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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굴비상자 받은 安시장 무죄”

    굴비는 무죄였다.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굴비상자에 든 2억원을 받았다가 시 클린센터에 신고한 안상수(安相洙) 인천시장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 항소할 방침이다. 인천지법 형사합의6부(부장 김종근)는 17일 이 사건 선고공판에서 “안 시장이 굴비상자가 건네질 당시 돈이 든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검찰의 근거는 건설업자 이모(54)씨의 진술과 정황이지만 안 시장이 이씨에게 ‘돈은 받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했고, 굴비상자를 조카들이 함께 사는 여동생 집에 배달토록 한 사실 등으로 미뤄 의례적인 선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며 무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직접적인 증거 없이 뇌물공여자의 일방적인 진술, 방증과 정황만으로 수뢰사건 피의자를 법정에 세워선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셈이다. 재판부는 또 받은 돈을 신고한 시점과 관련,“고도로 청렴한 사람이라면 받은 돈을 즉시 돌려주었겠지만, 안 시장의 경우 신고시점이 다소 늦었다고 해서 뇌물수수로 보는 것은 무리”라며 “안 시장이 5일 뒤 신고했지만 중간에 3일간의 중국출장이 있었던 점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뇌물수수의 심리과정까지 분석했다. 즉 사람이 뇌물을 받은 경우, 돈을 준 의도 파악→돈에 대한 유혹→위험 여부 판단과 두려움→유혹 떨치기 갈등 등의 과정을 거쳐 최종행위를 결심하는데, 안 시장이 실질적으로 이틀간의 고민 끝에 신고한 것은 범의(犯意)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이로써 지방자치법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될 경우 직무가 정지될 위기에 놓였던 안 시장은 ‘용궁에 다녀온 격’이 됐다. 그러나 “굴비상자가 건네질 당시 안 시장이 그것이 돈이거나, 적어도 상당한 가치의 물건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거절하지 않은 것은 신고시점과 관계없이 법에 저촉된다.”며 징역 1년6월을 구형한 검찰은 떨떠름한 표정이다. 한편 재판부는 굴비상자를 전달한 혐의(뇌물공여)로 기소돼 징역 2년6월이 구형된 건설업체 대표 이씨에 대해서는 징역 1년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儒林(286)-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86)-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나는 선원에게 내가 찾아온 목적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선원은 귀를 기울여 들은 후 내게 말하였다. “이곳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제가 군청에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선원은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를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난간에 몸을 기대고 담배를 피우며 쪽빛으로 푸른 호수를 바라보았다. 관광객들은 쉴 새 없이 계단을 내려와 표를 사고 유람선에 차곡차곡 승선하고 있었다. ―사실이었을까. 나는 눈부신 봄 햇살이 끓어오르고 있는 수면을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이퇴계와 두향의 사랑은 과연 사실이었을까. 불과 9개월의 짧은 재임기간 동안 퇴계와 기생 두향의 상사(相思)는 과연 무르익을 수 있었을까. 퇴계가 그처럼 다정다감한 풍류객이라 할지라도 두향은 한갓 미천한 신분의 기생.9개월의 짧은 만남이 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세기의 로맨스가 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는 과장된 후세의 조작이 아니었을까. 이퇴계는 당대 최고의 거유이자 명신으로 ‘해동공자(海東孔子)’라고까지 불렸던 성인이었다. 그러한 이퇴계가 쉰에 가까운 ‘지천명(知天名)’, 즉 ‘하늘의 뜻을 알았던 나이’때 미천한 기생 두향과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 가능하였을까. 퇴계언행록에 기록된 대로 ‘남녀간의 사랑이 비도 오고 바람이 부는 만물의 생성(生成)’과도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퇴계는 과연 엄격한 신분을 초월할 수 있었을까. 만약 퇴계와 두향의 상사가 떠도는 풍문에 불과한 것이라면 나는 지금 헛소문을 따라서 두향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그때였다. 문득 내 머릿속으로 하나의 상념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인도 특유의 세습적인 신분제도인 카스트를 능가하는 엄격한 조선의 신분계급 속에서도 비교적 너그럽고 자유로웠던 이퇴계의 에피소드였다. 인간에 대한 박애정신으로 가득 찼던 휴머니스트 이퇴계. 율법과 형식에 초월하였던 자유주의자 이퇴계. 이퇴계의 그러한 면모를 엿보게 하는 야사 하나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며 그 야사의 내용을 더듬어 보았다. 퇴계가 단양의 군수로 부임한 것은 1548년 정월. 그러나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이퇴계는 뜻밖의 불행을 겪게 된다. 이때의 고통을 이퇴계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몸이 쪼개지듯 아프다. 지탱하기 힘들다. 원통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퇴계를 이처럼 고통스럽게 하였던 것은 다름 아니라 그의 둘째아들 채가 21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급사하였기 때문이었다. 퇴계가 둘째아들 채의 죽음을 특히 슬퍼하였던 것은 채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생모이자 퇴계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허씨가 죽어 유모 손에서 고아처럼 자랐기 때문이었다. 성장해서는 퇴계와 떨어져 외할아버지의 농사일을 감독하며 농사꾼으로 외롭게 자랐다. 그런데 더욱 슬픈 것은 정혼을 해 놓고도 혼례를 올리지 못한 채 숫총각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이때의 비통함을 퇴계는 조카사위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다. “단양군에 와서 좋은 일이라고는 없고 자식을 잃어 병만 더욱 심하다. 오래 있고 싶지 않아서 두세 번 감사에게 사직을 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는다.”
  • 케이지 부부 “아기 가졌어요”

    |로스앤젤레스 연합|지난해 7월 30일 결혼한 할리우드 톱스타 니컬러스 케이지(41)와 한국 출신 아내 앨리스 김 부부가 아기를 가져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고 케이지의 홍보 담당자가 15일 밝혔다. 출산 예정일은 전해지지 않았으며 케이지 부부의 임신 소식은 TV쇼 ‘액세스 할리우드’를 통해 처음 보도됐다. 케이지는 식당종업원이던 약 20년 연하의 앨리스 김을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결혼했다.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케이지는 여자친구였던 여배우 크리스티나 풀턴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거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조카인 케이지는 최신작 ‘내셔널 트레저’에 출연했고, 최근 호주에서 차기작 ‘고스트 라이터’를 찍기 시작했다.
  • 구속 기아차 노조지부장 36명에 3억7000만원 받아

