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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대통령 유럽 순방] 베를린선언 의미

    [베를린 양승현특파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베를린자유대학 연설을통해 밝힌 ‘베를린 선언’은 민간 경협차원에 머물러온 남북협력의 범위를정부차원으로 확대,남북간의 화해·협력을 본격화해야 한다는 의지를 국내외에 천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김대통령은 통일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서 ‘선언’의 형식을 빌려 이를 강조함으로써 국제사회에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를 위한 우리의 확고한의지를 과시하고,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하는 뜻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대통령이 북한의 경제난 극복을 위해 우리 정부가 도와줄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한 것은 민간기업의 대북사업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에 따라 김대통령은 이런 민간차원의 협력 제약 요인을 해소해나가려면남북 당국이 전면에 나서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황원탁(黃源卓)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이와 함께 “현 단계에서 우리의 당면목표는 통일보다는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이라고 강조하고 “우리 정부는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정신으로 힘닿는 대로 도와주려고 한다”며 북한이 우리의 제안에 적극 호응할것을 촉구했다. 베를린 선언은 또 남북한 당국간의 대화 필요성 강조와 함께 2년전 대통령취임사에서 밝힌 우리의 특사교환 제의를 수락할 것을 거듭 촉구함으로써 당국자간의 대화를 풀어나갈 구체적인 접촉방식을 ‘특사 교환’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김대통령은 북한이 한반도 문제를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해결하려 하는 점을 감안,“우리 정부는 한반도 문제는 궁극적으로 남북한 당국자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베를린자유대학이란 무대를 통해 남북간의 화해·협력을 위해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음을 확인하면서,우리 제안의 수용을 북한에 공개적으로 촉구한 것이다. yangbak@. *평양측 반응과 전망. 북한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에 대해 어떻게 나올까.즉각적인 반응은 없지만 우리측은 조심스레 낙관하는 분위기다.경제회복을 위해 ‘실리추구정책’을 우선하고 있는 북한이 경제회복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우리의 제의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 초 우리의 경제공동체 건설 제의,남북대화 재개 촉구 등에 대해서도 예전과 달리 명확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북한은 정권안보차원에서 경제난 극복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등으로부터 실리 획득에 한계를 느끼고 갈등하고 있는 북한이 남측과의 대규모 경협 및 기간시설 건설사업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정부판단이다.비공식적이지만 그동안에도 북한은 여러 통로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전달해왔다는 전언이다.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회간접자본의 투자개발이나 민간기업들의투자확대를 위해서도 당국간 접촉과 이를 통한 투자보장협정 등 각종 협정체결은 절실하다.이 점도 북측의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게 한다.경수로공사의본격화, 서해공단건설 구체화 등도 당국간 접촉 분위기를 성숙시키고 있다. 북한은 9일 베를린 선언의 제의를 담은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 명의의우리측 서한을 판문점에서 거부하지 않고 접수했다.과거엔 서한 접수조차 거부한 적도 적지 않았다.북측이 즉각적인 입장 표시를 할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남북경협활성화를 위한 각종 조치 등은 확대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생각이다. 정부는 특사교환을 통해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입장이다.화해·군사·경제·사회문화 등 4개 분과위원회를 가동,실질적인 교류협력의 틀을 형성해나가자는 뜻이다.북측도 원칙적으론 기본합의서 체제 가동에찬성하고 있다. 이번 제의가 남북간의 정상회담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그러나제의 자체만으로도 남북관계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북의 입장에서 볼때 이번 제의는 남측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줄이고 자연스럽게 남측과 손을 잡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석우기자 swlee@. *뒷얘기. [베를린 양승현특파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번 4개국 순방중 행한여러 연설중 9일 베를린자유대학 연설에 가장 신경을 쓴 눈치다.순방기간 내내보안을 유지토록 하며 계속 가필을 했다는 후문이다. ◆김대통령은 ‘베를린 선언’ 발표 하루전인 8일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에게 판문점을 통해 편지형식으로 선언요지를 북한측에 알려주도록 지시했다.황원탁(黃源卓) 외교안보수석은 “대통령의 대북 제안을 미리 북측에 통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남북의 신뢰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김대통령의 생각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또 반기문(潘基文) 외교부차관을 통해 주한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대사에게도 선언내용을 미리 알려주도록 하는 등 한·미·일 공조체제와 주변 4강의 지원에도 신경을 썼다고 황수석은 전했다. ◆김대통령은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자료를 받은 뒤 직접 원고를 썼다고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이 전했다. 박대변인은 “최근들어 서울대 졸업식 연설과 2·18 대구 학생운동,3·1절경축사 원고 등을 대통령이 직접 썼다”며 “대통령의 혼과 의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의 베를린자유대학 연설에는 900여명의 교수와 학생이 참석해 연설을경청했다.당초에는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희망자가 쇄도해 연설장소를 대강당으로 옮겼다. 연설이 끝나자 교수와 학생들은 좌석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이들은우리측 관계자들에게 김대통령의 대북 제안에 대한 북한측의 반응을 묻기도했다. 또 독일 TV 4개사도 현장에서 녹화한 뒤 특집시간을 별도로 마련,방영하는등 독일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김대통령의 방문을 전후해 300여개 독일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줄을 잇자독일 공보원은 김대통령의 숙소인 인터콘티넨털 호텔에 한국기자들과 독일기자들을 위한 휴게실을 마련,자료를 제공하고 행사참석을 돕는 등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했다고 한다. 박준영 대변인은 “김대통령의 과거 민주화 투쟁에 대한 독일인들의 존경과 한반도 안보상황에 대한 각별한 관심의 표출”이라면서 “독일의 정치지도자와 언론은 김대통령이 고난을 겪던 시절 적극적으로 지지해줬고,지난 경제위기때 독일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서 돈을 빼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더 투자를 했다”고 전했다. 베를린자유대학은 제2차 대전후 훔볼트대학이 동독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에충성하자 이에 반대하는 학생 및 교수들이 서베를린지역에 설립한 대학이다.
  • [독자의 소리] 졸업식등 가족참석 늘리게 휴일에 했으면

    하나의 과정을 마친 뒤 새로 시작하는 일에 축하와 격려가 따르는 일은 당연하며 그 자리를 모든 가족이 함께 한다면 그 기쁨은 몇배 더 클 것이다.그런데 졸업식과 입학식 등 모든 행사를 평일에 하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는학부모는 참석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자녀의 뜻깊은 졸업식과 입학식에 가족이 모두 모여 축하 격려를 하고 그날만이라도 가족간의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이 되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이런 행사를 반드시 평일에 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하는 것은 어떨까. 학교 행사를 일요일에 하더라도 평일 하루를 쉰다면 교사들의 불만도 없을것이고 학교마다 운영위원회를 통해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 시간을 조정한다면 학부모의 반발도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육철회[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 예술전문석사 받은 연변출신 김예풍씨

