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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性역’ 허문 딸들의 반란] “사위도 처가에 재산 요구할것” “일부 종중 이미 여성 받아들여”

    대법원이 성인 여성을 중중(宗中)회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례를 내놓자 유림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반면 여성 단체들은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유림들은 여성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하면 더 이상 종친회를 유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종친회의 재산은 조상을 섬기는 데 쓰여져야 하지만 ‘출가외인’인 여성에게 재산을 분배하면 결국 종친회가 와해된다는 주장이다.이승관 성균관 전례위원장(전주 이씨 양녕대군 후손)은 “딸이 친정 재산에 권리를 갖게 되면 반대로 사위도 처가에 재산 분배를 주장하게 되는 것 아니냐.”면서 “전주 이씨의 경우 성년 남자가 1만명이고 여자도 비슷한 숫자인데 각기 다른 성씨를 가진 사위들이 종중에 관여하겠다고 나서면 이는 엄청난 사회적 분쟁을 몰고 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 이후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국내에 최소 2000∼3000개의 종중이 있다. 이 가운데 재산이 많은 대종중만 해도 350∼500개. 각 종중마다 한건씩의 소송을 내더라도 얼마나 많은 재산 분쟁이 있겠느냐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대해 일부 종중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딸도 재산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최상구 한국씨족연합회 사무총장(경주 최씨 화숙공파)은 “종중 회원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족보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인데 이미 여러 종중이 그렇게 하고 있다.”면서 “성년 여성의 이름을 족보에 올린다고 해서 종친회 와해를 운운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단체들은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왔다.”며 이번 판결을 매우 반겼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이구경숙 국장은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가 유교 영향권에 들기 전 여성의 지위를 제대로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나길회기자kkirina@seoul.co.kr
  • [사설] ‘여성 종중회원 인정’ 판결 환영한다

    대법원이 그동안의 판례를 깨고 출가한 여성에게도 종중회원 자격을 인정토록 한 것은 양성평등의 헌법정신과 시대변화에 부합하는 판결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종전 대법원 판례는 종중법이 관습법이라는 이유로 종중의 개념을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및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한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이상의 남자’만으로 규정하여 미성년자와 성년 여성을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이 판례는 초기부터 성차별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여성과 아이는 봉제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낳았다. 이번 판결은 양성평등사회 구현과 더불어 새로운 종중 문화 형성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이번 판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성평등의 헌법정신과 함께 ‘관습법’의 변화 수용이다. 재판부는 “종중법의 종래 관습은 우리 사회의 환경과 국민의식의 변화로 법적 확신이 상당히 약화됐다.”고 함으로써 국민사이 양성평등의식의 확산을 판례변경의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이러한 인식은 향후 비슷한 사건에서도 전향적 판단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대법원의 적확한 인식에 박수를 보낸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의 효력범위를 이번 사건과 향후 새롭게 성립될 사건으로 제한해 혼란을 차단했다. 향후 종중운영, 족보체계 등의 혼란과 유림 등의 반발을 우려하는 소리가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이미 저출산 추세, 호주제 폐지, 다양한 가족관계 출현 등으로 분묘문화나 제사문화, 족보기록 등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판결문이 제시한 개인존엄과 양성평등의 원칙 위에서 다소의 혼란을 해결하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한다면 문제는 풀어갈 수 있다고 본다. 이번 판결이 진정한 양성평등 사회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패션+α]

    ●프리미엄 진 브랜드 디젤은 22일 코엑스 컨벤션 12홀에서 2005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진행한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캐주얼한 미국 서부의 깔끔하고 정교한 스타일과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자수가 어우러진 디젤의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코듀로이 재킷과 조끼로 화려한 동양문화와 남성의 강인함을 드러내고, 데님을 다채롭게 변화시킨 재킷과 스커트로 다양한 여성 스타일을 소개할 계획이다. ●태평양은 서울 명동의 고객서비스센터를 오는 23일 ‘디 아모레 스타’로 새롭게 문 연다.1층은 메이크업과 헤어·향수 등을 무료로 테스트할 수 있는 공간.2층은 건강과일·야채음료 카페로 운영된다.3층에서는 마사지 서비스(5000∼2만 5000원)를,4층에서는 뷰티강좌와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다. 전문 메이크업 강사에게 받는 컬러스타 프로그램은 부분별로 3000∼5000원, 전체 메이크업은 3만∼10만원선.(02)708-5464. ●통신판매 화장품 DHC가 오프라인 매장에도 진출한다.DHC코리아는 롯데마트,GS마트 등 할인점과 세븐일레븐, 바이더웨이 등 편의점에 판매부스를 만들고, 여성·남성 기초화장품, 보디제품, 베이비 제품, 메이크업 등 모두 178가지 상품을 판매한다. 기존 온라인 제품보다 용량이 작아지면서 가격도 저렴해졌다.7월 말까지 매장을 방문하는 모든 고객에게 스베스베 5종 샘플 세트를 증정하고, 구매고객에게는 할인 혜택과 파우치를 제공할 계획. ●앙드레김 엔카르타는 여름철에 적합한 누디 타입의 여름 신상품을 출시했다. 살을 누르지 않는 누디 날개 브래지어에 앙드레김 로고가 새겨진 투명 어깨끈도 추가로 구성했다. 팬티는 허리선이 낮은 로라이즈와 햄원단의 삼각으로 노출 의상에 적합하다. 기능성 소재인 에어로쿨을 사용해 땀 배출을 극대화했고 원단을 빨리 건조시켜 상쾌하다는 설명. 브래지어 4종, 팬티 총 6종, 슬립 1종, 투명끈 1종 등으로로 구성.15만 9900원.(02)6747-6580. ●쌍방울은 21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언더웨어 패션쇼’를 연다. 올 가을·겨울 트라이의 주력 신상품인 여성삼각팬티 라인을 비롯해 총 50여벌의 속옷을 선보이고 새로운 트라이 BI도 내놓을 예정이다. 이어 불임 부부들을 지원하는 후원의 밤 행사를 진행하고, 보건복지부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대한전선 등 후원기관의 후원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 [한국인 얼굴 과거·현재·미래] 턱 짧아지고 이마 넓어져 윤곽 뚜렷

    [한국인 얼굴 과거·현재·미래] 턱 짧아지고 이마 넓어져 윤곽 뚜렷

    당신의 얼굴이 대한민국의 역사이다. 미소 짓고, 웃고 울고, 찡그리며 화내는 수많은 표정을 만들어 내는 한 사람의 얼굴은 그 자체로 걸어다니는 박물관이다.100년 전과 현재,100년 후, 우리 얼굴의 변화상을 소개한다. ●얼굴 커지고, 두상 길이 유지 조용진 교수팀은 흥미있는 결과를 내놓았다. 한국인의 얼굴 길이(머리카락과 피부의 경계선인 발제점부터 턱 끝까지)는 늘어난 반면 두상 길이(정수리에서 턱 끝까지 길이)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얼굴 길이는 100년 전 남자가 19.2㎝, 여성이 18.3㎝였으나 현재 각각 19.4㎝,18.8㎝로 늘어났다. 반면 두상 길이는 100년 전 남성이 23.5㎝에서 현재는 큰 변화가 없거나 근소하게 줄었다. 여성의 두상은 남녀 성차가 감소하면서 21.5㎝에서 23.0㎝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두상의 좌우폭은 크게 늘어 100년 전보다 남성은 1.1㎝, 여성은 1㎝ 늘었다. 조 교수는 “좌우폭이 커지면 얼굴의 앞뒤도 늘고, 정수리가 높아져 뇌의 발달을 의미한다.”면서 “뒤통수에 튀어나온 돌출점도 점차 아래로 내려오는 양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변화들이 얼굴의 구조를 바꾸는 요인이 된다. ●한국인 ‘안면 비율’이 바뀌고 있다 100년 전 한국인의 안면 비율은 ‘상안(발제점∼미간):중안(미간∼코밑):하안(코밑∼턱밑)’이 0.6:1:1.14로 조사됐다. 그러나, 현대 얼굴은 1.1:1:0.8 정도의 비율. 즉,100년 전 한국인은 턱이 발달해 강인하고 투박한 인상을 줬지만 미래로 갈수록 역삼각형 두상이 많아지고 유순한 인상이 된다는 것이다. 원인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 식습관으로 인해 턱관절이 둔화되는 데 있다. 턱이 짧고 작아진 비율만큼 이마가 넓고 길어지도록 발달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연구팀은 턱의 이런 변화가 발음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성체형 7등신에서 7.3등신으로 “한국인은 중국인과 일본인과도 닮지 않은 반면 두 민족보다 더 잘 생겼다.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은 163.4㎝. 여자의 평균 신장은 확인할 수 없는데 땅딸막하고 펑퍼짐하다.” 1890년대 조선땅을 밟았던 영국왕립지리학회 회원인 이사벨라 비숍 여사가 본 한국인의 모습이다. 100년 동안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여성이다.1930년대 여성의 평균 신장은 150.3㎝.1세기 만에 160㎝로 성장했다. 당시 낮은 사회적 지위가 얼굴에서부터 성차별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근대 이후 여성의 얼굴폭은 같은 시기 남성보다 2배 이상의 증가폭을 보였다. 상·중·하안이 고르게 발달했고 체형은 7등신에서 7.3등신이 됐다. 연구팀은 80년대생 여성이 이전 세대보다 얼굴 크기가 급격히 발달한 뒤 90년대 출생자부터 둔화된다는 분석이다. 또 남성 얼굴의 여성화가 두드러져 100년 후에는 앳된 얼굴의 꽃미남형이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70년대 출생 이후 현대 얼굴 학계는 6세기 인골을 근거로 현대의 한국인 얼굴이 통일 신라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본다. 본격적인 변화는 70년대 출생자부터 시작됐다. 골격과 신장의 절대치가 커지면서 60년대 출생자와 비교할 때 상안의 발육이 눈에 띄게 뚜렷해졌다는 지적이다.70년대 국내에 서양 육아법이 본격 도입되면서 한국인의 체형과 얼굴에도 서구화 바람을 불러온 것으로 풀이된다. 윤정섭(성형외과 전문의) 한국인체미학회 학술이사는 “과거 미스코리아는 광대뼈, 중안·하안이 고루 발달해 원숙미가 돋보였다면 현재는 광대뼈가 들어가고 턱뼈가 짧아져 앳된 얼굴이 주류를 이룬다.”면서 “남녀 얼굴의 변화가 지난 20년 동안 집중됐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참생명의 물 ‘淸水’/최미숙 증산도 부산당리도장 수호사