    기아차 광주공장 채용 비리 혐의로 구속된 노조지부장 정모(44)씨의 비리건수가 당초 알려진 것보다 크게 늘어, 채용청탁 인원이 36명, 청탁 사례금이 3억 7000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당시 혐의보다 청탁 인원 면에서 24명, 사례금 액수는 1억 3000여만원 늘어난 수치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광주지검은 11일 정씨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해 5월8일 자신의 집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나모(45·여)씨로부터 ‘조카를 생산계약직 사원으로 채용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1800만원을 받는 등 부정입사자 36명으로부터 3억 78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검찰 조사결과 정씨는 브로커와 자신의 부인, 동생 등으로부터 부정 입사자를 소개받고 이를 회사 인력관리팀에 추천했다. 정씨는 받은 돈을 주식 투자에 사용하려고 보관해 왔으며 일부는 청탁자들에게 돌려 준 것으로 밝혀졌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외국인노동자 ‘눈물의 설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설날은 더 서러웠다. 고향을 찾아 가족들을 만나는 명절이기에 그들의 향수는 더욱 짙어졌다. 특히, 지진해일 피해를 당한 동남아 근로자들의 고통은 사그라지기는 고사하고 더욱 커지기만 했다. ●동료 대신 고국방문… 가족에 소식 전하다 눈물 불법체류자 신분인 페마 랄(34)은 지진해일로 쑥대밭이 된 고향을 뒤지고 있다. 랄의 고향은 스리랑카 남부 해안 지역인 당갈라. 이 작은 도시에서만 20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랄은 부모님, 남동생과 연락이 끊기자 지난달 초 급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동료들을 대표해서 불법체류자 신분을 무릅쓰고 8년만에 한국을 떠난 것이다. 다행히 가족은 모두 무사했다. 짧은 해후 뒤 친구들이 준 주소를 갖고 골, 마타라, 한반토 등 피해지역을 찾아갔다. 친구 가족들은 살아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미크(33) 가족처럼 해일에 휩쓸려 사망한 사람도 많았다.“친구 부모님을 찾아가면, 아들 소식을 물으며 눈물만 흘립니다.‘왜 너만 왔느냐.’고 다그치면 할 말이 없지요.” 가족의 사망 소식을 친구에게 전화로 알리다 함께 울기도 했다. 랄은 가족이 사라져 전하지 못한 친구들의 편지도 3통이나 간직하고 있다. ●“형가족 잃었지만 생존 부모 위해 일 더해야” 칼바람이 몰아치는 경기도 광주 외국인 노동자의 집. 랄의 친구 다미크는 얼음장 같은 3층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요즘 일자리가 없어 이곳에서 먹고 잔다. 랄에게서 소식을 들은 다미크는 “잊어야 하는데 힘들다.”고만 했다. 다미크는 바닷가 근처에 살던 형과 형수, 조카 두 명을 잃었다. 부모님과 여동생은 간신히 살았지만, 그가 8년간 일해 마련한 집은 산산조각이 났다.“랄이 난민수용소에서 부모님을 만났는데 ‘우리 아들은 언제 돌아오냐.’고 하셨대요.” 다미크는 그래도 돌아갈 수 없다. 스무살 때부터 가장 역할을 해온 그는 “가족을 굶길 순 없다.1∼2년만 더 일하겠다.”고 말했다. ●“재입국 허용” 정부 발표도 못 믿어 불법체류자들은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불법체류자라도 해일 피해를 당한 가족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재입국 규제를 풀었는데도 믿지 못했다. 정부는 1월5일부터 2월10일까지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태국, 인도, 미얀마 등 지진해일 피해국 출신 불법 체류자들이 출국하더라도 범칙금을 물리거나 입국을 규제하지 않았다. 큰 혜택을 베푼 셈이다. 그러나 출국자는 지난 4일까지 2234명뿐이다. 해당국 노동자 9만 8700여명(불법 3만 7300여명)의 2% 정도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김상헌 사무국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정부의 정책을 쉽게 믿지 않는다.”면서 “게다가 고용허가제 명부 관리는 해당국이 맡고 있어 한국 정부가 요청해도 그 정부가 이름을 올려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지 6년이 지난 스리랑카 노동자 안토니(29)는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왔다가 불법체류자가 됐다. 불법체류자가 된 뒤에도 홀어머니(61)에게 돈을 보내며 생계를 책임졌다. 그는 지진해일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닷가에 살던 어머니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름 만에 어머니가 바닷물에 휩쓸렸다가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은 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옷도 한 벌 챙기지 못한 채 허리를 크게 다쳤다고 해요. 난민수용시설에 계시다는데….” 그러나 안토니는 돌아가지 않았다.“어머니를 치료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집도 다시 마련해야 합니다.” 울음을 참느라 꽉 깨문 안토니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고국에 집·학교 지으려 모금 그들은 서로 다독이며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 안산지역 스리랑카 노동자모임인 ‘스리랑카 독립협회’는 회원 250명에게서 5만∼10만원씩 모았다. 모은 돈으로 고국에 집과 학교를 지을 계획이다. 집 한 채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은 350만원. 이들은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이렇게 되뇐다.“내가 한국에서 일하니까, 가족들이 고국에서 살 수 있는 거예요.”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유산 다툼… 엽총난사 참극

    설 명절날 유산문제로 다툼을 벌여온 맏아들이 엽총을 난사, 제수와 조카 등 3명을 숨지게 하고 3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9일 낮 12시40분쯤 이모(66·서울 은평구 갈현동)씨가 자신의 둘째 동생과 사별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2리 한모(45)씨의 집 안방에서 엽총을 마구 쏴 한씨와 한씨의 딸(14), 이씨의 첫째 동생의 막내딸(25·여) 등 3명이 사망했다. 첫째 동생의 큰딸(31)과 며느리 박모(34), 친척 이모(45)씨 등 3명은 중상을 입었다. 이씨는 이어 같은 마을 첫째 동생(63)집에 불을 질러 40평 크기의 한옥을 모두 태운뒤 50여m 떨어진 인근 야산에서 머리에 엽총을 쏴 자살했다. 이들은 이날 이씨의 거처인 파주시 금촌동 아파트에 모여 차례를 지낸 뒤 1999년 사망한 둘째 동생의 처 한씨집에 갔다 변을 당했다. 총기 난사시 이씨의 첫째 동생과 이씨의 두 아들, 조카 등 남자들은 인근 야산에 성묘하러 가 없었다. 이씨는 파주경찰서 교하지구대에 입고한 자신의 트레디셔너 미제 엽총을 빼내 참극을 저질렀다. 이씨는 20년전 부친(91년 사망)으로부터 2600평을 상속받았으나 이복동생으로 농사를 짓는 첫째 동생이 자신보다 많은 3000평을 물려받은 것에 불만을 품고 자주 다툼을 벌여왔다. 경찰은 첫째 동생이 3년 전 1000여평을 4억원에 매각하자 “왜 허락없이 땅을 팔았느냐. 매각대금을 내놓으라.”고 요구,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다고 설명했다. 이씨 형제들이 상속받은 땅은 자유로에서 3∼4㎞ 떨어져 진입도로가 마땅치 않아 10년 전에는 평당 10만원에 불과했으나 근년들어 파주신도시와 LG필립스 LCD 등이 개발되면서 지가가 폭등했다. 파주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최승희 무용전수받은 김영순씨 “조카찾고 싶다”

