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조카
    2026-02-03
    검색기록 지우기
  • 임상
    2026-02-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516
  • 엄마가 ‘조카 물고문 살해‘ 범행도구 나뭇가지 직접 사서 전달…검찰,친모도 불구속 기소

    엄마가 ‘조카 물고문 살해‘ 범행도구 나뭇가지 직접 사서 전달…검찰,친모도 불구속 기소

    10살짜리 조카에게 귀신이 들렸다며 폭행하고 강제로 욕조 물에 집어넣어 사망케 한 이른바 ‘조카 물고문 살인’ 사건 피해아동의 엄마가 자신의 언니이자 사건 주범인 이모에게 범행도구를 직접 사서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원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김원호 부장검사)는 9일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방조 및 유기·방임) 혐의로 친모 A(31)씨를 불구속기소 했다. A씨는 지난 1월 25일 오후 3시 40분쯤 언니 B(34·무속인)씨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딸 C(10)양의 양쪽 눈에 멍이 든 사진을 전송받고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어 C양의 사망 전날인 2월 7일 오후 7시 40분쯤 B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애가 귀신에게 빙의가 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려면 복숭아 나뭇가지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복숭아 나뭇가지 한 묶음을 사 전달한 혐의도 받는다. 당시 A씨는 B씨로부터 빙의와 관련한 유튜브 영상 링크도 전달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그날 밤부터 새벽까지 3시간여 전화 통화 과정에서 B씨로부터 “파리채로 아이를 때렸다”는 등의 말을 들었지만, 오히려 C양과 전화를 바꿔 “이모 손을 닿으면 안 고쳐지는 것이 없다”고 다독인 것으로 파악됐다. A씨가 이런 말을 할 때 C양의 건강은 이미 크게 악화한 상태였다. 지난 8일 B씨 부부의 3차 공판 과정에서 공개된 범행 동영상을 보면,전화 통화 하루 뒤이자 사망 당일인 지난 2월 8일 오전 9시 30분쯤 C양은 왼팔을 아예 들지 못했고,오전 11시 2분에는 거실에서 몇 걸음을 떼지 못한 채 반려견집 울타리 쪽으로 넘어졌다. 이는 복숭아 나뭇가지 등을 이용한 폭행이 1월 말부터 계속된 데서 비롯된 것으로,C양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C양은 이후 욕실로 끌려가 물고문 행위를 당한 끝에 숨졌다. A씨는 자신의 혐의에 관해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은 B씨의 진술과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통해 A씨의 범행을 특정,이날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A씨 사건을 B씨 부부의 재판에 병합 신청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비닐봉지에 들어가! 개똥 삼켜!” 조카 물고문 부부, 영상도 찍었다

    “비닐봉지에 들어가! 개똥 삼켜!” 조카 물고문 부부, 영상도 찍었다

    10살짜리 조카에게 귀신이 들렸다며 폭행하고 물고문을 해 숨지게 한 이모 부부가 사망 직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조카를 욕실에서 개의 똥을 억지로 먹게 하는 등 끔찍한 학대 동영상이 공개됐다. 8일 수원지법 형사15부(조휴옥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사건의 3차 공판에서 수사검사인 박상용 검사는 이모 A(34·무속인)씨와 이모부 B(33·국악인)씨가 조카 C(10)양을 학대하면서 직접 찍은 동영상 13건을 공개했다. 검찰은 지난 1월 16일부터 사망 당일인 2월 8일까지 A씨 부부의 공소사실 중 대표적인 것을 추려 법정에서 공개하면서 혐의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심리를 진행했다. 동영상 중에는 비닐봉지 안에 들어가 개의 대변을 먹으라고 지시하는 등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학대 행위가 담겨 있었다. 이를 본 방청객들은 울음과 탄식을 자아냈다. 검찰이 공개한 첫 번째 동영상은 지난 1월 16일 오후 4시쯤 촬영된 것으로, 어깨와 허벅지 부분에 새파랗게 멍이 든 C양이 알몸상태로 욕실 바닥에서 빨래하는 모습이 담겼다. 사망 당일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이미 C양의 건강은 크게 악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C양은 2월 8일 오전 9시 30분 양손을 드는 벌을 서는 과정에서 왼팔을 아예 들지 못했다. A씨 부부는 이후 C양을 욕실로 끌고 가 발을 빨랫줄로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머리를 물이 담긴 욕조에 여러 차례 강제로 넣었다가 빼는 등 물고문을 연상시키는 학대 행위로 C양을 숨지게 했다. 한편, 다섯 살의 딸에게 1년여 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지 않는 등 학대한 친모와 외할머니가 검찰에 넘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강원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대 등에 따르면 최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외할머니 A씨를 구속하고, 친모 B씨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두 사람은 지난 1년여 간 딸이자 손녀인 C(5)양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지 않아 심각한 영양실조에 이르게 하고, 윽박지르거나 때리는 등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원 신동원·춘천 조한종 기자 asadal@seoul.co.kr
  • 10살 조카 물고문 살해 이모부부, 개똥 먹게 한 학대 동영상 법정서 공개

    10살 조카 물고문 살해 이모부부, 개똥 먹게 한 학대 동영상 법정서 공개

    10살짜리 조카에게 귀신이 들렸다며 폭행하고 물고문을 해 숨지게 한 이모 부부가 사망 직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피해자를 욕실로 끌고 가 개의 똥을 억지로 먹게 하는 등 끔찍한 학대 동영상이 8일 공개됐다. 수원지법 형사15부(조휴옥 부장판사) 심리로 8일 열린 이 사건 3차 공판에서 수사검사인 박상용 검사는 이모 A(34·무속인)씨와 이모부 B(33·국악인)씨가 조카 C(10) 양을 학대하면서 직접 찍은 동영상 13건을 공개했다. 검찰은 1월16일부터 사망당일인 2월8일까지의 A씨 부부의 공소사실 중 대표적인 것을 추려 법정에서 재생하면서 혐의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심리를 진행했다. 동영상 중에는 비닐봉지 안에 들어가 개의 대변을 먹으라고 지시하는 등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정서적·신체적 학대 행위가 담겨 있었다. 이를 본 방청객들은 울음과 탄식을 자아냈다. 검찰이 공개한 첫 번째 동영상은 1월 16일 오후 4시쯤 촬영된 것으로, 어깨와 허벅지 부분에 새파랗게 멍이 든 C양이 알몸상태로 욕실 바닥에서 빨래하는 모습이 담겼다. 검찰은 이 같은 행위가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A씨 부부는 이튿날인 17일과 20일 불이 꺼진 거실에서 역시 알몸상태의 C양에게 양손을 들고 벌을 서도록 했다. 특히 1월 20일 오후 1시 26분쯤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A씨가 C양을 대형 비닐봉지 안에 들어가게 한 뒤 그 안에 있던 개의 대변을 먹도록 강요한다. 1월 24일 동영상 속 알몸상태의 C양은 걷기가 불편한 것처럼 뒤뚱거리고,욕실 안 비닐봉지를 정리하면서 허리를 숙이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하루 뒤 촬영한 사진의 C양은 두 눈을 아예 뜰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어 있다. 검찰은 A씨 부부가 C양에게 폭력을 가한 결과로 보이나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아 공소사실에는 포함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망 직전인 2월 7일 오전 6시 10분쯤 C양은 무릎을 꿇고 양손을 드는 벌을 받던 중 왼팔을 들지 못했다. 검찰은 늑골이 부러진 C양이 팔을 제대로 들지 못해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아 드는 식으로 버텨낸 것이라고 말했다. A씨 부부는 C양에게 “팔 똑바로 들어”라고 소리치고,이후에는 국민체조를 시키기도 했다. 사망 당일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이미 C양의 건강은 크게 악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C양은 2월 8일 오전 9시 30분 양손을 드는 벌을 서는 과정에서 왼팔을 아예 들지 못했다. 이어 오전 11시에는 A씨가 “이모부 쪽으로 와 봐”라고 말하자 C양이 힘겹게 방향을 트는 장면이 나왔다. 2분 뒤에는 C양이 거실에서 몇 걸음을 떼지 못하고 반려견집 울타리 쪽으로 넘어지는 모습도 포착됐다. A씨 부부는 이후 C양을 욕실로 끌고가 발을 빨랫줄로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머리를 물이 담긴 욕조에 여러 차례 강제로 넣었다가 빼는 등 물고문을 연상시키는 학대 행위로 C양을 숨지게 했다. A씨 부부는 C양을 학대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에 걸쳐 동영상과 사진으로 촬영했다. 검찰과 경찰은 이를 확실한 증거로 삼아 이들을 수사했다. A씨는 촬영 이유에 대해 “친모에게 보여주려고 했다”고 진술했으나,실제로 친모에게 전달한 동영상은 거의 없고,사진만 일부 전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사건 감정인은 ‘동영상 마지막 부분의 C양은 거의 죽을 만큼 구타를 당한 상황에서 물고문 행위를 몇 차례 당한 뒤 사망하는데,이런 점에 미뤄보면 병원에 갔더라도 소생 가능성이 낮았을 것’이라고 소견을 냈다”고 말했다. 일부 방청객들은 공판이 끝난 뒤 피고인들을 향해 “사형시켜라”라고 말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다음 재판은 내달 8일 열릴 예정이다. 숨진 C양과 함께 이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친부는 A씨와 B씨를 엄벌에 처해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한 상태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개 대변 먹으라” 조카 물고문 살인 이모부부, 엽기 학대영상 공개

