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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 곳곳에 ‘다윗의 별’…“히틀러가 네타냐후보다 낫다” 독일 경찰 수사

    파리 곳곳에 ‘다윗의 별’…“히틀러가 네타냐후보다 낫다” 독일 경찰 수사

    프랑스 파리의 건물 곳곳에 유대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이 수십 개 그려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프랑스 BFM TV 등의 보도에 따르면 전날 밤부터 31일(현지시간) 새벽 사이 파리 14구의 아파트와 은행 건물 곳곳에 약 60개의 다윗의 별이 파란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칠해졌다. 전날 파리 외곽 생투앵, 오베르빌리에, 이시레물리노에서도 비슷한 그림이 발견됐다. 다윗의 별은 유대인과 유대교를 상징하는 표식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자행한 독일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집단 수용하면서 노란색 다윗의 별을 달도록 했다. 14구에 사는 안느라는 이름의 주민은 엑스(X, 옛 트위터)에 관련 사진을 올리며 “치욕스러운 아침”이라면서 “이것은 단순한 태그가 아니라 역사, 민주주의, 공화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했다. ‘다윗의 별’이 그려진 건물의 관리인인 엘리자베트도 “여기선 다른 사람의 종교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모두가 잘 지내고 있다”며 “23년간 이 건물에서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다윗의 별’을 발견하자마자 경찰에 신고했다는 그는 “저는 유대인도 아니고 종교도 없지만, 정말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카린 프티 14구청장은 성명을 발표해 “이런 딱지 붙이기는 1930년대와 2차 대전에서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방법을 연상시킨다”고 비난하며 주동자들을 찾아내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레망 본 교통부 장관은 이날 LCI 방송에 출연해 “이 이미지는 우리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간을 연상시킨다”며 “우리는 사소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유대인 거주지나 모임 장소 등에 대한 보호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 검찰청은 “출신, 인종, 민족 또는 종교적 이유로 타인의 재산을 훼손한 혐의”에 대해 관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충돌을 계기로 반유대주의 움직임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금까지 819건의 반유대주의 행위가 신고됐으며 414명이 체포됐다. 유대인 후손인 야엘 브룬 피베 프랑스 하원 의장은 참수하겠다는 협박 편지를 받아 경찰에 신고했고, 지난 27일 파리 내 이스라엘 대사관엔 흰색 가루가 담긴 익명의 소포가 배달됐다. 이날 오전 파리의 기차역에서는 한 여성이 폭발 위협을 가해 경찰이 총을 쏴 제지했다. 이 여성은 중상을 입어 병원 치료 중인데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보도를 종합하면 출근길 외곽에서 파리로 들어오는 RER C 기차 안에서 무슬림 전통의 긴 드레스(아바야)를 입은 한 여성이 “다 날려버리겠다”고 위협하며 테러 옹호 발언을 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여러 건 들어왔다. 경찰은 RER C 노선이 정차하는 파리 13구의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 역에 출동해 오전 8시 30분쯤 시민들을 대피시킨 뒤 역을 봉쇄하고 이 여성과 대치했다. 경찰은 여성에게 ‘옷 안에서 손을 꺼내라’고 명령했으나 여성은 거부한 채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가장 위대하다)”를 외치며 “자폭하겠다”고 위협했다. 초반 경찰관 한 명이 여성의 복부에 총알을 한 발 쐈다고 밝힌 검찰은 확인 결과 두 명의 경찰이 모두 8발을 발사했다고 정정했다. 이 여성은 폭발물이나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으며, 현장에서도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뉘녜즈 청장은 이 여성이 38세이며, 2021년 7월에도 이번처럼 베일을 완전히 쓰고 드라이버를 든 채 위협적인 태도로 종교적 발언을 해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여성은 정신과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병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독일 베를린의 유명 클랜(조직범죄집단) 두목이 “히틀러가 네타냐후보다 낫다”고 발언해 국가안보당국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고 독일 RND가 31일(현지시간) 전했다. 아라파트 아부샤커는 틱톡에 올린 동영상 생중계에서 이스라엘 정부를 나치 정부와 비교하면서, “내게 있어선 아돌프 히틀러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보다 낫다”고 말했다. 독일 유대인 최고위원회는 X에 아부샤커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충돌에 관해 수니파 설교자 피에르 포겔과 논의하는 동영상 일부를 공개했다. 아부샤커는 동영상에서 이스라엘 정부를 시온주의 정권으로 지칭하면서, 히틀러와 견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히틀러가 네타냐후 총리보다 나았다고 진술했다. 아부샤커는 “나치 독재자는 유대인들을 적어도 곧바로 죽였는데,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고통받게 한다”면서 “그는 민족 전체를 말소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대인 최고위는 틱톡에 대화를 제의하면서 “수많은 청소년이 당신들의 플랫폼에서 이런 동영상 생중계를 통해 이념적으로 중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베를린 경찰에 이런 표현은 대국민 선동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국가안보당국에 해당 동영상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독일 연방치안청(BKA)에 따르면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공격 이후 2000건 이상의 범죄행위가 집계됐다. 상해, 소요, 대국민선동, 기물파괴 등이다. 친팔레스타인 집회 관련 저항범죄도 크게 늘었다고 BKA는 전했다.
  • 오페라에 KKK? ‘노르마’가 선보인 종교 연출의 진수