    지난 25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식.까다롭기로 이름난 음악원의 작곡 전공으로 2년만에 예술전문사(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지난 98년 입학동기 가운데 김예풍(41)뿐이었다.그는 중국 조선족으로 옌벤예술대학과 상하이음악학원 3년 과정을 수료한 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옌벤예대에서 교원(전임강사에 해당)으로 활동했다. 중국에서는 상하이음악학원 시절인 83년 플루트 독주곡이 권위 있는 음악잡지인 ‘음악창작’에 실리고,86년에는 교향시를 상하이교향악단이 연주하는등 기성 작곡가로 대접받았다. 비교적 안정된 위치에 있던 그가 다시 모국의 학생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민족에 관한 것을 너무 모른다’는 자각 때문.예술종합학교를 선택한 까닭은 실기 위주여서 다른 대학보다 전문성이 있다는 판단에서였다.실제로 학교에 와 보니 학생들의 연주실력이 뛰어난 데 놀랐다고 한다. 그는 예술전문사 과정을 이수한 2년동안 당초 목적대로 ‘국악분석’등의 과목으로 한국음악 기초를 터득하고,중국에 있을 때는 알지 못한 컴퓨터음악을 익힐 수 있던 것을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그러나 “지금까지의 한국생활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한국음악학 박사과정에 입학허가를 받아놓고 있다.염두에 둔 연구주제는 ‘한국음악사의 한 지류로서 중국 조선족 음악사’.조선족 음악은 1945년까지는 한반도,49년부터는 북한의 영향을 받다가 90년대 이후에는 남한의 영향권에 들었다.최근엔 음악은 물론 방송국 아나운서의 억양까지 남한 억양으로 바뀌어갈 정도.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거친 조선족 음악사를 체계화해 보겠다는 생각이다. 정문연에는 특히 한국학 관련 자료가 많아 매력적이다.한국과 중국 이중문화적 배경의 깊숙한 부분을 공부해 볼 생각.되도록이면 중국 당·송 대부터 뿌리를 캐보겠다는 각오다.물론 예술종합학교 지도교수이던 황성호교수의 컴퓨터음악 강의 등도 계속 청강할 계획이다. 또 하나의 목표는 소프라노 가수로 역시 옌벤예대 교원인 부인 최선자(36)를 ‘후배’로 만드는 일.북경 중앙음악학원 성악과 출신으로 옌벤에서는 드라마 주제곡을 부르고,명절에는 TV에도 출연하는 최씨는 오는 5월 예술종합학교 성악과 예술전문사 과정에 입학시험을 치르기로 했다.합격하면 가을학기부터 아들(11)도 데려와 함께 공부하게 된다. 그는 “그동안 첫 학기를 제외하고는 등록금을 전액 면제해주고,모든 강의를 청강할 수 있도록 도와준 교수들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하고“공부가 끝나면 옌벤으로 돌아가 조선족 후예들에게 그동안 배운 것을 열심히 가르치겠다”고 다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金대통령, 서울大졸업식 참석 안팎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6일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했다.현직 대통령으로서는 6년 만이다.74년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의 참석 이후 끊어졌다가 94년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졸업축사를 한 뒤 다시 끊겼다.그러나 두 대통령모두 학생들로부터 크게 환영받지는 못했다. 김대통령은 연설 도중 7차례 박수를 받았다.박준영(朴晙瑩)청와대 대변인은 “졸업생과 교수·학부모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면서 “특히 이기준서울대총장이 이희호 여사를 서울대 동문으로 특별히 소개해 더욱 분위기가좋았다”고 전했다.이여사는 서울대사대 교육학과 출신이다. 김대통령은 지난해에도 어려운 환경의 방송통신대 졸업식장을 찾아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김대통령은 이번 졸업축사를 손수 썼다고 한다.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 그리고 시대정신을 직접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졸업생들에 대한 당부는 세 가지였다.도전정신을 가진 창조적 지식인,세계일류를 지향하는 세계인,이웃과 사회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인격의 소유자가돼 달라고 주문했다. ‘성공철학’도 제시했다.“인생의 성공이란 대통령이 되는 것도,교수가 되는 것도,사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면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만일 바르게 사는 것과 현실적 성공을 양자택일해야할 때는 주저없이 바르게 사는 길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金대통령 서울대 졸업식 치사 요지

    서울대는 우리 민족지성의 전당이자 국가교육의 중심으로 자리잡았고 우리사회를 이끌어온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서울대는 이 나라 민주화운동의 자랑스러운 선구자가 되어 왔습니다.4·19 민주혁명을 주도했고 70∼80년대의 군사독재하에서 수 없는 희생을 바치면서 싸우고 또 싸워 마침내 1987년에 민주화를 다시 쟁취해 냈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서울대인들이 각자 맡은 바 영역에서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공헌했던 점도 높게 평가해야 마땅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산업화 시대의 20세기를 뒤로 하고 지식정보화 시대인 21세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과 정보가 경제의 필수요소입니다.세계는 국경 없는 무한경쟁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대변혁을 직시하고 적절히 대응해야 합니다. 첫째,여러분은 무엇보다도 도전정신을 가진 창조적 지식인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이제 학벌이나 학력에 안주해서는 성공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여러분은 오늘 서울대 교문을 나서면서 서울대출신임을 잊을 각오를 해야합니다. 급변하는 지식정보화 시대에서 오늘의 새로운 지식이 내일에는 낡은 지식이 될 것입니다.끊임없이 자기를 개발하고 새로운 발상과 창의로 무장하는 평생학습의 선도자가 되어 지식기반사회의 창조적 역군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여러분이 경쟁하고 협력해야 할 상대는 같은 한국인만이 아니라 선진국의 젊은이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세계의일류가 될 때 한국은 세계의 일류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 달라는것입니다.인생의 성공이란 무엇이겠습니까.바르게 사는 가운데 내 양심이 떳떳하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사는 것입니다.인생은 무엇이 되느냐가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성공은 반드시 바르게 사는 삶의 기초 위에 성공해야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바르게 사는 것과 현실적 성공을 양자택일해야 할 때는 주저없이 바르게 사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 [대한광장] 내 나이 열일곱 살 적

