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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교전/ 전투참가 장병 교전상황 증언, 손가락 잘린 고통속 “”실탄 달라””

    “처절한 전투였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결코 지지 않았습니다.” 서해교전을 치른 해군 장병들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충혈된 눈은 전사하거나 부상한 전우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듯 연신 경련을 일으켰다. 357호에서 살아남은 한정길(26) 중사 등 3명과 358호에 승선했던 232 편대장 김찬(36) 소령 등 14명이 30일 358호 선상에서 당시의 참상을 공개했다.이들이 전한 교전 상황과 구출작전을 재구성한다. 29일 오전 10시25분 연평도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북한의 경비정 1척이 내려왔다.주변에 단 한척의 어선도 보이지 않은 점이 평소와 달랐다. 북한 경비정의 함포가 우리 고속정 357호에 겨누어져 있음을 확인한 순간 357호와 358호 고속정의 포문도 일제히 북한 경비정으로 향했다.한정길 중사는 “포를 겨누었지만 발사는 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으며 당시 결코 방심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순간 북한 경비정에서 내뿜는 함포 소리가 고요한 서해 바다를 뒤흔들었다.배의 왼쪽 부분이 북한 경비정 방향으로 향해 있던 357호의 조타실에서 불길이치솟았고 파편이 바다로 쏟아졌다.358호에서 두 고속정을 지휘하던 김찬소령이 즉각 대응사격을 명령했다.20여분 동안 격렬한 함포사격이 이어졌다.1000여발의 포탄이 모두 소진될 정도였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357호는 왼쪽으로 기운 채 빙빙 맴돌고 있었다.포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유효 사거리에서 벗어나야 했지만 이미 기동력을 상실한 상태였다.한 중사는 “연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곤란했고,타기(핸들)와 가속기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고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정장(艇長)을 포함,4명이 전사하고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357호의 장병들은 피투성이 상태에서도 개인화기로 사격을 계속했다.숨진 조천형(趙天衡·26) 중사는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사격을 멈추지 않은 듯 방아쇠를 꽉 움켜잡은 모습이었다. 임근수(25) 하사는 “K2소총으로 전투를 하던 권기형 상병은 왼손가락이 모두 절단된 상태에서도 나에게 실탄을 갖다 달라고 외쳤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박경수(22) 하사는 “배가 불길에 휩싸인 순간 조타실에 올라가 보니 피가 흥건했고,매캐한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면서 “좌현 사수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장전돼 있던 포를 계속 쏘았다.”고 당시 상황을 돌이켰다. 교전이 끝나자 358호가 침몰하고 있는 357호의 왼쪽에 붙어 본격 구조작업을 벌였다.장병들이 357호에 올라가 보니 정장 윤영하(尹永夏·28) 소령은 등에 피를 흘리며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인공호흡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부정장 이희완 중위의 종아리는 포탄파편에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비상펌프를 동원해 고속정에 고인 물을 빼내고,소화기로 엔진의 불길을 진화했지만 357호는 이미 예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돼 있었다. 평택 이창구 유영규 장세훈기자 window2@
  • 서해교전/ 침몰 고속정 처리 어떻게

    지난 29일 오전 서해 연평도 부근 북방한계선(NLL) 해상에서 북측 경비정의 선제포격을 받은 뒤 예인 도중 침몰한 우리측 함선은 어떤 방식으로 인양될까. 국내에서 제조한 우리측 고속정(가격 약 70억원)은 연평도 서남쪽 29.34㎞,수심 15∼20m 지점에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북측으로부터 일제사격을 받는 등 치열한 무력공방이 벌어진 만큼 외형상 심한 파손을 입은 것으로 관측된다.안기석(安基石·해군 준장) 합동참모본부 작전차장은 “북측 경비정으로부터 세 발을 맞았다.”며 “조타실과 기관실,배 뒤쪽이 크게 손상됐다.”고 말했다.배가 침몰한 가장 큰 이유로는 “기관실과 배 뒤쪽에 구멍이 크게 나면서 배가 침수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침몰한 선박에서 기름이 유출되는 등 심각한 해양오염이 발생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인양작업은 별 무리없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침몰해역의 수심이 20m 안팎으로 얕은 데다 우리 해군의 구난작업 및 침몰선박 인양능력이 선진국의 기술을 능가할 정도로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침몰한 선박의 동체에 케이블을 연결한 뒤 해상의 바지선이 유압을 이용,들어올리는 방법이 적용될 계획이다.안 차장은 “진해항에서 출발한 구난 전문함인 ‘평택함’(2500t급)이 현재 해군 2함대사령부가 있는 평택항에 입항해 있다.”면서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본격적인 인양작업에 들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양작업이 완료되기까지는 30여일은 족히 걸릴 전망이다.가장 큰 이유는 서해안의 세찬 조류 때문.침몰한 고속정 주변에는 현재 시속 3∼4노트의 급속한 조류가 흐르고 있다.따라서 인양작업은 만조에서 간조로 넘어가거나 간조에서 만조로 넘어가는 시점에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의 기상조건도 인양작업의 변수중 하나다. 홍원상기자 wshong@
  • [사설] 서해 무력도발 엄정 대처해야

