜여져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으로 넘어가면 이같은 모든 체계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으로 넘어온다면 한·미 동맹에 결정적인 변화가 생길까? -물론이다. 전시작전권의 변화는 곧바로 한미연합사의 종말을 의미한다. 동맹관계의 중대한 변화다. ▶한미연합사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나? -가능한 선택 가운데 하나는 한미연합사를 연합기획본부로 재편하는 것이다. 연합기획본부에서 양측의 기획참모들이 전쟁과 우발적 상황에 대비한 군사 계획과 주한미군의 임무 등을 기안할 수 있다. 다른 선택은 연합사 구조를 두개의 병렬조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군은 한국이, 미군은 미국이 각각 통제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유연성이 필수불가결한 전장에서 군사 통솔에 여러가지 문제가 예상된다. 한미연합사 체제가 유지될 때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2004년도 미 정부 백서에 따르면 북한과의 전쟁이 발생할 경우 작전계획 5027에 따라 미군 69만명이 한반도에 투입된다. 이 경우 한국군은 숫자나 장비에서 미군에 압도당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는 분리된 지휘체제를 원할까?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어떤 식의 협상이 예상되나? -먼저 한국의 국가정책 차원에서 결정이 이뤄져야만 한다. 미국에게 전략적 유연성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이미 실행되고 있는 독트린이자 목표다. 미군을 좀더 경량화, 소형화하고, 다양한 상황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한국으로서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최대한의 잠재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미국과 협력하는 것이 이익에 부합한다. 한국군도 ‘한반도에서의 유연성’을 이행함으로써 보다 유연하고, 가벼우며, 효율성있게 변화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의 유연성이란?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한 것은 미군뿐만 아니라 한국군도 마찬가지다. 한국군은 올해 미군으로부터 중요한 안보 임무들을 이양받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군이 C4I(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 등에서 미군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지 못한 채 임무만 이양받는다면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대북억지력이 저하될 것이다. 한국군 자체도 보다 경량화, 기동화하는 한편 북한에 비해 압도적인 정보 우위를 점해야 한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06년 특집판에서 미군이 가까운 장래에 한반도에 주둔한 지상군을 완전히 철수할 것으로 예견했다.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동북아의 지정학적 변화를 감안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한반도에 미군이 언제까지 주둔하느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정부에 달렸다. 미국은 제국이 아니다. 미군은 동맹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주둔한다. ▶한국이 중국과 군사적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이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일까?중국은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동아시에서 헤게모니를 확보하는 것이 중국의 목표다. 한국의 국가이익은 자유 민주국가와 강력한 동맹을 유지할 때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dawn@seoul.co.kr ■ 브루스 벡톨 ●유니온 인스티튜트 국가안보학 박사 ●해병대 암호해독가 ●국방정보국 동북아 담당 선임분석관 ●공군지휘·참모대학 국가안보 담당 조교수 ■ 저서 ●셔먼 장군에 대한 복수:1871년 강화도 전투(2002) ●분단된 한국:통일을 기원하며(2004) ■ 마르커스 놀란드 국제경제연구소 선임 연구원 ▶미국이 한국과 FTA를 체결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은 보다 자유로운 무역을 확대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둘째,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대안으로서도 FTA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도하라운드 협상이 실망스럽게 끝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FTA 체결 상대국을 적절하게 선택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앞으로는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모두 중요한 파트너와 FTA를 체결하고 싶어한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최우선 대상국이다. ▶한·미간의 FTA 추진에 정치적인 고려 요인도 있나.