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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세당국, 종교인 과세 검토

    조세당국이 목사·승려·신부 등 종교인에 대한 근로소득세 과세 여부에 대해 검토에 착수, 뜨거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7일 재정경제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3월 말∼4월 초 국세청과 시민단체인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종비련)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질의서를 재경부에 보내와 재경부가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종교인에 대한 과세 문제는 오랫동안 논쟁이 돼온 ‘초민감 사안’으로, 지금까지 조세당국은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왔다. ‘종비련’ 등 성직자 과세에 찬성하는 측은 성직자에 대한 면세조항이 법에 없기 때문에 소득으로 간주될 수 있는 수입에는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종비련은 지난 2월부터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반면 헌금이 종교기관의 장부상 수입으로 처리되고, 명목상 임금 형태로 지급되더라도 이는 회계처리상의 형식일 뿐 실제로 이를 근로소득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조세당국이 종교인에 대해 기존의 비과세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재경부 관계자는 “최대한 빨리 답변을 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면서 “종교기관의 수입 및 지출 방식 등을 먼저 파악해야 하므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오푸스 데이

    소설 ‘다빈치 코드’에 등장한 가톨릭 종교단체 ‘오푸스 데이’가 그동안의 신비주의를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며 타임지가 24일자 최신호에서 미국 지역 책임자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신의 사역’이란 뜻의 오푸스 데이는 1928년 10월8일 당시 26세였던 스페인 수도사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에 의해 창설됐다.본인의 노동을 신께 헌신함으로써 신부나 수녀가 되지 않고도 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기본 목표다. 선출 과정에서부터 오푸스 데이의 존재를 부각시켰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인해 82년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톨릭을 보수화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설도 있다. 현재 전세계에는 8만 5500명,미국에는 3000여명의 오푸스 데이 회원이 있다.회원은 전체의 70%인 ‘슈퍼뉴머러리스’와 20%인 ‘뉴머러리스’로 구성되며,‘뉴머러리스’는 1700개 정도의 성별 구분이 이뤄진 ‘센터’에서 사제와 흡사한 수준의 종교 생활을 한다. 오푸스 데이의 자산 규모는 세계적으로 28억달러,미국 내에서만 3억 4000만달러 정도다.28억달러는 미국 듀크대의 연간 기부금과 비슷한 수준이나 소설처럼 교황청의 재정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17층짜리 뉴욕 본부 건물에 간판조차 달지 않는 신비주의로 미뤄 자산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 정치무대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은 오푸스 데이의 진정한 비밀로 여겨진다.폴란드 새 보수정권에는 장관 1명을 포함한 6∼7명의 오푸스 데이 회원이 고위 공직에 진출했다.미국에서는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과 릭 산토럼,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루이스 프리치 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등이 회원으로 추정된다.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는 오푸스 데이 회원이 스스로 피가 흐를 정도로 채찍질을 하는 것으로 묘사됐다.특수 회원격인 ‘뉴머러리스’에게는 하루에 2시간 동안 안쪽으로 가시가 박혀 있는 쇠사슬을 허벅지 위쪽에 차는 고행을 하도록 권장된다.1주일마다 짧은 채찍으로 잠깐 동안 스스로를 때리는 고행도 행해진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이야기] (1)’한국 천주교의 얼굴’ 명동성당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이야기] (1)’한국 천주교의 얼굴’ 명동성당

    1898년 서울 목멱 자락인 종현(鐘峴)에 우뚝 세워진 ‘한국 천주교의 얼굴’ 명동성당(중구 명동 2가1, 사적 제258호).60대 후반을 넘긴 세대에겐 지금도 ‘언덕 위의 뾰족집’으로 통한다.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45년 해방 후부터였고 원래 이름은 당시의 지명을 딴 ‘종현성당’.1900년 이전 세워진 건물 중 가장 크고 잘 보존된 것이면서 가장 순수한 고딕양식의 이 성당은 ‘뾰족집’이란 별명에 걸맞게 전형적인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고딕은 신성로마제국이 쇠퇴하면서 로마교황의 권력이 증대하고 그리스도교가 융성하던 12세기 프랑스에서 완성된 건축양식. 교회의 승리를 과시하기 위한 앙천(仰天)의 구조가 특징이다. 명동성당 역시 경사지 구릉의 산봉우리를 깎은 정상부에 자리잡아 주변을 내려다보고 있고 진입로와 성당의 높이가 약 13m의 고도차를 가져 확연히 드러나는 위용을 갖추고 있다. 뾰족한 아치와 궁륭천장, 기둥에 의해 구획되는 6칸의 회중석 공간과 교차부, 두 칸의 익랑(翼廊), 두 칸의 성단(聖壇) 구조의 삼랑(三廊)식 라틴십자형 내부공간이 고딕양식의 전형이라면 단순한 외관과 견고한 벽체의 구조체계와 공법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가깝다. 대부분의 중세 유럽 성당이 서쪽 입구를 둔 동서배치였던 데 비해 정북에서 30.5도 서쪽으로 기울어진 북북서쪽 입구를 가진 남북배치형태는 파격이다. 규모는 건축면적 427.14평, 연면적 612.65평에 외곽길이 68.25m, 외곽 폭 29.02m, 건물높이 23.48m, 종탑높이 46.70m. 그런데 명동성당은 왜 하필 이곳에 세워졌을까. 그것은 성당을 건립한 선교사들이 당시 높은 곳에 교회를 세우는 전통을 고집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인근 명례방이 한국 최초의 순교자를 낸 천주교회의 태동지임을 의식해서였다. 흔히 한국천주교의 특징은 ‘박해와 순교로 점철된 자생적 신앙’으로 요약된다. 한국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이 청나라에서 영세를 받고 귀국한게 1784년. 한국천주교는 이 해를 원년으로 삼는다. 이승훈은 현재의 명동 부근인 수표교 근방 이벽의 집에서 세례를 베풀고 신앙공동체를 탄생시켰다. 이 신앙공동체가 성장해 당시 명동일대인 명례방의 역관 김범우의 집에서 비밀리에 신앙집회가 열렸지만, 집회가 발각되어 김범우는 형벌과 고문끝에 1786년 한국 최초의 순교자가 된다. 이후 100여년간 한국 천주교는 신도 1만여명과 성직자 10여명이 순교하는 고초를 겪었다. 명동성당이 세워진 종현(鐘峴)은 이처럼 한국 최초 교회의 발상지이며 최초의 순교자였던 김범우의 집이 있던 명례방 옆 언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조정에서는 성당터에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성당터가 조선왕궁을 내려다보고 있고 특히 조선조 임금들의 영정을 모신 영희전의 주산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정과의 부지 소유권 분쟁이 오랫동안 계속됐지만 결국 교회가 토지소유권을 인정받아 성당 건립이 이루어지게 됐다. 이 사건은 천주교를 적대적으로 대했던 정부가 차꼬를 푼 신호탄이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많은 종교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1898년 축성후 다섯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쳤으며 지금은 외벽공사가 한창이다. 성당 내에는 제구, 가구를 포함하여 많은 고정구조물이 있는데 성당 축성과 함께 마련된 대리석 주제대와 벽돌조의 부제대, 성상과 14처 등을 제외한 모든 게 완공 이후 제작 설치됐다.1920년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 성성 25주년 기념으로 제작 설치된 강대부분은 해체되어 독서대와 목조제단으로 조립되어 사용되고 있다. 닫집은 강대와 같이 철거되어 주교좌 상부에 설치되었다. 파이프 오르간 역시 뮈텔 주교의 주교성성 25주년을 기념하여 전국의 신자들이 모금한 성금 2만원으로 설치됐지만 미국제 전자식 파이프오르간으로 대체된 뒤 현재의 독일 보슈사 파이프 오르간으로 재설치되었다. 복자제대와 79위 복자상본은 1925년 복자시복 때 시설된 것이다. 건립 당초의 14처는 1963년 무렵 다른 작품으로 교체되었으며 원래의 것은 수유리성당에 보관되고 있다. 바닥도 원래 마루바닥에 의자가 없었지만 1950년대 말 장궤의자가 도입되었다. 일제강점기와 정부수립, 전란기를 거치며 현대사의 중심 공간 역할을 했던 명동성당은 1960년대 후반부터 군사정권에 맞선 ‘해방구’가 되어 1987년 군사정권의 종말까지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명동성당은 다시 태어나려 한다. 서울대교구를 중심으로 한 사제들 사이에 “본연의 신앙 터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주변의 문화시설을 아우르는 문화특구 지정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이창영(45·가톨릭신문사사장) 신부는 “한국 천주교의 심장이랄 수 있는 명동성당은 교회의 의도와는 다르게 정치·사회적으로 이용된 경우가 많다.”며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기 위해 초기 교회의 신앙을 바탕으로 생명존중과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 명동성당은 어떻게 건립됐나 최초의 순교자를 낸 명례방을 중심으로 창설된 이 땅의 신앙공동체는 처음 북경교구에 소속됐다가 1831년 로마교황청에 의해 조선교구로 설정됐고 교황청은 파리외방전교회로 하여금 이 신설교구의 전교를 맡겼다.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가 성당 부지매입에 나섰고 1887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비준된 뒤 언덕을 깎아 내는 정지작업이 시작됐다. 조정과의 부지 소유권 분쟁에 휘말려 기공식은 1892년 5월8일에 가서야 있게 된다.6년간에 걸친 공사 비용은 성당 축성 직후의 독립신문 등 기사를 볼 때 당시 돈으로 약 6만달러가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비는 부지 매수비용을 포함해 대부분 파리외방전교회의 재정지원에 의한 것이었으나 신도들의 노력봉사와 성금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벽돌은 대부분 조선 정부에서 기와를 굽고 있던, 진흙땅이 있던 용산 한강통 연와소에서 제작해 조달했고 벽돌공과 미장이 목수는 청나라에서 초빙했다. 완공까지에는 인부들의 잇딴 사상과 자금난에, 블랑주교와 설계자인 코스트 신부의 사망까지 겹쳐 수차례 공사가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었다.1890년부터 1932년까지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기록한 일기에선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읽혀진다. 마침내 성당이 위용을 드러낸 것은 1898년 5월29일. 주한외교사절과 조선 정부의 고위관리들, 재한 프랑스 선교사들, 한국 신부들과 신자등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엄한 축성식이 열렸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글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열린세상] ‘사립 국민’ ‘국립 국민’이 따로 있나/이성낙 가천의대 총장