    북한군이 어제 아침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우리 해군에 선제 사격을 가해 전사 4명 등 25명의 인명 피해와 함께 우리 고속정을 침몰시키는 도발을 감행했다.지난 1999년 6월15일 연평해전 이후 3년만에 북한군이 다시 도발한 것이다.군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군은 “NLL을 넘었으니 빨리 북쪽으로 돌아가라.”하는 우리 해군의 경고를 무시한 채 곧바로 해군 고속정의 조타실에 중화기 사격을 가함으로써 피해가 컸다는 것이다.우리는 북한이 무력도발하겠다는 명백한 의도를 갖고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한다.따라서 도발에 따른 모든 책임은 북한 당국에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북한의 도발은 지난 2000년의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남북 화해무드와 북·미 대화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더구나 월드컵 폐막을 하루 앞둔 시점에 도발이 감행된 점에 주목한다.세계인의 시선이 한반도에 집중된 가운데 총격을 가해 세계인의 축제에 재를 뿌렸던 것이다.이날 남북한 무력충돌 사실을 일제히 긴급 뉴스로 타전한 외신들도 의문을표시했듯이 북측의 도발 배경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름대로 치밀한 준비 끝에 선제 공격에 나섰다는 점이다.3년 전 연평해전에서 당한 참패에 대한 설욕전인지,남북 화해무드에 제동을 걸려는 북한군 강경파들의 반발인지,김정일의 묵인 아래 이뤄진 도발인지 아니면 북·미 대화를 앞두고 현재의 정전체제를 어떻게 하든 흔들어 보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정부 당국이 가려내야 할 부분이다. 정부는 북한에 대한 대응책과는 별도로 우리 해군의 경계태세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세심히 따져봐야 한다.3년 전 연평해전 당시에는 NLL을 침범하는 북한군에 대해 곧바로 경고사격과 함께 북한의 경비정에 충격을 가해 NLL 밖으로 밀어내는 적극적인 방어전술을 채택했다.지난해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했을 때에도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우리 해군의 밀어내기 작전을 적극옹호하면서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해서는 군사적으로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하지만 연평해전 및 고위 당국자의 다짐과는 달리 이번에는 다소 느슨하게 대응한 감이 없지 않다.북한 경비정이 NLL을 넘어 선제 사격을 가하기까지 31분 동안 우리 해군은 경고방송만 한 꼴이기 때문이다.북한이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완된 경계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도발했다면 성공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주적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점을 찾지 못해 국방백서의 발간을 2년간 유예했는가 하면,북한기를 단 선박이 영해를 통과하는데도 두 손을 놓고 있는 등 안보에 허점을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이 때문에‘햇볕정책’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어쨌든 연평해전 이후 우리가 승리에 도취된 틈을 노리고 북한군이 기습을 가해 우리 군의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월드컵 기간 중 우리 군은 한·미 간의 완벽한 협조체제로 고도의 경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군 정보망과 대응태세에 허점은 없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군은 지금부터라도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을 면밀히 분석해 안보태세에 한 치의 빈 틈이 없도록 대비책을 강구토록 해야 한다.정부당국도 북한에 대한 책임 추궁과 함께 사과를 받아내고,이에 못지 않게 재발 방지책을 강구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의 무력도발에도 불구하고 평화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늦춰선 안된다고 생각한다.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촉매제가 되어서는 안된다.월드컵에서 모아진 국민의 힘이 다시 사회 안정에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 서해 교전 아군4명 전사

    서해교전이 발생한 지 3년만에 29일 또 다시 서해상에서 남북한 해군이 포격전을 벌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10시25분쯤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5.4㎞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남북한 함정 사이에 교전이 발생,우리 해군 24명이 전사하거나 다쳤다.북한 경비정의 포격으로 윤영하(尹永夏·28·해사 50기) 대위 등 4명이 전사하고,이해영 상사 등 19명이 부상을 입었으며,한상국(韓相國·27·조타장·부사관 155기) 중사가 실종됐다.해군은 교전 해역에서 밤새 수색작업을 벌였다. ▶관련기사 2·3·4·5·15면 이날 교전은 북측 경비정 2척과 우리 고속정 6척이 450m 앞까지 접근한 상태에서 우리측의 퇴거 통보를 무시한 북측 경비정 1척이 갑자기 함포 1발을 조준 사격,우리 고속정 1척의 조타실을 명중시키면서 일어났다. 교전은 우리측 초계함 2척이 가세,해군 함정 7척과 북측 경비정 2척 사이에 함포와 기관포 사격을 주고 받으며 25분간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북측 경비정 1척이 화염에 휩싸인 채 북쪽으로 도주했으나 정확한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그러나 수백여발의 아군 포격으로 20∼3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군 당국은 추정했다. 교전이 발생하자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오전 11시를 기해 전군에 긴급경계태세 강화지시를 내렸다.주한 유엔군사령부는 이날 오후 북측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장성급 회담을 갖자고 제의했으나 북측은 어떠한 답변도 보내지 않은 채 장성급 회담에 불응했다. 이에 리온 라포트 주한 유엔군사령관은 성명을 내 북한 도발 행위를 규탄하고,북한에 대해 정전협정 위반사항 공동조사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국방부는 이번 교전의 우리측 희생자 4명 모두를 1계급씩 특진,추서했다. 유진상 김경운 장세훈기자 kkwoon@
  • 서해교전/ 부상병들 교전순간 증언

    29일 남북 해군간 교전에서 부상해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된 병사들은 교전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침몰한 고속정의 갑판장 이해영(51) 상사는 “우리가 경고방송을 한 지 2∼3분 뒤 북한이 조타실쪽을 먼저 쏘았다.”면서 “조타실이 계속 당하기에 우리가 즉각 대응사격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 상사는 “교전 중 1∼2m 옆에 있던 서후원 하사가 적탄에 옆구리를 맞고 쓰러져 있었다.”면서 “북한이 감정 없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아예 작정을 한 것 같았다.”고 몸서리를 쳤다. 황창규(29) 중사는 “북한 경비정이 전방 914m까지 접근해 우리 고속정 왼쪽 옆으로 포를 쐈다.”면서 “탱크 포신만한 포신이 3개 설치돼 있었으며,그렇게 큰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황 중사는 “그들이 포를 쏘자마자 1,2초 후에 바로 대응사격을 지시했다.”면서 “그러나 북한군의 공격으로 배의 전원이 모두 나간 상황이어서 전자동 조작이 안돼 수동으로 포를 쏘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교전이 끝날 무렵 지휘부가 있는 함교쪽으로 올라가 보니 윤영하 대위가 등쪽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으며,맥박이 뛰고 있어 인공호흡을 두차례 했으나 곧 맥박이 끊어졌다고 전했다. 함교쪽에 있던 권기형 상병은 왼쪽 손가락 부분이 북한군의 총탄에 맞아 모두 잘려나간 채 오른손 하나로만 탄창을 갈아끼우고 총을 쏘고 있었다. 황 중사는 “함교 밑 조타실에는 화재가 발생,조천형 하사가 완전히 불길에 휩싸여 새까맣게 굳은 채로 숨져 있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황도현 하사는 포탄을 맞아 머리부분이 심하게 함몰됐다고 했다. 이들은 “숨진 부대원들의 명복을 빈다.”면서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더 열심히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서해교전/남북 경비정 비교/선제 공격 北경비정

