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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무슬림 친화 식당/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무슬림 친화 식당/서동철 논설위원

    중국 베이징에는 뉴자칭전(牛家淸眞) 우양육시장이 있다. 이름처럼 소고기와 양고기를 전문으로 다룬다. 이 시장에 돼지고기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할랄’(Halal) 축산물만 취급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칭전’(淸眞)이 바로 할랄 식품을 뜻한다. 일반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식품도 이 표시가 있으면 할랄이다. 중국의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2%인 2600만명이다. 대부분 신장위구르자치구와 닝샤회족(回族)자치구를 비롯한 서북부 지역에 살고 있다. 하지만 베이징과 시안을 비롯한 대도시에도 적지 않은 숫자가 있다. 그렇다 해도 뉴자칭전 시장이 붐비는 것은 이슬람 인구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산 먹거리를 신뢰하지 못하는 베이징 시민 사이에 할랄 식품만큼은 믿을 만하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동안 세계 할랄 식품 시장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했지만, 이슬람 세계의 일원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는 만큼 잠재력은 크다. 특히 시진핑 정부는 현대판 실크로드 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할랄 시장 잠식을 노리고 있다. 2014년에는 닝샤에 할랄 식품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닝샤 할랄 식품 인터내셔널 트레이딩 인증센터도 설립했다. 할랄은 잘 알려진 대로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을 말한다. 반면 하람(Haram)은 금지된 것을 의미한다. 이슬람 경전은 꼼꼼하게 하람을 명시하고 있는데 돼지, 개, 뱀, 악어, 알코올 등이 대표적이다. 하람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제품은 이스티할라(Istihalah)로 분류하는데, 다시 허용된 변화(Istihalah Sahih)와 허용되지 않은 변화(Istihalah Fasidah)로 나눈다. 예를 들어 알코올을 숙성한 식초는 허용되는 반면 돼지 기름으로 만든 제과류는 금지된다고 한다. 할랄 식품 인증제도는 뜻밖에 이슬람 국가가 아닌 미국에서 시작됐다. 1960년대 미국 무슬림들이 종교적으로 안전한 식품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도입했다는 것이다. 미국 이슬람식품영양위원회(IFANCA)가 인증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300개 남짓한 정부 또는 민간 인증기관이 있다. 비(非)이슬람 국가에서는 현지 이슬람 종교단체가 할랄 인증을 부여하는 전통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이슬람중앙회(KMF)가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무슬림 친화 식당’ 증명제를 8월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한다. 할랄 정도를 평가해 다섯 단계로 증명서를 발급하는 방식이다. KMF 인증을 받은 식당은 최고 등급이 된다. 한 해 1조 달러가 넘는 세계 할랄 식품 시장 규모는 이슬람권의 소득 증가와 함께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 방문 무슬림도 지난해 74만명에서 올해는 8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도 할랄 시장 개척에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글로벌 시대] 조지 오웰과 미얀마, 그리고 북한/김영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글로벌 시대] 조지 오웰과 미얀마, 그리고 북한/김영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소설 ‘동물농장’의 저자 조지 오웰은 영국의 명문 이튼스쿨을 졸업했으나 옥스퍼드대 진학을 포기하고 버마(현 미얀마)에서 인도제국 식민지 경찰이 된다. 그는 5년간의 버마 생활을 바탕으로 훗날 그의 첫 장편소설인 ‘버마 시절’(Burmese Days)을 발표한다. 그의 반제국주의적 정서가 강하게 투영된 작품이다. 미얀마에서 지난달 말 마침내 54년간의 군부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아웅산 수치 여사의 민주정부가 출범했다. 미얀마 국민들은 보다 민주적이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새로운 미얀마에 대한 열망과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국제사회도 국내외의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진정한 ‘미얀마의 봄’을 꽃피울 것인지 주시하고 있다. 지난주 찾은 미얀마는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11년 전 논란 속에 새로 이전한 수도 네피도(황제의 도시라는 의미)도 삭막하기만 하던 예전 모습과 달리 새로운 민주정부의 출범과 외국 요인들의 연이은 방문으로 제법 분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반세기가 넘는 세월의 군사정권을 거쳐 새로운 정치체제를 추구하는 미얀마 앞에는 수많은 도전과 과제가 놓여 있다. 아웅산 수치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80%의 압승을 거두었음에도 현 헌법 규정에 따라 두 아들이 외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결국 외교장관과 대통령실 장관을 겸직하면서 신설될 국가자문관을 맡게 될 것이지만 군부 등 기득권 세력들과 어떻게 협력관계를 만들어 나갈지 단언할 수 없다. 무장 소수민족들과의 화해는 어떻게 이룰 것인가도 복잡한 문제다. 한반도의 3배 크기에 자원이 풍부할 뿐 아니라 중국·인도 등 5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전략적 위치로 인해 외교 또한 만만치 않다. 중국의 왕이 외교장관이 지난주 방문해 재빠른 행보를 보인 것을 시발로 새로운 미얀마를 둘러싼 주요국들의 외교 경쟁이 이미 가열되고 있다. 미얀마 신정부도 개혁과 쇄신을 향한 신속한 조치를 보이고 있다. 36개나 되던 방만한 정부 조직을 21개 부처로 구조조정하고, 부패청산의 조치로 20달러가 넘는 선물은 받지 못하도록 공직자 윤리 기준을 강화했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무한정 솟구치는 국민들의 기대감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이냐다. 강제 근로에 동원된 미취학 불우 아동들에게 순회 버스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 여성 사회활동가는 신정부가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에 신경 써 줄 것을 열망했다. 우리에게 미얀마는 어떤 나라인가. 1983년 10월 국빈 방문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 일행에 대해 북한은 아웅산 수치의 부친인 아웅산 장군의 묘소에서 암살 폭파 테러를 자행했다. 미얀마 국민으로부터 국부로 숭앙받는 아웅산 장군의 묘소에서, 그것도 미얀마 국민들의 종교적·정신적 성지인 셰다곤 사원이 지척에 보이는 곳에서 우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테러를 저지르다니 북한은 상식으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도덕한 체제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얀마의 민주화 발전 과정을 되돌아보니 지난 70여년간 변화는커녕 주민들의 여망과 국제사회의 기대에 역행하기만 한 북한 체제가 안타깝다. 미얀마에서 20대의 젊은 시절을 보낸 조지 오웰이 오늘날 북한 체제를 바라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돼지들이 오히려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주민들을 속이고 억압하는 또 다른 ‘동물농장’이라 보지는 않을지. 북녘 땅에 과연 ‘북한의 봄’은 언제 올 것인지 생각하니 벚꽃 만발한 봄날이 착잡하기만 하다.
  • 파리·브뤼셀 테러범 검거… ‘유럽 IS’ 계보 찾나

    파리·브뤼셀 테러범 검거… ‘유럽 IS’ 계보 찾나

    파리 테러 용의자 모든 신병 확보… 지하철 테러범 등 5명 추가 구속 프랑스 파리에 이어 벨기에 브뤼셀 테러에 가담한 핵심 용의자인 모하메드 아브리니(31)가 벨기에 경찰에 체포됐다. 아브리니는 자신이 브뤼셀 공항 테러 현장에 있었다며 당시 폐쇄회로(CC)TV에 찍힌 ‘제3의 용의자’라고 자백했다. 그의 검거는 브뤼셀 테러의 배후가 이슬람국가(IS)임을 밝히는 결정적 단서라고 영국 BBC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모로코 출신의 벨기에인인 아브리니는 전날 안데를레흐트의 페틸론 지하철역 인근에서 검거됐다. 승용차를 몰다 정차한 그를 사복경찰들이 급습해 신병을 확보했다. 수사 당국은 아브리니에게서 자신이 자폭 테러범들 옆에서 모자를 쓰고 수하물 카트를 옮기던 인물이라는 진술을 끌어냈다. 앞서 그의 지문과 유전자는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때 범인들이 사용하던 은신처와 자동차에서도 발견됐다. 아브리니는 130명을 숨지게 한 파리 테러 발생 이틀 전 주범인 살라 압데슬람(구속)과 함께 주유소에 머물던 모습이 CCTV에 포착되기도 했다. 수사 당국은 아브리니가 파리 테러 때 총기 난사범인 압델하미드 아바우드(사망)와 같은 조직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검거로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굼뜬 대응으로 비난받았지만 아브리니의 신병을 확보하면서 IS의 유럽 내 점조직 계보를 파악하는 단서를 얻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아브리니 검거는 파리 테러 발생 4개월 만에 죽거나 도망친 관련 용의자들의 신병을 모두 확보한다는 의미도 갖는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은 전했다. 현지 수사 당국은 아브리니가 종교에 별 관심 없는 절도, 마약 범죄자라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같은 날 아브리니 외에도 브뤼셀 테러 당시 지하철 테러를 일으킨 스웨덴 국적의 오사마 크라옘(23) 등 5명을 추가로 구속했다고 전했다. 크라옘은 브뤼셀 공항 테러 당시 자폭범들이 사용한 가방 2개를 구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샤리아4벨기에’라는 무장단체 소속으로 알려졌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5세 딸 때려 혼수상태… 20대 엄마 징역6년

    인천지법 형사14부는 5살 된 딸을 때려 혼수상태에 빠트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 중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A(28·여)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하고, A씨의 딸을 학대한 A씨 지인 B(38·여)씨에게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8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따뜻한 양육과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학대,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빠트렸다”면서 “수사기관에서 범행을 부인하며 잘못을 은폐하려 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앞서 법원은 “적절하게 친권을 행사하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다”며 A씨에게 친권 상실을 선고했다. 식당일을 하는 A씨는 종교적인 문제로 2014년 9월 남편과 이혼한 뒤 서울 강서구의 한 연립주택에 살면서 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무주걱 등으로 온몸을 상습적으로 때려 결국 지난해 5월 혼수상태에 빠트린 혐의를 받고 있다. A씨와 같은 종교단체에서 만난 B씨는 인천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하던 지난해 5월 역시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A씨 딸의 허벅지에 주전자로 끓인 물을 부어 2도 화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유세 마지막 휴일 수도권 ‘올인’… 부동표 잡기 ‘분 단위’ 혈투