    얼마전 유럽의 한 일간지 기자에게서 “한국이 이렇게 발전한 원동력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그 질문을 받고 ‘그게 과연 무엇일까.’ 몇번 자문자답하면서 서원(書院)제도를 떠올린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때부터 높은 관직을 지낸 사람이 언제고 그 자리를 떠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고장에 크고 작은 서당 또는 서원을 세웠다. 학식이 높은 그들이 집안 구성원이나 이웃을 위해 서당을 세우거나, 조금 크게는 고향 마을 사람들을 위해 향교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학식이 출중한 분의 가르침을 받고자 마을 단위를 넘어 전국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들어 서원이 형성되고 서원 중심의 학파가 생겼다. 이처럼 서당·향교·서원이라는 교육 네트워크가 조선시대 말기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오늘의 우리나라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때부터 인재 교육을 사학에 많이 의존해 왔다는 얘기다. 그리고 지금도 인재 교육을 사학에 의존하기는 별다를 바 없다. 우문(愚問)이겠으나 만일 조선시대에 서당과 서원이 없었다면, 그리고 지난 세기 동안 사립학교, 특히 사립대학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국가가 지금처럼 사립대학을 홀대하여도 되느냐라는 것이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국가가 연구비 관련 정책자금을 배정할 때면 으레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을 차별한다. 그 액수를 비교해 보면, 국립대학이 사립대학보다 10∼20배나 많다. 이런 불합리한 정책이 거의 관행처럼 되어 있다. 국립대학의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관리비를 포함한 재정을 국가 예산으로 책정하여 배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가 책정한 연구비나 특정 프로젝트(예를 들면 BK21)에서 국립대 몫이 따로 있고 사립대 몫이 따로 있다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사립대학에 몸담은 교수는 물론이고 대학생 모두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게 아닌가 싶다. 미국에서 한때 국가 정책으로 의사 배출을 권장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국립 의과대학과 사립 의과대학을 차별하지 않았다. 배출된 의사의 머릿수에 따라 균등하게 국가 보조금을 지급했다. 독일에서는 수년전 병원 시설을 현대화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실적에 따라 보조금을 분배한 적이 있다. 그때도 병원의 병상 규모에 따라 환자당 지급액에 차이를 두었지, 병원이 국립인지 사립인지 또는 종교 기관에서 관리하는지가 차등 지급의 기준이 되지는 않았다. 사립대학도 엄연히 사회적 공공영역(Public domain)이다. 하물며 사립대학에 적을 둔 학생 또한 국가에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 국적의 아들·딸인데, 어떻게 사립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로 국가가 주는 각종 수혜사업에서 차별을 받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는 어떠한 논리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국립대학에 다니는 학생에 비해 ‘조금 덜 공부해도 되고’,‘조금 손해를 봐도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러다 우리나라가 사립대학에서 교육받은 ‘사립 국민’과 국립대학 출신의 ‘국립 국민’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국가가 배분하는 보조금은 재단의 성격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대학 교육의 질을 확보한다는 기본적인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학의 학적에 따라 국가에서 학생을 차별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 노벨상 골딩·옐리네크 화제작 나란히 출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두 작가의 화제작이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파리대왕’으로 1983년 세계 문학 최고의 권위를 안은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1911∼1993)의 ‘첨탑’(신창용 옮김, 삼우반 펴냄)과 2004년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킨 오스트리아 여성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60)의 ‘욕망’(정민영 옮김, 문학사상사). 특히 이 두 소설은 명성에 비해 국내에 덜 알려진 작가의 대표작들이란 점에서 그들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첨탑’ ‘파리대왕’이후 국내 처음 소개되는 윌리엄 골딩의 작품이다.‘파리대왕’에서 무인도에 고립돼 야만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는 소년들을 통해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우화적으로 묘사한 작가는 이 작품에서도 인간 내면의 다양한 모습들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는 독특한 구성과 문체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1963년 발표된 ‘첨탑’은 중세 시대 영국 솔즈베리 대성당의 주임신부 조슬린이 첨탑을 세우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조슬린은 주위의 반대와 재정적, 기술적 난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첨탑의 건설을 지휘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첨탑의 건설 과정을 통해 작가는 이성과 비이성, 과학과 종교적 세계의 대립과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줄거리 자체는 간단하지만 인물 캐릭터와 서술 구조 곳곳에 복잡한 상징체계가 숨어 있어 단번에 사실 관계와 의미를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소설의 재미를 충분히 만끽하려면 재독, 삼독의 수고를 기울여야 하는 까다로운 작품이다.9000원.●‘욕망’ 2004년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은 이변이었다.‘좌파 포르노 작가’라는 비난과 ‘탁월한 언어유희’라는 찬사를 동시에 받고 있는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영화 ‘피아노 치는 여자’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진 그녀가 1989년 발표한 ‘욕망’은 노골적인 성 묘사로 발간되자마자 외설시비에 휘말린 화제작이다. 소설은 오스트리아 알프스 계곡의 종이공장을 무대로 공장장 헤르만의 가정에서 6일간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에이즈에 대한 불안으로 창녀촌에 발길을 끊고 아내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헤르만, 그런 남편이 싫어 집을 떠나지만 호감을 품었던 금발의 미청년 미하엘에게 겁탈당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게르티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일그러진 권력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병애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일견 포르노를 방불케 할 정도로 난잡한 성관계를 묘사하고 있는 듯 보이나 사실은 반어적으로 ‘사랑과 성’에 대한 순수한 상태에 대한 향수를 일깨우는 작품”이라고 평했다.95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120여개 사학 오늘부터 감사

    감사원이 13일부터 비리가 의심되는 사립학교 120여곳을 감사한다. 감사원은 다음달 말까지 사학과 교육인적자원부,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을 대상으로 ‘교육재정 운용실태 감사’를 실시한다고 12일 밝혔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1월23일부터 초·중·고교·대학을 망라한 전국 2032개 사립 학교 모두에 대한 자료분석 등 예비감사를 벌였다. 또 지금까지 170개교 266건의 비리가 제보됐다. 정부 지원금 횡령이나 학교 자금 사적 지출, 수의계약 과정에서 이사장 친인척의 리베이트 수수, 교원채용 및 편입학 비리 등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문제 소지가 있는 사학을 중심으로 대학 20여곳을 포함해 감사대상을 120여개교로 압축했다. 일부 종교계 사학도 포함됐다. 이번 감사에서는 ▲보조금 집행 등 재정운용 ▲학교 설립·운영 관련 법정의무 이행여부 ▲교육·수익용 재산관리 ▲교원채용 및 편입학 등 학사운영 등을 중점 점검한다. 아울러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의 사학 지원·감독 시스템도 살필 계획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번 감사가 사학 지원·감독 시스템 개선을 목표로 삼고 있는 만큼 비리나 문제 소지가 있는 학교뿐만 아니라, 우수 학교도 조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감사원은 국회의 감사 청구에 따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한 감사도 13일 착수한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구청장 현장인터뷰] 문병권 중랑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문병권 중랑구청장

    쌀쌀하면서도 화창했던 지난 23일 오후. 서울 중랑구청 뒤 봉화산 근린공원에는 다음달 개장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구슬 땀이 맺혀 있다. 문병권 중랑구청장은 이날 공원 공사현장을 찾았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모습은 눈에 많이 띄었다. 문 구청장과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구청장입니다. 공원에 자주 오세요?” 구청장의 인사에 주민들은 밝은 미소로 답한다. 재작년까지 이 공원에는 천막집과 판잣집 40여가구가 있었다. 문 구청장은 “비가 오면 산의 계곡물이 넘쳐 수해가 날까 늘 걱정했다.”면서 “공기가 좋고 인근 주민 30여만명이 쉬려면 바로 올 수 있는 이 곳을 공원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관내 5개 공원 조성사업 진행중 현재 이 공원을 포함, 관내에는 모두 5개의 공원 조성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망우산 일대에는 피크닉장과 체력단련시설 등을 갖춘 8만여평에 달하는 공원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 4월엔 면목동에 사가정 공원이 생겼다. 그에게 공원을 만드는 이유를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그동안 ‘중랑구’하면 사람들은 망우리 공동묘지나 수해 지역 등 안 좋은 이미지를 떠올렸다.”면서 “중랑구를 다른 구민들이 부러워하는 지역으로 바꾸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년 전 캐나다와 유럽에 출장 갔을 때 공원에서 함께 노는 가족과 동물들을 본 기억이 눈에 선하다.”면서 “구 면적의 43%인 녹지공간을 선진국처럼 공원으로 바꾸면 다른 구민들이 부러워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휴식 공간이 많아야 웰빙 도시가 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공원조성은 욕심처럼 쉽지 않았다. 중랑구 재정자립도는 25개 자치구 가운데 뒤에서 수위를 다툰다. 공원을 조성할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문 구청장은 예산확보를 위해 시청을 자주 찾았다.“예산 관련 과장과 사무관 등을 만나면서 예산 좀 달라고 직접 설득했습니다. 처음에는 중랑구만 잘해 줄 수 없다고 했지만 여러 번 부탁하니 태도가 변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사가정 공원 개장이 가장 보람” 지난해 중랑구에 투입된 시 예산은 1119억원. 취임 전인 2001년 550여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한 간부는 “예산 문제로 직접 시에 가는 구청장은 거의 없다.”면서 “문 구청장은 필요하면 직접 발로 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문 구청장은 재임 기간 동안 가장 보람된 일 가운데 하나로 사가정 공원 개장을 들었다.“개장식 때 한 할머니한테 ‘할아버지랑 산책할 곳이 생겨 좋다.’는 말을 듣고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공원화 사업을 멈추지 않을 뜻을 보였다.“망우리 묘지공원을 꼭 역사테마공원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공동묘지’란 이미지를 없애고 구민 휴식공간을 늘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자체 조경 평가를 하는 한 교수로부터 공원 조성으로 중랑구의 경관이 아름다워지고 있어 올가을 학생들과 함께 방문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며 ‘자랑’을 숨기지 않았다.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50년 경남 합천 ▲학력 육군사관학교 29기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행정학 석사) ▲약력 국무총리실 근무, 서울시청 내무국, 국민운동지원과장, 서울시청 재무국 회계과장, 중랑구 시민국장, 중랑구 부구청장, 영등포구 부구청장, 영등포구 구청장 권한대행, 민선3기 중랑구청장 ▲가족 배정숙씨와 2남 ▲종교 기독교 ▲기호음식 보리밥과 된장찌개 ▲주량 술을 못 마심 ▲좌우명 모든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자 ▲애창곡 사랑의 이름표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사설] 정진석 새 추기경에 거는 기대