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통합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은 아시아가 미국을 배제한 블록을 형성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아·태경제협력체(APEC)에 참여하는 것이고 개별국가들과의 FTA도 추진하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의 FTA를 일본, 더 나아가 중국과의 FTA로 가는 디딤돌로 생각하나? -한국과의 FTA 체결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러나 일단 한·미 FTA 협상이 본격화되면 동북아지역에 역동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한·일간의 FTA 협상도 활성화될 수 있고, 미·일간의 FTA도 촉진될 것이다. 더 나아가 지역간, 말하자면 한·미·일 3자간의 ‘삼각 FTA’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중국도 포함하는 지역내 FTA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경제개발 단계의 차이 등 때문에 이것은 좀더 장기적인 문제다. ▶한·미간의 FTA 협상은 스크린쿼터와 쇠고기 수입 문제로 막혀 있다. 스크린쿼터 문제가 미국에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할리우드의 로비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웃음). 이 질문은 오히려 한국측에 던져야 것 같다. 한국 영화 산업은 더이상 보호가 필요없을 만큼 성장했다. 왜 스크린쿼터가 필요한가? ▶스크린쿼터가 해결되지 않으면 FTA 협상이 시작될 수 없나? -그렇다. 영화는 미국의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그리고 스크린쿼터는 한국의 오랜 무역장벽이다. ▶쇠고기 등 농산물시장 개방과 관련해선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조심스러워 한다. -시장 개방이란 것은 자기가 경쟁력 있는 분야만 여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농업은 오랫동안 보호를 받아 왔고 농민들은 잘 조직돼 있다. 자료를 찾아 보니 한국보다 농산물시장 장벽이 높은 나라는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스위스뿐이다. ▶FTA가 한국에 어떤 이익을 주나? -단기적으로 한국의 철강 등 수출업체들이 ‘반덤핑’으로 제소될 확률이 낮아질 것이다. 미국은 국내 해상운송의 경쟁력이 낮고 보호장벽이 높다. 한국의 경쟁력있는 운송업체가 진출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을 동북아의 비즈니스·금융 허브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같은 약속이 이뤄지려면 한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한국과의 FTA가 어떤 이득을 가져올까? -미국 소비자와 제조업체도 한국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요즘 미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보면 한·미 관계가 매우 껄끄럽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양국이 뭔가 공동으로 협력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FTA라면 협력적인 분위기에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프로젝트다. ▶미국은 현재 아시아에서 어떤 국가들과 FTA를 체결했나? -싱가포르와는 체결했고 말레이시아, 태국과 공식 협의중이다. 인도네시아는 비공식적으로 협의를 요청했다. 일본의 경제단체인 경단련이 미 정부에 관심을 표명했다. ▶내년에 협상 시작이 가능할까? -미국은 의회가 대통령에게 통상 관련 협상 전권을 준다. 그런데 그 기간이 짧다. 따라서 올해안에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장기화된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임기 중에는 타결이 어렵다. ▶미국이 FTA협상 과정에서 개성공단의 제품을 ‘남한산’으로 인정해 줄 수 있을까? -국제법을 적용해 보면 개성에서 생산된 제품 가운데 한국산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도 있고, 북한산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도 있다. 미국 정부는 국제법과 내부 규정에 따라 판단할 것이다. dawn@seoul.co.kr ■ 마르커스 놀란드 ●존스홉킨스대 경제학 박사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선임 경제학자 ●존스홉킨스대·도쿄대·남가주대·한국개발원(KDI) 연구원 및 강사 ■ 저서 ●종말의 회피:두 코리아의 미래(2000) ●김정일 이후의 코리아(2004)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1)끝. 새날의 희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1)끝. 새날의 희망