    유세 마지막 휴일 수도권 ‘올인’… 부동표 잡기 ‘분 단위’ 혈투

    20대 총선을 앞둔 마지막 일요일인 10일 여야 지도부는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에 화력을 집중했다. 각 당은 수도권을 분 단위로 쪼개 방문하며 부동층 표심 잡기에 주력했다. ●김무성 “동성애는 인륜 배반 행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서울 동부벨트를 중심으로 9곳에서 점심시간도 없이 집중 유세를 벌인 뒤 저녁에는 울산으로 이동해 밤늦게까지 강행군을 이어 갔다. 김 대표는 서울 강동구 강동우체국 앞 신동우 강동갑 후보 지원 유세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며 “19대 총선 때 통합진보당과 연대해서 대한민국 국회에 종북 세력이 10명 이상 잠입하게 한 정당”이라면서 “통진당은 해체됐는데 통진당 출신이 이번에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 또 위장 출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대표가 울산에 가서 그 지역의 더민주 후보 2명을 사퇴시켜 이번에 통진당 출신이 출마했다”며 “문 전 대표가 또다시 종북 세력과 연대해 못된 짓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또 “이번에 화가 나서 새누리당을 찍지 않거나 투표장에 가지 않으면 운동권 정당만 도와주는 꼴이 된다”면서 “야당 운동권 출신은 변하지 않고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투쟁 논리만 갖고 정치를 하다 보니 19대 국회가 최악이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송파구 성내천 물빛광장에서 열린 송파병 김을동 후보 지원 유세에서 “김을동 최고위원이 마지막까지 격려해 주고 같이 싸워 주고 했는데 그 고마움을 어떻게 잊겠느냐”며 ‘옥새 투쟁’을 지지해 준 김 최고위원을 추어올렸다. 그는 또 더민주 남인순 후보를 겨냥해 “동성애는 인륜을 배반하는 일인데 (남 후보가) 군에서 동성애를 허용하는 군형법을 발의했다”, “군 가산점 제도에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소속 김영순(서울 송파을) 후보와 관련해선 “송파을에 후보를 못 냈지만 전 구청장이 잘하고 있다”면서 “당선이 되면 다시 입당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후 강남권으로 넘어가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종훈(서울 강남을) 의원을 적극적으로 지원사격했다. 그는 서울 강남구 수서역 앞에서 열린 강남 3구 합동 유세에서 “판세 분석을 해 보면 강남갑(이종구)과 강남병(이은재)은 당선이 확정적인데 강남을(김종훈)은 아니다”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 대표는 이후 광진을(정준길)·갑(정송학), 동대문을(박준선)·갑(허용범), 중·성동갑(김동성) 후보들을 차례로 찾은 뒤 울산으로 내려가 동구 일산해수욕장 사거리에서 열린 새누리당 안효대 의원 지원 유세에서 “통진당 출신 무소속 후보가 이 지역(울산 동구)에 출마했다”며 “그런 사람은 막아야 하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 호남 일정 마친 文, 경기 지원사격 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유세 일정을 분 단위로 쪼개며 수도권을 누비는 강행군을 펼쳤다. 서울 북부·동부 라인과 경기 동·남부 벨트를 중심으로 이날 하루에만 18개 지역구를 훑었다. 당초 김 대표는 이날 야권의 불모지인 영남권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합 지역이 많은 수도권을 한 곳이라도 더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발걸음을 돌렸다. 김 대표는 유세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경제심판론’을 거듭 내세웠다. 그는 서울 중·성동을 이지수 후보 지원을 위한 명동성당 앞 유세에서 “지지부진한 경제 상황을 더 끌고 가서 나중에 후회할 것인지, 이것을 바꿔서 우리 미래를 위한 보다 나은 경제를 도출할 것인지 판별해 달라”고 호소했다. 또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정문 앞에서 이뤄진 광진갑 전혜숙 후보 지원 유세에서는 “양극화를 걱정한다면서 부자 세금은 감세하고 서민 세금은 몰래 올리는 짓을 하는 것이 현재 정부”라며 “부자는 세금 깎아 주고, 담뱃값 슬그머니 올려 서민 주머니 터는 식으로 세금 운용하는 정부가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녹색 바람’의 수도권 상륙을 시도하는 국민의당을 향한 견제구도 던졌다. 서울 송파병 남인순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송파구 마천동을 방문해 “정체성을 정하지 못하는 정당이 있지만 결국 가서는 1번이냐 2번이냐 택일해야 한다”면서 “1번을 택해 지금과 같은 경제 상황을 더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2번을 택해 희망찬 새로운 경제를 구축할 건지를 판가름하는 선거”라고 말했다. 전날까지 1박 2일 호남 일정을 끝낸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최민희(경기 남양주병) 후보 지원을 시작으로 경기 고양, 분당, 안산, 서울 강남 등을 누비며 수도권 집중 전략에 가세했다. ●安, 총선까지 수도권 경합 지역 주력 국민의당도 이날 수도권에 당력을 총집결하며 지지층 결집을 꾀했다. 특히 그동안 광주 지역 선거에 집중했던 천정배 공동대표까지 상경해 수도권 지원 유세에 힘을 보탰다.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오전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에서 종교행사와 체육활동 등에 참여하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오후에는 서울 중·성동을, 관악갑, 관악을 등 당에서 전략 지역으로 꼽은 지역들을 집중적으로 돌았다. 안 대표는 유세 중 기자들과 만나 “거대 양당이 창당한 지 이제 두 달 된 국민의당 탓만 하고 있다. 남 탓하는 조직이나 사람치고 제대로 된 게 없다”며 새누리당과 더민주를 향해 각을 세웠다. 또 최근 정당 지지율 상승세에 대해서는 “그러면 비례대표(의석수)가 더민주만큼 나오겠네요”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서울 관악갑 김성식 후보 지원 유세에서는 “새누리당이나 더민주 지지자 가운데 비례대표 정당 투표는 3번을 찍겠다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며 “아주 깜짝 놀랄 만한 결과도 나올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고 말했다. 향후 선거운동 계획에 대해서는 “수도권의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들에 대한 지원 유세를 집중적으로 다닐까 한다”고 했다. 안 대표는 총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경합 지역에 대한 지원 유세에 주력할 방침이다. 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권 재방문 계획도 잡히지 않았다. 이태규 전략홍보본부장은 “마지막으로 호남 지역을 방문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수도권에 ‘녹색 바람’을 더 확산시키는 게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유세에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 동안 광주에만 머물렀던 천 대표가 상경해 서울 지역 선거 유세에 힘을 보탰다. 김한길 전 선거대책위원장은 부인 최명길씨와 함께 전북 일대를 순회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주걱 상습 학대로 5살 딸 혼수상태 만든 엄마 징역 6년

    인천지법 형사14부는 5살된 딸을 때려 혼수상태에 빠트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 중상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A(28·여)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하고, A씨의 딸을 학대한 A씨 지인 B(38·여)씨에게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8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따뜻한 양육과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학대해 생명이 위험할 지경에 빠트렸다”면서 “수사기관에서 범행을 부인하며 잘못을 은폐하려 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앞서 법원은 “적절하게 친권을 행사하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다”며 A씨에게 친권 상실을 선고했다. 식당일을 하는 A씨는 종교적인 문제로 2014년 9월 남편과 이혼한 뒤 서울 강서구의 한 연립주택에 살면서 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무주걱 등으로 온몸을 상습적으로 때려 결국 지난해 5월 혼수상태에 빠트린 혐의를 받고 있다. A씨와 같은 종교단체에서 만난 B씨는 인천 서구에 한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하던 지난해 5월 역시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A씨 딸의 허벅지에 주전자로 끓인 물을 부어 2도 화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열린세상] ‘피터의 원리’에 갇혀 버린 대한민국/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피터의 원리’에 갇혀 버린 대한민국/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요즘 신문을 읽다 보면 몇 년 전 공무원들의 사석에서 우스갯소리로 회자됐던 ‘주사(主事)급 장관’이 생각난다. 부하 직원들 사이에서 “○주사”로 통했던 장관은 장관직을 물러난 뒤에도 그의 능력과 상관없이 또 다른 정부 요직을 차지했다. 그러나 얼마 후 재직 중에 저질렀던 부정비리와 불법행위로 인해 국민들의 원성과 지탄을 받게 됐고, 결국 40여 년의 공직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마감했다. 최근까지 우리는 격에 맞지 않는 무능한 고위공직자들의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되거나 도덕성의 문제로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한 장관 후보자들도 많이 보았다. 우여곡절 끝에 임명된 장관들도 부하 직원이 써 준 연설문을 그대로 읽거나 기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드러냈다. 전문적 역량보다는 정치적 친분으로 임명된 공공기관의 장, 그리고 정책 관리 역량이 부족한 고위공무원들도 적지 않다.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높은 직위에 올라간 사람들이 끼치는 폐해는 고스란히 정부와 국민에게 돌아온다. 이처럼 사회 곳곳의 높은 자리가 점점 무능한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행정 조직뿐만 아니라 정치, 기업, 종교, 학교, 군대 등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모르는 리더들도 많다. 그 결과 존경하고 싶은 유능한 지도자를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이른바 ‘피터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교육학자 로런스 피터는 모든 사람은 무능력의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하려는 경향이 있어 결국 사회 전체가 무능한 사람들로 채워지게 된다는 원리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유능한 부하 직원으로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높은 직위로 올라갈수록 무능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훌륭한 부하라고 반드시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본 소니(SONY) 사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다 퇴직한 직원이 쓴 ‘소니 침몰’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조직에 있는 매니저들의 99%가 보통의 아저씨들”이라고 회고한다. 그는 이들 아저씨가 좋아하고 칭찬한다는 것은 제품이 지극히 평범하다는 반증이라면서 “소니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무능한 상사들이 유능한 인재를 시간을 들여 바보로 만드는 승진 시스템”이라고 설파한다. 그렇다면 피터의 원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첫 번째는 수직적 계층 구조를 수평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피터의 원리는 위계적 구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수평적 조직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계층적 관료 시스템 아래서 개인이 승진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조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피터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가장 수평적으로 운영돼야 하는 정당 조직도 위계화가 되면 무능한 사람들이 공직 후보자로 선정되기 쉽다. 두 번째는 상시로 검증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우선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쳐 자리에 맞는 사람을 선발하고, 선발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무원은 선발된 후에는 20년 넘게 특별한 검증 과정 없이 승진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고위공무원에 진입하는 단계에서만 역량평가를 하고 있다. 이제 정기적인 역량평가를 통해 스스로 진단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유로운 질문과 답변, 열띤 토론과 인터뷰를 통해 검증이 다양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개개인도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피터 박사는 자신이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무능의 단계에 도달했음을 드러내는 행동이나 증상을 보여 주는 소위 ‘창조적 무능력’을 통해 스스로 승진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직장과 개인의 진정한 행복을 찾는 열쇠라고 한다. 또한 신영복 교수는 “자기 능력의 70%를 요구하는 자리에 가는 것이 득위(得位)의 길이고, 그 이상을 요구하는 자리는 실위(失位)의 길”이라고 했다. 옷은 자기 몸에 맞아야 맵시가 난다. 우리 사회에는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이 너무 많다.
  • 수천년 갈등이 쌓은… 모두의 성지, 모두의 상처