    “개 대변 먹으라” 조카 물고문 살인 이모부부, 엽기 학대영상 공개

    10살짜리 조카를 폭행하고 강제로 욕조 물에 집어넣는 ‘물고문’을 해 숨지게 한 이모 부부가 피해자에게 개의 대변을 억지로 먹게 하는 등 끔찍하고 엽기적인 학대를 한 동영상들이 공개됐다. 수원지법 제15형사부(부장판사 조휴옥)는 8일 살인 및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A씨(34·여·무속인), B씨(33·국악인)에 대한 3차 공판을 열고 심리를 속행했다. 이날 검찰은 1월 16일부터 사망당일인 2월 8일까지의 학대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대표적인 동영상들을 재생하면서 이들의 혐의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심리를 진행했다. 총 14개의 동영상이 재생됐다. 법정에서 공개된 동영상은 14개지만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동영상과 검찰 측에서 확보한 동영상은 수십개에 달한다. 동영상 중에는 비닐봉지 안에 들어가 개의 대변을 먹으라고 지시하는 등 상상을 뛰어넘는 정서적·신체적 학대 학대 행위가 담긴 것도 있었다. A씨는 “입에 쏙! 입에 쏙!”이라며 “그거 왜 핥아먹어? 그거 아이스크림 아니야. 위 썩는다”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방청석에서는 울음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앞서 A씨 부부는 지난 2월8일 낮 12시35분쯤 경기 용인시 처인구 소재 한 아파트에서 조카인 C양의 전신을 플라스틱 재질 막대기 등으로 마구 때리고 욕조에 머리를 담그는 등 학대해 C양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 부부의 학대는 C양이 숨지기 두 달여 전부터 약 20차례 진행된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부부에 대한 4차 공판은 오는 7월1일에 열릴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수개월간 폭행·괴롭힘 시달린 학생...폐암 말기 아빠 걱정에 참았다

    수개월간 폭행·괴롭힘 시달린 학생...폐암 말기 아빠 걱정에 참았다

    럭비부 주장이 동급생 지속적 폭행실수하거나 같이 씻자는 것 거부하면 폭행“엄마 베트남 사람인 것 소문내겠다” 괴롭혀폐암 말기 아빠 걱정하며 참은 피해 학생학교 측 “조사 이뤄질 예정” 한 중학교 운동부 학생이 동급생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의 신고가 들어왔다. 8일 전남의 한 중학교와 해당 학교 피해 학생 등에 따르면, 교내 럭비부 2학년 A군은 럭비부 주장인 동급생 B군으로부터 지난 1월부터 폭행을 당했다. A군은 2학년이 되면서 럭비부에 가입했고, 지난 1월 겨울방학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난 무렵부터 B군의 폭행이 시작됐고, 이는 3월 초까지 지속됐다. 폭행은 운동할 때 실수하거나 같이 씻자는 것을 거부할 때마다 이뤄졌다. 샤워시설이 있는 럭비부 숙소에서 진공청소기를 분리한 막대 부분으로 엉덩이를 수차례 때렸다. B군은 A군의 초등학생 동생이 보는 앞에서도 A군을 3차례나 폭행했으며, 지난 4월 말과 5월 초에는 두 차례에 걸쳐 5만원을 빼앗기도 했다. A군이 빌려주기 싫다고 하면 B군은 “너네 엄마 베트남 사람이라고 친구들에게 소문내버리겠다”고 괴롭혔다. 또 B군은 A군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SNS 앱을 열어 A군과 엄마의 대화 중 엄마의 어눌한 한국말을 흉내내며 친구들에게 따라해 볼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폭행과 놀림이 계속됐지만 A군은 참을 수 밖에 없었다. B군의 누나와 형의 후배들이 보복을 해준다는 소문이 이미 교내에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A군의 부모는 현재 이혼한 상태이며, 아빠는 폐암 말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 중이다. 이에 아빠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으로 더 아파질까봐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해당 사실은 가해 학생 아버지의 친구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밝혀졌다. 폭력 내용을 접한 B군 아버지 친구는 A군의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아픈 A군의 아버지를 대신해 경기도에 거주하는 고모가 지난 1일 학교에 찾아와 학교 폭력을 신고했다. A군의 고모는 “할머니 밑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조카가 계속 맞고 다녔다는 말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물론, 경찰에도 신고하는 과정에서 다른 학생도 폭행을 당했다고 같이 신고하는 것으로 봐서 여러 명이 피해를 입은 것 같다”며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럭비 훈련이 끝나고 숙소에서 폭행이 발생해 그동안 파악을 못했다”면서 “가해학생 반 전체를 1층에서 2층으로 옮겨 분리조치했으며 조만간 도교육청 차원의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오거돈 강제추행 피해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입장문서 고통호소

    오거돈 강제추행 피해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입장문서 고통호소

    오거돈 전 부산시장 강제추행 사건 피해자가 “오거돈 범죄는 제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을뿐 아니라 정치혐오까지 불러일으켰다”며 “ 제2,제3의 권력형 성범죄자들을 막기위해서는 마땅한 선례가 만들어져야한다”며 엄벌을 요구했다. 피해자 A씨는 8일 오전 오 전 부산시장 결심공판을 앞두고 최후진술에서 현재의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입장문에서 “작년 4월 7일 오거돈 때문에 모든 생활이 엉망진창이 됐다”며 “그냥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숨 쉬는 게 민폐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며 최근 겪는 고통을 호소했다. A씨는 오 전 시장이 합의를 시도한 사실도 언급했다. 그는 “오 전 시장은 편지를 보내 합의를 시도했지만 합의할 생각은 앞으로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재판을 한 달여 앞두고 변호사가 오씨 측의 편지를 받았다”며 “1년 동안 어떤 사과 없이 온갖 2차 가해는 다 하다가 재판 한 달 앞두고 갑자기 보낸 편지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만,한편으로는 정말로 반성해서 내가 용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편지를 본 후에 정말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며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도 사과할 때는 무엇을 잘못했는지,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지,얼마나 뉘우치고 있는지,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반성하는데 저 사람의 편지에는 그런 기본적인 내용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 직후부터 합의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혔지만,오 측 변호사가 느닷없이 상담소로 찾아와 오거돈의 잘못을 사과하겠다고 했다” 며 “우리 가족에게도 올까봐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씨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예정된 결심공판은 오씨 측에서 양형 조사를 신청함에 따라 2주 후로 연기됐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통학 정류장이 MAM‘S 스테이션? 아들딸 데리러 간 아빠는 ‘맘’ 상해요

    통학 정류장이 MAM‘S 스테이션? 아들딸 데리러 간 아빠는 ‘맘’ 상해요

    지난 30일 경기 하남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카카오톡 채팅방이 소란스러웠다. 지난 1월 입주한 이 아파트 단지 안에 보호자가 아동과 함께 통학차량을 기다릴 수 있는 대기장소가 생겼는데 간판에 MAM´S STATION(맘스 스테이션) 이라는 간판이 붙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뜻하는 영단어 ‘맘(MOM)’을 잘못 표기한 것도 문제였지만 아이를 데리러가는 보호자가 엄마뿐이냐는 성차별 논란이 일었다. 신혼부부인 주민 최민형(가명·30)씨는 “엄마가 아닌 아빠나 조부모는 아이들의 등하교를 배웅하거나 마중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불쾌했다”고 말했다. 임차인대표회의는 “원래 이름을 ‘키즈스테이션’으로 정했는데 제작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며 “이름 변경을 요청했다”라고 주민들에게 알렸다. 건설사 측은 지난 1일 ‘맘스’(MAM’S) 부분을 떼고 ‘스테이션’(STATION)만 남겨뒀다. ‘아빠는 일하고 엄마는 자녀를 양육하는’ 고정적인 성 역할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의식은 커졌지만 보육 지원 서비스나 시설에는 여전히 성차별적 언어가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LH 위례 신혼희망타운은 홈페이지에 “신혼부부에게 필요한 육아·맞춤형 시설”이라며 ‘맘스카페’를 홍보하고 있다. 세종시교육청은 초등학교 1·2학년들의 학습을 돕는 자원봉사 ‘조이(JOY)맘’을 “‘조카를 사랑하는 이모의 마음’의 줄임말”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엄마와 아이의 마음이 편한”이라는 뜻의 ‘맘(MOM) 편한 놀이터’를 만들었다. 이들은 명칭에 성차별적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세종시교육청 관계자는 “조이맘에는 조카를 사랑하는 삼촌의 마음이라는 뜻도 있다”면서 “이름을 바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롯데 측은 “취약계층 산모나 워킹맘 등 다양한 여성을 지원한다는 취지를 담은 이름”이라면서 “여성의 역할을 육아로 한정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지난 2019년 6월 701명의 시민에게 1825건의 성평등 언어 개선안을 받은 결과, 맘스스테이션은 가장 먼저 바꿔야 할 성차별 단어로 꼽히기도 했다. 맘 대신 어린이, 키즈 등을 명칭에 사용하는 보육시설도 있다. 경기도가 지원하는 영유아 육아지원 기관은 ‘아이러브맘카페’ 대신 2019년부터 ‘아이사랑놀이터’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한 경기도 육아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맘’이라는 표현이 ‘엄마만 양육책임자’라고 비춰진다는 비판을 안다”면서도 “각 시군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아 이름을 바꾸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발바닥 다 닳은 등산화 한 켤레와 시인은 늘 사람을 향해 걸었다