    누구에게나 마음에 흑백으로 찍힌 졸업식 사진 몇 장은 있을 것이다.그러한사진들은 요즘같은 졸업시즌때면 작동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자리를낯설게 하면서, 우리들에게 ‘꼭 이렇게 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라는회한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내 마음에 찍혀 있는 사진도 그러하다.당시는 지금처럼 꽃이 흔하지 않았던때였으므로 졸업식 전날이면 다니던 교회에서 철야를 하며 졸업식을 준비했다.톱밥통에서 톱밥이 툭툭 허물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곱게 물들인 습자지를오려 꽃을 만들고 또 일부는 동네로 사철나무를 꺾으러 갔다. 짓궂은 친구 일부는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코딱지를 한 아름 선사합니다’라고 개사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밤을 새우다가 사철나무팀이 돌아오면 푸른 잎 사이로 삐죽이 내민 빨간 열매 사이에 습자지로 만든 꽃을 달아 화환을 만들었다.다음날 우리는 졸업하는 학교별로 삼삼오오 나뉘어 축하하러 갔다.식이 끝나면 서로가 축하하며 황토가 밟히는 운동장을 기마를 태워 돌아오기도 했다.그날 우리는 얼마나감격스러웠던가. 그러고 보면 참으로 세월이 많이 갔다.그때 졸업식을 하면서 이따금 먹을수 있었던 ‘자장면’은 이제 그 맛을 영원히 감추어 버렸고 철사줄이 가끔튀어나와 우리를 아프게 했던 화환은 이제 볼 수가 없다.그러나 모든 것이변한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황폐하게 여겨지는 요즈음의 풍경에도시들지 않는 영원한 마음의 꽃이 졸업식장에 있는 것이다. 얼마전 아이의 중학교 졸업식장에 갔다.평소 무심한 학부형이 졸업식날이라고 새삼스럽게 행세하는 게 싫어서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아내에게 들켜 혼이 난 뒤 어정쩡한 태도로 학교에 갔다.졸업식장을 물으니 신설 학교라 강당이 없어 수상자들만 시청각실에 모여 졸업식을 진행하고 나머지는 교실에서비디오를 보며 진행한다는 것이었다.다소 황당했다. 졸업식이 시작되었다.교장선생님의 훈화가 끝난 뒤 졸업장과 상장이 수여되었다.이어 송사나 답사도 없이 졸업가와 교가가 불려졌는데 그 옛날의 졸업가가 아니어서 다소 생경했다.사실 몇번 졸업식에 참여했다가 무심히 서있다가도 옛날졸업가만 나오면 언제나 눈물이 나왔던 터였으므로 오히려 잘됐다싶었다. 식이 끝나고 교실로 내려갔다.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내 졸업장을 주고 있었다.다소 어수선하였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한마디씩 건네면서 때론 안아주고 때로는 어깨를 다독이며 정을 표현하고 있었다.학생들에게 상을 다 나눠준 뒤 선생님은 졸업장과 함께 나눠준 유인물을 들고 “아마이것이 여러분들과 마지막으로 나누는 이야기가 될 텐데 할 이야기를 내가어제 시로 써봤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시를 읽기 시작했다.시 제목은 ‘내나이 열일곱 살 적’이었다. 4연으로 된 시는 3연까지 시의 화자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하고 마지막 연에 “그 때 그 말씀 다 잊고 말았지만” 그 말들이 “잠든귀 깨우는 범종소리로 은은하여라/은하수 별빛 속에 흐르고 있어라”라고 맺고 있었다.자신의 말이면서 동시에 언젠가 아이들의 미래에 이어질 그런 이야기였다.순간 나는 참으로 큰 감동을 받고 있었다.흔히 학교가 무너졌다 어쨌다 말들을 하지만 그것은 바로이런 선생님이 계신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소리다.중학교때 자신이 받았던 스승의 사랑을 다시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정성스럽게 전승시키는 장엄한 순간 앞에 내가 서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사랑’이라는 김수영 시인의 말이 있는데 알고 보면 사랑이란다어리석다.그 담임선생님 또한 어리석은,그러나 큰 사랑을 실천하면서 요즈음같이 탐욕만이 판치는 세상에 범종소리로,진짜 시인으로 우리를 깨우고 있었던 것이다. 강형철 숭의여대교수 문학평론가
  • ‘섬 개구리 만세’ 역사속으로

    지난 70년대 초 영화 ‘섬 개구리 만세’로 진한 감동을 주었던 조그만 섬학교가 18일 눈물속에 마지막 졸업식을 가졌다. 전남 신안군의 외딴섬인 사치도의 안좌초등 사치분교 운동장. 김용진(金龍震)교사와 이번에 졸업하는 최상민군(13)과 동생 상채군(11·4년),그리고 마을주민 20여명이 참석했다. 상민군이 “선생님 그동안 자식처럼 보살펴 주셔서…”라며 목이 메자 마이크를 잡고 있던 김교사와 주민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새학기부터 안좌초등으로 옮겨가는 동생도 “선생님과 형에게 고맙다”는송사를 했다. 사치분교는 지난 72년 전국소년체전에서 전남도 초등학교 농구대표로 참가해 준우승을 차지,화제를 모으기도 했다.59년 개교이래 29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전남대표로 참가할 당시 전교생 78명중 12명이 농구선수로 출전,상대편 선수들보다 키가 한뼘이나 작았으나 지칠줄 모르는 지구력으로 이같은 전과를올렸다. 또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섬 개구리 만세’가 제작돼 배고프고 힘들던 그시절에 신선한 청량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시농구선수였던 목포상고 농구부 심재균 감독은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짜릿한 감동이 전해진다”며 “섬을 떠나는 주민이 늘어 모교가 문을 닫게 되니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신안 남기창기자
  • 제18회 세무대학 졸업식

    재정경제부 산하 국립세무대학은 16일 오전 이헌재(李憲宰)장관,안정남(安正男)국세청장,김호식(金昊植)관세청장,김우석(金宇錫)학장 등 내빈과 학교관계자,학부모가 참석한 가운데 제18회 졸업식을 가졌다. 세무대학은 올해 내국세학과 187명,관세학과 53명 등 모두 240명의 졸업생을 냈으며 이들은 바로 국세청 및 관세청 8급 공무원으로 임용된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4.3점 만점에 3.85점을 얻어 전체수석을 차지한 관세학과 박남준(朴南準)씨가 재경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세무대학은 내년 19회 졸업식 이후 폐교될 예정이다. 김균미기자
  • 졸업·입학선물 책 어때요?