    수천년 갈등이 쌓은… 모두의 성지, 모두의 상처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성벽의 도시다. 베이지색의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도시 전체 면적의 0.8%에 불과하다. 하지만 구·신시가지를 막론하고 건물과 도로는 모두 성벽의 색을 따르고 있어 어디에 서 있든 성벽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느낌이다. 예루살렘을 수놓은 베이지색 벽돌은 햇빛을 머금으면 화려함을 뽐내고, 비가 도시를 적실 때는 본연의 청초함을 내보인다. 성벽은 변함 없이 그 자리를 지켜 왔지만 성벽의 돌은 매 순간 변화한다. 성벽 너머에는 그 유명한 황금색 돔의 이슬람 사원과 함께 유대교의 메노라(일곱 갈래의 촛대 문양), 기독교의 십자가로 장식된 여러 종교 건물이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한다. ●이슬람·유대·기독교 문화 공존하는 도시 예루살렘은 성벽을 중심으로 안은 구시가지, 밖은 신시가지로 나뉜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인이 활동했던 지역은 모두 구시가지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예루살렘은 성벽 밖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다윗왕이 기원전 10세기경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이후 예루살렘의 주인은 수차례 바뀌었고 그 때마다 구시가지와 성벽은 파괴되고 또 건설되기를 반복했다. 오늘날의 구시가지와 성벽은 16세기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쉴레이만 1세에 의해 재건돼 이어져 오고 있다. 예루살렘 성벽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전체 길이 4㎞인 성벽 위로 올라가 한 바퀴 돌며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경치를 비교할 수 있다. 구시가지와 바로 마주한 시온산이나 올리브산에 올라 산등성이를 따라 흘러가는 성벽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좀 더 멀리 나가 히브리대 캠퍼스가 있는 스코퍼스산의 전망대에 가면 예루살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걷기가 아닌 세그웨이를 택했다. 바퀴가 두 개 달려 있는 킥보드 모양의 스쿠터인 세그웨이는 운전자가 발판 위에 올라선 뒤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면 저절로 움직인다. 예루살렘의 세그웨이 투어 업체를 이용하면 초심자라도 간단한 훈련 과정을 거쳐 성벽 외곽을 둘러보는 단체 투어에 따라나설 수 있다. 세그웨이 투어는 걷기보다 품을 덜 들이며 예루살렘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약간의 스릴과 속도감도 느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軍 경계선이었던 성벽… 빈부 경제 장벽으로 세그웨이 투어 가이드는 우리를 ‘예민 모세의 풍차’ 밑 전망대로 이끌었다. 1860년쯤 근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영국 출신 유대인 모세 몬테 피오르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풍차 주변에는 이제 부유한 유대인들이 모여들어 부촌을 형성하고 있다. 예루살렘 서쪽 성벽을 마주 보고 있는 이 전망대에 서면 성벽과 힌놈 계곡이 위아래로 평행을 이루며 좌우로 펼쳐진다. 푸른 힌놈 계곡과 옅은 흙빛의 성벽은 대조를 이루며 오른쪽으로 달려 나가다가 어느새 성벽은 끊어지고 계곡은 너른 사막과 만난다. 가이드는 저 사막 너머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관할이라고 알려 줬다. 풍차 밑 전망대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서쪽 성벽은 평화로웠지만 불과 50여년 전만 하더라도 총탄이 빗발치는 국경이었다. 1967년 이전 예루살렘을 동서로 분할 점령하고 있었던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서쪽 성벽을 두고 대치했고 요르단군의 총격으로 성 밖 인근에는 사람이 살기 어려웠다. 하지만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좁고 낡은 구시가지 대신 서쪽 성벽 밖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고급 빌라와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한 쇼핑 거리인 마밀라몰이 들어섰다. 이스라엘과 중동을 정치·군사적으로 단절시켰던 예루살렘 성벽은 이제 부유한 유대인과 상대적으로 가난한 아랍인을 나누는 경제적 장벽이 됐다. 이제 성벽 안으로 들어갈 차례. 예루살렘 성벽에는 총 8개의 문이 있다. 그중 동쪽 성벽에 있는 황금문은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 구시가지는 복잡한 역사를 반영하듯 약 1㎢도 안 되는 면적이 종교에 따라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아르메니아 정교회 등 네 쿼터로 나뉘어 있다. 세그웨이 투어가 끝난 뒤 자파(욥바)문을 통해 구시가지에 입성했다. 구시가지에서 일말의 망설임을 느꼈다면 그것은 평균 높이 12m의 성벽이 주는 물리적 압박감에 더해 테러 가능성에 대한 심리적 불안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동예루살렘 등지에서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인 사이에 유혈 충돌이 격해지면서 외신들은 1987년, 2000년에 이은 제3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민중봉기)가 시작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구시가지 유대·아랍인 공존… 관광객도 ‘북적’ 하지만 구시가지 길을 걸으며 이런 불안감은 점차 줄어들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시선은 부드러웠다. 여행을 도와준 유대인 가이드는 “좁은 구시가지에 사는 유대인과 아랍인 대다수는 작은 소란이 곧바로 파멸로 이어지며 따라서 서로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뿌리에서 나왔으나 수천 년 동안 불신하고 불화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복잡한 관계에 비해 구시가지에서 쿼터 간 이동은 시시할 정도로 쉬웠다. 성벽과 닮은 베이지색 벽돌의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쿼터를 넘나들며 전혀 다른 문화를 마주하게 된다. 자파문을 지나 기독교 쿼터 거리에서 성모 마리아와 예수가 그려진 기념품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 순간 푸른색 모자이크로 장식된 아르메니아 스타일의 도자기가 가판에 등장한다. 기독교 쿼터와 이슬람 쿼터의 경계에는 구시가지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인 성분묘교회와 비아 돌로로사가 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뒤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간 ‘고난의 길’ 비아 돌로로사와 예수가 사망하고 부활한 성분묘교회는 기독교도의 성지다. 하지만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슬람 양식의 건물과 아랍인 상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종업원의 호객행위에 못 이겨 상점에 들어가면 갖가지 향신료와 중동 음식을 접할 수 있다. 유대교 쿼터와 유대교도의 성지인 통곡의 벽은 성분묘교회에서 동쪽으로 이슬람 쿼터를 가로질러야 나온다. 여행 당일은 유대교의 안식일인 사바스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유대인들은 매주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 모든 생계 활동을 멈추고 신을 기린다. 모든 상점과 관공서는 금요일 일몰 전에 문을 닫고 유대인들은 일몰 무렵 통곡의 벽 앞에서 유대교 경전인 토라를 읽거나 함께 찬송한다. ●유대교 안식일 軍 경비 강화 긴장감 맴돌아 해가 지기 시작하자 유대교 전통 복장인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납작한 원반 모양의 모자 카파를 쓴 유대인들이 속속 이슬람 쿼터 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구시가지를 지키던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도 경비를 강화했다.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아랍인 청소년들을 붙잡아 그자리에서 몸수색을 했고, 일부는 본부로 연행했다. 주위에 있던 아랍인들은 애써 모르는 척했으며, 유대인들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나 자유롭게 오갔던 거리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통곡의 벽에 이르기 전에 보안검색대가 앞을 가로막는다. 검색요원은 가방을 일일이 열어 보고 수상한 물건의 정체를 물었다. 보안검색대를 지나면 통곡의 벽이다. 이미 수많은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 앞에 모여 있었다. 그들이 조명 아래서 앞뒤로 몸을 흔들며 토라를 낭송하거나 서로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며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은 장관이다. 통곡의 벽 건너에는 솔로몬왕이 지었다는 성전의 터가 있다. 지금은 이슬람교의 황금사원이 황금색 돔을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들어서 있다. 황금색 돔은 유대인들에게 아픈 역사를 상기시킨다. 세계 많은 이들이 예루살렘의 상징으로 주저없이 황금색 돔을 꼽지만 유대교 쿼터에서 파는 예루살렘 기념품에는 황금색 돔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통곡의 벽을 뒤로하고 성벽을 따라 시온산을 오르면 유대인들의 외침은 점점 잦아들고 통곡의 벽과 황금사원이 한눈에 보인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경제수도 텔아비브와 달리 밤에 활동하는 인구가 적기에 도시의 불빛도 여타 대도시에 비해 약하다. 하지만 주변 불빛이 은은할수록 황금색 돔과 통곡의 벽은 더욱 빛나 예루살렘의 야경에 특별함을 더한다. 글 사진 예루살렘(이스라엘)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여행수첩 →한국이 7시간(서머 타임 적용 시 6시간) 빠르다. 기후는 우기(겨울 12~2월)와 건기(여름 4~10월)로 나뉜다. 예루살렘이 텔아비브보다 평균 3도 정도 낮다. 여름에도 일교차가 있으므로 여러 종류의 옷을 준비해야 한다.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의 검문검색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공항 요원이 출입국시 직업, 이스라엘 방문 목적, 동반인, 이스라엘 숙소 등을 철저히 묻는다. 따라서 항공기 출발 3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출입국 시 여권에 스탬프를 찍는 대신 종이로 된 카드를 나눠 준다. 아랍 국가 방문 시 빚어질 수 있는 여러 불편을 줄이기 위해 여권에 이스라엘 방문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배려다.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상생의 동양문명이 세계평화 이끈다…그 중심은 한반도”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상생의 동양문명이 세계평화 이끈다…그 중심은 한반도”

    검은 갓, 흰 도포에 꼬장꼬장한 말과 몸짓…. 종교지도자 모임이나 국경일 행사 기념 촬영 때면 나란히 선 인사들 속에 독특한 외모의 한 노인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지난 31년간 줄곧 국내 민족종교를 이끌어 온 한양원(93)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말고도 그가 가진 직함은 아흔을 넘긴 노인에겐 과하다 싶을 만큼 수두룩하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공동회장,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 갱정유도 도정(대표), 한국서당문화진흥회 이사장…. 그중에서도 민족정기와 겨레얼 살리기는 평생을 바쳐 천착한 으뜸의 숙제다. 서울 답십리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난 한 회장은 자타 공인의 ‘민족종교 대부’답게 대면부터 민족정기와 겨레얼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민족종교협의회를 31년간 이끌어 왔다. 민족종교협의회는 어떻게 시작됐나. -1983년 염보현씨가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무렵이었다. 당시 민족지도자인 안호상 박사에게 사직공원에 단군궁을 건립하는 데 2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개천절, 삼일절, 광복절 행사를 함께 치르며 민족정기를 고취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거의 성사를 앞두고 일부 개신교 측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내가 갱정유도 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문제가 많다 싶었다. 그래서 당시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민족종교친목회를 확대해 1985년 지금의 한국민족종교협의회를 탄생시켰다. 당시 34개 민족종교 교단이 참여했다. →지금 민족종교계의 형편은 어떤가. -흔히 알려진 대로 일제강점기 애국애족 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선 게 민족종교였다. 3·1운동을 시작한 게 천도교였다면 임시정부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대종교였다. 독립군 양성을 위해 북만주에 무려 11개의 학교를 세운 것도 모두 민족종교였다. 조선총독부의 미움을 샀던 민족종교는 일제가 물러간 후에도 잔재가 남은 탓에 사이비 종교 취급받기 일쑤였다. 이런저런 탄압을 받거나 운영난으로 교세가 위축된 민족종교들이 적지 않게 도태됐다. 지금은 원불교, 천도교, 대종교, 갱정유도 등 12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다. 이런 민족종교들은 교리와 운영 면에서 모두 잘 유지하고 있다. →한 회장이 대표로 있는 갱정유도는 일반인에겐 좀 생소하다. 어떤 종교이며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선(仙)·불(佛)에 바탕하면서 인륜의 도리를 유도로써 밝혀 나가는 유불선 삶의 병행이 핵심이다. 기미년 독립만세운동 당시 태극기 300장을 직접 만들어 순창시장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도조 강대성이 해방 3년 전 전남 순창 회문산에 갱정유도회 본부를 만든 게 시작이다. 강 도조는 일본에 대적해 독립운동을 제대로 하자는 뜻을 세웠었다. 나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입도했다. 내 인생의 좌표를 정한 시기였다. 좌우익 혼란기엔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문산의 갱정유도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평생을 겨레얼 살리기에 천착해 살아오셨다. 왜 그렇게 겨레얼 살리기를 중시하는가. -일제강점기엔 우리말과 글을 못 쓰고 배우지 못하게 했다. 한마디로 우리 문화 죽이기다. 일본이 패망해 쫓겨 간 뒤엔 미국과 소련이 주둔한 채 민족이 반 동강 났다. 지금은 어떤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우리말과 글을 두고도 남녀 노소가 모두 영어 배우기에 혈안이다. 외래 문화가 판치고 그것을 우리 것으로 알고 가르친다. 건국 이념과 우리 문화, 역사를 다시 살려야 한다.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는 현재 외국에 17개 지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보다 외국의 동포들이 더 겨레얼 살리기 운동에 적극적이다. 웃지 못할 현상 아닌가. →민족종교가 그 일을 주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건강한 우리의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물질문명을 병행시키자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했는데도 정신문화는 반대로 추락한다. 정신이 퇴폐해진 가운데 경제만 성장하면 싸움과 다툼이 만연하고 안정된 평화를 찾을 수 없다. 과거 서당, 서원만 있던 시절에도 성현군자와 영웅호걸이 나와 세상을 밝혀 나갔다. 지금은 어떤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다양한 교육시설과 기관이 있는데도 정신문화는 날로 쇠락해만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민족종교계를 이끌어 오면서 다른 종교인들과 폭넓게 교류한 것으로 유명한데. -갱정유도 총무로 일하면서 많은 이들과 만나 조언을 듣고 함께 일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와 초대 성균관대 총장을 지낸 유교의 심산 김창숙 선생 비서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작고한 통일교 문선명 총재와는 주역 공부를 놓고 가까워진 적이 있었다. 불교의 경봉·효봉·청담 스님, 개신교의 강신명·한경직 목사와도 허물없이 자주 만났다. 그 때문인지 지난해 금강산에서 남북 종교인 만남 때 북측 대표로 나온 강지영씨가 7대 종교 지도자 중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며 분위기를 좀 풀어 달라고 주문했었다.(웃음) →요즘 종교의 가치 전도가 공공연하게 회자된다. 종교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종교가 본질을 벗어난 채 자꾸 외도로 빠져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자나 예수, 석가가 하신 말씀 그대로를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서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하고, 진리를 알게 하도록 하는 게 종교 아닌가. 황금에 매여 진리와 복음을 제대로 못 전해 사회가 어두워진 탓이 크다. 정치 사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도자들이 먼저 부패해졌으니 자기가 썩은 줄 모르고 국민이 썩은 줄만 알고 있다. 일반인들도 각성해야 한다. 옛날 배고프고 어렵던 시절에도 나와 내 가정보다 사회와 나라 걱정을 먼저 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에서 물러나 이웃도 나와 같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길을 솔선해 살펴야 한다. →남북 관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지금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보나. -우리 민족은 본디 피와 언어, 사상, 건국이념이 모두 하나였다. 지금 남북 관계가 유례가 없을 만큼의 경색국면이라고들 한다. 우리 본래의 민족정신을 빨리 되찾느냐 못 찾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겨레얼을 먼저 살리자는 것이다. 통일은 미국, 중국, 러시아의 것이 아니다. 남이 해 주기를 바라서야 되겠나. 남과 북 모두 외세 주도를 벗어나 하루속히 우리끼리 손잡고 뜻과 힘을 모아야 한다. 이미 한참 전에 냉전이 끝났는데도 남북한만 갈라져 있다. 강대국들이 제 이해관계를 따져 통일 후 한반도에도 간섭하려 든다면 또다시 식민지가 되고 말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당선 점괘를 봐 주는 등 주역에도 통달한 종교인으로 유명하다. 통일 전망을 한다면. -그동안 서양이 상극의 전쟁·물질 문명에 편승해 세계를 좌지우지하며 동양까지 끌고 다녔다. 이제 동양으로 운이 넘어왔다. 지금까지는 도적질 잘하는 사람(서양)이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상생과 평화, 그리고 도덕을 우선시하는 동양문명이 세계 평화를 이끌어 갈 것이다. 그리고 세계 중심국은 한반도가 될 것이다. 우리의 건국이념이 바로 온 인류가 함께 유익하게 살자는 ‘홍익인간’ 아닌가. 세계에서 1000여회의 외세 침략을 받으면서도 단 한 번 남을 침략해 본 적이 없는 나라다. 마지막까지 남북한이 시험을 겪는 중이다. 다시 말하면 임신부가 세계를 이끌어 갈 옥동자를 낳기 위한 산고의 순간으로 보면 된다. 내가 보기엔 통일의 기운이 10년 전후에 들었다. 과학문명의 발달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통일이 더 앞당겨질 수 있다고 본다. →여생에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넘어 온 나라가 외래 문화에 휩쓸린 지 100년이 넘었다. 우리 것을 살려 낼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 그래서 수도권에 민족문화대학을 하나 세우는 게 꿈이다. 반만년 역사의 우리 문화와 정신을 제대로 알고 국민에게 오롯이 전달할 인재를 무료로 교육하는 구심체가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예절 교육의 터전인 서당문화마을을 호남권에 꼭 하나 만들고 싶다. 전통서당문화진흥회와 갱정유도가 매년 한 차례씩 전북 남원에서 열고 있는 대한민국 서당문화한마당은 그 모태가 될 것이다. 이달 초 15회 서당문화한마당 행사엔 외국인을 포함해 1500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한양원 회장은 ▲1923년 전북 남원 출생 ▲1933년 광의보통학교 졸업 ▲1937년 순천서당 및 용담서숙 수학 ▲1943년 지리산 입산 수도 ▲1946년 민족종교 갱정유도 입도 ▲1976년 갱정유도 총무·도무원장 및 도정(대표·현) ▲1985년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창립회장(현) ▲1991년 사단법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현) ▲1997년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현) ▲1999년 민족정기선양협의회 공동대표(현) ▲2001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공동회장(현) ▲2002~2003년 개천절민족공동행사 공동위원장(남측대표) ▲2003년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창립대표 ▲2005년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현)
  • IS 가담하려다 붙잡힌 캐나다 10대에게 왜 SNS 접근 금지형?