    오페라에 KKK? ‘노르마’가 선보인 종교 연출의 진수

    십자가 3500개.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종교적이지만 곳곳에 전통 가톨릭 문화가 가득했다. 예술의전당이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작으로 지난 26~29일 공연한 오페라 ‘노르마’가 한국 공연에서는 보기 어려운 종교 연출의 진수를 제대로 선보였다. ‘노르마’는 사랑을 위해 조국을 버린 여제사장 노르마의 비극적인 운명을 담은 이야기다. 벨칸토 오페라의 대가 빈첸초 벨리니(1801~1835)의 최고 수작으로 꼽히며 과거 이탈리아 지폐에 새겨진 유일한 오페라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노르마’ 연출가 알렉스 오예는 이 작품에 대해 “종교가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실제로 모든 것을 관통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과도하게 연출하고 싶은 유혹도, 전쟁 상황을 무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그의 선택은 종교에 충실한 연출이었다. 요즘 오페라가 온갖 실험과 비틀기로 무장했지만 ‘노르마’는 구체적인 특정 문화에 천착하면서 오히려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문화로서의 종교는 불교가 대세이고 가톨릭 문화 저변이 미약한 한국에서는 오예의 연출이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생겼다. 일례로 스페인에서 부활절에 볼 수 있는 뾰족한 삼각형 모자인 ‘카피로테’를 미국의 범죄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의 복장으로 착각한 경우가 그렇다. 참회의 상징인 카피로테를 KKK가 차용했다고 전해지긴 해도 유럽의 종교문화가 가득한 무대에 미국 범죄단체의 속성을 끌어오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다.‘노르마’의 대표 아리아인 ‘카스타 디바’를 부르는 장면도 종교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연출이었다. 우선 무대 가운데 설치된 대형 향로는 많은 이의 로망으로 꼽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설치된 것을 가져왔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보타푸메이로’라 부르는 이 향로에 불을 피운 후 성직자들이 힘차게 밀어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산티아고 성지순례의 꽃으로 꼽힌다. 제한된 시간에만 볼 수 있어 일정이 맞지 않으면 보기 어려워 그 가치가 더 귀하다. ‘노르마’에서는 한 사람이 등장해 향로를 왔다 갔다하게 밀고 사라지자 노르마가 ‘카스타 디바’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향로가 포물선을 그리는 모습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향로 미사를 연상케 했고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이 장면을 한없이 엄숙하게 만들었다. 향로 미사는 수많은 순례객이 꼬질꼬질한 상태로 들어와 악취가 가득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향을 뿌리던 것에서 유래해 지금은 신성한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보타푸메이로의 존재와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겐 노래만 들릴 뿐 별다른 감흥 없이 지나갈 장면일 수밖에 없다.아리아를 부를 때 노르마가 높은 곳에 올라간 것도 종교적 연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인류 대대로 제사장들은 군중보다 지형적으로 높은 곳에서 메시지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예수의 산상수훈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지금도 교황이 바티칸에서 군중 앞에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다른 프로덕션에서도 노르마가 높은 곳에 있는 것은 볼 수 있는 장면이긴 하지만 기왕 높이는 거 시원하게 높이면서 제사장으로서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했다. 여기에 뒤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선 인물들을 세워두고, 옆에 향로를 왔다 가게 하는 등 작정하고 종교적 색채를 중첩한 덕에 색다른 매력이 돋보였다.1부에서 등장한 의자 같은 소품이 장궤틀이었던 것도 종교적 분위기를 더했다. 장궤란 허리를 바로 세운 채 양 무릎을 꿇은 자세로 존경을 나타내는 행위로 가톨릭 성당에 가면 신자들이 기도할 때 보이는 바로 그 자세이다. 기도의자, 무릎의자로도 불리는 장궤틀은 젊은 여사제 아달지아가 노르마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에서 활용되며 비로소 무대에 가져다 둔 의미가 살아나게 된다. 무대 위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쓰지 않았음을 알게 하는 소품이었다.아달지아의 고해성사는 오예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고해성사를 하는 두 사람은 서로를 볼 수 없다.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는 두 사람의 정면을 보게 된다. 오예는 아달지아의 고해성사를 듣는 노르마가 제사장의 본분을 다하면서도 사랑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모습을 관객들만 볼 수 있게 했다. 보여주고 싶지 않으면서도 드러나야 하고 결국엔 누군가에게 보이게 될 수밖에 없는 것. 서로의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관객들은 지켜보게 되는 고해성사는 그 모순적인 속성과 두 사람 사이의 교묘한 긴장감을 제대로 드러낸 동시에 이 작품에서 노르마가 앞으로 겪을 운명을 암시하는 훌륭한 장치였다. 철저하게 종교적인 연출을 했기에 의미가 살아나는 장면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디테일을 제대로 느끼고 보면 일부를 가시면류관으로 꾸민 3500개의 십자가가 그저 공허한 소품이 아님을 알게 된다. 종교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왜 그런지도 모르고 아쉽다고 느끼기 쉽지만 알고 보면 감탄에 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연출이다. 종교 연출의 진수를 보여줬기에 2부가 시작할 때 TV가 등장하고 배경을 현대로 전환한 것은 큰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르마’는 한국에서 보기 어렵고 한국 관객들에게 낯선 가톨릭 문화를 복합적으로 얽히게 연출하면서 숨은그림을 찾게 하는 신선한 즐거움을 줬다.
  • 히틀러·도조와 천하 호령…아군 장교 손에 처참한 최후 [지구촌 소사]

    히틀러·도조와 천하 호령…아군 장교 손에 처참한 최후 [지구촌 소사]

    ■ 10월 지구촌 소사(小史): 인물 10걸 ❿ 1922.10.31 무솔리니, 39세에 총리 등극베니토 무솔리니(1883.7.29~1945.4.18·이탈리아)는 아돌프 히틀러(1889~1945·독일), 도조 히데키(1884~1948·일본)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추축국 3대 인물로 유명하다. 셋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로 꼽히기도 한다. 3형제 중 맏아들 무솔리니는 아버지의 대장간에 나가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름도 멕시코의 혁명가 베니토 후아레스(1806~1872)를 따라 지었다. 집에선 가톨릭 신앙에 충실한 초등학교 교사 어머니 무릎에 앉아 성경을 배웠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영향을 더 받았다. 1902년 무솔리니는 병역을 피해 스위스로 이민했다. 그는 제네바에서 머물며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조르주 소렐(1847~1922), 빌프레도 파레토(1848~1923)의 사상을 깨우쳤다. 그곳에 망명해 있던 안젤리카 발라바노프(1878~1965),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과 같은 러시아 마르크시스트도 만났다. 1904년 스위스는 무솔리니를 이탈리아로 추방했다. 무솔리니는 1905년부터 2년간 군 복무를 마쳤다. 1908년 무솔리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를 받던 트렌토로 가서 노동당 서기에 올랐다. 정치 신문 ‘라보니레 델 라보라토레’(노동자의 미래) 편집진도 맡았다. 1910년엔 고향인 포를리로 돌아가 주간지 ‘로타 디 클라세’(계급 투쟁)의 편집진이 되었다. 이후 무솔리니는 사회주의 운동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11년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리비아 점령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탄했다가 5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석방된 뒤 무솔리니는 사회당에서 전쟁을 지지한 수정주의자와 정쟁에서 승리해 기관지 ‘아반티’(전진)의 편집장에 선임됐다. 무솔리니는 2만명이던 기관지 독자를 10만명으로 늘렸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는 9개월 뒤 수류탄 폭발로 중상을 입었다. 1917년 8월 병상에서 전역한 무솔리니는 사회당과 결별을 선언했다. 당시 “사회주의 이론은 죽었다. 남은 것은 원한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1919년 3월 무솔리니는 밀라노에서 200여명으로 구성된 최초의 파쇼 ‘파르시 이탈리아니 디 콤바티멘토’(이탈리아 투쟁 결사)를 창립했다. 모든 사회 계급의 구분과 계급 투쟁을 부정하는 이념에 국가 부흥을 염원하던 국민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급격히 세력을 확장한 끝에 1921년 ‘국가 파시스트당’(Partito Nazionale Fascista)을 창당했다. 같은 해 무솔리니는 의회 진출에 성공한다. 더욱 힘을 얻은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당’은 1922년 10월 27일 로마 진군을 감행했다. 당내 준군사 조직인 ‘검은 셔츠단’을 앞세운 쿠데타로 루이지 팍타(1861~1930) 총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다음날 무솔리니는 군부, 자본가, 우익의 지지를 등에 업고 총리에 올랐다. 만 39세였다. 2014년 취임한 마테오 렌치(1975.1.11~현재) 전 총리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무솔리니는 권력을 독점했다. 7개 장관을 겸직하기도 했다. 비밀경찰인 ‘반파쇼 분자 진압을 위한 조직’(Organizzazione per la Vigilanza e la Repressione dell’Antifascismo, OVRA)을 창설했다. 무솔리니는 이러한 철권통치로 반대 세력을 철저히 탄압하며 권력을 유지했다. 1925년부터 1927년 사이 무솔리니는 권력을 휘두르는 데 걸리적거리는 모든 헌법 조항들을 폐기하고 이탈리아를 경찰국가로 변모시켰다. 1928년엔 파시스트당을 뺀 정당 활동은 금지됐다. 같은 해 의회가 해산되고 파시즘 대의회가 대신했다. 이탈리아 제국은 스스로를 신로마 제국으로 칭하기 시작했다. 팽창주의를 추구한 이탈리아 파시즘은 결국 에티오피아를 침략한다. 또 반종교주의, 특히 반가톨릭주의로부터 교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스페인 내전에 개입했다. 1936년 7월 무솔리니는 공군 전투비행단 선발대를 스페인으로 파견했다. 이탈리아군은 1939년까지 반란을 일으킨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를 지원했다. 그 결과 이탈리와와 프랑스, 영국의 관계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으며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동맹을 맺는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대해 즉각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이탈리아는 즉각 참전하진 않았다. 1940년 들어 전황은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솔리니는 독일의 승전으로 곧 종전을 맞을 것으로 판단해 6월 영국과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다. 1941년 6월 무솔리니는 소련에 전쟁을 선포하고 군대를 진군시켰다. 이후 일본 제국이 진주만 사건을 일으키자 이번엔 미국에도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1942년 이후 전황은 이탈리아에 불리해졌다. 대대적인 후퇴가 계속됐다.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에 이탈리아는 패배를 눈앞에 뒀다. 연합군의 이탈리아 본토 폭격으로 석유, 석탄과 같은 자원을 공급받지 못했다. 여기에다 곡물 수급난으로 가격이 폭등했다. 1943년 들어 무솔리니의 선전술은 더 이상 국민 마음을 붙들 수 없었다. 그들은 바티칸 라디오나 라디오 런던을 들으며 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3월 이탈리아 북부 공업도시에서 1925년 이래 최대의 파업이 벌어졌다. 또한 최대의 공업도시 밀라노와 토리노는 공습을 피해 노동자 가족들을 소개하면서 생산이 멈췄다. 사람들은 이탈리아를 대하는 독일의 태도로 인해 이를 묵인하는 무솔리니를 대놓고 반대했다. 일찍이 무솔리니는 아프리카 전선과 튀니지에서 패퇴하자 히틀러에게 서부 전선으로부터 공격해 오는 연합국과의 전쟁에 집중해달라고 간청했다. 아프리카와 튀니지를 얻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겨눌 다음 목표는 당연히 이탈리아 반도 본토이기 때문이었다.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 며칠 후 무솔리니는 해외 군대의 회군을 지시했다. 이에 놀란 히틀러는 7월 19일 이탈리아 북부에서 무솔리니와 회동했다. 무솔리니는 더 이상 독일의 말만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솔리니는 이날 역사상 최초로 로마가 폭격을 당했다는 최악의 소식을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 안에서마저 무솔리니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무솔리니에 대한 불신임안이 대의회에서 19 대 7로 가결됐다.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1869~1947)는 무솔리니를 왕궁으로 불러 해임을 통고했다. 무솔리니는 왕궁을 나오자마자 근위대에 의해 체포됐다. 호텔에 연금됐던 무솔리니는 9월 12일 나치 독일 무장친위대 72명으로 이뤄진 구조대에 의해 구출된다. 독일군은 왕가와 내각인사를 체포하고 무솔리니의 권력을 회복시키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를 오스트프로이센으로 데려와 회동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로 돌아가 파시스트 국가를 재건하기를 바라면서 독일군이 밀라노, 제노바, 투리노 등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동의한 무솔리니는 9월 23일 살로에서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망명 정부의 수반에 오른다. 무솔리니는 자신을 배반한 파시스트 대의회의 요인들을 처형했다. 이 무렵 무솔리니는 1928년 출판한 자서전의 개정판 ‘나의 흥망’ 집필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1945년 4월 패전을 예감한 무솔리니는 연인이었던 클라라 페타치(1912~1945)와 함께 스위스를 거쳐 스페인으로 탈출할 참이었다. 그런데 27일 공산주의 계열의 파르티잔에게 체포됐다. 무솔리니는 병사들과 함께 독일군 장교로 위장하고 있었다. 이튿날 발레리오(실명 왈테르 아우디시오) 대령은 두 사람을 총살했다. 시신은 29일 트럭에 실려 밀라노로 옮겨졌다. 파시스트당에 의해 15명의 반파쇼 운동가들이 처형된 자리였다. 숱한 군중의 발길질에 짓밟힌 두 시체는 주유소 지붕에 거꾸로 매달렸다.
  • 푸틴 “미국, 유일패권 위해 혼란 조장…공항 폭동 배후는 우크라·서방”

