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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교전/ 전투상황으로 본 국방 허점

    이번 ‘6·29교전사태’에 대해 국민들은 “왜 그렇게 우리측 피해가 컸나.”라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북한 경비정 2척에 대해 우리측은 고속정 및 초계정 8척이 맞서 전력적으로 우세했으나 사상자가 24명이나 발생했고 고속정 1척이 침몰했기 때문이다. 사건발생 이틀째인 30일 침몰된 참수리 327호의 생존 수병들의 증언과 교전에 참가한 다른 함정 지휘관들의 상황보고를 분석한 결과 북한 해군의 교전의도와 전투 의지는 명백했으나 이에 대한 우리 군과 정부의 대응은 매우 안일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사전 경고 무시- 중국의 대규모 선단은 자국의 근해가 오염돼 어족이 고갈되자 북방한계선(NLL)을 중심으로 남북 해역으로 이동해 불법조업을 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연평도보다 꽃게의 황금어장인 북한의 등산곶 근해는 중국 선단의 불법침입이 잦은 곳이었다.이 때문에 중국 선단은 이를 막는 북한 경비정들에 쫓겨 NLL 남쪽으로 도주해 내려오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 특히 북한 경비정들은 중국 선단을 추적하며 조준사격에 가까운 위협사격 및포격을 하는 사례가 우리측에서도 자주 목격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정보관계자에 따르면 6월 들어서만도 북한 경비정들은 5∼6차례에 걸쳐 중국 선단을 향해 총·포격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즉 북측의 총·포격 행위는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측에도 위협적인 도발행위로 간주할 수 있었다.이 때문에 정부가 대북 채널을 통해 이에 대한 우려를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해석이다. -NLL 침범에 대한 안일한 대응- 국방부는 최근 북한 어선과 경비정의 NLL 침범 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통해 ▲NLL 침범 횟수가 예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었다 ▲우리 고속정이 침범 선박에 다가가 퇴거 경고를 하면 두말없이 되돌아가는 등 안보에 위협적인 요소는 전혀 없다 ▲북측이 최근 NLL 북측 경계선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는 등 협조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그러나 이날 북측의 전화통지문에서 밝혀졌듯이 북측은 과거 유엔이 임의로 설정한 NLL을 무시하고 언제든지 남쪽으로 내려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군과정부 관계자들은 “북측이 월드컵 경기기간에는 꽃게잡이 조업을 중단시키는 등 우리측에 우호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북측이 갖고 있던 불만을 감지하지 못했다. 북측이 새삼 NLL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좁은 어장을 놓고 남북한과 중국 등 3개국의 다툼이 심화됐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북측의 준비된 포격- 북측은 이번 교전의 근본적인 문제가 NLL의 부당성에서 비롯됐다고 스스로 밝혔기 때문에 북한군은 도발 의도를 갖고 NLL을 침범,전투를 벌였다는 정황이 더욱 분명해진다.더욱이 인양도중 침몰한 우리측 참수리 357호 고속정에 접근하는 방식은 처음부터 철저한 전투대형이었다.(그림 참조) 북측 경비정 1척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남쪽으로 직선 항해,고속정 편대(2척)에 접근했다.우리 고속정 2척은 경비정의 남하를 막기 위해 함정을 가로로 운항했다.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에 이르자 고속정 2척 가운데 선두함이던 참수리 358호를 그대로 통과시킨 뒤 선수를 돌려 뒤를 따르던 참수리 357호와 나란히 운항했다.보다 소형인우리 고속정은 정면에서 공격하는 함정이지만 중형인 북측 경비정은 함정의 측면에서 함포사격을 하는 것이 용이하다.즉 북측은 신속하게 전투대형을 갖춘 것이다.후미 함정을 노린 것은 선두함을 공격할 경우 후미함이 반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한 것으로 해군은 분석했다. 북측경비정은 450m 거리에서 85㎜ 함포의 첫 발을 참수리 357호의 지휘탑인 조타실에 명중시켰고 곧이어 두번째,세번째 포격으로 기관실과 함미(艦尾)지휘부를 파괴했다.즉 순식간에 함정의 기능을 마비시킨 것이다. -초기 교전 대응 미비- 북측의 경비정이 NLL을 넘은 다음부터 첫 포격이 이뤄질 때까지 24분의 시간이 있었다.24분동안 북측 경비정은 고속으로 기동하며 남하,전투대형을 갖춘 뒤 망설임없이 포격을 했다.우리 고속정 편대는 평소와 다른 그들의 이례적인 기동에 대해 이전처럼 배를 가로로 운항했을 뿐이다.다시 말해 적함으로부터 포격을 당하기 좋은 위치로 운항한 것이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이날 교전에 참가했던 참수리 358호 승조원의 말을 빌려 “순간적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았으나 설마하고 여겼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아울러 “24분이라는 시간은 고속정으로서는 충분히 회피기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날 북측의 경비정 2척은 ‘SO1급’중무장 함정이었으며 평소 이 지역을 담당하는,보다 작고 무장이 적은 ‘청진함급’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간과하고 말았다. 합참 관계자는 “주로 청진함급이 NLL 주변을 경비하지만 SO1급도 간혹 관측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서해교전/ 전투참가 장병 교전상황 증언, 손가락 잘린 고통속 “”실탄 달라””

    “처절한 전투였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결코 지지 않았습니다.” 서해교전을 치른 해군 장병들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충혈된 눈은 전사하거나 부상한 전우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듯 연신 경련을 일으켰다. 357호에서 살아남은 한정길(26) 중사 등 3명과 358호에 승선했던 232 편대장 김찬(36) 소령 등 14명이 30일 358호 선상에서 당시의 참상을 공개했다.이들이 전한 교전 상황과 구출작전을 재구성한다. 29일 오전 10시25분 연평도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북한의 경비정 1척이 내려왔다.주변에 단 한척의 어선도 보이지 않은 점이 평소와 달랐다. 북한 경비정의 함포가 우리 고속정 357호에 겨누어져 있음을 확인한 순간 357호와 358호 고속정의 포문도 일제히 북한 경비정으로 향했다.한정길 중사는 “포를 겨누었지만 발사는 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으며 당시 결코 방심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순간 북한 경비정에서 내뿜는 함포 소리가 고요한 서해 바다를 뒤흔들었다.배의 왼쪽 부분이 북한 경비정 방향으로 향해 있던 357호의 조타실에서 불길이치솟았고 파편이 바다로 쏟아졌다.358호에서 두 고속정을 지휘하던 김찬소령이 즉각 대응사격을 명령했다.20여분 동안 격렬한 함포사격이 이어졌다.1000여발의 포탄이 모두 소진될 정도였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357호는 왼쪽으로 기운 채 빙빙 맴돌고 있었다.포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유효 사거리에서 벗어나야 했지만 이미 기동력을 상실한 상태였다.한 중사는 “연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곤란했고,타기(핸들)와 가속기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고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정장(艇長)을 포함,4명이 전사하고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357호의 장병들은 피투성이 상태에서도 개인화기로 사격을 계속했다.숨진 조천형(趙天衡·26) 중사는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사격을 멈추지 않은 듯 방아쇠를 꽉 움켜잡은 모습이었다. 임근수(25) 하사는 “K2소총으로 전투를 하던 권기형 상병은 왼손가락이 모두 절단된 상태에서도 나에게 실탄을 갖다 달라고 외쳤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박경수(22) 하사는 “배가 불길에 휩싸인 순간 조타실에 올라가 보니 피가 흥건했고,매캐한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면서 “좌현 사수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장전돼 있던 포를 계속 쏘았다.”고 당시 상황을 돌이켰다. 교전이 끝나자 358호가 침몰하고 있는 357호의 왼쪽에 붙어 본격 구조작업을 벌였다.장병들이 357호에 올라가 보니 정장 윤영하(尹永夏·28) 소령은 등에 피를 흘리며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인공호흡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부정장 이희완 중위의 종아리는 포탄파편에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비상펌프를 동원해 고속정에 고인 물을 빼내고,소화기로 엔진의 불길을 진화했지만 357호는 이미 예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돼 있었다. 평택 이창구 유영규 장세훈기자 window2@
  • 서해교전/ 침몰 고속정 처리 어떻게

