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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랜도를 위해 기도·사랑이 치유”…지구촌 추모물결 확산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에 대한 전 세계적인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일(현지시간) 50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게이 클럽 총기 테러에 대해 “분별없는 증오심의 표출”이라며 비난했다. 교황청은 이날 성명을 내고 “살인의 어리석음과 분별없는 증오심의 표출 앞에 프란치스코 교황과 우리 모두는 깊은 공포와 규탄의 마음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성명을 통해 테러행위를 비난했다. 반 총장은 또 희생자 가족에 대해 깊은 위로를 전하는 한편 미국 정부 및 국민과의 연대를 표시했다. 각국 정상들도 잇따라 이번 사건을 규탄하며, 애도와 연대의 뜻을 나타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올랜도 사건을 비난하며 “프랑스와 프랑스인들은 어려운 시기 미 정부와 미국 국민을 위해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크렘린 성명을 통해 “야만적인 범죄”라고 비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수사당국이 조사하고 있어서 세부 사항은 확인되지 않지만,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테러로 50명이나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끔찍하다”고 말했다. 올해 3월 32명이 사망한 브뤼셀 연쇄 테러를 겪은 벨기에의 샤를 미셸 총리도 트위터에 “올랜도 사건으로 이렇게 많이 무고한 희생자들이 생겨 너무 슬프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이 트위터 등을 통해 희생자와 가족들에 애도를 표하며 사건과 관련, 미국과 연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 용의자인 오마르 마틴의 부모 출신국인 아프가니스탄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도 트위터에서 “그 무엇도 민간인 살해를 정당화할 수 없다”며 분명한 규탄의 뜻을 표했다. 소셜미디어에는 희생자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유명인사들의 글들도 잇따랐다. 마돈나는 인스타그램에 “올랜도에서 일어난 사건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총격 사건의 모든 희생자에게 내 마음을 전한다. 증오 범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당신은 종교나 신의 이름을 내세워 폭력과 차별, 증오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글을 실은 사진도 함께 게재했다. 동성애자인 영국 가수 엘튼 존도 트위터에 “총격 사건의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한다”며 “올랜도를 위해 기도를(#prayfororlando), 사랑이 치유다(#loveisthecure)”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인기 TV 쇼 진행자인 엘런 드제너러스도 “흐느끼고 있다”고 글을 올렸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줄리앤 무어와 미국 가수 애덤 램버트 등은 미래의 총기 참사를 막기 위해 총기법안을 개정하는 등 미정부가 총기 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온라인에서는 ‘올랜도를 위해 기도를’, ‘사랑이 치유다’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날 아침 미국 뉴욕에서는 밤사이 일어난 올랜도 참사에 애도하는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동성애자 등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을 흔들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대서양 건너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도 추모 집회가 이어졌다. 연합뉴스
  • [길섶에서] 두타(頭陀)/손성진 논설실장

    탐욕에서 비롯된 끔찍한 범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줄을 잇는다. 맘 놓고 걸어다니기도 겁나는 세상이다. 육욕과 물욕. 인간은 어찌해서 이 말초적인 욕구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하고 탐욕의 노예가 되는가. 우리는 다 걸어다니는 잠재적 범죄자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정신 수양으로 탐욕을 다스릴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점점 제정신, 육신 하나 제어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늘고 있는 게 문제다. 이럴 때 우리는 종교를 생각한다. 성경 말씀에는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로마서 6장)”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죄 앞에서 무기력해지기 전에 내가 먼저 죄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불교에는 두타(頭陀)라는 말이 있다. 탐욕을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수행을 말한다. 우리의 선조는 산 이름, 물 이름에 두타라는 말을 붙였다. 강원 양구에는 두타연이 있다. 강원 동해·삼척, 충북 진천·증평에는 두타산이라는 같은 이름의 산이 있다. 근자에 가 본 두타연에 이어 두타산에 가서 잠시 수양을 해야겠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새벽 2시 게이클럽에 무장괴한 난입… 美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

    새벽 2시 게이클럽에 무장괴한 난입… 美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

    소총·폭발물 지녀… 50여명 부상 경찰과 대치 중 3시간 만에 사살 FBI “급진 이슬람 연계 가능성” 용의자 父 “아들은 동성애 혐오” 10일에는 여가수 사인회 하다가 백인 남성이 쏜 총에 맞아 숨져 12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아 주 올랜도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새벽 100여명이 모여있던 게이 전용 나이트클럽 ‘펄스’에서 무장 괴한이 마구잡이로 총격을 가해 경찰 2명을 포함해 최소한 50명이 숨지고 53명 이상이 다쳤다. 희생자 규모는 2007년 버지니아공대 사건(32명 사망)을 뛰어넘는다. 특히 총격사건 용의자가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으로 확인되면서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테러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이날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플로리다 주 경찰에 따르면 괴한은 새벽 2시쯤 소총과 권총, 폭발물로 의심되는 ‘수상한 장치’ 등으로 무장한 채 클럽에 잠입을 시도했다. 클럽 앞을 지키던 경찰관과 교전한 후 클럽 안으로 들어가 총기를 난사하고 클럽 안에 있던 사람들을 인질로 붙잡아 3시간가량 경찰과 대치했다. 오전 5시쯤 특수기동대(SWAT)가 폭발물과 장갑차로 클럽 벽을 뚫고 클럽에 진입했다. 인질 30명가량을 구출하고 용의자와 총격전을 벌인 끝에 그를 사살했다. 용의자 신원은 오마르 마틴(29)으로 밝혀졌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민 온 부모 사이에서 1986년 뉴욕에서 출생한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이다. 그는 2009년에 결혼했으며, 사건 이전에는 특별한 범죄기록이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마틴이 사설경호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고, 거주지인 플로리다 주 포트 세인트 루시에서 범행을 위해 차를 렌트를 해 올랜도까지 갔다고 보도했다. 당초 FBI와 경찰은 이 사건을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국내 테러 행위’(act of domestic terrorism)로 규정하고 수사를 했다. 급진 이슬람 세력과의 연계 가능성도 집중 조사하고 있다. 존 미나 올랜도 경찰청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잘 조직되고 준비된 범행으로 보인다. 용의자는 공격형 무기와 소총을 들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틴의 아버지가 NBC방송 인터뷰에서 아들의 동성애 혐오 성향을 언급하면서 사건 동기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은 종교와 무관하다. 아들이 몇 달 전 마이애미 도심에서 남자 2명이 키스하는 것을 보고 매우 격분했다”고 주장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대(對)테러 담당 보좌관인 리사 모나코로부터 사건보고를 받고, 연방 정부에 수사를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올랜도에서는 지난 10일 미국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인 크리스티나 그리미(22)가 사인회 도중 한 남성의 총격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미는 이날 오후 10시쯤 올랜도의 플라자 라이브 극장에서 콘서트를 마친 뒤 사인회를 하던 중 백인 남성이 쏜 총에 맞았다. 그리미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1일 오전 숨을 거뒀다. 당시 현장에서 그리미 외에 다른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은 케빈 제임스 로이블(26)로, 그리미를 총으로 쏘고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나 경찰서장은 11일 기자회견에서 “용의자가 그리미를 개인적으로 아는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정신 이상자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2014년 오디션 프로그램 ‘더 보이스’ 시즌 6에 참가해 3위를 차지한 그리미는 수백만명의 팬을 거느린 유튜브 스타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커지는 “EU 탈퇴” 英운명 혼전, 세계는 혼란

    찬반 팽팽… 여론조사 엎치락뒤치락 최근 탈퇴론이 10%P 앞서기도 캐머런 등 ‘잔류’ 진영 공황 상태 종교·과학계도 “브렉시트 안 된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를 열흘 앞두고 EU 탈퇴 여론이 상승세를 타면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잔류 진영에 비상이 걸렸다. 탈퇴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자 영국 정·재계 뿐만 아니라 종교계와 과학계 인사들도 브렉시트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등 EU 잔류 진영은 총공세를 펼쳤다. 영국 성공회의 수장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12일 데일리메일에 기고한 칼럼에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영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잔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성공회가 국민투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잔류에 한 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웰비는 이민 통제를 위해 EU를 탈퇴해야 한다는 탈퇴 진영의 핵심 주장에 대해서는 “가장 부도덕한 본능에 굴복하지 않고 정직하게 이민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영국의 저명 과학자 13명은 지난 10일 텔레그래프에 게재한 공개서한에서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과학 연구가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개서한에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처음 제시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피터 힉스와 세포주기를 조절하는 핵심 인자를 발견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폴 너스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과학은 아이디어와 사람이 활발히 교류할 때 번창한다”며 “EU는 과학자들의 자유로운 이동과 협력을 가능케 하지만 브렉시트가 되면 이런 이점은 사라질 것이며 EU의 연구비 지원도 끊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 막판 종교계와 과학계 거물들이 잇따라 잔류 진영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최근 탈퇴 여론이 잔류보다 우위에 서는 여론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잔류 진영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지난 10일 여론조사업체 ORB와 인디팬던트의 조사에 따르면 EU 탈퇴 지지율이 55%를 기록해 잔류보다 10% 포인트 우위를 보였다. 이 조사 결과가 나온 직후 영국의 FTSE100 지수는 1.86% 급락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발표된 오피니움의 조사에서는 잔류가 2% 포인트, 유고브의 조사에서는 탈퇴가 1%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여론은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이다.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잔류 진영은 최근 2주 동안 탈퇴 여론이 모멘텀을 얻어 유권자들이 급속히 탈퇴 쪽으로 쏠리고 있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전 시장 등 탈퇴 진영은 캐머런이 이민 통제에 실패했다며 EU를 탈퇴해 이민자가 영국의 일자리를 뺏어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 최근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왕좌의 게임’ 하이 스패로우·프란치스코 교황 닮은 외모 화제

