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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서울시민생활체육대회 개막

    2005 서울시민생활체육대회 개막

    ‘2005 서울시민생활체육대회’가 열린 22일 서울 효창운동장은 하루 종일 참석자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25개 구청 3만여명의 주민들은 빗줄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역 대표 선수’로 운동장 곳곳을 누볐다. 그러나 주최측의 미숙한 대회 운영과 지나친 경쟁심에 함부로 언성을 높이는 일부 참가자들로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우리가 싸우러 나왔냐.”는 불만까지 터져나왔다. 준비 안된 대회는 화합의 장을 ‘이전투구’장으로 둔갑시켰다. 서울시민의 건강과 화합의 한마당 축제 ‘2005 서울시민생활체육대회’가 22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막이 올랐다. 이번 대회는 서울특별시생활체육협의회 주관으로 22일과 29일 이틀 동안 효창운동장 등 서울시내 운동장에서 열린다.25개 구청이 모두 참가하는 서울 시민의 ‘열린 올림픽’인 셈이다. 특히 기존의 시장기대회가 각구 대항전으로 확대된 첫 행사다. 서울시민들의 참여와 호응 속에 모두가 하나 되는 축제의 장으로 열리게 된다. 이날 개막식은 25개 구청 3만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이의민 서울특별시 생활체육협의회장은 “생활체육에 참여하면서 심신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면서 “경쟁이 아닌 협동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공동체 문화를 가꿔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서울시장도 “주5일 근무제 확산과 여가 선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시민들이 생활체육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서울시도 지역별 생활체육교실 운영과 생활체육 전용 공간 확충 등을 통해 생활체육 활성화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크게 4부문으로 나뉜다. 일반 시민들이 참여해 구 대항전으로 이뤄지는 시민참여부문은 단체 줄넘기, 줄다리기,10인11각달리기,20인 승부차기, 체조경연대회, 구 대항 응원전으로 이날 펼쳐졌다. 동호인부문은 축구, 배드민턴, 족구, 탁구, 태권도 등 모두 13개 종목으로 29일까지 한강시민공원 등 시내 곳곳에서 열린다. 이밖에 전남, 강원, 충남, 경북, 제주도 등 5개 도와 함께 축구 등의 경기를 하는 시도교류부문과 대학동아리부문도 개최된다. 폐회식은 31일 오전 11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시상식과 함께 열릴 예정이다. 이두걸 정은주기자 douzirl@seoul.co.kr ■환호·탄성 온종일 후끈 ●구로 에어로빅팀 ‘춤짱’ 등극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선율이 흘러나왔다. 무대 밑 수천명의 관객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파란색과 빨간색, 초록색 티셔츠에 흰 바지 차림 40명의 구로구 주민자치프로그램센터 에어로빅팀은 힙합이 가미된 역동적인 체조를 선보이며 한순간에 좌중을 휘어잡았다. 이번 대회 시민참여종목의 ‘꽃’은 생활체조경연대회.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30여개 팀들은 흥겨운 음악과 몸짓으로 대회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날 정상에 오른 구로구 주민자치프로그램센터 에어로빅팀은 오류2동 주민들이 중심이 됐다.30∼40대 주부들로 이뤄진 이들은 대부분 동 에어로빅 강좌를 몇년째 수강하고 있다. 이젠 눈빛만 봐도 호흡이 척척 맞을 정도다. 그러나 이들도 대회를 위해 강행군을 계속해 왔다. 저녁 식사를 마무리하고 밤 11시까지 한 달이 넘도록 훈련에 몰입했다. 지난 20일 오후 9시에는 지하철 1호선 오류역 야외무대에서 리허설까지 가졌다. 팀 안무를 맡은 김민(36·여)씨는 “우승은 그동안 흘린 땀의 소중한 결실”이라면서 “어르신들 행사 때 에어로빅 공연을 갖는 등 봉사활동도 하면서 지역사회로부터 받은 사랑에 보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동과 마포도 우승 강동구는 10인 11각 달리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어깨춤을 추며 기쁨을 만끽했다. 차가운 봄비도 달콤하게만 느껴졌다. 이갑순(51)씨 등 여성 4명, 남성 6명으로 구성된 강동구팀은 결승까지 큰 실력차로 승리를 거듭했다. 상대팀은 “한 가족끼리도 저렇게 호흡이 맞기는 힘들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이번 달 초에야 처음 만난 사이. 매일 늦은 오후에 1시간씩 초등학교에서 연습을 하며 실력을 쌓았다. 발목 부상은 물론 무릎 골절까지 입었지만 발을 맞추면서 어느새 마음까지 하나가 됐다. 리듬을 맞추기 위해 호흡까지도 일정하게 조율했다. 결국 지난 10일 구민 체육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서울시에서도 최고수로 등극했다. 팀원인 김영식(44)씨는 “친분이 쌓여 서로를 신뢰하게 되자 실력이 몰라볼 정도로 늘었다.”면서 “강동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하늘에 닿았나 보다.”하며 흐뭇해했다. 체육대회의 ‘감초’는 축구다. 이번 대회에서는 ‘20인 승부차기’가 포함됐다.1위에 오른 마포구는 이미 여러 축구 강팀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높다. 이번 대회의 중심에는 마포구 생활체육협의회 30대팀이 있었다. 주말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몸을 부대껴 온 이들은 예선을 거치면서 전력이 더욱 탄탄해졌다. 마포의 ‘히든 카드’는 여성 축구 선수. 규정상 20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여성 6명이 꼭 포함돼야 했다. 지난 4월 여성부장관기에서 우승하는 등 전국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마포 여성축구단이 함께하면서 경기 전부터 우승후보 0순위로 손꼽혔다.30대팀 신기진(46·창천동) 감독은 “남녀 팀이 각종 축구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도맡아 해 승부차기 경기도 자신이 있었다.”며 활짝 웃었다. ●준비 안된 대회 전쟁터로 둔갑 “야, 눈이 어디로 박힌 거야. 제대로 심판을 보고 있는 거야.” “다 이긴 경기를 중단하면 어떻게 해.” 이날 늦은 오후 종로구와 은평구의 줄다리기 결승전. 두 팀 감독은 결승에 앞서 페어플레이를 약속했다. 그러나 종로구가 준비를 못한 상태에서 심판이 시작을 알린 게 화근이었다. 종로구는 시작 직후 1m 남짓 끌려갔다. “무효야, 무효.”순간 한 주민이 줄 사이로 뛰어들었다. 심판은 ‘일단 정지’를 선언했다. 종로구와 은평구 관계자는 각각 ‘재경기’와 ‘몰수패’를 주장하다 ‘패싸움’ 직전까지 갔다.‘공동 우승’을 선언한 심판은 성난 선수들을 피해 줄행랑을 쳤다. 이날 경기장 곳곳에선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고성과 몸싸움은 물론 멱살잡이도 이어졌다. 생체협의 매끄럽지 못한 운영이 시민들을 25편의 ‘적’으로 갈갈이 찢어놓았다. 각 경기장에 전문 심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분쟁의 씨앗이었다. 경기장마다 자원봉사자로 끌려나온 대학생 20여명만이 우왕좌왕했다. 지역 주민들이 몸싸움을 벌이면 ‘공동 승리’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20인 단체줄넘기에선 네 팀이, 줄다리기에선 두팀이 공동 우승하는 어이 없는 결과가 속출했다. 줄다리기 3위도 두 팀이었다. 20인 단체줄넘기 경기에선 시작하자마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1분에 몇 차례 줄을 넘었는지 기록해야 하는데, 심판끼리 손발이 맞지 않아 시간 재는 걸 잊어버린 탓이었다. 줄다리기에선 경기를 마칠 때마다 싸움이 발생했다.‘1분인 시간이 너무 길다.’는 등 이유도 가지가지였다.1명의 심판이 팀당 100명의 선수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 대학생 봉사자는 “점심도 제대로 못먹고 하루 종일 어른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다.”고 한숨지었다. 대부분의 경기가 파행을 거듭한 탓에 대회는 이날 오후 7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됐다. 이두걸 정은주기자 douzirl@seoul.co.kr ■이의민 서울시생활체육협의회장 이의민 서울시생활체육협의회장은 “서울을 제외한 다른 시·도는 매년 도민 및 시민 생활체육대회가 치러지고 있지만 서울은 그렇지 못했다.”면서 “서울의 경우 경기장문제, 교통문제 등으로 시행되지 못했으나 기존의 각 종목별 시장기대회를 모아 종합대회를 치르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회가 개최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생활체육동호인으로서 타·시도와 같이 서울시생활체육협의회의 숙원이었던 종합대회를 반드시 시행시키고자 이 대회를 추진하게 됐다. 어떤 사람들이 대회에 참가하며 어떤 종목들로 구성돼 있나. -서울에 거주하는 생활체육동호인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자치구생활체육연합회 대항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축구, 배드민턴, 테니스 등 동호인경기종목 뿐만아니라 응원전,10인 11각 달리기, 줄다리기 등 시민참여종목이 시행된다. 너무 큰 행사로 치르게돼 생활체육 본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생활체육은 말 그대로 생활속에서 이루어지는 체육활동이다. 거대행사의 의미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동호인들이 함께 인사를 나누고 화합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회장으로서해야 할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면서 ‘생활체육=표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생활체육은 정치와는 무관하다. 모든 시민의 건강을 위하여 누구나 하는 체육활동으로 정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지금 이 시대에 동원이라는 얘기는 어색한 용어같다. 만약 억지로 동원한다면 언론에 투고하는 등 그 파장으로 인해 오히려 생활체육이 퇴보, 비난받는 큰 고초를 겪게 될 것이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으나 효창운동장이라 교통문제가 제일 어려웠다. 생활체육인들에게 부탁 말씀. -웰빙시대에 생활체육은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 생활체육인은 물론이고 모든 시민이 일주일에 3일이상 30분씩 각자가 즐기는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늦깎이 치어리더 53세 김영순씨 “서울시민의 축제답게 승패를 떠나 즐겁게 응원했어요.” 구대항 응원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도봉구 늦깎이 치어리더 김영순(53·여)씨. 그는 구 생활체육회 사무장으로 체조강사 10여명과 함께 응원전을 이끌었다. 보라색 탑에 짧은 치마를 입은 김씨는 2년 동안 배운 에어로빅 실력 덕에 과감한 치어리더 복장도 잘 소화했다. 그는 10여일 전부터 응원 준비물을 챙겼다.600명의 오렌지색 티셔츠와 모자는 물론 금색 수술, 미니우산, 부채, 흰색·남색 에어방망이, 장갑 등 응원 도구를 사모은 것. 비용은 구청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응원단은 연습을 위해 행사 2시간 전에 효창운동장에 도착했다. 해마다 9∼10월 구민 체육대회와 운동회에서 응원전을 활발히 펼친 덕택에 호흡이 척척 맞았다. 체조 강사들이 곳곳에서 활발한 율동으로 흥을 돋우었다. 최선길 도봉구청장 등 구청 관계자도 흥겹게 응원에 동참했다.“점심식사가 늦어졌는데도 불평 한마디 없이 자리를 지켜준 지역주민들이 오늘의 주인공”이라면서 “도봉구의 단합된 힘을 보여준 멋진 기회였다.”고 활짝 웃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마니아]“응원 우승하면 다 이긴셈”

    [마니아]“응원 우승하면 다 이긴셈”

    서울시 25개구가 뿜어내는 오색 찬란한 빛깔이 22일 개최된 서울시민 생활체육대회를 빛냈다. 선수단은 개회식에서 각 지역구의 특징을 살린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입장, 눈길을 끌었다. 일부 지역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 나와 구대항 응원전을 준비,‘단결된 힘’을 뽐냈다. ●지역특징 살린 입장 퍼포먼스 흥을 돋우기 위해 이날 오전 9시20분부터 식전행사가 펼쳐졌다. 염광여자정보고교 고적대가 첫 연주를 선보인데 이어 에어로빅, 음악줄넘기, 태권도 시범경기가 잇따랐다. 중앙무대와 운동장 중간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로 이런 모습이 생생히 전달됐다. 강동구를 필두로 선수단이 입장하자 열기가 달아올랐다. 이명박 서울시장, 이의민 서울시 생활체육협회장, 임동규 서울시의회의장, 엄삼탁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 등이 무대 위에 올라 손을 흔들며 선수단을 맞이했다. 구청장이나 구의원, 지역 협회장이 참석한 경우엔 무대에 함께 올라 선수들을 격려했다. 그러나 서초구 등은 구 관계자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선수단은 독특한 퍼포먼스로 박수 갈채에 화답했다. 고적대나 풍물패를 앞장세워 눈길을 모은 뒤 지역 특징을 살린 퍼레이드를 펼친 것. 중구는 충무공 이순신의 고향답게 대형 거북선을 선보였고, 송파구는 롯데월드 고적대로 흥을 더했다. 서대문구는 이색적인 사자놀이와 용춤 공연을 펼쳐 주목받았다. 동작구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여성 2명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경기장에 입장, 이명박 시장 등에게 꽃다발을 전달했다. 강서구는 말 5마리를 타고 등장한 뒤 허준을 그린 대형 그림을 흔들며 퍼레이드를 이어갔다. 관악구는 수십개의 풍선을 하늘로 날려 분위기를 띄웠다. 경기장을 에워싼 응원단 1만여명도 지역구 선수들이 입장할 때면 환호성을 질렀다. 흐린 날씨에도 빨강·주황·초록·남색 티셔츠와 응원도구 덕에 경기장은 오색찬란한 빛이 만발했다. ●응원전에 강남은 없다 지역구민의 단결된 힘을 보여주는 응원전에선 강북과 강남이 크게 차이를 보였다. 대표 강남지역인 서초구와 강남구에선 응원단이 나오질 않았다. 동작구만 유일하게 하늘색 옷을 맞춰 입고 에어방망이를 두드리며 응원, 결선 경기에 올랐다. 반면 도봉·광진·강북·영등포·중랑·동작·성동·서대문구 등은 자리를 가득 채우고 대중가요 ‘아파트’ 등에 맞춰 춤을 췄다. 서대문구에선 한성 화교 중고교 학생 20명으로 구성된 용춤 공연단이 운동장을 뛰놀았고, 빨강·초록·노랑·남색 대형 깃발이 응원단을 수놓았다. 광진구 치어리더는 노란·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꽃수술을 흔들며 응원단을 지휘했다. 우승은 도봉구가 차지했다. 점심식사도 거른 채 결과 발표 때까지 경기장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응원한 덕이었다. 특히 최선길 구청장이 지역 주민과 함께 응원에 참여, 사기를 높였다. 최 구청장을 비롯해 응원단 전체가 오후 2시쯤에야 도시락을 먹었다. 행사에 참가한 임일순(51·마포구 창전동)씨는 “이웃들과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다 보니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신난다.”면서 “생활체육대회가 축제와 화합의 한마당으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은주 이두걸기자 ejung@seoul.co.kr ■ 생활체육 경기일정 서울시 ●제15회 시장기 배드민턴대회.28일(토)∼29일(일). 올림픽공원 제1체육관.(02)2203-2456. ●제6회 시장기 탁구대회.28일(토)∼29일(일). 서울시립대.(02)571-0073. ●제4회 시장기 족구대회.29일(일). 망원유수지 체육공원.(02)412-6322. ●제6회 시장기 농구대회.29일(일).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 농구장.(02)323-7823. ●서울시민 생활체육대회 축구.29일(일) 오전 9시. 한강시민공원 반포지구 축구장. ●서울시민 생활체육대회 테니스.28일(토) 오전 9시. 목동테니스장. ●서울시민 생활체육대회 풋살.28일(토) 오전 10시. 양천구 인조잔디구장. 성북 제2회 동선회장기 축구대회.29일(일) 오전 9시. 고명정보고 운동장. 용산 어린이 풋살축구대회.29일(일) 오전 10시. 청파초교 운동장.(02)710-3320. 금천 ●제5회 구청장배 수영대회.28일(토) 오후 2시. 금천구민 문화체육센터 수영장.(02)890-2410. ●제2회 구청장배 구민 건강달리기대회.29일(일) 오전 9시30분. 안양천 둔치.(02)890-2410. 송파 제3회 구청장기 여성축구대회.28일(토) 오전 10시. 송파구 여성전용축구장. 강서 제5회 구청장배 단학기공 경연대회.28일(토) 오후 2시. 강서구민회관. 노원 제4회 구청장기 당구대회.29일(일) 낮 12시. 중계동 오프라인 당구장.(02)976-8421.
  • [데스크시각] 부모 자격증/허남주 주말매거진WE팀장