    정진석 대주교가 새로 추기경으로 서임된 일은 나라의 경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새 추기경 명단을 발표할 때 현장에서는 삼소회 소속의 비구니, 원불교 여성교무 들이 환호했다. 교황청 공식발표 직후에는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이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새 추기경 탄생이 한국 가톨릭만의 영광이 아니라 종교를 초월해 국민 일반의 기쁨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우리는 정진석 추기경의 탄생에서 여러 의미를 읽는다. 먼저 신도 400만명이 넘는 한국 가톨릭교회가 위상에 걸맞게 복수 추기경을 모시게 된 점을 꼽을 수 있겠다.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 있으면서 추기경 서임을 받은 사실도 눈여겨본다. 서울대교구장이 추기경으로 나아가는 관행이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사회가 또 한분의 진정한 원로를 갖게 됐다는 사실이다. 엄혹했던 독재정권 시절 한국 가톨릭교회는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최선두에서 싸워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교파·계층 등 일체의 구분을 뛰어넘어 국민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몫을 다했다. 그러하기에 ‘추기경’이라는 존재는 우리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연로한 김 추기경이 활동을 줄여 국민의 안타까움을 사는 지금 정 추기경의 등장은 그래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 추기경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사목의 지표로 삼아왔다. 아울러 가정과 생명의 가치를 강조해왔다. 양극화와 가정붕괴가 초미의 현안인 이 시대에 정 추기경이 다시금 우리사회의 앞길을 환히 비춰주리라 믿는다.
  • [토요일 아침에] ‘일년에 한번,평생 두 번’/원철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순(舜)임금이 천하를 물려주기 위하여 사람을 찾던 중 허유(許由)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왕위를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러고는 영수(穎水)로 달려가 듣지 못할 말을 들었다며 양쪽 귀를 번갈아가며 씻고 또 씻었다. 그때 마침 소부(巢父)가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하여 나왔다가 그 자리에서 말머리를 돌렸다. 더러운 말(語)을 듣고 더럽혀진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말(馬)엔들 어찌 먹일 수 있겠느냐면서 자기도 귀를 씻었다. 그 유명한 ‘허유세이(許由洗耳)’의 고사이다. 이즈음 시정에 이 허유세이를 능가하는 또 다른 명구(名句)가 등장했다.‘일년에 한번, 평생 두번’이 그것이다. 무슨 카피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건 상품광고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문안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공익광고는 더더욱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유명해진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전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엄숙주의적 도덕률인지라 21세기에는 개그 내지는 코미디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생략된 주어는 ‘자발적 난자 기증’이다. 한문숙어로 바꾸면 ‘연일도이(年一都二)’가 되나? 이제 고사성어사전에 오를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사바세계에 살다 보면 참으로 귀를 씻고 싶은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요즈음 생명윤리위원회에서 흘러나오는 말들도 그러하다.‘줄기세포 사태’는 전국민을 생명공학도로 만들었고 이제 누구나 BT 이야기까지 눈여겨 살펴 보는 수준이 되었다. 이런 시대적 흐름의 영향으로 별 볼일 없던 생명윤리위의 한마디 한마디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이 달라진 풍속도이다. 그런데 2005년 1월에 발족한 후 그동안 팔짱만 끼고 있다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무소불위의 권한이라도 위임받은 양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청계천으로 달려가 귀는 말할 것도 없고 눈까지도 씻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생명윤리위는 세계적 수준의 체세포핵이식 방법의 효용성과 우리 연구자들이 갖고 있는 최고 수준의 기술력은 안중에도 없으며, 유럽의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등지에서 이 부분에 본격적인 투자와 연구에 나섰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는데도, 그저 앞뒤 생각하지 않고 다짜고짜 체세포핵이식 연구의 불허 등 생명윤리법을 개정하는 것만이 시대의 소명인 양 두 소매를 걷어붙인다. 물론 과학이 윤리를 무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윤리가 과학을 모두 통제하겠다는 안하무인적인 발상도 위험스럽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리고 생명윤리법 보칙 45조인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성체 줄기세포 육성을 위해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조문은 이를 원하는 특정종교단체에서나 선교법에 명시해야 어울릴 조목이며, 동시에 이는 미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자까지 역차별 받을 수 있는 불평등한 비과학적 독소 조항이다. 그러잖아도 각종 위원회가 경험과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구성원들로 인하여 예산만 낭비하고 부실한 국정운영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런 중세시대 수준의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생명윤리위라면 대통령 소속 29개 위원회 중 제1순위로 해체 정리하는 것이 국가이익에 훨씬 더 부합할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일년에 한번, 평생 두 번’이라는 기발한 언어감각만큼은 광고회사에는 유용할 것 같다. 그곳에서도 혹 자질이 부족하다고 입사조차 거절당한다면 다른 정부기관으로 ‘아르바이트 퇴출’하는 방안도 또 다른 대안이라 하겠다. 거기에서 “일년에 한번, 평생 두 번”하면서 이 말을 살려 국가적으로 홍보해야 할 대상이 진짜 무엇인지 찾아내도록 하는 것이 제격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그런 불후의 명언을 ‘난자’씨에게 단 한번만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까닭이다. 원철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 [사설] 사학특감 비리 근절 계기돼야

    감사원이 사학들에 대해 대대적인 특별감사에 나선다고 한다. 회계감사는 물론, 처음으로 직무감찰로까지 영역을 확대한다. 사학을 관리·감독하는 교육부, 시도교육청도 부실이 드러나면 감사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사학단체들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부가 회계가 아닌 직무까지 감사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야당도 표적감사라며 거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학특감은 사학들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일부 사학에서 교직원 채용비리, 학생 편·입학비리, 재단전입금 유용 등의 비리를 저질러왔기 때문이다. 당장 종교계 예술학교에서 학생편입을 대가로 수억원대의 돈을 받은 혐의가 포착돼 수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사학들이 학교 운영을 투명하게 했다면 사립학교법 개정 소동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감사원이 기왕에 칼을 빼든 만큼 철저한 감사를 해 줄 것을 요구한다. 사학의 재정은 물론 법인의 법적 의무 불이행 등 직무부문까지 파헤쳐 이번 기회를 사학 부조리 근절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인원이 부족하면 시도교육청이 아닌 다른 곳에서라도 충원을 받아,‘날림감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 특감을 통해 건전사학과 비리사학의 옥석이 가려질 것이다. 그런 만큼 사학들도 이번 특감에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본다. 사학비리의 발생에는 감시·감독기관인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도 책임이 크다. 솜방망이 감사로 일관해오다 비리를 키워왔다는 비판이 사학들로부터도 나오는 판이다. 감사원이 이들까지 감사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그런 측면에서 잘한 일이다. 철저한 연계감사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번 감사가 정치적 오해를 받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감사원은 종교재단 사학도 가리지 않고 감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야당은 여전히 표적감사 의혹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감사는 어떤 사전 재단도 없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누가 봐도 명백하고 당사자가 공감하는 감사결과가 나와야 한다.
  • 모든 사학 재정·직무 첫 특감

    감사원이 23일부터 모든 사립학교를 대상으로 재정운영과 직무실태에 대한 전방위 특별감사에 착수한다. 감사원이 사학재단의 재무감사와 직무감사를 동시에 실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감사원은 사학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사학 운영 전반을 감사키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감사원은 우선 본격적인 감사대상을 선정하기 위한 1단계 감사를 2월 말까지 실시한다. 초등학교 75곳, 중학교 659곳, 고등학교 939곳, 대학교 325곳 등 전국의 1998개 사학 모두가 대상이다. 여기서 ▲보조금 등 지원규모가 큰 학교 ▲기본재산 변동이 많은 학교 ▲교직원 채용이 잦은 학교 ▲법정전입금이 적은 학교 ▲비리정보가 수집된 학교 가운데 2차 감사 대상을 추린다. 이어 감사원은 3월부터 2개월 동안 120명의 인력으로 본격적인 감사에 나선다. 특히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의 지도 잘못이나 비리가 확인되면 이들 기관도 감사한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교육부가 3월부터 실시키로 했던 자체감사는 취소될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 이창환 사회복지감사국장은 “편·입학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학이나 당초 정부가 감사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던 종교사학도 감사기준에 포함된다면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시설공사·기자재 구입 등 회계집행과 학교발전기금 조성·운용의 적정성 ▲교원·교수 채용과 입시·성적관리 등 학사운영 비리 ▲법정전입금 미부담 및 기본재산 부당처분 등을 집중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비리가 드러날 경우 형사 고발과 함께 학교장 해임 요구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성그룹-故 김수근 창업주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성그룹-故 김수근 창업주家

