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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제의 영상> 사라진 간식, 당황한 판다

    <화제의 영상> 사라진 간식, 당황한 판다

    사육사가 던져준 간식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판다 영상이 눈길을 끌고 있다. 귀여운 판다 모습은 중국 쓰촨성 청두에 위치한 ‘청두 자이언트 판다 번식 연구소’에서 촬영됐으며 지난 10일 중국 국영방송인 CGTN 방송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 영상은 판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녀석들은 사육사가 던져준 간식을 하나씩 집어들고 정신없이 먹기 시작한다. 그런데 유독 한 녀석이 간식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린다. 마음이 다급해진 녀석이 식사 중인 동료에게 눈길을 돌려보지만, 여전히 자신의 것을 찾지 못한다. 코앞에 떨어진 간식을 못 보는 판다가 안쓰러운지 사육사가 나무 작대기를 들어 간식이 있는 위치를 알려준다. 그럼에도 한참동안 다른 곳만 두리번거리던 녀석이 뒤늦게 간식을 확인하고 집어드는 것으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CGTN 유튜브 채널에 따르면 “판다가 귀엽다는 것은 상식이다. 녀석들이 혼란스러워할 때는 더욱 그렇다”며 “간식을 찾지 못해 당황한 판다의 모습은 굼뜬 녀석의 행동만큼이나 귀엽다”고 전했다. 사진 영상=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대통령기록관 “朴 1~3년차 기록물 건수 공개 안 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록물 이관 작업이 시작된 가운데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측이 14일 “박 전 대통령의 집권 1~3년차에 생산된 기록물 현황은 공개하지 않는다“며 ”정보공개청구가 있으면 기록물 건수는 공개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생산기관(청와대 등)의 장은 매년 대통령기록물의 생산 현황을 대통령기록관장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기록관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집권 1~3년차 생산 기록물의 현황을 갖고 있지만 ‘부정확하다’며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대통령 기록물 생산 현황은 대체로 매우 무성의하긴 하지만, 최종 기록물 현황과 대조해 얼마나 성실하게 기록을 남겼는지 확인할 수 있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81만건의 기록물이 있다고 통보했지만, 최종적으로 이관한 기록물은 1000만건이 넘었다. 이명박 정부는 모두 1088만건의 기록물을 이관했는데 이 가운데 비밀기록물이 0건, 지정기록물이 24만건이라 논란을 낳았다. 비밀기록물은 이름은 비밀이지만 최대 30년간 비공개할 수 있는 지정기록물과 달리 1급 비밀은 대통령, 국무총리, 감사원장, 장관 등이 열람 가능해 차기 정부에서 국정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지정기록물은 15~30년간 영장 청구 등이 있어야만 열람할 수 있는데 현재 지정 권한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갖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825만건의 기록을 남겼는데 비밀기록물은 9700건, 지정기록물은 34만건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부고]

    ●류재현(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 순천센터 지점장)씨 모친상 백승호(전 경찰대학장·전 전남경찰청장)씨 장모상 5일 광주 구호전장례식장, 발인 7일 오전 9시 070-4438-3047 ●이광형(국민일보 문화전문기자)씨 별세 재석(넥슨 근무)씨 부친상 4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2258-5940 ●김태연(대한상공회의소 산업혁신지원팀장)씨 부친상 김덕조(사업)정동원(다우케미컬 이사)씨 장인상 4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6일 오전 8시 (031)787-1500 ●윤호윤(한림대의료원 재단본부 경영기획국장)씨 모친상 4일 거제 거붕 백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55)733-0688 ●김주한(전 농협경상북도지회장)씨 별세 지수(코리아타임스 편집국 FCT팀장)씨 부친상 금기연(서울대치과병원 교수)씨 장인상 5일 서울대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2)2072-2010 ●정영무(전 이화여고 교사)씨 별세 건식(셰프)중식(의사)씨 부친상 4일 서울대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30분 (02)2072-2027 ●강종기(반도섬유상사 대표)씨 별세 4일 서울대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30분 (02)2072-2014 ●김채룡(전 문경영순중 교감)씨 별세 원섭(김원섭피부비뇨기과의원 원장)형섭(한전원자력연료 처장)이섭(공무원)진섭(빛에약국 대표)씨 부친상 이자경(사업)박희경(성균관대 초빙교수)씨 시부상 윤덕구(윤덕구내과의원 원장)씨 장인상 5일 경북대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53)200-6464
  •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눈의 젖은 왈츠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눈의 젖은 왈츠

    글쎄…, 입춘도 지나고 우수도 지났으니 이번 겨울이 끝나가는 거겠지? 몹시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들 했는데 겁먹었던 것에 비해 춥지 않았다. 매사 지레 겁먹는 건 마음을 위축시키지만, 정작 겪을 때면 각오한 것보다는 덜하다는 다행감으로 그럭저럭 견딜 만하게 하는 좋은 점이 있다. 비관주의, 엄살, 호들갑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삶의 처방일 테다. 봄이 완연한 자태를 드러내기까지 꽃샘추위 등등이 기세를 떨칠 수도 있지만, 돌연 한파가 몰아쳐도 겨울이 남은 한기를 부르르 털어 내는 것이라 여기며 기죽지 않으리라.  그래도 오늘 낮부터 비가 올 거라는 라디오 예보를 들으니 가슴께가 서걱서걱 살얼음 지는 걸 어쩔 수 없네. 이맘때의 비는 젖은 눈처럼 추적추적 내린다. 어차피 올 비라면 꾸물꾸물하지 말고 얼른 시작해서 늦어도 오후 4시에는 그치렷다! 언제부터인가 비 오는 게 싫다. 그토록 좋아했는데 꺼리게 된 세 가지, 눈과 비와 긴 계단. 하, 라디오 방송 진행자가 상큼한 목소리로 전하네. 많은 비가 예상되며 중부지방에는 비가 눈으로 바뀌리라고. 그리고 이어서 자기 하트에 빗방울이 떨어진다고 기꺼워하는 팝송을 들려준다. 그 빗방울은 한여름의 빗방울, 청춘의 빗방울이지. 나도 비가 오면 가슴이 설렜었다. 어떤 날은 티셔츠와 짧은 바지, 어떤 날은 한 겹 미니 원피스, 최소한의 옷을 입고 샌들을 신고 보슬비건 폭우건 하염없이 빗속을 걸었던 여름날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갈 때면 샌들을 벗어들고 맨발로 걸었지. 아스팔트 위를 개울로 만든 빗물이 콸콸 흘러가며 발가락 새에서 간질거렸지. 하하, 비 맞고 다니면 머리카락 빠진다는 걱정 어린 충고에 나는 머리카락 빠지면 더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머리숱이 무거울 정도로 많았단 말이지. 쳇,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좋은 건 다 과거형이로군. 그때는 그렇게 좋은 줄 몰랐건만. 젊은 날에도 빈약했던 내 좋은 것들이여, 빈약했기에 이제 와서 이리 생생한 건가. 그러니 무엇이든 다 괜찮은 구석이 있네. 며칠 전 M C 비턴의 추리소설 ‘매춘부의 죽음’을 읽다가 거기 인용된 T H 베일리의 글귀에 한참 울가망했었다. ‘나는 나비가 되고 싶어. 방랑자처럼 살면서.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면 죽어 가면서.’ 그 허망함, 그 연약함, 그 오만함, 그 초연함. 유치찬란하고 아름다운 꿈을 품던 뭘 모르던 시절, 정확히 말하면 그 시절의 나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에 가슴이 아렸다. 베일리는 알았을까? 그건 요절에의 꿈이다. 그 꿈을 이루려면 나비처럼 딱 한 시절만을 살아야 한다. 늙지 않으려면 죽어야 하고 죽지 않으려면 늙어야 하는데, 늙는다는 건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진 다음에도 꾸역꾸역 사는 것이다. 아, 모든 건 다 좋은 점이 있다. 그렇게 살아 내서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면 죽어 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생생히 느끼고, 그러지 못해 통절한 상실감을 너희는 결코 모를 거라고, 요절한 사람들에 대한 질투를 상쇄할 수도 있구나.내 삶이 나비 같기를(그 짧음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바랐던 시절, 방랑(그것이 정작 어떤 것인 줄도 모르면서)을 꿈꾸고 아름다움만이 지선이라고 여겼던 시절을 생각하니 나비 같은 소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장면이 떠오른다. 점심시간이었다. 학교 안 어딘가 갔다가 돌아오는데, 교실 문 앞 복도에서 귀에 익은 음악이 울려 퍼지고 거기에 맞춰 급우 예닐곱 명이 춤을 추고 있었다. 한 옆 녹음기의 릴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보케리니의 미뉴에트가 끝나자 한 애가 무리에서 나와 쪼그려 앉아서 테이프를 되돌렸다. 아마 그 애는 제 언니에게 배웠을 포크댄스를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었을 테다. 다시 아이들은 즐거운 얼굴로 그 애의 리드를 받으며 춤을 추고, 나는 둘러서서 구경하는 무리에 끼어 있었다. 춤추는 무리에 친한 애도 서넛 있건만 나는 그저 부러워할 뿐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거참 재밌겠다!” 하면서 끼어들었으련만. 무용 수업 시간에조차 전부 춤출 때는 몰라도 한 줄씩, 혹은 혼자 춤을 춰야 할 때면 꼼짝도 안 해 선생님께 야단을 맞곤 했으니, 나는 수줍기도 수줍고 시선 공포증이 있었던 거다. 나이 들면서 낯이 두꺼워지니 남의 시선의 가림막이 생긴 듯 다소 편하다. 아, 눈이 오네….
  • [명인·명물을 찾아서] 공동변소·연탄가게·솜틀집… 고단한 시절 멈춘 곳