    출근길이 유난히 멀어 아침부터 지쳤던 어느 날, 낯선 이메일이 일상의 틀을 깨고 날아들었다. “전처 자식, 내 자식이 따로 있나요. 다 제 책임이기에 제 아이로 인연이 맺어진 것이겠지요.…언젠가는 정말 더 기쁜 일도 올릴 때가 오겠지요? 제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편지까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일을 보낸 이는 전처 소생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낀 점을 인터넷에 올렸던 한 어머니였다. 그녀는 글을 통해 ‘시댁에서 아이들의 어머니, 전처를 아이들 앞에서 나쁘게 말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토로했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밤늦은 시각에 우연히 본 사연이라 그랬을까, 감동에 젖어 짤막한 소감을 그녀에게 보냈었다. 메일을 보낸 사실조차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받은 뒤늦은 답장이 반가웠지만, 한편 걱정이 뒤따랐다. 구태여 ‘백설공주’,‘콩쥐팥쥐’를 떠올리지 않아도 “아무리 잘해도 제 어미같을까….”라는 식의 편견이 나도 모르게 내비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그 사연에 감동을 받았던 이유에는 ‘친어머니보다 더 갸륵한 사랑’이라는 점이 분명 포함돼 있었던 것도 같다. 친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진한 사랑이란 가정하에 ‘절대적 사랑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대단하다.’는 식의 편견과 폄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흘깃거리면서도 대글조차 남기지 않는 ‘눈팅족’으로서 처음 시도한 소통에 실패한 것 같아서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새삼 그 사건이 떠오른 것은 ‘가정의 달’인 5월에 신문지면을 크게 장식했던 이 시대 가족구성원들 사이의 뒤틀린 인간관계때문이었다. 비단 이 5월에만 많았으랴만 참혹하다못해 엽기적이기까지 한 가족내 가해와 피해의 사슬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엄마가 도망갔다.’고 울부짖는 아이, 끝내 폭력의 가해자인 아버지를 죽이고만 여학생…. 가족이란 분명 울타리이자 짐이다.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울타리임엔 분명하지만 가족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켜내기 위해선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가족구성원은 가장 무거운 짐이기도 하다. 더욱이 아이들은 부모에게 분명 사랑의 대상이지만 삶에 지치거나 인격적으로 부족한 부모에게는 엄청난 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짐을 내팽개치는 사건이 날로 늘어간다. 지난해 아동학대 긴급신고전화(1391)에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모두 6998건으로 2003년 4983건보다 40.4%나 증가했다고 한다. 또한 학대의 75.5%는 가정 내에서 발생하고, 학대자가 아동의 부모인 경우가 전체 아동학대의 81.4%를 차지했다. 전국 45만명의 아이들이 학대를 받고있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그중 보호받는 아이는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아동학대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부모는 여전히 아이들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권위와 힘을 행사한다. 더욱이 주변에서 이를 제재할 경우 “내 아이 내가 가르치는데 왜 참견하느냐”는 부모의 말은 당당하다. 가정이란 울타리가 범죄를 타당화한다. 더욱이 부모를 신고한 후 ‘아이의 인생을 책임질 수도 없는’ 타인으로선 이를 선뜻 행동에 옮기기에도 망설여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제 부모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고, 사회의 보호는 미약해 보인다. 하지만 이 5월에 가정의 윤리만을 믿고 맡기기에 이 시대 가정의 울타리는 낡고 허물어졌음을 지적하고 싶다. 아동복지법 제26조에 따라 의사, 교사,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사회복지전담공무원 등을 ‘신고의무자’로 규정, 아동학대 발견 즉시 신고하도록 하고 있으나 신고하지 않았을 때의 처벌조항이 없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가정의 윤리에만 맡겨져 있다. 반면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의사, 교사 등이 아동학대 사실을 알고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 과태료 처분, 자격정지 등의 제재를 가하고 있다. “하다못해 낚시 자격증도 있는데 왜 부모 자격증은 없느냐?”는 미국영화 속 아이의 항변을 웃고 넘기기엔 껄끄럽다. 비정한 부모의 양식과 가정의 윤리에 아이를 맡겨놓기엔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가정의 벽은 드높고 굳건해 보인다. 허남주 주말매거진WE팀장 hhj@seoul.co.kr
  • [학교소식]

    ●22일 모교서 총동문회 체육대회 대일외고는 오는 22일 학교 운동장에서 ‘대일 총동문회 체육대회’를 연다. 이번 행사에는 지난 19년간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모두 참여하며, 농구와 족구, 배구, 발야구 경기를 하며 친목을 도모한다. ●3대 민속 체육대회·시조 백일장 민족사관고는 오는 21일 학교 운동장에서 ‘3대 민속 체육대회’를 연다.366명 전교생은 물론 학생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 등 3대가 함께 줄다리기와 축구, 이어달리기에 참여한다.23일에는 ‘시조 백일장’을 연다. 민족사관고의 표상 인물이자 시조에 조예가 깊었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고 학생들이 민족 고유시인 시조를 배우기 위해 마련했다. 이돈희 교장은 “부모공경 사상이 점차 희미해지는 가운데 가족의 우애를 다지고 효 사상을 키우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각 학교 교감이 19일부터 4차례 대원·대일·서울·명덕·이화·한영외고 등 서울 지역 6개 외국어고가 ‘외고 입시 공동설명회’를 개최한다.2008학년도 대학입시제도를 분석, 전망하고 각 학교 교감이 외고 교육과정과 입학시험 출제경향을 설명한다. 장소는 오는 19일 노원구민회관,23일 삼성동 코스모타워,30일 건국대 새천년홀, 다음달 3일 양천구민회관 등이다. ●이틀간 개교 13주년 기념행사 이화외국어고는 오는 20∼21일 개교 13주년 기념 행사를 연다.20일 오후에는 학교 노천극장에서 ‘기념일 전야 참빛 예배’를 갖는다.21일 오전 9시에는 교장과 교감, 선교부장, 학생 대표 등이 서울 합정동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 묘소를 참배하고 이화학원의 설립자인 스크랜튼 묘소에 헌화할 예정이다. 오후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먹을거리장터를 열고 축제를 벌인다. ●서울 조원초등학교 지난주 개교 조원초등학교가 지난 10일 서울 관악구 신림8동에 둥지를 틀고 개교식을 했다. 권혁로 교장이 초대 교장으로 부임했으며,20학급에 학생수 784명, 교직원 35명이다. 영문초등학교도 지난 11일 영등포구 문래 6가에서 개교했다. 초대 교장은 안종인 교장.36학급에 학생 986명, 교직원 36명이다. ●개교 1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가톨릭대는 오는 18∼20일 3일 동안 서울 혜화동 성신교정 강당에서 ‘개교 150주년 기념 국제 학술대회’를 연다.18일에는 법철학 전문가인 일본 예수회 호세 욤파르트 신부와 유네스코 과학기술윤리위원인 한양대 송상용 교수, 독일 형법학자 알버트 구드비흐대 알빈에저 교수, 국제인권법전문가인 월리엄 샤바스 교수 등이 생명윤리와 인간존엄성, 생명의 생성과 본질, 생명의 권리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다. 19일에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향숙 박사와 조지타운대 철학과 로버트 비츠 교수, 태국 유네스코 사무소의 대릴 메이서 교수, 노화 연구가 서울대 박상철 교수, 미국 로마린다대 간호학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교수가 유전자 연구, 의학윤리, 노화 등을 주제로 최근의 관련 이슈와 전망을 점검한다.20일에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신학교육에 대한 논의가 있을 예정이다. ●사할린동포복지관 방문, 위문행사 인천연화초교 RCY 단원과 학부모 60여명은 지난 13일 인천 연수동 사할린동포복지관을 방문, 위문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 생신을 맞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생일잔치와 함께 그림책 150여권과 발 마사지기를 전달했다.
  • “땀 흘리고 경품도 받고”

    서울시 자치구들이 주민들이 참여하는 행사를 잇따라 개최하고 있다. 노원·도봉·용산·강동구는 구민 체육대회와 산행대회 등을 개최한 데 이어 양천·강북·성동·광진구가 체육 행사를, 중랑구는 구민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선수 모집은 끝났지만 예고없이 행사장을 찾아도 다양한 단체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 볼거리도 풍부하다. 양천구는 14일부터 16일까지 ‘양천 구민의 날 대축제’를 양천공원, 양천문화회관, 안양천 등에서 다채롭게 개최한다. 구민 체육대회는 15일 오후 1시부터 안양천 A축구장에서 열리며,4종목(한마음줄넘기, 지네발릴레이, 스피드특급열차, 작품발표회)이 열린다. 강북구민들도 14일 오전 9시 강북구민운동장으로 가면 ‘제9회 강북구민 문화·체육 한마당’을 즐길 수 있다. 민속경기 및 체육 경기 7종목, 구민노래자랑이 열리고, 체조시범·경찰악대·널뛰기 시범이 펼쳐진다. 이날 참여한 구민 중 추첨을 통해 김치냉장고·TV·자전거 등을 증정할 예정이므로 운이 좋으면 뜻밖의 소득도 얻을 수 있다. 성동구는 20일 오전 9시부터 살곶이 체육공원에서 성동구민 한마당 체육대회를 개최한다.▲줄다리기·한마음달리기·줄넘기·족구·그네뛰기 등 5종목의 주경기와 ▲제기차기·훌라후프돌리기, 투호경기, 공굴리기 등의 부대경기를 치른다. 태권도시범·재즈댄스·사물놀이와 초대가수의 축하 공연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킬 예정이다. 가훈써주기·알뜰장터·어린이놀이공원·건강체크 코너도 마련됐다. 한강시민공원이 있는 광진구는 뚝섬지구 축구장에서 25일 ‘광진구민 한마음체육대회’를 연다. 동별 대표선수들이 나와 오전에 줄다리기·이어달리기·씨름·럭비공 승부차기 예선을 치르고 오후에 결승전을 거쳐 각축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응원전도 펼쳐진다. 중랑구는 16일 오후 2시부터 중랑구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중랑구민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한다.2004년도 중랑구민노래자랑 수상자들의 구성진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 면목1동 사람들의 흥겨운 ‘풍물놀이’, 묵2동의 ‘댄스스포츠’ 공연이 선보이고, 초청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선착순으로 600명 정도 입장이 가능하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딸들에 상속포기 강요하는 아버지

    저는 3남2녀 중 둘째딸로서 시집가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친정아버지가 저를 비롯한 출가한 언니에게 아버지 재산에 대한 상속포기를 하라고 강요하고 계십니다.“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를 가지고 와서 상속포기서에 도장을 찍어라.”고 요구하십니다. 아버지는 3명의 아들들에게 집을 사주었고, 조그마한 건물도 이미 주었는데 딸들에게는 재산이라고는 전혀 주지 않고 이제는 상속포기만을 고집하고 계십니다. 공증까지 받자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박신덕(가명)- 아버지의 소원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포기하더라도 법률상 무효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농업경제 시대의 가부장적 가족제도 하에서는 호주 겸 가장의 권한이 너무 막강해 가족이 그 명령에 안 따르면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은 가족구성원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혼인·입양 등에 관한 신분상의 행위에 대해 모든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아무리 싫어도 아버지가 정한 혼인에 따라 시집가고 장가가야 했습니다. 신덕씨의 친정아버지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장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가족제도에서는 재산문제도 가장의 마음대로 처리했던 것입니다. 그 대신 가장은 가족의 부양책임을 떠맡고 있었습니다. 현재의 상속법에는 피상속인인 아버지가 생전에 자기 명의의 재산을 처분하는 것은 아버지의 자유이고 그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이 아버지의 재산처분에 항의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자유이지만, 딸들이나 특히 시집간 딸에게 미리 상속포기를 강요하는 것은 오늘날의 법을 잘 몰라서 하는 고집일 뿐입니다. 상속포기는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상속받은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속채무를 면하기 위하여 상속포기 신고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이든 시간적 선후관계에 따라 이를 다시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아버지 사망(상속개시) 이전의 포기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 사망 이후의 포기입니다. 원래 상속인의 권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고,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생길 수 없는 권리입니다. 굳이 표현한다면 상속받을 가능성이 있는 하나의 추정적 지위 혹은 자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전에 아들·딸이 상속을 포기한다.’는 말은 아직 생기지도 아니한 권리, 즉 없는 권리를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포기할 것이 없는 것을 포기한 꼴이니 이는 무효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상속포기는, 일단 상속이 개시된 후에 생긴 구체적인 재산에 대한 상속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권리의 포기는 포기로서 법률상 유효한 것입니다. 상속개시 후의 상속권을 포기하려면 공동상속인인 형제자매 등에게 포기한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거액의 채무(債務)를 지고 있어서 그가 남긴 상속재산으로는 도저히 이를 갚을 수 없는 상태, 즉 채무초과 상태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는 상속인들은 누구도 빚을 물려받기 싫어하고, 상속채무를 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상속포기 신고입니다. 포기신고는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사망사실, 상속인 스스로 상속인이 된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하여야 합니다. 상속포기신고는 상속인 각자의 인감증명서를 첨부하여 인감도장을 찍어서 신고하여야 하고, 상속인이 미성년자·한정치산자·금치산자인 경우는 후견인 등 법정대리인이 위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신고해야 합니다. 포기신고의 경우는 상속재산목록을 첨부할 필요는 없고, 단순히 “청구인은 피상속인(주민등록번호와 주소도 필요)의 상속재산에 대한 모든 상속을 포기한다.”고 기재하여 신고합니다. 아버지가 생전증여로 모든 재산을 아들에게만 주었을 경우, 딸들은 아버지 사망 후 1년 안에(사전의 상속포기와 무관하게) 아들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김태환 프로농구 SK 새 감독