    ‘정감록’ 연재도 막바지라 맺음말이 없을 수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예언문화를 다각도로 다루려 노력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화제는 조선후기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바로 그 시기에 ‘정감록’이 등장했고, 그것이 한동안 정치 및 종교운동의 모태가 되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엔 이른바 ‘정감록’ 사건이 참 많기도 했다. 그런데 ‘정감록’은 과연 무슨 사상을 담고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때가 많다. 아무리 ‘정감록’을 읽어봐도 어떤 체계라든가 사상성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설사 ‘정감록’에 예고된 정진인(鄭眞人)의 세상이 된다 해도, 그것은 또 하나의 왕조일 뿐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잘 알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 은 예수의 재림이 가져다 줄 인류역사의 완성을 예언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 ‘정감록’은 기껏해야 왕조교체를 논하는 수준이란 평가다.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정감록’이란 텍스트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정감록’을 읽는 나의 방법은 적혀 있는 글자만 읽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문화적인 맥락에 비추어 읽는 방식이다. 텍스트의 안과 바깥을 부지런히 오가며 ‘정감록’을 읽는 것이다. 그러면 수수께끼가 풀린다. ●정감록, 지배이데올로기에 맞선 대항이데올로기 ‘정감록’은 조선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 맞서 평민 지식인들이 준비한 대항 이데올로기였다. 이 점은 19세기 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한 여러 신종교의 가르침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동학·증산교 및 원불교는 하나같이 곧 밝아올 새 세상을 노래했다. 그들이 선포한 새날은 ‘정감록’이 민중에게 약속한 새 나라였다. 그것은 역사상 존재했던 여러 왕조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새 하늘, 새 땅이었다. 새 날의 모습은 성리학자들이 추구해온 목가적 이상세계와는 달랐다. 그것은 ‘정감록’으로 빚은 대항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다. 연재 가운데 이미 검토된 사실이지만 동학과 같은 새 종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17세기 이후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런 운동은 ‘정감록’을 매개로 평민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신종교 운동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나름대로 조직적 경험과 이론을 확립해갔다. 마침내 19세기 후반에는 동학이란 교단으로 화려하게 부활해 민중에게 널리 지지를 받았다. 최제우의 동학은 ‘정감록’운동의 터전 위에서 창립된 것으로,‘정감록’없이는 동학도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옳다. 나중에 동학의 교명을 천도교로 바꾼 손병희 같은 지도자도 ‘정감록’을 무척 중시했다. ●오만년 대운, 전환기의 괴질 동학을 비롯한 여러 신종교에서는 조선왕조가 망하고 나면 새 세상이 열린다고 보았다. 바로 ‘정감록’에 예언된 정진인의 나라다. 그때가 되면 문자 그대로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롭고 복된 사회가 건설된다고 한다. 이를 두고 오만년대운(五萬年大運)이 새로 시작된다고 표현했다. 동학의 경전 ‘용담유사’에는 ‘오만년’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한다.‘용담가’에 “한울님 하신말씀 개벽 후 오만 년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라는 대목이 있다. 세상이 열린 지 오만 년 만에 최제우가 큰 가르침을 열었다는 말이다. 최제우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이상적인 종교를 창립했다며,“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만세일지 장부로서 좋을시고”라고 했다. 불교와 유교는 이미 낡은 것이 되었고, 이제는 인류 최상의 가르침인 동학을 통해 새 세상을 건설할 때라는 것이다. 최제우는 동학의 유행을 천운(天運)이라 했다. 그러면서 보통사람들은 근심걱정 없이 이러한 시운에 따라 최제우가 가르치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했다. 최제우에 앞서 세상이 바뀔 거란 점을 누누이 강조한 것은 ‘정감록’이었다. 그 유행에 힘입어 사람들은 최제우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정감록’엔 새 세상이 밝아올 때 여러 가지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고 예언돼 있다. 전쟁과 질병과 굶주림이 그것이다. 최제우는 ‘정감록’ 예언을 대폭 수용해 과도기의 징후를 ‘몽중노소문답가’에서 이렇게 정리한다.“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는가.” 여기서 말하는 십이제국이란 문자 그대로 열두 나라가 아니라 온 세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온 세상이 정체불명의 질병으로 시달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다른 곳에서 그는 ‘삼년괴질’이니 ‘연년괴질’과 같은 말을 한다. 요컨대 여러 해 동안 인류가 조류독감이나 에이즈와 같은 질병으로 시달린 다음에 “개벽”이 완성된다고 보았다. 이것은 마치 성경에서 말세에 큰 환란을 겪은 뒤 예수가 재림한다는 식이다. 조선 후기엔 천주교가 수용되어 종말론이 널리 전파되었다.‘정감록’에 기록된 환란도 그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최제우의 동학 역시 마찬가지다. 