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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네디 대통령, UFO 비밀 밝히려다 암살당해”

    “케네디 대통령, UFO 비밀 밝히려다 암살당해”

    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사망이 UFO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모으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등이 지난 18일 보도했다. 최근 미국 중앙정보국(CIA)는 1963년 11월 12일 UFO 관련 문건 열람을 요구했던 케네디의 서신을 공개했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UFO 관련 비밀문건열람을 원한다는 내용의 서신 2장을 CIA측에 보냈는데, 이중 한 장이 공개된 것. 또 그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국장에게 우주개발 및 조사 활동과 관련해 소련과 협력할 것을 당부하는 메시지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서신은 ‘존 F. 케네디와 뉴프런티어’(A Celebration of Freedom: JFK and the New Frontier)라는 책을 집필중인 작가 윌리엄 레스터가 ‘정보공개법’(FOIA· Freedom of Information Act)을 언급하며 공개를 요구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UFO 신봉자들은 케네디 전 대통령이 암살되기 10일 전 이 문서의 열람을 신청했고, 그의 암살은 UFO의 진실을 알려던 움직임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1960년대에 CIA에서 일했던 한 인물이 빼돌렸다가 공개된 불에 타다 만 문서다.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이 인물은 CIA가 중요 비밀문건을 소각할 때 이를 몰래 빼돌렸으며, 이 문서에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호명인 ‘랜서’라는 이름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랜서가 우리의 활동과 관련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몇 가지를 요구했다.”는 CIA 국장의 메모도 함께 볼 수 있어 UFO와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의 상관관계에 의심을 더하고 있다. 윌리엄 레스터는 “케네디 전 대통령은 소련이 자국 상공에서 자주 목격되던 UFO가 미국의 침공으로 오해받을까 염려해 비밀문건 열람을 요청했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케네디 전 대통령이 UFO 관련 기밀을 유출하려고 하자 CIA가 나서 암살을 주도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CIA 측은 이 같은 주장에 어떤 공식적인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美, 레이건을 그리다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미국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지 100주년을 맞은 6일(현지시간) 미국은 레이건에 대한 추억에 푹 빠졌다. 미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은 지난 2004년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특집 기사를 통해 미 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이건의 삶을 소개하고 미국 사회에 남긴 유산을 집중 조명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태어난 일리노이 주의 농촌 마을 탐피코에서 그가 영면한 캘리포니아 주 시미밸리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에서 기념 행사가 열렸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0년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옛 소련과의 경쟁에서 강력한 미국을 실현했던 지도자로, 특히 대중적 호소력과 친화력이 뛰어나 ‘강인함’과 ‘낙관’의 인물로 각인돼 있다. ●‘강인함·낙관의 인물’로 평가 특히 공화당이 오늘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하고 보수주의의 정의를 다시 내린 지도자로 평가되면서 공화당은 2012년 정권 재탈환을 목표로 레이건의 정치적 유산을 잡기 위한 ‘레이건 마케팅’에 열중했다. 공화당의 잠재 대선 후보군들은 국민적인 레이건 회고 붐을 겨냥해 경쟁적으로 레이건의 후계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인기가 많은 레이건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공화당원들이 많아 후보들도 레이건 정신을 추종하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전했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지난 4일 캘리포니아 주 샌타바버라에서 열린 보수단체의 레이건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레이건 전 대통령이 중시했던 가치들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초기에 영화배우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평가절하되고 비웃음의 대상이 됐던 점을 상기하며 주류 언론들과 관계가 썩 좋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떠올렸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레이건의 고향 마을에서 열리는 100주년 기념 행사에 연설자로 참석할 뿐 아니라 최근 레이건 화보집을 만들어 기록 영화까지 상영하며 레이건 정신 전파에 나서고 있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최근 연설에서 레이건을 자주 인용하고 있고, USA 투데이 기고문에서도 “레이건 정신은 살아 있다.”고 주장했다. 팀 폴렌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는 최근 펴낸 회고록에 레이건 정신이 자신의 정치철학에 영감을 줬다고 소개했다. 헤일리 바버 전 미시시피 주지사와 존 헌츠먼 주중대사는 레이건 대통령 당시 백악관에서 일했던 경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레이건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공화당 후보들의 태도는 오히려 이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무조건 추종 공화에게 부담 지적도 워싱턴포스트는 6일 레이건 전 대통령은 보수주의를 표방했지만 현실 정책을 추진하면서는 민주당과도 타협하는 ‘실용주의적’ 면모를 보였다면서 현재의 공화당을 지배하는 강경 보수 성향의 티파티류 정치 노선과는 구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학자들은 레이건이 공화당에 영감을 일으키는 원천이 될 수는 있지만, 1980년대와는 다른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레이건에 대한 향수는 공화당 후보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전통·퓨전 한복 디자이너가 말하는 설빔 트렌드