    ‘왕좌의 게임’ 하이 스패로우·프란치스코 교황 닮은 외모 화제

    "우리 닮았나요?"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방영 중인 미국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시즌6에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하이 스패로우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닮았다는 주장이 SNS를 통해 퍼져 화제에 올랐다. 특히 9일(현지시간) 미국 CBS뉴스는 하이 스패로우 역을 맡고있는 배우 조나단 프라이스의 인터뷰도 게재했다. 실제로 인터넷에 공개된 비교 사진들을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과 프라이스는 닮은 꼴 외모다. 두 사람의 외모 비교가 더욱 화제가 되는 이유는 프라이스가 맡고있는 배역인 하이 스패로우의 캐릭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하이 스패로우는 종교집단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다. 넝마같은 옷을 입고 등장하는 하이 스패로우는 독실한 성직자지만 정치적인 감각도 매우 뛰어나다. 왕족을 감옥에 가두고 능욕할 정도의 힘을 가진 그의 모습이 과거 '카노사의 굴욕'을 연상시킨다는 평. 카노사의 굴욕은 1077년 주교를 임명하는 서임권을 둘러싸고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교황과의 싸움에서 교황이 승리한 사건을 말한다. 그러나 프라이스는 "솔직히 내가 교황과 닮았다고 생각치 않는다"면서도 "정말 닮았냐?"고 반문했다.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던 날 아들과 딸에게 '아빠가 교황이냐?'는 문자가 왔다"며 웃었다. 흥미로운 사연은 하나 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를 다루는 영화의 캐스팅 1순위이기 때문. 프라이스는 "아르헨티나의 한 영화사가 교황의 전기 영화를 제작할 예정으로 출연해주기 원하고 있지만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주말 영화]

    ■영웅본색(OBS 토요일 밤 10시 10분) 1980년대 홍콩 누아르의 전성시대를 알렸던 작품. 우위썬 감독은 이 작품의 성공으로 명감독 반열에 올랐고, 미국 할리우드까지 진출했다. 범죄 집단 두목이었으나 새 인생을 살아가려 하는 자호(디룽)와 형 자호 탓에 아버지를 잃었다는 생각에 복수심에 불타는 경찰 아걸(장궈룽)의 이야기가 중심인데 끝까지 의리를 지키다가 죽는 자호의 의형제 소마 역을 연기한 저우룬파가 인기를 끌자 2편에서는 쌍둥이 동생 캐릭터를 등장시켜 저우룬파를 다시 출연시켰다. 1편 ‘당년정’, 2편 ‘분향미래일자’ 등 장궈룽이 부른 주제가도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선 변두리 재개봉관에서부터 인기를 끌어 이쑤시개와 바바리 등 저우룬파 패션이 유행하기도 했다. 1986년 작. ■위트니스(EBS1 토요일 밤 11시 45분) 1970년대 호주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피터 위어 감독이 ‘스타워즈’와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로 톱스타가 된 해리슨 포드와 호흡을 맞춘 할리우드 진출 초창기 작품이다. 또 다른 대표작으로는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죽은 시인의 사회’(1989),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 쇼’(1998) 등이 있다. 종교적인 신념으로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아미시 교도 마을에서 어머니 레이철(켈리 맥길리스)과 함께 필라델피아로 여행을 나선 8살 꼬마 새뮤얼(루카스 하스)은 우연히 살인을 목격한다. 수사를 맡은 존(해리슨 포드)은 경찰 내부 음모와 맞닥뜨리고, 위기에 빠진 세 사람은 아미시 마을로 몸을 피하는데…. 1985년 작.
  • 축구의 DNA는 제의성과 공격성

    축구의 DNA는 제의성과 공격성

    축구 종족/데즈먼드 모리스 지음/이주만 옮김/한스미디어/356쪽/2만 5000원 1차 세계대전 때인 1916년 7월 1일 영국군 ‘이스트 서리’ 연대는 프랑스 솜 지역에 있는 독일군 기관총 진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윌프레드 네빌 대위가 지휘하는 중대가 선봉에 섰고, 그는 4개 소대에 축구공을 하나씩 나눠줬다. 2㎞ 떨어진 적 진지까지 축구공을 차며 돌격하는 전술이었다. ‘축구 종가(宗家)’인 영국군의 발상치고는 무모하기조차 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경기였다. 선봉에 선 네빌 대위는 기관총 세례를 받아 쓰러졌고, 대원들은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달렸다. 마침내 골라인 독일군 진지를 백병전으로 함락했다. 전투가 끝나고 독일군 참호에 떨어진 축구공 2개가 발견됐다. 영국군은 그 축구공들을 킹스턴의 연대본부에 승리의 트로피로 영구 보존했다. 축구는 현대사회에서 종교 그 자체다. 승리를 향한 광신은 열광과 환희, 숭배와 폭력까지 낳는다. 전 세계 국가들이 맞붙는 월드컵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은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는 축구 축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축구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축구를 다룬 책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축구라는 놀이 행위를 문화인류학적으로 들여다본 책은 드물다.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도발적으로 다룬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인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펴낸 ‘축구 종족’은 축구의 인류학적 DNA부터 각종 의례와 절차, 의복과 장신구, 언어까지 축구를 고대 부족들 간의 ‘제의’행위로 접근해 분석했다.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여러 행동 가운데 축구를 가장 독특한 활동으로 꼽는다. 축구 활동의 중심을 차지하는 각각의 ‘축구 클럽’이 하나의 부족처럼 기능하고 있다고 빗댄다. 각각의 부족(축구 클럽)들 안에는 각 부족의 영토(스타디움)가 있고, 수뇌부에는 부족 원로(클럽 이사회)와 주술사(감독 및 코칭스태프)가 존재하며, 부족의 전사들(선수)과 그들을 따르는 신봉자들(서포터스)이 존재한다. 각 축구족에 스타디움은 거대한 신전이며 축구 규칙은 경전이다. 저자에 따르면 축구는 원시시대에서 기원한다. 전략과 전술을 쓰고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며 추격전을 위한 단단한 신체와 특별한 기술, 냉정한 판단력 등이 모두 원시시대 사냥 과정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1만년 전 정착 생활을 시작한 인류는 ‘용맹한 사냥꾼’ 기질을 잊지 못해 사냥 활동을 오락거리로 삼았고, 축구라는 유사 사냥 행위가 인류의 스포츠가 됐다는 설명이다. 거기에 더해 축구는 거대 비즈니스로 스캔들의 대상이기도 하다. 모리스의 이런 독특한 시각에 더해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조제 모리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 쓴 서문도 인상적이다. 그는 “22명의 남자들이 공을 다투는 것만 보는 사람들은 축구에 내재된 기하학, 발레의 미학, 심리적 깊이,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인간 본성을 가장 충실하게 대변하는” 스포츠로 축구를 지목한다. 평생 축구 인생을 살아온 승리자의 자부심이 한껏 드러난다. 축구는 온갖 술수와 폭력이 난무하는 ‘두뇌 게임’이자 고도의 심리전이다. 폭력에 가까운 반칙이 비일비재한 현대 축구에서 저자는 폭력성을 축구의 속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축구 전술사 100여년을 돌아볼 때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극단적인 ‘공격 전술’에서 강력한 ‘수비 전술’로 바뀌게 된 점을 꼽는다. 축구 초창기에 선수들은 상처뿐이더라도 승리하는 게 중요했다. 상대에게 득점을 많이 허용하더라도 더 많은 득점을 올리면 이기는 전략이었다. 모두가 공격수이고, 전사들의 모든 전력은 공격을 위해 존재했다. 하지만 현대 축구에 와서는 전사들보다 주술사인 감독의 역할이 더 커졌다. 감독들은 이중 삼중으로 골문을 차단하는 수비 전략에 치중했고, 축구는 과거보다 심심해졌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은 190여장의 사진을 통해 생생한 경기 장면과 축구 종족들의 모습을 격정적으로 전한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저자의 인류학적 보고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55일간 피로 물든 강… 날마다 붉게 번지는 상흔