    푸틴 “미국, 유일패권 위해 혼란 조장…공항 폭동 배후는 우크라·서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남부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마하치칼라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폭동의 배후로 우크라이나와 서방 정보기관을 지목했다. 30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은 다게스탄 공항 폭동 관련 정부 고위급 회의에서 “어젯밤 마하치칼라에서 발생한 사건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서방 특수정보기관 요원들의 소셜미디어(SNS)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9일 마하치칼라 국제공항에서는 시위대 수백명이 이스라엘발(發) 여객기 착륙에 항의하며 공항 터미널 출입구를 부수고 활주로로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위대는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유대인을 색출하겠다”, “신은 위대하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여객기에 돌을 던지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이끄는 우크라이나 정권이 러시아에서 ‘포그롬’(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의 유대인 학살)을 선동하려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다국적, 다종교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양극화하기 위해 거짓과 도발, 정교한 정보·심리전 등 다양한 도구와 수단이 러시아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푸틴 대통령은 또 미국이 ‘글로벌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를 포함한 경쟁국의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러시아를 상대로 중동 상황을 이용하려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거짓과 도발, 정교한 정보·심리전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의 장악력과 추진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유일 패권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미국은 지배력, 1강 체제를 확장하려 한다. 혼란을 야기해 상대를 억제하고 불안정하게 만들고 싶어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의 지배 엘리트들과 그 위성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을 포함한 분쟁 지역에 돈과 무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전장에서 결과를 얻지 못한 그들은 러시아를 내부에서부터 분열시키고 약화시키고, 불화를 조장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최근 중동에서 발생한 사태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은 중동의 지속적인 평화가 아닌 지속적인 혼란이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동 갈등, 기타 지역 위기의 배후에 있는 주모자들은 파괴적인 결과를 이용해 증오의 씨앗을 뿌리고 전 세계인들을 서로 싸우게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새로운 중동 위기가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 공격에서 비롯됐지만, 최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폭격은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제 전 세계의 운명이 러시아의 대(對)우크라이나 특수작전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사는 무기를 들고 형제들과 나란히 서는 것을 택하고, 팔레스타인 국민의 미래를 포함해 러시아와 전 세계의 운명이 결정되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종교 지도자들과 만났을 때도 중동의 극적인 상황과 러시아의 다민족·다종교 사회를 이용해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분열시키려는 시도가 있다고 지적했다면서 사법당국에 이번 사건에 대해 확고한 조치를 할 것을 주문했다.앞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마하치칼라 공항 사건이 “외부 간섭의 결과라는 것은 잘 알려졌고 명백하다”며 악의적인 사람들이 가자지구의 고통을 이용해 인구 대다수가 무슬림인 다게스탄 사람들을 자극했다고 주장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이번 시위가 외부에서 조율된 ‘도발’의 결과라면서 “범죄적인 키이우 정권(우크라이나)이 직접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거들었다. 세르게이 멜리코프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정부 수장은 “주민들에게 시위 참여를 호소한 텔레그램 채널 중 하나인 ‘다게스탄의 아침’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급진 민족주의 단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나라를 뒤흔들기 위해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용하려고 한다”며 소문을 믿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지적에 러시아 출신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는 러시아가 문제 삼은 채널을 차단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이스라엘 난민’을 태운 비행기가 다게스탄에 도착할 것이라는 가짜 정보 때문에 이 기습 시위가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다양한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시위를 벌이라는 요청이 전파됐으며, 남성·여성과 어린이, 마하치칼라뿐 아니라 주변 마을과 도시 주민들도 시위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폭력 시위 대상이 된 이스라엘 텔아비브발 여객기 탑승객은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들이었으며, 이 가운데는 인공호흡기를 장착하고 휠체어를 탄 어린이도 포함돼 있었다고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다게스탄 지역에 최고 수준 여행 주의보를 발령한 가운데, 일시 폐쇄됐던 마하치칼라 공항은 모스크바 시각으로 이날 오후 2시부터 정상 운영을 시작했다.
  • 푸틴 “공항 난동, 서방과 우크라 꾸민 짓” 미국 “고전적인 러시아 말장난”

