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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6국)] 지지옥션배,서봉수마저 무너졌다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6국)] 지지옥션배,서봉수마저 무너졌다

    제9보(104∼115) 여류기사와 시니어기사들의 연승대항전인 지지옥션배에서 김은선 3단이 서봉수 9단마저 제압하고 파죽의 4연승을 달렸다. 이로써 시니어팀의 마지막 주자 조훈현 9단은 8명의 여류기사들을 홀로 상대해야 하는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이 대국에 앞서 시니어팀은 2:8이라는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조훈현, 서봉수 콤비가 남아 있어 역전우승의 희망을 놓지 않았지만, 서봉수 9단이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패하자 충격에 휩싸였다. 승리를 거둔 김은선 3단은 “4연승보다 서봉수라는 거목을 무너뜨린 것이 더욱 기쁘다. 이제는 여류팀의 승리가 거의 확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흑105로 끊은 것은 일단 타개의 맥점. 형세가 불리한 온소진 3단으로서는 조금이라도 국면을 복잡하게 만들어야 역전을 노릴 수 있다. 108로 단수친 것은 속수의 전형으로 금기시되어 있는 행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일리가 있다.<참고도1> 백1로 몰고 3으로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 행마법. 그러나 흑8로 끊긴 다음 백의 운신이 어렵다는 것이 허영호 5단의 판단이다. 111로 하나 끊어둔 것은 긴요한 수순. 흑이 <참고도2>처럼 단순히 흑1로 뻗으면 백은 2로 호구쳐 버틴다. 중앙 백다섯점은 한수로 봉쇄하는 수가 없기 때문에 일순 사방의 흑이 급해지게 된다. 허영호 5단은 114로 계속 중앙을 밀어가지만 애당초 상변 흑 대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다만 공격의 대가로 확실한 이득을 챙기면 충분하다는 것이 허영호 5단의 전략이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6국)] 지지옥션배,벼랑 끝 몰린 시니어팀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6국)] 지지옥션배,벼랑 끝 몰린 시니어팀

    제5보(52∼75) 여류기사와 남자 시니어기사들의 맞대결인 제1회 지지옥션배 연승대항전에서 시니어팀이 벼랑 끝에 몰렸다. 22일 바둑TV에서 벌어진 제14국에서 여류팀의 김은선 3단이 김종준 5단을 물리침으로써 시니어팀은 조훈현 9단, 서봉수 9단 등 단 두 명만이 남게 되었다. 또한 김은선 3단은 파죽의 3연승을 기록하면서 200만원의 연승보너스도 챙겼다. 8명의 선수가 남아있는 여류팀은 남자기사들과 대등한 성적을 보이는 루이 9단, 조혜연 7단, 박지은 7단, 정관장배 5연승의 주인공 이민진 5단 등이 뒤를 받치고 있다. 과연 조훈현, 서봉수 콤비가 여류기사들의 숲을 헤치고 시니어팀에 최종 승리를 안겨줄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보에서 설명한 대로 백이 상변을 연결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허영호 5단도 52로 손을 돌려 방향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흑57은 <참고도1>과의 선택을 두고 갈등이 생기는 장면. 각각 일장일단이 있어 우열을 가늠하기는 힘들다. 백64는 당장 수를 낸다기보다 흑의 대응에 따라 외곽 쪽에서 약간 이득을 보겠다는 일종의 응수타진. 하지만 흑67이 부분적인 맥점으로 좌상귀 흑은 무사하다. 백이 74로 단수쳤을 때 흑이 <참고도2> 흑1로 잇는 것은 무리. 백2로 건너붙인 다음 4로 끼우면 흑의 단점이 사방에 노출된다. 이곳의 모양을 결정하지 않은 채 온소진 3단이 75로 덮어씌우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투가 이어지고 있다. <73…△>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본선2회전]손오공을 잡아라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본선2회전]손오공을 잡아라

    제7보(72∼88) 변화무쌍한 전투바둑으로 아마추어 바둑팬들에게 인기가 높은 서능욱 9단이 ‘손오공을 잡아라’라는 이름으로 아마추어 도전자들과 접바둑 대결을 펼친다. 바둑TV에서 매주 일요일 밤 11시에 방영될 이 프로그램에서 서능욱 9단이 다면기를 통해 두명의 아마추어 도전자를 동시에 상대하게 된다. 아마추어 대국자는 50분 안에 반드시 대국을 끝내야 하며, 초읽기 자체를 거부한 서능욱 9단은 거의 모든 착수를 노타임으로 하게 된다. 얼마 전 프로의 접바둑이라는 이벤트 기전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던 서능욱 9단은 그동안 조훈현-이창호 사제의 벽에 가로막혀 준우승만 14번을 기록했던 불운의 기사다. 흑이 75,77로 호구친 모습이 두텁다. 기분 같아서 백은 <참고도1> 백1로 흑 한점을 제압하고 싶지만 흑2로 선공을 당하게 되면 백이 일방적으로 쫓기는 신세가 된다. 흑이 79로 씌웠을 때 백이 80으로 나와 끊은 것이 예상 밖의 강타. 백이 86으로 이은 장면에서 잠시 고민을 하던 백홍석 5단은 87로 젖히며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물론 흑이 <참고도2> 흑1로 날일자 달리면 백 석점은 수중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백2,4의 활용을 당하고 나면 흑집은 의외로 별것이 없다. 또한 백7까지 연결하는 자세가 너무 이상적이어서 흑의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러운 그림이다. 실전은 백이 88을 차지해 좌하귀 일대에 큰 실리를 얻었다. 이제 흑은 중앙 백 대마에 대한 공격을 통해 상당한 전과를 올려야 한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5국)] 16강전의 하이라이트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5국)] 16강전의 하이라이트

    제1보(1∼20) 16강전 대국 중에 가장 관심을 모았던 백홍석 5단과 강동윤 5단의 대결이다. 강동윤 5단과 백홍석 5단은 2005년과 2006년 바둑대상 시상식에서 나란히 신예기사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백홍석 5단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반면, 강동윤 5단의 기세는 다소 누그러진 느낌이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강동윤 5단은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진다는 의미로 삭발을 한 채 대국장에 들어섰다. 두 기사는 모두 전투형의 바둑을 구사한다. 치밀한 계산력보다는 강력한 힘을 앞세워 상대방을 제압하는 스타일인데, 같은 전투형이라도 약간의 차이는 있다. 즉, 백홍석 5단이 유창혁 9단처럼 두터움을 배경으로 한 묵직한 펀치를 구사한다면, 강동윤 5단은 조훈현 9단을 연상시키듯 먼저 실리를 챙긴 다음 현란한 테크닉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하게 만든다. 백14까지의 진행은 김주호 7단과 진동규 3단의 본선4국과 동일하다. 이 바둑에서 진동규 3단은 백14의 걸침에 대해 <참고도1> 흑1로 좌상귀를 지키고 백2의 씌움을 허용했다. 흑이 실전처럼 우상귀를 받아주면 백이 상변으로 뛰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때 백16이 강동윤 5단이 선보인 신수.<참고도2> 백1로 뛰어들거나 가에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참고도2>는 백홍석 5단과 이영구 6단의 제10기 SK가스배 신예프로10걸전 결승 제2국에서 두어진 수순. 초반부터 난타전이 예상되는 흐름이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본선 2회전] 백,우세를 확립하다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본선 2회전] 백,우세를 확립하다