    우리 고속정을 선제사격한 북한 경비정은 S0-1급 PCF(등산곶 경비정)다.215t으로,최대 속력은 28노트다.크기는 42m×6.1m×1.9m이며,50명의 승조원이 탑승한다.무장은 경비정의 앞부분에 최대 사거리 15.5㎞의 85㎜ 단연장포가 장착돼 있으며,조타실 바로 뒤편에 최대 사거리 7㎞의 14.5㎜ 2연장포,후미에는 최대 사거리 8㎞의 37㎜ 단연장포가 각각 장착돼 있다. 반면 피격돼 침몰된 우리측 고속정은 해상경비 및 기습공격을 담당하고 있으며 총 28명이 탑승하도록 돼있다.156t으로,최대속력은 38노트다.크기는 37m×6.6m×1.7m이며,해군은 모두 96척을 보유하고 있다.무장은 40㎜포,30㎜포 각 1문씩,20㎜ 발칸포는 2문 장착돼 있다. 곽태헌기자 tiger@
  • 서해교전/ 교전상황 재구성 “월선”경고에 北 85㎜ 발포

    북한 경비정과 어선은 올 들어서도 14차례나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다.북한 꽃게잡이 어선을 경비하다 우연히 침범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대치중 함포 사격은 다분히 99년 6월 ‘서해교전’ 피해에 대한 보복성 행위로 분석된다.29일 교전상황을 합동참모본부 발표와 피해 수병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29일 오전 9시54분쯤 215t급 북한 경비정 1척이 서해상 서쪽 25.2km 북방한계선을 넘는 모습이 근처에 있던 156t급 우리 고속정 편대(2척)에 관측됐다. 북한은 서해교전 이후 당시 경비정보다 조금 큰 함정을 서해상에서 운영하고 있다. 북방한계선 북측 지역에서는 북한 어선 30여척이 조업중이었다. 우리 고속정 2척이 NLL을 넘은 북한 경비정 450여m 전방까지 다가갔고, 이중 선두 고속정이 평소와 마찬가지로 “”지금 귀 선박은 NLL을 넘었으니 북쪽으로 돌아가라.””고 경고방송을 3차례 보냈다. 그러나 오전 10시1분쯤 또 다른 북한 경비정 1척이 NLL을 넘었다. 뒤따라온 경비정 1척은 처음에 NLL을 넘은 경비정 1척과 함께 서쪽 방향으로움직이기 시작했다. 속도가 평소 순항 속력보다 빨랐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우리 고속정 첫번째 편대는 이를 근처에 대기중이던 고속정 2개 편대(4척)에 알렸다. 이 고속정 2개 편대도 북측 경비정들에게 접근했다. 오전 10시25분쯤 NLL로부터 5.4km 떨어진 지점에서 갑자기 북한 경비정 1척이 우리측 고속정 6척 가운데 1척에 대해 85mm 함포를 1발 발사했다. 북측의 선제 사격은 그대로 조타실에 명중했다. 기습적인 조준사격이라 그대로 당하고 만 것이다. 우리 고속정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조타실에 있던 고속정 지휘관인 정장 윤영하 대위(尹永夏·26·해사 50기) 등 4명이 피투성이가 됐다. 상황을 보고받은 초계함 1개 편대(2척)가 긴급 출동했다. 교전 상황은 해군작전사령부와 합동참모본부에 보고됐고 긴급 상황 때 가동되는 '초기대응 작전명령'이 발령됐다. 우리 고속정 4척은 일제히 기관포로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뒤따라 온 초계함 등도 함포사격을 시작했다. 같은 시각 충남 서산지역에서 초계비행중이던 KF-16 2대가 사건 발생지점으로 날아갔다. 북측 경비정 2척도 수차례 함포사격을 하더니 곧 북쪽으로 선수를 돌렸다. 북측 경비정들은 도주하면서도 산발적으로 응사해왔다. 이때 북한 경비정 1척이 우리측 피해 함정 1척을 제외한 7척으로부터 수백발에 이르는 집중사격을 받고 '펑'하는 폭음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 우리 고속정보다 덩치가 큰 북측 경비정은 선체가 기우뚱하면서 검은 화염으로 뒤덮였다. 북한 승조원들이 허둥대는 모습도 목격됐다. 오전 10시50분쯤 도주하던 북측 경비정 2척이 NLL을 넘었고 고속정 편대 등은 추격을 멈췄다. 첫 피격이 이뤄진 지 25분만이다. 불길에 휩싸인 북한 경비정 1척을 예인선이 끌고 가는 모습이 관측됐다. 우리측 피해 고속정 1척도 예인작업을 시작했다. 동시에 고속정 상공에는 HH-60과 HH-47 구난 헬기 2대가 부상자들을 구조했다. 윤 대위 등 4명은 피습현장에서 사망했다. 윤 대위의 시신과 부상자 19명은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등으로 후송됐다. 피격당한 고속정 1척은 예인되던중 침몰하고 말았다. 김경운 기자 kkwoon@
  • [대한포럼] 대통령 자녀도 공인이다