    동서양을 막론하고 물을 신성시하지 않는 민족이나 종교는 거의 없다. 하물며 과학과 철학에서도 생명의 기원이 물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한민족은 그 어느 민족보다도 물을 신성시한 민족이다. 동의보감에는 물의 종류만도 서른 몇 가지라고 하니 우리 조상님의 물에 대한 고찰은 참으로 경이롭다. 기도를 할 때 모시는 정화수를 증산도에서는 천지를 받는 청수로 여기며, 이를 경건히 모시고 생명의 율려인 태을주를 읽으며 새벽을 열고 밤을 닫는다. 처음 증산도 도문에 입도하여 왜 청수를 모시고 기도를 해야 하는지를 듣고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체험적으로 확연히 와닿진 않았었다. 단순히 예법으로 받아들였고, 교육을 통해 기본적인 원리만 알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왜 청수를 모시고 기도해야 하는지 명백히 체험하게 되었다. 오래 전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날은 유난히도 피곤하였고, 뭔가 가슴이 사무치는 날이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피곤하고 지친 심신을 일으켜 목욕재계를 하고 청수를 모셨다. 흰 사기그릇에 채워진 물은 내 묵은 마음이라 여기며 비워내고 새로 길어온 맑은 청수를 새마음이라 생각하며 채워넣었다. 그러자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으로부터 샘물 같은 밝음이 퐁퐁 솟아나는 듯하였다. 신단 위에 청수를 올리고 읍을 한 후 절을 하였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하나 되는 반천무지의 절 법으로 천천히 대자연의 기를 느끼며 절을 하였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나는 매우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마치 융단과도 같은 빛의 폭포가 청수물과 절 하는 나를 이어주고 있었다. 뭔가 알 순 없었지만 신성한 기운이 청수그릇으로부터 절하는 나의 머리로, 어깨로, 팔·다리로 내려와 나를 감쌌다. 피곤은 싹 사라지고 오히려 등줄기로부터 전율이 오르며 머리는 청명해지고 마음은 한없는 경건함과 기쁨으로 가득차 올랐다. 청수에서 나온 융단 같은 신성한 기운이 마치 양수가 태아를 감싸듯 나를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물은 우주 만유의 생명의 근원이기에, 정성스레 모신 물에서는 우주에 가득 찬, 생명을 낳고 기르는 조화 성신의 기운이 흘러나오며, 그로 인해 나의 묵은 영혼이 정화되고 새롭게 태어남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청수 모시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이른 새벽 도장의 여섯 그릇의 청수를 모시며 벅찬 충만감으로 기도하고 수행했다. 도전의 어려운 부분도 쉽게 읽히고 기도와 수행의 기운으로 신도들의 병을 치유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맑은 이른 아침의 샘물처럼 청명했고 즐거웠으며,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이 청수물을 복록수라고 하셨다. 천지의 복을 가져다주는 복록수. 삶의 풍요를 가져다 주는 복록수. 무엇보다 건강한 생명을 내려주는 복록수. 그 복록수를 마시라고 하셨다. 얼마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을 보았다. 그 책은 물이 바로 생명, 신 그 자체란 걸 말해주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에, 문자에, 음성에 반응하는 살아 있는 물! 증산도 수원도장에서 청수로 모시기 전의 일반물과 기도하고 태을주 수행을 한 청수물의 샘플을 에모토 마사루 씨에게 전한 일이 있다. 지금도 그때 찍힌 두 가지 물의 결정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너무도 아름답고 선명하던 그 육각수의 물! 이전의 파괴된 수돗물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환경 오염으로 육각의 결정이 파괴된 물이, 정성스럽게 모시고 천지의 생명주문인 태을주를 읽었을 때 살아 있는 생명력 넘치는 육각의 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우리 몸 또한 한 덩이의 물과도 같다. 스스로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한 덩이의 고귀한 생명수다. 하지만 오염된 환경과 각박한 삶으로 인해 우리의 몸과 마음은 파괴되고 숨가빠하고 있다. 기실 마음 놓고 먹을 물도, 안심하고 들이마실 수 있는 공기도, 제대로 된 먹을거리도 찾아보기 힘든 현실 아닌가? 우리 몸은 갈수록 독소로 채워져 변형되어가고 있다. 청수(淸水)! 글자 그대로 맑은 물, 우주 생명의 물이다. 이와 하나 되어 천지의 율려인 태을주를 읽어 혼탁해진 우리 영혼의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면, 어떤 환경이라 할지라도 건강한 활력이 넘치는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아울러 깊은 장막으로 가려졌던 우주 조화의 신비의 문을 열어, 천지와 함께 영원불멸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최미숙 증산도 부산당리도장 수호사
  • [씨줄날줄] 종친회/이용원 논설위원

    한국 사람처럼 자신의 성씨(姓氏)에 대한 관심과 충성도가 높은 민족은 따로 없을 듯하다. 통성명을 마치면 상대의 본관과 항렬(行列)을 확인한 뒤 그 집안의 내력을 줄줄이 읊어주는 보학(譜學)의 대가가 적지 않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단 본관을 들은 뒤에는 “아, 양반 집안이군요.”라고 찬사를 던지는 건 기본예의라 할 정도이다. 거기에 상대방 집안에서 배출한 역사적 인물을 기억해 내 한마디 거들면 둘의 관계는 급속히 친밀해진다. 혈통은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지금의 중국식 성씨가 일반화한 시기는 나말여초(羅末麗初)이다. 물론 그전에도 성씨는 있었다. 고구려에는 고(高)·을지(乙支), 백제에는 부여(夫餘)·흑치(黑齒), 신라에는 박(朴)·석(昔)·김(金)씨 등 3국의 성씨가 한국·중국 등의 사서에 10여가지씩 등장한다. 하지만 7세기 신라가 당나라를 본떠 제도를 정비하고서야 한자로 된 성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가 개국공신과 지방 호족들에게 성을 널리 내림으로써 제도로 정착됐다. 2000년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국내에는 286개 성(귀화인 제외)에 4179개 본관이 있는데 그 대부분이 고려 시대에 자리잡은 것이다. 이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이미 250여 성씨가 등장하는 것으로도 입증된다. 유학이 성한 조선시대에 들어 각 가문은 정체성을 확보, 유지하고자 종친회를 만들고 족보를 간행했다. 종친회로서 처음 기록에 나타나는 것이 1580년의 ‘안동 김씨 종약소’임을 감안하면 종친회의 역사도 400년이 넘었다. 종친회를 빙자해 값싼 족자를 10만원대에 팔아온 일당이 엊그제 검찰에 붙잡혔다고 한다. 이들은 대성(大姓)이 아니라서 도리어 문중에 대한 귀속의식이 강하리라 짐작되는 성씨 가운데 시골에 사는 사람들을 전화번호부에서 골라 범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5년동안 7900여명에게 7억여원어치를 팔았는데도 피해신고가 한건도 없었다고 하니 종친회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요즘 각 종친회는 문중 일을 맡아 하려는 젊은이들이 없어 크게 고민이라고 한다.400년 넘게 이어온 우리의 전통 하나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이영훈교수 “박정희시대 뒤집어 보면 분배 잘돼”

    이영훈교수 “박정희시대 뒤집어 보면 분배 잘돼”

    최근 학계의 논쟁 가운데 선 인물이 있다. 바로 서울대 이영훈 교수다. 우리의 근대 경제성장이 식민지 때 시작됐다는 주장에 이어 박정희 시대 경제성장에서 저임금 등의 꼬리표를 떼내자는 주장까지 내놨다. 이런 주장도 주장이지만 그의 특별함은 여기에 실증적 통계자료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쏟아지는 비판에 홀로 맞서고 있는 이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악역을 자처한 까닭은. -나는 실증주의자다. 온갖 오해에도 불구하고 내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자신과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내 주장은 식민지·박정희 시대에 대한 서술이 사실과 다르며,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하자는 것이다. ●70년대 생산성 향상과 임금증가율 비슷 ▶박정희시대 논란은 어떤가. -흔히 저임금과 농어촌·중소기업 배제를 거론한다. 그러나 이는 60년대 데이터를 봤을 때나 맞는 말이다.60년대 이후 상황이 변했다. 이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주장이 지난 40여년간 고착화됐다. 상황 변화는 70년대의 고미가 정책과 대기업-중소기업간 산업연계정책인데, 고도성장은 이런 정책으로 가능했다. 저임금 부분도 노동을 한 단위 더 투입하는데 따른 생산성 향상과 임금 증가율이 비슷하게 갔다는 게 중요하다. ▶전태일은 어떻게 말하겠는가. -전태일로 70년대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70년대의 임금이 생계비의 절반이었다는데 이는 단정하기 어렵다. 정말 그랬다면 빈곤의 세습과 광범위한 슬럼화가 누적되는 이른바 ‘사회적 침전’ 현상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뒤집어 보면 분배가 잘됐고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삶의 질을 통계로 평가할 수 있나.. -통계로 모든 역사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적 접근법이어서 수많은 신화와 도덕적 허구를 깰 수는 있다. 그게 통계의 힘이다. ▶허수열 충남대 교수는 통계 수치만 보고 한·일 민족간 차별은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비판했는데…. -그 지적을 높이 평가한다. 허 교수 자료는 식민시기 생활수준이 최소한 수평을 유지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이는 수탈론 부정이다. 식민시기 경제성장을 30년대 후반의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근본주의·원리주의는 중세적 사고 ▶경제사 연구에 ‘민족’을 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허 교수와 다른 관점인 것 같은데…. -우리는 민족근본주의에 빠져 있다. 모든 기준이 민족이다. 그러나 근본주의, 원리주의는 중세적 사고방식일 뿐이다. ▶박정희 시대를 민주와 인권으로 평가하면 어떤가. -그것도 다시 봐야 한다.10·26 뒤 사면복권된 사람이 800명도 안된다.4000만 인구 중 일부다. 보통사람들은 일상적인 생활을 했다. 암울했다기보다 외려 자기실현 과정에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안 그렇다면 당시 10%대의 고성장을 설명할 수 없다.800여명을 비용으로 중화학·자동차공업, 철강산업을 일으킨 것은 평가받을 일이다. ▶시대를 평가함에 있어 도덕적 관점은 무의미하다는 뜻인가. -도덕적 잣대로 국가를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 비판자들이 알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나라 만들기’는 장기적 과정이다. 미국 흑인들은 1950년대에야 공민권을 얻었고 조선도 반석에 오르는 데 70년이 걸렸다. 각 시대는 각각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도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한다. 두번째는 헌법이념과 대의민주주의를 이해하고 권리·의무의 주체로서 나설 수 있는 ‘교양인’으로서의 국민이 있느냐다. 조선시대 소농 중심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전환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근과거 집권세력은 상대적으로 청렴 ▶과거사 문제와 관련, 클린턴처럼 먼저 사과할 수는 없을까.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했다. 그리고 부패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과거 집권세력은 상대적으로 청렴했다고 본다. ▶결국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보는 관점인 것 같은데. -어떤 사물을 통합적으로 보는 것이 성숙한 자세다.20세기 우리 역사도 그렇다. 식민지에, 분단에, 전쟁에 얼마나 끔찍한 경험이 많았나. 비판할 일이 있으면 해야겠지만 기본은 통합으로 가야 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이영훈교수가 주장하는 수량경제사란 이영훈 교수의 접근법은 수량경제사적 관점으로, 이는 서구에서 20세기 초부터 지속되어온 방법이다. 물가, 이윤, 임금 등 장기적인 경제지표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역사를 서술하자는 입장이 그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서구의 경우 90년대 들어 거의 폐기됐다는 반론도 있다. 통계로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정부는 각종 거시경제지표가 건전하다고 발표하지만 서민들은 와닿지 않는다고 아우성이고, 언론은 정부가 실체를 제대로 모른다고 비판하기 일쑤인 점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 방법론은 60년대 이후 일본에서 활발히 다뤄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중반 안병직 교수가 주도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받아들였다. 수량경제사가 한국의 근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건드린 것은 90년대 중반. 그러나 우리에게는 공신력있는 자료와 기록이 거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서구 제국과 달리 근대적 의미의 통계가 도입된 것은 20세기 초였으니 그 이전 자료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이에 따라 낙성대팀은 양반가와 촌락의 각종 고문서에서 의미있는 통계치들을 추출해 냈다. 지금의 ‘가계부’ 개념과 비슷한 기록이 남아 있었던 것. 출간되자마자 논란을 불러일으킨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 등의 연구물도 이들 고문서에서 추출한 자료를 기초로 했다. 즉, 경북 예천의 박씨가 문헌, 전남 영암의 문씨가 계(契)문서 등을 통해 농촌경제를 분석하고, 족보를 분석해 인구사로 연구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물론 비판도 많다. 일본 학계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또 다른 식민주의 폐해라거나 제한된 자료에 근거한 만큼 해석 역시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반론 등이 그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근속20년안돼 순직해도 유족연금