    제10보(111∼124) 바둑을 두다 보면 불리한 바둑을 뒤집는 것보다 유리한 바둑을 그대로 지켜내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래도 유리한 쪽에서는 ‘부자 몸조심’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처럼 몸이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불리한 쪽에서는 최대한으로 버티고 유리한 쪽에서는 슬금슬금 물러서다 보면 어느덧 형세가 뒤집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승부의 속성을 잘 알기에 프로기사들 중에는 아예 유리한 상황에서도 강수를 연발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부류가 바로 조훈현 9단과 이세돌 9단, 최철한 9단 등이다. 지금 진동규 3단은 좌변에서 무언가 시빗거리를 찾고 싶은 심정이다. 단순히 집을 삭감하는 정도로는 도저히 추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김주호 7단은 흑을 알기 쉽게 연결시켜주더라도 충분한 형세이기에 착점하는 손길에서 여유가 넘쳐난다. 다만 114로 붙인 것은 약간 과한 느낌이다.가 정도로 뛰어두었으면 알기 쉬웠다. 김주호 7단으로서는 실전심리상 좀더 이득을 보고자 <참고도1>의 진행을 기대한 것이지만, 불리한 진동규 3단이 그렇게 호락호락 받아줄 리 없다. 115로 붙인 것이 당연한 반발. 그러나 막상 그 다음 수순을 읽어내기에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잠시 고민을 하던 진동규 3단이 117,119로 붙여 끄는 것으로 타협을 했지만, 백이 120을 차지해서는 한숨을 돌린 결과다. 결국 124까지 좌변 백집이 거의 굳어졌다. 만일 백이 120 대신 121에 뻗는 것은 흑이 <참고도2>로 변신해 순식간에 따라붙는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본선 2회전 (4국)] 한국, LG배 절반의 성공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본선 2회전 (4국)] 한국, LG배 절반의 성공

    제9보(101~110) 4월30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12회 LG배 예선결승에서 한국은 9명의 기사가 예선관문을 통과했다. 중국은 6명, 일본은 류시훈 9단만이 유일하게 본선에 올랐다. 그러나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예선결승에서 펼쳐진 6번의 한·중대결에서는 한국이 2승4패로 밀려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대회에는 아마기사 김종해 6단이 예선결승까지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으나 이희성 7단의 벽에 가로막혀 아마기사 최초의 세계대회 본선진출이라는 뉴스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또한 최근 부진한 성적을 보였던 조훈현 9단도 거뜬히 본선진출에 성공해 건재를 과시했다. 시드배정자를 포함해 32강이 토너먼트를 치르는 본선1회전은 6월2일 한국에서 개막된다. 흑101은 진동규 3단의 노림수였으나 김주호 7단이 외면을 한 채 102로 손을 돌리니 다소 맥이 풀린다. 백이 굳이 하변 백돌을 살리려고 <참고도1>처럼 연결을 하면 흑2로 치받는 순간 응수가 곤란해진다. 이하 흑8까지의 수순이 준비되어 있는 것. 또한 하변은 백이 <참고도2>로 끝내기하는 수단이 남아있기 때문에 보기보다 큰 집은 아니다. 106을 기분 좋게 선수한 뒤 110으로 좌변을 차지하니 백의 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굳이 집을 헤아리지 않고 돌의 모양만을 보더라도 백돌들은 전체적으로 활력이 넘친다. 물론 이 장면에서 백이 좌변을 모두 차지하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백으로서는 큰 탈 없이 최소한의 집만 확보해도 승리는 결정적이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3국)] 2007 한국바둑리그 선수 선발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3국)] 2007 한국바둑리그 선수 선발

    제5보(59∼67) 2007 한국바둑리그에 출전한 8개 팀의 선수 선발식이 1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각 팀은 정해진 순번에 따라 상위랭킹 28명, 예선통과자 12명, 와일드카드 8명 총 48명의 선수를 차례대로 지명했다. 초창기 한국리그는 선수의 실력과 함께 지명도가 중요한 선발기준이었는데, 이번 선발과정은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는 분위기였다. 초단 돌풍의 주역 한상훈 초단, 배준희 초단 등이 2지명으로 선발되어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3년 동안 주장 자리를 맡았던 조훈현 9단이 3지명으로 밀려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 주었다.2007 한국리그는 오는 25일 첫번째 대국을 시작으로 더블리그를 펼친다. 흑59는 원성진 7단이 진작부터 두고 싶었던 자리이다. 자체로 크기도 하지만 나중에 가로 침투해 백진을 교란하는 수단을 엿보고 있다. 백이 62로 들여다봤을 때 흑이 63으로 젖힌 것은 기세의 반발. 실전처럼 진행되면 백이 나로 끊어 흑 두점을 잡는 뒷맛이 생기지만 그보다는 중앙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백이 66으로 끊었을 때 흑이 욕심을 내서 <참고도1> 흑1로 잇는 것은 어떨까? 중간에 여러 가지 복잡한 변화가 있지만 가장 알기 쉽게 수상전을 했을 때 백16까지 흑이 한수 부족으로 잡히는 모양이다. 반대로 백이 흑67로 백 한점이 잡히는 것이 싫다고 <참고도2>처럼 반대쪽을 끊으면, 흑은 바둑 격언에 나와 있는 대로 끊은 쪽을 잡고 버틴다. 이 그림은 오히려 흑이 백을 잡고 대성공을 거둔 모습이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3국)] 반상의 성대결 개막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3국)] 반상의 성대결 개막