    [명인·명물을 찾아서] 공동변소·연탄가게·솜틀집… 고단한 시절 멈춘 곳

    온 나라가 잘살아 보겠다며 땀 흘렸던 1960~1970년대. 굶주린 배를 부여잡기 일쑤였던 그 시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은 혹독했다. 지금은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며 한잔 술에 호기롭게 말하지만 당시는 춥고 황량하기만 했다. 한편으론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리움과 추억으로 회자된다. ‘달동네’는 도시 빈민들의 상징적인 주거 공간이었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들은 값싼 주거지인 동시에 생존의 공동체였다.달동네란 이름은 마을이 높은 산자락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 해서 붙여졌다. 혹은 고단한 삶 때문에 달을 바라보며 출퇴근했기에 그리 불렸다는 말도 나온다. 지금은 대개 재개발로 흔적을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인천에 지난 시절 달동네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곳이 있어 찾아갔다. 인천 동구 송현동에 위치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1960~1970년대 달동네 사람들의 생활상을 테마로 한 체험 중심 박물관이다. 수도국산(水道局山)은 동구 동인천역 뒤에 있는 산이다. 개항기 이후 일본인들이 인천 중구 지역을 차지하자 그곳에 살던 조선인들이 수도국산으로 쫓겨나면서 산자락 주거지가 탄생했다. 그 후 6·25전쟁 피란민과 산업화 시기 실업자들이 몰려들어 18만 1500㎡ 규모인 동네에 3000여 가구가 모둠살이를 시작했다. 수도국산 박물관은 과거의 흔적과 기억을 모아 실제 달동네 터 꼭대기에 2005년 10월 건립됐다. 박물관을 향해 언덕을 오르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히지만 정상에선 인천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여 과거와 현재를 데자뷔하는 듯하다. 박물관은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이 층으로 나뉘어 있다. 관람 순서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제1전시실은 990㎡ 규모로 영화 세트장처럼 과거 달동네 모습을 실감 나게 재현한 공간이다. 어두컴컴한 실내 공간 안에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연탄가게, 구멍가게, 이발소, 솜틀집 등이 자리한다. 구멍가게에는 예전에 인기를 끌던 과자와 음료수가 진열돼 있고 솜틀집에서는 마네킹이 솜을 틀고 있다. 여럿이 사용했던 공동구역의 공동수도와 공동변소는 금방이라도 악취가 올라올 것처럼 현실감 있게 묘사해 놓았다. 달동네는 여러 가구가 수도나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당연했다. 줄을 서서 물을 길었고, 아침저녁으론 화장실 앞에서 문을 두드리며 재촉하는 게 흔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달동네는 이웃관계가 지속되는 공동체였다. 옆집 담벼락이 우리 집 담벼락이기도 했고 TV가 있는 집으로 동네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곳 전시실에는 그런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 낸 가정집의 모습도 보인다. 좁은 쪽방 안에는 진짜 사람처럼 마네킹들이 TV 앞에 모여 김일의 레슬링을 관람하고 앉아 있다. 흑백 TV에서는 김일의 실제 레슬링 경기 영상이 재생돼 현실감을 더해 준다. “이야 김일이다, 김일!” 지난 15일 전시장을 관람하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발길을 멈추고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마치 생중계를 보는 것처럼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다가 경기가 끝나자 웃음을 머금으며 발길을 돌렸다. 아마 예전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함께 온 손자는 이런 광경이 어리둥절한 눈치다. 요즘 아이들은 달동네 생활상에 공감하기 힘들겠지만 다양한 체험을 통해 그 시절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실 내 곳곳에는 물지게 체험, 연탄불 갈아보기, 주사위 놀이 등 체험코너가 마련돼 있다. 또한 골목에 놓여 있는 터치스크린 컴퓨터를 누르면 전문 작가들이 촬영한 달동네 모습부터 실제 달동네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다. 기성세대에게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잠시나마 부모의 삶을 느끼게 해 세대 간을 이어 주는 장소다. 2층 제2전시실로 올라가면 추억 어린 상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상점들은 실제로 인천을 대표했던 가게를 본떠서 재현해 놓았다. 가장 먼저 1971년부터 영업했던 ‘우리사진관’이 있다. 사진관 안에는 1970~1980년대에 촬영한 사진들이 비치돼 있고 옛 교복과 교련복을 직접 입어볼 수 있다. 그 옆은 ‘미담다방’이다. 미담다방은 동인천역 축현파출소 옆에 있었던 다방으로 1960년대부터 인천의 명소였다. 공간이 크지는 않지만, 옛 다방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푹신한 다방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고 한쪽에는 LP 판이 빼곡한 뮤직박스가 있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다방 앞에는 인천 토박이라면 대개 들어본 바 있는 ‘송림양장점’과 ‘창영문구’가 자리잡고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달동네박물관의 11번째 기획 특별전인 ‘추억 속 우리집에 가다’를 오는 5월 28일까지 개최한다. 특별전은 지역 주민들이 기증한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았기에 의미를 더한다. 실제 살림살이로 쓰던 드레스 재봉틀부터 타자기, 라디오, 선풍기 등이 오랜 세월을 간직한 채 전시돼 있다. 이 가운데는 1950년대부터 동구 금곡동 배다리에 위치했던 ‘20세기 약방’에 관한 자료를 기증받아 마련된 공간도 있다. 박물관 관람의 종착점은 ‘추억의 구멍가게’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옛 과자와 기념품, 만화책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관람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5~12세) 500원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탄핵·특검 정국] 2주 평의 감안 ‘8인 체제’ 선고 의지