    경찰·소방·교정 등 위험한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순직하면 근속기간 20년이 되지 않아도 유족들에게 연금이 지급된다. 특히 대간첩작전에 투입됐다 사망한 공무원의 경우 보상금이 지금의 2배로 늘어난다. 정부는 최근 순직 공무원 유족들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이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위험직무 관련 순직 공무원 보상 특례법’을 제정, 순직공무원 보상을 현실화하기로 했다고 14일 밝혔다. 행자부가 입법예고한 이 제정안은 순직 공무원의 유족에게 순직유족연금과 순직유족보상금을 지급하되, 근속기간 20년 미만의 공무원은 사망 당시 월 급여의 55%를,20년 이상 근속 공무원은 65%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또 보상금도 사망 당시 월 급여의 54배로 인상하기로 했다. 아울러 대간첩작전에 투입된 경찰 공무원 등의 순직 보상금은 군인과 형평을 맞춰 월급여의 72배로 인상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근속기간 20년 미만의 공무원 유족의 경우 사망 직전 월급여의 36배를 보상금으로 지급받았을 뿐 유족연금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 또 근속기간 20년 이상인 공무원도 퇴직유족연금 형태로 월급여의 35%만 받았다. 이에 따라 순경 2호봉인 경찰공무원의 경우 지금은 유족연금 없이 보상금 3500만원만 받지만 법이 제정되면 보상금 5000만원에 매달 111만원의 유족연금을 받게 된다. 법안은 화재진압이나 범인체포 등을 수행하다 입은 부상으로 3년 안에 사망할 경우에도 똑같이 보상하기로 했다. 법안은 이와 함께 보상심사를 위해 행자부에 순직보상심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순직공무원과 유족은 국가유공자지원법에 따른 각종 지원혜택을 받도록 했다. 정부는 예산 당국 등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법안을 확정한 뒤 오는 9월 국회에 제출, 이르면 내년부터 법안을 시행할 방침이다.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독립유공 훈장 찾아 드려요”

    국가보훈처는 올해 광복 60주년을 맞아 그동안 유족이 나타나지 않아 수여하지 못해 정부가 보관중인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찾아주기 운동을 전개한다고 8일 밝혔다. 훈장 미수령 유공자 명단은 지난 1일부터 보훈처 인터넷(www.mpva.go.kr) 팝업 창에 게시되고 있으며, 앞으로 행정자치부 인터넷(www.mogaha.go.kr)에도 실릴 예정이다. 정부가 보관중인 훈장은 건국훈장 2355개, 건국포장 19개, 대통령 표창 70개 등 2444개이다. 유족 여부는 인터넷에 공개된 독립유공자 인적 사항과 호적, 재적등본, 족보, 독립운동 사료 등으로 확인한다. 유족으로 판명되면 건국훈장이 전수된다. 보훈처는 훈장 찾아주기와 병행해 유족이 나타나지 않은 독립운동 참여자 2만 1000여명의 명단도 함께 공개해 유족 확인과 자료 수집에 나설 계획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5%의 자부심’ 서울토박이

    ‘5%의 자부심’ 서울토박이

    “낚싯대가 따로 없어 나무막대 끝에 끈 매달아 쇠로 만든 낚싯바늘을 묶었어. 반세기 전만 해도 청계천에서 가물치도 건져올렸지, 아∼암.” 청계천 쪽인 서울 중구 장교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순형(69·한국건강관리협회 회장) 전 서울의대 학장은 청계천 얘기가 나오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이렇게 지난 날을 돌아봤다. ‘서울토박이 중앙회’ 부회장인 그는 할아버지 세대 이전부터 서울에만 살아온 그야말로 진짜 토박이다. 뿐만 아니라 1960년 신도시로 개발됐던 불광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청계천 근처에만 살아온 ‘청계천 토박이’이니 청계천 복원공사와 최근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는 눈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처음만나 사랑맺은, 내 고향 서울은 아름답고 건강한 도시 ‘눈 뜨고도 코 베어간다.’는 곳이기도 하지만, 서울은 회원들에게 가슴 뭉클한 그 무엇을 안겨주는, 어머니 품속과 같은 고향인 것이다. 이 속담 아닌 속담도 “600여년 전부터 타향에서 몰려든 8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고향을 지키려는 방어의식으로 생긴 얌체짓 탓”이라고 회원들은 그럴 듯한 해석을 내놓는다. 역시 서울토박이인 강동구 김종구(58) 기획재정국장은 “어릴 적 한강에서는 뜰채로 참복어도 엄청 많이 걸려 올라왔다.”면서 “그 맛이 요즈음 말로 짱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국장은 “이따금씩 강물 위로 시체가 떠내려왔는데, 미군부대 꿀꿀이죽이나 기껏해야 수제비국으로 연명했을 정도로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에 생긴 변고였다.”며 사연을 들려줬다. “불그런 색깔을 띤 복어 알이 둥둥 떠내려오면 가뜩이나 굶주린 눈에 얼마나 먹음직스러웠는지 모른다.”면서 “복어 알인 줄 꿈에도 모르고 뜰채로 덥석 건져올려 먹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것”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 고향은 지금 국립현충원이 있는 자리인데 현충원 분수대 쪽은 당시 콩밭이었다.”면서 “50년 전만 해도 50가구 남짓 모여 살았다.”고 덧붙였다. 동작동 248번지라는 사실도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고향에 대한 흔적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한강으로 다이빙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필 바위에 닿는 바람에 생긴 상처라고 왼쪽 다리를 보여줬다. 서울토박이 중앙회 임기완(65) 상임부회장은 “7대째 210여년이나 서울에만 살고 있다.”면서 “현재의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터가 바로 선조들이 처음으로 둥지를 튼 고향마을이었다.”고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소개했다. 사도세자 생모인 영빈 이씨의 무덤도 이 자리에 있었는데, 참봉(종9품·무덤 관리자) 벼슬을 지낸 증조부 이래 1969년 세브란스병원이 증축될 무렵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겨갔으나 비석은 아직 백양로에 남았다고 집안 내력을 보탰다. ●“서울을 노래하자.”…판박이 활동 벗어나 야심찬 회원 배가운동 임 부회장은 “토박이 모임은 인증서까지 주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밟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현재 ‘선조가 1930년 이전부터 현 서울시 행정구역내에 정착한 시민으로, 서울시 행정구역 안에서 계속 주거해온 사람과 신청 1세대의 자손’이라는 가입자격 규정을 뒀다. 현재 인증받은 사람은 2500여가구에 1만여명. 3대 이상 거주자 5만가구 20만명으로 늘리는 게 1차 목표다. 어느 시민은 최근 “제가 충북에서 태어난 것으로 돼 있으나 출생 1년 전후로 서울에 올라와 할머니, 아버지와 40년 가까이 살았는데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문의해왔다. 서울토박이 중앙회는 가입을 희망하는 시민들이 신청서 1부와 부친, 또는 조부의 재적등본 1부(자치구 발행), 반명함판 사진 2매를 내면 심사를 거쳐 인증서를 발급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란, 서울을 고향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슬로건처럼 젊은이들도 많이 들어와 서울 가꾸기에 동참할 것을 바라고 있다. 서울을 아끼는 만큼이나 수도이전 등 삶의 구조를 크게 바꿔놓을 사안에는 어느 모임에 못잖게 똘똘 뭉친다. “모이자, 서울광장으로…. 깨자, 우리 고향을 깨려는 검은 무리들….” 지난해 6월 29일 수도이전반대 범시민 궐기대회에 참가한 토박이들은 이런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중앙회는 수도이전 반대 성명서까지 냈다. 최근 정부의 행정중심복합도시 발표 때 한 회원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졌는데도 혈세 10조원 이상을 들여 서울을 여기저기 분산시키려 한다.”면서 “12부,4처,3청을 옮긴다는데 토박이들이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중앙회에는 초등학생부터 90세가 넘은 장성기(95·성북구 정릉2동)옹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가입해 있다. 중앙회 산하에는 중랑·서대문·강북·송파·관악·중구지회가 따로 짜여졌다. 이 부회장은 “전해 내려오는 선조들 말씀에 따르면 족보가 불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최소한 10대까지는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되뇌었다.“한국전쟁이 끝나고 몇해 뒤인 1950년대 중반에만 해도 지금의 수색 근처에 조상들의 묘가 위로 10대까지 있었다.”고 했다. 서울토박이 중앙회 (02)2274-3291.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3대이상 거주해야 ‘성골’ 대접 3대째 내리 서울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는 100명 중 5명 정도로 추산된다. 또 서울에서 태어난 시민 가운데 31%는 서울을 고향으로 여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시민 가운데 조부모 세대부터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토박이는 2004년 말 현재 4.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3년말 조사된 6.5%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시정연은 시내 2만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04년 서울 서베이’ 결과 시민들 가운데 63.9%가 본인 세대부터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부모 세대부터 거주한 비율은 30.9%로 나타났다.2003년 본인 세대부터 57.2%, 부모 세대부터 33.6%와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울토박이가 가장 많은 자치구는 전년과 같이 종로구(8.1%)로 나타났다. 원남동, 안국동, 궁동, 청운동, 삼청동 등 비교적 전통적인 가옥구조를 보이는 탓도 있다. 반면 서울토박이가 가장 적은 곳은 광진구(2.8%)로 조사됐다. 서울시민 전체에서 서울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67%,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는 시민은 33%였다. 서울시민 고향인식도는 2003년도 63%보다 상승한 수치다. 서울을 고향으로 여기는 비율을 권역별로 보면 도심권(종로·용산·중구)이 75.9%로 가장 높았다. 자치구별로는 용산 81.6%, 광진 77.2%, 중구 75.4%, 강동 72.4%, 동대문 70.9%, 성북 70.5%였다. 반면 아파트 중심 주거문화 지역인 도봉구(58.4%)와 금천구(59.6%)는 매우 낮아 정체성 확립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원조토박이들이 말하는 서울사람 “우리 토박이들을 업신여기니 청계천 사고가 일어나지….” 18일 서울 중구 수표동 56의 17 청계천 3가 골목길에 자리한 건물 4층 서울토박이 중앙회 사무실에서 만난 자칭 ‘4대문 원조 토박이’ 10명은 고향에 대한 애정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참된 서울의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은데 끼워주지 않는다는 불만도 사뭇 배어 나왔다. “프랑스에선 파리지앵, 일본에서는 에도코(江戶)라고 불리는 수도의 토박이들이 있습니다. 이들 도시에서는 도심 건물을 헐 때나 나무 한 그루를 잘라낼 때도 토박이들과 의논합니다.” “서울시가 서울만의 문화를 보존한다, 수도를 지킨다느니 하면서 토박이들에겐 관심도 없는데, 일을 잘못하면 우리가 나서서 혼쭐을 내야 합니다.” 이날 모임에는 회장단 13명 가운데 일정이 겹친 3명을 빼고 모두 찾아와 모처럼 얘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전통음식 등 서울문화를 들먹거리면서도 어떤 경로를 거치는지 몰라도 정작 대대로 살아온 우리들 말은 듣지도 않고 활약하는 단체도 더러 눈에 띄더라고요, 참….” 각 지방 사람들의 성격이 식습관에서 유래한다며 음식 얘기로 돌아갔다. 서울 사람들은 맵고 짠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이는 음식을 만들 때 실고추를 위에 얹는 관습에 잘 나타난다고 입을 모은다. 고춧가루 쓰는 일이 적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타난 성격이 악착같지 않다는 점이다. 원래 살던 고향이라고 당연히 여기다 보니 아등바등 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고의구(71) 부회장은 “내 분수만큼만 행세하지, 절대 남의 것은 쳐다보지 않는 성격”이라면서 “서울 깍쟁이라는 말도 남들에게 불필요하게 손을 벌리지도,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하면 주지도 않는 성격 때문에 나온 것”이라며 나름대로의 분석을 내놓았다. “서울 사람들이 자존심 강하기로 치면 어느 정도냐 하면 말이지.‘맹추’라는 소리를 들었지. 예를 들어 일본인들이 광복 뒤 헐값에 처분하거나 버리고 도망간 집이 많았는데, 셋방에서 버틸지언정 들어가 살지는 않았어.” 그는 서울사람 대신 발빠른 외지인들이 집을 차지해 내로라하는 부자로 성장한 사례가 많았다고 소개했다. “나서려고 하지 않는 특유의 성격 때문에,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부자 가운데서도 섣불리 모임에 나타나지 않으려고 한다.”는 하소연도 쏟아졌다.“다른 향우회에서는 서로 나서지 못해 안달인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오후 2시 시작해 6시까지 이어진 이날 자리에서 그들은 서울토박이로서의 자랑 아닌 자랑도 늘어놓았다. “산업화 물결로 갑자기 서울 인구가 엄청 늘면서 누구나 사투리를 쓰지 않으면 서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서울 사투리도 있어서 누가 토박이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했걸랑요’ 등 ‘요’로 끝나는 말을 많이 쓴단다.‘다’로 마치는 말과 달리 여성스러운 말투여서 다른 지방 사람들로부터 ‘간지럽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웃었다. 중앙회 출범 10주년이던 지난해 11월에는 효재학교 동창인 이원임(여), 이상용, 박영한(이상 81) 회원들이 70여년 만에 우연히 한 자리에 모여 추억을 되새기는 뜻 깊은 만남을 가졌다. 이들은 “토박이 모임을 만든 덕분”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그 영화 어때?] 새영화 ‘세컨핸드 라이온스’