    55일간 피로 물든 강… 날마다 붉게 번지는 상흔

    1950년 8월, 경북 칠곡은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전투는 낮밤을 가리지 않았고, 남북으로 갈린 젊은이들은 이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서로를 쏘고 찔렀다. 낙동강은 시퍼런 아가리를 벌려 젊은 꽃넋들을 닥치는 대로 삼켰다. 그렇게 피의 대가로 지켜낸 곳이 칠곡이다. 나라 안에 한국전쟁이 남긴 핏자국으로 얼룩진 곳이 어디 한둘일까만, 낙동강과 그 언저리를 적신 자국은 유난히 붉다. 호국 보훈의 달에 칠곡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먼저 한국전쟁 당시 상황을 개략적으로나마 짚자. 그래야 칠곡의 여행지들을 이해하기 쉽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을 일으킨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몰아쳤다. 기습 남침에 허를 찔린 국군은 3일 만에 서울을 내준 데 이어 한 달 만에 국토의 대부분을 잃고 낙동강 아래로 후퇴했다. 남은 곳은 대구와 부산뿐. 두 곳을 잃으면 대한민국도 끝이다. 당시 한미연합군을 지휘하던 월턴 워커 미 8군 사령관은 두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낙동강 방어선’(워커 라인)을 구축했다. 낙동강과 그 상류의 산악 지대를 잇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칠곡은 그 ‘낙동강 방어선’의 핵심이었다. ●한국전쟁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 흔적 배수진을 친 곳인 만큼 전투도 치열했다. 그중 가장 처절했던 곳이 칠곡 동북쪽의 다부동이다. 대한민국 전승사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다부동 전투’의 전설은 바로 이때 쓰였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다부동 전투’는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55일간 이어졌다. 국군 제1사단이 북한군 3개 사단과 맞서는 동안 북한군 2만 4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승리는 얻었지만, 우리 또한 학도병을 포함해 1만여명이 총탄과 포탄에 스러져 갔다. 그런데 왜 하필 다부동이었을까. 다부동은 대구에서 불과 22㎞ 떨어진 전략 요충지다. 여기가 뚫리면 대구, 부산 함락은 시간문제다. 그러니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온전하지 못할 만큼 처절한 전투가 이어진 것도 당연했다. 이 같은 피의 역사를 기억하는 이라면 다부동을 지날 때 잠시라도 발을 멈추고 흙먼지처럼 스러져간 젊은 꽃넋들을 기릴 일이다. 다부동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조붓한 언덕 위에 전적지가 조성돼 있다. 탱크를 형상화한 기념비가 특히 인상적이다. 기념관 안에 당시 총기류와 수류탄 등이 전시돼 있다. 수량은 많지 않아도 전쟁의 상흔을 엿보기엔 충분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명부전 지닌 송림사 다부동 서북쪽은 유학산이다. 골골마다 붉게 물들었다던 격전지다. 산자락 중턱의 팥재휴게소와 그 위쪽의 도봉사에 오르면 일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집 담장에 기대 망연히 산하를 굽어보자면 당시의 젊은 넋들이 바람 되어 흐르는 듯하다. 도봉사 진입로가 협소하다. 경사도 급해 오르내릴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다부동 동쪽엔 송림사와 가산산성이 있다. 송림사는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전탑(보물 제189호)이 있는 절집이다. 다만 현재 보수 공사 중이어서 전탑 기단부에 가림막을 둘러친 게 아쉽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명부전은 그대로다. 다양한 형태의 건물 벽화가 특히 볼만하다. 가산산성도 격전지 중 하나다. 차로 돌아볼 수 있다. 다시 전쟁의 복판으로 들어가자. 낙동강에서 국군의 저항에 발이 묶인 북한군은 다부동으로 연결되는 통로였던 매원마을에 주둔하게 된다. 매원마을은 광주이씨 집성촌으로, 한때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과 더불어 ‘영남 3대 반촌’으로 불리던 곳이다. 마을이 최고로 번성했던 1905년엔 무려 400여채에 이르는 기와집들이 언덕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한데 북한군이 박곡종택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지경당을 야전병원으로 운영하면서 매원마을도 전쟁의 한복판으로 빨려들고 만다. 미군은 적의 사령부가 있던 박곡종택을 겨냥해 집중 폭격을 퍼부었다. 대부분의 고택이 이때 소실됐다. 한데 신기하게도 포탄이 가려 떨어졌다. 살림집들은 혹독한 피해를 입었지만 재실과 사당은 대부분 화를 면했다. 여태 박곡종택을 지키고 있는 광주이씨 종부 이명숙(74)씨는 “예전엔 담장 안에 잣나무로 지은 건물이 86칸이나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며 “바늘이 떨어져도 어렵지 않게 찾을 만큼 촘촘하게 지은 집이었다는데 이젠 사당과 사당 앞을 지키는 회화나무 그리고 주춧돌 몇 개만 남았다”고 아쉬워했다. 마을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됐다는 해은종택도 여기저기 새로 손본 흔적이 역력하다. 그나마 문이 잠긴 경우가 많아 들여다보기조차 쉽지 않다. 야전병원으로 쓰였던 자경당은 토담이 허물어진 상태다. 다행히 담장 안 건물은 비교적 옛 모습을 잃지 않아 곰삭은 시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1895년 세워진 가실성당… 전쟁의 포화에 살아남아 매원마을을 지나면 곧 낙동강이다. 이제 옛 왜관철교(현 호국의 다리, 등록문화재 제406호)를 만날 차례다. 1905년 일제가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낙동강 위에 세운 다리다. 개전 이후 속수무책으로 낙동강까지 밀린 한미연합군 측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북한군의 남하를 막는 것이었다. 결국 연합군 지휘부는 낙동강의 모든 교량을 폭파해 적의 도하를 저지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왜관철교 폭파는 미군 제1기병사단에서 맡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의 8월 3일 오후 8시 30분. 마침내 왜관철교가 폭파됐다. 다리 위에 있던 수많은 피란민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후 국군은 낙동강 전투를 통해 북한군을 괴멸시키면서 북진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종교 시설물이 전쟁의 포화에서 살아남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낙동강변의 가실성당이 대표적이다. 1895년 세워져 1922~23년 중건된 가톨릭 교회로, 대구 계산성당에 이어 경북 지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성당이다. 당시 야전병원으로 쓰였던 덕에 비교적 온전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옛 성당 건물도 아름답다. 원래 1928년 ‘왜관성당’으로 지어졌는데, 1952년 함경남도 덕원에 있던 베네딕도회가 북한 정권에 성당을 몰수당한 뒤 칠곡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름도 바뀌었다. 가실성당 맞은편 강 건너엔 노석동 마애불상군(보물 제655호)이 있다. 7세기 후반 통일신라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다. 일반적으로 본존불과 좌우 협시불 등 삼존불로 구성되는데, 오른쪽 협시보살 옆에 작은 불좌상을 하나 더 배치한 게 특이하다. 글 사진 칠곡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낙동강 전적지는 칠곡 곳곳에 흩어져 있다. 지역 안배를 잘해야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다. 중앙고속도로 가산 나들목으로 나오면 유학산이 지척이다. 팥재 휴게소 옆길로 도봉사까지 오르면 유학산과 낙동강 일대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이어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송림사, 가산산성 순으로 돌아보면 된다. 다부동 일대를 먼저 보겠다면 중앙고속도로 다부 나들목으로 나와야 한다. 다부동 전적지가 고속도로 나들목 인근에 있다. 옛 왜관철교, 왜관수도원, 매원마을, 가실성당 등은 경부고속도로 왜관 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노석동 마애불상군은 성주군과 경계지역에 있다. 다른 여행지들과 떨어져 있어 별도로 계획을 짜야 한다. 게다가 도고산 중턱의 외진 곳에 있어 찾아가는 데 시간과 품이 적잖이 든다. →잘 곳:매원마을의 관수재, 풍각댁, 이석고택 등 몇몇 한옥들에서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다. 다만 객실 수가 1~2개로 적은 데다 사랑채를 통째 빌려야 하는 집도 있어 사전 확인이 필수다. 칠곡 문화관광 누리집(tour.chilgok.go.kr) 참조. 도개온천 쪽에도 칠곡도개온천모텔(054-975-4811) 등 숙박업소가 몇 곳 있다.
  • 첫 기념주화, 南北 자존심 싸움서 탄생했다

