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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

    ■ 국무총리비서실 ◇고위공무원△정무기획비서관 沈相大■ 과학기술부 ◇4급 승진△장관실 조선학△기초연구정책과 나치수△우주기술협력팀 이창선△미주기술협력과 한형주△동북아〃 박진희△전략기술통제팀 권채순△평가정책과 조현숙 ◇4급 전보△원자력정책과 박진선△정보전자심의관실 나인광■ 통일부 ◇팀장 발령 △정책홍보본부 국제협력팀장 李種珠◇서기관 전보△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鄭宥秀◇서기관 승진△통일사료관리팀장 鄭粉姬△혁신재정기획본부 張相鎬△정책홍보본부 洪振碩■ 공정거래위원회 ◇서기관 승진△심결지원1팀 황명석△재정협력팀 이영일△국제〃 이용수△기업집단팀 안병훈△특수거래팀 정창욱△경제분석팀장 송상민△거래감시팀 남동일△제조카르텔팀 이순미△서울지방공정거래사무소 경쟁과 조규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처장 崔珍玉■ 이데일리 △광고1팀장(부국장대우) 金基琮 ■ 메리츠종합금융 ◇승진 (부장)△채홍국 강채민
  • 고암 이응로 화백 머물던 예산 ‘수덕여관’ 7월 복원 마무리… 작품 전시장으로

    한국 현대 미술계의 거장 고암 이응로(1904∼1989) 화백이 머물던 충남 예산 수덕사 앞 ‘수덕여관’이 해체 복원돼 새롭게 선보인다. 1일 충남 예산군에 따르면 오는 7월 덕산면 사천리 ‘수덕여관’의 복원작업이 마무리돼 일반인에게 개방된다. 충남도기념물 제103호로 부지 300여평에 건평 80평 규모인 이 여관은 지난해 10월 군비 등 4억여원을 들여 복원작업이 착수됐다. 예산군은 기둥과 대들보만 남기고 모두 교체하고 있다. 초가지붕을 새로 입히고 썩은 서까래 등도 갈았다. 옛 정취를 되살리기 위해 ㄷ자형 집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했다. 여관에는 10여개 방과 부엌 등을 갖추고 있다. 군은 복원작업이 끝나면 템플스테이(사찰문화 체험)와 이 화백의 전시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유가족과 유품 및 작품기증 문제를 논의 중이다. 고암은 40년대초 선배 화가인 나혜석을 만나러 갔다 수덕여관과 인연을 맺었다. 고암은 1944년 나혜석이 이곳을 떠나자 여관을 사들인 뒤 정착, 수덕사 주변 풍광을 그리다가 후배인 박인경(81)씨와 함께 58년 프랑스로 떠났다. 고암은 19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2년반의 옥고를 치르고 몸을 추스르기 위해 69년 2개월 동안 이곳에서 머물렀다. 이 때 새긴 추상문자 암각화가 뒤뜰의 너럭바위 두 곳에 남아 있다. 여관 현판도 고암이 직접 쓴 것이다. 수덕사는 2005년 말 고암의 큰조카로부터 이 여관을 사들였다. 예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수요기획(KBS1 오후 11시40분) 운동은 하면 할수록 좋다는 인식으로 늘어가는 운동 인구. 그런데 기록과 승부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건강을 망친다. 우리는 어떻게 운동을 해야 좋을까? 운동에 빠진 세 사람의 좌충우돌 운동중독 탈출기를 통해 혼자만의 운동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운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마왕(KBS2 오후 9시55분) 순기는 호텔로 찾아와 희수에게 형수님을 만나게 해달고 말한다. 하지만 희수는 그럴 필요 없다고 순기의 청을 거절한다. 희수에게 말을 해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순기는 석진에게 제주도 카지노 운영을 자기에게 맡겨 달라고 말한다. 석진에게 자신이 나희와 석진의 사이를 알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는데…. ●클로즈업(YTN 오후 1시30분) 흔히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얘기를 한다. 정의구현을 위해 법대로 하자는 표현도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진다. 최근 한·미 FTA 타결로 법률시장에도 큰 지각변동이 있을 예정이다. 법의 날을 맞아 김성호 법무부장관과 함께 법의 존엄성과 필요성을 들어 본다. ●다큐 여자(EBS 오후 9시20분) 강원도 양구군에는 13년차, 일본인 며느리가 있다. 한국인 남편 하나만 믿고 현해탄을 건너온 여자. 낯선 곳에 시집 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아이 셋을 낳고 살았다. 게다가 부모와 떨어져 있는 조카 두 명까지 돌보면서 열심히 살았다. 행복도 잠시, 남편은 너무 일찍 세상과 손을 놓아버렸다. ●생방송 TV 연예(SBS 오후 8시55분) 뮤직비디오에 함께 출연하는 윤계상·박시연 커플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실제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정준호의 휠체어 마라톤 도전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임채무의 변신 이유 등을 전한다. 이날 오후 6시부터 중계된 43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의 이모저모를 보도한다. ●내곁에 있어(MBC 오전 7시50분) 은호가 사기를 치고 달아난 기획사 사장을 찔렀다는 얘기에 은주는 혼절한다. 은호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간 자리에서 은호의 소식을 접한 지애. 집으로 돌아와 이같은 소식을 용기와 선희에게 전하고, 둘은 안타까워한다. 은주는 사표를 내지만 용기는 한 달만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라며 보류한다.
  • 여자전/김서령 지음

    어쩜 이리 기구할까…. 책을 읽다 보면 한숨과 때로는 눈물이 저절로 나온다. ‘여자전(김서령 지음, 푸른역사 펴냄)’은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여덟 할머니의 인생을 인터뷰로 녹여냈다. 누구나 내 인생을 글로 하자면 소설책 10권도 모자란다고 하고, 전쟁을 겪은 한국의 모든 가정에는 드라마틱한 사건 하나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8명의 여성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친지도 모른 채 어느날 전쟁터 한복판에 휩쓸렸다가 다음날 꿋꿋하게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살아간다. 백화점을 운영하는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난 고계연 할머니는 헤어진 아버지와 오빠를 찾으러 산에 갔다 빨치산이 된다. 동상으로 썩은 발가락을 스스로 부러뜨리고, 이불장사를 하며 조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린다. 김후웅 할머니는 북으로 간 남편을 50년간 기다리며 안동의 명문가를 지켰다.2003년 금강산에서 남편을 상봉한 이후 지금도 통일을 기다리며 종가를 지킨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꾐에 기차에 탄 17살의 김수해 할머니는 중국 목단강시에서 위안부란 지옥 같은 수렁에 빠진다. 도망치다 몸에 인두자국이 새겨졌고, 임신을 하자 병원에서는 아예 자궁을 도려내 버린다. 중국 공산당원이었던 남편과는 ‘남자와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쉰이 넘어서야 결혼을 한다. “남자라 카믄 근처에만 가도 군지럽고 숭실시러운데 같이 살 수가 있어야제.”라고 할머니는 상처를 말한다. 양평 바탕골예술관의 박의순 대표는 안기부도 욕으로 제압한 문화판의 걸출한 욕쟁이 할머니이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지만 얼굴에는 호기심과 장난기가 넘쳐난다. 대학로 바탕골소극장에서 우리나라 소극장 문화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스스로 무당이 되어 1987년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씨의 9일장을 치른다. 그저 여린 여성의 몸뚱이 하나로 역사의 질곡을 건너온 이들의 삶은 말과 글을 초월한다. 이제는 웃음과 여유로 지나온 삶을 들려주는 할머니들 앞에서는, 배우고 또 배워야 할 용기와 지혜가 넘쳐난다.1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6) 역관 명문 인동 장씨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6) 역관 명문 인동 장씨