동학은 이름부터 천주교(서학)에 반대한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지만, 그 주장이 꼭 대립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동학을 계승한 증산교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증산교의 창립자 강일순은 한국에 출생하기 전에 로마 교황청 꼭대기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고 했다. 그는 서양신부 마테오리치를 중국으로 파견한 장본인이라고도 했다. 이런 증산교도 전환기에 찾아올 환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강일순의 생각은 동양적이었다. 그는 이른바 괴질의 원인을 과거의 모든 악업(惡業)과 신명들의 원한과 보복이 쌓인 것이라 했다. 악업과 신명을 강조한 점에서 그의 생각은 다분히 불교적이다. 강일순은 괴질의 발생을 사계절과 비교한다. 봄과 여름에는 큰 병이 없다가 봄여름의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가 가을에 접어드는 환절기에 병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말세에는 이런 식으로 큰 병이 세상을 휩쓸게 되는데, 한국에서 최초 발병자가 나오며 병을 치료할 구원의 도(道) 역시 한국에서 일어난다 했다. 괴질은 전라북도 군산과 순창에서 발생해 49일 동안 전국을 휩쓸고는 외국으로 건너가 3년 동안 전 세계를 휩쓴다. 이것이 강일순의 예언이다. 그는 한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간주했는데 이런 사고방식은 ‘정감록’에서도 확인된다. 동학의 최제우 역시 오만년 대운을 열 새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한국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겼다. 19세기 한국은 내우외란이 겹쳐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외래종교인 천주교가 들어와 전통사상이 도전에 직면했다. 이런 판국이라 ‘정감록’을 비롯한 각종 예언은 더욱 인기를 끌었고, 마침내 말세의 환란과 새 세상에 대한 기대가 꽃을 피웠다. 동학과 증산교의 등장이 바로 그 보기다. ●새 세상은 미륵세상 최제우의 글에는 새 세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강일순의 경우는 달라 다가올 세상을 비교적 자세히 예고했다. 언제나 발뒤꿈치를 땅에 붙이고 살기 마련인 사람들도 하늘에 올라갈 수 있게 된다 했다. 새 세상은 밤도 낮처럼 환해지며, 들에는 백가지 곡식이 풍성하고 만 가지 과일이 다 굵고 커, 음식이 풍성하게 된다. 아름다운 옷도 무척 흔해진다. 강일순이 꿈꾼 새날은 의식이 풍족하고 교통이 편리하게 되며 어둠이 사라진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선 거짓이 사라지고 온갖 차별도 없어지며 수명이 늘어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강일순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말한다. 이제 비행기를 타고 얼마든지 하늘을 날게 되었고, 전깃불로 밤을 밝히게 되었다. 또한 대형 할인마트에는 국산과 외국산을 막론하고 음식과 과일 그리고 의복이 넘친다. 헐벗고 굶주리던 옛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인권이 잘 보장되며 평균수명도 많이 늘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강일순이 예고한 새 세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세상이다.‘미륵하생경’에 비슷한 모습이 더욱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새 세상이 되면 거리마다 번화하기 짝이 없고, 밤마다 향수가 가랑비처럼 내린다 했다. 길바닥은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고 평탄하며, 식량이 풍족해 인구도 번창한다. 보배가 무수하고 감미로운 과일나무, 향기로운 풀과 나무도 무성하다. 기후는 늘 온화하고 화창하며, 계절의 변화가 순조롭고 사람들은 착하고 고운 말만 서로 주고받는다. 대소변을 볼 때면 땅이 저절로 열렸다 닫혀 아무런 냄새도 안 난다. 인간의 수명도 늘어나 보통 8만 4000세까지 살게 된다. 이것이 지금 도솔천에서 수행 중인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건설할 새 세상의 모습이다. 물질이 지극히 풍족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답고, 누구나 심신에 고통을 받지 않고 오래 사는 이상향이다. 불교신자라면 누구나 이런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불교는 오랫동안 한국의 국교였다.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까지 늘 그랬다. 상하를 불문하고 모두 불교를 믿었다. 조선시대에야 사정이 달라졌다.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아 불교를 업신여기는 풍조가 유행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불교적 세계관에 익숙했다.19세기에 강일순이 미래의 이상향을 언급하면서 미륵세상을 사실상 그대로 옮긴 것도 우연이 아니다. 미륵세상은 한국사람 누구나가 지향한 이상향이었다. 그 점을 감안하면 조선후기 신종교운동을 펼친 평민지식인들이 이상세계를 구체적으로 논하지 않은 것도 납득이 된다.‘정감록’에 미래사회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 때는 누구나 미륵세상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정감록’이든 또는 동학의 경전이든 이상향에 관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던 시절이다. 조선시대 민중이 궁금했던 것은 이상향의 모습이 아니라 과연 언제 새날이 밝느냐는 문제였다.