    제3보(34∼41) 남자 시니어 기사들과 최강의 여자 기사들이 성대결을 펼친다면 과연 어느 쪽이 우세할까?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재미있는 이벤트가 얼마 전 개막됐다.㈜지지옥션이 후원하는 여류 대 시니어 연승대항전이 바로 그것. 양 팀은 예선통과자와 시드배정자를 합쳐, 각 12명의 기사가 출전해 연승전 방식으로 성대결을 펼친다. 시니어 팀은 세계대회 연승전의 경험이 풍부한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이 뒤를 받치고 있어 든든하다. 반면 여류팀도 루이 9단, 조혜연 7단, 박지은 7단, 이민진 5단 등 강자들이 총출동했다. 지난 4일 첫 대국에 이어 11일 두번째 대국을 치렀는데 시니어 프로기사들이 유리할 것이라는 대부분의 아마추어 바둑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여류팀의 박지연 초단이 정대상 9단과 김석흥 3단을 연파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이번 대회 우승상금은 5500만원이며 3연승 이상을 거둔 기사에게는 별도의 연승보너스도 주어진다. 백이 34로 붙였을 때 35로 늘어 둔 것은 힘을 비축한 수이다. 보통 <참고도1>의 흑1로 젖히는 것이 일감이나 백4로 이단 젖히는 맥을 이용해 백10까지 탄력적인 모양을 갖추는 것이 흑으로서는 불만이다.(9=△ 이음) 흑39 다음 백의 행마가 궁금했는데 김대희 3단은 백40이라는 멋진 감각을 선보인다. 이후 가의 곳이 선수가 되는 것이 백의 자랑이다. 백40 때 흑이 <참고도2>처럼 밭전자의 약점을 째는 것은 백10으로 끊겼을 때 흑의 응수가 곤란하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2국)] 프로정상 온라인 가면대결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2국)] 프로정상 온라인 가면대결

    제9보(120∼130) 인터넷 대국사이트 타이젬에서는 조훈현 9단, 유창혁 9단, 이창호 9단 등 이른바 빅3 드림팀과 사이트 내에서 활동 중인 인기스타 3인의 맞대결이 진행 중이다. 한국의 정상 3인방은 실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반면 인기스타팀은 실명을 밝히지 않은 채 아이디로만 대국에 임하는 소위 가면대결이다. 현재까지 두 번의 대국을 벌인 결과 1,2국에 등장한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이 모두 패해 예상외로 인기스타팀이 2:0으로 앞서고 있다. 한국의 정상 3인방이 온라인 대국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만큼 온라인 대국 고수들의 수준이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120은 삭감의 요처. 그동안 흑이 기분을 내는 듯했지만 막상 이 수를 당하고 보니 흑의 응수가 만만치 않다. 집을 지키려고만 한다면 <참고도1> 흑1로 붙이는 수를 떠올릴 수 있는데 백이 2,4를 활용한 뒤 6으로 끊어 가면 오히려 좌변 흑 두점이 위험해진다. 안영길 5단이 121로 호구친 것은 궁여지책. 어차피 이 곳을 손 빼면 <참고도2> 백1로 끼우는 등의 여러 가지 뒷맛이 흑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122는 윤준상 4단이 너무 여유를 부린 수.123으로 백 한점을 잡힌 수가 보기보다 컸다. 이제 외곽벽이 튼튼해진 흑은 다시 129로 공격의 나팔을 분다. 이때 130이 흑의 약점을 노린 독수. 윤준상 4단도 물러나지 않고 최강으로 맞받아쳐 또다시 치열한 접전이 시작되고 있다. (128=△)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2국)] 류시훈과 이창호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2국)] 류시훈과 이창호

    제8보(113∼119) 일본에서 활동중인 류시훈 9단(35)의 결혼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류시훈 9단은 지난 2월말 괌에서 일본인 피아니스트 다카하시 사유리(30)씨와 화촉을 밝혔다. 류시훈 9단은 어린 시절 이창호 9단이 잘 따르던 형이었고 두 사람은 선의의 라이벌 관계이기도 했다. 류시훈 9단은 이창호 9단이 조훈현 9단의 내제자로 들어가자 일본행을 결심했고, 이창호 9단은 그런 류시훈 9단을 한국에 붙잡아 두고 싶어했다. 그래서인지 류시훈 9단의 결혼소식을 접한 팬들은 제일 먼저 이창호 9단을 떠올리게 된다. 113은 패를 이긴 흑이 누릴 수 있는 기분 좋은 단수한방이다. 그러나 백도 114로 자리를 잡아 사활이 크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윤준상 4단이 전보에서 패를 결행한 것도 이처럼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115는 귀 쪽에서 파고들 수도 있지만 좌변 흑 한점의 연결을 도모하면서 중앙일대에 큰 모양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117로 봉쇄를 당한 이상 백이 118로 가일수한 것은 불가피하다. 이 수를 생략해도 백이 죽는 일은 없겠지만 <참고도1> 흑1을 당하는 순간에 온갖 괴로움을 감내해야 한다. 궁색하게 두 집을 내고 살아야 하는 점도 그렇지만 백2,4 등의 악수를 교환해야 한다는 것이 더욱 가슴 아프다. 또한 이 장면에서 흑이 좀더 욕심을 내서 <참고도2> 흑1을 활용하고자 하는 것은 백2로 끊는 맥점을 당해 오히려 후수를 잡게 된다. 흑은 좌변 백을 괴롭히며 공격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119로 중앙을 넓혀 안영길 5단이 주도권을 쥐는 듯 보였는데….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1)신분의 벽 못 넘은 國手 유찬홍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1)신분의 벽 못 넘은 國手 유찬홍