    로버트 듀발, 마이클 케인, 할리 조엘 오스먼트. 할리우드의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는 프리즘이라 할 만한 이 신구 스타들의 조합이 대체 어떤 맛의 드라마를 빚어냈을까.19일 개봉하는 이들의 영화는 ‘번지수’를 짚어내기 힘들 만큼 제목부터 엉뚱하다.‘세컨핸드 라이온스’(Secondhand Lions).‘중고 사자’라니?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철부지 엄마에게 속아 어린 소년 월터(오스먼트)는 또 기약도 없이 생면부지의 친척 노인들 손에 맡겨진다. 얼떨결에 월터를 거두게 된 삼촌뻘의 두 할아버지들은 그런데 보통 괴짜가 아니다.TV, 전화기도 하나 없는 시골살이가 가뜩이나 막막한데 허브(로버트 듀발)와 거스(마이클 케인)삼촌은 걸핏하면 엽총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마저 위협해서 쫓아버리기 일쑤다. 이쯤되니 마을사람들도 이들을 ‘별종’취급할 수밖에. 이런 삼촌들과 지내는 시간은 외롭고 따분할 것만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상상도 못했던 즐거움으로 하루하루가 채워진다. ‘가정의 달’에 아주 잘 어울릴 모험과 감동의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두 노인과 소년의, 어쩐지 불균형해 뵈는 동거는 평면적인 드라마가 아니란 점에서 감상포인트가 배로 커진다. 밤마다 몽유병을 앓는 허브 삼촌에게 거짓말처럼 근사한 젊은 시절의 모험담이 있었다는 사실이 평범한 가족드라마로 주저앉을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족장과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인 허브 삼촌의 무용담이 천일야화처럼 이어지는 사이, 가족보다 더 끈끈한 정이 세 남자를 쓸어안는다. 우화집처럼 은유가 많은 영화다. 예컨대 집 앞 옥수수 밭을 어슬렁거리는 늙은 사자는, 흘러간 꿈의 기억을 삶의 동인으로 되새김질하는 극중 노인들의 유쾌한 현시(顯示)같다. 9세에 ‘식스센스’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세계 영화판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오스먼트가 부쩍 자라있다. 팀 매캔리스 감독.12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실험실 마우스’ 의 짧고 귀한 삶

    유전자 기능분석과 신약개발 등 생명공학 분야에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의 동물들이 인간을 대신해 실험대에 오르고 있다. 실험동물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한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실험동물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인간에 의해 태어나 인류를 위해 살다 생을 마감하는 실험동물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동물실험은 ‘필요악’ 실험동물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어려운 신약 임상실험이나 독성물질 평가, 수술적 처치 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개발된 동물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실험동물은 쥐. 작은 쥐인 마우스는 백혈병과 유방·폐암 등 암 연구에, 큰 쥐인 랫은 고혈압이나 간염·간암 등의 연구에 주로 활용되고 있다. 국립독성연구원 실험동물자원실 지승완 박사는 11일 “쥐는 수명이 짧고 번식력이 우수한 데다 연구결과도 축적돼 있어 가장 많이 활용된다.”면서 “최근에는 생명공학 분야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특정 유전자를 없애거나 정상보다 늘린 ‘형질전환 동물’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유전자 조작 쥐인 ‘누드 마우스’는 피부에 털이 없고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항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암 세포를 피부에 이식하거나 면역관련 실험에 활용되고 있다. 지 박사는 “유전자 조작 쥐는 최근 지적재산권의 대상이 될 정도로 산업적 가치가 커 ‘황금 알을 낳는 쥐’로도 불린다.”면서 “이 때문에 마우스는 마리당 5000∼1만원에 불과하지만 누드 마우스 5만∼10만원을 비롯, 최고 200만원까지 나가는 유전자 조작 쥐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독성연구원이 지난해 유방암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포함된 마우스에 대한 특허등록을 마쳤으며 치매 마우스 등 모두 6종의 유전자 조작 쥐를 특허 출원했다. 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간암 및 스트레스 마우스 등을 개발, 활용하고 있다. 생명공학연구원 유대열 박사는 “유전자 조작 쥐를 사용하면 실험 기간과 비용은 줄어드는 반면 결과의 정확성은 높일 수 있다.”면서 “특히 ‘인간 게놈 지도’ 작성 이후 생명공학 연구의 무게중심이 유전자 기능분석과 이를 통한 신약물질 개발로 옮겨가고 있어 유전자 조작 쥐의 활용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쥐는 유전체 염기서열이 인간과 96∼97% 정도 같아 인간 유전자의 기능을 유추하고 신약물질을 검증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못지않은 형질전환 동물 우리나라의 실험동물 연간 수요는 500만∼1000만 마리로 추정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이중 80% 이상을 쥐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전자 조작 쥐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나 자동차 못지않은 부가가치 창출 효과를 낼 수 있다. 물론 쥐보다는 원숭이와 사람의 유전자가 99% 정도 일치한다. 그러나 원숭이의 경우 마리당 비용이 평균 200만∼700만원으로 비싸고 관리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유전자 조작도 사실상 불가능해 실험용으로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 박사는 “원숭이는 에이즈 바이러스 관련 실험이나 신약 임상시험의 마지막 단계에서 제한적으로 쓰이고 있다.”면서 “원숭이보다 인간과 더 가까운 침팬지나 고릴라는 거래 자체가 금지돼 실험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돼지는 간과 위 등의 크기가 인간 장기와 비슷해 장기이식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장기이식용 돼지는 특정한 병원체에 감염되면 안 되기 때문에 어미동물로부터 제왕절개 수술에 의해 출산된 뒤 무균 상태에서 육성되는 등 철저한 관리가 이뤄진다. 이같은 동물은 SPF동물(무균 동물·Specific Pathogen Free Animals)이라고도 불린다. 또 백신실험에는 고슴도치과의 기니피그, 화장품이나 연고제 등의 독성실험에는 피부반응이 뛰어난 토끼 등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쥐와 기니피그, 토끼를 합치면 전체 실험동물의 99%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같은 실험동물은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1년 넘게 걸리는 각종 실험에 활용한 뒤 약물에 의한 안락사로 최후를 맞는다. 사체는 모두 소각된다. 유 박사는 “실험동물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유전적 동일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족보’ 역할을 하는 일련번호를 부여, 출생 이전부터 사람보다 더 까다롭게 관리한다.”면서 “다만 실험을 빙자해 무분별하게 희생되는 동물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국가 관리체계를 보완, 강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서울광장] 美 바짓가랑이라도 붙들라/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美 바짓가랑이라도 붙들라/이목희 논설위원

    한반도 상공에 ‘2차 한국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살아계신다면 이렇게 말씀할 것 같다. “나의 첫번째 소원은 전쟁방지요, 두번째·세번째 소원도 완전한 전쟁방지다.” 한반도 전쟁 발발을 막는 일은 절대명제다. 비핵화가 중요하지만 수십만, 수백만명의 희생을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쟁방지를 최고가치로 확고히 올려놓으면 북한핵을 풀어가는 수순은 비교적 단순해진다. 북핵이 쟁점화된 후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까지 3번의 정권교체가 있었다. 세 정권 모두 민족협력을 앞세웠다.YS는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다.”는, 당시로선 엄청난 말을 했다.DJ는 줄곧 대북 포용노선을 견지했다. 노무현 정부는 좌파적이라는 시선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세 정권은 핵에 관해 북한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 북한은 YS정권이 출범하자마자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DJ는 취임 첫해 북한 금창리 지하핵의혹시설 파문을 겪었다. 노 대통령 집권 후 상황은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YS때보다 심각하다. 북한은 지난 2월 핵무기 보유를 공식선언하고 나섰다. 북한에게 핵은 남한 정권과의 담판거리가 아니다. 미국이 김정일체제 전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공포에 남한 정권이 진보든, 보수든 안중에 없다. 따라서 남측의 선택폭은 극히 좁다. 민주적 협의절차를 가진 미국을 우선 설득하는 편이 그래도 성공 가능성이 높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지금 북핵을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북핵은 안보리에서 해결되지 못한다.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으면 경제제재도 어렵다. 기껏해야 의장성명 정도가 나올 것이다. 수개월 이상을 그러는 동안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고, 우리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게 불 보듯 뻔하다. 결국 이라크에서처럼 미국이 유엔틀 밖의 군사행동으로 북핵을 저지할지 선택이 남게 된다. 1994년 북핵위기때도 그랬다. 유엔 제재가 여의치 않자 미국은 영변 핵시설을 제한폭격하는 도상연습까지 했다. 당시 YS정부는 남한을 따돌리는 북한이 미웠다. 그러나 전쟁은 막아야 했다.YS정부의 요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설과 미국 스스로 철회했다는 설이 혼재하지만 북폭은 실천되지 않았다. 경수로건설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 북·미수교까지 하자는 제네바협정이 타결됨으로써 위기는 진정됐다. 전쟁방지라는 대전제를 깔면 패키지 딜을 통한 제2의 제네바협정이 지금도 해답이다. 미국이 1994년 협정보다 진전되고, 실천력 있는 대북제안을 내놓고 6자회담을 통해 관련국이 동참할 때 북핵은 풀린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라도 ‘대담한 대북 제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동북아균형자니, 뭐니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수사(修辭)보다는 통사정이 효율적일 수 있다.7000만 생명이 달렸는데, 자존심을 뛰어넘어야 한다. 한국과 중국 외교장관은 어제 회담을 갖고 북·미에 대한 양비론의 일단을 표출했다. 미국을 달래도 시원찮을 판에 또 오해를 부르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미국에 ‘대담한 제안’을 요구하고, 북한판 마셜플랜을 거론했다. 경제지원, 불가침약속, 북·미수교, 북·일수교 등과 북한의 핵동결 및 폐기를 단계적으로 맞춰나가는 협상안에 반대할 국내 정치세력은 별로 없다. 정부는 대북 온건·강경을 넘나드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의 주된 외교상대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노력했는데 안 된다.”고 하지 말고, 그야말로 대미 총력외교에 나서야 한다.8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과 새달로 예정된 한·미, 한·일 정상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 전쟁위기가 고조되면 다른 국정을 아무리 잘 관리해도 만사휴의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훈장 변신 ‘배추머리’ 개그맨 김병조씨