    지금까지 확인된 조선시대 잡과(雜科) 합격자는 모두 6122명이다. 이 가운데 역과가 2976명, 의과가 1548명, 음양과가 865명, 율과가 733명 순이었다. 산학(算學)은 정조 즉위년(1756)부터 주학(籌學)이라고 했는데, 잡과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취재(取才)를 통해 1627명 이상 선발했다. 역과가 가장 많은 합격자를 냈는데, 인조가 병자호란 때에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나라에 항복한 이후 역관(譯官)의 업무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사신들의 여비를 공식적으로 지급하지 않고,1인당 인삼 여덟자루(80근)를 중국에 가져다 팔아 쓰게 했다. 돌아올 때에 골동품이나 사치품을 사다가 팔면 몇배의 장사가 되었다. 인삼이 차츰 귀해지자, 인조 때에는 인삼 1근에 은 25냥으로 쳐서 2000냥을 가져다 무역하게 하였다. 사신들은 중국 장사꾼과 만날 수 없어 사신들의 몫까지 역관들이 대신 무역했다. 역관들이 무역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고, 서울의 돈줄은 역관의 손에 달려 있었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서 허생이 돈을 빌린 갑부 변씨도 역관이다. 변씨는 허생을 어영대장 이완에게 추천하여 벼슬을 주려 했다. 역관들은 막대한 재산과 해박한 국제정세를 통해 정권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갔다. 역관의 딸로 왕비에까지 오른 장희빈이 대표적인 예이다. 인동 장씨는 역과 합격자가 22명뿐이라 전체의 1%도 채 안되지만,1등 합격자가 많고 정치적·경제적 수완이 뛰어난 인물들이 나와 역관 명문을 이루었다. ●역관들 중국과의 인삼무역으로 막대한 돈 벌어 원래 양반인 인동 장씨 집안에서는 20대 경인과 응인 대에 이르러 처음 역관이 되었다. 장경인은 1628년 명나라에 진향사(進香使) 역관으로 갔다가 사신이 재촉해 시세에 맞게 팔 수 없게 되자 중국인 앞에서 서장관을 욕해 나중에 심문을 당했다. 경험이 없어 첫 장사에 실패한 것이다. 그의 맏아들 장현(張炫)이 1639년 역과에 1등으로 합격해 사역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고,40년 동안 북경에 30여차례나 다녀왔다.‘인동장씨세보’에는 장경인 이하 역관 집안이 빠져 있어, 김양수 교수는 역과방목과 ‘역과팔세보(譯科八世譜)’ 등을 통해 이 집안이 어떻게 역관 집안으로 정착되었는지 조사했다. 다른 역관들도 인삼 무역을 통해 부자가 되었지만, 장현은 색다른 방법을 썼다. 자신의 딸을 효종의 궁녀로 넣어, 왕을 후견인으로 삼은 것이다. ●왕명으로 화포까지 밀수입 효종 4년(1653) 7월에 대사간 홍명하가 자신의 벼슬을 바꿔달라고 아뢰었다. 사신들이 압록강을 건널 때에 화물 50여 바리에 내패(內牌)가 꽂혀 있어 물의를 일으킨데다, 불법무역을 심문당하던 역관 김귀인이 동료들의 이름을 끌어대자 형관이 손을 저어 말렸기 때문.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이었다. 내패(內牌)는 내수사(內需司)의 짐이라는 꼬리표였으니, 역관 장현의 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도 손댈 수 없었다. 효종은 “풍문이 사실과 다르다.”면서 장현을 감싼 뒤에, 도강 초기에 50바리라는 것을 알았으면 왜 그때 조사하지 않고 지금 와서 시끄럽게 구느냐고 오히려 나무랐다. 이날의 실록 기사에는 장현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관은 이 기사 끝에 “성명을 끌어댄 자는 역관 장현인데, 궁인(宮人)의 아버지이다.”라고 붙였다. 대사간이나 효종의 입에서는 장현의 이름이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한번의 무역만으로도 엄청난 이익을 남겼는데, 무역량과 그 이익은 해가 가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눈덩이처럼 커졌다. 심지어는 화포(火砲)까지 밀수입하다 청나라 관원에게 적발되기까지 했다. 염초(焰硝)나 유황(硫黃), 화포 등의 무기류는 금수품(禁輸品)이다. 선양에서 모욕적인 인질생활을 겪었던 효종은 복수를 다짐하며 북벌책(北伐策)을 강구했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기를 사들였다. 현종 7년에도 최선일이 염초와 유황을 밀수하다 적발돼 청나라 사신에게 문책당하고 몇천금의 뇌물을 썼다. 숙종 17년(1691) 6월에는 장현의 밀수건이 문서로 넘어왔다. 몇년 전에 청나라에서 화포 25대를 구해오다가 봉황성장(鳳凰城將)에게 적발된 사실이 자문(咨文)으로 이첩돼와, 조정에서도 할 수 없이 “장현을 2급 강등시키겠다.”고 청나라에 알렸다. 그가 역모를 꾸미지 않았다면, 화포는 당연히 나라에서 쓸 물건이다. 적어도 화포 밀수건은 왕의 묵인하에 저지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장현의 신임이 그만큼 두터웠고, 그에 따른 경제적 이익도 막대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응인은 경인과 사촌 간으로 선조 16년(1583) 의주에 역학훈도(譯學訓導)로 있었다. 목사와 통군정에 올라 시를 짓는데, 술을 따르고 운을 부르자 술잔이 식기 전에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그의 아들 장형(張炯)도 취재를 거쳐 사역원 봉사를 지냈다. 그의 장인 윤성립은 밀양 변씨 역관 집안의 사위였다. 장형의 맏아들 장희식은 효종 8년(1657) 역과에 장원으로 합격해 한학직장(漢學直長)이 되었으며, 작은아들 장희재는 총융사까지 올랐다. 딸이 장희빈이니, 장희빈의 외할머니는 조선 최고의 갑부 역관 변승업의 큰할아버지 딸이었다. 안팎으로 역관 집안들과 혼맥을 이루면서, 인동 장씨도 역관 집안의 핵심이 되었다. 장희빈이 처음 종4품 후궁인 숙원(淑媛)에 봉해지던 숙종 12년(1686) 12월10일 사관은 이렇게 기록했다. ●정치력 발휘, 장희빈을 왕비로 장씨를 책봉하여 숙원으로 삼았다. 전에 역관 장현은 온나라의 큰 부자로 복창군 이정과 복선군 이남의 심복이 되었다가 경신년(1680) 옥사에 형을 받고 멀리 유배되었는데, 장씨는 바로 장현의 종질녀(從姪女)이다. 나인(內人)으로 뽑혀 궁중에 들어왔는데, 얼굴이 아주 아름다웠다. 경신년(1680)에 인경왕후가 승하한 후 비로소 은총을 받았다. 왕실과 가까이 했던 장현은 경신대출척으로 한때 밀려났지만, 바로 그해에 오촌 조카딸 장희빈이 숙종의 눈에 들면서 기사회생하였다. 장현이 딸을 궁녀로 들였던 것처럼, 장형도 역시 딸을 궁녀로 들였다. 인경왕후는 노론 김만기의 딸이니,‘구운몽’의 작가 김만중의 조카딸이기도 하다. 숙종 14년(1688) 10월에 장씨가 아들을 낳자 숙종은 노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원자로 정해 종묘사직에 고했으며, 소의(昭儀·정2품) 장씨를 희빈(정1품)에 봉했다. 노론을 견제하려던 종친과 남인들이 장희재 주변에 모여들자, 서인의 영수 송시열이 “원자로 정하는 것이 너무 이르다.”고 상소했다가 남인의 공격을 받고 삭탈관직당했다. 노론의 등쌀을 지겨워했던 숙종이 장희빈에게 마음이 기울면서 남인을 편들어준 것이다. 다음날로 목내선을 좌의정에, 김덕원을 우의정에, 심재를 우의정에 임명하면서 정국을 뒤바꿨다. 이것이 바로 기사환국이다. 장희빈의 아버지 장형은 영의정, 장수는 좌의정, 할아버지 장경인은 우의정에 추증하여, 역관 집안이 정국의 핵심에 들게 되었다. 목내선은 “역관 장현이 청나라 내각의 기밀문서를 얻어온 공로를 표창해 주십사.”고 아뢰었다. 이미 품계가 숭록대부(종1품)까지 올라 더 이상 오를 수 없지만 “600금이나 비용을 쓴 점을 감안하여 그 자손에게라도 수여하자.”고 하자, 왕이 “그 자손에게라도 한 급을 올리라.”고 했다. 장희빈이 왕비로 책봉되자, 오빠 장희재도 포도대장을 거쳐 총융사에 올랐다. 숙종실록 18년 10월24일 기사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렸다. ●서울의 돈줄 좌지우지 왕이 주강(晝講)에 나오자, 무신 장희재가 아뢰었다.“신이 주관하고 있는 총융청은 군수(軍需)가 피폐하므로, 병조판서 민종도와 상의하였습니다. 병조의 은 1만냥을 꿔다가 장차 교련관에게 주고, 사신이 북경에 갈 적에 같이 가서 잘 처리하여 그 이득을 가지고 동(銅)을 무역해다가 주전(鑄錢)하는 재료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옳게 여겼다. 이때 민종도와 장희재가 서로 안팎이 되어 마구 뇌물 주기를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했었다. 숙종이 기사환국을 통해 당쟁으로 약화된 왕권을 회복하려고 하자, 남인들은 그 기회를 이용해 집권하고 서인에게 복수하려 했다. 장희재는 국고를 이용해 역관의 무역방식으로 재산을 불렸다. 후대의 사관은 군수(軍需)를 빙자한 무역의 이익이 결국은 두 사람의 뇌물로 쓰였을 것이라 판단했다. 수출과 수입을 통해서 몇배를 벌어들인 뒤에 그 구리로 동전까지 찍어 풀었으니, 얼마가 남는 장사였는지 계산하기 힘들다. 서울의 돈줄이 역관 집안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허생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달빛 아래 희망을 건지다