    졸업·입학철이다.친척이나 집안에 학생이 있으면 뭘 선물할까 한번쯤 고민하게 된다. 평소 책을 즐겨 선물한다는 탤런트 최화정씨.그녀는 기억에 남는 선물을 하고 싶다면 서점을 찾으라고 제안했다. “졸업과 입학에는 각각 ‘해방’과 ‘새로운 출발’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어 이를 되새겨 주면서 재미도 있어야 합니다.서점 이곳저곳을 기웃하면서 선물을 받을 사람의 나이와 그에게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죠”선물할 대상이 고등학생 이상이라면 성별에 관계없이 그녀는 요리책을 권한다.요즈음 유행하는 퓨전요리가 아닌 장담그기나 곰삭은 밑받찬 만드는 법등 우리의 전통음식 요리법이 담긴 책이 좋다고 말했다. “한 나라 음식에는 그곳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엿볼수 있습니다.그래서 가능하면 전통음식 조리법이 담긴 것이 좋습니다.외국 요리책도 괜찮고요”요리책은 그림이 많고 화려해 굳이 내용을 몰라도 보는 재미가 있다.외국요리책의 경우 뒤적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직접 사전을 찾으면서 그나라 말을 더 많이 배우게 되는 등 폭을 넓혀갈 수 있다는 것이 최씨의 주장. “남자에게 요리책을 선물하는 것은 요리는 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데 도움이 됩니다”이밖에도 대학 입학이나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는 딱딱한 내용보다는 ‘옷잘입는 법’‘성공한 사람들이 옷입는 법’ ‘예쁘게 변신하는 법’에 관한책이 휠씬 필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옷입는 법이나 화장법,몸매가꾸기는 이제 사치가 아니라자기표현 방법의 하나며 자기관리의 척도가 된다는 것. 고등학생에게는 ‘담배 끊는 법’에 관한 책을,초·중학생에겐 스타에 대한관심이 높으므로 좋아하는 스타의 자서전이나 포스터,또 요즈음 인기있는 만화책이나 캐릭터 상품 등을 제안했다. “이런 선물은 아이들에게 ‘어른들도 나를 이해하고 있구나,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준다”며 이밖에도 상상력을 키워줄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선물에 얽힌 그녀의 추억 하나. “언젠가 졸업식때 친척 언니에게 선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내심 기대를많이 했는데 속에 든 것은 할아버지할머니가 짐을 지고 있는 목각인형이었어요.너무 실망했어요.그때부터 저는 선물을 할때 받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까,재미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항상 생각합니다”강선임기자
  • 77세 시아버지·40세 며느리 나란히 석사모 쓴다

    희수(喜壽)의 시아버지와 40대 며느리가 오는 15일 동국대 졸업식에서 나란히 석사모를 쓰게 됐다. 이 대학 불교대학원에서 ‘경허스님의 생애와 선(禪)사상연구’로 문학석사학위를 받는 김영수(金永洙·77)씨와 산업기술환경대학원에서 ‘청정생산 기술개발을 통한 기업전략에 관한 연구’로 공학석사학위를 받는 이성숙(李聖淑·40)씨가 주인공. 두사람은 한번도 강의에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학교공부에 열심이었고 졸업성적도 4.5점 만점에 시아버지 4.38,며느리 4.25점으로 최우수 성적을 받았다.김씨의 7남매 중 넷째 며느리로 한지붕에 사는 이씨는 원고지 1,000장을 넘는 한자 투성이인 시아버지의 논문을 일일이 교정하고 가다듬어 컴퓨터로 옮겨 쳐주는 효성을 발휘했다. 지난 51년 고등고시 행정과 2회에 합격한 뒤 교단에도 서는 등 공직과 사업에서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는 김씨는 “늦은 나이에 돋보기를 끼고 학업에매달리는게 쉽지 않았지만 불교가 좋고 노후를 멋있게 보내고 싶어 공부를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산업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이씨는 “시아버지처럼 평생 공부하는자세로 계속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
  • 50세 주부 빛나는 고교졸업장

    “못배운 한을 풀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1남1녀의 어머니로,또 생업의 어려움 속에서도 학업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던 주부가 오십의 나이에 내신 2등급의 우수한 성적으로 고교를 졸업하고 명지대 영문과 신입생 ‘00학번’이 됐다.졸업식에서 중·고 6년 개근상과 고3학급의 회장직을 성실히 수행한 데 대한 공로상도 받는다. 11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성지고(교장 金漢泰)를 졸업하는 이병례(李幷禮·50·서울 양천구 신정동)씨는 가난한 전남 완도 노화읍 섬마을에서 태어나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17살의 나이에 홀로 서울에 올라와 구로공단에 취업했다.22세때 결혼한 뒤에는 빠듯한 살림에 노점상,식당일로 공부에대한 꿈조차 꿀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고 자식들도 자라자 공부에 대한 열정이 타올랐다.지난 92년 한글부터 배우며 어렵게 공부를 시작했다. 꼬박 6년동안 수업을 마치면 양천구 목동 사거리에서 운영하고 있는 F스포츠용품 대리점으로 가서 밤 10시까지 파김치가 되도록 일을 하고,집에 돌아와서는 11시,12시까지 집안 일을 해야 했다.학교 숙제는 새벽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편하게 살자고 타협하고 싶은 유혹이 들기도 했지만 자기와의 싸움에서 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들과 딸,동료들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아들 박준수(朴埈秀·27)씨는 서울대 지리학과 3학년,딸 미라(美羅·24)씨는 단국대를 졸업한 뒤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SBS ‘백정의 딸’ 신분차별 이겨낸 한가족 감동의 수난사