    대성그룹 고 김수근 회장가(家)의 혼맥은 매우 단출하지만 3남3녀 모두 경영에 참여할 만큼 2세들의 대외 활동은 왕성하다. 무엇보다 여느 재벌가(家)와 달리 딸들의 적극적인 경영 참여는 고 김 회장가(家)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다. 독실한 기독교 가풍이 남녀 평등으로, 정략결혼에 대한 거부감으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또 통혼(通婚) 과정에서 ‘교회 인연’이 적지 않은 것도 눈에 띄는 점이며,2세들의 화려한 학벌도 이 집안의 자랑이다. 대성은 고 김 회장이 연탄사업을 기반으로 성장시킨 그룹이다. 한때는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었던 기업으로 손꼽힐 만큼 재계에서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1970년대 초엔 국내 10대 그룹의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사세가 대단했었다. 그러나 연탄산업의 몰락과 이에 따른 변신이 늦어지면서 점차 뒤처지기 시작했으며,2000∼2001년 사이엔 연이은 계열 분리로 그룹 규모가 더욱 줄었다. ●에너지 산증인 김수근 창업주 “인생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영원해야 한다.” 김수근 대성 창업주가 운명하기 며칠 전 병상으로 그룹 임·직원을 불러 남긴 필담 유언의 한 토막이다. 그의 기업관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1916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 창업주는 가정 형편 때문에 대구상고를 중퇴하고, 삼국석탄 대구지점에서 연탄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일본기업들은 일본인만을 채용하는 원칙이 있어 취직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 창업주는 회사에서 입사를 수차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밀어붙여 취직한 뒤, 성실함과 정직으로 내부 업무는 물론 외판 업무도 맡았다. 당시 김 창업주는 일에 대한 집념과 노력 등으로 일본인으로부터 ‘가죽고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1940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47년엔 “연료 대책이 시급하고, 더 이상 산림이 황폐화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대구 칠성동에서 연탄회사인 대성산업공사를 설립했다. 김 창업주의 성격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대성그룹이 보유한 경북 문경새재 주흘산 수백만평을 관광지역으로 개발하자는 권유가 많았었지만 그는 번번이 거절했다. 연탄사업을 벌인 것은 황폐화하는 삼림을 보호하자는 뜻이 컸다는 이유에서였다. 주흘산 입구엔 “대성그룹은 청정 산림지역을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고자 한다.”는 내용의 푯말이 있다. 또 김 창업주는 출장을 갔다 오면 영수증 한 장까지도 빠짐없이 챙기고, 경비가 남으면 회사에 고스란히 넘겼다. 뿐만 아니라 외국 호텔 객실에서 쓰고 남은 일회용 비누를 “집에서 면도할 때 쓰면 좋겠다.”며 가방에 넣어 오기도 했다. 정치권 압력에도 초연했다고 한다. 대성이 정치적으로 스캔들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창업주는 친구였던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의 정치헌금을 거절해 세무조사를 받았을 정도였다. 경영철학도 남달랐다. 그는 무엇보다 ‘번 만큼만 투자한다.’는 경영론을 일관되게 지켰다. 그래서 한 우물만 파는 경영이 가능했다.“하나라도 제대로 하자.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경영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그의 경영철학은 ‘대기만성’의 약자인 ‘대성’이라는 그룹의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아들 3형제에게 ‘투명 경영’을 유훈으로 남긴 일화는 유명하다.“기업이 내 소유란 생각을 버려라. 또한 이사회를 사장의 들러리로 만들지 마라. 기업이 이익을 못 내면 죄악이니 이익을 못낼 때는 과감히 전문경영인을 써라. 국민의 사랑을 못 받을망정 지탄받는 기업은 되지 마라.” 이런 김 창업주의 철학은 대성을 남의 돈을 안 쓰는 튼실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조촐한 혼맥의 ‘교회 인연’ 김 창업주가(家)의 혼맥은 한때 내로라했던 재벌가(家)치고 매우 단출하다.2세들 가운데 중매 결혼이 적지 않았지만 정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방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영훈 회장은 이와 관련, “지인들을 도와주기는 하겠지만 덕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 부친의 확고한 뜻이었다.”고 말했다. 김 창업주는 1942년 여귀옥(83)씨와 혼례를 치렀다. 이들의 인연은 대구 ‘남산교회’에서 맺어졌다. 김 창업주의 모친인 기묘임(작고) 여사와 여씨의 모친인 최성연(작고) 여사가 대구 남산교회의 신도였다. 그렇다고 결혼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김 창업주는 당시 대구상고를 중퇴해 가족 생계를 위해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던 반면 여씨는 당시 대구 신명여고를 졸업하고, 평양여자신학교를 수료한 ‘신 여성’이었다. 또 여씨 집안은 대구에서 유명한 기독교 집안이자, 명망가(家)였다. 그러나 여씨의 모친인 최 여사는 “내가 딸이 둘이면 하나는 부잣집에, 하나는 인격을 보고 하겠는데 단 하나밖에 없으니 인격을 보아야겠다.”면서 주변의 반대를 물리고 김 창업주를 사위로 맞았다고 했다. 김 창업주와 여씨는 슬하에 4남3녀를 뒀다. 이 가운데 4남 영철군이 73년 교통사고로 숨졌다. 장남 김영대(64) 회장은 모친의 친구 소개로 71년 법조인 차영조 변호사의 딸 정현(57)씨와 결혼했다. 정현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김 회장 부부는 정한(34)-인한(33)-신한(31) 등 3형제를 두고 있다. 장남인 정한씨는 현재 대성산업 기계사업·해외자원개발부 상무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97년 서울 덕수교회에서 대원외고 동창인 전성은(33)씨와 결혼했다. 성은씨의 부친인 전경호 서한모방 회장은 김 회장과 경북사대부고 동기동창이다. 차남 인한씨는 미국 버지니아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과 후배인 이내리(28)씨와 2002년 서울 덕수교회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막내 신한씨는 지난해 말 병역특례를 마치고, 현재 경영수업을 준비 중이다. 그는 미시간대 컴퓨터공학 석사 출신이다. 차남 김영민(61) SCG그룹 회장은 79년 친지의 소개로 서울대 음대(성악과)를 나온 민명옥(51)씨와 인연을 맺었다. 명옥씨의 부친은 전 유화증권 사장을 지낸 민유봉씨이다. 김 회장 부부는 은혜(26)-요한(24)-종한(17) 등 2남1녀를 두고 있다. 3남 김영훈 회장은 93년 박영창 목사의 소개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차녀인 김정윤(37)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의한(12)-은진(9)-의진(6) 등이 있다. 장녀 김영주(58) 대성닷컴 부회장은 75년 서울대 의대 출신인 내과전문의 신현정(61)씨와 인연을 맺었다. 현정씨는 현재 도시가스서비스회사인 ㈜알파서비스를 경영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기업인이자 화가로 유명하다. 이들 부부는 정희(30)-명철(29)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차녀 김정주(57) 대성닷컴 사장은 하버드대 신약학 박사 출신으로 연세대 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독신이다.3녀 김성주(50) 성주인터내셔날 사장은 하버드 동창생인 딘 고달드와 결혼해 딸 지혜(17)씨를 두고 있다. 김 창업주의 동생인 김의근(작고) 회장가(家)와 김문근(작고) 회장가(家)도 정·관계와 그다지 인연이 없다. 굳이 꼽는다면 재계에서 중견 기업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고 김의근 모토닉(옛 창원기화기공업) 회장은 양제선(81)씨 사이에 3남2녀를 뒀다. 장남인 영준(작고)씨를 통해 대한모방 회장을 지낸 김성섭가(家)와 사돈지간이다.3남인 김영목(50) 모토닉 부사장은 산업은행 부총재를 지낸 홍대식의 딸 홍은주(43)씨를 배필로 맞았다. 차남인 김영봉(53) 모토닉 사장은 평범한 은행원의 딸인 김혜옥(46)씨와 혼례를 치렀다. 김문근(작고) 전 대성광업개발 회장은 김정희(작고)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영범-영돈-은주-영천-영석 등 4남1녀를 뒀다. 장남인 영범씨는 최근 대성광업개발 회장직에 올랐다. 형제 모두 대성광업개발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성그룹의 분가는 3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매출 2조원을 넘는 대성은 고 김 창업주 생전에 동생인 김의근 회장이 2000년 7월 대성정기와 창원기화기공업의 경영권을 갖고 가장 먼저 ‘대성의 품’을 떠났다. 김의근 회장은 사실상 김 창업주와 동업 관계였다. 그는 김 창업주가 47년 연탄사업을 시작할 때 석탄 생산을 맡았고, 김 창업주는 제조와 판매를 책임졌다. 이어 2001년 4월에는 김 창업주의 막내 동생인 김문근(작고) 회장이 대성광업개발을 맡아 분가했다. 대구공고 출신인 김문근 전 회장은 대한중석 등에서 일하다 1950년대에 대성에 합류했다. 김 창업주 사후인 2001년 6월엔 영대·영민·영훈 등 아들 3형제가 다시 2차 세포분열을 통해 분가했다. 장남 김영대 회장이 모기업인 대성산업을, 차남인 김영민 회장이 서울도시가스 계열을,3남인 김영훈 회장이 대구도시가스 계열을 각각 맡았다. 그러나 분가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도 있었다. 주식 평가를 놓고 형제간 잡음이 일면서 재계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김영대 회장은 이와 관련해 “자신의 덕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8월엔 막내 김성주 사장이 이끄는 성주인터내셔날도 대성에서 떨어져 나갔다. 장남과 3남은 현재 ‘대성그룹´ 사명을 같이쓰고 있다. ●김영대 회장의 ‘인재론’ 김영대 회장은 대기업 회장답지 않게 사내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잘 나서지 않고 매우 조용하다. 그는 또 학구파다.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월·수·금요일은 일본어, 화·목·토요일은 중국어를 공부한다. 그의 경영 스타일은 안정과 보수로 대변된다. 이 때문에 간혹 김 회장 주변을 ‘경로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 회장의 비서인 전성희(63) 이사는 국내 비서계의 대모다. 김 회장을 모신 지 28년째다. 그의 비서 입문은 우연이었다고 한다.79년 미국 유학을 마친 남편과 함께 귀국했을 때 남편의 대학 친구였던 김 회장은 “미혼 비서를 뒀는데 모두 1년 정도하고 그만두더라. 어디 오래 근무할 아줌마 없느냐.”며 추천을 부탁했다. 결국 남편의 권유로 전 이사는 당시 세브란스 병원 약사모집 면접을 포기하고 대성에 들어가게 됐다. 전 이사는 이화여대 약대 출신이다. 김 회장의 운전기사인 정홍(64) 차량관리 과장도 40년 이상 김 회장을 모시고 있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환갑 기념 유럽여행을 같이 다녀오기도 했다. 사실상 신분을 넘어 지기(知己)인 셈이다. 또 대성 임직원들은 다른 그룹과 달리 60대 이상이 유난히 많다. 김 회장의 인재를 아끼는 스타일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샌님(?)같은 김 회장도 무서울 정도의 강한 집념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는 90년대 초 씨티은행으로부터 50억원을 불법 대출받아 가로챈 뒤 미국으로 도주한 직원을 직접 추적해 붙잡은 경험이 있다. 그가 쓴 ‘구름 속의 구만리’라는 추적기에서 “마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당시 10개월 동안 출장 9차례, 미 체류기간 200일, 미대륙 종횡단 9000마일, 만난 사람만도 100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는 50억원의 돈도 돈이지만 회사의 신용과 조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그 직원을 붙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더 컸다고 했다. 더욱이 일개 직원에게 거액의 수표를 무책임하게 내준 은행측으로부터 음모론까지 흘러나오면서 ‘대추적’을 결심했다. 대성그룹은 현재 3세 경영이 닻을 올렸다. 장남인 김 상무가 2002년 연구개발실장으로 입사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대성 부활’ 노래하는 3남 김영훈 회장 김영훈 회장은 조용한 말소리와 차분한 몸가짐, 설득조의 언어 구사 등에서 CEO보다 목사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어릴 적 꿈이 목사였다.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했으며, 영락교회에서 전도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늦장가를 갈 정도로 공부에 푹 빠져 살았다. 그가 받은 학위만도 법학, 경제, 경영, 신학 등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에 이어 미국 미시간대에서 법학·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하버드에서 신학과 국제경제학 석사 학위를 땄다. 기업 경영을 하면서도 그는 늘 책과 씨름하는 것이 취미다. 김 회장은 1988년 부친의 갑작스러운 부름을 받고, 대성산업 기획조정실장으로 경영의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 그는 경영인보다 목회자의 길을 걷기를 원했지만 부친의 ‘SOS’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계열분리 이후 대구도시가스를 주력으로 경북도시가스와 바이넥스창업투자 등 19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당시 에너지사업 일변도에서 지금은 문화사업을 차세대 ‘먹을 거리’로 마련해 대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다. 그는 창립 60주년을 한 해 앞둔 올해 2010년까지 매출 10조원, 순익 10억달러를 목표로 한 ’10·10·10’ 전략을 내놓았다. 옛 대성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김 회장의 야심찬 청사진이다. 2남 김영민 회장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스포츠 마니아이며 유머러스하다.ROTC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역사 교관으로 근무했다. 경북사대부고와 미국 댈러스대, 남가주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공주의 길’ 포기한 김성주 사장 막내딸 김성주 사장은 ‘별종’이다. 가문에서 그렇고, 사업에 있어서도 그렇다. 다른 형제들이 부모의 말씀이면 무조건 순응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반면 김 사장은 부모가 반대하는 일들을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그 대가로 그는 혹독한 고생을 경험했다. 송금이 끊겨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으며, 직장 생활도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사업에서도 ‘봉투’와 ‘접대’라는 그간의 사업 상식을 깨고 투명경영으로 남성 세계를 하나씩 깼다. 김 사장은 자기 힘으로 사업을 일군 여성 CEO가 드문 국내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첫손에 꼽힌다. 그는 훗날 성주인터내셔날을 창업한 배경에 대해 “살찐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해 탈출했다.”고 밝혔다. golders@seoul.co.kr ■ “우리집안은 아들보다 딸이 나아요” “우리 집안은 아들보다 딸이 나아요.” 대성가(家)의 2세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심지어 김영훈 회장은 대성의 차세대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키우는 문화사업을 이른바 ‘효자 사업’이 아니라 ‘효녀 사업’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여성들의 실력을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대성가(家)의 딸들은 하나같이 대단하다. 장녀 김영주 화백의 또다른 ‘명함’은 대성닷컴 부회장이며, 차녀 김정주 연세대 교수는 대성닷컴 사장직을 겸직하고 있다. 자매가 최고경영자(CEO)직을 맡은 것은 문화사업에 여성 특유의 세심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김 회장의 요청 때문. 김 부회장은 화가로서의 재능을 대성닷컴 출판사업에 톡톡히 쏟아내고 있다. 김 부회장이 책 표지 디자인을 혼자 다할 정도다. 김 사장은 그룹의 문화사업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김 화백은 서울대 미대를 수석으로 입학해 미국 크랜브룩 아카데미오브 아트 대학원을 나왔다. 김 교수는 미시간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자매는 모친에 이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절제회’ 활동에도 열심이다.1983년부터 세계기독교여자절제회 부회장을 번갈아가며 맡아오고 있을 정도다. 절제회는 종교를 초월해 각종 절제 운동을 펼치는 여성 단체. 국내에선 국산품 애용과 허례허식을 배격하는 운동을 벌였고, 최근엔 금연 운동과 임산부와 청소년 음주를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막내딸 김성주 사장은 자매 가운데 가장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성공한 여성 CEO로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김 사장은 1997년 세계경제포럼(WEF)의 차세대 지도자 100인, 세계여성지도자총회의 아시아 대표 연설자,2004년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의 ‘주목할 만 한 세계 여성 기업인 50명’에 선정되는 등 글로벌 CEO으로서 명성이 매우 높다. golders@seoul.co.kr ■ 2세들 ‘화려한 학벌’ 고 김수근 회장가(家)는 재계에서 ‘자식 농사’를 잘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3남3녀 모두 명문대 출신으로 2개 이상의 석사 학위 소지자들이다. 3남 김영훈 회장은 “모친 여귀옥 여사의 남다른 자식 교육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과 절제 등을 몸으로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모친은 ‘공부하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으며, 제가 미국에 유학갈 때도 편안하게 ‘놀다 오라.’는 당부까지 하셨다.”면서 “그러나 우리 형제는 모친의 바른 생활과 이웃사랑 등을 보면서 공부를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여 여사는 임신 중엔 태교를 위해 잡지나 신문을 보지 않고, 오직 성경만 보고 지냈다고 한다. 또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대했으며, 꾸지람보다 스스로 깨우치도록 유도했다. 대성가 2세들은 모두 대단한 학벌의 소유자이며,‘수석’을 곧잘 했다. 법학을 전공한 장남 김영대 회장은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차남 김영민 회장과 3남 김영훈 회장, 장녀 김영주 화백도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특히 김영훈 회장은 법학, 경제, 경영, 신학 등 석사 학위가 무려 4개다. 차녀 김정주 연세대 교수는 이화여대를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막내 김성주 사장은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앰허스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김영훈 회장은 “우리 형제는 어린 시절 학업에서 그다지 두각을 나타낸 편은 아니었다.”면서 “특히 정주 누나는 중학교 때 반에서 40등까지 했지만 우리 형제 가운데 공부를 가장 잘 했다.”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 아래 자녀를 키운 여 여사의 가르침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3세들도 부모 못지 않은 학구파다. 한편 여 여사는 결혼 후에도 영락교회 권사로서 활동했으며,52년에는 초교파적 기독교 여성단체인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를 설립했다. 현재 35개국이 가입해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종교사학도 대상… 시기 앞당겨