    인왕산에 살면서 위항시인과 가난한 이웃들을 도와주던 임준원의 집에서 가장 오래 얹혀 살았던 시인은 홍세태(洪世泰)와 유찬홍(庾纘洪)이다. 홍세태의 제자 정내교는 스승이 임준원의 집에 얹혀 살았던 이야기를 ‘임준원전’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유공(유찬홍)의 호는 춘곡(春谷)인데, 바둑을 잘 두었다. 홍공(홍세태)의 호는 창랑(滄浪)인데, 시를 잘 지었다. 이 두 사람의 명성이 모두 당시에 으뜸이었다. 유공은 술을 좋아했는데, 한꺼번에 몇말씩 마셨다. 홍공은 집이 가난해서 양식거리도 없었다. 준원은 유공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한 뒤 좋은 술을 마련해두고 양껏 마시게 했다. 또한 홍공에게는 여러 차례 재물을 주선해주어 양식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해주었다. 유찬홍은 초기의 국수(國手)로 알려진 전문기사이다. 홍세태는 조선통신사를 따라 일본까지 가서 이름을 널리 알렸던 역관(譯官) 시인이다. 유찬홍(1628∼1697)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가장 가깝게 지낸 홍세태(1653∼1725)가 전기를 지어 주었다.(홍세태가 일본에 가서 역관으로 활약한 이야기는 다음주에 소개한다.) 유찬홍은 9세에 병자호란을 만나 강화도로 피란갔다가 포로가 되어 청나라까지 종으로 붙잡혀 갔다. 집안사람이 돈을 주고 사온 기구한 운명의 인물이다. 홍세태는 전기 첫줄부터 유찬홍의 암기력을 칭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암기력 뛰어난 천재… 훈장에 매 맞으면서도 바둑 몰두 유술부(庾述夫)의 이름은 찬홍, 고려 태사 금필(黔弼)의 후손이다. 이웃에 서당 훈장이 있었는데, 학생 수십명이 모였다. 술부도 그곳에 가서 글을 배웠는데, 총명하고 빼어나서 외우기를 잘했다. 여러 학생들이 반을 나누어 과업을 받고 상벌(賞罰)을 계획 세운 뒤, 훈장이 여러 학생들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이소경(離騷經)’을 외우는 학생이 있으면 상을 주겠다.” 술부는 집으로 돌아와 ‘초사(楚辭)’를 찾아 옆에다 끼고, 학사 정두경(鄭斗卿)의 집을 찾아가 문지기에게 말했다.“들어가서 공을 뵙고 ‘유찬홍이란 자가 ‘초사’를 배우고 싶어 왔다고 전하소.” 정공은 평소에 약속하지 않고 만나는 것을 몹시 꺼렸는데, 이때 만나서도 매우 간단히 가르쳐줬다. 술부는 곧 돌아와서 ‘이소경’을 읽었다. 날이 밝자 학생들이 모두 모였다. 술부도 소매에서 ‘초사’를 꺼내들고 훈장 앞에 나아가 돌아앉아 외웠다. 한 글자도 틀리지 않자 훈장이 크게 놀랐다. 술부는 자기의 재주를 스스로 믿고 다시는 공부에 힘쓰지 않았다. ‘초사’는 글자 그대로 초나라 풍의 노래를 모은 책. 굴원(屈原)의 글 25편을 중심으로 제자 송옥(宋玉)의 글 등 몇편이 더 실려 있다. ‘이소경’은 그 첫번째 노래이다. 경(經)이라는 글자가 붙을 정도로 시인들에게 존중받으면서도 까다롭기로 이름난 글이다. 훈장은 어린이들이 해결할 수 없는 숙제를 내준 셈. 유찬홍은 겁도 없이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정두경을 찾아가 숙제를 풀어 달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뜻도 모르고 그저 외우려 애썼지만, 유찬홍은 뜻을 알아야 외우기 쉽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찬홍은 그 이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자기 신분의 한계를 이미 알았던 것이다. 정내교는 유찬홍이 국수가 된 과정을 이렇게 기록했다. 이따금 바둑 두는 사람을 따라 노닐며 그 솜씨를 다 배웠다. 아침에 강할 때마다 훈장은 목찰로 그의 오른쪽 손가락을 치면서,“너에게 글 읽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이 놈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둑 두기를 좋아하는 그의 버릇은 더욱 심해져서, 바둑 잘 두는 사람들과 겨루더라도 감히 그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일시에 국수로 치켜세워졌다. 당시만 해도 전문적인 기사라든가 교육기관이 없었다.‘이따금 바둑 두는 사람을 따라 노닐며’ 배웠다. 그가 공부하지 않는다고 훈장에게 매 맞으면서도 바둑 배우기에 힘쓴 것을 보면 1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당시 국수를 인정하는 제도가 따로 없어, 자타가 최고라고 인정하는 사람을 이기면 하루아침에 역시 최고가 되었다. 정내교는 어떤 사람의 평을 빌려 “신기(神棋)로 이름난 덕원군(德源君)이 늙게 돼서야 윤홍임(尹弘任)이 겨우 이겼는데, 술부는 (소년 후배로서) 한창 강성한 때의 홍임을 압도했다. 술부야말로 덕원군의 맞수이다.”라고 했다. 바둑천재로 불렸던 이창호가 9세에 조훈현의 제자로 바둑계에 입문해 20세에 국수위를 스승으로부터 쟁취해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 유찬홍이 술을 잘 마시고 바둑까지 잘 두자 사대부와 고관들이 그를 불러 함께 놀았다.‘다투어 윗자리에 불러 바둑 두는 것을 보려고 해 그저 보내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가 바둑돌을 하나 놓으면 사람들이 옆에 울타리같이 둘러서 구경했다. 인기가 높아지자 더욱 거만해지고 술만 취했다 하면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욕을 퍼부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위항시인들의 모임에서만 그를 환영했다. 그럴수록 술을 더욱 즐겨, 집안사람과 살림도 돌보지 않았다. 술이 떨어지면 이따금 남의 집까지 들어가 술을 뒤져 마셨다. 술에 취하면 아무데나 앉아서 노래를 불렀다. 하루는 술에 취해 이웃 여자의 집에 들어갔다가 소송당하는 바람에 남한산성으로 귀양갔다. 홍세태는 ‘유찬홍전’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는 재주를 지녔지만 쓰일 곳이 없었으므로, 그 울적하고 불평스러운 기운을 모두 바둑과 술에 내맡겼다.(줄임)당세에 쓰였더라면 어찌 남들보다 못했으랴만, 가난하고 천한 생활로 괴로워하다가 끝내 떨치지 못하고 죽었다. 아아! 슬프다.(줄임)술부로 하여금 자기가 전업했던 바둑을 바꾸어 원대한 사업에 힘쓰게 했더라면 볼 만했을 것이다. 어찌 이에서 그쳤을 뿐이겠는가? ●바둑만 두고도 먹고 사는 세상 오다 정내교는 천재 유찬홍이 신분의 굴레를 뛰어넘지 못해 과거시험도 못보고 바둑이나 두며 살았던 것을 아쉬워했다. 바둑만 두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은 생각지 못했다. 그 전까지는 바둑을 하찮은 재주로 여기거나 심심풀이로 생각했다. 아무리 잘 두어도 ‘동네바둑’으로나 여겼다고 할까. 유찬홍 이후부터 국수로 인정받는 전문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둑은 병법이나 학문과도 관련돼 사대부들이 즐겼지만, 바둑을 소재로 쓴 글은 많지 않다. 기보(棋譜)가 별로 남아 있지 않고, 바둑을 소재로 한 글도 많지 않으며, 전문기사를 주인공으로 한 전기도 몇편 되지 않는다. 김윤조 교수는 ‘조선후기 바둑의 유행과 그 문학적 형상’이라는 논문에서 순조(純祖)의 장인으로 대제학까지 지낸 김조순(金祖淳·1765∼1832)의 예를 들어 바둑이 얼마나 유행했는지를 소개했다. 수원유수(종2품)로 부임했던 그의 종숙부 김이도는 1813년 3월12일 공무를 처리하고 밤중까지 손님과 바둑을 두다가 바둑판을 밀쳐두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김조순 자신은 1819년 동짓달 하순에 ‘기자(者) 김한흥(金漢興), 가자(歌者) 군빈(君賓), 금자(琴者) 익대(益大)’와 사냥꾼 한 사람을 데리고 봉원사로 놀러갔다. 그들을 ‘절기(絶技)’라고 불렀는데, 전문기사가 풍류를 즐기기 위해 동원되는 연예인이자 한시도 떨어져 있기 힘든 관계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01년부터 6년 동안 경상도 기장에 유배되었던 심노숭은 ‘기장 고을에서 서울의 어느 귀인(貴人)에게 1년에 1000벌 이상의 바둑돌을 바친다.’고 기록했다. 심노숭은 그 부당성을 고발한 것이지만, 바둑 열기가 무척 뜨거웠음을 반증한 것이기도 하다. 유찬홍보다 선배였던 삭낭자(索囊子)는 상대가 고수건 하수건 한점만 이기는 삭낭자기법으로 손님을 끌어들여 먹고 살았다. 반면 유찬홍 이후의 국수들은 많은 상금으로 생활을 보장받았다. 보성 출신의 정운창(鄭運昌)은 국수 김종기를 꺾으러 평양까지 걸어가 사흘을 문밖에서 버티며 도전했다가 이겨, 순찰사에게 은 20냥을 상으로 받았다. 어느 정승은 그에게 상화지(霜華紙) 200장을 상금으로 걸기도 했다. 그러나 국수 유찬홍은 끝내 만족하지 못하고 술을 마셨으며, 시를 지어 울분을 토했다. 한강 물로 술 못을 삼아 마음껏 고래같이 마셔봐야지. 그런 뒤에야 내 일이 끝나리니 죽어버리면 곧바로 달게 잠들 테지. 그대들도 보았겠지. 이 뜬 세상을 만사가 한바탕 꿈이란 것을. 그는 죽어야 신분 차별이 끝나는 중인이었기에, 술 마시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부귀를 맘껏 누렸던 사대부들은 늘그막에 ‘만사는 일장춘몽’임을 느꼈지만, 그는 차별받는 이 세상이 차라리 ‘한바탕 꿈’이기를 바랬다. 국수가 돼서도 벽을 넘지 못했던 17세기 중인 지식인의 한 모습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이창호 2연승… 한국 농심배 우승