    “가벼운 시트콤이나 토크쇼만 보다가 오랜만에 만난 진솔한 감동의 드라마에 두시간 내내 가슴속을 시원하게 샤워한 듯 했다”(통신ID nikespray)6일밤 방송된 SBS 설특집극 ‘백정의 딸’은 나흘동안 외화 재탕과 스타모시기로 일관한 설날 특집프로그램 가운데 땀과 눈물이 배인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96년 설 특집극 ‘곰탕’과 이듬해 추석 특집극 ‘새끼’로 인간존중의 메시지에 천착해온 작가 박정란이,딸을 이화학당 졸업식 대표학생으로 길러낸 백정 박씨의 실화를 옮기면서 우리의 신분차별 유습을 되돌아봤다. “애비가 곧 너희고 너희가 애비다”며 천한 신분에 안주할 것을 자식들에게 강요하던 백정 이돌(이정길)은 아내를 때리고 업신여기며 한을 삭인다.아내(이휘향)는 참고 견디며 아이들을 키워가지만 세상 사람들은 ‘백정은 사람이 아니며 그의 각시는 더더욱 그러하다’며 마음껏 유린한다. 천한 신분에 대한 저항으로 자결한 아내를 위해 그는 평생 모은 돈을 털어꽃상여를 준비하지만 사람들은 “백정이 무슨 상여냐”며부셔버린다.이에그는 “백정이 배워서 뭐하느냐”며 그때까지 가로막았던 언년이(추상미)의학교 복귀를 되레 적극 권한다. 딸이 약국댁 도련님(유준상)과 정분났다는 소문에 몰려온 그집 권속들은“어디 넘볼 데가 없어서^b77c며 그에게 도끼질을 서슴지 않는다.그는 다리 한쪽을 잃음으로써 언년에게 강한 신분상승 욕구를 제공한다.졸업식날,언년이는그렇게도 감추려 했던 아버지의 신분을 자랑스럽게 공표하고 아버지를 포옹한다. 이 드라마에서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이들 가족이 세상과의 소통로로 삼아이들의 한이 상징적으로 압축된 묘지장면의 아름다움이었다. 눈밭 속에서 언년이가 도련님으로부터 바깥 세상으로 나아갈 것을 권고받은곳도 이곳이고 백정 아내의 한서린 북망행이 이루어진 곳도 바로 이 장소였다. 선굵은 부성을 연기한 이정길,천인 신분과 여성의 이중 질곡에 신음하는 이휘향의 열연은 눈부시게 빛났다.그러나 제작진들이 이들 가족의 수난사에 검질기게 달라붙기 보다는 드라마 ‘국희’의 성공신화에 기대려는 모습과 신분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철지난’ 메시지에 집착,대사가 교훈조로 흐른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화면 곳곳에 본 줄거리와 상관없는 ‘침입자’들이 등장한 것도 흠으로 지적된다. 임병선기자 bs
  • 金대통령의 국정2년 활동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난 2년 동안 세계 각국 정상들과 모두 56회의 정상회담을 가졌으며,하루 3.8회,총 1,880회 각종 국내행사를 주재하거나 참석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청와대 공보수석실이 30일 발표했다. 정상회담 중 다자회의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5차례였으며개별회담은 해외 31회·국내 20회 등 모두 51차례로 나타났다.해외순방은 9회로 57일 동안 머물렀으며,이동거리는 총 13만7,000여㎞로 지구를 3바퀴 반이나 돈 거리였다고 공보수석실은 설명했다. 또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외국 정부 및 국제기구 고위인사,민간기업인 등외국인사를 한달에 10회 이상,총 275회나 만났다.외국인사들에겐 우리의 경제개혁 성과를 설명했고,국내 인사들에게는 개혁을 촉구하면서 경영혁신노력을 고취시켰다. 김대통령은 ‘열린 국정운영’ 차원에서 한달에 최소 3차례 이상 지방자치단체를 방문하거나 전국 주요지역의 행사에 참석했다.취임 후 언론사와는 매주 한차례꼴로 모두 117회의 회견을 갖고 국정현안과 정국구상 등을 진솔하게설명했다. 취임 2년동안 김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회의,보고 등은 941회로 근무일 기준으로 볼 때 하루 평균 2회꼴이었다.한 관계자는 “이러한 수치는 김대통령이 국정의 중심에 항상 서있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라면서 “일부 우려와 달리 현실인식을 충분히 하고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국정행사의 특징은 김대통령의 소외계층에 대한 각별한 배려이다.역대 어느 대통령도 참석한 적이 없는 방송통신대 졸업식 참석,환경미화원 청와대 초청 등이 이를 뒷받침하는 행사다. 특히 해외순방 때 공항 의전행사를 대폭 간소화하고,공식 수행원도 축소해IMF위기 극복에 솔선했다.또 순방 도중 숱한 교민간담회를 가졌으나,공항 영접 등에 동원한 적은 한차례도 없었다.공보수석실은 “내년에도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스타일이 돋보일 수 있도록 여러 행사들을 기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강화도 길상면에 직업훈련학교‘우리마을’22일 문열어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위한 근로공동체겸 직업훈련학교 ‘우리마을’이 22일로 예정된 준공을 앞두고 강화도 길상면 온수리에서 막바지 단장중이다.‘우리마을’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을 지낸 김성수(金成洙ㆍ69) 주교가 94년은퇴이후 구상해온 ‘사랑의 집’으로 지난 5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8개월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 김주교가 ‘우리마을’을 생각해낸 것은 지난 94년.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해 오랫동안 맡았던 성 베드로학교 졸업식장에서 졸업후 갈 곳이 없다며 우는한 졸업생을 보고 서였다.김 주교는 선대로 부터 물려받은 시가 20억원 상당의 땅 2,000여평을 기증했고 설립기금 마련을 위해 성공회 대성당 뜰에서 손수 커피를 타 팔기도 했다. ‘우리마을’은 연면적 610평 규모에 작업실,세미나실 겸 음악치료실,2인1실의 숙소,거실,스터디룸,샤워실 등을 갖추고 있다.장애인들의 정서적 안정과 환경친화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70%를 목조로 꾸몄다.공사현장에서 나온 돌로 담을 쌓아 마치 산림속의 별장처럼 아늑한 모습이다.숙소동은 요람형태로마치 작품과 같은 분위기를 준다.설계와 시공은 솔토즈 조병수 건축연구소와 엠에이(주)가 맡았다.건축비는 모두 25억원으로 지방비와 국비 각10억원씩이 들어갔고 성공회가 나머지 5억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우리마을’은 우선 내년초 18∼25세의 경증 정신지체장애인 66명(30명 기숙,36명 출퇴근)을 뽑아 수경재배 콩나물재배,제빵,도자기 등 본격적인 재할교육을 실시한다.어느 정도 기술이 쌓이면 장애인들이 만든 상품에 ‘우리마을’이란 상표를 붙여 판매도 할 계획이다.교육기간은 일단 3∼5년으로 한정하지만 자활이 가능한 장애인들을 소그룹으로 묶어 사회에 진출시킨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김성수 우리마을 원장은 “조금만 도와주면 자립할 수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우리마을’과 같은 복지시설이 늘어나야겠지만 근본적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장애인을 방치하지 않고 수용해 별도의 복지시설이 필요없도록 관심을갖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생 몸 담아온 성직자 인생의 마지막 임무로까지 생각하는 김주교는 “장애인들이 공동체생활을 통해안정된 분위기에서 일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자기삶을 찾아나갈수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장애인의 자활능력을 키워주는복지시설이 많이 생겨나는데 밑거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張俊河선생 정신계승 심포지엄 발제·토론 요지