    지난 29일 오전 서해 연평도 부근 북방한계선(NLL) 해상에서 북측 경비정의 선제포격을 받은 뒤 예인 도중 침몰한 우리측 함선은 어떤 방식으로 인양될까. 국내에서 제조한 우리측 고속정(가격 약 70억원)은 연평도 서남쪽 29.34㎞,수심 15∼20m 지점에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북측으로부터 일제사격을 받는 등 치열한 무력공방이 벌어진 만큼 외형상 심한 파손을 입은 것으로 관측된다.안기석(安基石·해군 준장) 합동참모본부 작전차장은 “북측 경비정으로부터 세 발을 맞았다.”며 “조타실과 기관실,배 뒤쪽이 크게 손상됐다.”고 말했다.배가 침몰한 가장 큰 이유로는 “기관실과 배 뒤쪽에 구멍이 크게 나면서 배가 침수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침몰한 선박에서 기름이 유출되는 등 심각한 해양오염이 발생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인양작업은 별 무리없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침몰해역의 수심이 20m 안팎으로 얕은 데다 우리 해군의 구난작업 및 침몰선박 인양능력이 선진국의 기술을 능가할 정도로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침몰한 선박의 동체에 케이블을 연결한 뒤 해상의 바지선이 유압을 이용,들어올리는 방법이 적용될 계획이다.안 차장은 “진해항에서 출발한 구난 전문함인 ‘평택함’(2500t급)이 현재 해군 2함대사령부가 있는 평택항에 입항해 있다.”면서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본격적인 인양작업에 들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양작업이 완료되기까지는 30여일은 족히 걸릴 전망이다.가장 큰 이유는 서해안의 세찬 조류 때문.침몰한 고속정 주변에는 현재 시속 3∼4노트의 급속한 조류가 흐르고 있다.따라서 인양작업은 만조에서 간조로 넘어가거나 간조에서 만조로 넘어가는 시점에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의 기상조건도 인양작업의 변수중 하나다. 홍원상기자 wshong@
  • 서해교전/ 부상병들 교전순간 증언

    29일 남북 해군간 교전에서 부상해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된 병사들은 교전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침몰한 고속정의 갑판장 이해영(51) 상사는 “우리가 경고방송을 한 지 2∼3분 뒤 북한이 조타실쪽을 먼저 쏘았다.”면서 “조타실이 계속 당하기에 우리가 즉각 대응사격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 상사는 “교전 중 1∼2m 옆에 있던 서후원 하사가 적탄에 옆구리를 맞고 쓰러져 있었다.”면서 “북한이 감정 없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아예 작정을 한 것 같았다.”고 몸서리를 쳤다. 황창규(29) 중사는 “북한 경비정이 전방 914m까지 접근해 우리 고속정 왼쪽 옆으로 포를 쐈다.”면서 “탱크 포신만한 포신이 3개 설치돼 있었으며,그렇게 큰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황 중사는 “그들이 포를 쏘자마자 1,2초 후에 바로 대응사격을 지시했다.”면서 “그러나 북한군의 공격으로 배의 전원이 모두 나간 상황이어서 전자동 조작이 안돼 수동으로 포를 쏘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교전이 끝날 무렵 지휘부가 있는 함교쪽으로 올라가 보니 윤영하 대위가 등쪽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으며,맥박이 뛰고 있어 인공호흡을 두차례 했으나 곧 맥박이 끊어졌다고 전했다. 함교쪽에 있던 권기형 상병은 왼쪽 손가락 부분이 북한군의 총탄에 맞아 모두 잘려나간 채 오른손 하나로만 탄창을 갈아끼우고 총을 쏘고 있었다. 황 중사는 “함교 밑 조타실에는 화재가 발생,조천형 하사가 완전히 불길에 휩싸여 새까맣게 굳은 채로 숨져 있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황도현 하사는 포탄을 맞아 머리부분이 심하게 함몰됐다고 했다. 이들은 “숨진 부대원들의 명복을 빈다.”면서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더 열심히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서해교전/남북 경비정 비교/선제 공격 北경비정

    우리 고속정을 선제사격한 북한 경비정은 S0-1급 PCF(등산곶 경비정)다.215t으로,최대 속력은 28노트다.크기는 42m×6.1m×1.9m이며,50명의 승조원이 탑승한다.무장은 경비정의 앞부분에 최대 사거리 15.5㎞의 85㎜ 단연장포가 장착돼 있으며,조타실 바로 뒤편에 최대 사거리 7㎞의 14.5㎜ 2연장포,후미에는 최대 사거리 8㎞의 37㎜ 단연장포가 각각 장착돼 있다. 반면 피격돼 침몰된 우리측 고속정은 해상경비 및 기습공격을 담당하고 있으며 총 28명이 탑승하도록 돼있다.156t으로,최대속력은 38노트다.크기는 37m×6.6m×1.7m이며,해군은 모두 96척을 보유하고 있다.무장은 40㎜포,30㎜포 각 1문씩,20㎜ 발칸포는 2문 장착돼 있다. 곽태헌기자 tiger@
  • 서해교전/ 교전상황 재구성 “월선”경고에 北 85㎜ 발포