‘정감록’이 선포한 새 세상은 미륵세상이란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미륵이 얼마나 중시됐는가는 전국각지에 미륵신앙이 퍼져 있다는 사실에 나타난다. 일제시대 함경도 함흥에서 수집된 무가(巫歌)를 보면, 미륵은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로 인식될 정도였다. 바로 그 “미륵님 세월에는 섬(石)으로 말(斗)로 밥을 배불리 많이 먹고 인간 세월이 태평하였다.” 과거 미륵세상이 태평했다는 대목은 앞으로 다가올 미륵세상이 그러리란 기대를 역으로 투사한 것이다. ●정감록은 후천세계로 귀결 다가올 미륵세상을 신종교에서는 후천(後天)이란 용어로 표현한다. 인류의 역사를 양분해 지난 세상은 선천(先天), 다가올 세상은 후천으로 설명한다. 선천은 각종 모순이 쌓여 불합리하고 상극이 되어 충돌하던 어두운 세상, 후천은 상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밝은 세상으로 본다. 원불교 교조 박중빈은 이미 선천과 후천이 교대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후천세계는 평화롭고 평등한 문명 세상이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차별과 대립이 사라진 지상낙원인데, 한국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정감록’이 기약했던 정진인의 나라는 결국 후천세계로 귀결되었다. ■ 정감록과 임진왜란 ‘정감록’이 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임진왜란이었다. 선조25년(1592)에 일어난 왜란의 여파는 무척 컸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돼 전쟁에 관한 예언이 수집되었다. 일종의 사후 약방문인 셈인데, 그것은 뒷날 ‘정감록’에 녹아들었다. ‘조선금석총람’ 하편을 보면 세조5년(1459) 원각(圓覺)이란 승려가 81세를 일기로 입적하며 앞날을 예언했다. 자기가 죽고 130여년이 지난 뒤 고래 같은 도적(왜적)이 쳐들어와 나라가 의지할 곳을 잃게 된다고 했다. 그 때가 되면 산과 냇물에 시체가 쌓이고 피가 천리를 적시는데 서쪽(중국) 병사들이 와서 구원하리라 했다. 임진왜란 발생과 경과를 대강 맞춘 셈.‘산과 냇물에 시체가 쌓인다.’는 식의 표현은 ‘정감록’에도 보인다. 원각은 참혹한 전쟁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늘의 신들이 도와주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그는 향불을 태우며 무릎꿇고 관세음보살의 주문을 외우면 화를 입지 않게 되며 오래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당시 유행한 예언서에 “적은 부산에서 일어나 부산에서 그친다.”라고 돼 있었다 한다. 임진왜란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경상도 부산포에서 시작돼 어찌보면 거리가 매우 먼 평안도 부산에서 끝난다는 이야기였다. 보통은 잘 모르고 있지만 평양 서쪽 30리에 부산 고개라는 곳이 있다. 그 왼쪽 언덕에는 사람 모양의 석상이 있는데 언제 누가 무슨 일로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한다. 임진년(1592년) 봄, 석상이 피를 흘려 이웃한 부산 고개까지 흘러 내렸다. 전쟁이 일어날 징조였다. 전라도 광양에선 돌에 적힌 예언서가 발견되었다. 쇠무덤(鐵叢)이라 알려진 곳에서 출토된 예언서에는 이상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동쪽으로 시오리 되는 곳에 황금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면 만 배 이익이 될 것인데 그리 되면 아들은 능지기가 되고 노비가 능 주인이 되어 상하가 뒤집힌다. 승려가 승려노릇을 그만 두고 선비가 붓과 먹을 버리게 되며, 베 짜는 여인이 베틀을 버리고 농부가 쟁기를 버린다.” 상하의 질서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본업에 충실하지 않는 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예언이었다. 비슷한 표현이 ‘정감록’에도 있다. “임진년에는 나라가 셋으로 갈라졌다가 계사년에 다시 평정되리라. 말해 또는 양해에 다시 태평하여질 것이다. 두류산에 들어가 난을 피하는 것이 제일이다. 호서는 조금 편안하고, 한양에 도읍하면 마땅히 팔백년을 갈 것이다. 당나라 병사가 임진강을 건너면 국운이 2백년은 더 하리라.” 이 대목은 ‘정감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삼국으로 갈라졌다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 말해와 양해가 대길하다고 예언한 것은 모두 ‘정감록’에 수용되었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한 번 나온 예언은 어떤 식으론가 계승되게 마련인 것을 알 수 있다. 선조 때 명신인 이항복에 관한 이야기도 전한다. 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 겨울날이었다. 이항복이 퇴궐해 막 집에 도착하자 청지기가 뛰어 나와 어느 괴상한 남자가 뵙자고 야단이라 하였다. 그 사나이는 헤진 갓에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있었다. 더러운 누더기를 몸에 걸쳤고 좁은 바지 자락은 정강이까지 돌돌 말아 올렸는데 얼굴은 큰 돌 같았고 키가 무척 컸다. 붉은 입을 괴물처럼 열고 한참 동안 무슨 말인가를 늘어놓은 뒤 갑자기 사라졌다. 이웃집에 살던 이덕형이 이를 목격하고 사정을 캐물었다. 이항복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를, 그 사나이는 자칭 백악산의 야차(범어의 yaksa, 두억시니)라고 하는데 장차 내년에 큰 난리가 터질 텐데 아무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어 이렇게 내게 알려주러 왔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야차는 10세기 초 철원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토성 신을 연상케 한다. 그는 고려태조의 등극을 알리는 ‘고경참’을 시장에 내다 판 것으로 돼 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열린세상]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이덕일 역사평론가

