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붕괴 권력투쟁아닌 경제난서 비롯/오코노기 마사오(지구촌칼럼)
◎경제관리 능력 이미 상실… 탈북자 늘어나는게 증거
북한의 체제붕괴위기가 최근 현실성 있게 논의할 수 있게 됐다.그러한 논의는 어느 면에서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너무 빠른 면도 없지 않은 듯하다.
너무 늦었다는 관점으로 말하자면 북한지도부는 80년대 후반이후 국제적인 고립화,경제적 곤란의 심각화,남북격차의 확대등으로 이미 「살아남기」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그러한 위기는 신냉전시대에 전개된 남북한 군비확장경쟁과 한국의 제2의 고도경제성장으로 정점에 달했다.88년 서울올림픽이야말로 전후 40년이상 계속된 남북한 체제경쟁의 종착점이었다.
북한은 더욱이 동구제국의 체제전환과 한국승인,소련과 한국의 국교수립,소련해체,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중국과 한국의 국교수립등 냉전종결과 그 이후 국제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그 사이에 진전된 사회주의 우호국가들의 체제전환과 시장경제도입은 특히 북한의 대외경제관계의 기반을 붕괴시켜 국내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북한의 기간산업은 석탄채굴의 부진,석유수입의 격감,원자재의 부족등이 겹쳐 생산이 크게 저하했다.
북한은 또 93년에서 95년까지 3년동안 계속된 냉해·우박·수해등으로 곡물생산에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자존심이 높은 북한 지도부도 한·일 양국으로부터 쌀지원을 받아들이고 국제사회에 구원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에너지와 외화의 부족에 더해 식량의 결핍에 직면한 북한지도부는 이미 경제적인 관리능력을 상실하고 있다.이러한 정세속에 94년 7월 「위대한 수령」이 사거했다.
그러나 김정일체제의 정치기반은 일반적으로 상상되고 있는 이상으로 강인하다.무엇보다도 북한에는 수령제를 대신할 정치체제가 존재하지 않는다.우상숭배적인 종교집단내의 권력관계와 흡사하다.북한의 정치체제에서는 최고지도자(수령·교조)의 지위가 탁월할 뿐 아니라 그 후계자도 「전대 수령의 위업을 계승해 뒤를 이어나가는 지도자」로 「본질적인 의미에서 노동계급의 수령」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 제네바 북·미핵합의이후 김정일비서가 직면하고 있는 최대의 과제는 정치문제,즉 지도부내의 권력투쟁이 아니라 경제문제 특히 심각한 식량문제다.바꿔말하면 김정일이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하지 않은 것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그의 정치지도력에 관한 여러가지 억측에도 불구하고 당서기국과 군대의 역할이 증대된 것 이외에는 인사에도 이상이 보이지 않고 정책적인 일관성이 상실된 것도 아니다.
물론 이러한 특이한 일원적 정치체제하에서도 곤란에 직면해 「신앙심」을 잃는 자는 외벽이 무너지는 것처럼 서서히 탈락한다.사실 지난 수년간 늘어나고 있는 탈북망명자의 대부분은 해외노동자·무역관계자·유학생·외교관등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경험한 자들이다.최근에는 당간부의 자제와 김정일의 전처까지 포함되고 있다.이것이 체제붕괴의 초기단계를 의미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같은 탈락자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체제붕괴의 최종단계까지 북한지도부가 정치적인 관리능력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군간부들이 이미 실권을 장악해 김정일을 은근히 무시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한 집단지도체제가 불가능한 것은 박정희이후의 한국의 경험으로부터도 명확한 것이다.오히려 북한에는 옛소련이나 중국과 같은 권력투쟁이 존재하지 않았다.당간부의 좌천이나 강등도 주로 최고지도자의 질책에 기인한 것이었다.
사실 소련·동구모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사회주의국가라면 북한은 이미 소멸했어야 한다.또 중국형의 사회주의국가였다면 북한은 이미 경제개방을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그 어느쪽도 아닌 수령·노동당·인민의 삼위일체가 강조되고 그것이 뇌수·심장·세포의 관계로 예시되는 유기체적 국가(사회정치적 생명체)이기 때문에 북한은 존속돼온 것이다.취약한 경제체제와 강인한 정치체제의 비대칭성이야말로 북한사회주의의 최대의 특징이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의 비대칭성이 앞으로의 북한정세에 복잡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첫째 식량과 에너지의 결핍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국민에 온갖 희생을 강요해 모든 경제기반이 붕괴되기까지도 북한지도부는 정책결정능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태평양전쟁 말기의 군국일본과 마찬가지로 최후의 단계까지 항전의욕이 계속될 것이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폭력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증은 없다.
둘째로는 앞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기반의 붕괴가 정치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것인가,그 타이밍을 외부로부터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바꿔말하면 그것이 이미 가까이 와 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가는 모두 북한의 돌연한 붕괴를 바라고 있지 않다.
그러나 셋째로 인도적 관점으로부터 북한주민을 구제하면 지도부도 역시 구제된다.그 결과 종래 정치체제의 생명력이 부활될 것이다.
한·미·일 3국은 이같이 유동적인 북한의 변화에 대비,단순한 정책적 협조이상의 「전술적 협조」를 필요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