    달빛 아래 희망을 건지다

    글 이호준 《서울신문》 뉴미디어국장 겸 비상임논설위원 퇴근하려고 책상 정리를 하던 중에 조카의 전화를 받았다. 회사 근처에 와 있다며 저녁을 사달라는 것이었다. 모처럼 만난 조카는 무척 수척해져 있었다.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한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졸업이 코앞인데 아직 취업을 못하고 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랴. 청년실업이 국가적 문제가 된 지 하루 이틀이 아닌 마당에 취업을 못한 게 어찌 내 조카뿐일까만,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저녁 겸 술이라도 한 잔 같이 하려고 가까운 음식점에 가 앉았다. ”너무 고민하지 마라. 몇 년씩 놀고 있는 애들도 많다며. 요즘은 이태백이 아니라 이구백이라고 한다잖니?” 작은아버지의 어설픈 위로에 답례로 짓는 웃음이 무척 씁쓸해 보인다. ”그래,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목표는 정했니?” ”작은아버지도 참. 무슨 일이 어디 있어요. 아무 곳에나 원서를 넣어 보는 거지. 배부른 소리 할 때가 아니잖아요. 정말 답답해 죽겠어요. 전부 저만 보고 손가락질하는 거 같고….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니까요.” ”그래, 그 심정 이해가 간다. 그래도 뭔가 순서가 바뀐 것 같다. 아무리 취업이 급하다지만 무턱대고 원서를 내서야 쓰겠냐.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인생을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선택이 있어야지.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평생 하겠다는 거냐? 지금 넌 초조감에 빠져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거야. 이럴 땐 차라리 한 발 비켜서서 세상을 바라볼 필요도 있어. 여행을 하거나 한 적한 곳에 가서 며칠 지내다 오도록 해라. 네 내면에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진정으로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을 거다. 사람은 아주 엉뚱한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찾기도 하니까.” 조카는 현실과 동떨어진 잔소리를 늘어놓는 작은아버지가 답답하다는 표정이지만 별 대꾸 없이 술잔을 기울인다. 나는 나대로 잠시 상념에 젖는다. 그래, 내게도 너 같은 젊은 날이 있었다. 자꾸만 넘어지고 깨어지던 시절…. 목표로 삼은 일에 연이어 실패한 뒤 세상과 결별하는 심정으로 산골의 작은 마을을 찾아 들어간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 내 곁에는 죽음이란 단어가 따라다녔던 것 같다. 아무 하는 일 없이 그곳에서 머문 지 보름쯤 된 어느 밤이었다. 그날은 달빛이 무척 밝았다. 창을 뚫고 들어와 방바닥을 유영하는 달빛은 황홀할 정도로 눈부셨다. 그러지 않아도 밤마다 불면에 시달리는 내게 그런 달빛은 차라리 고문이었다. 결국 문을 열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나를 불러낸 건 꼭 달빛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강한 힘에 끌려가기라도 하듯 나는 걷기 시작했다. 희다 못해 푸른빛마저 도는 달빛이 발길마다 채여 산산이 부서졌다. 그렇게 방향도 모른 채 걷다가 작지도 크지도 않은 개울을 하나 만났다. 물 속의 달 역시 하늘의 달 못지않게 아름답게 빛났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개울가의 돌 위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내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달빛이 부서지는 것이려니 했다. 그게 달빛도 아니고 물거품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꽤 한참 들여다본 뒤였다. 물고기 떼, 정확히 말해서 붕어들이었다. 수많은 붕어들이 줄을 지어 물길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저 물 속에 저만큼의 붕어가 살고 있다니, 낮이라면 짐작도 못할 일이었다. 붕어들은 물이 얕은 곳에서는 옆으로 누워 파닥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달빛을 받아 번쩍이는 비늘. 그들의 행진은 때로는 군무처럼 때로는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헤엄치다 솟아오르고 구르고…. 이슬이 옷깃에 내려앉아 축축했지만, 나는 시간 감각을 상실한 채 그 엄숙한 광경 속에 풍덩 빠져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정신이 조금 들면서, 붕어들이 무엇을 향해 저리도 처절한 몸짓으로 오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들의 밤잠을 빼앗고 저렇게 행진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계시처럼 머리를 스친 답은 달빛이었다. 붕어들은 황홀하다 못해 광기까지 느껴지는 달빛을 흠모해서 오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빛의 근원인 달에 다가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었다. 오를 수 있고 없고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할 뿐이었다. 벅찬 감동에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밤마다 그 내를 찾아갔지만 달을 향해 오르는 붕어들의 몸짓은 다시 볼 수 없었다. 며칠 뒤 나는 그곳을 떠나 다시 도시에 섰다. 조카에게 젊은 날에 내가 겪었던 좌절과 방황, 그리고 다시 일어서게 된 계기를 들려주며 두서 없는 잔소리를 보탰다. ”난 그날 붕어들의 도전을 보고 세상을 보는 눈과 살아가는 방식을 바꿨다. 목표를 향한 그들의 열정은 아름다움을 지나 감동 그 자체였다. 그 뒤로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그날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했다. 살다보면 무모해 보일 정도의 열정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에, 지금 네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취업이 안 됐다는 게 아니라 꿈을 잃었다는 것이다. 취업은 언젠가 되겠지만 잃어버린 꿈은 다시 찾기 어려운 것이니….”     월간 <삶과꿈> 2007.02 구독문의:02-319-3791
  • 7살짜리 초능력인? 포커 패 꿰뚫어보는 소년