    최승희 무용전수받은 김영순씨 “조카찾고 싶다”

    “최승희 선생은 보통 사람과는 달랐어요. 모든 동작에 심장의 울림이 전달되어 살아 숨쉬는 것 같았지요.” 새터민(탈북자) 김영순(68)씨가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작은 임대 아파트에서 설을 맞는 느낌은 남다르다.2003년 12월 한국에 온 뒤 정착훈련을 거쳐 ‘대한민국 국민’으로는 처음 맞는 설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펼쳐놓기에 앞서 평양음악무용대학 시절 ‘조선민족무용 특강’을 가르치던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기억을 더듬었다. ●대학서 최승희에게 무용배워 김씨는 “키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선생은 워낙 엄해서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살풀이를 가르칠 때면 ‘엿가락을 늘이듯 팔을 움직이라.’면서 손바닥으로 ‘탁’ 소리가 날 정도로 때려서 학생들의 뻣뻣한 자세를 바로잡아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의 동거녀가 된 성혜림이라는 존재로 하여 평양음악무용대학 시절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바뀐다.1953년 김씨와 성혜림은 무용학부와 영화연극부에 각각 입학했다. 김씨는 성혜림이 “홑꺼풀의 자그마한 눈과 좌·우 턱이 약간 각진 소녀로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웃을 때 생기는 보조개가 무척 사랑스럽고 귀여웠으며 고상한 기품이 풍겨 정이 가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성혜림과 조선인민군협주단서 일해 김씨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13년 동안 조선인민군협주단에서 일했다. 그러나 평탄했던 김씨의 삶은 성혜림의 말 한마디 때문에 송두리째 뒤틀리고 만다.1967년 성혜림은 2·8영화촬영소에서 돌아가는 길에 김씨에게 들러 “나 5호댁으로 간다.”는 말을 남겼다.‘5호댁’이란 김일성의 친족이 모여 살던 창광산의 옛 관저를 뜻한다. 김씨는 1970년 함경남도 요덕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김씨는 성혜림이 김정일의 동거녀라는 것을 안다는 사실 때문인 것으로 믿고 있다. 남편도 이 때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뒤 소식을 알 수 없다. 김씨는 소금국과 강냉이밥으로 연명하며 수용소 건설현장에서 8년을 중노동에 시달렸다. ●막내아들은 탈북시도하다 총살돼 1978년 수용소에서 나온 김씨는 세 아이를 데리고 금광 채굴 일꾼으로 일한다. 이후 1981년 양재기술을 배워 함흥의 양복점에서 일하면서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88년에는 탈북을 시도하던 막내아들이 붙잡혀 총살되는 아픔이 있었다. 이제야 두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됐다는 김씨의 가장 큰 소망은 어딘가에 살고 있을 조카 유숙화(1941년생)씨를 찾는 것. 가족과 함께 중국에 살던 큰언니는 1943년 남편을 따라 고향인 경북 안동으로 떠났고 그해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만 들었다. 김씨는 “나이가 드니까 혈육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만 간다.”면서 “조카를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미리 가본 ‘아파트 종갓집’의 설