    푸틴 “공항 난동, 서방과 우크라 꾸민 짓” 미국 “고전적인 러시아 말장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공항에서 발생한 폭력적 시위가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조장해 발생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다게스탄 공항 폭력 시위 관련 정부 고위급 회의에서 “어젯밤 마하치칼라에서 발생한 사건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서방 특수 정보요원들에 의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선동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러시아 서남부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수도 마하치칼라 공항에 이스라엘발 여객기가 착륙했을 때 시위대가 공항터미널 출입구를 부수고 난입, “이스라엘인을 색출하겠다”며 공격적 행동을 한 배후에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이끄는 우크라이나 정권이 러시아에서 포그롬(제정 러시아의 유대인 등 학살에서 유래한 말로 대학살을 의미)을 일으키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종교 지도자들과 만났을 때도 중동의 극적인 상황과 러시아의 다민족·다종교 사회를 이용해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분열시키려는 시도가 있다고 지적했다면서 사법당국에 이번 사건에 대해 확고한 조치를 할 것을 주문했다. 앞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마하치칼라 공항 사건이 “외부 간섭의 결과라는 것은 잘 알려졌고 명백하다”며 악의적인 사람들이 가자지구의 고통을 이용해 인구 대다수가 무슬림인 다게스탄 사람들을 자극했다고 주장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이번 시위가 외부에서 조율된 ‘도발’의 결과라면서 “범죄적인 키이우(우크라이나) 정권이 직접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거들었다. 세르게이 멜리코프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정부 수장은 “주민들에게 시위 참여를 호소한 텔레그램 채널 중 하나인 ‘다게스탄의 아침’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급진 민족주의 단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들은 우리나라를 뒤흔들기 위해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용하려고 한다”며 소문을 믿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런 지적에 러시아 출신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는 러시아가 문제 삼은 채널을 차단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두로프는 자신의 채널에 ‘다게스탄의 아침’ 채널 화면 갈무리를 게시하면서 “폭력을 요구하는 채널은 텔레그램, 구글, 애플을 비롯한 문명화된 세계의 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에 차단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이스라엘 난민’을 태운 비행기가 다게스탄에 도착할 것이라는 가짜 정보 때문에 이 기습 시위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다양한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시위를 벌이라는 요청이 전파됐으며, 남성·여성과 어린이, 마하치칼라뿐 아니라 주변 마을과 도시 주민들도 시위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문제의 이스라엘 텔아비브발 여객기 탑승객은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들이었으며, 이 가운데는 인공호흡기를 장착하고 휠체어를 탄 어린이도 포함돼 있었다고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다게스탄 지역에 최고 수준 여행주의보를 발령한 가운데, 일시 폐쇄됐던 마하치칼라 공항은 모스크바 시각으로 이날 오후 2시부터 정상 운영을 시작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는 중동에 대한 책임도 미국에 떠밀었다. 그는 “누가 혼란을 만들고 있고, 누가 이익을 얻고 있는지는 이미 분명해졌다”며 “미국의 지배 엘리트들과 위성 국가들이 세계 불안정의 주요 수혜자”라고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위 대변인은 브리핑 도중 “고전적인 러시아식 수사(말장난)”라고 단언하고 “너네 나라에서 뭔가 잘못되면 다른 누군가를 탓하라는 식이다. 서방은 이 일과 아무 연관이 없다. 이것은 그저 혐오와 중상모략일 뿐이다. 간단하고 단순한 일”이라고 공박했다. ‘다게스탄의 아침’ 역시 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채널 관계자로 지목한 일리야 포노마레프, 나아가 우크라이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반박했다.
  • [정은귀의 詩와 視線] 여전히, 지금도, 우리는/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정은귀의 詩와 視線] 여전히, 지금도, 우리는/한국외대 영문학과 교수

    말하고 노래하는 것이 우리 종족의 풍습이었다, 현재의 숨결과 광경을 나눌 뿐만 아니라 태어나지 않은 숨결까지도. 여전히, 지금도, 우리는 살아남은 이들 향해 손을 내민다. 그것이 희망의 언약이다. ―데니즈 레버토프 ‘무제’ 중 맑고 아름다운 가을날이다. 지금 여기 살아 있음을 찬미하기 딱 좋은 시기다. 상큼한 계절에 길을 걸으면서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 그날의 기억 때문이다. 그날의 당혹, 그날의 비명, 그날의 참혹, 그날의 무기력, 그날의 절망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10월 29일. 죽음과 생존의 엇갈림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여전히 아프다. ‘살아남다’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본다. ‘여럿 가운데 일부가 죽음을 모면해 살아서 남아 있는 일.’ 시인 브레히트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면서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는 꿈속 친구들의 말을 떠올린다. 끝내 ‘내가 미워졌다’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토로한다. 시인 레버토프는 ‘살아남은 이들’을 향해 손을 내민다. 브레히트가 ‘살아남은 자-되기’로 시를 썼다면 레버토프는 살아남은 자를 향해 손을 내미는 ‘우리-되기’에 독자를 초대한다. 레버토프의 시를 처음 읽은 것은 미국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할 때다. 매 학기 강의계획서엔 아는 시인보다 모르는 시인이 더 많았다. 하루하루 시에 압도당하면서도 시를 읽는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그 충만함에 의지해 기약 없는 공부 길을 묵묵히 걸을 수 있었다. 레버토프는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귀화한 시인. 아버지는 헝가리계 유대인으로 독일에서 살다 쫓겨나다시피 영국으로 갔고 거기서 웨일스 출신 엄마를 만났다.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인 ‘다름’을 일찍부터 접한 레버토프는 여러 정체성 안에서 이 세계의 불모와 불화를 고민했다. 열두 살에 자작시를 엘리엇에게 보내 격려 편지를 받기도 했고 반전 운동, 여성 문제, 기후위기 등 세상의 여러 일들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활동가 시인이었다. 말하고 노래하는 것이 자기 종족의 풍습이라고 하는 레버토프는 말하는 일이 현재뿐만 아니라 태어나지 않은 이들에게까지 나누는 일이라 한다. 망각을 강요당하고, 불미스러운 일은 덮는 게 미덕인 양 여겨지는 이 사회에서 그의 시는 낮은 울림이 있다. 너무 아름다워 더 참혹한 이 계절에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하나. 곰곰 생각하다 어떤 숫자를 떠올린다. 6:34, 7:05, 8:09, 8:33, 8:53, 9:00, 9:07, 9:51, 10:00, 10:11, 10:51. 작년 10월 29일 사람이 깔려 죽을 것 같다는 구조 요청이 타진된 시간이다. 다급한 신호는 다 묵살됐다. 남은 자들은 아직도 아프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게 희망의 약속이라서. 어설프게 묻힌 상실은 다시 돌아오기에. 들을 이야기, 나눌 슬픔이 아직 많다. 희망의 약속은 사랑과 돌봄의 다른 이름이라서 시인의 목소리를 빌려 나는 말한다. 더 듣자고. 더 나누자고. 손을 내밀자고.
  • [세종로의 아침] 왜 별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까/강국진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왜 별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까/강국진 정치부 차장