    7살짜리 초능력인? 포커 패 꿰뚫어보는 소년

    “뭐요,남의 포커 패를 마치 자신의 패처럼 꿰뚫어 본다구요? 그것도 7살짜리 소년이!” 중국 대륙에 마치 자신의 패를 들여다보듯 남의 포커 패를 투시해 꿰뚫어보는 신비의 초능력 소년이 등장,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초능력 소년은 중국 중부 후베이(湖北)성 샤오간(孝感)시 한촨(漢川)에 살고 있는 위줘취안(余卓泉·7)군.그는 얼마전부터 남의 포커 패는 말할 것도 없고 마작의 패까지 투시해 꿰뚫어보는 신비한 초능력을 발휘하는 바람에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고 초천도시보(楚天都市報)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위군은 외모상으로는 여느 어린이처럼 정신이 해맑고 천친난만한 모습 그대로다.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면 옆에서 보기 무서울 정도로 대단한 집중력을 보인다고. 그가 초능력을 보인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어릴 때부터 자폐증을 앓아 다른 어린이들과 별로 어울리지 못했다.이 때문에 늘 혼자 집에서 블록놀이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러던 중 삼촌이 포커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본 위군이 자신은 멀리서도 삼촌이 무슨 패를 들고 있는지를 알아맞힐 수 있다고 말해 ‘초능력’의 일단을 드러내보였다. 원래 자폐증을 앓은 어린이들이 보통의 어린이들보다 집중력이 높아 가끔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던 삼촌이었지만 조카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삼촌은 3m쯤 떨어진 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들고 있는지를 시험해본 결과,하나도 틀리지 않고 위군이 모두 알아맞히는 신통력을 발휘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위군이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지면서 중국 전역에서 초능력을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TV방송국,마술협회 회장,의학박사,인체과학연구원…. 지난달 14일 오후 우한(武漢)시의 셰허(協和)의원의 소회의실 초능력 시험장.기자 등 방송국 관계자,마술사,의사,연구원 등 20여명의 관람객들은 숨을 죽이고 위군의 초능력을 지켜보고 있었다.마술협회 리강(李鋼) 회장이 마술을 부리지 않은채 포커를 현란하게 섞은 뒤 위군에게 알아맞히도록 했다. “4 스페이드,7 하트,A 다이아몬드….” 리 회장이 카드를 뽑아들자마자 위군은 지체없이 그 카드가 무엇인지를 한치의 착오도 없이 알아맞혔다.이를 지켜본 관람객들은 한결같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초능력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모두 알아맞힐 수 있나.”라고 혀를 내둘렀다. 위군의 아버지는 “샤오취안(小泉)이 어릴 때부터 자폐증을 심하게 앓아 다른 어린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놀아 많이 신경이 쓰였다.”며 “어느날 갑자기 초능력을 보여 깜짝 놀랐다.”고 털어놨다.그는 이어 “초능력 자체에는 별 흥미가 없다.”며 “무엇보다 자폐증이 나아 건강한 아이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어린 왕자’ 삽화 원화 발견?

    |도쿄 박홍기특파원|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명작인 ‘어린왕자’ 삽화의 원화로 보이는 그림이 일본에서도 발견됐다고 아사히신문이 4일 보도했다. 신문은 야마나시현 ‘그림책 박물관 기요사토’가 소장하고 있던 수채화 1장이 어린왕자에 나오는 ‘원래 그림’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A4 크기의 옅은 색 종이에 그려진 그림은 어린왕자가 지구로 오기 전에 네번째로 들렀던 사업가가 사는 별과 관련됐다.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어린왕자의 원화는 모두 47점으로 알려졌으나 지금껏 5점만 발견됐다. 이 그림이 원화일 경우,6점이 되는 셈이다. 그림은 박물관을 운영하는 시부야 미노루(60)가 지난 94년 도쿄의 한 고서점에서 120만엔에 구입해 고증한 결과,43년의 초판과 같은 페이지 번호가 적힌 데다 생텍쥐페리가 애용한 종이인 점 등으로 미뤄 진본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조카인 프랑수아 다게(81)는 “원화일 확률이 99%다.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hkpark@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3)儒林 누른 세조의 힘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3)儒林 누른 세조의 힘

    조선 세조(1417∼1468)는 불교대호왕(佛敎大護王)으로 불릴 만큼 전무후무한 불교 후원자였습니다. 양주 회암사와 여주 신륵사, 양평 수종사, 오대산 상원사와 금강산 건봉사·표훈사·유점사, 양양 낙산사, 영암 도갑사, 합천 해인사 등 방방곡곡의 수많은 절을 창건하거나 중수했지요. 세조는 온몸의 종창으로 크게 고생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왕위에 오르고자 조카인 단종을 죽이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으니 자업자득이라고 수군거렸지요. 불교에 의지한 것도 업보(業報)를 씻기 위해서라고들 했습니다. 하지만 세조가 불교 중흥에 힘쓴 가장 큰 이유는 왕권을 제약할 만큼 성장한 신흥사대부를 견제하려는 데 있었던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습니다. 어린 단종이 집권한 뒤 유신(儒臣) 세력이 부각되면서 왕권과 신권(臣權)의 균형이 무너지자 ‘국정의 원상회복’을 외치며 반기를 들었던 이가 훗날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입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국보 제2호 원각사터10층석탑은 이처럼 세조가 중심에 선 조선 왕실과 사대부들이 벌인 주도권 다툼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소재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원각사의 창건과 10층석탑의 조성은 세조가 국왕의 권위를 보여주려던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세조가 자신의 통치력을 과시할 수 있을 만한 권위의 상징물을 만들고 싶은 의도를 원각사로 구현시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교국가의 도성 한복판에, 그것도 주변 어디서나 바라보였을 12m짜리 고층불탑이 세조 13년(1467년) 완성됐을 때 신진사대부들의 굴욕감은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인가 석탑의 8∼10층이 땅에 끌어내려진 뒤 1946년 미군공병대의 크레인이 동원되어서야 제 모습을 찾은 것도 유신들이 가졌던 불쾌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세조의 둘째 아들인 예종이 재위 1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13세에 불과한 성종이 즉위하자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사림정치의 기반이 공고해지면서 성종 5년(1474년) 불상은 회암사로 옮겨지고, 승려들도 내보내 원각사는 절의 기능을 상실합니다. 조광조 등이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만들겠다며 도학정치를 부르짖던 중종시대에 원각사터는 아예 택지로 분양되었습니다. 하지만 명종시대 잇따라 큰 불이 나고, 임진왜란(1592∼1598)을 거치면서 원각사터에는 다시 10층석탑과 탑비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이후 대한제국 광무 원년(1897년) 공원으로 지정되기까지 300년 동안이나 원각사터는 왕실과 유신들의 상호견제 속에서 빈터로 남아 있게 됩니다. 원각사탑은 고려 충목왕 4년(1348년)에 세워진 라마불교의 영향이 짙은 원나라풍의 경천사10층석탑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대리석탑이지만, 조선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미술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미술사적 시각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적 가치까지 부여했을 때 원각사탑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가능해질 것입니다. dcsuh@seoul.co.kr
  • ‘골프장 사장 납치’ 정씨 긴급체포