    이창호 9단이 한국에 7번째 농심 신라면배를 안겼다. 한국의 주장 이창호는 9일 중국 상하이 화팅호텔에서 벌어진 제8회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3차전 최종국에서 중국 주장 구리 9단을 277수 만에 흑 2집반승을 거둬 2연승에 성공하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창호는 이날 주장전에서 구리 9단의 맹공에 밀려 중반까지 고전하다 마지막까지 치열한 접전 끝에 노련한 운영으로 2집반을 남겼다. 대회 6연패를 이룩한 뒤 지난해 처음으로 일본에 우승컵을 내주었던 한국은 막판 박영훈의 4연승과 이창호의 2연승을 몰아치며 극적인 우승을 달성하게 됐다. 우승상금은 1억 5000만원이다. 대회 초반 조훈현과 최철한, 원성진이 줄줄이 패해 우승에서 멀어지는 것으로 보였었다. 한편 이창호 9단이 그 동안 기록한 농심 신라면배의 놀라운 성적이 화제가 되고 있다.1999년 제1회 대회 국내 대표 선발전에서 첫 승리를 올린 이창호는 이날 구리 9단에게 승리하기까지 국내 예선을 포함해 무려 37승 1패의 성적을 남겼다. 지난해 주장전에서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에게 당한 것이 유일한 패배다. 특히 이창호는 1회부터 8회 대회까지 모두 주장으로 출전해 중국, 일본 주장과 최후의 승부를 벌였으며 7회 대회를 제외한 모든 주장전에서 승리해 세계 최강의 수문장다운 면모를 과시했다.김종면기자 jmkim88@seoul.co.kr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4국)] 2006년의 스타 온소진 3단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4국)] 2006년의 스타 온소진 3단

    제1보(1∼13) 온소진 3단과 홍기표 2단은 재작년 16기 비씨카드배에도 참가해서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모두 1회전에서 고배를 마시고 탈락하고 말았다. 당시 두 기사는 모두 무명의 기사였기 때문에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뒤로 1년이 흘렀다. 어린 기사들에게 1년은 충분한 시간이다. 온소진 3단은 2006년이 아마 생애 최고의 한해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바둑리그에서 한게임팀에 와일드카드로 선발된 그는 기쁨을 감추지 않고 고마워했는데, 그 고마움을 성적으로 갚았다.1지명자와 세번 만나서 모두 이기는 기염을 토하며(조훈현 9단에 2승, 최철한 9단에 1승) 한게임팀의 복덩이로 불리게 됐다. 그 결과 그는 1월3일에 있었던 한국바둑리그 시상식에서 5지명자의 베스트선수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한국바둑리그에서 탄력을 받은 온 3단은 GS칼텍스배에서 이창호 9단을 물리치는 등 좋은 성적으로 본선리그에서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좋은 성적으로 랭킹이 수직상승해서 2007년 1월1일 랭킹은 14위, 또 2006년 통합랭킹은 12위로 톱기사 대열에 합류하기 직전이다. 반면 홍기표 2단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작년 그 상태 그대로이다. 그러나 소문으로는 홍 2단도 무섭게 달라졌다고 한다. 프로기사들끼리 연습으로 두는 자체리그전에서 발군의 성적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기사들 사이에서 강하다고 소문이 나면 대체로 1년 안에 큰 일을 내곤 한다. 어쩌면 2007년은 홍기표 2단의 해가 될지도 모른다. 백2의 화점에 대뜸 흑3으로 하나 걸쳐 놓고 흑5로 둔 것은 백이 우하귀에 두면 흑가로 둬서 좌변에 미니 중국식 포진을 펼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온3단은 백6으로 걸쳐서 주문을 거슬렀다. 흑7의 협공에서 11까지는 최신 정석 가운데에서도 최신 정석이다. 이 형태가 처음 등장한 것이 벌써 10년 정도 흘렀지만 최근 새로운 형태가 발견되면서 다시 각광 받고 있다. 그 최신 정석은 백12가 나에 뒀을 때 등장하는데 이번에도 온 3단이 약간 수순을 비틀었다. 온 3단이 처음부터 상대의 주문을 조금씩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2006년 지구촌 사라진 별들