    감사원의 사립학교 특별감사는 정치권에서부터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학 비리의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가 공개된다는 점에서 폭발력을 갖는다. 과거의 사학 감사와는 차원이 다른 이번 특감에 당사자인 교육계 및 사학재단은 물론 정치권도 긴장하고 있다. 당초 감사원은 다음달부터 16개 시·도 교육청과 몇몇 ‘문제 사학’을 중심으로 재정감사를 벌인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전격적으로 감사 시기를 앞당겼으며, 감사 대상도 모든 사립 초·중·고교 및 대학으로 확대했다. 종교 사학을 제외하겠다던 그동안의 정부 방침에서도 벗어난 것이다. 감사 범위도 재정·회계뿐 아니라, 직무실태까지 넓혔다. 감사원은 지난 1991년 특례입학에 대한 제한적 직무감사,1995년 이후 4차례 재정·회계감사를 실시한 적이 있으나 사학운영 전반에 대한 감사는 유례가 없다. 감사원이 ‘예외없는 특감’으로 방향을 선회한 데는 최고 사정(司正)기구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가 발동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서 제기될 수 있는 ‘정치성 감사’ 논란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 특감’ 카드를 빼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번 특감에서는 예산 횡령이나 리베이트 수수 등 비리뿐만 아니라, 이를 매개로 이뤄지는 편법적인 입시·성적 관리 등 학생들에게 미칠 수 있는 직·간접적인 피해까지 칼날을 들이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 등 교육 당국도 감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감사원 이창환 사회복지감사국장은 “감사원 특별조사본부에 수집된 정보는 물론, 교육부나 교육청에 접수된 비리정보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의 사학 특감 결정에 교육 관련 단체들은 환영과 우려가 엇갈리는 분위기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민원 끓는 족벌사학 ‘손본다’

    정부가 사립학교에 대한 합동 특별감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히면서 감사 수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의 9일 기자회견을 보면 당초 예상과는 달리 감사 대상이 크게 줄었다. 시·도 교육감과 협의, 투명한 기준으로 선정하되 대상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전날 총리 주재로 열린 관계장관 회의에서 나온 강경 방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수위 조절은 사실상 ‘여의도’의 주문사항이었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아침 당정협의에서 종교계 사학감사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교육부에 당부했었다.‘개방형이사제를 도입, 건실하게 운영하고 있는 종교계 사학들이 비리 사학의 오명을 쓰거나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는 전면적이고 광범위한 감사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기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교육부 관계자도 “이번 감사는 청와대와 여당, 교육부가 이미 조율을 마친 것으로, 건전 사학과 구분해 비리 사학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소하자는 차원”이라면서 “사학 비리를 없앨 제도적인 예방 장치 마련이 취지이기 때문에 굳이 모든 사학을 대상으로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특감은 종교계 사학을 제외하고, 친인척 족벌 체제로 운영되는 사학 가운데 그동안 민원이 끊이지 않은 곳에 집중될 전망이다. 현재 전국 사립고는 전체 고교의 44.8%인 939곳. 이 가운데 종교계가 운영하는 학교는 가톨릭 22곳, 기독교 118곳, 불교와 민족종교 등 기타 종교 17곳 등 모두 157개교다. 교육부는 각 시·도 교육청별 비리 민원 및 현황을 취합, 비리 유형과 대상과 감사 방법 등을 조만간 최종 확정한다. 현재로선 교사 채용이나 학교 공사를 둘러싼 금품수수나 교비 횡령, 급식납품 비리 등을 주요 비리 유형으로 꼽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으로부터도 그동안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40여건의 사학 비리 관련 자료를 넘겨받았고 시·도 교육청별로도 관련 정보 수집에 들어갔다. 한편 2004년과 지난해까지 최근 2년간 전국 사립 초·중·고에 대한 감사결과, 각 시·도 교육청은 모두 1124곳을 감사해 7498건을 적발했다. 조치 유형별로는 재정상 조치가 147억 2700만원, 신분상 조치 1만 2569명, 행정상 조치 1635건 등이다. 교육부 김왕복 감사관은 “이미 감사받았거나 관선 이사가 파견된 곳도 이번에 다시 감사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의 감사는 교육청 감사이고, 이번에는 정부 차원의 합동감사로 별개의 차원”이라면서 “일단 정해진 기준에 따라 문제있다고 판단되는 곳은 다시 감사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감사를 거부하는 사학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처리하기로 했다. 사립학교가 시·도 교육청 감사를 거부하면 일단 시정요구를 한다. 이를 거부하면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고, 법인이사 승인취소, 관선이사 파견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더 이상 돌을 던지지 말라/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 동료들과 함께 금강산을 찾았습니다. 출발하면서 휴대전화도 안 되고 9시뉴스도 없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전화는 미리 수거를 하더이다. 그 바람에 그 지역 안에서는 일행 중 누군가가 없어져도 연락할 방도가 없어, 발로 직접 찾아 다니거나 나타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9시뉴스까지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숏커트에 관리된 표정의 서울대 연구처장이 중간발표를 읽어내렸고 이어서 황우석 교수가 사퇴성명을 하면서 ‘그 원천기술은 대한민국 것’이라는 말을 비장하게 덧붙였습니다. 이제 최종발표를 앞두고 눈밝은 열혈 누리꾼들은 ‘보이지 않는 손’의 기획의도를 읽어내기에 여념이 없는 것도 또 다른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천년 전쯤의 일이긴 합니다만 당시 율법에는 간음하다가 들킨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는 조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무렵 간음죄를 범하고서 광장으로 끌려나온 그녀에게 모두의 돌팔매질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지혜로운 선지자는 주변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너희들 중에 죄없는 자가 있다면 돌을 던지라.” 어제까지 한솥밥을 먹던 의·과학계 투석꾼들에게 ‘남의 티끌을 보기 전에 내 눈 안에 있는 들보나 제대로 보라.’는 말을 이 문외한이 보태주고 싶습니다. 연극배우 같은 천의 얼굴로 합종연횡을 일삼는 춘추전국시대의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을 능가하는 세치 혀를 가지고서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대부분의 언론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부활한 PD수첩은 이제 생명공학계의 메시아(?) 노릇까지 하고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국익보다 진실’ 운운하면서 박수를 칩니다. 또 다른 부류들은 이후 외국 학술지 논문 게재시 한국출신이라는 것이 장애가 될까봐 노심초사합니다. 그렇다면 국가로 인한 손해보다는 진실이 더 중요하다고 동의했다면 논문은 논문답게 실력과 진실성으로 승부를 겨루면 될 일입니다. 그걸 국가 때문이라면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참으로 비과학적 사고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한국인이라는 비과학적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주려는 해외 학술지가 있다면 설사 실어주겠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거절하는 것이 과학도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일 것입니다. 어느 외래종교의 상징적 원로께서 하신 말씀인 “한국사람이 세계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며… 한국인은 세계무대에서 정직하지 못하다는 눈총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대갈일성도 이 범주의 사고영역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지닙니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수십년 땀방울의 결과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인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조사를 바탕으로 당사자 역시 승복하는 결과로써 그 공로와 허물을 가려내고, 연구윤리를 재정립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혹여 감정적, 편파적 내지 정치적 조사위원회였다는 불명예로 역사에 기록될까봐 걱정스러운 마음도 함께 일어납니다. 더불어 황 교수가 가진 능력이 진정 가치있는 것이라면 그 능력이 사장되지 않도록 사회적 지혜를 함께 모아야 할 것입니다. 이 격렬한 탁류 속에서도 경기지사의 장기바이오센터 계속 추진과 함께 ‘다시 한번’이라는 그 마음 씀씀이는 한줄기 맑은 샘물처럼 인재를 아낄 줄 아는 사람의 청량음으로 들려옵니다. 이제 광기(狂氣)를 멈추고서 모두가 옳다고 하더라도 정말 옳은지 한번 더 생각해보고, 모두가 그르다고 할지라도 정말 그른지 한번 더 숙고해 보아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차가운 시절에도 흰눈조차 제대로 내리지 않은 금강산에서 온정각 광장 한 쪽에 서있는 정몽헌씨의 추모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정성 다해 두 손을 모읍니다. 온갖 사회적 모순을 혼자서 모두 짊어진 채 어쩔 수 없이 시대의 희생양이 된, 그동안 이 땅에서 살아왔던 모든 이들의 고뇌가 함께 읽혀져 옵니다. 원철 스님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장
  • [][2006년 경제운용 계획] 관심끄는 정책들