    전쟁사에 관심 있는 이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일본군 최고위급으로 활약한 숨은 독립군’으로 칭송(?)받는 무타구치 렌야라는 3성 장군(중장)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육군 버마방면군 제15군 사령관이었던 무타구치는 1944년 인도 동부로 진격해 영국군을 점령한다는 이른바 ‘임팔 작전’을 주도했다. 이 작전에 동원된 일본군 제15군은 말 그대로 전멸했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병사는 1만 5000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5만명은 대부분 전투가 아니라 굶주림과 풍토병으로 죽었다. 항일독립군이 아니고서야 저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임팔 작전은 구상부터 준비, 진행 과정, 후속처리까지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그 모든 난장판의 중심에 무타구치가 있었다. 그의 사고방식은 너무나 황당무계해서 이게 과연 정말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가령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다. 임팔만 점령하면 어떻게든 된다”며 식량 보급을 등한시하는 바람에 대규모 아사 사태를 초래했다.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정신력이 부족한 탓”이라거나 “말라리아와 이질은 병이라고 할 수 없다”며 책임을 부하 장병들에게 돌렸던 그는 “나는 잘못이 없다. 부하의 잘못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무타구치 이야기에서 가장 황당한 건 수만 명이나 되는 부하 장병들을 굶겨 죽이고도 그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자리를 옮긴 게 전부였다. 더 놀라운 건 그의 상관들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도 작전 중단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나마 작전 중지를 완곡하게 건의한 장군에게 당시 총리 겸 육군대신 겸 참모총장이었던 도조 히데키는 “약해 빠졌다”며 화를 냈다고 한다. 엘리트주의, 인정과 파벌, 체면과 보신으로 똘똘 뭉쳐 밀어주고 당겨주던 육군사관학교 선후배들, 꽃길만 걸어 본 ‘엘리트 군인’들의 동종교배가 부른 웃지 못할 코미디였다. 무타구치 사례를 생각할 때마다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다. 대한민국 군대는 과연 얼마나 다른가. 지금도 조국을 지키기 위해 최전방에서 경계근무를 하거나 망망대해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장병들에게 이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건 작전의 성공을 의심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특이한 사명감에 불타던 무타구치 같은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삐딱한’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군대에서 장군은 말 그대로 별처럼 빛나는 존재다. 그만큼 책임도 막중해야 한다. 하지만 과문한 탓인지 작전에 실패해도 제대로 된 신상필벌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지난 7월 숨진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 이후 지금까지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다. 지난해 12월 발생했던 북한 무인기 침범 사건은 용산 대통령실 주변 비행금지구역까지 뚫리는 심각한 작전 실패였다. 하지만 당시 지휘책임자들은 구두·서면 경고만 받았을 뿐이다. 당시 한 예비역 장성은 이런 얘기를 했다. “합참은 결코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선 부대에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다 보니 일선 부대에 엄중하게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다. 결국 서로서로 ‘솜방망이’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오해를 무릅쓰고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대한민국 ‘별’들은 무타구치와 얼마나 다른가.
  • ‘조상 모시기’ 없어지나…성인 절반 이상 “제사 지낼 생각 없다”

    ‘조상 모시기’ 없어지나…성인 절반 이상 “제사 지낼 생각 없다”

    시대가 변하면서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는 성인 10명 중 6명이 제사를 지내고 있지만 제사를 지속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4명 남짓인 것으로 조사됐다. 30일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조사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1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제례 문화 관련 국민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5.9%는 앞으로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다고 반응했다. 제사를 지낼 계획이 있다는 답변은 44.1%로 나타났다. 현재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답한 이들이 62.2%인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제사를 계속하는 이들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매년 명절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 등에서는 ‘제사’가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다. “시대가 변했으니 제사도 사라져야 한다”, “조상 덕 본 사람들은 해외여행 간다” 등 제사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내 마음 편하려고 하는 일”, “부모님이 원하니까 해드린다” 등 제사를 이어가겠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조사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는 이유로는 ‘간소화하거나 가족 모임 같은 형태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가 응답자의 41.2%로 가장 많았다. ‘시대의 변화로 더는 제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답변은 27.8%였고, ‘종교적 이유나 신념’을 이유로 든 응답자는 13.7%였다. 제사를 계속하려는 이들은 ‘조상을 기리기 위해서’(42.4%), ‘가족들과의 교류를 위해서’(23.4%), ‘부모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서’(15.9%), ‘전통 유지’(10.0%) 등의 이유를 꼽았다. 제사를 지낼 때 가장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응답자들은 제수 음식의 간소화(25.0%)를 지목했다. 그 다음으로 형식의 간소화(19.9%), 남녀 공동 참여(17.7%),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제사(17.2%), 제사 시간 변경(5.3%) 등의 순이었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이러한 조사 결과 및 현대 사회의 특성 등을 고려해 ‘현대화 제사 권고안’을 내달 2일 발표할 예정이다. 부모나 조상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일제’(忌日祭)에 관한 제안을 담는다. 평상시의 반상 음식으로 자연스럽게 준비하고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올릴 수 있도록 안내한다. 권고에는 가족이 합의하면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도 된다는 내용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성균관은 이번 권고가 일반 가정을 위한 것이며 유림의 제사와는 구분한다는 방침이다.
  • [김세연의 오버뷰] 백지에서 교육과정을 새로 짠다면/전 국회의원

    [김세연의 오버뷰] 백지에서 교육과정을 새로 짠다면/전 국회의원

    앞선 시대의 성공 요인이 종종 다음 시대의 실패 원인이 되고는 한다. 대한민국 압축 성장의 핵심 배경의 하나인 ‘교육’이 그런 지경에 처해 있다. 뒤엉켜 버린 지금의 교육을 고쳐 쓰는 접근이 아니라 백지에서 교육과정을 새로 짠다면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야 할까. 먼저, 위기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전쟁, 재해, 질병 상황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지킬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핵 및 화생방전, 시가전 등 전쟁 상황과 화산폭발, 지진, 홍수, 쓰나미 등 자연재해 상황에서의 생존법, 전기 공급이 안 될 때의 행동요령, 다양한 감염병 사태에 대처하는 방법들을 학교에서 보다 철저히 배워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를 대하는 자세와 대응에서도 문제의식과 실천 방법을 익히기 위한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역량을 키워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건 합리 노선의 정당, 정치인보다는 과격 극단 노선의 정당, 정치인이 득세하는 시절이다. 역사 속에 이런 장면들은 차고도 넘친다. 선동에 휘둘리고 사이비 종교화돼 버린 이념 또는 우상 숭배와 같은, 이성을 놓아 버린 집단들의 규모가 커지면 극단주의자들에게 국가를 눈뜨고 하이재킹당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양식 있고 용기 있는 주권자 시민들이 다수가 돼야 하는데 오히려 극단주의자들의 행태 때문에 정치 혐오와 무관심층만 늘어나고 있다. 헌법 1조 1항인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한편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탈진실(post-truth) 시대’에 국민이 극단적이고 고의적인 거짓 주장에 현혹되지 않도록 교육과정에서 언론 문해력(미디어 리터러시)을 중요하게 다룬다고 한다. 재정난에 몰린 언론은 자기 생존을 명분으로 저널리즘을 희생하며 클릭 수의 노예가 되기 쉽다. 고품질 정치, 정책 분석 기사를 외면하는 국민에게는 소위 ‘낚시’를 위한 제목과 선정적인 정쟁 기사만 공급된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보이는 우리 정치의 모습이다. 셋째, 자신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본인의 몸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제대로 쓸 줄 알아야 한다. 몸을 이루는 골격과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자세로 생활하고 운동해야 노년까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지, 영양 섭취는 어떻게 해야 중증·만성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지, 술ㆍ담배ㆍ도박ㆍ마약의 중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숙지해야 한다. 해부학과 뇌 과학의 기본적인 사항들을 익혀야 한다. 넷째,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 대상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다른 연령과 성별의 사람들, 이념이나 종교 등에서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들과 대화, 이해, 절충, 합의하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나아가 다른 나라와 다른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야 21세기 세계시민으로서 살아갈 준비가 된다. 이를 위해 국제관계와 세계사는 기본이다. 그리고 지구의 동료 거주자들인 동물과 식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 더 나아가 앞으로 고등생명체로서의 성격을 점점 더 보이게 될 기계와의 소통과 공존의 준비도 필요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시민혁명을 거치며 확립된 인류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적용 대상을 더 넓혀 자연과 기계에까지 이를 수 있도록 관점을 확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제 학생 개개인의 이해도와 강약점에 맞추어 매우 세부적인 문제 풀이 과정까지 인공지능(AI)이 맞춤형 지도를 해 줄 수 있는 시점이 눈앞에 다가왔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은 AI 교사에게 넘겨주고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 때다.
  • “오늘 꼭 와야만 했어요”… 그날, 그 길에 추모와 연대가 모였다

