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해방이후 80% 파괴… 61곳 남아(오늘의 북한)
◎사찰문화연 밝혀/종교보다 문화재 보호차원서 보존/평양 광법사정릉사포함 25개 고려 이전 창건/봉산 성불사등에 국보보물급사적 58점 보유
현존하는 북한의 사찰은 모두 61개로 해방직전 3백60여개에 비해 50년 가까운 공산통치하에서 상당수의 사찰이 파괴된 것으로 밝혀졌다.그나마 현존하는 사찰들도 종교적 측면은 배제되고 단순한 문화재보호 차원에서 국가적으로 보존돼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들 사찰내에는 현재 북한의 국보급 유물중 38%,보물급 유물중에는 66%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사찰이 신앙의 대상이나 기도처로서의 역할보다는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사단법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서의현) 부설 사찰문화연구원이 펴낸 자료집 「북한사찰연구」에서 밝혀졌다.
남북분단 50년만에 북한 사찰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서로는 최초로 발간된 이 책은 북한의 현존사찰에 대한 개황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현존하지는 않지만 과거의 유명한 사찰들에 대한 소개,그리고 북한의 불교문화재 등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특히 북한의 사찰재산을 별도의 장으로 분류,사찰보유 토지·임야등 재산을 일제때 조사자료를 토대로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현재 북한에 있는 사찰은 평안도가 26개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는 황해도 12개,함경도 10개,강원도 9개,경기도 3개,양강도 1개등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 사찰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구려시대 창건으로 추정되는 평양의 광법사(AD3세기경)와 장수왕 15년(427년)에 창건된 정릉사.이들을 포함,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된 사찰은 25개.특히 이 가운데 함경북도 명천군 칠보산 개심사는 826년 설립된 발해의 사찰로 유명하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은 태조 왕건이 세운 개성 안화사등 13개가 있다.이들은 영변의 서운사와 고성의 석왕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종8년(10 42년)이전,즉 고려초기에 창건됐다.
조선시대에 창건된 사찰은 영변 천주사등 11개.태조4년(13 95년)에 세운 함북 영안의 쌍계사와 세종조에 세운 북청의 광제사와 나진의 청계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선후기 숙종 이후에 창건됐다.그밖에 근대 들어서 건립된 사찰은 19 20년 평양의 용화사 하나 뿐이며 나머지 사찰들은 창건 연대가 불분명한 것으로 돼있다.
한편 이들 사찰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는 국보급이 신라 효공왕2년(898년)에 창건된 봉산의 성불사등 19점,보물급 문화재는 평양의 부벽루등 35점,사적 4점등으로 모두 58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북한에서는 분단 직후인 19 45년 12월 북조선민주주의통일전선산하에 북조선불교도총연맹을 설립,본격적인 불교탄압을 시작했다.이듬해인 46년 3월부터는 토지개혁을 실시,종교단체가 소유한 토지 1만5천1백95정보(1정보 약3천평)를 무상으로 몰수했다.특히 사찰재산의 경우 5정보이상은 모두 몰수,농민에게 분배했다.더욱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여 승려를 노동현장에 부역시켰고 탁발을 금지시키는 등 북한불교를 폐허화시켰다.
북한에서 종교인은 반혁명계층으로 분류되어 특별감시의 대상이 됨에 따라 철저히 탄압을 받아왔으나 70년대 들어 김일성 주체사상에 종교사상까지 흡수,선전하면서 80년대 들어서는일부 사찰을 복원하고 고려대장경을 번역했으며 또 89년에는 김일성대학에 종교학과를 개설하고 92년 신헌법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등 외형상의 변화를 보여왔다.그러나 북한당국의 종교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불교전문가들의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