    [][2006년 경제운용 계획] 관심끄는 정책들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경제운용계획 중에는 기업형 사회적 일자리, 공영형 혁신학교,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 눈길을 끄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증권사를 통한 은행 입출금 부가서비스 이르면 2007년부터 증권계좌를 은행계좌처럼 쓸 수 있게 된다. 주식위탁계좌를 개설할 때 받은 증권카드로 모든 은행의 현금입출금기(ATM)를 사용,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지금도 개별 증권사가 특정 은행과 제휴를 맺어 사용이 가능했지만 영업시간에만 가능하고 일부 서비스는 안되는 불편이 있다. 주식위탁계좌가 급여이체나 신용카드 이용대금과 지로요금의 결제계좌가 될 수 있다. 증권·신탁·선물 등 모든 금융투자업무를 할 수 있는 금융투자회사가 대표기관을 통해 결제, 송금, 수시입출금 등 부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보충형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자기영상공명장치(MRI), 특진 등 국민건강보험이 지원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지원하는 보험이 많아질 전망이다. 현재 민간의료보험은 ‘암 진단시 몇천만원’식의 정액형이 주이며 고객들이 실제 낸 의료비를 보험금으로 주는 실손보험은 전체 민간의료보험시장의 10% 미만이다. 가입자의 손해(의료비)에 비례한 보험금 지급이어서 상품개발에 특정 질병 관련 통계가 필요하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이 갖고 있는 통계 중 개인진료기록을 제외한 정보를 민간보험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표준약관 등을 마련할 방침이다. ●기업형 사회적 일자리 간병인, 가사도우미, 공부방 보조교사 등 공익성만 강조된 사회적 일자리에 시장성을 가미, 기업화할 수 있도록 지원된다. 예컨대 간병인의 경우 저소득층은 일부 예산을 지원해 싸게 쓸 수 있게 하고 중산층은 시장가격을 적용, 자체 수익원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예산 지원방식으로는 쿠폰제가 유력하다. 취약계층에 대한 고용이나 서비스 제공 등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기업은 법인세 감면 등 재정지원까지 받으며 영리성이 큰 기업은 정부의 인증만 부여된다. 내년에 60억원으로 시범사업이 실시되며 ‘사회적 기업지원에 관한 법률(가칭)’도 만들어진다. ●자율형 공립학교(공영형 혁신학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금을 부담하지만 운영은 자립형 사립고에 준하는 자율성을 갖는 학교다. 교육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도입을 위한 제도적 준비를 마치고 2007년부터 시·도별로 1개씩 시범운영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운영비는 교육감과 지방자치단체, 학부모가 3분의1씩 나눠 부담한다. 운영은 교육부나 각 시·도교육청이 될 인가권자와 협약을 맺은 학교법인, 종교단체, 비영리법인, 공모교장, 지방자치단체 등이 맡는다. 학생선발, 교직인사, 교과서 선택 등에 있어 자율성을 갖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 교육과정은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외에는 자율적으로 결정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0) 예언에 관한 일화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0) 예언에 관한 일화