    대통령 주변의 비리 의혹이 자고 나면 불거진다.유형도 가지가지다.돈을 챙긴 것은 기본이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일정도 그대로 유출했다고 한다.특명 사건을 전담하는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이 하루 아침에 범인이 되어 외국 땅을 헤매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그리고 의혹의 중심에는대통령의 아들들이 자리하고 있다.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아직은 불투명하나 당사자들이 법적 대응조차 하지 않는 것을보니 전혀 사실무근만은 아닌 성 싶다. 세상에선 대통령 아들에 대한 얘기가 많았지만 이 지경인 줄은 몰랐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요, 한 가정의 가장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아들의 추문을 제때 알았더라면 여태껏 가만히 놔뒀을 리 없을 것이다.국가 정책 결정의 산실인 청와대가 연고주의 인맥 중심으로 구성된 게 패착이었던 것 같다.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보내며 끈끈한 인간미로 맺어진 사람들이청와대의 주요 포스트를 차지하면서 ‘영식’들의 비리나무절제한 생활이 인(人)의 장막을 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최규선 게이트’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른바대통령가와 가까웠던 측근들이다. 최규선(崔圭善)씨도 정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통령이 아이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떠벌이고 다녔다질 않은가.국정의 조타실 격인 청와대가 가부장적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는 얘기다. 5년 전 이때 쯤이었다.당시 야당 총재이던 김 대통령은 김현철(金賢哲)씨 사건에 대해 “아버지의 책임이다.”고 단언했다.“김현철씨는 법대로 (처리)해야 된다.”며 대통령이 되면 자녀의 국정 개입을 차단할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버지가 안 시키면 되는 것이다.”라고 아주 명쾌하게 잘라 말했다고 한다.내막이 밝혀져 봐야겠지만 얼른 보기엔 5년 전 상황이 그대로 재현됐다.역대 대통령이 아들들의 비정상적인 국정 개입과 권력형 비리를 경계했지만 모두실패한 것이다. 권력의 속성상 처음부터 의지나 다짐만으로안되는 일이었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유혹이 파고 들 수 있는 틈을 봉쇄해야 한다.대통령 자녀의 재산을 미리 공개해 국민적 감시권에 놓아야 한다.그러나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제12조에서 고위 공직자가 부양하지 않는 직계 존·비속의 재산내역은 고지를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이아들 재산의 공개를 거부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대부분의외국은 우리보다 재산 등록 거부 범위가 훨씬 넓다. 일본,영국,독일은 본인 재산만 등록하도록 되어 있다.미국은 본인과 배우자,그리고 자녀는 21세 이하의 미혼자로 한정하고있다. 고위 공직자라해서 자녀 재산까지 공개하는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논리다. 원론적인 이론이야 구구절절이 옳다. 선진 외국에선 최고통치권자의 자녀들은 국정을 아예 넘겨다 보질 않는다.특수한 한국적 정치 현실이 고려돼야 한다.‘홍삼 트리오’구설이나 김현철씨 사례뿐만이 아니다.역대 정권마다 대통령 자녀들 역할이 있었다.적어도 지금까지 경험칙으로 보면 대통령 자녀들은 공인이었고 국정에 미치는 영향이 재산 등록의무자인 1급(관리관)이상 고위 공직자에 못지않았다.더구나 거의 모든 공직자들이 부모와 분가한 자녀 재산도 낱낱이 밝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직자의 윤리를 확립한다.”는 공직자윤리법의 입법 취지를 솔선해 실천하고 있다. 대통령 자녀의 권력형 비리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돼야 한다.소를 잃었지만 외양간을 고쳐야또 소를 도둑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고위 공직자와 구분하여 대통령은 분가한 자녀도 재산 상황을 의무적으로 등록하도록 해야 한다.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단서 조항을두어도 좋고 따로 가칭 ‘대통령 친인척 재산공개법’을제정해도 괜찮을 것이다.나아가 대통령 주변 사람들에게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의미에서 그들의 비리는 가중 처벌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작금의 권력형 비리는 진상이철저하게 규명돼야 한다.그리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재발을 방지하는 장치를 서둘러야 한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日 ‘北선박 항해’ 미리 알았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미국 정부는 일본 수역에 침입해 지난 22일 침몰한 괴선박에 관한 정보를 입수,이틀 전인 20일 일본과 한국 정부에 이미 통보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공안 당국 관계자는 25일 “미군은 첩보위성을 통해획득한 괴선박의 정보를 한·일 양국 군에 통보해 줬다”면서 “이 정보에는 괴선박이 북한 배로 보인다는 설명도따랐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에 따라 해상자위대의 P3C 초계기가 추적에 들어가 21일 오후 4시 가고시마(鹿兒島)현 아마미 오시마(奄美大島) 근해에서 괴선박을 포착했으며 22일 오전 6시20분에는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괴선박을 발견했다.앞서오기 지카게(扇千景) 일본 국토교통상은 이날 “괴선박의선적이나 임무를 밝히기 위해 선체를 인양할 것”이라고밝혔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이날 일본 수역에 침입했다가 침몰한괴선박은 기관실이 선체 앞쪽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밝혔다. 항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선박은 조타실의 뒤쪽에 기관실을 두는 게 보통이나 이 괴선박의 경우 뒤쪽에 대량의 화물이나 침투용 소형선박을 실을 목적으로 앞쪽에 기관실을둔 것으로 일본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괴선박이 순시선을향해 발사한 소형 로켓탄은 1962년 옛 소련에서 제작돼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된 대전차형 RPG-7 로켓탄일 가능성이크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한편 중국은 이날 외교부 장치웨(章啓月) 대변인을 통해“일본이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내에서 무력을 사용,국적불명의 선박을 침몰시킨 사건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시하며,일본은 중국측의 권리와 우려를 충분히 존중해야만한다”면서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논평을 발표했다. marry01@
  • 北 괴선박 임무 무엇이었나