    전통·퓨전 한복 디자이너가 말하는 설빔 트렌드

    우리나라 여성의 92%가 갖고 있지만 지난 일년 동안 한번도 안 입은 옷은 뭘까. 바로 한복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지난달 20~30대 여성 6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한복에도 유행이 있는 걸까. 60년간 한복지를 만든 집에 시집 가, 자연스럽게 한복 디자이너가 된 이현숙(오른쪽) 디자이너는 전통 한복을 충실하게 재연한다. 젊은 남성 한복 디자이너인 이서윤(왼쪽)씨는 한국 무용을 하다가 군 복무 중 바느질의 매력에 빠졌고, 이제 퓨전 한복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다. 전통 한복과 퓨전 한복을 대표하는 두 디자이너에게 설을 앞두고 최신 한복 경향에 대해 물었다. 이현숙씨는 “한복에도 유행이 있고 지금도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한복의 유행은 크게 색상과 소재, 형태를 들 수 있는데 저고리 길이, 깃과 동정의 너비, 치마 길이, 장식 기법 등이 시대에 따라 바뀐다.”고 설명했다. 한복을 가장 많이 마련하는 때는 명절이 아닌 결혼이다. 혼주가 입는 한복 색도 유행을 탄다. 시어머니는 푸른 계열, 친정어머니는 주로 분홍 계열 한복을 입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색상이 등장하고 있다. 치마와 저고리를 다른 색으로 입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천연염색에서 볼 수 있는 치자색, 대황색과 잇꽃으로 물들인 부드러운 분홍색 등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색상이 대세라고 이현숙씨는 귀띔했다. 서양의 레이어드 룩(겹쳐 입기)과 비슷한 유행이 한복에도 있다. 얇게 비치는 옷감으로 만든 홑(한겹)옷을 겹쳐 입으면 안에 입은 옷의 색상이 보색으로 은은하게 비쳐 나와 색상의 묘미를 살려준다. 이현숙씨는 “명절 특집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서 연예인들이 잘못된 한복을 입고 나오면 이를 유행으로 착각하는데 이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머리가 제대로 나지 않은 어린 아이가 하는 배씨 댕기가 중년부인이나 왕비의 머리에 버젓이 얹혀 있다. 성인 남자들이 간편복으로만 입던 배자(조끼)를 입고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기도 한다. 이서윤씨는 “한복은 서양 패션과 달리 유행의 전환이 빠르지는 않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복의 세계화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퓨전 사극의 영향으로 퓨전 한복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소개했다. 새틴이나 면처럼 양장에서 주로 쓰는 소재를 한복의 팔이나 몸통 등 일부에 쓰는 식이다. 지난해 가을 미국 뉴욕 패션 위크에서는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가 한복의 영향을 받은 드레스를 대거 선보여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헤레라의 웨딩드레스는 ‘케네디 가문’의 여성들이 주로 입었고 재클린 오나시스(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부인)도 유명한 고객이었다. 헤레라는 동정과 고름을 단 원피스, 갓 모양의 모자에 드레스를 입은 스타일을 선보여 ‘한복의 세계화’란 동기를 부여했다. 이서윤씨는 “한복은 얼마 전까지 전통적인 수나 금박으로 화려함을 부각시켰지만 최근에는 여백의 미를 활용하거나 자연적이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문양 장식을 주로 한다.”며 “이는 세계적인 유행을 반영한 것으로 앞으로 한복에 현대적 요소가 가미되면 젊은 층과 외국인에게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부고] ‘Mr.빈곤’ 美슈라이버 별세

    한평생 미국의 빈곤층과 소외계층을 위해 헌신했던 ‘미스터 빈곤’ 로버트 서전트 슈라이버가 1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95세. 미 언론들은 그의 가족들의 말을 인용,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슈라이버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메릴랜드 주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1959년 미국 국민의 22.4%가 빈곤계층인 것으로 파악되자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은 관련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던 슈라이버에게 공식적으로 ‘미스터 빈곤’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슈라이버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여동생인 유니스 케네디의 남편이며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부인인 마리아의 아버지다. 빈민구제사업의 하나로 저소득층 자녀가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해 빈곤의 악순환을 겪는 것을 막고자 취학 전 아동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미국의 교육 지원 제도 ‘헤드스타트’ 등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씨줄날줄] 51초의 침묵/박홍기 논설위원

    미국 제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지난 1933년 3월 4일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라며 입을 뗐다. 대공황 아래 신음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용기를 복돋워 주기 위해서였다. 또 “진정한 운명이란 그 운명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우리 동포들을 섬기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면… 어두운 날들도 우리의 희생만큼이나 값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어떻게 연설해야 할지, 언제 목소리를 높이고 낮춰야 할지, 언제 모든 사람의 할아버지처럼 또는 리더답게 활기차고 힘있게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책, ‘위대한 연설 100’에서). 말의 정수(精髓)는 연설이다. 한편의 연설로 주장·가치관, 신념을 드러낼 수 있는 데다 감동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로 사람을 움직이고, 말로 세상을 뒤흔든 ‘명연설’은 동서양을 떠나 짧게는 몇년 또는 수백년, 심지어 수천년의 세월도 건너뛴다. 마르쿠스 키케로, 링컨, 원스턴 처칠, 존 F 케네디를 비롯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마틴 루터 킹에 이르기까지. 세상이 움직이는 순간, 그곳에 연설이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를 목소리 높이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명연설가로 인정받은 터다. 2008년 11월 4일 대선 승리 수락 연설에서는 “미국이 모든 것이 가능한 나라라는 점을…, 그리고 민주주의가 가진 힘을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밤이 바로 그 답입니다.”라며 시대의 희망과 변화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오마바 대통령이 다시 국민을 단합시켰다. 지난 13일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의 현장인 투손을 방문, 30분이 넘는 추모연설에서 9살 난 최연소 희생자 크리스티나 그린을 언급하다 말이 아닌 ‘51초의 침묵’으로 독설이 판치던 정치판과 국민들의 삭막해진 마음을 녹여냈다. “우리 민주주의가 크리스티나가 상상한 것과 같이 좋았으면 한다.”고 말한 뒤 연설을 중단, 10초가 지나자 오른쪽을 봤다. 10초가 더 흐르자 심호흡, 30초가 되자 감정을 추스른 뒤 어금니를 깨물고 연설을 이어갔다. 뉴욕타임스는 14일 “국민과 소통한 극적 순간”, ‘오바마의 저격수’인 폭스뉴스 토크쇼 진행자 글렌 벡도 “연설 중 최고”라고 극찬했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연설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극단주의 메카로 떠오른 애리조나주