    [탄핵·특검 정국] 2주 평의 감안 ‘8인 체제’ 선고 의지

    ‘고영태 녹음 파일’ 청취 일축 보안 위해 선고일 최종결론 전망두 결론 염두 결정문 작성 착수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최종변론기일을 오는 24일로 못박으면서 두 달 넘게 끌어온 재판이 마무리 국면에 돌입했다. 재판부는 ‘국정공백 사태의 조기 종식’을 천명하면서 박 대통령 측의 지연 전략에 단호하게 대처했다. 헌재가 지정한 최종변론기일 이후 절차에 따라 일이 진행되면 변론 종결 후 2주간 평의과정을 거쳐 3월 9일 전후에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최종기일로 낙점한 24일은 이정미(55·사법연수원 16기)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일(3월 13일)을 17일 남겨둔 시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처럼 평의에 2주 정도 걸린다고 볼 때 어떻게서든 ‘8인 체제’에서 결론을 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권한대행은 “현재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돼 있다. 국정 공백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마냥 1년이고 2년이고 원하는 대로는 재판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이날 최종변론기일 진행의 장애물도 함께 제거했다. 박 대통령 측에서는 2300여개의 ‘고영태 녹음파일’이 이번 사태의 핵심 증거라며 이 중 상당 부분을 심판정에서 들어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일축했다.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은 “(녹음파일은) 소추 사유와 직접 연결된 부분이 아니다”라며 “개인 통화내역을 심판정에서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재판부가 모두 듣고 있으니 별도의 검증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측은 반드시 청취해야만 하는 부분을 정리해 재판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이동흡(66·사법연수원 5기) 전 재판관이 “(최종변론 준비를 위해) 최소한 5~7일은 더 줘야 한다”며 강하게 항의했지만 이 권한대행은 ‘선배 재판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 권한대행은 “(이 변호사) 선임 전에 23일까지 최종 답변서를 제출해 달라고 이미 말했다”며 “(24일까지) 다 준비가 되리라고 본다”며 맞섰다. ‘불출석한 증인들에 대한 신문기일을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해당 증인들은 소추 사유와 직접 관련이 없다”며 직권으로 증인 채택을 취소했다. 24일 최종변론은 양측이 지금까지 주장을 정리하는 구두변론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먼저 법사위원장인 권성동 탄핵소추위원이 나와 탄핵인용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이어 국회 측 황정근 변호사를 비롯한 대리인단이 나서 법리적인 부분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 측에서는 대표 대리인을 맡은 이 전 재판관과 이중환 변호사가 기각 근거를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박 대통령이 출석을 결심할 경우 본인도 직접 탄핵의 부당성에 대해 주장할 수 있다. 변론이 종결되면 재판부는 곧바로 평의에 돌입한다. 결론을 내기까지는 2주 정도가 예상되나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더 빨리 마무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안을 위해서 선고 날 오전에 최종 결론을 정할 가능성이 높다. 헌재는 이미 두 가지 결론을 모두 염두에 두고 결정문 작성 기초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2주 평의’를 전제하면 선고일은 3월 9일이나 10일이 유력하다. 헌재가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에 선고를 내렸다는 것을 고려하면 목요일인 9일 선고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특별한 사건’인 경우 요일을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금요일인 10일도 가능하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도 금요일에 선고가 나왔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헌재 탄핵 최종변론일 24~28일 사이 열릴 듯

    朴측 “고영태 녹음파일 검증 필요”… 변론 종결 시점 놓고 기싸움 치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가 최종변론기일 지정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증인신문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지만 박 대통령 측에서 ‘고영태 녹음파일’에 대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며 새로운 증인을 신청할 태세이기 때문이다. 2월 말 변론 종결을 놓고 헌재와 박 대통령 측의 기싸움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대통령 탄핵심판의 최종변론기일은 오는 24~28일사이에 열릴 가능성이 높다. 22일 16차 변론으로 예정됐던 증인신문이 모두 끝나는 데다 23일에는 양측 대리인의 최종답변서 제출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일인 3월 13일 이전에 선고를 내리기 위해서라도 2월 말에는 변론을 마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박 대통령 측이 ‘고영태 녹음파일’을 검증하기 위해 증인을 추가 신청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고영태(41) 전 더블루K 이사와 그 지인들의 대화 내용이 담긴 2300여개의 녹음파일을 검찰로부터 확보한 박 대통령 측은 추가 기일을 지정해 녹음파일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증인신문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 측은 ‘고영태 녹음파일’을 심판정에서 재생해 모두가 들어 볼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한다. 재판부와 양측 대리인이 같은 자리에서 청취하며 진위를 파악해 보자는 것이다. 재판부는 확인해야 할 부분을 특정해 제출해 달라고 요구해 놓은 상태다. 이에 대한 검증을 위해 재판부가 추가 기일을 지정할 경우 최종 변론은 또다시 밀릴 수밖에 없다. 최종기일의 공표 시점도 중요하다. 헌재로서는 ‘고영태 녹음파일’에 대한 검증 문제가 일단락되기 전에 최종변론일을 잡는 것은 부담스럽다. 탄핵심판의 공정성이 도전받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이 최종변론에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너무 늦게 정할 수도 없다. 유일한 참고자료인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당시 재판부가 5차 변론에서야 ‘나흘 뒤 6차 변론이 최종변론기일’이라고 알렸다. 하지만 6차 변론에서 검찰 내사기록의 헌재 제출을 놓고 논쟁이 벌어져 한 기일을 추가해 7차 때 변론을 매듭지었다. 박 대통령 측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월 말에 변론이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도 있다. 파일이 2300여개에 달하긴 하지만 불필요한 부분이 상당수이기에 핵심만 빠르게 살펴본 뒤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헌재의 ‘로드맵’대로 3월 초 선고가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헌재 관계자는 이날 “보통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선고를 해 왔지만 ‘특별한 사건’을 선고할 때는 (요일이)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화랑 박서준 박형식, 비하인드컷 보니 화기애애한 남자들 ‘김민준까지’

    화랑 박서준 박형식, 비하인드컷 보니 화기애애한 남자들 ‘김민준까지’

    ‘화랑’의 국경 대치 장면 비하인드컷이 공개됐다. KBS 2TV 월화드라마 ‘화랑(花郞)’이 극적 전개를 펼치고 있다.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청춘들은 한 뼘씩 성장하고 있으며, 이들의 로맨스와 브로맨스 역시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남은 4회 동안 ‘화랑’ 속 청춘들이 어떤 이야기를 그려낼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지난 ‘화랑’ 14회, 15회에서는 이 같은 청춘들의 시련과 성장을 묵직하게 그려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네 명의 화랑이 신국의 사절단으로서 남부여에 다녀온 것. 선우(박서준 분)는 남부여 태자 창(김민준 분)과 결투를 벌였으며, 다른 화랑들 역시 목숨을 걸고 신국 백성들을 구해냈다. 특히 국경지대에서 펼쳐진 양국의 대치는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이런 가운데 2월 12일 ‘화랑’ 제작진이 화제의 국경 대치 장면 비하인드 컷을 공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핏빛 전투를 벌인 극중 내용과 달리, 배우들의 얼굴 가득 미소가 가득하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성동일(위화랑 역), 김민준(창 역), 박서준, 박형식(삼맥종 역), 최민호(수호 역), 도지한(반류 역) 등 ‘화랑’ 배우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들은 촬영이 잠깐 쉬는 틈을 타 초원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배우들 뒤쪽으로는 말을 탄 다른 배우들의 모습도 담겨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진만으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화랑’ 촬영장의 화기애애한 팀워크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진행된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사진 속 배우들 모두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것. 특별출연으로 함께 한 김민준 역시 배우들과 친근한 팀워크를 자랑한 모습이다. 이와 관련 ‘화랑’ 제작진은 “‘화랑’의 팀워크는 자타가 공인했을 정도로 끈끈하고 화기애애하다. 사극에 더위 속에서 촬영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팀워크 덕분에 ‘화랑’ 촬영장에는 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더불어 특별출연으로 참여해준 김민준 역시 배우들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해 훈훈함을 더했다”고 전했다. 이어 “‘화랑’이 이제 4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앞으로도 이 같은 ‘화랑’ 배우 및 제작진의 환상호흡이 계속 돋보일 전망이다. 앞으로도 뜨거운 관심과 기대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화랑’은 매주 월, 화요일 오후 10시 KBS2를 통해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泰 고아 24명 삶터 선사한 ‘슈퍼볼 반지’

    泰 고아 24명 삶터 선사한 ‘슈퍼볼 반지’