    발바닥 다 닳은 등산화 한 켤레와 시인은 늘 사람을 향해 걸었다

    국토서시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곡성 동리산 계곡 작은 집에/ 등산화 한 켤레/ 업어가도 모를 수면 중이다/ 기골이 장대한 데다가/ 걸음 또한 느긋한 법이 없어/ 멀찌감치 앞서만 갔으니/ 주인 잘못 만나 고생이 역력하다/ 불의는 걷어차고/ 모종의 감시도 피해/ 산에라도 들어야지/ (중략)험준한 산을 넘어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울컥해지는/ 어느 시인의 등산화/ 스무 해째 잠에서 깨지 않고 있다’(황형철 시 ‘등산화 한 켤레’) 한 켤레의 등산화로 남은 시인이 있다. 아니 시인은 죽어서 전남 곡성 태안사 마당 어귀에 등산화 한 켤레를 남겼다. 대쪽 같은 성정으로 정의와 ‘사람’을 말하고, 많은 이들을 진한 형제애로 대했던 시인 죽형 조태일의 이야기다. 시인은 1941년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다른 형제들의 이름과는 달리 태안사(泰安寺)의 태(泰)자를 따서 ‘태일’이라는 큰 이름을 지어 주었다. 훗날에 큰스님이 되라는 뜻이었다. 이름의 일화에 관해 어느 인터뷰에서 시인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스님이 되지 못하고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나 보편적인 정서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말았지만 문학이나 종교가 다 같이 인간을 위한 것에 최종목표를 둔다고 볼 때, 아버지의 바람과 나의 길이 그렇게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소회했다. 태안사 바로 아래에서 살던 시인의 가족들은 1948년에 발발한 여순사건을 계기로 졸지에 광주로 내몰리게 된다. 가족 모두가 생계를 위해 밥벌이를 해야 했지만 유독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했던 조태일은 수재들만 진학한다는 서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가 고등학생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행상을 하던 큰누나의 한 살배기 조카가 병과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 것을 보고는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어린 조카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문학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시를 썼다는 그는 고3 때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다시 포도에서’가, 경희대 국문과 2학년 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아침 선박’이 당선됐다 ‘아침 바다는 예지에 번뜩이는 눈을 뜨고/ 끈기의 저쪽을 달리면서// 시대에 지치지 않고, 처절했던 동반의 때에/ 쓰러진 시간들을 하나씩 깨워 일으키고/ 저, 넘쳐나는 지평의 햇살을 보면/ 청명한 날에 잠깨는 출항.’(조태일 시 ‘아침 선박’ 중)1965년부터 조태일은 첫 시집 ‘아침 선박’을 필두로 두 번째 시집 ‘식칼론’과 세 번째 시집 ‘국토’를 출간했다. 그러나 신동엽 시인의 전집과 함께 ‘국토’가 신군부로부터 판매 금지 조치를 당했다. 1974년에 문인들과 함께 뜻을 모아 표현의 자유와 민주화 쟁취를 위해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위)를 창립한 이유다. 자실위 창단에 앞서 월간 시전문지인 ‘시인’을 창간해 김지하·양성우·김준태 시인을 발굴하는 데 앞장섰다. 그 시인들의 저항정신이 조태일 시인의 ‘시와 삶의 정의’와도 맞닿아 있었지만 이는 곧 당국으로부터 폐간조치를 당하는 빌미가 됐다. 저작들이 줄줄이 판금 되고, 잡지 ‘시인’이 폐간되자 조태일은 한동안 시를 세상에 내놓지 않는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조태일 ‘국토서시’) 이 시를 쓴 시인이 직접 겪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이야 오죽했을까. 조태일은 계엄해제를 촉구한 지식인 124명 서명에 참여하고 그해 5월 17일 신군부의 예비검속에 걸려 구속 수감됐다. 두 달 후엔 계엄법 및 포고령 위반으로 보통군법회의와 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그는 주변에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국가 보상금을 신청하라고 권했지만 일축했다고 한다. “그때 죽은 사람도 있어.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유공자 신청을 해. 다시는 내 앞에서 그런 이야기 꺼내지도 말어.” 그리하여 조태일의 사후에 지인들과 유족들이 자료를 모아서 사후 유공자 등록을 추진했고, 2000년 12월에 5·18 민주 유공자로 정식으로 등록돼 경기도 용인에 묻혀 있던 그의 유택을 광주 망월동 5·18 묘지로 이장했다.조태일은 옥고와 관련해 “살면서 정식 구속만 3번이었고, 경찰서를 드나든 것은 수십 차례”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독재 정권 아래 저항하다 구속된 문인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하며 리어카에 쌀 한 가마니를 실어 주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겨울이 되면 그 가족들의 추위마저 걱정해 남몰래 겨울 외투를 사입히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다 집의 생계를 책임져 주던 아내의 역할이 컸다며 자신의 발자취를 모두 다 아내의 은덕으로 돌렸다. 조태일의 시는 독재에 항거하는 모습과 민중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담은 것만이 아니라 ‘자연’에도 깊게 뿌리를 두고 있다. “현실 쪽으로 지나치게 촉수를 들이밀다 보니 자연이 삶의 보고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회고로 자연을 노래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현실과 잠시 거리를 두고자 시를 통해 자연으로 들어간 듯했지만 그때에도 그는 김준태 시인과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오페라 극본 ‘무등 둥둥’을 공동집필했다. 시인과 자실위,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초대 상임이사이기도 했지만 그는 ‘스승’이었다. 광주대 문예창작학과의 교수로 재직하며 초대 예술대학장을 지냈다. 매년 조태일시문학관에서 조태일 문학 축전을 개최하는 그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조태일 시인을 ‘스승’이라 부르며 애틋한 마음을 전한다. 시인 황형철은 “선생님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술자리 에피소드를 빼놓을 수가 없다. 수업이 끝나면 시작된 술자리는 저녁에서 밤으로 이어져 새벽 두어 시는 돼야 끝났는데 그 이후로 운동을 하자며 새벽 5시 광주대 정문으로 나오라는 엄포가 떨어지기 일쑤였다”고 전해왔다. 시인의 제자들은 늘 가난한 학생들의 밥과 술을 가장 먼저, 제일 많이 사주기를 서슴지 않는 스승에게 졸업 사은회 선물로 단골 호프집의 선불 영수증을 건넸다고도 한다. 그 스승의 그 제자들이라고나 해야 할까. 사은회 선물이랍시고 내민 영수증을 들고 스승과 제자가 시와 삶, 세상을 논하며 또 같은 자리에서 그 금액의 절반 가까이를 마셔 버렸다고 했다. 황 시인은 또 그것이 선생의 병세를 재촉한 것 같아 늘 마음에 걸린다고도 했다. 앓아누워 있으면서도 가난한 자취생에게 시집과 고등어를 사서 내미는 스승의 손이라니. 제주 조천에서 ‘시인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손세실리아 시인 역시도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시도, 시인의 집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전해왔다. 제자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웠고, 세상의 불의에는 대나무처럼 올곧았던 시인이 아직도 세상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은 까닭이 바로 이들의 대답이 아닐까.조태일시문학기념관의 이해영 관장은 혼자 매일 이곳 산문의 문을 여닫는 것이 하나의 수행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태안사와 시문학관의 대문이 같다. 일주문을 시문학관의 대문으로 쓰고 있는 셈이다. 관장은 눈발을 뚫고, 비바람을 맞으며 조태일 시인의 발자취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단 하루도 이곳의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있는 동안은 끝내 이 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 힘주어 말했다. 시문학관에는 늘 태안사에 묻히기를 희망했다던 시인의 유택 대신 생전의 그가 지니고 썼던 모든 것들을 옮겨다 놨다. 주민등록증과 수첩, 장서들을 비롯해 그가 늘 신고 다녔던 등산화까지도 그곳에 자리했다. 치열한 삶과 시에 관해 가졌던 태도들이 그가 남긴 것들로 대변되는 공간,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오롯하게 모여 있는 장소다.맨몸으로 있는 힘껏 ‘국토’를 돌아보느라 금세 낡아버린 등산화와 그의 시들은 여전히 세상의 빛으로 누군가의 눈을 밝힌다. 이것은 스승이자 시인이었던 한 사람이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발자국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바로 우리가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꼭 곡성의 조태일시문학관에 들러 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가 이은선
  • 文 임기 마지막 현충일 추념식…기념패에 ‘다신 전쟁 비극 없다’

    文 임기 마지막 현충일 추념식…기념패에 ‘다신 전쟁 비극 없다’

    주제는 ‘당신을 기억합니다’96세 미군 참전용사 영상 메시지화살머리고지 발굴 나침반 이용 기념패 제작“기념패, 평화와 번영 상징…참전 노고 표현”문재인 대통령이 6일 임기 중 마지막 현충원 추념식에 참석했다. 대북 관계 개선에 주력하는 한편 해마다 추념식에 참석해온 문 대통령은 현충일 기념패에 ‘이 땅에 다시 전쟁의 비극은 없습니다’라는 친필 문구를 새겨 넣었다. 9·19 남북군사합의 이후 전방 철책제거 중 나온 철조망·나침반으로 기념패 “국회 정상의 현충원 참배시 기념 물품 기증 절차 정례화 예정” 국가보훈처는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6회 현충일 추념식’을 거행했다. 이날 추념식은 문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정부·국회·군·18개 보훈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식 참석은 취임 후 이번이 다섯 번째로, 임기 중 해마다 참석했다. 올해 추념식은 서울현충원-대전현충원-유엔기념공원(부산)이 3원으로 연결됐다. 기념식에서는 미군 공수부대원으로서 6·25 전쟁에 참전해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잃은 윌리엄 빌 웨버(96) 대령의 영상 메시지와 6·25 참전유공자 김재세(94) 선생의 편지 낭독이 이어졌다. 정부는 이번 추념식을 위해 9·19 남북 군사합의 이후 전방 철책 제거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철조망과 화살머리고지 전투 지역에서 발굴한 나침반을 활용해 기념패를 제작했다. 기념패에는 ‘이 땅에 다시 전쟁의 비극은 없습니다’라는 문 대통령의 친필 문구가 각인됐다. 이 기념패는 서울현충원 호국전시관 2층에 전시된다. 정부는 “기념패는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고, 참전의 고귀한 희생과 노고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번 추념식을 계기로 앞으로 국회 정상의 현충원 참배할 경우 기념 물품을 기증받는 절차를 정례화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현충문 근무 교대식’ 첫선…최고 예우 차원 이번 추념식 식전행사에서는 ‘현충문 근무 교대식’이 처음으로 펼쳐졌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 대한 최고의 예우 차원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것이라고 정부 측은 설명했다. 이후 개식 선언 및 조기 게양, 사이렌 묵념, 국민의례, 헌화·분향 및 묵념, 편지 낭독, 국가유공자 증서 수여, 문 대통령의 추념사, ‘현충의 노래’ 제창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서울현충원에서는 국방부 의장대가, 유엔기념공원에서는 국방부 및 유엔사령부 의장대가 각각 태극기를 조기 게양했고, 오전 10시 정각에 추념식 시작을 알리는 조포 21발이 발사됐다. 동시에 전국에 사이렌이 울리면서 1분간 묵념이 이뤄졌다. 이어 국가유공자이자 전 국가대표 패럴림픽 탁구 선수 안종대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사업총괄본부장이 국기에 대한 경례문을 낭독했고, 6·25 참전유공자 후손이 묵념곡을 트럼펫으로 연주했다. 이날 6·25 참전유공자로 헌신한 이진상, 안선씨와 강원 인제 서화지구에서 전사한 고(故) 조창식 씨의 조카에게 국가유공자 증서가 수여됐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시를 영화로 만든 ‘정말 먼 곳’ 피렌체 한국영화제 심사위원상