    이번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극단적인 보수 성향을 보이고 있는 애리조나주의 사회적·정치적 문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미국내에서 가장 총기규제가 느슨한 애리조나주의 총기소유법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미 언론들과 논객들은 9일(현지시간) 현직 연방 하원의원 총격사건이 벌어진 애리조나주 투손을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됐던 텍사스 달라스와 1995년 160여명이 희생된 오클라호마에 비유하고 있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닿은 채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는 애리조나는 불법이민과 총기소유 문제로 그동안 자주 언론의 초점이 돼 왔다. 국경을 넘어오는 불법이민자들이 늘면서 그렇지 않아도 경기침체로 어려운 주정부 재정이 더욱 심각해지자 불법이민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날로 확산돼 왔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불법이민자의 총에 목장 주인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면서 불법이민자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보수 성향의 라디오 토크 프로그램들의 주장과 맞물려 미국 내에서 가장 강력한 불법이민단속법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건강보험개혁법이 논란 끝에 통과되자 이번에 총격을 당한 가브리엘 기퍼즈 의원의 사무실이 누군가의 공격을 받아 유리창이 깨지고 기퍼즈 의원 등이 협박 전화와 이메일에 시달리는 등 분위기가 매우 험악해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총기 소유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시 높아가고 있다. 범인인 제러드 리 러프너가 지난해 11월 30일 난동 경력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제지없이 총기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나, 총기소유 규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뉴욕주의 한 연방 하원의원은 이번 주중 총기소유를 규제하는 법안을 제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져 미국은 다시 한번 총기소유 규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미국에서 총기에 의한 사망자 수는 매년 2만~3만명에 이른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위키리크스 외교기밀 공개, 사건 혁명의 언론인가 vs 국가의 위험인가

    각 국의 외교 기밀을 무더기로 공개해 파문을 불러왔던 위키리크스 사건을 다루는 토론회 자리가 마련됐다. 6일 오후 2시 서울 충정로2가 한백교회에서 공공미디어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위키리크스, 혁명의 언론 혹은 국가의 위험’ 포럼이다. 최진봉 미국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가 주제 발표를 맡았고,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 전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이 토론자로 나선다. 앞서 배포된 발표문에서 최 교수는 위키리크스 사건을 1971년 6월 미국 뉴욕타임스 지면을 통해 베트남전의 진실을 폭로한 ‘펜타곤 페이퍼 사건’에 비유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미 국방부의 베트남정책 수립에 관여했던 정보분석가 대니얼 엘스버그는 베트남전쟁의 실체를 알고는 반전주의자로 변신, 관련 정보를 모두 뉴욕타임스에 넘겨 보도케 했다. 발칵 뒤집힌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이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 갔으나, 미국 대법원은 언론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에 따라 뉴욕타임스와 엘스버그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엘스버그는 간첩혐의까지 적용됐으나, 오히려 개인 사찰 정황이 드러나면서 불법적 증거수집을 이유로 공소기각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여론의 압력 앞에 뉴욕타임스가 밀릴 때면 워싱턴포스트가, 이 두 매체가 어려움을 겪을 때는 보스턴 글로브지가 나서는 등 언론사 스스로가 자유 언론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위키리크스의 폭로파문이 엄청났음에도 미국 의회조사국이나 법률가들 사이에서 사법적으로는 처벌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 교수가 주목하는 부분은 유출된 정보를 받아 공개했다는 점에서 그때의 뉴욕타임스와 지금의 위키리크스가 별 차이가 없는데 왜 위키리크스만 문제 삼느냐는 것이다. 쉽게 말해 “만약 처음부터 위키리크스가 아니라 뉴욕타임스가 같은 내용을 제보받았다면 보도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리고 보도했더라도 비난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국가 기밀의 한계와 국민의 알 권리의 관계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신년사설] 한반도에 드리운 안보 먹구름 걷히길

    새해에는 한반도 상공에 짙게 깔린 먹구름이 걷혀야 한다. 또 이를 헤쳐나갈 항법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연말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잇단 도발로 난기류에 휩싸인 남북관계 해법으로 압박과 대화 병행 전략을 내놓았다. 우리는 ‘투 트랙 전략‘이 쉽진 않겠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엊그제 통일부 새해 업무보고 때 “국방력을 강화해 강한 안보를 하면서도 남북이 대화를 통해 평화정착 노력도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서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핵 폐기 의지를 밝혔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응징 의지를 강조한 기조와는 사뭇 달라진 듯한 기류다. 이를 두고 보·혁 양쪽에서 각기 입맛에 따라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당연시하거나, 대북 원칙이 또다시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게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북 정책은 이런 이분법적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류협력으로 북의 변화를 유도하는 한편 북한체제의 모순 심화로 인한 급변 가능성에도 소리 없이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본질적으로 상충적 개념인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세습독재체제를 지켜내기 위해 한사코 핵 개발이나 대남 도발에 매달리는 데도 대화로만 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런 점에서 “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되지만, 두려워서 대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명언을 상기할 만하다. 이와 함께 과거 서독도 단순히 경제·군사력의 우위만으로 동독을 흡수통일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숨막히는 독재에 지친 동독 주민들이 다원주의와 사회주의를 압도하는 복지시스템까지 갖춘 서독체제를 기꺼이 선택했다는 점에서다. 북한체제의 변화를 유도하려는 정부의 의욕을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흡수통일을 명시적으로 내걸어 북 정권을 자극할 게 아니라 우리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뜻이다.
  • 케네디家 DOWN…패트릭 하원의원 새달 정계은퇴

    패트릭 J 케네디(43)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최근 의원 사무실에서 짐을 쌌다. 다음 달 초 출범할 ‘11·2 중간선거’에 따른 새 의회 출범과 함께 정계를 은퇴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별세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아들인 패트릭 의원은 이미 임기만료 뒤 우울증·마약중독증·자폐증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봉사활동에 나설 방침을 밝혔던 터다. 로드아일랜드 포츠머스의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에 따라 1946년 존 F 케네디가 매사추세츠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처음으로 케네디가에서 연방정부의 공직을 맡은 인물이 없게 된다. 64년간 대통령 1명, 상원의원 3명, 하원의원 4명, 장관 및 대사 1명씩을 배출한 케네디가의 워싱턴 시대가 저무는 것이다. 굳이 따진다면 케네디 전 대통령의 여동생 유니스의 아들 바비 슈라이버가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의 시의원으로 남아 있다. 지난해 초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 캐롤라인은 공석이었던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하다 중도에 포기했다. 에드워드 케네디의 부인 빅토리아는 매사추세츠의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로 거론되고 있을 뿐 실질적인 움직임은 없다. 사고와 비극으로 점철된 이른바 ‘케네디가의 저주’도 막을 내릴 것 같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형제는 9명이다. 케네디 전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는 암살당했고, 장남 조지프 케네디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누이 가운데 한명과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美가 가장 아끼는 외교관 잃었다”