    “믿고 따르라.” ‘잡초’ 김태환(55) 감독이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6일 프로농구 ‘귀족구단’ SK의 새 사령탑에 취임한 김 감독은 “자율로 안 된다면 강력한 타율로 모래알 팀을 하나로 묶고 우승을 일구겠다.”고 일성을 던졌다. 올시즌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SK는 임재현 조상현 전희철 등 화려한 토종 멤버와 최고의 용병 크리스 랭을 보유하고도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다. 모기업의 아낌없는 지원에도 불구하고 3년째 ‘봄의 잔치’에 초대를 받지 못해 “배가 너무 불러도 탈”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체질개선이 절실했던 SK는 고심 끝에 ‘김태환 카드’를 빼들었고, 지난해 LG에서 불명예 퇴진했던 김 감독은 2∼3개 팀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SK를 택했다. 구단이 3년간 역대 최고 대우를 제시했지만 그는 “2년이면 족하다.”며 2년 계약을 했다. ‘학연’이 유난히 강조되는 농구판에서 김 감독은 유일한 고졸 출신.1971년 화계초교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잡초같은 생명력으로 무학여중-선일여고, 국민은행을 거쳐 중앙대와 LG 등 남녀 아마추어와 프로팀을 섭렵했다. 고깃집 사장과 방송 해설을 경험한 지난 1년이 유일한 공백기일 만큼 언제나 그를 원하는 팀이 많았다. 김 감독은 “SK의 적은 내부에 있다.”면서 “선수들과 합의해 팀 운영의 원칙을 세우고, 누구도 예외를 두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다른 감독들과 많게는 10살 넘게 차이나는 최고참인 김 감독은 “이번이 마지막 지도자 생활이 될 것”이라면서 “그동안 배우고 느낀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잡초’ 감독이 ‘귀족’ 선수들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 벌써부터 관심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믿겨지지 않았다.” 2003년 8월 4일 새벽. 그룹 비서실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아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훗날 지인에게 “처음엔 얘 아빠(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시숙(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에게서 그룹을 지켜야 했다. 경영 전면에 나섰다. 스물한살에 현대가로 시집와 30년 가까이 살림만 했는데 세상에 나오는 것이, 그것도 시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가 평생을 일군 그룹을 덜컥 떠맡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 지인의 얘기다.“나도 그 점이 궁금해 언젠가 한번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그 때는 (경영권 분쟁으로) 상황이 너무 다급해 두려워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에서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때가 2003년 10월 21일. 그로부터 1년여.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관리종목’의 악몽에서 벗어나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익(4279억원)을 올렸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주도하는 현대아산 역시 소폭이나마 첫 흑자(8억원)를 기록했다. 현대엘리베이터(839억원), 현대증권(580억원 추정치), 현대택배(74억원), 현대경제연구원(3억원)도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거나 흑자를 지켰다. 그룹 경영을 맡은 지 불과 1년 만에 6개 계열사 모두를 흑자로 돌려놓은 것이다.2010년까지 그룹 매출을 20조원(지난해 말 6조 6400억원)으로 끌어올려 재계 10위권(현재 19위)에 입성하겠다는 현 회장의 ‘2010 프로젝트’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운’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왕회장(정주영 명예회장) 시절부터 현대에 몸담아온 한 임원의 해석은 다르다.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현 회장 취임후) 해운 경기가 살아나면서 그룹의 주축인 현대상선이 살아났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 전에 비해 그룹의 방향이 매우 뚜렷해졌다. 현 회장은 한번 결정을 내리면 단호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배포와 결단력은 오히려 몽헌 회장(MH)을 능가한다는 게 임원들의 공통된 평가다.” 이와 관련해 또다른 임원의 말이 재미있다.“현 회장을 보고 있으면 사업가 유전자라는게 따로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업가 집안의 둘째딸 현 회장은 1955년 딸만 넷을 둔 사업가 집안의 둘째로 태어났다. 훗날 현대상선에 흡수된 당시 신한해운의 현영원(78) 회장이 아버지다. 일제때 ‘호남의 거부(巨富)’로 이름을 날렸던 현준호씨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주의 외동딸인 김문희(77) 현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현 회장에게는 외삼촌들이다. 현대가의 며느리 가운데 손아래 동서 김영명(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부인·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딸)씨와 더불어 친정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현 회장은 그룹 홈페이지에 올린 ‘나의 삶 현대의 길’에서 “기업가 집안의 엄격한 가정교육 속에서 세상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키워나갔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임원의 해석처럼 ‘유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가 집안의 가풍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현 회장의 자매들 이름이다. 언니가 일선씨, 여동생이 지선씨다. 현 회장의 시조카들과 이름이 똑같다.“정씨 집안과의 혼사는 숙명”이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만도 하다. 언니 일선씨는 수입 침장(沈臧) ‘쉐르단’으로 유명한 홈텍스타일코리아 유승지 회장과 결혼했다. 유 회장은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의 친동생이자 유유산업 창업주인 고 유특한씨의 아들. 현 유유산업 유승필 회장의 친동생이다. 동서지간인 유 회장과 생전의 MH는 나이가 같아 유난히 친했다고 한다.MH가 죽기 직전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도 유 회장이 함께 했었다. ●‘군인’ MH와의 첫 만남 대학(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때인 1975년 1월 어느날. 현 회장은 아버지를 따라 울산의 현대중공업 선박 명명식에 갔다. 당시 아버지는 사업관계로 잘 알고 지내던 홍콩 행정 장관(C.Y. 퉁)이 방한하자 때마침 열린 선박 명명식에 ‘모시고’ 갔다. 애초 맏딸만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둘째딸의 성화에 딸 둘을 대동하고 나섰다. 몇달 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쪽에서 넌지시 연락이 왔다.“군대간 아들이 마침 휴가 나왔는데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선박 명명식에서 ‘참한 인상의 늘씬한 재원’을 처음 본 정 회장이 단박에 며느릿감으로 점지한 것이다. 이 때가 75년 5,6월께. 현 회장과 MH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언젠가 현 회장이 사석에서 털어놓았다는 MH의 첫인상이다.“요샛말로 필이 꽂히거나 그렇진 않았다. 군인이라 머리도 짧았고…그래도 듬직해 보였다.” 첫 데이트 장소는 ‘군인 커플’답게 서울 태릉사격장. 이듬해 7월 두사람은 결혼했다. ●“나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 현 회장은 결혼 후 첫딸을 낳고도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라 페어리 디킨슨 대학원에서 인간개발론을 전공했다. 귀국해서 얘들 키우고 살림하는 동안에도 짬짬이 걸스카우트연맹(이사)·대한적십자사(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 등에서 ‘표 안나게’ 사회활동을 했지만 사업가로 나서게 되리라고는 그 자신 상상도 못했다. 현 회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임원의 얘기다.“그룹 경영을 맡은 지 1년여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확실한 것은 배포가 여간 아니라는 점이다. 경영 참여를 결심한 것도,8개월에 걸친 경영권 분쟁을 버텨낸 것도 이같은 배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인데 어디에 그런 배포가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다. 본인 스스로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며 웃더라.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경영권 분쟁때의)그 지독했던 마음 고생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의지력도 대단하다. 더러 확신이 서기까지 결단을 늦추는 경향이 있어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일단 확신이 서면 무섭게 밀어붙인다. 번복하는 일도 없다.”결단을 내려놓고도 마음이 여려 ‘가신’들의 주장에 흔들리곤 했던 MH와는 대조되는 면모다. 현 회장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일화 한가지. 지난해 8월 그룹 비전을 선포할 때의 일이다. 당시는 경영권 분쟁을 매듭짓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던 때라 사내외에 선언할 ‘비전’이 매우 중요했다. 현 회장은 ‘용기와 자부심의 현대’라고 직접 쓴 쪽지를 내밀었다. 임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살림만 하던 사람이 기업 경영과 직원 심리를 얼마나 알겠느냐.”는 냉소도 은근히 깔려 있었다. 그러나 현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용기와 ‘재계 1위 현대’에 대한 자부심이 절실한 때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선언문에는 이 문구가 그대로 들어갔다. 시간을 지체해 물건너갔다고 생각했던 가신그룹(김재수 당시 경영전략팀 사장 등)에 대한 인사도 그 해말 전격 단행해 임직원들을 다시한번 놀래켰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 숙부의 난 현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다른 사람도 아닌 시삼촌과 길고 지루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2003년 8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이면서 본격화된 경영권 분쟁은 이듬해 3월 30일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에서 현 회장이 승리할 때까지 8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현 회장은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집안의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비즈니스가 얽혀있어 개입할 수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중립이 현 회장을 도왔다. 현 회장측은 분쟁의 단초가 된 금호생명 대출 200억원에 대한 정상영 회장의 보증과 관련,“정 명예회장은 조카(MH)에 대한 의리라고 주장하지만 처음부터 경영권을 뺏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였다.”고 주장한다. 한 측근은 MH가 정상영 명예회장을 인간적으로 따랐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정상영 회장이 MH의 자금줄을 교묘하게 막았다.”면서 “이 때문에 MH가 ‘그룹을 위해 (내가) 이렇게 희생했는데 상영 삼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언젠가 몹시 화를 낸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KCC측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여전히 팔지 않고 있어 경영권 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경영수업 받는 큰딸…‘코디’ 둘째딸… 사격 좋아하는 외아들 시어머니(변중석)가 아이 잘 낳는 보약을 하루가 멀다하고 들이미는 바람에 얼떨결에 일찍 가졌다는 큰딸. 딸을 낳자 시댁보다 딸만 넷인 친정의 실망이 더 컸다고 한다. 그 딸이 지금은 현 회장의 든든한 친구이자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지이(28)씨다. 서울대 고고미술학과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을 나온 그는 외국계 광고회사에 다니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지난해 1월 3일 현대상선 재정부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올 1월 1일 대리로 승진했다. 회사 흐름을 가장 빨리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재정부에 배치한 것을 보면,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게 하려는 현 회장의 의지가 읽혀진다. 경영권 분쟁때도 현 회장은 정상영 명예회장 등 시댁 어른들과의 대면 자리에 반드시 지이씨를 데리고 나갔다. 맏이답게 찬찬하고 침착해 현 회장에게는 큰 의지가 된다고 한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평이 매우 좋다. 지난해 10월 그룹 해체후 처음 가진 신입사원 수련회때는 다른 ‘신참’들과 똑같이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장기자랑도 마다하지 않아 주위의 경계심을 녹였다.‘싼타페’를 직접 몰고 출퇴근한다. 아직 사귀는 사람은 없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터울이 크면 아들일 확률이 높다.”는 집안 어른들의 압력에 6년 7개월만에 가졌다는 둘째딸 영이(21)씨는 서울 상명여고 1학년때 혼자서 미국 유학을 떠났을 만큼 당차다. 보스턴에서 한시간 거리인 사립 고등학교 ‘쿠싱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부에 재학중이다. 언니와 달리 성격이 매우 활달하다. 방학을 맞아 귀국하면 엄마의 의상을 열심히 조언해준다. 막내 외아들인 영선(20)씨는 모 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다 지금은 휴학한 상태다. 군대를 먼저 다녀온 뒤 미국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아버지 장례식때 고3(경복고) 수험생이었는데도 어찌나 많은 친구들이 빈소로 몰려왔던지 조문객들 사이에 화제가 됐었다. 아버지를 닮아 총쏘는 것을 좋아한다. ●옛 영광 재현 꿈꾸는 핵심 브레인들 경영전략팀이 그룹의 ‘싱크 탱크’다. 다른 그룹으로 치면 구조조정본부에 해당한다. 현 회장 사람들로 전부 세대교체가 이뤄진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최용묵(57) 사장을 사령탑으로 이기승(55) 전무-하명호(47) 상무로 수직 연결된다. 현대엘리베이터 사장도 맡고 있는 최 사장은 경영권 방어전략을 촘촘히 짜 현 회장의 리더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 개선파로, 조직 안정이 최우선 과제인 현 회장 체제에서는 적임이라는 평을 듣는다.76년 현대건설 평사원으로 입사,84년 현대엘리베이터 창립과 함께 관리부장을 맡으면서 조직관리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임직원들과 회사 앞마당에서 족구를 하고 삼겹살 소주 뒤풀이를 즐긴다. 이 전무는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금융전문가의 보완을 절실하게 느낀 현 회장이 지난해 6월 외환은행에서 영입해온 이다.KS(경기고-서울대 법대) 출신답게 머리회전이 빠르면서도 친화력이 뛰어나 핵심인맥의 자리를 굳혔다. 미국 디킨스대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하 상무도 재무 전문가다. 현대석유화학에서 지난해 말 그룹 심장부로 옮겨왔다. 그룹의 정신적 뿌리인 대북사업은 ‘서울대 트리오’가 이끌고 있다.“대북사업에 인생을 걸었다.”는 김윤규(61) 현대아산 부회장이 단연 첫 손에 꼽힌다. 왕 회장때부터 ‘소떼 방북’ 등을 성사시키며 현대와 동고동락해 온 김 부회장은 MH가 그 앞으로 남긴 별도 유서를 통해 “자주 윙크하는 버릇 고치라.”고 농담을 던졌을 만큼 2대에 걸쳐 각별한 신임을 얻었다. 얼마전 부회장으로 승진해 대북 라인 접촉 등 대외 업무에만 힘을 쏟고 있다. 대내 업무를 떼준 것은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이자 ‘거리 두기’라는 해석도 있다. 대내 업무는 윤만준(60) 현대아산 사장의 몫이다. 고문으로 물러나 있다가 김 부회장의 승진과 함께 대표이사 사장으로 발탁된 그는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초창기부터 관여해 실무에 밝다. 서울법대를 나와 7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MH와 함께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일궜다. 김 부회장의 서울대 공대 직속 후배인 심재원(58) 현대아산 부사장은 개성공단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업무처리가 치밀하다. 그룹의 ‘캐시 카우’(돈버는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노정익(52) 사장이 이끌고 있다. 유동성 위기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던 2002년 9월 사장에 취임해 1000원대이던 주가를 2만원 가까이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자동차 운반선 매각 등 뚝심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여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때 들어온 1조원대의 현금이 없었다면 뒤이어 터진 대북송금·분식회계 등의 악재를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취임하자마자 승선 체험을 자청, 선원들과 거센 파도와 싸우며 하나가 된 덕분에 ‘캡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안살림을 꼼꼼하게 챙기는 안홍환(55·부사장) 지원본부장, 회사 매출의 70%를 책임지고 있는 이재현(54·전무) 컨테이너본부장, 일반화물 영업을 이끄는 이동렬(56·전무) 벌크선영업본부장, 해양대 항해학과를 나와 선장으로도 근무한 ‘마도로스’ 신용호(56·전무) 해사본부장 등도 상선의 중추 세력이다. 2003년 6월 부국증권에서 스카우트돼 온 김지완(59) 현대증권 사장은 ‘현투(현대투자신탁증권) 책임분담금’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지어 그룹의 고민을 덜어주었다.‘숙부의 난’때는 오랜 증권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권 방어 전략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어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하마평에 자주 오르기도 한다. 김 사장을 떠받치고 있는 노치용(53·전무) 도매영업본부장은 그룹 홍보도 겸하고 있어 여의도와 광화문을 오가며 ‘셔틀 업무’를 보고 있다. 경영권 분쟁때 설득력있는 논리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숙부의 난 당시 격전지(경영전략팀) 한복판에 있었던 현기춘(51) 현 현대엘리베이터 전무도 눈에 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또다른 한 축인 한승준(51) 전무와는 춘천고 같은반 친구이다. 기획·관리 전문가로 ‘선 굵은 CEO’로 불리는 김병훈(55) 현대택배 사장, 경제연구원 최초로 수익모델 창출에 도전한 재무관료 출신의 김중웅(64) 현대경제연구원 회장,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주현(53) 현대경제연구원장 등도 그룹의 핵심 브레인들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경영권 분쟁이 오히려 약이 됐다. 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흔들리던 임직원들이 경영권이 위협받자 현 회장을 중심으로 차돌처럼 뭉쳤다. 이번 기회에 전열을 확실하게 정비해 그룹의 모태로서 옛 현대의 영광을 반드시 재현하겠다.” hyun@seoul.co.kr ■ ‘비운의 황태자’ 정몽헌 현대가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는 한 현대맨은 “90년대 들어 언론에서 빅3(MK,MH, MJ) 운운했지만 그 때는 이미 왕회장이 MH를 후계자로 형제들에게 선언한 뒤였다.”면서 “좀체 칭찬을 하지 않는 왕회장이었지만 MH에 대해서는 심지가 깊은 아이라며 믿음을 내보였다.”고 전했다. 보성고와 연세대를 나와 미국 페어리 디킨슨 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학위)를 딴 MH는 귀국후 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세워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급기야 2000년에는 그룹 단독 회장에 취임했다. ‘왕자의 난’의 상처를 털고 MH시대를 여는 듯했다. 하지만 2003년 8월 4일 계동사옥 12층 집무실에서 몸을 던지고 만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저 유서를 통해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만 했을 따름이다. 대북송금 특검 등에 따른 중압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한 측근은 당시 “극심한 중압감 때문이었다면 가족들이 낌새를 알아챘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일축했었다. 투신하기 직전, 가족과 식사한 것을 두고 미리 자살을 준비했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이 역시 MH가 일요일에는 가족들과의 외식을 즐겼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MH는 바깥일을 집에 와 자상하게 털어놓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가급적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등 가정적인 편이었다. 한 측근의 얘기다.“(대북송금·비자금 수사 등이 진행되자) 나 혼자 책임지겠다는 말씀을 여러번 하셨다. 그때는 혼자 감옥가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살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투신하기 두달 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오자 부인(현 회장)에게 매일 순두부를 끓이라고 했던 점으로 미뤄보아 투신 결심은 순간적으로 이뤄졌던 것 같다.” 소탈하면서도 합리적이고 머리도 좋아 따르는 이가 많았던 MH. 그는 그러나 끝내 아버지의 꿈(대북사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삶을 접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55살때였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며느리들 현대가의 며느리들은 4월을 ‘제사의 달’이라고 부른다. 시아버지(정주영 회장)가 생전에 워낙 제사를 중시한 데다 온갖 제사가 몰려있어 4월에는 아예 청운동 시댁 부엌에서 살다시피 했다. 시아버지의 독특한 ‘밥상머리 교육’ 때문에 새벽마다 시댁으로 가 아침식사도 직접 준비해야 했다. 한 며느리는 “새벽 3시반에 갔다는 항간의 얘기는 다소 과장이고 이를 때는 4시반, 보통때는 5시나 5시반쯤 갔다. 시아버님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새벽마다 수행원들 몫까지 김밥을 엄청나게 쌌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언젠가 한번은 아들들이 꾀가 나 아침식사 회동에 몇번 빠졌다. 대로한 왕회장이 “모두 들어와 살라.”고 불호령을 내려 1년간 청운동 시댁 주변에 모두 모여산 적도 있다고 한다. 여자들이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왕회장이지만 말년에는 겸상 식사도 허용했다고 한다. 맏며느리 이양자씨는 수도여대를 나와 한때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이씨가 91년 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실질적 맏며느리 역할을 해온 둘째며느리 이정화(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부인)씨는 당시 명문으로 꼽히던 숙명여고를 나왔다. 빼어난 미모로 유명했던 넷째며느리 이행자씨는 한양대 출신으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숙명여대를 졸업했다. 유난히 여대 출신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여자는 여대를 가야 한다.”는 왕회장의 보수성 때문이었다. 이화여대에 수석 입학해 화제가 됐던 손녀 유희씨(고 몽필씨 딸)도 원래는 연세대 원서를 다 써놓은 상태에서 할아버지에게 ‘보고’했다가 된통 혼이 난 뒤 여대로 틀었다고 한다. 며느리든 딸이든 해외유학까지 다녀오고도 회사 경영이나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도 유교적 가풍 탓이다. 왕회장은 “살림에만 신경쓰라.”며 며느리들에게 골프도 치지 못하게 했다. 현정은 회장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골프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이 훨씬 흐르고서야 뒤늦게 골프를 배웠지만 영 재미가 붙지 않아 골프장에 딱 세번 나가본 뒤 관뒀다고. 오는 10월 ‘금강산 골프장’ 개관에 맞춰 상징 티샷을 날리라는 임원들의 압력이 많아 여간 고민이 아니라고 한다. 한때 기체조를 배웠으며 ‘걷기’ 가 취미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김영만칼럼] ‘놀토’에서 읽는 주5일제 대란