    올해도 우리와 호흡을 함께 하던 사회 각계 인사들이 동시대인들의 안타까움 속에 세상을 등졌다. 해외에서는 독재자·인권유린자들이 많이 생을 마감한 것이 눈에 띈다. #정계 최규하 전 대통령이 10월22일 급성 심부전증으로 향년 87세로 세상을 떴다. 최 전 대통령은 신군부 집권 당시 8개월 동안의 증언이나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눈을 감아 79∼80년 격동기의 진실은 영원히 미제로 남게 됐다. 국회 부의장을 역임한 민관식씨도 1월16일 88세로 타계했다. 그는 3,4,5대 민의원,6대와 10대 의원을 지냈고, 대한체육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맡아 국내 체육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재야운동의 대부이자 5·18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었던 인권변호사 홍남순씨는 10월14일 94세로 영면했다. 한·일 국교수교의 주인공으로 ‘최연소 외무부장관’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은 11월18일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5공화국 시절 야당인 민주한국당 총재를 지낸 유치송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은 6월2일 82세로 숨졌다.조연하 전 국회부의장도 8월 유명을 달리했고, 한나라당 총재 권한대행과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낸 강창성 전 의원도 2월14일 76세로 별세했다. 열린우리당 구논회 의원은 11월15일 46세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떴다.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낸 박주천 전 의원은 12월2일 지병인 특발성 폐경화증으로 65세에 별세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사회계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지난 5월22일 집무 도중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다.2003년 한국인 최초로 선출직 유엔 전문기구 수장에 오른 그는 에이즈와 결핵 등 질병 퇴치와 예방, 각국 보건의료행정 지원에 애쓰며 세계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11월26일에는 ‘거지왕’ 김춘삼씨가 향년 77세로 세상을 등졌다.20대에 전국의 거지를 통솔하면서 일약 전설적 인물로 떠오른 그는 거지구제사업을 벌이는 등 사회사업에도 큰 공헌을 했다. 지난 11월14일 화재를 진압하다 숨진 서병길(57) 소방관은 우리에게 살신성인의 정신을 깨우쳐 주었다. 첫 귀환 국군포로인 조창호(76) 예비역 중위는 11월21일 타계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문화계 “예술은 반은 사기”라는 말을 남긴 천재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 1월26일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늘 새로운 다양한 방법과 시각으로 예술을 해석하는 데 온 삶을 바쳤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말년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갈 만큼 열정적이었다. 한국 최초의 ‘햄릿’역을 맡은 연극배우 김동원은 5월13일 90세를 일기로 타계, 자신의 바람대로 ‘영원한 햄릿’으로 우리 가슴에 남았다. “노력과 열정, 창의력, 그리고 최은희가 내 영화의 전부다.”라던 신상옥 감독은 4월11일 80세로 별세했다. 함북 청진 출신인 신 감독은 납북과 북한 생활, 탈북 등 크고 작은 인생의 굴곡을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켰다.‘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최고봉’으로 불린 극작가 차범석도 6월6일 82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팔순 때도 신작을 발표했을 만큼 쉼 없는 창작열로 젊은 후배들의 귀감이 된 그는 6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 한국 개신교계의 큰 어른이었던 여해 강원용 경동교회 명예목사는 8월17일 89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는 평생을 우리 사회의 갈등을 걷어내기 위해 좌·우를 몸으로 껴안는 구도자의 삶을 걸었다. 한국 바둑계의 산증인 조남철 9단은 7월2일 83세로 타계했다. 그는 1945년 한국기원 전신인 한성기원을 설립했고 조훈현, 조치훈을 일본에 유학 보내 바둑 강국의 기반을 마련했다. 1980년 데뷔 이래 ‘회장님, 우리 회장님’‘탱자 가라사대’ 등 시사풍자 개그로 한때를 풍미했던 개그맨 김형곤씨는 지난 3월 46세의 한창 나이에 팬들과 이별, 아쉬움을 남겼다. ‘머나먼 쏭바강’ ‘왕룽일가’의 작가 박영한, 원로가수 신카나리아와 ‘불나비 사랑’을 부른 가수 겸 영화배우 김상국도 사랑했던 팬들과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됐다. 국내 최고의 조선왕조궁중음식 전문가 황혜성씨는 12월14일 86세로 별세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경제계 한국 중공업 발전의 초석을 다진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7월20일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인 그가 숨짐으로써 ‘영’자 항렬은 정상영 KCC 명예회장만 남게 됐다. 해운업계는 두 명의 별을 잃었다.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이 11월24일 79세를 일기로 타계한 지 이틀 뒤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52세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체육계 통쾌한 ‘박치기’로 1960∼70년대 국민들에게 기쁨을 줬던 ‘전설의 프로레슬러’ 김일(77)씨가 심장마비로 10월26일 삶의 링에서 내려왔다. 라이벌이었던 ‘백드롭의 명수’ 장영철(78)씨는 앞서 8월8일 지병인 파킨슨 병에 따른 흡인성 폐렴으로 별세했다. 프로축구 성남에서 K-리그 3연패를 이룬 차경복(69) 전 성남 감독이 10월31일 타계했고,1950∼60년대 대표선수를 지낸 뒤 축구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문정식(76)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12월25일 생을 마감했다.김형칠(47)씨는 12월7일 도하아시안게임 승마 종합마술에 출전했다가 낙마사고로 숨져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해외 미국의 지원으로 아옌데 좌파 정권을 무너뜨린 뒤 17년간 공포정치를 편 칠레의 철혈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지난 12월10일 고문 등으로 사망한 4000여 피해자 가족들의 원망을 외면한 채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1990년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보스니아계 무슬림 20만명을 학살해 ‘발칸의 도살자’로 불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은 유고전범재판소(ICTY)에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지난 3월11일 옥중 사망했다. 독재자 투르크메니스탄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도 최근 사망했다. 김선일씨를 납치·참수한 알카에다의 이라크 지부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도 지난 6월7일 미군 공습으로 사망했고, 체첸 반군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는 러시아군 공격으로 숨졌다. 지난 7월21일 여든에 사망한 캄보디아의 타목은 ‘킬링필드의 도살자’로 불렸다. 논쟁의 중심에 선 경제학계의 두 거목도 유명을 달리했다.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은 현대 자유주의 경제학의 정신적 지주이자 통화주의의 수장.11월16일 94세로 세상을 떴다. 그 대척점에 선 경제학자 존 갈브레이스도 앞서 4월29일 97세로 타계했다. 정부의 사회문제 개입을 적극 주장했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가능케 한 미국의 외교안보 분야 관리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스타워즈’로 유명한 전략방위계획을 추진했던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무부 장관이 지난 3월 88세의 나이로, 네오콘의 대모격이랄 수 있는 진 커크패트릭도 12월 8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백악관 안보 담당 핵심으로 미국 최초의 여성 유엔대사로 활동한 커크패트릭은 공산권 붕괴에 막대한 역할을 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미망인으로 킹 목사의 뒤를 이어 인권 운동에 헌신한 코레타 스콧 킹과, 세계 여성운동계의 ‘신화’였던 베티 프리단은 모두 2월에 각각 78세와 8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악어 사냥꾼’(사실은 동물보호운동가)으로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스티브 어윈은 지난 9월 촬영 중 가오리 꼬리가시에 심장을 찔려 마흔넷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골프계의 ‘살아 있는 전설’ 바이런 넬슨,1950·1960년 보스턴 셀틱스를 이끌며 통산 9회의 우승 기록을 갖고 있는 명장 레드 아우어바흐도 각각 9월과 10월에 사망했다. 회계부정 스캔들로 미 월가를 뒤흔든 엔론의 전 회장 케네스 레이도 지난 7월 선고 재판을 3개월 앞두고 심장병으로 돌연사, 끝내 명예회복을 하지 못했다.52년간 중국의 ‘국민 의사’로 불리며 의덕을 베풀어온 화이웨이가 지난 8월 73세의 일기로 사망, 중국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만인의 어머니’로 불린 미국의 배우 제인 와이어트도 10월 96살의 나이로 삶의 무대를 떠났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한게임배 마스터즈 서바이벌-2006년 하이라이트(3라운드)] 한칸 뜀의 묘착