    “美가 가장 아끼는 외교관 잃었다”

    미국 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리처드 홀브룩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사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69세. 지난 10일 대동맥 파열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던 홀브룩이 숨지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비롯해 각계 각층이 조의를 표했다. ●대동맥 파열로 쓰러져 오바마 대통령은 홀브룩 임종 직전 유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홀브룩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지치지 않는 공직자였다.”며 “그는 진정한 거인”이라고 평가했다. 힐러리 장관은 성명을 통해 “오늘은 나에게, 미 국무부에, 미국에 슬픈 날”이라면서 “동남아시아에서 냉전체제 이후 유럽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는 그의 공헌으로 인해 평화로운 미래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 상원 외교관계위원장 존 케리 의원은 그를 “완강하고 결코 멈추지 않는 외교관”으로 묘사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도 “홀브룩의 외교술과 전략적 비전, 전설적 결의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하는 등 국제사회 역시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홀브룩은 불도저란 별명이 붙을 만큼 저돌적이고 급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생전의 그를 ‘미국 정부가 아끼는 최후의 외교관’, ‘미국에서 가장 거친 외교책사’로 평가했다. ●카터 행정부 때 35세 차관보 올라 홀브룩은 케네디 행정부부터 오바마 행정부까지 역대 모든 민주당 정부에서 고위 외교관으로 재직하는 기록을 남겼다. 1941년생인 홀브룩은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베트남에서 외교관으로 첫발을 뗀 뒤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차관보에 올랐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선 유럽 담당 차관보로 보스니아 전쟁을 끝내는 외교협상을 이끌었다.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기도 했다. 홀브룩은 1977~1981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로서 10·26 직후 최규하 권한대행 체제에서 진행되는 정치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12·12쿠데타 직후에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대사에게 신군부의 권력 강화 움직임을 견제하는 입장을 취하게 하기도 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20대 女승객 여객기 착륙저지 ‘알몸테러’

    20대 女승객 여객기 착륙저지 ‘알몸테러’

    “착륙하지 말란 말이야!” 뉴욕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20대 후반 여성 승객이 옷을 벗어던진 채 알몸으로 난동을 부리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미국 NBC방송이 최근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황당한 소동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시카고를 떠난 델타항공 6562여객기가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거의 다다랐을 때 일어났다. 3등석 객실 앞쪽에 앉아있던 여성 승객이 벌떡 일어나더니 “착륙하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며 바지를 벗기 시작한 것. 눈앞에 벌어진 의아한 상황에 승객들을 놀라서 동요했지만 이 승객은 상의마저 탈의하며 기내에서 소동을 피웠다. 당시 이 비행기에 타고 있던 뉴욕 일간지 뉴스데이 기자는 “승무원들이 계속 담요를 덮으려고 했지만 계속 ‘싫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승객들이 숨죽여 이 광경을 지켜보긴 했으나 다행히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저지하려는 승무원들과 옥신각신하다가 비행기는 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했고, 델타항공 측은 다른 승객들을 먼저 안전하게 하차시켰다. 신고를 받은 공항경찰이 여성에 담요를 덮은 뒤 연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델타항공 대변인 베치 톨튼은 “이 승객이 비행기가 착륙하는 데 감정적인 혼란을 받으면서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경찰서에 구금됐다가 풀려나 뉴욕에 있는 퀸즈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알몸 난동은 공격적인 행동을 하진 않아서 단순한 해프닝으로 일단락 됐다. 경찰은 이 여성이 정신적 문제로 이 같은 행동을 벌인 것으로 보고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 여성의 신상정보나 출신지역 역시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사설] 北에 즉각적·궤멸적 대응 왜 못하 는가

    연평도가 시커먼 연기로 뒤덮인 채 ‘북한군 포격 계속’이라는 자막이 뜬 그제 오후, 생방송을 지켜본 국민은 경악과 함께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쪽 대응이 늦어지면서 불안·초조해지는 마음을 다스리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북한군은 민가를 무차별 포격하는데 우리 군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이번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가.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은 1953년 정전 협정 이래 처음인 우리 민간인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었다. 그동안 북쪽이 군인이나 군사시설을 기습 공격한 일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번처럼 민간인 살상조차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 적은 없었다. 그런 만큼 이번 사태는 우리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다. 그런데도 군은, 평소 한국과 미국의 군사 당국이 공언한 것과는 달리 ‘즉각적이고 궤멸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지난 3월 발생한 천안함 폭침 이후 한·미 양국은 서해상에서 다양한 합동 군사훈련을 해왔다. 북한에 천안함 폭침의 책임을 묻는 한편으로 무력 도발을 또다시 일으킬 때에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 기저에는 철저한 응징을 다짐하는 결의가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한·미 군사당국의 결의를 굳이 빌려다 쓸 필요도 없다. 우리 군의 교전수칙에는 북한이 도발할 때 ‘비례성과 충분성’의 원칙을 적용하도록 했다. 즉, 북한군이 한 발을 사격한다면 우리는 그 이상으로 대응하며, 필요하다면 사격 원점까지 격파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교전수칙만 제대로 지켰어도 북한군의 2차 공격을 차단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터이다. ‘확전말라’ 발언 혼선 책임 물어야 마땅 그런데도 군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첫 공격이 있은 뒤 13분이나 지나서야 반격에 나섰고 대간첩작전에나 적용할 법한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게다가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어제 국회 답변에서 ‘13분 후 반격’을 “훈련이 잘 됐을 때 가능한 일”이라고 옹호했다. 첨단기기가 총동원되는 현대전에서 13분이 ‘빠른 대응’이라니 기막힌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북한이 연평도 포격에 그치지 않고 전면전을 시도했다면 13분 사이에 얼마나 큰 타격을 받을지 국방부장관은 정녕 모른다는 얘기인가. 더구나 북의 해안포는 약 5분간 포격한 뒤 동굴 진지 안으로 이동하므로 발포 준비 후 10분 이내에 정밀타격하지 않으면 궤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적절한 대응’이라 강변할 수 있는가. 연평도에 보유한 자주포 6문 가운데 2문이 고장나 사용하지 못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따름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연평도 포격’을 보고받은 직후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 한 지시가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였다고 알려진 것이다. 다행히 이 대통령의 지시는 “교전수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하라.”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같은 혼선이 빚어지게 된 책임은 엄중히 물어야 한다. 어떤 도발도 억지할 수 있는 전력·태세 갖춰야 우리는 분단 현실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원한다. 설사 통일의 대업이 다소 늦춰지더라도 남북의 한겨레가 더 이상 전쟁의 상흔 없이 서로를 보듬어 안는 그날을 차분히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북쪽의 지배자 집단은 불행하게도 광기에 찬 집단이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도발을 감행하고 있고, 우리는 그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1962년 ‘쿠바 사태’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당시 소련은 미국의 턱 밑인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 했고, 이에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은 해상봉쇄 조치를 취했다. 결국 소련이 미사일을 철수해 사태가 종결됐다. 역사는 케네디 대통령의 결단이 미·소 간 충돌 위기를 극복했다고 평가하지, 그를 모험주의자로 폄훼하지 않는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북의 지배층이 바뀌지 않는 한 북의 무모한 도발은 앞으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건 도발을 응징하고 전쟁을 억지할 힘을 우리가 갖추는 일이다. 북의 공격에 ‘즉각적이고 궤멸적인 대응’을 하는 것만이 저들이 더욱 무모한 도발을 기도하지 못하게 막는 힘이다. ‘연평도 포격’이 발생한 그때 우리 군은 왜 즉각적이고 궤멸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는가. 군은 국민 앞에 그 이유를 명백히 밝히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확실히 지킬 수 있는 실질적인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 언제까지 말로만 ‘응징’하고 사후약방문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 것인가.
  • [서울 G20회의-스케치] 옷맵시서 나라 문화가 보인다… 정상들의 패션정치학