    ‘정감록’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끝이 없다. 주제를 40개 정도로 나눠 일년 가까이 연재를 해왔지만 손길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아직도 많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예언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들이다. 그 중엔 그냥 버려두기 아까운 것이 꽤 많아 몇 가지를 간추려 보았다. 특히 암울했던 일제시대엔 독립을 향한 민중의 염원이 간절해서인지 각종 예언과 관련된 일화가 많았다. 또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동학과 관련된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예언에서 찾은 조선독립의 희망 1920년대에는 천도교가 예언과 관련해 많은 일화를 남겼다. 천도교는 동학의 후신이라 이상세계의 실현에 대한 믿음이 유달리 강했다. 당시 교단 지도부는 재정에 충실을 기하려고 성미(誠米) 적립운동을 펼쳤는데, 성미운동에서도 예언이 등장했다. 대강 이런 식이었다. 천도교 신도는 성심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끼니 때마다 가족 수만큼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 교단에 바쳐야 된다고 했다. 하늘은 성미가 많고 적음에 따라 신도들의 성심을 상중하로 판단해 장부에 기재하므로, 성심이 깊으면 복을 많이 받지만 적거나 없으면 벌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교단에 따르면, 교조 최제우는 동학이 창건된 지 61주년째 되는 1920년 한국에 갱생한다 했다. 세상에 다시 내려온 최제우는 오만 년 무극대도(無極大道)를 펼쳐 전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연맹을 대신해 세계정부를 세운다 했다. 이것은 정말 믿기 어려운 예언이었다. 기독교의 재림예수이야기를 방불케 한다. 천도교 신도들은 교단의 가르침을 성심껏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했다. 그들 각자가 바치는 정성은 하늘을 감복시켜, 성미를 많이 바친 이는 새 세상에서 고위관직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본인은 물론, 자손들까지도 무한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르침은 통했다.1920년경 천도교 측이 거둔 성미 수입은 당시 화폐로 수십만 원이나 되었다. 참고로, 일제말기 초등학교 교원의 초임은 45원에 불과했다. 천도교의 성미운동을 식민지 당국은 사기적인 약탈행위로 간주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성미는 물론 천도교단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되었으나, 그 상당부분은 독립운동과 계몽운동에 투입되었다.1919년의 3·1운동 때도 천도교 측은 운동자금의 대부분을 부담했다. 그 뒤에도 천도교 측은 ‘개벽’과 같이 선진적인 계몽잡지를 발간했고 농촌운동을 일으켰다. 기꺼이 성미를 적립했던 신도들도 마음속으로 조선독립을 꿈꾸고 있었다. 심지어 천도교의 곁가지인 무극대도교나 상제교 측도 그러했다. 무극대도교는 일제의 보안법을 자주 위반한 것으로 유명했다. 상제교도 교주 김연국이 상제로부터 홍서(紅書)를 받았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었다. 또 다른 일파인 수운교도 교조 최제우를 부처의 후신으로 보았다. 이들 교단은 여러 예언을 동원해 곧 지상천국이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지상천국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독립을 기본전제로 했다. 일제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런 신종교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감언이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실상 그것은 단순한 감언이설이 아니었다.“이 교단”은 혁명 즉, 정권창출에 성공할 것이고 따라서 새로운 정치지도자를 배출하게 되며,“이 교”에 입교해 신앙 활동을 잘 하면 생활이 안정되고 새로운 정치지배세력의 일원이 된다는 확신이 뚜렷했다. 이미 언급한 천도교 등 여러 신종교들을 비롯해 보천교, 금강도 및 청림교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역시 기존 예언서인 ‘정감록’을 중시했고, 거기에 자기네 나름으로 새 예언을 덧붙였다. 심지어 전혀 이름조차 없는 소규모 단체들도 ‘정감록’에 기대어 독립을 점쳤다.1931년 3월31일,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경찰서 고등계는 경북 상주와 문경 등지에 사는 평범한 남녀 주민 4명을 보안법 위반자로 검거했다. 당시 40∼50대 나이로 장년층에 속했던 이들은 조선독립을 목표로 비밀결사를 조직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들은 ‘정감록’의 한 구절,“땅값이 똥값이 되며 천 마리 말이 소가죽을 입는다.(土價如糞 馬千牛服)”라는 대목을 장차 반드시 일어날 미래의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해석은 특이했다. 장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10년간 지속된다고 보았고, 결과적으로 일본은 멸망하고 조선독립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 된다 했다. 우연한 일이지만 이 예언은 거의 들어맞았다.1939년 제2차대전이 터졌고,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일본은 연합국 측에 패전해 무조건 항복했으며, 마침내 한국은 해방되었다. 그런 주장을 펼치던 사람들은 ‘정감록’ 예언을 따라 십승지를 찾아갔다. 그들은 경북 상주군 화북면 중대리에 있는 우복동에 주목했다. 거기 피난처를 정한 다음, 그들은 조선독립을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1928년 5월, 우복동에서 결사를 맺고 사찰을 지어 승려로 가장했다. 이웃한 지역사회에서는 그들의 취지에 공감해 사찰건립기금을 낸 사람이 20명가량이나 되었다. 우복동의 ‘선민’들은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진인 정씨의 출현을 기다리며, 그 때 긴요하게 쓰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종교 교육활동에 몰두했다 한다. 사실 19세기 이후 한국에는 수많은 예언이 난무했다. 그 중엔 ‘정감록’에 전혀 나오지 않는 예언도 많았다.1933년 8월21일, 충청북도 영동 출신의 박모라는 사람은 그동안 누구도 풀이하지 못한 예언시를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그 일부가 우연히도 사실로 입증되었다. 문제의 예언시는 첫 구절이 이러했다.“봄날 나무에서 원숭이가 우니 귀신도 알지 못한다.”(猿啼春樹鬼不知)는 것이다. 박 도사는 여기 나오는 원숭이(猿)를 임신년 즉 1932년으로 간주했고, 그 해 3월 만주국이 창건될 것을 예견한 시라고 주장했다. 시의 둘째 구절은 “비바람이 치는 날 닭이 울 때”(一天風雨鷄鳴時)라 했다. 박 씨는 닭이 울 때(鷄鳴時)를 계유년(1933)으로 상정했다. 그 해에 만주국의 주권을 둘러싸고 국제회의가 열린다고 예견했다. 회의에서 일본이 만주를 불법 점령한 사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며, 그 결과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내다보았다. 엄밀한 의미로, 이것은 틀린 해석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만주국의 성립은 장차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리란 예고편이었다. 그 전쟁이 확대되어 마침내 1939년, 세계 제2차대전으로 번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박씨의 예언 풀이는 제법 타당한 점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예언시의 마지막 부분은 “만국이 진을 이루고 개가 울 때” (萬國成陳犬吠時)란 구절이었다. 박씨는 이 구절에 대해,“개가 울 때”(犬吠時)는 갑술년(1934)이며 만주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세계전쟁이 유발되고 악성 전염병이 유행한다는 뜻이라 했다. 그러나 그 말대로 1934년에 무슨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식민지 시대 말기에는 일본의 패망을 예언한 대본교(大本敎) 같은 신종교도 있었다. 그 교주 왕인은 1945년에 “국체변혁”(國體變革), 즉 일본이 망한다는 예언을 내놓았다. 그의 위험한 발언이 나오기가 무섭게 식민지 당국은 대본교의 교당을 헐어버렸다. 왕인 등 교단 지도부도 몽땅 체포했다. 본래 왕인이란 사람은 농부였다. 그런데 예언능력이 탁월해 신종교의 교주가 된 것이다. 그는 교당의 터를 잡을 때 여기를 파면 반석같이 큰 바위가 나오리라 예언했다. 과연 그 말 대로였다. 세상 사람들은 왕인이 땅속까지 꿰뚫어보고 일제의 패망을 예견할 만큼 형안을 가졌으면서도, 자기 교당이 허물어질 줄은 미처 내다보지 못했다며 비웃었다. 중요한 사실은 평범한 개인이든, 크고 작은 신종교 단체든 일제시기 내내 많은 한국인들이 늘 조선독립을 점쳤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예언은 대부분 ‘정감록’을 토대로 했다.‘정감록’은 민중의 희망이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동학과 정감록-최제우, 동학정신에 정감록 ‘弓弓乙乙’ 담아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정감록’에 대해 미묘한 태도를 보였다. 동학경전을 읽어보면 그는 정감록을 믿는 것 같으면서 부정하고,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믿는 것 같다. 그가 “기이한 동국 참서”, 즉 ‘정감록’을 손에 쥐고 들려준 가르침을 좀 풀어보면 이렇다. 과거 임진왜란 때는 이재송송(利在松松 이여송 형제가 도움이 됐다)이라 하였고, 가산 정주 서적(西賊 홍경래 난)때는 이재가가(利在家家 가만히 집에 있는 것이 좋았다)라고 ‘정감록’ 등에 기록돼 있지. 다 맞는 말이었네. 그런 선례를 본받아 우리의 미래도 한번 설계해 보세. 앞으로 세상을 제대로 살려면 ‘정감록’에 나오는 구절이네만 이재궁궁(利在弓弓 궁궁이 유리하다)을 알아내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봐야 하네. 매관매직을 일삼는 세도가들도 그 마음은 오직 궁궁에 있는 듯하고, 돈 많은 부자들도 궁궁만 찾고 있네. 거지들도 궁궁, 풍수에 미친 사람들도 궁궁촌을 찾아 더러 깊은 산중으로 들어간다네. 더러는 서학(西學 천주교)에 입교해 그것이 궁궁인 줄로 믿고들 있지. 세상 사람들이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는 것이 몽땅 궁궁에 관한 것뿐이네. 그러나 제 몸을 닦고, 집안일을 바로 다스리지 않은 사람이 강산을 찾아가면 뭐하나. 경박한 세상 사람들 같으니! 다들 이익이 송송(松松)이니 가가(家家)에 있다고 한 말뜻은 겨우 알아낸 듯하지만 정작 궁궁이 무엇인줄은 전혀 모르고 있군. 최제우는 자신이 발견해낸 종교적 진리가 바로 궁궁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의 가르침을 “무극대도”라 불렀고, 앞으로 5만년간의 태평시절이 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감록’에 적힌 궁궁을을(弓弓乙乙)이란 구절에 모든 진리가 압축돼 있다고 생각했다. 이 구절에 입각해 그는 궁을부(弓乙符)를 만들었다. 이 부적을 몸에 붙이면 상처가 생기지 않고, 이것을 불살라 먹으면 만병이 사라진다고 최제우는 가르쳤다. 그러다 고종1년(1864)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동학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 그가 죽은 지 30년이 되던 갑오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군들의 깃발에는 ‘오만년수운대의´(五萬年水雲大義)란 글귀가 높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수운, 즉 최제우가 설파한 5만년 이상세계의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요컨대 궁을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겠단 것이었다. 고종30년(1894)에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을 전후해 민간에 여러가지 노래가 유행했다. 단순한 노랫가락이 아니라 요참(謠讖), 즉 노래형태를 빈 예언이었다. 더러는 일제시대까지도 남아 인구에 회자되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간다.(甲午歲 甲午歲 乙未 乙未 丙申되면 못 간다)” 기왕 일을 벌이려거든 갑오년(1894)에 서울까지 밀고 올라가서 일을 마무리지어야지, 그렇지 않고 우물쭈물하다 을미년이나 병신년까지 지연되면 실패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 예언 노래는 갑오 동학농민운동 당시 김개남 등 급진파 측에서 퍼뜨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운동이 실패로 끝난 다음, 뒤늦은 후회를 예언의 형태로 담아냈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동학농민군이 서둘러 서울로 진격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남원 방면을 공략하다 뜻밖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 사실과 관련이 있다. 운봉 아전 박봉양이 이끈 반항세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의 저항은 요참에도 담겨 있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아랫녘 새야, 윗녘 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하루박(하눌타리), 후-여!” 전라도 고부 출신 녹두장군 전봉준은 ‘하루박´으로 표현되는 박봉양에게 밀린다는 말이다. 참시에서 저항세력을 하눌타리 또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박씨라고 일컬은 점은 재미있다. 이런 비유로 볼 때 노래를 만든 이나 부른 이는 농민군 편이었다. 노랫말에 보이는 “후-여”는 새 쫓을 때 내는 소리다. 녹두새 전봉준에게 미리 경고해 농민군이 남원쪽으로 움직이지 말게 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느껴진다. 알다시피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배했다. 이로써 운동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전봉준과 김개남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수많은 농민군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은 것도 물론이다. 이런 동학농민군들의 비원을 담은 노래는 한둘이 아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란 노래였다. 전봉준을 녹두꽃에 비유해 그의 죽음이 곧 민중의 비극이란 것이다. 그밖에 “솔잎과 댓잎이 파르라니 봄인 줄 알고 찾아 왔는데, 흰눈이 펄펄 흩날리니 송죽이 나를 속였었구나.”란 노래도 널리 유행했다. 솔잎과 댓잎만 보고 겨울을 봄으로 착각했다는 가사는, 농학농민군이 시세판단을 잘못해 너무 일찍 군대를 일으켰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농민군의 준비부족을 한탄한 것이다. 이들 가요는 내용을 가지고 보면 농민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그 편에서 만들어 부른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나 노래를 채집한 이은상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제시대 민중은 이 노래들을 후일담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모든 노래가 운동이 발생하기 전에 유행한 예언이었다고 믿었다. 민중은 동학농민운동의 최고지도자 전봉준에게 특별한 예지력이 있다고도 생각했다.1894년 음력 4월경 전라감사 김문현은 농민군을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 전봉준을 암살하려고 했다. 그는 자객 2명을 밀파했다. 자객들은 담배장사로 변장해 전봉준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신분이 탄로되어 붙들리고 말았다. 전봉준은 점술에 밝았기 때문이다. 점괘를 던져본 그는 자객이 온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고 한다. 믿고 따를 지도자라면 당연히 예언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민중은 생각했다. 요즘도 연말이 되면 국가기관이나 공신력을 자랑하는 주요연구소에선 다음해의 경제성장을 전망하곤 한다. 이런 예언, 예시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필수조건인 모양이다.
  • [사설] 한나라, 예산심의 포기할 건가