    ■대두되는 3가지 의문점. 일본 수역을 침범한 괴선박 침몰 사건 사흘째인 24일 괴선박이 중국 배로 위장했으며 교전 중 일본 순시선에 소형 로켓탄을 발사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새로운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목격된 괴선박 선원 15명 중 1명도 구조되지 않은 점,괴선박의 임무 등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새로운 사실] 22일 밤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아마미 오시마(庵美大島) 북서쪽 동중국해 해상에서 교전 중 괴선박은 일본 순시선에 2발의 소형 로켓탄을 발사했다.다행히 2척의 순시선에는 맞지 않았다.사건 직후 괴선박의 자동화기와 순시선의 기관총 응사가 이어지던 순간 났던 ‘이상한 소리’는 소형 로켓탄 발사음인 것으로 드러났다. 괴선박은 중국쪽으로 도주하면서 중국 깃발을 흔들었던 것으로 드러났다.중국 정부가 “괴선박은 중국 배가 아니다”고 재빨리 부인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오해를살 여지가 있어서였다.1999년 3월 일본 영해를 침범한 북한공작선 2척은 위장을 위해 일장기를 달고 있었다. [수수께끼 3가지] 첫째,괴선박의 임무이다.일본 당국은 해저 100m에 침몰된 선박을 인양하지 않아 선박의 국적과 임무를 밝힐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괴선박이북한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괴선박이 북한 배라면 ▲마약,무기 등의 밀수 ▲공작원의 일본 침투나 귀환 ▲일본 근해의 군사정보 수집 등 3갈래의 가능성을 놓고 수사를 진행 중이나 현재로는 밀수선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은 일단 괴선박에 부착된 안테나의 숫자가 극히 적은점으로 미뤄 정보 수집을 위한 정찰 가능성은 거의 배제하고 있다.공작원 침투나 복귀 임무를 띤 공작선일 가능성도 부상하고 있으나 배의 속도가 최대 시속 15노트(28㎞)로 지나치게 느리고 교신에 필요한 안테나가 적은 점을 들어 부정적인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둘째,순시선의 기관포 사격으로 100t급의 선박이 4분 만에침몰한 점이다.전문가들은 순시선이 괴선박을 향해 쏜 기관포 186발로는 침몰이 어려우며 더욱이 기관포가 괴선박의 후미가 아닌 조타실을 향했던 점으로 볼 때 괴선박의 자폭 가능성을 꼽고 있다.교전 중 총소리가 아닌 소리가 들렸다는진술에 따라 괴선박이 정체를 드러내는 ‘증거’를 없애기위해 자폭했다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셋째,침몰 직전 바다로 뛰어든 선원 15명 중 단 1명도 구조되지 못한 점이다.교전이 벌어지고 괴선박이 침몰한 시간은밤 10시13분쯤이었다.침몰 해역에 비가 내리고 3∼4m의 파도가 쳐 수색이 쉽지 않은 상황이긴 했다.이에 대해 해상보안청 관계자는 “구조 활동을 펴려고 했으나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상대편의 반격이 우려됐다”고 침몰 직후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하지 않았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北日관계 엎친데 덮친격”. 지난 22일 발생한 일본 순시선에 의한 북한 공작선 추정 괴선박 침몰사건으로 한반도 주변에 긴장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사건 발생이후 거듭 ‘정당방위’임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였다.중국은 이에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우려하는 강도 높은 외교 논평을 내놓는 등 세밑 동북아 정세가 심상찮다. 외교부 당국자는“분명한 것은 가득이나 경색된 북·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북·일간의 대화는 지난해 10월 중단된 이래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특히 최근에는 일본 경찰의 조총련계신용조합 간부의 구속 및 사무실 수색,이어 조선 적십자회의 ‘일본인 행불자 수색 전면중단’ 선언 등 북·일 관계를얼어붙게 만드는 사건들이 잇따랐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경계해 온 중국 역시 이번 사건을 외교쟁점화시키는 분위기다.특히 중국은 일본이 공해(公海)상이라고는 하나 경제수역(EEZ)에까지 들어와 발포,중국을 자극시켰다고 보고 있다.중국 장치웨(章啓月)외교부 대변인은23일 “일본이 동중국해 해역에서 군사력을 사용한 데 대해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또 “선박의 침몰과 승무원 사망과 부상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면서 북한측을 피해자로 간주하는 발언을 했다. 난감한 것은 우리 정부다.북·미관계와 북·일관계 답보로인한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해온 정부는 이번 사건을 ‘악재’로 보고 있다. 한승수(韓昇洙) 외교부장관은 이날 “아직 사태가 파악되지 않아 우리가 무엇이라고 얘기하기는 힘들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그러나 한 당국자는 “사건 발생 자체부터가 커다란 악재임에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日 ‘안보위협' 강력대응 가닥.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정부가 괴선박 침몰사건 이후 ‘강력’ 쪽으로 대응 기조를 잡아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해상보안청 순시선만으로는 일본 영해나 수역을 침범하는 무장한 괴선박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관련법 정비에 박차를 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미 테러참사 이후 테러특별조치법 제정,유엔 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 개정,자위대법 개정 등을 통해 사상첫 자위대 해외 파병의 길을 튼 일본에 다시 한번 방위 관련법의 제정·개정 바람이 거세게 불 것으로 예상된다.제3국도 아닌 일본 수역을 침범한 괴선박과의 교전을 통해 순시선직원 2명이 부상하고 괴선박이 침몰하는 전대미문의 ‘호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괴선박을)잡지못해 유감”,“평시에 적절한 대응을 생각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사후약방문이더라도 분명한 대응책을 강구해 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24일 고이즈미 총리 주재의 안전보장회의와 각료 간담회에서도 방위청장관 등 관련 각료가 일제히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법적 미비점을 거론,보완에 착수할 뜻을 잇달아 밝혔다. 일본 정부 일각에서는 괴선박의 소형 로켓탄 발사에 순시선이 기관포 만으로 응사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비춰 긴급사태 발생시 무기 사용 기준을 완화해 보다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이번 사태가 영해가 아닌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침범했다가 중국측 EEZ로 도주하다 침몰해 일어난 만큼 영해밖에서의 무기 사용 범위도 재검토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1998년 8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이듬해 3월의 북한 공작선 영해 침범 때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북한위협론’이 고개를 들 것으로보인다. 98년 당시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했을 때 방위청을 중심으로 방위족 의원들은 “100년에 한차례 올까말까 한 기회”라며 방위 관련법 정비에 열을 올린 적이 있다.1977년 방위청이 연구를 시작한 이후 야당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던 유사법제 정비도 이같은 여론을 등에 업고 가속화될 것으로 여겨진다.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자민당 간사장은 “해상보안청이나방위청이 확실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준다”면서 내년 초 정기국회 때 유사법제 정비에 의욕을 보였다.
  • 조업중 월경 어선 北측 총격 받아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선적 유자망 어선 수성호(82t급·선장 김봉춘·39)가 지난 5월27일 오후 8시40분쯤 고성군 저진항 동쪽 90마일 해상에서 그물을 걷던중 북한지도선으로 추정되는 선박으로부터 7∼8발의 총격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8일 수성호 선원등에 따르면 당시 이 배에는 선원 9명이 타고 있었으며 어망이 조류에 밀려 북쪽으로 올라가 이를 건지는 과정에서 분사분계선을 2마일 정도 넘었다는 것이다. 이때 수성호의 월경을 확인한 북한지도선이 접근,“국적이어디냐”,“정지하라”,“접안하라” 등의 무선명령을 받았으나 이에 불응,남쪽으로 도망치는 과정에서 총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선박으로부터 소총 총격을 받은 수성호는 조타실 뒤파이프와 뱃머리 등에 각각 한발씩을 맞았으나 인명 피해는없었으며 수성호는 그동안 피격 사실을 신고하지 않고 숨겨왔다. 해경은 8일 오후 선장겸 선주인 김씨 등을 불러 정확한 경위를 조사중이다. 동해 조한종기자 bell21@
  • 北과 교전 해군고속정 공개