    시를 영화로 만든 ‘정말 먼 곳’ 피렌체 한국영화제 심사위원상

    박은지 시인의 201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정말 먼 곳’을 시나리오에 담은 영화 ‘정말 먼 곳’(박근영 감독)이 최근 제19회 피렌체 한국영화제 심사위원상 인디펜던트 부문에서 수상했다. 지난 3월 개봉한 ‘정말 먼 곳’은 강원도 화천에 자리 잡은 한 유사 가족의 삶을 그렸다. 서울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지친 진우(강길우 분)는 딸처럼 여기는 조카 설이와 터전을 옮겼다. 양떼 목장에서 일하는 진우의 삶이 안정될 즈음, 그의 연인인 시인 현민(홍경 분)이 화천으로 이주하고, 설이 생모인 여동생 은영(이상희 분)이 갑작스레 찾아오면서 일상에 큰 파장이 온다.강길우, 홍경, 이상희 그리고 기주봉, 기도영, 김시하, 최금순까지 주조연 배우들의 앙상블, 아름다운 화천의 풍경과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배우들의 모습을 담은 미장센, 박근영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호평 받았다. 박근영 감독은 지난 3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학동기인 박 시인의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정말 먼 곳’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영화는 말보다 이미지로 감흥을 주는 순간이 있어 시와 닮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가 소외되거나 각자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우화처럼 읽히길 바랐고, 성 소수자와 사회와의 거리감, 개인과 사회와의 거리감, 우리 삶 속의 거리감을 녹여 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영화제 측은 “영화 ‘정말 먼 곳’은 인간 사회가 수 세기 동안 가져온 관계의 형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삶의 순환과 서로 다른 본성의 공존을 그려낸 이 영화의 궁극적 의미는 존재의 균형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를, 탄생과 삶과 죽음 앞에서 이 우주는 모두 같은 선상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전에 이 상을 받은 한국영화는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 박석영 감독의 ‘스틸 플라워’ 등이 있다.한편 ‘피렌체 한국영화제’는 젊고 유망한 한국영화 감독들을 이탈리아에 소개하기 위해 시작된 영화제로, 한국과 이탈리아 문화교류의 장을 만들어 왔다. ‘정말 먼 곳’은 현재 IPTV, 홈초이스, 구글플레이, WAVVE, TVING, 카카오페이지, 네이버시리즈on, 곰TV, 씨네폭스, SKY TV, 웹하드 등 안방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청춘맨숀 모던보이와 ‘삐-루 ’ 한 잔, 구상·이중섭과 노포 속 추억 한 잔