    미국프로풋볼(NFL) 최강자를 가리는 제51회 슈퍼볼이 오는 5일(이하 현지시간) 열리는 가운데 2002년 챔피언에 올랐던 뉴잉글랜드 선수의 우승 반지 하나가 태국 고아 24명의 둥지를 마련하는 데 쓰인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화제의 주인공은 뉴잉글랜드의 백업 세이프티 출신으로 세 차례(2002·2004·2005년)나 챔피언 반지를 끼었던 제로드 체리. 2008년 아내를 따라 기독교 재단 ‘아시아의 희망’이 미국 오하이오주 시더빌에서 개최한 청소년 캠프에 참가했다. 마침 이 단체는 해외 고아원을 신축하는 기금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목표액 중 2만 달러를 채우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체리가 세 차례나 슈퍼볼을 우승했다는 사실을 아는 여자 스태프가 “반지 하나를 포기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농담이 섞인 것이라 웃어넘겼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우니 그게 아니었다. 그날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왔다는 한 꼬마가 감동적인 연설 끝에 주머니에 있던 모든 것인 50센트 동전을 기부하던 장면도 잠자리를 설치게 했다. 역시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지낸 그는 결국 챔피언 반지 3개 가운데 맨 처음인 2002년 우승 반지를 내놓았다.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세 차례 태클과 한 차례 펀트를 기록하며 끼었던 우승 반지였다. 그는 동료 쿼터백이었던 톰 브래디와 누이동생 낸시가 운영하는 자선단체에 14캐럿짜리 화이트골드 다이아몬드로 제작된 반지를 쾌척했다. 이렇게 해서 태국과 캄보디아, 인도 등의 고아들에게 음식과 의료, 교육을 지원하고 살 집을 마련해 주는 ‘아시아의 희망’ 재단을 돕게 됐다. 태국 북부 도이사켓 지구에 24명의 고아를 수용하는 고아원이 지어졌고, 원생들은 가끔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NFL 경기 응원에 열을 올린다. 한때 금융분석가로 일했던 체리는 현재 클리블랜드의 토크 라디오쇼를 진행하며 지역 방송국에 출연해 NFL 클리블랜드의 프리게임 분석을 맡고 있다. ESPN은 당시 슈퍼볼 최우수선수(MVP)는 브래디였지만, 태클 몇 개만 기록하고도 결국 슈퍼볼 역사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반지를 끼었던 선수는 체리였다고 강조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발길 머문 곳, 중세의 낭만 흐르다

    발길 머문 곳, 중세의 낭만 흐르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현재를 잘 보여주는 도시다. 공항과 연결된 호텔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방금 이륙한 비행기를 포함해 한번에 12개의 운항궤적이 하늘에 그려질 때도 있다.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는 비행기들이 남긴 흔적인지, 서로 부딪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유럽 하늘길의 요충지다운 풍경이다. 사실 프랑크푸르트는 오래전부터 유럽의 진면목에 다가서려는 여행자들에게 관문 같은 도시였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를 한번이라도 방문해본 이들은 독특한 유럽의 색채를 담은 이 도시를 쉬 잊지 못한다.유럽 금융 중심지… 골목 구석구석엔 중세 흔적이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꼽힌다. ‘뱅크푸르트’라 불릴 만큼 유럽의 금융, 경제 중심지다. 프랑크푸르트의 스카이라인은 현란하지만 골목 구석구석엔 중세의 흔적이 여전하다. 프랑크푸르트가 내세운 슬로건이 ‘시대보다 늘 조금은 앞서간다. 하지만 시대는 준수한다‘인 것도 이런 이유이지 싶다. 독일 사람들은 프랑크푸르트 뒤에 꼭 ‘암 마인’을 붙여 부른다. ‘마인강변의 프랑크푸르트’라는 뜻이다. 이는 옛 동독 지역의 오데르 강 언저리에 있는 또 다른 프랑크푸르트(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와 구분 짓기 위해서다. 프랑크푸르트의 명소들은 대부분 가까운 거리에 산재해 있다. 다소 벅차긴 해도 걸어서 돌아보는 게 한결 여유 있고 수월하다. 출발지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이다. 역을 나서면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양옆으로 펼쳐진다. 여기가 카이저 거리다. 옛 건물들이 늘어선 골목길 너머에는 어김없이 마천루가 서 있다. 어느 골목이나 양상은 비슷하다. 아마 이런 느낌들이 프랑크푸르트의 정수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최고층 코메르츠방크 아래 화려한 스카이라인 프랑크푸르트가 자랑하는 건 스카이라인이다. 고층 건물들이 병풍처럼 서 있고 그 아래 옛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면 말이다. 이 모습은 걷기 여정의 끝인 아이제르너다리에서 본다. 모름지기 하이라이트는 아껴 뒀다 나중에 봐야 제맛이다.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물(65층)이라는 코메르츠방크 등을 줄줄이 지나고 나면 곧 중앙광장이다. 코메르츠방크는 지난해 삼성그룹이 인수해 관심을 끈 건물이다. 광장 주변은 번화가다. 하우프트바체 역을 중심으로 각종 상업용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 옥상은 전망대 겸 식당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심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커피와 맥주 등을 마시며 독일의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는 재미가 각별하다. 다만 굽어보는 도심 풍경은 다소 생뚱맞고 부자연스럽다. 마천루들 틈바구니에 성 카탈리나 교회, 카페 하우프트바체 등 옛 건물 몇 채가 옹색하게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이는 전쟁 탓이다. 프랑크푸르트는 2차대전 때 폭격 피해를 입은 도시 가운데 하나다. 온전히 남은 건물은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철저히 두들겨 맞았다. 바로 그 탓에 이런 어색한 풍경들과 만나기도 한다. 중앙광장 한편의 성 카탈리나 교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회다. 17세기 세워졌으나 1944년 파괴됐다가 1954년 재건됐다. 카페 하우프트바체는 옛 교도소 건물이다. 지금은 커피숍으로 쓰이고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 아래쪽은 자일 거리다. 유명 브랜드의 상품 매장들이 늘어서 있다. 카탈리나 교회를 지나 마인강 쪽으로 걷다 보면 붉은 벽돌로 지은 성 파울 교회가 나온다. 1848년 최초의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가 열렸던 곳으로, 독일 사람들은 이 교회를 독일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여긴다. 교회 안에 당시를 기억하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입장료는 없다. 이 도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프랑크푸르트의 위대한 아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다. 괴테 하우스나 그가 자주 찾아 사과와인을 마셨다는 게르버뮐레 레스토랑 등의 흔적을 좇다 보면 18세기 프랑크푸르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파울 교회 위쪽으로 이어진 베를리너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괴테 생가가 나온다. 우아한 자태의 고딕양식 건물이다. 괴테가 태어나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살던 집으로 그의 문학적 토양이 됐던 곳이다. 괴테가 시를 썼던 방과 책상, 자필 원고 등이 전시돼 있다. 생가 옆은 괴테 박물관이다.올드 시티 중심지, 뢰머광장엔 ‘정의의 여신상’이 프랑크푸르트의 핵심은 뢰머광장이다. 이른바 올드 시티(old city)의 중심지 노릇을 하는 곳이다. 성 파울 교회에서 마인강 쪽으로 한 블록 내려가면 나온다. 마천루 사이에 터를 잡은 광장은 고즈넉한 분위기로 여행자들을 맞고 있다. 먼저 ‘정의의 여신상’이 눈길을 끈다. 정의의 기준을 형상화한 저울과 엄정한 심판을 상징하는 칼을 양손에 쥐고 있다. 여신상을 가운데 두고 2차대전 이후 원형대로 복원된 뢰머(옛 시청사)와 중세 목조건물 등이 늘어서 있다. 광장 뒤편은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다. 역대 황제들이 대관식을 치렀다는 교회로 ‘카이저돔’이라고도 불린다. 탑에 올라서면 시가지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고 한다. 영원한 사랑이 깃든 마인강 위 아이제르너다리 광장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마인강이 나온다. 강변 바로 앞에 하우스 베르트하임 건물이 서 있다. 용케 2차대전의 포화를 견딘 유일한 건물이다. 1479년에 세워져 여태 그대로다. 지금은 커피와 음식 등을 파는 레스토랑으로 쓰인다. 마인강변으로 나가면 시원한 풍경이 이방인을 맞는다. 바람을 따라 찰랑대는 강물과 괴테의 이름을 딴 유람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강 양쪽에 슈테델 예술박물관, 시립미술관, 응용예술 박물관, 현대예술 박물관 등 다양한 박물관들이 있다. 시간이 있다면 한두 곳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마인강을 가로질러 아이제르너다리가 세워져 있다. 보행자 전용 다리로, 약 500t의 강철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가 자랑하는 스카이라인은 아이제르너다리에서 본다. 저물녘 마인강 너머로 지는 해가 토해내는 붉은 기운과 파란 하늘, 그리고 막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마천루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다리 난간 곳곳엔 수많은 자물쇠가 매달려 있다.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흔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저물녘 풍경과 어우러지니 퍽 로맨틱하다. 다리 너머는 작센하우젠 지역이다. 두 블록 정도 내려가면 맥주 등을 맛볼 수 있는 선술집들이 나온다. 프랑크푸르트(독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블랙팬서’ 일부 부산서 촬영.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블랙팬서’ 일부 부산서 촬영.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블랙팬서’의 일부 장면이 부산에서 촬영된다. 부산시는 지난달 26일 공식 발표된 마블 영화 ‘블랙팬서’ 일부 장면을 부산에서 촬영한다고 1일 밝혔다. 부산시는 지난해 7월부터 최근까지 할리우드 로케이션 매니저들을 초청해 부산의 아름다운 야경과 로케이션지 등을 홍보하는 등 촬영 유치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해 11월 10일, 마블사 측의 달린 프레스코트(Darrin Prescott) 기술감독 일행 등을 부산시로 초청해 부산촬영 유치에 대한 강한 의지를 전달하고, 부산지방항공청, 부산시설공단, 부산경찰청, 부산소방안전본부 등 관련기관 대표자들과 함께 부산촬영에 따른 협조와 지원을 약속했다. 부산시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촬영한 ‘어벤져스’와 달리 ‘블랙팬서’는 부산의 랜드마크인 자갈치시장 일대, 광안대교, 마린시티, 광안리 해변, 사직동 일대 등지에서 촬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시 관계자는 “이번 달 말쯤 마블사 측 제작팀을 초청해 최종기획안 발표회를 개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이민호 화보 투자하면 돈 번다” 6억 가로챈 연예기획사 대표