    위풍당당한 귀항이었다. 18일 인천의 해군 2함대 군항부두에서 공개된 경비정 325호는 지난 15일 북한 함정과의 교전이 격렬했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지난 16일 입항해 부두에서 수리중인 이 함정은 선미 우측이 포탄에 맞아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조타실 역시 심하게 파손돼 있었다. 인적피해도 이번 작전에 동원된 13척 가운데 가장 많아 9명이나 중경상을입었다. 325호 부정장 홍경식(洪景植·28)중위는 “우리 함정이 북한 함정의 남하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45도 각도로 충돌했으며 이후 양측이 10∼20m 간격을 두고 교전을 벌였다”며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충돌한 지 20초 후에 북한 경비정 PC­381호의 사병들이 일제히 탄창을개인화기에 집어넣더니 사격을 시작했다”고 전한 홍 중위는 “전투에 임한우리 전우들이 하나같이 불퇴전의 용기를 보였다”고 말했다.북측의 기습사격으로 함정 지휘소에서 지휘하던 안지영(安志榮)대위가 목에 총탄을 맞고쓰러지자 갑판에 있던 우리측 사병 11명이 일제히 개인화기로 응사해 불과수분만에 완전히 기선을 제압했다고 그는 숨막히던 당시의 상황을 담담히회상했다. “우리측의 지체없는 대응에 놀란 북한측이 함포사격을 시작,뱃머리가 부서지고 조타실에 파편이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적의 함포 공격에 맞서 우리도 즉각 선두(船頭)의 40㎜ 포와 함정의 중앙과 선미에 있던 20㎜ 발칸포로 맞서 집중 포격을 가했습니다”.이렇게 5분쯤교전을 하고 나니 북한 함정이 화염에 휩싸인 채 침몰하기 시작했다고 홍중위는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격침 北 반잠수정 3개월만에 인양

    지난해 12월18일 남해안에 침투하다 격침된 북한 반잠수정이 17일 침몰 3개월만에 우리 해군에 의해 인양됐다. 해군은 이날 오후 1시28분쯤 잠수함 구조함인 청해진함을 동원,거제도 남방 100㎞ 해상에서 해난구조대(SSU) 요원 9명이 수심 150m의 해저로 미리 내려가 묶어놓은 밧줄과 특수 크레인을 연결해 반잠수정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인양된 반잠수정은 함수 조타실과 함미 엔진실이 심하게 파손되고 선체 곳곳에 파편 자국이 있으나 선체는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다. 해군 관계자는 “선체 내에 3명 정도의 부패된 공작원 사체가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반잠수정을 진해 해군기지로 옮긴 뒤 합동신문을 거쳐 빠르면 18일 전체 공작원 규모와 침투 목적 및 경로,소지품 등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조대원들은 대기압의 15배가 되는 높은 수압에 견디기 위해 불활성기체인 헬륨을 체내에 흡입한 뒤 특수장비를 이용해 심해에 들어가 작업을 하는 ‘포화잠수법’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 韓·日어업협정 발효이후-정부 대응책·달라진 입어조건