    청춘맨숀 모던보이와 ‘삐-루 ’ 한 잔, 구상·이중섭과 노포 속 추억 한 잔

    지난주에 대구를 찾았다. 광역시인 대구에는 많은 명소가 있지만 오로지 ‘힙성로’를 둘러보기 위함이다. 서울에 힙지로(을지로)가 있다면 대구에는 힙성로(북성로)가 있다. 요즘 대구 시민과 관광객에게 인기몰이 중인 북성로 일대를 부르는 별칭이다. 철가루 휘날리던 공구 상가와 토끼굴 같은 한옥 골목이 있던 낡은 원도심이 젊은 셰프와 바리스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트렌드 중심 거리로 탈바꿈했다.●북성로 공업사 골목… 기술·예술 복합창작 공간으로 탈바꿈 망치나 너트, 혹은 십자와 일자 드라이버에다 드릴까지 갈아 낄 수 있는 근사한 전동공구를 사려고 간 것은 물론 아니다. 쓸 일도 없거니와 무척 화가 났을 때 외엔 이런 걸 찾지도 않는다. 북성로를 찾은 이유는 ‘이곳에 오면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귀에 낯선 이들이 많을 테니 우선 북성로(北城路)가 뭔지 알아보자. 북성로는 대구 한복판의 옛 대구읍성 북쪽 거리를 이른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상인들이 많이 들어와 상권을 형성하며 순식간에 커졌다. 이 지역을 모토마치(元町)라 불렀다. 혼마치(本町)로 경계를 이룬 길 건너 포정동에도 일본인 거류민이 몰려왔다. 옛 대구읍성이 허물어진 자리에 새로운 중심가 모토마치가 조성되면서 일본인들에 의해 꽤 분주한 상권이 생겨났다. 근대식 극장, 식당, 다방 등 최신 상업 시설이 들어와 거리를 채웠다. 일본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 조선 1호점도 이곳에 들어섰다. 백화점엔 조선 팔도에 보기 드문 엘리베이터도 있었다.조선인도 그 사이를 비집고 점포를 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도 이곳에 국수 등 식료품을 팔던 삼성상회를 열며 창업했다. 지금도 그 자리가 보존돼 있다. 늘 돈이 돌던 곳이라 신기한 현대 물품들이 선을 보인 곳이기도 하다. 각지에서 ‘모던보이’와 ‘신여성’이 모여들며 커피와 ‘삐-루’, 댄스 등 신문물을 즐겼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스타필드 1호점에다 현대명품아울렛, 홍대 클럽가, 이태원 먹자골목이 동시에 한곳에 생긴 것이다. 우현서루 같은 민족교육기관도 들어섰다. 당시 대구에서 활동하던 시인, 소설가 등 문인과 화가, 음악가 등 예술인들도 향촌동과 북성로 일대에 모여 전시회나 발표회를 여는 등 문예의 요람이 되기도 했다. 신문 기사도 쓰고 자기 글도 쓰는 언론인도 모였다. 마치 19세기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거리 같았다. 국내 최초 음악감상실인 ‘녹향’(현 대구문학관 지하1층)도 광복 직후인 1946년 이곳에 자리를 틀었다. 구하기 힘든 음반을 들여다 놓고 고급 축음기로 들려줬다. 1950년대 북성로에 공구와 소재, 기계부품 가게가 생겨난 것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자를 팔던 거리에서 유래됐다. 이후 대구에 섬유와 식품산업이 발전하며 관련 부품과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지창 역할을 담당했다. 자본과 기술이 서울을 넘볼 정도였다. 북성로는 대한민국 산업을 대표하는 공업 거리가 됐고, 한때 “마음만 먹으면 탱크도 만들어 낸다”는 말이 돌았다. 그 기술이 지금은 예술이 됐다. 공구골목 사이로 들어가면 북성로기술예술융합소 ‘모루’가 있다. 장인의 경지에 오른 기술인과 예술인들의 컬래버레이션(이종협업)과 기술 전승을 목적으로 세운 공간이다. 원래 ‘달방’(월세방)을 하던 쪽방여관 건물을 ‘기술×예술’ 복합창작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북성로의 정체성을 여실히 내보이는 곳이다. 현재는 북성로 1가와 바로 붙은 향촌동이나 교동, 서성로 일대까지 뭉뚱그려 ‘힙성로’라 부른다. MZ세대에겐 좁은 골목길과 낮은 건물,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세련된 카페와 갤러리, 공방, 베이커리, 바(Bar)가 기존 노포와 함께 공존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힙’(hip)했던 덕이다. 세련되고 유행에 민감하다는 ‘힙’이다. ●철물점 옆 모퉁이 카페 … 젊은 작가 모이는 문화놀이터 옛 북성로는 ‘아재들’의 거리였다. 평균연령이 마흔을 족히 넘었고 성비는 8대2 정도로 중년 남성 비율이 높았다. 서울로 따지면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와 닮아 있었다. 1980년대 초반, 길거리에서 눈만 마주쳐도 싸우자고 덤벼들던 ‘춘추전국’의 시대엔 아마 발걸음조차 딛기 꺼리던 곳이었을 게 분명하다.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을 끼고 돌면 온통 철물점이다. 가게마다 트럭들이 ‘스뎅’(스테인리스) 봉과 파이프를 내리고 모터를 싣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풍경이지만 수창초등학교로 향한 좁은 골목을 들어서니 작은 카메라를 든 젊은 남녀가 셀피를 찍고 있다. 벽면에는 알록달록 벽화가 그려졌고 얼핏 봐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성들도 두셋 돌아다니고 있다. 달달한 블루베리 요거트를 마실 수 있는 모퉁이 카페도 있다. 북성로엔 이처럼 구(舊)와 신(新)이 공존한다. 영신(迎新)하긴 했어도 아직 송구(送舊)하진 않았다. 북성로의 수십년 역사 중 아주 생경한 풍경일 테지만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갑자기 ‘물’이 바뀐 것은 아니다. 1976년부터 전매청 연초제조창 직원 관사로 사용됐던 수창청춘맨숀은 2016년 문체부 도심 재생 사업에 선정되며 환골탈태했다. 낡은 아파트 숙소의 외벽은 그대로 살리면서 내부를 ‘문화 놀이터’로 만들었다. ‘수창청춘맨숀’으로 명명한 뒤 젊은 작가들이 입주하고 저마다 자신의 창의력을 뽐내는 무대이자 갤러리가 됐다. 얼마 전 유엔이 발표한 연령 구분에 따르면 65세(그것도 만으로)까지 청년이니, 누구든 청춘맨숀에 들러 쉬어 간대도 어색하지 않을 선택이다. 수창청춘맨숀에서 8월 26일까지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를 전시한다. 이달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 거리극, 창작국악, 낭독뮤지컬, 다원예술 등을 소재로 수창청춘극장도 열린다. 일본인 상권이 장악한 북성로였지만, 항일애국지사 150명을 배출한 사학 우현서루(友弦書樓)도 있었다. 현재 북성로 대구은행 자리가 바로 우현서루다. 우현서루는 을사늑약 체결 직전인 1904년 이상화 시인의 조부 이동진 선생이 창설한 사학이다. 큰아들 소남 이일우 선생은 1만여권의 서적을 수입해 들여 놓고 매년 젊은 지식인을 뽑아 먹이고 재워 가며 가르쳤다. 1911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쇄될 때까지 구국 운동의 요람 역할을 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은 소남의 조카다. 이곳을 거쳐 간 독립지사들의 이름만 들어도 놀란다. 박은식(상해 임시정부 대통령), 이동휘(임시정부 국무총리), 장지연(황성신문 주필), 여운형(조선건국동맹), 김지섭(이중교 폭탄투척 지사) 등이다. 폐쇄 이후엔 훗날 대륜고등학교의 뿌리가 된 교남학원이 들어섰는데 교사가 이상화, 학생이 이육사였다. 건물 밖에 우현서루 이미지를 형상화해 놓았고. 내부에는 유물과 관련자료를 전시하고 있다.●이중섭 드나들던 백록다방 재현한 향촌문화관 북성로에서 중앙로 쪽으로 길을 건너면 오른쪽으로는 포정동, 왼쪽으로는 향촌동이 나온다. 서울에서 충무로나 종로 일부까지 ‘힙지로’라 부르듯, 보통은 포정동, 향촌동, 교동 일부까지 묶어서 ‘힙성로’라 지칭한다. 북성로에 큼직큼직한 산업시설이 많았다면 향촌동 쪽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자잘한 상업시설이 즐비했다. 꽃자리 다방 등 다방과 술집, 여인숙과 골목 사이엔 주택도 많은 데다 늘 대구역을 오가는 이들이 많아 향촌동 좁은 골목이 인산인해를 이뤘다.현재 힙성로의 힙한 매력은 어쩌면 70여년 전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동성로와 수성못 주변에 ‘빼앗긴 상권에도 봄은 다시 왔으니까’ 말이다. 향촌문화관에 가면 그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당시 ‘리즈’ 시절을 보냈던 향촌동 풍경이 여러 전시물 형태로 있다. 대구 최초 대중교통 부영버스가 거리에 서 있고 오랜 대폿집과 막걸리집이 있다. 피란을 온 이중섭이 매일같이 드나들며 담배 쌈지에 그림을 그렸던 백록다방(현 갤러리모델 자리), 호수다방, 화월여관(현재 판코리아 성인 콜라텍) 등도 디오라마와 포토존으로 현실 속에 재현해 놓았다. 3, 4층은 대구문학관이다. 시인 구상을 비롯해 현진건, 조지훈, 박두진 등이 대구 향촌동에서 서로 교분을 쌓으며 지냈다. 신상옥, 최은희 등 영화인도 이곳에 있었다. 향촌동 술집 대지바(현재 공사 중)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시구를 나누고, 르네상스 음악감상실(현 판코리아 식당)에서 예술혼을 양육했다. 식민침탈 중에도, 동족상잔의 전쟁 중에도 향촌동은 너른 가슴으로 문학을 잉태하고 예술을 생산했다. “함께 읽고 더불어 크게 웃어주게나.” 향촌동에 살던 시인 구상은 이윤수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현재 대구문학관은 대구에서 활동하던 문인들의 육필 원고를 전시 중이다.●‘초토의 시’ 출판기념회 열렸던 꽃자리 다방 1930년대부터 대구 원도심 역할을 톡톡히 해 온 것이 현대에 들어선 오히려 개발을 더디게 했다. 너른 부지가 필요했던 개발 세력은 고불고불한 골목에 낡은 왜식 한옥과 초라한 저층 건물 투성이였던 향촌동과 북성로를 외면했던 것이다. 경상감영 공원이 위치한 포정동부터 향촌문화관까지 향촌동 골목을 둘러보면 화려했던 당시의 영화가 낡은 건물 사이로 투영돼 보인다. 대보백화점, 무궁화백화점 등 당시로선 으리으리한 중대형 유통 시설에다 양화점, 양장점 골목까지 이어지며 ‘대구 멋쟁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맛 좋은 식당도 즐비했다. 그 유명한 뭉티기(생고기 육회)도 이곳에서 시작했다. 생고기며 불고기, 국숫집, 찌짐(전)집, 만두집, 냉면집, 곰탕집, 돼지국밥집 등이 향촌동 나들이를 나온 손님들로 긴 줄을 드리웠다. 저렴한 여인숙과 여관, 호텔 등도 곳곳을 채우며 영남 중심도시 대구의 숙박 기능을 담당했다. 극장 만경관 옆 사보이호텔은 1980년대 이 지역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한때 목욕탕이 딸린 여관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새 단장을 하고 다시 그 이름을 지켜 오고 있다. 덕분에 당시 향촌동 식당가의 불빛은 늦은 밤까지 이어져 대구의 뜨거운 밤을 밝히기도 했으나 1980년대 이후 동성로와 반월당, 수성못 인근으로 대구 중심 상권이 옮겨 가면서 ‘구 시내’로 몰락하는 듯했다.향촌동의 이미지는 2010년에 들어 비로소 재해석됐다. 골목 사이로 젊은 예술가들이 들어왔고 노회한 도시를 지키던 터주들은 이를 반겼다. 수제화 골목에는 달달한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커리와 향긋한 커피를 내리는 커피숍, 북카페 등이 들어왔다. 20·30대 시민과 관광객이 너도나도 향촌동을 찾기 시작했다.공구거리 북성로의 정체성을 재해석해 너트와 스패너 모양 마들렌을 구워 파는 북성로 공구빵(베이커리09)도, 예스러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한옥 카페 퍼센트(%) 14-3, 직접 볶아 내린 커피가 맛있는 카페 향촌도 명소다. 예전 구상의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자리를 루프톱 카페로 바꾼 꽃자리 다방, 골목 안 여인숙을 개조한 카페 ‘대화의 장’ 등은 금세 인스타그램 성지로 떠올랐다. 좋은 공간이 하도 많아 힙성로 카페 투어를 다니려면 시애틀 못잖게 ‘잠 못 드는 밤’을 각오해야 한다.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저렴한 가격에 세련되고 단단한 솜씨의 수제 구두를 살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며 반세기 골목을 지켜 온 구둣방도 덩달아 매출이 올랐다. 공방이 인기를 끌며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한국의 밀라노’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한밤에 북적이는 노포… 3000원에 맛보는 석쇠 불고기 원래 여름에 뜨거운 대구라지만 요즘 대구의 밤도 뜨겁다. 힙성로에 한옥이나 옛 여인숙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와 부티크 호텔이 들어서며 맛난 음식에 술 한 잔 걸치는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고 가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같은 힙성로 구역 내에도 권역은 조금 다르다. 교동 쪽에는 새로 생겨난 현대식 바나 카페가 많고 중앙로를 건너오면 오래된 식당과 주점이 많다.원래부터 유명했던 ‘북성로 돼지불고기’와 ‘북성로 우동’을 필두로, 50년 이상 자리를 지켜 온 노포들에 젊은이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60년 전부터 생고기를 팔던 대폿집 ‘너구리’는 ‘옛날국수’와 합치며 낮엔 국수, 밤에는 술 손님을 받는데 가격이 아주 저렴하다. 넉넉한 양은 냄비 국수(현지에선 국시) 한 그릇에 단돈 2000원. 오리지널 경상도식 진한 멸치육수 국수를 맛볼 수 있다. 3000원을 더 내면 돼지고기를 얇게 저며 간장 양념에 재워 구워 낸 ‘석쇠 불고기’를 ‘반 인분’ 시켜 먹을 수 있다. 반 인분이라니, 얼마나 합리적인가. 무조건 2인분을 시켜야 되는 집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게다가 소주 반 병도 팔면서 싫은 기색이 없다. 이것만으로도 힙성로의 경쟁력은 충분하지 않은가. 이 일대는 죄다 노포다. 모두가 상상 이상으로 저렴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성식당을 찾았다. 한 입 크기로 얇게 저며 내 불맛에 충실한 석쇠갈비와 쿰쿰한 된장찌개와 함께 마지막 금복주 한 잔의 얼큰함을 즐긴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 70여년 전 어느 밤 이 변함없는 골목길을, 화가 이중섭도 시인 구상도 역시 비틀대며 걷고 있었을 것이라 가만 상상해 보니, 무척이나 영광이며 감회가 새롭다. 왜 낡아빠진 원도심 따위가 내게 이토록 확고한 여행 동기를 부여했는지 이제서야 이해할 것 같다. 글 사진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힙성로 여행 체크리스트 (지역번호 053) 어떻게 가지?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 역에서 내리면 된다. 2, 3호선 청라언덕 역이나 1, 2호선 반월당 역에서 내려도 그리 멀지 않다. 버스는 대구콘서트하우스 앞이나 경상감영 앞 등의 노선을 타면 된다. 동대구역에선 401번, 909번, 708번, 급행1번 등이 경상감영공원 앞까지 간다. 뭘 먹지? 이 지역에는 노포들이 많다. 국수와 만두는 꼭 챙겨 먹어야 한다. 뭉티기(생고기)를 즐겨 보는 것도 좋다. 대구식 양념장이 색다르다. 좀더 새로운 스타일을 원한다면 동성로로 넘어가면 된다. 다락방만두는 찐교스, 군만두 등이 맛있고 저렴하다. 마산식당은 씨락육국수(시레기 육개장국수)와 돼지국밥이 유명하다. 한성식당은 석쇠갈비와 오뎅탕으로 술안주하기 좋은 곳. 된장찌개도 일품이다. 옛날국수(너구리 본점)는 2000원이란 황송한 가격에 멸치육수 국수를 맛볼 수 있다. 저녁에는 생고기와 간처녑을 먹으러 많이 찾는다. 상주식당은 추어탕으로 유명한 70년 동성로 노포다. 배추를 넣고 시원하게 끓여 낸다. 어디서 잘까? 여인숙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모텔도 많지만 조금 낙후된 편. 도보로 이동하기 좋은 리버틴호텔도 있다. 간단한 조식도 준다. 헤븐스토리호텔은 대구역과 가깝다. 중앙로 역과 가까운 2월호텔(동성로점)은 진골목, 약령시 등에 접근하기 편리하다.
  • 조국 “허위사실 보도” 손배소, 언론사들 “믿을 만한 이유 有”