    북한 경비정과 어선은 올 들어서도 14차례나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다.북한 꽃게잡이 어선을 경비하다 우연히 침범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대치중 함포 사격은 다분히 99년 6월 ‘서해교전’ 피해에 대한 보복성 행위로 분석된다.29일 교전상황을 합동참모본부 발표와 피해 수병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29일 오전 9시54분쯤 215t급 북한 경비정 1척이 서해상 서쪽 25.2km 북방한계선을 넘는 모습이 근처에 있던 156t급 우리 고속정 편대(2척)에 관측됐다. 북한은 서해교전 이후 당시 경비정보다 조금 큰 함정을 서해상에서 운영하고 있다. 북방한계선 북측 지역에서는 북한 어선 30여척이 조업중이었다. 우리 고속정 2척이 NLL을 넘은 북한 경비정 450여m 전방까지 다가갔고, 이중 선두 고속정이 평소와 마찬가지로 “”지금 귀 선박은 NLL을 넘었으니 북쪽으로 돌아가라.””고 경고방송을 3차례 보냈다. 그러나 오전 10시1분쯤 또 다른 북한 경비정 1척이 NLL을 넘었다. 뒤따라온 경비정 1척은 처음에 NLL을 넘은 경비정 1척과 함께 서쪽 방향으로움직이기 시작했다. 속도가 평소 순항 속력보다 빨랐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우리 고속정 첫번째 편대는 이를 근처에 대기중이던 고속정 2개 편대(4척)에 알렸다. 이 고속정 2개 편대도 북측 경비정들에게 접근했다. 오전 10시25분쯤 NLL로부터 5.4km 떨어진 지점에서 갑자기 북한 경비정 1척이 우리측 고속정 6척 가운데 1척에 대해 85mm 함포를 1발 발사했다. 북측의 선제 사격은 그대로 조타실에 명중했다. 기습적인 조준사격이라 그대로 당하고 만 것이다. 우리 고속정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조타실에 있던 고속정 지휘관인 정장 윤영하 대위(尹永夏·26·해사 50기) 등 4명이 피투성이가 됐다. 상황을 보고받은 초계함 1개 편대(2척)가 긴급 출동했다. 교전 상황은 해군작전사령부와 합동참모본부에 보고됐고 긴급 상황 때 가동되는 '초기대응 작전명령'이 발령됐다. 우리 고속정 4척은 일제히 기관포로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뒤따라 온 초계함 등도 함포사격을 시작했다. 같은 시각 충남 서산지역에서 초계비행중이던 KF-16 2대가 사건 발생지점으로 날아갔다. 북측 경비정 2척도 수차례 함포사격을 하더니 곧 북쪽으로 선수를 돌렸다. 북측 경비정들은 도주하면서도 산발적으로 응사해왔다. 이때 북한 경비정 1척이 우리측 피해 함정 1척을 제외한 7척으로부터 수백발에 이르는 집중사격을 받고 '펑'하는 폭음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 우리 고속정보다 덩치가 큰 북측 경비정은 선체가 기우뚱하면서 검은 화염으로 뒤덮였다. 북한 승조원들이 허둥대는 모습도 목격됐다. 오전 10시50분쯤 도주하던 북측 경비정 2척이 NLL을 넘었고 고속정 편대 등은 추격을 멈췄다. 첫 피격이 이뤄진 지 25분만이다. 불길에 휩싸인 북한 경비정 1척을 예인선이 끌고 가는 모습이 관측됐다. 우리측 피해 고속정 1척도 예인작업을 시작했다. 동시에 고속정 상공에는 HH-60과 HH-47 구난 헬기 2대가 부상자들을 구조했다. 윤 대위 등 4명은 피습현장에서 사망했다. 윤 대위의 시신과 부상자 19명은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등으로 후송됐다. 피격당한 고속정 1척은 예인되던중 침몰하고 말았다. 김경운 기자 kkwoon@
  • 서해 교전 아군4명 전사

    서해교전이 발생한 지 3년만에 29일 또 다시 서해상에서 남북한 해군이 포격전을 벌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10시25분쯤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5.4㎞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남북한 함정 사이에 교전이 발생,우리 해군 24명이 전사하거나 다쳤다.북한 경비정의 포격으로 윤영하(尹永夏·28·해사 50기) 대위 등 4명이 전사하고,이해영 상사 등 19명이 부상을 입었으며,한상국(韓相國·27·조타장·부사관 155기) 중사가 실종됐다.해군은 교전 해역에서 밤새 수색작업을 벌였다. ▶관련기사 2·3·4·5·15면 이날 교전은 북측 경비정 2척과 우리 고속정 6척이 450m 앞까지 접근한 상태에서 우리측의 퇴거 통보를 무시한 북측 경비정 1척이 갑자기 함포 1발을 조준 사격,우리 고속정 1척의 조타실을 명중시키면서 일어났다. 교전은 우리측 초계함 2척이 가세,해군 함정 7척과 북측 경비정 2척 사이에 함포와 기관포 사격을 주고 받으며 25분간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북측 경비정 1척이 화염에 휩싸인 채 북쪽으로 도주했으나 정확한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그러나 수백여발의 아군 포격으로 20∼3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군 당국은 추정했다. 교전이 발생하자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오전 11시를 기해 전군에 긴급경계태세 강화지시를 내렸다.주한 유엔군사령부는 이날 오후 북측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장성급 회담을 갖자고 제의했으나 북측은 어떠한 답변도 보내지 않은 채 장성급 회담에 불응했다. 이에 리온 라포트 주한 유엔군사령관은 성명을 내 북한 도발 행위를 규탄하고,북한에 대해 정전협정 위반사항 공동조사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국방부는 이번 교전의 우리측 희생자 4명 모두를 1계급씩 특진,추서했다. 유진상 김경운 장세훈기자 kkwoon@
  • [사설] 서해 무력도발 엄정 대처해야

    북한군이 어제 아침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우리 해군에 선제 사격을 가해 전사 4명 등 25명의 인명 피해와 함께 우리 고속정을 침몰시키는 도발을 감행했다.지난 1999년 6월15일 연평해전 이후 3년만에 북한군이 다시 도발한 것이다.군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군은 “NLL을 넘었으니 빨리 북쪽으로 돌아가라.”하는 우리 해군의 경고를 무시한 채 곧바로 해군 고속정의 조타실에 중화기 사격을 가함으로써 피해가 컸다는 것이다.우리는 북한이 무력도발하겠다는 명백한 의도를 갖고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한다.따라서 도발에 따른 모든 책임은 북한 당국에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북한의 도발은 지난 2000년의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남북 화해무드와 북·미 대화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더구나 월드컵 폐막을 하루 앞둔 시점에 도발이 감행된 점에 주목한다.세계인의 시선이 한반도에 집중된 가운데 총격을 가해 세계인의 축제에 재를 뿌렸던 것이다.이날 남북한 무력충돌 사실을 일제히 긴급 뉴스로 타전한 외신들도 의문을표시했듯이 북측의 도발 배경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름대로 치밀한 준비 끝에 선제 공격에 나섰다는 점이다.3년 전 연평해전에서 당한 참패에 대한 설욕전인지,남북 화해무드에 제동을 걸려는 북한군 강경파들의 반발인지,김정일의 묵인 아래 이뤄진 도발인지 아니면 북·미 대화를 앞두고 현재의 정전체제를 어떻게 하든 흔들어 보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정부 당국이 가려내야 할 부분이다. 정부는 북한에 대한 대응책과는 별도로 우리 해군의 경계태세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세심히 따져봐야 한다.3년 전 연평해전 당시에는 NLL을 침범하는 북한군에 대해 곧바로 경고사격과 함께 북한의 경비정에 충격을 가해 NLL 밖으로 밀어내는 적극적인 방어전술을 채택했다.지난해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했을 때에도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우리 해군의 밀어내기 작전을 적극옹호하면서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해서는 군사적으로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하지만 연평해전 및 고위 당국자의 다짐과는 달리 이번에는 다소 느슨하게 대응한 감이 없지 않다.북한 경비정이 NLL을 넘어 선제 사격을 가하기까지 31분 동안 우리 해군은 경고방송만 한 꼴이기 때문이다.북한이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완된 경계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도발했다면 성공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주적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점을 찾지 못해 국방백서의 발간을 2년간 유예했는가 하면,북한기를 단 선박이 영해를 통과하는데도 두 손을 놓고 있는 등 안보에 허점을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이 때문에‘햇볕정책’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어쨌든 연평해전 이후 우리가 승리에 도취된 틈을 노리고 북한군이 기습을 가해 우리 군의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월드컵 기간 중 우리 군은 한·미 간의 완벽한 협조체제로 고도의 경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군 정보망과 대응태세에 허점은 없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군은 지금부터라도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을 면밀히 분석해 안보태세에 한 치의 빈 틈이 없도록 대비책을 강구토록 해야 한다.정부당국도 북한에 대한 책임 추궁과 함께 사과를 받아내고,이에 못지 않게 재발 방지책을 강구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의 무력도발에도 불구하고 평화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늦춰선 안된다고 생각한다.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촉매제가 되어서는 안된다.월드컵에서 모아진 국민의 힘이 다시 사회 안정에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 [대한포럼] 대통령 자녀도 공인이다