    지난 5일 한·일 신(新) 어업협정 실무협상이 진통끝에 마무리됨에 따라 두 나라는 본격적인 200해리 광역 해양관리 시대를 맞게 됐다. 새로운 어업협정의 체결로 어업인들은 달라진 입어조건,허가,신고방식 등에 맞춰 조업해야 한다.달라진 점과 정부의 우리 어민 보호대책 및 지원책을요약한다. ▒일본 EEZ내 입어절차 앞으로 우리 어선들은 새 어업협정에 따라 일본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일본 EEZ내에서 조업할 수 있으며 허가없이 조업하거나 허가조건 및 일본 국내법을 어기면 단속·처벌의 대상이 된다.모든 세부적인조업활동은 일본이 정한 입어규칙과 절차에 의한다. 허가 신청,허가증 기재사항 변경과 재교부신청 등은 양국 정부가 대행해서일괄 신청·발급한다.조업허가 신청서를 해양부와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조업개시일 1개월 전까지 일본 수산청에 제출해야 한다. ▒허가증 취득 일본 수산청은 제출된 신청서의 기재내용이 타당하다고 판단될 경우에 한해 허가증을 발급한다.제출된 신청서의 기재내용 중 불분명한점이 있으면 일본 수산청은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허가신청자에 대해 내용조회를 할 수 있다.입어할 때는 항상 허가증을 비치하고 어업허가번호와 기재한 표지판을 조타실 밖에 부착해야 한다. ▒입출역·조업위치·어획실적 보고 일본 EEZ 내 조업 어선은 우리 무선국을 통해 일본 수산청에 입역 예정사실을 24시간 전에 보고해야 한다.또 조업을 마치고 나올때도 출역 후 24시간 이내에 우리 무선국을 통해 일본 수산청에 출역사실을 보고해야 한다.분기별 어획실적도 해양수산부를 통해 일본 수산청에 보고해야 하고 조업일지를 별도로 기록해 비치해야 한다. ▒정부의 입어 어민 보호대책 해양수산부는 해양경찰청,시·도 지방해양수산청 등의 협조 아래 일본 EEZ에 입어하는 우리 어선을 보호·지원하기 위한‘EEZ 합동대책반’을 구성했다.대책반은 일본 EEZ내 조업이 재개된 22일부터 24시간 관리 및 자문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입어조건 위반에 따른 불이익처분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동중국해,대화퇴어장 등 근해 어장 성수기에는 어업지도선을 추가파견해 의료지원과 해상보급활동을 실시하는 한편 어업지도선,해경청 경비정을 인접국 EEZ부근에 배치하여 우리 어선의 피납방지등 어로활동 보호를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피해어민 지원책 어선 감척(減隻)사업 등에 빠르면 3월말부터 총 836억원이 피해어민에게 지원된다.이 가운데 어선 감척사업에만 총 676억원이 지원돼 대상 척수도 당초 182척에서 391척으로 확대되고,110억원은 어선감척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어선원들에 대한 실업보상금으로 지급된다.감척되는 어선 및 어구는 정부가 매입하고 3년간 순수익을 기준으로 한 폐업보상비 중 60%를 정부가 지원한다. 咸惠里
  • 韓-日 새 어업협정 내용

    한·일 양국의 고위급 수산당국자회의가 일괄 타결됨에 따라 두 나라간에유엔해양법 협약에 바탕을 둔 신(新)어업협정이 정식 발효하게 됐다.이는 지금까지 12해리(1해리=1,832m) 영해 밖의 수역을 자유롭게 이용하던 시대에서 최대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까지 연안국이 주권적 권리를 갖게 되는시대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 두 나라는 200해리 내에서는 배타적인 어업권과 해양과학조사 및 자원개발권을 주장할 수 있다.특히 우리 어선들은 새 어업협정에 따라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일본 EEZ 내 조업이 가능하며 허가 없이 조업하거나 허가조건 및 일본 국내법을 위반할 경우 나포될 수 있고 일본 법에따라 처벌받게 된다.▒입어조건 양국 정부는 각국의 EEZ 내에서 상대방 국민 및 어선이 잡을 수있는 어종,업종별 할당량,입어 척수,조업 수역,조업기간,어선 및 어구 규모등 조업에 관한 구체적인 조건을 매년 결정하고 이를 상대국에 서면으로 통보한다.이때 양국 정부는 한·일 어업공동위원회의 협의결과를 존중하고 각국의 EEZ 내해양생물자원의 상태,어획 능력,상호 입어의 상황 등을 고려해야 한다.▒입어허가 신청 허가신청 절차는 어업 종류,선명,어선 종류,조업 수역,조업기간,어획할당량 등을 기재한 조업허가신청서를 해양부와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조업개시일 1개월 전까지 일본 수산청에 제출해야 한다.두 종류 이상의 어업에 사용되는 어선은 종류마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어민 입장에서는 각 시·도 수산 담당부서나 업종별 단체에 신청만 하면 수속처리해 준다.입어할 때는 항상 허가증을 비치하고 어업허가번호등을 기재한 표지판을 조타실 밖에 부착해야 한다.
  • 표류하던 북한어선 예인 울릉도 북동쪽 해안서 발견

    15일 오전 5시쯤 울릉도 북동쪽 해상에서 승선자 없이 표류중인 북한 저인망 어선을 우리 어선이 발견,신고해 동해 해양경찰서가 울릉도 저동항으로예인,조사중이다. 해경에 따르면 어선은 길이 11m,폭 2.5m,무게 2∼3t 규모의 저인망 어선으로 선수 양편에 북한 선박의 고유번호인 118-227번이 적혀 있고 조타실 위에 철판으로 만든 인공기가 달려 있다. 해경은 이 어선이 북한 동해 항구에 정박해 있던 중 기상 악화로 줄이 끊어지면서 울릉도 북방 해상으로 표류해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포항l李東九 yidonggu@
  • 유조선 폭발 3명 사망·실종/어제 울산항서… 기름유출은 없어

    2일 낮 12시 20분쯤 울산시 동구 방어동 울산항에 정박중이던 부산선적 유류 운반선 1천596t급 제 5한창호(선장 김태정·47)에서 폭발사고와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배안에 있던 선원 12명 가운데 갑판원 전상진(41·경남 통영시 불신동),일등항해사 최수봉씨(42·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등 2명이 숨지고 갑판장 홍제두씨(49·부산시 서구 동대신동)가 실종됐다.선장 김씨 등 9명은 긴급 출동한 해경 경비정에 구조됐다. 사고가 나자 울산해경 경비정과 소방정 등 10여척이 출동,진화작업과 함께 선원 구조작업을 벌였으며 불은 하오 1시 40분쯤 꺼졌다. 선장 김씨는 “정박중 갑자기 선미쪽 조타실 앞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며 ”연기가 심해 폭발현장에 접근하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해경은 이 배 5개 유류저장 탱크중 선미에 있는 지름 7m의 원형 탱크에 차있던 가스가 인화물질에 의해 폭발하며 일어난 것으로 보고 사고원인을 조사중이다. 제5한창호는 이날 상오 6시 20시쯤 SK(주) 부두에서 기름을 싣기 위해 빈 배로 입항,울산항 M­7묘박지에서 대기중이어서 기름 유출은 없었다.
  • 유조선 한밤 화재/인명피해는 없어