    경기도 H골프장 사장 납치사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정모(38)씨가 16일 경찰에 검거되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사건의 진상에 의문이 생기고 있다. 인천공항경찰대는 이날 오전 2시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 H호텔에서 정씨를 체포했다. 정씨는 도피중에도 고급 호텔과 룸살롱을 드나드는등 기이한 행태를 보였다. 정씨는 경찰조사에서 납치에 개입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사건을 주도한 것은 윤씨와 김 변호사”라고 강조했다. 구속된 골프장 사장 외삼촌 윤씨와 부장검사 출신의 김 변호사는 그동안 사건의 주된 책임을 정씨에게 미뤄왔다. 김 변호사는 “정씨가 요구해 가짜 체포영장을 만들어줬고, 사건 전후로 정씨에게서 각종 협박을 받았다.”며 정씨가 사건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사건 관련자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성향을 감안할 때 정씨 이야기도 믿을 수는 없어 경찰은 아직까지 이 사건의 주모자를 단정짓지 못하고 있다. 정씨는 또 “납치의 대가로 윤씨로부터 1500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경찰 발표를 전면 부인했다. 김 변호사에게 법률자문을 받는 조건으로 가담했다는 것이다. 금전적 보상없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주장을 믿기 어렵지만,1500억원은 납치의 대가치고는 천문학적 액수여서 경찰의 발표도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 설의 근거는 ‘정XX 1500억원’이라고 쓰여진 윤씨의 메모가 전부일 뿐 관련자들의 구체적 진술은 없다. 납치극을 누가 제의했는지도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사건 발생 6일전 윤씨와 김 변호사, 정씨 등이 음식점에서 만나 공모했다.”고 밝혔다. 이는 자연스럽게 골프장 분쟁 당사자인 윤씨가 납치를 제의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김 변호사나 정씨가 조카와 골프장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윤씨에게 역으로 제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변호사와 정씨는 지난해 여름 김 변호사 선배 소개로 알게 돼 술자리와 골프를 함께 하며 친해졌다.김 변호사는 또 2001년 수원지검 평택지청에 근무할 때 사건 참고인인 윤씨를 알게 돼 친분을 쌓았다. 윤씨와 정씨 중심에 김 변호사가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김 변호사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 있는 말을 하기도 했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이두한 원장의 건강이야기] “항문이 빠질 것 같아”

    시골에 계신 이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연인 즉 10여년 전부터 항문 주위가 내려앉고 빠지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었다. 농사일이라는 게 밭을 맬 때도 쪼그리고 앉아야 하고, 부엌일도 늘상 쪼그려 앉아야 하니 왜 안 그럴까. 그러던 게 요즘에는 ‘밑이 빠질 것만 같아’ 먼 길을 걷지도 못한다고 하셨다. 워낙 예민한 성격이라 가족들도 성격 탓이려니 했고, 당신도 못내 쉬쉬 하셨지만 그 새 고통은 커져 갔고, 그 때마다 혹시 암이나 다른 큰 병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많았다고 하셨다. 고민 끝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조카를 찾아 오셨다. 검사 결과 특별한 이상은 없었지만 항문 왼쪽의 거근을 눌러 자극을 가했더니 몹시 아파하셨다. 항문거근 증후군이었다. 항문에는 항문을 떠받치는 ‘항문거근’이라는 근육이 있는데, 여기에 지속적으로 통증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항문거근 증후군이다. 아직까지 확실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근육염이나 신경염이 원인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증상도 간단해 나이 많은 고령자에게 흔한 신경통이 어깨나 무릎, 허리 대신 항문 부위에 나타났다고 보면 맞을 듯하다. 이 질환이 오면 항문 안에 뭔가 꽉 차 있는 느낌과 함께 항문이 내려앉거나 빠지는 느낌이 든다. 오래 걷거나 앉아 있으면 이런 증상이 더욱 심해지지만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증상이 덜하다. 간혹 자다가 10여분간 항문에 심한 통증이 오기도 하는데, 이는 항문 주위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리에 쥐가 나는 것과 흡사한 이유다. 이런 증상 때문에 혹시 큰 병이나 아닐까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큰 병은 아니다. 그러나 드물게는 다른 병이 작용하기도 하므로 증상이 보이면 항문과 직장, 산부인과 검사는 꼭 해볼 것을 권한다. 치료도 어렵지 않다.2주에 한번씩 2∼3회 정도 항문 거근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거나 통증 부위에 전기자극을 가하기도 하며 더러는 거근을 마사지해 근육을 이완시키면 통증이 사라진다. 대항병원장
  • [깔깔깔]

    ●소음공해 조카딸 제인이 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에게 생일선물로 아주 좋은 피아노를 사드렸다. 몇주 지나 고모는 제인을 보고 어머니가 피아노를 잘 하고 계시냐고 물었다. “설득을 거듭해서 클라리넷으로 바꾸게 했지 뭐예요.”라고 제인은 답했다.“어째서?” “있잖아요, 클라리넷을 불면서는 노래를 부르지 못 하잖아요.”●미운 아내 한 남자가 휴가를 즐기려 아내와 함께 성지 예루살렘에 갔다. 그런데 거기서 아내가 죽었다. “5000달러를 내시면 고향집으로 보내드릴 수 있고,150달러면 이곳 성지에 묻어드릴 수 있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사내는 집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단돈 150달러면 여기서 매장할 수 있는데 5000달러씩이나 들여 일부러 집에 데려가려는 이유가 뭡니까?” 남자가 대답하길, “2000년 전에 여기서 어떤 사람이 죽어 매장을 했더니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그런 모험은 할 수 없습니다.”
  • [길섶에서] 그 어린이들/함혜리 논설위원