    대통령 주변의 비리 의혹이 자고 나면 불거진다.유형도 가지가지다.돈을 챙긴 것은 기본이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일정도 그대로 유출했다고 한다.특명 사건을 전담하는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이 하루 아침에 범인이 되어 외국 땅을 헤매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그리고 의혹의 중심에는대통령의 아들들이 자리하고 있다.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아직은 불투명하나 당사자들이 법적 대응조차 하지 않는 것을보니 전혀 사실무근만은 아닌 성 싶다. 세상에선 대통령 아들에 대한 얘기가 많았지만 이 지경인 줄은 몰랐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요, 한 가정의 가장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아들의 추문을 제때 알았더라면 여태껏 가만히 놔뒀을 리 없을 것이다.국가 정책 결정의 산실인 청와대가 연고주의 인맥 중심으로 구성된 게 패착이었던 것 같다.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보내며 끈끈한 인간미로 맺어진 사람들이청와대의 주요 포스트를 차지하면서 ‘영식’들의 비리나무절제한 생활이 인(人)의 장막을 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최규선 게이트’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른바대통령가와 가까웠던 측근들이다. 최규선(崔圭善)씨도 정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통령이 아이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떠벌이고 다녔다질 않은가.국정의 조타실 격인 청와대가 가부장적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는 얘기다. 5년 전 이때 쯤이었다.당시 야당 총재이던 김 대통령은 김현철(金賢哲)씨 사건에 대해 “아버지의 책임이다.”고 단언했다.“김현철씨는 법대로 (처리)해야 된다.”며 대통령이 되면 자녀의 국정 개입을 차단할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버지가 안 시키면 되는 것이다.”라고 아주 명쾌하게 잘라 말했다고 한다.내막이 밝혀져 봐야겠지만 얼른 보기엔 5년 전 상황이 그대로 재현됐다.역대 대통령이 아들들의 비정상적인 국정 개입과 권력형 비리를 경계했지만 모두실패한 것이다. 권력의 속성상 처음부터 의지나 다짐만으로안되는 일이었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유혹이 파고 들 수 있는 틈을 봉쇄해야 한다.대통령 자녀의 재산을 미리 공개해 국민적 감시권에 놓아야 한다.그러나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제12조에서 고위 공직자가 부양하지 않는 직계 존·비속의 재산내역은 고지를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이아들 재산의 공개를 거부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대부분의외국은 우리보다 재산 등록 거부 범위가 훨씬 넓다. 일본,영국,독일은 본인 재산만 등록하도록 되어 있다.미국은 본인과 배우자,그리고 자녀는 21세 이하의 미혼자로 한정하고있다. 고위 공직자라해서 자녀 재산까지 공개하는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논리다. 원론적인 이론이야 구구절절이 옳다. 선진 외국에선 최고통치권자의 자녀들은 국정을 아예 넘겨다 보질 않는다.특수한 한국적 정치 현실이 고려돼야 한다.‘홍삼 트리오’구설이나 김현철씨 사례뿐만이 아니다.역대 정권마다 대통령 자녀들 역할이 있었다.적어도 지금까지 경험칙으로 보면 대통령 자녀들은 공인이었고 국정에 미치는 영향이 재산 등록의무자인 1급(관리관)이상 고위 공직자에 못지않았다.더구나 거의 모든 공직자들이 부모와 분가한 자녀 재산도 낱낱이 밝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직자의 윤리를 확립한다.”는 공직자윤리법의 입법 취지를 솔선해 실천하고 있다. 대통령 자녀의 권력형 비리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돼야 한다.소를 잃었지만 외양간을 고쳐야또 소를 도둑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고위 공직자와 구분하여 대통령은 분가한 자녀도 재산 상황을 의무적으로 등록하도록 해야 한다.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단서 조항을두어도 좋고 따로 가칭 ‘대통령 친인척 재산공개법’을제정해도 괜찮을 것이다.나아가 대통령 주변 사람들에게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의미에서 그들의 비리는 가중 처벌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작금의 권력형 비리는 진상이철저하게 규명돼야 한다.그리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재발을 방지하는 장치를 서둘러야 한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日 ‘北선박 항해’ 미리 알았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미국 정부는 일본 수역에 침입해 지난 22일 침몰한 괴선박에 관한 정보를 입수,이틀 전인 20일 일본과 한국 정부에 이미 통보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공안 당국 관계자는 25일 “미군은 첩보위성을 통해획득한 괴선박의 정보를 한·일 양국 군에 통보해 줬다”면서 “이 정보에는 괴선박이 북한 배로 보인다는 설명도따랐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에 따라 해상자위대의 P3C 초계기가 추적에 들어가 21일 오후 4시 가고시마(鹿兒島)현 아마미 오시마(奄美大島) 근해에서 괴선박을 포착했으며 22일 오전 6시20분에는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괴선박을 발견했다.앞서오기 지카게(扇千景) 일본 국토교통상은 이날 “괴선박의선적이나 임무를 밝히기 위해 선체를 인양할 것”이라고밝혔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이날 일본 수역에 침입했다가 침몰한괴선박은 기관실이 선체 앞쪽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밝혔다. 항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선박은 조타실의 뒤쪽에 기관실을 두는 게 보통이나 이 괴선박의 경우 뒤쪽에 대량의 화물이나 침투용 소형선박을 실을 목적으로 앞쪽에 기관실을둔 것으로 일본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괴선박이 순시선을향해 발사한 소형 로켓탄은 1962년 옛 소련에서 제작돼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된 대전차형 RPG-7 로켓탄일 가능성이크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한편 중국은 이날 외교부 장치웨(章啓月) 대변인을 통해“일본이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내에서 무력을 사용,국적불명의 선박을 침몰시킨 사건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시하며,일본은 중국측의 권리와 우려를 충분히 존중해야만한다”면서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논평을 발표했다. marry01@
  • 北 괴선박 임무 무엇이었나