    [서울 G20회의-스케치] 옷맵시서 나라 문화가 보인다… 정상들의 패션정치학

    G20 정상회의에 모인 각국 정상들은 경제 이익만큼이나 자국의 품위를 높이기 위한 ‘패션 전쟁’을 치른다. 정상들은 같은 듯 다른 정장 스타일로 ‘패션도 정치’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현장을 만들어낸다. 짙은 색의 양복은 얼핏 보기에 모두 비슷해 정상들은 넥타이 색깔로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가 잦다. 정상들이 선호하는 넥타이 색깔은 푸른색이나 붉은색, 아니면 푸른색 줄무늬다. 이번 G20 회의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제일모직의 이현정 디자인실장은 “푸른색은 색채학에서 신뢰감과 청렴함을 상징하고, 붉은색은 자신감과 카리스마를 표현해서 정상들이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패션에서도 ‘스타일의 승리’란 평가를 받는다. 지난 10일 한국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릴 때는 은은한 하늘빛 타이로 젊은 이미지를 표현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짙은 푸른빛에 사선 줄무늬가 들어간 넥타이로 생동감을 주었다. ‘검은 케네디’라 불리는 오바마 대통령은 강인한 의지를 나타내는 붉은색 타이와 근육질 몸매에 적당히 달라붙는 정장으로 ‘오바마 룩’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수백만원대의 맞춤 정장과 저렴한 시계를 적절히 섞어서 착용하는 합리적인 패션 감각은 미국적 실용주의와 고(故)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아메리칸 클래식’을 한데 보여준다. 정상들이 입는 옷은 매출에도 즉각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 취임 행사 때 오바마 대통령이 입은 이탈리아 정장 브랜드 카날리(CANALI)는 일명 ‘오바마 슈트’로 알려지면서 큰 수혜 효과를 누렸다. 카날리 수입사의 천세연 팀장은 “취임식과 첫 방한 직후 ‘오바마 슈트’를 찾는 국내 40대 남성 고객들이 무척 많았다.”고 전했다. 제일모직 갤럭시와 LG패션 마에스트로도 이런 효과를 노리고 G20 정상회의에 맞춰 각각 ‘프레지던트 라인’과 ‘G20 기념 슈트’를 출시했다. 정장 한벌 가격이 100만원대다. 영국의 최연소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영국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성 톱 2’에 뽑힐 정도로 오바마 못지않은 패션 감각을 자랑한다. 녹색 타이를 즐겨 매고 재활용 소재로 만든 운동화를 종종 신어 친환경 운동에 대한 높은 관심을 패션으로 드러낸다. 각종 유명 상표의 종주국인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블링블링(반짝거린다는 뜻) 대통령’이란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다. 미국과 영국 정상들의 스타일이 신선함과 혁신의 상징이라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정통 스타일을 고수한다.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패드를 넣어 각진 어깨를 강조하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정장을 입었다. 서구 정상들이 요즘 유행인 몸에 달라붙는 정장 스타일을 택한 것과 대조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보수적이면서도 젊은 감각이 공존하는 정장 스타일을 즐긴다. 붉은색과 푸른색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노란색, 주황색, 회색 등 다양한 색깔의 타이와 일명 보조개 넥타이라 불리는 딤플(dimple) 주름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딤플은 매듭 바로 아래 보조개가 패듯 깊고 짧은 주름을 잡아 넥타이를 매는 방법이다. 여러 정상들과의 회담이 집중된 11일에는 G20 개최국의 품위에 걸맞은 와인색 넥타이로 신뢰감과 무게감 있는 이미지를 연출했다. 여자 정상 가운데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바지 정장으로 냉철하면서도 안정적인 카리스마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살짝 말린 긴 머리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전달했다. 길라드 총리는 진주 목걸이, 메르켈 총리는 간결한 은빛 목걸이를 걸어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특히 메르켈 총리는 균형 성장이 주제인 비즈니스 서밋 연설에서 초록색 상의를 받쳐 입어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바뀐 스타일도 눈에 띈다. 데무의 박춘무 디자이너는 “최근 선보인 짧은 머리에 파스텔 색조의 밝은 화장, 색깔이 살아 있는 옷차림은 한층 젊고 활동적인 이미지를 풍긴다.”고 평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사설] 현역 입영 위해 눈 수술한 美 영주권 자