    [김영만칼럼] ‘놀토’에서 읽는 주5일제 대란

    지난 주말, 초·중·고교의 첫 ‘놀토’(노는 토요일)위력은 대단했다. 서울신문 유지혜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앞 주말에 비해 서울 롯데월드에는 두배, 국립민속박물관에는 2.5배나 입장객이 폭증했다. 용인 에버랜드는 4만여명을 예상했었는데 5만명이 넘게 몰렸다 한다. 같은날 나길회기자는 박물관이나 놀이시설의 입장료가 부담이 돼 학교근처를 배회하는 서민가계 어린이들의 이야기로 놀토의 그림자를 그렸다. 지난 주말은 오는 7월 공공부문 합류로 본궤도에 오를 주5일제 주말의 명암을 예행연습한 날이었던 셈이다. 후년 7월이면 주5일제가 100인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돼 국민 대부분이 매주 연휴를 갖게 된다. 국민들의 생활리듬이 혁명적으로 바뀌는 시점이지만, 도시를 떠나기 어려운 서민을 위한 연휴대책은 많지 않다. 서민의 접근이 쉬운 대규모 휴식공간은 서울의 경우 1984년 개장된 서울대공원,4년뒤 마무리된 한강둔치외에는 17년간 추가확대가 없었다. 굳이 찾는다면 난지도 부근 개발, 과천삼림욕장 개장, 올해 35만평의 뚝섬 시민의 숲이 새로 개장된다. 그러나 이정도 공간으로는 2∼3배 늘어날 여가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매주 오는 연휴도 갈 곳이 없다면 삶의 질을 높이는 기회가 아니다. 오히려 빈부격차를 확대체감하는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놀토에 갈 곳이 없는 아이들에겐 부모들이 주5일 근무로 자신들과 연휴를 함께 보내게 되더라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독일의 폴크스바겐이 주4일제를 실시했더니 오히려 이혼율이 늘어났었다는 보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민가정에선 휴일증가가 가족구성원들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아이들이 사회의 불평등구조를 심화학습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어 보인다. 그동안의 국민여가대책은 여름 휴가철에 대비해 국립공원을 보존하고, 해수욕장을 개발하는 정도다. 자동차와 여가시간이 늘어 도로가 막히면 도로를 늘리고, 더 나아가 골프장을 확대했다. 모두가 국민이라기보다 중산층이상을 위한 대책이다. 대도시를 탈출해 다른 지역이나 국립공원을 찾아 여가를 보내는 것 역시 차 없는 사람에겐 TV속의 풍경화일 뿐이다. 서울의 총가구 370만중 절반가까이는 여전히 이동수단이 대중교통뿐이다. 서울밖으로 나가는 게 꼭 즐거울 리 없는 사람들이다. 자가용 없는 500만 서울시민을 위한 체계적인 ‘연휴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다른 대도시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서울은 서쪽을 제외한 세방향이 산으로 높고 넓게 둘러쳐져 있다. 산을 종으로 오르내리는 등산로만 있는 북한산이나 도봉산, 관악산, 청계산, 검단산 등에 산을 횡으로 한바퀴 도는 산책로나 트레킹코스를 만드는 것을 검토해봐야 한다. 자연 파괴 없이 시민들이 취사할 수 있고, 그래서 부담 없이 하루를 보낼 공간확보도 검토해야 한다. 이런식으로 한다면 서울근교에만 남녀노소가 함께 여가를 보낼 수백, 수천㎞의 산책로와 여가공간 제공이 가능할 것이다. 교통·상수도대책 등을 지자체와 정부가 공동으로 협의하듯 주5일제 여가대책도 공동으로 다뤄야 할 중요한 정책목표가 됐다. 수도권 시민 모두가 매주 연휴를 다른 지방에서 보내야 한다면 가계부 주름은 물론, 폭증할 연휴 교통량 해결을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 것이다. 비전문가가 계산해도 골프장 몇개를 건설할 자금, 약간의 4차선 도로를 새로 만들 자금이면 서울근교에 수백㎞의 산책로를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서울을 둘러싼 산들을 휴식공간으로 개발해주는 것은 가계와 국가 모두에 이익이다. 또 부모의 수입과 상관 없이, 아이들은 고궁이나 박물관에 대한 공평한 접근기회를 가져야 한다. 서민들의 연휴대책을 돕는 것은 국민 행복지수를 높이는 좋은 투자다. 논설실장 sangchon@seoul.co.kr
  • [인간시대] 강준식씨의 남다른 국기 사랑

    [인간시대] 강준식씨의 남다른 국기 사랑

    “대한민국의 상징인 국기가 엉망으로 관리되는 현실을 접하다 보니 일종의 사명감까지 생기더군요.” 강준식(57·서울 관악구 봉천7동)씨는 동생 준길(47·대구시 동구 불로동)씨와 손을 맞잡고 태극기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 형제는 3·1절 기념식이 열린 1일에도 충남 천안시 목천읍 독립기념관을 찾아 ‘태극기 동산’에서 열린 행사장에 태극기 50개를 경품으로 내놓았다. 형 준식씨는 현재 태극기선양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태극기 보급’에 앞장선 것은 형인 준식씨의 태극기 사랑이 남다른 데서 비롯됐다. 서울 서초구청에서 행정차량을 운전하는 기능직으로 일하던 준식씨는 1989∼1992년 방배2동에 근무할 때 태극기와 ‘악연?’을 맺었다. 각종 행사 때 길거리에 태극기를 내걸고, 또 태극기를 거둬오는 일을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민이 생겼다. 줄지어 나부껴야 할 태극기가 지나가는 차량이 일으키는 바람에 꼬여 볼품이 없었다. 당시 내무부 등 상급기관으로부터 긴급지시가 ‘전통’으로 내려와 게양대에 말린 태극기를 풀기 위해 공휴일에도 출근하는 고역이 되풀이 됐다. 강씨의 머릿 속에는 항상 이 문제가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강씨는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때 태극기가 얼마나 국민들에게 귀중한 물건인가를 새삼 깨닫고 본격적으로 문제해결에 뛰어들었다. 어떠한 바람에도 감기기 않는 태극기 개발이 그의 인생 목표가 됐다. 기울기가 45도 정도로 고정돼 있는 게양대의 경우 태극기가 감기면 쉽게 펴지지 않는다는 데 착안, 태극기를 묶는 깃대를 360도 회전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위해서는 알루미늄 게양대의 무게가 태극기 무게와 비슷해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래야만 게양대가 회전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벼우면서도 꺾이지 않는 깃대 재질을 찾아 시내 기계상들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강씨는 알루미늄 제품 가운데는 요건을 갖춘 게 없어 주머니를 털어 깃대를 특별 주문했다.600여만원이나 들었다. 관청용인 무게 90g짜리 태극기 7호(90㎝×135㎝)를 기준으로 해 기존 알루미늄 깃대는 태극기 무게의 4배인 380g 정도나 된다. 깃대의 두께가 2㎜인 알루미늄 봉(棒)을 열처리해 0.5㎜짜리로 압축, 자신이 원하던 깃대를 만들었다. 이후 출근길에도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 등 강씨의 열의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초구에서도 시간을 할애해 주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휘감기지 않는 태극기를 특허청에 실용신안등록을 출원, 지난해 4월에는 기술평가까지 마쳐 독점 제작권을 따냈다. 올해부터는 낚싯대 재질의 깃대를 이용, 강한 바람이나 충격에도 쉽게 부러지거나 휘지 않는 업그레이드된 깃대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올 1월 공직에서 정년퇴임한 준식씨는 태극기 제작을 위해 자신이 사는 연립주택 안에 7평짜리 작업실을 만들었다. 필요한 물량만큼 만들어 시내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100여개씩 기증하거나 요식업을 하는 동생 준길씨에게 보내는 등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홍보에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 안 되는 일반주문을 통해 판매하는 수익금으로 충당한다. 가격은 7호 1만원, 가정용인 8호(60㎝×90㎝) 1만 5000원이다. “다행히 관청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최근 가로변에 내건 태극기 가운데 70%가 휘감기지 않는 것으로 교체됐다.”고 두 형제는 활짝 웃었다. 형 준식씨는 “사회환원 차원의 일이기 때문에 공무원으로 있는 아내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라면서도 “태극기선양회에서 7명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도와주는 덕분에 힘들지 않다.”고 고마워했다. 자신은 또 회원이 12만명이나 되는 ‘사색의 향기’ 동료들로부터 인식만이라도 달리하자는 홍보를 할 수 있고, 동생도 대구시 족구연합회장으로 있어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관청용은 특허 덕분에 조달청을 통해 공급할 수 있어 걱정이 덜하다. 다만 준식씨는 아직도 일반 가정의 태극기 게양률이 3%에 그치고 있어 자신에게 할 일이 많다며 국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당부했다. 연락처 (02)889-0465 또는 011-211-9781, 대구 (053)981-3154 또는 011-9595-0025.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오대산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오대산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그곳엔 특별한 ‘숲’이 있다. 천년 세월이 숨쉰다. 모진 비바람, 크고 작은 전쟁을 무수히 겪었음에도 그저 묵묵히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일까. 태고의 정적에 금방 압도당한다. 미묘한 향에 취한다. 부드럽다. 청정해진다. 일념(一念)의 문턱에 선다. 숲이 말했다.‘알면 얼마나 안다고, 네가 알고 있는 것, 죄다 비워버려.’라고. 1300여년 전이었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불교의 최고 성지인 산시성(陝西省)의 오대산을 처음 다녀오면서 역사는 시작됐다. 이윽고 강원도 오대산, 동·서·남·북·중대 오대(五臺)가 생겼다. 바로 ‘문수(文殊)성지’다. 맞다. 월정사(月精寺)…. 산사(山寺)는 일반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기댈 숲이 있기에 바람쐬러 가기도 하고, 속세의 풍진을 씻어내기 위해서 발길을 옮긴다. 지난주 초였다. 월정사 입구에는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살을 에는 바람, 영하의 차가운 날씨였지만 정월대보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은 월정사에서 예불한 뒤 한결같이 상원사로 연결되는 20여리의 숲길을 걸었다. 다름아닌 천년의 숲길, 양 옆에는 하늘높이 솟은 전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문득 생각해본다. 사노라면 소원이 있을터, 나름대로 절박하고 소중하지 않을까. 월정사 안으로 들어갔다. 정념(正念·50) 스님. 월정사 주지로 취임한 지 1년째. 국내 처음 속세인을 대상으로 ‘단기 출가학교’를 열어 기대 이상으로 ‘출가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때문에 불교계는 물론 그를 주목하는 세인들이 많다. 지난해 5월 ‘오대산 천년의 숲길 걷기 대회’를 시작으로 ‘산사영화제’(달마야 서울가자),‘월정사 주지배 평창군민 족구대회’, ‘오대산 불교문화축전’ 등 파격행사를 연이어 열었다. 이때마다 수만명의 인파가 몰려 호황을 이루었다. 이뿐만 아니다. 올 상반기 중 월정사 산문 안의 모든 도로포장을 뜯어낼 작정이다. 숨쉬는 땅, 살아 있는 미생물, 빼앗긴 자연의 권리를 자연에 되돌려주기 위해서다. 때문에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파격’과 ‘개혁’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천년의 고요를 한꺼풀씩 걷어내겠다는 의욕이다. 지난해 여름 그는 중국의 최고 불교성지인 오대산을 방문, 한·중 오대산 불교끼리 만나는 역사적 장을 열었다. 이는 자장율사 이후 천년을 뛰어넘는 ‘대사건’으로 불교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몇달 뒤에는 중국 고승들이 한국의 오대산을 답방, 양국간의 불교문화 교류를 재차 다짐하는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눈이 하얗게 쌓인 절간 앞마당이 보이는 주지 집무실에서 정념스님과 2시간동안 마주앉았다. “스님, 요즘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요.” “만사천래막강구(萬事天來莫强求)” “무슨 뜻입니까.” “만가지 일을 억지로 구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면 일도 잘 안 풀릴 뿐더러 세상도 어지러워져 결국 다사다난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꼴이지요. 평상심과 심청사달(心淸事達)의 맑은 한 생각이 시비장단의 모든 일들을 가지런히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만사를 순리에 의하지 않으면 사회는 양극화로 치닫게 되며 결국 투쟁과 대립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시대일수록 오직 지혜만이 필요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일등능제천년암(一燈能除千年暗) 일지능멸만년우(一智能滅萬年愚)라는 말처럼 한 등불이 천년의 어둠을 다 걷어버리듯, 한 지혜가 우리의 우매함을 한순간에 타파해버릴 수 있다고 제시했다. 또한 지혜란 일심(一心)이 청정해야 하며 이는 곧 다신(多身)이 청정해지고 ‘시방세계’가 청정해지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스님, 정월대보름입니다. 다들 소원을 빌곤 합니다. 올해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목계(木鷄).” “무슨 뜻이지요.” 스님은 장자(莊子)의 ‘달생편’에 나오는 이야기 한토막을 들려준다. 싸움닭을 만들기로 유명한 기성자(紀誠子)가 있었다. 그는 왕의 부름을 받아 싸움닭을 조련시킨다. 열흘이 지나자 왕이 “다 되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기성자는 “닭이 지금 한창 허장성세를 부리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또 물었다. 기성자는 “아직 덜 됐습니다. 다른 닭의 울음소리나 그림자만 봐도 덮치려고 난리를 칩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반복되길 40일째 되던 날, 왕이 묻자 마침내 기성자는 “이젠 됐습니다. 나무로 만든 닭과 같습니다. 망지사목계의(望之似木鷄矣), 기덕전의(其德全矣). 다른 닭들이 감히 대응하지 못하고 도망쳐버립니다.”라고 대답했다. 스님의 설명은 계속된다.‘목계’는 이기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재능이 있어도 ‘무심(無心)’으로 살아 사람들을 감화시키기 때문이란다. 이는 곳 ‘덕(德)’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덕이란 무엇입니까.”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주역의 첫장에 나옵니다. 선행이 쌓이면 반드시 집안에 경사가 온다는 뜻이지요. 인간은 각자 살아가는 팔자가 정해져 있습니다.60살에 죽는 팔자,80살까지 살 팔자, 그러나 이 팔자가 아무리 기구해도 선행이 쌓이면 운명이 바뀝니다. 일찍 죽을 팔자도 80∼90살로 바꿀 수 있지요. 살면서 화(禍)가 적어지고 축복받는 삶의 최선은 선행입니다.” 화두를 떠올릴 때 벽산(碧山)을 생각한다고 했던가. 스님이 뱉어내는 화두는 거침없었다. 깊은 수행의 내공, 일심(一心)과 즉심(卽心)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았다. 월정사 관계자에 따르면 정념 스님은 좌복에 앉은 지 10년만에 공부의 묘한 경계를 맛봤다. 평소 즐겨 독송하던 원각경이 온몸에 전율로 다가왔다. 이후 개미 한마리까지 환희로 보이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넘쳐났다고 귀띔해줬다. 정념 스님은 이른바 불교계의 개혁파로 꼽힌다. 그는 올해로 법랍 26년. 경남 고성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직후인 18살에 출가했다. 이후 종교계에서는 처음으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탄허 스님의 맏상좌(세속의 맏아들격)인 만화희찬 스님을 은사로 모셔 승려가 됐다. 월정사 주지를 맡기 전 그는 12년 동안 상원사에서 주지 소임을 맡았다. 그가 상원사 주지를 맡을 때 아직 젊고 공부의 묘미에 푹 빠져 있어 처음엔 거절했지만 소임과 수행, 이판과 사판이 따로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에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는 지난해 2월 나이 마흔아홉에 현해 스님이 동국대 이사장으로 떠나면서 제4교구 본사 주지로 발탁돼 주목을 끌었다. 월정사 문중서열상 여전히 젊은 편이지만 어른 스님들은 “시대적 흐름에 맞게 젊고 유능한 사람이 일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삶과 수행은 일치돼야 합니다. 과거의 수행은 정태적이었지요. 이젠 대중의 가치와 열심히 호흡해야 합니다. 종교는 역사를 주도하고 문화를 창달하는 것이 본질이며 예언자적 길을 걸어야 합니다.21세기의 문화가 놓여 있습니다. 수행자적 삶을 살 수 있다면 사회 전체가 행복해집니다. 출가학교를 개설한 것도 바로 이같은 취지입니다.” 지난 1년 동안 단기 출가학교 졸업생은 165명. 평균 10대1의 경쟁률에 이를 만큼 점점 인기를 끌고 있다. 올 4월에 여는 제4기 출가학교 응모자만 하더라도 60명 정원에 현재 400여명이 몰리고 있다. 정념 스님은 다음달 14일 기존 졸업생들과 함께 미얀마 등 남방불교 순례를 떠난다. 그는 “지금까지 ‘출가’라는 어휘 자체가 부정적이었지만 이제는 무상(無想)의 경험을 통해 인생을 슬기롭게 사는 길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올해에는 웰빙타운(명상센터)과 생태·문화마을을 조성해 대중들과 더욱 친숙하게 만나겠다.”며 문수동자처럼 환하게 웃었다. km@seoul.co.kr
  • 오페라극장 추진 서남 문화축으로