    IS 가담하려다 붙잡힌 캐나다 10대에게 왜 SNS 접근 금지형?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려한 혐의로 기소된 캐나다 10대 소년에게 반테러법이 처음으로 적용됐다. 캐나다 몬트리올 소년법원은 6일(현지시간) IS가 주로 활동하는 시리아로 출국하는 비용 마련을 위해 편의점에서 강도행각을 벌인 한 소년(16)에게 3년 교화형을 선고했다고 현지언론인 CTV가 보도했다. 이 소년은 2014년 10월 강도행위 뒤 시리아 출국 직전에 부친의 신고를 통해 경찰에 붙잡혔다. 이번 판결은 2013년 테러 조직 가담 시도를 처벌하기 위해 제정된 반테러법이 적용된 첫 사례다. 선고된 형량은 소년범죄법에 따라 미성년자에 부과할 수 있는 법정 최대 형량이다. 특이한 점은 교화형 외에 소셜미디어 접근 금지를 함께 선고했다는 사실이다. IS가 서구 청소년들을 상대로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감안한 조치다. 도미니크 윌헬미 판사는 판결에서 이 소년에 2년 간 구금 및 보호 관찰 처분 1년을 선고하면서 소셜미디어 접근 금지와 종교 지도자 정기 면담 및 사후 추적 상담을 받도록 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김성호 기자의 종교만화경 26〕말기 암 老스님의 5억 기부

    [김성호 기자의 종교만화경 26〕말기 암 老스님의 5억 기부

     “비록 생전엔 나누고 살지 못해도 사후에라도 남에게 준다면 아름다운 죽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평생 장기기증 운동을 하면서 살아온 노 목회자로부터 얼마 전 들은 말이다. “지금 사람들은 남의 어려움에 너무 몰인정한 것 같다.”는 목사의 일갈에 고개를 끄떡였었다. 그 공감의 전언에 딱 맞춘 것처럼 나눔의 선덕(善德)을 베푼 80대 노 스님의 미담이 화제다. 췌장암으로 입원 투병 중인 전 부산 정주사 주지 지인 스님이 평생 모은 5억원 전액을 인재 양성에 써달라며 동국대에 기부했다는 그 이야기다.  ‘스님이 뭔 돈이 그리 많아?’ 세간 대중들의 의문이 쏠리는 대목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사연을 알아보니 절절하다. 17세에 머리를 깎고 출가한 스님은 30년 넘게 교도소며 군 병영에서 봉사활동을 펼쳐 온 납자(衲子·입다가 버린 낡은 헝겊으로 기워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다. 차량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국 곳곳을 다니며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휴지 한 장도 말려 쓸 만큼 청빈한 생활로 유명한 출가승이다. 암 세포가 간까지 전이돼 거동이 힘든 형편인데도 직접 은행을 찾아 예금통장을 해지해 동국대 기부금 계좌로 돈을 모두 이체했다는 후담이 잔잔한 울림을 전한다. 스님에겐 마지막일지도 모를 ‘속 깊은 기부’가 제대로 쓰여지길 바란다.  지인 스님의 덕행에 얹어 불교계에선 자주 회자되는 고사 하나를 떠올려본다. 명대 선승 운서 주굉의 ‘죽창수필’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다. 군인이 죽어서 좋은 세상으로 가라며 천도재를 지냈는데, 정성이 모자란 탓인 지 음계(陰界)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아내의 꿈에 나타나 모처에 가 염불을 해달라고 부탁하면 정성들여 해줄 것이란 말을 전했다. 적은 돈을 갖고 그곳에 갔더니 돈 상관 없이 정성껏 염불을 해주었고 그날 밤 꿈에 죽은 남편이 나타나 음계를 벗어났다며 고마워했다는 이야기다. 불교 세계에 맞춰진 이야기지만 죽은 사람조차 배려와 나눔이 긴요하다는 교훈 쯤으로 들린다.  ‘요즘처럼 나 먹고 살기도 버거운 시절에 남 도울 여력이 어디 있나’ 거개의 대중들이 갖는 생각일 것이다. 하물며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는다는 경제 논리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무한 경쟁의 세상에서 내 것을 모두 줘 남을 돕는다고? 얼마 전 알파고와 이세돌이 펼쳤던 세기의 바둑 대결 때 자주 등장했던 그 ‘아생연후 살타(我生然後殺他)’가 더 설득력을 갖는 세상 아닌가. 그래서 나보다 남을 배려하고 나누는 덕행은 동서고금을 통해 고귀한 덕목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인류가 가진 최고의 도덕률’이라는 종교에서 그 나눔과 배려는 종파와 교리의 구별 없이 우선시되는 공동 선(善)의 으뜸 가치로 꼽힌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복음 10:8)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잠언 3:27)…. 불교에서 생사의 고해를 건너 열반의 피안에 이르기 위해 닦아야 할 여섯가지 실천덕목이라는 ‘육바라밀’속 보시(布施)도 그 성경 경구와 맞닿아 있다. 재(財)보시, 법(法)보시, 무외(無畏)시의 세 보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집착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무조건 베푼다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는 최고의 경지로 존중된다.  나에게 이롭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는 각박한 세상이다. 그래도 분분한 설이 있긴 하지만 인간 심성의 바탕엔 분명히 착한 마음이 버티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선한 심성은 기부와 기증이라는 배려의 나눔으로 도처에서 뻗치고 있다. 비록 노 스님의 5억원 기부처럼 많진 않더라도, 남을 위해 내 것을 다 내주진 못하더라도 조금 씩의 배려는 세상을 훨씬 더 좋게 만들어 놓지 않을까.김성호 선임기자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그의 논에는 우렁이와 붕어가 살고 그의 밭에는 해와 별과 바람뿐이다

    그의 논에는 우렁이와 붕어가 살고 그의 밭에는 해와 별과 바람뿐이다

    충남 논산시 상월면 김광영(46)씨의 논에는 우렁이가 살고 토종 참붕어가 산다. 추수가 끝난 논의 물을 빼는 날이면 아이들이 논두렁에서 양동이를 들고 기다린다. 바닥이 채 드러나기도 전에 철퍽철퍽 뛰어드는 아이들과 함께 여름내 살이 오른 우렁이를 줍고, 한쪽 둠벙에서 배를 뒤집고 펄떡이는 참붕어를 줍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녁 밥상에는 우렁이 된장찌개와 참붕어찜이 오른다. 그가 경작하는 땅은 그만큼 순순하고 깨끗하다. 철저하게 자연 재배 방식을 고집하는 김씨는 대부분의 유소년기를 서울에서 보냈다. 1998년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대전에 있는 신학대학 석사 과정 2학기 때 돌연 옷 보따리 하나 달랑 메고 논산으로 갔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슬슬 비가 그친다. 길가에 만개한 노란 개나리 군락이며 진달래 무더기가 말갛게 씻긴 낯빛으로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낮아지는 산등성이에 돋아나는 연둣빛 봄의 기운이 더욱 완연하다. 금강의 한 지류를 따라 달리다 주변 풍광에 정신이 팔려 마을 초입에서 길을 놓쳤다. 마침 김씨로부터 전화가 온다. 주말이라 아이들과 함께 딸기를 수확하고, 잠깐 짜장면을 먹으러 나왔는데 차가 고장 나 버렸다는 것이다. 곡절 끝에 만난 김씨는 그러나 여유로운 모습이다. 28살에 내려와 18년 동안 흙과 함께 살았다는데도 어쩐지 도시의 자유로운 젊은이를 연상시킨다. # 신학도가 농부가 된 이유 한창 수확 중인 딸기 밭이 근처라 하여 자리를 옮겼다. 하우스 입구에 마련된 작업장으로 들어가자 대형 고무 통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EM’(유용한 미생물) 발효액을 숙성시키는 통이다. 작업장 한쪽으로는 책상이 있고, 책상 위에는 컴퓨터도 있다. 김씨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명함을 건넨다. 사람이 땅과 새싹을 감싸 안고 있는 예쁜 그림 위에 직함과 이름이 쓰여 있다. ‘농부 김광영’ 그의 내면에 가득 찬 자부심이 그 한 장에 모두 들어 있는 듯하다. 김씨는 신학 공부를 하던 시절부터 사람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바른 사회에 대한 열망이 컸고, 처음 논산으로 들어오게 된 것도 농민회 일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런데 사실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어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후에 마지막으로 만든 게 사람이잖아요. 그 이유는 땅을 경작하고 수확하며 관리할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그는 땅을 택했다. 공부보다도 말씀대로 살고 싶었다. 땅을 빌려 경작하며 배워 가는 한편으로 일 년 반 정도 목회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꾸만 회의가 일더란다. 교인들 앞에서 자신이 말한 대로 살아야 하는데, 꼭 그렇게 살아갈 수만은 없는 것이더라고. 세월이 흘러 믿음으로부터도 멀어졌지만, 김씨는 지금도 가끔 교회에 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특히나 해가 긴 여름날 저녁 혼자 들판에서 일할 때, 어디선가 익숙한 차임벨 소리가 들려오면 허리를 펴고 들판 너머 그 먼 곳을 바라보게 된다고. # 그들이 꿈꾸는 세상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시끌벅적한 웃음 소리와 함께 아내 박현희(43)씨와 아이들이 밭으로 온다. 씩씩한 세현이와 수줍음 많은 정현이, 호기심 가득한 공주님 다현이는 우리 일행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부리나케 딸기 밭으로 들어간다. 금세 한 바구니의 딸기를 따 와서 그대로 제 입에도 넣고 내 입에도 넣어 준다. 흔히 마트에서 사 먹는 것과는 맛이 완연히 다르다. 단단한 육질에 새콤달콤 진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굉장히 큰데도 어릴 때 먹던 밭 딸기 맛 그대로이다. 부부는 신학 공부를 하던 시절에 만났다. 교육학을 전공한 아내 박씨는 남편이 논산으로 온 후에도 학업을 계속하며 대전과 논산을 오갔다. “그때는 뭐든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농촌 현실도 잘 몰랐고. 가까운 곳에 영화관이나 서점 같은 게 없어서 그런 문화적 그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죠.” 처음에는 주위에서 가르쳐 주는 대로 농사를 지었다. 한 해 두 해, 하나씩 알아 가다 보니 이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건강에 관심이 있어서 건강교실 같은 곳에 다녔는데, 의외로 아픈 사람이 참 많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규모화된 ‘관행 농사’보다는 작고 소박하게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자는 결심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일본의 성공 사례를 본보기 삼아 여러 작물로 시험해 보다가 본격적으로 자연 재배로 벼농사를 시작한 지는 올해로 8년째다. 처음 몇 년은 일반 쌀의 50%밖에 소출이 나지 않았다. 다수확을 위해서는 비료를 넣어야 하고, 비료를 넣으면 병충해가 생겨 약을 쳐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땅은 황폐해져 가는데, 그 고리를 끊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때만 해도 안전한 농작물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 않아 판로가 마땅치 않았다. 읍내에 있는 방앗간에 일반 쌀과 같은 가격으로 판매를 부탁했는데, 그나마도 반 정도밖에 팔리지 않았다. 한 해 농사를 망치면 그 여파가 3년 동안 간단다. 땅을 마련하기 위해 받은 대출금은 농사만 지어서는 갚을 길이 없었다. 김씨는 2만평까지 욕심을 냈던 것을 5000평으로 줄이고, 가을걷이가 끝나는 대로 일을 찾아 타지로 나갔다. 목수 일부터 빌딩의 선팅지 바르는 일까지 안 해본 일이 거의 없었다. 농장에서 하우스의 연탄만 가는 일을 한 적도 있었다. 일산화탄소 때문에 방독면을 쓰고 하루 평균 2400장의 연탄을 갈았다. 박씨도 남편의 농사일을 돕는 한편으로 학교에서 복지사로 근무했다. 겨울이면 남편은 타지로 나가고, 직장일과 병행해야 하는 육아와 가사는 오롯이 박씨 혼자만의 몫이었다. 이사를 여덟 번이나 다녀야 했고, 겨울이면 물이 얼어 길어다 먹어야 하는 집에서 산 적도 있었다. 그래도 부부는 농사법을 바꾸지 않았다. 여타의 작물들도 철저하게 무농약, 무비료를 고집했다. “아이들이 생기고부터는 더욱 확고해졌어요. 내 아이들이 이 논두렁, 밭고랑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 텐데, 저걸 따서 입에 넣어 우물거릴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더욱 약을 칠 수 없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내 아이들에게 먹일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파는 일은 더욱 할 수 없는 거잖아요.” 3년 전부터는 겨울마다 타지로 돈을 벌러 나가는 대신 하우스 3동을 마련해 논산시의 주력 작물인 딸기 재배를 시작했다. 자연 재배를 추구했던 만큼 하우스는 될 수 있는 대로 안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도전이 되었다. 철저하게 무농약의 원칙을 지켜 벌레가 생기면 마요네즈를 물에 풀어서 뿌리고, 달걀 껍데기로 칼슘을 보충하고, EM 발효액을 만들어 비료 대신 뿌렸다. 힘은 들었지만 비싼 비료와 농약 값이 들지 않으니 오히려 경제적이었다. 하우스 3동에서 한 해 3000만~3500만원의 수익이 났다. 웬만한 도시 노동자의 연봉이 부럽지 않았다. 아직은 마을 단위로 공동 선별해 ‘무농약 마크’만 달고 출하하지만, 내년에는 뜻을 같이하는 더 많은 농가들이 모여 ‘유기인증’을 받을 계획이다. 해당 기관의 철저한 관리와 검사하에 무농약 2년에 유기 전환기 2년을 거치면 5년째 절차가 마무리된다. 현재 완전 유기농 딸기는 국내 전체 생산량의 0.3%에 불과하다. 인증을 받으면 수익이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직접 기른 안전한 먹을거리들이 지천에 널려 있고, 자연 재배 쌀의 소출도 늘어 이제 70%까지 올랐다. 낱알은 더 통통해지고 쌀알에서는 윤기가 흐른다. 5000평의 논에서 직거래만으로도 1500만~200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데, 이 역시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자연 재배와 관행 재배의 차이를 산삼과 인삼에 비유한다. 물을 부어 며칠 동안 놔두어 보면 관행 재배 쌀은 부패해 악취가 나는 반면, 자연 재배 쌀은 그대로 발효가 된다고 한다. 처음에 화학비료와 살충제로 찌든 땅을 해독시키기까지가 힘들지, 이후에는 그야말로 땅과 해, 바람, 별빛이 벼를 키운다. 그 노동력을 손이 많이 가는 유기농 딸기 재배에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이다. 김씨는 자연 재배에 대한 자부심으로 쌀에 대해서만큼은 유기 인증을 받지 않으려 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유기농 전문점이나 학교급식 등 좀 더 넓은 시장에서 정당한 가격으로 적절하게 판매하기 위해 지금은 절차를 밟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직거래로만 판매하고 있어요. 도매로 넘겨 버리면 꼭 필요한 사람들이 꼭 필요할 때 살 수 없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 자연 재배로 쌀을 생산하는 농가는 현재 20가구 남짓뿐이다. 젊은 귀농인을 중심으로 부쩍 문의가 늘고 있는 추세인데, 충남도에서도 도내 전체 생산 작물의 70%까지 유기 작물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각종 혜택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환경과 사람을 생각하는 건강한 땅과 바른 농작물에 대한 인식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누군가는 꼭 가야 하는 길이었다. 누군가가 먼저 가면 뒤에 오는 사람들은 좀 더 수월할 것이다. 부부는 거기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 귀농을 고민한다면 그들처럼 아내 박씨는 귀농을 고민하고 있다면 너무 오래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직접 내려와 부딪치든가, 여유 자금이 있더라도 일단 집만 구해서 내려올 것을 권한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자본을 들여 시설을 갖추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어떤 작물이든 맞는 땅이 있고 맞는 사람이 있단다. 직접 경작해 본 뒤 자신에게 맞는 작물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김씨는 귀농 수강생 1인에 20인의 전문가가 붙는 ‘밀착 교육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뜻을 같이하는 스무 명의 귀농, 귀촌인이 모여 이미 70% 이상의 공정이 끝났다. 그는 또 2002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논산재배 INTO THE WILD’라는 온라인 카페에 농사 일기를 비롯해 자연 재배와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올려 정보를 나누고 있다. 농촌 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소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자연 재배 쌀의 직거래 판매도 같이 한다. 건강한 땅에서 나는 바른 농작물이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김씨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꿈꾸는 세상이다. 글쓴이 소설가 서진연 ▲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2013년 제2회 EBS 문학상 우수상 수상 ▲ 소설 ‘붉은 나무젓가락’, 그림동화 ‘옥상에 텃밭이 생겼어요’, 옴니버스 에세이집 ‘가족이 힘이다’, ‘수업’, ‘가족, 당신이 고맙습니다’ 등
  • 해외여행 | 신들의 휴양지 안탈리아 Antalya