    조국 “허위사실 보도” 손배소, 언론사들 “믿을 만한 이유 有”

    조국(56) 전 법무부 장관이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허위사실을 보도했다며 언론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 3건이 2일 열렸다. 조 전 장관 측은 “허위 사실이 적시된 기사들로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했지만, 언론사들은 “보도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맞섰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김종민)는 이날 조 전 장관 일가가 세계일보와 조선일보, 채널A·TV조선 기자 등을 상대로 낸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들을 잇따라 진행했다. 조 전 장관 측이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은 모두 7억원이다. 조 전 장관 등 당사자들은 출석하지 않았으며 대리인이 법정에 출석했다. 조 전 장관 측은 세계일보가 2019년 9월 조 전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59) 동양대 교수가 사모펀드 운용사 관계자들의 해외도피를 지시했다는 내용을 단독 보도한 것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허위사실임이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등의 진술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 측은 이에 대해 “정 교수의 1심 판결 내용과 실제 당사자들이 출국했다가 입국해 수사를 받은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기사는 진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반박했다. 조선일보의 경우 지난해 8월 조 전 장관의 딸 조씨가 세브란스 병원 피부과에 일방적으로 찾아가 인턴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게 문제가 됐다. 조선일보는 보도 이튿날 “이 기사는 사실관계 확인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부정확한 기사였다”며 정정보도를 냈으나, 조 전 장관은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그 상급자를 고소함과 동시에 민사소송을 함께 냈다. 조 전 장관 측은 “조 전 장관의 딸은 공인도, 공적인 관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그럼에도 기사를 게재한 건 원고들의 사생활을 들춰내 조국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측은 이에 대해 “보도 내용의 진실성 못지 않게 취재에 어떤 노력을 했는지, 기자로서 보도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사정이 있었는지가 판단돼야 한다”며 청구 기각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형사사건이 최근 무혐의로 종결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채널A·TV조선은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이던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에 방문해 송철호 당시 울산시장 후보(현 울산시장) 지지를 부탁했다는 내용을 보도해 피소됐다. 조 전 장관 측은 “당시 울산에 방문한 일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채널A·TV조선 측은 “기사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사정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언론조정신청 때 조 전 장관 측에 울산에 가지 않았다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해달라고 했는데도 묵묵부답이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대통령 비서실에 민정수석의 울산 방문 사실에 대한 사실조회와 폐쇄회로(CC)TV·자동차 출입기록 등 방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도록 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7월 21일 열릴 예정이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마지막 황제 푸이와 다섯 여인