    오페라극장 추진 서남 문화축으로

    서울 구로구 고척동 동양공업전문대학 옆 빈터에 1만 7000여평의 대단위 문화체육시설이 들어선다. 열악한 서울 서남권의 문화적 환경이 한 단계 올라가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구로구는 오는 2007년부터 동양공전 옆 고척동 63의6 일원 1만 7501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체육센터와 야외공연장, 산책로 및 자전거도로 등을 갖춘 가칭 구로복합문화체육단지를 착공한다고 17일 밝혔다. 총 예산만 757억여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이 지역은 지하철 1호선 구일역∼개봉역 노선의 바로 옆에 있다. 도시계획상 운동장으로 사유지가 93.9%, 국·공유지가 6.1%를 차지한다.6개의 중소 철강공장을 제외하고서는 별다른 시설이 없다. 대부분 20년 넘게 건축폐기물과 고철더미들만 쌓여 있는 ‘황무지’로 버려져 있었다. 구로구는 올해부터 부지 매입을 시작, 내년에 설계용역 발주와 설계 및 인허가를 완료할 계획이다. 이후 시공 및 감리용역 발주를 끝내는 2007년 1월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2009년 3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비 가운데 220억여원은 구 예산으로, 나머지는 시 예산으로 2008년까지 단계적으로 집행할 계획이다. 구로복합문화체육단지의 ‘랜드마크’는 문화체육센터.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3800여평 규모다.50m 길이의 레인 8개를 갖춘 수영장과 체육관, 헬스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이 들어선다. 실습실, 어학실, 어린이교실 등 교육시설은 물론 2층에는 다목적 공연장까지 갖춰 활용도를 극대화했다. 실외에는 전시와 결혼식 등을 할 수 있는 전시장을 비롯해 반원형 무대인 야외공연장도 지어진다. 또 체육시설공원에는 농구장, 배드민턴장, 족구장, 체력단련장 등 체육·놀이시설과 단지 주위로 보행로와 자전거도로를 갖춰 주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체력 증진에 힘쓸 수 있도록 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헌재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

    헌재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영일 재판관)는 3일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 778조와 781조 1항의 일부분,862조 일부 조항에 대해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의 다수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그동안 제기됐던 호주제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호주제를 폐지하는 민법개정안의 처리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가족제도가 헌법 제36조 제1항이 요구하는 개인의 존엄성과 양성평등에 반한다면 헌법 9조를 근거로 그 헌법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면서 “호주제는 호주 지위를 승계할 때 남성우월적인 서열을 매기고 혼인할 때 처가 일방적으로 편입돼 부부간의 수동적·종속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등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다.”라고 위헌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경로효친, 가족화합 등의 전통과 미풍양속은 문화와 윤리의 측면에서 충분히 계승, 발전시킬 수 있다.”면서 “호주제는 사회의 분화에 따라 다변화된 오늘날 가족제도와 조화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합헌이라고 소수 의견을 낸 김영일, 권성 재판관은 “호주제는 우리 고유의 합리적인 관습으로 평등의 잣대로 전통을 재단해 전통 가족문화를 송두리째 해체해서는 안 된다.”면서 “호주제가 실질적 차별이 아닌 전통과 현실에 기초했고 호주제의 폐해를 완화하기 위해 임의분가, 호주승계권 포기 등의 제도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김효종 재판관은 “호주를 두고 있는 민법 제778조는 가족제도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으로 헌법에 위배되지 않으나, 자녀나 처가 일방적으로 편입되는 제도는 위헌”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헌법 불합치는 법률조항이 위헌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는 일정기간 효력을 인정하는 결정이다. 이번 결정에서도 호주제의 위헌성을 확인했지만 즉시 효력을 상실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호적 사무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호적법이 개정될 때까지 호주제의 효력은 인정된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헌법재판소 호주제 위헌판결문 바로가기 ■ 호주제 폐지되면 헌법재판소가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에 따라 호주제 폐지가 기정사실화됐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민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는 것을 전제로 예상되는 주요 변화상을 짚어봤다. ●가족의 범위가 넓어진다 현행 민법은 가족 구성원을 ‘호주와 가족’으로 나눈다. 호주를 기준으로 배우자, 자녀, 자녀의 배우자를 가족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앞으로는 배우자와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는 물론 한 집에 살며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 며느리, 사위, 장인, 장모, 시아버지, 시어머니, 처남, 처제까지 모두 법적인 가족의 범위에 들어간다. ●어머니 성(姓)과 본(本)을 따를 수 있다 개정안은 혼인신고 때 부부가 협의해 자녀가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도록 했다. 경우에 따라 자녀가 어머니 성을 이어받을 수 있다. 하지만 부부간에 합의되지 않으면 자녀들은 아버지의 성을 따른다. 재혼한 여성이 데려온 아이에게 새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할 수도 있다. 또 앞으로 아내의 동의 없이는 남편이 다른 곳에서 낳은 아이를 가족구성원으로 올릴 수 없다. 아이 어머니의 동의도 필요하다. 현재는 친아버지로 확인만 되면 호적에 입적된다. ●양아버지 성(姓)으로 변경한다 성이 다른 아이를 부부합의로 입양했을 때 입양한 아이의 성과 본을 양아버지의 성과 본으로 바꾸고 친생자로 기재하는 친양자 제도가 도입된다. 친생자로 등록되면 양자라는 기록은 완전히 사라진다. 적용 대상은 결혼한 지 5년 이상된 부부가 7세 미만의 아이를 입양했을 때다. 국회는 혼인기간을 3년 이상으로 단축하고, 아이를 15세 미만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데스크시각] 중국 부상과 민주화의 미래/이석우 국제부 차장

    “인도가 민주주의 한다고 해서 잘 삽니까. 그렇다고 빈부격차가 중국보다 작습니까.” 중국 공무원들과 민주화를 이야기할 때면 공식처럼 튀어나오는 표현 중 하나가 인도다. 다당제와 정치적 다원주의, 언론 자유 등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 한들 그런 인도가 중국보다 더 나은 게 뭐가 있느냐는 반문이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두자릿수 경제성장을 일궈온 중국 당국은 ‘정치는 일당독재, 경제는 자본주의’란 함께 가기 어려울 듯이 보이는 중국식 사회주의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달콤한 성장의 과실 속에 시행착오가 예상되는 서툰 민주화보다는 공산당에 의존한 확실한 경제발전 지속이 더 낫다는 견해도 널리 확산돼 있다. 민주주의가 만능이 아님을 강조한 한 베이징대 교수의 저서,‘민주란 미신’이란 책자가 지난해 대학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 때문인지 중국은 민주정치체제를 바탕으로 한 인도식 발전모델을 깎아내리면서도 싱가포르식 권위주의 발전양식엔 높은 점수를 준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에 대해선 극찬을 아끼지 않던 여론주도층이 최근 한류를 견제하고 한국을 ‘일본기술을 베껴서 성장한 2류 국가’ 정도로 낮춰보려는 움직임도 민중운동을 통한 한국의 민주적 성취와 무관치 않다. 민주화를 억누르고 있는 중국에는 이웃나라의 선례가 부담스럽다. 중국도 촌민(村民)자치제 확대 등 느리지만 나름의 민주화실험을 진전시키고 있다. 다만 그들 표현대로 ‘궈칭’(國情), 즉 상황과 조건에 맞는 ‘우리식 민주화’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서구정치제도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권력에 대한 견제·감시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부패 확산 때문이다. 부패는 그동안 개인적 일탈행위, 개개인의 잘못으로 치부돼 왔다. 그러다가 최근엔 견제되지 못한 권력 때문이란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구조적 결함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자오쯔양(趙紫陽)전 당총서기 장례식이 있던 지난달 29일. 식장 부근 그의 지지자들이 내건 현수막에도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다.”는 표현이 “자오의 정신 영원하라.”와 함께 나란히 눈에 띄었다.AP통신이 사진으로 포착한 이 모습은 민주화운동을 감싸던 그의 행동을 변호하면서 당국에 대한 민주화 개혁촉구를 담고 있다. 민주화 없인 도를 더해가는 부패와 사회부조리 척결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다. 자오에 대한 긍정은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운동의 재평가, 나아가 정치개혁의 수용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당국의 고민이 있다. 과거 효율적으로 작동하던 중국식 체제들이 이제는 그 사이 몸집이 자라 맞지 않게 된 옷처럼 발전의 장애가 되고 있다는 지적 속에서도 ‘우리식대로’에 대한 고집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넓은 국토, 다양한 민족구성, 낮고 고르지 못한 민도와 지역에 따른 큰 경제발전 차이 등 중국적 특수성의 강조는 ‘우리 방식’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논리적 배경이다. 보편성을 무시한 특수성과 ‘궈칭’에 대한 강조는 때론 대외관계에도 투영된다.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로 새로 쓰는 동북공정이나 탈북자 처리도 한 예다. 자오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인 30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가한 황쥐(黃菊) 부총리는 “중국의 부상이 세계평화를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힘이 세지고 영향력이 커질수록 특수성과 ‘궈칭’보다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존중이 더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게 됐을 때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보지 않고 번영을 향한 동반상승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석우 국제부 차장 swlee@seoul.co.kr
  • [아하 그렇구나]家家好好 웃을까

    [아하 그렇구나]家家好好 웃을까

    제목에서 ‘가족 영화’의 분위기를 폴폴 내라? 지난해 ‘가족’ ‘우리형’ 등이 성공을 거둔 이래 올해도 가족 소재의 영화가 줄줄이 뒤를 잇고 있다. 소재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가족구성원을 제목에 바로 드러내 “이 영화는 가족 소재의 휴먼 드라마”임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떠올랐다.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통일이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간큰가족’(조명남 감독, 감우성·김수로 주연), 형이 소아암 판정을 받은 뒤 철드는 말썽쟁이 동생을 그린 ‘안녕, 형아’(임태형 감독, 배종옥 주연),1979년에서 81년 사이 주변과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 ‘엄마 얼굴 예쁘네요’(박흥식 감독, 이재응·문소리 주연) 등 올 봄 개봉 예정인 ‘가족 제목’ 영화만 3편에 달한다. 성격이 판이한 두 형제가 뒤늦게 사랑에 빠지는 ‘광식이 동생 광태’(김현석 감독, 김주혁·봉태규 주연)는 6월 개봉 예정작.‘코미디의 대가’ 김상진 감독도 추석시즌 개봉을 목표로 삼형제가 한 공간에서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악당과 싸운다는 내용의 ‘형제는 용감했다’를 준비 중이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막내딸 결혼식을 찾아가는 어머니의 여정을 그린 ‘먼길’(구성주 감독, 고두심 주연)의 제작사도 제목을 ‘엄마’로 바꾸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비슷한 유형의 제목이 쏟아지는 것을 놓고 한가지 잣대로 ‘그렇고 그런 영화’라고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패밀리, 마더, 파더, 브러더 같은 단어가 들어간 영화 제목이 몇 달새 수십편이 쏟아진다면 얼마나 우스워보이겠느냐. 가족 제목 유행은 뭐 하나가 흥행하면 줄줄이 따라오는 한국영화계의 ‘쏠림 현상’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는 한 영화관계자의 쓴소리가 전혀 틀린 말처럼 들리지 않는 건 왜일까.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근로자 지업훈련비 소득공제 문답풀이

    재정경제부가 21일 발표한 소득세·법인세 등 직접세 분야의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내용을 문답으로 알아본다. 올해 ‘근로소득 간이세액표’를 조정한 이유는. -정부는 지난해 소득세법을 개정, 근로소득세율을 기존 9∼36%에서 8∼35%로 일괄적으로 1%포인트 낮췄다. 이에 따라 연간소득 기준으로 ▲1000만원까지는 8% ▲1000만∼4000만원 17% ▲4000만∼8000만원 26% ▲8000만원 이상 35%의 세율이 올해부터 적용된다. 이에 맞춰 간이세액표를 조정한 것이다. 가족 수에 따라 세 부담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똑같이 소득이 300만원이라고 해도 가족 수가 3명인 가구의 근로소득세는 월 11만 2750원으로 4인 가족(월 9만 8590원)보다 많다. 본인과 가족구성원 1명당 연간 100만원의 기본 소득공제를 받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소득공제되는 근로자 직업훈련 비용의 범위는. -근로자 자신의 직업능력 개발을 위해 낸 수강료는 전액 소득공제된다. 연말정산 때 영수증을 국세청에 제출하면 된다. 모든 훈련기관이 다 되는 것은 아니고 ▲한국산업인력공단 산하 직업전문학교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 ▲지방자치단체 운영 직업능력시설 ▲노동부 장관의 지정을 받은 기관 등에 한정된다. 따라서 일반 외국어학원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 올해부터 인터넷으로 받은 영수증도 소득공제용으로 인정한다는데 이미 해오던 것 아닌가. -이전에도 인터넷 발급 영수증을 국세청이 소득공제용으로 인정했지만 이는 법적 근거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국민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이번에 이를 제도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신용카드, 현금영수증 등의 소득공제에서 제외되는 것들은 어떤 것인가. -등기·등록이 필요한 부동산, 골프·콘도 회원권, 자동차(중고차 포함), 선박, 항공기,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등의 구입비용이 제외된다. 세원(稅源)이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굳이 신용카드 등으로 결제했다고 혜택줄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종교·예술단체 등 기부금 모집단체들도 앞으로는 영수증 발급내역을 기록해야 하는데. -연간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을 기부하는 사람에게 영수증을 발급하는 경우에만 발급내역을 작성하면 된다. 발급내역에는 기부자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기부금액 및 기부일자, 영수증 발급일자 등을 기재하고 5년 동안 보관해야 한다. 창업요건이 대폭 완화되는데, 그 내용은. -그동안 기존업체의 자산을 인수해 창업하면 창업 중소기업으로 인정되지 않아 세금감면 혜택을 못 받았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기존업체의 자산을 인수해 창업하더라도 창업 당시의 토지와 건물 등을 포함한 자산총액 가운데 인수한 자산의 비율이 30% 이하면 ‘창업중소기업’ 또는 ‘고용창출형창업기업’으로 인정받아 소득세·법인세 4년간 50% 감면, 취득세·등록세 2년간 100% 면제, 재산세·종합토지세 5년간 50% 감면 등 세제혜택을 받는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세법 개정관련 문의 ▲재정경제부 조세지출예산과 (02)2110-2152∼9 ▲재정경제부 소득세제과 (02)2110-2162∼8 ▲재정경제부 법인세제과 (02)2110-2170∼5
  • 경제전문기자 출신 서정아씨 ‘여보!…‘ 출간