    ■대두되는 3가지 의문점. 일본 수역을 침범한 괴선박 침몰 사건 사흘째인 24일 괴선박이 중국 배로 위장했으며 교전 중 일본 순시선에 소형 로켓탄을 발사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새로운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목격된 괴선박 선원 15명 중 1명도 구조되지 않은 점,괴선박의 임무 등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새로운 사실] 22일 밤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아마미 오시마(庵美大島) 북서쪽 동중국해 해상에서 교전 중 괴선박은 일본 순시선에 2발의 소형 로켓탄을 발사했다.다행히 2척의 순시선에는 맞지 않았다.사건 직후 괴선박의 자동화기와 순시선의 기관총 응사가 이어지던 순간 났던 ‘이상한 소리’는 소형 로켓탄 발사음인 것으로 드러났다. 괴선박은 중국쪽으로 도주하면서 중국 깃발을 흔들었던 것으로 드러났다.중국 정부가 “괴선박은 중국 배가 아니다”고 재빨리 부인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오해를살 여지가 있어서였다.1999년 3월 일본 영해를 침범한 북한공작선 2척은 위장을 위해 일장기를 달고 있었다. [수수께끼 3가지] 첫째,괴선박의 임무이다.일본 당국은 해저 100m에 침몰된 선박을 인양하지 않아 선박의 국적과 임무를 밝힐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괴선박이북한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괴선박이 북한 배라면 ▲마약,무기 등의 밀수 ▲공작원의 일본 침투나 귀환 ▲일본 근해의 군사정보 수집 등 3갈래의 가능성을 놓고 수사를 진행 중이나 현재로는 밀수선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은 일단 괴선박에 부착된 안테나의 숫자가 극히 적은점으로 미뤄 정보 수집을 위한 정찰 가능성은 거의 배제하고 있다.공작원 침투나 복귀 임무를 띤 공작선일 가능성도 부상하고 있으나 배의 속도가 최대 시속 15노트(28㎞)로 지나치게 느리고 교신에 필요한 안테나가 적은 점을 들어 부정적인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둘째,순시선의 기관포 사격으로 100t급의 선박이 4분 만에침몰한 점이다.전문가들은 순시선이 괴선박을 향해 쏜 기관포 186발로는 침몰이 어려우며 더욱이 기관포가 괴선박의 후미가 아닌 조타실을 향했던 점으로 볼 때 괴선박의 자폭 가능성을 꼽고 있다.교전 중 총소리가 아닌 소리가 들렸다는진술에 따라 괴선박이 정체를 드러내는 ‘증거’를 없애기위해 자폭했다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셋째,침몰 직전 바다로 뛰어든 선원 15명 중 단 1명도 구조되지 못한 점이다.교전이 벌어지고 괴선박이 침몰한 시간은밤 10시13분쯤이었다.침몰 해역에 비가 내리고 3∼4m의 파도가 쳐 수색이 쉽지 않은 상황이긴 했다.이에 대해 해상보안청 관계자는 “구조 활동을 펴려고 했으나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상대편의 반격이 우려됐다”고 침몰 직후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하지 않았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北日관계 엎친데 덮친격”. 지난 22일 발생한 일본 순시선에 의한 북한 공작선 추정 괴선박 침몰사건으로 한반도 주변에 긴장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사건 발생이후 거듭 ‘정당방위’임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였다.중국은 이에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우려하는 강도 높은 외교 논평을 내놓는 등 세밑 동북아 정세가 심상찮다. 외교부 당국자는“분명한 것은 가득이나 경색된 북·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북·일간의 대화는 지난해 10월 중단된 이래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특히 최근에는 일본 경찰의 조총련계신용조합 간부의 구속 및 사무실 수색,이어 조선 적십자회의 ‘일본인 행불자 수색 전면중단’ 선언 등 북·일 관계를얼어붙게 만드는 사건들이 잇따랐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경계해 온 중국 역시 이번 사건을 외교쟁점화시키는 분위기다.특히 중국은 일본이 공해(公海)상이라고는 하나 경제수역(EEZ)에까지 들어와 발포,중국을 자극시켰다고 보고 있다.중국 장치웨(章啓月)외교부 대변인은23일 “일본이 동중국해 해역에서 군사력을 사용한 데 대해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또 “선박의 침몰과 승무원 사망과 부상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면서 북한측을 피해자로 간주하는 발언을 했다. 난감한 것은 우리 정부다.북·미관계와 북·일관계 답보로인한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해온 정부는 이번 사건을 ‘악재’로 보고 있다. 한승수(韓昇洙) 외교부장관은 이날 “아직 사태가 파악되지 않아 우리가 무엇이라고 얘기하기는 힘들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그러나 한 당국자는 “사건 발생 자체부터가 커다란 악재임에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日 ‘안보위협' 강력대응 가닥.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정부가 괴선박 침몰사건 이후 ‘강력’ 쪽으로 대응 기조를 잡아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해상보안청 순시선만으로는 일본 영해나 수역을 침범하는 무장한 괴선박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관련법 정비에 박차를 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미 테러참사 이후 테러특별조치법 제정,유엔 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 개정,자위대법 개정 등을 통해 사상첫 자위대 해외 파병의 길을 튼 일본에 다시 한번 방위 관련법의 제정·개정 바람이 거세게 불 것으로 예상된다.제3국도 아닌 일본 수역을 침범한 괴선박과의 교전을 통해 순시선직원 2명이 부상하고 괴선박이 침몰하는 전대미문의 ‘호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괴선박을)잡지못해 유감”,“평시에 적절한 대응을 생각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사후약방문이더라도 분명한 대응책을 강구해 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24일 고이즈미 총리 주재의 안전보장회의와 각료 간담회에서도 방위청장관 등 관련 각료가 일제히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법적 미비점을 거론,보완에 착수할 뜻을 잇달아 밝혔다. 일본 정부 일각에서는 괴선박의 소형 로켓탄 발사에 순시선이 기관포 만으로 응사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비춰 긴급사태 발생시 무기 사용 기준을 완화해 보다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이번 사태가 영해가 아닌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침범했다가 중국측 EEZ로 도주하다 침몰해 일어난 만큼 영해밖에서의 무기 사용 범위도 재검토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1998년 8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이듬해 3월의 북한 공작선 영해 침범 때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북한위협론’이 고개를 들 것으로보인다. 98년 당시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했을 때 방위청을 중심으로 방위족 의원들은 “100년에 한차례 올까말까 한 기회”라며 방위 관련법 정비에 열을 올린 적이 있다.1977년 방위청이 연구를 시작한 이후 야당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던 유사법제 정비도 이같은 여론을 등에 업고 가속화될 것으로 여겨진다.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자민당 간사장은 “해상보안청이나방위청이 확실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준다”면서 내년 초 정기국회 때 유사법제 정비에 의욕을 보였다.
  • “성동구치소 이전해 달라”

    송파구 주민들이 미결수 수용시설인 관내 가락동 162 성동구치소를 외곽으로 이전해 달라며 집단민원을 제기하고 나섰다. 송파구 가락동 박월영씨 등 2,000여명의 주민들은 최근송파구청에 성동구치소 이전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냈다. 주민들은 진정서에서 “아파트단지와 학교 등이 밀집한 이곳에 더 이상 미결수 수용시설을 방치할 수 없다”며 “주거 및 교육환경을 지키기 위해 구치소를 반드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파구는 이에 따라 최근 법무부와 서울시 등에 성동구치소 이전을 공식 건의했다. 송파구는 이전 건의문을 통해 “대단위 아파트와 주택,학교시설이 밀집한 곳에 구치소가 자리해 교육 및 주거환경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며 “구치소를 도심 외곽으로 이전하는문제를 적극 추진해 달라”고 요청했다. 송파구는 구치소가 이전할 경우 현재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서울지법 동부지원과 서울지검 동부지청 등을 구치소 자리로 유치,이 일대를 법조타운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제21회 농어촌청소년 대상/ 본상