    해외여행 | 신들의 휴양지 안탈리아 Antalya

    TURKEY 신들의 휴양지 안탈리아 Antalya 창밖 바다 위로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공짜 미니바를 열고 고민한다. 인생은 초콜릿상자라 했지….그렇다면 난 ‘올 인클루시브All-inclucive’를 꺼내 먹겠다. 수천년 역사의 흔적이 가득한 고대 도시. 보드라운 지중해는 연 300일의 따뜻한 햇살을 선물했다. 긴 해안선을 따라 올 인클루시브 골프 리조트와 5성급 호텔들이 휴양객을 기다리고 있는 곳, 터키 남서부의 선택받은 휴양지 ‘안탈리아’다. ●Antalya 로마부터 오스만까지, 포용의 역사 모스크에서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잔소리가 정적을 깬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엔 수천년 전과 다름없는 지중해의 따스한 바람과 고고한 햇살이 평화롭다. 지난해 G20 정상회담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안탈리아는 우리에게 익숙한 여행지는 아니다. 하지만 터키를 방문하는 외국관광객들이 이스탄불만큼 많이 찾는 유럽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며, 명문 축구팀과 골프선수들이 겨울마다 즐겨 찾는 전지훈련지로도 유명하다. 따뜻한 지중해를 끌어안고, 뒤로는 눈 쌓인 토러스 산맥이 지키고 있는 천혜의 관광자원에, 최고급 호텔과 골프장이 계속 신축되는 모습은 마치 한국의 제주도를 보는 것 같다. 여기에 하나 더, 안탈리아엔 치열한 역사의 흔적이 있다. 이곳의 옛 이름 팜필리아Pamphylia는 BC 7세기 리디아부터 시작해 페르시아, 알렉산더,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코스를 거친 ‘여러 종족의 땅’이다. BC 159년 페르가몬 왕국의 아탈로스Attalos 2세가 세운 항구도시 ‘아탈로스의 도시’가 훗날 안탈리아로 불리게 된다. 그 후에도 로마와 오스만제국을 거치는 굴곡진 역사의 흐름을 거쳤다. 구 시가지에서는 지금도 다양한 문화유적과 건축양식을 만나 볼 수 있다. 안탈리아 시내관광은 ‘성벽의 안쪽’을 뜻하는 칼레이치Kaleici에서 시작된다. 4.5km의 성벽은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AD 132년 로마 황제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시민들이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만든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은 구시가지 관광이 시작되는 관문과도 같다. 세월의 흔적이 반짝이는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선물가게와 멋스런 레스토랑을 지나 100년은 족히 넘은 고택도 만날 수 있다. 길가엔 선명한 오렌지 나무가 바람에 흔들거린다. 안탈리아 국제영화제의 심벌도 골든 오렌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골목을 나와 항구에 다다르면 지중해 바다를 향해 항해를 준비하는 멋진 범선과 요트들의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성벽 밑 해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피서객, 빵을 잔뜩 쌓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뽐내는 남자, 터키 전통 아이스크림을 만들며 요란하게 호객을 하는 장사꾼을 뒤로하고 터키식 생선구이를 곁들인 푸짐한 점심을 먹다 보면 안탈리아의 일상에 흠뻑 빠지게 된다. 저녁엔 석양을 바라보며 로맨틱한 디너를 만끽할 수도 있다. 로마시대를 제대로 복원한 항구는 1984년에 세계여행기자 및 작가협회가 선정하는 황금사자상을 받기도 했다. 항구에서 흥정을 잘하면 폼 나는 요트를 타고서 지중해 뱃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토러스 산맥 위 눈 녹은 물이 지하수로 내려와 절벽을 타고 40m 아래 바다로 떨어지는 듀덴Duden 폭포의 장관은 배를 타고 바다에서 보아야 제맛이다. 광장 남쪽에 약 40m의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나선형 첨탑 이블리 미나레Yivli Minare는 안탈리아의 상징이다. 오스만 투르크는 술탄의 막강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다문화, 다민족, 다종교를 인정하는 포용력을 보여 줬다. 덕분에 안탈리아에는 기독교 교회와 이슬람 사원이 공존하는 독특한 건축양식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바닷가엔 모래가 예쁜 라라Lara 비치도 있고, 조약돌 해변이 2km에 달하는 콘야알트Konyaaltı 비치도 색다른 물빛으로 유명하다. 안탈리아는 환경교육재단이 선정하는 블루 플래그Blue Flag 최다인증 지역이다. 청정수질과 청결 그리고 자발적인 환경교육으로 지금까지 총 197개의 해변과 6개의 선착장이 인증을 받았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에 가볼 만하다. 터키 최고의 박물관으로 1988년 유럽 내 올해의 박물관으로 뽑힌 곳이다. 선사시대부터 로마, 셀주크, 오스만 시대의 유물까지 만나 볼 수 있다. 아스펜도스, 시데 등 주변 관광지도 많아 사방이 다 유적지다. 안탈리아 시내를 벗어나도 40분 거리에 10여 개의 문화유적을 만나 볼 수 있다. 바울이 첫 번째 전도여행을 떠났던 페르게Perge, 이제는 동네 아이들이 뛰어노는 해발 210m 언덕 위 고대 아크로폴리스의 쓸쓸한 잔해 실리온Sillyon, 아름다운 항구도시 시데Side, 그리고 좀 멀지만 산타클로스의 원조 ‘성 니콜라스 대주교(산타의 고향은 핀란드가 아니다)’의 자취가 남아 있는 미라Myra도 인접해 있다. 아스펜도스Aspendos는 로마시대의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으로 가는 길에, AD 2세기경 로마시대에 지어져 수차례 재건축된 아스펜도스 다리를 지나게 된다. 산 위의 눈은 녹아 강물이 되고 땅은 비옥해서 수확물도 넉넉했다. 다리 밑으로는 대나무로 만든 수백 개의 가게가 제법 활기 넘치던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였다. 지금은 그림 같은 강물만이 조용히 흐를 뿐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은 아크로폴리스 시대에 공연, 집회, 선거 등을 하던 곳으로 지금도 보존상태가 훌륭하다. 약 1만5,000명(고대인들의 체형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 지금은 그보다 수용인원이 적을 수 있다)이 앉을 수 있는 극장 무대에 동전 하나를 떨어트리면 맨 뒷자리까지 소리가 울린다. 훌륭한 고대의 자연음향효과는 지금도 손색이 없어서 오페라 등 각종 공연이 열리고 있다. 극장 옆 언덕길로 올라가면 아크로폴리스도 가볼 수 있다. 터키엔 즉석에서 힘껏 짜서 파는 석류주스가 인기인데, 원형극장 입구에도 한 곳이 있다. 새빨간 석류 주스는 메마른 유적지와 잘 어울린다. AIRLINE터키항공TK은 유럽 전 지역으로 다양한 노선을 운항한다. 안탈리아 직항은 없지만 이스탄불을 경유해 갈 수 있다. 인천-이스탄불 항공편은 매일 운항한다. 밤 12시20분 인천 출발, 오전 5시 이스탄불 도착 후 오전 6시40분 출발하는 국내선으로 1시간 15분 거리의 안탈리아에 갈 수 있다. 목·금·토·일요일엔 낮에 출발하는 추가운항편도 있다. 낮 12시50분에 인천을 출발해서 이스탄불 경유, 안탈리아에 밤 10시50분에 도착한다. 비즈니스항공권을 구입하면 안탈리아행 국내선은 거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세계 최대 규모의 터키항공 CIP라운지에서 무료 와이파이, 식사, 영화, 샤워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인천-이스탄불 일반석을 구입해도 추가되는 안탈리아 국내선 가격은 한국의 국내선과 비슷한 수준이다. www.turkishairlines.com CLIMATE터키는 한반도의 3.5배 크기로 지역에 따라 기후가 크게 다르다. 대체적으로 사계절이 뚜렷하며 봄, 가을이 짧고 여름은 고온 건조, 겨울은 우기로 비가 많이 내린다. 안탈리아 지방은 지중해를 끼고 있어서 연간 300일 이상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며 연평균 기온 21.5도로 최적의 날씨 조건을 자랑한다. 글·사진 한정훈 기자 취재협조 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www.naspr.com,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단독]공립유치원, 교육력 사립보다 ‘우수’…사립 개인 ‘평균 이하’