    “남편 월급으로 살림만 하다 보면 남의 돈 쓰는 것 같아 정작 나를 위해선 한 푼도 못씁니다.” 한 37세 주부의 이같은 고민은 불황 속에서 알뜰히 살림을 꾸려 가는 우리시대 전업주부들의 자화상이다. ‘여보! 재테크를 부탁해’(서정아 지음, 거름 펴냄)는 주부들을 향해 “자격지심을 벗어 던지라.”고 부추긴다. 경제 전문기자 출신인 지은이는 건실한 회사를 만들려면 기업에 CFO(최고재무관리사)가 필요하듯 가정에도 ‘전문 CFO’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돈 관리를 잘하는 엄마가 부잣집을 만든다는 것이다. # 충고1“쥐꼬리 월급 무시 말라” 아이가 생기고 생활비가 늘어나면 월급봉투는 늘 빈약하게만 느껴진다. 각종 세금에 국민연금, 공과금까지…. 또 신용카드는 왜 이리 많이 썼는지.TV나 잡지에서 연봉 1억원이 넘는 전문직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월급명세서는 슬그머니 책상서랍으로 처박아 두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지은이는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다. 지은이는 “한달에 300만원을 받는 샐러리맨은 10억원을 은행에 넣고 매달 4%의 이자로 생활하는 자산가와 마찬가지다. 월급생활자가 최고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만큼 월급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서민이 재테크를 하기 위해선 우선 가지고 있는 돈을 신주단지 모시듯 귀하게 관리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 충고2“기록만 할 바엔 가계부를 버려라” “가계부를 꼼꼼히 정리하다가도 이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주부들에게 지은이는 “단순히 기록하는 데 만족하지 말고 차분하게 분석하고 통계를 내보라.”고 제안한다.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를 그려 보라는 것이다. 구멍가게 같은 살림을 하면서 웬 수선이냐고 흉볼 사람도 있겠지만 대차대조표 등은 각 가정의 재정상태를 한눈에 알아보는 척도가 된다. 공책 한 권에 볼펜이면 준비 끝. 집과 자동차 적금 등 자산은 한쪽에, 대출금과 할부금 카드 값 등 부채는 다른 쪽에 정리하면 그만이다. 같은 방법으로 월별로 현금흐름을 차분히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리 결과 월수입에서 부채가 30% 이상을 넘으면 ‘적신호’다. 정리한 자료를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복기해 보면 가정의 거시적인 소비패턴과 불필요한 지출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매일 가계부를 쓰는 것은 기본. 단 작심삼일이 안 되려면 “가계부는 일기 쓰듯 부담없고 편안한 마음으로 적으라.”고 조언한다. # 충고3“재테크 전 가족 합의가 먼저” 분석한 다음은 투자다. 지은이는 “투자를 위해 전체 월급의 20∼30%는 공과금 등 고정지출에 할애하고, 나머지의 30∼40%만으로 생활하라.”고 권한다. 이렇게 하면 월급의 40∼50%는 재테크 자금으로 확보할 수 있다. 소득이 뻔한 상황에서 소비규모를 정확하게 배분하지 못하면 투자는 남의 집 이야기일 뿐이다. 후반부에는 각종 채권과 주식, 금융권의 간접투자 상품, 내 집 마련 등의 노하우가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지은이는 “10년 안에 10억원을 모으겠다는 등의 가시적인 목표를 세우기 전에 돈을 모으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따져 보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미래를 위한 재테크가 현재를 고통과 인내의 연속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성 있는 계획과 가족구성원의 동의가 함께 이뤄질 때 구성원 모두의 꿈을 이루는 행복한 재테크가 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1만원.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월드컵공원에 인조잔디 축구장