    “이민호 화보 투자하면 돈 번다” 6억 가로챈 연예기획사 대표

    배우 이민호 화보집 제작을 빌미로 거액의 투자금을 가로챈 연예기획사 대표가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2단(단장 박종기 서울고검 검사)은 이민호의 화보에 투자하면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속여 6억원을 받아낸 혐의로 S 연예기획사 김모 대표를 불구속했다고 31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 대표는 2014년 1월 김모씨에게 이민호 화보 판매 사업에 5억원을 투자하면 나중에 원금을 갚고 18%의 영업이익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같은 해 3월 화보 제작비 명목으로 1억을 빌려달라고 요청해 총 6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 대표가 받은 돈 중 일부만 화보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개인 빚을 갚거나 도박에 쓸 생각이었다고 보고 돈을 받은 행위 자체가 사기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뼈만 앙상한 엄마 개, 새끼 10마리 구한 감동 사연

    뼈만 앙상한 엄마 개, 새끼 10마리 구한 감동 사연

    사람이나 동물이나 지극한 모성애는 다를 게 없나 보다. 앞다리를 다친 엄마 개가 3km를 걸어 새끼 10마리를 살려내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제는 '베라'라는 이름까지 갖게 된 그레이하운드 엄마 개가 감동스토리의 주인공. 베라는 최근 스페인 남부 알메리아라는 곳에서 절뚝거리며 방황하다 뜻밖에 은인을 만나 구조됐다. 길을 가던 심리학자 리안 파월이 앞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는 베라를 불쌍하게 보고 동물병원에 데려간 것. 앞다리를 다친 게 전부가 아니었다. 베라는 영양실조에 걸린 듯 뼈만 앙상했다. 수의사는 다친 부위를 정성껏 치료하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파월에게 말을 건냈다 "개가 새끼를 낳은 것 같은데요. 젖이 나와요" 엄마의 상태를 볼 때 새끼들도 위험에 노출돼 있을 가능성이 90%. 파월과 수의사는 새끼들을 찾아나섰다.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알아챈듯 베라는 걸음이 불편했지만 길잡이 역할을 했다. 앞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 베라를 파월과 수의사는 천천히 따라갔다. 다리가 아플 만큼 긴 길을 걸은 끝에 다다른 곳엔 자동차가 1대 버려져 있었다. 베라의 새끼 10마리는 버려진 자동차 뒷칸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베라가 두 사람을 새끼들이 있는 곳까지 안내하면서 걸어간 길이는 약 3km. 뜨거운 모성애에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베라가 왜 다리를 다쳤는지, 영양실조에 걸렸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파월과 수의사는 "아마도 사냥꾼들이 베라를 버린 것 같다"며 "엄마가 건강을 되찾고 새끼들과 행복하게 살도록 돌볼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트롬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50개 총알 몸속에 안고 살아가는 개

    50개 총알 몸속에 안고 살아가는 개

    수 차례 총격을 당한 강아지의 충격적인 사진이 화제에 올랐다. 지난 22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영국 놀포크주 번햄에 사는 개 에릭이 직사거리에서 얼굴에 총탄을 맞고도 살아남은 사연을 보도했다. 불 테리어 종에 속하는 에릭의 피부와 뼈에는 50개의 탄알이 박혀있다. 에릭은 터키에서 부상을 당했다. 현재 주인인 리즈 해슬램(48)이 입양 절차를 밟기 시작한 2015년 3월 이전의 사고였고, 사고의 내막을 알지 못했다. 해슬램은 입양 뒤 에릭의 입 안이 부풀어오르자 종기때문이라 생각해 수의사의 진찰을 받았다. 그리고 엑스레이 촬영 결과, 입 속을 비롯해 얼굴 곳곳에 작은 총알들이 촘촘히 박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어오른 이유를 더 자세히 조사해보니, 에릭의 입에 다른 개의 이빨자국이 남아있었다. 수의사들은 에릭이 약 6살 때 구조되기 전 투견에 말려들었던 것으로 예상했다. 구조된 동물들을 보살펴온 헤슬램은 “터키에서 그의 삶이 정말 끔찍했을 것”이라며 “그가 얼굴에 직격탄을 맞아야 했던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총격을 가한 누군가가 에릭을 죽이지 않은 것이나 그가 살면서 패혈증으로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슬퍼했다. 수의사들은 수술이 너무 광범위해서 이에 있는 탄알 외에 다른 부위의 탄알들을 제거 할 수 없었다. 거기다 에릭의 시력은 거의 실명에 가까울 정도로 악화된 상태다. 한편 헤슬램은 ‘Can I Wag Your Tail’이라는 동물보호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비용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평생을 동물을 위해 희생해온 그녀는 강아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려 한다. 하지만 지금의 일을 계속하려면 자금력을 가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실정이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원시 생활, 원숭이 사냥…남미 원주민 부족 발견

    원시 생활, 원숭이 사냥…남미 원주민 부족 발견

    원숭이를 잡아먹는 남미의 원주민 부족이 언론에 소개돼 화제다. 에콰도르 열대밀림에 살고 있는 우라오라니 부족. 4000여 명이 모여사는 이 부족은 문명을 등진 채 지금까지 원시적 삶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은 전형적인 원시부족의 모습이다. 커다란 나뭇잎으로 만든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부족민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생활한다. 주변환경과 어울려 사는 인간의 참모습이다. 에콰도르 밀림에 들어가 우라오라니 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아낸 영국의 사진작가 피트 옥스포드는 "우라오라니 부족은 고도로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과 어울려 살다 보니 신체조건도 자연히 변해가고 있다. 우라오라니 부족민의 발은 엄지발가락이 안쪽으로 크게 휘어 있다. 매일 높은 나무에 오르면서 변한 모습이다. 발이 유난히 평평한 것도 우라오라니 부족민의 특징이다. 부족의 생계수단은 사냥이다. 남자는 10살부터 사냥에 참가해 밀림에서 먹거리를 확보하는 법을 배운다. 주요 먹거리는 밀림에 사는 멧돼지와 원숭이. 하지만 먹거리를 가리진 않는다. 토코 투칸 등도 이 부족의 식탁에 오른다. 대대로 원시생활을 이어가는 우라오라니 부족은 최근 위협을 느낀다. 석유개발 등으로 문명사회가 밀림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다. 옥스포드는 "(문명의 확장으로) 원주민의 삶이 크게 위축되는 걸 그간 수없이 목격했다"며 "모두가 동질화되어가는 현상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명인·명물을 찾아서] 감나무 아래 맞닿은 기와·초가… 수백년 품은 충청 옛마을