    첫 기념주화, 南北 자존심 싸움서 탄생했다

    서울 중구 소공동 서울중앙우체국과 한국은행 사이에는 ‘아날로그의 집결지’가 있다. 과거 화폐와 우표, LP음반, 골동품 등 옛것들의 수집상이 한데 모여 있는 회현지하상가다. 이곳이 얼마 전 반가운 소식에 들썩였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맞아 국내 최초의 ‘기념은행권’(기념지폐)이 나온다는 뉴스였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기념주화(동전)만 있었지 기념지폐는 발행된 적이 없었다. 기념지폐는 일러야 내년 말에나 볼 수 있지만 화폐 수집인들의 기대는 이미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기념화폐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봤다. 올해 발행 예정분을 포함해 한국은행이 그동안 선보인 기념주화는 총 50차례, 152종에 이른다. 최초는 1971년 3월 2일 발행된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다. 모두 12종인 이 기념주화는 앞면에 세종대왕, 선덕여왕, 이순신, 유관순 등 역사적 인물과 신라 금관, 남대문, 석굴암 보살입상, 고려청자 등 문화재가 새겨졌다. 첫 기념주화의 탄생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북한의 공이 컸다. 한은이 지난해 출간한 ‘우리나라의 화폐’는 기념주화 발행을 추진하게 된 계기에 대해 ‘북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기념주화를 발행한다는 정보가 입수되면서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호기롭게 첫 번째 기념주화 발행이 결정됐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기념주화 제조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최초의 기념주화 탄생지는 외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반만년역사’를 주조해 낸 곳은 이탈리아의 이탈캄비오라는 회사였다. 시중에 유통된 것이 아닌 데다 소량만 발행됐던 까닭에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는 현재 화폐 수집인 사이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 화폐 수집상 최명근(49)씨는 “기념주화의 가격은 무엇보다 희귀성에 좌우되는데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의 경우 대략 2년에 한번 판매자가 나올까 말까 하는 수준”이라며 “그나마 국내에는 거의 없고 해외에서나 매물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최씨도 독일에서 구입했는데, 세트에 3500만~4500만원을 호가한다. 이에 반해 ‘제24회 서울올림픽 기념주화’나 ‘대한민국 제5공화국 기념주화’ 등은 수집인들 사이에 인기가 없다. 서울올림픽 주화는 유치를 기념하기 위해 2차례(1982~1983년),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5차례(1987~1988년) 등 모두 7차례에 걸쳐 1152만개나 발행됐다. 제5공화국 주화는 700만 8000개가 찍혀 나왔다. 회현동의 한 화폐 수집상은 “서울올림픽 기념주화나 제5공화국 기념주화는 웬만한 가정에 하나씩 있을 정도여서 전문 수집가들은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발행 당시의 액면가격이나 현재 유통되는 가격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했다. 2006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기념주화’는 여러 면에서 최초의 시도가 많았던 주화다. 한글날 기념주화는 우리나라 최초로 중앙에 구멍이 뚫린 엽전 형태로 선보였다. 테두리에 문자(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모 28자)를 각인한 것도 최초였다. 한글날 기념주화는 주화제조 기술과 디자인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2008년 ‘제25차 세계주화 책임자회의’(MDC) 주화경연대회에서 ‘가장 기술적인 주화’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액면가가 2만원인 기념주화는 현재 화폐 수집시장에서 액면가의 6배인 12만원 정도에 거래된다. 2007년은 국내 기념주화의 흐름에 큰 변화가 있었던 해였다. 올림픽, 월드컵 등 국가적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주로 발행됐던 것과 달리 화폐에 문화적 가치가 높은 소재를 담아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연속 발행되는 ‘시리즈 기념주화’가 첫선을 보였다. 첫 시리즈의 주제는 전통 민속놀이였다. 2007년 ‘탈춤’을 시작으로 2008년과 2009년에는 ‘강강술래’, ‘영산줄다리기’가 각각 도안으로 선정됐다. 류한식 한국조폐공사 전략제품개발팀 과장은 “탈춤을 비롯한 3종의 전통 민속놀이 기념주화는 국내 최초로 12각형으로 제조됐는데 당시 이런 다각형 주화를 ‘프루프 주화’(특수가공한 최고 품위의 수집용 주화)로 제조하는 것은 외국에서는 잘 채택하지 않는 어려운 방식이었다”며 “지금은 공정이 개선돼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전통 민속놀이 시리즈 이후 2010년부터는 ‘한국의 문화유산 기념주화’ 시리즈를 시작했다. 종묘를 시작으로 지난해 경주·백제 역사유적지구까지 선보였던 문화유산 시리즈는 올 8월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조선왕릉’ 발행을 끝으로 종료된다. 한국은행은 2017년 이후 발행되는 차기 시리즈의 주제를 ‘한국의 국립공원’으로 정했다. 2017년은 우리나라의 첫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 50주년이 되는 해다. 국립공원마다 특징적인 명소나 동식물이 있어 다양한 기념주화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념주화는 한 가지 종을 발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종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경우도 있다. ‘2002 FIFA 월드컵 축구 기념주화’는 모두 14종이 나왔다. 1차 발행 때 금화는 3만원짜리와 2만원짜리 1종씩, 은화는 1만원짜리 4종, 금동화는 1000원짜리 1종이 각각 발행됐다. 2차 때도 1차와 같은 숫자로 나왔다. 지난해 발행한 ‘광복 70년 기념주화’는 모두 3종이었지만, 한 종으로 느껴지는 특이한 주화로 수집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각각 다른 3개의 주화를 옆으로 나란히 놓으면 전체적으로 하나의 큰 그림이 완성되는 최초의 파노라마 형태 기념주화였다. 한반도 지형이 강물 형태로 나타나고, 그 위에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광복 70년을 맞아 새로 시작하는 대한민국을 잘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통 기념주화는 이벤트가 있을 때에 맞춰 발행되지만 지각 발행으로 논란이 된 경우도 있었다. 2014년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기념주화’는 8월 교황이 방한하고 두 달여가 지난 10월에 발행이 됐다. 당시 한은은 “교황 방한이 확정된 때부터 발행 준비에 착수하다 보니 늦어졌다”고 해명했지만, 사실은 한은의 기념주화 발행 결정이 늦어졌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교황 방한 기념주화를 만들자고 4월부터 이야기를 했는데 내부적으로 종교 지도자가 올 때마다 기념주화를 만드는 게 관례가 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결국 교황 주화를 발행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지만 이미 조폐공사에서 인천 아시안게임 기념주화를 만들고 있어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은은 특정 인물을 소재로 기념주화를 만드는 데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 인물을 담은 기념주화가 외국에서 만들어져 역수입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주화는 노르웨이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 기념주화는 라이베리아에서, 김연아 선수의 기념주화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에서 만들어졌다. 기념주화는 희소성 때문에 화폐 수집 시장에서 액면가보다 비싸게 팔리는 게 보통이지만 화폐 본연의 기능으로는 딱 액면가만큼만 인정을 받는다. 아무리 오래돼도 심지어 금으로 만들어졌더라도 마찬가지다. 기념주화도 일상에서 쓰는 동전처럼 법정통화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은 발권국 관계자는 “기념주화는 단순한 투자 목적보다는 문화적인 가치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우리나라 주화 제조 기술의 발전을 알리면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도 부각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념주화가 나올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그래픽 김예원 기자 yean811@seoul.co.kr
  • 알리 마지막 길… 윌 스미스 등 8명 운구

    무료 입장권 동나… 재판매 글도 오바마, 딸 졸업식 있어 불참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무하마드 알리의 장례식이 10일 고향인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엄수된다. 이번 장례 일정의 큰 틀은 고인이 생전에 짜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이 1964년 귀의한 이슬람에서는 지역과 종파에 따라 다르지만 사망 후 24시간 안에 시신을 매장하는데 이번 장례는 7일 후 거행되는 점이 다르다. 장례 전날인 9일 1만 8000명이 들어가는 프리덤 홀에서 이슬람식 장례 예배가 열렸다. 모든 종교에 문을 열었다. 유대교는 물론 모르몬교 지도자도 추모했다. 이곳은 알리가 1960년 프로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고 이듬해 고향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렀던 곳이다. 10일 오전 9시(한국시간 10일 오후 10시)부터 운구 행렬이 고인에게 의미가 있는 루이빌의 여러 곳을 돌게 된다. 모두 8명이 운구하는데 고인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영국의 전 헤비급 세계 챔피언 레녹스 루이스와 할리우드 배우 윌 스미스가 포함됐다. 장례식은 오후 2시 ‘KFC 얌! 센터’에서 시작한다. 지난 7일부터 이곳 매표소에서 일인당 4장씩 입장권을 무료로 나눠 줬는데 1시간이 안 돼 동이 났다. 생전의 고인은 장례식 참석자들이 무료로 입장하게 하라고 당부했는데 벌써 재판매 사이트에서는 사겠다거나 팔겠다는 글들이 올라와 그 뜻을 거스르고 있다. 장례 행렬과 장례식에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압둘라 요르단 국왕 등 각국 정상들이 참석할 예정이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배우 빌리 크리스털 등이 추도사를 할 예정이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부인 미셸과 함께 딸 말리아의 고교 졸업식에 참석해야 한다며 불참하겠다는 뜻을 유족들에게 전했다. 알리 가족의 대변인 밥 건넬은 이미 오바마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와 알리의 부인인 로니를 위로했다고 밝혔다. 장례식이 끝난 뒤 고인의 관은 가족들만 지켜보는 가운데 루이빌의 케이브 힐 묘역에 안장된다. 한편 모든 장례 과정은 무하마드 알리 센터 홈페이지(www.alicenter.org)를 통해 생중계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미술관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미술관