    미국 영주권이 있는 조재영씨는 조국에서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하기 위해 눈 수술까지 받고 어제 육군훈련소에 입소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인 200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008년 징병검사를 받을 당시 시력이 좋지 않아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조씨는 현역으로 복무하겠다는 생각으로 2009년 안구(眼球)에 특수렌즈를 삽입하는 시력교정 수술을 했다. 그해 12월 재신검을 받고 현역 입영 대상자에 포함됐다. 조씨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보람을 느끼면서 조국의 문화도 배울 수 있다는 매력에 군 복무를 선택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주권이 있기 때문에 군 복무를 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는 조씨가 자비로 수술까지 하면서 현역 복무를 하기로 한 것은 감동적이다. 스포츠, 연예계에까지 어떻게 하면 군에 가지 않을까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 많은 세태에서 조씨의 선택은 귀감이 된다. 조씨처럼 외국의 영주권이 있는 29명도 어제 훈련소에 입소했다. 입영을 신청한 해외 영주권자는 서울을 기준으로 2004년에는 19명이었으나 올 들어서는 지난달 말 현재 68명이나 된다. 몸은 이역만리 타향에 있지만 조국을 지키겠다는 젊은이들이 늘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영국의 앤드루 왕자는 헬기 조종사로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했다. 미국의 고(故)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남태평양에서 해군 장교로 근무했다. 미국, 영국의 힘은 이 같은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반면 우리의 지도층은 어떠한가. 정치인, 고위 관료, 법조인, 대기업 고위 임원 중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군 복무를 회피한 사람들은 너무 많아 일일이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자식의 군 복무를 회피하기 위해 원정출산까지 하는 게 우리나라 아닌가. 부당한 방법으로 군 복무를 하지 않으려는 현상을 한탄하기에 앞서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필요해 보인다.
  • [씨줄날줄] 대통령 기념관/박대출 논설위원

    1963년 11월22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미국인들은 애통에 빠졌다. 한 달 뒤 뉴욕국제공항(New York International Airport) 당국은 공항 이름을 바꿨다. 존 F 케네디 국제공항(John F Kennedy International Airport)으로. 이후 세계 최대의 도시인 뉴욕의 관문은 JFK로 불려지고 있다. 암살 현장인 남부 도시 댈러스엔 추모 기념관이 곳곳에 들어섰다. 존 F 케네디 메모리얼광장엔 케네디 기념비가, 저격 장소엔 식스 플로어 박물관이 세워졌다. 미국의 워싱턴 D C엔 대통령 저택인 백악관이 있다. 일대는 잘 알려져 있듯이 세계적인 관광코스다. 국회의사당, 대법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국립미술관 등이 즐비하다.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역대 대통령 4명을 기리는 시설도 자리잡고 있다. 미국 국부(國父)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 기념탑, 제퍼슨 기념관, 링컨 기념관, 케네디 센터 등이다. 우리는 어떤가. 1950년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재임시 우상화는 정도를 더해갔다. 지폐와 동전에는 얼굴을 새겼다. 생일 때 가정에선 태극기를 달았다. 1955년 3월26일. 80회 생일 땐 정점에 달했다. 서울운동장 기념식에는 부통령과 외국 사절, 한·미 장성 등이 참석했다. 세종로에서는 3군 사열이 진행됐다. 5년 뒤 4·19혁명을 자초했다. 시민들은 서울 탑골공원과 남산으로 달려갔다.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을 새끼줄로 끌어내렸다. 독재권력 응징은 헌정사의 단절로 이어졌다. 50년이 흘렀다. 전직 대통령은 9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을 기리는 시설은 빈약하다. 이 전 대통령은 별장이던 제주도 화락관과 강원도 화진포 기념관, 사저이던 이화장(梨花莊)이 전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북 구미 생가만 보존돼 있다. 그외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록전시관과 서울 김대중 도서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등이 고작이다. 그러다가 그제 국무회의에서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계획이 의결됐다.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은 8년 만에 재개될 계기를 찾았다.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은 민간 주도다. 정부는 사업비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 그래서 뒤편에 머물기 쉽다. 미래 전향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헌정사엔 영광과 오욕이 공존한다. 5년짜리 정권의 자의적인 잣대로 들이댈 일이 아니다. 단절의 역사를 끊고 화해와 통합을 모색해야 할 때다. 그러자면 전직 대통령 기념관을 제대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곳에 잘한 기록도, 못한 기록도 남기면 된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조지 워싱턴 ‘위스키 과세’부터 조지 부시 ‘이라크 침공’까지 美대통령 18명의 치명적 오판 20