    [한게임배 마스터즈 서바이벌-2006년 하이라이트(3라운드)] 한칸 뜀의 묘착

    이번에 소개할 바둑은 남녀기사의 성대결이다. 과거에는 여성기사들의 실력이 남성기사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져서 성대결을 하면 무조건 남성기사가 이기는 것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여성기사 세계최강인 루이 나이웨이 9단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그녀와 맞대결을 펼친 어린 소녀기사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이제는 섣불리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이다. 박지은 6단은 연구생 1조 출신 최초의 여성기사라고 해서 입단시절부터 화제를 모았었다. 연구생 1조는 프로 중견기사 못지않은 실력이라는 것이 이미 장안의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입단 후 조훈현 9단, 유창혁 9단과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 등을 물리친 바 있고,2회 정관장배에서 우승하면서 세계여자바둑의 최정상에도 오른 바 있다. 김광식 5단은 조치훈 9단 문하생으로 95년 일본에서 입단한 후 97년에 귀국하여 이후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장면도(76∼77) 우하귀에서 심각한 패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장면. 그러나 실은 좌변에 훨씬 더 큰 자리가 숨어 있었다. 실전진행(78∼90) 백78로 한칸 뛴 수가 묘착이다. 흑79로 들여다볼 때 백84,88을 선수하고 90으로 넘으니 흑은 차단할 방법이 없다.(83=▲,86=80) (참고도) 만약 실전 흑79로 1의 곳에 붙이면 12까지 안에서 산다. 좌변 흑돌이 양곤마가 됐기 때문에 이 진행은 당연히 흑이 크게 불리하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준결승 1국] 첫번째 파열음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준결승 1국] 첫번째 파열음

    제2보(17∼34) 좌변 조훈현 정석의 진행이 천재적인 조9단의 감각이 돋보인 형태라는 것은, 기존 귀 하나에서만 이루어지던 정석을 위 아래의 두 가지 정석을 엮어서 새로운 하나의 정석을 만들어냈다는 폭넓은 시각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현상이 두드러져서, 적어도 프로기사라면 어떤 정석을 선택할 때 부분 외에 전체적인 구도를 반드시 고려해서 정하곤 한다. 흑17로 미끄러져서 백18과 교환을 한 다음 흑가의 곳에 두는 데까지가 정석이다. 그런데 진시영 초단은 마지막 수를 빠뜨리고 흑19로 곧장 협공해간다. 이 수순의 의미는 이렇다. 만약 우하귀 백 한점을 공격하다가 백에게 선수를 빼앗기면 백17로 한칸 뛰는 수가 굉장히 크다. 그래서 그 수를 못 두게 방해해 놓고 우하귀 백 한점을 공격한다. 백도 당장은 우하귀가 급하기 때문에 좌하귀 흑돌을 공격할 틈은 없다. 흑이 23으로 우변에 뒀기 때문에 백에게 좌하귀를 공격할 찬스가 왔다. 백24로 (참고도1) 1로 협공하면 된다. 그런데 흑이 그냥 손을 뺀 것이 아니다. 흑2라는 타개의 맥점이 준비되어 있다. 백3부터 9까지 두터움을 얻을 수 있지만 그 대신 백1 한점이 다친다. 그래서 최근에는 (참고도2)와 같이 흑2를 두면 손을 뺀다. 그럼 8까지의 진행이 예상된다. 허영호 5단은 실전이 그보다 낫다고 판단하고 백24를 선택한 것. 이하 32까지 물 흐르는 듯한 진행인데 흑33을 선수하고자 했을 때 백34의 반발이 등장했다. 첫번째 파열음이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준결승 1국]완만한 초반 진행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준결승 1국]완만한 초반 진행

    제1보(1∼16) 준결승이다. 이제 우승까지는 두번의 고비만 남았을 뿐이다. 아직까지 우승은커녕 결승에 진출한 경력도 없는 두 기사는 이번이 절호의 찬스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진시영 초단이 결승에 진출한다면 그 자체로 화제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신예기전이라 할지라도 초단이 결승에 진출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좌변의 정석은 속력행마로 한 세대를 풍미했던 조훈현 9단이 개발했다 하여, 일명‘조훈현 정석’이라고 불리는 포진이다. 즉 좌상귀와 좌하귀의 정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두어왔던 형태이므로 이것을 조9단이 개발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흑9로 먼저 걸치는 수를 발견한 것이다. 과거에는 흑9로 (참고도) 1,3의 정석을 뒀다. 그때 백4로 다가서면 백A로 쳐들어가는 수가 아프기 때문에 흑5로 지킨다. 이것은 발이 느리다고 판단해서 흑9로 먼저 걸쳐서 백10과 교환한 뒤에 흑11,13의 정석을 완성한 것이다. 즉 좌하귀 흑9, 백10의 교환으로 백이 눈목자로 두지 못하고 날일자로 두게 했다는 것이 이 형태의 특징이다. 수순 하나를 바꾼 것이지만 이런 곳에서 조훈현 9단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다. 두 기사는 모두 실리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실리를 밝히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실리를 좋아하지만 전체적인 균형을 더 중시하는 중도파이다. 흑5의 높은 걸침을 제외하고는 14까지 대부분의 돌들이 3선에서 놀고 있을 때 흑15가 4선에 놓이자 백도 16으로 높이 걸쳐갔다. 실리를 선호하는 기사라면 가나 나의 곳에 두었을 것. 초반은 완만하게 흘러간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천상으로 간 영원한 ‘國手’ 한국바둑 개척 조남철선생 타계