    비정상이 정상인 듯 비치는 대표사례가 국회의 예산안 처리 일정이다.1980년대 말부터는 헌법을 지켜 12월2일 이전에 예산안이 통과되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가 되었다. 지난해에는 12월31일 밤12시에 예산안을 확정했다. 악습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예산안 처리가 얼마나 더 지체될지 우려스럽다. 이번에는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으로 첫 준예산이 편성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은 최근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부처 집행계획, 지방자치단체 예산확정이 지연되면서 산하기관과 일반기업에 영향을 미쳐 경제에 주는 폐해가 크다고 밝혔다. 학자들도 재정을 통한 경기활성화와 일자리창출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많은 공무원들이 바쁜 연말 예산심의 준비로 다른 업무는 손을 놓고 있다. 대다수가 12월31일에라도 예산안이 통과되면 새해 업무가 그런대로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처리 지연 때의 손실액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국민들의 경각심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임시국회를 외면하고 장외투쟁에 돌입한 한나라당은 서울집회에 이어 어제는 부산에서 사학법개정 무효를 주장하는 장외집회를 가졌다.22일 수원에 이어 연말까지 인천·대구·대전 순회집회를 계획중이다. 제1야당 없이 예산심의가 이뤄지거나, 자칫 예산안 처리가 해를 넘길 수 있다. 우리는 사학법 개정이 장외투쟁을 열어 반대할 만큼 명분없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혔다. 한나라당은 빨리 국회로 돌아와야 한다. 사학법 개정의 문제점이 있다면 원내에서 보완하는 것이 옳다. 결연한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집회 개최는 한나라당의 선택이겠지만, 예산 심의를 방기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예산안과 자이툰부대 파병연장동의안을 연내에 처리하지 못했을 경우에 생길 국가적 혼란을 냉정하게 그려보기 바란다. 열린우리당은 단독국회 으름장에 앞서 여야 대화 통로를 열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는 종교계 지도자를 만날 용의를 피력했다. 여야 지도부 청와대 회동을 검토해야 한다.
  • 부시 “내년부터 이라크 점진 철군”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갈수록 높아가는 이라크 철수 여론에 맞서 30일 향후의 이라크 정책을 담은 35쪽짜리 ‘이라크에서의 승리를 위한 국가 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부시 대통령은 새로운 이라크 전략 보고서를 통해 “16만명에 이르는 이라크 주둔군은 내년에 이라크 정세와 이라크 보안군의 상황에 따라 점진적으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어떤 전쟁도 일정표에 따라 승리한 적이 없다.”고 민주당 일부에서 제기되는 즉각적인 철수론에 반박하고 “일정표가 없다는 것이 계속 머무르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주둔군의 철수를 앞당길 수 있도록 이라크 군과 경찰을 훈련하는 데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미 국방부는 내년에 ▲이라크군 훈련 ▲이라크군 장비 구입 ▲이라크군 유니폼 교체 ▲이라크 경찰서 건설을 위해 39억 달러(약 4조원)의 예산을 요청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에 앞서 미 의회는 이라크 보안군 육성을 위한 107억 달러의 예산을 이미 승인한 바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해군사관학교 연설을 통해 이라크 전략 보고서에 담긴 내용을 설명하고 “이라크에서의 정치적 목표는 민주적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을 소외시키고 가능한 많은 이라크인을 정치 과정에 합류시켜 안정적인 국가기관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주둔군이 줄어들어도 강력한 전력을 갖게될 것이며 어디에서든 테러리스트들과 맞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에서 실패할 경우 ▲이라크가 테러리스트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며 ▲중동의 개혁주의자들이 미국을 믿지 못하게 되고 ▲이라크가 종교적, 지역적으로 갈라진 혼란에 빠지게 되면 결국 미국의 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경고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우리의 임무는 이라크에서 승리하는 것”이라면서 “임무가 완성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정책 보고서를 내놓은 것은 이라크에서의 미군 사망자가 2100명을 넘어서면서도 이라크 정세가 안정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라크전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즉각 철수론’까지 제기됐다. 또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의 병력 감축을 검토하게 된 것은 16만명에 이르는 현 주둔군을 유지하기 위해 매달 60억 달러(약 6조원)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최근 몇년간 사상최대의 재정 및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같은 전쟁비용을 계속 감당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dawn@seoul.co.kr
  • 자연으로의 회귀 ‘수목장’ 관심 증폭

    자연으로의 회귀 ‘수목장’ 관심 증폭

    ‘자연으로 아름다운 회귀(回歸).’장례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수목장(樹木葬)에 대한 사회적,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9월 타계한 고려대 김장수 교수의 첫 수목장이 소개되면서 신선한 충격이 됐다. 지난 23일 전남 장성군 서삼면 모암리 삼나무·편백숲에서는 평생을 나무와 함께 한 고(故) 임종국 선생의 수목장이 치러졌다.1987년 전북 순창의 선영에 안장됐던 임씨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자 산림청과 유가족들이 뜻을 모아 일생 동안 키워온 또 다른 자식(?)의 품으로 모셔온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수목장을 제도적으로 활성화시키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수목장에 대한 서약자가 나오고 있는 한편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캠페인도 벌일 채비도 갖추고 있다. ●현행법상 수목장은 불법? 수목장은 시신을 화장해 골분(骨粉)을 나무 밑에 묻는 자연친화적 장묘방식이다. 울타리나 비석 등 인공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기에 이름 석자가 적힌 팻말만 세워질 뿐이다. 그러나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명문규정이 없어 누구나,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7일 “법적 근거는 명확지 않지만 요건을 갖췄을 경우 매장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목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현재 산림청은 산지관리법 개정안과 내년 시행되는 산림자원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수목장림 조성을 명시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수목장을 명문화한 장사법 개정안을 빠르면 연내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수목장은 묘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 전체 분묘는 2000여만기로 추산된다. 이를 면적으로 환산했을 때 약 998㎢에 달한다. 이는 국토면적(9만 9600㎢)의 1%, 서울시(605㎢) 면적의 1.6배에 이른다. 더욱이 해마다 18만기의 묘지와 납골묘가 조성돼 여의도 면적(840ha)의 산림이 훼손되고 있다. 이처럼 기존 장사법은 산지의 잠식과 함께 대형화되고 사치스러워지면서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수목장은 국토 보존과 무리한 장례비용으로 인한 과소비 억제 등 현실적인 성과 외에도 숲가꾸기의 의미 등 다양한 사회적 효과도 기대된다. 화장의 확산도 수목장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2003년 현재 화장률은 46.4%에 달한다. 이같은 추세라면 2020년께 75∼85%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화장유골 처리는 납골이나 산골(산이나 강에 뿌리는 자연장) 방식이 주로 사용되지만 호화로운 납골당 등이 등장하면서 또다른 문제점을 낳고 있다. 김용한 산지보전협회 사무총장은 “수목장 개념이 설정된 만큼 실행을 위한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면서 “납골당에서 경험했듯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산림부서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추모목은 10년생 소나무 등이 좋아 산림청은 산림·장례·종교·환경전문가 등이 참여한 가운데 해외 사례를 우리 문화와 환경에 맞춰 재정립한 한국형 수목장 모형을 만들었다. 이를 기준삼아 수목장림 조성 후보지 선정작업을 벌여 현재 10여개의 국유림을 발굴했고 연말까지 확정할 계획이다. 수목장 부지는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호화·사치 우려를 없애기 위해 기존 산림에 조성하는 방법(산림형)이 권장되고 있다. 유럽 공원묘지형은 일반인도 사업이 쉬워 호화·대형화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소유주 변동이 적고 체계적인 산지관리가 가능한 국·공유림,30∼50㏊가 적정규모로 제시됐다. 추모목은 구입 및 관리 편의성이 좋고 가격이 저렴한 소나무와 느티나무, 은행나무 같은 교목(喬木)으로 고목보다 10년생 정도의 나무가 추천되고 있다. 또한 식재보다 자라고 있는 나무를 이용할 것을 권장한다. ●정착 때까지 개인·수익단체 사업 불허 이외에 부착물은 수목장의 취지를 살리고 님비현상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일정표지 이외의 시설물을 일절 설치하지 않는 것을 제시했다. 수목장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수목장림 사업도 유망 업종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자체들도 수목장림 조성사업에 뛰어들고 있어 벌써부터 부실업체 난립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또한 골분을 집단처리할 경우 환경오염 문제의 불가피성 문제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산림청은 수목장이 정착될 때까지 개인 및 사설·수익단체에 대한 사업승인을 불허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국가나 지자체·공공기관 등이 시범림을 조성, 운영한 후 모델을 정립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합법적인 수목장은 빨라야 2007년쯤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광수 산림청 산림자원국장은 “수목장이 바람직한 장묘문화로 추천되고 있지만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면서 “무엇보다 국민 설득과 이해가 필요하고 초창기 올바른 모델 정립이 요구돼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비용은 얼마나? 수목장 비용은 얼마나 들까? 산림조합중앙회가 수목장림과 다른 장법의 비용을 비교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추모목 1그루의 평균 가격은 156만 7000원으로 추산됐다. 추모목 1그루당 5인이 합장되는 것을 기준으로 환산시 1인당 비용은 19만∼39만원 수준이다. 이는 1㏊당 나무 수가 200∼400그루로 산정됐고 초기 조성비와 관리비(25년간)가 포함된 금액이다. 그러나 이윤이 포함되는 사유림 및 산속에 조성되는 수목장림을 이용할 경우, 비용은 좀더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과 영국이 500만∼600만원, 독일과 스위스의 450만원과 비교할 때 저렴한 수준이다. 현재 국내에서 이용되는 장법별 1인 기준 비용은 매장이 179만∼545만원, 납골묘 52만∼105만원, 납골당 39만∼347만원이다. 이에 따라 수목장림 도입시 타 장법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뿐만 아니라 저렴한 장묘서비스 등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수목장 예찬론자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장묘문화 대안으로 정부 차원에서 적극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외국에선 어떻게 스위스와 독일·영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개혁 정책의 하나로 수목장이 활성화돼 있다. 수목장은 1999년 스위스에서 시작된, 장묘방식이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수목장림 관리 및 운영기술이 특허 등록되기도 한다. 초기 수목장은 새로 나무를 심는 방법으로 치러졌으나 신규 식재의 경우 4월과 11월만 가능하고 나무의 고사가 많아 기존 나무를 활용하는 것으로 개념이 전환됐다. 현재 스위스에는 도입 6년 만에 25개 주에서 55곳의 수목장림이 운영되는 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수목장을 하기 전인 생전에 추모목을 구입한다. 수목장림 형태도 울창한 숲뿐 아니라 정원·동산 등이 다양하게 활용된다. 어떠한 경우든 철저히 자연 상태로 살린다는 원칙을 준수, 어떤 시설물 설치도 허용되지 않고 골분도 그대로 파묻고 있다. 추모목은 99년간 관리되며 이 기간 산주나 지방정부는 추모목을 베거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 추모목은 개인부터 가족, 친지, 공동추모목 등으로 다양하다. 2001년 11월 첫 수목장림이 마련된 독일은 장묘와 임업경영 결합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아이디어는 스위스를 모델로 하고 있지만 발전속도는 오히려 스위스를 능가한다. 독일 수목장림은 대규모(50∼100㏊)로 조성되고 정부가 인허가권을 행사한다. 옥수수와 밀을 사용한 분해성 유골함을 사용하는 격식도 갖췄다. 규모가 크다 보니 안내판을 비롯, 휴식의자, 산책로가 조성되고 주차장, 화장실, 쓰레기통까지 설치돼 있다. 산주는 임야를 제공하고 임대료를 받으며 행정관리는 전문기업, 수목관리는 산림관리소가 맡는다. 조성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특히 지역 시민단체의 협의가 이뤄진 경우에만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영국의 수목장은 공원묘지 시설 내에서 이뤄진다. 추모목도 교목에서 관목, 초본류(잔디)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유골을 묻거나 뿌리기도 하고 고인을 기리는 묘비석이나 표찰을 지면부에 설치할 수도 있다. 가톨릭 전통으로 매장 위주 장묘문화가 형성된 프랑스는 집단산골 형태로 지정된 구역에 분골을 뿌리는 방식이다. 산골장소는 ‘추억의 정원’으로 불리며 공동묘지내 설치된다. 스웨덴도 프랑스와 비슷한 형태이나 산골은 유족이 아닌 묘지관리소 직원이 담당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부 종교시설 등에서 신도만을 대상으로 수목장이 이뤄진다. 사찰인 경북 영천시 은해사는 일본식, 용미리 추모공원은 스웨덴식 집단산골, 온누리공원은 영·중국식으로 행해지고 잇다.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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