    [농업부문 황종성씨] 적극적인 회원 확보를 통해 기존 4-H회를 모범적으로 활성화시켰다.꽃길 조성 등 마을환경 개선에 기여했는가 하면 4-H회 자체적으로 특수가축을 사육하고고추, 포도,감자 등 해마다 별도의 선택과목을 선정,이수하게 해 회원 개개인의 경쟁력을 높였다.또 휴경답 경작 등을4-H회 단체과제로 선택 운영해 왔다. [농업부문 김병철씨] 4-H회를 이끌며 공익활동에 앞장섰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등산대회와 야영대회,청소년 진로교육을실시해 왔으며 3년동안 내고장 가꾸기 사업의 하나로 꽃가꾸기 운동을 이끌어 손수 배양한 야생화로 지역내 3.5㎞의주요 도로변을 단장했다.또 시범영농 지원사업에도 98년부터 3년동안 자원지도자로 참여했다. [농업부문 장원씨]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영농에 투신,4-H회 활동을 통한 과학영농에 앞장섰다.기존 4-H회를 재정비,철저한 회원제를 통해 정예화했으며 영농인들이 자긍심을가질 수 있도록 소년소녀가장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사회봉사활동도 폈다.또 회원들을 대상으로 지도력 배양훈련과 컴퓨터 위탁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농업부문 정안일씨] 올해 지역 4-H연합회장을 맡은 정씨는4-H회를 기반으로 느타리버섯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는 등농업생산성 향상에 주력했다.고품질 농산물 생산과 농산물규격화 노력으로 다른 농가보다 20%이상 높은 생산성을 기록해 왔다.또 우량벼품종 보급과 함께 유기질퇴비를 사용하는 등 환경농업을 실천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농업부문 김성용씨] 생활개혁 운동으로 농촌을 바꾸려는의지가 돋보였다.기존 4-H회원들로 농악대를 편성,전통문화계승에 이바지했는가 하면 휴경지없애기 운동으로 10개 읍·면에서 1만여평을 경작해 1,000만원의 영농기금을 조성하기도 했다.또 회원 품앗이운동을 전개했으며 전남 4-H회 정보기술교환센터를 운영해 왔다. [농업부문 정희섭씨] 지역단위 농업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가해 주변의 신망을 쌓아온 정씨는 지난 97년 오대벼 오리농법 재배를 통해 무농약 품질인증을 얻었으며 이듬해에는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철원옛쌀’로 으뜸농산물 전시회 대상을 받기도 했다.4-H회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성공적인 마을문고 운영도 정씨의 공적으로 손꼽힌다. [농업부문 유남진씨] 자동화된 시설하우스단지를 경영하며과학영농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유씨는 올해 후계농업인으로 선정된 후 짧은 기간동안 농촌의 주거·경작환경 개선에앞장서 왔다. 또 휴경지에 공동시범포를 조성,7,000여평의참깨를 재배하는 등 성공적인 과학영농을 실천해 오고 있다.지역의 자율방범대와 청년회를 이끌어왔다. [농업부문 이문선씨] 적극적 영농활동 못지않게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데도 정성을 쏟았다. 휴경지 공동시범포 1,500평을 조성,800만원의 기금을 마련했으며 추곡수매때는 회원들과 함께 입고작업에 참가,300만원의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4-H회원들과 함께 매년 무연고분묘 벌초작업을 해오고 있다. [수산부문 사공헌씨] 내수면 뱀장어양식을 통해 축양의 기틀을 다지고 해묵은 양식업의 경영난을 타개하는데 앞장섰다.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인공사료에 홍삼을 첨가하는 방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홍삼 민물장어’를 생산,소득을 높였다.최근에는 인터넷 전자상거래에도 나서는 등판매다각화를 통해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수산부문 김욱씨] 99년부터 전복 등 양식업에 투신,연간 5억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또 농어,조피볼락 등을길러 지역에서는 특수양식업의 개척자로 꼽힌다.지난해부터는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조류의 방향과 유속이 바뀐 점에착안,홍합과 가리비조개를 성공적으로 양식해 소득을 크게높였다. [수산부문 홍종환씨] 내수면 어업의 문제점인 출하시기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실시간 유통정보를 파악,수요가 있는 곳에 연중 상품을 공급하는 출하시스템을 창안,정착시켰다. 대학에서 배운 경영기법을 인근 동종업체에 제공해 양식업 공동번영의 새로운 풍토를 뿌리내리게 했다. [수산부문 이재복씨] 자동조타기 등 독창적 조업장비 개발로 어선어업의 새 경지를 열었다.종전 수심 100m 안팎의 해역에서만 실시해 오던 청어조업을 300m 수역까지 확대,배타적 경제수역(EEZ) 설정에 따른 타격을 극복해 냈다.또 적정한 그물 규모로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창안,보급했다.
  • DJ사퇴 정국/ (2) 정부·국회관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이양 결정은 기존의 대 국회 관계에도 질적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9일 현재 의석분포는 전체 273석 가운데 민주당 118석,한나라당 136석,자민련 15석,민국당 2석,무소속 2석이다. 따라서 김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이양은 국회 운영에서여당의 ‘보호막’에서 벗어난 것처럼 비쳐지지만,기실은그렇지 않다.즉 민주당은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협조없이는 법안 하나도 통과시키기 어려워 대통령을 엄호하기에는이미 역부족인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총재직 이양이‘수의 정치’차원에선 대 국회관계의 큰 변화요인은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정치사에 전무후무할 대통령의 여당총재직 조기 이양의 정치적 파장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다만 여당은 ‘조타수를 잃은’,야당은 ‘주 공격 목표를 잃은’상태에 빠져 표류하는 과도적 실험을 거쳐 새로운 국회질서가 정립될 것으로 관측될 뿐이다.DJ가 홀연히 던져놓은‘거대한 새정치 실험장’으로 여야가 휘말려든 형국이다. 민주당 한 의원은 “새 질서가 정착될 때까지 여야는 기존의 관행대로 당리당략에 따른 공방을 계속하면서 혼돈의실험과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즉 수에기초한 기존의 패러다임(사고틀)으로 새로운 국회 질서를바라보려 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전제로 할 때 김 대통령과 민주당 관계는 일심동체에서 종전보다 다소 ‘느슨한 연대’ 관계로 변할 것같다.물론 당정간 협조체제는 전과 유사하겠지만 유기적연결고리는 상당히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최악의 경우엔일부 여당의원들이 행정부의 수반인 김 대통령이 발의한법안,예산안,인사안 통과에 응하지 않는 사태도 배제할 수없다.민주당의 주례보고와 대통령의 당 관련회의 주재가어려워진 것도 영향력 저하와 연결되지만 “그래도 김 대통령의 민주당 장악력엔 질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대체적 관측이다.동교동계나 중도개혁포럼 등 대통령 직할세력이 여전히 당내 최대 계보인 까닭이다. 민주당 출신 배제가 예상되는 연말개각시 야당이 요구해온 중립내각 성격이 강화될 경우 국회에서야당의 대정부공격수위는 낮아져 김 대통령의 국회운영은 한결 부드러워질 수도 있다.실제로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는 9일과반에 1석 모자란 1당으로서 책임감을 강조하며 “정파적이해를 떠나 대통령 역할에 전념한다면 적극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련도 김 대통령의 총재직 이탈로 정국의 큰 틀이 흔들릴 가능성이 보임에 따라 DJP공조 파기 이후 보여온 극한적 행정부 몰아치기를 잠정 중단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일례로 정쟁에 묻혀 심야회의가 다반사이던 국회 예산결산특위가 요즘엔 초저녁에 그날 일정을 원만하게 마무리하는등 정기국회에서 ‘DJ 총재직 이양 효과’가 가시화되는분위기다. 다만 이런 잠정적 효과는 향후 정국기상도에 따라선 급변할 수도 있다. 이춘규기자 taein@
  • 총재사퇴 첫날 표정/ 눈물 흘린 김대통령