    누군가 그랬다.‘어느날 눈을 떠보니 세상에 내던져졌고, 살아가는 매뉴얼은 보이지 않았다.’고 투정을 부렸다. 인생의 매뉴얼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무미건조? 허망? 수많은 오류와 잘못을 과연 피해나갈 수 있을까. 문득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첫 구절이 생각난다.‘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 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 명심보감, 글자 그대로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다. 중국의 경전 사서 문집류 등에서 좌우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처세훈을 추려 놓았다.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음의 수양서로 여전히 으뜸이다. 한 코미디언이 있었다.‘지구를 떠나거라∼’‘나가 놀아라∼’로 전국민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밑빠진 항아리는 막을 수 있어도 코밑의 입은 막을 수 없다는 말처럼 거침이 없었다. 뱉어내는 얘기마다 배꼽을 겨냥하면서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주변에서는 ‘배추머리’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떠나거라’를 실천하듯 코미디계를 훌쩍 떠나버렸다. 왜그랬을까. 알고 보니 어엿한 훈장이 됐다.‘명심보감’이라는 간단치 않은 등짐을 지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제주 탐라대서 강원 한림대까지 서울 마포에 위치한 불교방송국 건물 17층에서 그를 만났다. 순간 ‘앗’하는 놀라움을 느꼈다. 왕년의 ‘배추머리’와는 영 딴판이었다. 말쑥한 머리모양에 전통한복 차림이 왠지 낯설어보였다. 하지만 특유의 큰 웃음소리는 여전했다. 근황부터 들었다. 우선 매주 수요일이면 광주에 내려간다. 조선대학 초빙교수 자격이다. 오전에는 평생교육원(3시간)에서, 오후에는 학부(4시간)에서 강의를 한다. 학생수만 6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월·금요일에는 불교방송(BBS) 라디오 프로그램 ‘다시 듣고 싶은 노래’의 진행을 맡고 있다. 화·목요일에는 중앙부처 기업체 대학 등에서 명심보감을 강의한다. 이날도 서울 구로구청 관내 통·반장을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했단다. 강연을 들은 구민들은 감동을 받아서인지 관내 고등학교에서도 강의를 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제주 탐라대에서 강원도 한림대까지 정신없이 다닙니다. 코미디언으로 방송했을 때보다 더 살맛이 나요. 어려움을 통해 얻은 지혜도 있지만 옛 어른들의 밥상머리 교육을 생각해 보세요. 전통이 단절됐습니다. 이어야 하지요.” 김씨의 목소리는 높아진다.“부모가 자식에게 교육을 시키려면 부모 자신이 엄한 자세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밤 9시에 집에 들어온 아버지가 밤 12시에 귀가한 아들·딸을 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엄격해야 집안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명심보감의 참뜻은 ‘니나 잘해.’라며 껄껄 웃는다. ●한학자 선친 뒤이은게 큰보람 또 “부모는 자식을 잠자리에 재워놓고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서 이불을 덮어주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회고한다. 김씨는 결혼 후 10년 동안 아버지의 빚을 갚아드렸다고 말꼬리를 흐린다. 논 네마지기로 입에 풀칠하며 여기저기 빚을 얻어가며 자식 5남매를 키워낸 아버지, 그러면서도 자식들한테는 매우 엄하게 대했던 아버지의 진심을 돌아가신 다음에야 알았다며 창밖을 응시한다. “코미디언인 제가 명심보감을 강의한다고 하자 처음에는 ‘웃기고 있네.’하면서 놀리더군요. 그러나 강의를 듣고 나서는 ‘울리고 있네.’라고 합디다. 저는 그래요. 중간고사같은 거 안봐요. 대신 학생들에게 아버지한테 양말 사다드리라고 숙제를 줍니다. 효도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지요.” 김씨가 명심보감 전도사로 나선 것은 방송활동을 중단한 1998년부터. 그는 어릴 때부터 두가지의 꿈이 있었다. 첫번째는 세상만사 영원이란 없다는 말을 늘 떠올리면서 인기가 쇠약해지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특히 방송계는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라 더욱 절실했다. 그래서 한학자였던 선친의 뒤를 이어 훈장이 되고자 했다. 두번째는 고향(전남 장성)에서 방송활동을 해보는 것. 다행히 지인을 통해 지난 97년 지역방송인 광주방송(KBC)에서 ‘열창무대’라는 프로그램을 맡았다. 이때 조선대 평생교육원에서 연극과 영화, 한국 코디미사 등에 대해 강의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처용가도 코미디요 판소리도 코미디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선뜻 승낙했다. 하지만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황금 만냥이 있다한들 자식 하나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다’는 명심보감의 한 구절이 문득 생각났다. 대학측과 논의 끝에 ‘명심보감’으로 주제를 바꿨다. 김씨는 75년 MBC-TV ‘뽀뽀뽀’로 데뷔했지만 ‘일요일밤에 대행진’ 등을 맡으면서 평소 갈고 닦은 ‘명심보감’을 자주 인용했다. 유행어 ‘지구를 떠나거라∼’‘나가 놀아라∼’도 여기에서 얻은 아이디어라고 고백했다. 코미디계를 떠난 그의 강의솜씨는 어느 정도일까. 한 예가 있다. 하루는 조선대에서 강의하던 중 이공대 김모 교수가 수강을 했다는 것. 그래서 ‘교수님 왜 그러십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김 교수는 ‘(김씨의)강의평가가 최고로 나왔는데 한 수 배우려고요.’라고 대답했다. ●명심보감 1인자 되고 싶어 “마음의 부자가 진짜 행복입니다. 옛날 ‘뽀뽀뽀’를 보던 학생들이 오늘날 제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들 하더군요. 다시 부자가 됐습니다.” 그는 스스로 짠돌이라고 한다. 저축 잘하고, 가정에 충실하고 한문공부를 많이 한다는 세가지 연유로 명심보감을 강의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한학자인 아버지와 행상을 하는 어머니 슬하에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특히 7대장손이어서 할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의 별명은 ‘움직이는 옥편’일 정도로 한학에 조예가 깊었다. 덕분에 김씨는 초등학교때부터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접했다. 붓글씨도 함께 연마했다. 족보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기억력이 뛰어나 집안에서는 천재소리를 들으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집이 가난해 광주고에 진학하면서 육군사관학교반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성균관대 유학과를 생각했다. 하지만 학생들을 웃기는 일을 워낙 잘해 담임선생 등 주변에서는 한결같이 연극영화과를 권했다. 결국 중앙대 연극영화과로 방향을 바꿔 코미디언으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부인 얘기가 나오자 “목포교대를 나왔다.”면서 “빚도 많고 형제도 많은 장손 집안의 장남을 선뜻 택해준 아내가 늘 고맙다.”고 했다. 부인은 여러번 중매를 봤지만 김씨의 솔직한 자세에 반려자로 택했단다.1978년 70만원 월셋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200만원 지하 전셋방을 거쳐 결혼 5년 만에 세를 떠안고 2300만원짜리 집을 장만했다. 이후 부모가 진 빚을 다 갚은 뒤 84년 고향에 스물네마지기 논을 사서 부모한테 효도선물로 드렸다. 부친은 88년 작고하기 전까지 매일같이 논두렁을 걸어다닐 정도로 무척 좋아했다. 또한 서울로 떠난 아들에게 ‘자가용을 타고 오기 전까지는 고향에 내려오지 말라.’는 약속도 지켰다. 모친은 현재 82세로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서 함께 살고 있다. “명심보감의 1인자가 되고 싶습니다. 옛것들이 다 버려지고 있습니다. 전통의 아름다움을 누군가는 반드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김병조의 명심보감’이라는 책을 펴내기 위해 5년전부터 틈틈이 원고정리를 해왔다.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술과 담배를 전혀 안하는 그는 요즘 걷기와 등산으로 건강을 다진다. 명심보감 한 구절을 들려준다.‘글을 읽는 것은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요, 도리를 따르는 것은 집안을 보존하는 근본이다. 근검은 집안을 다스리고, 온화는 집안을 정제하는 근본이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0년 4월 전남 장성 출생 ▲67년 광주고 졸업 ▲72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72∼75년 육군복무 ▲75년 MBC‘뽀뽀뽀’ 진행 ▲76∼96년 MBC‘일요일 일요일밤의 대행진’ ‘사랑의 공개홀’‘우리가락 한마당’‘세월따라 노래따라’‘김병조의 생활한자’ 진행 ▲96년 4월 SBS 코미디 전망대 진행.11월 MBC‘우정의 무대’ 진행. ▲98년∼현재 조선대 초빙교수 ▲상훈 전국대학생화술경연대회 최우수상(70년), 우리들의 스타상(코미디부문), 국무총리표창(저축유공·84년),MBC연기대상(코미디 개그부문,85·88년) ▲주요 작품 수필집 ‘종가집 배추’ 영화 ‘자기 난 이렇게 산다우’ 등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9)활어·선어·싱싱회, 진실과 오류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9)활어·선어·싱싱회, 진실과 오류