    하버드 대학의 필립 쿤(Philip A Kuhn) 교수가 1990년 출간한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SOUL STEALERS)’의 부제는 ‘1768년 중국을 뒤흔든 공포와 광기(The Chinese Sorcery Scare of 1768)’라는 것이다. 1768년 중국 강남(江南) 저장성(浙江省)의 비단 산지였던 더칭(德淸)현에서 다리를 놓는 석공들이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종잇조각을 이용해 영혼을 빼앗는다는 소문이 떠돌면서 사건이 시작되었다. 비밀조직을 통해 이를 보고 받은 건륭(乾隆) 황제는 이 사건이 만주족의 한족에 대한 지배를 상징하는 변발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했다. 그는 머리를 기르고 앞머리도 밀지 않는 이들의 배후에 청조를 무너뜨리려는 음모가 있다고 확신하고 철저한 색출을 지시했다. 영혼 절도 혐의로 체포된 승려, 도사, 거지들은 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그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원래부터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230여년 전에 벌어진 이 사건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행 중인 줄기세포 논란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황우석 교수팀을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로 생각해 접근하던 방송사가 대중들로부터 오히려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로 몰리면서 쫓기다가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의 폭로와 황우석 교수의 반박 기자회견이 엇물리면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필자는 이 사건에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이 시도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세계를 아(我)와 피아(彼我)로 나누는 세계관인 이데올로기는 과학에 대한 접근법으로는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니엘 벨은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에 출간한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이데올로기가 주도하는 시대의 종말을 예고했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80년대 후반 펴낸 ‘역사의 종언’에서 국가사회주의 몰락으로 인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역사의 종착역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냉전 체제의 붕괴로 그들의 진단은 상당 부분 현실화되었지만 이데올로기나 역사는 종언을 고하지 않았다. 이데올로기나 역사는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에도 예전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변형된 형태로 살아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우리 사회에서 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기세를 올리는 이데올로기는 정상 궤도에서 한창 벗어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를 보는 시각에서 이른바 진보진영은 비판적이고 이른바 보수진영은 우호적인데, 원래 줄기세포 연구는 보수진영에서 비판적이고 진보진영에서 우호적이어야 이념적 지형에 맞는 것이다.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를 이념의 틀로 바라보면서 진보-보수 세력간의 진영 싸움처럼 되어버린 것은 비정상적인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230여년 전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을 청조에 대한 모반으로 보고 대응하던 건륭제의 광기(?)를 약화시켜 잠재운 것은 관료들이었다. 예측 가능한 절차를 통해 일을 처리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특징이 있는 관료들의 합리적 자세가 사건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지금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를 흥분상태로 바라보고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청조 관료들과 같은 냉정한 자세이다. 그 토대 위에서 앞으로의 조사결과 줄기세포가 존재하면 존재하는 대로,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대로 우리 사회의 통합을 지향하면서 발전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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