    [단독]공립유치원, 교육력 사립보다 ‘우수’…사립 개인 ‘평균 이하’

    서울 은평구 은빛유치원은 옥상에 하늘정원을 만들어 텃밭을 조성했다. 층마다 쉼터와 도서 공간도 만들었다. ‘형제·자매 우애교육’ 프로그램으로 사회관계 형성도 돕는다. 강남구 은곡유치원도 은퇴한 숲 해설가와 함께 원아들이 숲 체험을 정기적으로 한다. 학부모 교육 참여를 늘리기 위해 부모 연수를 비롯해 테마교육 등 각종 부모 교육이 이어진다. 은빛유치원이나 은곡유치원처럼 건물을 따로 쓰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공립 단설 유치원이 서울시교육청 유치원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 유치원의 점수는 가장 낮았다. 시교육청은 서울시내 유치원 881곳 중 공립 73곳, 사립 213곳 등 286곳을 대상으로 벌인 2015년 종합평가 결과 공립 단설 유치원이 평균 97.1점을 받았다고 4일 밝혔다. 2008년부터 매년 실시하고 있는 이번 평가는 3주기 평가로 ▲교육과정 ▲교육환경 ▲건강·안전 ▲운영관리 ▲자체지표를 기준으로 시행됐다. 평가 결과 공립 단설 유치원 평균 점수는 97.1점으로 가장 높았다. 공립 초등학교 등에 부속으로 설치된 공립 병설 유치원이 95.1점, 사립학교 법인이나 종교재단 등이 설립한 사립 법인 유치원이 92.9점 순이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 유치원은 90점으로 가장 낮았다. 전체 유치원 평균은 91.8점이었다. 특히 사립 개인 유치원은 유치원 간 점수 편차가 컸다. 공립 단설 유치원 사이에서 가장 격차가 컸던 ‘일과운영 및 교수학습 방법의 적합성’은 최고와 최저 점수 차이가 3점이었다. 그렇지만 사립 개인 유치원은 2배인 6점이었다. ‘실내외 교육환경 구성 및 활용의 적합성’ 지표에서 공립 단설 유치원은 최고와 최저 차이가 0.7점에 불과했지만 사립 개인 유치원은 3.3점이나 됐다. 지난해 전국 유치원 원아모집 평균 경쟁률은 공립 2.11대1, 사립 1.14대1로 공립 유치원 선호 현상이 뚜렷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비 부담과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가 이런 쏠림 현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공립 유치원 교사는 임용 고사를 거쳐 선발한다. 학부모의 비용 부담도 훨씬 적다. 정부 지원금을 제외하고 학부모가 실제 부담하는 비용은 공립 유치원이 매월 1만원 안팎인 것에 비해 사립 유치원은 매월 21만 4900원(방과 후 과정 포함)에 이른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점수가 가장 낮은 사립 개인 유치원은 규모나 교육력에서 유치원별 편차가 커 평균점도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나우! 지구촌] 12세 무슬림 소년에게 ‘테러리스트’라 부른 교사

    [나우! 지구촌] 12세 무슬림 소년에게 ‘테러리스트’라 부른 교사

    미국 텍사스의 한 교사가 자신의 12세 무슬림 제자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뉴욕데일리뉴스 등 지난 2일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왈리드 아부샤반(12)은 시험이 끝난 뒤 친구들과 교실에서 영화를 보던 중 교사로부터 잊기 힘든 모욕을 당했다. 당시 학교에서 국어를 맡고 있던 여성 교사는 교실로 들어와 왈리드를 “테러리스트”라고 지칭했고, 이를 들은 친구들 역시 “폭탄을 봤다” 등의 발언과 함께 왈리드를 심하게 조롱했다. 왈리드는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나는 그저 영화를 보며 재미있게 웃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선생님이 들어와 나를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면서 “이유를 묻자 ‘왜냐하면 우리 모두 너를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나는 매우 화가 났고 궁지에 몰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날 정말 테러리스트로 보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소식을 접한 왈리드의 가족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즉각 항의했다. 왈리드의 아버지는 “아들이 무슬림이라는 것이 곧 테러리스트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분노하며 “학교는 아이들에게 종교적인 개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하며 문제의 교사는 당장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지역 교육청이 진상을 조사하는 동안 문제를 일으킨 교사의 교사 자격을 정지한다고 밝힌 가운데, 이번 사건은 지난해 9월 직접 만든 시계를 폭탄으로 오인받아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했던 미국의 14세 무슬림 소년의 사건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고 있다. 텍사스주에 사는 아흐메드 모하메드(당시 14세)는 집에서 직접 만든 전자시계를 가지고 등교했다가, 이를 본 교사가 시한폭탄이라고 오해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쇠고랑을 차야 했다. 무혐의를 인정받은 모하메드는 곧장 풀려났지만 당시 사건은 전 세계에 퍼지면서, 미국 내에 ‘무슬림 포비아’(무슬림 혐오 현상)가 짙게 깔려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모하메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등의 격려를 받아 더욱 화제를 모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해외여행 | 교류交流에 대하여-조선통신사의 흔적을 기록하다

    해외여행 | 교류交流에 대하여-조선통신사의 흔적을 기록하다

    교류交流에 대하여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기록하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 사실에 의도를 개입시킨 ‘불순한 장난’이라면, 그 장난을 가능케 하는 원인은 역사에 대한 무지無知에 있다고 생각했다. 무지를 지知로 바꾸는 첫 번째 행동은 기록하는 것이다. 한양에서 에도까지 왕복 4,000km를 오갔던 조선통신사, 그 흔적을 기록하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나는 잠시 부끄러웠다 강우량 많다는 도시답게 닛코日光에 들어서자 눈발이 날렸다. 눈은 온천마을의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더 도드라지게 해주는 소품 같았다. 기누가와鬼怒川 온천은 소박하면서 깨끗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눈은 그치지 않았다. 조선통신사 숙소 터가 있다는 이마이치今市 객관으로 가는 날이었다. 통신사 300명을 포함해 일본인 경호원까지 약 2,000명이 이틀 동안 머물렀다는 숙소는 지금 유적비 하나만 남아 있다고 했다. 안내원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못 갈 수도 있다며 염려했다. 그러나 고작 기념비 하나 세워져 있는 곳이라니 설령 가지 못한다 해도 크게 낙담할 건 없다 싶었다. 점심 무렵 눈은 멎었고 가이드는 낭보라며 일정대로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버스는 황량한 공터에 취재진을 내려 줬다. 유적비가 있는 풀밭 속까지 누군가 애써 눈을 치운 흔적이 선명했다. ‘닛코 조선통신사 연구회’의 야나기하라 가즈오키씨가 일정이 취소될까 노심초사하며 오전 내내 낸 길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노신사는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유적비를 설명했다. 통신사의 최종 목적지는 천황이 있는 에도(江戸, 현재의 도쿄)였지만 1636년 4차 통신사 300명은 도쿄에서 150km 떨어진 닛코까지 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신으로 모신 도쇼구東照宮, 동조궁를 보여 주고 싶은 막부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다. 그것을 위해 일본은 지금의 화폐가치로 약 100억원을 들여 임시 숙소를 지었다. 지금은 그 터에 기념비를 하나 세웠다. 2007년 조선통신사 400주년을 기념해 600만엔의 모금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조선통신사보다, 기념비보다, 이것 하나를 보여 주기 위해 전날부터 일기예보를 점검하고 오전 내내 홀로 눈을 치웠을 야나기하라씨의 열정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가 더 궁금했다. 직업적 책임감이라기엔 그의 눈빛과 음성과 분위기가 연출 없이 정직했다. 그것은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오는 형형함이었다. “당신에게 조선통신사는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그는 “스승과 대마도를 가서 우연히 조선통신사 관련 자료를 접하게 되었고 스승이 돌아가신 후 깊게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지금의 한류처럼 당시의 조선통신사는 한시, 서도, 문화, 그림 등을 일본인들에게 전파해 준 공로가 분명히 있다”는 말도 강조했다. 그는 시간을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과거의 사건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고 보존해서 타인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 눈 속의 길을 만들어 낸 힘이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한국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쟁점이 사실에 의도를 개입시키면서 발생하는 ‘불순한 장난’이라면 역사에 있어 무지無知는 그 장난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무지를 지知로 바꾸는 첫 번째 행동은 기록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보존이며 세 번째는 관심이다. 조선통신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관심이 일천하다는 이유로 나는 기록을 일구는 노인 앞에서 잠시 부끄러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 일본을 통일하고 250년 지속된 에도 막부 시대를 연 초대 쇼군將軍.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으로 단절되었던 조선과의 무역을 재개하기 위해 1607년 조선에 먼저 국서를 보냈고, 이후 조선이 제시한 제한적 무역조건 아래 조선통신사의 길이 열렸다. 조선통신사의 장대한 여정 조선시대에 12번의 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다.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으면서 활성화됐다. 일본은 조선의 앞선 문화를 통신사를 통해 접하고 싶었고 조선은 일본의 재침략 의도를 점검하면서 조선인 포로를 생환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양국이 믿음信으로 소통通하자 해서 통신通信사가 되었다. 정사(당상관급), 부사, 종사관 3사가 인솔하며 군관, 역관, 의원, 화원(화가), 마상재(달리는 말 위에서 무예를 하는 사람), 소동(심부름꾼 아이) 등이 따라갔다. 약 300~500명으로 구성됐다. 한양에서 에도까지 왕복 4,000km 거리를 수로와 육로로 이동했다. 8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현해탄 건너기도 쉽지 않았으니 차출된 사람은 유서를 쓰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무사귀환을 빌며 해신제를 지냈다. 행렬은 일본 사무라이 호위무사까지 800명이 넘었다. 도로를 닦고 숙소를 짓고 배를 만들고 하는 준비기간만 반년이었다. 한 번 통신사를 맞이하는 데 일본의 1년 국가 예산을 모두 쏟아 부을 정도(NHK 보도에 따르면 현재 가치로 약 1,000억엔한화 약 1조750억원)였다니 일본 입장에서도 무척 큰 외교행사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고립된 섬나라 일본은 중국의 앞선 문명과 조선 고유의 문명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통신사를 적극 환영했다. 남의 것이라도 좋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본인 특유의 실용주의良いとこ取り, 이이 토고 토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반면 조선통신사는 그러지 못했다. 침략전쟁을 겪고 얼마 후였으니 마음에 꽃바람이 불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유교국가 조선의 눈에 일본 문화는 계통 없는 잡스러움이 아니었을까. 통신사로 참석했던 김인겸과 신유한은 <일동장유기1764년>와 <해유록1719년>에서 오사카를 본 후 도시의 발전된 문명을 놀라워하면서도 오랑캐의 번영을 원망하고 애석해하는 것에 기운을 더 쏟았다. 게다가 대다수 도공 포로는 조선으로 돌아가는 대신 장인 대우를 받는 일본에 남기를 원했다. 돌아가면 죽는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많이 주고 덜 가져온 탓인지 한국에서 조선통신사의 역사적 의의는 많이 노출되지 못했다. 다행히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한일 양국이 조선통신사 관련기록물 111건 333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 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조선통신사 기록에 대한 핵심적 정리다. 한성(지금의 경기도 광주)-동래(부산)-이즈하라(대마도)-시모노세키-아카시-사카이-교토-나고야-하마마쓰-에도(도쿄)-닛코로 이어지는 통신사의 여정. 그중 이번 취재지였던 도쿄와 닛코 주변의 흥미로운 관광지 몇 개를 더한다. “일본은 중국의 앞선 문명과 조선 고유의 문명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통신사를 적극 환영했다. 남의 것이라도 좋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본 특유의 실용주의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도쇼구를 자랑하고 싶었던 막부와 스토리텔링 한국 여행객에게 일본의 신사神社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역사적으로는 신사참배의 부정적 이미지가 있고 이념적으로는 야스쿠니 신사의 전범자 예우를 기억한다. 그러나 일본 여행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신사이며 사당이다. 신사를 중심으로 한 사당 문화가 일본인의 종교이며 생활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종교, 신도神道는 일본의 토착 신앙에 유교와 불교를 혼합한 것이다. 비록 그 발원의 과정에서 태양신을 덴노(천왕)의 조상신으로 둔갑시키고 태양신의 아들 덴노에게 충성을 다해 섬기라는 정치적 오염의 혐의도 받고 있지만 일본의 신사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와 정신과 일상을 응축해 놓은 곳이다. 닛코의 가장 대표적인 신사가 도쇼구東照宮, 동조궁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신이 이곳에 있다. 그의 손자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가 1636년에 금 56만8,000냥이라는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현재의 규모로 호화찬란하게 증축했다. 에도 막부는 이것을 통해 막부의 권위를 통신사에게 과시하고 싶어했다. 4차, 5차, 6차 통신사를 이곳으로 초대한 이유다. 도쇼구에 들어서면 우측에 보이는 종은 5차 통신사의 선물이다. 도쿠가와 무덤 앞에는 통신사가 전달한 삼구족(화병, 향로, 촛대)이 놓여 있다. 이것이 조공이냐 하사냐 하는 것을 두고 양국이 대립했다. 그 첨예한 갈등 때문인지 설명문 하나 붙어 있지 않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도쇼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이다. 보물도 많고 예술품도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야기가 많다. 울창한 삼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점점 좁아지는 계단을 오르면 신사의 입구인 도리이鳥居가 나온다. 도쇼구의 도리이는 일본에서 가장 큰 돌로 만들어졌다. 높이 9m. 기둥둘레 3.6m. 재미있는 것은 도리이 하단부에 조각된 연꽃 문양이다. 신불습합神佛習合, 불교를 믿는 게 신도를 믿는 것이라는 일본의 혼합주의 종교관을 도리와 연꽃 문양에서 본다. 기도할 때 ‘하느님 부처님(카미사마かみさま, 호토케사마ほとけさま)’을 찾는 것도 같은 정서다. 이런 모습 때문에 저들은 도쇼구를 일컬어, 불교의 사원과 일본의 신사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축의 백미라고 말한다. 입구를 지나면 정문인 요메이문陽明門이 나온다. 닛코를 보지 않고 미美를 논하지 말라는 말이 이곳에서 나왔다. 그 화려한 문의 외경과 더불어 흥미로운 것은 원숭이를 거꾸로 조각한 의도다. 완벽함보다는 허술함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는 일본의 철학을 또 여기서 본다. 원숭이를 통한 스토리텔링은 경내의 마구간에서 절정을 이룬다. 부모가 아들에게 해주는 인생 이야기가 8개의 원숭이 이야기로 마구간에 조각돼 있다. 연애, 결혼, 임신과 희로애락이 그 안에 다 담겨 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산자루三猿·さんざる다. 유년기에는 세상의 나쁜 것을 보지 말고(미자루), 듣지 말고(키카자루), 말하지도 말라(이와자루)는 부모의 말에 원숭이는 눈과 입과 귀를 막고 있다.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있다. 잠자는 고양이(네무리네꼬眠り猫) 조각이다. 히다리진 고로 左甚五郞의 작품이며 고양이 뒤의 참새 조각과 더불어 공존과 평화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 명성에 비해 잠자는 고양이의 실체는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보다 더 작게 숨어 있다. 기대감이 무너지는 의외성도 여행의 즐거움이라면 그 의도는 200% 성공한 셈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과 그 앞의 삼구족을 보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힘이 든다고 생각할 때, 도쿠가와의 유훈 하나를 만난다. “인간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 된다.” 고구려인을 신으로 모신 일본 신사 일본의 야요이 시대BC200~AD300에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현해탄을 넘어갔다. 일본은 이들을 도래인渡來人, 도라이진,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도래인은 일본 열도에 농경과 금속기 사용법을 전파하면서 큰 변혁을 선물했다. 두 번째 도래인은 5세기 백제 유민들이다. 일본에 제철기술을 전수했고 바느질과 비단, 소와 말을 보급했다. 7세기에 이르러 도래인 수는 토착 일본인인 조몬인보다 훨씬 많아졌다.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7세기 일본 인구 540만명 중 80% 가량이 한반도에서 이주한 이들이었다”라고 말한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했다. 이제는 고구려인들이 도래인이 되어 일본으로 갔다. 2년 전 외교사절로 일본에 간 약광若光은 ‘왕’이라는 성性을 받았다. 716년, 7개 지방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인 1,799명이 무사시노 지방으로 이주해 고려군을 창설했다. 일본에서는 고구려인을 고마비토高麗人, 고려인라고 불렀다. 약광은 초대군장이 됐다. 오늘날 가나가와현 오이소에는 고려산이 있고 주소에도 고려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초기 고구려인이 정착했던 지역이다. 고구려인은 고려사라는 절도 세웠다. 지금 그 절은 다카쿠高來 신사가 되었다. 일본 거리의 표지판에서 문득 고려라는 지명을 만나니 신기하고 반갑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좀 더 선명한 고구려인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다면 고마군의 중심지인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시를 가면 된다. ‘고려강高麗川, 고마가와’이 있고 ‘고려역高麗驛, 고마에끼’이 있다. 약광을 신으로 모신 고마신사高麗神社도 있다. 산악·하천·호수·늪·민속신·실존인물·전설인물 등이 모두 신이 되는 신도의 나라 일본에서, 고구려인 약광도 신이 되었다. 우수한 문화를 일본에 전하고 무사시 지역을 개척한 공로였다. 고마신사 입구에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서 있다. 한일국교 40주년을 맞아 민단(재일동포)이 기증한 것이다. 고구려인을 신으로 모시고, 그 후손들이 터를 이루고 살고 있으며, 신사 입구엔 한국의 조각물이 서 있으니, 한국 여행객들은 여느 신사와 다른 친숙감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의 정치인, 연예인 등도 방문 기념으로 나무와 명판 등을 남겼다. 고구려인으로서 신의 반열에 오른 탓일까? 요즘 약광은 출세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 등 6명의 역대 총리가 이곳을 참배한 뒤 총리대신 또는 국무대신에 올랐다고, 관계자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자랑을 한다. 뒤로 돌아가면 400년 전에 지어진 고려씨의 구주택이 있다.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다. 고마신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쇼텐인聖天院, 성천원이란 절이 있다. 일본식 정원이 잘 다듬어져 있고 한국의 대웅전을 닮은 사당도 웅장하다. 쇼텐인 뒤쪽 고마산 중턱에는 ‘고구려 성지’도 있다. 성지 우측으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신라의 태종무열왕, 백제의 왕인 박사, 고려의 정몽주, 조선의 신사임당 상像이 모셔져 있다. 2차 대전 때 징용되어 돌아가신 무명의 조선인 위령탑이 있어 더 특별하다. 남북한 재일동포들의 성금으로 건립됐다.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 Travie writer 윤용인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일본정부관광국 www.jroute.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해외여행 | 스리랑카-코끼리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