    “오늘 꼭 와야만 했어요”… 그날, 그 길에 추모와 연대가 모였다

    “1년 전엔 참사 현장 건너편에 있었는데 그동안 올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오늘만큼은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라도 꼭 와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태원 참사 1주기인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추모 공간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만난 윤희주(26)씨는 “지하철 대신 버스를 선택해 살아남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윤씨는 “지난 1년 동안 참사 관련 소식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오늘은 용기를 냈다”면서 한참을 추모 공간에 머물렀다. 이날 추모 공간엔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음료, 과자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벽에 붙은 빼곡한 추모 메시지 위에 또 다른 메시지를 덧붙이는 손길도 이어졌다. ‘미안합니다, 다만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메시지를 적던 현모(42)씨는 “너무 어이없는 사고가 났는데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게 답답하다”고 말했다.이태원 일부 상인들은 출입문에 ‘10·29 이태원 참사 진상을 규명하라’, ‘재발 방지 대책 마련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걸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오후 2시부터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주관으로 4대 종교 기도회가 진행돼 희생자 159명의 넋을 위로했다. 기도회를 마친 유족과 시민 4000여명(주최 측 추산)은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을 거쳐 분향소가 마련된 시청역 5번 출구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대통령실 앞에서 잠시 행진을 멈추고 “이태원 참사의 국가 책임을 인정하라”며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행진을 마치고 서울광장에 도착한 유족과 시민들은 오후 5시부터 참사 1주기 추모 대회를 열었다.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서울광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까지 합류하면서 모두 1만명(주최 측 추산)이 광장을 빼곡히 채웠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잃어버린 우리 아이를 추모하는 이 시간은 결코 정치 집회가 아니다”라며 “진실이 밝혀져야 비로소 유가족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생존자 이주현씨는 “어떤 사람들은 내게 운이 좋다고 한다. 그러면 159명은 운이 나빠서 죽어야 했느냐”며 “생존자로 남아 그때 상황이 어땠는지 계속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대책회의는 추모 대회에서 참사 유족과 희생자를 향한 2차 가해 방지,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추모 대회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오세훈 서울시장 등 정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일본에서도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식이 진행됐다. 일본인 희생자 2명 중 1명인 도미카와 메이(사고 당시 26세)의 1주기 추모식이 전날 본가가 있는 홋카이도 네무로시의 한 절에서 열렸다. 메이의 아버지인 아유무(61)는 “희생된 생명이 헛되지 않도록 (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삿포로시 전문학교 진학 후 도쿄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했던 메이는 지난해 6월 한국에 온 뒤 한국어 공부를 하며 지냈다.
  • 尹, 이태원 추모 예배 “안전 대한민국 힘쓸 것”

    尹, 이태원 추모 예배 “안전 대한민국 힘쓸 것”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1주기인 29일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안전한 대한민국’이란 목표를 위해 앞으로도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유년 시절 다녔던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도 예배’ 추도사에서 “지난해 오늘은 제가 살면서 가장 큰 슬픔을 가진 날이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참모들과 국민의힘 지도부를 포함한 고위당정협의회 참석자, 교회 장로 17명 등과 별도의 추도 예배를 진행했다. 윤 대통령의 예배 참석은 예고 없이 오후에 추가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국민이 누구나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윤 대통령은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시민추모대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희생자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마음은 이태원 사고 현장이든, 서울광장이든, 성북동 교회든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사고 재발을 방지하고 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데 국민의 마음을 모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민추모대회가 정치적 집회 성격이라고 불참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은 참석했다’는 야당 지적에 “애도에 집중하고 가급적 말을 아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유가족을 따로 만날 가능성을 묻자 “잘 한번 살펴보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참사 ‘국가애도기간’ 때도 이번처럼 종교 행사 추도사를 빌려 사과의 뜻을 전한 바 있다.
  • 이태원 참사 1주기, 사무치는 슬픔 [서울포토]

    이태원 참사 1주기, 사무치는 슬픔 [서울포토]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은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서 시민추모대회 사전행사로 열린 4대 종교 기도회에 참석한 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잊지 않을게요”…서울 도심서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 행사