    지난해 말 나의 주말을 즐겁게 해 주었던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여주인공 나상실은 남주인공 장철수의 조카들을 이렇게 불렀다.“어린이들!” 나는 어린이들을 좋아한다. 여행할 때나, 출장 다닐 때, 취재 중에 어린이들이 보이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곤 했다. 파일에 저장해 놓은 사진들을 가끔 꺼내 본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 천진난만한 미소…. 어린이들은 어느 나라나 똑같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맑아진다. 재작년 6월 파리에서 음악축제 취재를 나갔다가 거리에서 연주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무릎 위에 기타를 올려놓은 채 친구의 키보드 연주를 듣고 있는 소녀. 그 왼쪽에선 다른 어린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 사진을 프랑스의 문화경쟁력을 다룬 3월9일자 프렌치리포트에 사용했다. 사진 한장이 글의 모자람을 잘 채워준다. 그냥 좋아서 찍었던 사진들이 요즘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참 고맙다. 내가 찍은 사진 속의 그 어린이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내년 링컨모델에 15만개 납품”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조카이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사위인 조현범(35) 한국타이어 부사장이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7일 서울 정동 미국대사관저에서 열린 미국 포드사의 링컨MKX 신차 발표회장에서다. 타이어 납품업체 대표 자격으로였다. 다음은 일문일답.▶포드사에 타이어를 얼마나 공급하나.-몬데오 등 전 세계로 나가는 포드차에 700만개가량 납품한다.▶이번에 출시된 링컨MKX에도 한국타이어가 장착되나.-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내년부터 링컨 브랜드에 15만개가량 납품하기로 이미 합의됐다.▶경영기획본부장으로서 한국타이어의 해외시장 진출은 거의 조 부사장이 진두지휘하는데 신규 진출 계획은.-현재 진행 중인 인수합병(M&A) 계획은 없다. 다만 내년쯤 인도공장 건설 등을 검토할 생각이다.2012년까지 연간 1억개 생산체제(현재 6800만개)를 갖출 방침이다.▶최근 인사에서 사장이 바뀌었는데. 후계구도 강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후계는 무슨…. 요즘 같은 세상에 후계자가 어디 있나.(오너 아들도)능력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사회다.(서승화 사장 선임은)그냥 세대교체로 봐달라.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02일 TV 하이라이트]

    ●신동엽의 있다! 없다?(SBS 오후 6시50분) 갈비구이, 갈비찜은 들어봤지만 갈비주스는 생소하기만 하다. 갈비로 만든 주스가 과연 있는지 알아본다. 스타 아무개가 테니스 잡지의 모델로 활동한 적이 있는지,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지도 살펴본다. 또 주민등록번호가 1111111인 주민등록증이 있는지도 확인해 본다.   ●거침없이 하이킥(MBC 오후 8시20분) TV에서 한 연예인이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부인과 살겠다는 장면이 나오자 해미는 문희에게 어머님도 다시 태어나면 아버님과 사실 거냐고 묻는다. 문희가 대답을 하지 않자 순재는 문희를 따라다니며 꼬치꼬치 묻는다. 한편, 민정은 학교에서 민용과 자꾸 마주치자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시댁과의 갈등이 있을 때,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이 시댁 편만 들어서 속상할 때가 많다. 드센 시조카한테 매번 맞는 큰아이. 시부모 앞에서 시조카를 혼내지도 못하고 속이 타들어 간다. 대신 나서서 한마디 해주면 좋으련만…. 무관심한 남편에게 서운한 두 아이의 엄마, 김규남씨의 사연을 알아본다.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초등학교 교사인 지연은 같은 직업을 가진 민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서로 같은 일을 하며 알콩달콩 살아갈 생각에 한껏 부풀어있던 지연에게 느닷없이 혜주란 여자가 찾아온다. 두 사람은 혜주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 몇 년 동안 부부처럼 지내온 사이다.   ●사이언스+(YTN 오후 1시40분) CF에서 비보이와 함께 비트박스에 맞춰 외국곡 ‘캐논’을 멋지게 소화한 가야금. 이를 들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가야금의 재발견”이라고 말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느리고 지루하기 그지없다고 여겼던 가야금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게 됐다. 가야금 소리의 비밀에 대해 알아본다.   ●아시아의 창(KBS1 밤 1시30분) 한 남자가 상하이의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북쪽 시골마을에 정착해 빈곤한 생활을 시작한다. 새로운 생활은 마약 중독으로부터 해방된 행복한 시간을 선사했다. 그러나 고향인 상하이에서는 마약에 중독된 두 아들을 그리워하며 다시 함께 조용하게 살기를 기대하는 노부모가 있다.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김종면 기자의 시사 고사성어] 拾人牙慧(습인아혜)

    중국 진(晉)나라 때 은호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언변이 뛰어났고 청담(淸談)으로 당대에 이름을 날렸다. 그에게는 한강백이라는 외조카가 있었다. 그 역시 말이 청산유수였다. 어느 날 은호는 한강백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았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의 말을 판박이로 흉내내고 있는 것 아닌가. 이에 은호는 “한강백은 내 이빨 뒤에 붙은 찌꺼기도 얻지 못하였구나(韓康伯未得牙後慧)”라고 탄식했다. 자신의 아구(牙垢, 이똥)도 제대로 줍지 못하면서 박식한 체하는 꼴을 보고 핀잔을 준 것이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문인들의 일화를 모은 ‘세설신어’ 문학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습인아혜(拾人牙慧)다. 남의 주장이나 말 따위를 도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남이 흘린 눈물과 침을 줍는다는 뜻에서 습인체타(拾人涕唾)라고도 한다. 논문표절 의혹을 받아온 이필상 고려대 총장이 우여곡절 끝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총장은 학문적 양심에 속하는 문제를 신임투표라는 정치적 승부수로 해결하려 함으로써 결국 두 번 죽는 치욕을 겪고 말았다. 남의 글을 조금이라도 습인아혜했으면 먼저 그 잘못부터 시인하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이 총장은 끝내 자신의 오류를 덮어둔 채 ‘권력게임’의 차원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한 우를 범했다. 이제 표절은 더이상 학문적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어선 안 된다. 연구윤리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표절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지식사회에 ‘솔 서칭(soul-searching)’의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윤리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분석하고 양심을 되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jmkim@seoul.co.kr
  • “죽기전 좋은 일 해 행복해요”

    “죽기 전에 좋은 일 한 번 하고 싶었어요. 너무 마음이 좋고 행복하네요.” 27일 자신의 전재산을 내놓고, 좁은 단칸방에 앉아 환한 웃음을 짓는 박영자(87·양천구 신정3동) 할머니의 얼굴은 봄 햇살보다 따뜻하다.박 할머니는 매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 33만원에 노인수당 5만원을 받으며 소일거리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집 근처 복지관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전기나 가스 등은 쓸 일도 별로 없다. 이렇게 생활한 박 할머니가 80평생 만든 돈은 1000만원이다. 박 할머니는 이 돈을 좋은 일에 써달라며 신정3동사무소에 선뜻 내놓았다.“얼마 전에 혼자 살던 노인 한 분이 죽었어. 장례 치르자마자 전세금 가지고 주변사람들끼리 다툼이 난 거야. 나도 이제는 하루하루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차라리 좋은 일에 쓰자고 생각한 거지.” 가족이라고는 연락조차 되지 않는 조카뿐이라 혈혈단신이나 마찬가지인 박 할머니는 전재산을 현금으로 찾았다. 전세금 900만원은 장례를 치러줄 사람에게 주기 위해 남겨두고 손에 쥔 돈이 1000만원. 동사무소를 찾아 건넸다. 동사무소는 서울시 시회복지공동모금회에 연락했고, 할머니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경북 문경 출신인 박 할머니는 공무원 아버지를 둔 덕에 보통학교(초등학교)를 다니며 유복하게 살았다.6·25 전쟁이 터진 뒤 가세가 기울고, 스무살에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병에 걸려 죽자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갔다.경주로 건너가 15년 동안 남의 집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도와 주기도 했고, 서울로 올라와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해 왔다. 할머니의 사연을 들은 모금회 관계자는 박 할머니에게 “이 돈을 보태 더 좋은 집으로 가서 사시라.”고 권했다. 하지만 박 할머니는 “이 집에서 10년 이상 살았고, 지금 주인과 잘 지내고 있어 가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사를 가면 아플 것 같다.”며 거절했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9) 필운대 풍월과 꽃구경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9) 필운대 풍월과 꽃구경