    해외여행 | 스리랑카-코끼리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

    스리랑카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코끼리들이 사는 나라였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코끼리와 인간의 관계는 비극으로 치달았다.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죽고 죽이는, 그 악업의 고리를 끊을 해결책은 아직도 막막하다. 실론티와 불교 그리고 코끼리의 나라 90년대 초, ‘실론티’라는 제품이 국내에 처음 나왔다. 약간 쓰고 떫은맛의 홍차를 단숨에 좋아하게 만들었던 음료였다. 뚜껑을 따면 독특한 차 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기분 좋게 씁쓸하고 달콤한 맛이 혀를 즐겁게 했다. 액체를 마시면서 ‘실론’이 도대체 어디일까 궁금해 찾아본 기억이 난다. 실론은 지금은 ‘스리랑카’ 라고 불리는 섬나라의 옛 이름이다. 15세기부터 전 세계의 바다로 진출한 포르투갈이 1505년 이 섬에 도착해 실론Ceilao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1815년 영국이 실론을 지배하게 되면서 1867년부터 내륙 산악지대에서 차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차 재배에 적합한 기후와 지형에서 생산된 실론티는 고급차의 대명사가 됐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차 산업은 부침을 겪었지만 스리랑카는 지금도 세계 4위의 차 생산국이다. 사람들은 스리랑카를 ‘인도양의 진주’, ‘인도 대륙이 흘린 눈물방울’로 비유한다. 남한의 3분의 2 면적에 2,000만 인구가 사는 이 나라는 차 외에 다른 두 가지로도 유명하다. 바로 소승불교와 코끼리다. 기원전 3세기에 인도로부터 전파된 불교는 지금까지도 스리랑카의 주류 종교다. 인구의 70%가 불교 신도다. 10세기 이후 발상지인 인도에서는 불교가 쇠퇴하고 힌두교가 득세한 반면, 스리랑카는 소승불교의 진수를 면면히 보존하고 있는 종주국이다. 오래전부터 스리랑카 승려들은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불교의 전통을 전파했다. 오늘날 인도의 고대 불교 사원들은 폐허가 되어 관광객과 순례자들만 찾아가는 쓸쓸한 곳으로 남았지만, 스리랑카의 오래된 불교 사원들은 아직도 신도들로 붐빈다. 매일 승려들이 주재하는 종교 의식이 열린다. 사원을 찾아 꽃과 음식을 정성스럽게 바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습은 진지하고 숭고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스리랑카는 코끼리의 나라이기도 하다. 불교는 코끼리를 신성시한다. 석가모니는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 여러 전생을 거쳤는데, 그중 하나가 코끼리였다.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싯다르타석가모니의 속명를 낳기 전 자궁 속으로 흰 코끼리가 들어오는 태몽을 꾸기도 했다. 코끼리는 불교 사원과 부처의 수호신이면서, 스리랑카 건축과 미술의 가장 흔한 소재이다. 종교 행사의 맨 앞장에 서는 동물도 코끼리다. 해마다 지역별로 열리는 페라헤라Perahera 축제 행렬의 선두는 좋은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점잖게 걷는 코끼리의 차지다. 그토록 사랑받는 동물이라 그런지 스리랑카의 단위 면적당 코끼리 밀도는 어느 국가보다도 높다. 현재 약 6,000마리의 야생코끼리가 국립공원과 민가 주변의 숲에서 노닐고 있다. 같은 소승불교를 믿는 라오스나 미얀마에선 좀 다르다. 코끼리를 일꾼으로 부린다. 그곳의 코끼리들은 산악 벌목 현장에서 베어낸 통나무를 끌고 내려오는 고된 일을 해야 한다. 반면 스리랑카의 코끼리는 유유자적, 먹이를 먹으며 숲과 들판을 어슬렁거린다. 개발에서 시작된 비극 다큐멘터리 제작차 스리랑카의 내륙을 지나던 중 도로에서 50m쯤 떨어진 들판에서 코끼리 3마리가 나뭇가지를 훑으며 이파리를 먹는 모습을 보았다. 늦은 밤 숲을 관통하는 도로에선 길을 건너는 코끼리 가족을 여러 번 마주쳤다. 그럴 때면 스리랑카 운전사는 자동차를 멈추고 거대한 동물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혹시라도 새끼를 거느린 어미를 자극할까 봐서다. 자동차에 위협을 느낀 어미나 성난 수컷 코끼리가 자동차를 공격하고 짓밟아서 탑승자가 사망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고 한다. 코끼리의 습격은 민가나 경작지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스리랑카에선 매년 코끼리에 밟혀 죽는 사람이 60~70여 명에 달한다. 밭에서 일하다가, 밤에 집으로 돌아오다가 코끼리와 잘못 마주쳐 변을 당하는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에게 가장 비참하게 죽는 일이 호랑이한테 잡혀 먹히는 호환虎患이었다면, 21세기 스리랑카에선 상환象患이 가장 끔찍한 죽음이다. 코끼리는 인가를 습격해 집을 부수기도 한다. 취재팀이 방문한 지방의 양곡상 주인은 집에 설치해 둔 CCTV에 찍힌 코끼리를 보여 줬다. 대낮에 열어 놓은 대문으로 코끼리 한 마리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이 침입자는 주인이 소리를 지르자 뒷마당으로 가서 짖어대는 개의 집을 부셔 버리고 내뺐다.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 양곡상 주인은 인근에 국제공항이 들어선 이후부터 코끼리의 침입이 잦아졌다고 말했다. 스리랑카엔 몇년 전부터 개발붐이 일고 있다. 코끼리 서식지인 정글을 밀어 버리고 그 자리에 공항과 크리켓 경기장, 신규 주택지를 조성했다. 살 곳과 먹이를 잃은 코끼리들은 경작지와 민가를 습격했다. 코코넛야자나무를 머리로 박아 쓰러뜨린 뒤 잎을 훑어 먹고, 논밭을 짓밟고 다니며 벼와 토마토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식성이 좋은 코끼리는 하루 200kg의 식물을 먹는다. 코끼리 한두 마리가 경작지를 휩쓸고 지나가면 몇 달 농사를 한순간에 망쳐 버리는 셈이다. 내가 만난 코끼리 피해지역 농부들은 농사를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농민들도 반격에 나섰다. 코끼리를 쫓기 위해 함정을 파고, 고압 전기선을 설치했다. 가장 잔인한 퇴치법은 호박폭탄이다. 코끼리가 좋아하는 둥근 호박의 윗부분을 칼로 오려내고 속에다 폭발물을 집어넣는다. 그걸 농민들이 밭에 뿌려 두면 코끼리는 폭탄이 든 줄도 모르고 큰 호박을 코로 집어 한 입에 우적 씹는다. 그 순간 폭탄이 터지면서 턱과 입이 찢겨 나간다. 당장 죽지 않은 코끼리는 쓰러져서 며칠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다가 숨이 끊어진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매년 100마리 이상의 야생코끼리가 죽어 간다. 정글을 없애고 개발이 계속되는 한 코끼리와 인간이 서로 죽이고 죽는 비극의 악순환은 끊이지 않을 테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 생긴 그 악업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지, 해결책은 아직 막막한 실정이다. 오늘도 버려지고 죽어 가는 코끼리 스리랑카에는 코끼리 고아원과 임시보호 센터가 몇 곳 있다. 고아원은 말 그대로 어미를 잃은 새끼 코끼리를 거둬 키우는 곳이다. 임시보호 센터는 고아 코끼리가 국립공원이나 밀림으로 돌려보내질 때까지 야생에 적응하도록 돌봐 주는 곳이다. 인간과의 갈등으로 희생되는 코끼리가 많아질수록 인간의 손길을 기다리는 어린 짐승도 늘어난다. 고아 코끼리가 가장 많은 곳이 스리랑카 정부가 운영하는 피네왈라Pinnewala 고아원이다. 이곳엔 약 60마리의 코끼리가 살고 있다. 코끼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어린 새끼에게 우유를 주고 먹이를 먹이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지 못한 아기 코끼리들은 관광객이 든 우유병을 순식간에 비우고 더 달라고 보챈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른 녀석들은 다른 새끼의 등 위에 올라타고 장난을 친다. 코끼리와 인간의 분쟁을 취재하던 중, 어느 마을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달려가 보니 야자나무 옆에 어린 코끼리 한 마리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다 자라지 않았는데도 누워 있는 몸집은 커다란 바위처럼 육중했다. 허공으로 뻗은 네 다리는 단단한 기둥 같았다. 새벽에 누군가가 설치해 놓은 전기선에 감전된 것 같다고 주민들이 알려 줬다. 코끼리의 사체를 처음 봤기에 가슴이 저렸다. 코끼리의 감은 눈에는 물기가 서려 있었다. 밤새 맺힌 이슬인지, 아니면 고통스럽게 죽어 가며 흘린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냄새를 맡은 독수리와 까마귀들이 하늘을 까맣게 덮은 채 맴돌고 있었다.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사진 손현철 KBS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20년 만에 최악 무력충돌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20년 만에 최악 무력충돌