    [명인·명물을 찾아서] 감나무 아래 맞닿은 기와·초가… 수백년 품은 충청 옛마을

    저축은행 비리를 저지르고 배편으로 중국으로 몰래 달아나려다 붙잡혀 수감된 김찬경(61)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최근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 덕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국정 농단 주범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의 묘가 있는 경기 용인 임야가 김 전 회장의 소유로 밝혀져 눈길을 끌었다. 하나 더 있었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마을이다. 김 전 회장이 2000년대 중반부터 외암마을의 상징적 고택인 ‘건재고택’ 등 마을의 고택 10여채를 사들여 ‘별장’처럼 사용한 마을이다. 그는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 있을 때인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전날 등에 건재고택으로 직원 100여명을 데려와 밤늦게까지 시끄럽게 술판(서울신문 2009년 6월 1일자)을 벌여 비난을 샀다. 건재고택은 조선 후기 학자 외암 이간(1677~1727)의 생가로 2000년 1월 국가중요민속자료 제233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술판 사건은 국가 문화재의 품격을 해치는 사유화가 타당한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건재고택 말고도 ‘감찰댁’ 등 이 마을의 주요 고택이 김 전 회장 소유였다. 김 전 회장이 구속되면서 그의 소유 고택들이 2012년 가을 경매에 부쳐졌다. 주민과 외지인이 모두 낙찰을 받아 새 주인이 생겼지만, 건재고택은 유찰을 거듭했다. 당초 81억여원에서 시작된 경매 가격이 35억원 정도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집과 부지 등 부동산 덩어리가 워낙 커 낙찰을 받으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은 채권자 측이 관리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숙 외암민속마을 문화관광해설사는 “사람이 살지 않아서인지 건재고택이 많이 상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회장이 마을의 고택을 연이어 사들이니까 주민들은 ‘이러다가 마을을 통째로 빼앗기는 거 아니냐’고 무척 불안해했다”며 “지금은 매우 평온하다”고 했다. 그는 “외암마을은 주민이 실제 거주하는 전통 마을이라는 점이 특징”이라고 자랑했다. 외암마을은 모두 56채의 옛집이 있다. 기와집과 초가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이 마을은 설화산이 뒤를 감싸고 반계라는 이름의 작은 냇가가 주변을 흐른다. 고택들은 마을 어귀에서 꽤 넓은 안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자리 잡고 있다. 외암마을은 다른 계절도 찾기 좋지만, 겨울에도 괜찮다. 호젓하고 운치가 있다. 마을을 천천히 걸으면서 사색하기에 그만이다. 청정한 공기가 기분 좋다. 줄지어 늘어선 돌담 사이를 걷다 보면 차가움보다 정겨움을 먼저 느낀다. 고풍스러운 모습에 어릴 적 고향집의 추억도 떠올려 볼 수 있다.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지친 심신을 달래 준다. ‘힐링’ 명소로 손색이 없다. 건재고택은 이간의 5대손 건재(建齋) 이상익(1848~97)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지었다고 한다. 건재의 벼슬을 따 ‘영암군수댁’으로도 불린다. 부지 4433㎡, 건평 267.7㎡이다. 마을 뒤 설화산 계곡물을 끌어와 집안 연못으로 흐르게 하고 소나무, 향나무 등으로 자연경관을 살린 전통 정원으로 유명하다. ‘한국 정원 100선’에 선정된 적이 있을 정도로 인정받는다. 외암마을은 500년 전 촌락이 형성됐으나 조선 선조 때부터 예안 이씨가 정착하고 후손이 번성해 예안 이씨 집성촌이 됐다. 지금도 190여명의 주민 중 100여명이 예안 이씨 후손이지만 다른 농촌 지역 원주민이 그렇듯이 대부분 노인이다. 이준봉(64) 외암마을보존회장은 “조선 후기 중부지방 전통 가옥이 자연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정겨운 농촌”이라고 설명했다. 마을 앞 개천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 낮은 구릉지에 옹기종기 들어선 충청도 반가의 고택과 초가들이 맞는다. 마을 안으로 진입하면 집집이 돌담이 정겹게 쌓여 있다. 줄지어 선 돌담의 길이를 합치면 모두 5.3㎞에 이른다. 찬바람을 막아 준다. 돌담 너머로 가지런한 장독대, 아기자기한 정원과 연못, 멋진 소나무 등 집안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집 근처마다 감나무, 호두나무 등이 여기저기 우람하게 서 있다. 이 보존회장은 “여름철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밖에서 보면 집은 안 보이고 거대한 숲처럼 보인다”며 “관람객들이 ‘마음의 고향 같다’ ‘살아 있는 민속마을’이라고 칭송한다”고 자랑했다. 고택에는 갖가지 이름이 붙어 있다. 옛 주인의 관직명과 출신지를 땄다. 참판을 지내 외암마을에서 가장 큰 참판댁, 성균관 교수를 지낸 교수댁, 감찰댁, 참봉댁, 종손댁, 송화댁 등 택호가 다채롭다. 건재고택 등 일부는 출입을 못 하지만, 주인이 직접 만든 청국장, 조청, 도라지청 등을 구입하고 식혜를 사 먹을 수 있는 집이 있어 고택을 안에서 구경할 수 있다. 문 앞에 메뉴판이 걸려 있다. 초가나 기와집에서 민박하면서 묵을 수도 있다. 외관은 예스럽지만, 내부는 현대식 시설을 갖췄다. 외암마을 체험민박운영사무실 직원 한영미씨는 “겨울에도 주말 하루 1500명, 평일 400명의 관람객이 찾아오는데 주말이면 민박 17채가 꽉 찬다”면서 “주민들은 농사도 짓지만, 민박과 음식 판매 등 부업도 한다”고 전했다. 민박집에서 밥과 바비큐 등을 직접 하거나 주인의 ‘시골밥상’도 주문해 먹을 수 있다. 한씨는 “어릴 적 살던 시골 고향집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민박이 무척 인기 있다”고 했다. 마을에서 다양한 문화 체험도 할 수 있다. 두부 만들기 등도 있지만, 겨울에는 한지공예와 엿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다. 시골 정취가 물씬한 시골에서의 체험이 각별하다. 2월부터는 연 만들기와 군밤·군고구마 체험 프로그램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 특히 정월 대보름 전날인 오는 2월 10일 장승제와 함께 달집태우기 등으로 이뤄진 대보름맞이 행사가 열려 즐거움을 더할 전망이다. 외암마을을 나오면 저잣거리가 있다. 10여개 점포가 있어 국밥, 팥죽, 수제비 등으로 요기하고 농산물도 살 수 있다. 외암마을 반대편 설화산 밑에 조선 초 청백리 맹사성이 살았던 ‘맹씨행단’이 있고, 온양온천도 가까워 언 몸을 덥히기에 좋다. 이 보존회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오른 지 오래됐다. 외암마을이 영구적으로 잘 보존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발벗고 등재에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YG·JYP 연예인과 오뚜기 진짬뽕의 공통점?…재밌는 ‘회계의 비밀’

    YG·JYP 연예인과 오뚜기 진짬뽕의 공통점?…재밌는 ‘회계의 비밀’