    ●‘장안의 명승´에 사람들 모이다 조선시대의 체제와 제도를 명문화한 ‘경국대전(經國大典)’ 한품서용조(限品敍用條)에 의하면 “문무관 2품 이상인 관원의 양첩 자손은 정3품까지의 관직에 허용한다.”고 하였으며 “7품 이하의 관원과 관직이 없는 자의 양첩 자손은 정5품까지의 관직에 한정한다.”고 규정했다. 양첩 자손은 그나마 한정된 벼슬에라도 오를 기회가 있었지만, 천첩 자손은 벼슬할 기회가 없었다. 뛰어난 서얼 지식인들이 늘어나자, 정조는 서얼금고법에 해당되지 않도록 검서관(檢書官)이라는 잡직(雜織) 관원을 뽑았다. 규장각을 설치한 뒤에, 서적을 검토하고 필사하는 임무를 맡긴 것이다. 정무직이 아니어서 기득권층의 반대도 없었고,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서얼 학자들의 불만을 달래주는 효과도 있었다. 1779년에 임명된 초대 검서관은 이덕무·유득공·박제가·서이수 네사람이었다. 당대에 가장 명망있는 서얼 출신의 이 네학자를 4검서라고 불렀다. 유득공은 조선의 문물과 민속을 기록한 ‘경도잡지(京都雜志)’ 2권1책을 지었으며, 대를 이어 검서로 활동했던 그의 아들 유본예가 부자편이라고 할 수 있는 2권2책의 ‘한경지략(漢京識略)’을 지었다. 바로 서울의 문화와 역사, 지리를 설명한 책이다. 이들 부자는 필운대 꽃구경을 서울의 명승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유득공은 ‘경도잡지’ 유상(遊賞)조에서 “필운대의 살구꽃, 북둔(北屯)의 복사꽃, 동대문 밖의 버들,(무악산) 천연정의 연꽃, 삼청동과 탕춘대의 수석(水石)을 찾아 시인 묵객들이 많이 모여들었다.”고 기록하였다. 대부분이 인왕산 일대이다. 유본예는 ‘한경지략(漢京識略)’ 명승조에서 이렇게 소개하였다. “필운대 옆에 꽃나무를 많이 심어서, 성안 사람들이 봄날 꽃구경하는 곳으로는 먼저 여기를 꼽는다. 시중 사람들이 술병을 차고 와서 시를 짓느라고 날마다 모여든다. 흔히 여기서 짓는 시를 ‘필운대 풍월’이라고 한다.” 유득공이 어느 봄날 필운대에 올라 살구꽃 구경을 하다 시를 지었다. 살구꽃이 피어 한껏 바빠졌으니 육각봉 어구에서 또 한차례 술잔을 잡네. 날이 맑아 아지랑이 산등성이에 아른대고 새벽바람 불자 버들꽃이 궁궐 담에 자욱하구나. 새해 들어 시 짓는 일을 필운대에서 시작하니 이곳의 번화함이 장안에서 으뜸이라. 아스라한 봄날 도성 사람바다 속에서 희끗한 흰머리로 반악을 흉내내네. 유득공은 역시 검서였던 친구 박제가와 늦은 봄이면 필운대에 올라 꽃구경을 했는데, 흐드러지게 핀 살구꽃이 일품이었다. 육각현에서 술 한잔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시인은 그렇게 새해를 시작하고, 또 한해를 보내며 늙어간다. ●정조도 필운풍류에 취하다 한세대 앞선 시인 신광수는 도화동에서 복사꽃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필운대에 올라 살구꽃을 구경했다. “필운대 꽃구경이 장안의 으뜸이라.(雲臺花事壓城中)” 하고는,“삼십년 전 봄 구경하던 곳을/다시 찾은 오늘은 백발 노인일세.(三十年前春望處,再來今是白頭翁)”라고 끝을 맺었다. 반악은 진(晉)나라 때의 미남 시인인데, 그도 나이가 들자 흰머리가 생겼다. 자신은 서얼 출신이라 벼슬 한번 못하고 늙었지만, 반악 같이 잘 생기고 재주가 뛰어난 시인도 나이 들자 흰머리가 생기지 않았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한 것이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번역하거나 편집하여 간행한 고전들은 모두 검색이 가능하다. 한글로 번역한 책에서 ‘필운대’ 제목을 찾으면 연암 박지원이 지은 시 2편과 이덕무가 지은 시 1편만 나온다. 제목은 아니지만 필운대를 노래한 시는 다산 정약용과 정조대왕의 작품이 더 있다. 모두 유득공 부자가 필운대 꽃구경을 장안의 명승으로 소개한 정조-순조 시대 인물들이다. 이 당시에 필운대 꽃구경이 서울 장안에서 가장 이름난 유흥지였음이 확인된다. 정조가 필운대 꽃구경 시를 지었다는 사실은 특이하다. 백단령 차려 입은 사람은 모두 시 짓는 친구들이고 푸른 깃발 비스듬히 걸린 집은 바로 술집일세. 혼자 주렴 내리고 글 읽는 이는 누구 아들인가 동궁에서 내일 아침에 또 조서를 내려야겠네. ‘필운화류(弼雲花柳)’라는 제목의 시 앞부분은 다른 시들과 같이 필운대의 번화한 꽃구경 인파를 노래했다. 뒷부분에선 그 가운데 시인과 독서인을 찾아내고, 장안 사람들이 모두 꽃구경하는 속에서 글 읽는 젊은이에게 벼슬을 주어야겠다는 왕자의 생각을 밝혔다. 물론 이 시를 글자 그대로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왕자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번역하지 않아 원문 검색만 가능한 문집 가운데는 위항시인들이 지은 시도 많다. 게다가 문집을 간행하지 못한 위항인들의 시까지 합쳐 60년마다 편집한 ‘소대풍요(昭代風謠)’나 ‘풍요속선(風謠續選)’ ‘풍요삼선(風謠三選)’에는 엄청난 양의 필운대 시가 실려 있다. 젊은 시절부터 늙을 때까지 해마다 수천명이 필운대에 올라 꽃구경하며 시를 짓기에 분량은 많아졌지만, 해마다 같은 내용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필운대풍월’이란 말 속에는 천박한 풍월, 판박이 시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영의정 채제공의 화원 구경기 이 시대에 필운대풍월뿐만 아니라, 꽃구경을 하고 산문으로 기록하는 유행도 있었다. 영의정까지 지낸 채제공(蔡濟恭·1720∼1799)이 도성 안팎의 화원에 노닐며 지은 글이 여러편 있다. 필운대 부근의 조씨 화원을 감상하고 ‘조원기(曹園記)’를 지었다. 주인 조씨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심경호 교수는 “조하망(曹夏望)의 후손이었던 듯하다.”고 추측하였다. 계묘년(1783) 3월10일, 목유선과 필운대에서 꽃구경하기로 약속하였다. 저녁밥을 다 먹고 나서 가마를 타고 갔더니 목유선이 아직 오지 않았기에, 필운대 앞 바위에 자리를 깔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얼마 있다가 목유선이 이정운과 심규를 이끌고, 종자에게 술병을 들게 하여 사직단 뒤쪽으로 솔숲을 뚫고 왔다. 처음에는 필운대 꽃구경을 하기로 약속하고 모였다. 그러나 인파가 몰려 산속이 마치 큰 길거리 같이 번잡해지자, 채제공은 곧 싫증이 났다. 동쪽을 내려다보자 서너곳 활터에 소나무가 나란히 늘어서 있고, 동산 안의 꽃나무 가지끝이 은은히 담장 밖으로 나와 있어서 호기심이 일어났다. 목유선에게 “저기는 반드시 무언가 있을 거야. 가보지 않겠나?”고 물었다. 작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자 널빤지 문이 열려 있었다. 점잖은 손님들이 꽃구경을 하겠다고 들어서자 주인이 집 뒷동산으로 인도하였다. 화원에는 돌층계가 여덟개쯤 깔려 있었는데, 붉은 꽃·자주 꽃·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서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유항주·윤상동 같은 관원들도 꽃구경하러 왔다가 채제공이 조씨네 화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따라와서 술잔을 돌리고 꽃을 평품하며 시를 지어 즐기느라고 달이 동쪽에 뜬 것도 몰랐다. 이듬해 윤3월13일에도 채제공은 친지들과 함께 가마를 타고 육각현 아래 조씨네 화원에 찾아가 꽃구경을 했다. 석은당에 앉아 거문고를 무릎 위에 눕히고 채발을 뽑아 서너 줄을 튕겨 보았다. 곡조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윽한 소리가 나서 정신이 상쾌해졌다. 얼마 뒤에 조카 채홍리가 퉁소 부는 악사를 데리고 와서 한두곡을 부르게 하자, 술맛이 절로 났다. 채제공은 소나무에 기대어 앉아, 퉁소 소리에 맞춰 노래하였다. “아양 떠는 자는 사랑받고, 정직한 자는 미움을 사는구나. 수레와 말이 달리는 것은 꽃 때문이지. 소나무야 소나무야. 누가 너를 돌아보랴?” 모두들 맘껏 흥겹게 놀다가 흩어졌다. 채제공은 북저동 명승에 노닐고 ‘유북저동기(遊北渚洞記)’를 지었다. “도성의 인사들이 달관(達官·높은 벼슬아치)에서 위항인에 이르기까지 노닐며 꽃구경을 했다.(줄임)국가의 백년 승평(昇平)의 기상이 모두 여기에 있다.”고 하였다. 위항인들의 경제력이 사대부 같이 되자, 유흥문화도 함께 즐겼다는 뜻이다.(화원 이야기는 심경호 교수가 쓴 논문 ‘화원에서 얻은 단상-조선후기의 화원기’를 많이 참조했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윤봉길 연행사진 교과서 빠져