    미리 가본 ‘아파트 종갓집’의 설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 딸린 종가는 대개 외진 곳에 있다. 심하게는 돌보는 후손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는 종가는 곧 생명력을 잃은 집이다. 더욱이 문화재라도 지정되면 박제된 느낌이다. 조상은 후손이 돌보지 않는 고대광실의 사당보다는 자손과 함께 숨쉬는 초옥을 더 정겨워하지 않을까. 이 시대의 대표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에 조상의 신위를 모신 종가도 있다. 대유학자 율곡 이이를 배출한 덕수이씨 가문이다. 율곡 하면 강릉 오죽헌을 생각하지만 오죽헌은 율곡의 생가이지 종가는 아니다. 아파트 종가는 21세기에 변해 가는 종가의 대표적인 미래 모습임에 분명하다. 설을 며칠 앞두고 율곡의 15세손 이천용(64)씨가 지키고 있는 아파트 종가를 찾았다.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오정식 남상인기자 oosing@seoul.co.kr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강선마을 한 아파트에 있는 덕수이씨 종가. 솟을대문도, 세월의 이끼가 낀 대들보도 없다. 여느 아파트와 겉모습은 똑같다. 현관을 들어서자 왼쪽 벽에는 10만양병을 주장한 내용과 함께 율곡 선생을 성균관 문묘에 배향할 수 있도록 명한 교지가 표구된 채 걸려 있다. 아파트 거실 한 쪽에는 황해도 석담에 있는 옛 종가의 빛바랜 흑백사진 등이 걸려 있다. 부엌으로 들어가자 키를 넘는 장에는 잘 닦여진 유기 제기가 황금빛으로 반짝거렸다. 비로소 예사로운 집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율곡의 15세손 이천용(64) 종부 서경옥(61) 부부의 단아한 미소도 남달랐다. 부드러운 눈매가 초가지붕과 닮았다고 할까. 이씨가 현관 오른쪽 방문을 “서재 겸 사당”이라며 열어주었다. 율곡 선생과 부인 곡산 노씨의 위패를 모신 방이다.4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위패는 상스러운 흰빛이었다. 이씨는 “전통 한옥으로 친다면 안채 동편 뒤에 사당이 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신주를 모셨다.”고 말했다. 신주를 모시는 감실을 벽에 붙였다. 감실 둘레에는 짧은 휘장을 드리웠다. 감실 맞은편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다. 클릭 한번으로 지구촌이 연결되는 첨단과 누대에 걸친 전통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도록 평소에 문을 닫아두는 곳이다. 율곡은 선생의 처가가 있는 황해도 해주시 석담에 정착했고, 수백년 동안 후손들이 그곳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사유재산을 한창 몰수하던 1947년 14대 종손 이재능(79년 작고)씨가 율곡의 신주와 교지를 품에 안고 월남했다. 이씨는 불천지위(不遷之位·통상 4대까지만 제사를 지내는 유교 관례에서 벗어나 후손들이 영원히 제사를 받드는 신위)를 비롯해 한해 10여차례의 제사를 받들고 있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봉제사와 함께 제수를 장만할 재산도 상속받았겠지만 그는 아무 유사없이 제사만 물려받았다.‘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밥은 굶어도 조상 제사는 지낸다. 그는 “일산에 자리잡은 이유는 1시간 거리인 황해도 종가와 가깝고 율곡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와 지척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설 차례에는 출가한 딸 내외와 종친회 몇 사람이 찾는다. 종가를 찾는 문중의 숫자도 많이 줄었지만 “조상을 섬기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대유학자의 집안이니 차례상에 오르는 제수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율곡은 불천지위이므로 차례나 제사때 가장 먼저 지낸다. 이씨는 “할아버지가 저술한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제의초(祭儀抄) 기록대로 제사를 행하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제례상을 각각 차린다.”고 말했다. 제의초에만 제수 5열 진열을 처음 선보였고, 요즘 대부분이 이에 따르고 있다. 설 차례상 첫줄에는 떡국을 올린다. 둘째줄에는 제기 하나에 닭고기와 쇠고기, 숭어 한 마리를 순서로 올리고 하얀 화선지로 십자 모양의 적사지로 숭어를 감싼다. 이어 절편을 본편으로 하여 그위에 화전을 올린다. 셋째 줄에는 탕이, 넷째 줄에는 포와 삼색나물(숙주·고사리·시금치)·간장·나박김치·식혜를, 다섯째 줄에는 대추·밤·배·감·사과 5가지의 과일만 올린다. 꼭 올라야 하는 기본 제수품으로 정갈하고 단출한 상차림이다. 서씨는 “할아버지는 고기를 그다지 드시지 않았던 분이라고 해요. 그래서인지 손이 많이 가는 전과 가짓수가 많은 떡과 같은 제수품이 많지 않아 제사 모시는 일이 결코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슝늉 대신 차를 올린다며 차례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이 정도면 신세대 주부들도 차례상 차림이 그다지 어렵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종가와 차례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전세계가 인정하는 한민족 고유의 풍속인 종가와 차례가 아름다운 전통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어 보였다. ■ 율곡의 가문 덕수 이씨는 율곡의 가문 덕수 이씨는 조선시대에 크게 부흥했다. 덕수는 임진강 연변의 파주를 이르는 지명으로 덕수부원군인 4세 이윤온 때부터 가문을 덕수 이씨라 부른다고 했다. 덕수 이씨는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한 가문이다. 세기의 사상가 율곡이 있고, 무공 충무공 이순신이 역시 이 가문 출신이다. 조선조 여인상 신사임당도 이 가문의 며느리다. 율곡과 충무공은 같은 시대의 인물로 율곡이 9세 더 많지만 세대로는 율곡이 13세, 충무공이 12세손으로 아저씨와 조카뻘이다. 촌수는 19촌간. 종손 이씨가 들려준 이들 간에 구전되는 일화 하나. 어느 날 둘이 만나기로 하고 충무공이 찾아왔으나 율곡이 나오지 않는 대신 호수에 거북이 모양의 기름종이를 띄웠고, 충무공은 이에 착안해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율곡은 명종 19년(1564년) 호조 좌랑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 홍문관 교리로 임명된 후 당시 국제정세를 파악, 국방의 안전을 위해 십만양병설을 강력히 주장했다. 한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파주시 율곡리에서 호 ‘율곡’을 따왔다. 1584년 1월16일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청렴하게 산 그는 저승갈 때 입을 수의마저 없었고, 수중에 값나가는 물건이라곤 부싯돌 하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 ‘차례 차례’ 배우면 쉬워요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게 제례문화다. 명절 때마다 낯설다. 그러나 어려운 의례에 끌려다닐 수는 없는 일. 올 설날을 앞두고 제례문화를 익혀 보자. 황의욱 성균관 전례연구위원은 “제사 음식을 담는 그릇을 제기라 한다. 반드시 목기나 유기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쓰는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 사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또 “과일을 다 깎아야겠지만 윗부분만 깎는 것은 깎았다는 시늉을 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김행 한국전례원장은 “차례상에 음식을 놓는 위치는 곧 음양의 질서”라며 “차례 때마다 음식의 위치가 바뀌면 신경을 덜 쓰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차례는 제사와는 달리 술을 한번만 올리고 축문을 읽지 않는다. 설 차례에는 떡국을 올린다. 상차림은 지방마다 가정마다 조금씩 다르다.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은 “차례상에는 복숭아를 올리지 않고, 붉은 팥으로 떡고물을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례 음식은 양념을 진하게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윤소장과 함께 차례상 차리는 법을 점검한다. 우선, 제주가 차례상을 바라보아 앞쪽이 북쪽, 왼쪽을 서쪽, 오른쪽을 동쪽으로 한다.(실제 방위와는 다를 수 있다.) 차례상을 차리는 순서는 가장 먼저 신위 앞으로 잔과 시접을 놓고 제5열부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둔다.5열 과일을 두는 순서는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 흰색 과일은 서쪽에)니 조율이시(棗栗梨枾·왼쪽부터 대추·밤·배·감의 순서)니 하지만 정확한 원칙은 없다. 가풍대로 하면 된다. 대개 꽃받침자리가 위로 가게 한다. 그 다음은 제4열로 포·나물·간장·침채·식혜 등을 둔다. 이때는 건좌습우(乾左濕右·마른 것은 왼쪽, 젖은 것은 오른쪽)와 생동숙서(生東熟西·김치는 동쪽에, 나물은 서쪽에)를 따른다. 식혜는 건더기만 건져서 쓴다. 제3열은 육탕·소탕·어탕을 둔다. 제2열은 국수 육적·소적·어적·떡을 놓는다. 탕과 적의 숫자를 같게 하는데 보통 3개나 5개를 둔다. 또 어동육서(魚東肉西·생선은 동쪽, 육류는 서쪽에)와 두동미서(頭東尾西·생선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를 따른다. 생선의 배쪽이 신위쪽으로 가게 한다. 제1열은 떡국·잔·시접·잔·떡국 순서로 놓는다. 접동잔서(接東盞西)라 하여 접시는 동쪽에 잔은 서쪽에 놓는다. 철상의 순서는 떡국을 물리고, 신위(또는 지방)를 제자리에 둔 다음 상 그대로 내려 먹으면 된다. 황 연구위원은 “‘감 놔라, 배 놔라.’는 할 수는 없다. 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가가례로 정성을 다하면 된다.”고 말했다.
  • [사설] 중국, 보복외교하겠다는 건가