    일본 최초의 현대식 공원으로 조성된 도쿄의 우에노 공원은 벚꽃 시즌의 인기 관광지로 꼽힌다. 오래 된 나무들이 안정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곳에는 넓은 호수와 판다곰으로 유명한 동물원 외에 미술관과 박물관, 음악당 등 문화 공간들이 밀집해 있는 ‘우에노 문화지역’으로 도쿄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휴식과 정서함양, 교육의 장으로서 역할을 훌륭하게 하고 있다.  예전의 우에노 지역은 도쿠가와 가문의 신사인 간에이사와 그 말사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길하지 않은 북동방향을 다스리기 위해 절을 짓는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에도 막부가 쇠락하고 전쟁으로 사찰들이 파괴되자 메이지정부는 1873년 이 지역을 일본의 1호 공원으로 지정해 현대식 공원으로 조성했고 1882년엔 국립박물관과 부속 동물원을 건립해 일반에 공개했다. 우에노 일대는 1924년 쇼와 천황의 결혼을 기념해 도쿄시에 공원 관리를 양도한 것을 계기로 우에노온시고엔(上野恩賜公遠·주군에게 하사 받은 공원)이라는 명칭을 갖게 돼 오늘에 이른다.  공원으로 들어오면 오른편에 국립서양미술관(國立西洋美術館)이 위치해 있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미술관 건축으로 1959년 6월 완공됐다.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의미있는 장소임에도 지금까지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일제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우리나라의 국권을 빼앗고 자원을 약탈하던 시기에 조성된 컬렉션이 주를 이루고 있고, 유럽에서 건너온 서양미술 작품을 굳이 일본에서 볼 일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음을 고쳐 먹고 지난 5월 하순의 주말을 이용해 찾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국민 품에 안긴 ‘마쓰카타 컬렉션’  국립서양미술관 앞마당에는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지옥의 문’과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과 ‘칼레의 시민’, 부르델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가’가 설치돼 있다. 일본은 잘 알다시피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구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유럽 회화, 특히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작품을 유난하게 좋아해서 많은 일본 자본가들은 20세기 초 유럽 현지에서 작품을 사 모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가와사키 중공업의 전신인 가와사키 조선소 대표이사였던 마쓰카타 고지로(松方幸次?,1865~1950)다. 국립서양미술관이 상설전시하고 있는 걸작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마쓰카타 컬렉션’을 만든 장본인이다. 메이지 시대 정치가의 아들로 태어나 예일대학과 소르본대학에서 수학한 마쓰카타는 1916년부터 1923년까지 유럽미술품과 공예품, 그리고 유럽의 일본 열풍으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우키요에(목판 풍속화) 작품을 수집했다. 프랑스 정부가 국립장식미술관 문으로 쓰기위해 로댕에게 주문했다가 계약 파기로 석고 상태로 방치돼 있던 ‘지옥의 문’을 브론즈로 주조하는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그는 도쿄에 미술관을 세운다는 목표를 갖고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 열정적으로 작품을 사모았지만 1927년 세계 대공황 여파로 가와사키 조선이 파산하자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부채를 정리하기 위해 사재를 내놓게 되면서 일본에서 담보로 잡혔던 작품들은 여기저기로 팔려 나갔다. (우키요에 컬렉션 8000점은 일본 황실에 헌상했고 ,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런던 수장고에 보관하던 작품은 1939년 화재로 소실됐고, 프랑스에 보관하던 작품 400여점은 우여 곡절 끝에 제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전범국의 책임을 물어 프랑스 정부에 귀속됐다. 일본정부가 개인의 재산이라는 이유로 1951년부터 반환노력을 펼친 끝에 1959년 반환이 결정됐다. 프랑스 정부는 고흐의 ‘아를의 침실’ 등 주요 작품 몇 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작품들도 공공을 위한 미술관에 공개한다는 조건하에 ‘기증 반환’했다. 회화 196점, 소묘 80점, 판화 26점, 조각 63점, 서적 5점 등 총 370점이 이때 일본으로 돌아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앞둔 근대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일본 정부는 이미 사망한 소유주를 대신해 르 코르뷔지에에게 도쿄의 우에노 공원 내에 환수 작품들을 전시할 미술관 설계를 의뢰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근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속도를 중시하게 된 시대상의 문화와 생황양식이 건축에 반영돼야 한다고 확신했던 그는 콘크리트로 된 고층 공동주거 건물을 파리시내에 건설하는 대단히 파격적인 구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미술관 건축을 꿈꾸며 프랑스 정부에 여러 차례 계획안을 제안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하기만 했던 그에게 뜻하지 않게 기회가 온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단일 건물은 파리 근교 프와시에 있는 빌라 사브와(1928~31년)에서 보듯이 평평한 지붕을 가진 정방형의 건축물이 필로티(건물 하단부에 기둥을 세워 텅비게 하는 구조)로 지탱하는 것이 특징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된 지상 3층, 지하 1층의 국립서양미술관 건물도 필로티로 지탱한 개방적인 공간과 나선형 복도, 재연채광을 이용한 건축양식 등 곳곳에 르 코르뷔지에의 개성이 녹아있다.  무표정한 정방형의 건축물을 필로티로 들어 올리고 그 하부의 입구로 들어가면 중앙홀에 이른다. 높은 천정에 삼각형 창문을 만들어 자연광이 들어오는 중앙홀을 지나 지그재그로 난 경사로를 따라서 2층 전시공간에 이르도록 하는 구조다. 르 코르뷔지에는 평면과 단면의 모든 요소에 ‘모뒬로르’의 치수를 적용했다. 천장이 낮은 경우 유럽 성인 남자가 손을 뻗는 높이(2.26m)로 하고, 높은 경우엔 그 두 배, 더 높으면 그 세배로 했다. 단위 전시공간의 폭은 기둥간격 6.35m의 격자 두 개, 길이는 격자 하나로 하고 자연광과 그늘이 드는 공간을 적절히 배치했다. 고전적인 전시공간과 달리 자유로운 평면 개념을 도입해 가변적인 칸막이로 일정한 넓이와 단면을 가진 공간들을 병치시켰다가 칸막이를 조정해 공간을 자유자재로 확대, 축소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을 세계 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8년 건물 전체를 지반에서 분리해 지진의 진동에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본관건물에 대규모 면진 장치를 설치했고 2007년 일본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했다. NHK 보도에 따르면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이 미술관의 가치를 인정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권고했다. 이에 따라 오는 7월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정식등록될 전망이다. 중앙홀의 한 구석에는 미술관의 역사와 건설 당시의 미술관 모습,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들을 알리는 홍보물이 전시돼 있다.  서양미술 전반을 아우르는 방대한 컬렉션  본관의 1층과 2층이 상설전 공간이고, 지하는 기획전시 공간이다.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일본인이 유난히 좋아하는 인상파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쿠르베, 세잔, 마네, 모네, 르누아르, 반 고흐, 폴 고갱 등의 원화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런 명작들 대부분이 기구한 여로를 거쳐 쳤다. 소장 작품 중 모네의 1916년작 ‘수련’은 마쓰카타가 모네의 지베르니 작업실을 직접 방문해 1922년 작가로부터 구입한 작품으로 프랑스 정부에 몰수됐다가 1959년 일본에 돌아왔다. 지오토, 루벤스 등 중세 후기 작품에서 18세기 말 까지의 성서를 주제로 한 종교화도 훌륭한 것이 꽤 많다. 이밖에 피카소, 미로, 뒤뷔페, 폴록 등 20세기 후반의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 전반을 아우르는 컬렉션을 자랑한다. 회화 외에 조각, 소묘, 판화 작품 컬렉션도 알차고 기획전도 매우 수준이 높다. 방문 당시 지하의 기획전시실에서는 일본·이탈리아 수교 150년을 기념해 열리는 ‘카라바죠 전’이 열리고 있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가 본명인 카라바죠(1573~1610)는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다. 치밀한 사실기법과 함께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를 기교적으로 구사하는데 능해 17세기 유럽회화의 선구자로 평가되지만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가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의 ‘박쿠스’, 밀라노 브레라미술관의 ‘ 엠마우스에서의 식사’,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성모의 죽음’, 바티칸궁전에 있는 ‘ 그리스도의 죽음’ 등 걸작을 남겼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서동철 칼럼] 통일신라 정병과 도계탄광