    민주당 평당원으로서 백의종군 의사를 밝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9일 평소와 다름없이 예정된 일정을 소화했다.이날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소방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데 이어 존 틸럴리 전 주한미군 사령관을 접견했다. 김 대통령은 심사숙고 끝에 이같은 결심을 한 때문인지전혀 흔들림이 없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당 운영 등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고 한다. 대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보고 해법을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총재직을 떠난만큼 보다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국정의 큰 틀을 짠다는 계획이다. 김 대통령이 ‘총재직 사임을 번의해달라’는 민주당측의요청을 완곡히 거절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다. “행정부의 일에 전념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고 당을 위하는 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양해를 구한 데서도 김 대통령의 의지가 읽혀진다. 대중(大衆),특히 서민에게 가까이 다가서려는 모습은 소방의 날 기념식에서도 드러났다.김 대통령은 119 소방대의활약상을담은 영상물에서 순직 소방관들의 넋을 기리는조시가 낭독되자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순간 행사장인 서울 세종문화회관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청와대측은 김 대통령이 총재직을 그만두고 비서실의 ‘조타수’ 역할을 해온 박지원(朴智元) 전 정책기획수석마저 떠나자 채 일손이 잡히지 않는 모습이었다.한 관계자는“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는 희망사항으로도 상정할 수없었다”면서 “김 대통령이 그렇게 빨리 큰 결단을 내릴줄 몰랐다”고 비서실 분위기를 전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이용호 게이트/ 또다른 핵심공범 김천수

    이용호 게이트의 숨은 공동 연출자인 ‘코리아에셋 매니지먼트’의 김천수(40)회장은 사채업자 출신으로 업계에서주가조작의 ‘귀재’로 통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해 5월 G&G 회장 이용호씨와 사업 파트너로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이씨 계열사인삼애인더스의 대표였던 정모씨가 김 회장과 이씨가 공동인수한 제주 국민금고의 대주주로 들어앉아 중개인 역할을하며 관계를 다졌다는 것이다. 이씨는 지난 4월 김 회장이설립한 코리아에셋 매니지먼트의 오픈식에도 참석했다. 공동사업에 나선 김 회장과 이씨는 지난 6월 자동차보험사 중 6위인 쌍용화재 주가조작을 위해 공동으로 ‘PCI인베스텍’이라는 유령회사를 설립해 쌍용화재의 대주주인쌍용양회의 지분을 매입했다.이씨는 당시 삼애인더스를 통해 주식을 매입하며 PCI인베스텍과 허위 지분경쟁을 벌였다. 관련 업계는 김 회장이 코리아에셋 매니지먼트를 다른 사람 명의로 설립한 뒤 한번에 수십억원씩 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과시하며 기업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에 손을 뻗쳤다고 전했다.특히 지난해 11월 ㈜고제의 경영권을 손에 쥐면서 코리아에셋 매니지먼트의 직원과 명의상 사장인 박모씨의 동생 등을 경리팀에 입사시켜 자신의 라인을 움직이면서 ㈜고제의 주가조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이씨 구속 직전인 올 8월에 공동 사업에서 발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김 회장의 운전기사인 서모씨(34)는 “김 회장이 이씨 구속 전에 전화통화를 여러차례 하면서 ‘정리되지 않은 부분을 해결하라’고 언쟁을벌이는 등 이씨에 대한 감정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실명인 김천호라는 이름 대신 자신의 둘째형이름인 김천수를 사용하면서 모든 사업체에 다른 사람을대표로 내세우는 ‘그림자 경영’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부산의 한 상고를 졸업한 뒤 K호텔을 운영하면서 지역 최대 폭력조직인 C파와 관계를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조타운 서울지방법원 인근에 있는 ㈜고제 빌딩 1층에 코리아에셋 매니지먼트가 입주한 이후 부산의 C폭력 조직원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고제 빌딩의 관계자는 또 “지난 7∼8월 여당의 K의원이6∼7차례 김씨의 사무실을 방문해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는 등 친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잠적중인 김 회장이 대리인을 통해 자신소유의 제주 국민금고 매매를 추진하고 있어 국내에 있을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김 회장의 한 측근 인사는 “지난10일쯤 해외로 출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코리아에셋 매니지먼트는 이달 초에 서울 광화문의 한 빌딩 20층에 사무실을 마련해 이전했으나 사장으로 등재돼있는 박모씨도 잠적한 상태이며 직원들이 출근을 하지 않아 집기류만 남아 있는 상태다. 안동환기자 sunstory@. ■부도난 고제는. 주가 조작설이 나돌고 있는 고제는 지난 58년 설립돼 43년간 인삼제품과 기능성 식품원료를 만들어 온 음식료 업체다. 최근 인삼제품의 매출증가에도 불구하고 기능성 화학제품의 판매부진과 부채부담 등으로 지난 13일 주택은행에 돌아온 당좌수표 5억원을 막지 못해 부도처리됐다.자본금은138억원으로 지난해 매출액은 448억5,000만원이었다. 89년 10월에 상장됐으며 대주주는 설립자의 아들 최경훈씨(6.0%)와 미망인 홍주연씨(1.3%)다.이규홍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연초 4,000원대에 불과하던 주가가 지난 6월 제3자 피인수설이 파다하게 나돌면서 7배가 껑충 뛰어 2만7,000원까지 급등했다.부도 이후 8일 연속 하한가 행진후 27일 1,500원대로 떨어졌다. 고제는 96년 이후 자주 주가 조작설에 시달려 왔으며 지난해 2월에도 주가가 저점대비 6배 가량 상승해 의혹을 받았다. 문소영기자 symun@
  • [50대 국가요직 탐구] (19)산자부 산업정책국장

    ◆ 경제동향 분석·산업발전 비전 제시. 우리 산업에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 요구될 때 끊임없이해법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해 온 자리가 바로 산업정책국장이다.산업의 조타수(操舵手)인 셈이다. 국내외 경제동향을 분석하면서 우리 산업의 미래지향적인발전 비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정책 수립을 담당하는 핵심 포스트다. 이 때문에 산정국장은 청와대 경제비서실,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등과 함께 경제정책 수립의 요직으로 평가받아왔다.업무 성격상 국내외 산업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분석능력과 기획능력,각종 현안을 조정할 수있는 협상력과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까닭에 전통적으로산자부내 최고 엘리트들이 주로 발탁됐다. 박운서(朴雲緖)데이콤 부회장,한덕수(韓悳洙)주 OECD대사,최홍건(崔弘健)한국산업기술대학 총장, 오강현(吳剛鉉)한국철도차량 사장, 오영교(吳盈敎)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장 등이 산정국장을 지냈다.이희범(李熙範)차관과 이석영(李錫瑛) 차관보도 거쳐갔다. 현실을 무시하는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아냥과 기득권층의적지않은 저항을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시장중시’와 ‘탈(脫)규제’를 금과옥조로 삼아 뚝심있게 업무를 추진하는 공통점이 있다. 박운서 부회장은 80년대 중반 ‘거시정책과 연계된 미시정책 추진’이라는 산업정책의 기본틀을 마련했다는 업적을 높이 평가받는다.개별 업계의 요구사항을 반영하고 지원하는데 그쳤던 산업정책을 전체 경제의 틀 속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산업정책의 근간을 마련했다. 엘리트 경제관료로 꼽히는 한덕수 대사는 86년 개별 산업지원법을 통폐합,공업발전법(현 산업발전법)을 제정했다. 시장중시형 산업정책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금융·세제 지원을 못받게 된 업체들의 불만도 컸다.산자부 내부에서는업종별 정부 지원을 포기하고 기능별 산업 지원으로 바꾼것이 산자부가 힘을 잃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최홍건 총장은 6급 주사에서 출발해 차관까지 오른 인물.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의 후속작업을 맡아 기업에 대한직접적인 자금지원 축소로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WTO(세계무역기구)체제에 부합되는 산업정책시스템을 구축했다.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했던 오영교 사장은 산정국장재임시 기업구조조정 제도를 본격 도입했다. 서울대 공대출신으로 행정고시에 수석합격한 이희범 차관은 산정국장 재임시 ‘국민의 정부’ 정권인수팀에 참여해새 정부의 산업정책 기틀을 잡았다. 일벌레인 그는 외환위기에 따른 산업구조조정 문제를 해결하느라 허리디스크까지 얻었다. 이석영 차관보는 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 등 산업발전법제정을 주도했다.최근에는 세계일등상품 육성전략,부품·소재 종합발전계획 등 미래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경쟁력 강화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재훈(李載勳) 에너지산업심의관은 치밀한 분석력과 판단력을 지닌 행시 21회의 선두주자.정보통신부와 기(氣)싸움을 벌이며 ‘전자상거래 발전 종합대책’ 수립을 주도,IT(정보기술)분야에서의 산자부 위상 제고에 많은 역할을했다. 통상 베테랑으로 99년에 이어 두번째로 산정국장을 맡고있는 김종갑(金鍾甲)국장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기반을 다지는 작업에주력하고 있다. 함혜리기자 lotus@
  • 여객선·상선 충돌 29명 부상