    탈북 국군포로 한만택씨의 북한 강제송환과 관련해 중국 정부가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선린으로서의 기본도리를 저버린 행위다.72세의 고령에 지병까지 앓고 있는 한씨는 서울 가족들의 도움으로 탈북에 성공, 옌지의 한 호텔에 투숙중 지난달 28일 새벽, 중국 공안들에 체포된 뒤 강제송환당했다. 서울의 한씨 조카들은 27일 밤, 국제전화로 고국행 꿈에 부푼 한씨와 통화까지 했다고 한다. 가족들과 전화상봉을 한 지 불과 몇시간 뒤 체포돼, 북한땅으로 다시 끌려간 그가 겪었을 고초와 절망감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리빈 주한중국대사는 엊그제 한국정부로부터 그의 신변에 관한 처리요청을 받기 전에 북송이 이루어져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28일 새벽부터 한국정부의 요청을 접수한 30일 사이, 불과 48시간만에 북송이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이 말을 어떻게 믿으란 것인가. 강제북송이 그보다는 한참 뒤에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소문들에 대해 중국 정부는 납득할 만한 추가해명을 해야 한다. 만약 김동식목사 납치, 김문수의원 일행 기자회견 방해사건 등 최근 일련의 탈북자 관련 사건들이 한씨 송환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는 중대한 외교보복행위다. 외교적 보복행위인지, 아니면 중앙과 지방공안 조직간 손발이 안 맞아 일어난 단순사건인지 분명한 전말이 밝혀져야 한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탈북 국군포로의 한국행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이번 한씨 강제송환의 진짜 배경이 무엇인지 더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건발생 한달이 지나도록 그의 행적조차 파악하지 못한 우리 정부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좀더 적극적인 초기대응이 있었더라도 북송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자꾸 남는다.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두나라 정부 모두 심기일전해야 한다.
  • [그 영화 어때?]‘레이징 헬렌’…내가 엄마라니 아찔

    [그 영화 어때?]‘레이징 헬렌’…내가 엄마라니 아찔

    낮에는 촉망받는 모델 에이전트, 밤에는 사교계 여왕인 헬렌(케이트 허드슨). 전형적인 뉴요커인 그녀에게 인생은 그저 주어진 젊음의 특권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언니부부를 대신해 하루아침에 조카 3명의 양육을 떠맡기 전까지는 말이다.‘미혼 여성의 엄마 체험기’쯤으로 요약되는 ‘레이징 헬렌’(Raising Hellen·27일 개봉)은 익숙한 소재,TV연속극 같은 자잘한 에피소드 중심의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시선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을 지녔다. 멋 모르고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슈퍼우먼에 도전한 헬렌은 처참한 결과를 맛본다. 남자친구가 최고의 관심사인 사춘기 소녀 오드리, 아빠와의 추억 때문에 좋아하던 농구를 하지 않는 케니, 엄마가 가르쳐준 신발끈 묶는 법을 기억못해 우는 사라앞에서 헬렌은 어쩔 줄 모르고, 그러는 사이 일은 일대로 꼬인다. 똑 부러지는 커리어우먼인 그녀가 조카들을 위해 일을 포기하는 과정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싫은 소리 못하는 친구 같은 이모’에서 ‘잔소리꾼 엄마’로 서서히 변해가는 헬렌의 성장을 지켜보는 감동은 남다르다.‘프리티 우먼’‘프린세스 다이어리’의 게리 마셜 감독. 전체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기아차 노조지부장 8명에 2억4000만원 받아

    기아차 노조지부장 8명에 2억4000만원 받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채용비리와 관련, 노조 광주지부장 정모(44)씨가 자신의 부인과 남동생 등 가족들을 동원해 2억원대의 사례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의 동생은 이미 말레이시아로 도피, 사례비 총액에 대한 의혹이 부풀려지고 있다. 광주지검은 25일 정씨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정씨는 지난해 5월8일 광주 광산구 신가동 자신의 집에서 잘 아는 나모(45·여)씨의 조카 취업을 부탁받고 1800만원을 받는 등 청탁자 8명으로부터 11차례에 걸쳐 1인당 400만∼7000만원씩 모두 2억 4700만원을 받은 혐의다. 검찰 조사결과 정씨는 옷가게를 운영하는 부인이나 남동생으로부터 돈을 건네 받았으며, 청탁자 명단을 회사 인력관리팀에 넘겨준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받은 돈을 주식에 투자했고 검찰수사가 시작되자 받은 돈 일부를 되돌려줬다. 검찰은 이와 함께 광주지부 노조간부와 광주공장 인사부서 관계자 등 20여명을 불러 채용 사례비 수수 및 청탁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한편 기아차 광주공장의 채용비리를 입증할 수 있는 ‘청탁자 리스트’가 있는 것으로 이날 처음 확인됐다. 기아차 광주공장 윤모 전 인사실장(이사급)은 이날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해 6월 노조 집행부를 통해 건네받은 10여명의 추천자 명단(청탁리스트)을 실무자(인사팀장을 지칭한 듯)에게 전달했다.”고 털어놨다. 이와 함께 회사측은 광주지부 노조원들에 대해 수억원대로 보이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기로 했다. 노조원 10여명이 지난해 말 광주공장과 광주차량출하사무소 사무실에 난입해 폭언을 하고 기물을 부쉈으며, 영업을 방해해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킨데 따른 조치다. 노조원들은 1월1일자로 약속한 정규직 전환을 2개월 가량 연기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또 채권 확보 차원에서 노조원의 개인재산에 대해 법원에 가압류를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압류조치에 들어갈 방침이다. 광주 최치봉·남기창·박경호기자 cbchoi@seoul.co.kr
  • 30년간 NBC 투나잇쇼 진행 자니 카슨 타계