    ‘이것이 실전 회계다’김수헌·이재홍 지음/어바웃어북/475쪽/2만원 YG와 JYP 등 연예기획사 소속 연예인들은 수 년에 걸쳐 연습생 생활을 하며 노래, 안무, 작곡, 연기 등을 트레이닝 받는다. 언제 톱스타로 발돋움해 수익을 가져다줄지 모르는 연습생들에게 트레이닝 비용으로 상당한 금액을 지출하는 연예기획사들의 비밀은 무엇일까? 판매 10여개월만에 1억 400만개가 팔리면서 라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오뚜기 진짬뽕’. 진짬뽕의 빅히트 뒤에는 한국은 물론 일본에 있는 맛집 100여곳을 찾아다니며 맛의 비결을 연구한 개발팀 연구원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다. ‘농심 신라면’이 주름잡고 있는 시장에서 오뚜기가 성공을 확신할 수 없었던 진짬뽕을 개발하는데 투자한 돈은 얼마고, 이 비용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연예기획사 연습생들과 오뚜기 진짬뽕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공통점이 있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리스크에 큰 돈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이런 투자를 할 수 있는 이유는 회계처리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연습생 트레이닝 비용과 제품 연구개발비 등을 수익을 깎아먹는 ‘비용’이 아닌 차곡차곡 쌓아둘 수 있는 ‘자산’으로 처리할 수 있어서다. ‘회계’는 일부 회계사들이나 기업 회계팀 직원들에게만 관련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기업 경영은 물론 개미들의 주식투자, 청년들의 창업, 직장인들의 승진, 가정주부의 재테크 등에서도 회계를 알고 보면 더 많은 정보와 함께 재미난 뒷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문제는 숫자와 전문용어로 가득한 회계가 처음부터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회계원리 등 입문서만 봐도 눈이 아프고 하품부터 나오는 이유다. 비즈니스 현장을 누비며 발로 회계를 체험한 기자와 10년 차 회계사가 함께 쓴 ‘이것이 실전회계다’는 기존 회계 입문서들과는 확실한 선을 긋는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등 대기업은 물론 네이버, 쿠팡, YG 등 100여개 기업의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를 분석해 쉽고 재미있는 회계 이야기를 들려준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을 전량 리콜하고 판매를 중단하면서 떠안은 막대한 보증수리비와 재고손실 문제, 대우조선해양이 5조 7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한 방법 등 대한민국을 뒤흔든 이슈들도 생생한 현장 스토리로 풀어준다. 지분법, 리스, 환율, 금융자산, 현금흐름표, 연결재무제표 등 기존 입문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중고급 회계도 담겨 있다. 일반 독자들은 물론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나 기업 회계팀 실무자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회알못’(회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는데 이런 분들을 위한 훌륭한 입문서이자 중고급 회계로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어려운 주제들이 명쾌한 언어로 가공돼 감칠맛 나는 ‘썰전’(舌戰) 회계로 다시 태어났다”고 평가했다. 저자 김수헌 기자는 1993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 중앙일보, 이데일리 등에서 산업부 기업팀장, 경제부 정책팀장, 산업부장, 증권부장 등을 거쳤다. 기업의 검은 뒷거래를 파헤친 여러 건의 특종기사로 기자협회 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경제 전문기자들과 함께 글로벌경제 분석전문매체 ‘글로벌모니터’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이재홍 회계사는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에 근무하며 회계 감사와 재무 자문을 맡았다. 현재는 KEB하나은행 기업컨설팅센터에서 중소기업을 위한 경영 컨설팅과 회계·세무 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한겨울 추위 이겨낸 제주 월동무 수확

    한겨울 추위 이겨낸 제주 월동무 수확

    농민들이 17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한 밭에서 월동무를 수확하는 장면을 하늘에서 촬영했다. 월동무 파종기인 지난해 10월 태풍 차바가 주산지인 제주 등을 덮친 탓에 무 가격은 평년보다 개당 1000원 이상 올랐다. 제주 연합뉴스
  • [新전원일기] 수몰 마을 띄운 ‘웃음 농사’

    [新전원일기] 수몰 마을 띄운 ‘웃음 농사’