    [서동철 칼럼] 통일신라 정병과 도계탄광

    지난주 강원 삼척시 도계읍에서 국보급 통일신라시대 정병이, 그것도 두 점이나 동시에 출토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병(淨甁)은 우주의 기운이 응축된 정수(淨水)가 담겨 있는 것을 상징하는 불교 의례 용구이다. 정병이 발견된 곳을 그저 흥전리 절터로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은 절 이름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책에도 등장하지 않고, 절 이름을 알려 주는 유물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흥전(興田)이라는 땅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영동선의 나한정역과 흥전역 사이 철도를 ‘스위치백’으로 개설한 것이 1962년이다. 앞서 일제가 1940년 태백시 철암과 지금의 동해시 묵호 사이 산업철도를 부설했을 때에도 이 구간은 ‘인클라인’이었다. 모두 고저 차이가 심한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선로 부설 방식이다. 선로를 지그재그로 잇는 방식이 ‘스위치 백’, 윈치로 열차를 끌어올리는 방식이 ‘인클라인’이다. 2012년 ‘스위치 백’ 폐선으로 흥전역도 폐지됐다. 대신 전장 16.24㎞의 솔안터널이 뚫렸다. 국내 최초의 ‘루프’형 터널이다. 무려 387m의 표고 차를 극복하고자 연화산 속을 나선형으로 한 바퀴 휘감아 오르내리는 방식이다. 난공사 중의 난공사로 터널 굴착에만 13년이 걸렸다. 일찍부터 이 지역에 철도를 건설한 것은 석탄을 비롯한 지하자원 때문이었다. 흥전리 절터로 가는 길도 당연히 험했다. 717m 봉우리의 정상이 지척이다. 태백과 삼척을 잇는 국도에서 절터로 올라가는 중간에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가 있었다. 광차(鑛車)가 갱구로 연신 드나들었지만 왠지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4륜 구동차로 갈아탔다. 해발 680m의 발굴현장으로 ‘등반’하는 내내 엔진과 타이어는 비명을 질러댔다. 흥전리 절터 3차 시굴 및 발굴 조사의 현장설명회 자리에는 발굴 유구와 출토 유물의 중요성을 상징하듯 많은 보도진과 관계전문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눈길을 잡아끈 것은 도계읍 적십자봉사단원들이 음료수며 과일을 대접하는 모습이었다. 차에서 내려 다시 짧지 않은 산길을 걸어 올라아 하는 발굴현장이다. 중년 여성들이 상당한 무게의 짐을 이고 지고 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 고장에서 의미 있는 문화유산이 발굴되고, 온 나라가 떠들썩할 만한 유물이 출토되는 것은 축복이다. 관념적으로는 그렇지만 현실은 딴판이어서 뛰어난 문화유산이 모습을 드러내면 주변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이고 지역 주민은 오히려 피해를 본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도계읍 주민들처럼 진정으로 정병 출토를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그러지 않아도 불교문화재연구원 조사단은 2014년 1차 시굴조사 때부터 현지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내려오는 길에 잠시 들른 도계광업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도계광업소에서는 정부의 대한석탄공사 폐지 및 도계광업소 폐광 방침에 따른 근로자들의 투표가 벌어지고 있었다. 정부의 폐광 방침에 조기 폐광으로 대응하겠다는 안건이었으니 목숨을 건 배수진이나 다름없다. 산 아래 도계읍의 분위기는 더욱 절박해 폐광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온 읍내에 나부꼈고 도계역전에서는 서명운동도 벌어지고 있었다. 폐광이 되면 도계읍 경제도 무너질 것으로 주민들은 우려한다. 물론 폐광을 반대하면서도 석탄산업이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의 사양산업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주민들은 흥전리 절터가 크든 작든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있는 듯했다. 양양 낙산사만큼이나 중요한 문화 및 종교 유산으로 떠올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숨기지 않았다. 주민들의 기대가 다르듯 학계의 자세 역시 다른 발굴현장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병도 정병이지만 석물(石物)을 다룬 솜씨를 보면 신라의 수도 경주의 그것이 연상될 정도라는 감탄이 잇따랐다. 이 까마득한 오지에 왜 이토록 수준 높은 절이 들어서야 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과제다. 의미 있는 절의 역사를 제대로 복원해 주민들에게 작은 웃음이나마 돌려주면 좋겠다. 논설위원
  • [보육이 미래다] 아동 99.6% 유치원 입학 종교시설 빼고는 국공립 보육 교사들도 준공무원

    [보육이 미래다] 아동 99.6% 유치원 입학 종교시설 빼고는 국공립 보육 교사들도 준공무원

    “공보육은 정치적 의지와 결단, 국가 서비스 정신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국가의 미래인 아이들을 키우는 건 개인의 일이 아니라 사회의 몫입니다.” (나우엘 우메르 파리시 의원) 공보육률 66%를 자랑하는 ‘보육 선진국’ 프랑스. 그러나 프랑스가 이 같은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은 불과 10여년 전이다. 심각한 저출산으로 고민하던 프랑스는 양질의 보육 서비스와 재정적 지원을 해결의 카드로 꺼냈다. 결국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합계 출산율 반등에 성공하며 보육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입구 들어서니 디지털 화면에 ‘도착’ 지난달 26일 찾은 프랑스 이씨레물리노시의 ‘황새 어린이집’. 원장의 안내로 보안카드를 찍고 들어가자 벽면에 부착된 디지털 화면에 원생들의 등·하원 기록이 입력돼 전송되고 있었다. 원생들의 등·하원 기록은 부모들에게뿐 아니라 ‘가족수당금고’(CAF)와 시청으로 동시에 전달된다. 가족수당금고는 가족 유지를 위한 각종 수당을 관리하는 국가기관이다. 양 기관에선 아이가 잘 다니고 있는지 이중으로 확인하고, 출결 수에 따른 보육료를 계산해 부모에게 청구한다. ●등·하원, 부모·시청 등에 동시 전달 프랑스의 영유아 보육 체계는 어린이집에 해당하는 ‘크레슈’와 유치원으로 이분돼 있다. 어린이집은 완전한 무상보육이 아니다. 전체 원비 중 45%를 시가, 20%는 가정수당금고가, 7~8%는 도의회가 지원한다. 부모들은 평균 30% 정도 보육료를 부담한다. 그러나 맞벌이 여부와 소득, 출결 일수 등에 따라 합리적으로 차등 청구되고 있고, 보육 서비스의 질도 높아 대부분 부모가 만족하고 있다. 프랑스 영유아 보육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위생’과 ‘돌봄 그 자체’다. 아이를 가르치기보단 질병 등으로부터 보호하며 순수하게 돌보는 데 주력한다. 실비 살몽 황새 어린이집 원장은 “어린이집마다 연령대에 따라 아기반, 중간반, 큰아이반의 3반으로 나뉘는데 각 특성에 맞는 놀이와 소통을 중시한다”면서 “수면실을 빼고는 트인 공간에서 여러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지내기 때문에 폐쇄회로(CC) TV가 없어도 학대가 없다”고 말했다. ●특별활동비 제외 정부 지원 100% 유치원 과정은 특별활동비를 빼고 전액 정부 지원이다. 오로르 알비네 이씨시 교육부 과장은 “프랑스 전체 아동 인구의 99.6%가 유치원에 들어간다”면서 “사실상의 학교로서 종교시설을 제외하곤 모두 국공립”이라고 밝혔다. 모든 교구와 기물은 지자체에서 지원되며 보육 교사들도 정부의 월급과 관리·감독을 받는 준공무원이다. ●“부족한 교사 수·어린이집은 과제” 그러나 프랑스 보육에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남아 있다. 14개월 된 딸을 둔 줄리앙 펜트니어(33)는 “어린이집은 아직 유치원처럼 모든 아이들이 들어갈 자리가 부족하고, 유치원은 또 너무 까다로운 보육교사 선발로 교사 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영유아·아동보호 전문가인 나우엘 우메르 파리시 의원은 “프랑스도 아직 완전한 공보육 정착까진 갈 길이 멀다”면서 “모든 아이들이 엄마의 뱃속을 나와 국가의 보살핌을 받도록 하는 게 프랑스 보육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파리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종교 교리에 앞선 생명…개 구하려 터번 벗은 시크교 남성

    종교 교리에 앞선 생명…개 구하려 터번 벗은 시크교 남성

    종교 교리는 생명보다 중요할 수 있을까. 최근 인도에서 한 시크교 남성이 물에 빠져 목숨이 위태로운 개를 구하기 위해 쓰고 있던 터번을 벗어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일간 메트로는 6일(현지시간) 인도 펀자브에 있는 한 수로에서 28세 시크교 남성 사르완 싱이 자신의 터번을 사용해 물에 빠진 개를 구한 사연을 소개했다. 시크교에서 터번 착용은 신앙개조 5조 중 하나다. 이 종교의 교리로는 터번은 집에 있거나 목욕할 때만 벗을 수 있다. 공개된 영상에서는 사르완 싱은 일부 행인의 도움으로 경사진 수로 둑 밑으로 내려간 뒤 자신의 터번을 벗어 개를 구하는 모습이 찍혀 있다. 차를 타고 여행 중이었던 사르완은 당시 한 무리의 남성이 수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차를 멈추고 내렸다. 그 움직이는 물체는 바로 물에 빠진 개였다.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도 개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한다고 밝힌 사르완은 개를 돕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터번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는 “내가 터번을 벗는 순간 주위 사람들이 놀랐다. 그들은 내가 신앙을 경시한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그 순간 중요한 것은 바로 개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사르완은 당시 구조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개는 불안해했다. 전혀 내게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면서 “개를 따라 200m 정도를 간 끝에 터번을 몸에 감아 안전하게 물에서 들어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개를 안심시키기 위해 약간의 먹을 것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도록 놔줬다”고 덧붙였다. 사진=유튜브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트럼프 지지 네티즌 ‘유대인 혐오 상징’ 유행