    월드컵공원 내 난지천공원에 축구장이 만들어진다. 서울시는 11일 현재 다목적운동장으로 사용중인 난지천공원 삼거리초소 뒤편 부지 8412㎡(약 2549평)에 11억 5000만원을 들여 축구전용 인조잔디 구장을 마련키고 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만들어지는 경기장은 폭 66m, 길이 102m로 국제규격이다.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운동장내 이동식 관람석 100석을 준비할 예정이며 필요할 경우 관리부서에 신청하면 된다. 시는 오는 5월까지 공사를 마무리 짓고 이르면 6월부터 마포구 여성축구단을 비롯한 일반인들의 이용이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한편 축구장 바로 옆에는 농구·배구·족구가 가능한 다목적 구장도 건설된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무대)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301호와 401호 (등장인물) 남:소리감별사 여:빨간 구두의 여인 의뢰인1:50대 초반 의뢰인2:30대 중반 의뢰인3:30대 초반 할머니:꿈속의 환영 딸:중학생 (소리에 대해) 소리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연기한다. 극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극적 요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소리를 측정하는 청진기는 ‘호른’의 유려한 곡선 음관을 부착한 특별한 도구이다. ●제1장 어둠 속에서 “영호야- 영호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인 301호와 401호가 서서히 드러난다. 스탠드만 침침하게 켜져 있는 아래층 301호는 실내가구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위층 401호는 아직 어둠 속에 싸여있다. “우웅 우웅-”하는 진동음이 들리자,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귀마개를 벗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린다. 이어 아파트의 여러 생활소음들이 와글와글 들려온다. 다시 귀마개를 하고 눕는 남자. 이때 다급한 뾰족구두 소리. 쫓기듯 달려와 위층 401호로 올라간다. 문을 닫고 구두를 벗고 룸으로 들어서는 여자. 외투를 벗고 침대 위로 무너지듯 쓰러진다. 아래층 침대에 누웠던 남자가 슬며시 몸을 일으킨다. 플래시를 켜서 천장을 비춰본다. 위층 여인의 숨소리가 평정을 되찾는다.“끼리리리-”하며 냉장고 가동 소음이 시작된다. 냉장고를 비추는 플래시. 새벽 4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암전된다.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의 실내가 드러난다. 침대와 평범한 실내가구들. 구석 쓰레기통에는 호른 나팔과 야구방망이가 처박혀 있다. 탁자에서 남자에게 소리 감별을 받고 있는 의뢰인들. 호른을 닮은 청진기로 손목시계들을 검진하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소리:(손목시계) “째각 째각 째각 째각-” 남자:이게 불량입니다. 태엽이 긁히는 소리가 나는군요. 의뢰인1:계측기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남자:0.5데시벨의 소음이군요. 계측기는 보통 플러스 마이너스 1데시벨의 오차를 가지고 있지요. 다음 분. 의뢰인2:(믹서기 3개를 탁자에 놓고) 동방가전에서 출시한 신제품입니다. 모델별 소음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소비자에게 주는 청각적 영향 말이죠.(뚜껑을 살피는 남자에게) 저... 뚜껑이 아니라 작동시의 소음만 분석해 주시면. 남자:모든 소리를 다 분석해야죠. 의뢰인2:우리가 필요한 건. 남자:다시 말하지만, 소리는 복합적입니다. 의뢰인1:감별사님을 믿고 따르세요. 남자:G-1800, Q-300, A-7, 이 세가지 모델의 소리 중에서 A-7이 가장 우수합니다. 의뢰인2:그럴리가요.A-7이 가장 구형인데. 남자:신제품이 G-1800이죠? 이건 실패작입니다.110데시벨의 고주파 파동 현상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고객만족도가 어찌 될까요? 다음 분이오. 의뢰인3:역시 탁월한 분석이십니다.(포도주 2병을 내밀며) 적포도주와 백포도주입니다. 소리:(뾰족구두) “또각 또각 또각 또각-” (포도주 병을 살펴보다가, 뾰족구두 소리에 눈길을 돌리는 남자. 초인종 소리. 남자가 청진기를 벗고 문을 연다. 복숭아 접시를 들고 들어오는 이층 여자) 여자:안녕하세요? 저는…. 남자:위층 401호 분이시죠? 여자:어머나, 어떻게 아셨죠? 남자:(여인의 빨간색 뾰족구두를 보며) 내 추측이 맞았군요. 빨간색일 거라 생각했죠. 어젯밤에 구두 소리를 들었어요. 여자:어머나, 새벽 4시가 넘어 들어왔는데. 남자:새벽엔 더 잘 들리죠. 여자:한데 색깔까지 어떻게 아셨나요? 남자:검은색 구두였다면 소리가 더 낮게 깔리거든요. 낡은 가죽이라 세월의 나이가 느껴지던데요.15년 된 캥거루 가죽입니다! 여자:호호호- 점쟁이신가봐! 어제 이사왔어요. 인사도 드릴 겸 복숭아 좀 드시라고요.(남자에게 복숭아 접시를 건네며) 어머나, 손님들이 많이 계시군요. 남자:제 의뢰인들입니다. 여자:무얼 의뢰 받으시는데요? 남자:소리요. 의뢰인1:제품의 소리를 감별해 주시는 거죠. 의뢰인2:그 느낌까지요. 의뢰인3:감별사님은 기계보다 정확하시죠. 여자:우리 아파트에 대단한 명인이 살고 계시는군요. 저…이것도 감별이 되나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소리가 잘 안 들리거든요. 남자:(휴대전화를 검진하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소리가 작게 설정된 거 외엔.(진동음을 조정하고) 들어보세요. 소리:(휴대전화 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남자:커졌죠? (휴대전화를 여자에게 주며) 이웃사촌이니 감별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여자:아유, 고마워요. 남자:소리를 놓치면 후회가 크답니다. 여자:맞아요. 일년 전에 정말 중요한 연락을 놓친 적이 있어요. 샤워 중이었거든요. 제 인생이 걸린 중요한 기회였는데….30분 늦게 연락하는 바람에 바이 바이! 근데 감별사님은 소리를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남자:기억되어 있는 소리들 때문에 분석이 되는 겁니다. 여자:이 세상 소리를 전부 기억하고 계세요? 남자:한 번 들으면. 의뢰인2:스리쿠션 때린 당구공처럼요? 의뢰인3:구구 팔십일 구구단처럼요? 여자: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남자:망각이 안돼요. 모두:오!…. (다시 포도주 병을 검진하는 남자. 가만히 주시하는 사람들) 소리:(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아르마냑 17년산이군요. 의뢰인3:네! 맞습니다. 남자:색깔도 소리를 냅니다. 적포도주는 백포도주보다 0.3데시벨 정도 고음을 지닙니다. 잔에 따를 때, 잔을 부딪칠 때, 적포도주는 유혹의 소리를 발산하지요. 좋은 술은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우와!…. 의뢰인2:선생님. 그 차이를 일반인도 인식할 수 있나요? 남자:그들도 분명 듣습니다. 말로는 표현하진 않지만, 마켓에서 돈으로 표현하죠. 의뢰인들:(박수치며)니즈는 욕망이다! 여자:전 들을 수 없거든요! 색깔이 소리를 낸다고요? 그런 황당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죠? 왜들 무조건 믿는다고만 하시죠? 남자:이걸 쓰고 한번 들어보세요. (여자에게 청진기를 건네는 남자) 여자:이건 호른의 음관이잖아요! 남자:제가 특별히 제작한 청진기입니다. 여자:(쓰레기통에 처박힌 호른의 나팔부분을 발견하고) 저기서 떼어내 만드셨나요? 남자:네. 난 새로운 악기가 필요하거든요. 여자:이 청진기가 악기라고요? 남자:그럼요.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악기죠. 여자:혼자만 듣는 게 어떻게 악기가 되죠? (청진기를 던지며) 이건 장난감에 불과해요. 남자:진정하세요. 이 세상은 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소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제발…. 이리 오셔서 들어보세요. 호른 소리를 음미할 수 있어야 진정한 호른 주자가 될 수 있듯이, 이 청진기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해 줍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거죠.(청진기를 여자에게 씌워주고 백포도주를 흔든다.) 들리나요? 눈을 감고 들어 보세요. 소리:(백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여자:들려요. 남자:이번엔 적포도주입니다. 소리:(적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안단테 칸타빌레로 사라지는 아련한 고음의 잔상이 왼쪽 귓전을 스치죠? 여자:(청진기를 벗으며) 들려요…. 하지만 차이는 모르겠어요. 의뢰인1:허허허- 소리 감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의뢰인2:그래서 우린 의뢰를 하러 오고요. 의뢰인3:기계보다 정확하시니까요. 여자:흥, 정말로 듣지 못하는 소리가 하나도 없어요? 남자:듣지 못하는 소리라…. 있죠. 잠들었을 때. 여자:밤에도 안 자고 전부 듣는다면서요. 새벽 4시에 제 구두소리도 듣고. 남자:낮에 자나보죠? 여자:농담하세요? 어째 좋은 이웃이 되기는 힘들 것 같군요. (휭하니 나가버리는 여자. 의뢰인들도 일어선다.) 의뢰인1:허허허. 성질도 급하시네. 오늘도 좋은 감별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뢰인2,3:최상의 분석이었어요.(박수치며) 엑설런트! (모두 나가면 하품하는 남자. 위층 402호로 들어서는 여자. 소리를 읊조린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남자, 위층의 소리를 의식하며 침대 밑에서 박스 하나를 꺼낸다. 박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 스케이트 신발의 줄을 풀렀다가 다시 매더니 하품하며 드러눕는다. 조명 분위기가 바뀐다.) (탁자 위에서 남자의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코를 고는 남자. 이어 부르는 소리) 소리:“우웅 우웅 우웅- 영호야. 영호야-” 남자:(몸을 뒤채며) 순이니…. 인라인 스케이트 사놨다. 어여 신어봐….(부스스 얼굴을 들고) 엥! 내가 자고 있었나. 순이니? 순이 왔니? 날 저물었는데 얘는 뭐하고 안 들어오나. 어휴, 말을 말아야지. 세상 좋아졌다. 맨땅에서 스케이트를 다 타고.(보호장구와 헬멧을 착용해보며) 돈 쓰게 만드는 기술도 가지가지여. 앉아서 이런 거만 연구하는 놈들 천지니. 어뗘. 순이야. 아빠도 멋져 보이냐? 아빠도 소싯적에 얼음지치기 한가닥 했다. 외날 썰매 모르지? 우선 중심을 잘 잡고…. 긴 꼬챙이 하나를 다리 사이로 넣고 얼음을 팍팍 찍으면서 달리는 거여. 대가미 방죽에선 아빠가 일등했다. 니 이렇게 차려입고 씽씽 달리면 동네 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 순이야, 얼른 들어온나. 인제 호른을 필요로 하는 나이트클럽은 없다. 그러니 아빠는 내일이면 배 타러 가야헌다. 한동안 못 보니까 얼른 와. (시계를 흘낏 보다) 아니 근데 이누무 지지배가 아직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하고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여. 내 이년을….(휴대전화 메시지를 발견하고) 얼래, 이게 뭐여.“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려 근데.“아빠. 로데오광장 빨리….” 20분전에 온 거네. 로데오 광장? 하하- 요것이 눈치 하난 빨라요. 거기서 스케이트 타고 싶다 이거지? 다른 애들처럼. 오냐. 아빠가 가마. 근데 얘가 스케이트 사논 걸 어떻게 알았지? 돈 없다고 등짝을 후려패서 학교 보내 놨더니…. 하여튼 귀신이여 귀신.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 나가는 남자. 그 열린 문으로 여자가 은밀하게 들어와, 가구들 뒤에 무엇인가를 붙여 놓는다. 감별사의 청진기를 보고 자기 심장에 대본다.) 소리:(심장박동) “쿵 쿵 쿵 쿵-” (남자가 돌아오는 기척. 얼른 복숭아 가져왔던 접시를 드는 여자. 남자가 힘없이 들어선다.) 여자:어머! 오셨네요. 문이 열려 있기에 접시를 가져가려고요. 아깐 제가 너무 흥분했었나 봐요. 어디 산책 다녀오세요? 남자:근처 로데오 광장에 갔었습니다.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더군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즐거워지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지요. 웬 처녀가 글쎄 나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겁니다. 여자:어머나, 그래서요. 남자:후후후. 당황스러워 혼났습니다. 여자:그 아가씨 아빠가 감별사님과 비슷한가 보죠. 남자:하긴…. 그 아가씨도 우리 딸애와 비슷하긴 했어요. 여자:따님이 있으세요? 남자:……. 여자:참, 그거 잘 타세요? 스케이트요. 남자:내 스케이트가 아닙니다. 여자:누구한테 선물하시려나 보죠? 남자:……. 여자:호호- 말씀하기 싫으신가 봐요.(문으로 가며) 그럼 또 뵙겠습니다. 남자:일년 전,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죠? 소리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금방 사라지거든요. 여자:감별사님. 좋은 이웃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여자 나가면, 남자는 박스를 옆에 낀 채 홀로 서성인다. 조명 분위기 다시 바뀐다.) 남자:어휴! 몇 분 차이로 이게 뭐여. 속 터져. 쬐금만 더 기다리지 않고선.(박스를 놓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며) 이누무 기지배는 대체 어딜 간 거여. 소리:“삐- 삐- 새 메시지는 없습니다.” 남자:아! 눈부시다. 눈부셔. 왜 이리 눈이 부시지? 불을 끌 수도 없고. 순이야, 어여 연락 좀 해라. 아빠 이러다가 죽는다잉. 일주일째 이러고 잠 한숨 못 잤다.(침대에 드러누우며) 이러다 아빠 죽겠다. 순이야. 순이야…. 소리:(진동소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남자:(벌떡 일어나 휴대전화 확인하며) 아니잖아. 어디지? 아래층 201호여! 죽겠네.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뛰어가는 남자.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 남자(E):여보세요,201호 아저씨! 전화 왔어요- 얼른 휴대전화 좀 받아 봐요. 201호(E):돌겠네! 안 받으려던 건데. 알았다니까- (휴대전화 진동소리 겨우 멈춘다. 다시 들어오는 남자) 남자:싸가지 없는 놈. 끝까지 안 받네. 매너들 없어. 소리:(TV 끝나는 소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치이-” 남자:302호 미친놈. 오늘도 저 모양이야. 꺼라. 제발 좀 꺼라. 바로 옆방에서 이러면 어떡하냐.(앞쪽 베란다로 나와서) 302호- 텔레비전 좀 끄쇼. 시끄러워 살 수가 있나. 이웃들(E):조용히 좀 해요. 남자:302호, 조용히 하라잖아요∼ 이웃들(E):301호, 당신이 조용히 해∼ 당신 때문에 못자. 아저씨 날마다 이게 뭐예요. 남자:이런 우라질. 귓구멍이 거꾸로 뚫렸나. 나는 니들 때문에 못자- 아! 눈이 터질 것 같네. 그래도 안 끈다 이거지. 니기미! 대한사람 살아야 길이 보전도 된다. (야구방망이 들고 나가는 남자.302호 문 부서지는 소리. 비명소리. 순찰차 사이렌 소리) (위층 401호 여자는 나지막이 뭔가를 읊조린다.) 여자:“쓱쓱 만져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궁글궁글 쓸어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제2장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 침대에 우울하게 앉아있는 남자.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귀마개를 하고 있다. 말씨가 점차로 사투리 운율로 변해간다. 남자:백두산이 다 닳기 전에, 대한사람 살고 보자는데 웬 말들이 많은 겨.(수건을 풀며) 돌아와 보니 문은 닫혀있고 불은 꺼져 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거여. 그냥 빈집이여. 빈집.(귀마개를 벗으며) 기껏해야 한 삼일이면 됐지. 왜 삼일이 열흘 되고 달포 되고 한달 되느냔 말이여. 왜 삼일이 석달 되고 석삼년 되느냔 말이지. 이상타. 참말 이상한 일이다. 어무이는 금가락지 끼워주면 훨훨 날아간다 허지, 딸년은 스케이트 있어야 씽씽 달려간다 하지. 아! 나도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부산으로 가서 외항선 탔다 했지? 석달 열흘만 꾹 참고 다녀오자.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허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 거여, 시방 이것이. 태평양 넘어 동지나해 건너 알류산 열도 거쳐 부산항에 도착, 광복동 시장에서 딸년 인라인스케이트하고 어무이 서돈짜리 금가락지 서둘러 해가지고 와보이, 종적이 묘연한 것이여. 여편네 줄려고 야들야들한 속곳 둘둘 말아 끼고 왔는디, 입을 사람이 없는 거여. 세상 참 얄궂네. 인생 허망타.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소리:(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얼른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 실망하는 남자. 이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 남자가 문을 여니 의뢰인들이 의뢰품들을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들:좋은 아침입니다. 의뢰인1:(전자레인지를 탁자에 놓고) 부품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남자:(청진기로 검진하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흠…흠… 소리:(전자레인지) “위이이잉-” 남자 : 모터가 낡았으니 교체하세요. 다음. 의뢰인2:(책들을 놓으며) 신나라출판사의 기획 시리즈 견본품인데요. 남자:(책장 넘기며) 책도 소리를 가집니다. 종이 지질에 따라서 소리는 천차만별입니다. 소리:(종이) “펄렁 펄렁… 팔랑 팔랑… 풀렁 풀렁…” 남자:이건 모조지, 이건 아트지, 이건 하드보드에 코팅까지. 아트지는 반짝 반짝! 모조지는 서글 서글! 3데시벨의 편차가 있네요.(표지를 보며) “세계의 미스터리”라…. 이 제목에는 모조지보단 아트지가 어울립니다. 미스터리는 반짝반짝해야죠. (여자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몰래 엿본다.) 의뢰인3:(돌멩이 2개를 놓으며) 심산인테리어에서 의뢰한 겁니다. 남자:(돌을 살피며) 흥미 있는 소재이군요. 돌의 소리는 가장 심원한 소리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재질이니까요. 돌의 소리는 음악의 근본입니다. 돌로 만든 악기인 편경의 소리는 국악의 표준 음정이죠.(돌을 부딪쳐 본다.) 오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소리입니다. 소리:(돌) “딱 딱 딱 딱-” 의뢰인들:정말 탁견이십니다. 남자:저 전자레인지는 전에도 감별해 드린 건데요. 저를 시험하시나요? 의뢰인1:예? 오해십니다. 남자:칠일 전에도 해드렸고, 한 달 전에도 했습니다. 의뢰인1:청진기가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자:기계든 인간이든 자기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죠. 청진기는 거짓을 모릅니다. 여자:(앞으로 나서며) 감별사님의 판단을 믿지 못하시나요? 의뢰인1: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인가 봅니다. 확인해 보죠. 여자:(모두 자신을 쳐다보자) 어머나! 안녕하세요. 호호호- 문이 열려있지 뭐예요. 의뢰인1:소리 감별은 회사의 일급 기밀입니다. 여자:한심한 출고담당 재교육도 중요하죠. 의뢰인1:(전자레인지 들고 나가며) 성질도 급하시고 변덕도 심하시군요. 흠, 흠. 여자:오늘의 분석은 어땠나요? 의뢰인2:출판사가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의뢰인2,3도 나간다. 남자가 문을 잠그더니, 얼른 여자를 데리고 구석으로 간다.) 남자:혹시 이 아파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 못하셨나요? 여자:글쎄요? 남자:이사 온 뒤로 다른 주민들 보신 적 있나요? 여자:네… 봤죠. 남자:이상하지 않던가요? 여자:네. 남자:언제부터인가 이 아파트 주민들이 잠만 자고 있어요. 모든 활동이 중지된 겁니다.201호는 휴대전화를 안 받는 버릇이 있고,302호는 지가 무슨 애국시민이라고 날마다 애국가를 시청하더니 모두 조용해 진 겁니다. 여자:에이, 고급 아파트는 원래 조용하잖아요. 남자:(눈치를 보더니 말소리를 죽이며) 나는 저 의뢰인들을 믿지 않습니다. 여자:(놀라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남자:뭔가 수상쩍은 음모가 있어요. 의뢰 물품이 변하지 않고 있어요. 여자:날마다 똑같아요? 남자:일주일 주기로 반복되고 있어요. 예전엔 한달 주기였죠.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나는 새로운 소리를 원합니다. 여자:좋아하는 음악은 자꾸 듣기도 하잖아요. 가령 호른 연주는 어때요? 남자: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 2악장 로만자… 호른은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날마다 다릅니다.(청진기 곡선음관을 어루만지며) 호른을 통해서 들어야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하지만 누가 날마다 같은 구름을 보고 싶겠소. 누가 날마다 같은 바람을 맞고 싶겠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라고 둘러대지만 실수가 아닙니다. 치밀하게 반복되는 순환시스템이죠.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이 세상이 죽어가는 것처럼. 저들이 소리를 뺐어가는 겁니다. 아…. 이러다가는 당신의 잠꼬대마저 뺐어갈지도 몰라요. 여자:어젯밤에 제가 잠꼬대했나요? 남자:(흉내 낸다.) “쓱쓱 만져 주면… 궁글궁글 쓸어 주면…” 여자:어머, 어머! 저를 너무 속속들이 아시네. 호호호- 내 정신 좀 봐. 가야겠어요. 남자:어젯밤에 당신의 잠꼬대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여자:네? 남자:잠꼬대 소린 정말 너무 오랜만에 들어 봤어요. 지금 이 아파트에서 당신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가버린다면 당신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여기 계세요. 여긴 안전하니까. 여자:(남자를 경계하며)감별사님은 소리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남자:사실은 소리가 무서워요. 여자:왜요? 남자:너무 진실하니까. (이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고조되는 온갖 소리들. 서로 뒤섞여 아비규환의 아우성처럼 난무한다.) 소리:“찌르르르… 출렁출렁… 저벅저벅… 쿵쾅쿵쾅… 우웅우웅… 영호야∼영호야∼” 여자:이게 뭐야?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남자:(귀를 막으며) 아! 아! 저리가. 듣기 싫어. 씨끄러. 듣기 싫어. 아아악- (남자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나가려 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야구방망이로 치고 머리로 들이받으며 발광하다가 쓰러진다. 여자는 놀라서 남자를 부둥켜안는다. 소리들이 그친다.) 여자:여보… 여보! (병원 가운을 입은 의뢰인들이 나타난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침대에 뉘고 벨트로 사지를 결박한다. 남자를 청진기로 진단하는 의뢰인1) 여자:아… 어떻게 된 거죠. 무서워요. 무슨 소리였죠? 그이는 괜찮은가요? 의뢰인2:안심하세요. 본 특병동의 소리치료 시스템입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죠. 의뢰인1:상태가 좋지 않아.2단계 프로그램도 실패야. 발작 증세가 멎지를 않네.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내일 수술 일정 잡도록 해. 의뢰인3:근데 보호자께서 동의서에 아직 서명을…. 의뢰인1:그깟 동의서 하나를 여태 못 받아? (여자에게) 똑바로 들으세요. 내일도 서명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할 겁니다.(의뢰인2에게) 자네 수련의가 왜 그 모양이야. 그럴 거면 딴 병원으로 가. 내가 이젠 환자한테 훈계까지 받아야 돼? 내가 저를 시험한다고? 미친놈이 입만 살아서. 한데… 어떻게 알았지? 의뢰인2:환자는 지각능력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에만 몰두하는 주의력 증가 기제가 너무 왕성해서 그렇습니다. 환자의 소리 분석은 정상입니다. 의뢰인1:믹서기 회사에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잖아. 의뢰인2:그건 생산부장의 말이고요. 오늘 아침에 마케팅팀장과 통화했는데 좋은 지적이라고 반기더군요.2차 분석도 의뢰하겠답니다. 일시적인 “해리성 황홀경”입니다. 의뢰인1:속단하지 말라고 했지? 자네의 진단은 정서적인 판단이 앞서고 있어. 의뢰인2:“뇌손상에 의한 퇴행성 기억장애”란 과장님의 진단은 측두엽의 손상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거 아닙니까? (쓰레기통에서 부서진 호른 나팔을 꺼내서 안고 있던 여자가 나선다.) 여자:선생님, 우리 그이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의뢰인1:미치겠네 정말. 아까 발작하는 거 못 봤어요? 가족도 몰라보잖아요. 여자:예전에 연주하던 곡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 냈단 말이에요. 의뢰인1:단편적인 기억 정도는 모든 환자들이 다 가지고 있어요.(부적뭉치를 던지며) 이게 뭡니까? 이런 식으로 맘대로 행동하면 퇴거조치시킬 겁니다. 여자:이 부적에 어떤 힘이 있다고 믿으세요? 미신에 불과하다면서요? 의뢰인1:그게 아니고…. 의사의 치료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 아닙니까. 협조요. 협조! 여자:협조했잖아요. 가구며 소지품들 가져다가 집안처럼 꾸며놓고… 순이더러 로데오 광장에서 아빠를 기다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잖아요. 근데 별 이상도 없는 이가 왜 딸을 몰라보나요? 왜 아내도 몰라보나요? 그저 지쳐서 그런 걸 거예요. 집에 가서 잘 요양하면… 고요한 호숫가를 찾아서 호른도 불면서 푹 쉬면 나아질 거예요. 의뢰인1:흥, 호른 분다고 치료가 되면 병원이 뭐하러 있어요! 도대체 의사를 뭘로 보는 거요? 기물을 파손하고 상해를 입힌 환자는 완치되기 전엔 퇴원할 수 없습니다. 내일까지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세요.(의뢰인3에게) 진정제 5밀리그램…. 아니 7밀리그램 준비하고, 면회는 금지시켜. (의뢰인1,3 나간다. 흐느끼며 부적을 줍는 여자. 창문으로 복도에서 담배 피우는 의뢰인1이 보인다.) 여자:흑흑흑…. 날더러 어떡하라고요. 기다려라. 기다려라…. 벌써 세 달이 됐어요. 의뢰인2:왜 그토록 소리에 집착하는지 그 압제의 요인을 찾아야 하는데…. 기억 과잉이 문제입니다. 뇌의 측두엽에 너무 많은 소리의 기억들이 축적되어서, 컴퓨터가 다운되듯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치의께선 손상된 부위를 제거하지 않으면 발작이 계속된다고 보십니다. 삭제키를 눌러야 리소스 부족에서 해방되니까요. 여자:그러면 과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서요. 의뢰인2:대신 새 기억은 지킬 수 있습니다. 여자:그토록 찾던 딸이 눈앞에 나타나도 못 알아보는데, 앞으론 영원히 그렇게 되겠죠? 이 빨간 구두요… 15년 된 캥거루가죽 맞아요. 저이가 나이트밴드 아르바이트 뛰어서 첫 월급으로 사준 우리 결혼 선물이죠. 이거 신고 난생 처음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어요. 이 호른은 방직공장 월급 일년을 꼬박 모아서 제가 사준 거예요.(호른을 쓰다듬는 여자. 창가에서 귀 기울이는 의뢰인1) 서귀포 밤바다는 그날 따라 왜 그렇게 고요했는지, 저이가 부는 호른 소리가 수평선 끝까지 울려 퍼졌어요.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번 2악장 알레그로. 그게 저이가 아는 유일한 연주곡이죠. 순이를 낳게 되어서 사범대학을 그만뒀으니… 이 모든 걸 다 잊어버리겠죠? 의뢰인2:아마 그렇게 되겠죠. 여자:그렇게 되면, 우린 이 세상 안 산 거나 같네요. 시골 고등학교 밴드부 남학생이 부는 호른 소리에 바람나 쫓아다니다가…. 외아들 사범학교 나와 선상님이 평생소원이던 홀어머니 가슴에 못질하고, 남자 앞길 망쳤다고 원망들은 촌년이… 저승 가서 어머니까지 못 알아보는 산송장 만들어 놨다는 소린 죽어두 들을 순 없네유. 차라리 청진기 쓰고 세상의 소리에 미쳐서 사는 게 나아요. 저인 소리를 사랑했으니까. 저이 어머니도 소리를 벗삼아 사셨으니 하늘나라에선 서로 알아보겠지요. 의뢰인2:사모님…. 여자:선생님도 저이가 미쳤다고 보세요? 의뢰인2:의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하나 있지요. 알 수 없습니다…. (의뢰인3이 주사기 가지고 들어온다. 의뢰인2가 여자를 부축해 나간다. 의뢰인3이 주사할 준비를 하는데, 창문에서 지켜보던 의뢰인1이 들어와서 부서진 호른을 들어본다.) 의뢰인1:아까 몇 밀리그램이라 했지? (쳐다보는 의뢰인3) 3밀리그램만 투여해. 의뢰인3:3밀리요? 네…. (주사기 용량을 조절해서 남자의 팔에 주사 놓고 나가는 의뢰인3) 의뢰인1:길영호씨. 지금 혼자서 호숫가를 거닐고 있소? (입으로 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을 불며 빠져든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이층 401호로 힘없이 들어서는 여자. 부적 뭉치를 탁자에 놓다가 세어본다.) 여자:하나, 둘, 셋, 넷…. 분명 다섯장을 붙였는데. 한 장이 살아있어! (암전) (무대 밝아지면, 병실 분위기가 나는 아래층 301호. 환자복이 입혀진 남자가 침대 벨트에 묶여있고, 의뢰인2를 따라 여자와 딸이 들어선다.) 의뢰인2:휴, 제가 미친 거 같네요. 주치의가 회진오시기 전에 끝내셔야 합니다. 여자:고맙습니다. 순이야, 어서. 딸:아빠! 제가 왔어요. 어째 잠만 자는 거야. 흑흑흑…. 아빠 일어나세요. 눈떠- 아빠- 여자:여보! 순이가 돌아왔어요. 이제 일어나세요. 다 잘되었어요. 저도 직장 잡아 돈벌이해요. 지난 일은 잊고, 정신 좀 차리세요. (여자와 딸이 벨트를 풀고, 사력을 다해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못하고 무너져 태아처럼 웅크리는 남자) 딸:흑흑흑…. 엄만 대체 무얼 한 거야! 아빠가 저리 되도록. 여자:엄만 안 해본 거 없다. 귀신 쫓는다는 복숭아도 들이고, 부적도 붙여보고, 약손으로 아픈 데 쓸어주시던 할머니 소리도 해보고…. 너는 뭘 하고 있었어. 이년아, 니 아빠 이리된 것 다 너 때문이다. 나가버릴 거면 그냥 나가지 메시지는 왜 남겨! 딸:난 그냥…. 아빠가 기다릴 것 같아서…. 여자:그걸 아는 년이 세 달이나 안 들어와! 니 메시지 못 들었다고, 또 올지도 모르니까 지켜봐야 한다고, 휴대전화에서 눈도 못 떼고 일주일을 뜬눈으로 지새우셨다. 그러다 결국 쓰러지신 겨. 산송장 되신 겨. 집으로 가요, 여보. (남자의 환자복 윗도리를 벗기고 몸을 쓸어주며 사복으로 갈아입히는 여자와 딸.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소리를 하게 된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소리를 받아 부르는 할머니의 환영. 문으로 들어와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할머니:어여 일어나거라. 영호야. 된장찌개에 밥 말아먹고 어여 핵교 가야지. 온나 온나. 어여…(미소 짓는 남자) 우리 외동이, 온나 온나. 딸:엄마! 아빠가 웃어. 여자:어디? 정말! 여보, 어디 좋은 곳 유람이라두 하는 게유? 할머니:아유, 찌린내. 요 녀석 바짝 섰네. 쯧쯧쯧. 이부자리는 한강이구. 늦게까지 숙제하더니 곤했던 게여. 그려 됐다. 옷 갈아입자. 아부지 모르시게 저리 치워놨다. 인나렴. (여자와 딸이 남자의 아랫도리도 사복으로 갈아입힌다. 할머니는 싱크대로 가서 도마를 꺼내 칼자루 끝동으로 마늘을 다진다.) 소리:(마늘 다지는) “쫑 쫑 쫑 쫑-” 여자: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눈을 떠요. 딸:아빠. 눈 떠.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흑. 아빠. 제발! 남자:불…. 불이여…. 딸:뭔 불이 나? 남자:집에 불났다. 어쪄 어무이. 할머니:간밤에 어매가 호롱불 꺼놨다. 걱정 말그라, 불 안 났으니. 밥 다됐다. 소리:(찌개 끓는)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마침내 힘없이 눈 뜨는 남자) 할머니:됐다. 눈 떴다! 딸:아빠! 여자:여보! 할머니:어매는 좀 쉴란다. (이젠 할머니가 기력이 다한 듯 눕는다. 중얼거리며 그 옆으로 다시 무너지는 남자) 남자:왜 이리 자꾸 졸리지. 어무이 괜찮으셔유? 주무시는가베. 순이야, 엄마는 일 나갔니? 밥은 먹었니? 그래 아빠 잠깐 눈 좀 붙였다 일어날 테니 뭔 일 있으면 깨우렴. 아주 잠깐이다…. 아빠가 일어나서 떡볶이 해줄게. 설탕도 넣고 달달하게…. (모로 쓰러진 남자 어느새 코를 곤다. 할머니가 부스스 일어나 아들과 손녀를 보더니 천천히 문으로 걸어 나가며 아들을 부른다.) 할머니: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남자) 남자:어무이! 딸:아빠. 꿈에 할머니 봤어? 남자:순이야. 혹시 할머니가 뭐라 하셨니? 딸:언제요? 남자:돌아가시기 전에. 딸:(할머니 목소리로) “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남자:그래… 맞았어. 어무이가 날 부르는 소리였어.(딸을 안으며) 순이야. 할머니가 아빠를 불러주셨구나. 아빠는 할머니가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가신 줄 알았다. 여보, 어무이가 나를 불러 주셨대. 날 용서하신 거여. 여자:여보, 흑흑흑…. 딸:내가 아빠를 얼마나 깨웠는 줄 알어? 남자:기특한 것. 아빠가 잘못했다. 어무이, 지가 죽일 놈입니다. 여자:아니에요. 지가 죽일 년이에요. 남자:어무이 손은 약손이여. 암…. 그렇구 말구. 딸:할머니 손이 약손? 남자:니 여섯 살 때, 맹장염을 앓았단다. 할머니가 밤새 순이 배를 문질러 주셨대. 할머니 약손으로. 니가 잠이 들어서 새벽이 됐는데, 아빠가 나이트 일 마치고 와보니 이미 혼수상태인 거라. 그래 아빠가 들쳐 업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은 거여. 딸:애게, 약손이면 맹장도 고쳐야지. 남자:아픈 걸 잊게 해주셨잖니. 그러니 약손이지. 이렇게 배를 쓸어주시면서…. (약손 소리를 함께 부르는 가족. 할머니가 밖에서 창문을 열고 함께 부른다.) 가족:“우리 아기 예쁜 배, 엄마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가족:“엄마 손은 약손” 할머니:“궁글 궁글 쓸어 주면…” (노래하다가 침울하게 그치는 할머니) 할머니:인자 이 손 약발도 다 떨어졌는가부다. 이 손으로 아범 뺐어가려던 저승사자들 다 쫓아 버렸는데 이젠 안 되는가부다. 내 다시는 약손 안 할란다. 남자:어무이, 이참에 그 달랑무 소리도 그만 두세요. 동네 애들이 벌써 순이를 놀린대요. 할머니:내 그리하마…. 달랑무 소리두 안 할란다. (창문을 닫는 할머니. 의뢰인1이 방으로 들어선다. 긴장하는 의뢰인2) 의뢰인2: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어제 2단계 프로그램의 효과인 것 같습니다. 옷은 환자가 갈아입고 싶다고 해서…. 의뢰인1:음…. 잘했구만. 길영호씨. 이제 환청이 들리지 않습니까? 남자:네, 사라졌습니다. 의뢰인님. 의뢰인1:허허허…. 잊으세요. 불필요한 소리들을. 불필요한 기억들을. (의뢰인3이 호른 케이스를 하나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3:지금 도착했습니다. 의뢰인1:(케이스를 남자에게 주며) 퇴원하게 되면 이게 필요하실 겁니다. 여자:호른이잖아요? 의뢰인1:제가 30년간 가지고 있던 겁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죠. 한적한 호숫가를 찾게 되거든 연락 한번 주세요.(나가며) 한번 들으러 가고 싶군요. 의뢰인2:선생님! 의뢰인1:자네가 “알 수 없습니다.” 하는 순간, 나도 알 수 없어 졌다네. 의사는 신이 아니지 않은가. 남자:선생님. 신은 이 수많은 세상의 소리를 어찌 다 들을까요. 의뢰인1:허허허- 다 듣다간 신도 입원해야지요. (마주보고 씩 웃는 그들. 의뢰인들 나간다.) 남자:어머니더러 달랑무 못 파시게 한 그것이 내내 걸리는 거여. 바깥출입도 안 하시구 말수도 적어지더니 그냥 가신 거여. 여자:제 잘못이에요. 동네 푼수들 말만 듣고…. 남자:어무이는 소리 힘으로 사신 겨. 그게 어무이 약손이여. (문이 열린 채다. 그 문으로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어머니가 다시 들어와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뭔가 바람에 날려 쿵- 엎어지는 소리) 할머니:영호니? 영호야- 야가 삼일씩이나 어딜 간 거여. 저게 누구여. 영호지. 어여 어여 온나. 세상에! 야가 못 먹어서 눈이 십리는 들어갔네. 집 놔두구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겨. 들어가 밥 묵자. 엄매가 된장국 끓여놨다.(흰 고무신을 주며) 봐라. 흰 고무신 사놨다. 따습지? 어여 신어봐. (흰 고무신을 받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가, 가슴에 끌어안고 웅크리는 남자) 소리:(소년) 흰 고무신 때 타면 어쩐대유. 소리:(할머니) 영호야 자니? 엄매는 그깟 금가락지 없어도 된다. 영호만 있으면 된다. 소리:(소년) 어무이. 흰 고무신… 내 눈 내리면 신을란다. 소리:(눈 밟는) “뽀작 뽀작 뽀작 뽀작” 할머니:멋지다. 헌헌장부 났다. 남자: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잉. 손이 얼은 것 좀 봐. 요리로 들어와. 어여. (어느새 인라인 스케이트 신고 헬멧 쓰고 서있는 딸. 아빠 엄마 있는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문가에서 고개 끄덕이던 할머니, 달랑무 팔러 가신다.) 할머니:달랑무∼ 있어. 푸성귀나∼ 달랑무∼ 있어. 무대 서서히 어두워지며 암전. ■ 희곡 당선소감 게으른 며느리에게 시켜야 할 일은 두부 만드는 일이랍니다. 느긋하게 일해야 맛있는 두부가 만들어진다죠. 군대 지휘관도 게으른 사람이 좋답니다. 게으른 천재여야지 괜히 아랫사람 생고생 시키지 않는다는 건데…. 요건 사실 게으른 아랫사람들의 소망이죠. 부지런한 천재 즉 이순신 같은 양반 만났다간 그저 죽었구나 하고 뛰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는 없지요. 안 뛰면 바로 곤장 맞지요. 난중일기 쬐금 보니까, 임진왜란 발발 전에 이 어른 매일 하는 일이 순찰 나가서 하급지휘관 곤장 치는 게 주업무이시더군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하셨으니 백전백승의 신화를 창조하셨던 게죠. 선친께서 제 원래 이름자에 늦을 만(晩)자 하나를 넣어주신 덕택에 이렇게 느즈막히 입문하게 되었나 봅니다. 작은 상 하나를 펴놓으시고 늘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셨던 아버님께서는 교단 은퇴 후에 스스로 책 몇 권을 출간하셨죠. 그러곤 집안잔치가 있으면 친구 분들께 그 책을 선물하던 낙으로 사셨습니다. 평생 글을 쓰시던 열정은 정말 프로작가 못지않으셨지요. 이제부턴 저도 작심하고 자세 가다듬어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은 상 앞이 아니라 PC 앞이 되겠네요. 축하해주는 벗님들, 사랑하는 영두와 영소, 그리고 가족들. 더불어 삶의 위안과 기쁨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 아울러 미흡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약력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중앙대 교육대학원 무용 석사과정 ■ 심사평 세상이 어수선한 탓인지 응모작들 중에서도 투신자살, 노숙자, 입시부정, 로또복권 등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담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그리고 각종 드라마 매체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대화체의 이야기 구사에는 능숙해졌으나 막상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작품은 드물었다. 최종적으로 심사자들의 손에 남은 희곡들은 박만호의 ‘청진기’, 김성제의 ‘바다로 가는 성북행’, 그리고 류세균의 ‘달 속의 그늘’이었다. 공사판의 살인사건을 그린 ‘달 속의 그늘’은 밑바닥 인생들의 성격설정이나 대사구사에 능숙했으나 극 구성이 너무 평이하고 결말 부분을 배영감의 감상적인 인생고백으로 가져간 점이 지적되었다. 지하철 승강장을 배경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상처받고 억압된 두 모자의 아픈 일상을 포착해낸 ‘바다로 가는 성북행’은 살아있는 독특한 정서가 심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식당 파출부인 엄마와, 성전환 수술을 위해 일본으로 돈벌러 가는 여성적 아들의 아픔을 과장되지 않은 일상적 대사 속에 담아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극적 상황과 행동을 충분히 연극적으로 객관화시키지 못했고 극이 아직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있다. 현대생활을 지배하는 각종 소음과 어린 날에 듣던 정겨운 소리들을 대비시킨 ‘청진기’는 ‘소리’를 극적으로 전경화시킨다는 아이디어나, 신경증환자인 남편을 아내가 의료진과 공모해서 연극적으로 치유한다는 설정 등이 충분히 연극적이며 대사나 극 전개 기법도 상당히 감각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비인간성/어린 시절의 순수함’이라는 대비가 도식적이며, 극전개의 생략과 비약이 과도한 점에서 어느 기성작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다소 걸렸다. 결국 각각 장단점을 갖춘 ‘청진기’와 ‘바다‘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다가 그 나름의 완성도와 무대적 상상력을 높이 사 ‘청진기’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김철리(연출가)·김방옥(평론가)
  • [이집이 맛있대]경기도 고양시 ‘곤드레나물밥’