    마을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알려진 바로는 500년 전부터였는데, 최근 발굴된 유물에 따르면 20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아버지가 태어나고, 나의 조부가, 조부의 조부가 태어난 마을이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돌담 집,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던 골목길, 집집마다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를 때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달려가던 마을 입구의 구멍가게, 종소리가 댕댕 울리던 초등학교,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이후에는 나와 내 아내가 씨 뿌리고 수확해 아이들을 키우고 부모를 공양하던 들판의 논과 밭이 어느 날 물에 잠겨 저수지가 됐다. 그 물가에 서서 물밑으로 가라앉아 버린 내 삶의 원천이요, 터전이었던 곳을 추억하며 새 삶을 개척해 가는 사람들. 경북 청도군 풍각면 ‘성수월마을’로 가는 길은 그래서 좀 애틋했다. #위기… 성곡저수지 건설로 60여 가구 떠나 “1998년 농업용수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성곡저수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저희 집을 포함해 세 개의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마을과 집들이 물에 잠기게 된 거죠. 그래서 소식을 듣자마자 한달음에 달려 내려왔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을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박성기(54) 위원장은 우선 마을의 모습과 주변 풍광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되며 마을의 역사가 서려 있는 각종 기념비를 비롯해 수령 오랜 나무와 돌담, 기와, 학교 운동장의 놀이기구까지 그대로 버려질 마을의 흔적들을 모았다. 80여 가구 중 60여 가구가 넓은 농지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논농사를 주로 짓던 주민들에게 이곳에서의 희망은 더이상 없어 보였다. 20여 가구만이 남아 인근 고지대로 이주했다. 대부분 고향을 등진 채로 낯선 고장에서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지 않은 어르신들이었다. 박 위원장과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는 지구 단위로 개발계획이 서면 원주민들은 떠나고 옛 흔적들이 모조리 지워집니다. 농촌이든 도시든 마찬가지죠. 그런 것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박 위원장은 새로 조성된 마을 앞에서 바로 바라다보이는 저수지 가장자리에 인공 섬을 만들어 500년 된 당산나무를 옮겨 심었다. 부모님을 위해 새 집을 지을 때에도 기존 기와와 돌담을 최대한 이용했다. 각종 기념비를 한데 모아 작은 공원을 조성하고, 물밑 마을 인근의 고분에서 나온 돌들로 소원 탑을 쌓았다. 옛 마을을 기록한 사진과 새 마을이 건설되는 과정을 찍은 사진들을 골목마다 담벼락을 이용해 전시했다. 마을 회관 앞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옮겨 온 회전 놀이기구 뱅뱅이를 설치했다.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었지만 반들반들 세월이 묻은 그대로. 후에 인근 여섯 개 마을이 공동으로 설립한 ‘청도 성수월마을 영농조합’의 구심점인 ‘그린 투어 센터’가 들어서는 지금의 성곡리였다. “처음엔 미친 놈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인공 섬을 만들지 않나, 나무를 옮겨 와 심지를 않나. 그러다 저수지 건설 현장에서 유적지가 발견됩니다. 주변 소국들 중 유일하게 신라를 침범한 ‘이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어요.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그 흔적이 최초로 발견된 거죠. 게다가 이곳이 신라에서 청도를 거쳐 백제로 가는 길목이었거든요. 그걸 발굴하지 않고 그냥 공사를 진행하려고 하더라고요. 제가 관련 기관을 또 얼마나 드나들었겠습니까. 언성 높이며 싸움도 많이 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마을 사업을 위한 각종 지원 사업의 신청서며 사업계획서 등도 모두 직접 써 냈다. 경북대에서 농업경제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경북대 생활협동조합에서 근무한 이력이 복잡한 서류들을 작성하고 절차를 밟는 일을 수월하게 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각종 사업 계획이 채택될 수 있었던 데에는 진솔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협력… 영농조합 세워 품종·체험프로그램 개발 2004년 응모를 통해 사업계획이 채택돼 70억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마을 안팎을 정비하고, 저수지 제방을 따라 4.5㎞에 이르는 산책로인 ‘몰래길’을 조성했다. 2008년에는 인근 여섯 개 마을을 묶어 ‘청도 성수월마을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청도의 특산물인 청정 미나리를 마을 단위로 생산해 소비자가 직접 가격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사과, 감, 복숭아 등 지역 여건에 맞는 재배 품종을 개발했다. ‘그린 투어 센터’를 건립해 마을 밥집과 북 카페를 운영하며 농산물과 가공품을 직거래로 판매했다. 복사꽃 축제를 비롯해 사과 따기, 꽃차 만들기 등 각종 체험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체험객들을 맞았다. 센터 직원은 모두 마을 주민들로 이루어진 정규직이었다. 마을공동체와 지역 기업, 지역연구소가 지역 농산물을 원료로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과 마케팅까지 공유하며 마을의 부가가치를 높였다. 2009년 성곡저수지의 담수식이 거행되고 물이 가득 차오르자 인근 풍광이 더욱 근사해져 농촌생활 체험객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입소문을 타고 방문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농림축산식품부가 시행하는 농촌 마을 종합개발사업 전국평가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아 추가 예산 지원도 받았다. 박 위원장은 농촌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령화되는 농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청년 인구가 유입돼야 하고, 그러려면 다양한 일자리가 창출되고 문화를 선도하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도에 내려와 있던 개그맨 전유성씨를 무작정 찾아가 도와 달라고 매달렸다. 삼고초려 끝에 의기투합해 2010년 그린 투어 센터 2층에 ‘개그맨 사관학교’를 개설했다. 전국에서 40여명의 개그맨 지망생들이 모였다. 마을에서 먹고 자며 공부한 것을 보여 주기 위해 2011년 ‘웃음도 배달된다’는 콘셉트로 중국음식점 배달통과 똑같은 외관의 코미디 전용극장을 지어 문을 열었다. 처음 40석 규모에서 이듬해 60석으로 늘려 개관 후 지금까지 거의 매회 매진 행진을 이어 가고 있다고 한다. “희망이 없는 수몰 지역 마을에서 이제는 웃음도 배달되는, 희망을 창조하는 마을이 된 거죠. 그게 저와 마을 주민 모두의, 그리고 이제 같은 마을 주민이 된 전유성 형님의 바람이었습니다.” #기회… 코미디 학교·전용극장으로 ‘젊은 농촌’ 꿈 하루에 세 번 하는 공연이 마침 시작될 시간이라 극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극장 입구에 ‘배워서 남 주자’라는 글귀가 적힌 현판이 붙어 있다. 개그맨 사관학교에서 배운 바를 바탕으로 관객에게 큰 웃음을 주자는 의미겠지만 내게는 마을 대표가 아닌 위원장으로서 월급 한 푼 받는 것도 없이 오로지 애정과 열정만으로 복무하고 있는 박 위원장과 전용극장 건립을 위해 자비를 털어 보탰다는 개그맨 전유성씨의 삶의 자세가 다시금 떠오르는 글귀다. 객석의 등이 어두워지고 무대에 서치라이트가 비치며 한 청년이 등장한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입담을 구사하며 펼치는 신인 개그맨의 열연에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이곳이 수몰의 아픔을 겪은 농촌 마을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문 밖을 나가면 산기슭 쪽으로 옹기종기 비교적 새로 지어진 농가들이 있고 그 앞으로 이차선 도로 건너, 초록의 산 그림자 비추는 물이 가득한 저수지, 그 너머로 구름이 걸린 세 개의 골짜기가 굽이져 펼쳐진 산골이라는 것도 잊는다. 20여 가구뿐이었던 이름 없는 산골 마을이 연간 15만명이 다녀가는 명소가 됐다. 인근에 휴양림이 조성되고 전원주택 단지가 들어서 35가구의 새로운 이주민들을 맞았다. 마을마다 새로 집을 지어 들어오는 귀농·귀촌 가정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한 마을 안에 사회적기업이 두 개나 있는 전국 유일한 지역으로, 그린 투어 센터와 철가방 극장을 통해서만 연간 14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대부분 마을을 위해 재투자되고 기여도에 따라 가구별로 분배되기도 한다. 많게는 2억 5000만원이 분배된 적도 있다. 수몰된 지역민들과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간 개발 사업이 성공하며 농촌 마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아름다운 저수지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는 물밑 마을에서 옮겨 심은 느티나무와 함께 누군가의 소중한 사연이 젖지 않도록 커다란 우산을 받쳐 쓴 빨간 우체통이 서 있다. 사연을 적어 그 안에 넣으면 1년 뒤에나 배달되는 느린 우체통이다. #미래… 관광객 늘어나고 귀농도 늘어나고 “인생은 마라톤이잖아요. 길게 봐야죠. 특히나 농촌은 도시와 달리 봄, 여름, 가을, 겨울 최소 1년 단위로 시간이 흘러요.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과정이 그렇죠. 한 민족의 역사나 한 나라의 역사가 그렇듯 한 마을의 역사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거잖아요. 긴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준비해야죠.” 마을의 소통 창구이며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 시설이기도 한 ‘그린 투어 센터’는 젊은이들의 귀농, 귀촌 안내 창구 역할도 겸하고 있다. 문화예술인, 은퇴한 전문가들의 귀농, 귀촌이 늘며 마을의 문화 교육 프로그램도 활발해졌다. 박 위원장은 거듭 ‘공동체’를 강조한다. 함께 가야 가성비가 높아지고, 실패 때에도 회복이 빠르단다. “귀농·귀촌을 계획한다면 원주민과의 소통과 상생을 먼저 염두에 두세요. 그리고 처음부터 크게 시작하면 실패합니다. 길게 내다보세요. 나뿐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들어와 살 수 있도록.” 어느새 창밖의 저수지 물밑으로 산 그림자가 깊어진다. 마을을 나와 비슬산 자락을 굽이도는데 문득 오래 그 앞에 머물렀던 담벼락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깊게 파인 주름 골이 아름다웠던 노인의 함박웃음 짓는 얼굴이다. 옛 흔적을 남기기 위한 안타까운 노력이 그대로 새 마을을 건설하고 발전시키는 자원이 됐다. 2000년 역사 저편의 이서국 위에 세워진 마을, 그러나 이제는 물밑으로 가라앉고 만, 그 물가에 세워진 코미디 극장과 물 위의 당산 나무와 소원 탑, 골목마다 붙어 있는 사진들로 저절로 스토리텔링이 되는 마을의 풍광이 돌아오는 길 내내 동행이 되어 같이한다. 그래, 그곳에 그런 마을이 있었지. 글쓴이 소설가 서진연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3년 ‘괴산’으로 EBS 라디오 문학상 수상. 저서로는 소설집 ‘붉은 나무젓가락’, 장편소설 ‘수목원’ 등이 있다.
  • 신년사 장악한 ‘최순실’…그래도 이겨냅시다!

    신년사 장악한 ‘최순실’…그래도 이겨냅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신년사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밝은 미래로 채울 법한 신년사에는 어지러운 국정상황이 빠르게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특히 소상공인들은 정부의 관심에서 소외된 현실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이들의 신년사는 단순히 새해 인사가 아니라, 호소문에 가까웠습니다.  1일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소위 ‘최순실 예산’을 제외하고 정부 예산 중 가장 크게 삭감된 분야 중 하나가 소상공인 관련 예산”이라며 “누구 하나 소상공인들의 현실을 눈여겨보지 않는 것만 같다”고 합니다. 그는 “소상공인들은 연말연시 분위기마저 실종된 최악의 경기 침체 속에 속울음만 겨워내고 있고, ‘힘내시라’는 말조차 주고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합니다.  홍정용 대한병원협회 회장도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서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어수선하고 위축된 가운데 마음이 매우 아팠던 한해를 보냈던 것 같다”며 “지금까지 어렵지 않았던 해가 거의 없었지만 2017년 새해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임종기 순천시의회 의장은 “지난해는 거친 바다 위 돛단배처럼 위태롭고 힘든 여정의 연속이었다”며 “전대미문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 헌정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 민심까지 우리 국민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한 해를 보내야만 했다”고 떠올렸습니다.  정치권을 비판한 신년사도 있었습니다. 이영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은 “암울했던 2016년을 보내면서 한국 사회는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며 “그러나 정치권이 대권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힘겨루기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현실은 심히 유감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각계의 신년사 중 유독 중앙정부 및 대기업 수장들은 최순실 사태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려 했을 수도 있고, 자신이 몸담은 조직이 연관돼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 수도 있어 보입니다. 올해 신년사에서 고난의 파도를 이겨낼 용기와 끈기를 강조한 것처럼 올해를 꿋꿋하게 이겨내고, 2018년 신년사에서는 밝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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