    먹을거리만큼 살아가는 데 소중한 게 또 있을까. 그런데 열심히 먹기만 하지 밥상의 안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이 없는 게 우리의 세태다. 회(膾)만 해도 먹는 데는 열심이지만 그에 상응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해 ‘비싼 값 지불하고 값싸게 먹기’ 일쑤다. 우리들의 회 문화에 관한 상식을 점검할 필요성을 느낀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회가 이렇게 대중화된 건 단군 이래 처음이다. 바다나 강에서 회를 뜨기는 했어도 운반이나 저장문제 때문에 예전에는 제한적으로만 즐겼을 뿐이다. 물론 소 돼지 닭 같은 육식도 제한적 선택만 가능했다.1970∼1980년대가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이 엄청(?) 늘어난 시기였다면, 경제적 부가 일정하게 축적된 90년대부터는 해산물 소비가 급증한다. 이른바 웰빙 슬로건이 내걸리면서 건강식인 해산물이 보다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회에 관한 일반의 상식은 여전히 ‘바닥’이다. ●전치10주 중상 입은 생선 먹는 꼴 회의 문화적 우성은 역시 일본의 ‘사시미’다. 해양선진국 중에도 회를 사양하는 민족이 많은 반면, 일본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이를 정교하게 발달시켜 세계화에 성공하고 있다. 김치 없는 우리 식탁이 뭔가 빠진 듯하다면 횟감 없는 일본식탁도 쓸쓸한 풍경이리라. 일본인에게 회는 ‘라면’같이 일상적인 것이며, 이제 ‘사시미’와 ‘스시’는 만국공통어로 통용되고 있지 않은가. 서양인은 본디 회를 즐기지 않았다. 회 문화가 진출했다지만 아직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미국 동부의 코넬대학 같은 시골 대학촌에도 초밥집이 진출해 있으니 샌프란시스코 같은 해변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초밥집은 있는데 수조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 광저우 같은 유수의 해양도시를 가보아도 수조를 두고 횟감을 파는 음식점은 없다.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최대 규모의 어시장을 누비고 다녀도 수조는 없다. 의문이 풀린다. 펄떡거리는 활어를 그 자리에서 회 쳐 먹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점이다. 회는 살아있는 활어와 일단 죽여서 숙성시킨 선어로 구별한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확인 사살’해 그 자리에서 쳐낸 활어만을 굳게 신뢰한다. 그러나 먼 바닷가에서 시장이나 음식점으로 실려오면서 온갖 사투를 벌이고, 중간 유통업자를 거쳐 최종 소비처로 팔려가는 과정을 생각하면 우스갯소리로 전치 10주 정도의 뇌진탕에 골절상을 입은 소위 ‘중병 걸린 생선’을 먹게 되는 꼴이다. 바닷가에서 곧바로 옮겨온 물고기는 그대로 먹는 법이 아니다. 물고기도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므로 2∼3일쯤 지난 다음에 잡아야 제격인데, 사람들은 바로 도착한 놈이 좋다고 그저 믿어 버린다. 그래서 횟집에는 반드시 수조가 있어야 하지만,‘사시미의 나라’ 일본에도 살아있는 물고기만이 싱싱하다는 믿음은 없다. 회 문화는 일본에서 들여왔으면서도 이것만은 우리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일본인들은 ‘씹히는 맛’보다 미각 선호 한국인은 쫄깃한 횟감을 선호한다. 한마디로 ‘씹히는 맛’을 즐긴다. 그래서 갓 잡아 올린 놈을 즐긴다. 반면에 일본인들은 씹히는 맛보다 미각을 택한다. 생선회 전문가인 부경대 조영제 박사는 이를 양국의 식문화 차이로 설명한다. 우리는 넙치·우럭·농어 같이 육질이 단단하여 씹힘성 좋은 흰살 생선을, 일본은 방어·참치·전갱이 같이 육질은 연하지만 혀로 느끼는 맛이 좋은 붉은살 생선을 선호한다. 또 초밥과 횟감 비율이 8대2나 돼 ‘초밥을 먹기 위해 회를 먹는다.’는 말이 생길 만큼 초밥을 즐긴다. 반면에 우리는 2대8로 회 선호도가 높다. 따라서 초밥 즐기는 일본인이 활어보다 선어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어는 갓 잡은 활어보다 씹힘성은 떨어지지만 잡은 뒤 10∼15시간이 지나면 육질부의 이노신산이 많아져 맛이 극대화된다. ●선어·활어 장점 두루 살린 싱싱회 그렇다면 선어와 활어의 장단점을 두루 취할 방도는 없을까.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싱싱회. 싱싱회란 선어의 일종으로, 갓잡아서 위생적으로 손질한 뒤 냉동이 아닌 냉장 상태로 소비처에 공급하는 횟감을 뜻한다. 해양수산부 수산정책국 이인수 박사는 “해양수산부나 수협 등 전문가들의 노력에 비하면 세간의 인식이 전혀 바뀌지 않아 이런 시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싱싱회로 가야 하는 행로는 분명한데 인식의 문제이지요.” 눈 앞에서 퍼덕이는 놈만을 싱싱하다고 믿는 우리의 음식관을 일조일석에 바꿀 수 없어 엄청난 고비용을 치르는 중이다. 활어 운송비가 들고, 음식점에도 수조를 설치해야 하며, 물갈이 등 관리비용도 많이 든다. 당연히 유통 중의 폐사율도 높다. 또 내장이나 뼈, 머리 같은 부산물이 50%나 되니 불필요한 운반이 되고 말아 원가가 비쌀 수밖에 없는 활어문화에 단단히 발목이 잡혀 있는 셈이다. 횟집촌을 가다 보면 ‘마리당 9900원’ 식으로 적어 내건 가격표를 자주 보게 된다.500g 정도의 미숙어를 이렇게 파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이를 ‘싼 게 비지떡’인 줄도 모르고 선호한다. 성장한 1㎏ 이상 크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양식장 출하 때도 500g짜리 미숙어는 비싸게 팔리는 반면 오래 키워 맛이 있는 놈은 싸구려로 팔리는 엉뚱한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1㎏짜리를 시켜도 정량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소비자만 ‘봉’이 되고 있으니 우리 수산물도 정량화·규격화 단계로 들어서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최대의 싱싱회 공장인 포항의 한국빙온을 찾았다. 횟집을 연상하면 안된다. 어엿한 공장이다.1일 5∼10t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수조에서 건진 회는 즉살해 얼음물에 씻는다. 내장을 바르고, 탈피기로 껍질을 벗긴 뒤 다시 얼음물에 채운다. 살균한 타월로 말아서 탈수하고, 적절하게 다듬어 진공포장해 얼음을 재워 냉장 상태로 유통시킨다. 직원들은 위생복을 입고, 소독을 해가면서 공정에 임한다. 바닷가에서 갓 잡아 퍼덕거리는 횟감을 그대로 위생처리, 일사불란하게 유통시키는 시스템이다. 이곳 장석원 대표는 “위생적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식품이 절대 안전하고, 싸게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방식으로 회를 먹을 경우 최고 30∼40%선에서 절반까지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술집 분위기인 횟집에 주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쑥스러운 경우도 많다. 저변 확산을 위해 가정에까지 회가 공급되려면 현재의 횟집이나 횟감 판매구조로는 어림없다. 아무리 싱싱하다 해도 직접 회를 뜰 수 있는 기술은 아무나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선어 공급은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이점이 크다. 또 연간 한국인의 횟감 소비액이 6조∼7조원에 달한다고 볼 때 엄청난 이득이 창출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눈앞에서 퍼덕거리는 횟감만을 좋아할까. ●자연산 선호는 반환경적 습속 한번 잘못 길들여진 문화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창해를 누비는 싱싱한 바닷고기에 관한 ‘상상의 공동체’가 우리의 뇌리에 흡사 꿈처럼 박혀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이렇다. 창해를 누비는 싱싱한 물고기는 거의 없다. 횟감의 90% 이상은 양식이다. 자연산은 잡히더라도 소량일 뿐더러 자연산을 마구잡이로 훑어내는 소형 기선저인망(일명 고테구리)은 어족보호 차원에서 금지시켜야 하기 때문에 자연산 선호 자체가 반환경적인 습속이기도 하다. 어차피 이제는 양식어류를 먹고 살아야 한다. 자원이 절대적으로 줄어든 탓도 있지만 한국인들의 횟감 선호도가 급등한 데다 늘어난 외식문화의 수요까지 감당하려면 자연산으로는 어림도 없다. 따라서 과학적·합리적으로 양식업을 확충해야 하며, 소비와 유통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바닷가 횟집의 엄청난 생태오염 혹 바닷가에 즐비한 횟집이 야기하는 엄청난 생태오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환경운동단체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민중이 먹고 사는 문제라는 단 한가지 이유로 횟집에서 배출하는 엄청난 부산물과 박테리아로 오염된 수조의 물, 쓰레기 분리수거 등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하다. 더 이상 이런 바닷가 횟집들이 낭만의 대상이어서는 안된다. 전세계 어디에도 이만한 물량으로 수조가 즐비한 바닷가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가 한국이 회 문화의 세계적 선진국이라서 용인되는 것인가! 무를 당근으로 알고, 쑥갓을 상추로 알고 먹는 소비자는 없다. 그런데 ‘모둠회’라는, 내용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회를 먹는 소비자들이 의외로 많다. 횟집 주인은 소비자에게 무슨 회인지를 분명히 설명해 줄 의무가 있다. 횟감의 생산자 실명제가 이뤄지지 않아 항생제에 찌든 값싼 중국산이 슬쩍 끼어든다. 어디에서 누가 잡았는지, 어느 양식장에서 누가 길렀는지도 모른 채 소비자들은 그저 먹고 값만 치른다. 지난 4월22일, 국회에서는 이영호 의원이 주도하고 바다포럼과 한국수산회 등이 주최한 ‘비브리오패혈증을 법정전염병에서 제외시키자.’는 요지의 입법공청회가 열렸다. 여름철만 되면 비브리오경계령이 발동되어 전국의 횟집들은 문을 닫는다. 비브리오는 노약자 등 신체가 약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식중독일 뿐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할 병증이 아닌데도 언론 등의 과장 보도 때문에 국민들이 ‘공포의 전염병’으로 잘못 알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익히지 않은 횟감을 불결한 곳에서 조리해 판다면, 비브리오패혈증 등의 병이 생길 것은 자명하다. 조리해 먹는 육고기와 달리 횟감은 말 그대로 ‘날것’이다. 열악한 음식점에서 비위생적으로 조리해 내다 보면 식품안전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더러운 그릇, 씻지 않은 도마, 병균이 들끓는 행주 등을 누가 다 감시하랴. 이제 원산지 표기가 분명하고, 정량을 지키고, 세무서에서 세수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고, 소비자는 위생적인 양질의 회를 눅은 가격에 먹고, 양어장은 안정적 판로를 확보하고, 비브리오 파동 같은 위험부담에서도 벗어나는 ‘윈윈 전략’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거제도에서 대형 양식장을 경영하면서 싱싱회를 맨 처음 시작해 일본으로 수출하고, 한때 도쿄 스즈키 수산시장의 최대판매량까지 올렸던 일운수산 김산세 회장의 지적을 아프게 들어야 한다.“회를 어디 배 채우려고 먹습니까? 맛으로 승부해야죠. 수산양식도 미래 전략산업으로 거듭나야 하고 활어만 선호하는 소비자도 이제는 생각을 고칠 때가 됐다고 봅니다.” 급격한 변화의 요구는 이제 우리의 식탁까지 당도해 있다.
  • 펀드·투자보험 어때요

    적금식으로 푼돈을 불입해 주식 등에 투자하는 적립식펀드와 보험에 투자개념을 덧붙인 변액유니버셜보험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꺼번에 큰 돈을 벌기 위한 금융상품이라기보다는 은행의 낮은 금리를 피해 장기적으로 목돈을 마련하기 위한 상품이어서 대체로 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두 상품 모두 펀드이기 때문에 원금이 손실될 우려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인기 상품을 정리한다. ●ING생명 무배당 파워 변액유니버셜보험 펀드식 장기 투자와 보험의 보장 기능을 함께 갖춘 변액유니버셜보험이다. 만 15세에서 65세까지 가입할 수 있으며, 가입금액은 최저 2000만원에서 11억원까지다.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해약환급금의 50% 범위에서 연 12회까지 중도 인출이 가능하다. 자금사정에 따라 보험료를 더 내고, 덜 낼 수도 있다. 투자성향에 따라 안정형과 수익형 등의 펀드를 선택해 연 12회까지 바꿀 수 있다. 최저 사망보험금을 보장한다. 펀드 운용은 실력을 인정받는 프랭클린템플턴인베스트먼트 등에서 맡는다. ●대한투자증권 i-사랑 적립식펀드 인터넷과 ‘아이사랑’이라는 의미를 함축시켜 상품명을 정했다. 적립식 장기투자의 장점과 인터넷의 편리성 및 저비용성을 가미한 상품이다. 인터넷 판매로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의미다. 우량 블루칩에 50%, 국공채 및 우량회사채에 50%를 투자하는 혼합형이다. 연 보수율은 1.2%로 다른 적립식펀드 보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원클릭펀드 자동매입시스템’을 채택, 펀드 가입과 동시에 은행연결 계좌가 자동으로 부여된다. ●대한생명 다모아유니버셜보험 방카슈랑스 전용으로 입출금이 자유로운 보험이다. 은행 고객의 특성분석을 통해 개발됐으며, 국민은행에서 판매된다. 연 12회까지 보험을 해약하지 않고 은행통장처럼 긴급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추가납입을 통해 수익률을 증대시킬 수도 있다. 가입후 10년이 지나면 평생동안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성인은 물론 자녀까지 보상을 받는 가족보험의 기능을 지녔다. 고객 선호도에 따라 상품 종류가 보장형, 자녀형 등으로 다양하다. 월 보험료 100만원 이상의 고객에게는 보험료의 1% 할인 혜택을 준다. ●푸르덴셜투자증권 글로벌부동산펀드 이달 초 판매를 시작한 지 12일만에 1024억원의 폭발적인 판매실적을 보인 신상품이다. 미국 푸르덴셜금융의 부동산전문 운용회사인 PREI가 운용하는 해외 부동산투자 펀드다. 세계 각국의 부동산 증권에 골고루 분산투자하면서 물가상승에 따른 추가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리츠투자는 부동산시장의 확대와 맞물려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투자다. 환매수수료가 없이 일일 환매가 가능하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교보생명 다사랑유니버셜CI보험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거나 수술이 필요할 때 보험금의 일부를 미리 지급받아 치료비로 활용하는 CI보험의 장점과 보험료 납입은 물론 적립금의 중도 인출이 자유로운 유니버셜보험의 특징이 결합된 신종 상품이다. 수술을 받을 때 약정된 사망보험금의 최고 80%까지 미리 받는다. 사망시에는 나머지 보험금에 공시이율에 따른 가산보험금을 더한 금액이 유가족에게 지급된다. 선지급 보장기간은 80세까지다. 정해진 월 보험료의 두배까지 더 납입하면 여유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만 15세부터 60세까지 가입된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생각뉴스] 공교육 살린다는 ‘내신강화’가 사교육 조장?