    미국 TV의 신화를 일궈냈던 NBC방송의 간판 프로그램 ‘투나잇 쇼’를 30년간 진행하며 ‘심야 토크쇼의 황제’로 군림했던 자니 카슨(79)이 23일 새벽(현지시간) 캘리포니아에서 숨을 거뒀다. 카슨의 조카 제프 소칭은 이날 “카슨이 일요일 새벽 가족들에 둘러싸인 가운데 편안하게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그는 “별도의 추모행사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언론들은 카슨이 로스앤젤레스 인근 말리부에서 지병인 폐기종으로 숨졌다고 전했다.‘투나잇 쇼’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가끔 담배를 피울 만큼 애연가였던 카슨은 2002년 폐기종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 오하이오주 코닝 태생인 카슨은 해군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1940년대 말 네브라스카주 지방 TV에서 TV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후 1950년 로스앤젤레스 KNXT-TV로 이적,1951∼53년 스케치 코미디쇼 ‘카슨의 지하실’로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자니 카슨쇼’(1955∼56),‘후 두 유 트러스트’(1957∼62) 등 숱한 쇼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어린 소년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시청자와 초대손님 모두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으며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미국인들을 웃겨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동료였던 에드 맥마흔이 그를 소개하며 외쳤던 “여∼기 자니를 소개합니다.”(Heeeeere’s Johnny.)라는 말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는 1992년 5월 단골 초대손님이었던 제이 리노에게 ‘투나잇 쇼’를 물려주고 은퇴하기까지 거의 30년 동안 NBC 간판프로그램을 이끌어 경쟁사 CBS를 압도했다. 한때 500만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아 TV출연자 가운데 사상최고 ‘몸값’을 기록하기도 했다.‘투나잇 쇼’ 최종회 방송에서는 무려 5500만명의 시청자가 지켜봐 그의 퇴장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카슨은 은퇴방송에서 “이제 물러날 때가 됐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매순간 이를 즐길 수 있었던 나는 행운아”라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 카슨은 1987년 미 TV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으며 은퇴하던 1992년 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상하는 등 방송인으로 완벽한 성공을 거뒀지만 사생활에서는 굴곡이 심해 무려 4번이나 결혼하고 세차례 이혼을 하는 아픔을 겪었다. 특히 1991년에는 세 아들 가운데 하나인 리키(39)를 자동차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기도 했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기아차 노조 ‘취업장사’ 파문] 30代 부정취업자 인터뷰

    “평소 알고 지내던 광주공장 노조간부 조카에게 1300만원을 주고 지난해 5월 입사했다.” 기아차 광주공장에 입사한 김모(32)씨는 24일 이같이 말하고 “그러나 나중에 입사해 돈이 전달된 노조간부에게 확인한 결과 800만원만 받았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언제 입사했나. -지난해 5월이다. 입사경위는. -작년 3월 광주공장에서 생산계약직을 뽑는다는 말을 듣고, 평소 알고 지내던 광주공장 선배에게 부탁을 했다. 그런데 어렵다고 해 그 선배와 나를 동시에 알고 있는 노조간부 조카를 소개시켜주었다. 노조간부 조카가 돈을 먼저 요구했나. -그렇지 않다. 광주에서 ‘기름밥’(자동차 정비 관련 업종에 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을 먹고 있는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광주공장에 취직하려면 인맥이 있거나 돈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1300만원을 줬다. 그 노조간부가 지금 채용비리 의혹 핵심인사로 지목된 노조지부장인가. -아니다. 다른 간부다. 나중에 입사해 이 간부에게 확인해봤더니 800만원만 받았다고 하더라. 재작년에는 500만∼600만원을 주고 입사했다는 말을 듣고 “단가가 올랐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노조간부가 회사 임원 등 회사간부들 추천으로 입사한 사람들도 많다며 열심히 일만 하라고 했다. 생산계약직 20∼30%가량은 노조간부 친인척들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부분은 잘 모른다. 그러나 입사 동기들과 사석에서 얘기하다 보면 누구는 노조간부 외조카다, 누구는 동생 친구라는 말을 들었다. 노조간부들이 국회의원, 광주시의원, 시공무원 등 지역 인사들의 청탁을 받고 채용했다는 말도 있는데.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지난해 9월 추석을 앞둔 부서 술자리에서 술에 취한 모 선배직원이 새로 입사한 계약직 직원에게 “너는 시 고위공무원 청탁으로 입사한 × 아니냐.”고 말해 주먹다짐 일보 전까지 간 적이 있다. 광주 연합
  • 기아車 노조지부장 1억8000만원 수뢰확인