    19일 하오 8시12분쯤 울산시 동구 방어동 화암추 남동방 0.5마일 앞바다에서 정박중이던 파나마선적 1천385t급 유조선 준유1호(선장 백홍기·54)에서 화재가 발생,기관실과 조타실을 태운 뒤 하오11시쯤 불길이 잡혔다. 불은 다행히 기름탱크에는 옮겨붙지 않아 큰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이 배에 승선한 14명 가운데 백씨와 기관장 박형근씨(43) 등 2명은 상륙해 있었고 배에 있던 미얀마인 선원 12명도 해경에 모두 구조됐다.
  • 방문 여로(경수로 착공 방북취재기:상)

    ◎북 도선사 “자주 봐야 정들죠”/항구 썰렁… 인적 드물고 낡은 선박 10여척 정박 북한 땅 신포는 그곳에 있었다.우리가 다가갔다.92년 9월 평양 남북 고위급회담 이후 정부대표단과 한국기자단의 첫 북한방문이었다.남북교류의 새 장을 여는 경수로 착공식 취재는 단 하루,함남 신포의 양화라는 외곽항구와 금호지구 경수로 건설부지 등 제한적인 지역에서 제한된 북한주민들을 만나는 것이었다.방북단의 취재내용을 ‘북한 방문 여로’ ‘1997년 북한 사람의 생활’ 등으로 나눠 두차례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 주〉 닫혀 있는 땅 북한 함경남도 신포로 향하는 뱃길은 잔잔했다. 18일 저녁 7시.강원도 동해항에서 경수로 관련 한·미·일 정부대표단,원전건설 합동시공단 대표단,한·미·일 3국 공동취재단을 태운 한나라호는 조용한 밤바다를 헤쳐 나갔다. 19일 새벽 1시 30분.조타실 항로계기판의 점멸 등이 깜박였다.이른바 알파지점.북한이 군사경계지역으로 부르는 지점에 도착한 것이다.이제부터 북한 영역이었다.깜깜한 밤바다에 북한측 경비정은 보이지 않았다. 아침 7시 간간이 내리는 비와 바다안개속에 드디어 북한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함남 신포 금호지구 경수로 부지와 12㎞정도 떨어진 양화항.북한측 도선사의 안내로 한나라호는 한때 북한 동해안의 가장 큰 어항이었다는 양화항에 접안했다.한참 붐빌 아침시간의 부두였지만 북측 사람들은 안전요원,세관원 등 불과 십수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부두에는 길이 1백여m되는 시멘트 건물 어판장이 있었지만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를 사수하자’라는 오래된 페인트 글씨만 쓰여있을뿐 인적은 없었다.항구에도 녹슨 철선만 10여척 정박해 있을 뿐이었다. 배에서 내려 단층 블럭 건물인 양화항 입국세관에 들어섰다.경수로 건설공사 때문에 임시로 설치된 세관은 다섯 명의 북측 세관원외에는 아무도 없었다.일부 취재진의 망원카메라 등 취재 장비의 통관에 대한 실랑이가 있었지만 비교적 입국 수속은 쉽게 끝났다.세관을 통과한 뒤 만난 첫 북한 주민은 음료와 담배 등을 파는,세관에 설치된 외화벌이 상점 ‘양화카운트’ 점원이었다.평양에서 왔다는 북한 여점원은 ‘안녕하십니까,반갑습니다’라는 인사로 대표단을 맞았다. 이어 대표단은 최근 경수로 부지공사를 위해 급히 만든 진흙탕길 비포장 도로를 30분정도 달려 경수로 부지인 신포 금호지구에 도착했다.부지는 정리가 안된 넓은 들판과 어인봉이라는 야산만 가로놓여 있는 허허벌판이었다.내리는 빗속에 경수로 예정부지는 온통 진흙밭이었다.그러나 막상 부지 착공식이 시작되자 한미일 정부대표들과 북한측 대표들의 표정은 역사적인 대사업의 의미를 되새기듯 밝으면서도 장엄했다. 하오2시30분.드디어 금호지구에 폭발음이 들렸다.경수로 부지 왼편에 가로놓인 어인봉 마지막 능선 6부지점 정도에 설치된 발파현장에서 폭발음과 함께 오색연기가 피어 올랐다.부지 한쪽에서는 국산 굴착기가 북한 땅에 최초로 삽을 꽂았다.남북간 대규모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착공식 후 우리 근로자들의 임시숙소인 강상리 게스트 하우스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남북대표와 미·일 대표들은 서로 ‘축하한다’며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부지착공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양화항으로 돌아오는 밤길에도 비가 내렸다.취재단을 태운 미니버스는 양화항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마주오는 트럭을 피하려다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옆 옥수수밭 도랑에 빠져 전복위기를 맞기도 했다.일행들은 비에 젖고 진흙투성이가 됐지만 경수로 착공의 의미를 되새기며 웃는 모습이었다. 다른 일행을 태웠던 버스로 갈아타고 양화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마친 시간은 밤11시.일행은 “야간은 출항이 안되니 아침에 떠나라”는 북한측의 지시에 따라 양화항에 접안한 배에서 1박했다. 20일 아침 10시.북측 도선사의 안내로 양화항을 떠났다.8㎞ 떨어진 파일러트 스테이션(도선지점)에서 북한측 도선사는 배에서 내려 돌아갔다.북측 도선사는 “자주 봐야 정들지요,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했고 우리측 대표단은 “이제 자주 오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 한국어선 일 영해서 침몰/일,갑판장 2명 조사중

    통영선적 43t급 장어통발어선 제23해성호(선장 유유진·43)가 지난 7일 상오 8시30분쯤 일본 영해를 침범해 선원 9명 가운데 기관장 등 7명은 석방됐으나 갑판장 등 2명이 일본해상보안청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후쿠오카 주재 한국영사관이 9일 하오 부산해양경찰서에 알려왔다.당시 해성호는 일본 나가도리시마 동쪽 12마일 해상에서 조타실이 완전 침수돼 침몰됐으나 인근에 조업중이던 우리 어선에 의해 모두 구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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