    사단법인 장준하(張俊河)기념사업회는 8일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분단민족의 좌표와 평화통일의 길’이란 주제로 장준하선생 정신계승 심포지엄을 가졌다.1부에선 한국현대사의 재조명,2부에선 민족사의 새 지평(사회통합과 민족통일)을 소주제로 주제발표와 토론을 가졌다.참석자들은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민족적 대안과 장준하선생의 항일독립·민주화·통일운동에 대한 역할및 선구적 의의에 대해 논의했다.다음은 주제 발표와 토론의 주요 내용. ■ 장준하와 박정희 비교연구(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집권 18년 동안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은 많은 적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최대의 라이벌을 꼽는다면 장준하(張俊河) 선생(이하 호칭생략)이 가장먼저 떠오른다. 일제 시대건 60,70년대 건 박정희의 반민족성과 친일성을 부각하는데도,박의 민족주의가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알리는데 장준하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준하는 광복군에 들어가 활동을 할 때나 OSS 특별훈련을 받을 때나 해방후 김구주석 등 중경임시정부 요인들을 모시고 환국할 때나 ‘돌베개’를 광야에서 베고 자는 심정으로 임했다.장은 60년대 두번 투옥,옥중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유신체제에 대항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최고형인 15년형을 받았다.출소후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이후 박정희의 독재와 부패에대항하여 싸운 민주주의의 심볼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반면 박정희는 오로지 일본 군인으로 입신하기 위한 일념으로 국민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갔고 만주군관학교 졸업식에서 최우등생으로 만주황제 부의(傅儀)로부터 금시계를,1942년 일본육사에 입학해 3등으로 졸업하여 육군대신상을 받았다.그후 다카키(高木正雄)란 이름으로 만주군에 배치,해방까지 항일부대와 싸웠던 인물이다.1979년 10·26 당시 일본의 한 외교관은 ‘국가와정보’라는 책에서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고 썼다.그의 정서적 고향은 죽을 때까지 일본제국의 군인정신 또는 군국주의였다는 지적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 냉전문화 극복과 평화통일의 길(조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남북간 군사적 대립구조를평화구조로 전환시키고 남북한 공존과 협력을 제도화하는 길은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에 있다.냉전구조의 해체는 체제·제도·정책·관행 및 의식을 탈냉전의 세계사적 조류에 맞게 재편하는 것이다. 남북한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은 군사적 대립과 긴장이 상존하는 한 언제든지무산될 위험속에 있다. 냉전의식·냉전문화의 해소를 위한 노력은 통일후 남북한 사회통합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또 우리 사회내의 진보와 보수간의 입장 차이를 좁혀가는 국민화합의 과정이란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물론 북한을 공존·협력의 동반자로 삼는 과정에서 많은 이견의 분출을 피하긴 어렵다. 통일문제와 관련,‘하나의 민족,두개의 국가’라는 두 정치체제가 병존을이루는 아일랜드의 예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이점에서 통일은 남북아일랜드처럼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류 수준을 높여가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바람직하다. 정치적 통합을 완전히 달성한 법적·제도적 통일로 여기기 보다는 사실상의 통일상태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20세기동안 국가이익과 민족이익의충돌속에서 언제나 민족이익이 제약되는 상황이 초래됐다.21세기의 과제는 국가이익과 민족이익이 하나되는 길에서찾아야 할 것이다.냉전문화의 극복은 그 중심에 있다. ■ 해방후 한국민족주의 성격과 의의(임지현 한양대교수) 운동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남과 북은 다같이 의장된 형태의 민족주의이다’라는 지적은 쉽게 이해된다.서로가 표방하는 체제 이념이나 정책의 대치선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은 사실상 권력담론으로서 민족주의적 코드를 공유하고있다. 새마을 운동이나 천리마 운동 모두 주민들의 근로의욕을 부추겨 생산성을향상시키려는 의도였다는 평가도 같은 맥락이다.‘한국적’ 또는 ‘우리 식’이라는 수식을 벗기면 10월유신과 주체사상이 동일한 권력축을 위해 짜여있는 것이다. 즉 분단상황을 이용하여 권력을 재생산하는 방식이 통일을 위한 동원에서 체제강화를 위한 동원으로 변화한 것이다.통일은 이제 수사로만 남게 되었다.민족주체성 확립이란 슬로건 아래의 국민교육헌장 반포,국기에 대한 맹세 등을 통한 국민의례 강화, 국학연구에대한 장려와 민족전통에 대한 강조, 국정교과서를 통한 국사교육 지배 등 가파르게 전진해온 남의 유기체적 민족주의는 10월유신으로 절정에 달했다. 북에서도 민족전통이 곧 혁명전통으로 대치됐고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요구는 사대의와 교조주의로 비판받고 민족전통에 입각한 ‘우리식’ 사회주의가전면으로 등장했다.지도자에 대한 정과 존경이 북에서는 혁명적 동지애로 표현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남의 국가경쟁력 강화론이나 북의 강성대국론은 다시금 국가권력이 민족의 이름으로 민중을 전유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받아들여진다. ■ 한국의 주요 갈등양상과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제(이강로 전주대교수) 한국사회는 80년대 중반이후 다양한 갈등을 경험하면서 이를 풀어왔지만 지금도 여러갈등이 해결되지 않은채 진행되고 있다.노동과 자본의 갈등은 90년대 중반이후 이전에 비해 안정적인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여전히 제도적 절차에는 합의하지 못했다.정당이나 정치 지도력도 아직 민주주의의 공고화나 안정적 운영에 적합한 형태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내각제 개헌이냐,대통령제 고수냐’는 헌정주의의 제도화도 미발달·불안정 상태다.노동과자본의 관계·정치 지도력의 행사문제 등은 민주주의 공고화의 과제자의 기준이다. 민주주의 미래는 안정된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한다.지역갈등은 민주주의의안정을 위협한다.지역갈등은 정치세력간의 갈등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에서도침투,사회생활의 주요 준거가 되며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한국정치에선 힘의논리가 여전히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더 민주적인제도와 과정을 통해 갈등을 풀어나가는 추세다. 신성불가침이던 권력의 영역들이 하나씩 노출되면서 국민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변화다. 아직 한국사회에선 갈등을 처리할 수 있는 국민적 합의로 만들어진 제도적장치는 미약하다.그러나 많은 갈등 양상에도 불구,불안정하지만 민주주의를다지는 요인들이 늘고 있다. * 張俊河선생 정신계승 토론 이모저모 ‘장준하와 박정희연구’주제발표에서 토론자로 나선 서강대 박호성교수(정치학)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민족주의는 통치술·통치전략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면서 “민족주의가 국민의 민주주의적 토대로서 기능하지 않도록억누르면서 국민동원의 수단으로 교묘히 이용했다”고 말했다. 또 “박정희 전대통령은 통치전략적인 차원에서 과거지향적인 복고적 민족주의를 강조했다”고 밝혔다.이에반해 21세기의 민족주의는 통일·화해·형제애를 촉구하고 지향하는 민족주의이며 국가사회·민족내부의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겸허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매일의 김삼웅(金三雄) 주필은 해방후 한국민주주의 성격등과 관련,“구한말·일제시대 등 어려웠던 시대의 양심적 선각자들이 지향했던 ‘한반도적인 민족주의’에 대한 조명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장준하,백범 등이 추구했던 ‘한국형 민족주의’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주문했다. 김 주필은 “평화적인 정권교체이후 많은 사회문화운동단체 등 자발적인 비정부기구(NGO)들이 생겨나 활발한 활동을 벌이면서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도권력에 종속됐던 과거에서 벗어나 시민단체들에의해 자유롭게 이뤄지며 새로운 모습을 형성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공회대의 김동춘 교수는 “장준하와 박정희를 같은 지평에서 평가하기 어렵다”면서 “박정희는 정치적 야심을 가진 직업군인으로서 현실적인 길을걸었다면 장준하는 도덕적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경남대 심지연(정치학)교수는 “장준하가 젊은이 사이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면서 “그가 추구했던 이념과 이상,그리고 생애에서 젊은이들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심 교수는 역사의 평가에 있어 선과 악에 대한 이분법적인 접근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고 특히 젊은세대가 역사적인 삶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교훈을 주기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리 이석우 오일만기자 swlee@
  • 연쇄회동 이모저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6일 저녁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를 방문,부부동반 만찬회동을 가졌다.이에 앞서 박태준(朴泰俊) 자민련 총재와도 청와대 회동을 가졌다. 총리공관 만찬 오후 6시30분부터 부부동반으로 이뤄진 만찬회동은 배석자없이 김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김 총리와 부인 박영옥(朴榮玉)여사 등 4명만이 참석했다.김 대통령과 김 총리 내외는 만찬 도중에는 일체의 정치 얘기 없이 취임 1년 만에 일궈낸 외환위기 극복을 평가한 뒤 7일부터 시작되는 김 총리의 남미순방을 화제로 40여분 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환담을 나눴다. 이어 김 대통령과 김 총리는 자리를 이동,단독으로 만나 양당의 공조와 후속 개각 문제에 대해 깊숙한 얘기를 주고 받았다.50여분 동안 진행된 이날단독 회동에서 김 대통령과 김 총리는 21세기에 대비,양당이 지속적으로 공조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재확인하고 총선승리를 다짐했다. 두 사람은 이날은 원칙만을 확인한 뒤 김 총리가 남미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대로 다시 만나후임 총리 인선 등 구체적인 협의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전문이다. 김 대통령과 김 총리가 만찬하는 동안 한광옥(韓光玉) 대통령비서실장과 김용채(金鎔采) 총리비서실장은 옆방에서 식사를 하면서 별도의 대화를 가졌다. 이에 앞서 김 총리는 이날 오후 내내 삼청동 공관에 머물며 김 대통령과의만찬회동을 준비했다.김 총리는 오전에는 중앙청사로 출근하지 않고 국방대학원 졸업식에만 참석했으며 점심 때에는 국민회의 장성원(張誠源)·자민련이재선(李在善)·한나라당 김종하(金鍾河) 의원,선준영(宣晙英) 외교통상부차관 등 남미순방 공식 수행원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한편,김 총리의 부인 박영옥 여사는 김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첫 공관 방문에 대비,꽃꽂이를 하는 등 손님맞이에 하루를 보냈다.이날 만찬 메뉴는 중국음식이었다. TJ 주례회동 오후 3시부터 김 대통령과 1시간여 회동을 끝낸 박 총재는 이양희(李良熙) 대변인을 통해 세 가지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중선거구제에 대한 ‘원칙’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생각이 종전과 변함이없다▲야당측이 요구하는 정개특위 재구성 제의는 선거구제가 결정된 후가아니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IMF 2주년 결산총회에서 국민과 정부의 노력에 의해서 IMF를 극복했다는 사카기 바라 일본대표등 외국전문가들의 평가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내용 등이다. 그러나 이대변인은 정작 관심이 집중됐던 ‘합당’문제에 관해서는 발표가없었다고 밝혀 회동결과를 놓고 갖가지 추측이 제기됐다.특히 선거구제 문제와 관련,중선거구제 ‘원칙’이라는 표현을 사용,타협의 여지를 남겨놓은게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양승현 이도운 김성수기자 yangbak@
  • [공직탐험] 시골역장 (2)