    기아車 노조지부장 1억8000만원 수뢰확인

    검찰은 24일 출두한 기아차 노조 광주지부장 정모(44)씨를 상대로 인사비리 규모와 노·사측의 개입 여부 등을 캐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인사비리가 정씨의 단독범행이 아닌 광주지부나 노조본부의 관련 여부가 드러날 경우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광주지검 수사전담반(반장 이광형 형사2부장)은 이날 “기아차 광주지부장 정 모씨의 금융계좌뿐만 아니라 관련 혐의가 있는 노·사에 대해서도 원칙대로 조사한다.”고 수사 원칙을 밝혔다. 검찰은 광명 소하리 노조본부 간부들에 대해서도 참고인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혀 정 지부장과의 인사비리 관련성 혐의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또한 2002년 이후 광주공장 생산계약직원들의 입사경위에 대해서도 관련서류를 확인중이다. ●광주시 고위관계자도 청탁의혹 검찰은 “정씨가 지난해 기아차 광주공장 생산계약직 채용 때 입사희망자 부모 등 8명으로부터 현금 1억 8000만원을 직접 받아 친동생에게 건네줬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밤늦게 정씨에 대해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지난해 광주공장에 생산계약직으로 들어온 김모(32)씨는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5월 노조 광주지부 간부의 조카에게 1300만원을 줬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발언은 광주지부 노조간부들의 인사비리 개입설을 방증하는 것이어서 수사 확대가 불가피해졌다. 광주시 고위 관계자가 청탁을 받고 근로자 2명을 기아차 광주공장에 취직시켜 줬다는 일부의 진술에 대해, 광주시 관계자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한편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는 이날 돈을 받고 다른 사업장에 노무원 등으로 취업시켜 준 부산항운노조 모 냉동창고 반장 정모(49)씨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현대차도 채용비리 의혹 기아차 채용비리 불똥이 울산의 현대자동차로 튀는 분위기다. 이 회사 노동조합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지난 23일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봄 현대차에서는 노조간부와 회사 인사담당, 브로커가 50여명의 신입사원으로부터 3000만원씩 15억원을 받았다.”는 글이 올랐다. 또 ‘평조합원’은 “한 사람 입사시키는데 3000만원이 든다는 게 사실이다.”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노·사는 모두 근거없는 유언비어라고 일축했다. 부산 김정한·광주 남기창·울산 강원식기자 jhkim@seoul.co.kr
  • 美정치판 ‘대물림’ 성행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이번 달 처음으로 의회에 등원한 일리노이주의 대니얼 리핀스키(민주) 하원의원은 “아버지 덕분에 공짜로 당선됐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아버지는 윌리엄 리핀스키 전 하원의원. 윌리엄은 지난해 11월 2일 선거가 치러지기 직전 은퇴를 발표한 뒤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해 버렸다. 민주당으로서는 예비선거를 치를 시간적 여유가 없어 대니얼을 그대로 후보로 냈다. 일리노이주는 민주당의 아성이어서 다니엘은 손쉽게 당선됐다. 미 상원 외교위에서 동아태담당 소위원장을 맡아 한반도 정책에도 발언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는 리자 머코스키(공화·알래스카)는 프랭크 머코스키 알래스카 주지사의 딸이다. 상원이었던 프랭크도 지난해 11월 주지사에 출마하면서 20년 동안 아성을 구축했던 지역구를 딸에게 넘겨 줬다. 이처럼 가문의 후광을 업고 손쉽게 의원에 당선되거나 정부 고위직을 차지하는 이른바 ‘블루 블러드(명문가)’의 고위직 세습에 대한 비판이 미국에서도 확산돼 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일 재선 취임식을 가진 조지 W 부시 대통령 본인이 대통령의 아들이자 상원의원의 손자로 동생 젭(플로리다 주지사)과 조카(조지 P 부시)가 대권후보군에 올라 이같은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100명의 상원의원 가운데 18명이 ‘집안의 후원’을 받아 당선됐다. 뉴햄프셔 출신의 존 스누누 상원의원은 아버지가 주지사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다. 또 아칸소의 마크 프라이어(민주), 유타주의 로버트 베넷(공화), 코네티컷의 크리스토퍼 도드(민주) 상원의원 등 6명은 아버지가 의원이었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매트 블런트 미주리 주지사도 하원의 공화당 원내총무인 로이 블런트 의원의 아들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영국의 경우 토니 블레어 총리가 600개가 넘는 세습 의원 자리를 철폐한 점을 지목하며 “워싱턴은 21세기에 프랑스 루이 14세 당시의 궁정정치를 재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주 캘리포니아 출신의 로버트 마쓰이 하원의원이 사망하자 나흘 뒤 그의 부인 도리스가 보궐선거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미국 여성정치센터에 따르면 미 의회에서 사망한 남편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당선된 여성은 모두 45명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성 가운데 한 명인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상원의원은 남편 빌 클린턴이 대통령 재직 중에 선거에 나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빌 클린턴과 96년 대선에서 격돌했던 밥 돌 전 상원의원의 아내 엘리자베스도 노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이다. 또 메인주에서 주지사를 지낸 존 매커난의 아내 올림피아 스노도 같은 주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유권자의 표를 얻어 당선되는 의원직과 달리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부 고위직에 명문가의 자제가 들어가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더욱 크다. 워싱턴포스트는 부시 대통령이 유명 정치가문들 덕분에 집권한 뒤 후원자의 자식들에게 보상을 해줬다고 비판했다. 부시 대통령 재임중 딕 체니 부통령의 딸과 사위가 국무부와 법무부에서 요직을 얻었으며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아들 마이클은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이 됐다. 또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딸은 보건부 감사 책임자에,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의 아들은 노동부의 최고위직 가운데 한 자리에 각각 임명됐다. 노동장관 일레인 차오는 켄터키 출신의 공화당 중진인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의 부인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주 감사인 캐럴 키튼 스트레이혼의 두 아들을 백악관 공보비서와 의료보험 담당국장으로 임명했다. dawn@seoul.co.kr
  • [일요영화]

    [일요영화]

    ●더 헌팅(SBS 오후 11시45분) 엘레노어(릴리 테일러 분)는 11년 동안 병든 어머니를 돌보며 세상과 격리돼 지내지만, 어머니가 죽자 갈 곳 없는 신세가 된다. 막막해하는 엘레노어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전화의 목소리는 심리학 실험에 참가할 사람을 구하는 신문광고를 보라고 알려준다. 광고는 수면장애를 가진 실험 대상자를 구하는 내용으로, 힐 하우스라는 대 저택에서 1주일을 지내면 900달러를 준다는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었다. 사실, 이 실험은 매로 박사(리암 니슨)가 공포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연구하기 위한 것. 엘레노어 외에도 자기도취가 심하지만 용감하고 매력적인 테오(캐서린 제타존스), 돈을 벌기 위해 실험에 참여한 냉소적인 루크(오웬 윌슨)가 중세식 저택 힐 하우스에 모여든다. 세 사람이 처음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박사는 집에 얽힌 이상한 얘기를 들려주는데, 갑자기 박사의 조수 메리가 피아노 줄이 끊어져 눈을 다치는 사고를 당하는 등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흐른다. 이때부터 악령의 집에 도사린 원혼이 불청객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는데…. 드라큘라 백작의 트란실바니아성을 연상케 하는 고딕식 건물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집안의 장식품들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장면도 섬뜩하다. 하지만 특수효과를 너무 남발해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리 잭슨의 공포소설을 원작으로 한 1963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영화를 ‘스피드’‘트위스터’의 얀 드봉 감독이 1999년에 리메이크했다.125분. ●선샤인 보이스(EBS 오후 1시50분) 허버트 로스 감독의 1975년 작. 앨 루이스(조지 번스)와 윌리 클락(월터 매튜)은 기억도 오락가락하고 거동도 느릿느릿한 백발노인이지만, 왕년엔 환상의 콤비로 이름을 날린 코미디언들이다. 옛날 무대에서 티격태격하며 배꼽을 쥐게 했지만, 실제로는 사이가 좋지 않다. 앨의 은퇴로 명콤비가 해체되면서 거의 앙숙이 돼 오랫동안 말도 안 나누고 지내온 상태. 쇼프로 감독인 윌리의 조카 벤(리처드 벤저민)은 특집방송을 앞두고 앨과 윌리의 재결합을 위해 동반출연을 제의하지만, 리허설에서 둘은 서로 트집만 잡다 사이만 더 나빠진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에 들어간 두 사람. 앨은 윌리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윌리는 그간 마음에 담아뒀던 불만을 쏟아내다 심장마비로 쓰러진다.125분.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91세 최고령가구 신카나리아