    [이집이 맛있대]경기도 고양시 ‘곤드레나물밥’

    나물밥. 어렵던 시절에는 밥보다 나물을 더 많이 넣어 죽 쑤어 먹던 ‘눈물 젖은 밥’이지만 이제는 ‘웰빙’이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신선한 나물을 넣어 몸을 건강하게 하는 ‘찾아먹는 밥’이 됐다. 게다가 이런 삭막한 겨울에 향긋한 나물과 함께 밥을 먹으면 마음까지 얼마나 신선해질까. 경기도 고양시 ‘곤드레나물밥’은 강원도 정선의 대표음식을 경기도로 옮겨왔다. 취나물 같은 산나물의 일종인 곤드레와 멥쌀, 찹쌀을 절반씩 섞어 들기름을 살짝 둘러 밥을 지어냈다. 약간 푸른기가 도는 나물밥에 윤기가 잘잘 흐른다. 표고버섯과 멸치, 다시마를 넣어 우려낸 국물에 막된장을 넣고 걸쭉하게 끓인 양념장을 슥슥 비벼 한입에 넣는다. 씹으면서 사라지는 구수한 된장 맛 뒤로 향긋하고 쌉싸름한 곤드레의 맛이 희미하게 전달된다. 십수가지 반찬 중에서도 가장 젓가락이 많이 가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다양한 산나물 무침. 얼레지, 갬취, 다래순, 산뽕잎, 하취, 오가피순 등 인제 점봉산에서 가지고 온 10여가지 나물이 각기 다른 향과 맛을 내면서 입안을 어지럽힌다. 향긋한 나물에 취해 너무 많이 밥을 먹으면 마지막 묘미를 즐길 수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압력솥에 눌어붙은 밥으로 끓인 눌은밥까지 풀코스를 즐길 수 없을테니까. “식성에 따라 원하는 대로 비벼먹어도 좋지만 나물 고유의 향을 느끼면서 먹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는 한승완 사장은 “철저하게 국산을 이용하고 조미료를 넣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 재료의 맛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엄나무와 황기, 더덕, 대추, 밤을 넣고 끓인 토종백숙은 구수한 향이 나 닭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메뉴. 맛있는 음식 외에 이곳이 자랑하는 것은 탁 트인 환경이다. 흰눈이 내린 겨울의 정취는 이집이 제공하는 또 다른 디저트. 서울 외곽 1400평의 넓은 공간에는 족구나 간단한 운동을 하는 운동장도 있어 야유회 장소로도 활용 가능하다. 봄·여름에는 평상을 놓고, 가을·겨울에는 모닥불을 피워 자연을 즐길 수 있다. 미리 전화하면 차량도 제공한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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