    천상으로 간 영원한 ‘國手’ 한국바둑 개척 조남철선생 타계

    한국 현대 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9단이 2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83세. 전북 부안 출신인 고인은 14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9단의 문하생으로 입문한 뒤 1941년 한국인 최초로 일본기원 전문기사가 됐다. 44년 귀국해 이듬해 11월 서울 중구 남산동에 한국기원의 전신이자 현대바둑의 효시가 된 ‘한성기원’을 설립했고, 국내 최초의 신문기전인 1956년 국수전에서 초대 우승자가 된 뒤 9연패를 이룩하는 등 1950∼60년대 무적시대를 구가하며 한국 바둑의 초석을 마련했다. ‘기도보국(棋道報國)’의 원대한 뜻을 품고 현대바둑 개척에 나선 고인은 초창기 숱한 난관에 부딪쳐야 했다. 변변한 후원자를 찾지 못했던 한성기원은 1948년 조선기원으로, 이듬해 대한기원으로 개칭했으며 1954년 사단법인 한국기원,1969년 재단법인 한국기원으로 4차례나 명칭이 바뀌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바둑판만 챙겨 피란길에 올랐던 고인은 1968년 종로구 관철동에 한국기원 회관이 건립되기까지 무려 16번이나 이사를 다녀야 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기원이 안정을 찾아가는 동안 국수전 9연패를 비롯해 최고위전 7연패, 초대 명인 등 통산 30회 우승을 기록하며 한국 바둑을 주도했다. 1955년 최초의 바둑 교재인 ‘위기개론(圍碁槪論)’을 출간하는 등 다양한 바둑책을 출판, 한국식 바둑용어를 정착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또 김인, 윤기현, 하찬석, 조훈현, 조치훈 등 후배들의 일본 유학을 적극 추진해 국내 바둑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며 한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바둑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1989), 운경상 문화언론부문상(1998)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충순(80) 여사와 딸 영수(54) 영민(51)씨, 아들 송연(49)씨 등 1남2녀가 있다. 발인은 5일 오전 9시 한국기원장. 빈소는 삼성서울병원.(02)3410-6915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8강전]강동윤 4단,4연패에 종지부를 찍다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8강전]강동윤 4단,4연패에 종지부를 찍다

    총보(1∼183) 살아 있는 기성(棋聖)으로 불리는 우칭위안(吳淸源) 9단은 일찍이 ‘바둑은 조화’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여기에서 ‘조화’라는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실리’와 ‘세력’의 조화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바둑에서 실리와 세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실리를 취하다 보면 엷어져서 상대에게 세력을 허용하게 되고, 세력을 구축하려면 상대에게 실리를 내줘서 집이 부족하다. 기풍도 그와 연관성이 있다. 근본적으로 실리를 좋아하지 않는 프로기사는 단 한 명도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구분을 짓자면, 실리형과 세력형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 바둑계를 호령한 대표적인 1인자의 계보를 살펴보면 조남철 9단은 실리파, 김인 9단은 두터움을 중시하는 중후한 기품, 조훈현 9단은 가공할 전투 능력을 지닌 실리파, 이창호 9단은 탁월한 계산 능력을 지닌 두터운 기풍이다. 이처럼 상극의 기풍을 지닌 기사가 교대로 1인자의 계보를 잇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바둑계에서 이창호 9단을 가장 괴롭히고 있는 두 기사는 이세돌 9단과 최철한 9단이다. 그 중 이세돌 9단은 공격형 실리파, 최9단은 전투적 실전파이다. 이 바둑의 두 기사를 기풍으로 굳이 비교하자면 김주호 6단은 이창호 9단과 유사하고, 강동윤 4단은 이세돌 9단과 흡사하다. 그런데 김6단이 강4단의 천적 노릇을 톡톡히 하며 그 동안 4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이 바둑은 두 기사의 기풍이 잘 드러난 한판이다. 초반 흑이 무수히 잽을 날리며 도발했지만, 그때마다 김6단은 잘 참으며 기회를 엿봤다. 그러다가 흑73으로 무리해왔을 때 백74로 반발하여 흑 석 점을 잡아버렸다. 단 한번의 반발이었지만 그것으로 승기를 잡은 것이다. 또 다시 김6단이 강4단의 천적 구실을 톡톡히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김6단은 몸을 사렸고, 강4단은 끊임없이 도발해왔다. 마침내 백138이라는 패착이 등장했고, 이어서 백142의 어처구니없는 착각이 등장하면서 바둑은 순식간에 흑쪽으로 기울었다. 강동윤 4단이 준결승에 진출함으로써 신예연승최강전,SK가스배 신예프로10걸전 우승에 이어서 신예대회 3대 기전 통합 우승에 한발 더 다가섰다. (98=89) 183수 끝, 흑 불계승 (제한시간 각 10분, 초읽기 40초 3회, 덤 6집반) 유승엽 withbdk@naver.com
  • 본사 주최 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 오른 허영호 5단

    “우승하게 돼 정말 기쁩니다. 이번 신인왕전을 발판삼아 명실상부한 국내 정상으로 올라선 뒤 세계대회에서도 널리 인정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근 서울신문사와 (재)한국기원이 주최하고 비씨카드㈜가 후원하는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에서 강호 원성진 7단을 2대 0으로 누르고 우승컵을 안은 허영호(20)5단. 박승현 5단, 이희성 6단, 진시영 2단을 차례로 따돌리고 결승에 진출, 원 7단과 대국한 허 5단은 1국에서 역전 반집승을 거두고 2국에서도 맹공을 막아내 결국 ‘신인왕’으로 생애 첫 타이틀을 거머쥐었다.“대국 전부터 우승 후보로 점쳐졌던 원성진 7단에 비해 네임밸류가 낮고 주변에서도 불리하다는 관측이 많아 긴장했지만 1국에서 승리한 뒤 자신감을 얻어 기세를 몰아갔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바둑을 시작, 윤현석 8단 문하에서 프로기사 수업을 쌓아 2001년 입단한 허 5단은 2003년 유망주로 승승장구했으나 그동안 부진의 늪에 빠져 있었다.“이번 신인왕전은 그간의 슬럼프를 털고 종전의 기세를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거듭 밝힌 허 5단은 평소 바둑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상대방보다 앞서나가려는 조급함을 가장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침착하게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때를 기다려 기회를 잡는 것이지요. 서두르다 보면 설사 그 판에서 이기더라도 다음 대국에서 영향을 미쳐 결국 진 적이 많았습니다.” 하루 6∼8시간을 바둑에 할애한다는 그는 바둑을 처음 두기 시작했을 땐 조훈현 9단을 가장 존경했으나 지금은 이창호 9단에 더 관심을 가져 이 9단의 대국 기록 등을 놓고 연구하고 있단다.“지금까지 이 9단과 두 번 대국을 했는데 다른 이들하고 바둑 두는 방식이 사뭇 다른 것 같아요. 예상 외의 포석에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데 나중에 보면 그 수가 적확한 것으로 판명되곤 합니다.” “바둑은 고도의 정신집중을 필요로 하는 만큼 체력관리에 신경을 써 축구를 즐긴다.”는 허 5단은 ‘세계적인 기사’와 함께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있다.“중고교 시절 바둑 때문에 학교수업에 몰입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대학에서 중국어나 일본어를 공부하고 싶어요. 물론 바둑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요.” 멀리는 바둑을 배우려는 어린이들이나 초보자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려는 뜻도 갖고 있다.“한때 바둑인구가 1000만명에 육박했는데 지금은 많이 준 것 같아요. 무엇보다 ‘미래의 기사’들이 바둑에 쉽게 접해 바둑인구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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