    구글 스토어 자동프로그램 삭제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 사이에 유대인 혐오를 상징하는 ‘3중 괄호’(에코)를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3중 괄호 ‘((( )))’는 “유대인이 말을 하면 언론이 이를 부각해서 보도하기 때문에 이들의 말이 메아리처럼 퍼져 나간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때문에 ‘에코’라고도 불린다. 이런 3중 괄호는 나치 추종자들과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만든 기호로, 최근에는 유대인으로 추정되는 이름이 나오면 그 주변에 3중 괄호를 자동으로 치는 프로그램까지 나돌고 있다. 4일(현지시간) 현지 언론과 트위터 등에 따르면 미국의 우익 성향 네티즌들이 트윗이나 인터넷 게시물을 쓸 때 유대인 이름을 3중 괄호로 둘러싸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예슈아 바르 예호세프’라는 유대인 이름이 나오면 이를 ‘(((예슈아 바르 예호세프)))’라고 쓰는 식이다. 이런 행위는 ‘알트라이트’(대안 우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온라인 보수성향 네티즌들이 퍼뜨리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를 지지하고 다문화주의나 이민 확대를 반대한다. 유대인으로 추정되는 이름을 기억해 뒀다가 브라우저에서 자동으로 3중 괄호를 쳐서 보여 주는 ‘코인시던스 디텍터’라는 구글 크롬 브라우저 확장 프로그램(익스텐션)이 퍼져 나갔다. ‘알트라이트미디어’라는 이름을 쓰는 개발자 그룹이 만든 것으로 전해진 이 익스텐션은 구글이 지난 2일 크롬 스토어에서 삭제할 때까지 약 2400건 다운로드됐다. 알트라이트미디어는 알트라이트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스스로 밝히지 않고 있다. 구글은 “인종이나 종교, 장애, 성, 성적 아이덴티티 등에 입각해 인간 집단에 반대 의사를 밝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증오발언 금지 정책에 따라 코인시던스 디텍터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우익 인종주의자들 사이에서 3중 괄호를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일부 유대인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이들이 자신의 이름에 이 기호를 두르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공격의 대상이 되는 유대인에게 연대의 뜻을 표시한다는 의미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링 위에서… 인종차별 맞서… ‘74년 인생’ 벌처럼 쏘고 하늘로 나비처럼 날아갔다

    링 위에서… 인종차별 맞서… ‘74년 인생’ 벌처럼 쏘고 하늘로 나비처럼 날아갔다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장례식이 오는 10일(이하 미국 동부시간) 오후 2시 고인의 고향인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KFC 염! 센터’에서 거행된다. 알리 가족의 대변인 밥 건넬은 4일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취재진을 만나 가족끼리 비공개 장례식을 치른 뒤 어린 시절을 보낸 거리 등을 돌고서 공개 장례식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털, 스포츠캐스터 브라이언트 검블 등이 추도사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챔피언 3회·타이틀방어 19회 알리는 지난 3일 밤 늦게 생명 보조장치로 연명해 오던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의료기관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건넬은 사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자연적 이유에 따른 패혈성 쇼크”라고 설명했다. 세 차례 세계 챔피언을 지내며 19차례 타이틀을 방어하는 등 20세기 최고의 복서로 꼽히는 그는 은퇴 3년 만인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으며, 2014년 12월 폐렴으로, 지난해 1월에는 요로 감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은퇴 후 파킨슨병 30여년간 투병 12세 때부터 아마추어 복서로 활동한 그는 1960년 로마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땄다. 그러나 흑인이란 이유로 패스트푸드점 출입을 금지당하자 메달을 강에 던져버리고 프로로 전향했다. 1964년 2월 WBA와 WBC 통합 챔피언 소니 리스턴을 누르고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뒤 캐시어스 클레이란 노예 이름을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개명했다. 1967년 베트남전 징집 통보를 받고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가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1970년 복귀해 이듬해 조 프레이저에게 생애 첫 패배를 당했으나 1974년 조지 포먼을 캔버스에 눕히고 챔피언 타이틀을 되찾았다. 1981년 트레버 버빅에게 판정패하며 은퇴했을 때 통산 전적 56승(37KO) 5패였다. ●인종차별 반발 금메달 강에 버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성화 점화 후 남자농구 결승전 하프타임 때 36년 전 강물에 던져 버렸던 금메달을 다시 목에 걸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단순한 복싱 챔피언을 넘어 민권운동가, 링 위의 계관시인이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보폭도 넓었고 거침이 없었다. 리스턴과의 대결 직전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고 했고, “난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내가 위대함을 알기 전부터 이 말을 해왔다”고 했으며,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와 같은 명언을 남겼다. 인권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가 “링 안에서는 챔피언, 링 밖에서는 영웅”이라고 갈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급진 민권운동가 맬컴 엑스와 교류하면서 흑인의 자부심과 독립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고 흑인 무슬림 단체 ‘네이션 오브 이슬람’ 활동에 대한 이견으로 맬컴과 결별했지만, 맬컴이 인종차별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하자 뒤늦게 자책하기도 했다. 30년 넘게 파킨슨병과 싸우면서도 유엔개발계획(UNDP) 친선대사를 맡아 평화의 메신저로 활동했으며 지난해 12월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의 무슬림 혐오 발언이 이어지자 “정치 지도자라면 마땅히 이슬람 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점잖게 꼬집기도 했다. ●흑인 독립의 아이콘·평화 메신저 스포츠 스타와 유명 정치인들도 앞다퉈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 클리블랜드의 르브론 제임스는 “링 밖에서 더 위대했던 영웅”이라고 했고, 미국프로야구(MLB) 디트로이트의 투수 저스틴 벌랜더는 “영원한 안식을(RIP). 모두에게 영감을 주신 분”이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옳은 일을 위해 싸운 사람이었다”며 그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트럼프조차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그가 1998년 UNDP 친선대사로 활동한 점을 회고하면서 “그는 원칙과 매력, 재치와 우아함으로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싸웠고 이를 통해 인류애를 고양시켰다”고 추모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81세 중국노인, IS에 가담해 총을 든 까닭은?