    간이역의 역장만큼 주민들의 삶 속에 어우러져 호흡을 함께하는 공직도 흔치 않다.세월이 변해도 역장에게는 어렵던 시절 고향을 떠나던 사람들에게‘잘살라’며 손을 흔들던 모습이 실루엣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지금도 주민들의 짐을 들어주거나 기차를 놓친 휴가병을 화물차에 태워보내는 모습을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역장들은 지역별로 있는 월별 ‘기관장회의’에 참석하여 읍장·우체국장·농협장 등과 지역현안을 논의한다.뿐만 아니라 지역문화제와 경로잔치,학교졸업식 등 각종 행사에도 단골손님이다.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사북역(태백선) 김익남(金益南·49)역장은 지역축제와 체육대회 등이 몰린 가을에 접어들면서 3∼4일에 한번꼴로 행사에 참석한다.김씨는 주민들과 얼굴을 익히려고 하루 1개 열차 정도는 반드시 매표와집표를 직접 담당한다.좁은 바닥인데다 주민들은 대개 역을 통해 외지를 다녀오기 때문에 매·집표는 주민들과의 만남의 시간이나 마찬가지. 이런 식으로 낯을 익힌 주민들은 명절때 음식을 갖고 오거나 철도청 소유부지 임대 등 민원을 갖고 역장을 찾아오곤 한다.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일신2리 주민들은 지난해 쌈지돈을 모아 변변한 집기하나 없는 구둔역에 응접세트를 기증했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 안강역(동해남부선) 최해암(崔海岩·48)역장은 지난 95년 5월부터 지금까지 효자·호계·안강역 등을 거치면서 54회에 걸쳐 지역소식지를 발간했다.월간으로 발행되는 이 소식지는 열차 정보는 물론 역 주변에서 일어나는 주민들의 소식을 담아 인기를 끌고 있다. 역장은 때로 인생상담역도 된다.생활고나 부부간의 갈등으로 가출하려 했다가 막상 떠나지 못하고 대합실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설득해 돌려보내곤 한다.강원도 동해역에서는 대합실에서 갑자기 통증을 느낀 산모가 역 숙직실에서 세 쌍둥이를 낳은 일까지 있다. 주민생활과 밀집한 연관이 있기에 역장은 지역상황에 따라 위상의 부침을겪는다.90년대 이후 탄광경기가 기울어지면서 탄광지역에 있는 강원도 태백·사북·고한역은 나날이 역세가 위축되고 있는 반면 해돋이 하나로 갑자기뜬(?) 정동진역에는 사람들이넘쳐난다.역장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오진호(吳陳澔·35)고한역장은 “역에서 싣는 석탄량이 10분의 1 수준으로줄었다”면서 “예전에는 역에 늘 활기가 넘쳤으나 폐광과 함께 역도 활력을잃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김학준기자 hjkim@
  • [굄돌] 꽃다발 없는 졸업식