    마지막 황제 푸이와 다섯 여인

    중국에서 황제는 진시황 이래 2100여년간 약 500명에 이른다. ‘마지막 황제 푸이’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청나라 선통제는 청나라 뿐 아니라 중국 역사의 마지막 황제다. 푸이에 관한 책은 국내에도 여러 종 나와 있다. 다만 그가 세 살에 황제에 오르기 전부터 그의 사후 현재 허베이성 이현의 공원묘지에 잠들기까지를 소개하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더욱이 푸이 자신의 자서전 그리고 황제에서 죄수, 평민으로 바뀐 굴곡의 주요 고비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가족과 측근, 태감(환관) 등의 눈을 통해 본 푸이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은 것은 없다.푸이는 전범으로 수감되어 있을 때부터 특사를 받아 나온 직후 자신의 과거 행적을 정리한 자서전 ‘나의 전반생’을 남겼다. 그의 황후와 비, 귀인 그리고 평민으로 만난 부인 등 다섯 여인 중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부인은 푸이와의 궁정 및 결혼 생활, 이혼 등의 경험을 상세히 기록했다. 여기에 가장 오랫동안 푸이를 그림자처럼 동행했던 동생 푸제, 창춘 위만황궁 시절 들어가 푸이와 함께 해 전쟁 포로로 잡혀갔고 소련 극동 옥중에서 ‘황태자’ 책봉까지 받은 조카 위옌, 푸이의 숙부와 황후 완룽의 동생 룬치, 청이 망한 뒤 푸이의 자금성 소조정 시절 푸이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서구화’시킨 영국인 스승 레지널드 존스턴 등이 가까이에서 본 푸이의 진면목을 전한다. 특히 푸이가 자금성에서 쫓겨나기 직전 궁에 들어간 뒤 푸이 곁에서 33년간을 있었던 환관(태감) 리궈슝의 증언은 ‘난폭한 황제질을 했던 푸이’를 고발한다. 저자는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푸이가 태어난 순친왕부, 황제로 살았던 자금성, 톈진으로 가기 전 머물렀던 베이징의 외교단지 거리 둥자오민샹, 톈진에서 7년을 보냈던 청나라 고관들의 별장 장위안과 징위안, 창춘의 위만황궁, 그의 3번째 황제 퇴위 발표 장소인 지린성 압록강변 마을 다리즈거우, 베이징 혁명공원묘지에서 푸이의 유골이 이장 안치된 허베이성의 화룽능원묘지 등을 둘러보며 지금 중국 땅 곳곳에 남아있는 푸이의 흔적을 전한다. 1967년 ‘마지막 황제’ 푸이가 사망했으나 중국에서 황제의 잔영이 사라지지 않는다. 2012년 11월 시진핑 총서기가 집권한 뒤 2년 뒤 시사주간 타임은 ‘Emperor Xi(시 황제)’라는 커버스토리 기사를 실었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 해리슨 솔즈베리는 1993년 ‘새로운 황제들’이라는 책에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평등을 이념으로 한 신중국에서 사실상 새로운 황제로 부활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황제의 시대’는 끝났을까. 이 책은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한 저자가 ‘먼저 마지막 황제가 어떻게 왔다 갔는지 보자’하고 찾아 나선 기록이다. 푸이가 살았던 시기 중국 대륙은 왕조와 체제가 완전히 바뀐 격변기였다. 청이 신해혁명으로 망하고 중화민국이 들어섰지만 항일 전쟁과 국공 내전이 동시에 전개됐다. 동북에는 10여 년간 일본 괴뢰 만주국이 세워졌다. 장제스를 몰아내고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신중국이 들어섰다. 중국에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불기 시작할 때 푸이는 숨졌다. 시대의 격랑이 푸이 60년 굴곡의 역사에 겹겹이 투영되어 있다. 1부 ‘황혼의 제국’은 청말의 여걸 실세 권력자 자희 태후가 왜 세 살배기 푸이를 황제에 올렸는지, 청나라가 망했는데도 자금성 울타리 안에서 황제 노릇을 했던 푸이 그리고 결국 군벌 전쟁 과정에서 쫓겨나는 과정까지를 다룬다. 2부 ‘괴뢰 황제’는 푸이가 자신을 대륙 침략을 도구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 검은 속내를 꿰뚫지 못하고 미망에 빠져 괴뢰 황제 노릇을 했던 죄악의 기록이다. 그리고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한 뒤 소련 극동과 신중국의 감옥에서 14년간 죄수 생활을 하며 황제 물을 빼고 개조되는 모습을 전한다. 제3부 ‘베이징 시민 푸이’는 1급 전범 푸이가 베이징 시민으로 돌아와 평민으로 살다간 8년 및 그가 떠난 후 마지막 부인의 삶을 전한다. 푸이는 ‘황제도 포용한 체제’라는 마오쩌둥의 구상에 따라 특사를 받아 석방된 뒤 전국정협 위원까지 지냈다.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반혁명 분자로 몰렸지만 마오와 저우언라이 총리의 보호 덕에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다. 푸이는 일찍이 황제에서 퇴위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사망해 그의 유골은 청나라 황제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청서릉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담장 밖 공원묘지에 머물게 된 사연을 전한다. 부록의 푸이 ‘나의 자서전’ 서문에 대해 저자는 ‘죽을죄를 지었다 살아난 퇴임 황제의 반성문’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나 하는 마음으로 읽어 볼 만하다’고 권한다. 반성문은 특사를 받아서 나온 것에 대한 감사와 괴뢰 황제로서의 죄악 등을 반성하고, 자신을 개조시켜 포용한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찬양 등을 담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광장] 586 아재 권력, ‘이준석의 맛’ 어떠신가/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586 아재 권력, ‘이준석의 맛’ 어떠신가/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이준석을 놓고 누구는 돌풍이라 하고 누구는 현상이라 한다. 돌풍이 지나가면 깨진 장독이나 수습하면 그만이다. 현상은 다르다. 달라지지 않을 것 같던 사회 인식의 토양에 변화 기제로 작동한다. 서른여섯 살의 보수당 대표가 나올지 모르는 한국 정당사의 이변. 지금 누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야 할까. 아들뻘, 조카뻘한테 밀리는 주호영, 나경원 같은 야당 중진? 재등판 타이밍을 찾던 아스팔트 보수? 천만에. 뒤통수 뜨끔할 쪽은 여당의 586 핵심부다. 보수 판갈이나 하라고 이준석 신드롬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청년층의 분노와 각성의 결과만은 더더욱 아니다. 보수에 환멸을 느꼈던 사람들은 이준석이 누군지 그동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신상을 역주행하면서 관심을 몰아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낡고 늙어 병든 보수판의 물갈이는 지렛대일 뿐. 최종 목표는 정책 능력과 비전에 낙제점을 받은 집권당의 기득권을 꺾어 보라는 것. 이준석의 용도는 당구의 스리쿠션 같은 것이다. 재보궐선거가 끝나고 이준석은 20대 남성 표심을 놓고 페미 논쟁을 벌였다. 신문 지상에서 투고 형식의 공개 논쟁을 주고받은 상대는 파워 논객 진중권. 어느 주장이 합당한지 이 대목에선 중요치 않다. 진중권과의 논리전을 감당하는 맷집만으로도 사람들 눈에는 진풍경. 윤희숙 의원이 나섰다. 지적 콘텐츠가 내장된 ‘희귀종’ 초선인 그가 “논쟁이 더 구체적이고 건설적이었으면 좋겠다”는 페이스북 글로 중재했다. 그게 뭐라고, 고작 그 정도의 풍경에도 사람들 마음이 흔들린다. 어쩌다 이 지경일까. 진영 이익이나 프레임 논리와 무관한 상식선의 가치 논쟁을 정치권에서 못 본 지 백만 년이다. 집권당 주변에서는 근원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됐다. 원팀의 강요 아래 한목소리를 내지 않는 내부자는 무슨 수를 써서든 도태시키면 그만이다. 외부자라면 좌표를 찍어 벌떼 공격으로 입을 막는다. 비판과 비난을 분간할 생각이 없는 이들에게 논쟁은 의미가 없다. 토론하고 설득할 일이 없으니 사고의 근력을 키울 필요가 없다. 사고의 근력이 없으니 논쟁 능력은 점점 퇴화한다. 여당의 정책 논의에서 지적 자극을 받아 볼 수 없는 이유다. 셀프 특혜 논란을 일으킨 민주유공자예우법을 보자. 범여권 의원 73명의 공동발의를 대표했던 설훈 의원은 운동권 좌장이다. 법안 추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비판이 거세자 사흘도 안 돼 자진 철회했다. 반박은커녕 해명 한마디 못 했다. 왜 그 법안이 필요했는지 기본 논거조차 못 밝히고 자신들의 상징 자본을 조롱거리로 추락시켰다. 내부 쓴소리에 논리정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보인 적은 물론 없다. 조국 사태 이후 권력 독주를 지적해 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급기야 “한국 민주주의 위기는 촛불 ‘시위’에서 시작됐다”고 진단한다. 민주주의가 퇴보한 결과론으로 볼 때 촛불이 ‘혁명’이라는 정권의 규정은 틀렸다는 것이다. 반박 근거를 찾기도 어렵겠거니와 “노”라고 공개 강변할 수 있을 지적 담지자가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르는 민주건달”(진보 지식인 홍세화)이라는 비판에도 마찬가지. 강성 문파들의 대리 공격이 거셌을 뿐 정작 당사자들은 입을 닫았다. 여권 운동권이 무능해 보이는 것은 잇따른 정책 실패 때문만이 아니다. 진보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 최근의 저술에서 짚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공부를 하지 않았고, 1980년대 초반 논리에서 진화하지 않았다. 이념에 갇히면 사고력이 현저히 떨어지는데, 사고력 저하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것 같다.” 여당이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주택담보대출 70%를 적용하겠다는 방안을 또 내놨다. 대출 가능한 액수는 최대 4억원.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이 11억원이 넘는데, 현금 7억원은 쥐고 있어야 무주택자가 서울 집을 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제 손으로 땀 흘려 한푼 두푼 모아 본 적 없는”(댓글의 단골 비판) 여권 핵심 세력의 현실감 부족은 이런 식으로 민심을 실망시킨다. 이준석 현상은 ‘단독자 이준석’의 품질에 주목한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전문 분야의 정책 논쟁이 가능한 윤희숙, 편가르기 퇴행 언어 없이도 대화가 될 법한 70년대생 김웅·김은혜 의원 같은 이들이 화학작용한 결과다. 최진석 교수는 “민주화 다음 단계는 질문하는 능력이 필수”라고 썼다. 586 권력이 “할 일이 남았다”며 버텨 봤자 밀려오는 이준석들을 감당할 수 없다. 이준석은 지금 민주당의 문제다. sjh@seoul.co.kr
  • 고3 때려 숨지게 한 사촌 형 ‘징역 1년’…이유는

    고3 때려 숨지게 한 사촌 형 ‘징역 1년’…이유는

    지난해 경북 포항에서 폐 손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돼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됐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사촌 형의 폭행과 아버지의 방임으로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방역당국은 C군이 폐손상 때문에 코로나19를 의심해 관련 검사를 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정이 나왔고 신체에 폐 손상 뿐 아니라 멍 자국 등이 발견된 점을 바탕으로 수사당국의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1부(부장 권순향)는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A씨(30)에게 상해죄를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된 아버지 B씨(46)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200시간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A씨는 사촌동생을 훈계한다며 위험한 물건을 사용해 상해를 입히는 등 죄질이 나쁘고 사망에 이르는 원인이 된 점에 비춰 결과도 매우 중요하다”며 “다만 자수한 점, 자신의 행위로 사촌동생이 숨졌다는 후회와 자책을 안고 평상 살아야 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는 지난해 5월 9일 오후 5시쯤 포항시 북구 자신의 집에서 고종사촌 동생인 C(17) 군에게서 “중고나라 사기를 쳤고, 선배들에게 돈을 빌렸다. 이자가 엄청 많이 불었다. 돈을 갚아달라”는 말을 들었다. 화가 난 A씨는 C군의 스마트폰을 건네받아 확인하던 중 여성의 은밀한 신체부위가 불법 촬영된 동영상을 발견하고 격분해 나무 빗자루로 다리 부위 등을 수차례 때렸다. C군이 학교 교사의 치마 속을 촬영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소년부에 송치돼 재판 중임에도 유사 범행을 계속 저지르고 있다는 것도 폭행 이유였다. 아버지 B씨는 조카로부터 체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C군의 몸에 난 상처도 확인했지만 아이가 “괜찮다”고 하자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C군은 심한 멍으로 학교에 앉아 있기도 힘들어했고, 조퇴하고 집안 곳곳에 설사를 했다. 제대로 치료받지 않은 C군은 볼기 등 다리 부위 손상으로 인한 패혈증과 배 안 출혈 등으로 22일 숨졌다. 재판부는 아버지 B씨에 대해 “방임행위가 피해 확대의 원인이 됐다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지 않음에도 아들이 치료를 거부했다고 변명한다”면서도 “과거 C군이 B씨의 지도에 순응하지 않고 수차례 비행을 저지른 점 등 사정을 고려하면 다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 하나뿐인 자녀를 잃게 됐고 자기 행동이 사망에 원인이 됐다는 후회와 자책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영상] “망할 중국놈들!” 美 한인 편의점, 두달만에 또 흑인난동 피해