    81세 중국노인, IS에 가담해 총을 든 까닭은?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이번에는 무려 81세 할아버지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의 영상을 공개해 홍보전에 나섰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영국언론 데일리메일은 중국 위구르족 출신의 노인 무하마드 아민(81)이 총을 들고 최전선에 서있다고 보도했다. 노인의 사연이 눈길을 끄는 것은 IS 대원 중 최연장자라는 사실과 중국인이라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노인은 중국 북서부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출신의 무슬림이다. 지난 1700년대 청왕조 시절 편입된 신장위구르지역은 터키계 무슬림이 많이 살고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중국 당국의 민족 차별과 종교 탄압에 반발해 분리독립 주장은 물론 테러도 벌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연말에는 신장 출신 위구르인 300명 정도가 IS에 가담하고 있다는 첩보가 나와 중국 당국을 긴장시킨 바 있다. IS가 공개한 영상과 사진에는 젊은 대원들과 함께 AK 소총과 권총을 들고 인터뷰하거나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노인이 고향 땅을 떠난 이유는 IS에 가담한 아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중국 당국의 박해를 피해 부인과 딸, 4명의 손자를 데리고 '헤지라'를 한 것이다. 한자로는 성천(聖遷)으로 쓰이는 헤지라는 아랍어로 이주, 이탈이라는 뜻이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박해를 피해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것을 말한다. 아민은 "늙은 나이지만 힘들게 IS에 왔고 군사 훈련도 받았다"면서 "훈련캠프에서 기고, 뛰면서 주어진 훈련을 거의 대부분 소화했다"고 밝혔다. 이어 "캠프를 마친 후 총기도 받아 전투에 참여하겠다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현재 기지에 머물러 있다"고 덧붙였다. IS 측이 노인의 영상을 공개한 이유는 최근 이라크 정부군의 전방위적인 공격에 최대 위기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곧 IS 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고자 최연장자의 영상을 공개한 것. 서구언론에 따르면 최근 국제동맹군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정부군은 IS의 최대거점인 팔루자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팔루자는 수도 바그다드에서 서쪽으로 약 50㎞ 떨어진 도시로 대표적인 수니파의 거주지역이다. 또한 시리아 락까, 이라크 모술 등 IS 3대 거점도 모두 공격받고 있어 IS는 2년 전 국가 선포 이후 최대 위기에 처해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빵의 쟁취(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여연·강도연 옮김, 행성B잎새 펴냄) 러시아 귀족 출신의 아나키스트 사상가인 저자가 ‘일할 권리’와 ‘좋은 삶을 살 권리’라는 현대적 화두를 던진다. 504쪽. 1만 7000원. 회화나무와 선비문화(강판권 지음, 문학동네 펴냄) 식물로 역사를 해석해 온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가 유교 문화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를 소재로 재미있게 풀어쓴 인문학 책이다. 352쪽. 1만 7000원.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사토 마사루 지음, 신정원 옮김, 역사의아침 펴냄) 제국주의, 민족 문제, 종교 분쟁을 키워드로 지식이 없이도 세계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이다. 236쪽. 1만 3000원. 나는 왜 형제가 불편할까(오카다 다카시 지음, 박재현 옮김, 더난출판 펴냄) 도쿄대 철학과와 교토대 의대를 졸업한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가깝기에 더 상처주기 쉬운 형제자매 간의 오해와 갈등을 탐구했다. 243쪽. 1만 3800원. 술맛 나는 프리미엄 한주(백웅재 지음, 따비 펴냄) 전통주 소믈리에로 활동 중인 저자가 우리 전통 술의 이름으로 제안한 한주(韓酒)의 깊고 다양한 맛을 글로 펼쳐냈다. 256쪽. 1만 5000원. 꽃방귀(신양진 지음, 이수진 그림, 별숲 펴냄) 지독한 방귀로 사람도 늑대도 쓰러뜨리는 임 서방. 그가 똥독에 오른 아내를 구하려 똥꽃을 찾아나서며 벌어지는 소동이 정겹고 재치있다. 72쪽. 9500원.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고맙습니다(올리버 색스 지음, 김명남 옮김, 알마 펴냄) 지난해 8월 30일 여든두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의학계의 계관 시인으로 불리는 올리버 색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에세이 4편을 모은 책이다. 그는 삶의 마지막 몇 달 동안 쓴 에세이에서 죽음에 대해 놀랍도록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실제 목소리가 담겨 있지 않은데도 문장마다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나지막하다. 김명남 번역가가 색스의 뉘앙스를 최대한 살려낸 덕분이다. 삶에 대한 따뜻한 감사로 가득한 글들에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많은 독자들을 마지막까지 매혹시켰다. 글만 있는 일반판과 영문 글과 그림이 담긴 스페셜 이디션이 함께 출간됐다. 64쪽. 6500원. 스페셜 이디션 128쪽. 2만 6000원. 악어프로젝트: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푸른지식 펴냄) 양성 평등국가로 알려진 프랑스에서조차 성폭력과 성차별이 일상적으로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담아낸 그래픽북. 남성인 작가는 여성들의 경험담을 직접 듣고 이를 충실히 그려 냈다. 이 책 자체도 화제가 됐다. 2014년 11월 프랑스 툴루즈에서 열린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 기념전시회에 초청됐다가 돌연 취소됐고 르몽드 등 프랑스 주요 언론이 이를 집중 보도했다. 책은 프랑스 사회의 현실, 공공장소 성추행, 직장 성희롱, 데이트 폭력 등의 낯뜨거운 행태와 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모든 남성을 포식자인 ‘악어’로 그려 낸 게 흥미롭다. 184쪽. 1만 5000원. 아이를 낳아도 행복한 프랑스 육아(안니카 외레스 지음, 남기철 옮김, 북폴리오 펴냄) 1990년대까지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였던 프랑스는 현재 평균 출산율 2.1명으로 유럽연합 국가 중 1위를 자랑하고 있다. 독일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대부분의 프랑스 부부들이 아이를 낳기에 ‘완벽한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출산 후에도 일과 양육을 조화롭게 병행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했다. 책은 국민총생산(GDP)의 3.2%를 가정에 지원하는 프랑스 정부의 적극적인 출산 보육 정책과 육아와 교육은 정부가 책임진다는 복지 정책 등을 소개하며 출산과 육아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법을 제시한다. 292쪽. 1만 4000원. 마켓바스켓 이야기(대니얼 코션·그랜트 웰커 지음, 윤태경 옮김, 가나출판사 펴냄) 미국 뉴잉글랜드에 지점을 둔 슈퍼마켓 체인 얘기다. 10여평의 작은 식료품에서 75개 매장, 2만 5000명의 직원을 가진 연매출 5조원 규모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마켓바스켓은 2014년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다. 해고당한 최고경영자(CEO) 아서 T 디물러스를 지지하기 위해 직원들은 파업을, 고객들은 불매운동을, 납품업체는 납품 거부를 벌여 그를 복귀하게 만든다. 기업 이익보다 사람을 더 중시하고, 지역 생산자들에게 입점 수수료 부담을 줄여 줘 판로를 확보하고, 브랜드를 키우는 상생 정책을 펼쳐 온 디물러스의 경영 철학과 기업 운영 비결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320쪽. 1만 5000원. 성전의 상인들(잔루이지 누치 지음, 소하영 옮김,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교황청 기밀문서 유출 혐의로 기소된 이탈리아 기자가 교황청의 재정 부패 스캔들을 폭로한 책이다. 가톨릭 성인(聖人)을 추대하는 시성 절차에는 75만 유로(약 10억원)가 들며 교황청이 ‘돈 많은 이들을 성인으로 찍어 내는 공장’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교황청 종교 사업 기구인 바티칸은행이 마피아의 돈세탁에 연루된 의혹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직속 감사단을 구성하고 경제사무국 개혁 기관을 만드는 등 부패 척결에 나섰다. 저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승리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확실한 대답을 내놓을 수는 없다”면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작업에 지지를 보낸다. 376쪽. 1만 6000원.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한국에선 ‘강남역 살인’…伊선 여대생 엽기 피살 왜?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한국에선 ‘강남역 살인’…伊선 여대생 엽기 피살 왜?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불안과 공포, 분노의 여진에 떨던 지난달 29일 오전 3시(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20대 남성이 여대생(22)의 몸에 알코올을 끼얹고 불을 붙여 숨지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의 전 남자친구가 자신과 헤어진 것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끔찍한 범죄였다. 현지에서는 이번 사건이 이탈리아에 만연한 남성우월주의를 반영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및 우월주의가 개별 국가 단위를 초월함을 보여 주는 사례다. 현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이탈리아에서는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 사건이 155건, 구타 사건이 8856건, 스토킹 사건이 1261건에 달했지만, 이 중 신고를 한 여성은 10%에 불과했다. 나머지 90%는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으로 이탈리아의 남성 우월적 사고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며 어린 시절부터 교육에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이러한 사상이 문제로 지적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국가와 종교를 막론하고 보편적 사상으로 인식돼 온 남성우월주의, 그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시대·국가 초월한 남성의 폭력·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의 역사는 수렵채집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존을 위해 자연과 동물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당시 인류가 스스로 집을 짓고 도구를 이용해 가축을 기르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타인 혹은 자연과 동물로부터 자신의 것, 공동체의 것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발생했다. 힘의 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남성과 여성의 명확한 구분이 시작됐고,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이들이 믿는 신의 모습은 대부분 ‘남성’이 됐을 만큼 남성은 우월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신화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수많은 신이 등장하지만 그중 최고는 단연 제우스다.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자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테네 여신 등 일부 여신이 제우스 못지않은 유명세를 떨쳤지만, 서구 신화 속 가장 우월한 신으로 제우스를 꼽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은 많지 않다. ●신화·종교에서도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 종교는 또 어떠한가. 이슬람은 남녀 불평등 종교의 대표로 꼽힌다. 21세기에도 무슬림 여성들은 여전히 차도르와 히잡으로 온몸을 감싸야 한다. 이를 단순히 옳고 그름이 아닌 문화적 차이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여성 차별로 대두되는 이슬람의 남성우월주의가 10세 전후 어린 소녀의 강제 결혼과 오로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염산테러 등의 폭력적 행태를 낳은 것만은 사실이다. 자비와 자애를 강조하는 불교에도 여자는 남자가 돼야만 성불할 수 있다는 전여신설(轉女身說), 여성은 제석천(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범천(불교의 호법수호신), 불타가 되지 못한다는 여인오장설(五障說) 등이 존재하며, 현대에 들어서는 과거에 비해 지위가 비교적 상승하긴 했으나 여전히 비구니는 비구의 종속적 위치에 있다. 이 밖에도 다수의 개신교는 현재도 여성 목사 안수를 불허하며, 대대로 남성 교황을 필두로 해 온 가톨릭 역시 종교적 자유는 인정하나, 주요 보직을 둘러싼 종교 내 정치적 자유는 불허하는 반쪽 평등을 고수한다. 조선시대 유교사상의 심화는 남성 중심 사회를 만들었고 이것은 남존여비, 남성우월사상으로 가지를 뻗쳤다. 사상이 또 다른 사상을 낳으면서 17세기 이후 조선 여성들은 ‘칠거지악’, ‘삼종지도’ 등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예속적 숙명을 따라야 했다. 결국 시대와 종교, 국가를 불문하고 인류는 끊임없이 남성과 여성을 구별해 왔으며, 이러한 구별이 나아가 차별 및 남성우월주의로 발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여권신장·양성평등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지금 이 시간에도 남성우월주의를 타파하고 여성 인권 신장을 이루기 위한 각양각색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중 흥미로운 것은 신(神)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성차별을 지양하려는 움직임이다. 지난해 영국 성공회 교회의 한 여성 주교는 신을 표현할 때 남성을 지칭하는 대명사인 ‘그’(He) 대신 ‘신’(God)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글로스터의 레이첼 트레위크 주교는 “신은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그렇다고 신(God)이 남성(Male)인 것은 아니다. 신은 신일 뿐(God is God)”이라면서 “신을 묘사할 때 ‘그’(He) 또는 ‘그녀’(She)의 대명사를 쓰는 것보다는 ‘신’(God)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면서 “나는 그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조금씩 변해 가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신학자들은 “언제나 신이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말해 왔지만 우리가 스스로 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신에게는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기나긴 역사적·종교적 근거를 들어, 누군가는 남성우월주의를 포함한 성차별적 습성이 인류의 내재된 본성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남성우월주의와 여성 차별은 그저 문화적 차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성(神性)의 성별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신학자들의 주장처럼 여성과 남성의 가치를 달리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남녀가 아직 평등하지 않다’는 전제가 있기 마련이다. 성 평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남성우월주의가 타파됐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과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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