    요즘 고교 1학년 학생과 학부모들이 중간고사로 ‘난리법석’이다. 고1이 대학에 들어가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부터 내신이 지금보다 강화되면서 생긴 걱정 때문이다. 학생들은 내신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지 못할까봐 첫 시험인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르기 전부터 전전긍긍하고 있다. 내신에 반영되는 학교시험은 모두 12차례. 한 번이라도 시험을 망치면 큰 일이라도 날듯 모든 과목에 목을 매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의 이같은 걱정은 2008학년도 대학별 전형계획을 알 수 없는 데서 비롯된다.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 대학별 전형에서 어느 대학이 어떻게 내신을 반영할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교육부의 계획은 수능과 대학별고사, 내신이 3박자를 이뤄 다양한 대학별 전형을 실시하고, 사교육에 밀리는 고등학교 교실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타나는 현상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학생들의 발걸음은 다시 사교육으로 향하고 있다. 대학별 내신반영 기준이 감감 무소식인데 일단 이번 중간고사부터 잘 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탓이다. 서울 대치동 J학원의 고1 수강생은 지난해에 비해 20% 이상 늘었다. 중계동 H학원도 마찬가지다.H학원은 중간고사 한 달 전부터 수준별로 학교별 상·중·하로 반을 나눠 내신에 대비하고 있다. 서울의 K학원 평가실장은 “학원들은 주변 학교의 몇 년간의 기출문제를 이미 입수해 분석을 마쳤고, 심지어 교사의 출신학교와 뭘 중점적으로 강조하는지 교사의 성향까지 파악하는 등 ‘족보’를 만들어 활용한다.”고 말했다. 학교에도 비상이 걸렸다. 서울 B고에서는 기출문제와 비슷한 문제를 출제하지 않도록 과목별 교사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학원들의 광고에 학생들이 휩쓸리지 않도록 기출문제는 물론 참고서까지 철저히 검토해 문제를 출제했다.”고 밝혔다. 태릉고 신철식 교감은 “중하위권 학생들이 불안감에 학원으로 몰리고 있지만 효과는 없을 것”이라면서 “중간고사 결과를 보고 난이도와 변별력 조정에 더 신경쓸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일교육컨설팅 김영일 원장은 “대학별고사와 내신·수능 가운데 어느 하나가 부족해도 다른 부분에서 만회할 기회를 줘야만 불안감을 씻을 수 있다.”면서 “교육부가 나서서 빨리 대강의 대학별 계획이라도 알려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재천 이효용 박지윤기자 patrick@seoul.co.kr
  • [인간시대] 시각장애인 등산 돕는 선인자원봉사단 김종민 대표