    조지 워싱턴 ‘위스키 과세’부터 조지 부시 ‘이라크 침공’까지 美대통령 18명의 치명적 오판 20

    대통령제 아래 대통령은 고독하다. 정책 수립 및 정치적 의사 결정의 최고 정점에 있음은 물론, 정치적·역사적 책임의 최대치를 홀로 감당해야 한다. 이론적으로야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삼권 분립을 통한 견제와 감시가 이뤄져야 하겠지만 현실에서는 조금 많이 다르다. 물론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책임과 비난, 그리고 명예와 영광까지 모두 대통령으로 몰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민주주의와 대통령 역할의 상관 관계는 어떠해야 하나 등의 논의는 잠시 접어 두자. 대통령은 당대의 제도 속에서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삶과 철학, 시대정신, 혹은 정치적 세력 관계 등에 비춰 최대한 누렸고 활용했다. 남은 것은 냉철하고 엄정한 평가다. ‘대통령의 오판’(토머스 J 크라우프웰·윌리엄 펠프스 지음, 채은진 옮김, 말글빛냄 펴냄)은 미국 역대 18명의 대통령을 골라 의사 결정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결과적으로 최악의 선택이 된 사례들을 둘러본다. 또한 이런 잘못된 정책들이 미국의 역사는 물론, 미국이 ‘세계의 경찰 국가’를 자임해 온 만큼 세계의 역사를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도 함께 살펴보고 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위스키 과세’부터 시작해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18명이 시행한 20개 정책을 보고 있다. 자칫 결과론적 판단의 오류를 겪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에는 선의를 갖고 최선이라며 선택했지만 훗날 다른 평가가 나올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워싱턴은 미국 독립전쟁을 마친 뒤 정부가 부담하게 된 막대한 부채 청산의 필요성에 직면했다. 그 재원 마련을 위해 위스키에 세금을 매겼다. 펜실베이니아 시골마을에서부터 시작해 각 주정부 서민들의 폭동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무려 3년이나 지속됐다. 결국 주 정부주의자들의 득세와 연방주의자들의 몰락을 야기했다. 그 뒤를 이은 토머스 제퍼슨은 영국과 프랑스 전쟁 와중에 자국 선원들이 억류되는 상황이 잇따르자 아예 ‘출항금지법’을 제정했다. 그 결과 3만명의 선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농민, 제조업자, 선박 소유주, 상인들까지 제퍼슨을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자신의 선의만 믿고 의회건, 국민이건 제대로 된 소통을 추진하지 않은 탓이었다. 대공황 중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허버트 후버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를 포함한 ‘노병 퇴역군대(보너스 군대)’ 등 2000여명이 보너스 지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더글러스 맥아더를 지휘관으로 하는 정규군대를 파견해 진압했다. 어린이 2명을 포함해 4명이 죽었고 10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이들을 공산주의자, 체제 전복자로 몰았던 후버와 맥아더는 ‘파시스트’라는 비판에 오랫동안 시달려야 했다. 모든 사건과 정책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느껴진다. 그것은 바로 대통령이 정책을 세우거나 혹은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이 정책으로 인한 수혜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 그로 인해 감내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국민들과 명확히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자체가 분명한 교훈이다. 전임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계획했던 쿠바 피그스만 침공 계획을 미적지근하게 수행하며 피델 카스트로 쿠바정권 전복을 꾀했던 존 F 케네디는 오히려 미국에 대한 쿠바의 미사일 공격을 자초하고 돌이킬 수 없는 적대 관계를 고착시킨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크메르루주 공산당을 분쇄한다는 명분으로 중립국이었던 캄보디아에 폭격을 가한 리처드 닉슨, 아무런 증거도 없이 대량살상무기를 찾겠다며 이라크를 침공한 조지 W 부시 등은 세계 냉전을 이끌고 숱한 생명을 살상한 미국의 존재를 드러내준 부끄러운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 저자들은 “우리는 칭찬 혹은 비판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처해 있던 상황을 재검토해 보며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4대강 사업 등 국가적 논란이 일고 있는 현안들이 제법 있다. 대통령이 짐짓 장엄하게 내뱉는 “평가는 역사에 맡기겠다.”는 말이 훗날 진짜 신랄한 평가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책은 분명하게 말해준다.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인사들까지, 휴가 떠나는 짐가방에 한 권씩 넣어갈 것을 권한다. 2만 9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월드이슈] 영웅의 흔적에 가격표를 붙이다

    [월드이슈] 영웅의 흔적에 가격표를 붙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던가. 여기에 한 마디가 더해져야 할 것 같다. “이름을 남긴 사람은 돈도 남긴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성기,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머리카락, 베토벤의 머리뼈…. 역사와 재생 불가의 희소성, 여기에 수십~수백년의 시간이 얹어지면 ‘돈’이 만들어진다. 그것도 수십, 수백억원의 거금이 된다. 영웅들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의 체흔(體痕)과 유품은 오늘날 경매시장에서 비싼 값에 사고 팔리며 열띤 각축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한 지구촌의 유동자금은 올 상반기 국제 경매시장을 더욱 뜨겁게 달궈놓았다. 돈 놓고 돈 먹는, 유품 경매 현장을 살짝 들여다 본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지만 그의 저력은 여전했다.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그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열린 잭슨의 유품 경매에서 그가 무대에서 꼈던 크리스털 장갑 한 장은 예상가보다 2만~3만달러 높은 19만달러(약 2억3000만원)에 팔렸다. 잭슨은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지만 그의 유품을 통해 조금이라도 그를 느끼고 추모하는 마음이 경매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경매는 일반인들이 역사 속 인물이나 유명인사들과 간접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돈이고, 투자상품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유명인과 관련된 모든 것은 경매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신체의 일부분도 경매를 통해 거래되고 있다. 유명인의 경매품 중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받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남긴 ‘물건’은 다소 충격적이다. 1924년 뉴욕에서 열린 나폴레옹 유골 경매에 매물로 나온 것 중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아끈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성기였다. ●나폴레옹 머리카락 1623만원에 낙찰 약 3.8cm 길이의 성기는 한 성직자가 나폴레옹의 시신 부검 과정에서 몰래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매에 나온 당시에는 800달러에 낙찰됐다. 이후 1977년 미국 컬럼비아대 의대 비뇨기과 전문의 존 킹즐리 라티머가 최초 낙찰가보다 4배 가량 오른 2900달러에 구매했다. 지난달 29일에는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이 경매에 나와 1만9000뉴질랜드달러(약 1623만원)에 팔렸다. ●케네디 연애편지도 인기상품 지난해 11월에는 아돌프 히틀러와 함께 대표적인 독재자로 꼽히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뇌가 경매 사이트에 등장하기도 했다. 무솔리니의 뇌는 1966년 일부만이 그의 아내에게 돌아갔으며 수십 년간 행방이 묘연했던 나머지 일부분이 1만5000유로(약 2300만원)에 매물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뇌까지 사고 판다는 논란이 일면서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1967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에 의해 잘린 체 게바라의 머리카락은 2007년 경매에 나와 10만달러에 그의 열혈 추종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체 게바라의 머리카락 경매는 영국 청교도 혁명을 이끈 올리버 크롬웰에 비하면 아주 평범한 경매에 속한다. 1661년 부관참시를 당하며 사라졌던 그의 머리 부분이 약 130년이 지난 뒤 경매에 나온 것이다. 경매를 통해 그의 후손에게 돌아간 머리는 이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이 재구매해 현재는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매장됐다. 유명인의 신체 외에도 윈스턴 처칠이 피우다 만 시가, 존 F.케네디가 쓴 연애편지(사진 위) 등과 같은 유품도 경매에 나와 인기 상품으로 팔렸고 오는 8월에는 비틀스의 사생활이 담긴 사진(아래)도 경매에 나올 예정이다. 나길회·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美 알링턴 국립묘지 관리 엉망