    [영상] “망할 중국놈들!” 美 한인 편의점, 두달만에 또 흑인난동 피해

    얼마 전 흑인 난동 사건이 있었던 한인 편의점에서 비슷한 사건이 또 벌어졌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성열문 캐롤라이나한인회연합회 이사장이 운영하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편의점에서 흑인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3월 30일 다른 흑인 손님의 쇠막대기 난동으로 곤욕을 치른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같은 피해를 겪은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25일 오전 11시쯤 편의점에 들어선 흑인 손님은 51센트(약 600원)를 내며 담배를 요구했다. 미국 담배 한 갑 가격은 최소 8달러(약 9000원)다. 한인 사장 성씨는 돈이 부족하다며 판매를 거절했다. 그러자 화가 난 흑인은 “망할 중국놈들!”이라는 인종차별적 폭언과 함께 계산대에 설치된 가림막을 여러 차례 내리쳐 깨부쉈다. 그 바람에 계산대에 서 있던 성 사장은 가림막 파편에 눈 주변을 긁혔다. 큰 부상은 면했으나 하마터면 중상으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매장 CCTV에는 노란색 모자를 쓴 민소매 차림의 흑인이 성 사장에게 욕설을 퍼붓다 가림막을 한 차례 세게 내리치고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성경책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 담겨 있다. 용의자는 양 주먹으로 가림막을 완전히 깨부순 뒤에야 짐을 챙겨 매장을 빠져나갔다. 성 사장에 따르면 용의자는 현재 체포된 상태다. 사건이 발생한 편의점은 지난 3월 30일에도 흑인 손님의 쇠막대기 난동으로 큰 손해를 봤다. 당시 편의점에 난입한 흑인 용의자는 도로 표지판 기둥으로 보이는 쇠막대기를 휘두르며 냉장고와 냉동고, 선반 등 각종 기물을 닥치는 대로 깨부쉈다. 사장 부부에게는 “XX 중국인들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한참 난동을 부리다 부서진 냉장고에서 에너지 드링크를 꺼내 마시던 용의자는 출동한 경찰에 현장에서 체포됐다.사건 이후 성 사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도가 아닌 100% 증오범죄다. 이런 문제를 공론화해서 아시아인들이 함께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성 사장은 “화가 난다고 과자 선반을 쓰러뜨리는 손님은 가끔 있었는데 이렇게 행패를 부리는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아내가 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고 종업원도 놀랐다. 동양인들이 돈을 번다고 시샘하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우리도 코로나19 때문에 매상이 40% 줄어서 억지로 해나가는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해당 사건으로 편의점이 입은 재산 피해는 5만∼6만 달러(약 5600∼68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발생한 비슷한 사건에 성 사장과 가족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성 사장의 아들은 현지언론에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5000~9000달러(550~1000만 원)의 손해를 본다”고 설명했다. 성 사장의 조카는 “아무리 보안을 강화해도 관련 사건은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면서 “편의점이 유일한 생계수단이라는 것을 알기에 가슴이 아프다. 이런 일을 계속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경찰영웅에 故안맥결 총경·정연호 경위

    경찰영웅에 故안맥결 총경·정연호 경위

    경찰청은 여성 독립운동가 출신 안맥결(1901∼1976) 총경과 국민 생명을 구하려다 순직한 정연호(1977∼2017) 경위를 ‘2021년 경찰영웅’으로 선정했다고 27일 밝혔다.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딸인 안 총경은 1919년 평양 숭의여학교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임시정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다 1937년 체포돼 만삭의 몸으로 옥고를 치렀다. 광복 이후 조국 재건에 힘을 보탰던 안 총경은 1946년 여자경찰간부 1기로 경찰에 입직해 1961년 퇴직할 때까지 약 15년 동안 서울여자경찰서장, 국립경찰전문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며 사회적 약자 보호 등 안전한 치안 유지에 크게 이바지했다. 정부는 국가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국가수호의 정신으로 평생을 바친 안 총경의 공적을 기려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기도 했다. 대구 수성경찰서 범어지구대에 근무하던 정 경위(당시 경사)는 2017년 12월 21일 “아들이 자살하려고 번개탄을 사서 들어왔는데 막아 달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부모와 자살 우려자를 상대로 상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자살 우려자가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잠근 후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옆 방 창문을 통해 그가 투신하려는 상황을 목격한 정 경위는 다급히 그를 구하고자 건물 외벽을 타고 창문으로 접근하다 아파트 9층에서 추락해 순직했다. 정부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주저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 준 정 경위에게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경찰청은 올해 말까지 경찰영웅으로 선정된 안 총경과 정 경위의 과거 근무지에 흉상을 세우고 추모 공간도 조성할 계획이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거침없는 사회 비판 메시지…거칠어진 ‘모범 청년’ 이제훈

    거침없는 사회 비판 메시지…거칠어진 ‘모범 청년’ 이제훈

    “인간 존재와 삶을 공부하게 돼가치 있는 작품 만든 배우 원해”배우 이제훈은 최근 출연한 두 작품에서 ‘모범 청년’ 이미지를 뒤집었다. 29일 종영을 앞둔 SBS 드라마 ‘모범택시’에선 자동차를 거칠게 몰며 액션부터 코미디까지 소화해 낸다. 넷플릭스 ‘무브 투 헤븐: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에서는 껄렁한 전과자 역할을 찰떡같이 해낸다. 화상으로 만난 이제훈은 “고착된 이미지로 남지 않으려 한다”며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시도하고 싶었다”고 도전의 계기를 밝혔다. ‘모범택시’에서 그가 맡은 김도기는 억울한 피해자들에게 통쾌한 대리 복수를 선사하는 ‘다크 히어로’다. 택시 기사, 기간제 교사, 웹하드 회사 직원, 조선족 연기까지 ‘N도기’로 불릴 만큼 다양한 역할로 상대를 응징한다. 그는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자동차 추격신을 꼽았다. “차가 뒤집힐 때마다 화끈했고 카 액션의 진수를 제대로 맛볼 수 있어 통쾌했다”고 돌이켰다.‘무브 투 헤븐’에서는 불법 격투기 선수 조상구로 마음 붙일 가족도 없이 살아간다. 순수한 조카 그루(탕준상 분)와 유품 정리를 하게 되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퉁명스러운 말투와 목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지저분한 의상 등 외모도 바꿨다. “보통 스포츠 머리보다는 과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의견을 냈다”는 그는 “수염, 거친 피부, 강한 프린트 의상으로 극 중 그루와 대척점을 보여 주려 했다”고 덧붙였다. 권투 등 액션 장면을 위해 근육도 만들었다. 4개월간 주 6일, 하루 2시간 30분씩 운동을 빼놓지 않았다. 두 작품 모두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강하다. ‘모범택시’는 실제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각종 범죄들을, ‘무브 투 헤븐’은 노인 고독사나 데이트 폭력 등 사회적 약자의 죽음을 조명한다. 그는 “내가 무엇에 공감할 수 있을지가 작품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인간이라는 존재와 삶에 대해서 공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에 참여하게 된 것은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전보다는 출연작이 어떻게 남겨지고 기억될지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한다는 뜻이다. 그는 “재밌고 오락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도 좋아하지만, 내가 연기한 작품이 시간이 지나 어떻게 보여질지, 어떤 의미를 가질지가 중요하다”며 “가치 있는 작품과 좋은 이야기에 출연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소신을 밝혔다. 데뷔 14년 차 배우인 그는 조만간 연출자로도 영역을 넓힌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왓챠가 제작하는 오리지널 시리즈 ‘언프레임드’에서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도 할 예정이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조카가 날 유혹했다”...성추행 혐의 부인한 고모부 실형

    “조카가 날 유혹했다”...성추행 혐의 부인한 고모부 실형

    20대 조카를 강제 추행한 50대 고모부가 혐의를 부인했지만 실형을 선고받았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노재호)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59)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또한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과 장애인 복지시설, 아동 관련 기관에 각 3년간의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과 12월 조카 B씨(20대·여)를 3차례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친척들이 모인 가운데 다른 가족들이 한눈을 판 사이 술에 취한 B씨에 다가가 입을 맞추고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고, ‘해줄 말이 있다’며 모텔로 데려가 강간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B씨가 자신을 유혹해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A씨의 혐의 부인으로 사실 관계가 엇갈리면서 B씨는 5차례나 경찰에 불려가 반복적으로 피해진술을 해야했다. 하지만 이후 A씨의 아들인 C씨가 경찰에 자발적으로 출석해 A씨의 변명이 거짓임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털어놓으면서 모든 범행이 들통나게 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주변 친척들에게 납득할 수 없는 변명을 하거나,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죽어버리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는 등 어떻게든 중한 책임을 면해보려는 태도를 보여 피해자는 여러 차례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20대 초반의 나이에 고모부로부터 몹쓸 짓을 당한 피해자는 가치관의 혼란과 함께 짧은 기간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현재까지 피해자의 용서를 받지 못한 점과 이 법정에 이르러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선처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점심 먹다 폭격에 사망한 팔레스타인 3세 아이 및 일가족

    점심 먹다 폭격에 사망한 팔레스타인 3세 아이 및 일가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면서 사상자도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3세 아이를 포함한 일가족이 한꺼번에 사망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프랑스24의 19일 보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33세 남성 에야드 살레하는 현지시간으로 19일 가족과 집에 머물고 있다 이스라엘의 미사일 폭격을 받았다. 당시 집에는 장애 때문에 휠체어를 사용해 온 살레하와 임신한 그의 아내, 3살 된 딸이 함께 있었고, 가족이 모두 모여 점심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미사일 폭격을 받은 살레하 일가족은 그 자리에서 모두 사망했다. 살레하 아내의 뱃속 태아까지 포함하면 단란했던 일가족 4명이 미사일 폭격으로 사망한 셈이다. 살레하의 남동생은 “형은 장애로 14년 동안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로켓 폭격이나 전투기에 대항할만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휠체어에 앉아있었을 뿐”이라면서 “동생의 아내와 동생의 딸 역시 (폭격받아 사망할 만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들의 아파트는 산산조각이 났고, 조카가 타던 빨간 자전거는 엉망진창이 된 아파트 잔해 속에 버려져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남성과 그의 임신한 아내, 어린 딸이 이스라엘 폭격으로 사망했다”면서 “이스라엘은 무고한 시민을 죽였고, 심지어 엄마 뱃속 태아까지도 죽였다. 이는 범죄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어 “얼마나 더 많은 사망자가 나와야 하느냐”며 격분을 감추지 못했다.이스라엘의 폭격이 군사 구역이 아닌 민간인 거주지역에 쏟아졌다는 사실에 비난이 쏟아졌다. 태아를 포함해 살레하 일가족 4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폭격으로 이날 하루 동안 7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이 시작된 지난 10일 이후 현재까지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227명으로 늘었다. 이중에는 어린이 64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에서는 5세 소년와 16세 소년을 포함해 12명이 사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 공습을 지속할 것이라는 강경입장을 고수했다. AP통신 19일 “네타냐후 총리는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작전을 계속하는 결심이 확고하다”고 말했다고 총리실 성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