    “잊지 않을게요”…서울 도심서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 행사

    이태원 참사 1주기…추모 물결 이어져유족·시민·상인·종교계 한마음으로 추모 기도회 후 행진…대통령실 앞에선 사과 촉구 “1년 전에 참사 현장 근처에 있었거든요. 오늘 꼭 와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조성된 추모공간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만난 윤희주(26)씨는 1년 전에도 이곳에 있었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길 바로 건너편에 있었던 윤씨는 “지하철 대신 버스를 선택해 살아남았다”며 “지난 1년 동안 참사 관련 소식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오늘은 용기를 냈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이날 추모공간에는 시민들이 남긴 꽃과 음료, 과자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벽에 붙은 빼곡한 추모 메시지 위에 또 다른 메시지를 덧붙이는 손길도 이어졌다. ‘미안합니다, 다만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메시지를 적던 현모(42)씨는 “너무 어이없는 사고가 났는데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게 답답하다”고 전했다. 이날 이태원 일부 상인들은 출입문에 ‘10·29 이태원 참사 진상을 규명하라’, ‘재발 방지 대책 마련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붙였다. 참사 현장 주변에서 추모행사를 기다리던 유족은 시민들이 남긴 메시지를 보며 흐느꼈고,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전북 정읍시에서 이곳을 찾았다는 이영민(55)씨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도 제정됐으면 한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안타깝고 먹먹하다”고 전했다. 스스로 ‘세월호 세대’라고 말한 대학생 정모(26)씨는 “일상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는 게 그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라고 말했다.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대전에서 온 박용우(57)씨는 “자식을 허무하게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냐”며 조문객을 맞는 유가족을 위로했다. 오후 2시부터는 4대 종단 기도회로 추모대회 사전행사가 진행됐다. 주최 측 추산 유족 100여명을 포함해 500여명이 참석한 기도회에서는 원불교, 개신교, 불교, 천주교 순으로 종단 인사들이 기도와 독경을 하며 희생자 159명의 넋을 위로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기도회에 앞서 명동대성당에서도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 미사를 유경촌 주교를 비롯한 교구 사제단의 공동집전으로 봉헌했다. 기도회를 마친 유족들과 시민들은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 삼각지역을 거쳐 분향소가 마련된 시청역 5번 출구까지 행진했다. 유족들은 대통령실 앞에서 잠시 행진을 멈추고 “이태원 참사의 국가 책임을 인정하라”며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오후 5시부터 열릴 추모대회에서는 참사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후속 조치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예정이다. 추모대회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야당 지도부,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등 정치인도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대회…인요한·이재명 참석, 尹 불참할 듯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대회…인요한·이재명 참석, 尹 불참할 듯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을 맞아 서울 도심 곳곳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회와 행진이 곳곳에서 열린다. 정치권에서는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대거 집결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참석 대신 별도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등은 29일 오후 2시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4대 종교 기도회를 시작으로 추모식 사전 행사를 개최한다. 기도회를 마친 유족과 참석자들은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 삼각지역 등을 거쳐 본 추모대회가 열리는 시청역 5번 출구까지 행진한다. 추모식에는 3000명의 인원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안전사고에 대비해 경력을 배치해 대응할 예정이다. 이태원 1번 출구 인근 골목길에 조성한 추모공간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도 개별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본 추모대회는 오후 5시에 열린다. 유족들은 참사 1주기를 맞아 이태원 참사 159명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할 예정이다. 추모대회에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석한다. 국민의힘에서는 인요한 혁신위원장과 유의동 정책위의장, 이만희 사무총장 등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추모대회 참석을 재차 촉구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전날 서면 브리핑에서 “이태원 참사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다”라며 “참사 유가족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한다면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 대회에 윤 대통령이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이번 행사가 민주당이 개최하는 ‘정치 집회’ 성격이 짙다고 보고, 윤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전날 추모공간을 찾아 헌화하고 묵념한 뒤 안전조치 현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한편, 유족 측은 30일에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오후 7시 30분부터 참사 1주기 추모 천주교 미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 종교계 소통 나선 유인촌 장관, 오늘은 개신교 방문

    종교계 소통 나선 유인촌 장관, 오늘은 개신교 방문

    취임 이후 종교계와 소통에 나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7일 개신교계 인사들과 만났다. 유 장관은 27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와 공동대표회장 송홍도 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목사는 “장관 취임을 축하한다”고 했고 한국교회가 추진하고 있는 근대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사업과 기독교 박물관 건축 사업 등에 협조해 준 데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또한 “한국 사회 안에 다양한 종교들이 함께 있는데 종교편향의 문제, 종교 간 역차별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문체부가 중심을 잡고 일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유 장관은 “한국교회가 나라를 위해 헌신해주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면서 “다종교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종교 간 분쟁 없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종교단체들의 장점이다. 조화로운 관계를 위한 한국교회의 노력에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이 목사와 유 장관은 한국교회 역점 사업인 저출생 대책과 기독교 순례길 확충 등의 사업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한교총을 만난 후에는 또 다른 개신교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방문했다. 유 장관은 세계 곳곳의 전쟁을 비롯해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문체부의 고민을 이야기했고 김종생 총무는 종교가 해야 할 역할이 사회 통합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 총무는 “개신교계도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지역 교회들이 사회통합에 기여하도록 함께 노력하겠다”면서 “앞으로 문체부가 종교계와 개신교계에 아낌없는 지지와 지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유 장관은 지난 12일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만나기도 했다. 진우 스님은 “문화부는 사람의 마음까지 살펴주는 부처이기 때문에 유인촌 장관이 그러한 식견과 관리운영 능력이 최고로 발휘돼야 한다”고 하는 한편 불교 문화재 보존 가치를 잘 인식해달라는 요구도 전달했다. 이에 유 장관은 “원장 스님께서 말씀하신 부분들 두루두루 살펴서 잘되도록 해보겠다”고 말했다.
  • ‘왜구가 약탈한’ 부석사 불상…대법원 “일본에 돌려주라” 확정

    ‘왜구가 약탈한’ 부석사 불상…대법원 “일본에 돌려주라” 확정

    한국 도둑이 일본서 훔쳐온 불상초유의 국외 문화재 소송 번져 한국도둑들이 일본에서 훔쳐온 충남 서산 부석사 제작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이 일본에 최종적으로 넘어갔다. 국내 초유의 국외 문화재 소송이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대법관 오경미)는 26일 대한불교 조계종 부석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유체동산인도 소송에서 부석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에 사찰의 실체와 동일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지만 판결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10년 넘게 진행된 이 불상 소유권 소송은 1심에서 부석사가 이겼고, 항소심에서는 일본이 승소했다. 이 불상은 김모(당시 69세)씨 등 한국 문화재절도단이 2012년 10월 6일 일본 간논지(觀音寺·관음사)에서 훔쳐 온 것이다. 대법원은 “(1330년부터 현재까지) 부석사의 인적요소인 승려 등의 계속성을 완전히 상실하거나 물적 요소인 종교시설 등이 완전히 소실된 것으로 볼 만한 자료는 없다”며 “부석사가 독립한 사찰로서의 실체를 유지한 채 존속해 원고에 이르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혀 항소심이 사찰의 동일성과 연속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과 판단을 달리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타인의 물건이더라도 일정 기간 문제없이 점유했다면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는 ‘취득 시효’ 법리에 따라 불상의 소유권이 정상적으로 간논지에 넘어갔다고 봤다. 일본의 옛 민법은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및 공연하게 타인의 물건을 점유하는 자는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규정했다. 대법원은 국제사법에 따라 취득시효가 만료될 때 물건이 소재한 곳의 법을 따르는 게 맞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간논지는 취득시효가 완성된 1973년 1월 26일 일본 민법에 따라 이 불상의 소유권을 취득했고, 2012년 불상을 절도당하기 전까지 점유했다”며 “불상이 고려 때 왜구에 약탈당해 불법 반출됐을 개연성이 있다거나 우리나라 문화재라는 사정만으로 이런 취득시효 법리를 깰 수는 없다”고 했다. 1심 부석사 승, 2심 간논지 승 1·2심 재판부는 모두 ‘왜구가 불상을 약탈해 갔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소유권에 대한 판단은 달랐다. 부석사의 손을 들어준 대전지법 제12민사부(당시 재판장 문보경)는 2017년 1월 1심에서 “증여나 매매 등 정상 방법이 아니라 도난이나 약탈로 간논지에 운반돼 봉안됐다고 보는 게 맞는다”며 부석사가 소유주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1951년 간논지 관계자가 불상에서 발견한 결연문을 꼽았다. 결연문에 ‘고려국 서주(현재 서산) 부석사 결연문’이라고 쓰고 시주자 32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재판부는 “불상이 이전되는 경우 주는 쪽에서 복장물을 빼고 어디에서 만들고 어디로 옮겨지는지 적어 보낸다는 것이 조계종과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불상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조계종은 서주 부석사와 현 부석사는 동일한 사찰이라고 밝혔다”고 약탈 불상을 원주인에게 인도하라고 했다. 간논지의 손을 들어준 대전고법 제1민사부(당시 재판장 박선준)는 지난 2월 항소심을 열고 “불상을 제작한 서주의 부석사와 지금의 부석사가 동일하고 연속성이 있는지 증명해야 하나, 제출 증거들을 보면 동일·연속성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불상이 외국에 있었던 만큼 국제사법에 따라야 한다. 이 법은 동산 및 부동산의 물권을 소재지법으로 결정하라고 한다”며 “일본 민법이 점유 소유권을 20년을 정한 만큼 간논지 등록시기로 보면 1973년 1월 소유권이 완성됐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부석사는 “이 불상은 문화재여서 취득시효가 적용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330년(고려) 부석사가 제작한 높이 45.5㎝, 둘레 56㎝, 무게 38.6㎏의 불상은 소송이 끝나지 않아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유물수장고에 보관 중이었으나 이날 판결로 간논지로 되돌아갈 전망이다.
  • [속보] 대법원, 日약탈 ‘금동관음보살좌상’ 일본 관음사 소유 인정