    한 사람의 여성으로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나는 행복한 영화평론가다. 아내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하지만 줄곧 아내를 혹사시켜온 이기주의적인 남편의 한 사람이다.원고는 항상 아내의 손질을 거쳐세상에 나왔고, 그 덕분에 나쁜 글을 쓰는 지식인이라는 ‘오명’은 아직 듣지 않는다. 아내에 대한 혹사하는 계속된다.지난주 일주일은 아산에서 있은 제 1회 한·일 청소년 영화제에 참여하느라 꼬박 집을 비웠다.사랑하는 아들과 딸,이두 아이와 아내는 번갈아 가며 전화를 주었다.“제발 목소리만이라도 듣고살자”며 멀고도 가까운 거리감을 따뜻한 마음으로 메꿨다.하지만 서울에 도착한 즉시 딱 하루 집에서 자고 충무로 일로 바쁘다. 새벽 2시 넘어서 귀가하는 남편을 위해 잠을 자지 않고 온유한 미소로 맞아주고 함께 목욕하고 잔다. 그것도 잠깐 4시간 가량 눈을 붙이고 나서 일터로나가는 남편을 위해 따뜻한 ‘국 한 그릇’을 정성껏 차려주고 “여보,열심히 사는 모습 보니까 좋다”라고 용기를 얹어준다.아 나는 이 행복을얼마나오래 누릴 수 있을까 .감사의 표현이 모자란 나에게 있어 나는 정말 글로 먹고 사는 영화평론가의 자질이 있는 지 의문에 빠지기도 한다. 아내의 하루를 생각해 본 지가 꽤 오래 되었다.교육개혁을 부르짖을 때 성실한 교사들이 속앓이를 겪을 시기에 위로의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수업 이외에 특활지도에 힘쓰는 노력은 야간대학원을 다니는 학문적 열정으로까지 이어졌다.두 아이의 친구이자 말벗의 일인자로서 손색이 없다.아내에게는 거짓이 없다.우리는 거짓을 밀어내는 인생을 살기로 하고 결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가훈처럼 껴안고 실천하고 있다.아내의 삶의 성실과 지혜로움,매력적인 목소리는 위기의 40대인 나에게 활력소가 되고 있다.그런데 지난 8월에 있은 아내의 대학원 졸업식때 꽃다발을 준비하지 않았다.아내에게 가혹한 일상을 안겨준 어제의 일들이 어째 꽃다발 하나로 보상될 수 있겠는가.내가 쓰는 영화평론의 힘은 아내로부터 나온 것이다.“여보,사랑해.”[양윤모 영화평론가]
  • 국내 첫 사이버졸업식

    인터넷 졸업식이 국내에서 처음 열린다. 숙명여대 가상교육센터는 21일 99학년도 1학기 졸업식을 인터넷의 사이버공간에서 갖는다고 19일 밝혔다. 졸업식에는 인터넷을 통해 영어,임상영양,음악치료전문가 등 6개 과정의 졸업생 393명이 참가한다.졸업생은 졸업식 당일 가상교육센터 인터넷사이트(http:///snow.sookmyung.ac.kr)에 접속하면 총장의 축사와 우수상 시상,수상자인터뷰 등을 동영상과 음성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또 숙대에서 자체 개발한 사이버 여대생 ‘스노우’가 교가를 부르고,국내최초의 사이버 가수인 ‘아담’도 축가를 부른다.이 대학 관계자는 “졸업생대부분은 사이버공간을 통해 수업을 받은 점을 감안, 졸업식도 사이버식으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徐廷旭 과학기술부장관

    대학졸업식에서 초청 연사가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영광이다. 한·미 과학장관 회의차 미국 출장 중 모교인 Texas A&M의 졸업식에 초청을 받았다.이순(耳順)의 인생에서 내 마음의 행로는 40년 전 타향살이 유학시절로 되돌아간다. 나는 인구 10만이 안되는 미국 남부의 Texas A&M 대학촌에서 청년기를 보냈다.1876년에 설립된 Texas A&M은 10개 단과대학에 교수 2,500명,학생 4만5,000명인 대형 주립대학이다.개설된 과정만도 학사 142개,석사 152개,박사 101개나 된다.시설 및 재정을 보면 부지 640만평에 연간예산 1조9,000억원,연구비 4,800억원,기금이 3조6000억원에 이른다. 한국전쟁 때문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던 나는 미국에 가서 그야말로 오줌이 노래지도록 공부했다.학부과정을 마친 뒤 박사학위를 얻고 돌아와 연구소 창설,산업기술개발 등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의 연구기반이 없는 나라의 연구개발과 산업건설이 얼마나 힘든가를 통감했다. 40년전 우리의 국민소득은 100달러가 안되고,보통 사람들은 전기나 전화의문명을 누리지못했다.이제 1만달러에 육박하는 국민소득,누구나 누리는 전기·전화문명,자동차 고속도로에 정보고속도로가 겹쳐 자동차와 인터넷이 일반화된 나라가 됐다.이 모두 교육의 힘이다. 미국이 힘센 나라가 된 것은 전세계의 두뇌를 끌어들여 지식을 창조하고 신기술을 개발하는 대학의 힘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미국의 대학은 연구기반이 탄탄할 뿐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를 고귀한 책무로 알고 수용하기 때문에 더욱 힘을 발휘한다. 아득한 옛날에 졸업을 한 선배로서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려는 후배들에게할 말이란 그리 많지 않았다. 미국이 제공한 고등교육이 한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과 지구가족이 직면한 문제들에 한국과 미국의 과학기술협력으로 대처하자고 강조했다. 인도의 간디가 금기시한 7대 죄악,즉 불로(不勞),치부(致富),부덕 상거래,비인간적 과학,무희생신앙(無犧牲信仰),무원칙 정치를 상기시키며 젊은 그들의앞날을 축복했다. (미국 텍사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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