    [인간시대] 시각장애인 등산 돕는 선인자원봉사단 김종민 대표

    눈을 한 번 감아보자.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보자. 먼저 다가오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집이나 직장 등 매일 ‘도장’을 찍는 곳도 더 이상 익숙한 공간이 아니다. 몇 걸음 걷지 못해 벽에 부딪히거나 넘어지기 쉽상이다. 이것이 일반인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들의 현실이다. 등산조차도 이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벽이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의 등산을 돕는 선인자원봉사단은 어둠 속에 소외돼 있는 이들에게 희미하지만 소중한 희망의 불빛이다. 봉사단 대표 김종민(47·송파구 가락동)씨는 3년째 봉사단의 ‘등대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 ●3년째 이바지 ‘아름다운 역무원’ 김씨는 지하철 2호선 강남역사에 근무하고 있는 서울시지하철공사 소속 공무원이다. 지난 2003년 2월 처음 자원봉사에 발을 들여놨다. “40대 중반이 되자 ‘이뤄놓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제2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에 송파자원봉사센터를 찾게 됐죠.” 선인자원봉사단은 직장 산악회에서 활동해 왔던 김씨를 중심으로 그해 8월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출범했다. 선인자원봉사단은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30여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선인자원봉사단은 매주 목요일마다 10여명의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등산을 떠난다. 인천 등 수도권은 물론 대전에서도 매주 올라올 정도로 장애인들에게는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경기도 포천 왕방산, 양평 봉미산, 강원도 춘천 봉화산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80차례 넘게 산행을 다녀왔다. 지난 2월에는 설악산 등반까지 마쳤다. 시각장애인들은 앞장 선 봉사자의 배낭을 잡고 산을 오른다. 봉사자들은 ‘바위가 있으니 발을 조심하라.’는 식으로 그때그때 지형지물을 설명해 준다.3년째 한 몸처럼 산을 타다 보니 봉사자들과 시각장애인들은 모두 ‘가족’이 됐다. 김씨는 “장애인들이 ‘가족보다 더 가깝다.’는 말을 할 정도”라고 흐뭇해했다. 김씨의 가족은 이미 ‘봉사 가족’이다. 태영(17), 훈영(15) 두 아들도 수업이 없는 방학 때마다 봉사단에 합류한 지 오래다. 매주 넷째주 일요일 아이들과 함께 송파구 거여동의 장애인 시설인 소망의 집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아내 이순옥(45)씨도 산행 때마다 간식을 챙겨 주는 김씨의 든든한 ‘빽’이다. ●봉사로 하나 된 가족 등산 봉사를 하면서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지난해 8월 경기도 가평의 연인산으로 산행을 갔을 때 김씨는 그만 무릎을 다쳤다. 징검다리를 뛰어 넘다가 뒤따르던 장애인이 함께 뛰지 않고 김씨의 배낭을 잡은 채 서 있는 바람에 김씨는 그만 뒤로 고꾸라졌다. 김씨는 “장애인이 미안해할까봐 아픈데도 아무 말도 못 했다.”고 말했다. 첫 봉사 때 만났던 40대 여성 장애인에게서 시력을 잃고 극복하는 과정을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렸던 기억도 그에게 ‘등산 공양’을 계속 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봉사단원들은 주부나 퇴직자들이 대부분이다. 직업을 갖고 있는 단원은 김씨가 유일하다. 평일에 봉사를 한다는 것은 일반 직장인들에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씨가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이 부분이다. 주간 근무 때는 봉사를 위해 목요일을 한 주의 유일한 휴일로 잡는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하는 야간 근무 때는 아예 잠을 포기하고 복지관으로 달려와야 한다.2년 가까이 그러다 보니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산행 봉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시각장애인들과 맺은 인연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일반인들이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가야 ‘장애인=정상이 아닌 사람’이라는 편견이 없어질 수 있다.”면서 “작은 힘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 봉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게 웃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1982년 5월 19일 ‘기업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고의 날일 것 같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날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고,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 사장에 그를 앉히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가 그의 나이 31세. 현대그룹 후계구도에서 형들보다 한발 늦게 출발한 몽준씨가 가장 먼저 부친에게 인정받은 비결은 뭘까. 고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립 25주년 행사에서 그 배경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저서 ‘기업경영이념’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어떤 젊은 경영진보다 확실히, 모든 것을 잘 분별해서 회사를 끌고 나갈 겁니다. 우리 아이들간에도 서열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가족회의를 열어 몽준 사장이 충분히 직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이에 앞서 몽준씨가 미국 MIT 석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경영서적 ‘기업경영이념’ 서문을 읽고 “정말 잘 썼다.”며 “사장 자리에 앉아도 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몽준씨는 훗날 가장 아끼는 그의 저서로 ‘기업경영이념’을 꼽으면서 “서문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곁들이기도 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부친에게 기업가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던 점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2002년 12월 18일 ‘정치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악의 날일지 모른다. 그는 이날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의 공조 파기를 선언, 사실상 ‘백의종군’의 첫 발을 내디뎠다. 정권의 공동 주인으로 향후 5년간 막강한 정치적 실세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마다한 셈이다. 이 때가 ‘하늘의 뜻을 알수 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갓 지난 나이(51)였다. ●아버지에게 바가지 씌운 아들 정몽준(54). 현대가(家)의 여섯번째 아들.5선의 중진 의원.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산규모 재계 9위(지난해·공기업 제외)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지분 10.80%). 국내 재벌가에서 정 의원만큼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도 드물다. 일각에서는 “잘난 집안에 태어나 순탄하게 성장한 대가”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정 의원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에서 3년 가량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장충초등학교와 중앙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는 초·중학교 시절 놀기를 좋아하고, 장난이 심했다고 한다. 중학교 담임 선생이었던 임환씨는 “몽준이는 놀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수업을 빼먹고 야외로 놀러갔다가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면서 “전혀 부잣집 티를 내지 않았으며, 학교 도서관을 지을 때 시멘트 1만포대를 지원받은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고 정 명예회장임을 알게 됐다.”고 술회했다. 정 의원의 학생시절 별명은 ‘꺼벙이’다. 큰 키에 소탈하고, 겸손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부친한테는 다른 형제처럼 어려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하곤 했다. 부친에게 ‘바가지’ 씌운 일화 한 토막.1970년대 초반 어느 날.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한잔 쏘겠다며 명동 생맥주 골목으로 모시고 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오랜만에 접하는 생음악과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에 흥에 겨워했다. 자리가 파할 무렵,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1차는 제가 샀으니,2차는 아버지가 사시라.”고 제안했다. 고 정 명예회장도 유쾌한 기분으로 흔쾌히 응했다.2차 행선지는 정 의원이 정한 강남의 한 술집. 그러나 2차가 끝나고 계산서를 받은 정 명예회장은 술값에 놀랐다. 먹은 것에 비해 족히 여섯배의 술값이 청구됐기 때문. 그렇다고 재벌 회장이 술값을 놓고 시비를 걸기도 뭐했지만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종업원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아드님이 전에 드셨던 외상 술값까지 계산하라고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허허 이것 참….”고 정 명예회장은 아들에게 된통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 의원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대에 진학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울산으로 변형윤, 이현재 교수 등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초청해 크게 ‘한턱’을 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우리 몽준이가 혹시 사무착오로 합격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면서 우리 아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현대 고위 관계자가 밝힌 허물없는 부자관계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일화는 이렇다.“한번은 고 정 명예회장이 아들들과 골프를 치는데 티샷을 하고는 먼저 그냥 걸어갔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머뭇거리다 채를 들고 뒤따라 가는데 유독 정 의원만 얼른 공을 놓고 티샷을 했죠. 그러자 고 정 명예회장이 ‘저놈∼.’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아내 자랑하는 ‘팔불출’ “나는 나의 아내가 고맙고,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친구들은 종종 내가 대통령 감이라기보다 내 아내가 ‘퍼스트 레이디’ 감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아내는 바쁜 나의 생활을 잘 이해해 주고, 조용히 내조를 하는 스타일이다. 아내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밖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정 의원이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밝힌 부인 김영명(49)씨에 대한 평이다. 정 의원은 1978년 여름 넷째 형수(이행자·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 부인)의 중매로 영명씨를 미국에서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의 첫 인상은 이랬다. 영명씨는 “우선 키(정몽준 182㎝·김영명 174㎝)가 커서 좋았어요. 제 키가 큰 편이라 어머니가 ‘너는 키 큰 신랑감이 없으면 시집도 못 갈거다.’고 곧잘 농담을 하곤 했어요. 첫 인상은 나이 차이가 다섯살이나 나서 그런지 듬직했어요. 믿고 의지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벌가 사람답지 않게 소탈한 것도 좋았고요.” 정 의원은 “약속 장소에 나갔는 데 키 큰 여자들이 쭉 지나가기에 미국 사람들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나에게 오더라고요.”고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이들은 틈틈히 테니스를 치며 1년 가량 연애끝에 잠시 귀국해 서울 정동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영명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2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친의 외교관 활동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17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 웨슬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웨슬리대학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상원의원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전통의 명문 대학이다. 영명씨는 외교관인 부친을 닮아 사교성이 뛰어나다.‘88 서울올림픽’ 유치전에서는 고 정 명예회장을 현장에서 보좌했고,1992년 대선 때는 변중석 여사를 대신해 시아버지의 파트너 역할을 했다.‘2002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부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행사장에서는 미소와 화술로 친분을 쌓기도 했다.‘미스 스마일월드컵’이라는 애칭은 이 때 얻었다. 이 때문인지 정 의원의 부인 자랑은 유별나다.‘김영명이 없으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계속되는 자랑 하나.“아내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 유머를 곁들인 자연스러운 영어는 외국에서 처음 만나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할 때 곧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곤 한다. 그동안 4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내는 아이들이 크자, 뜻있는 분들과 함께 우리의 ‘옛’것을 ‘올’바로 알자라는 의미를 가진 ‘예올회’를 만들어 문화재 보존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명씨가 밝힌 애처가 해프닝은 이렇다.“첫 아이를 가졌을 때였어요. 입덧이 심했던 제가 걱정스러웠던지 남편은 며느리들만 모인 자리에 와서는 제게 ‘밥 먹었니.’하고 묻는 거예요. 좀처럼 없는 일이라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한마디 때문에 남편은 ‘애처가’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 꼬리표는 지금까지 따라 다닙니다.” 그도 신혼 초에 시아버지인 고 정 명예회장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철부지 며느리 시절, 저는 식사 중에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 불쑥 끼어들어 참견을 하곤 했어요. 아버님이 어느 날 저에게 ‘밥 먹을 때 말을 많이 안하는 게 좋은 거다.’며 조용히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자녀는 2남2녀. 장남인 기선(23)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올 초 아버지의 뒤를 이어 ROTC 장교로 임관했다. 장녀 남이(22)씨는 연세대를 휴학하고, 현재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유니버시티에 유학 중이다. 차녀 선이(19)씨도 미국 디어필드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막내 예선(9)군은 경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영명씨는 늦둥이인 막내 임신과 관련해 병원에서 무안당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임신해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잖아요. 한번은 의사가 ‘아들이 없으세요. 왜 이렇게 애를 많이 낳으세요.’라고 물어 난감한 적이 있었어요.” 시중에는 예선이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축구 예선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서 이름을 예선이라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 의원은 최근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와 돌림자 ‘선’을 합쳐 예선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정치인 정몽준 “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은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였고,1984년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출마하려고 했다.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가 나가면 여당 의원이 떨어진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나는 그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단념해야 했다. 하지만 공적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흔들림없이 지켜온 가장 기본적인 정치철학이다.”정 의원이 밝힌 정치 입문의 배경이다. 정 의원은 1988년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지금은 5선의 중진 의원으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한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반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본 정치인 정 의원은 어떨까. 지난 대선기간 내내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정 회장도 ‘피’는 어쩔 수 없었던지 그 속내를 내보인 적이 있었다.“몽준 의원은 우리 형제들 가운데 제일 똑똑하고 잘 생겼다. 미국 MIT 대학원도 졸업하고,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 발언 이후 정치권으로부터 호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정치인 정 의원의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린다. 일각에서는 직선적이고 엄격하다고 지적한다. 그를 보좌했던 비서관의 얘기다.“정 의원은 성격이 급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정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합리적이고 매너가 깨끗하다는 평이다.“정 의원은 서구식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직원들이 떠나는 차에 인사를 하면 ‘왜 차에다 대고 절을 하느냐. 하지 말라.’고 말린다. 또 비서를 시키지 않고 직접 자신이 동료 의원에게 전화를 한다.”며 다른 전직 비서관이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브레인 민계식(63)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가장 부지런한 CEO, 백발의 마라토너 CEO로 불린다. 아침 6시 출근, 새벽 2시 퇴근하는 일과를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서를 퇴근시키고 저녁 6시부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새벽까지 사업구상이나 신제품 개발 계획에 열중한다. 그의 이런 노력은 국내외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150편의 논문을 발표토록 했으며,48건의 국내 및 국제특허를 보유토록 했다. 우주항공학 및 조선공학(석사), 해양공학(박사) 등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전문지식은 현대중공업의 연구개발(R&D) 부문을 업그레이드시켜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 부회장은 또 6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최고기록은 2시간 23분 48초. 비록 20대 초반 시절에 일궈낸 기록이지만 지금도 2시간대의 기록을 내고 있다.42.195㎞의 완주기록도 100회를 넘었다. 유관홍(60) 현대중공업 사장은 그룹내에서 경영 합리화의 귀재로 통한다.1999년 침체에 빠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부문의 사업본부장을 맡아 세계 각지를 직접 뛰는 영업활동을 전개,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결과 만성적자였던 건설장비 부문을 2001년 국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국내 1위의 건설장비 업체로 탈바꿈시켰고, 중국시장 점유율 25%를 기록하는 중국 최대의 건설장비 공장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이런 경영능력을 두고 지난해 6월 미국의 권위있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유 사장을 ‘기업회생 전문가’라고 평했다. 이연재(63)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1976년 현대중공업 간부로 입사한 이래 30년간 조선과 해양플랜트의 해외영업 부문에서 일해 왔다.1999년 부도 위기에 처했던 옛 한라중공업을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하면서 대표이사로 선임돼 흐트러진 조직을 안정시켰다. 단기간에 70여척의 선박을 수주했으며, 중단된 사원 복지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여 사원아파트와 스포츠문화센터 등을 조성했다. 파산 직전까지 이르렀던 회사를 2001년부터 4년 연속 흑자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최길선(59) 현대미포조선 사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최 사장은 설계·생산·기획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조선 현장에서 33년을 보낸 최고의 조선전문 경영인이다.‘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아래 내실을 강조한다. 최 사장은 올해 슬로건을 ‘창사 30주년, 새로운 도약의 해’로 선포하고, 선박 60척 생산체제 구축을 마련하는 등 제 2도약을 위한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현대중공업 탄생 일화 ‘옥스퍼드 박사가 낳은 현대중공업’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평소에 즐겨 썼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곳이 현대중공업의 설립 신화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고 정 명예회장의 ‘원맨쇼’였다. 고 정 명예회장은 1971년 조선소 차관 도입을 위해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즈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듣도 보지도 못한 한국의 작은 회사가 언감생심 어딜 넘보는 것이냐.’는 바클레이즈 은행의 태도에 기가 질렸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기댄 곳은 당시 기술협조 계약을 맺은 영국의 A&P 애플도어 엔지니어링사. 그는 500원짜리 지폐로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감동시켰다.“이것은 한국 지폐입니다. 여기 그려진 것이 거북선이죠. 한국은 이미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든 실적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의 조선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1800년대이니 한국은 무려 300년이나 앞선 셈입니다.” 그는 롱바톰 회장의 도움으로 바클레이즈 은행 부총재를 만났다. 그러나 콧대 높은 영국 은행의 부총재를 설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옥스퍼드 박사’ 일화는 여기서 나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어제 제가 이 사업계획서를 들고 옥스퍼드대학에 갔더니 한번 들쳐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주더군요.”라고 말했다. ‘옥스퍼드 유머’에 부총재는 껄껄 웃으며 “옥스퍼드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이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거요. 당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당신의 전공은 유머 같소. 우리 은행은 당신의 유머와 함께 이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내겠소.” 고 정 명예회장은 ‘거북선 지폐’와 ‘옥스퍼드 박사’로 바클레이즈 은행 벽을 넘었지만, 아직 영국 수출보증기구(ECGD) 총재의 보증을 받아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그러나 이것도 울산의 초라한 백사장 사진 한장 들고 그리스 선사인 ‘선 엔터프라이즈’사의 리바노스 회장을 설득, 선박을 수주 계약함으로써 무사히 통과했다. 이로써 세계 조선 역사상 최초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가 동시에 진행하는 신화가 나오게 됐다. 고 정 명예회장과 리바노스 회장이 당시 맺은 인연은 지금도 대(代)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MJ 처가의 ‘화려한 혼맥’ 정몽준 의원의 처가인 고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가계도를 보면 한국 상류사회의 ‘족보’를 엿볼 수 있다. 슬하에 2남 4녀를 둔 고 김 장관과 송두만(83) 여사는 자식교육 뿐 아니라 혼사까지 성공한 케이스. 자녀 모두 외교관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영어와 일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 특히 장녀인 영애(60)씨와 차녀인 영숙(59)씨는 일본 최고의 여성 사립명문인 세이신대학을 졸업했다. 장남인 대영(57)씨는 미국의 암허스트대학을 졸업했으며, 차남인 민영(51)씨는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자녀 가운데 재계 가문으로 시집간 이는 삼녀인 영자(55)씨와 막내인 영명(49)씨. 영자씨는 GS그룹의 허씨가인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결혼했다. 허 회장의 형제로는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과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이 있다. 또 허창수(57) GS그룹 회장과는 사촌간이다. 허 회장의 부친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LG그룹 경영의 한 축을 맡았던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맏형이다. 고 허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삼성물산의 창립멤버로 참여,LG 구씨가와 손잡은 고 허준구 명예회장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영명씨는 정몽준 의원과 1979년 결혼, 현대가의 일원이 됐다. 이로써 고 김 장관의 집안은 국내 대재벌인 삼성과 현대,LG,GS가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차녀인 영숙씨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인 손명원(64)씨와 결혼했다. 손씨는 30대 초반에 ‘손컨설팅 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현대미포조선과 쌍용자동차, 맥슨전자에서 CEO(최고경영자)를 역임했다. 그는 현재 스카이웍스솔루션 코리아 고문이다. 장녀인 영애씨는 자수성가한 국제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로 미국 모건스탠리의 부사장이다. 남편인 최융호(62)씨는 해양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제너럴 마리타임 사장이다. 장남인 대영씨는 부친인 고 김 전 장관의 아호(海吾)를 딴 해오실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차남인 민영씨는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부인인 정다미(44)씨도 명지대 교수다. 김 전 장관의 집안은 또 언론계와도 각별하다. 손녀 사위들이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셋째 사위인 허 회장의 장녀인 유정(31)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준오(31)씨와 결혼했다. 둘째 사위인 손 고문의 차녀인 정희(31)씨는 1999년 헤럴드미디어 사장인 홍정욱(35)씨와 화촉을 밝혔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열린세상] 독도가 북핵을 만났을 때/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북핵문제는 북한의 회담불참 선언과 미국의 회담복귀 요구가 평행선을 그은 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과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계기로 외교전쟁이 진행되면서 급속도로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한국이 방위비분담금 축소 의사를 밝히자 주한미군은 한국인 근로자의 대량해고 방침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 발언은 한·미동맹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불편한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래저래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일간 독도를 둘러싼 갈등은 최근 몇주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로 자리잡았다. 연일 수많은 시위 군중이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일본대사 추방과 독도 사수를 외치며 데모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하기까지 하다. 일본총리 화형식과 함께 시위대가 손가락을 자르는 모습에서는 독도가 우리땅임을 확인하는 확고한 결의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독도 관련 시위현장을 보면서 하나 흥미로운 것은 우리 사회의 좌우, 진보와 보수가 모두 동일한 목소리를 내면서 하나가 되어 결의를 다진다는 점이다. 대북정책을 포함하여 한·미관계와 주한미군, 이라크 파병 등 거의 대부분의 외교안보 이슈에서 진보와 보수는 이른바 남남갈등이라는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도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접근법과 해법은 놀라울 정도로 상이했고 양극단을 달리곤 했다. 그런데 독도문제가 터져 나오자 우리나라의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심지어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모두 똑같은 분노와 결의를 표출하는 것이다. 일본대사관 앞에 반핵반김 단체 회원과 한총련 및 통일연대 회원들이 같은 목소리로 일본 규탄을 하는 모습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독도문제에 관한 한 남남갈등이 무색할 정도로 한목소리를 냈지만 여전히 북핵문제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진보진영은 미국의 대북 무시 정책과 협상의지 결여를 비판하면서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 요구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반면 보수진영은 북한의 핵카드가 협상용이 아니라 핵보유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인식하에 북한의 강경노선이 사태를 악화시키므로 북한의 태도변화가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독도 문제에서는 보수 진보의 구분 없이 일본을 비판하는 똑같은 입장을 보이지만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반미와 반북이 강조되면서 서로 다른 인식과 해법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독도 문제만을 따로 떼어 이야기할 때는 소리 높여 반일을 외치던 보수진영이, 독도와 북핵문제가 섞여서 다뤄지면 일부이긴 하지만 딜레마에 빠져 내심 반일의 정도가 약해지곤 한다. 독도와 북핵 중 어느 것이 더 시급한 것이고 따라서 일본과 북한 중 어느 편이 더 적대적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얼마 전 필자가 토론자로 참석한 북핵관련 세미나에서는 독도문제보다 북핵문제가 보다 사활적인 안보 이슈라면서 독도 문제를 이유로 북핵을 해결하기 위한 한·일공조가 약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즉 보수진영의 입장에선 독도로 인해 북한을 압박하는 한·일공조가 흔들리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고민이 존재하는 것이다. 독도문제를 따로 고민하면 일본의 책임을 묻고 비판할 수 있지만 독도와 북핵문제가 같이 고민되면 일부 보수진영은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더 큰 나머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이 밉긴 하지만 그것이 자칫 북핵전선에서 한·일간 공조를 해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특히나 독도문제를 놓고 남북공조의 필요성이 거론되는 상황은 더더욱 보수진영에 용납하기 힘든 것이 된다. 북한 때리기를 위해 한·일공조가 더 필요한 마당에 독도 때문에 남북공조로 일본규탄을 한다면 이는 우리 보수진영에 매우 난처한 지경이 될 것이다. 민족보다 반공이 더 중요했고 반공을 위해서라면 친일파 등용도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광복 후 역사가 오버랩되면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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