    매헌 윤봉길(1908∼1932) 의사의 연행 장면 사진이 진위 문제에 휩싸여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빠져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25일 금성출판사에 따르면 이 회사가 출판하는 2007년도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189쪽에 1932년 4월29일 ‘훙커우 의거’ 직후 윤 의사가 일본 군경에 연행되는 사진을 빼고 의거 사흘 전 선언문을 가슴에 부착한 채 태극기 앞에서 선서식을 하는 사진을 넣었다. 이 교과서는 전국 고교의 절반 이상이 사용하는 것으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계속 윤 의사 연행 사진을 실어 왔다. 삭제된 사진은 일본 아사히신문(32년 5월1일자)에 실렸는데, 윤 의사로 추정되는 남성이 일본 군경에 양쪽 팔을 붙잡힌 채 어디론가 걸어가는 장면으로 윤 의사가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금성출판사 관계자는 “지난해 9∼10월쯤 교과서 수정작업을 하기 직전 회사에 항의글과 전화가 잇따라 확인해 보니 의견이 분분한 사진인 것 같아서 분쟁의 소지가 전혀 없는 사진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문제를 제기한 경희대 강효백 교수는 “당시 현지에서 발행된 신문들을 보면 윤 의사는 거사 당일 피투성이가 된 채 끌려갔다고 하는데 사진 속 인물은 바바리코트 차림에 중절모까지 집어든 온전한 모습으로 분명 윤 의사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 의사의 친조카인 윤주(60) 월진회 부회장 등은 “윤 의사 본인이 맞다.”고 말했다.“윤 의사의 동생 윤남의(윤 부회장의 부친) 선생과 미망인 배용순 여사가 모두 사진 속 인물이 윤 의사라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면서 “윤 의사는 얼굴이 가늘고 긴 편이어서 정면과 측면이 달라보이고 15세에 일찍 결혼을 해 나이도 들어보이는 편”이라고 주장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검찰 ‘바다이야기’ 끝냈다

    사행성 게임비리 의혹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23일 게임업자 곽모씨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열린우리당 김재홍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상품권 업계와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아 온 같은 당 조성래·정동채 의원,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 등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김재홍의원만 불구속 기소 지난해 8월 100여명 규모의 매머드급 수사팀을 꾸린 검찰은 이날 반년 동안에 걸친 수사를 마무리짓고 결과를 발표했다. 구속 기소자는 45명, 불구속 기소자는 108명이다. 전 한국게임산업개발원 검증심사위원장인 정모씨와 조직폭력배 등 22명은 지명수배됐다. 검찰은 또 문화관광부 공무원 3명과 경찰관 2명의 비위 사실을 해당 부처에 통보했다. 또 상품권 업체 19곳 가운데 2곳을 제외한 17개 업체 관계자들이 모두 상품권 허수 발행과 회사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됐다. 기존 검찰 특수수사 잣대로 보면, 기대했던 ‘횟감’은 없어도 ‘젓갈용 생선’은 잔뜩 건져올린 셈이다. 바다이야기 제조사인 지코프라임이 우회 상장을 노리고 인수한 우전시스텍에 근무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 노지원씨는 우회 상장 과정에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게임물 등급분류 심의과정과 상품권 발행·유통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명계남씨도 결백을 입증하게 됐다. 결국 바다이야기 사태는 권력자의 외압이 아니라 정책실패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명됐지만, 최고위 정책 담당자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는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검찰은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이 신속하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해 사행성 게임장이 확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담당 공무원의 고의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사행성게임장 근절에 기여” 평가도 상품권 업자에게 금품을 받은 백모 문화부 국장 등 공무원과 정모 국회의원 보좌관 등 정치권 인사, 게임·상품권 업자, 조폭 등 각 계층의 사람들이 처벌됐지만 대부분 개인비리 혐의가 적용됐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가 사행성 게임장 근절에는 기여했다는 평가다. 서울시는 수사가 착수되기 전인 지난해 6월30일 서울 시내에 153개 영업장이 있었던 바다이야기가 같은 해 12월31일 47개로 줄었다고 집계했다. 같은 기간 황금성은 97개에서 51개로 줄었다. 수사를 통해 환수한 범죄수익이 1377억원이나 되고 사행성 게임장에 무관심했던 여론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점도 높이 살 만하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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