    [어떻게 지내세요] 91세 최고령가구 신카나리아

    “난 아직도 열일곱 살이에요.” 일제시대 때부터 가수 고 현인 등과 함께 노래했던 원로 가수 신카나리아(본명 신경녀). 그는 ‘꾀꼬리 가수’의 원조라는 별명과 함께 국내 가요계에서 예명을 처음으로 쓴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조리로’ 등 특유의 꾀꼬리 같은 간드러진 목소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40대 이상 추억의 팬들이 아직도 많다. 또한 고 이난영·황금심 등과 함께 우리나라 1세대 여가수의 길을 걸어오면서 가요계 발전에 큰 견인역할을 해왔다. 올해 91세로 현역 최고령 가수로 꼽힌다.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21일 오후 자택인 경기도 안산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난 17일에 이어 두번째였다. 어떻게든 직접 통화를 해보기 위해서였다. 역시 인근에 산다는 조카 신(57)씨가 전화를 받았다. 조카는 “지병인 심장병 병환이 좋지 않으니 통화는 어렵다.”고 똑같은 대답을 했다. 조카는 또 “하루에도 몇번씩 들러 병원에서 약을 타오는 등 병수발을 해주고 있다.”면서 “(신카나리아는)외부 나들이는 물론이고 외부인과 통화조차 잘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고령에다 지병이 겹쳐서인지 요즘 누워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부드러운 음식으로 하루 세끼 식사를 하고 있으며 혈육으로는 함께 사는 외동딸이 있다고 했다. 주말에는 친척들이 찾아온단다. 조카에 따르면 신카나리아는 간혹 TV를 시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가요무대’나 ‘열린음악회’를 즐겨본다는 것. 이럴 때면 ‘나는 열일곱살이에요’‘삼천리강산 애라 좋구나’‘노들강변’(변주곡) 등 자신이 불러 히트쳤던 노래를 흥얼거린다. 신카나리아는 2002년 10월 가요무대 800회 특집 때 잠시 얼굴을 내비치기도 했다.2002년 4월 가수 현인씨 장례식에 참석한 바 있다. 함남 원산 출생인 신카나리아는 1928년 ‘뻐국새’로 데뷔했으며 ‘강남따라’‘베니스의 노래’‘애수의 부르스’‘동백꽃’‘꽃이 피면’‘그리운 내고향’ 등의 대표곡을 남겼다. 김문기자 km@seoul.co.kr ●‘어떻게 지내세요’ 는 독자와 함께합니다. 각계 명사는 물론 한때 스타였던 인물, 화제를 뿌렸던 사건 속 주인공들의 근황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그들의 얘기 속에서 우리 자신을 추스르고 삶을 돌아보는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추천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연락처 : km@seoul.co.kr)
  • 기아車노조 채용비리 파문

    검찰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공장장 최종길) 노동조합 지부 간부가 계약직 직원 채용과정에서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정황을 확보, 내사에 나섰다. 이와 관련,20일 새벽 소하·화성·광주·판매·정비 등 기아차 노조 5개 지부 간부 200여명이 책임을 지고 모두 물러났다.5개 노조지부 가운데 3개가 지난해 광주공장 생산직 직원 채용에 직·간접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지검은 이날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 간부 A씨와 돈을 건넨 것으로 보이는 직원 등 8명의 거래통장을 압수, 사실을 확인중”이라고 밝혔다. 간부 A씨는 지난해 5월 광주공장 노조지부 사무실에서 B씨로부터 “조카를 직원으로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18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해 8월 A씨의 동생 통장에서 빠져나온 1억 2000여만원이 A씨의 부인 이름으로 된 증권거래 계좌로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비슷한 시기에 A씨의 부인 통장에는 1차례에 1억 8000여만원이 들어오기도 했다. 부인 앞으로 입금된 수표는 발행일자가 지난해 5월20일부터 7월9일까지로 적혀 있었다. 당시 계약직원 입사는 5월21일부터 7월8일로 돼 있어 입금일과 채용일이 서로 맞물려 있다. 더욱이 통장으로 돈을 송금한 8명 가운데 1명의 아들이 지난해 7월부터 기아차에 입사해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기아차 광주공장은 밀려드는 스포티지 수요에 따라 라인을 증설하면서 생산직원 1083명을 뽑았고 이들 모두 올 들어 지난 3일자로 정식직원이 됐다. 그러나 이들 중 450여명이 학력과 나이 등 생산직 채용기준에서 벗어나 돈을 주고 취업했다는 비리설이 노조원 사이에서 터져나왔고 투서가 오가기도 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생산직 채용비리 원인 계약직에서 정식사원이 되면 무엇보다 신분보장이 돼 맘놓고 근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여기다 연간 2400만원이던 급여가 3500만원으로 껑충 뛴다. 보통 실업계 고교 졸업자는 인문계 졸업자보다 1호봉이 높고 자격증 소지자는 여기에 1호봉이 더해진다. 군대 3년도 3호봉으로 쳐준다. 또 직계나 부양가족이 의료비로 50만원 이상을 지출했다는 영수증을 가져오면 이 돈을 회사비용으로 처리해 준다. 본인은 물론 자녀들도 대학까지 학자금이 지원되는 것은 물론 정년도 58세까지 연장된다. 노조에 가입하면 58세까지 근무할 수 있다. 취업난과 고용불안의 시대에 안정적인 직장인 셈이다. 그래서 대졸자 등 고학력자들이 생산직에 하향지원하기도 한다. 이번 사건도 학력과 나이를 속이고 취업했다는 것이 단서가 돼 불거졌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탈북 국군포로 中서 억류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끌려간 국군포로 한만택(72)씨가 한국으로 가기 위해 북한을 탈출했다가 최근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됐다고 중국내 북한 소식통들이 10일 밝혔다. 한씨는 이달 초 두만강을 건너 중국 옌지(延吉)에서 조카와 만나기 위해 한 호텔에 머물러 있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북한 소식통들은 “한국의 가족들이 한씨의 북한 생존 사실을 알고 수개월의 노력 끝에 기획 탈북을 결행했다.”며 “그가 북한으로 압송될 경우 극형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고령에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세 때문에 수용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외교경로를 통해 중국 당국에 한씨 억류 사실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한씨 억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중국에 신병인도와 함께 인도주의적 처분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북한에서 송환되지 않은 국군포로 500여명 가운데 지금까지 42명이 북한을 탈출해 귀환했다. oilman@seoul.co.kr
  • [깔깔깔]

    ●성형수술 *수술하고 싶을 때 1. 내 눈과 단추구멍이 구분이 안 될 때. 2. 소나기가 내렸는데 코에 빗물이 들어갈 때. 3. 면접 보러 갔더니 면접관들이 먼 산만 보며 질문할 때. *수술한 것을 후회할 때 1. 남자친구에게 성형수술했다고 고백했더니 돈 벌어서 다시 해준다고 할 때. 2. 돈 들여 수술하고 나이트클럽에 갔는데 ‘물 흐린다.’고 쫓겨날 때. 3. 눈, 코, 입 모두 수술했는데 10년만에 만난 친구가 나를 알아볼 때. ●팔씨름 9살 된 조카가 자기 친구와 팔씨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친구는 자기 아버지와 팔씨름을 여러 번 했는데 할 때마다 늘 이겼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심각하게 듣고 있던 조카가 한마디 했다. “너의 아버님 장난이 좀 심하신 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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