    14일 오후 5시 5분쯤 인천시 중구 항동7가 석탄부두 앞해상에서 무의도를 떠나 인천항으로 오던 여객선 ‘관광9호(167t급·정원 302명)’가 정박중인 파마나 선적 상선‘토요가제호(1만1,600t급)’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관광9호에 탔던 승무원 ·승객 128명 가운데승객 이모씨(40·여) 등 4명이 중상을 입고 25명이 목·허리 등에 타박상을 입는 등 모두 2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가 나자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경비정 4척과 인천시소방정 1척이 출동,승객들을 모두 연안부두로 이송했다. 해경은 관광9호 조타기에 이상이 생겨 사고가 난 것으로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중이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경매 포인트

    ■반초동 34평형 아파트. 서울 서초구 반포동 미도아파트 306동 902호 34평형 아파트가 22일 서울지법 본원4계에서 경매에 부쳐진다.사건번호 ‘2000-45854’.15층 건물의 9층이다.주변에 법조타운이 있고 지하철 3호선 고속터미널역과 가깝다.녹지공간도풍부하다. [수익성] 최초 감정가는 2억4,000만원이었으나 한차례 유찰돼 이번 최저 입찰가격은 1억9,200만원으로 떨어졌다.같은 크기의 주변 아파트 값은 2억5,000만원대.시세차익을노릴만 하다. [안전성] 대금을 납부하면 등기부상 모든 권리관계는 자동소멸된다. 다만 후순위 임차인 2명이 있어 소유권 이전에다소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서초동 40평 빌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91의 1 동우빌라 302호가 경매로나왔다.오는 22일 서울지법 본원4계에서 경매가 실시된다. 사건번호 ‘2001-10053’.전용면적 30평으로 방이 4칸.서울고 서쪽에 있다.지하철2호선 방배역과 버스 정류장이 인근에 있다. [수익성] 최초 감정가 2억3,000만원에서 유찰돼 이번 입찰가는 1억8,400만원이 됐다.주변이 빌라촌이다.같은 크기의빌라 시세는 2억5,000만원 정도. [안전성] 등기부상 모든 권리관계는 낙찰과 동시에 없어진다.후순위 임차인 2명이 각각 방을 1개씩 사용하고 있다. 임차인이 항고하면 소유권 이전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
  • [50대 국가요직 탐구] (7)통일부 통일정책실장

    통일부에는 ‘3무(無)’가 있었다.고시 출신이 없고 장관을 역임한 공직자가 없었다.다른 하나는 비리다. 물론 현재는 사정이 다르다.최근 임용되는 공직자들은 대부분 고시 출신이다.그러나 전·현직 간부들은 대부분 과거 국토통일원 시절 특채됐다.대학 교수나 연구원,정보기관 출신들이 대다수다.북한을 상대하는 특수성 때문으로,다른 부처와 뚜렷하게 색깔을 달리 하는 대목이다. 외부 거물급 인사가 기용되는 까닭에 내부 인사가 장관으로 곧바로 발탁된 일도 없다.비리가 없는 이유는 대민부서가 아닌데다 업무 특성상 이권과는 거리가 먼 때문이다. ‘통일부의 꽃’이라 할 통일정책실장 자리도 예외는 아니다.현 이봉조 실장을 비롯해 역대 실장들은 정부 부처가운데 유일하게 모두 비고시 출신들로 이어져 왔다.분단에 이은 대립과 반목,굴절의 반세기 역사 속에서 이들은남북관계를 조율하며 화해와 평화,통일의 방향을 제시하는조타수 역할을 해왔다. 통일정책실은 88년 대북포용정책의 시발점이라 할 7·7선언이 발표된 이듬해 신설됐다.대북정책을개발하고 교류협력 업무를 총괄하는 기능이 부여됐다. 초대 실장인 최문현씨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89년 9월 정부의 통일정책을 집대성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산파역을 맡았다.남북교류의 기본 원칙과 절차 등을 담은 남북교류협력법도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최 실장의 뒤를 이은 구본태씨는 통일부 안에서 뚜렷한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통일정책실장과 남북회담사무국장을 오가며 뛰어난 업무능력을 발휘했다.이론이나 업무추진력,정책기획력의 3박자를 고루 갖췄다는 평가다.서울대 행정대학원 재학시절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북협상전략’을 석사학위 논문 주제로 다룰 만큼 일찌감치 대북문제에 눈을 떴다.91년 12월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를채택할 당시 실무 책임을 맡았다. 통일부는 정부의 대북정책을 입안해 집행하는 부처로서어느 기관보다 장·차관과 주요 간부간 이념적 색채와 호흡이 중요하다.훗날 차관까지 오른 양영식 전 통일정책실장이 어긋난 한 예로,93년 재임 당시 송영대 차관과 호흡이 맞지 않아 6개월 만에 중도 하차하기도 했다. 반면 당시 총무처 내부지침에 따라 만 39세 때 국장에 임명돼 40세가 될 때까지 몇달 동안 대기발령 상태로 ‘대기’해야 했을 정도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온 김형기 현 차관은 누구와도 호흡을 잘 맞추는 것으로 평가된다.그는 95년 7월 당시 1급 직위인 정보분석실장에 오른 뒤 올 4월차관에 오를 때까지 1급 직책만 6년 가까이 역임했다.그동안 통일정책실장 두차례와 남북회담 사무국장,청와대 비서관 등 5개의 1급 직책을 지냈다.그가 보필한 장관도 나웅배·권오기·강인덕·임동원·박재규씨 등 5명,특히 임동원 장관과는 두번째 호흡을 맞추고 있다.꼼꼼한 참모형의업무 스타일이 장수의 비결로 꼽힌다. 이봉조 현 정책실장 역시 임 장관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췄다.임 장관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시절 통일비서관이었던 그를 장관 취임 후 통일정책실장으로 승진시켜 통일부로 복귀시킬 정도로 임 장관의 신임이 두텁다. 진경호기자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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