    미국 남북전쟁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르기까지 참전했던 전사자들이 묻혀 있는 ‘성지’ 알링턴 국립묘지 관리가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다. 존 맥휴 육군장관은 10일(현지시간) 국방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워싱턴 D C 인근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대한 지난 6개월간에 걸친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알링턴 국립묘지는 묘역 전산화작업 미비와 부실한 묘역관리로 30만기의 묘지 가운데 묘지와 비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최소 211기나 됐다. 심지어 이미 장병의 시신이 안장된 묘지에 다른 전사자의 시신을 합장한 기막힌 사례들도 밝혀졌다. 육군의 특별감사도 전사자의 유족이 성묘를 하러 갔다가 다른 전사자의 이름이 적힌 비석을 발견해 문제를 삼으면서 이뤄졌다. 맥휴 장관은 이와 관련, “매우 우려스럽고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라며 유족들에게 사과한 뒤 “이 같은 관행은 오늘로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 관리 책임을 물어 존 메츨러 소장과 서먼 히켄보섬 부소장을 인사조치했다고 밝혔다. 맥휴 장관은 후속 조치로 국립묘지의 총괄할 사무국장직을 신설, 민간인 출신인 캐스린 콘돈 전 군수사령부 부사령관을 임명했다. 아울러 독립적인 자문기구를 두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포토맥강을 사이에 두고 워싱턴 D C 맞은편 버지니아주에 있는 데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동생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 지난해 타계한 에드워드 케네디 전 상원의원 삼형제가 안장돼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루 평균 30건의 장례식이 치러진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백악관 50년 출입기자 역사속으로

    백악관 50년 출입기자 역사속으로

    “백악관에는 두 부류의 기자가 존재한다. 일반 출입기자 그리고 헬렌 토머스.” 미국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아리 플레이셔는 지난 반세기 백악관을 취재해온 언론인 헬렌 토머스(90)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최초’ ‘유일의’ ‘최장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백악관을 출입한 최초의 여기자이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1972년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중국을 찾았을 때 동행한 유일한 기자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전설이라는 단어가 그를 대변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에서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그를 ‘거쳐간’ 대통령이 10명이다. 세계 권력의 정점에 있다 할 미국 대통령들도 토머스의 ‘날카로운 혀’에는 당할 방법이 없었다. 2006년 부시 전 대통령과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놓고 설전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그는 “이라크 전쟁을 벌인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등 직설적인 발언으로 부시의 얼굴을 벌겋게 만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에도 “허니문은 하루 정도일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지만 그가 1942년 웨인주립대를 졸업하고 한 일은, 지금은 사라진 워싱턴데일리뉴스에서 복사와 같은 심부름하는 것이었다. 이어 다음해 UPI통신에 입사했고 연방 정부 부처, 의회 등을 취재했다. 1960년 케네디 전 대통령 당선과 함께 백악관을 담당했고 2000년 UPI가 통일교로 인수되자 ‘허스트 코포레이션’의 허스트 신문의 칼럼니스트로 자리를 옮겼다. 2008년 5월 위장 질환으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지만 같은 해 11월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줄, 가운데 자리에 있는 ‘지정석’에 복귀, 건재함을 과시했다. 2007년 브리핑룸 개축 과정에서 CNN과 FOX가 앞자리를 희망했고, 토머스는 양보할 의사를 밝혔지만 백악관 기자단은 그의 지정석을 지켜줬다. 현재 그의 자리만 유일하게 동판으로 ‘헬렌 토머스’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1920년 레바논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미 언론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 토머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고 믿는 그는 칼럼니스트가 된 이후 더욱 주관적이고 공격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지난달 27일 백악관 유대인 관련 행사에 참석해서는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이 발언 이후 결국 떠나게 된 것은 토머스 자신이 되고 말았다. 미국 내 유태인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그의 67년 기자 인생 마지막 장을 ‘설화’로 매듭짓고 말았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뉴욕테러 미수 용의자 검거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에릭 홀더 미국 법무장관은 지난 1일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 발생한 차량을 이용한 폭탄테러 미수사건과 관련, 파키스탄 출신 미국인을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홀더 법무장관은 자정을 조금 지나 발표한 성명에서 “뉴욕 테러기도의 용의자로 3일 저녁 뉴욕 존 F 케네디공항에서 두바이행 여객기에 탑승하려던 미국 국적자인 파이잘 샤자드(30)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용의자는 현재 코네티컷주에 거주하며 최근 파키스탄을 방문하고 돌아왔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샤자드는 테러시도에 사용한 1993년형 닛산 패스파인더를 최근 현찰을 주고 구입한 인물로 확인되면서 수사선상에 올랐다. 수사 당국은 앞서 차량 소유주로부터 29~30세가량의 중동계 또는 히스패닉계로 보이는 사람에게 차량을 팔았으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진술을 확보, 신원파악에 나섰다. 홀더 장관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며, 수사 당국은 몇 가지 단서를 잡고 계속 추적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은 미국인 살상을 목표로 한 명백한 테러 행위”라고 규정했다. 수사당국은 샤자드 이외에 다른 용의자가 있는지, 샤자드가 국제적인 테러단체나 개인과 접촉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샤자드는 이번 사건과 관련, 맨해튼의 연방법원에 출두할 예정이다. 파키스탄 탈레반운동(TTP)은 이라크 정부군의 공격으로 숨진 아부 아유브 알-마스리와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 등 알카에다 지도자와 무슬림 순교자들을 위한 보복으로 이번 테러를 시도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k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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