    아제르바이잔 일방적 휴전 선언 아르메니아 “전투 중단 의미 아냐” 옛 소련의 대표적인 분쟁 지역에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20년 만에 최악의 무력 충돌을 벌여 최소 30명이 숨졌다. 국제사회는 오랜 기간 대립해 온 두 나라가 전면전에 나서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AP와 AFP 등에 따르면 두 나라가 영토 분쟁을 벌이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교전이 발생해 아르메니아 병사 18명, 아제르바이잔 병사 12명이 숨졌다. 열두 살 소년이 숨지고 어린이 2명이 다치는 등 민간인 사상도 발생했다. 3일에도 일부 지역에서 교전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사상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이 선제공격을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가 대포 등으로 먼저 공격해 반격한 것이라며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기독교 분파인 동방정교를 믿는 아르메니아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제르바이잔은 오랜 기간 종교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역사적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해 온 곳이어서 1920년 소련 복속 당시에도 아르메니아에 귀속됐지만 1924년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행정 편의주의에 따라 아제르바이잔에 편입되며 영토 갈등이 불거졌다. 20% 정도에 불과한 아제르바이잔계 무슬림이 80%에 달하는 기독교인 아르메니아인들을 무단 통치하면서 민족 갈등이 극에 달했다. 소련 쇠퇴기인 1988년 지역 주민들이 아르메니아로의 귀속을 선언했고, 상황을 지켜보던 아르메니아도 이듬해 “주민들이 원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 지역을 병합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1991년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으로 독립국을 선포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이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서 무력 충돌이 본격화됐다. 1994년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 의원 총회 중재로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이어진 무력 충돌로 3만여명이 숨지고 1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현재 아르메니아가 분쟁 지역 대부분을 점령해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아제르바이잔이 이에 반발하고 있어 국지적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접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진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같은 동방정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에 대한 지원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터키는 인종·종교적 유대를 지닌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고 있고, 미국도 카스피해와 인근 지역에 매장된 풍부한 지하자원을 노려 아제르바이잔과의 연대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은 3일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해 교전이 멈췄다고 주장한 반면 아르메니아는 교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폭력 충돌을 중단하라는 국제사회의 요청에 부응하기로 했다”면서 “상대방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적대 행위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아르메니아 국방부는 “아제르바이잔 측의 성명은 정보전의 일환”이라며 “이 성명은 전투행위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홍익사상·한얼사상 계승 ‘한얼교’…창교 50주년 맞아 재조명

    ‘한얼교’가 지난 3일 강화도 마니산에서 창교 50주년 기념 행사를 가졌다. 한얼교는 지난 1965년 창교된 것으로 홍익인간 정신과 ‘한얼사상’을 초월적 계몽주의 철학으로 계승해 종교적으로 재정립했다. 인류 의식의 진화를 이끄는 종교적 가치를 설파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한다. 한얼교는 변화하는 인류의식 진화에 대해 세 가지 통찰을 제시한 바 있다. ▲특이점을 통한 과학과 의학, 정보혁명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인해 전례 없는 대규모 지적 진보와 의식적 진화가 이뤄질 것 ▲깨어남은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자연스러운 인류의식 진화의 과정이 될 것 ▲깨달음은 종교적 사명자나 영적 소수가 구도를 통해서만 추구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의식으로 맞이하는 삶의 방식이 될 것 등이 그 내용이다. “특이점을 맞이하는 시대에 깨달음이라는 것은 과거 성인들의 ‘대오각성’과 ‘기적’ 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류가 맞이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의식 진화의 순차적인 과정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한얼교는 성현들을 숭배의 대상이 아닌 ‘스승’으로 삼아 자신의 ‘얼’을 밝혀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종교의 진리와 모든 종교의 창시자를 하나의 이미로 존중하고 종교 간 화합을 지향한다. 한편 강화도 마니산에 위치한 한얼온궁에서 열린 창교 50주년 ‘한얼절’ 기념식은 창시자 신정일의 친필법문 휘호 전시, 한얼교 대표경전 ‘한얼말씀’ 판각 전시회, 창교 50년의 역사를 담은 사진 전시회 등이 진행됐다. 또 지난 1999년 창시자가 타계한 뒤 한성식(다비식)을 치른 뒤 수습된 진모사리, 치사리, 진신사리를 직접 참관하는 ‘사리 친견식’도 이뤄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메디컬 인사이드] 가슴 타는 고통 “엄마, 왜 그렇게 참으셨어요”

    [메디컬 인사이드] 가슴 타는 고통 “엄마, 왜 그렇게 참으셨어요”

    “불이 치밀어 올라 죽겠어요”울분 삭이고 삭이다 생긴 병 보복운전이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됐습니다. 처벌이 강화돼 상대 운전자에게 위협을 가하다 적발되면 최대 징역 1년의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화를 잠시도 참지 못하고 주변에 표출해 버리는 ‘분노조절장애’는 이런 보복운전과 맞닿아 있습니다. 극심한 생존 경쟁에 내몰리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우리의 삶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면 어떻게 될까요. 한 해 10만~20만명이 화를 스스로 삭이다 참다못해 병원을 찾는다고 합니다. 바로 ‘화병’(火病)입니다. 주변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보다 쓰린 가슴을 스스로 부여잡고 달래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던 어머니들이 주로 병원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참아야지”라며 수십 년 동안 화를 삭이고 또 삭이다 병이 됐는데 과연 치료가 가능할까요. 궁금증을 풀기 위해 3일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얼굴 화끈·가슴 답답한 폐경기 증상과 비슷 화병은 뚜렷한 신체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폐경기 증상과도 비슷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경험하셨듯이 ‘가슴에서 불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을 때 “가슴이 타는 것 같다”고 호소합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하며 소화불량이 심해집니다. 화를 억지로 참아내면서 뇌가 과도하게 각성되고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균형이 깨지면서 우울증이 심해집니다. 극도로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증상도 나타납니다. 정영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많은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는 극심한 체중 감소”라며 “소화 기능이 떨어져 1~2년 사이에 5~10㎏씩 빠지고 바짝 마르며 신경이 날카로워진다”고 했습니다. 조철현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신체 증상이 반복되면 ‘나는 안 되는구나’, ‘고통 속에서 살 필요가 없다’고 자포자기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며 “우울증은 뚜렷하지 않은데 극도로 초조해하는 환자의 경우에도 당장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쁜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감염질환만 전염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질환도 전염된다고 합니다. 조 교수는 “우울한 감정과 무기력감은 전염력이 있기 때문에 가족도 지치고 기가 빠지며 고통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50대 女환자가 男환자보다 2배 이상 많아 1996년 미국 정신과학회에서 우리말 화병(Hwa-Byung)을 한국인 특유의 정신질환으로 분류해 ‘문화증후군’으로 규정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화병은 문화증후군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분류된 질병코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트레스 적응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등의 증상이 모두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화병 환자가 있는지 참고 자료만 존재할 뿐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병원을 찾은 것으로 추정한 화병 환자 수는 2011년 11만 5000명, 2012년 12만 1000명, 2013년 11만명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에 따르면 2010년부터 5년간 진료 환자 수가 100만명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50대 이상에서는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2배 이상 많았습니다. 설 연휴 다음인 3월과 추석 연휴 기간인 9~10월에 진료 환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조 교수는 “화병도 대부분의 정신질환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나 갈등을 적절하게 해소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면서 만성화됐을 때 뇌의 변화가 유발돼 생긴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과거에는 모두가 그랬기 때문에 여성들이 주관적으로 불합리성을 덜 느꼈을 수 있지만 사회가 변화하면서 여성들의 기대치는 높아졌는데 성 역할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며 “여성들의 스트레스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주관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스트레스가 증가한다고 분석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 교수는 “여성 환자가 많은 것은 아무래도 과거부터 이어진 가부장적 문화의 영향이 클 것”이라며 “남성은 동료와 술을 마시면서 풀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화를 풀 수 있는 통로가 그래도 많은데 중년 여성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상담원·판매원 서비스업 종사자도 많이 앓아 중년 여성 환자가 많다고 해서 꼭 주부만 해당되는 병은 아닙니다. 상담원, 판매원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도 많이 나타납니다. ‘고객 갑질’을 참다못해 신체 증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정 교수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느끼는 피해의식, 결국 을에 해당하는 사람이 화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고 표현했습니다. 병원을 찾아 증상을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항불안제나 항우울제를 처방받으면 1~2주 안에 서서히 증상이 개선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장애를 단기간에 치료하려는 조급증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꾸준히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조 교수는 “정신질환 치료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만성질환처럼 관리하는 병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약물 치료로 1~2주면 점점 좋아지는 느낌을 받지만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를 일으키려면 2주 이상의 투약과 전문가 상담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정 교수는 “길게 약물 치료를 하더라도 보통 3개월 정도면 종결된다”며 “중요한 것은 본인의 깨달음”이라고 했습니다. 정 교수는 “예후가 좋지 않은 환자는 근본적인 문제, 즉 시어머니와의 갈등, 남편의 외도 같은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은 의사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이라며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상담 치료를 계기로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음주는 독… 오히려 우울증 악화시켜 화병에 음주는 독(毒)과 같습니다. 각성 상태를 술로 강제로 이완시킨다고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울증을 악화시키고 몸의 피로도만 높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는 숙면을 취할 수 없어 술을 마시고 잠드는 분이 많습니다. 정 교수는 “술을 먹고 억지로 이완시켜도 다음날 다시 증상이 나타나 악순환이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화병 환자에게 참는 것은 미덕이 아닙니다. 화병의 여러 증상으로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전문가와 상담할 때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주변에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화를 내고 감정을 소모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수십 년을 억누르고 살았던 사람이 단숨에 감정을 내보일 방법도 많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주변의 인간관계를 두텁게 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대화를 나누며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조 교수는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여건상 사회적 관계 형성이 어렵다면 종교를 갖는 것도 좋다”며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과 정신을 위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정 교수는 “하루 내내 올라갔던 긴장감과 각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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