    [속보] 대법원, 日약탈 ‘금동관음보살좌상’ 일본 관음사 소유 인정

    한국 절도범이 일본에서 훔쳐 온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권이 일본에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부석사가 원주인이라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민법상 20년 이상 점유한 일본 종교법인에 소유권이 인정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6일 대한불교 조계종 부석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돌려달라며 제기한 유체동산 인도 소송에서 부석사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불상이 제작, 봉안된 고려시대 사찰 ‘서주 부석사’와 원고인 부석사가 같은 권리주체로 인정된다”면서도 “일본 민법에 따르면 일본 관음사가 이 불상을 시효 취득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부석사는 소유권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12년 한국인 절도범들이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 보관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몰래 훔치면서 시작됐다. 절도범들은 이 불상을 국내에 밀반입하다 붙잡혔고,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난 뒤 정부가 불상을 몰수했다. 이후 부석사는 불상의 원 소유권을 주장하며 한국 정부에 소송을 제기했고, 일본 관음사도 피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참여했다.
  • 러상원 CTBT 비준 철회안 통과한 날 탄도·순항 미사일 쏘고 핵 대응 훈련

    러상원 CTBT 비준 철회안 통과한 날 탄도·순항 미사일 쏘고 핵 대응 훈련

    러시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화상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대규모 핵 공격에 대응하는 핵 훈련을 시행했다고 25일(현지시간) 밝혔다.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에 이어 상원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 철회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날 핵 억지 훈련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발표하며 핵 긴장을 높였다.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화상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이번 훈련에서 러시아군이 지상, 해상, 공중에서 핵 억지력 훈련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훈련 중에 실제 탄도·순항 미사일의 시험 발사도 이뤄졌다. 캄차카 쿠라 훈련장의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야르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바렌츠해에서는 핵 추진 전략 잠수함 ‘툴라’로부터 시네바 탄도미사일이 각각 발사됐다. 장거리 전략폭격기 투폴레프(Tu)-95MS는 공중에서 순항 미사일을 발사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푸틴 대통령에게 훈련 계획에 따라 적의 핵 타격에 대응하는 복합 핵공격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크렘린궁은 “훈련 기간 계획된 임무가 완전히 완료됐다”고 밝혔다. 훈련 모습은 ‘로시야24’ 채널을 통해 방송됐다. 러시아는 매년 가을 비슷한 훈련을 하지만, 이번 훈련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이 심화하는 가운데 진행됐다. 더욱이 러시아는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는 CTBT 비준을 철회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날 상원을 통과한 비준 철회 법안은 이제 푸틴 대통령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5일 푸틴 대통령이 “미국은 이 조약에 서명만 하고 비준은 하지 않고 있다”며 동일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비준 철회 가능성을 내비친 뒤 CTBT 비준 철회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이 먼저 핵실험을 할 경우에만 핵실험을 재개할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서방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중단시키기 위해 핵실험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종교단체 대표들과 만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을 “기독교인, 무슬림, 유대인의 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이라고 표현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노인, 여성, 어린이 등이 희생되는 상황에 “테러와의 싸움은 공동 책임이라는 악명 높은 원칙에 따라 수행될 수 없다. 이는 진정한 인도주의적 재앙”이라며 유혈사태를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일부 세력이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중동 지역에서 갈등과 혼란을 일으키려고 한다고 지적하고, 새로운 세계 질서를 언급한 서방에 대해 “위선”,“이중잣대”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 인신공양으로…산 정상서 ‘미라’ 된 ‘잉카 소녀’ 얼굴 복원 [핵잼 사이언스]

    인신공양으로…산 정상서 ‘미라’ 된 ‘잉카 소녀’ 얼굴 복원 [핵잼 사이언스]

    약 500여 년 전 남미 안데스 산맥 정상에서 제물로 바쳐진 잉카 소녀의 미라가 실제 모습으로 구현됐다. 25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은 페루와 폴란드 연구팀이 3차원 스캔을 통해 잉카 시대 미라의 얼굴을 복원했다고 보도했다. 24일 언론에 공개된 미라는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뚜렷한 광대뼈와 검은 눈, 검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연구팀은 신체 스캔, DNA 분석, 인종적 특성, 연령, 안색 등 모든 것을 고려했다.현지에서 '암파토의 여인'(Lady of Ampato) 혹은 '후아니타'(Juanita)라 부르는 이 미라는 지난 1995년 페루 남부 암파토 화산 정상 인근인 해발 6000m에서 발견됐다. 눈 덮힌 산 정상에서 미라가 발견된 것도 놀랍지만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후 연구결과 놀라운 사실들이 하나 둘 씩 밝혀졌다. 먼저 후아니타는 지난 1440~1450년 사이 오른쪽 후두엽에 심한 타격을 입고 숨졌다.당시 나이는 14~15세로 키는 140㎝, 몸무게는 35㎏으로 추정됐다. 특히 후아니타가 이렇게 된 이유는 잉카 신들을 달래기 위한 인신공양이었다. 산 정상에서 종교 의식을 위해 제물로 바쳐진 셈이다.   최초로 이 미라를 발견한 미국 인류학자 요한 라인하르트는 "살아있을 때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후아니타의 발견은 잉카 문화를 더 잘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됐다"고 밝혔다.  
  • 풍자 “MZ 목사님은 이별가요도 찬송가처럼 부르더라”

    풍자 “MZ 목사님은 이별가요도 찬송가처럼 부르더라”

    MBC에브리원 신규 예능 ‘성지순례’ MC 김이나·풍자·송해나·김제동이 첫 녹화 소감을 밝혔다. 김이나는 25일 ‘성지순례’ 제작진을 통해 “자극적인 환경을 통해 가장 순수한 웃음과 의미를 얻어내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첫 촬영 이후 “서로를 지극히 존중하고 배려하던 신부님과 목사님이 롤 티어를 두고 옥신각신했던 장면이 뇌리에 깊게 남았다”고 그는 전했다. 풍자는 프로그램을 통해 “종교라는 틀을 벗고 젊은 또래들의 일상을 체험하며, 대한민국의 한 청년으로서 속세에 녹아든 성직자들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풍자는 이어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이별 노래, 사랑 노래 등을 성직자들의 종교로 의미를 재해석해 부르는 부분이 재미 포인트였다”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목사님이 가요를 부르실 때 찬송가처럼 부르는 부분에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며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이와 관련해 송해나는 “개신교, 불교, 천주교 세 종교 속 성직자들의 모습이 아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젊은 성직자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김제동은 ‘성지순례’가 “나의 마음이 어디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지를 찾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성지순례’는 범인들의 욕망 가득한 성지를 찾아 나선 개신교·불교·천주교 성직자들의 속세 체험기를 담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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